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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1.21 위법망구(전강선사 No.011)—제산 스님 역사 | 경허 스님에 대한 제산 스님의 신심. 발심 | (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2. 2022.10.30 제일구(전강선사 No.011)—용성 스님과 제일구 법문답(法問答) | 용성 스님께서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 만공 스님께서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3. 2022.07.10 수마(전강선사 No.011)—(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 화두는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 |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이다.
  4. 2022.07.10 경허선사(전강선사 No.011)—제산 스님 역사 | 경허 스님에 대한 제산 스님의 신심. 발심 | (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5. 2022.07.10 조박(전강선사 No.011)—(게송)商量是鬼窟 文字是糟粕~ |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이 사바세계밖에 없다 |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하는 법이 없다.
  6. 2022.03.08 법거량(전강선사 No.011)—이회광 스님과 석두 스님의 법거량 | 제산 스님과 해인사 선방 대중이 주지에게 쫓겨나 김천 직지사로 감.
  7. 2021.11.23 법거량(전강선사 No.011)—용성 스님과 법거량.
  8. 2021.11.22 제산 스님 행장(전강선사 No.011)—제산 스님 역사 | (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 경허 스님에 대한 제산 스님의 신심. 발심 | 이회광 스님과 석두 스님의 법거량.
  9. 2021.11.21 상량(전강선사 No.011)—(게송)商量是鬼窟 文字是糟糠~ |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 생사 없는 법이 사바세계밖에 없다 |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하는 법이 없다.
ㅇ/위법망구2024. 1. 21. 09:24

위법망구(전강선사 No.011)—제산 스님 역사 | 경허 스님에 대한 제산 스님의 신심. 발심 | (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29분 29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내 과거 공부헐 때, 여그저그 댕기면서 선지식(善知識) 친견허는 그때 그 행각(行脚)헐 때 그 실기(實記)를 좀 말해 달락 해서 시방 설허는 도중에, 혜월 스님을 모시고 와서 김천 직지사에다가 조실 스님을 모시고 크게 선방을 한번 해 볼라고 하다가, 모시고 와 놓으니 또 직지사에는 제산(霽山) 큰스님이 계시고.
그 제산 큰스님이 계셨지마는, 제산 큰스님은 그 계행(戒行)이 참 청정허시고—한국에 계행으로 제일 청정헌 어른이 누구냐? 김제산 스님이여.

여기에 인자 제산 스님 역사(歷史) 잠깐 좀 말씀을 해야 허겄구만.

제산 스님도 발심(發心)허시기 전에는 사판(事判)중으로서, 그때 사판중이 있거든. 사판중으로써서 술도 자시고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그저 마음대로 자시고. 사판중 노릇은 그때 누룩이나 디뎌서 팔고, 그것이 사판중들이여. 참선법은 영 모르고. 없었으니까 그때도. 그래 계시다가 사판중 노릇허는 법밖에는 모르제.
합천 해인사 현당(玄堂)에서 사판중 노릇을 허고 있는데 그때에 나이, 제산 스님 나이 한 30살 잡솼는데, 뜻밖에 ‘경허(鏡虛) 스님이 오셨다’ 소문을 들었거든. ‘경허 스님은 아주 참, 한국 도인(道人)으로는 다시 없다’ 소문이 났는데.

‘그러면 경허 큰스님을 좀 가 뵈야 허겄다’고, 현당에 사판중으로 그래 있다가는 그 마음 난 것도 이상하지. 그런 도인 한번 뵈야겄다고 척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머리는 숭났어 그 어른 머리가. 내 방에 그 경허 스님 사진 있제. 머리도 숭나고, 얼굴은 여가 덥텁헌 양반이 조실(祖室)에 척 와 앉았어.
처억 보니까 눈이 다른 이보담도 더 쭉 째지고 아주 그런 어른이 앉었는디, 탁자(卓子)의 부처님보담도 훨씬 더 숭배심이 나.

탁자의 부처님은 의호(宜乎)이 아침 저녁에 예불(禮佛)하고, 이렇게 그저 중이 왔으면은 그저 등상(等像)께 예불한갑다 뿐인디. 아, 이 경허 스님은 척 보니 산 부처님이시다. 어떻게 숭배심이 나는지, 굉장혀 그 마음이 믿어지기를. 이렇게 마음이 믿어져야사 도는 닦는 것이지. 믿음이 없으면 된 법이 없어.
그만 그 경허 스님을 보고는 얼마나 믿어졌던지—뭐, 경허 스님도 똥싸고 오좀 싸고 밥 먹고, 오히려 저 나쁜 행은 보통 사람보담 더 많이 가져 계시네. 그런디 그것이 도모지 눈앞에 하나 안 보이고, 어떻게 믿어지는지 한량없이 믿어져.

앞에 가서 참, 망구(忘軀) 배(拜)를 허고. 여지없이 가서 절을 허고.
‘내가 중 되기 전에는 물론 아무것도 몰랐지마는, 중이 되아 가지고도 사판중이 되아 가지고 삼십이 넘도록까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모르고, 내가 나 찾는 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망칙허게 망허게 살아 나왔단 말이냐. 날마당 술이나 퍼먹고, 날마당 그저 누룩 장사나 중이 허고, 이따구 짓만 허고 지내고 있단 말이냐. 탁! 믿어 가지고 경허 큰스님께 도 배워 가지고 도를 닦아야겄다’
결심을 딱! 하고 나가서 여지없는 위법(爲法), 법을 위해서 내 몸뚱이를 갖다 바쳤다 그 말이여.

절을 척 허니깐, “하구래(何求來)냐. 네가 무엇을 구해서 왔느냐?” 물으신다 그 말이여.
“큰스님께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무슨 법을 배우러 왔단 말이냐?”
“참선, 참선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허니께.

“허, 그래야. 좋은 말이다. 참선법을 배울라면은, 참선법 배울 학자가 첫번에 인자 법을 배울라면은 이물표신(以物標信)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건으로써 신(信)을 표해야 하는디. 내 좋아허는 걸 네가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다른 걸 좋아허는 것 아니다. 첫째,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헌다. 평생에 술을 내가 좋아해서 술을 끊지 못허고, 또 술 먹을 때는 주효(酒肴)라니, 술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안주허고 술허고 네가 사 오너라. 내가 술을 한잔 먹고 네가 사 온 안주를 내가 먹고, 술 한잔 먹고 나서 너한테 참선 화두를 일러주마.
화두 타는 법이 그렇게 쉬워서는 못쓰느니라. 네가 값이 있이 타야 허는 법이니, 네가 네 신심(信心)으로써 술허고 그 닭 한 마리, 내가 닭고기를 좋아허니 닭 한 마리 삶어서 가지고 오너라”

아, 그 퇴설당(堆雪堂) 그 조실에 앉어 계셔서 바로 거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그 퇴설당인데, 그 퇴설당에 조실에 앉어 계셔서 그런다.
내가 지금 녹음해 넣는 법문인데, 녹음해 넣는 법문을 위조로 혀? 그거 아녀. 똑 사실이여. 제산 스님 실기(實記)여.

한 말씀 듣고는 그대로 나왔어.
‘도인이라고 허는 이가, 경허 스님 도인이라고 나는 도인인 줄만 알았더니 조실(祖室)에 앉어서 술 사오고, 살생—닭은 살생을 해야 하니, 닭 모가지 삐틀쳐 죽여서 내가 그놈을 삶아가지고 가지고 와?’ 그러헌 마음이 나기가 처꺽 쉬울 것인디, 없어! 그런 마음이 어디가 있어.

응, 조꼼도 그런 마음이 없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그만 그대로 바로 내려가서, 각사 십 리(十里)나 내려가서—당신이 뭐 어떻게 손수 닭이야 잡을 수가 있나?
그러고 그때 또 사판중으로 계시니까, 그런 것 뭐 닭 모가지 짤르고 이런 거 뭐 죄이니 뭣이니도 없지마는 내려가서, 각사라는 데 내려가서 그 어디 아는 집에, 다 절에 그 십 리 동구(洞口)에 있으니깐 아는 집이 있제. 내려가서.

“나 닭 한 마리 잡아서 수증기로 잘 삶아서 줄 수 없겠느냐?”
“왜 못 해 드려요. 해 드리지요” 의호이 해 주지. 뭐, 안 해주어? 돈 받고 하는디.

그놈을 삶고, 홍류동 찹쌀막걸리 그 밥튀가 동동 뜬 놈 잘해서 그 청주로 떠놓은 홍류동 찹쌀막걸리, 옌장 술 잘 먹는 이는 비우 동(動)허겄네, 술 먹고 싶어서. 나도 동허는구만, 그 말을 헌께.

허! 아, 나도 글쎄 대구서 그 칠곡 넘어가는 그 잿말랑에 올라가다가 목은 컬컬헌데 아, 나이 또 그때 나도 스물 몇 살 먹었을 때니 술도 잘 먹을 때고 헌디. 아, 그 노인이 찹쌀술을 해놨다고 “한잔 잡수고 가시오” 그려. “아, 그래요!” 그것 잘 먹겄당, 오목식기로 하나 뚝 떠 주데.
아, 이놈의 술을 먹어 보니 입이 짝짝 들어붙으면서 참, 맛이라는 건 그 위에 더헐 수 없네. 찹쌀막걸리 그놈 잘되아 놓으면 맛 좋거든, 옛날 누룩으로. 지금은 그런 것 없구만. 암만 정종 그 같은 것 암만 좋아도 소용없구만.
한 독식기를 먹었네. 처 철렁, 기분이 좋고 하나도 취기는 없고. 또 한 접시를 한 오목식기를 먹었네. 둘 먹었제. 아, 그런게 또 인자 참 더 먹고 싶네. 셋을 먹었네, 큰 놈! 그 자리에 앉어서 다섯을 먹었어, 오목식기로.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섯을 척 먹고서는 그 재를 넘어서 도더기재를 올라가는데, 그 재 밑에 까장은 알았어. 온 줄 알았어. 재 밑에 와서는 어떻게 된지를 몰라. 그 뒤에라도. 아, 그랬는데 그도 어떻게 찾아갔든지 넘의 묏등을 찾아갔어. 묏등! 나는 평생에 안 잊히는구만. 묏등에 올라...

참, 별놈의 역사를 내가 내 입으로 다 말허네. 이래야사 그게 내가 지은 죄가 화반탁출(和盤托出)이 되제. 이런 청정 대중에 못 떨어 내놓고 어따 떨어 내놓을 것인가.
감추면 그 죄가 되고, 탁! 떨어 내버리면은 오히려 죄가, 좀 지은 죄를 받기야 받지마는 발로참회(發露懺悔)가 되아. 내가 그래서 이렇게 그 문둥이 지랄 같은 짓헌 걸 내가 다 까바쳐 놓는구만. 대중에 다 내가 다 까바쳐.

남의 묏등에 들어가서는, 묏등 밑에 가서 잤단 말이여. 그냥 꺼꾸러져 몰라 버렸어. 자다가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나고 그 산은 어떻게 험악헌 그 대구 칠곡, 그 산 모도 산천 험악헌 디는 그 도덕산 그 다 알지. 정공, 다 환히 알지, 몰라?
그 산은 뒷산은 칙칙헌디, 호랭이란 놈이 거그 살다가 밤낮 마을에 내려와서 개를 가져가고 헌 그런 놈의 디여. 아, 그런 놈의 디인디 거가서 자도 호랭이란 놈은 안 왔더구만. 거 실컷 자고 나서 총총헌디 아, 밤이 얼마나 되았는지 시계도 나 그때 없었고.

아, 헐 수 할 수 없어, 추워서 살 수가.... 술이 인자 깨든 거여. 그래 그 마을을 찾아 들어가니까 깜깜 모도 불 다 꺼번지고, 전기도 없는 딘데 아, 문에 가서 뭐 누구를 찾으니 누가 나오나?
그 밤이 그렇게 한 두 시나 세 시나 되았는가 어쨌는가. 그래 그만 ‘동네 사람, 사람 좀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아, 누가 듣고 ‘웬 사람이냐?’고 나와서,
‘아 여보시오. 내가 술을 먹고 그만 어디 가다 취해서 자고 아, 인자사 내가 일어나니 추워 죽겠어서 인가를 찾아온디 날 좀 구해 주시오. 추워 죽겄오’
‘아! 그러냐’고, 문을 열고 뜨거운 방으로 나를 안내해서 들어가서 자고 아침 거그서 얻어먹고 그 참 나온 일이 있었어.

그놈의 찹쌀술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홍류동 술맛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여까지 했구만. 고놈은 또 인자 거그서 그만두고.


아, 그래 제산 큰스님도 홍류동을 떡 올라오셔서 그 찹쌀막걸리를 잘 그냥 뜬 놈을 사르르 받쳐 가지고는 병에다 넣어 가지고 수증기로 삶은 닭 한 마리하고... 그 알겠제, 들어서 알겠제 잉. 아까 있는 디를 알아야제.
그래 가지고 올라와서 정성껏 바쳤다. 누구한테 바쳐? 경허 큰스님한테 바쳤다 그 말이여. 퇴설당 옆에 있는 조실방에 갖다 바치고는 참으로 절을 기가 맥히게 헌 뒤에 “잡솨 주십소사” 허고는, "그러제"

척 큰 대접에 하나 쭈욱 잡숫더니, 닭 그놈 그 자리에서 떠억 그 뼉다구 추켜들고 쭉쭉 “거, 잘 삶았구나. 맛이 있다” 그러시고는.
아, 그저 젊을 때시고 뭐 뼉다구 그놈 막 들고는 그저 막 그저 깨문 놈도 있고 뼉다구 뱉은 놈도 있고. 척 추려서 척 잡수고는 손수건 입 썩 닦으시고. 그까짓 닭 한 마리 그냥 얼른 잡솨 버린다 말이여.

이런 법문 듣고는 안 자올으셔야 헐턴디, 자꾸 눈을 그저 알로 감는다. 겉으로는 참선헌 체허지만 속으로는 잠자고 계신다.
내가 다 안디. 눈을 깜아도 설법 듣는 거, 설법 안 듣고 자는 거, 내 다 안단 말씀이여. 그 뭔 참말로 내가 아니께 안닥 하제 뭐.

졸지 말어야 돼요. 법문같이 소중헌 게 없거늘, 참선허는 학자가 법문 들을 때 자는 법이 어디 있다? 그건 없어.
내가 여태까지 법문 들을 때 자꾸 슬며시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도 암말도 안 했지마는, 인자는 뭐 금년 동(冬) 산림이, 삼동 산림이 얼마 안 남았는디 가만두어 되야? 못 자게 해야 하고, 좀 그렇게 조으는 것을 내가 좀 꼬쟁이로 푹푹 쑤셔 줘야지, 그냥 둘 수가 없어.

자지 마시오. 누구를 위해서 허는 법문인디 자냐 그 말이여. 그만큼 잤으면 무던허지.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나무~아미타불~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너룬 겁으로 오면서 여태까장 도(道)를 못 닦게 허고 여태까장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못헌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잠, 그놈이 제일 큰 놈이다.
여러 가지 나를 방해허고, 나를 도(道) 못 닦게 헌 것이 많이 있다마는 잠보담 더 큰 놈이 없구나. 잠 마구니란 놈 따문에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허고, 도를 닦지 못허고 여태까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못된 잠 그놈! 화두를 한번 추켜들면은—화두는 참,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인디, 금강같은 좋은 쇠로써 보검(寶劍)을 맨든 고런 칼같은 것인디 어디가 그놈 잠이, 그놈이 어디가 제가 도를 못 닦게 마구니 행동을 헐 것인가? 허니 그 잠을 좀...

법문 들을 때도 또 자?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인디.
이런 말이 대꼬쟁이로 모두 쑤신 것이여. 잠 그놈 못 자게, 못 자올게 쑤셔 드린 거 아니여?


그래 술허고 닭고기허고 잡순 후에 그래 설법을 해 주셔. 그 참, 그 조실에서 그렇게 막 아무 거침없이 잡순다. 잡수고는 그 자리에서 ‘오냐!’
그 벌써 거까장 가 술 사 오고 닭까장 가서 맨들어 올 때에는 그 사람의 신심이 여간 아니여. 그 신심이. 발써 그 신심을 봤거든. 그만헌 신심 가운데에서 일러주는 것이여. 그래야사 도 배우는...

똑 그래 내가 뭔 술 사 오고 뭐 닭 삶아 오라고 요런 소리헌 것 같여? 내가 그렇게 삶아 오고 술 받아 오라는 게 아니라, 그랬다 그 말씀인데, 또 갖다가 나를 갖다 손그락질 허면서 ‘술 사 오고 닭 잡아 오라고 저러는구만’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렇게 거다가 찢어서 해필 왈 갖다 내 허물을 둘러씌우지 말란 말씀이여.

잡숫고는 화두 설법을 해 주시는데, 화두를 타 가지고 나오는디, 아무 흔적 없는 것이요 말 한마디언만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 일러주셨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으니, ‘뜰 앞에 잣냉기, 어째서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는고?’ 이놈을 해라” 해서, 그 화두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떻게 걸음을 걸어서 나온지를 몰라. 어떻게 기가 맥히고 좋던지! ‘이런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를 탔다’

화두 타 가지고 그날부텀 정전백수자 화두를 허는데, 뒷방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림살이허는 중인데, 살림살이고 무엇이고 하나 허다가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인자 그때부텀은 ‘이 몸은 죽는구나. 내 이 몸은 사형선고를 받은 아주 기한 딱 정해 놓은 몸뚱이다. 죽을 사형 무대밖에는 없는 이 몸뚱이! 이놈 사형선고는 받았다마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시간이나 좀 알았으면 쓰겄는디, 이놈의 사형선고 기간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서른 한 살 먹어 갈라는가 원, 사형을 집행해 갈라는가, 스물 둘에 갈라는가, 이건 원 당최 알 수가 있나. 허니 참, 시각이 급허고, 참말로 내가 이 참선을 해서 생사 없는 대도를 깨달라 얻지 못허고 내가 이 목숨을 내버리고 가다니. 이 목숨 있을 적에 해야겄구나!’

그만 그대로 발심(發心)이 척 되는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뭣이 보이여?

그렇게 그 참, 사판중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돈도 많이 벌라고 남 모도 이자도 놓기도 허고, 사판중은 그렇거든. 누룩 디뎌서 모도 팔아 가지고는 사방 모도 논 살라고 계획해 놓았던 그런 것 저런 것 받을 것이 꽉 찼고. 허지마는 하나도—또 그 모도 집안이 부자 집안에 중이 되았으니까—하나도 정리고 무엇이고, 뭐 요리조리 모도 써 놓았던 계약서 받을 거 이거 불 탁! 질러 쏵 질러버리고는.

상좌 하나 들여서, 들인 것도 뭣도 없지마는 어른이 그렇게 참 노래(老來)에 또 시봉허다 나오니까 어디로 이리저리 의탁해 번지고 그러고는 선방에 척 나왔습니다.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 하나 타 가지고 다만 화두만 묶어 짊어지고는 나왔지. 아무것도 없고.
그대로 선방에 앉어서 지독허게 공부를 허셨습니다. 제산 큰스님께서 공부 한번 험서 그날부텀 그렇게 술도 자시고 헌 것 쏵 끊어 번지고는, 계행이 청정허기를 그렇게 청정헌 어른이 없고, 수행이 당최 참선해서 한번도 밥 먹을 사이도 없이 화두를 다루어 나간 어른은 그 어른밖에 없어. 기차제.

그러지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그 인가(印可)를 얻은 데가 없어.
인가를 누구한테 얻었어야제. 인자 제산 스님은 그저 그렇게 도만 잘 닦아 오셨제, 인가 얻은 데는 없었으니까 학자(學者)는 제접(提接)을 못 혀.
아, 보통 참선허는 학자야 왜 제접 못 헐까마는, 계행이 청정허고 하도 거룩허시니까 인자 보통 학자들은 가 많이 지내야. 뭐 보통 지내는 게 아니지마는, 대도를 통헌 분은 제접을 못 혀.

누가 “하암” 그랬어? 내 그런 ‘하암’은 참, 법상(法床)에서 듣기 싫다.
헤헤, 거 세상에 “하암” 그려? 그 어디서 나와?

내 법문도 “하암” 허면서 한번 허까?
그런 시원찮은 행동은 그만 좀 톡톡히 해버리지, 왜 그렇게 시지부지헐까?

그래도 그런 ‘하암’ 한번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여러분이 그 ‘하암’ 한번 헌 바람에 내가 이렇게 허니까 그 ‘하암’ 헌 이는 부끄러울 것이지마는 한번 해 논 바람에 내가 그놈을 가지고 그냥 그만 한번 광고를 헌 바람에 여러 모인 대중들이 듣고는 정신채리거든. 옆에서 ‘하암’을 헐 이도 안 허거든. ‘하암’ 헐 이도 안 혀. 그러니 그 이익을 많이 준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부끄럽게 생각허시지 마시오.

법상에서 조실 스님이 법문허다가 그런 걸 한번 알려 주는 바람에 그게 정절(程節)에 들어가는 것이여. 반다시 인자 이담에는 그러지 안 헐 것이고. 그러니 그런 좋은, 그 좋은 설법이제.


그래 가지고는 제산 큰스님이 그렇게 깨끗허게 청정허게 오래오래 화두를 조금도 밥 먹을 사이도 틈이 없이 공부를 잘허셨기 따문에 ‘제산스님’ 헌 이름이 나서 학자는 많이 그 어른 밑에 지낸다 그 말이여. 그때는 더더군다나 그리 선지식(善知識)이 귀혔고.

그래 가지고는 합천 해인사에서 하도 오래 지내—경허 큰스님은 인자 거그서 좀 계시다가, 조실에 계시다가 딴 디로 가셨고—합천 해인사에 들어오셔서 오래오래 계시니깐 그대로 제산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셔. 뭐 학자들 뭐 그렇게 눈을 띄워 주든 못허는 그러헌 스님이시지마는 그래도 원청 수행이 참 존중허시니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데.(15분24초~44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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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실기(實記 열매·내용·행적 실/기록할 기) ;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記錄).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사판중(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사판승(事判僧).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
*어육주초(魚肉酒草) ; 어육(魚肉)은 생선과 짐승의 살코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주초(酒草)는 술과 담배.
*누룩 ;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밀이나 찐 콩 따위를 굵게 갈아 반죽하여 덩이를 만들어 적당한 온도에 띄워서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다.
*디디다 ; ①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②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이나 메주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③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이겨 내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의호(宜乎 마땅할 의/오조사 호) ; 마땅하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등상(等像) ;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오좀 ; ‘오줌’의 옛말.
*여지(餘地)없다 ; (무엇이)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주효(酒肴 술 주/안주 효) ; 술과 안주(按酒)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각사 ; 해인사 입구에 있는 마을 이름.
*동구(洞口) ; ①마을로 들어서는 어귀(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②절로 들어서는 산(山)의 어귀.
*찹쌀막걸리 ; 찹쌀로 빚어서 담근 막걸리.
*옌장 ;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욕으로 하는 말.
*비우 ; ‘비위(脾胃)’의 사투리.
*비위(脾胃) ; ①어떤 음식을 먹고 싶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마음. ②음식을 잘 삭여 내는 능력. ③이니꼽고 탐탁지 않은 일이나 싫은 것을 견디어 내는 성미. ④지라와 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잿말랑(잿말랭이) ; ‘잿마루(재의 맨 꼭대기)’의 사투리.

* ;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 영(嶺).
*찹쌀술 ; 찹쌀로 빚어서 담근 술.
*오목식기(--食器) ; ‘오목주발(--周鉢 : 놋쇠로 둘러[周] 만든 속이 오목한 밥그릇[鉢])’의 비표준어.
*묏등 ; 무덤의 윗부분.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발로참회(發露懺悔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뉘우칠 참/뉘우칠 회) ; 죄나 허물을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 발로백불(發露白佛), 발로참제(發露懺除)라고도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참고 ❷]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사리자존자 說 | 현장 역) ‘삼법품(三法品) 제4의 2’
應發露勿覆藏 發露則安穩 不發露罪益深 是名覺察擧罪

마땅히 죄를 드러내고, 덮어서 숨기지 마라. 드러내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만약 은폐하면 죄가 더욱 깊어진다. 이것을 자신의 죄를 살펴 대중 앞에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
*까바치다 ; (어떤 사람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속속들이 들추어내어 일러바치다.
*총총 ; 총총히(촘촘하고 많은 별빛이 또렷또렷한 모양).
*(게송) ‘曠劫障道 睡魔莫大’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참고. ‘오랜 겁에 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톡톡히 ; ①구실이나 역할 따위에 충실히. ②비판이나 대가의 정도가 심하게.
*시지부지 ; ‘흐지부지(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어가거나 넘기는 모양)’의 사투리.
*정절(程節) : ①길목. 길가는 데 종요로운 어귀. ②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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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ㅈ/제일구2022. 10. 30. 14:22

제일구(전강선사 No.011)—용성 스님과 제일구 법문답(法問答) | 용성 스님께서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 만공 스님께서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12분 5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불가불 내가 용성 큰스님을 찾아가 또 내가 한번 또 인가(印可)도 받고, 물으면 내가 답(答)도 하고 탁마상성(琢磨相成)을 해 보리라' 그러고는 용성 큰스님 회상(會上)으로 올라갔다 그 말이여.
대번 올라오니까, 소문이 앞에 가서 턱 ‘발써 정영신(鄭永信)이가 혜봉 스님한테로 댕겨서, 혜월 스님한테로 댕겨서 올라왔다’ 머녀(먼저) 그렇게 알았다는 것도 다, 법담(法談)했다는 것도 다 듣고 있고, 또 ‘왔다’ 소문이 그래 ‘정영신이가 왔다’ 헌 말이 벌써 용성 큰스님 귀에 먼첨 들어갔네.

아, 그러니깐 대번에 그만 나오시더니 "정영신이가 여기 왔다는디" 그래 쫓아 들어가서 절을 헌께,
“오! 네가 정영신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응, 너 글안해도 내가 만나고저 했더니 왔구나. 자, 그려 척 만났으니 너와 나와 서로 법거량(法擧揚)을 한번 해보자”
“죄송헙니다. 황송헙니다” 그러니깐,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그때 한참 제방(諸方)에 제일구가 퍼졌을 때라. 그래서 제일구 문답이 어디서부텀 시작되았는고 하니 동화사에서 시작되아. 동화사 금당(金堂)에서 시작이 되았어.
그때 금당에 누가 있었든고 하니 무렴 스님이라고 있었는데, 무렴 스님이 답을 했는데, 제일 옳게 답을 했닥 하는 제일귀(第一句) 답이 있어. 내가 그 무렴 스님 답헌 제일귀 답을 듣고 “흥! 아무리 제일귀 답을 무렴 스님이 옳게 했다고 판단은 났다마는 아니니라!” 내 그래 버린 거여.

그러면 그 제일귀 답은 어떻게 일렀는고 하니, “여하시제일구냐?” 물으니까, 답이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냐?” 요렇게 답 나왔어.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왔어. 나는 그 답—그 답이 제일이라고 했거등—"아니니라" 해 버렸어.

그렇게 해서 모도 인자 제방에 제일귀 답이 많이 모도 있을 때인디, 나한테 용성 큰스님께서 제일귀 답을 묻거든.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묻길래, 내 답을 좀 보란 말이여, 응.
또 저번에 다 해 놓은 놈이지마는 이번에는 그 이걸 내 그저 과거 모도 역사를 저렇게 야(얘)들이 깨끗이 잘혀. 이번에는 아주 그대로 결집을 허는구만. 모도 결집해서 저 일러주는 것 다 봤지만, 어저께 그 청암 거사도 아주 듣고는 공찬(公讚)을 혀. '그 참 잘했다'고. '어저께 일대기(一代記) 중에서 뭐 얼마를 일렀는데 참 좋다'고.

아, 나는 녹음기에다 내가 넣어 놓고 들을라니, 듣기 싫어! 맨 놈이 법문이 모도 그만 내 법문이 그려. 모도 그만 그 사투리에 뭣에 잉, 듣기 싫어! 내가 해 놓고도. 그런데 인자 야(얘)는 그대로 써 가지고, 인자 그대로 읽으니깐 아, 그런 게 없드구만. 아, 그런데 그 나는 잘 듣는구만. 야가 읽으면 잘 들어, 끝까장. 안되아 버리면 그만 안 듣는디.

용성 큰스님께서 “여하시제일구냐?”
영신 : “예?”(높은 음성으로)

그 왜 대답이 그려? “예”허든지 그러지, “예?” 그려?
"예?" “예?”는 왜 여가 “예?”그려? 그것 좀 잘...

왜 “예?” 그려?
참 그거, 언하대오(言下大悟)다. 세상에...

“예?” 그런게, ‘여하시제일구여?’ 또 묻거든.
용성 : “여하시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내가 그랬다. 응. 그 어른 답 가운데 좀 불싸스럽지마는 헐 수 없어, (손뼉을 치며) “허허!” 그러니깐,

용성 : “아니다, 아니니라” 용성 큰스님께서 그래서,
영신 : 다시 절을 척 허고서는 “큰스님 일러줍소사, 큰스님 일러줍소사. 여하시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그때는 “예”지. “예”
“예?” 그것 아니여 잉. “예” 그런게,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영신 : 내가 또 (손뼉을 치며) “허허!” 이랬다 그 말이여.

세상에 법전에, 큰스님 앞에 요렇게 했다는 것을, 그 대중이 그때 오십 명 대중(大衆)이여,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중이. 봉익동이여, 고때가 봉익동 시방 2번지인데, 1번지인가 그려. 거그 계셨는디.
그러니깐 내가 또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를 했는데 그건 그만두고,

용성 : “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느니라. 전신을 못했구나”
전신(轉身)—‘구를 전(轉)’ 자, ‘몸 신(身)’ 자, “전신을 못했느니라” 몸뚱이를 전(轉)허지, 몸뚱이를 옮기지 못했느니라 그 말이여. 구르지 못했느니라.
영신 : “그러면 전신구(轉身句)를 물어 줍소사”

용성 : “응, 그러제. 여하시제일구냐?” 거기에 내가 답하기를... 어?, 전신구냐? 전신구여! 전신구를 물어 내가 답하기를
영신 :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그러고는 더니깐 그 끝에 그 큰스님 말씀은, 귀방장(歸方丈), 방장으로 들어가셨거든. 그냥 돌아가셔. 뭐 인가(印可)야, ‘옳다’야, 가부여하(可否如何) 없고는 가셨다 그 말이여.
그러면 뭐 ‘옳다, 그르다’ 헌 것을—내가 무슨 뭐 인가를 맞으러 갔다고 하지마는 내가 인가해 주기를 뭐 ‘옳다, 그르다’ 헌 걸 바래는 법인가? 법문만 딱 해 놓으면 거그서 인자 까달(까닭)이 나는 것이지!

그대로 나는 나왔지. 나와 버렸는데, 사흘 되든 날이여. 그 뒤 사흘 되든 날이여. 3일 되던 날에 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했어.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대중께다가. 그때 대중 입승(立繩)은 경봉 스님인디, 시방 양산 통도사 경봉이 아니여. 또 그때 노인 경봉이 있었어. 눈 하나 미영씨(무명씨) 백히고, 그때인디.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러니까, “아, 영신이가 그 뭘 어떻게 일렀다고 속았다 하십니까?” 하동산(河東山) 스님은 그랬다 그 말이여. 동산 스님은 “아, 영신이가 뭐 어째서 그래 속았다고 그런 말씀허십니까?”
그 어른 말이 “자네가 영신이 이른 도리를 알겠는가?” 이랬다 그 말이여.

나는 못 들었는데, 대중에 그랬다고. 그때 그 대중에는 누가 있었느냐 하면은 장설봉도 있었고, 저 죽은—다 죽었구만, 둘 다 다 인자. 윤세호라고 있었어. 갑장사 많이 지낸 윤세호가 있었는데, 윤세호가 그 소리를 듣고 만공 스님한테 내려와서 그 말을 했어.
“아, 제일귀 답에 영신이한테 속았다고 큰스님께서, 용성 스님께서 대중께 공포했답니다”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만공 큰스님이 그랬다 그 말이여.

나 떠나 버린 뒤에 인가한 것이여! 그게 다, 속은 줄을 알고, 속은 것이 인가(印可)지 무엇이여! 어디, 꼭 옳다는 게 인가인가? 방맹이 맞고 방맹이 맞은 줄 아는 것이 인가고, 꼼짝 못헌 것이 인가여. 속은 줄 알았다 이거여.
대중께 공포를 안 했으면은 그 안되아. 공포를 했기 때문에 벌써 척 당신이 속은 줄 알어. 학자(學者)한테는 속지 않나? 허, 이거. 거그서 내가 그 문답을 터억 마쳤어.

저 윤세호가 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그런 말을 전허니깐, 만공 스님은 거그서 듣고 “당신이 속은 줄을 아셨으니 용성 스님일세” 그 내가 거가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고 뒤에 그러고 갔는디 거그 확 그 말이 팍! 퍼져 버렸제. 뭐 다 퍼진 것이제 어디.

시방(지금) 내가 이렇게 ‘견성(見性)했다’ 하고 돌아댕기면서지만, 선지식(善知識)을 이렇게 친견해 나가는데 용성 스님까장밖에 시방 안 했다 그 말이여. 그러고는 지금 인자 만공 스님은 아직 안 봤거든. 안 봤는디 고놈이 먼첨 벌써 다 들어가서 환히 알고 계신다 그 말이여.(67분26초~79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206~207. (가로판 p212. p217)
[ 別明臨濟宗旨 ] 大凡一句中에  具三玄하고  一玄中에  具三要하니  一句는  *無文綵印이요 三玄三要는  有文綵印이라  權實은 玄이요  照用은  要라.

따로 임제종지를 밝힘 : 일구(一句) 가운데 삼현(三玄)이 갖추어 있고, 일현(一玄) 가운데 삼요(三要)가 갖추어 있는데, 일구는 글발이 없는 인(印)이고, 삼현과 삼요는 글발이 있는 인이다。 권도와 실상은 현(玄)이며, 비침과 씀은 요(要)가 된다.

역주(譯註)
무문채인(無文綵印) 또는 무문인(無文印) : 선법(禪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 수가 있다.
①의리선(義理禪)이란 것은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이름이니, 마치 인장으로써 진흙에 찍으면(印泥) 인발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과 같다.
②여래선(如來禪)이란 것은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어서, 마치 인장을 물에 찍은(印水) 것 같다.
③조사선(祖師禪)이란 것은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이치나 일에 다 걸림 없는 것이 마치 인장을 허공에 찍은(印空) 것과 같은 것이다.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207. (가로판 p212)
[ 三句 ]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❸] 『임제록 · 법안록』 (선림고경총서12, 장경각) ‘시중’ p38.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麼生會 下座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한 구절[一句]에는 반드시 3현(三玄)의 문이 갖춰져 있고, 한 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3요(三要)가 갖추어 있어서 방편[權]도 있고 활용[用]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참고 ❹] 『임제록 · 법안록』 (선림고경총서12, 장경각) ‘시중’ p87. 『자유인 임제』 (성열 지음, 현암사) p475. p390.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 乞垂開示 師云 佛者心淸淨是 法者心光明是 道者處處無碍淨光是 三卽一皆是空名 而無實有 如眞正學道人 念念心不間斷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自達磨大師從西土來 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 後遇二祖 一言便了 如知從前虛用功夫 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참고 ❺] 『西山大師의 禪家龜鑑硏究』 (신 법인著, 김영사) p360~361
第一句  喪身失命  第二句  未開口錯  第三句  糞箕掃箒.


즉 第一句는 身命을 喪失하고, 第二句는 입도 열기 전에 틀리며, 第三句는 便을 치우는(糞掃) 箕掃라는 것이다.

앞에서 본 바에 의하면 臨濟는 ‘如何是第一句오’라는 學僧의 물음에,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이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그의 어록에,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第一句중에서 얻게 된다면 祖師와 佛陀와 더불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선가귀감)는 第一句에 ‘喪身失命’이라고 하여 있다.

第二句는 ‘未開口錯’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風穴昭禪師의 說이다. ‘人天眼目‘에는 ‘如何是第二句’下에 師云이라 하여 臨濟의 第二句語가 있고, 다음에 風穴云의 ‘未開口前錯’(『인천안목』 권1 三句)이 있다.(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穴云, 未開口前錯)

第三句下의 ‘糞箕掃箒’는 雲峯悅禪師의 說이다. 이 역시 ‘如何是第三句’ 밑에 師云이라 하여 臨濟의 第三句語가 있고, 그 다음에 風穴과 道吾의 言及이 있고 이어서 ‘峯云 糞箕掃箒’(『인천안목』 권1 三句)라고 있다.(問如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穴云, 明破則不堪. 吾云, 頭上一堆塵. 脚下三尺土. 印云, 西天此土. 峯云, 糞箕掃箒)



[참고 ❻]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207, p212. (가로판 p213, p218)
[ 三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역주(譯註)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❼]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體中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玄中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 말이여.(32분56초~34분55초)

 


[참고 ❽] 『만공법어(滿空法語)』 (修德寺 能仁禪院) 「법훈(法訓)」 '나를 찾는 법—참선법(參禪法)' p262. p264~265.
*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理無碍) • 사무애(事無碍)하게 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나니라.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체달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참고 ❾]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 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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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불(不可不) ; 어찌할 수 없이. 부득불(不得不 : 하지 아니할 수 없어).
*용성진종(龍城震鍾) ; (1864~1940) 법명은 진종(震鍾), 법호는 용성(龍城), 속명은 백상규(白相奎).
1864년 5월 8일 전라도 남원군(현재 장수군) 하번암면 죽림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남현(南賢)이며, 어머니는 손씨(孫氏)이다. 1879년 16세 때 가야산 해인사의 극락암(極樂庵)으로 출가하여 화월(華月)을 은사로, 혜조(慧造)를 수계사(授戒師)로 삼아 계를 받았다. 그해 의성 고운사(孤雲寺)의 수월영민(水月永旻)의 지도로 대비주(大悲呪)를 수행하고, 양주 보광사(普光寺)의 도솔암(兜率庵)에서 정진하였다.
1886년 23세에 신라불교 초전법륜지인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동 아도모례원 모례샘 근처에서 용맹정진 끝에 오도(悟道)하였다.

1911년 48세에 서울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 개조하여 대각사(大覺寺)를 건립하였다. 1919년 56세 때, 3·1운동 당시에는 한용운(韓龍雲)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의 대표자로 참가하였다. 3년 동안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뤘다. 그 뒤 서울 가회동에서 삼장역회(三藏譯會)를 만들어 한문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1921년 58세에 서울 대각사에 대각교(大覺敎)를 창립하여 새로운 불교운동과 국민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1924년 61세에 불교 포교의 일환으로 박한영(朴漢永)과 함께 불교잡지인 『불일(佛日)』을 간행하였다. 1925년 62세에 선을 보급하기 위하여 도봉산 망월사에 ‘만일참선결사회(萬日參禪結社會)’를 조직하였다.
1940년 2월 24일 대각사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참고]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총본산 대각사' 사이트 참고.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정영신(鄭永信) ; 전강선사. 속성(俗姓)은 정씨(鄭氏), 영신(永信)은 법명.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공찬(公讚 공평할·드러낼 공/기리다·칭찬함 찬) ; 드러내어 칭찬함.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언하대오(言下大悟) ; 말 아래에 크게 깨닫는다. 말(법문) 듣다 깨닫는다. '직하흔번(直下掀飜 바로 뒤집다)'도 같은 뜻의 말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불싸스럽다(불쌀시롭다) ; ‘불손하다(不遜-- : 말이나 행동 따위가 버릇없거나 겸손하지 못하다)’의 사투리.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까달 ; ‘까닭(어떤 일이나 현상의 원인 또는 조건)’의 사투리.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미영씨 ; ‘무명씨(목화木花의 씨)’의 사투리. ‘명씨’라고도 한다.
*눈 하나, 미영씨 박히다 ; 미영씨는 목화의 씨를 말하는데, ‘미영씨 박히다’는 말은 눈병 때문에 눈동자에 하얀 점이 생겨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뜻이다.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방맹이 ; 방(棒). 몽둥이. 또는 주장자(柱杖子). ‘방망이 봉’ 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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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혼침(수마) 산란2022. 7. 10. 18:07

수마(전강선사 No.011)—(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 화두는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 |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이다.


*수마(睡魔) ; 수행을 방해라는 ‘졸음 · 잠(睡)’을 마구니[魔]에 비유한 말.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 · 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에서.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이어다. 曠劫障道(광겁장도)는 睡魔莫大(수마막대)니 二六時中(이육시중)에 惺惺起疑而不昧(성성기의이불매)하며, 四威儀內(사위의내)에 密密廻光而自看(밀밀회광이자간)하라.

삼경(三更 : 저녁 9시에서 새벽 3시)이 아니면 잠자지 말라. 끝없는 오랜 세월 두고 수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 : 잠 ・ 수면)보다 더한 것이 없다. 12시간(현재의 24시간) 어느 때나 또렷이 깨어서[惺惺] 의심을 일으켜 흐려지지 말며,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다니거나 항상 자세히 빛을 돌이켜 스스로 마음을 살펴보라.

一生(일생)을 空過(공과)하면 萬劫(만겁)에 追恨(추한)이니 無常(무상)은 刹那(찰나)라 乃日日而驚怖(내일일이경포)요, 人命(인명)은 須臾(수유)라 實時時而不保(실시시이불보)니라. 若未透祖關(약미투조관)인댄 如何安睡眠(여하안수면)이리요.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만겁에 한이 될 것이다. 무상(無常)은 찰나와 같으니 날마다 놀라 두려워할 것이며, 사람의 목숨은 잠깐[須臾]이니 실로 늘 보존되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조사관(祖師關 : 화두)을 뚫지 못하였다면 어찌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겠는가?

頌曰(송왈) 睡蛇雲籠心月暗(수사운롱심월암)하니 行人到此盡迷程(행인도차진미정)이로다 箇中拈起吹毛利(개중염기취모리)하면 雲自無形月自明(운자무형월자명)하리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독사 같은 졸음[睡蛇]의 구름 끼어 마음의 달[心月]을 어둡게 하니, 도 닦는 이 여기 와서 길을 몰라 헤맨다. 이 가운데 취모리(吹毛利) 빼어 들면 구름 저절로 없어지고 달이 스스로 밝으리라.

 

(3분 37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혼침수마)

이런 법문 듣고는 안 자올으셔야 헐턴디, 자꾸 눈을 그저 알로 감는다. 겉으로는 참선헌 체허지만 속으로는 잠자고 계신다.
내가 다 안디. 눈을 깜아도 설법 듣는 거, 설법 안 듣고 자는 거, 내 다 안단 말씀이여. 그 뭔 참말로 내가 아니께 안닥 하제 뭐.

졸지 말어야 돼요. 법문같이 소중헌 게 없거늘, 참선허는 학자가 법문 들을 때 자는 법이 어디 있다? 그건 없어.
내가 여태까지 법문 들을 때 자꾸 슬며시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도 암말도 안 했지마는, 인자는 뭐 금년 동(冬) 산림이, 삼동 산림이 얼마 안 남았는디 가만두어 되야? 못 자게 해야 하고, 좀 그렇게 조으는 것을 내가 좀 꼬쟁이로 푹푹 쑤셔 줘야지, 그냥 둘 수가 없어.

자지 마시오. 누구를 위해서 허는 법문인디 자냐 그 말이여. 그만큼 잤으면 무던허지.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나무~아미타불~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너룬 겁으로 오면서 여태까장 도(道)를 못 닦게 허고 여태까장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못헌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잠, 그놈이 제일 큰 놈이다.
여러 가지 나를 방해허고, 나를 도(道) 못 닦게 헌 것이 많이 있다마는 잠보담 더 큰 놈이 없구나. 잠 마구니란 놈 따문에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허고, 도를 닦지 못허고 여태까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못된 잠 그놈! 화두를 한번 추켜들면은—화두는 참,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인디, 금강같은 좋은 쇠로써 보검(寶劍)을 맨든 고런 칼같은 것인디 어디가 그놈 잠이, 그놈이 어디가 제가 도를 못 닦게 마구니 행동을 헐 것인가? 허니 그 잠을 좀...

법문 들을 때도 또 자?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인디.
이런 말이 대꼬쟁이로 모두 쑤신 것이여. 잠 그놈 못 자게, 못 자올게 쑤셔 드린 거 아니여?(31분58초~35분3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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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曠劫障道 睡魔莫大’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참고. ‘오랜 겁에 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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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경허선사2022. 7. 10. 17:22

경허선사(전강선사 No.011)—제산 스님 역사 | 경허 스님에 대한 제산 스님의 신심. 발심 | (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25분 50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내 과거 공부헐 때, 여그저그 댕기면서 선지식(善知識) 친견허는 그때 그 행각(行脚)헐 때 그 실기(實記)를 좀 말해 달락 해서 시방 설허는 도중에, 혜월 스님을 모시고 와서 김천 직지사에다가 조실 스님을 모시고 크게 선방을 한번 해 볼라고 하다가, 모시고 와 놓으니 또 직지사에는 제산(霽山) 큰스님이 계시고.
그 제산 큰스님이 계셨지마는, 제산 큰스님은 그 계행(戒行)이 참 청정허시고—한국에 계행으로 제일 청정헌 어른이 누구냐? 김제산 스님이여.

여기에 인자 제산 스님 역사(歷史) 잠깐 좀 말씀을 해야 허겄구만.

제산 스님도 발심(發心)허시기 전에는 사판(事判)중으로서, 그때 사판중이 있거든. 사판중으로써서 술도 자시고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그저 마음대로 자시고. 사판중 노릇은 그때 누룩이나 디뎌서 팔고, 그것이 사판중들이여. 참선법은 영 모르고. 없었으니까 그때도. 그래 계시다가 사판중 노릇허는 법밖에는 모르제.
합천 해인사 현당(玄堂)에서 사판중 노릇을 허고 있는데 그때에 나이, 제산 스님 나이 한 30살 잡솼는데, 뜻밖에 ‘경허(鏡虛) 스님이 오셨다’ 소문을 들었거든. ‘경허 스님은 아주 참, 한국 도인(道人)으로는 다시 없다’ 소문이 났는데.

‘그러면 경허 큰스님을 좀 가 뵈야 허겄다’고, 현당에 사판중으로 그래 있다가는 그 마음 난 것도 이상하지. 그런 도인 한번 뵈야겄다고 척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머리는 숭났어 그 어른 머리가. 내 방에 그 경허 스님 사진 있제. 머리도 숭나고, 얼굴은 여가 덥텁헌 양반이 조실에 척 와 앉았어.
처억 보니까 눈이 다른 이보담도 더 쭉 째지고 아주 그런 어른이 앉었는디, 탁자(卓子)의 부처님보담도 훨씬 더 숭배심이 나.

탁자의 부처님은 의호(宜乎)이 아침 저녁에 예불(禮佛)하고, 이렇게 그저 중이 왔으면은 그저 등상(等像)께 예불한갑다 뿐인디. 아, 이 경허 스님은 척 보니 산 부처님이시다. 어떻게 숭배심이 나는지, 굉장혀 그 마음이 믿어지기를. 이렇게 마음이 믿어져야사 도는 닦는 것이지. 믿음이 없으면 된 법이 없어.
그만 그 경허 스님을 보고는 얼마나 믿어졌던지—뭐, 경허 스님도 똥싸고 오좀 싸고 밥 먹고, 오히려 저 나쁜 행은 보통 사람보담 더 많이 가져 계시네. 그런디 그것이 도모지 눈앞에 하나 안 보이고, 어떻게 믿어지는지 한량없이 믿어져.

앞에 가서 참, 망구(忘軀) 배(拜)를 허고. 여지없이 가서 절을 허고.
내가 중 되기 전에는 물론 아무것도 몰랐지마는, 중이 되아 가지고도 사판중이 되아 가지고 삼십이 넘도록까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모르고, 내가 나 찾는 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망칙허게 망허게 살아 나왔단 말이냐. 날마당 술이나 퍼먹고, 날마당 그저 누룩 장사나 중이 허고, 이따구 짓만 허고 지내고 있단 말이냐.
‘탁! 믿어 가지고 경허 큰스님께 도 배워 가지고 도를 닦아야겄다’ 결심을 딱! 하고 나가서 여지없는 위법(爲法), 법을 위해서 내 몸뚱이를 갖다 바쳤다 그 말이여.

절을 척 허니깐, “하구래(何求來)냐. 네가 무엇을 구해서 왔느냐?” 물으신다 그 말이여.
“큰스님께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무슨 법을 배우러 왔단 말이냐?”
“참선, 참선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허니께.

“허, 그래야. 좋은 말이다. 참선법을 배울라면은, 참선법 배울 학자가 첫번에 인자 법을 배울라면은 이물표신(以物標信)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건으로써 신(信)을 표해야 하는디. 내 좋아허는 걸 네가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다른 걸 좋아허는 것 아니다. 첫째,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헌다. 평생에 술을 내가 좋아해서 술을 끊지 못허고, 또 술 먹을 때는 주효(酒肴)라니, 술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안주허고 술허고 네가 사 오너라. 내가 술을 한잔 먹고 네가 사 온 안주를 내가 먹고, 술 한잔 먹고 나서 너한테 참선 화두를 일러주마.
화두 타는 법이 그렇게 쉬워서는 못쓰느니라. 네가 값이 있이 타야 허는 법이니, 네가 네 신심(信心)으로써 술허고 그 닭 한 마리, 내가 닭고기를 좋아허니 닭 한 마리 삶어서 가지고 오너라”

아, 그 퇴설당(堆雪堂) 그 조실에 앉어 계셔서 바로 거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그 퇴설당인데, 그 퇴설당에 조실에 앉어 계셔서 그런다.
내가 지금 녹음해 넣는 법문인데, 녹음해 넣는 법문을 위조로 혀? 그거 아녀. 똑 사실이여. 제산 스님 실기(實記)여.

한 말씀 듣고는 그대로 나왔어.
‘도인이라고 허는 이가, 경허 스님 도인이라고 나는 도인인 줄만 알았더니 조실(祖室)에 앉어서 술 사오고, 살생—닭은 살생을 해야 하니, 닭 모가지 삐틀쳐 죽여서 내가 그놈을 삶아가지고 가지고 와?’ 그러헌 마음이 나기가 처꺽 쉬울 것인디, 없어! 그런 마음이 어디가 있어.

응, 조꼼도 그런 마음이 없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그만 그대로 바로 내려가서, 각사 십 리(十里)나 내려가서—당신이 뭐 어떻게 손수 닭이야 잡을 수가 있나?
그러고 그때 또 사판중으로 계시니까, 그런 것 뭐 닭 모가지 짤르고 이런 거 뭐 죄이니 뭣이니도 없지마는 내려가서, 각사라는 데 내려가서 그 어디 아는 집에, 다 절에 그 십 리 동구(洞口)에 있으니깐 아는 집이 있제. 내려가서.

“나 닭 한 마리 잡아서 수증기로 잘 삶아서 줄 수 없겠느냐?”
“왜 못 해 드려요. 해 드리지요” 의호이 해 주지. 뭐, 안 해주어? 돈 받고 하는디.

그놈을 삶고, 홍류동 찹쌀막걸리 그 밥튀가 동동 뜬 놈 잘해서 그 청주로 떠놓은 홍류동 찹쌀막걸리, 옌장 술 잘 먹는 이는 비우 동(動)허겄네, 술 먹고 싶어서. 나도 동허는구만, 그 말을 헌께.

허! 아, 나도 글쎄 대구서 그 칠곡 넘어가는 그 잿말랑에 올라가다가 목은 컬컬헌데 아, 나이 또 그때 나도 스물 몇 살 먹었을 때니 술도 잘 먹을 때고 헌디. 아, 그 노인이 찹쌀술을 해놨다고 “한잔 잡수고 가시오” 그려. “아, 그래요!” 그것 잘 먹겄당, 오목식기로 하나 뚝 떠 주데.
아, 이놈의 술을 먹어 보니 입이 짝짝 들어붙으면서 참, 맛이라는 건 그 위에 더헐 수 없네. 찹쌀막걸리 그놈 잘되아 놓으면 맛 좋거든, 옛날 누룩으로. 지금은 그런 것 없구만. 암만 정종 그 같은 것 암만 좋아도 소용없구만.
한 독식기를 먹었네. 처 철렁, 기분이 좋고 하나도 취기는 없고. 또 한 접시를 한 오목식기를 먹었네. 둘 먹었제. 아, 그런게 또 인자 참 더 먹고 싶네. 셋을 먹었네, 큰 놈! 그 자리에 앉어서 다섯을 먹었어, 오목식기로.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섯을 척 먹고서는 그 재를 넘어서 도더기재를 올라가는데, 그 재 밑에 까장은 알았어. 온 줄 알았어. 재 밑에 와서는 어떻게 된지를 몰라. 그 뒤에라도. 아, 그랬는데 그도 어떻게 찾아갔든지 넘의 묏등을 찾아갔어. 묏등! 나는 평생에 안 잊히는구만. 묏등에 올라...

참, 별놈의 역사를 내가 내 입으로 다 말허네. 이래야사 그게 내가 지은 죄가 화반탁출(和盤托出)이 되제. 이런 청정 대중에 못 떨어 내놓고 어따 떨어 내놓을 것인가.
감추면 그 죄가 되고, 탁! 떨어 내버리면은 오히려 죄가, 좀 지은 죄를 받기야 받지마는 발로참회(發露懺悔)가 되아. 내가 그래서 이렇게 그 문둥이 지랄 같은 짓헌 걸 내가 다 까바쳐 놓는구만. 대중에 다 내가 다 까바쳐.

남의 묏등에 들어가서는, 묏등 밑에 가서 잤단 말이여. 그냥 꺼꾸러져 몰라 버렸어. 자다가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나고 그 산은 어떻게 험악헌 그 대구 칠곡, 그 산 모도 산천 험악헌 디는 그 도덕산 그 다 알지. 정공, 다 환히 알지, 몰라?
그 산은 뒷산은 칙칙헌디, 호랭이란 놈이 거그 살다가 밤낮 마을에 내려와서 개를 가져가고 헌 그런 놈의 디여. 아, 그런 놈의 디인디 거가서 자도 호랭이란 놈은 안 왔더구만. 거 실컷 자고 나서 총총헌디 아, 밤이 얼마나 되았는지 시계도 나 그때 없었고.

아, 헐 수 할 수 없어, 추워서 살 수가.... 술이 인자 깨든 거여. 그래 그 마을을 찾아 들어가니까 깜깜 모도 불 다 꺼번지고, 전기도 없는 딘데 아, 문에 가서 뭐 누구를 찾으니 누가 나오나?
그 밤이 그렇게 한 두 시나 세 시나 되았는가 어쨌는가. 그래 그만 ‘동네 사람, 사람 좀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아, 누가 듣고 ‘웬 사람이냐?’고 나와서,
‘아 여보시오. 내가 술을 먹고 그만 어디 가다 취해서 자고 아, 인자사 내가 일어나니 추워 죽겠어서 인가를 찾아온디 날 좀 구해 주시오. 추워 죽겄오’
‘아! 그러냐’고, 문을 열고 뜨거운 방으로 나를 안내해서 들어가서 자고 아침 거그서 얻어먹고 그 참 나온 일이 있었어.

그놈의 찹쌀술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홍류동 술맛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여까지 했구만. 고놈은 또 인자 거그서 그만두고.(30분21초)


아, 그래 제산 큰스님도 홍류동을 떡 올라오셔서 그 찹쌀막걸리를 잘 그냥 뜬 놈을 사르르 받쳐 가지고는 병에다 넣어 가지고 수증기로 삶은 닭 한 마리하고... 그 알겠제, 들어서 알겠제 잉. 아까 있는 디를 알아야제.
그래 가지고 올라와서 정성껏 바쳤다. 누구한테 바쳐? 경허 큰스님한테 바쳤다 그 말이여. 퇴설당 옆에 있는 조실방에 갖다 바치고는 참으로 절을 기가 맥히게 헌 뒤에 “잡솨 주십소사” 허고는, "그러제"

척 큰 대접에 하나 쭈욱 잡숫더니, 닭 그놈 그 자리에서 떠억 그 뼉다구 추켜들고 쭉쭉 “거, 잘 삶았구나. 맛이 있다” 그러시고는.
아, 그저 젊을 때시고 뭐 뼉다구 그놈 막 들고는 그저 막 그저 깨문 놈도 있고 뼉다구 뱉은 놈도 있고. 척 추려서 척 잡수고는 손수건 입 썩 닦으시고. 그까짓 닭 한 마리 그냥 얼른 잡솨 버린다 말이여.

이런 법문 듣고는 안 자올으셔야 헐턴디, 자꾸 눈을 그저 알로 감는다. 겉으로는 참선헌 체허지만 속으로는 잠자고 계신다.
내가 다 안디. 눈을 깜아도 설법 듣는 거, 설법 안 듣고 자는 거, 내 다 안단 말씀이여. 그 뭔 참말로 내가 아니께 안닥 하제 뭐.

졸지 말어야 돼요. 법문같이 소중헌 게 없거늘, 참선허는 학자가 법문 들을 때 자는 법이 어디 있다? 그건 없어.
내가 여태까지 법문 들을 때 자꾸 슬며시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도 암말도 안 했지마는, 인자는 뭐 금년 동(冬) 산림이, 삼동 산림이 얼마 안 남았는디 가만두어 되야? 못 자게 해야 하고, 좀 그렇게 조으는 것을 내가 좀 꼬쟁이로 푹푹 쑤셔 줘야지, 그냥 둘 수가 없어.

자지 마시오. 누구를 위해서 허는 법문인디 자냐 그 말이여. 그만큼 잤으면 무던허지.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나무~아미타불~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너룬 겁으로 오면서 여태까장 도(道)를 못 닦게 허고 여태까장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못헌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잠, 그놈이 제일 큰 놈이다.
여러 가지 나를 방해허고, 나를 도(道) 못 닦게 헌 것이 많이 있다마는 잠보담 더 큰 놈이 없구나. 잠 마구니란 놈 따문에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허고, 도를 닦지 못허고 여태까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못된 잠 그놈! 화두를 한번 추켜들면은—화두는 참,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인디, 금강같은 좋은 쇠로써 보검(寶劍)을 맨든 고런 칼같은 것인디 어디가 그놈 잠이, 그놈이 어디가 제가 도를 못 닦게 마구니 행동을 헐 것인가? 허니 그 잠을 좀...

법문 들을 때도 또 자?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인디.
이런 말이 대꼬쟁이로 모두 쑤신 것이여. 잠 그놈 못 자게, 못 자올게 쑤셔 드린 거 아니여?


그래 술허고 닭고기허고 잡순 후에 그래 설법을 해 주셔. 그 참, 그 조실에서 그렇게 막 아무 거침없이 잡순다. 잡수고는 그 자리에서 ‘오냐!’
그 벌써 거까장 가 술 사 오고 닭까장 가서 맨들어 올 때에는 그 사람의 신심이 여간 아니여. 그 신심이. 발써 그 신심을 봤거든. 그만헌 신심 가운데에서 일러주는 것이여. 그래야사 도 배우는...

똑 그래 내가 뭔 술 사 오고 뭐 닭 삶아 오라고 요런 소리헌 것 같여? 내가 그렇게 삶아 오고 술 받아 오라는 게 아니라, 그랬다 그 말씀인데, 또 갖다가 나를 갖다 손그락질 허면서 ‘술 사 오고 닭 잡아 오라고 저러는구만’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렇게 거다가 찢어서 해필 왈 갖다 내 허물을 둘러씌우지 말란 말씀이여.

잡숫고는 화두 설법을 해 주시는데, 화두를 타 가지고 나오는디, 아무 흔적 없는 것이요 말 한마디언만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 일러주셨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으니, ‘뜰 앞에 잣냉기, 어째서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는고?’ 이놈을 해라” 해서, 그 화두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떻게 걸음을 걸어서 나온지를 몰라. 어떻게 기가 맥히고 좋던지! ‘이런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를 탔다’

화두 타 가지고 그날부텀 정전백수자 화두를 허는데, 뒷방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림살이허는 중인데, 살림살이고 무엇이고 하나 허다가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인자 그때부텀은 ‘이 몸은 죽는구나. 내 이 몸은 사형선고를 받은 아주 기한 딱 정해 놓은 몸뚱이다. 죽을 사형 무대밖에는 없는 이 몸뚱이! 이놈 사형선고는 받았다마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시간이나 좀 알았으면 쓰겄는디, 이놈의 사형선고 기간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서른 한 살 먹어 갈라는가 원, 사형을 집행해 갈라는가, 스물 둘에 갈라는가, 이건 원 당최 알 수가 있나. 허니 참, 시각이 급허고, 참말로 내가 이 참선을 해서 생사 없는 대도를 깨달라 얻지 못허고 내가 이 목숨을 내버리고 가다니. 이 목숨 있을 적에 해야겄구나!’

그만 그대로 발심(發心)이 척 되는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뭣이 보이여?

그렇게 그 참, 사판중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돈도 많이 벌라고 남 모도 이자도 놓기도 허고, 사판중은 그렇거든. 누룩 디뎌서 모도 팔아 가지고는 사방 모도 논 살라고 계획해 놓았던 그런 것 저런 것 받을 것이 꽉 찼고. 허지마는 하나도—또 그 모도 집안이 부자 집안에 중이 되았으니까—하나도 정리고 무엇이고, 뭐 요리조리 모도 써 놓았던 계약서 받을 거 이거 불 탁! 질러 쏵 질러버리고는.

상좌 하나 들여서, 들인 것도 뭣도 없지마는 어른이 그렇게 참 노래(老來)에 또 시봉허다 나오니까 어디로 이리저리 의탁해 번지고 그러고는 선방에 척 나왔습니다.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 하나 타 가지고 다만 화두만 묶어 짊어지고는 나왔지. 아무것도 없고.
그대로 선방에 앉어서 지독허게 공부를 허셨습니다. 제산 큰스님께서 공부 한번 험서 그날부텀 그렇게 술도 자시고 헌 것 쏵 끊어 번지고는, 계행이 청정허기를 그렇게 청정헌 어른이 없고, 수행이 당최 참선해서 한번도 밥 먹을 사이도 없이 화두를 다루어 나간 어른은 그 어른밖에 없어. 기차제.(15분24초~41분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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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실기(實記 열매·내용·행적 실/기록할 기) ;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記錄).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사판중(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사판승(事判僧).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
*어육주초(魚肉酒草) ; 어육(魚肉)은 생선과 짐승의 살코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주초(酒草)는 술과 담배.
*누룩 ;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밀이나 찐 콩 따위를 굵게 갈아 반죽하여 덩이를 만들어 적당한 온도에 띄워서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다.
*디디다 ; ①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②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이나 메주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③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이겨 내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의호(宜乎 마땅할 의/오조사 호) ; 마땅하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등상(等像) ;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오좀 ; ‘오줌’의 옛말.
*여지(餘地)없다 ; (무엇이)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주효(酒肴 술 주/안주 효) ; 술과 안주(按酒)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각사 ; 해인사 입구에 있는 마을 이름.
*동구(洞口) ; ①마을로 들어서는 어귀(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②절로 들어서는 산(山)의 어귀.
*찹쌀막걸리 ; 찹쌀로 빚어서 담근 막걸리.
*옌장 ;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욕으로 하는 말.
*비우 ; ‘비위(脾胃)’의 사투리.
*비위(脾胃) ; ①어떤 음식을 먹고 싶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마음. ②음식을 잘 삭여 내는 능력. ③이니꼽고 탐탁지 않은 일이나 싫은 것을 견디어 내는 성미. ④지라와 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잿말랑(잿말랭이) ; ‘잿마루(재의 맨 꼭대기)’의 사투리.

* ;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 영(嶺).
*찹쌀술 ; 찹쌀로 빚어서 담근 술.
*오목식기(--食器) ; ‘오목주발(--周鉢 : 놋쇠로 둘러[周] 만든 속이 오목한 밥그릇[鉢])’의 비표준어.
*묏등 ; 무덤의 윗부분.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발로참회(發露懺悔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뉘우칠 참/뉘우칠 회) ; 죄나 허물을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 발로백불(發露白佛), 발로참제(發露懺除)라고도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사리자존자 說 | 현장 역) ‘삼법품(三法品) 제4의 2’
應發露勿覆藏 發露則安穩 不發露罪益深 是名覺察擧罪

마땅히 죄를 드러내고, 덮어서 숨기지 마라. 드러내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만약 은폐하면 죄가 더욱 깊어진다. 이것을 자신의 죄를 살펴 대중 앞에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
*까바치다 ; (어떤 사람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속속들이 들추어내어 일러바치다.
*총총 ; 총총히(촘촘하고 많은 별빛이 또렷또렷한 모양).

*(게송) ‘曠劫障道 睡魔莫大’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참고. ‘오랜 겁에 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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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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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ㅈ/조박 조강2022. 7. 10. 16:48

조박(糟粕) (전강선사 No.011)—(게송)商量是鬼窟 文字是糟粕 若問何者是 棒行如雨滴 |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 생사 없는 법이 사바세계밖에 없다 |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하는 법이 없다.


*조박(糟粕 지게미·재강 조/지게미·깻묵 박) ; ①재강(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 ②학문이나 서화, 음악 등에서 옛사람이 다 밝혀서 지금은 새로운 의의가 없는 것을 이르는 말. ③양분을 빼고 난 필요 없는 물건.

*고인조박(古人糟粕)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조백(糟魄 술지게미 조/넋·말린 술지게미 백) ; 고인조백(古人糟魄).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魄(백)’은 ‘박(粕)‘과 같은 뜻으로 ‘말린 술지게미’를 뜻함.

*조강(糟糠 지게미 조/겨 강) ;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와 쌀겨라는 뜻. ②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飮食). ③조강지처(糟糠之妻 : 가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의 준말.

찾기는 찾되 의심(疑心)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商量) 달러.

 

(15분 13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상량시귀굴(商量是鬼窟)이요  문자시조강(文字是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오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선(商量禪)이라는 게 못써.
공연히 앉어서 공부헌닥 하면서 참으로 의심을 허지 않고, 상량선을 하고 앉었거든. 요리 한번 생각해 보고 조리 한번 생각해서, 그 상량이 붙도록 화두를 든다 그 말이여. 상량선!
자꾸 그 무슨 이치를 찾고, 거다가 이상스럽게 모도 무슨 별별 도리를 끄집어다가 붙여서.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알 수 없는 의심만 딱 들고서는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걸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것이 조주(趙州)의 뜻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뜻이란 말이여.
그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거가서 무엇이 있을 것이여. 상량(商量)해서, 사량(思量)해서 붙여 봤던들 되냔 말이여.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이란 건 귀신굴이여.
귀신(鬼神)이라는 게 이 몸뚱이 내버리면 귀신인디. 또 귀신이 뭐, 따로 있나? 이 사람이 사람 몸 가지고 있다가 사람 몸 버리면 귀신이지.

귀신이라는 것은 그거 또 더 이상스럽게 사람 몸뚱이 가져 있을 때보담도 사람 몸뚱이 내버린 뒤에는 귀신의 상량이라는 것은 말로 못 혀. 이놈이, 귀신 상량이라는 것은 당초에 그건 뭐 어따가 비유헐 수 없이,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뿐이여.
숭악헌 근원도 없이 퍼일어난 놈이, 내 근본 정신도 없이 그만 일어나는 놈이 그 귀신 생각인디, 그걸 귀신 상량이라, 귀굴리(鬼窟裏)라 그려. 그래서 상량선이라는 것은 귀굴리선(鬼窟裏禪)이라 그런다 그 말이여.

그러니 제일 주의헐 것이 상량선이여.
안 헌닥허지마는 상량선을 허기 따문에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오들 않고, 화두일념(話頭一念) 지경이 오들 않고, 고 상량 따문에 망가(亡家)헌다. 집을 잊어버리고 실업(失業)한다. 업(業)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상량이 아닐 것 같으면은 화두(話頭)라는 것이 그대로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올 것이며, 어디 그 헛된 선(禪)인가? 참, 옳은 선(禪)이지.

공연히 따진다. 어서 깨달을라는 마음을 다 붙이기도 허고, 그놈이 그 무슨 이치를 찾아 붙인다. 아, 이런 놈의 꼴 봐라.
아무리 해봐도 이치는 아니여. 천하 없는 이치를 다 붙여봐. 그 이치가 무슨 이치가 참선인가. 아니거든. ‘깨달랐다’ 허니까, 뭐 깨달을 것 같으면 무엇이 뭐, 물건이 무엇이 하나가 있는 줄 알고.

어쩠던지 상량선은 안 해야 옳아. 그거 귀신 참선인디, 귀신 참선은 참선이 아니여.
그 까달(까닭) 따문에 타성일편 지경이, 의심 하나가 그저 의단독로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 덩어리가 뭉쳐져 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뭉쳐져 가지고는 독로(獨露)가 되지를 못혀.

문자(文字)는 시조박(是糟粕)이다. 문자라는 것이 조박(糟粕)이여.
일체 문자선, 문자 참선도 그 못써. 그 무슨 글귀를 집어대고 들어대고 해서 그 모도 문자 인증을 헌다 그 말이여. 문자 중 인증이 모도 그것이 조박—고인이 술 짜, 옛사람들이 술 짜 먹어 버린 술 찌꺼리인데, 그 찌꺼리 그것을 자꾸 내가 먹을라고, 술 찌꺼리를 먹어 보니 그 무엇이여. 아무 소용없지.

문자도 소용없는 법이여. 참선에는 문자도 소용이 없어. 그러헌즉 참선학자라는 것은 그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다. 문자에 얽히들 안 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배운 그 교(敎)를, 문자를 버려버리고 선(禪)에 들어온 것이다. 참선허는데 무슨 문자여? 무슨 교(敎)란 말이여? 거가서. 소용없다.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딱 참, 귀재의정(貴在疑情)이다. 귀헌 것이 의심이다.
화두 해 나가는 법! 내가 언제든지 올라와 화두 해 나가는 법을 이렇게 말해 주지 않어!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노? 아,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알 수가 없구나’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고것이 조주 뜻이여. 뭐 다른, 따로 조주 스님 뜻을 가 찾아?

‘해보니까 조주 스님 뜻이 다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의지가 다르고 아, 두 가지로 자꾸 생각이 나간다’고 요러고 앉었어. 그 무슨 그런 참선을 허고 앉었어.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가 없으니, 그 그놈 찾는 거 아닌가.

아, 그러면 그렇게 찾기는 찾되 의심(疑心)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商量) 달러.

인자 불 꺼버려라. 여그 올라오면 후끈해서 그만...

참, 이 이상 더, 천상천하에 어디 무슨 뭐 별별 세계에 다 없는 참선법(參禪法)이 우리 사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이 세계에 있단 말여. 남섬세계에 가서 남부세계에 가서 있거든.
세상에 이 세계는, 그저 인생이 나면 죄만 퍼짓고, 그저 인생이 나오면은 살래야 살 수 없고, 그저 나오다가 죽기도 허고, 이것 좀 살다가 죽기도 허고, 맨 놈의 남섬부주 죄짓는 세상인디, 아! 이 세계에 와서 있다. 이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

그 세상에 다 있제. ‘나’는 다 있고. 누가 주인공이 없어?
‘나’는 다 있고. 주인공은 다 있지마는 어째 남섬부주에 꼭 난 사람이래야 꼭 주인공,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이 있어. 그거 묘하다!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여의고는 없거든. 그러허니 불불(佛佛)이 성불(成佛)을 해가지고는 이 사바세계를 오신단 말이여. 사바세계에 내려오셔서 사바세계 중생을 제도헐려고 내려오신다 그 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이 대도(大道)를 이루어 가지고는, 불과(佛果)를 증(證)해 가지고는 오실 디가, 출세(出世)헐 디가 여그밖에 없어.

부처가 되아 가지고 불과를 증해 가지고는 가만히 중생교화도 않고 있을 수가 있나. 제일 큰 일이 중생교화(衆生敎化)인디, 중생을 교화 안 헐 것 같으면은 어찌 될 것이냐 말이여. 뭐가 될 것인가 말이여. 이 중생은 전부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있게.
부처님도 석일(昔日)에 우리와 같은 동아(同我), 똑같은 범부(凡夫)인데 그렇게 생사고를 같이 받아 오시다가 먼첨 성불을 했으니 어서 속히 중생을 위해야 헐 것 아닌가.

중생 때, 불과(佛果) 증허기 전 중생 때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생사고를 받았으며, 모도 미(迷)헌 우리 중생 사바세계에서 같이 부모형제가 되았으며, 그 인연 깊은 인연을 천만 겁 중에 같이 해 나왔는데 모도가 부모형제인데, 그 사바세계에서 생사고를 받고 있는 그 중생을 제도(濟度) 안 허고 무엇을 헐 것인가?
부처님이 불과를 이룰 것 같으면은 곧 당장에 그만 사바세계에 인자 하강(下降)허셔 가지고는 중생교화를 허는 것이여.

참선법!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허는 법이 없는데, 무엇을 헐 것이여!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냐? 그럼 묻노니 어떤 것이 옳느냐?
음, 세상에 상량(商量)도 귀신굴이요, 문자(文字)도 고인조박(古人糟粕)밖에는 안되아. 짜먹어버리고 내버린 찌꺼리밖에 안된다.
약문(若問)허노니, 내가 돌이켜 묻노니 하시(何是), 시(是)냐? 어떤 것이 그러면 참선법, 옳은 선법이냐?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다. 방맹이를 때리되, 방맹이로 막 치되 방맹이가 하나가 아니라 우적(雨滴)이니라. 빗방울이니라 했다. 그러니 어디 어떤 것이 참선이라고, 어떤 게 옳은 것이냐고 참선 도리를 묻거드면은 방맹이로 빗방울처럼 막 뚜드려 팬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디 어디 그 뭔 이치를 가르켜 놓았어? '참선이 요런 것이다' 가르켜 놓았어?

‘참선 이치가 요런 것이다’ 딱! 가르켜 놓을 것 같으면은 그것은 선이 아니여. 무엇이라고 딱 손가락처럼 착 나오면은 그거 참선법도 아니고 상견(相見)도 아니고 그거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허들 못혀.

게송(偈頌)으로 여까지.(처음~15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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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상량시귀굴~’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참고.
*조강(糟糠 지게미 조/겨 강) ;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와 쌀겨라는 뜻. ②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飮食). ③조강지처(糟糠之妻 : 가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의 준말.
*조박(糟粕 술지게미 조/지게미 박) ; 고인조박(古人糟粕).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숭악하다 ; ‘속이 응큼하다(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거나 음흉陰凶하다)’ ‘흉악凶惡하다(성격, 언행이 모질고 악랄하다)’의 사투리.
*귀굴리(鬼窟裏) ; 귀신 굴 속.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찌꺼리 ; ‘찌꺼기’의 사투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불과(佛果) ; 불인(佛因 :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苦].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석일(昔日 옛날 석/날 일) ; 옛적(이미 많은 세월이 지난 오래전 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고인조박(古人糟粕 예 고/사람 인/술지게미 조/술지게미 박)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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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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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2. 3. 8. 10:58

법거량(전강선사 No.011)—해인사 이회광 스님의 진산식 설법상에서 석두 스님(효봉스님의 은사스님)의 법거량 | 제산 스님과 해인사 선방 대중이 해인사 주지에게 쫓겨나 김천 직지사로 감.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5분 15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그래 가지고는 제산 큰스님이 그렇게 깨끗허게 청정허게 오래오래 화두를 조금도 밥 먹을 사이도 틈이 없이 공부를 잘허셨기 따문에 ‘제산스님’ 헌 이름이 나서 학자는 많이 그 어른 밑에 지낸다 그 말이여. 그때는 더더군다나 그리 선지식(善知識)이 귀혔고.

그래 가지고는 합천 해인사에서 하도 오래 지내—경허 큰스님은 인자 거그서 좀 계시다가, 조실에 계시다가 딴 디로 가셨고—합천 해인사에 들어오셔서 오래오래 계시니깐 그대로 제산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셔. 뭐 학자들 뭐 그렇게 눈을 띄워 주든 못허는 그러헌 스님이시지마는 그래도 원청 수행이 참 존중허시니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데.

그때 마침 학자가 한 30여 명 있는데, 그때 주지(住持)는 누구든고 하니 이회광(李晦光) 스님이여. 이회광 스님이라고 굉장헌 이가 있었소. 시방 그저 ‘이회광 스님’이면 그이 얼굴을 본 이가 있는가 없는가는 몰라 그러허되, 이회광 스님이 주지인디.
이회광 스님이 첫 주지로 인자 되아 가지고, 합천 해인사 큰 법당에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주지된 후에 진산식(晉山式)에 대중이 인자 그 삼백 명 대중이 주지 스님으로 모셔 가지고는 그 법상에 올라오셔서 설법을 척 헌다.

아주 그때는 처음 와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설법상(說法床)에 올라가서 설법을 척 허는데, 그때 제산 큰스님 회상에 수좌(首座) 하나가 누가 있는고 하니 보택(寶澤)이, 택수좌가 있어.
보택이, 택수좌라는 스님은 누군고 허니 석두(石頭) 스님이여, 임석두 스님인디. 임석두 스님은 누군고 허니 돌아가신 종정스님, 효봉(曉峰) 스님의 은사스님이여.

그 스님 이름이 보택이, 택수좌인디. 보택이 택수좌로 그때 그 제산 스님 회상에 참선을 허고 있다가, 이회광 스님 주지가 되아 가지고 진산식 설법허는디 그 법회에 참례해서 법을 듣는데, 그 회광 스님도 수좌로 공부를 허고 댕기다가 해인사에 들어와서 주지가 되았거든. 인자 진산식 설법에 회광 스님이 법문을 허시는데, 그 법문을 들어보란 말이여.
인유(因由)를 다 말해야 되는 것이여.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것이여. 부처님 법문에도 인유분(因由分)이 있거든, 인유분. 그 주욱 얘기를 해 가지고는 인자 딱 헌다, 이런 인유가 있어. 무조건 툭 허고만 나오면 되아?

그래 해인사 큰 법당에 이회광 스님 인자 진산식 설법허러 올라가서 진산식으로 법상에 올라가 설법헐 땐디. 얼마나 그 법보종찰(法寶宗刹)에 참, 주지가 되아 가지고는 산중이 다 모였는데 삼백 명 대중이 모았어.
그리고 또 서울서 그 소문이 난 이회광 스님이기 따문에, 서울 상궁(尙宮)들이 다 믿은 스님이기 따문에 천상궁 이하에 그 상궁들이 수백 명이 내려왔어. 상궁이 꽉 차고 산중 스님네가 한 삼백 명이 차고 뜰까장 꽉 찼는데.
그 큰 법당에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을 허는데—지금 설법을 지금 헐 판이지, 올라갔지. 턱 앉었는데, 회광 스님 참 인물이 잘났거든. 그 이상 더 잘날 수 없지. 틀이 잘 생겨 가지고 올라가 법문허는디, 주장자를 추켜들고. 이게 법문이여!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과 금일대중(今日大衆)이 산승(山僧)의 입으로 나왔느니라” 그랬네.

아, 그래 놓으니깐 불가불 물을 수밖에 없지. 효봉 스님 은사스님 보택이 택수좌, 그 스님이 척! 나와서 앞에 와서 척 공경허게 절을 한 자리 딱—그 묻는 법이 그려. 다 그래야지.
절을 딱 허고는 합장하고 척 서서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금일대중은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회광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화상(和尙)은 종하처출(從何處出)고? 화상은 어느 곳으로써 나왔습니까?” 물었네.

그 대답헐 자신(自信) 있는가? 자신 있는가?
바로 보여야 하지, 못허는 것이여! 거, 어름해 가지고는 못 헌다니까 그래. 요리조리 생각허다가는 허들 못 하고 더군다나 말헐 것 없지마는, 바닥이 툭 드러나지 않고는 못 혀.

고놈 한마디 해 놓으면은 그 밖에 더 무서운 답이 나오네. 문답이 그 밖에가 더 있어.
그 하나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제. 어디 여그 우리, 또 우리 저 모도 먼 디서 모도 온 보살님네도 한마디 대답해 보고.

많이 선방에 댕김서 공부허신 어른들이 여기 시방 모도 계신디, 원 체면만 채려도 못써. 툭! 견성해 가지고는 또 애끼기만 허는구만. 애껴 놓으면 뭣 혀. 푹 나와야지.
한마디씩 모도 허면은 나도 한마디 헐 터이지마는, 정말 법문을 들을라면은 한마디씩 해 볼 것이지마는, 밑천이 짤러 가지고는 못 햐. 고놈 한마디 겨우 답해 놓고 나면 어쩌라고. 큰일나제.

다 제 방맹이에 죽느니라. 제 방맹이에 저 죽고 마는 것이여.

그러니까 그만 그 보택이 택수좌님이 아, 거그서 그만 들나지 않게 은근하게 한마디 잘 이르고 나오면은 그 좋을 것이다 그 말이여.
세상에 그... 헌디 아, 옷을 벗어서 장삼(長衫)을 척 벗어서 어깨에다가 척 걸쳐 메고는 “분허다!” 쳐다보고, 법상에 앉었는디 “분허구만! 속한(俗漢)이 놈한테 내가 절헌 것이 분혀!” 아, 이러고는 그냥 장삼을 메고는 불수변거(拂袖便去)를 해버렸네.

그러니 그 위신(威信)이 그 무엇이여. 그렇게 큰 대중이 다 모이고 서울서 상궁 대중이 다 모이고, 비구니 대중이 다 모이고 그런디 그렇게 헐 수가 있어?
허, 이거 참, 어쩔 것이여 그거, 회광 스님으로서 어쩔 것이여. 참 기가 차제!
법문을 헐래야 헐 수가 있소? ‘속한이 놈한테 절했다고 분허다’고 나가 놓으니. 아, 그랬다더니.

아, 이번에 내가 또 들었구만. 나 인자 이번에 들었구만.
수련대회 학생이 송광사로 갔드랴. 간디, 그 대회에 따라온 이가 누군고 하니, 요새 그 왜 처사님이 견성했다고 헌 이가 있는데. 백봉처사라고 허나? 그 처사가 요새 그랬다는데.

여그 이 자혜 수좌가 잘 알고 와서 얘기해서 들었구만. 아, 거그에 창영 수좌가 있다 하나? 창영 수좌인가 누가 있었는디, 가서 그만 법문을 가만히 듣다가는 무슨 법문에 그 졸가리가 나왔드만, 나 그건 모르겄구만. 나 인자 들어.

탁! 채고 물으니께 그만 어름어름 말대답을 못 하니까, “요까짓 것들이 다 어느 곳에서 와서 견성했다고 입을 벌려? 당장 여가 어디인디, 16국사 도량인디 여그 와서”
아, 그래 가지고 거그서 헐 수 없어 그만, 그 냅대 그만 법방(法棒)을 냅대 내리는 바람에 도망갔대아. 그냥 도망가지. 도망가 버렸대 그냥. 마누라까장 데리고 왔다가.
아, 그랬다고, 여그 조그만헌 자혜 수좌가 그 소리를 해서 내가 그저껜가 들었구만.
그 그런 것이란께. 아, 그 어떤 처사인지 모르지마는 그 참, 그 우세 그 큰 우세여. 함부로 입 벌릴 수 없는 것이여.


아, 그렇게 점잖은 이가 그래도 거그서 그만 바싹 절단나 버려. 살림살이 푹 베져 버리고.
못 하네, 그거. 자, 그만 그래 그만 법문헐 수가 있는가? 법문을 해야 헐턴디 법문을 못 혀, 그 정도면.

그만 그길로 법문 못 허고 내려와서는 가만히 그만 주지실에 와 있다가, ‘이놈의 주지를 내가 공연히 왔구나, 이러헌 산중에 이러헌 놈의 우세가 어디 있노’ 우세 안 헐 수밖에 없제.
위신이 암만 점잖하고 암만 학식이 넉넉헌들 이 법은, 이 일착자(一着子) 도리는 헐 수 없어.

대체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정여무정과 금일 대중까장이라도 내 입에 나왔느니라’ 자기가 해 놓았으니, 자기는 어디서 나온 걸 바로 일러야 할 것 아닌가? 저 나온 걸 일러야 헐 것 아니여?
이런 도무지 아, 그놈을 못 일러 놓았으니, 대갈빡이만 있고 몸뚱이 없는 것이제, 뭣이여?

법문 못 혀. 내려와서는 그날 밤 잠 한숨 못 자고는 주지실에 띄우고는 그 이튿날부텀은 달리 어떻게 헐 수 없으니까, ‘합천 해인사 그 퇴설당을 못 파라, 못을 파라’ 그 이유는? 왜 못을 파라느냐?
‘못 파라’는 것은 장경각(藏經閣)에 불을 꺼야 허겄으니깐 못을 파라 이거여.

인자 쫓아내는 것이지. ‘수좌, 쏵 가거라’ 주지니까, 주지 직권이니깐, 헐 수 있어? ‘못을 팔 터이니 나가거라’
헐 수 없어서 그때 쫓겨나는데, 보택이 택수좌님 따문에 온 대중이 다 쫓겨나는데, 헤 기차제! 그때만 해도 주지 권리가 참 무섭다.

불통령 재를 넘어서... 목통령(木通嶺) 재가 불통령(不通嶺)일세. 이 정공은 잘 알거네.
목통령이 거 불통령이여. 왜 불(목)통령인고 허니 ‘아니 불(不)’ 자 대각빡이 올라간께 목(木) 자가 되었어. 갖다가 불통령을 목(木)자로 목통령(木通嶺)으로 된 거여. 그래 목통령인디.

목통령 재를 넘어서 김천 직지사를 오셨네, 제산 스님이. 그래 가지고 그 김천 직지사에 가서 그 어른이 와 계시면서 또 선객(禪客)이 한 사오십 명 모아서 살기 따문에 직지사가 그 참, 한국에 제일가는 선방이 되았었구만.
여까지, 내가 이 말허니라고 여까지 헌 것이여. 그 인유를 얘기허니라고 여까장 헌 것이다 그 말이여.(43분37초~58분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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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으나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을 성립한 이래 1910년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또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진산식(晉山式 나아갈 진/뫼 산/법 식) ; 절의 주지가 새로 취임하여 거행하는 의식.
*설법상(說法床)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인유(因由 인하다·인연·유래 인/말미암을·까닭 유) ; 일의 내력(來歷)이나 까닭.
*법보종찰(法寶宗刹) ; 불 · 법 · 승(佛法僧) 삼보(三寶) 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 놓은 팔만대장경판인 법보(法寶)를 봉안하고 있는 절. 우리나라에서 합천 해인사가 법보종찰이다.
*상궁(尙宮) ; 조선 시대에, 내명부(內命婦 궁중에서 여러 벼슬자리에 대하여 매기던 등급인 품계品階를 받은 여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하나인 여관(女官)의 정오품 벼슬.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짤르다 ; ‘짧다’의 사투리.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불수변거(拂袖便去) ; 소매를 떨치고 문득 가버리다.
*위신(威信) ; 지위나 신분에 따른 위엄(威嚴 위세가 있어 의젓하고 엄숙한 태도나 기세)과 신망(信望 믿고 기대함. 또는 그런 믿음과 덕망).
*졸가리 ; ①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②사물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버린 나머지의 골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우세 ; 남에게서 놀림이나 비웃음을 받음. 또는 그 놀림이나 비웃음.
*일착자(一着子) ; 일착(一着). ①(바둑에서) 한 수 두다. 일수(一手)와 같음. 선승이 불교의 교리나 수행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는 것을 비유하여 한 말. ②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마음자리를 뜻한다.
*장경각(藏經閣) ; 장경각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고려대장경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을 말한다. 남쪽의 수다라전(修多羅殿)과 북쪽의 법보전(法寶殿)이 있으며, 서쪽과 동쪽에는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보 제52호로 정식 명칭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퇴설당은 장경각 옆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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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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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1. 11. 23. 06:34

법거량(전강선사 No.011)—용성 스님과 법거량.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3분 39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그러니 내가 그 (직지사) 회상에서 혜월 큰스님을 모시고 선방—그저 그때 그 다 말허니께 퇴운 스님도 좋아 하시고 또 그 제산 큰스님도 조끔도 당신이 조실(祖室)이라고 해서 그런 큰스님이 오는 것을 반대헐 어른이 아니거든. ‘내 자리인디, 어찌 그 어른이 와?’ 없어!
'좋다'고. 그 뜻을 얻어 가지고는 갖다가 모시자고 했는디 뭐 내가 자발로 헌 건 아니지마는, 발써 그만큼 그만 내 말이 그만 그렇게 권리가 있어. 말 한마디 허면 모두 세워 주고.

또 법을 ‘정영신(鄭永信)이 벌써 혜봉 스님이 다 인가했다’ 아, 이거 소문이 나니 어쩔 꺼여. 또 ‘혜월 스님한테 그 안에 가서 다 벌써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 다 일렀다’ 소문나 놓으니께 뭐 어쩌.
그만 퇴운 스님도 말로 헐 수 없이 좋아하고, 제산 큰스님도 그만 내 말을 여지없이 참 신용하고. 아, 그래서 직지사에 모실라고 딱 했는데, 당최 그만 통도사에서 막 모셔 갈라고 하는디, 허는 수가 없어서 기어이 못하고는.

‘아이고, 헐 수 있나. 어라, 나는 내 목적이나 달성헐 수밖에 없다. 불가불 내가 용성 큰스님을 찾아가 또 내가 한번 또 인가도 받고. 물으면 내가 답(答)도 하고 탁마상성(琢磨相成)을 해 보리라’ 그러고는 용성 큰스님 회상으로 올라갔다 그 말이여.
대번 올라오니까, 소문이 앞에 가서 턱 ‘발써 정영신이가 혜봉 스님한테로 댕겨서, 혜월 스님한테로 댕겨서 올라왔다’ 머녀(먼저) 그렇게 알았다는 것도 다, 법담(法談)했다는 것도 다 듣고 있고. 또 ‘왔다’ 소문이, 그래 ‘정영신이가 왔다’ 헌 말이 벌써 용성 큰스님 귀에 먼첨 들어갔네.

아, 그러니깐 대번에 그만 나오시더니 “정영신이가 여그 왔다는디” 그래 쫓아 들어가서 절을 헌께 “오! 네가 정영신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응, 너 글안해도 내가 만나고저 했더니 왔구나. 자, 그려 척 만났으니 너와 나와 서로 법거량(法擧揚)을 한번 해 보자”
“죄송헙니다. 황송헙니다” 그러니깐.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그때 한참 제방(諸方)에 제일구가 퍼졌을 때라. 그래서 제일구 문답이 어디서부텀 시작되았는고 하니 동화사에서 시작되아. 동화사 금당(金堂)에서 시작이 되았어.

그때 금당에 누가 있었든고 하니 무렴 스님이라고 있었는디, 무렴 스님이 답을 했는디 제일 옳게 답을 했닥 하는 제일귀(第一句) 답이 있어.
내가 그 무렴 스님 답헌 제일귀 답을 듣고, “흥, 아무리 제일귀 답을 무렴 스님이 옳게 했다고 판단은 났다마는 아니니라!” 내, 그래버린 거여.

그러면 그 제일귀 답은 어떻게 일렀는고 허니,
“여하시제일구냐?” 물으니까, 답이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냐?” 요렇게 나왔어.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왔어. 그 답이 제일이라고 했거등. “아니니라” 해 버렸어.

그렇게 해서 모도 인자 제방에 제일귀 답이 많이 모도 있을 때인디, 나한테 용성 큰스님께서 제일귀 답을 묻거든.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묻길래, 내 답을 좀 보란 말이여, 응.

또 저번에 다 해놓은 놈이지마는 이번에는 그 이걸 내 그저 과거 모도 역사를 저렇게 야(얘)들이 깨끗이 잘혀. 이번에는 아주 그대로 결집을 허는구만. 모도 결집해서 저 일러주는 것 다 봤지만 어저께 그 청암거사도 아주 듣고는 공찬(公讚)을 혀. ‘그 참 잘했다’고. ‘어저께 일대기(一代記) 중에서 뭐 얼매를 일렀는데 참 좋다’고.

아, 나는 녹음기에다 내가 넣어 놓고 들을라니, 듣기 싫어! 맨 놈이 법문이, 모도 그만 내 법문이 그려. 모도 그만 그 사투리에 뭣에 잉, 듣기 싫어! 내가 해 놓고도.
그런디 인자 야(얘)는 그대로 써 가지고, 인자 그대로 읽으니깐 아, 그런 게 없드구만. 아, 그런데 그 나는 잘 듣는구만. 야가 읽으면 잘 들어, 끝까장. 안되아 버리면 그만 안 듣는디.

용성 큰스님께서 “여하시제일구냐?”
영신 : “예?”(높은 음성으로)

그 왜 대답이 그려? ‘예’ 허든지 그러지, “예?” 그려?
“예?” ”예?”는 왜 여가 “예?” 그려? 그것 좀 잘...

왜 “예?” 그려?
참, 그거. 언하대오(言下大悟)다. 세상에...

“예?” 그런게, ‘여하시제일구여?’ 또 묻거든.
용성 : “여하시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내가 그랬다. 응. 그 어른 답 가운데 좀 불싸스럽지마는 헐 수 없어, (손뼉을 치며) “허허!” 그러니깐,

용성 : “아니다, 아니니라” 용성 큰스님께서 그래서,
영신 : 다시 절을 척 허고서는 “큰스님 일러줍소사, 큰스님 일러줍소사. 여하시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그때는 “예”지. “예”
“예?” 그것 아니여 잉. “예” 그런게,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영신 : 내가 또 (손뼉을 치며) “허허!” 이랬다 그 말이여.

세상에 법전에, 큰스님 앞에 요렇게 했다는 것을, 그 대중이 그때 오십 명 대중(大衆)이여.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중이. 봉익동이여. 고때가 봉익동 시방 2번지인데, 1번지인가 그려. 거그 계셨는디.

그러니깐 내가 또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를 했는데 그건 그만두고.

용성 : “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느니라. 전신을 못했구나”
전신(轉身)—‘구를 전(轉)’ 자, ‘몸 신(身)’ 자. “전신을 못했느니라” 몸뚱이를 전(轉)허지, 몸뚱이를 옮기지 못했느니라 그 말이여. 구르지 못했느니라.
영신 : “그러면 전신구(轉身句)를 물어 줍소사”

용성 : “응 그러제. 여하시제일구냐?” 거기에 내가 답허기를... 어? “전신구냐?” 전신구여! 전신구를 물어 내가 답허기를,
영신 :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그러고는 더니깐 그 끝에 그 큰스님 말씀은, 귀방장(歸方丈), 방장(方丈)으로 들어가셨거든. 그냥 돌아가셔. 뭐 인가(印可)야, ‘옳다’야, 가부여하(可否如何) 없고는 가셨다 그 말이여.
그러면 뭐 ‘옳다, 그르다’ 헌 것을, 내가 무슨 뭐 인가를 맞으러 갔다고 하지마는 내가 인가(印可)해 주기를 뭐, ‘옳다, 그르다’ 헌 걸 바래는 법인가? 법문만 딱 해 놓으면 거그서 인자 까달(까닭)이 나는 것이지!

그대로 나는 나왔지. 나와 버렸는데, 사흘 되든 날이여. 그 뒤 사흘 되든 날이여. 3일 되던 날에 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했어.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대중께다가.
그때 대중 입승(立繩)은 경봉 스님인디, 시방 양산 통도사 경봉이 아니여. 또 그때 노인 경봉이 있었어, 눈 하나 미영씨(무명씨) 백히고. 그때인디.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러니까, “아, 영신이가 그 뭘 어떻게 일렀다고 속았다고 하십니까?” 하동산 스님은 그랬다 그 말이여.

동산 스님은 “아, 영신이가 뭐 어째서 그래 속았다고 그런 말씀허십니까?”
그 어른 말이 “자네가 영신이 이른 도리를 알겠는가?” 이랬다 그 말이여.

나는 못 들었는디, 대중에 그랬다고. 그때 그 대중에는 누가 있었느냐 허면은 장설봉도 있었고, 저 죽은—다 죽었구만, 둘 다 다 인자. 윤세호라고 있었어.
갑장사 많이 지낸 윤세호가 있었는데, 윤세호가 그 소리를 듣고 만공 스님한테 내려와서 그 말을 했어.
“아, 제일귀 답에 영신이한테 속았다고 큰스님께서, 용성 스님께서 대중께 공포했답니다”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만공 큰스님이 그랬다 그 말이여.

나 떠나 버린 뒤에 인가헌 것이여! 그게 다, 속은 줄을 알고, 속은 것이 인가(印可)지 무엇이여!
어디, 꼭 옳다는 게 인가인가? 방맹이 맞고 방맹이 맞은 줄 아는 것이 인가고, 꼼짝 못헌 것이 인가여. 속은 줄 알았다, 이거여.

대중께 공포를 안 했으면은 그 안 되아. 공포를 했기 때문에 벌써 척 당신이 속은 줄 알어.
학자한테는 속지 않나? 허, 이거.
거그서 내가 그 문답을 턱 마쳤어.

그러면 저 윤세호가 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그런 말을 전허니깐, 만공 스님은 거그서 듣고 “당신이 속은 줄을 아셨으니 용성 스님일세”
그 내가 거가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고 뒤에 그러고 갔는디 거그 확 그 말이 팍! 퍼져 버렸제. 뭐 다 퍼진 것이제 어디.

시방 내가 이렇게 ‘견성했다’ 하고 돌아댕기면서지만, 선지식을 이렇게 친견해 나가는데 용성 스님까장밖에 시방 안 했다 그 말이여. 그러고는 지금 인자 만공 스님은 아직 안 봤거든. 안 봤는디 고놈이 먼첨 벌써 다 들어가서 환히 알고 계신다 그 말이여.

여그서는 어디로 가냐 허면은 인자 금강산으로 가는 편이여. 금강산 한암 스님한테로 가는 편이여.(1시간6분2초~1시간19분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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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글안해도 ; ‘그렇지 않아도. 그렇지 아니해도’의 사투리.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공찬(公讚 공평할·드러낼 공/기리다·칭찬함 찬) ; 드러내어 칭찬함.
*불싸스럽다(불쌀시롭다) ; ‘불손하다(不遜-- : 말이나 행동 따위가 버릇없거나 겸손하지 못하다)’의 사투리.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가부여하(可否如何) ; 옳고 그름[可否]이 어떠한가(어떻다)[如何].
*까달 ; ‘까닭(어떤 일이나 현상의 원인 또는 조건)’의 사투리.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미영씨 ; ‘무명씨(목화木花의 씨)’의 사투리. ‘명씨’라고도 한다.
*눈 하나, 미영씨 박히다 ; 미영씨는 목화의 씨를 말하는데, ‘미영씨 박히다’는 말은 눈병 때문에 눈동자에 하얀 점이 생겨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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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ㅈ/제산스님 행장2021. 11. 22. 07:04

제산 스님 행장(전강선사 No.011)—제산 스님 역사(歷史) | (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 경허 스님에 대한 제산 스님의 신심. 발심 | 해인사 이회광 스님의 진산식 설법상에서 석두 스님의 법거량 | 제산 스님과 해인사 선방 대중이 해인사 주지에게 쫓겨나 김천 직지사로 감.


*제산정원(霽山淨圓 1862~1930) ; 1862년(조선 철종 13년) 3월 13일에 경남 합천 가야면 구원리에서 태어나셨다. 속성은 김씨, 법명은 정원. 호는 제산(霽山).

1873년, 14세 때 해인사에 들어가 신해화상을 의지하여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1899년 경허 스님이 해인사 조실로 추대되었고, 경허 스님이 해인사 조실로 계실 당시 원주 소임을 보면서 참선 정진하셨다. 해인사에 있을 당시 경허 스님으로부터 "자네는 어디 가든지 50~60명의 수좌는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셨다. 그 뒤로 스님은 사명대사 법맥을 계승한 우송(友松) 스님의 법을 이으셨다.

스님은 1913년 봄, 41세 때 해인사로부터 황악산 직지사로 옮겨와서 17년 동안 직지사 벽안당에 앉아 평생을 장좌불와하고 동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천불선원 조실로서 후학들을 제접하는 등 수행에 매진하셨다. 그래서 당시 교계에서는 제산 스님을 '수행제일'로 평했다.

스님은 1930년 8월 24일(음) 입적하니, 세수 69세, 법랍이 56년이셨다.
입적에 들기 전 문인 등이 물었다. "생(生)이란 무엇입니까?"
"본래 불생(不生)이거늘 어찌 죽음이 있겠는가. 바람과 북이 서로 침에 불이 바다를 태우니 천고만고에 다만 이러할 뿐이로다" 스님은 이 말을 남기시고 단정히 앉은 채로 고요히 입적하셨다. 직지사에 '제산정원선사비'가 세워져 있다. 비명(碑銘)은 한암중원이 찬(撰)했다.

[참고] 『한암일발록(漢岩一鉢錄)』 (한암문도회) 「제산정원선사 비명병서(霽山淨圓禪師 碑銘幷序)」 p334~336. 직지사 홈페이지 (사찰안내<선원<중요 인물)에서 참고 요약 정리.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1/3) 14분 59초.

 

(2/3) 14분 32초.

 

(3/3) 15분 52초.

 


(1/3)----------------

내 과거 공부헐 때, 여그저그 댕기면서 선지식(善知識) 친견허는 그때 그 행각(行脚)헐 때 그 실기(實記)를 좀 말해 달락 해서 시방 설허는 도중에, 혜월 스님을 모시고 와서 김천 직지사에다가 조실 스님을 모시고 크게 선방을 한번 해 볼라고 하다가, 모시고 와 놓으니 또 직지사에는 제산(霽山) 큰스님이 계시고.
그 제산 큰스님이 계셨지마는, 제산 큰스님은 그 계행(戒行)이 참 청정허시고—한국에 계행으로 제일 청정헌 어른이 누구냐? 김제산 스님이여.

여기에 인자 제산 스님 역사(歷史) 잠깐 좀 말씀을 해야 허겄구만.

제산 스님도 발심(發心)허시기 전에는 사판(事判)중으로서, 그때 사판중이 있거든. 사판중으로써서 술도 자시고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그저 마음대로 자시고. 사판중 노릇은 그때 누룩이나 디뎌서 팔고, 그것이 사판중들이여. 참선법은 영 모르고. 없었으니까 그때도. 그래 계시다가 사판중 노릇허는 법밖에는 모르제.
합천 해인사 현당(玄堂)에서 사판중 노릇을 허고 있는데 그때에 나이, 제산 스님 나이 한 30살 잡솼는데, 뜻밖에 ‘경허(鏡虛) 스님이 오셨다’ 소문을 들었거든. ‘경허 스님은 아주 참, 한국 도인(道人)으로는 다시 없다’ 소문이 났는데.

‘그러면 경허 큰스님을 좀 가 뵈야 허겄다’고, 현당에 사판중으로 그래 있다가는 그 마음 난 것도 이상하지. 그런 도인 한번 뵈야겄다고 척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머리는 숭났어 그 어른 머리가. 내 방에 그 경허 스님 사진 있제. 머리도 숭나고, 얼굴은 여가 덥텁헌 양반이 조실에 척 와 앉았어.
처억 보니까 눈이 다른 이보담도 더 쭉 째지고 아주 그런 어른이 앉었는디, 탁자(卓子)의 부처님보담도 훨씬 더 숭배심이 나.

탁자의 부처님은 의호(宜乎)이 아침 저녁에 예불(禮佛)하고, 이렇게 그저 중이 왔으면은 그저 등상(等像)께 예불한갑다 뿐인디. 아, 이 경허 스님은 척 보니 산 부처님이시다. 어떻게 숭배심이 나는지, 굉장혀 그 마음이 믿어지기를. 이렇게 마음이 믿어져야사 도는 닦는 것이지. 믿음이 없으면 된 법이 없어.
그만 그 경허 스님을 보고는 얼마나 믿어졌던지—뭐, 경허 스님도 똥싸고 오좀 싸고 밥 먹고, 오히려 저 나쁜 행은 보통 사람보담 더 많이 가져 계시네. 그런디 그것이 도모지 눈앞에 하나 안 보이고, 어떻게 믿어지는지 한량없이 믿어져.

앞에 가서 참, 망구(忘軀) 배(拜)를 허고. 여지없이 가서 절을 허고.
내가 중 되기 전에는 물론 아무것도 몰랐지마는, 중이 되아 가지고도 사판중이 되아 가지고 삼십이 넘도록까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모르고, 내가 나 찾는 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망칙허게 망허게 살아 나왔단 말이냐. 날마당 술이나 퍼먹고, 날마당 그저 누룩 장사나 중이 허고, 이따구 짓만 허고 지내고 있단 말이냐.
‘탁! 믿어 가지고 경허 큰스님께 도 배워 가지고 도를 닦아야겄다’ 결심을 딱! 하고 나가서 여지없는 위법(爲法), 법을 위해서 내 몸뚱이를 갖다 바쳤다 그 말이여.

절을 척 허니깐, “하구래(何求來)냐. 네가 무엇을 구해서 왔느냐?” 물으신다 그 말이여.
“큰스님께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무슨 법을 배우러 왔단 말이냐?”
“참선, 참선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허니께.

“허, 그래야. 좋은 말이다. 참선법을 배울라면은, 참선법 배울 학자가 첫번에 인자 법을 배울라면은 이물표신(以物標信)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건으로써 신(信)을 표해야 하는디. 내 좋아허는 걸 네가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다른 걸 좋아허는 것 아니다. 첫째,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헌다. 평생에 술을 내가 좋아해서 술을 끊지 못허고, 또 술 먹을 때는 주효(酒肴)라니, 술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안주허고 술허고 네가 사 오너라. 내가 술을 한잔 먹고 네가 사 온 안주를 내가 먹고, 술 한잔 먹고 나서 너한테 참선 화두를 일러주마.
화두 타는 법이 그렇게 쉬워서는 못쓰느니라. 네가 값이 있이 타야 허는 법이니, 네가 네 신심(信心)으로써 술허고 그 닭 한 마리, 내가 닭고기를 좋아허니 닭 한 마리 삶어서 가지고 오너라”

아, 그 퇴설당(堆雪堂) 그 조실에 앉어 계셔서 바로 거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그 퇴설당인데, 그 퇴설당에 조실에 앉어 계셔서 그런다.
내가 지금 녹음해 넣는 법문인데, 녹음해 넣는 법문을 위조로 혀? 그거 아녀. 똑 사실이여. 제산 스님 실기(實記)여.

한 말씀 듣고는 그대로 나왔어.
‘도인이라고 허는 이가, 경허 스님 도인이라고 나는 도인인 줄만 알았더니 조실(祖室)에 앉어서 술 사오고, 살생—닭은 살생을 해야 하니, 닭 모가지 삐틀쳐 죽여서 내가 그놈을 삶아가지고 가지고 와?’ 그러헌 마음이 나기가 처꺽 쉬울 것인디, 없어! 그런 마음이 어디가 있어.

응, 조꼼도 그런 마음이 없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그만 그대로 바로 내려가서, 각사 십 리(十里)나 내려가서—당신이 뭐 어떻게 손수 닭이야 잡을 수가 있나?
그러고 그때 또 사판중으로 계시니까, 그런 것 뭐 닭 모가지 짤르고 이런 거 뭐 죄이니 뭣이니도 없지마는 내려가서, 각사라는 데 내려가서 그 어디 아는 집에, 다 절에 그 십 리 동구(洞口)에 있으니깐 아는 집이 있제. 내려가서.

“나 닭 한 마리 잡아서 수증기로 잘 삶아서 줄 수 없겠느냐?”
“왜 못 해 드려요. 해 드리지요” 의호이 해 주지. 뭐, 안 해주어? 돈 받고 하는디.

그놈을 삶고, 홍류동 찹쌀막걸리 그 밥튀가 동동 뜬 놈 잘해서 그 청주로 떠놓은 홍류동 찹쌀막걸리, 옌장 술 잘 먹는 이는 비우 동(動)허겄네, 술 먹고 싶어서. 나도 동허는구만, 그 말을 헌께.

허! 아, 나도 글쎄 대구서 그 칠곡 넘어가는 그 잿말랑에 올라가다가 목은 컬컬헌데 아, 나이 또 그때 나도 스물 몇 살 먹었을 때니 술도 잘 먹을 때고 헌디. 아, 그 노인이 찹쌀술을 해놨다고 “한잔 잡수고 가시오” 그려. “아, 그래요!” 그것 잘 먹겄당, 오목식기로 하나 뚝 떠 주데.
아, 이놈의 술을 먹어 보니 입이 짝짝 들어붙으면서 참, 맛이라는 건 그 위에 더헐 수 없네. 찹쌀막걸리 그놈 잘되아 놓으면 맛 좋거든, 옛날 누룩으로. 지금은 그런 것 없구만. 암만 정종 그 같은 것 암만 좋아도 소용없구만.
한 독식기를 먹었네. 처 철렁, 기분이 좋고 하나도 취기는 없고. 또 한 접시를 한 오목식기를 먹었네. 둘 먹었제. 아, 그런게 또 인자 참 더 먹고 싶네. 셋을 먹었네, 큰 놈! 그 자리에 앉어서 다섯을 먹었어, 오목식기로.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섯을 척 먹고서는 그 재를 넘어서 도더기재를 올라가는데, 그 재 밑에 까장은 알았어. 온 줄 알았어. 재 밑에 와서는 어떻게 된지를 몰라. 그 뒤에라도. 아, 그랬는데 그도 어떻게 찾아갔든지 넘의 묏등을 찾아갔어. 묏등! 나는 평생에 안 잊히는구만. 묏등에 올라...

참, 별놈의 역사를 내가 내 입으로 다 말허네. 이래야사 그게 내가 지은 죄가 화반탁출(和盤托出)이 되제. 이런 청정 대중에 못 떨어 내놓고 어따 떨어 내놓을 것인가.
감추면 그 죄가 되고, 탁! 떨어 내버리면은 오히려 죄가, 좀 지은 죄를 받기야 받지마는 발로참회(發露懺悔)가 되아. 내가 그래서 이렇게 그 문둥이 지랄 같은 짓헌 걸 내가 다 까바쳐 놓는구만. 대중에 다 내가 다 까바쳐.

남의 묏등에 들어가서는, 묏등 밑에 가서 잤단 말이여. 그냥 꺼꾸러져 몰라 버렸어. 자다가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나고 그 산은 어떻게 험악헌 그 대구 칠곡, 그 산 모도 산천 험악헌 디는 그 도덕산 그 다 알지. 정공, 다 환히 알지, 몰라?
그 산은 뒷산은 칙칙헌디, 호랭이란 놈이 거그 살다가 밤낮 마을에 내려와서 개를 가져가고 헌 그런 놈의 디여. 아, 그런 놈의 디인디 거가서 자도 호랭이란 놈은 안 왔더구만. 거 실컷 자고 나서 총총헌디 아, 밤이 얼마나 되았는지 시계도 나 그때 없었고.

아, 헐 수 할 수 없어, 추워서 살 수가.... 술이 인자 깨든 거여. 그래 그 마을을 찾아 들어가니까 깜깜 모도 불 다 꺼번지고, 전기도 없는 딘데 아, 문에 가서 뭐 누구를 찾으니 누가 나오나?
그 밤이 그렇게 한 두 시나 세 시나 되았는가 어쨌는가. 그래 그만 ‘동네 사람, 사람 좀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아, 누가 듣고 ‘웬 사람이냐?’고 나와서,
‘아 여보시오. 내가 술을 먹고 그만 어디 가다 취해서 자고 아, 인자사 내가 일어나니 추워 죽겠어서 인가를 찾아온디 날 좀 구해 주시오. 추워 죽겄오’
‘아! 그러냐’고, 문을 열고 뜨거운 방으로 나를 안내해서 들어가서 자고 아침 거그서 얻어먹고 그 참 나온 일이 있었어.

그놈의 찹쌀술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홍류동 술맛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여까지 했구만. 고놈은 또 인자 거그서 그만두고.(15분24초~30분21초)





(2/3)----------------

아, 그래 제산 큰스님도 홍류동을 떡 올라오셔서 그 찹쌀막걸리를 잘 그냥 뜬 놈을 사르르 받쳐 가지고는 병에다 넣어 가지고 수증기로 삶은 닭 한 마리하고... 그 알겠제, 들어서 알겠제 잉. 아까 있는 디를 알아야제.
그래 가지고 올라와서 정성껏 바쳤다. 누구한테 바쳐? 경허 큰스님한테 바쳤다 그 말이여. 퇴설당 옆에 있는 조실방에 갖다 바치고는 참으로 절을 기가 맥히게 헌 뒤에 “잡솨 주십소사” 허고는, "그러제"

척 큰 대접에 하나 쭈욱 잡숫더니, 닭 그놈 그 자리에서 떠억 그 뼉다구 추켜들고 쭉쭉 “거, 잘 삶았구나. 맛이 있다” 그러시고는.
아, 그저 젊을 때시고 뭐 뼉다구 그놈 막 들고는 그저 막 그저 깨문 놈도 있고 뼉다구 뱉은 놈도 있고. 척 추려서 척 잡수고는 손수건 입 썩 닦으시고. 그까짓 닭 한 마리 그냥 얼른 잡솨 버린다 말이여.

이런 법문 듣고는 안 자올으셔야 헐턴디, 자꾸 눈을 그저 알로 감는다. 겉으로는 참선헌 체허지만 속으로는 잠자고 계신다.
내가 다 안디. 눈을 깜아도 설법 듣는 거, 설법 안 듣고 자는 거, 내 다 안단 말씀이여. 그 뭔 참말로 내가 아니께 안닥 하제 뭐.

졸지 말어야 돼요. 법문같이 소중헌 게 없거늘, 참선허는 학자가 법문 들을 때 자는 법이 어디 있다? 그건 없어.
내가 여태까지 법문 들을 때 자꾸 슬며시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도 암말도 안 했지마는, 인자는 뭐 금년 동(冬) 산림이, 삼동 산림이 얼마 안 남았는디 가만두어 되야? 못 자게 해야 하고, 좀 그렇게 조으는 것을 내가 좀 꼬쟁이로 푹푹 쑤셔 줘야지, 그냥 둘 수가 없어.

자지 마시오. 누구를 위해서 허는 법문인디 자냐 그 말이여. 그만큼 잤으면 무던허지.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나무~아미타불~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너룬 겁으로 오면서 여태까장 도(道)를 못 닦게 허고 여태까장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못헌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잠, 그놈이 제일 큰 놈이다.
여러 가지 나를 방해허고, 나를 도(道) 못 닦게 헌 것이 많이 있다마는 잠보담 더 큰 놈이 없구나. 잠 마구니란 놈 따문에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허고, 도를 닦지 못허고 여태까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못된 잠 그놈! 화두를 한번 추켜들면은—화두는 참,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인디, 금강같은 좋은 쇠로써 보검(寶劍)을 맨든 고런 칼같은 것인디 어디가 그놈 잠이, 그놈이 어디가 제가 도를 못 닦게 마구니 행동을 헐 것인가? 허니 그 잠을 좀...

법문 들을 때도 또 자?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인디.
이런 말이 대꼬쟁이로 모두 쑤신 것이여. 잠 그놈 못 자게, 못 자올게 쑤셔 드린 거 아니여?


그래 술허고 닭고기허고 잡순 후에 그래 설법을 해 주셔. 그 참, 그 조실에서 그렇게 막 아무 거침없이 잡순다. 잡수고는 그 자리에서 ‘오냐!’
그 벌써 거까장 가 술 사 오고 닭까장 가서 맨들어 올 때에는 그 사람의 신심이 여간 아니여. 그 신심이. 발써 그 신심을 봤거든. 그만헌 신심 가운데에서 일러주는 것이여. 그래야사 도 배우는...

똑 그래 내가 뭔 술 사 오고 뭐 닭 삶아 오라고 요런 소리헌 것 같여? 내가 그렇게 삶아 오고 술 받아 오라는 게 아니라, 그랬다 그 말씀인데, 또 갖다가 나를 갖다 손그락질 허면서 ‘술 사 오고 닭 잡아 오라고 저러는구만’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렇게 거다가 찢어서 해필 왈 갖다 내 허물을 둘러씌우지 말란 말씀이여.

잡숫고는 화두 설법을 해 주시는데, 화두를 타 가지고 나오는디, 아무 흔적 없는 것이요 말 한마디언만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 일러주셨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으니, ‘뜰 앞에 잣냉기, 어째서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는고?’ 이놈을 해라” 해서, 그 화두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떻게 걸음을 걸어서 나온지를 몰라. 어떻게 기가 맥히고 좋던지! ‘이런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를 탔다’

화두 타 가지고 그날부텀 정전백수자 화두를 허는데, 뒷방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림살이허는 중인데, 살림살이고 무엇이고 하나 허다가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인자 그때부텀은 ‘이 몸은 죽는구나. 내 이 몸은 사형선고를 받은 아주 기한 딱 정해 놓은 몸뚱이다. 죽을 사형 무대밖에는 없는 이 몸뚱이! 이놈 사형선고는 받았다마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시간이나 좀 알았으면 쓰겄는디, 이놈의 사형선고 기간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서른 한 살 먹어 갈라는가 원, 사형을 집행해 갈라는가, 스물 둘에 갈라는가, 이건 원 당최 알 수가 있나. 허니 참, 시각이 급허고, 참말로 내가 이 참선을 해서 생사 없는 대도를 깨달라 얻지 못허고 내가 이 목숨을 내버리고 가다니. 이 목숨 있을 적에 해야겄구나!’

그만 그대로 발심(發心)이 척 되는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뭣이 보이여?

그렇게 그 참, 사판중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돈도 많이 벌라고 남 모도 이자도 놓기도 허고, 사판중은 그렇거든. 누룩 디뎌서 모도 팔아 가지고는 사방 모도 논 살라고 계획해 놓았던 그런 것 저런 것 받을 것이 꽉 찼고. 허지마는 하나도—또 그 모도 집안이 부자 집안에 중이 되았으니까—하나도 정리고 무엇이고, 뭐 요리조리 모도 써 놓았던 계약서 받을 거 이거 불 탁! 질러 쏵 질러버리고는.

상좌 하나 들여서, 들인 것도 뭣도 없지마는 어른이 그렇게 참 노래(老來)에 또 시봉허다 나오니까 어디로 이리저리 의탁해 번지고 그러고는 선방에 척 나왔습니다.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 하나 타 가지고 다만 화두만 묶어 짊어지고는 나왔지. 아무것도 없고.
그대로 선방에 앉어서 지독허게 공부를 허셨습니다. 제산 큰스님께서 공부 한번 험서 그날부텀 그렇게 술도 자시고 헌 것 쏵 끊어 번지고는, 계행이 청정허기를 그렇게 청정헌 어른이 없고, 수행이 당최 참선해서 한번도 밥 먹을 사이도 없이 화두를 다루어 나간 어른은 그 어른밖에 없어. 기차제.

그러지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그 인가(印可)를 얻은 데가 없어.
인가를 누구한테 얻었어야제. 인자 제산 스님은 그저 그렇게 도만 잘 닦아 오셨제, 인가 얻은 데는 없었으니까 학자(學者)는 제접(提接)을 못 혀.
아, 보통 참선허는 학자야 왜 제접 못 헐까마는, 계행이 청정허고 하도 거룩허시니까 인자 보통 학자들은 가 많이 지내야. 뭐 보통 지내는 게 아니지마는, 대도를 통헌 분은 제접을 못 혀.

누가 “하암” 그랬어? 내 그런 ‘하암’은 참, 법상(法床)에서 듣기 싫다.
헤헤, 거 세상에 “하암” 그려? 그 어디서 나와?

내 법문도 “하암” 허면서 한번 허까?
그런 시원찮은 행동은 그만 좀 톡톡히 해버리지, 왜 그렇게 시지부지헐까?

그래도 그런 ‘하암’ 한번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여러분이 그 ‘하암’ 한번 헌 바람에 내가 이렇게 허니까 그 ‘하암’헌 이는 부끄러울 것이지마는 한번 해 논 바람에 내가 그놈을 가지고 그냥 그만 한번 광고를 헌 바람에 여러 모인 대중들이 듣고는 정신채리거든. 옆에서 ‘하암’을 헐 이도 안 허거든. ‘하암’헐 이도 안 혀. 그러니 그 이익을 많이 준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부끄럽게 생각허시지 마시오.

법상에서 조실 스님이 법문허다가 그런 걸 한번 알려 주는 바람에 그게 정절(程節)에 들어가는 것이여. 반다시 인자 이담에는 그러지 안 헐 것이고. 그러니 그런 좋은, 그 좋은 설법이제.


그래 가지고는 제산 큰스님이 그렇게 깨끗허게 청정허게 오래오래 화두를 조금도 밥 먹을 사이도 틈이 없이 공부를 잘허셨기 따문에 ‘제산스님’ 헌 이름이 나서 학자는 많이 그 어른 밑에 지낸다 그 말이여. 그때는 더더군다나 그리 선지식(善知識)이 귀혔고.

그래 가지고는 합천 해인사에서 하도 오래 지내—경허 큰스님은 인자 거그서 좀 계시다가, 조실에 계시다가 딴 디로 가셨고—합천 해인사에 들어오셔서 오래오래 계시니깐 그대로 제산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셔. 뭐 학자들 뭐 그렇게 눈을 띄워 주든 못허는 그러헌 스님이시지마는 그래도 원청 수행이 참 존중허시니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데.(30분21초~44분53초)





(3/3)----------------

그때 마침 학자가 한 30여 명 있는데, 그때 주지(住持)는 누구든고 하니 이회광(李晦光) 스님이여. 이회광 스님이라고 굉장헌 이가 있었소. 시방 그저 ‘이회광 스님’이면 그이 얼굴을 본 이가 있는가 없는가는 몰라 그러허되, 이회광 스님이 주지인디.
이회광 스님이 첫 주지로 인자 되아 가지고, 합천 해인사 큰 법당에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주지된 후에 진산식(晉山式)에 대중이 인자 그 삼백 명 대중이 주지 스님으로 모셔 가지고는 그 법상에 올라오셔서 설법을 척 헌다.

아주 그때는 처음 와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설법상(說法床)에 올라가서 설법을 척 허는데, 그때 제산 큰스님 회상에 수좌(首座) 하나가 누가 있는고 하니 보택(寶澤)이, 택수좌가 있어.
보택이, 택수좌라는 스님은 누군고 허니 석두(石頭) 스님이여, 임석두 스님인디. 임석두 스님은 누군고 허니 돌아가신 종정스님, 효봉(曉峰) 스님의 은사스님이여.

그 스님 이름이 보택이, 택수좌인디. 보택이 택수좌로 그때 그 제산 스님 회상에 참선을 허고 있다가, 이회광 스님 주지가 되아 가지고 진산식 설법허는디 그 법회에 참례해서 법을 듣는데, 그 회광 스님도 수좌로 공부를 허고 댕기다가 해인사에 들어와서 주지가 되았거든. 인자 진산식 설법에 회광 스님이 법문을 허시는데, 그 법문을 들어보란 말이여.
인유(因由)를 다 말해야 되는 것이여.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것이여. 부처님 법문에도 인유분(因由分)이 있거든, 인유분. 그 주욱 얘기를 해 가지고는 인자 딱 헌다, 이런 인유가 있어. 무조건 툭 허고만 나오면 되아?

그래 해인사 큰 법당에 이회광 스님 인자 진산식 설법허러 올라가서 진산식으로 법상에 올라가 설법헐 땐디. 얼마나 그 법보종찰(法寶宗刹)에 참, 주지가 되아 가지고는 산중이 다 모였는데 삼백 명 대중이 모았어.
그리고 또 서울서 그 소문이 난 이회광 스님이기 따문에, 서울 상궁(尙宮)들이 다 믿은 스님이기 따문에 천상궁 이하에 그 상궁들이 수백 명이 내려왔어. 상궁이 꽉 차고 산중 스님네가 한 삼백 명이 차고 뜰까장 꽉 찼는데.
그 큰 법당에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을 허는데—지금 설법을 지금 헐 판이지, 올라갔지. 턱 앉었는데, 회광 스님 참 인물이 잘났거든. 그 이상 더 잘날 수 없지. 틀이 잘 생겨 가지고 올라가 법문허는디, 주장자를 추켜들고. 이게 법문이여!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과 금일대중(今日大衆)이 산승(山僧)의 입으로 나왔느니라” 그랬네.

아, 그래 놓으니깐 불가불 물을 수밖에 없지. 효봉 스님 은사스님 보택이 택수좌, 그 스님이 척! 나와서 앞에 와서 척 공경허게 절을 한 자리 딱—그 묻는 법이 그려. 다 그래야지.
절을 딱 허고는 합장하고 척 서서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금일대중은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회광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화상(和尙)은 종하처출(從何處出)고? 화상은 어느 곳으로써 나왔습니까?” 물었네.

그 대답헐 자신(自信) 있는가? 자신 있는가?
바로 보여야 하지, 못허는 것이여! 거, 어름해 가지고는 못 헌다니까 그래. 요리조리 생각허다가는 허들 못 하고 더군다나 말헐 것 없지마는, 바닥이 툭 드러나지 않고는 못 혀.

고놈 한마디 해 놓으면은 그 밖에 더 무서운 답이 나오네. 문답이 그 밖에가 더 있어.
그 하나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제. 어디 여그 우리, 또 우리 저 모도 먼 디서 모도 온 보살님네도 한마디 대답해 보고.

많이 선방에 댕김서 공부허신 어른들이 여기 시방 모도 계신디, 원 체면만 채려도 못써. 툭! 견성해 가지고는 또 애끼기만 허는구만. 애껴 놓으면 뭣 혀. 푹 나와야지.
한마디씩 모도 허면은 나도 한마디 헐 터이지마는, 정말 법문을 들을라면은 한마디씩 해 볼 것이지마는, 밑천이 짤러 가지고는 못 햐. 고놈 한마디 겨우 답해 놓고 나면 어쩌라고. 큰일나제.

다 제 방맹이에 죽느니라. 제 방맹이에 저 죽고 마는 것이여.

그러니까 그만 그 보택이 택수좌님이 아, 거그서 그만 들나지 않게 은근하게 한마디 잘 이르고 나오면은 그 좋을 것이다 그 말이여.
세상에 그... 헌디 아, 옷을 벗어서 장삼(長衫)을 척 벗어서 어깨에다가 척 걸쳐 메고는 “분허다!” 쳐다보고, 법상에 앉었는디 “분허구만! 속한(俗漢)이 놈한테 내가 절헌 것이 분혀!” 아, 이러고는 그냥 장삼을 메고는 불수변거(拂袖便去)를 해버렸네.

그러니 그 위신(威信)이 그 무엇이여. 그렇게 큰 대중이 다 모이고 서울서 상궁 대중이 다 모이고, 비구니 대중이 다 모이고 그런디 그렇게 헐 수가 있어?
허, 이거 참, 어쩔 것이여 그거, 회광 스님으로서 어쩔 것이여. 참 기가 차제!
법문을 헐래야 헐 수가 있소? ‘속한이 놈한테 절했다고 분허다’고 나가 놓으니. 아, 그랬다더니.

아, 이번에 내가 또 들었구만. 나 인자 이번에 들었구만.
수련대회 학생이 송광사로 갔드랴. 간디, 그 대회에 따라온 이가 누군고 하니, 요새 그 왜 처사님이 견성했다고 헌 이가 있는데. 백봉처사라고 허나? 그 처사가 요새 그랬다는데.

여그 이 자혜 수좌가 잘 알고 와서 얘기해서 들었구만. 아, 거그에 창영 수좌가 있다 하나? 창영 수좌인가 누가 있었는디, 가서 그만 법문을 가만히 듣다가는 무슨 법문에 그 졸가리가 나왔드만, 나 그건 모르겄구만. 나 인자 들어.

탁! 채고 물으니께 그만 어름어름 말대답을 못 하니까, “요까짓 것들이 다 어느 곳에서 와서 견성했다고 입을 벌려? 당장 여가 어디인디, 16국사 도량인디 여그 와서”
아, 그래 가지고 거그서 헐 수 없어 그만, 그 냅대 그만 법방(法棒)을 냅대 내리는 바람에 도망갔대아. 그냥 도망가지. 도망가 버렸대 그냥. 마누라까장 데리고 왔다가.
아, 그랬다고, 여그 조그만헌 자혜 수좌가 그 소리를 해서 내가 그저껜가 들었구만.
그 그런 것이란께. 아, 그 어떤 처사인지 모르지마는 그 참, 그 우세 그 큰 우세여. 함부로 입 벌릴 수 없는 것이여.


아, 그렇게 점잖은 이가 그래도 거그서 그만 바싹 절단나 버려. 살림살이 푹 베져 버리고.
못 하네, 그거. 자, 그만 그래 그만 법문헐 수가 있는가? 법문을 해야 헐턴디 법문을 못 혀, 그 정도면.

그만 그길로 법문 못 허고 내려와서는 가만히 그만 주지실에 와 있다가, ‘이놈의 주지를 내가 공연히 왔구나, 이러헌 산중에 이러헌 놈의 우세가 어디 있노’ 우세 안 헐 수밖에 없제.
위신이 암만 점잖하고 암만 학식이 넉넉헌들 이 법은, 이 일착자(一着子) 도리는 헐 수 없어.

대체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정여무정과 금일 대중까장이라도 내 입에 나왔느니라’ 자기가 해 놓았으니, 자기는 어디서 나온 걸 바로 일러야 할 것 아닌가? 저 나온 걸 일러야 헐 것 아니여?
이런 도무지 아, 그놈을 못 일러 놓았으니, 대갈빡이만 있고 몸뚱이 없는 것이제, 뭣이여?

법문 못 혀. 내려와서는 그날 밤 잠 한숨 못 자고는 주지실에 띄우고는 그 이튿날부텀은 달리 어떻게 헐 수 없으니까, ‘합천 해인사 그 퇴설당을 못 파라, 못을 파라’ 그 이유는? 왜 못을 파라느냐?
‘못 파라’는 것은 장경각(藏經閣)에 불을 꺼야 허겄으니깐 못을 파라 이거여.

인자 쫓아내는 것이지. ‘수좌, 쏵 가거라’ 주지니까, 주지 직권이니깐, 헐 수 있어? ‘못을 팔 터이니 나가거라’
헐 수 없어서 그때 쫓겨나는데, 보택이 택수좌님 따문에 온 대중이 다 쫓겨나는데, 헤 기차제! 그때만 해도 주지 권리가 참 무섭다.

불통령 재를 넘어서... 목통령(木通嶺) 재가 불통령(不通嶺)일세. 이 정공은 잘 알거네.
목통령이 거 불통령이여. 왜 불(목)통령인고 허니 ‘아니 불(不)’ 자 대각빡이 올라간께 목(木) 자가 되었어. 갖다가 불통령을 목(木)자로 목통령(木通嶺)으로 된 거여. 그래 목통령인디.

목통령 재를 넘어서 김천 직지사를 오셨네, 제산 스님이. 그래 가지고 그 김천 직지사에 가서 그 어른이 와 계시면서 또 선객(禪客)이 한 사오십 명 모아서 살기 따문에 직지사가 그 참, 한국에 제일가는 선방이 되았었구만.
여까지, 내가 이 말허니라고 여까지 헌 것이여. 그 인유를 얘기허니라고 여까장 헌 것이다 그 말이여.

그전에는 볼 것 없는 군막사찰(軍幕寺刹)인디. 또 옛날에는 선산 도리사가 초창, 옛날에는 금릉군인디 금릉 직지사가 이창, 상당한 절인디 이창인데, 천불(千佛)을 모도 모시고 다 그랬거든.
그 큰 대찰인데 중간에 가서는 숭악한 폐사(廢寺) 되아 가지고는 모도 그저 그만 장사하는 그런 (조금 더 키우제 불을) 그러헌 직지사입니다.

그런 직지사인디, 그러헌 직지사에다가 제산 큰스님도 참 계덕(戒德)이 훌륭허고 청정허시고 그런 어른이지마는, 좀 일구(一句)를 막 다루아서 견성 도인을 막 투드러 나게 맨드는 혜월 큰스님을 좀 모셔다가 놓고 한국에 제일가는 사자 도인 그냥 이런 그만 그 대선원을 만들아 볼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 어른을 모시고 참 올라와서 선방을 헐라 한디, 통도사에서 그만 기어니 뭐 모셔 가는디 어떻게 혀.

안산 내원까장 막 들여놓고 왼통 그만 그때 신도가 돈을 만 원을, 그때 돈 만 원이면 큰 돈이여. 만 원을 모도 거두어서 아, 그 큰스님 모도 수좌 양식(糧食) 허라고 그만 갖다가 돈방석을 만들아 깔아 드리는디 어떻게 뭐 내가 거그서 어떻게 헐 도리가 있어야제.(44분54초~60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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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실기(實記 열매·내용·행적 실/기록할 기) ;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記錄).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사판중(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사판승(事判僧).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
*어육주초(魚肉酒草) ; 어육(魚肉)은 생선과 짐승의 살코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주초(酒草)는 술과 담배.
*누룩 ;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밀이나 찐 콩 따위를 굵게 갈아 반죽하여 덩이를 만들어 적당한 온도에 띄워서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다.
*디디다 ; ①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②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이나 메주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③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이겨 내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의호(宜乎 마땅할 의/오조사 호) ; 마땅하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등상(等像) ;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오좀 ; ‘오줌’의 옛말.
*여지(餘地)없다 ; (무엇이)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주효(酒肴 술 주/안주 효) ; 술과 안주(按酒)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각사 ; 해인사 입구에 있는 마을 이름.
*동구(洞口) ; ①마을로 들어서는 어귀(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②절로 들어서는 산(山)의 어귀.
*찹쌀막걸리 ; 찹쌀로 빚어서 담근 막걸리.
*옌장 ;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욕으로 하는 말.
*비우 ; ‘비위(脾胃)’의 사투리.
*비위(脾胃) ; ①어떤 음식을 먹고 싶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마음. ②음식을 잘 삭여 내는 능력. ③이니꼽고 탐탁지 않은 일이나 싫은 것을 견디어 내는 성미. ④지라와 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잿말랑(잿말랭이) ; ‘잿마루(재의 맨 꼭대기)’의 사투리.

* ;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 영(嶺).
*찹쌀술 ; 찹쌀로 빚어서 담근 술.
*오목식기(--食器) ; ‘오목주발(--周鉢 : 놋쇠로 둘러[周] 만든 속이 오목한 밥그릇[鉢])’의 비표준어.
*묏등 ; 무덤의 윗부분.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발로참회(發露懺悔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뉘우칠 참/뉘우칠 회) ; 죄나 허물을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 발로백불(發露白佛), 발로참제(發露懺除)라고도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사리자존자 說 | 현장 역) ‘삼법품(三法品) 제4의 2’
應發露勿覆藏 發露則安穩 不發露罪益深 是名覺察擧罪

마땅히 죄를 드러내고, 덮어서 숨기지 마라. 드러내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만약 은폐하면 죄가 더욱 깊어진다. 이것을 자신의 죄를 살펴 대중 앞에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
*까바치다 ; (어떤 사람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속속들이 들추어내어 일러바치다.
*총총 ; 총총히(촘촘하고 많은 별빛이 또렷또렷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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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曠劫障道 睡魔莫大’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참고. ‘오랜 겁에 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톡톡히 ; ①구실이나 역할 따위에 충실히. ②비판이나 대가의 정도가 심하게.
*시지부지 ; ‘흐지부지(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어가거나 넘기는 모양)’의 사투리.
*정절(程節) : ①길목. 길가는 데 종요로운 어귀. ②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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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으나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을 성립한 이래 1910년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또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진산식(晉山式 나아갈 진/뫼 산/법 식) ; 절의 주지가 새로 취임하여 거행하는 의식.
*설법상(說法床)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인유(因由 인하다·인연·유래 인/말미암을·까닭 유) ; 일의 내력(來歷)이나 까닭.
*법보종찰(法寶宗刹) ; 불 · 법 · 승(佛法僧) 삼보(三寶) 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 놓은 팔만대장경판인 법보(法寶)를 봉안하고 있는 절. 우리나라에서 합천 해인사가 법보종찰이다.
*상궁(尙宮) ; 조선 시대에, 내명부(內命婦 궁중에서 여러 벼슬자리에 대하여 매기던 등급인 품계品階를 받은 여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하나인 여관(女官)의 정오품 벼슬.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짤르다 ; ‘짧다’의 사투리.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불수변거(拂袖便去) ; 소매를 떨치고 문득 가버리다.
*위신(威信) ; 지위나 신분에 따른 위엄(威嚴 위세가 있어 의젓하고 엄숙한 태도나 기세)과 신망(信望 믿고 기대함. 또는 그런 믿음과 덕망).
*졸가리 ; ①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②사물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버린 나머지의 골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우세 ; 남에게서 놀림이나 비웃음을 받음. 또는 그 놀림이나 비웃음.
*일착자(一着子) ; 일착(一着). ①(바둑에서) 한 수 두다. 일수(一手)와 같음. 선승이 불교의 교리나 수행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는 것을 비유하여 한 말. ②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마음자리를 뜻한다.
*장경각(藏經閣) ; 장경각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고려대장경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을 말한다. 남쪽의 수다라전(修多羅殿)과 북쪽의 법보전(法寶殿)이 있으며, 서쪽과 동쪽에는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보 제52호로 정식 명칭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퇴설당은 장경각 옆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군막사찰(軍幕寺刹) ; 스님들로 조직된 군대의 승장(僧將), 또는 의승대장(義僧大將)이 승병(僧兵)을 양성하며 머무르던 절.
*폐사(廢寺) ; 폐(廢)하여져 스님이 없는 절.
*계덕(戒德) ; 계율을 엄격하게 지킨 공덕(功德).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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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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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상량(商量) (전강선사 No.011)—(게송)商量是鬼窟 文字是糟糠 若問何者是 棒行如雨滴 |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 생사 없는 법이 사바세계밖에 없다 |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하는 법이 없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찾기는 찾되 의심(疑心)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商量) 달러.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알음알이)

 

 

(15분 14초)

 


상량시귀굴(商量是鬼窟)이요  문자시조강(文字是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오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선(商量禪)이라는 게 못써.
공연히 앉어서 공부헌닥 하면서 참으로 의심을 허지 않고, 상량선을 하고 앉었거든. 요리 한번 생각해 보고 조리 한번 생각해서, 그 상량이 붙도록 화두를 든다 그 말이여. 상량선!
자꾸 그 무슨 이치를 찾고, 거다가 이상스럽게 모도 무슨 별별 도리를 끄집어다가 붙여서.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알 수 없는 의심만 딱 들고서는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걸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것이 조주(趙州)의 뜻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뜻이란 말이여.
그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거가서 무엇이 있을 것이여. 상량(商量)해서, 사량(思量)해서 붙여 봤던들 되냔 말이여.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이란 건 귀신굴이여.
귀신(鬼神)이라는 게 이 몸뚱이 내버리면 귀신인디. 또 귀신이 뭐, 따로 있나? 이 사람이 사람 몸 가지고 있다가 사람 몸 버리면 귀신이지.

귀신이라는 것은 그거 또 더 이상스럽게 사람 몸뚱이 가져 있을 때보담도 사람 몸뚱이 내버린 뒤에는 귀신의 상량이라는 것은 말로 못 혀. 이놈이, 귀신 상량이라는 것은 당초에 그건 뭐 어따가 비유헐 수 없이,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뿐이여.
숭악헌 근원도 없이 퍼일어난 놈이, 내 근본 정신도 없이 그만 일어나는 놈이 그 귀신 생각인디, 그걸 귀신 상량이라, 귀굴리(鬼窟裏)라 그려. 그래서 상량선이라는 것은 귀굴리선(鬼窟裏禪)이라 그런다 그 말이여.

그러니 제일 주의헐 것이 상량선이여.
안 헌닥허지마는 상량선을 허기 따문에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오들 않고, 화두일념(話頭一念) 지경이 오들 않고, 고 상량 따문에 망가(亡家)헌다. 집을 잊어버리고 실업(失業)한다. 업(業)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상량이 아닐 것 같으면은 화두(話頭)라는 것이 그대로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올 것이며, 어디 그 헛된 선(禪)인가? 참, 옳은 선(禪)이지.

공연히 따진다. 어서 깨달을라는 마음을 다 붙이기도 허고, 그놈이 그 무슨 이치를 찾아 붙인다. 아, 이런 놈의 꼴 봐라.
아무리 해봐도 이치는 아니여. 천하 없는 이치를 다 붙여봐. 그 이치가 무슨 이치가 참선인가. 아니거든. ‘깨달랐다’ 허니까, 뭐 깨달을 것 같으면 무엇이 뭐, 물건이 무엇이 하나가 있는 줄 알고.

어쩠던지 상량선은 안 해야 옳아. 그거 귀신 참선인디, 귀신 참선은 참선이 아니여.
그 까달(까닭) 따문에 타성일편 지경이, 의심 하나가 그저 의단독로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 덩어리가 뭉쳐져 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뭉쳐져 가지고는 독로(獨露)가 되지를 못혀.

문자(文字)는 시조박(是糟粕)이다. 문자라는 것이 조박(糟粕)이여.
일체 문자선, 문자 참선도 그 못써. 그 무슨 글귀를 집어대고 들어대고 해서 그 모도 문자 인증을 헌다 그 말이여. 문자 중 인증이 모도 그것이 조박—고인이 술 짜, 옛사람들이 술 짜 먹어 버린 술 찌꺼리인데, 그 찌꺼리 그것을 자꾸 내가 먹을라고, 술 찌꺼리를 먹어 보니 그 무엇이여. 아무 소용없지.

문자도 소용없는 법이여. 참선에는 문자도 소용이 없어. 그러헌즉 참선학자라는 것은 그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다. 문자에 얽히들 안 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배운 그 교(敎)를, 문자를 버려버리고 선(禪)에 들어온 것이다. 참선허는데 무슨 문자여? 무슨 교(敎)란 말이여? 거가서. 소용없다.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딱 참, 귀재의정(貴在疑情)이다. 귀헌 것이 의심이다.
화두 해 나가는 법! 내가 언제든지 올라와 화두 해 나가는 법을 이렇게 말해 주지 않어!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노? 아,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알 수가 없구나’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고것이 조주 뜻이여. 뭐 다른, 따로 조주 스님 뜻을 가 찾아?

‘해보니까 조주 스님 뜻이 다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의지가 다르고 아, 두 가지로 자꾸 생각이 나간다’고 요러고 앉었어. 그 무슨 그런 참선을 허고 앉었어.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가 없으니, 그 그놈 찾는 거 아닌가.

아, 그러면 그렇게 찾기는 찾되 의심(疑心)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商量) 달러.

인자 불 꺼버려라. 여그 올라오면 후끈해서 그만...

참, 이 이상 더, 천상천하에 어디 무슨 뭐 별별 세계에 다 없는 참선법(參禪法)이 우리 사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이 세계에 있단 말여. 남섬세계에 가서 남부세계에 가서 있거든.
세상에 이 세계는, 그저 인생이 나면 죄만 퍼짓고, 그저 인생이 나오면은 살래야 살 수 없고, 그저 나오다가 죽기도 허고, 이것 좀 살다가 죽기도 허고, 맨 놈의 남섬부주 죄짓는 세상인디, 아! 이 세계에 와서 있다. 이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

그 세상에 다 있제. ‘나’는 다 있고. 누가 주인공이 없어?
‘나’는 다 있고. 주인공은 다 있지마는 어째 남섬부주에 꼭 난 사람이래야 꼭 주인공,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이 있어. 그거 묘하다!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여의고는 없거든. 그러허니 불불(佛佛)이 성불(成佛)을 해가지고는 이 사바세계를 오신단 말이여. 사바세계에 내려오셔서 사바세계 중생을 제도헐려고 내려오신다 그 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이 대도(大道)를 이루어 가지고는, 불과(佛果)를 증(證)해 가지고는 오실 디가, 출세(出世)헐 디가 여그밖에 없어.

부처가 되아 가지고 불과를 증해 가지고는 가만히 중생교화도 않고 있을 수가 있나. 제일 큰 일이 중생교화(衆生敎化)인디, 중생을 교화 안 헐 것 같으면은 어찌 될 것이냐 말이여. 뭐가 될 것인가 말이여. 이 중생은 전부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있게.
부처님도 석일(昔日)에 우리와 같은 동아(同我), 똑같은 범부(凡夫)인데 그렇게 생사고를 같이 받아 오시다가 먼첨 성불을 했으니 어서 속히 중생을 위해야 헐 것 아닌가.

중생 때, 불과(佛果) 증허기 전 중생 때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생사고를 받았으며, 모도 미(迷)헌 우리 중생 사바세계에서 같이 부모형제가 되았으며, 그 인연 깊은 인연을 천만 겁 중에 같이 해 나왔는데 모도가 부모형제인데, 그 사바세계에서 생사고를 받고 있는 그 중생을 제도(濟度) 안 허고 무엇을 헐 것인가?
부처님이 불과를 이룰 것 같으면은 곧 당장에 그만 사바세계에 인자 하강(下降)허셔 가지고는 중생교화를 허는 것이여.

참선법!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허는 법이 없는데, 무엇을 헐 것이여!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냐? 그럼 묻노니 어떤 것이 옳느냐?
음, 세상에 상량(商量)도 귀신굴이요, 문자(文字)도 고인조박(古人糟粕)밖에는 안되아. 짜먹어버리고 내버린 찌꺼리밖에 안된다.
약문(若問)허노니, 내가 돌이켜 묻노니 하시(何是), 시(是)냐? 어떤 것이 그러면 참선법, 옳은 선법이냐?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다. 방맹이를 때리되, 방맹이로 막 치되 방맹이가 하나가 아니라 우적(雨滴)이니라. 빗방울이니라 했다. 그러니 어디 어떤 것이 참선이라고, 어떤 게 옳은 것이냐고 참선 도리를 묻거드면은 방맹이로 빗방울처럼 막 뚜드려 팬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디 어디 그 뭔 이치를 가르켜 놓았어? '참선이 요런 것이다' 가르켜 놓았어?

‘참선 이치가 요런 것이다’ 딱! 가르켜 놓을 것 같으면은 그것은 선이 아니여. 무엇이라고 딱 손가락처럼 착 나오면은 그거 참선법도 아니고 상견(相見)도 아니고 그거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허들 못혀.

게송(偈頌)으로 여까지.(처음~15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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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상량시귀굴~’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참고.
*조강(糟糠 지게미 조/겨 강) ;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와 쌀겨라는 뜻. ②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飮食). ③조강지처(糟糠之妻 : 가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의 준말.
*조박(糟粕 술지게미 조/지게미 박) ; 고인조박(古人糟粕).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숭악하다 ; ‘속이 응큼하다(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거나 음흉陰凶하다)’ ‘흉악凶惡하다(성격, 언행이 모질고 악랄하다)’의 사투리.
*귀굴리(鬼窟裏) ; 귀신 굴 속.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찌꺼리 ; ‘찌꺼기’의 사투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불과(佛果) ; 불인(佛因 :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苦].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석일(昔日 옛날 석/날 일) ; 옛적(이미 많은 세월이 지난 오래전 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고인조박(古人糟粕 예 고/사람 인/술지게미 조/술지게미 박)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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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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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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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