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법문(듣는 법)2026. 10. 2. 10:22

법문 듣는 법(No.465)—영훈선사와 귀종선사, “네가 곧 부처니라” | 깨달은 것과 아는 것은 다른 것이다 | 법문을 즉(卽)해서 자기 본참공안을 거각해야 | 자기 생사 문제보다 바쁜 것은 없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〇“네가 곧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툭!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알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8분 15초)

법문(465:1992년2월 첫째일요법회:8분15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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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송담스님(No.465)—1992년 2월 첫째일요법회(92.02.02) (용465)(법문 듣는 법)

저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라고 하는 큰 선지식이 옛날에 계셨는데, 그 선사가 최초에 귀종(歸宗) 선사라고 하는 큰스님을 찾아가서 친견을 했습니다.

떠억 찾아가서 그 귀종 선사에게 묻기를 “여하시불(如何是佛)이니잇고?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매우 엄숙하고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귀종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향해서 일러주되 네가 믿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말하기를 “큰스님께서는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 학자를 위해서 정말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감히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귀종 선사가 가로되 “네가 곧 부처니라”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어떻게 보림(保任)을 해 가야 되겠습니까?”
귀종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예재안(一翳在眼)에 공화(空華)가 난타(亂墮)니라.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공화가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
이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영훈 선사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보림하는 길까지 눈을 떴습니다.

한 장애가 한 티끌이 눈에 있으니, 공화(空華)라고 하는 것은 눈병든 사람이 허공을 쳐다보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슨 꽃이 피어서 이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서물서물 서물서물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거든.

그런데 “내가 너한테 일러주기는 어렵지 않지만 네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어찌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고 성실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하니까, “네가 곧 부처니라” 거기서 확철대오를 했거든.

부처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도 “부처님, 부처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나름대로 삼천 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 실달(悉達) 태자 뭐 그런 등등 나름대로 다 말씀하실 수 있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한 바로 진리를 깨달으신 진리와 하나가 된 성현이다’ 아마 그렇게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네가 곧 부처다. 영훈이 네가 곧 부처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는 바로 그놈이 부처다”
이러한 이것은 이론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고 또 영훈 선사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수긍을 해서 ‘아하, 바로 내가 부처구나’ 하고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어. “네가 곧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툭!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알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 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그래서 법문(法門)을 듣되 그 법문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상식 모다 그런 것을 통해서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만, 이 자리에 모이신 법보제자(法寶弟子)는 무슨 법문을 듣던지 바로—법문이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저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 그런 것만이 아니고, 일상 생활,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평범한 이야기, 무슨 내용의 말이라도 그 말을 그 법문을 즉(卽)해서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을 하고, 그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이 터억 드러난 거기에서 모든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참으로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거든.

보통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은 귀가 번쩍해서 눈알이 초롱초롱하고, 조끔 재미없는 얘기를 하면 꾸벅꾸벅 한 시간 내 졸다가 뚝 일어나 가지고 누가 나 잔 것을 봤나 안 봤나 뚤래뚤래.

그런데 참 그래서 섣달그믐께 모다 신도님들은 모다 바쁘고 여러 가지로 새해를 맞기 위한 여러 가지 가정사, 회사 공장 모다 여러 가지로 모다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다 많이 참석을 하셨는데, 사실 바쁜 것은 생사(生死) 문제보다 더 바쁜 것이 없고, 우리가 일 초 일 초 죽음을 향해서 계속 가고 있는데 자기의 생사 문제보단 더 바쁜 것은 없거든.

집에서도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참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법회에 이렇게 한번 떠억 나와서 부처님께 예배도 올리고 축원도 하고 그러고 도반(道伴)들도 만나고 이렇게 또 다 아는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도반들이 같이 모여서 또 이렇게 법회를 갖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 뜻이 있는 것이다.(16분28초~24분4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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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선사(靈訓禪師) ; 생몰연대 미상. 9세기경 당나라 때 선사. 법호는 주석(駐錫) 산명을 따라서 지은 부용(芙蓉)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법을 이은 귀종지상(歸宗智常)의 제자이다. 어부를 업으로 삼다가 30세의 나이로 출가한 현사사비(玄沙師備)의 은사(恩師)이기도 하다. 현사사비는 후에 설봉의존(雪峯義存)의 법을 이었다. 입적한 후 영훈의 시호는 홍조대사(弘照大師), 탑호는 원상(圓相)이다.
*귀종선사 ; 귀종지상(歸宗智常). 생몰연대 미상. 당나라 스님. 남악(南岳) 계열.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법을 이어 받았으며, 나중에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에 주석하며 대중을 교화하였다. 입적 후 지진선사(至眞禪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❶]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p64~67 (가로판 p63~66)
忽然築着磕着(홀연축착합착)에  啐地絕(졸지절)하며  爆地斷(폭지단)하야  洞明自己(통명자기)하야 捉敗佛祖(착패불조)의  得人憎處(득인증처)하야든  又宜見大宗匠(우의견대종장)하야 求煅煉(구단련)하야  成大法器(성대법기)언정  不可得少爲足(불가득소위족)하리라

문득 댓돌 맞듯 맷돌 맞듯 하야 졸지절(啐地絕)하며 폭지단(爆地斷)하야 자기를 훤하게 밝혀, 불조(佛祖)가 사람에게 미움받은 곳을 옭아 잡거든, 또 마땅히 대종장을 친견하야 단련을 구하야 대법기를 이룰지언정, 조금 얻은 것으로 만족함을 삼지 말지니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약불견인)하면  未免不了後事(미면불료후사)하리니  其害非一(기해비일)이니라 或於佛祖機緣上(혹어불조기연상)에  有礙處(유애처)하면  是(시)는 悟(오)가 淺(천)하야  未盡玄妙(미진현묘)하리라

깨달은 뒤에 만약 대종장을 만나지 못하면 뒷일을 요달치 못함을 면치 못하리니, 그 해(害)가 하나만이 아니니라. 만약 불조기연(機緣)상에 막힌 곳이 있으면 이는 깨달음이 옅어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리라.

旣盡玄妙(기진현묘)커든  又要退步(우요퇴보)하야  韜晦保養(도회보양)하야  力量(역량)이 全備(전비)하야  看過藏敎儒道諸書(간과장교유도제서)하야  消磨多生習氣(소마다생습기)하야 淸淨無際(청정무제)하며  圓明無礙(원명무애)라사  始可高飛遠舉(시가고비원거)하야 庶得光明(서득광명)이  盛大(성대)하야  不辱先宗(불욕선종)하리라

이미 현묘함을 다했거든, 또 다시 물러서서 이름을 감추고 자취를 감추어 보양(保養)하야 역량을 온전히 갖추어, 장경과 유교 • 도교의 서적들을 다 보아서 다생의 습기(習氣)를 녹여서, 청정하야 갓이 없으며 원명하야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가히 높이 날며 멀리 날아 거의 광명이 성대하야 선조사(先祖師)의 종풍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참고 ❷]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p137~140. (가로판 p133~136)
迷雲(미운)이  散盡(산진)하면  萬里靑天(만리청천)에  中秋寶月(중추보월)이  湛徹澄源(담철징원)하리니 虛空(허공)에  發焰(발염)하며  海底(해저)에  生煙(생연)하야  驀然磕着(맥연합착)에  打破重玄(타파중현)하리니 祖師公案(조사공안)을  一串(일관)에  都穿(도천)하며  諸佛妙理(제불묘리)가  無不周圓(무불주원)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도이마시)하얀  早訪高玄(조방고현)하야  機味(기미)를  完轉(완전)하야  無正無偏(무정무편)하야  明師(명사)가  許爾(허이)어든  再入林巒(재입임만)하야  茅庵土洞(모암토동)에 苦樂(고락)을  隨緣(수연)하야  無爲蕩蕩(무위탕탕)하야  性若白蓮(성약백련)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時至出山(시지출산)하야  駕無底船(가무저선)하야  隨流得妙(수류득묘)하야 廣度人天(광도인천)하야  俱登覺岸(구등각안)하야  同證金仙(동증금선)이니라

시절이 이르거든 산에서 나와 밑 없는 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묘를 얻어,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하야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올라 함께 부처를 증득할지니라.

*일예재안공화난추(一翳在眼空花亂墜) ; 일예재안공화난타(一翳在眼空花亂墮).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허공 꽃[空花]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가지가지 망상이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참고 ❶] 『전등록(傳燈錄)』 (제10권) ‘복주(福州)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 (전등록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 p691~692)
初參歸宗問  如何是佛  宗曰  我向汝道汝還信否  師曰  和尙發誠實言何敢不信  宗曰  卽汝便是  師曰  如何保任  宗曰  一翳在眼空花亂墜(法眼云  歸宗若無後語有什麼歸宗也)

처음에 귀종을 뵙고는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한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화상께서 말씀하시는 정성스럽고 참된 말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대가 부처다”

“어떻게 보임(保任)하리까?”
“하나의 그림자라도 눈을 가리면 허공의 꽃이 어지럽게 떨어진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귀종(歸宗)이 뒷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귀종(歸宗 : 조종에 돌아간다는 뜻)이라 할 것이 무엇이랴?라고 하였다]

師辭歸宗  宗問  子什麼處去  師曰  歸嶺中去  宗曰  子在此多年裝束了却來  爲子說一上佛法  師結束了上堂  宗曰  近前來  師乃近前  宗曰  時寒途中善爲  師聆此一言頓忘前解  後歸寂諡弘照大師  塔曰圓相

대사가 귀종에게 하직을 아뢰니, 귀종이 물었다. “자네는 어디로 가려는가?”
“영중(嶺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자네가 여기에 여러 해 있었으니, 짐을 꾸려 놓고는 잠시 오라. 내가 자네에게 유일하고 최상인 불법을 말해 주리라”
대사가 짐을 꾸려 놓고 법당에 올라가니, 귀종이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대사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니, 귀종이 말했다. “날씨가 차니, 도중에 조심하라” 대사가 이 말을 듣고는 앞서의 견해를 단박에 잊었다.
나중에 입적하니, 홍조(弘照) 대사라 시호하고, 탑호는 원상(圓相)이라 하였다.

[참고 ❷]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
又僧  問歸宗和尙  如何是佛  宗云  我今向汝道  恐汝不信  僧云  和尙誠言  焉敢不信  師云  卽汝是  僧云 如何保任  師云  一翳在眼  空花亂墜  其僧  言下有省

또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화상은 대답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해 주고자 하나 그대가 믿지 않을까 걱정이다”

“화상의 성실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바로 부처이니라”

“어떻게 보림 해야 합니까?”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허공 꽃[空花]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그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곧 깨달은 것이다.

上來所擧古聖  入道因緣  明白簡易  不妨省力  因此公案  若有信解處  卽與古聖  把手共行

위에 든 옛 성인들의 도에 드신 인연이 명백하고 간단하여 수고를 덜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안으로 말미암아 믿어 아는 곳[信解處]이 있으면 바로 옛 성인들과 더불어 손을 잡고 함께 갈 것이다.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88~89. (가로판 p92~94)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槃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중생이 나는 것 없는[無生]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註解) 性本無生故로  無生涅也요  空本無花故로  無起滅也라  見生死者는  如見空花起也요  見涅槃者는  如見空花滅也니라  然이나  起本無起요 滅本無滅이라  於此二見에  不用窮詰이니  是故로  *思益經云, 諸佛出世가  非爲度衆生이요  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라 하시니라.

(주해) 성품에는 본래 남이 없으므로[無生]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없고 허공에도 본래 꽃이 없으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생사가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타나도 나타남이 없고, 사라져도 사라짐이 없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하여서는 더 따질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익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건지기 위해서다」라고 하시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 (No.521)  (No.636) 에서.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1)공화(366:88년 칠석:3분44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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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❸] 송담스님(No.366)—19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문에서.(3분44초)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 하고 그렇게 딱!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 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 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 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 말이여.
분명히 이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성현의 말씀을 안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 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고 딱!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참 그게 그렇게, 당장 그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을 얻을 수가 있다 그 말이여.(20분22초~24분7초)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의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어(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43)즉해서(434:91년2월:9분10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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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에서.(9분10초)
〇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業)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0)거각1(세등09:197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4분21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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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No.09)—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4분21초)
다맛 단정(端正)히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이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싹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또 무자(無字)를 허는 이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혹 혼침(昏沈)이 와 가지고 꾸벅 또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 (한두 번 소리내어) 화두를 또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한 5분—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한 5분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또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마(魔)가 소멸(消滅)이 되고. ‘마가 소멸된다’는 것은 혼침도 그것이 마(魔)고, 산란심(散亂心)도 그것도 마(魔)다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마(魔), 안에서 일어나는 마(魔), 모든 것이 다 마(魔)여, 마(魔)라고 볼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그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그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따악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12분8초~16분28초)

 

(0)거각2(106-1+2:1979년 7월 관음재일:6분28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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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❷]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6분28초)
〇화두를 들으라 들으라 하니까, "화두를 어떻게 듭니까? 어디가 놔졌어야 그놈을 들지, 어떻게 화두를 듭니까? 들어서 배꼽 밑에다가 딱 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그다가 붙이며.." 아주 그 대답하기가 대단히 거북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화두를 든다」고 하는 것은 「화두를 생각한다」고 우선 초학자(初學者)는 이해를 하시면 되는 것이고.

"생각은 되는데 관(觀)이 안 됩니다. 근데 그 어떻게 하면 관(觀)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을 묻는 이도 있습니다. 또 "관(觀)이란 게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도 있는데.
「관(觀)」이라 하는 것도 내나 「생각」입니다. 생각에 일종인데, 그 생각을 자꾸 화두를 생각하고—사량심(思量心)으로 생각해 갖고는 안 되고, 사량심이 아닌 꽉 맥힌 의심(疑心),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렇게 한 번씩 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고 그러고.

한 번 '이뭣고?' 하고 화두를 한 번 생각하면, 들었으면, 그 생각이 한참 동안, 1분이 되었건 3분이 되었건 내지 10분 동안이라도 그 생각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여가 딱 있으면 그동안에 「화두가 들어져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딴생각이 쑥 들어와 가지고 화두가 어디로 가 버리고 없으면 그때 다시 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고.
또 딴생각이 들어오지는 안 했지마는 '이뭣고?' 한 그 생각이 희미해져 버려. 그래 가지고는 화두를 든 것인지 안 든 것인 중도 모르고 그냥 조용한 채 우두거니 앉어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자기도 모른 새에 까빡 이렇게 (졸게) 되고 하는데. 그럴 때는 또 다시 화두를 떠억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또 한 번씩 챙기는 것이여.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딱 들어져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계속 그렇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드는 것은 아니에요.
한 번 들어서 그 생각이 쭈욱 있으면 자꾸 연거퍼 그 위에다 자꾸 포개 놓지 안 해도 되어요.

이 단전호흡(丹田呼吸)과 화두(話頭)가 언제나 같이 되어 가도록 그렇게 익혀 나가면, 단전호흡을 터억 하면 화두는 그 가운데 제절로 딱! 들어지고, 또 화두를 딱! 들면 제절로 단전호흡이 제절로 같이 따라오도록 이렇게 나중에는 되어 가는 것입니다.(15분5초~19분2초)

〇내가 부모한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원래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본래 갖추고 있다. 진여불성이라고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마는 사실은 원래는 그러한 이름도 없는 것이고, 그런 특정한 모냥다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합니다.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대관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조화(造化)가 무쌍(無雙)하냐 그 말이여.
여기 법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울을 생각하면 서울이 환하거든. 목포를 생각하면 목포가 환하고, 부산을 생각하면 부산이 환하고, 지리산을 생각하면 지리산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왔다갔다 번갯불보다도 더 빠르다.

눈을 통해서는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는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는 맛볼 줄 알고, 말도 할 줄 알고, 발로는 걸어 다니고, 손으로는 뭘 잡고, 대관절 무슨 물건이 눈에도 보이지도 않고 손에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그렇게 조화가 무궁무진하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러면서도 알 수가 없으니, 그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벌써 그거 '이뭣고?' '이뭣고?'
자꾸 '이뭣고?'를 챙겨서 그놈이 무엇인가를 참구(參究)를 하다 보면, '이뭣고?' 하고 혀도 까딱도 않고 '이뭣고?' 소리도 하기도 전에 벌써 알 수 없는 생각이 탁! 있거든. 그러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하면 벌써 그것이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라.

지끔 요 얘기할 때도 환히 있거던, 화두가.
틀림없이 여러분들 지끔 제 말씀을 듣고 계시면서도 '이뭣고?'가 타악 되어져 있을 거여. '이뭣고?'(37분50초~40분19초)

 

(0)거각3(364:1988년 8월 첫째일요법회:5분2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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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❸] 송담스님(No.364)—19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5분2초)
‘참선, 참선’ 다 좋은 줄 다 알고 참선(參禪)이야말로 우리 불법 가운데에 최고의 수행 방법이고, 참선만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다 인증을 하지마는, 견성성불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 눈 앞에 흔치 않은 것은 무엇이냐?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놈을 어떻게 그놈을 타고 넘어서 그 속에 있는 무진장(無盡藏)의 보배를 캘 수가 있느냐?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번뇌 망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그 번뇌 망상 그걸 버릴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그놈을 없앨랴고 해도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 마냥 그놈에 빠져 가지고 있어도 안 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의 끊임없는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거기에서 그 번뇌의 바다 속을 헤쳐 가지고 결국은 거기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는 것이여.

일어나는 대로 나둬. 어떻게 바다에 가서 그 파도를 없앨라고 해봤자 그 없어지겠습니까?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아무리 몽둥이로 팬들 그 파도가 없어질 리가 없어. 오히려 더 파도가 일어날지언정 없어질 리는 없어.
일어나는 파도를 고대로 놔두고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탁!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화두를 생각을 해, ‘이뭣고’—화두를 생각하는 것과 화두를 거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러요.
‘이뭣고’ 자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자나깨나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밤낮 그렇게 하라고 권고는 합니다마는 그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하거든.

화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뭣고, 이뭣고’ 아무 의심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만 밤낮 생각해봤자, 그것이 백천만 겁을 무량겁을 그놈을 생각하고 있어 봤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냐 그 말이여.

‘이뭣고?’ 알 수 없는 간절한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그 알 수 없는—‘이뭣고?’ 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하거든.
그 의심을, 간절한 의심을 관조하는 데에서, 거기에서 그 의심이 점점 간절해지고 점점 의심이 더 깊어지고 그 의심이 점점 커져서 더이상 의심이 커질래야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래야 간절할 수가 없이—그래 가지고 화두를 들면 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자꾸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해서 자꾸 하다보면, 간절히 일구월심(日久月深) 하다보면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생각을 내서 들라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 때가 온다 그 말이여.

그때는 화두를 안 들어도 의단이 턱! 앉으나, 서나, 누웠으나, 일을 할 때나, 차를 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이 독로하게 되거든. 좀 잊어버리고 딴생각을 좀 할려고 해도 안 되는 거여. 이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경계에 가서 그놈이 툭! 터지게 되는 것이거든.(18분19초~23분18초)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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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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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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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ㅅ/신심(믿음)2026. 10. 1. 16:56

신심(No.377)—참선의 삼요(三要), 대신근(大信根) 대분지(大憤志) 대의정(大疑情)이 한목 일어나야 한다 | 이 일은 마치 모기가 쇠로 만든 소 등어리를 향해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처박고 들어가듯이[和身透入].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11분 26초)

신심(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11분26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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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송담스님(No.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89.2.5)(용377)(신심)

그러면 오늘 이 『선가귀감(禪家龜鑑)』 속에서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 대단히 요긴한 점 몇 군데를 설해 드리겠습니다.

참선(參禪)은 모름지기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할 것이니, 첫째는 대신근(大信根)이요, 둘째는 대분지(大憤志)요, 셋째는 대의정(大疑情)이니라. 만약 그 한 가지만 궐(闕)하드라도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마침내 폐기(癈器)를 이룰 것이다.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대신근(大信根), 큰 신심이 있어야 돼. 무슨 신심(信心)이냐?
‘나도 바로 부처다. 중생이 바로 부처고, 번뇌(煩惱)가 바로 보리(菩提)요, 생사(生死)가 바로 열반(涅槃)이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고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바로 부처다. 나라고 하는 놈을 내놓고는 부처를 찾을 수가 없다. 부처는 반드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 그놈을 갖다가 철견(徹見)함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무슨 경전 속에 문자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여. 앉으나 서나 누우나, 일을 하나 밥을 먹으나, 번뇌 망상이 일어나거나, 진심(瞋心)을 내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의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卽)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 그 신념이 여지없이 꽉 박혀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대분심(大憤心). 무슨 분심이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현과 모든 도인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어찌 이래 가지고 잠을 편안히 자며, 편안히 밥을 먹으며, 무슨 한담(閑談)으로써 세월을 보내며,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그럭저럭 이 아까운 목숨을 보낼 것인가?’
아! 속에서부터 넘쳐흐르는 그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입니다. 좋은 줄 알면서도 분심(憤心)이 없으면, 일체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이 몸과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가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셋째,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하느니라. 무슨 의정(疑情)인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으며, 어떤 분은 진즉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고 어떤 중생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느냐?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기에.. 이 무엇이여?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이, 지어서 ‘이뭣고, 이뭣고’ 하는 게 아니라, 저 속에서부터 자동으로 의심이 나와서 항상 눈을 뜨나 감으나 눈앞에 환히 현전(現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심(大疑心). 이것은 셋이 동시에, 세 가지의 이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야 해.
신심만 있고 분심이 없다든지, 분심만 있고 의심이 없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의심과 분심과 신심이 이 세 가지가 항상 함께 일어나면 화두를 일부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잘 안 들립니다” “자꾸 들면 그냥 이뭣고 뿐이지 정말 간절(懇切)한 의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이러한 하소연을 하신 분을 간혹 만납니다.
그건 다름이 아닙니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한목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주작(做作)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아야지, 그냥 의식적으로 일부러 들면 그때 잠깐 있다가, 들지 아니하면 그냥 달아나 버리고, 이것은 삼요(三要)를 동시에 갖추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용(日用)에 인연을 응(應)하는 곳.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고, 냄새 맡고, 맛보고,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이러한 일상생활 하는 곳에서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앞도 생각하지 말고, 뒤도 생각하지 말고, 잘되고 못되고 한 것도 따지지 말고, 다못 그렇게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고 그렇게 화두를 들어오고 들어가란 말이여.
그렇게 애써서 들다 보면, 이치 길[理路]이 딱! 끊어져 버려. 뜻 길[義路]이 딱! 끊어져 버려. 그래 가지고 아무 자미(滋味)가 없어져 버려.

그래 가지고 심두(心頭)가 열민(熱悶)해. 마음이 열민해. 다맛 가슴이 답답할 뿐이라 그 말이여. 이것을 공부가 잘된다고 할 수도 없고, 못된다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가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 말이여. 바로 그때가, 당인(當人)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내던질 곳이여.

가슴이 답답하면 그 답답한 것을 이기지 못해 가지고 ‘아이구, 이거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이런 것인가? 이러다가 이거 내가 상기증(上氣症)이 생길라고 이런 것인가? 이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까?’ 이것이 무슨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잘못될라고 이런 것이 아니여. 그런 의심을 하지 말어.

알 수가 없어.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지고, 일체 그동안에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 재미도 없어. 그러는 가운데 가슴만 답답… 바로 그 경지가 몸과 마음을 갖다 놔버릴 곳이여. 이것이 바로 성불(成佛)하고 조사(祖師)가 될 수 있는 기본이여! 그것이.

이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이 일은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쇠로 지어 붓어서 만든 소, 소 등어리를 향해서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불문(不問)하고 몸뚱이 채, 입부리를 갖다가 소 등어리를 향해서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소 등어리에 앉어 가지고, 입부리를 거기다가 들어간가 안 들어간가 이렇게 박어 보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 채 압량해서 아주 그냥 그 소 등어리로 아주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마치 수영 선수가 높은 데에서 물을 향해서 다이빙을 하듯이 그렇게 소 등어리... ‘쇠로 맨들었나 말았나, 쇠로 되았으니 안 들어갈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야.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몸뚱이 채 뚫고 들어가. 그래 가지고 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탁! 거기다 갖다 내던지면서 뚫고 들어갈 때, 바로 그 몸뚱이 압량해서 소 속으로 풍! 들어가는 거라.(19분45초~31분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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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 위 법문에 해당하는 『선가귀감(禪家龜鑑)』 구절.

(14)參禪(참선)엔  須具三要(수구삼요)니  一(일)은  有大信根(유대신근)이요  二(이)는  有大憤志(유대분지)요  三(삼)은  有大疑情(유대의정)이니  苟闕其一(구궐기일)하면  如折足之鼎(여절족지정)하야  終成癈器(종성폐기)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세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세로판 p54. 가로판 p55~56)

(15)日用應緣處(일용응연처)에  只擧狗子無佛性話(지거구자무불성화)하야  擧來擧去(거래거거)하며  疑來疑去(의래의거)에  覺得沒理路(각득몰이로)하며  沒義路(몰의로)하며  沒滋味(몰자미)하야  心頭熱悶時(심두열민시)가  便是當人(편시당인)의  放身命處(방신명처)며  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역시성불작조저기본야)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째서 개가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한 화두를 들어, 오나가나 계속 의심하고 의심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없어져 아무 자미도 없고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대목이니라.(세로판 p56. 가로판 p57~58)

(17)此事(차사)는  如蚊子(여문자)가  上鐵牛(상철우)하야  更不問如何若何(갱불문여하약하)하고  下嘴不得處(하취부득처)에  棄命一攅(기명일찬)하야  和身透入(화신투입)이니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들듯이, 다시 여하약하를 묻지 말고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때가 있으리라.(세로판 p60~61. 가로판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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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귀감(禪家龜鑑) ;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참고 ❶] 송담스님(No.235)—1984년(갑자년) 법보재 법회(84.04.16)
『선가귀감』은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속에서 그 골수(骨髓)만을 뽑아서 만드신 한 권의 책입니다. 큰 책은 아니고 아주 간단한 책인데도 그 속에는 팔만대장경의 그 깊고 깊은 진리(眞理)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느냐?' 하는 그 실천 상황에 이르기까지 세밀히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여러분의 가보(家寶)가 될 것입니다. 최상승 참선법을 닦아 가는 데 있어서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보시고 여법(如法)하게 수행(修行)을 해 나가시면 살아 있는 서산대사가 나오실 것이고, 살아 있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나오실 것이고, 살아 있는 중생의 탈을 쓴 살아 있는 미륵(彌勒) 부처님이 도처(到處)에서 탄생(誕生)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참고 ❷] 송담스님(No.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
『선가귀감』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계(三界)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佛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조사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선가귀감』 이 책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 신심(信心)이 일어나고, 분심(憤心)이 일어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궐(闕 흠欠·허물·잘못 궐) ; ①마땅히 해야 할 일을 빠뜨림. ②여러 자리 가운데 일부 자리가 비거나 차례가 빠짐.
*부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보리(菩提) : [산스크리트어(범어)]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 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 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nirvana.  [팔리어]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43)즉해서(434:91년2월:9분10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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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에서.(9분10초)
〇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業)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0)거각1(세등09:197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4분21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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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No.09)—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4분21초)
다맛 단정(端正)히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이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싹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또 무자(無字)를 허는 이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혹 혼침(昏沈)이 와 가지고 꾸벅 또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 (한두 번 소리내어) 화두를 또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한 5분—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한 5분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또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마(魔)가 소멸(消滅)이 되고. ‘마가 소멸된다’는 것은 혼침도 그것이 마(魔)고, 산란심(散亂心)도 그것도 마(魔)다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마(魔), 안에서 일어나는 마(魔), 모든 것이 다 마(魔)여, 마(魔)라고 볼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그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그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따악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12분8초~16분28초)

(0)거각2(106-1+2:1979년 7월 관음재일:6분28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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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❷]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6분28초)
〇화두를 들으라 들으라 하니까, "화두를 어떻게 듭니까? 어디가 놔졌어야 그놈을 들지, 어떻게 화두를 듭니까? 들어서 배꼽 밑에다가 딱 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그다가 붙이며.." 아주 그 대답하기가 대단히 거북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화두를 든다」고 하는 것은 「화두를 생각한다」고 우선 초학자(初學者)는 이해를 하시면 되는 것이고.

"생각은 되는데 관(觀)이 안 됩니다. 근데 그 어떻게 하면 관(觀)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을 묻는 이도 있습니다. 또 "관(觀)이란 게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도 있는데.
「관(觀)」이라 하는 것도 내나 「생각」입니다. 생각에 일종인데, 그 생각을 자꾸 화두를 생각하고—사량심(思量心)으로 생각해 갖고는 안 되고, 사량심이 아닌 꽉 맥힌 의심(疑心),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렇게 한 번씩 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고 그러고.

한 번 '이뭣고?' 하고 화두를 한 번 생각하면, 들었으면, 그 생각이 한참 동안, 1분이 되었건 3분이 되었건 내지 10분 동안이라도 그 생각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여가 딱 있으면 그동안에 「화두가 들어져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딴생각이 쑥 들어와 가지고 화두가 어디로 가 버리고 없으면 그때 다시 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고.
또 딴생각이 들어오지는 안 했지마는 '이뭣고?' 한 그 생각이 희미해져 버려. 그래 가지고는 화두를 든 것인지 안 든 것인 중도 모르고 그냥 조용한 채 우두거니 앉어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자기도 모른 새에 까빡 이렇게 (졸게) 되고 하는데. 그럴 때는 또 다시 화두를 떠억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또 한 번씩 챙기는 것이여.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딱 들어져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계속 그렇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드는 것은 아니에요.
한 번 들어서 그 생각이 쭈욱 있으면 자꾸 연거퍼 그 위에다 자꾸 포개 놓지 안 해도 되어요.

이 단전호흡(丹田呼吸)과 화두(話頭)가 언제나 같이 되어 가도록 그렇게 익혀 나가면, 단전호흡을 터억 하면 화두는 그 가운데 제절로 딱! 들어지고, 또 화두를 딱! 들면 제절로 단전호흡이 제절로 같이 따라오도록 이렇게 나중에는 되어 가는 것입니다.(15분5초~19분2초)


〇내가 부모한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원래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본래 갖추고 있다. 진여불성이라고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마는 사실은 원래는 그러한 이름도 없는 것이고, 그런 특정한 모냥다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합니다.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대관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조화(造化)가 무쌍(無雙)하냐 그 말이여.
여기 법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울을 생각하면 서울이 환하거든. 목포를 생각하면 목포가 환하고, 부산을 생각하면 부산이 환하고, 지리산을 생각하면 지리산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왔다갔다 번갯불보다도 더 빠르다.

눈을 통해서는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는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는 맛볼 줄 알고, 말도 할 줄 알고, 발로는 걸어 다니고, 손으로는 뭘 잡고, 대관절 무슨 물건이 눈에도 보이지도 않고 손에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그렇게 조화가 무궁무진하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러면서도 알 수가 없으니, 그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벌써 그거 '이뭣고?' '이뭣고?'
자꾸 '이뭣고?'를 챙겨서 그놈이 무엇인가를 참구(參究)를 하다 보면, '이뭣고?' 하고 혀도 까딱도 않고 '이뭣고?' 소리도 하기도 전에 벌써 알 수 없는 생각이 탁! 있거든. 그러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하면 벌써 그것이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라.

지끔 요 얘기할 때도 환히 있거던, 화두가.
틀림없이 여러분들 지끔 제 말씀을 듣고 계시면서도 '이뭣고?'가 타악 되어져 있을 거여. '이뭣고?'(37분50초~40분19초)

(0)거각3(364:1988년 8월 첫째일요법회:5분2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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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❸] 송담스님(No.364)—19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5분2초)
‘참선, 참선’ 다 좋은 줄 다 알고 참선(參禪)이야말로 우리 불법 가운데에 최고의 수행 방법이고, 참선만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다 인증을 하지마는, 견성성불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 눈 앞에 흔치 않은 것은 무엇이냐?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놈을 어떻게 그놈을 타고 넘어서 그 속에 있는 무진장(無盡藏)의 보배를 캘 수가 있느냐?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번뇌 망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그 번뇌 망상 그걸 버릴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그놈을 없앨랴고 해도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 마냥 그놈에 빠져 가지고 있어도 안 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의 끊임없는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거기에서 그 번뇌의 바다 속을 헤쳐 가지고 결국은 거기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는 것이여.

일어나는 대로 나둬. 어떻게 바다에 가서 그 파도를 없앨라고 해봤자 그 없어지겠습니까?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아무리 몽둥이로 팬들 그 파도가 없어질 리가 없어. 오히려 더 파도가 일어날지언정 없어질 리는 없어.
일어나는 파도를 고대로 놔두고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탁!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화두를 생각을 해, ‘이뭣고’—화두를 생각하는 것과 화두를 거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러요.
‘이뭣고’ 자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자나깨나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밤낮 그렇게 하라고 권고는 합니다마는 그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하거든.

화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뭣고, 이뭣고’ 아무 의심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만 밤낮 생각해봤자, 그것이 백천만 겁을 무량겁을 그놈을 생각하고 있어 봤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냐 그 말이여.

‘이뭣고?’ 알 수 없는 간절한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그 알 수 없는—‘이뭣고?’ 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하거든.
그 의심을, 간절한 의심을 관조하는 데에서, 거기에서 그 의심이 점점 간절해지고 점점 의심이 더 깊어지고 그 의심이 점점 커져서 더이상 의심이 커질래야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래야 간절할 수가 없이—그래 가지고 화두를 들면 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자꾸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해서 자꾸 하다보면, 간절히 일구월심(日久月深) 하다보면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생각을 내서 들라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 때가 온다 그 말이여.

그때는 화두를 안 들어도 의단이 턱! 앉으나, 서나, 누웠으나, 일을 할 때나, 차를 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이 독로하게 되거든. 좀 잊어버리고 딴생각을 좀 할려고 해도 안 되는 거여. 이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경계에 가서 그놈이 툭! 터지게 되는 것이거든.(18분19초~23분18초)

*자성불(自性佛)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한담(閑談) ; 심심풀이로 이야기를 나눔. 또는 그러한 이야기.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 색, 소리, 향기, 맛, 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〇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53~54 (가로판 p53~55)
(13)凡本參公案上(범본참공안상)에  切心做工夫(절심주공부)하되  如鷄抱卵(여계포란)하며  如猫捕鼠(여묘포서)하며  如飢思食(여기사식)하며  如渴思水(여갈사수)하며  如兒憶母(여아억모)하면  必有透徹之期(필유투철지기)하리라.

무릇 본참공안에 대하여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공부하되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며,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아기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으리라.

(註解) 祖師公案(조사공안)이  有一千七百則(유일천칠백칙)하니  如狗子無佛性(여구자무불성)과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와  麻三斤(마삼근)과  亁屎橛之類也(간시궐지유야)라  鷄之抱卵(계지포란)은  暖氣相續也(난기상속야)요  猫之捕鼠(묘지포서)는  心眼(심안)이  不動也(부동야)요  至於飢思食渴思水兒憶母(지어기사식갈사수아억모)가  皆出於眞心(개출어진심)이요  非做作底心故(비주작지심고)로  云(운), 切也(절야)니  參禪(참선)에  無此切心(무차절심)하고  能透徹者(능투철자)가  無有是處(무유시처)니라.

조사들의 공안이 천칠백 가지나 있는데, 「개가 불성이 없다」라든지, 「뜰 앞에 잣나무」라든지 「삼서근」 「마른 똥막대기」 같은 것들이다. 닭이 알을 품을 때에는 더운 기운이 늘 지속되고 있으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는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주릴 때에 밥 생각하는 것 목마를 때에 물 생각하는 것 어린애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 진심(眞心)에서 우러난 것이요, 억지로 지어서 내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懇切)하다’고 하는 것이니, 참선하는 데 이렇듯 간절한 마음이 없이 깨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고 ❷]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9~162, 186~187 (가로판 p153~155, 177~178)
〇做工夫(주공부)호대  最要緊(최요긴)이  是個切字(시개절자)이니  切字(절자)가  最有力(최유력)하니라.  不切則懈怠生(부절즉해태생)하고  懈怠生則放逸縱意(해태생즉방일종의)가  靡所不至(미소부지)하리라.  若用心(약용심)이  眞切(진절)하면  放逸懈怠(방일해태)가  何繇得生(하유득생)이리요  當知(당지)하라  切之一字(절지일자)는  不愁不到古人田地(불수부도고인전지)하며  不愁生死不破(불수생사불파)이니라.

공부를 짓되 가장 요긴한 것은, 이 간절 절(切)자이니 절자(切字)가 가장 힘이 있느니라. 간절치 않으면 해태심이 생기고 해태심이 생기면 방종함이 이르지 아니함이 없으리라. 만약 마음씀이 참으로 간절하면 방일 해태가 무엇을 말미암아 나리요? 마땅히 알라. 절(切)자 한 자는 고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없으며, 생사를 깨뜨리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없느니라.

切之一字(절지일자)는  當下(당하)에  超善惡無記三性(초선악무기삼성)하나니  用心(용심)이  甚切則不思善(심절즉불사선)하며  用心(용심)이  甚切則不思惡(심절즉불사악)하며  用心(용심)이  甚切則不落無記(심절즉불락무기)하나니  話頭切(화두절)이면  無掉擧(무도거)하고  話頭切(화두절)이면  無昏沈(무혼침)이니라.

간절 절(切)자 한 자는 당장에 선과 악과 무기(無記) 세 가지 성품을 뛰어넘나니, 마음씀이 매우 간절한즉 선(善)을 생각지 않을 것이요, 마음씀이 매우 간절한즉 악(惡)을 생각지 않을 것이며, 마음씀이 매우 간절한즉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나니, 화두가 간절하면 산란심도 없고 화두가 간절하면 혼침도 없나니라.

切之一字(절지일자)는  是最親切句(최친절구)이니  用心(용심)이  親切則無間隙故(친절즉무간극고)로  魔不能入(마불능입)하고 用心(용심)이  親切(친절)하야  不生計度有無等(불생계탁유무등)하면  則不落外道(즉불락외도)하리라.

간절 절(切)자 한 자는 이 가장 친절한 말이니, 마음씀이 간절한 즉 틈이 없으므로 마(魔)가 침노하지 못하고 마음씀이 간절하야 「있다, 없다」하는 등 계교하고 헤아림이 나지 아니하면 외도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〇做工夫(주공부)호대  疑情(의정)을  發得起(발득기)어든  更要撲得破(갱요박득파)니  若撲不破時(약박불파시)에는  當確實正念(당확실정념)호대  發大勇猛(발대용맹)하야  切中(절중)에  更加個切字(갱가개절자)하야사  始得(시득)다.

공부를 짓되, 의정이 일어났거든 다시 그 의정을 깨뜨려야 하나니, 만약 깨뜨리지 못한 때에는 마땅히 바른 생각을 확실하게 하되 큰 용맹심을 발하야 간절한 가운데 더한층 간절을 더해야사 옳다.

徑山(경산)이  云(운)  大丈夫漢(대장부한)이  決欲究竟此一段大事因緣(결욕구경차일단대사인연)인댄  一等打破面皮(일등타파면피)하야  性燥(성조)히  竪起脊梁骨(수기척량골)하야  莫順人情(막순인정)하고  把自己平昔所疑處(파자기평석소의처)하야  貼在額頭上(첩재액두상)호대  常時(상시)에  一似欠人(일사흠인)이  萬百貫錢(만백관전)하야  被人追索(피인추색)호대  無物可償(무물가상)하야  怕被人恥辱(파피인치욕)하야  無急得急(무급득급)하며  無忙得忙(무망득망)하며  無大得大底一件事(무대득대지일건사)라사  方有趣向分(방유취향분)이라 하니라.

경산(徑山)스님이 말씀하시되 「대장부가 결단코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궁구하고저 할진대, 첫째로 체면을 차리지 말고 성급히 척추뼈를 똑바로 세워 인정에 따르지 말고, 평소에 자기가 의심해 오던 것을 잡아 이마 위에 붙여 놓고 항상 남의 돈 백만 관을 빚진 사람이 빚장이에게 추심을 받되 갚을 물건이 없어 남에게 수치와 욕을 입을까 두려워하야,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없으며, 이보다 더 바쁜 일이 없으며, 이보다 더 큰일이 없는 것같이 하여야사 비로소 공부를 해나갈 분이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에게서 비롯된 공안.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參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조주구자(趙州狗子) · 조주무자(趙州無字) ·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 등이라고도 한다.

[참고 ❶]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卷第十三. 「趙州眞際禪師語錄并行狀卷上(南嶽下四世, 嗣南泉願)」 『조주록(趙州錄)』 (선림고경총서 18, 장경각 발행) p70. (책 뒷면에서) p40.
問 :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 無
學云 : 上至諸佛 下至螘子 皆有佛性 狗子爲什麽無? 師云 : 爲伊有業識性在

한 스님이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에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 ❷]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1칙 조주(趙州)의 구자(狗子)」 (무문혜개 찬술 | 금하광덕 역주 | 송암지원 교정) p28~33.
趙州和尙因僧問 :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 “無”
조주스님께 한 수행자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스님 대답하기를 “없느니라” 하였다.

無門曰 :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絕. 祖關不透, 心路不絕,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무문(無門)이 평한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한다. 묘오(妙悟)는 반드시 마음 길이 다하여 끊어져야 한다. 만약 조사관(祖師關)을 뚫지 못하고 마음 길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이 모두는 초목에 의지한 허깨비 종류임을 면치 못한다. 자! 일러 봐라. 어떤 것이 조사관인가?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 「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把手共行, 眉毛廝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莫有要透關底麼?
단지 이 한 개의 무자(無字), 이것이 종문(宗門)의 첫째 관문이다. 나는 이를 선종무문관이라 부르고자 한다. 만약 이 관문을 뚫고 지나간 자는 다만 친히 조주를 볼 뿐만 아니라, 곧 역대조사와 더불어 손을 잡고 같이 길을 가고 눈썹을 함께 하여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을 것이니 이 어찌 기쁘고 시원스런 일이 아니겠느냐! 이 관문을 뚫어보지 않으려는가!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毫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撕. 莫作虛無會, 莫作有無會.
그러자면 360의 뼈마디, 8만4천의 털구멍, 온 몸, 온 정신을 똘똘 뭉쳐 하나의 의문 덩어리를 만들어 이 무자(無字)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라! 밤낮을 가리지 말고 이 문제와 부딪쳐라. 그때 이 무(無)의 뜻이 결코 허무(虛無)의 뜻이라거나,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如吞了箇熱鐵丸相似, 吐又吐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打成一片,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마치 한 개의 뜨거운 철환(鐵丸)을 삼킨 거와 같이 토해내려 해도 토해낼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제까지의 악지악각(惡知惡覺)을 탕진해 버리고 오래오래 지내면서 맑게 익어가면 저절로 내외가 한 조각(一片)이 되리니 이때에는 벙어리가 꿈꾼 것과 같이 나만 스스로 알게 된다.

驀然打發 驚天動地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 逢祖殺祖 於生死岸頭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戲三昧.
이때에 돌연히 경지를 타파하여 나아가면 하늘을 흔들고 땅을 뒤집는 소식을 알 것이니, 이때는 관우(關羽) 장군의 큰칼을 빼앗아 손에 잡은 것과 같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생사마당에서 대자재를 얻어 육도사생(六道四生) 속에서 자유로이 노닐 것이다.

且作麼生提撕? 盡平生氣力 擧箇無字 若不間斷 好似法燭一點便著”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오직 평생의 기력을 다 바쳐 이 무자(無字)를 들어라. 만약 끊임없이 지어 가면 마치 촛불에 불을 붙이면 단번에 밝아지듯 한 법이 되리라.

頌曰 : 狗子佛性 全提正令 纔涉有無 喪身失命
송(頌)으로 이른다. 개와 불성! 이 한마디에 불조법(佛祖法)의 바른 법령(法令)은 온전히 반포되었다. 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유무(有無)의 견해를 가져 어른거린다면 이 사람은 당장에 신명을 잃으리라.

[참고 ❸]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大慧普覺禪書 卷第29) 「答王敎授」
若要直下休歇 應是從前得滋味處 都莫管他 却去沒撈摸處 沒滋味處 試著意看 若著意不得 撈摸不得 轉覺得沒𣠽柄捉把 理路義路心意識 都不行 如土木瓦石相似時 莫怕落空 此是當人放身命處

당장에 쉬려고 한다면 종전의 재미를 얻었던 것들에는 조금이라도 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잡거나 더듬을 수 없는 곳과 재미가 없는 곳으로 가서 한번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만약 마음을 헤아릴 수도 없고 잡거나 더듬을 수 없으며, 붙잡을 요점[𣠽柄]도 없음을 더욱 더 느끼게 되어 이치의 길[理路]과 뜻 길[義路]에 심의식(心意識)이 전혀 가지 않음이 토목와석 같을 때에도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곳이 바로 자신이 신명(身命)을 버릴 곳입니다.

不可忽不可忽 聰明靈利人 多被聰明所障 以故道眼不開 觸途成滯 衆生無始時來 爲心意識所使 流浪生死 不得自在 果欲出生死 作快活漢 須是一刀兩段 絶却心意識路頭 方有少分相應 故永嘉云 損法財滅功德 莫不由茲心意識 豈欺人哉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총명 영리한 사람은 다분히 총명의 장애를 받는 까닭에 도안(道眼)이 열리지 않아 가는 길마다 막히게 됩니다. 중생은 아득한 옛부터 심의식(心意識)에게 부림을 당하여 생사에 유랑하여 자재하지 못합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 쾌활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단칼에 두 동강을 내어 심의식의 길을 끊어야만 그때서야 조금 상응(相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가 스님께서 “법의 재물(法財)을 줄이고 공덕을 없앰은 이 마음[心意識]을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고 하시니, 어찌 사람을 속이셨겠습니까.

頃蒙惠敎 其中種種趣向 皆某平昔 所訶底病 知是般事 颺在腦後 且向沒巴鼻處 沒撈摸處 沒滋味處 試做工夫看 如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저번의 편지를 보았습니다만, 그 내용의 여러 가지 공부하는 방향은 모두 내가 평소에 꾸짖은 바의 병통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알았다면 머릿속에서 그것을 털어 버리고, 또한 수단[巴鼻]이 없는 곳과 잡거나 더듬을 수도 없는 곳과 재미가 없는 곳에서 시험삼아 공부해 보십시오. 예를 들자면 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조주 선사가 “무(無)”라고 답한 것과 같습니다.

[참고 ❹]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無字)’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자미(滋味 불을·증가할·맛있을 자/맛 미) ; ①좋은 맛[味]을 불어나게 함[滋]. ②맛. ③재미. ④기분. 심정. 감정.
*당인(當人)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상기증(上氣症 오를 상/기운 기/증세 증)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증세.
상기증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증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조사(祖師) : ①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②선가(禪家)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이 일은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쇠로 지어 붓어서 만든 소, 소 등어리를 향해서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불문(不問)하고 몸뚱이 채, 입부리를 갖다가 소 등어리를 향해서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소 등어리에 앉어 가지고, 입부리를 거기다가 들어간가 안 들어간가 이렇게 박어 보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 채 압량해서 아주 그냥 그 소 등어리로 아주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 화신투입(和身透入).
*화신투입(和身透入 합칠 화/몸 신/투과할 투/들 입) ; 몸뚱이째 들어가다.
[참고 ❶] 『고봉화상 선요 어록』 (고봉 1238~1295 |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시중(示衆 其十四)’ p110~112 참고.
示衆(대중에게 보임) (其一四)
若論參禪之要 不可執蒲團爲工夫 墮於昏沈散亂中 落在輕安寂靜裏 總皆不覺不知 非唯虛喪光陰 難消施主供養 一朝眼光落地之時 畢竟將何所靠

만약 참선의 요점을 논하자면 방석에 앉는 것을 집착하여 공부를 삼아 혼침과 산란 가운데 떨어지거나, 편안하고 고요한 속에 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모두 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리니 오직 세월을 허송할 뿐 아니라 시주들의 공양을 소화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루 아침에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 필경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山僧昔年在衆 除二時粥飯 不曾上蒲團 只是從朝至暮 東行西行 步步不離 心心無間 如是經及三載 曾無一念懈怠心 一日驀然踏著自家底 元來寸步不曾移

산승이 옛날 대중에 있을 때 죽과 밥 먹는 두 때를 제외하고 방석 위에 올라앉지 않고 다만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걸음걸음에 여의지 않고 마음 마음이 간격이 없었다. 이와같이 3년을 지내도록 일찌기 한 생각도 게으른 마음이 없다가 하루는 문득 나의 고향[自家]을 밟고 나니 원래 한 걸음도 옮긴 것이 아니었더라.

昏沈掉擧 喜怒哀樂 卽是眞如佛性 智慧解脫 只緣不遇斯人 醍醐上味 飜成毒藥 靈利漢 假饒直下知非 全身擔荷 正好朝打三千 暮打八百 何故 豈不見道 知之一字 衆禍之門

혼침과 도거, 희로애락이 그대로 진여불성이고 지혜해탈이건만 다만 인연이 이러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제호상미가 도리어 독약이 되었다. 영리한 사람이 가령 당장에 그른 줄 알아 온 몸으로 짊어지더라도 바로 아침에 삼천 번을 때리고 저녁에 팔백 번을 때릴 것이니 무엇 때문인가? 어찌 '지(知)라는 한 글자가 모든 재앙의 문이다'라는 말을 알지 못하는가?

若論此事 如蚊子上鐵牛相似 更不問如何若何 便向下觜不得處 拌命一鑽 和身透入 正恁麼時 如處百千萬億香水海中 取之無盡 用之無竭 設使志不堅心不一 悠悠漾漾 東飛西飛 饒你飛到非想非非想天 依舊只是箇餓蚊子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모기가 쇠로 된 소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이러쿵 저러쿵 묻지 않고 당장에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 번 뚫어서 몸으로까지 뚫고 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런 때 마치 백천만억 향수해(香水海)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아서 취(取)해도 다함이 없고 써도 고갈됨이 없지만, 설사 뜻이 견고하지 않고 마음이 한결같지 않아 아득히 출렁대며 동으로 날고 서로 날다가 설사 네가 날아서 비비상천에 이른다하더라도 여전히 다만 한 마리 굶주린 모기일 뿐이더라.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0~61 (가로판 p62~63)
(17)此事(차사)는  如蚊子(여문자)가  上鐵牛(상철우)하야  更不問如何若何(갱불문여하약하)하고  下嘴不得處(하취부득처)에  棄命一攅(기명일찬)하야  和身透入(화신투입)이니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들듯이, 다시 여하약하를 묻지 말고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때가 있으리라.

重結上意(중결상의)하야  使參活句者(사참활구자)로  不得退屈(부득퇴굴)이니  古云(고운),  參禪(참선)은  須透祖師關(수투조사관)이요  妙悟(묘오)는  要窮心路絶(요궁심로절)이라 하시니라.

위에 말한 뜻을 거듭 맺어서 활구를 참구하는 이로 하여금 뒷걸음쳐 물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니, 옛 어른이 이르기를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고 하시니라.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입부리 ; 새의 부리나 동물의 입을 말하는 ‘주둥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압량해서 ; ‘합(合)해서’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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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ㄷ/도인(도인의 81행)2026. 9. 30. 13:51

도인의 81행(No.377)—우리는 언제나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 선가귀감은 팔만대장경의 골수 | 한 애기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한 부처님이 태어난 것 | 갓난애기는 순수무잡하고 청정무구해서 바로 도인(道人)의 경지와 거의 흡사 | 도인 81행 중에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도인(道人)의 81행(行) ;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〇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10분)

도인의81행(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10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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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송담스님(No.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89.2.5)(용377)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절절한 그런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돌아올 때 새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분 1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초 1초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참 축복받을 만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최웅식 동자(童子)가 오늘 백일(百日)을 맞이하는 날로, 그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골수가 똘똘 뭉쳐서 수록되어 있는,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저술하시고, 우리 용화사에서 84년도에 번역을 해서 간행한 이래로 이번까지 16판을 간행을 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은 바로 팔만대장경이 바로 이 한 권 속에 축약(縮約)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한 경을 여러분께 법공양(法供養)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동자가 새로 태어난, 정말 어느 집에 어느 아들이라도 새로 태어났을 때에는 집안 식구뿐만이 아니라, 온 이웃사람 일가친척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들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宇宙法界)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왜 새로 태어난 동자와 어린 애기를 축복하느냐’ 하면은, 원래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이고 또 생과 사가 둘이 아닌 것이지만, 생(生)하고 또 한평생을 살다가 인연 따라서 다시 또 몸을 바꾸고 하는 이러한 일들이, 낱낱이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우주의 진리 체(體)인 진여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는 증거로써 새로운 생을 받아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애기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한 부처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은 바로 그것이 죽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生)은 바로 고통이다,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 이외에 뭣이 있느냐?'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마는, 진리를 깨달은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도 진리요, 늙음도 진리요, 앓는 것도 진리요, 이승을 하직하는 죽음도 진리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마치 봄에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춘하추동 사시(四時)가 있듯이, 인생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고, 이런 것이 전부가 다 진리 체(體)의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갓난애기가 태어나는 것은 온 우주법계로부터서 축복을 받고, 저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저 하늘나라의 선신(善神)들도 축복을 하고, 저 축생이나 미물(微物)까지라도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개나 호랭이 같은 그러한 축생도 갓난애기는 절대로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보고 왕왕 짓고 물려고 하면서도 갓난애기는 보고 그렇게 저런 개들도 사랑을 하고, 사람이나 돼지를 막 잡아먹는 호랭이도 갓난애기는 그렇게 애끼고 사랑하는 뜻을 표하는 것입니다.

갓난애기는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청정무구(淸淨無垢)해서 조끔도 물들지를 안 했어. 그래서 그 갓난애기의 마음가짐은 바로 도인(道人)의 경지와 거의 흡사하는 것입니다.
도인의 여러 가지 그 도인의 행에, 도행(道行)에 있어서 81행(八十一行)이 있는데,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좋고 궂은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습니다. 광행(狂行) 미친 행도 있고, 승행(僧行)도 있고, 속행(俗行)도 있고, 남자행, 여자행, 뭐 심지어 화엄경에는 창녀, 53선지식 속에는 창녀도 있습니다. 마을의 장자(長者)도 있고.
그 창녀(娼女)라 하면은 세속에 빈축을 받는 상대지마는 53선지식 속에 창녀가 있다 그 말이여. 그 창녀는, 사람이 그 창녀 얼굴만 봐도 마음이 맑아지고, 그 창녀의 손만 한번 잡아도 업장(業障)이 소멸하고, 그 창녀하고 한번 잠만 자도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는 그러한 창녀도 있다 그 말이여.

그런 81행 가운데에 어떠한 행(行)을 최고로 치느냐 하면,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치거든.

갓난애기,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갓난애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다못 배고프면 울 줄만 알고, 뜨거워도 울 줄 알고, 너무 추워도 울고, 또 목이 말라도 울고, 다쳐서 아퍼도 울고. 어린 아기의 언어(言語)는 우는 것이 언어여. 어린 아기 우는 것은 그것이 바로 언어이면서 그것이 바로 설법이요, 그것이 바로 예술이고, 그것이 바로 진리다 그 말이여. 왜 그러냐?
어린 아이에는 아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없거든. 완전히 깨끗하고 순수무잡해서 거의 무심(無心) 경계에 들어가는 도인(道人)의 심경(心境)과 같더라.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우리집 애기가 아니고, 남의 집 애기라도 애기가 났다고 하면 모두가 다 축복을 하거든.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천국에도 간다’고 하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까닭이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동자의 백일을 맞이해서 오늘 이 『선가귀감』을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이 책을 받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계(三界)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9분41초~19분4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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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할아버지·조상·개조 조/집·방·거처·몸 실) ; ①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②조사(祖師)가 머무는 방. 또는 선문(禪門)의 사원에서 가장 어른이신 스님이나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말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범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백일(百日) ; 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
*선가귀감(禪家龜鑑) ;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 선종(禪宗)을 중심으로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참고 ❶] 송담스님(No.235)—1984년(갑자년) 법보재 법회(84.04.16)
『선가귀감』은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속에서 그 골수(骨髓)만을 뽑아서 만드신 한 권의 책입니다. 큰 책은 아니고 아주 간단한 책인데도 그 속에는 팔만대장경의 그 깊고 깊은 진리(眞理)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느냐?' 하는 그 실천 상황에 이르기까지 세밀히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여러분의 가보(家寶)가 될 것입니다. 최상승 참선법을 닦아 가는 데 있어서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보시고 여법(如法)하게 수행(修行)을 해 나가시면 살아 있는 서산대사가 나오실 것이고, 살아 있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나오실 것이고, 살아 있는 중생의 탈을 쓴 살아 있는 미륵(彌勒) 부처님이 도처(到處)에서 탄생(誕生)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참고 ❷] 송담스님(No.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
『선가귀감』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계(三界)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佛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조사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선가귀감』 이 책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 신심(信心)이 일어나고, 분심(憤心)이 일어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①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②고려 고종23년(1236)부터 38년(1251)에 걸쳐, 16년만에 불경(佛經)과 장소(章疏)를 집대성하여 목판에 새겨 인간(印刊)한 대장경. 부처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만든 경판(經板)의 수가 8만 1258판에 이른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하고 있다.
고려 현종(1009~1031 재위)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판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고종19년(1232) 몽골족의 침입으로 불타자 다시 불력(佛力)의 가호를 빌기 위하여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라고 한다.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서산대사 약력」 p229~241 (가로판 p237~245)
대사(大師)의 법명(法名)은 휴정(休靜)이요, 자(字)는 현응(玄應)이며, 호(號)는 청허(淸虛)라 한다. 서쪽 묘향산(妙香山)에 오래 계셨으므로 서산(西山)이라고도 한다. 또 금강산 백화암(白華庵)에도 오랫동안 주석(住錫)하여 백화도인(白華道人)이라 자호(自號)하였으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자리를 사임한 후에는 퇴은(退隱)이라 하였다.

속성(俗姓)은 완산 최씨(完山 崔氏)요, 속명(俗名)은 여신(汝信)이라 하였다. 또 아명(兒名)은 운학(雲鶴)이라 하였으니, 이는 대사의 세 살 때 사월 초파일 낮에 사(師)의 부친인 세창(世昌)이 누중(樓中)에서 잠들어 있노라니 몽중(夢中)에 한 노인이 와서 “소사문(小沙門)을 위탁하노라” 하며 사(師)를 품에 안고 몇 마디 진언을 마친 뒤에 사(師)의 이마를 만지며 “마땅히 ‘운학’이라 이름할진저!” 하고 갔다고 하여 소사문 또는 운학이라고 불렀다 한다.

조선 제11대 중종대왕(中宗大王) 15년(서기 1520) 경진(庚辰) 3월 26일에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부(父)는 기성(箕城) 영전관(影殿官)을 지낸 세창이요, 그 모(母)는 한남 김씨(漢南 金氏)인데 그 부모님네는 동갑으로 나이 오십에 가까워서 대사를 낳았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착한 성품에 영오한 재질을 지녔건마는 불행하게도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0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백 년 생계가 하루아침에 깨어지니 어린 대사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사(師)는 총명이 뛰어나고 글 재주가 있으므로 그해 겨울 그 고을 사또 이사증(李恩曾)이 대사를 불러 앞에 앉히고, 먼 산의 송설(松雪)을 가리키면서 「사(斜)」로 운자(韻字)를 부르니 대사는 곧 「향응고각일초사(香凝高閣日初斜 향기는 고각에 엉기고 해는 바야흐로 기울다)」라고 하였다. 또 「화(花)」 자를 부르자 「천리강산설약화(千里江山雪若花 천리강산에 눈은 꽃과 같다)」라고 응구첩대(應口輒對)하니 사또는 운학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우리 아해(兒孩)야!” 하면서 기뻐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었던지 사또가 전직(轉職)되어 가는 길에 대사를 서울로 데리고 가 성균관에 넣어 주었다. 이 때의 나이는 12세.

어떤 노학사(老學士)의 주선으로 유교의 경전을 대부분 독파(讀破)하고 1차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 비로소 그 내막에 부정이 있음을 알고 과거를 단념하였다. 그 후 15세에 동배(同輩) 수인(數人)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화엄동(華嚴洞), 칠불동(七佛洞), 청학동(靑鶴洞) 등 대소사찰을 순방하면서 반 년을 지냈다.

어느 날 우연히 쌍계사에서 숭인장노(崇仁長老)의 설법을 듣고 다른 여러 벗들은 서울로 돌아가는데 그는 거기에 남아 전등(傳燈), 염송(拈頌), 화엄(華嚴), 원각(圓覺), 능엄(楞嚴), 법화(法華), 유마(維摩), 반야(般若) 등 수십 본의 경전을 얻어 정독한 후에 다시 영관대사(靈觀大師)에게서 3년간 지도를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그 뒤 3년 만에 어느 날 밤 홀연히 깨친 바 있어 읊기를 「홀문두우제창외(忽聞杜宇啼窓外) 만안춘산시고향(滿眼春山是故鄕), 소쩍새 소리 듣고 창 밖을 내다보니, 봄빛 가득한 저 동산 내 고향 이 아닌가」라 하였고.
또 어느 날에는 「급수귀래홀회수(汲水歸來忽回首) 청산무수백운중(靑山無數白雲中), 물을 길어 돌아오다 고개 문득 돌이키니, 무수한 청산이 흰구름 속에 솟아 있네」라고 읊은 다음에 손에 은도(銀刀)를 쥐고 머리를 스스로 자른 후 다시 일구(一句)하되 「영작평생치애한(寧作平生痴獃漢) 불욕작연참아사(不欲作鉛槧阿師), 차라리 한 평생을 천치가 될지언정 속빈 문자승은 되고자 안하노라」라 하고,
드디어 일선대사(一禪大師)를 수계사(授戒師)로, 석희법사(釋𤋮法師) · 육공장노(六空長老) · 각원상좌(覺圓上座)를 증계사(證戒師)로, 영관대사를 전법사(傳法師)로, 숭인장노를 양육사(養育師)로 삼으니 그때(1540년)의 나이는 21세였다.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여 도솔산(兜率山) 학묵대사(學嘿大師)에게서 인가를 받았다.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때 나이가 삼십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32세 때에는 봉은사(奉恩寺)에서 승과(僧科)에 응시하여 중선(中選)에 오르고, 대선(大選)으로부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까지 올라 불가(佛家)에서는 그 명예가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그의 본의도 아니므로 얼마 후에 이 직책을 사임하고 주장자에 몸을 맡겨 북으로 묘향산(妙香山) 남으로 두류산(頭流山), 기타 제산을 편류하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가 그때 저 유명한 삼몽시(三夢詩)와 향로봉시(香爐峰詩)를 지었다.

삼몽시(三夢詩)
주인몽설객(主人夢說客) 객몽설주인(客夢說主人) 금설이몽객(今說二夢客)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
주인(主人)의 꿈을 객(客)에게 말하고 객(客)의 꿈을 주인(主人)에게 말하니, 이제 두 꿈을 말하는 저 나그네, 어즈버 그도 또한 꿈 속의 사람이로다.

라 하였고 또 향로봉시(香爐峰詩)에

만국도성여의질(萬國都城如蟻垤) 천가호걸약혜계(千家豪傑若醯雞) 일창명월청허침(一窓明月淸虛枕) 무한송풍운부제(無限松風韻不齊)
만국의 서울은 개미집이요 천고의 호걸은 하루살이라. 밝은 달을 베개하고 고요히 누웠으니 끝없이 부는 솔바람 갖은 곡조 아뢰네.

라 하였다. 그 후 선조(宣祖) 22년(서기 1589년) 기축 10월에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요승 무업(無業)이 이 글로써 대사(그때의 나이 칠십)를 무고하였다. 즉 향로봉시는 임금을 모독한 글이요 또한 역적인 정여립과 음모가 있다하여 그것 때문에 어전(御前)에까지 잡혀갔었다.
그러나 말이 너무도 분명하고 그의 인격과 성품이 도리어 임금을 감동케 하여 선조는 묵죽(墨竹) 한 폭을 하사(下賜)하고 부시(賦詩)를 명하므로 대사는 곧 다음과 같이 일절(一絕)을 지어 올렸다.

소상일지죽(瀟湘一枝竹) 성주필단생(聖主筆端生) 산승향설처(山僧香爇處) 엽엽대추성(葉葉帶秋聲)
소상강의 이름난 대 한 가지, 우리님 붓 끝에 났구나. 산승이 향을 피우는 그곳에 잎사귀마다 가을 소리가 들리듯 하여라.

고 하였다. 선조께서도 이 시(詩)를 보고 친히 화답(和答)을 하였다.
엽자호단출(葉自毫端出) 근비지면생(根非地面生) 월래무견영(月來無見影) 풍동불문성(風動不聞聲)
잎은 붓 끝에서 나온 것, 뿌리도 땅에서 나온 것 아니다. 달이 와도 그림자를 볼 수 없으니 바람 분들 소리가 들릴 건가.

라 하였다. 그래서 대사와 선조대왕과는 시(詩)로써 깊이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 뒤 선조 25년(서기 1592년) 4월에 임진난이 일어나니 대사의 나이 73세였다. 국가는 도탄에 빠지고 임금께서는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대사는 묘향산(妙香山)으로부터 칼을 짚고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임금 앞에서 “전국의 승려들 가운데 늙고 병들어 나서지 못할 자는 각각 그들이 있는 곳에서 분향하고 불공을 올려 신불(神佛)의 도움을 받게 하고 그 나머지는 신(臣)이 통솔하고 전진 속에 뛰어들어 충성을 다하겠읍니다” 했다.
그래서 선조는 대사에게 팔도 십육종 도총섭(八道十六宗都總攝, 선교양종禪敎兩宗이므로 팔도 십육종이 됨)을 명하니 그 즉시로 행동에 옮겨 전국에 의승병을 불러일으켰다.

그 제자 송운 사명대사는 관동에서 칠백여 명을, 뇌묵 처영대사(雷默處英大師)는 호남에서 천여 명을, 그밖에 기허 영규대사(騎虛靈圭大師)는 공주에서, 중관 해안대사(中觀海眼大師)는 진주에서 일어나는 한편 휴정대사 자신은 문도들과 지원병 천오백여 명을 이끌고 모두 오천여 명이 평안 순안 법흥사(順安法興寺)에 모여 일대 승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여러 장수들에게 호응하고 혹은 명나라 군인들을 지원하면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한 뒤에 대사는 용사 백여 명을 이끌고 환도하는 선조대왕을 중로에서 영접하였다. 그리하여 임진난 7년 전쟁이 끝났을 때에는 대사의 나이 79세였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은 대사의 그 큰 공을 찬탄하고 한시(漢詩) 일수(一首)를 지어 바쳤다. 즉

무의도공리(無意圖功利) 전심학도선(專心學道禪) 금문왕사급(今聞王事急) 총섭하산령(總攝下山嶺)
공명에 뜻이 없어 오로지 도를 익히더니 이제 왕사(王事)가 급함을 듣고 총섭이 산에서 내려오셨네.

대사는 임난이 끝난 뒤에 다시 귀산(歸山)할 것을 왕에게 허락을 받아 모든 일은 제자인 사명당 유정(四溟堂惟政)과 뇌묵당 처영(雷默堂處英)에게 위임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니 나라에서는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總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의 호를 내렸다.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였는데 항상 따르는 제자가 천여 명이나 되었고, 그의 법을 이어 출세한 제자가 칠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명한 제자를 든다면 사명당 송운, 기허당 영규, 뇌묵당 처영, 중관당 해안, 자운당 선의(慈雲堂 宣義), 그 밖에 덕수(德守), 수인(守仁), 혜조(慧照), 신열(信悅), 의엄(義嚴) 등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선조 37년(서기 1604년) 갑진(甲辰)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부좌(趺坐)하여 열반에 드시니 세수(世壽)는 85세요, 선납(禪臘)은 예순 다섯이었다.
그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 니우수상행(泥牛水上行) 대지허공렬(大地虛空裂)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날에 이향(異香)이 방에 차 삼칠일(三七日) 후에야 그치었다 하며, 화장하는 날에는 제자 원준(圓峻), 인영(印英) 등이 영골 일편(靈骨一片)과 사리 삼과(舍利三顆)를 얻어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에 또한 유정, 자휴(自休) 등이 정골 일편(頂骨一片)과 신주 수매(神珠數枚)를 얻어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북쪽 언덕에 봉안하고, 그의 유물(遺物)은 대개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海南 大興寺)에 모셨다.

대사가 남긴 저서는 『청허집(淸虛集)』 상하 두 책(上下二冊)과 『선가귀감(禪家龜鑑)』, 『삼가귀감(三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운수단(雲水壇)』 각 한 권이 있다.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를 사람들에게 베풂. ③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찬탄함. 경전에 꽃·향 등을 바침.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원래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이고’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4~135. (가로판 p139~141)
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시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시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이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 버린다」하시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시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하시니,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할지어다.

註解(주해)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을  莫虛度하라

몸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成] 지속되고[住] 파괴되고[壞] 없어져[空] 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生] 머물고[住] 변해 가고[異] 사라져[滅] 버리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덧없는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成],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住], 쇠퇴하여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壞], 모든 것이 괴멸되어 허공만 있는 과정(상태)[空]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청정무구(淸淨無垢 맑을 청/깨끗할 정/없을 무/때·티끌 구) ; 맑고 깨끗하여 때가 없음.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도인(道人)의 81행(行) ;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〇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 동자(善財童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최초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53위의 선지식(스승).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영아행(嬰兒行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행하다·행위 행) ;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도인(道人)의 81행(行)이 있는데, 81행 가운데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체모(體貌 몸 체/얼굴 모) ; 체면(體面). 남을 대하기에 번듯하고 떳떳한 입장이나 면모.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 영역.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계악도(三界惡途, 三界惡道) ; 삼계의 악도(惡途)를 일컫는 말. 삼계는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를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세 범주로 분류한 것으로, 보다 구체화하면 욕계에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하늘 중의 일부가 포함되고, 색계와 무색계에 나머지 하늘이 포함된다. 이 중 욕계의 지옥 · 아귀 · 축생 등의 세 가지는 악업(惡業)의 과보로 태어나는 곳으로 고통이 가장 심한 세계이기 때문에 묶어서 삼악도(三惡途)라 부른다. 여기에 아수라를 더하여 사악도(四惡途)라고 하기도 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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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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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