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疑心) (No.480)—화두(話頭)에 대한 의심, 의심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 의심(疑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4분 13초)
[법문] 송담스님(No.480)—92년 9월 첫째일요법회(92.09.06)(용480)
조실 스님께서 법문 가운데 가장 중점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는 것,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 의심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 의심(疑心)이다.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그 알 수 없는 생각,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 화두지, 그 알 수 없는 거 내놓고 의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심이라 하는 것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라 하는 것은 ‘이뭣고?’했을 때 앞과 뒤가 거기에서 끊어지거든. 알 수 없는 생각 이외의 다른 생각은 거기서 끊어져야 화두를 옳게 드는 것이여.
흔히 문헌(文獻)상에 나타난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을 낱낱이 그것을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의리로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그 공안을 타파한다 해 가지고 그러한 식의 공부는 그것을 의리선(義理禪)이라 해 가지고 죽은 참선이여, 사구선(死句禪)인데.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주장하신 공부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이거든. 화두를 여러 개를 하나씩 하나씩 분석하고, 따지고, 비교하고 해서 그렇게 참구를 해 나간 것이 아니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하나의 화두를 다맛 말 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가지도 말고, 다못 앞뒤가 끊어져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관(觀)해 가는 것인데.
화두를 들므로써 어떤 이치가 차츰차츰 나타나고, 무엇이 알아지고 드러나고, 이러면은 해 가는 맛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천칠백 공안을 그런 식으로 날마다 따지고 날마다 분석해서 해 가봤자 점점 사량분별만 늘어가고 깨달음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 화두를 가지고 일심으로—공부가 잘되거나 안되거나, 잘된다고 생각 되건, 잘 안된다고 생각이 되건, 때로는 혼침이 일건, 때로는 산란심이 일건 그것도 묻지를 말고,
산란심(散亂心)이 일어도 ‘이뭣고?’요, 혼침(昏沈)이 와도 ‘이뭣고?’요,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앞뒤가 끊어진 의심 하나로만 계속 잡드리를 해 나갈 뿐이다.
그렇게 해 나가다가 보면은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10분43초~14분5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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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문헌(文獻 글월·서적 문/바칠·바치는 물건 헌) ; ①특정한 연구를 할 때 참고가 되는 서적이나 문서. ②옛날의 제도나 문물을 아는 데 필요한 자료나 기록.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〇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〇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〇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산란(散亂 흩을 산, 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