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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11 원만구족((No.405))—(게송)巍巍落落赤裸裸~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 사람 사람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2. 2021.03.21 일념불생((No.117))—(게송)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一念不生全體現 六根纔動被雲遮
  3. 2021.03.20 용화선원(No.024)—하근기가 참선을 바로 하려면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한다 | 송담스님의 묵언 정진. 전강 조실스님께서 보살펴 주신 은혜.
  4. 2021.03.19 한 생각 단속(No.024)—1초 1초가 모여 무량겁 |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겠다.
  5. 2021.02.23 여구두연((084))—(게송)求名少日慕孔聖~ |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화두 들기를 머리에 불붙었을 때 후닥닥닥 머리를 끄듯이.
  6. 2021.02.20 이뭣고((084))—(게송)全氷是水水成氷~ | 무상(無常) |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 | 점철성금(點鐵成金).
  7. 2021.02.19 업장소멸((No.084))—참선으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생사윤회를 끊어야 | 죄의 종자(種子)는 우리의 진여불성, 마음자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
  8. 2021.02.17 일념단속((No.405))—(게송)巍巍落落赤裸裸~ | 人人本太平 | 이뭣고?’ 일념 단속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
  9. 2021.02.01 아는 것과 깨달음((No.054))—아는 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 활구참선과 사구참선. 사구참선은 깨달을 기약이 없다.
  10. 2021.01.24 백종(百種)날((No.479))—백종 법회로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 탐진치가 축생 · 아귀 · 지옥,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는 근본. 원인.
ㅇ/원만구족2021. 4. 11. 16:39

원만구족((No.405))—(게송)巍巍落落赤裸裸~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사람 사람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 ‘이뭣고?’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대정장29, p.525c21)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참고]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대정장11, p.346c3)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8분 48초)

 


[법문] 송담스님(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여.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 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혀.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부처님 자신이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일체에는 망(妄)이 없고, 당신은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조금도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으로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 있고, 그 일념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이여.

기사년 납월팔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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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일념불생 불생2021. 3. 21. 15:40

일념불생((No.117))—(게송)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一念不生全體現 六根纔動被雲遮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 불생(不生).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가로판 p88. 107~108)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不生)’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3분 49초)

 


[법문] 송담스님(No.117)—1980(경신)년 신수기도 회향(80.02.24) (용117)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헌디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헌디  육근자동피운자(六根纔動被雲遮)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라. 죽기 싫은 늙으막에사, 죽을 날이 가까와진 늙으막에사 겨우 석가모니를 친하게 되었다. 불교를 믿게 되었다.
두상광음(頭上光陰)이 전두비(轉頭飛)로구나. 그런데 머리 위에 광음(光陰)은, 시간은 머리를 굴려 날아가는구나. 늙으막에사 겨우 불법(佛法)을 믿고 참선을 할려고 마음을 냈는데 그렇게도 세월은 빨리빨리 지내가는구나.
작년 다르고 금년 다르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가 희어지고, 허리가 아프고, 눕고 싶고, 어지럽고, 어째서 좀 더 젊었을 때부터서 열심히 공부를 안 했던가.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육근자동피운자(六根纔動被雲遮)라.
한 생각 일어나지 아니하면, 한 생각 일어나지 아니하면, 한 생각을 내지 아니하면 그것이 바로 전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육근(六根)이 자동(纔動)하면 피운자(被雲遮)로다.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으로 통해서 무엇을 보거나,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거나, 코 · 입 · 몸 · 생각, 이런 육근이 딱! 움직이면 벌써 구름, 구름 한 점이 일어나 가지고 해와 달을 가리워 가지고 세상을 어둡게 한 것처럼, 한 생각 일어나기 전에는 전체가 여지없이 드러났는데, 한 생각 일으키면은 그것이 구름에 가리워지듯 어두워지는구나.(처음~4분4초)



(6분 10초)

 


[참고] 송담스님(No.410)—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난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한 몸뚱이, 한 마음이여. 그런데 그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한 생각' 동(動)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과 같이 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한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몇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몇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이 세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칠 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를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을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그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의 번뇌염(煩惱染)이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분2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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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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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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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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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용화선원2021. 3. 20. 13:25

용화선원(No.024)—하근기가 참선을 바로 하려면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한다 | 송담스님의 묵언 정진. 전강 조실스님께서 보살펴 주신 은혜.

*용화선원(龍華禪院) ; 용화선원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수행하는 도량입니다.
조실인 전강선사께서는 23세에 견성하시어 혜봉, 혜월, 용성, 한암, 보월, 만공 등 당대의 6대 선지식과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의 법맥을 이으셨습니다.

그 후 1961년에 용화사에 선원을 개설하신 이래로 수많은 수행자들을 제접하시다가 1975년에 열반하시면서 송담스님께 법좌를 물려주셨고, 이후 용화사는 오늘에 이르도록 참선 수행도량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용화선원의 모든 운영은 스님들과 신도들의 수행 정진을 위한 공간으로서 움직여지고 있으며, 특히 일반 신도분들에게는 법회를 중심으로 신행활동을 하면서 더 나아가 불교의 진수인 활구참선을 널리 수행할 수 있도록 보살선방과 시민선방을 개설하여 참선입문에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9분 1초)

 

 

[법문] 송담스님(No.024)—1976년(병진년) 동안거 결제(76.10.15.음) (용024)

방금 병진년 동안거 결제에 임해서 지금부터 4년 전, 72년도 10월 15일 바로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날 그 법회에 참석하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께서 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조실 스님께서 저 보고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법을 설하라고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을 모시기 30년, 처음에 출가할 때부터서 조실 스님께서 항시 하시는 말씀이 "참선(參禪) 공부를 헐라면은, 근기(根機)가 약한 중근기 · 하근기가 참선을 바로 헐라면은 바보가 되어야 한다. 멍청이가 되어야 한다.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야 한다.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자신의 근기를 생각할 때에 하근기 중에서도 가장 못난 하근기라고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생 동안을 정말 바보가 되어 가지고 조실 스님의 법을 철저히 믿고, 벙어리가 되어 가지고 이 세상 한 번 안 태어난 셈치고 일생을 지내보리라'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바보가 되고 쓸모없는 물건이 될라면은 벙어리가 된 것이 제일 무방하겠다' 이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하자마자 바로 묵언(默言)을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가 불편한 점이 다 많지마는 조실 스님께서는 참 제가 상좌(上佐)인지, 조실 스님이 상좌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저의 모든 일을 잘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러한 은혜로 해서 하근기로서 그래도 퇴태(退怠)하지 아니하고,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그럭저럭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10년을 지내도 아무 얻은 바가 없었습니다.
'다맛 바보가 되어 가지고 알 수 없는 화두(話頭)만 들으라'고 그렇게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다맛 그렇게만 해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제가 양말 한 켤레, 내복 하나 빨아 드리는 것을 허락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의 조실 스님께서는 자신이 다 그것을 하셨고, 제가 양말이라도 손을 댈까 전혀 대지 못하도록 이렇게까지 저를 아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도 황송했지마는 조실 스님이 빨지 못하게 하시고 발 씻을 물 한번 떠오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죄송한 생각으로 조실 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제가 조실 스님의 시봉(侍奉)을 받다시피 하면서 십 년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 중간에는 방죽가에서 하꼬방 장사도 하고—사과 · 과일 그러한 것도 팔고, 음료수도 팔고, 이렇게 해서 고구마도 쪄 놓고 팔고, 수박 참외도 갖다 놓고 팔고. 이렇게 해서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조그만한 하꼬방 속에 앉아서 날새기 정진을 하고, 이리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공부는 아무것도 얻은 바도 없었지마는, 조실 스님께서는 "묵언(默言)도 어느 정도까지지 그거 말 안 하는 것 자체가 무슨 공부겠느냐? 그러니 십 년을 했으니 묵언을 그만 터라"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금생에 마지막 숨 딱! 끊어질 때까지 입을 열고 싶지 안 했고, 벙어리로서 일생을 바치고 싶었지마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라 할 수 없이 묵언을 트고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을 열었어도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못 묵언하기 전, 그 상태로 도로 돌아갔습니다.

묵언을 트고서 조실 스님을 모시고 구례 화엄사, 인천 보각사, 또 저 군산 은적사, 김제 흥복사, 이 인천 용화사로 여기저기 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저는 계속 그전이나 다름없이 정진을 했지마는,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차라리 내가 입을 열지 말고 계속해서 묵언을 할 것을, 묵언을 할 때에는 아무도 내 하는 일에 간섭하는 사람 없었고 또 나도 다른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서 언제나 내가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묵언을 트니까 내가 남의 일에 참견을 해야 하고, 남이 내 일에 참견해야 하고 해서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왔습니다.

그럭저럭 용주사에서 주지도 해 보고, 또 영동에서 또 주지도 해 보고 이러는 동안에 삼십 년이 지내왔습니다. 그러자 72년도에 여기에 와서 조실 스님을 또 모시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우렁차게 법문을 하시고, 지칠 줄을 모르시고 날이면 날마다 새벽같이 하루에 두 차례, 세 차례씩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열으셨습니다.
그러시던 조실 스님께서는 차츰 기력이 쇠(衰)하시고 혈압이 높아지시기 시작했습니다. 72년도 그날도 금방 여러 사부대중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그전에 그 낭랑한 음성은 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간곡한 그 마음은 그전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억지로라도 큰 소리를 내셔서 목이 갈라지도록 그렇게 법문을 해 주신 것을 지금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날 조실 스님께서 억지로 법상에 올라가라고 해서 사양을 하다하다 못해서 강제로 명령을 하셔서 제가 잠깐 올라와서 말씀을 한말씀하고 내려갔었습니다. 제가 올라갔다 내려온 다음에 하신 법문이 오늘 여러분께서 들으신 법문입니다.(처음~9분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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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무용지물(無用之物 없을 무/쓸 용/어조사 지/물건·만물·사물·일·사람 물) ; 아무짝에도 쓸데[用]없는[無] 물건이나 사람.
*묵언(默言)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음.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자지 않는 것.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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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일념(한생각)단속2021. 3. 19. 13:17

한 생각 단속(No.024)—1초 1초가 모여서 석 달... 백년... 무량겁이 된 것 |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 간절히 공부해서, 3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겠다.

*한 생각 단속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1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024)—1976년(병진년) 동안거 결제(76.10.15.음) (용024)

오늘 입재해서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를 하게 됩니다마는 석 달이라고 하면은 잠깐 사이입니다. 그러나 이 석 달 동안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느냐에 따라서는 무량겁(無量劫) 생사윤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석 달은 석 달이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모여서 석 달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는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24시간이 된 것이고, 한 시간 한 시간은 1초 1초가 모여서 그것이 모여서 하루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석 달이라고 하는 세월도 1초 1초가 모여서 석 달이 된 것이지, 무슨 백년 속에서 석 달이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닙니다. 비단 석 달뿐이겠습니까.

무량겁을 오늘날까지 우리가 윤회(輪廻)해 왔고 앞으로 무량겁을 윤회해 나갈 것입니다마는 그 무량겁 윤회를 이 석 달 동안에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무량겁 생사윤회를 한 칼로 비어 끊어야 되겄습니다.
그 방법은 1초 1초를 어떻게 잘 지내 가느냐, 거기에 가서 열쇠가 있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 어떻게 그놈을 돌이켜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느냐?

유시(有時)에는 성이 나고, 유시에는 기쁘고, 유시에는 외롭고, 유시에는 슬프고, 온갖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 속에서, 마치 저 바다에 파도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파도도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합니다.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을 가라앉히려고 하시지 마십시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조금도 멀리 돌릴 것이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되돌려서 화두를 들도록 이렇게 나아가신다면은 어떠한 마음에 파도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참선을 못한다'고 걱정을 하신 분을 봤습니다마는 절대로 그런 걸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참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증거입니다.
늙었다고 여자라고 병들었다고 걱정하시지 말고, 늙었거나 여자거나 병들었거나 말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프면 누워서 하고,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하고, 걸어가거나 서서 하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배가 아파서 '아이고, 아이고!' 하다가도 「이뭣고?」 이렇게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때그때 차곡차곡 되돌려 쌓을 때, 벽돌 한 장 한 장을 올바로 쌓아 올릴 때 십 층 백 층의 높은 건물이 이루어진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벽돌을 삐딱빼딱해서 이리 쌓았다 저리 쌓았다 하다 보면은 얼마 안 가서 그 집은 와그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높은 고층 건물을 짓고자 할진대는 벽돌 하나하나를 바르게 쌓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헐라면은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때그때 지체 없이 되돌려서 본참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우리의 해탈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밥 먹고 옷 입는 그 사이에 있고, 똥 누는 그 사이에 있고, 손주를 무릎에다 앉혀놓고 궁둥이를 투둑투둑 한 그 속에 바로 우리가 눈뜰 좋은 기회는 있는 것입니다.

제일 공부가 잘되고 제일 중요한 것은—남편이나 자식이나 며느리나 친구나 이웃이 나에게 억울한 말을 하고 나에게 은혜를 받고서 나를 배신하고 웬수로서 나를 갚고자 할 때, 울화통이 터지고 속이 출렁여서 피가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그런 대충격을 받았을 그때야말로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힘있고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울 때에 한 번씩 자기로 돌아오는 연습을 해서 그것이 된다고 하면은 그밖에 소소한 일은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차라리 누워서 떡을 먹게 되면 눈에 티라도 들지마는,

이 참선은 어디서 언제 어떠한 일을 하면서라도 바로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한 생각 한 생각을 쌓아 올릴 때 우리에게는 축착합착(築着磕着), 일조(一朝)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날이 기어코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모든 선지식이 전부 다 한결같이 다 맹서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그렇게 간절히 간절히 공부를 해서 3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겠다' 이렇게 까지 막담을 짓고 맹서를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석 달, 석 달이라고 생각하시지 말고 하루하루, 하루하루라 생각하지 말고 1초 1초를 열심히 해서, 하루 딱! 지내고서 주무실 때 '내가 오늘 과연 얼마만큼 알뜰히 공부를 했는가?' 눈 감기 전에 반성을 한 번씩 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이튿날 새벽에 눈을 딱! 뜨면 그때부터서 또 시작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루 종일 갖은 환경 속에서 열심히 알뜰히 공부를 지어서 마지막 그날 저녁에 잘 때 또 '내가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얼마만큼 더 알뜰히 지냈는가?' 그것을 하루를 타산을 해 보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 해서 한 달 한 달이—처음 한 달 그렇게 하시고 또 그 다음달 한 달을 하시고 해서, 다음달은 첫 달보다 낫고, 끝에 달은 둘째 달보다 낫고 해서, 내년 정월 15일에는 정말 참 이 한철은 내가 참선 공부를 시작해서 정말 참 알뜰히 정진을 한 그러한 한철이었다고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환희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철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 마지않습니다.

여러 가지로 여기는 공기도 좋지 못하고 또 수용도 박(薄)하고, 방사(坊舍)도 협착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금년 겨울에는 이십 명이 넘는 전국에 선객(禪客) 스님네께서 모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용화사는 여러 가지가 어렵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스님네들은 그러한 어렵고 부족한 것을 불평과 불만으로 생각하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시겠지마는, 그런 어렵고 불편한 것을 그것을 우리가 공부 성취할 수 있는, 신심과 분심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계기(契機)로 삼아 주시고 공부를 알뜰히 잘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여러 신도 여러분께서는—이러한 초라한 누추한 절을 전강 조실 스님, 조실 스님이 계시던 도량이라고 해서 이렇게 먼 데서 이렇게 많은 좋은 스님네가 오셨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공부하려고 오신 스님네들을 여러분께서는 성의껏 잘 받들어 모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배고픈 사람, 가난한 사람, 천 명을 밥을 주어서 기갈을 면케 해 주는 공덕보단 소승 나한(羅漢), 한 사람 공양(供養)한 것이 낫다.
소승 나한, 천 명을 공양을 시킨 것보단 부처님 한 분 공양한 것이 낫다.
부처님 천 명을, 일천 부처님 공양한 것보단 무심도인(無心道人), 한 사람의 공양하는 복이 낫다」
이렇게 『사십이장경』에 말씀하셨습니다.

올 우리 법보선원에 공부하러 오신 선객 스님네들은 바로 그러한 무심도.... (법문 끊김)

'스님네는 머리를 깎고 공부만 전력하시지마는, 나는 세속에서 머리 기르고 자식 낳고 사는 살림하고 산다. 그렇지마는 내가 공부 열심히 하기로는 내가 스님네한테 질 수가 없겠습니다'
이러한 이를 악물고 자부심을 가지고 결심을 하셔서 스님네 뒤지지 않게 공부를 좀 열심히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36분10초~47분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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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축착합착(築着磕着) : 맷돌 위•아래짝이 서로 꽉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때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일조(一朝) ; 주로 ‘일조에’의 꼴로 쓰여, 하루 아침이라는 뜻으로, 갑작스럽도록 짧은 사이를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그렇게 간절히 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그렇게 간절히 간절히 공부를 해서 3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겠다' 이렇게 까지 막담을 짓고 맹서를 하셨습니다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방사(坊舍 집·거처하는 방·절 방/집·가옥 사) ; 절에서 스님이 거처하는 방.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 11장.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 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백 명의 악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오계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만 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만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만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일 억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십 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 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삼세제불 가운데, 한 분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 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무념(無念) · 무주(無住) · 무수(無修) · 무증(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무심도인(無心道人) ; ①모든 번뇌망상이 사라져 더이상 추구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모든 것에 대하여 구하는 것이 없고 얻는 것도 없는 수행자.
②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 무심적적(無心寂寂)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사량계교심을 다 놓아버리고 언제나 천진무구한 본연자성(本然自性)으로 살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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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여구두연2021. 2. 23. 13:58

여구두연((084))—(게송)求名少日慕孔聖 怕死老年親釋迦 |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화두 들기를 머리에 불붙었을 때 후닥닥닥 머리를 끄듯이 | (게송)頭上光陰轉頭飛 切心擧話救頭燃.

*여구두연(如救頭燃 같을 여/구원할 구/머리 두/불이 탈 연) ; '머리[頭]에 붙은 불[燃]을 끄는[救] 것과 같이[如]' 수행해야 한다는 말.
머리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면, 딴생각 할 겨를이 없이 먼저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처럼, 만사(萬事)를 포기하고 간절하게 급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비유의 말.

 

(4분 13초)


[법문] 송담스님(No.084)—1978(무오)년 칠석 법회(78.08.10) (용084)

구명소일모공성(求名少日慕孔聖)타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로다
나무~아미타불~

명예를 구하고, '좀 더 잘살아 보겠다'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 그러한 명예와 권리와 재산, 그러한 것을 구하던 젊은 때에는 공자님을 숭배하다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라,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는,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잡혀서 얼마 안 가서 죽게 된 이 늙으막에사 겨우 부처님을 알게 되었다.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하니  절심거화구두연(切心擧話救頭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젊었을 때에는 돈 벌고 재산 모이고, 명예와 권리와 좀 더 잘살아보겠다고 허둥대다가 늙으막에사 겨우 부처님 법을 알고 말았는데, 머리 위에 광음(光陰)은, 세월은 화살처럼 날아가 버린다 그 말이여.
퍼뜩허면 하루해가 저물고,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하루해가 저물고, 이럭저럭 그럭저럭하다가 하루해가 저물고, 썽 한 번 냈다 웃었다 하다가 하루해가 저물고.

그러니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화두(話頭)를 들고 또 들고 하기를 수염에, 불붙은 수염에 불 끄듯 해라. 수염이 없는 보살님네들은 머리털에 불이 붙었을 때에 무슨 아들 걱정, 남편 걱정, 무슨 다른 것 곗돈 걱정, 무슨 가게 걱정할 겨를이 있어요?
머리에 불붙었을 때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그저 손이 머리로 올라가 가지고 후닥닥닥 머리를 끄듯이, 화두(話頭)를 들고 들고 또 들고 해서, 흘러가는 세월 무상(無常)한 것을 한탄(恨歎)하지 말고, 흘러가는 그 세월 그 세월 마디마디가 나 찾는 공부가 되도록 그렇게 지혜스럽게 시간을 관리를 한다면, 지혜스럽게 나의 생각을 잘 돌려서 관리를 한다면, 시간 흘러간 것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38분21초~42분3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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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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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이뭣고? 화두2021. 2. 20. 09:59

이뭣고((084))—(게송)全氷是水水成氷~ |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 속에서 나를 찾아 보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 | '이뭣고?'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 | 점철성금(點鐵成金).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다 |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송담스님(No.306)—86년 8월 화두 불명 수계 법회]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죽을 날을 받아 놨으면서도 그 죽는 날만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일분 일초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정말 알뜰하게 이 공부를 위해서 마음을 돌려 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를 오는 놈. 그놈이 슬퍼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근심 걱정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 몸뚱이를 자유자재로이 작용하는 바로 이놈. 나의 주인공.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운전사.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부모로부터 이 몸뚱이를 받어 가지고 이승을 하직(下直)할 때까지,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으로부터 떠나보지 못한 채, 같이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우리는 그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을 떠나서 존재해 보지 못한 그놈인데, 어째서 온갖 것은 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만져보고 알고, 생각해서 알면서, 바로 그 자기의 주인공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느냐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봐야 우리의 생사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봐야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64분6초~66분26초) [ 참선법 A ]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꽉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를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이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큰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큰 메겡이로 메쳐서 그 간장독이 쩍!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

 

(17분 54초)


[법문] 송담스님(No.084)—1978(무오)년 칠석 법회(78.08.10) (용084)

전빙시수수성빙(全氷是水水成氷)이요  고경불마원유광(古鏡不磨原有光)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풍자동혜진자기(風自動兮塵自起)라  본래면목노당당(本來面目露堂堂)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얼음이 온전히 이 물이여. 그리고 물이 곧 얼음이 된 것이다(全氷是水水成氷).
얼음을 내놓고 물을 찾아서는 아니 됩니다. 얼음이 바로 그것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에게는 생사(生死)가 있습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또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생주이멸(生住異滅)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공덕으로 태어나 가지고, 얼마 동안 자라다가, 자라는 것이 바로 늙어가는 과정이죠.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지고 늙어서, 그래가지고 병들어 가지고 죽어갑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몸뚱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世界)에는, 우리 몸밖에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무슨 물건이던지 이루어졌다가, 얼마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해 가다가, 그 모냥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마침내는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 모든 것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 허망한 것이다.
일체(一切)의 유위법(有爲法)은 꿈[夢]과 같고, 꼭두각시[幻]와 같고, 물거품[泡]과 같고, 그림자[影]와 같고, 풀끝에 이슬[露]과 같고, 또 번갯불[電]과 같다. 이렇게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허망하지 아니하고 참되고 영원(永遠)한 것이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를 우리는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허망한 모든 것들을 여의고, 그밖에 참된 것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영원히 참된 것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煩惱妄想心) 속에서 나를 찾아야 됩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보리열반(菩提涅槃)을 찾아야 합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삼라만상 그 허망한 것들 속에서, 그 놈을 버리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참된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 보는 방법이 바로 '이 뭣고?'입니다. '이 뭣고?'

대관절 눈을 통해서 볼 줄 아는 놈, 귀를 가지고 들을 줄 아는 놈, 코로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놈, 입으로 말하고 혀로 맛볼 줄 아는, '아! 이것은 쓰다 달다', '더웁다 차다' 느낄 줄 아는 이 몸뚱이.
여기에 앉아서도 서울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하고, 10년 20년 전 옛날 어릴 적에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대관절 무엇이냐?'
아무리 그놈을 볼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건만, 분명히 들을 줄 알고, 분명히 볼 줄 알고, 성내고 울고 웃을 줄 아는 이놈!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 이 글자 석 자가 무량겁 생사(生死)로부터 해탈(解脫)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칠석 법요식(法要式)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되겠습니다.

얼음이 곧 이것이 물이여. 번뇌(煩惱) 망상(妄想)—성내고 슬퍼하고 웃고, 오고 가고 이것이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번뇌 망상이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모습이요,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겠지마는, 그놈을 여의고 '생사 없는 도리'가 없는 것이올시다. 그 속에서 바로 '이뭣고?'
성낼 때 그 성내는 놈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썽이 폭! 한 생각이 속에서 뒤집어질 때, 뒤집어지려고 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 이 속 뒤집어지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썽내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것이 바로 점철성금(點鐵成金)입니다.

무쇠 덩어리를 딱! 갖다가 '금(金)이다!' 하고 탁! 점(點)을 치면 무쇠 덩어리가 찰나간에 황금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점철성금(點鐵成金)!
번뇌 망상 '한 생각' 폭! 일어나는 그 진심(瞋心)이 참선(參禪)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금방 독사(毒蛇)의 몸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원인이지마는, 참선을 하는 사람은 폭! 썽이 날 때 바로 '이 뭣고?' 이것이 바로 독사의 몸을 받기 전에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서는 도리(道理)올시다.

불법(佛法)은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最上乘)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칠석날에 공(功)을 들이고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보체' 축원(祝願)을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축원을 해 봤자—물론 그러한 유루(有漏)의, 유상(有相)의 공양(供養)도 복(福)이 아닌 것은 아니나—상(相)이 있는 공양, 유루복(有漏福)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을, 아무리 힘센 사람이 화살을 공중에다 대서 쏘아 올렸다 하더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가 힘이 떨어지면 다시 땅에 떨어지듯이, 우리가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머무른 바 있는 마음으로 지은 복은 언젠가는 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공덕(功德)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상(相)이 있는 것을 여의고 무상(無相)을 찾지 못한다'고 한 말씀이 생사심(生死心)을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몸이 있는 동안에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하고,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인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거기에만 꽉 착(着)해 가지고 그것이 다 인 줄 알지 말고, 정말 그 가운데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해야 그러한 모냥 있는 것들도 바로 참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한다고 해서 복(福) 짓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더욱 상(相)이 없는 깨끗한, 영원히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복을 지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참선을 열심히 해야—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남편이 수명장수하고, 사업이 잘되기를 바래고, 아들과 딸이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짝을 만나서 행복(幸福)하게 살기를 바래고,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 돌아가신 어른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그러한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상당수 계실 줄 생각합니다. 다 좋은 생각이고 참 훌륭한 생각입니다.

참으로 돌아가신 선망부모, 돌아가신 남편, 비명(非命)에 간 아들과 딸의 명복(冥福)을 빌고, 살아계신 부모와 아들과 딸, 남편, 온 가족이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물질적인 공양에만 머무르시지 말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내가 나를 찾는 참선법(參禪法)을 잘 귀담아들으시고 마음에 명심(銘心)을 하셔서 댁에 가시는 걸음걸음이, 차 속에서, 댁에 가셔서 살림을 하면서,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신경질이 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일을 당하거나,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이 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참나를 찾는 데에 돌리면서 살아가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정말 눈앞에서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성취되실 것을 나는 보장합니다.

모든 업(業)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업을 소멸(消滅)하는 것은 그 업의 근원(根源)인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흘러간 물을 깨끗이 하려면 그 위에 가서 꾸정커리지를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밑에 아래에 물을 맑게 할려고 애를 써봤자 저 상류(上流)에서 흙탕물을 계속 일구고 있다면 아래에 물이 맑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랫물을 맑게 하기를 바랜다면 저 위에서, 근원에서 흙탕물 일구는 일을 그만두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하면,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하고자 하면 우리의 업(業)을 소멸(消滅)해야 하고,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할진댄 바로 그 업(業)의 근원(根源)인 나의 마음, 나의 마음자리로 부터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흙탕물을 바로 되돌려서 참나 찾는 최상법 '이뭣고?'로 돌릴 때에 구정물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간 물이 흘러내릴 것입니다.

옛 거울은 닦지 아니해도 원래로 빛이 있는 것이여(古鏡不磨原有光).
우리의 마음자리는 언제 생겨난 때가 없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는 그 본래(本來)의 우리 마음자리는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거기에 먼지가 끼여서 그 빛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렇게 빛이 나고 영롱하고 밝고 깨끗한 거울 위에 끼여 있는 띠끌만 닦아 버린다면은 새로 빛을 내게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빛이 날 것입니다.

바람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띠끌이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여(風自動兮塵自起).
그렇게 해서 거울 위에 있는 때[塵]만 '이 뭣고?'를 통해서 닦고 또 닦아 가고 열심히 닦는다면, 우리의 자성(自性), 우리의 참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눈 한번 감았다 뜨는 사이에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이 날 것입니다(本來面目露堂堂). (15분3초~32분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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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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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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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업장(죄업)소멸2021. 2. 19. 14:20

업장소멸((No.084))—법회의 목적은 업장소멸하고, 참나의 주인공을 깨달라 영원한 생사해탈 | 참선으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생사윤회를 끊어야 | 법(法)을 들었걸랑 일분일초를 아껴서 열심히 수행해야 | 죄의 종자(種子)가 따로 있어서 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身] · 말[口] · 생각[意](신구의 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 : 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10분 12초)


[법문] 송담스님(No.084)—1978(무오)년 칠석 법회(78.08.10) (용084)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정월(正月)이나 또는 초파일(初八日)이나 칠석(七夕)이나 백중이나 어떠한 날짜에 열리는 행사건 간에 그 날짜의 명목은 다를망정 그 법회(法會)의 목적은 언제나 한 가지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내간 그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하고, 나아가서 앞날에 있어서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한 가운데 나 자성(自性), 참나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달라서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 있는가. 오직 그 목적 하나가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앞으로도 몇억만 겁을 육도(六道)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통(生死苦痛) 속에서 흘러갈 것인가.
그 문제를 해결 짓기 위해서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조사선(祖師禪) 활구법문(活句法門)을 자주자주 들어야 하고, 그런 법회를 열기 위해서는 법당(法堂)을 넓혀야겠고, 법당을 넓히는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에 전라북도 남원 대복사(大福寺) 중창(重創)에 대한 유래(由來)에 설화를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과거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우리가 지은 그 업(業)의 원인으로 인해서 이렇게 여기서 죽어서 저가 태어나고, 저기서 죽어서 여기 태어나기를 몇천만 번을 거듭하면서 천당(天堂)에 올라갔다, 사람이 되었다, 지옥(地獄)으로 떨어졌다, 축생(畜生)이 되었다, 귀신(鬼神)이 되었다, 수라(修羅)가 되었다, 이렇게 육도(六道)를 돌고 돌면서 금생(今生)에 다행히 인도(人道)에 태어나 가지고 법보선원 이 법당(法堂)에 모여서 오늘 이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인 그 원인이 아무 까닭 없이 우연히 이렇게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꼭 이 자리에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원인을 우리 스스로가 심어 놓아 가지고 그 종자(種子)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 일분일초 동안도 아무 생각 없이 고냥 고대로 있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생각이던지 일어나면 그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또 그 생각이 꺼지면 꺼지자마자 또 딴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이 일어났다 또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없어지고, 없어지면 또 생겨나고, 이래서 생각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 생각이 바로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행동으로 인해서 업(業)을 짓고, 업을 지음으로 해서 또 다음 업을 또 맞이하게 되게,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참선법(參禪法)을 통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 해서 그 생사심(生死心),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지 아니한 이상은 우리는 그러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앞으로 한량없는 세월 동안 또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남원 읍내 대복이와 같이, 관리(官吏)로서 그러한 착취(搾取)를 하고, 대복이의 증조, 대복이의 부친, 대대(代代)로 내려가면서 못된 짓을 하게 되면 구렁이 되기 십상팔구(十常八九)입니다. 구랭이가 안 되면은 지옥(地獄)에 갈 것이고, 지옥에 안 가면은 소나 말이 되어 가지고 그 빚을 갚아야 되는 것이여.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罪)를 갚으려고 든다면 과거로부터 금생에까지 온 세월, 몇백만 배의 세월을 거쳐도 갚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아무리 갚는다 해도 갚으면서 또 업을 짓게 되기 때문에 생사윤회는 끊일 날이 없는 것이여.

다행히 우리는 삼천년 전에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12년간의 고행(苦行) 끝에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부처님의 은혜로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 생사윤회부터 해탈(解脫)할 수 있는 위없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활구참선법에 의해서만이 그 무량겁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하면서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윤회(生死輪廻)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그러한 법(法)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도량(道場)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그러한 도량에 발을 들여놓았건만, 바른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용화선원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아니하고 여기서 먹고 자고 똥을 싸면서 죽을 때까지 있어 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바른 약(藥)을 알고, 바른 약을 얻었으면 그 약을 여법(如法)히 잘 복용(服用)을 함으로써 병(病)을 낫을 수가 있는 것이지, 약을 알았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그 약을 구해서 호주머니에 넣어 놓고 있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이 아닌 것처럼, 법문(法門)을 들었다고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화사에서 기거를 하고 있다고 해서 또 공부가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法)을 들었걸랑 한시 일분일초를 아껴서 잠시도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생각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날 그 찰나(刹那)를 바로 되잡아 돌려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회광반조(回光返照)를 할 때에 우리의 한량없는 업장(業障)은 봄눈 녹듯이 그 자리에서 녹아지는 것입니다.

원래 죄(罪)라고 하는 것은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죄의 종자(種子)가 따로 있어서 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이기 때문에 그 마음자리 그것만을 올바르게 찾아서 깨달을 때에, 올바르게 찾고 있을 때, 죄는 이미 우리로부터 녹아지는 것이고 새로운 죄도 우리에게는 발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4분49초~15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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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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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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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일념(한생각)단속2021. 2. 17. 08:08

일념단속((No.405))—(게송)巍巍落落赤裸裸~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사람 사람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 ‘이뭣고?’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한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8분 48초)


[법문] 송담스님(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여.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 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혀.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부처님 자신이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일체에는 망(妄)이 없고, 당신은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조금도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으로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 있고, 그 일념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이여.

기사년 납월팔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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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깨달음((No.054))—아는 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 활구참선과 사구참선. 사구참선은 깨달을 기약이 없다 | 화두는 선지식에게 받은 본참화두 하나를 일여하게 밀고 나가야 | 화두 하나 제대로 들을 줄 알고 올바르게 단속해 나갈 줄 알면은 참선은 문제가 없다.

*아는 것과 깨달음 ; 송담스님(No.124)—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 법어(80.05.28)에서.

 

'우리는 이 세상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전부가 부처님의 몸뚱이요,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는 부처님의 참 설법이다' 이렇게 믿고.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고, 우리 몸 이대로 고대로 성불(成佛)이고 그대로 열반(涅槃)이다. 따로 버려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증득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서 그리고서 참선(參禪)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내용을 경(經)을 통해서 알았다고 해서, 그렇게 믿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우리가 참선이 할 필요도 없고 깨달을 필요도 없고, 무슨 뭐 법문을 들을 필요도 없고 법을 설할 필요도 없고, 중생을 제도할 필요도 없고 제도 받을 필요도 없다. 뭐 있는 그대로가 바로 열반인데 무슨 생사해탈을 하냐' 그래 가지고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자고.

참으로 이 도리를 요달(了達)한 사람은 할 일이라고는 없어서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그뿐인 것입니다마는. 요달하지 못한 분상에는, 아까 '이대로가 곧 전부가 열반이요, 열반이기 때문에 벗어야 할 생사도 없다'고 하는 내용을 알기만 알았지, 실지 그러한 경계에 자기가 계합(契合)하지 못하고 투철하지 못한 분상에는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야 하고,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목숨 바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그것이, 아는 것 그것 가지고 생사(生死)에 자유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에 아는 것이 그것이 도(道)고, 아는 것으로써 구경(究竟)의 경지라고 한다면 가르켜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라면 가르켜 줄 수가 있어요.
그러나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의 뜻을 아무리 알아듣기 쉽게 납득이 되도록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그럴싸하게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런 뜻이로구나' 이렇게 우리는 그런 경전에 있는 어려운 말씀을 어느 정도 납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별지(分別智)로써, 중생의 분별지로써 이해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아는 것이지, 그것이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분별지로 아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그럴싸하게 알았다 하드라도 깨달음이 아니라 바로 그것은 중생의 분별지(分別智)요, 분별지는 생사를 윤회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가 다른 데에서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심이 끊어지지 아니하면 천하 없이 그 생각이 옳은 생각이요, 경전에 쓰여 있는 말씀 고대로를 외우고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분별심으로 따지고 있는 동안에는 어디까지나 부처님 말씀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분별지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분별지로 무엇을 알고, 분별지가 끊어지지 않는 동안에는 계속 생사윤회의 원인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경전에 있는 말씀을 올바르게 배우고 알았다면 목숨 바쳐서—정말 생사가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 이튿날로 미룰 것도 아니요, 그날 저녁으로 미룰 것도 아니고 당장 그 자리에서부터 바른 선지식을 찾아서 선지식의 지도하에 참선을 하는 그 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도리는 가르켜 줄래야 가르켜 줄 수가 없는 것이지만 자기의 모든 정성을 다해서 가르켜 줄려고 노력을 해야 그것이 바로 자비심(慈悲心)이고, 이 도리는 배울 수가 없는 것이지만 목숨을 바쳐서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 버릴 정도의 그러한 철저한 신심으로 배울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12분56초~19분13초)

 

(6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054)—1977년 9월 관음재일(77.09.24) (용054)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이리저리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론적으로 따지고, 경전에 있는 교리를 등용을 해서 따지고, 자기가 어떤 스님한테 들은 법문을 듣고 이리저리 비교하고 따져서 '아하! 이것이로구나! 이렇구나! 아!' 그렇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은 마침내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참선은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이기 때문에 영원히 해 봤자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또는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 가운데 '화두(話頭)는 어떠한 책이나 잡지나 신문, 그러한 데에서 보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화두를 선택하지 말고 반드시 선지식에게 딱! 하나를 받아 가지고 해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 어디서 지내가는 말로 듣거나, 책에서 봐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선택을 한 화두는 해 나가다가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 화두가 좋은가, 나쁜가?' 자꾸 스스로 그것을 혐의를 하고 의심을 해 가지고 중간에 갈팡질팡을 하게 되기 때문에 공부가 크게 장애를 받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배로부터 화두를 딱! 지정을 받아 가지고 한 번 받았으면은 다시는 그것을 변경을 하지 말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때까지 일여(一如)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어떠한 화두라도 처음부터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어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곧 잘될 것 같다가 얼마 동안 해 가면 영 답답하고 화두가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점점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면서 그 애를 먹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더라도 딴생각을 내지 말고, 잘 그 마음을 써서 한 생각 한 생각, 일 분 일 분을 법(法)답게 간절히 공부를 지어 나간다고 하면은 반드시 그렇게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치도록 애를 먹혔던 그 화두가 들려고 안 해도 정말 제절로 화두가 들리면서 순일무잡하게 정진이 되어가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간다 해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생각 '아! 인자 되었다. 참! 좋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을 먹게 되기 마련입니다마는 그 생각이 고약한 망상 중에는 최고 가는 고약한 망상인 것입니다.

보통 때,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른 것은 뿌리 없는 생각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절로 없어지지마는, 공부가 한참 잘되어 갈 고비에 이르러서 '아! 참 좋다. 아! 이렇게 계속 잘되었으면' 아, 이러한 생각을 낸 것은 고비를 넘을려고 한 판에 뒷걸음질을 쳐서 천길만길 구렁텅이로 빠져 버린 것과 같애서 그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갈 때에 그러한 생각 내는 것은 아주 타당한 것 같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최고로 고약한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 둬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잘 안되어도 짜증을 내지 말고, 공부가 잘되어 가도 좋아하는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계속 한결같이 이 화두를 들고 나가되, 잘 안되어갈 때—가슴이 답답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몸이 뒤틀리도록 괴롭고 지루하고 이럴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직선으로 따악 길을 정해 놓고 그 길을 왔다갔다하면서 포행(布行)을 하는 가운데에 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고요해지고 깨끗해지면 다시 또 방석에 가서 또 정진을 하시는데.

이 화두를, 화두 하나 제대로 들을 줄 알고 올바르게 단속해 나갈 줄 알면은 참선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간단한 한마디요, 쉬운 한마디지마는 그 화두를 옳게 단속하기라 하는 것은 대단히 쉬운 가운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가끔 법회 때 나와서, 듣던 말이지마는 또 듣고 또 듣고 함으로 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또 자기도 모르는 여러 가지 버릇을 하나하나 고쳐 나감으로 해서 멀리 삐뜰어지기 전에 바른길로 돌아선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법회 때에는 꼭 빠지지 마시고 참예를 하시라고 하는 것입니다.(38분37초~44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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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우란분재2021. 1. 24. 16:53

백종(百種)날((No.479))—백종 법회로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축생 · 아귀 · 지옥,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는 근본. 원인 |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의 마음을 돌릴 때,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화합이 되는 것.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백중일(百中日) · 백중(百中/百衆) · 백종(百種) · 백종(百種)날이라고도 한다.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로,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재 盂蘭盆齋).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 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재(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齋)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1분 6초)

[법문]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오늘은 백종날, '일백 백(百)' 자, '가지 종(種)' 자, 백종(百種).

백 가지의 과일과 음식으로써 부처님과 오늘 해제를 맞이한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림으로 해서, 그 공양을 받으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위해서 그 청정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축원(祝願)을 해 주시기 때문에, 또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우리의 삼악도(三惡道)에 빠져서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가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중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에 빠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부인(靑提夫人)을 그 고통으로부터 구제(救濟)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애를 썼으나 워낙 그 업(業)이 중(重)하기 때문에 목련존자의 신통력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그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가르켜주시라'고 간청(懇請)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백 가지 과일과 백 가지 음식으로써 오늘 해제(解制)를 맞이한 대중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리도록 권하셨던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백 가지 음식과 과일, 맛있는 공양으로써 해제를 맞이한 스님네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功德)으로 청제부인은 무서운 지옥고로부터 벗어났던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因緣)으로 해서 해마다 돌아오는 해제일, 7월 15일 백중날에는 지옥(地獄)에 문(門)이 열려서 오늘 이 법당(法堂)에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이, 선망부모에 그 영가(靈駕)들이 어데서 무슨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 이 법회(法會)에 귀빈(貴賓)으로 초청(招請)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들도 또 이 법보전(法寶殿)에 만년위패(萬年位牌) 법보영가들과 함께 법문(法門)을 듣고 또 여러분의 정성으로 올리는 많은 과일과 음식을 공양을 받고 그리고서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고 받고 있는 우리의 부모들의 얼마나 그 고통스러운가를 우리는 우리의 육안(肉眼)으로는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마는, 경전이나 또는 드라마나 그런 영화 같은 것을 통해서 우리는 실지로 본 바와 다름없을 만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전이나 그런 영화에 나오는 고통은 그 일부에 지내지 않고, 정말 그 팔만사천 감옥에서 고통 받는 모냥은 우리는 차마 볼 수가 없고 말로써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인 것입니다.


왜 그러한 고통을 받게 되느냐? 순전히 탐심(貪心) 때문입니다. 탐심, 무엇이든지 자기 욕심(欲心)을 부리는 거여.

그다음에는 진심(瞋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안되면은 썽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생의 버릇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의 주장을 하다가 자기 주장대로 안되면 썽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해 보고 안되고, 두 번 해 봐도 안되고, 세 번 해 봐도 안되면, '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는 것은 내 욕심대로 무엇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로구나. 내 주장만 내세우다 보니까 상대방과 부딪치게 되고 결국은 싸우게 되고 서로 감정을 사게 되는구나. 그러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尊重)하고, 내 주장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양보할 중도 알고, 이렇게 해야 서로 화합(和合)이 되고 서로 마음과 마음이 합하고 힘과 힘이 합해서 어떠한 어려운 일도 성공할 수가 있겠구나' 이렇게 지혜(智慧)로운 마음을 내야 할 텐데,

어려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그러한 지혜로운 마음을 낼 줄을 모르고 끝까지 점점 고집이 세어지고 심술이 궂어지고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이 조끔도 누그러지지 않아. 그러니 그것이 어리석은 중생(衆生)이더라 그 말이여.

탐내는 마음, 썽내는 마음, 그걸 빨리 깨달을 줄을 모르고 끝까지 버릇을 못 고치니 그것이 어리석더라 그거거든.


그래서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은 자기도 지옥고로 가고, 남도 뒤흔들어서 남에게 해독(害毒)을 끼친 그런 악한 못된 독(毒)이더라 이거거든.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축생 · 아귀 · 지옥에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 거여. 삼악도에 근본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거든.


선방(禪房)에서도 자기의 욕심만 챙기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고, 그래 가지고 그 안되면은 썽내고, 간 곳 마다 그러한 성질을 쓰는 사람.

가정(家庭)에서도, 가정이라는 게 참 가장 가까운 식구끼린데, 어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자기의 욕심만을 챙기고 그래 가지고는 부모자식 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부부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고부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형제자매 간에도 화합이 안되는 거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여. 관공서나 회사에서나 어느 단체 어느 모임에 가서도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되는 일이 없어.


국회도 마찬가지요, 정부도 마찬가이요, 당(黨)도 마찬가지요, 어떠한 친목 단체도 마찬가지여.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주장만 옳다 그러고, 상대방의 의사를 짓밟고 업신여겨 가지고서는 잘될 수가 없어요. 큰 기업체도 그렇게 해서 망(亡)하고 큰 국가도 그렇게 해서 망(亡)하는 거야.

잘못된 것은 전부 상대방한테 몰아붙여. 여당은 야당한테 몰아붙이고 야당은 여당한테 몰아붙이지만, 책임은 각자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할 때에 그 집안이 화목을 찾게 되고, 국회도 정상화되고 한 당내(黨內)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여.


불법(佛法)을 올바르게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실천한 사람이라야 '자기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의 마음을 돌릴 때, 상대방의 마음도 누그러지고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화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단한 원리를 모른 사람이 어떻게 큰 정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대통령 선거니 무슨 지방장 선거니 그런 게 있겠습니다마는,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을 역적(逆賊)으로 몰아붙이는, 이조(李朝)에 노론(老論) 소론(少論) 그런 사색정당(四色政黨)과 같은 그런 사람에게는 표를 찍어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표를 던지면 또 이조와 같이 나라를 망해 먹고, 나라를 왜(倭)놈한테 팔아넘길 수밖에는 없게 될 것이여.(38분35초~49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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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