'2017/06'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7.06.13 납월팔일(臘月八日) (No.319)—용맹정진 | (게송)一見明星夢便廻 千年桃核長靑梅 雖然不是調羹味 曾與將軍止渴來
  2. 2017.06.13 황엽(黃葉) (No.319)—(게송)世尊當入雪山中~ | 백아와 종자기 |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설하신 여러 가지 방편 법문을 ‘노란 이파리’라고 표현한 것 | 납월팔일.
  3. 2017.06.12 황룡탕(黃龍湯) (No.627)—황룡탕은 무독(無毒)의 약제(藥劑) | 이 세상이 말세라 해도 여법하게 정법을 믿고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말세를 다시 정법시대로 돌릴 수 있다.
  4. 2017.06.12 일념단속(一念團束) (No.627)—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 살아서 극락에 가는 연습, 살아서 도솔천내원궁에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
  5. 2017.06.11 의심(疑心) (No.627)—(게송)萬疑都就一疑團~ | 모든 의심을 전부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하나의 의단에다 몰아붙이라 |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될 수 있다.
  6. 2017.06.11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No.627)—스님의 인사 “잘 수용하겠습니다” | 시주, 보시를 하더라도 무주상으로 해야 | 스님과 신도 서로가 다 도반이고, 서로가 다 부처님 제자고 부처님 아들딸.
  7. 2017.06.11 발심(發心) (No.627)—(게송)榮華能幾日~ | 발심을 하려면 진실하게 발심 해야 | 세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로써 중심을 잡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상근대지(上根大智).
  8. 2017.06.11 최상승법(最上乘法) (No.627)—내 자신이 부처이니 부처도 내 몸 밖에서 찾지 말 것 | 번뇌가 곧 보리(菩提)이니, 무슨 망상 번뇌가 일어나거나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9. 2017.06.11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No.627)—(게송)一從違背本心王~ | 우리가 철저히 믿어야 할 것은 우리가 본래 법신불이었다고 하는 사실,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
  10. 2017.06.01 정진(精進) (세등선원No.34)—거문고 줄 고르듯 지혜롭게 공부를 다그쳐 나가면 반드시 도는 이루고야만 만다 |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해 봐! 반드시 도를 성취하고야만 만다.
ㄴ/납월팔일2017. 6. 13. 19:14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9분 50초부터 시작됩니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달을 이르는 . 음력 12 8.

석가모니가 35세의 12 8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이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 이루던 .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 한다.

 

(10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319)—86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17)(용319)

 

해마다 돌아오는 납월 8일(臘月八日)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이천오백삼십일 년이 되었습니다. 이천오백삼십일 해의 납월 8일이 지내가고  이렇게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납월팔일 새벽별을 보시고서 그렇게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셨는데, 이천오백삼십  동안 해마다 뜨는  별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철대오를 했을까요?

 

오늘 새벽에도  별은 떴습니다. 하늘이 안개가 끼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별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납월 8일이 되면 초하루부터서 8 새벽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선방(禪房)에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이런 불교를 믿는 절에 선방에서는  용맹정진(勇猛精進) 또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특별히 용맹정진을 하는 그러한 거시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개인적으로  일주일간을 용맹정진 하는  마음으로,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모두 정진을 하셨던것입니다.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한데  천년도핵장청매(千年桃核長靑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여, 한 번  새벽별을 보시고서 꿈을 문득 돌이켰다 그말이여. 오랜 잠 속의 꿈을, 별을   봄으로 해서 꿈을 ! 돌이켜서 깨달아 버렸어.

천년도핵(千年桃核)이 장청매(長靑梅)다.  년이나 묵은 복숭아씨에서 푸른 매화의 싹이 텃드라. 복숭아씨에서 복숭아 싹이 나지 않고, 복숭아씨는 분명히 복숭아씨인데 그 복숭아씨에서 매화의 싹이 텃드라 그말이여.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비록  매화를 가지고,  매화의 신맛을 가지고 국의 맛을 고르지는 못하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로구나. 일찍이 장군에게  목마른 것을 그치게 했더라.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군사들이 계속 격전을 거듭을 해가지고 땀을 많이 흘렸어. 그래서 목이 말라서, 그런데 모두 준비했던 물은  먹어버리고 미처  준비를 못하고 계속 싸우면서 나아가는데, 목이 말라가지고 군인들이 병사들이 발광을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때에 조조가  산너머 가면 거기에 매실(梅實)이 많이 열렸다.  산만 넘으면 실컷 매실을 먹을 수가 있다  매실 얘기를 하니까 병사들이 매실 말만 듣고도 침이 지르르르 하니 입안에 가득차가지고 갈증을 면한 고사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하는 ,  말을 듣고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납월 8 무렵만 되면  천하에 총림 선원에서 모두 우리도 부처님처럼 고행 정진하고, 용맹정진 다못 일주일간이라도 용맹정진을 하고 가행정진을 하자 그래가지고 하는데. 가행정진 용맹정진 중에 확철대오를  분도 간간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가행정진 했다고 해서  대중이  깨닫느냐 하면은 그렇지를 못해.

그래도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 또는 가행정진을 하면 그동안에 장군죽비(將軍竹篦)를 가지고 경책(警策)을 하고, 이렇게 경책을 맞으면서 7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다 대지 아니하고 그렇게 정진을 하는데,  꾸벅 졸면은 입승(立繩) 스님이 와가지고 장군죽비로 등짝을 내다 친 바람에 잠이 버쩍 버쩍 잠이 달아나고 그런데.

 

 장군죽비를  맞으려고 어떻게 눈을 갖다가처음에  3일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사흘, 나흘이 되면은 눈 껍데기가 천근이나 되게 눌리고, 아무리 정신을 들라고 해도 금방 일 초도 못된 사이에 꺼벅한다 말이여. 또 금방 정신을  차렸는데  꺼벅하고.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하다 보면 그때 하는 동안에는 순전히 잠을  자려고 싸울 따름이지만, 납월 8일을 지내고 나서 보면은 정말 정진하는 데에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실지로 일주일 동안은 그렇게 맑은 정신이   같지 않고 오직 잠과만 싸웠지만, 지내 놓은 뒤에 한결 정진하기에 힘이 생기고, 신심도 나고 그래서 납월 8일에는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해왔던 것입니다.

 

비록 매실을 가지고  맛은 고르지를 못해.  산너머에 있는 매실이 있다’한 그걸 가지고 실지로  매실을 마시고, 먹을 수는 없지마는 그 말만 듣고서도 입안에 침이 주르르르 나와 가지고 입안에 고여서 갈증을 면할 수가 있더라.

 

 게송(偈頌)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내가 설명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859~192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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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 샛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 이르는 .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별이 돋을 , 정각(正覺) 이루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②선원(禪院).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게송) 일견명성몽변회~’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1 3 '오도(悟道)' 취암종(嵓宗) 게송 참고.

[참고]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내용으로,

조조(曺操) 장수(張繡) 정벌할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고통이 아주 심했는데, 이때 조조가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앞에는 넓은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잠시만 참고 힘을 내자.”

 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잊게 되었다 한다.

 

육조 시대 () 유의경(劉義慶) 지은《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있는 내용으로,

() 세운 사마 (司馬炎) ()나라를 공격할  길을 잘못 들어 헤매어 식수가 바닥이 났고,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없어 병사들은 갈증이 심하여  이상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때 사마염은 문득 꾀를 내어 말하기를 여러분 조금만 참고 가면  언덕 너머에 매화 숲이 있소.  곳에 가면 매실이 가지가  정도로 매달려 있소.” 매실이란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여 갈증을 잊었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2m  죽비.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한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Posted by 닥공닥정
ㅎ/황엽2017. 6. 13. 12:46

*황엽(黃葉) ; 어린 아기가  때에, 버드나무의 누런 [黃葉] []이라 하여 어린 아기에게 주어서 울음을 그치게  .

부처님이 33천이 항상[]하고 즐겁고[] []이고 깨끗함[], 단정하고 자재하여 훌륭한 궁전에서 오욕락(五欲樂) 받는 일과, 육근(六根)으로 상대하는 것이 모두 즐거운 일이라 말하여 중생이 악업을 짓지 아니하고 33천에 태어날 선업을 짓게 하는 것에 비유한 .

그러나 실제로는 나고 죽는 것이며 무상(無常)하고 낙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常樂我淨]’ 방편(方便)으로 []하는 것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6 25품』 (宋代沙門慧嚴等依泥洹經加之) 18. 21 영아행품(嬰兒行品).

 

(9분 53초)

 

[법문] 송담스님(No.319)—86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17)(용319)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하사  인견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로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런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나무~아미타불~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 우리 세존(世尊)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갖은 고행을  하셨습니다.

마침내 인견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여. 납월 8일(臘月八日) 새벽별을 보시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런들, 만약  산중(山中)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더라면,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갔을 것인가.

 

‘산중(山中)에서 자기(子期)를 만난다  자기란 말은 사람 이름인데, 종자기(鐘子期)라고 하는 사람 이름인데,  종자기는 아주  거문고, 음악을 달통한 사람이여.

누가 거문고를 타거나, 무슨 음악을 하면은  음악 소리만 듣고서도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 버리고,  음악의 뜻을 알아 버리고, 아주 음악에 달통한 도인인데.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그이도 거문고를  타는 사람이었었는데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란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 벌써 백아의 뜻을 알아 버려. 그래서 백아와 자기는 지음상통(知音相通)이여. 말로써 뜻을 표현하지  해도 벌써 음악 한가락 떠억 들으면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해 버리는 것입니다.

 

친구 간(間),  사람의 희로애락을 서로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면 말로써 구체적으로  심중을 표현하지  해도 상대방의 얼굴빛만 봐도 알고,   번만 감았다 떠도 알고, 기침만 해도 알고. 그래서 그러한 친구 간을 지기(知己)라고 그러거든.

 

부부간에도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부부는 남편이 눈만 떳다 감거나, 고개를  들었다 놓거나, 쪼끔 손만 이리 움직여도 지금 남편이 무엇을 바라고 있다. 무엇을 요구한다 물을 떠다 드린다든지, 무슨 책을 갖다 드린다든지, 무슨 약을 갖다가 한다든지.  아내가 무엇을 해도 남편이 벌써  아내의 뜻을 알고서 해 주고.

 

친구 간도 그래야 마땅하고,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약속한 부부간에도 서로 그렇게 통해야  것이고 또 스승 상좌(上佐) 간에도, 그렇게  도를 배우는 스승 상좌 간에도 그리되어야  것이고.

또 나라의 통치자와 백성도 그렇게 서로 통해야  것이고, 모두 공장이나 회사 노사 간에도 그렇게 서로 심지(心志)가 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백아라고 한 사람이 거문고를 타되 아무도  거문고의 참뜻을 알아준 사람이 없지마는 오직 종자기  사람이 그걸 알아주기 때문에 거문고를 자주자주 뜯고 그러다가 종자기란 사람이 먼저 죽었습니다.

종자기가 죽어버리니까 거문고를 타 봤자 아무도 알아들은 사람이 없고, 그 참다운 뜻을 감상해 주는 사람이 없고 그러니까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를 않았다고 하는 중국에 옛날 전설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뒤에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거기서 만나셨다면 무엇 하러 노란 이파리를 들고 산밑으로, 산아래로 내려오셨겠느냐.

노란 이파리, 황엽(黃葉)이라 하는 것은 어린애를 달래기 위해서 노란 이파리를,  단풍잎 빨갛고 노란 그런 이파리를 주면서 여기  있다. 여기  있다 이러면서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것인데, 여기서 노란 이파리’라 하는 것은 방편설(方便說)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 동안 중생의 근기(根機)를 맞추어서 그렇게 횡설수설(橫說竪說)하신 여러 가지  방편 법문을 갖다가 여기서는 노란 이파리’라고 표현을  것입니다.

산중에서 자기와 같은, 정말 부처님의 깨달으신 도리를 알아차릴  있는 그러한 사람을 만났던들 무엇 하러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냐.

 

해마다 돌아오는 납월 8일(臘月八日)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이천오백삼십일 년이 되었습니다. 이천오백삼십일 해의 납월 8일이 지내가고  이렇게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납월팔일 새벽별을 보시고서 그렇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이천오백삼십  동안 해마다 뜨는  별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철대오를 했을까요?(처음~95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6 25품』 (宋代沙門慧嚴等依泥洹經加之) 18. 21 영아행품(嬰兒行品), 『열반경(1) (이운허 옮김 | 동국역경원) p453~454.

 

嬰兒行者  如彼嬰兒啼哭之時  父母卽以楊樹黃葉而語之言  莫啼莫啼我與汝金  嬰兒見已生眞金想便止不啼  然此楊葉實非金也  木牛木馬木男木女嬰兒見已  亦復生於男女等想卽止不啼  實非男女以作如是男女想故  名曰嬰兒

 

 어린 아기의 [嬰兒行]이라 함은 어린 아기가  때에는,  부모가 누른 버들잎[楊樹黃葉] 주면서 달래기를 너에게 []  터이니 울지 말라하는데, 아기가 보고는 참말 돈인  생각하고 울지 않으니 그것은 버들잎이지 참말 돈이 아니니라.

나무로 만든 소와 나무 말과 나무 남자와 나무 여자를 어린 아기가 보고는 참으로 남자나 여자인  생각하고 울지 않는데, 참으로 남자와 여자가 아닌 것을 남자와 여자인  생각하므로 어린 아기라 이름하느니라.

 

如來亦爾  若有衆生欲造衆惡  如來爲說三十三天常樂我淨端正自恣  於妙宮殿受五欲樂  六根所對無非是樂  衆生聞有如是樂故  心生貪樂止不爲惡  勤作三十三天善業  實是生死無常無樂無我無淨  爲度衆生方便說言常樂我淨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지으려 하면,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33천이 항상[]하고 즐겁고[] []이고 깨끗함[], 단정하고 자재하여 훌륭한 궁전에서 오욕락(五欲樂)받는 일과, 육근(六根)으로 상대하는 것이 모두 즐거운 일이라 말하는데, 중생들은 이러한 즐거움을 들은 까닭으로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고 33천에 태어날 선한 업을 짓거니와,

실제로는 나고 죽는 것이며 무상(無常)하고 낙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常樂我淨]’ 방편(方便)으로 []하는 것이니라.

 

嬰兒者  若有衆生厭生死時  如來則爲說於二乘  然實無有二乘之實  以二乘故知生死過見涅槃樂  以是見故  則能自知有斷不斷有眞不眞有修不修有得不得

 

 어린 아기라 함은 어떤 중생이 나고 죽음을 싫어할 때에는 여래가 2(二乘) 도를 말하거니와, 실제로는 2승의 실상이 없는 것이며, 2승의 법으로 인하여서 나고 죽는 허물을 알고 열반의 낙을 보는 것이며, 이런 소견으로 말미암아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이 있으며. 참된 것과 참되지 않은 것이 있으며 닦을 것과 닦지 않을 것이 있으며, 얻을 것과 얻지 못할 것이 있음을 아느니라.

 

善男子  如彼嬰兒於非金中而生金想  如來亦爾  於不淨中而說爲淨  如來已得第一義故則無虛妄

如彼嬰兒於非牛馬作牛馬想  若有衆生於非道中作眞道想  如來亦說非道爲道非道之中實無有道  以能生道微因緣故  說非道爲道

 

선남자야,  어린 아기가 돈이 아닌데 돈이란 생각을 내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 말하거니와, 여래는 제일의(第一義) 얻었으므로 허망함이 없느니라. 어린 아기가 소와 말이 아닌데 소와 말이라 생각하듯이 어떤 중생이 () 아닌데 도라는 생각을 하는데, 여래도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말하나니 도가 아닌 데에 실로 도가 없지만 능히 도를 내는 작은 인연이 되는 것이므로, 도가 아닌 것을 말하여 도라고 하느니라.

 

如彼嬰兒於木男女生男女想  如來亦爾  知非衆生說衆生相  而實無有衆生相也  若佛如來說無衆生  一切衆生則墮邪見  是故如來說有衆生  於衆生中作衆生相者  則不能破衆生相也  若於衆生破衆生相者  是則能得大般涅槃  以得如是大涅槃故止不啼哭  是名嬰兒行

 

어린 아기가 나무로  남자와 여자에게 참말 남자와 여자인 생각을 내듯이 여래(如來) 그와 같아서 중생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중생이라 말하지만 실로는 중생이란 모양이 없느니라. 만일 부처님 여래가 중생이 없다 말하면 모든 중생이 잘못된 소견에 떨어질 것이므로 여래가 중생이 있다 말하느니라. 중생에 대하여 중생이란 모양을 지으면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지 못하나니 중생에 대하여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는 이라야 능히 대반열반(大般涅槃) 얻을  있느니라. 이렇게 대반열반을 얻으므로 울음을 그치는 것을 어린 아기의 [嬰兒行]이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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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世尊當入雪山中  因見明星云悟道’ ; 「순당(巡堂) 의식에 있는 입산게(入山偈)’ 참고.

[참고] 입산게(入山偈)

〇世尊當入雪山中  一坐不知經六年  因見明星云悟道  言詮消息遍三千

세존께서 설산에 들어가셔서    앉음에 여섯  지남을 알지 못했네.  새벽별을 보시고서 깨달으시니   말씀  소식 삼천세계에 가득하여라.

*순당(巡堂) ; 예불 후의 의식으로 모든 대중이 순당 의식에 있는 게송을 창화(唱和)하며, 게송의 내용으로 각자의 수행하는 마음을 점검하며, 예불을 행한 당내(堂內)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게송)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 [태고집(太古集)] (雪栖 , 김달진 역주 | 세계사)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p229 참고.

*세존(世尊) : []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달을 이르는 . 음력 12 8.

석가모니가 35세의 12 8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이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 이루던 .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 한다.

*새벽별 ; 샛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 이르는 .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별이 돋을 , 정각(正覺) 이루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지음(知音) ; ①음악의 곡조를  . ②새나 짐승의 소리를 가려  알아들음. ③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 이해해   종자기(鐘子期)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

*지기(知己  /자기 ) ; 자기(自己) 속마음을  알아주는[] 참다운 . 지기지우(知己之友).

*백년해로(百年偕老 일백 / /함께 /늙을 ) ; 부부가 되어 한평생 오랜 세월[百年]  살면서 함께[] 늙음[].

*상좌(上佐  /도울 ) ; 윗사람을 도운다는 . ,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심지(心志) ; 마음속에 품은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횡설수설(橫說竪說 가로 /말씀 /세로 /말씀 ) ; 두서(頭緖)없이 이것저것 되는대로 지껄임.

 

Posted by 닥공닥정
ㅎ/황룡탕2017. 6. 12. 06:01

*황룡탕(黃龍湯) ; 황탕(黃湯), 용탕(龍湯)이라고도 한다. 약용으로서 저장한 인간과 가축의 대변과 소변을 말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써 이용하는 오줌을 말함. 요료법(尿療法).

 

[참고] *부란약(腐爛藥) ; 대변, 소변등의 배설물로 만든 약.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들이 버려서 아무도 쓰지 않는 재료로 만든 약도 포함한다.

악취가 나고 부패한 것이라는 뜻에서 부란약이라 하고, 버려진 것이라는 뜻에서 진기약(陳棄藥), 잔기약(殘棄藥) 등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법[사의법 四依法 : 乞食, 糞掃衣, 樹下住, 陳棄藥] 중 하나와 관련된 것으로, 수행자는 병이 들었을 때 부란약을 제조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尿療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4분 16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우리는 비록  사대(四大)로 뭉쳐진 허망하고 더러운  몸뚱이지만  속에 법신불(法身佛)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는다면  몸뚱이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 거고.  몸뚱이를 소중히 여기고.

애착심을 가지고 집착(執着)하라는  아니고, 지혜롭게  관리를 해야 공부도  수가 있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비록 검소하게 먹고 할지언정,  고기만 많이 먹고  영양가 있는 것만 많이 먹는다고 해서  건강이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나물에 검소하게 이렇게 먹어도, 보리밥에 잡곡밥에 이렇게 먹어도  씹어서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저작(咀嚼)을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 하면서 먹으면 고기에다가 진수성찬에   먹더라도 건강은 유지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신 황룡탕(黃龍湯)을  잡순 것을 내가 권고를 하고.

 

황룡탕은  몸에서 나온 것을 내가 다시 섭취하는데, 그것이 전혀 더러운 노폐물이 아니고 우리 몸안에 있는 피와 거의 같을 정도로 여러 가지 영양이  속에  들어있고.

의사들이  조사를 해보면 전혀 균이 없는 무독지제(無毒之劑)라고 하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동양의학대사전에도 보면 무독(無毒)’이라고  나와 있고 여러 가지 병에 좋다고 하는 것도 옛날 성현들이  말씀을 하셨고.

 

오죽하면 부처님께서도 걸식(乞食)을  것이며, 분소의(糞掃衣)를 입을 것이며, 수하(樹下) 나무 밑에서  것이며, 그리고 약은 예약(穢藥)을 써라. 예약이라 하는 것은 대변이나 소변으로 만들어진 , 병이 나면 소변을 먹으라고 하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혈압이 높으신 분도 좋고, 각종 암도 좋고, 요새 모다 발표한 것을 보면 에이즈와 같은 무서운 병도 소변을 장기적으로 복용을 하면 낫을  있다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마는.

 

이뭣고?’ 하면서 황룡탕을 먹으면서 잡곡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열심히 산다면,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한다면  세상이 비록 오탁악세(五濁惡世)요, 말세(末世)라고 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법하게 정법을 믿고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말세를 다시 정법시대(正法時代)로 다시 돌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정법이다, 말세다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되는 것이고, 지옥 천당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닦고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모든 생활을  나간다면은 우리는  21세기를 진짜 정법시대로 돌릴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5330~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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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저작(咀嚼 씹을 /씹을 )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분소의(糞掃衣  /버릴 / ) ; 똥이나 먼지구덩이 속에 쓰레기로 버려진 낡은 옷과 찢어진 헝겊 조각을 깨끗이 씻은 다음 조각조각 기워서 만든 가사(袈裟). 납의(衲衣), 백납의(百衲衣) 등이라고도 한다.

*예약(穢藥) ; 부란약(腐爛藥). 대변, 소변등의 배설물로 만든 약.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들이 버려서 아무도 쓰지 않는 재료로 만든 약도 포함한다.

악취가 나고 부패한 것이라는 뜻에서 부란약이라 하고, 버려진 것이라는 뜻에서 진기약(陳棄藥), 잔기약(殘棄藥) 등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법[사의법 四依法 : 乞食, 糞掃衣, 樹下住, 陳棄藥] 중 하나와 관련된 것으로, 수행자는 병이 들었을 때 부란약을 제조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Posted by 닥공닥정
ㅇ/일념(한생각)단속2017. 6. 12. 05:43

*일념단속(一念團束) ; ‘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8분 35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무척 살기가 교통이라든지 모든 생활이 편리하게는 되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행복해졌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같습니다. 점점 사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일체가  곳마다  복잡해지고 다단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때일수록  살아 있는 활구참선(活句參禪) 이것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인생을 바로 살기가 어렵고,  어려운 고비를 극복해 나가기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 오늘  번뇌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제(除)한다고 하는 것은 활구참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르게 활구참선하는  근본을 딱! 알고 보면 삼도고(三途苦)니,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이니 그것 버릴 것이 못됩니다.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지옥은 현실 속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형무소 교도소가  지옥이냐 하면 그게 아니고,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 바로 우리 몸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육도(六途)가 들어있다고 봐야 정말 육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하고 있다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생각 뒤집어지면 지옥도 되고, 독사도 되고, 아귀도 되는 것입니다.  생각 ! 바로 잡으면 아까까지 지옥에 있었던 사람이  생각으로 인해서 천당에도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죽은 뒤에, 금생에 살아서 악업(惡業)을 지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하는  말씀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살아서 우리가 들어가는 지옥도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우리가 인식을 한다면 죽어서 지옥 가는 것은 걱정이 없습니다.

내나 살아서 지옥 가는 연습을  사람이 죽어서 틀림없이 지옥에  것이기 때문에 살아서부터서 지옥에  가는 행위를 한다면 지옥 그렇게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지옥이 무엇인가를 알고,  마음속에 있는 지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살아서 지옥  짓을  하게 되고, 살아서부터 지옥 가는 연습을  한다면 죽어서 지옥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술을 많이 먹고 술버릇이 고약한 사람은 술을  먹을 때는 성현 군자고 그렇게 착한 사람이 술만 들어갔다 하면은 자기 자신을 자제를 못하고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용케도 자기집은 찾아갑니다. 가서 꺼꾸러져도 자기집  앞에 가서 꺼꾸러져 가지고 거기서 쓰러져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꺼꾸러져서 잡니다.

 그러냐?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항상 자기집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술에 취해가지고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도 자기집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도 살아서 지옥 가는 행위를 많이  사람은 틀림없이  몸뚱이를 버리고 영혼이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서 지옥에  가는, 천당에 가는 연습을 많이  사람은  떨어지자마자 천당에 가는 거고, 살아서 극락(極樂) 가는 연습을 많이  사람은  떨어지자마자 쏜살같이 극락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극락에 가는 연습,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 이것입니다.

 

탐심이 나도 바로 거기서 이뭣고?’  버리면, 탐심의  생각 일어날  그것이 구체화되기 전에 탁! 이뭣고?’  버리면 영락없이 지옥으로  차를 타려다가  타버리고 극락으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면 물어  것도 없이 극락에  거여.

 

그래서 이뭣고?’ 천하에 간단하고 별로 맛은 없지만, 내가 바로 부처요, ‘이뭣고?’ 바로 살아서 극락에 가고,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연습이고, 바로  생각에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올라가는 공부라고 하는 것을 믿고 고대로 실천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혼탁하고 그래도 한탄할  없습니다.

어려운 고비고비 만날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 열심히 한다면 거기서부터서  지상에 극락이 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엄동설한(嚴冬雪寒) 소한, 대한 때는 이대로 가다가는  얼어죽을  같지만  시간에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고  하다보면 금방  입춘, 우수가 돌아와서 봄이  거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그래도 ! 정신만 차리고 이뭣고?’ 열심히 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장, 자기가 해야  일을 찾아서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다보면 머지않아서 우리도  잘살게 됩니다.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마음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드라도 자기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다보면 반드시  살아  길이 있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노력할  우리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죽을  같지마는  살길이 열리고 좋은 세상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역사는 누가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가 있어서 역사를 만든  아니라 내나 인간이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좋은 역사도 만들고, 어려운 시대를 좋은 시대로 맨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에 각자 주인이 자기 살림을  돌보고 자기 일을 잘할   집안도 잘되고 회사도 잘되고 사회도 올바르게 되어가는 것입니다.(163~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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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도고(三途苦, 三塗苦) ; 악한 일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지옥아귀축생)에서의 고통.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 :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있다.

*고주망태 ; 술을 많이 마셔 취하여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인사불성(人事不省 사람 인/일 사/아니·못할 불/살필 성) ; 사람[]으로서 지켜야  [] 살피지[] 못함[].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극락(極樂) ;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정토(極樂淨土).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 ()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뜻。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경지(境地 지경·경계 / )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엄동설한(嚴冬雪寒 혹독할 /겨울 / / ) ; 혹독하게[] 추운 겨울[] [] 내린 뒤의 추위[].

Posted by 닥공닥정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7분 3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하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이여. 만 가지 의심을 모두   의심 덩어리로  그리 몰아붙이라 이거여.

우리는 살다 보면은 여러 가지 의심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경전에 대한 의심, 공안에 대한 의심, 세속의 모든 일에 대한 의심, 정치 경제 모든 의심, 학교의 과학 학문에 대한 의심, 모든 의심이 있을 수가 있으나,  모든 의심을 전부 다 이뭣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하나의 의단(疑團)에다  몰아붙이라 이거거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여.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며, 이뭣고?’ 의심을 스스로  다시 되돌이켜 관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인데, 이뭣고?’

이뭣고?’  -’  -하는 이놈이 뭣고?’ 이것이 의자간(疑自看)이여.

 

의심나는 것을 물어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 가지고 그걸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무슨 의심이 나던지 바로  의심을 즉(卽)해 가지고 자기의 본참화두 이뭣고?’ 돌아오라 이거거든.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 모름지기 용을 때려잡고 봉(鳳)을 잡는 그러한 용기와 수단을 가진 사람이라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다. 한주먹으로 철성관을 쳐서 꺼꾸러뜨릴 수가 있을 것이다. ‘쇠[鐵]로 만든 성(城)에 관문(關門)’이라 한 것은 조사관(祖師關)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參禪)을 하는 것은  조사관을 깨뜨려야 하거든.   없는  의심관, 조사관, 이놈을 !...

 

이뭣고?’ 자꾸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잊어버리고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고 하지만 잊어버리면  이뭣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  생각 버리고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자리에서 이뭣고?’ 자꾸자꾸 하다보면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가지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거든.

 

그래가지고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까지, 저녁에 누워서 이뭣고?’하면서 들고 있는 화두가 아침에 일어나면 고대로 들어져 갔고 있거든. 이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거든.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고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면 머지않아서 !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여.

 

열심히 열심히 하고, 자기 근기(根機)도 따지지 말고 아무것도 따질 것이 없어.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되는 것이 바로 이거여.

세속의 사업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되기도 하고 실패하기.. 실패율이  많고. 이것은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어도  되고만 마는 것이 바로 이것이여. ?

 

자기가 원래 부처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하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우리가 모든 인연에 따라서,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빠르면은 7일이요, 늦으면은 3년이요 이렇게 말씀하셨지마는,  기한은 전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빨리 되어도, 빨리 공안을 타파해도 그것에 끝난 것이 아니고, 더디 되어도 더디 되었다고 해서 허송세월한 것이 아니어.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빨리 공안을 타파할 수도 그리고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원만구족(圓滿具足)하려면은 깨달은 뒤에도 계속해서 우리는 닦아 가야 하는, 닦을  없이 닦아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것이여.(46분27초~53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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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의도취일의단~’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5) '贈蘭法師' 게송 참고.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즉해(-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 관문이 된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별념(別念) ; ‘ 생각’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오매일여(寤寐一如 잠이  /잠잘 /하나 /같을 ) ; 자나깨나 언제나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없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차고,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 

 

[참고 ]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O四五)’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 들어가리라

 

[참고 ]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 나누기 때문에  가지에 250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주상보시2017. 6. 11. 15:08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 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 주는 것을 뜻한다.

 

(5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년 6월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스님네는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오직 시주것만 먹고 오직 도 하나만을 위해서 목숨 바쳐서 일심(一心)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도만 닦으라고 해서 ‘장사도 하지 말아라, 농사도 짓지 말아라. 일체 오직 걸식(乞食)을 해가지고 한 끼씩만 먹고 도(道)를 닦으라’고 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형편은 걸식할 형편이 잘 못되고, 한 끼만 먹고는 도저히 도를 닦을 수 없을 만큼 지금 우리 근기(根機)가 약해서 세 때도 먹고 또 이 신도님네들이 갖다 주는 걸로 밥을 해 먹고 요렇게 참선(參禪)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딴은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보실 때에는 ‘과연 그만 하면 되겠다’고 하실는지 어쩔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참 부모형제 다 고향을 다 버리고, 일체 세속의 오욕락(五欲樂)을 다 버리고 일생을 수절(守節)을 하면서 먹물 옷을 참 입고, 못난 척 바보같이 이렇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를 일찍이 부러워해 본 적도 없고, 다 그런 것이 다 허망한 줄 알았기 때문에 출가해서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바치고 시주(施主)를 하시고 그래서 이 절도 짓고 선방도 짓고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 승려로서 여러분께 부탁할 것은, 물론 여러분이 갖다 줘서 감사합니다마는 ‘감사하다’는 말을 잘 안합니다. 왜 그러냐? ‘감사합니다’하면은 여러분의 공덕(功德)이 그만큼 소실이 되어 버려.

‘감사하다’는 말로써 그것이 여러분 공덕이 이렇게 때워져 버리기 때문에 여간해서 ‘감사하다’고 안 합니다. ‘잘 수용하겠습니다’ 그뿐인 것입니다.

 

‘시주를 했는데 왜 스님네가 우리한테 굽신굽신을 안 혀? 중들이, 왜 용화사를 가면은 스님네들이 왜 데데해. 불친절해’ 그런 말을 한 분이 있다고 그럽니다.

 

용화사 스님네는 별로 스님네가 오시면 그저 수수하니,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을 업신여기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불친절이 한다고 해서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는 항상 화두 드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맞이할 뿐이지 그렇게 굽신굽신 안 한 것을 데데하고 건방지고 아만통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주를 하고 보시를 하더라도 무주상(無住相)으로 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했다. 했으니까 나를 알아 줘야 하고, 나한테 굽신거려야 하고, 우리를 최고로 대우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안 하시겠습니다마는, 그런 생각은 안 하신 것이 좋을 것이고. 오셔서 열심히 와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여러분을 공부 잘 하시라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을 뼈아프게 듣고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속에서 유마거사(維摩居士)와 같은 그리고 방거사(龐居士)와 같은 그리고 소동파... 보살님 가운데에도 훌륭한 도인(道人)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전생에는 우리가 신도였었고 여러분이 스님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금생에 그것이 바뀌어져 갖고 신도와 스님으로 또 바뀌어졌을는지 모릅니다. 내생에는 우리가 또 신도가 되고 여러분이 스님이 되어서 선방에 와서 참선(參禪)을 할는지도 모릅니다.

 

보현보살이 돼지가 되어가지고 장자 집에 가서 돼지우리에 있을 줄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다 도반이고, 서로가 다 부처님의 제자고 부처님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 할 것도 없습니다.

 

신도면 신도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거고, 스님이면 스님의 도리를 다해서 열심히 도 닦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이 세계를 부처님 세계로 만들고, 우리가 모두가 다 부처님이 되는 최후의 목적까지 우리는 그렇게 가야 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인연이요 우리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41분3초~46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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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일심불란(一心不亂) : ①두 생각이 없이, 딴 생각이 없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②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함.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유마힐(維摩詰) : [범]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인도 비사리(毘舍利  Vaisali)성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하였다。그 수행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제자들도 미칠 수 없었다。그가 병들어 누우매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는데, 둘 아닌 이치(不二法)에 대하여 여럿이 돌려 가면서 말하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그리하여 모두 ‘유마거사가 가장 둘 아닌 법을 잘 연설한다’고 칭찬하였다。이것은 <유마경>의 주요한 내용이다.

*방거사(龐居士) ; 당나라 형주(衡州) 형양(衡陽) 사람. 자는 도현(道玄)이다. 성은 방씨고, 이름은 온(蘊)이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 석두(石頭)에게 선지(禪旨)를 짐작(斟酌)함. 탐욕스럽고 속된 것을 싫어해 재산을 모두 동정호(洞庭湖)에 던져 버리고 죽기(竹器)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뒤에 마조(馬祖)에게 가서 묻기를 “온갖 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마조는 “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마셔버린 뒤면 일러주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2년 동안 정진하여 깨달음.

 

죽으려 할 때 딸 영조를 시켜 그늘을 보아 오시(午時)가 되거든 말하라고 부탁했다. 영조가 “지금 오시가 되었는데, 일식(日蝕)이 일어납니다.”하자, 그는 평상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나가서 보는 동안, 영조가 그의 평상으로 올라가 죽어버렸다. 이를 본 그는 웃으면서 “내 딸의 솜씨가 나보다 빠르구나!”하고는 7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ㅂ/발심2017. 6. 11. 14:32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12분 13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우주가 이렇게 광활하고 넓고,  넓은 속에 지구라고 하는 것이 조그만한 존재에 지내지 못하지만,  지구에 60억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여러 가지 인종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욕락(五慾樂)이 인간의 행복의 조건인  대부분 그렇게 알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재산이나 부귀영화나 명예 권리라 하는 것은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화능기일(榮華能幾日)이며  권속편시친(眷屬片時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유천근금(縱有千斤金)이라도  불여임하빈(不如林下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영화능기일(榮華能幾日)이며  권속(眷屬)이 편시친(片時親)이다.

한산(寒山) 습득(拾得),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화현(化現)이고,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현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산시(寒山詩)」를 여러분이 보시면은 그 안에는 마음에  새겨둬야  만한 아주 핍절하고 요긴한 법문이 들어있습니다.  속에 방금 읊은 게송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榮華)가  부귀영화(富貴榮華), 왕이나 대신이나 대통령이나 천자나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영화죠. 영화라고 하는 것이 능히 며칠이나  것이냐 그말이여.

일평생을 산다 해도 오육십  전이요 오육십  간에 불과하고, 천자가 되어 갖고도 얼마  되어서 맞아죽기도 하고, 왕이 되어 갖고도 얼마  있다 죽기고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렀습니다. 잠깐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해방  이조   역대 임금들을 보십시오. 고려 때나 신라 때를 보십시오. 중국 역사를 보십시오. 세계 모든 역사를 보십시오.  영화라 하는 것이 잠깐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다 그말이죠.

 

권속(眷屬) 편시친(片時親)이다.  권속이, 부모가 훌륭하고 자식이 훌륭하고 형제간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것을 배경 삼아서 목에다 힘주고 모다 그렇지마는 잠시 잠깐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그런 인연으로 태어난 것일 뿐이지 그것도 잠깐 지나가 버리면 별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자기 형이 청와대에  있고,  자기 처남에 외삼촌에 동생의 친구가 청와대에 있다고 해가지고 그런 것을  가지고 사기(詐欺)를 치고 모다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마는  ,  자기 친형이 있다 해도 별것이 아닌데 처남에 외삼촌에 친구에 뭣이 뭡니까 그게.

그게  권속이 편시친이라는 , 잠깐 동안에 친한 것에 불과하시니, 그러한 것을 가지고 큰소리  것도 없는 거고.

 

종유천근금(縱有千斤金)이라도, 비록 천근이나 되는 금덩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석숭(石崇)이와 같은 그런  부자라 하더라도, 한무옥당(漢武玉堂)과 같은 그러한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별것이 아니고.

 

불여임하빈(不如林下貧)이다. 그런  부귀영화를 가졌다 하더라도 수풀 속에 임하(林下), 수풀 아래에 가난한 것만 같지 못하다.

수풀 아래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산중에 숲속에 들어가서 풀뿌리를  먹고,  뿌리를  먹고, 더덕을  먹고  없으면  걸식을 하고, 솔잎을 썰어서 먹고, 그렇게 가난하고 가난하게 사는 속에  가난한 맛보다 못하다 그거죠.

 

나물을 뜯어서 삶아 먹고, 풀뿌리를  먹고, 솔잎을 썰어서 먹고, 흘러가는 물을 마시고 그리고 졸리면은 팔을 베고 자도 낙(樂)이  속에 있다 이거거든.

 닦는 낙(樂)이라 하는 것은 팔풍경계(八風境界)가 오지를 않거든. 세속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그렇게 굉장한  같지마는 하루도 다리를 뻗고 자들 못하는 것입니다.

 

 권리를 지키고, 명예를 지키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나가야 하고, 누가 그것을 침범할까 봐서 미연에 그것을 차단해야 하고, 누가 자기 것을 빼앗아 가려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저지를 시켜야 하고 악랄한 방법을 써서 상대방을 역적으로 몰고 그래 가지고 상대방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간들 그것이 지옥에  일을 남겨 놓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숲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

 말씀을 하면 여러분이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사업도 버리고, 너도 나도 숲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런 뜻은 전혀 아닙니다.

 

세속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과거에 지은 인연으로 가족도 맺어지고, 어떤 직장도 갖게 되고, 나라에 나가서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지은 인연입니다.

빚이요, 인연이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처럼 왕궁에 부귀도 버리고 출가하신다면 그거야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일이나, 그렇게 철저히 발심(發心)도 못하면서 도피처로 알고 느닷없이 버려버리고 어디로 산중에 들어가, 그건 별로 권장할 말한 일은 못됩니다.

 

발심을 하려면 진실하게 발심을 해야 하고, 버리려면은 깨끗하게 버려야 하는 것이지, 섣불리 임시 잠시 괴로움을 책임 회피로 버릴 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임하(林下)에  아래 가난한이라고 하는 것은 세속에 살면서도 그런 것에 너무 지나친 집착을 갖지  것이며,  속에서도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 한다면 바로  자리가 숲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꽃에다가 많이 비유를 합니다마는, 연꽃은  깊은 산중에 맑은 석간수(石間水) 속에는 연꽃이 되질 않습니다.  밑으로 내려가서 흙탕물 속에다 뿌리를 박고 거기서 연꽃이   연꽃도  자라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세속에, 부모형제 오욕락이 있는  세속에서도 거기서 바로 이뭣고?’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어려운...

 

세속에 살라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도 힘이 들고, 직장을 유지해야 하고 사업을 하는데도 보통 힘이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로써 중심을 잡아갈  있다면  사람이야말로 상근대지(上根大智)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유마거사(維摩居士)와 같은 그런 부처님과 맞먹는 대도사(大道士)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방거사(龐居士)와 같은 그러한 거사로서 대도인(大道人)이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에도 부설거사(浮雪居士)와 같은 그런 대도인도 있는 것입니다.

 

이건 특별히 최고로 훌륭한 분을  사람을 말한 것뿐이지, 지금도 역시 속가에 계신 거사님으로서 속가에 계신 보살님으로서 스님네 못지않게 열심히  닦는 분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가운데에도  그런 훌륭한 스님네보다도  훌륭한 수행자가 있을  믿습니다.

 

도(道)라고 하는 것이  산중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깎은 스님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산이나 들이나 섬이나 육지나 어디서도 도는 닦을 수가 있는 것이고, 옷을 먹물 옷을 입었건 어떠한 빛깔의 옷을 입었어도 그것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누구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대승(大乘)이라고 하고, 최상승(最上乘)이라고 하는 것이고.(24분38초~36분5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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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게송)영화능기일~’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의 시.

〇我見世間人  茫茫走路塵  不知此中事  將何爲去津  榮華能幾日  眷屬片時親  縱有千斤金  不如林下貧

*한산(寒山) ;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성명은 알 수 없고, 천태(天台) 당흥현(唐興縣)의 서쪽 70리에 한암(寒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대개 그 바위굴 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하고, 때로는 국청사(國淸寺)에 가기도 했다.

몸은 바싹 마르고, 꼴은 거지와 같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국청사 절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습득(拾得)에게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서 댓통에 넣어가지고 한산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미친 짓을 부리면서도 하는 말은 불도(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를 잘하였다.

어느날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사람을 보내 한암(寒巖)에 찾아가서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한산은 큰 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하면서 바위굴로 물러났고 “너희들에게 말한다, 각각 노력해라!”하면서 바위굴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세상에서 한산, 습득, 풍간(豊干)을 3성(聖)이라 부르며, 또 한산을 문수보살, 습득을 보현보살 화현이라 한다. 『한산시』 3권이 있다.

—[참고] 여구윤(閭丘胤)의 ‘한산자시집서(寒山子詩集序)’

*습득(拾得) ;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사 국청사에 있던 이. 천태산 국청사 풍간(豊干) 선사가 산에 갔다가 적성도(赤城道) 곁에서 주어 온 작은 아이라 이렇게 이름. 한산(寒山)과 친히 사귀었고 풍간선사가 산에서 나온 뒤에 한산이 바위굴로 들어가 소식을 알 수 없는 뒤로 습득도 어디론가 사라져 종적을 알 수 없었다 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 (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 길상(吉祥 : 상서로움) 뜻이다. 묘길상(妙吉祥) · 묘덕(妙德) · 유수(濡首)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 손에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 이룸.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한산시(寒山詩) ; 『한산자시(寒山子詩). 중국 당나라 때의 한산자라는 전설적인 은자(隱者) 천태산의 나무, 바위 그리고 촌가의 벽에 써놓은 시를 국청사(國淸寺) 스님이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시집.  한산의  3백여 ()외에 습득(拾得)  50 , 풍간(豊干) 선사의  2수가 실려 있으므로 『삼은시집(三隱詩集)』이라고도 불린다.

『한산시(寒山詩)』의 내용은  다양하여 여러 가지이나 전형적인 부분인 자연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한  외에 허망한 삶을 깨치고 진정한 도를 구하라는 주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석숭(石崇) ; 중국 서진(西晉) 부호(富豪)(二四九~OO). 항해와 무역으로 거부가 되었다.

*한무옥당(漢武玉堂) ; 중국 한무제(漢武帝) 머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玉堂] 이르는 .

*팔풍경계(八風境界) ; 팔풍(八風). 팔경(八境).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몽산법어 p155, 용화선원刊>

이쇠(利衰 이로울 /약할 ) :  뜻에 맞고()  뜻에 어기는 ().

예훼( 기릴 /비방할 ) :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

칭기(稱譏 일컬을 /나무랄 ) : 면전에서 찬미하는 (), 면전에서 비방하는 ().

고락(苦樂 괴로울 /즐거울 )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

[참고] 팔풍, 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 : 세간(世間, 중생의 세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利衰),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 칭찬과 비난(稱譏), 고통과 행복(苦樂)<칠각지 p57, 고요한소리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사람.

*유마힐(維摩詰) : []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인도 비사리(毘舍利  Vaisali)성에서 거사(居士)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하였다。그 수행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제자들도 미칠  없었다。그가 병들어 누우매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는데,  아닌 이치(不二法) 대하여 여럿이 돌려 가면서 말하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은 ‘말할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그리하여 모두 ‘유마거사가 가장  아닌 법을  연설한다’고 칭찬하였다。이것은 <유마경> 주요한 내용이다.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방거사(龐居士) ; 당나라 형주(衡州) 형양(衡陽) 사람. 자는 도현(道玄)이다. 성은 방씨고, 이름은 ()이다. 당나라 정원(貞元)  석두(石頭)에게 선지(禪旨) 짐작(斟酌)탐욕스럽고 속된 것을 싫어해 재산을 모두 동정호(洞庭湖) 던져 버리고 죽기(竹器) 팔아 생계를 꾸렸다.

뒤에 마조(馬祖)에게 가서 묻기를 온갖 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마조는 네가 서강(西江) 물을  입에 마셔버린 뒤면 일러주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2 동안 정진하여 깨달음.

 

죽으려    영조를 시켜 그늘을 보아 오시(午時) 되거든 말하라고 부탁했다영조가 지금 오시가 되었는데, 일식(日蝕) 일어납니다.”하자, 그는 평상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나가서 보는 동안, 영조가 그의 평상으로 올라가 죽어버렸다. 이를  그는 웃으면서  딸의 솜씨가 나보다 빠르구나!”하고는 7 뒤에 숨을 거두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서울(王都, 慶州)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진광세(陳光世). 법명(法名) 부설(浮雪). () 천상(天祥).

어려서 불국사에 출가하였다. 영조(靈照), 영희(靈熙)  도반과 함께 두륜산 등지에서 10년간 정진한 , 오대산 문수보살의 도량을 참배하러 북으로 향하여 가던 길에 두릉(杜陵 : 전북 만경) 구무원(仇無寃)이라는 신도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구무원에게  묘화(妙花) 있었는데, 부설을 흠모하여 부설과 부부가 되길 원하고, 만일 버림을 당하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니, 묘화의 부모도 부설에게 딸을 버리지 말고 제도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부설은 출가의 뜻이 견고하여 굽히지 않았으나,  돌이켜 보살의 자비로운 뜻을 생각하여 마침내 묘화와 결혼하였다. 그는 비록 재가(在家) 있었으나 아들 등운(登雲)  월명(月明) 낳고 정진을 계속하여 도를 이루었다. 등운과 월명도 출가,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다.

묘화부인은  십세를  살았는데, 말년에 집을 내놓아 사원으로 삼아 부설원(浮雪院)이라 하였다.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9분 30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방금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내가  찾는 공부, 철저한 신심으로 그것밖에는   없다 하는 요지,  공부해 나가는 구체적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이나 또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이나  같이  근본에 올라가서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몸이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 무명(無明)이 동(動)함으로 해서, 이것이 본심왕(本心王)을 어겼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말입니다. 본심왕을 어기고 떠났다고 하는 것은,  생각 무명심이 발동함으로 해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 못하고 삼도(三途)와 사생(四生)을 돌고 돌면서 갖은 크고 작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일은 우리가 본래 법신불이었다고 하는 사실과 그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몸안에 있는 법신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불이나 똑같은  법신불이 우리 안에 역력히 살아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은 업연(業緣)에 따라서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고, 아귀도에도 태어나고 그러고 있지마는,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법신불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손상됨이 없이 고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철저히 믿는 것이 정법(正法)을 믿는 것이고 그것이 불법(佛法)을 믿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월초파일에 이천육백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신 뜻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탄생하셨다 하지만, 어떻게 제도합니까?

‘모든 중생들에게  같이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중생, 너희들이 부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공경을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시기를 중생이  부처니, 바로 내가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하시는 거고.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이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봤다 하면 거기서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었다 하면은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는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번뇌를 여의지 않고 거기에 보리가 있다는보리(菩提)는 깨달음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보리라고 하는데 번뇌를 여의지 않고 깨달음이 거기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다고 하면  어폐(語弊)가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바로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대승법(大乘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을 ,  파도는 물이  인연 따라서 움직거리면 그것이 파도인데, 파도는 물을 여의고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파도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거기에 물이 있는 거고, 물이 있으면은 물결이 파도가 일어나게  것입니다.

 

물결을 버리고 물을 찾는 한에는 물속에 들어앉어서도 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을 여의고 부처를 찾을 수가 없는 거고,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는 한에는 깨달음 속에 있으면서 깨달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것은 깨닫기 위해서 한다’하지만 깨달으려고  필요가 없습니다. 참선 해  사람이면 끊임없이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마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몸뚱이가 바로 부처님 몸뚱이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수없는 번뇌가 바로 그것이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에서는 아까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인도에서 28,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오셔서 육조 혜능 스님까지 6, 그래서 육조 스님까지 해서 33대를 삽삼이라고 합니다마는 삽삼조사(卅三祖師).

 삽삼조사로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금방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것이 오늘날까지 조사들에 의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오늘날까지 최상승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최상승법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부처도   밖에서 찾지  , 참선도 번뇌를 여의고 찾지  ,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탐심이 일어날 때도  탐심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 즉해 가지고 이뭣고?’. 미운 생각이 일어나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생각을 버리고 따로 참선을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일어나는 그놈에 즉해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나간다면 바로 이렇게 살아 있는 참선을  버릇하면 번뇌가 일어날수록  좋은 것이고, 탐진치 삼독심이 치열하게 일어날수록에 바로 거기에다 발판을 두고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한다면 혼침(昏沈)이 일어날 수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그래서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여.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고, 장소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446~141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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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가지 요건. 첫째는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처 ; ‘부처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buddha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 성취한 이를 말한다.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불교(佛敎).

*노사나불(盧舍那佛) ;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장엄된 몸을 가지고 보토(報土 : 부처님께서 과거 인위因位에서 행한 서원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정토) 계시면서 설법하는 부처님.

삼신불(三身佛) (1)영원불변의 진리[] []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2)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과보(果報)로써 온갖 덕이 원만구족한 불신(佛身) 보신불(報身佛), (3)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화신불(化身佛, 應身) 이르는 말인데, 노사나불은   보신불이다.

 

이들 삼신(三身) 상호관계는 흡사 달의 ()  , 그리고  그림자와 같다고 하며, 이것을 일월삼신(一月三身)이라고 한다.

 법신(法身) 이체(理體) 유일상주불변(唯一常住不變) 것을 달의 () 비유하고, 보신(報身) 지혜가 법신의 이체(理體)에서 생겨 일체를 비치는 것을 달의 빛에 비유하며, 응신(應身) 변화하는 작용으로서 기연(機緣) 따라서 나타나는 불신(佛身)이므로 달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念佛三昧寶王論卷中).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태양처럼 일체법을 비추어 관조하는 광대무변한 지혜를 지닌부처님.

한역어로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法身)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법신(法身) : []  dharma - kaya   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바탕(眞如本體)’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있으되,  가지 말로도 설명할  없고(離四句)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도(三途) ; 삼악도(三惡途),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 행위[]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 또는 ()이라 . ②연기(緣起) 같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으로나 []로나 []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불공(佛供 부처 /이바지할·바칠 ) ; 부처님 앞에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어폐(語弊 말씀 /해어질·쓰러질 )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있는 .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 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교단(敎團) 어른을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 전하고,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 되고, 그로부터 2 혜가, 3 승찬, 4 도신, 5홍인, 6 혜능대사(慧能大師) 내려왔는데,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 ;

[참고] 송담스님(No.264)—1985 4 첫째 일요법회에서.

흔히 화두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 많이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물건이 있으니,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하택신회,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학자밖에는  되겠다

 

 불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겠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리자 남악회양(南嶽懷讓)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물음에 대해서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 몸을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맥혀 가지고  바를 몰라.  뒤로 8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습니다.

 

8 동안을 대관절 이게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생각, 서서도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일을 하면서도  생각, 똥을 누면서도  생각, ‘대관절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하기를 8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 도리어 닦아 () 것이 있느냐?’하니, 수증(修證)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 것이 없지를 않지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 받게  것입니다.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맥혀 가지고,   없이 이뭣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공부를 옳게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6131~6722)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즉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

[참고]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신 분은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정진(精進)이여.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거든. ‘어느 곳이고 () 아닌 곳이 없고, 어느 때고 참선 아닌 때가 없다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라 하는 것이여.

그래서 걸음 걸음이 미륵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요, 생각 생각이 석가여래가 탄생하신 곳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이러한 도리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3019~312)

 

[참고] 송담스님(No.152)—1981 10 첫째일요법회(참선법B)에서.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니라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니라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어떤 색상을 보는 그때가 바로 참나 깨달을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是證處). 어떤 소리를 듣는 그때가 참나 증득(證得) 바로  곳이드라

그렇게  생각  생각을 무엇을  때마다,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화두를 들고) 다져 나가면,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요,  걸음 걸음 걸어가는   걸음  걸음이 바로 미륵 부처님이 하강하시든 바로 그것이더라.(4122~449) - (게송) ‘견색시증처~’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ㅂ/비로자나 법신불2017. 6. 11. 10:10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 · 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태양처럼 일체법을 비추어 관조하는 광대무변한 지혜를 지닌 부처님.

한역어로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法身)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법신(法身) : []  dharma - kaya   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바탕(眞如本體)’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있으되,  가지 말로도 설명할  없고(離四句)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8분 34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본심왕(本心王)을 어기고 등지고 떠난 뒤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번이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으며  번이나 사생(四生)을 겪어 왔던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을 겪어 왔던가.

 

삼도(三途)를 수천만 , 태란습화 사생의 몸을 수억만 번을 거쳐서 이렇게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말이여.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煩惱)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하고 보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본고향(本故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방금 우리는 임자년에, 임자년이라고 하면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 섣달 초이튿날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임자년은 갑인년보다 3 전입니다. 임자, 계축, 갑인, 열반하시기 3 전에 설하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비록 녹음 테이프(tape)를 통해서 들었지만, 금방  법상에 올라오셔서  열렬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우리는 실지로 설하신 것처럼 우리는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 법문은 조실 스님 법문   들으면 그것으로서 족하겠지마는, 산승(山僧)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여러 도반(道伴)들에게 일요일이라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실 수도 있고 쉬실수도 있건마는, 날씨도 더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법회에 나오셨으니 원장으로서 인사 말씀 한마디 하고 우리가  같이 정진을 잘하자고 하는 다짐하고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법문에 내가  찾는 공부, 철저한 신심으로 그것밖에는   없다 하는 요지,  공부해 나가는 구체적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이나 또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이나  같이  근본에 올라가서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몸이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 무명(無明)이 동(動)함으로 해서, 이것이 본심왕을 어겼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말입니다. 본심왕을 어기고 떠났다고 하는 것은,  생각 무명심이 발동함으로 해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 못하고 삼도와 사생을 돌고 돌면서 갖은 크고 작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일은 우리가 본래 법신불이었다고 하는 사실과 그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몸안에 있는 법신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불이나 똑같은  법신불이 우리 안에 역력히 살아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은 업연(業緣)에 따라서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고, 아귀도에도 태어나고 그러고 있지마는,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법신불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손상됨이 없이 고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철저히 믿는 것이 정법(正法)을 믿는 것이고 그것이 불법(佛法)을 믿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월초파일에 이천육백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신 뜻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탄생하셨다 하지만, 어떻게 제도합니까?

‘모든 중생들에게  같이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중생, 너희들이 부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공경을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처음~84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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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참고]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에서. (5분 54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여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니라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背反) 이래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번이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 들어갔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  번이나 겪어왔더냐 그말이여.

몇수십만 번을 짐승이 되었다가 날짐승이 되었다가, 긴짐승이 되었다가, 네발 달린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이러면서 돌고 돌아서 금일에까지 왔더냐.

 

원래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똑같은 조금도 차등(差等) 없는 본심왕이었다 그말이여.  본심의 왕을 배반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삼악도와 사생을 돌고 돌아서 몇억만 겁을 겪어 가지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더라.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오늘 번뇌에 물든  번뇌염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서 객지(客地)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써  거러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고향 갈 길을 찾았다면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느냐.

 

남북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이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할 가족 상봉, 그것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이별하고,  나라에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런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지마는,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였었는데  왕이  본심왕을 갖다가 등져 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가지고 삼악도로 육도윤회(六道輪廻) 돌고 돌면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 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來生)에도 무량겁(無量劫) 두고  그런 것이 거듭될 그런 신세가,

다행히 불법(佛法) 만나고 정법(正法)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의 본위치로 돌아갈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50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고 할까, 가장 행복한 삶을 받아났다고 할 것입니다.

 

 정법,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  생각  생각을 단속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本故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고향을 모를 때에는  곳도 없고,  봤자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우선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三水甲山)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 보자, 좋은 차도 가져 보자, 좋은 집도 가져 보자하지만,

고향이 있는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하거든.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쨌든지 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게으르지 않게 걸어가는  밖에는 어디에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그거거든.(2120~2713)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 · 성냄() · 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과보를 받게 된다.

*본고향()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녹음 테이프(tape) ;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 말한다.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가지 요건. 첫째는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사나불(盧舍那佛) ;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장엄된 몸을 가지고 보토(報土 : 부처님께서 과거 인위因位에서 행한 서원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정토) 계시면서 설법하는 부처님.

삼신불(三身佛) (1)영원불변의 진리[] []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2)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과보(果報)로써 온갖 덕이 원만구족한 불신(佛身) 보신불(報身佛), (3)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화신불(化身佛, 應身) 이르는 말인데, 노사나불은   보신불이다.

 

이들 삼신(三身) 상호관계는 흡사 달의 ()  , 그리고  그림자와 같다고 하며, 이것을 일월삼신(一月三身)이라고 한다.

 법신(法身) 이체(理體) 유일상주불변(唯一常住不變) 것을 달의 () 비유하고, 보신(報身) 지혜가 법신의 이체(理體)에서 생겨 일체를 비치는 것을 달의 빛에 비유하며, 응신(應身) 변화하는 작용으로서 기연(機緣) 따라서 나타나는 불신(佛身)이므로 달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念佛三昧寶王論卷中).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 행위[]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 또는 ()이라 . ②연기(緣起) 같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으로나 []로나 []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불공(佛供 부처 /이바지할·바칠 ) ; 부처님 앞에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Posted by 닥공닥정
ㅈ/정진2017. 6. 1. 21:04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5분 22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세등34)

 

우리가 과거에 무슨 깊은 인연을 맺어서 이렇게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정진을 하며,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공부를 하게 되었는가?

숙명통(宿命通)이 열리기 전에는  수가 없는 일이지만, 숙명통이  열렸다 하더라도 인과법(因果法)으로 미루어서 보면 숙명통으로  것이나 다름없이 짐작을  수가 있는 거여.

 

구체적으로는  수가 없지만 반드시 과거에  부처님 밑에서나, 같은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같이 공부한 , 두 생이 아니라 여러 생을 그렇게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회상(會上)에서 이렇게 지내게  것이다.  인연이 깊고 깊은 것을 헤아릴 수가 없어.

 

이러한 좋은 그리고 깊은 인연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있도록, 그러한 결과가 빠른 장래에 오도록 우리가 서로 밀고 잡아댕기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공부를 알차게 해 나가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는 공연히 조급한 마음을 낸다고 해서 그건 잘한 것이 아니여.

조급한 마음을 내면마치 거문고 줄을 고를  너무 되게 줄을 땡기면은 줄이 끊어지거나, 끊어지는 소리가 나는 게고,  끊어질까 두려워서 너무 느슨하게 줄을 매면 딩딩 해 가지고  음가(音價)가  나올 것이다 그말이여.

 

정진도 너무 급한 마음으로 볶아대도 오히려 병이 나고 부작용만 나지, 도업(道業)은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늘어져 빠져 가지고 행여나 병이 날까 봐서 노인 장에 가듯이 너무 그냥 몸을 애끼고 새리고 그래도, 그것도 못쓰는 게고. 그걸  알아서 지혜롭게 공부를 다그쳐 나가면 반드시 도는 이루고야만 마는 것이여.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한 나무 끌텅이   상류에서 강물을 따라서 흘러가는데, 가다가 중간에 걸리지 아니하고, 양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가다가 썩지만 아니한다면 그리고서 계속  따라서 내려가면 반드시 바다에 이르르고만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도를 중간에 가서 쉬지 않거나 또는  생각으로...(녹음 끊김)  법문이 기가 막히게  요긴하고 핍절(逼切)한 법문이다 그말이여.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해 봐! 어째서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인가.  몸뚱이로 반드시 도를 성취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비록 운산(雲山)에 천만사(千萬事)를 말한다 할지라도,  구름과 같이 산과 같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한다 할지라도  바다 위에 하늘에 떠있는  밝은 달은 본래 말이 없느니라.(4155~471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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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인과(因果) ; ①원인(原因)과 결과(結果).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는 도리.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새리다 ; ‘사리다(짐승이 겁을 먹고 꼬리를 다리 사이에 구부려 끼다)’ 사투리.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끌텅 ; ‘그루터기(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 또는 그것들을 베어 내고   남은 밑동)’ 사투리.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한 나무 끌텅이   상류에서 ...(중략)...반드시 바다에 이르르고만  것이다 ; 『사십이장경』 27번째 장(章), '무착득도(無著得道)'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27(第二十七章)

佛言  夫爲道者  猶木在水  尋流而行  不觸兩岸  不爲人取  不爲鬼神所遮  不爲泂流所住  亦不腐敗  吾保此木  決定入海  學道之人  不爲情欲所惑  不爲衆邪所嬈  精進無爲  吾保此人  必得道矣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나무가 물에 있어서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다. 양쪽 기슭에도 닿지 않으며, 사람이 건지지도 않으며, 귀신에게 가로 막히지도 않으며, 소용돌이에 머물지도 않으며, 또 썩지도 않는다면, 나는 이 나무가 결정코 바다에 들어갈 것을 보장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도 정욕에 미혹되지 않고, 온갖 삿된 견해에도 휘말리지 않고, 함이 없이 정진해 나간다면, 나는 이 사람이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을 보장한다.

 

 

[참고] **송담스님(No.210)—83 칠석법회(83.08.15)에서. (4분 54초)

부처님께서 아란 존자를 데리고 무능적국(無能敵國) 들어가셔서 항하(恒河) 강변을 지나고 계실 때에, 마치  수행승이 부처님 곁으로 다가와서 법문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승에게 무슨 법문을 해주셨냐 하면은 마치 그때에 갠지스  가운데에  나무 기둥 하나가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기둥을 부처님께서 가리키시면서  기둥을 봐라!  나무 기둥이 이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며,  강물의 소용돌이 속에도 들어가서 뱅뱅 맴돌지 아니 하면, 결국은  나무 기둥은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는  바다로 도달하고  것이니라


그러면 이쪽 언덕에 걸리지 않는다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뚱이로 감각하고, 생각으로 알고 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걸리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게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한다 말은 안이비설신의의 상대가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깥 경계에도 집착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중간에 걸리지 아니한다 하는 것은 눈으로 어떠한 () 보면 속에 안식(眼識)이라 하는 것이 생기고, 귀로 바깥 경계 소리를 들으면 속에 이식(耳識)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식(六識) 생기기 때문에  육식에도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의 소용돌이 속에 걸리지 아니한다하는 것은 학문이나 경전이나 그러한 것을 보다가 알음알이에 집착을 한다고 하는 데에 비유를  것입니다.


요새 불자 가운데에 지성인 측에서 교리적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는데, 무슨 경전이나  부처님의 소중한 진리가 담겨있는 법문이기는 사실이나, 그러한 경을 올바르게 보지를 못하고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데에 맛을 붙여가지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 집착을 하면,

 나무토막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뱅뱅 뱅뱅 도는  소용돌이 속에 한번 들어가면 밤낮  자리에서 돌기만하고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바다에는 도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이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소용돌이에도 머꾸지를 않는다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법문을  수행승에게 해주셨습니다.  법문을 듣고  수행승은 깨달음을 얻고 떠났습니다.(1558~2052)

부처님의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 24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11 참고.

*핍절하다(逼切-- 핍박할·가까이할· /정성스러울·절박할 ) ; 진실하여 거짓이 없고 매우 간절하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