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우란분재2024. 3. 30. 11:16

백종(No.210)—백종날, 백일기도 회향날, 하안거 해제일 | 선망부모를 천도(薦度)하는 날. 목련(目連) 존자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는 날 | 석 달 동안 청정하게 도(道)를 닦으신 스님네께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목련 존자의 어머니를 천상에 태어나시게 한 그러한 날.


*백종(百種)날 ; 음력 칠월 보름날. 백중일(百中日) · 백중(百中/百衆) · 백중(百中)날 · 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로,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재 盂蘭盆齋).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 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재(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齋)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4분 45초)


[법문] 송담스님(No.210)—1983년 칠석법회(83.08.15) (용210)

앞으로 일주일 후면 음력 7월 보름날 백종날이 돌아옵니다. 그날은 백일기도 회향날이며, 여름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그날을 기해서 지옥문이 열려 가지고 우리의 다생(多生)에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우리와 인연 있는 모든 영가(靈駕)들이 하루 동안 특별휴가를 맡아 가지고 오시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우리 법보전(法寶殿)에서도 선망부모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이 거행이 됩니다.

그날은 여러분께서도 잘아신 바와 같이 목련(目連) 존자가 그 죄를 짓고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는 날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 어머니를 천도했느냐 하면,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法)과 부처님의 제자들 스님네께 만 가지 온갖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과일 공양(供養)을 올려서, 그 석 달 동안 청정한 마음으로 도(道)를 닦으신 스님네께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청제부인, 목련 존자의 어머니를 천상(天上)에 태어나시게 한 그러한 날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또 가족이라든지 친척이라든지 이웃 친구들 모다 권고해서 오셔서 동참을 하시고,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만년위패에 모시지 아니한 분도 임시위패라도 모셔서 선망부모를 천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날 모다 지옥문이 열려서 오셨다가 내 아들, 내 며느리, 내 딸이 안 왔나 하고 두루 찾아보아도 다른 사람은 다 왔는데 자기의 아들딸들이 안 왔으면 얼마나 섭섭하고 서운하게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영가(靈駕)의 세계나, 우리 이 살아 있는 우리 인간 세계나 그 정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 그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번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무슨 뭐 영가고 뭐 그런 게 소용 있느냐?’ 이러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영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이 세계나 쪼끔도 다름이 없고 오히려 더 정확하고 더 영특하고 그런 것입니다.

오늘은 칠석날에 한 생각 일으키고, 말 한마디 하는 그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설화를 말씀을 드리고, 그러기 때문에 그 한 생각, 한마디를 조심할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참선(參禪)을 해 나가면은 생사해탈(生死解脫)도 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법문(法門)을 해 드렸습니다.(60분30초~65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어)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천도 법요식(薦度 法要式) ; 천도재(薦度齋).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 · 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목련(목건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둘이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컫고,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과거 전생에 부모에게 한 악행의 과보로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목련(目連) 존자가 그 죄를 짓고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는 날입니다’ ; 
>>> 위의 법문 내용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 • 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오늘은 칠석날에 한 생각 일으키고, 말 한마디 하는 그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설화를 말씀을 드리고’ ; 부처님의 ‘큰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 제24책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제11.
>>> 위의 법문 내용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우란분재2021. 7. 20. 05:24

우란분((No.645))—(게송)兀兀無事對靑山 | ‘백중(百中)날’은 옛날부터 ‘부모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 | 『목련경(目連經)』 목련존자와 어머니 청제부인 | 칠월 해제 때 대중 스님께 공양(供養) 올린 공덕으로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조상 선망부모를 구제한다.
'우리 자신들도 과연 삼악도에 안 떨어지고 세세생생에 생사윤회 속에 빠지지 않고 해탈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냉정히 스스로를 반성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야.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3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야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다.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하고,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한단 말은 일체를 도막사량(都莫思量) 하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생노병사까지라도 다 놓아 버렸으니 이것이 일 없는 무사(無事) 한도인(閑道人)이거든. 그리고서 청산을 떠억 대하고 앉아서 정진하는 거동(擧動)을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더위도 잊어버리고, 일체 시비(是非)도 다 끊어져 버리고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해서 석 달 해제를 맞이했어.
그러니 그 기상이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여. 그 청정하고 의연한 자세가 하늘에 뻗찌르는, 그러고 사해(四海)를 덮고도 남을 만한 그런 기상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천마(天魔),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의 권속들이 그런 것들이 다 그 앞에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그 말이거든.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옳고 그른 것을 다 놔 버리고,
일여청류(日與淸流)로 소명월(掃明月)이다. 날마다 흐르는 물이 마치 명월(明月)을 씻은 거와 같이 그렇게 모다—‘어떻게 흐르는 물이 명월(明月)을 씻느냐’ 하면은 하늘에 밝은 달이 물에 비추는데, 그 맑은 물이 계속 흘러가니까 흘러가는 물에 의해서 물에 뜬 달이 씻겨진 것에다가 비유해서, 우리가 정진하고 있는 경지가 마치 흐르는 물에 밝은 달이 씻겨가는 것에다가 비유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석 달 동안을 정진을 하셔서 그리고 해제 법요식에 이렇게 여러 곳 선방에서 운집을 했는데 오늘은 7월 15일 백중날이거든.
‘백중(百中)날’ 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부모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왜 그러냐 하면은 우란분(盂蘭盆)이라고도 하는데, 인도말로 '우란분'이라고 하는데 '우란분'이란 말을 번역을 하면 구도현(救倒懸)이여.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救濟)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려 가지고, 갖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영가를 구제하는 그래서 ‘구도현(救倒懸)’인데, 그것은 『목련경(目連經)』에 나오는 설화가—여기서 불가불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데.

목련존자(目連尊者)는 세속에 있을 때부터 효심이 지극했어. 출가하기 전에는 큰 장사를 하고, 그런데 (큰 장사를) 나갈 때 홀로 계신 어머니께 ‘어떻게 어떻게 하고 어떻게 어떻게 하시고 잘 계시라’고 했는데, 그 뜻을 전부 어기고 날마다 정법에도 어긋나고 도덕에도 어긋나는 그러한 언행으로써 갖은 악한 짓을 하다가 결국은 지옥에 떨어졌어.

지옥에 떨어져 가지고 갖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 목련존자가 출가를 해 가지고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신통제일(神通第一)인 그런 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도인이 되었는데, ‘그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어떻게 구제를 할 것인가?’ 갖은 방법으로 다 구제하려고 해도 이루어지지를 못해서, 그래서 부처님께 "지옥고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여쭈니까,
"칠월 해제 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면 석 달 동안 열심히 도를 닦은 그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린 그 공덕과 그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그 정신으로 작관(作觀)을 하고 그래서 너의 어머니를 구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셔서 목련존자는 탁발(托鉢)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려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어머니를 구제했다고 하는 목련경에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오늘도 이 해제 법요식에 많은 수행자들이 모다 이렇게 운집(雲集)을 하셨고 또 많은 청신사(靑信士) 청신녀(靑信女)들도 이 자리에 많이 모이셨습니다.
물론 이 용화사 법당 안에 모셔진 만년위패 법보영가들의 백중 천도 법요식도 아울러서 행해지겠습니다마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도 많고 그러시겠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께도 효도를 하고,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 선망부모에게도 이러한 때에 동참(同參)을 하셔서 돌아가신 분들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삼악도(三惡道)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있을런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이런 법요식에 참례를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천상 사람이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윤회를 하다가 금생에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또 이렇게 불자(佛子)로서 도반(道伴)으로서 이렇게 만나게 된 그 인연을 생각해 보면 참 깊고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와 선망부모의 천도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들도 과연 그런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의 윤회(輪廻) 속에 빠지지 않고 해탈(解脫)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런 때에 냉정히 스스로를 반성을 하고,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 그리고 청신사 · 청신녀 그리고 비구 · 비구니 여러 도반들께서는, 세상이 물질 문명은 점점 발달을 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발달이 되어서 살기는 퍽 편리하게는 되었으나, ‘진정으로 우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되었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물질 문명이 발달한 만큼 더 행복해진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속의 발달에 우리도 발을 안 맞출 수도 없고, 다 버리고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다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오직 인연 따라서 열심히 도만 닦으면 별것이 아니겠지만, 세속에서는 세속의 모든 흘러감을 외면하고 자기만 혼자 옛날처럼 살기는 퍽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전적으로 무시는 하지 아니하면서도 항상 불자(佛子)로서의 자기 마음 닦는 일에는 절대로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3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우란분재2021. 7. 5. 06:21

우란분((No.245))—(게송)多生怨債起於親~ /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치우치게 지나칠 정도로 불쌍하게 여기시더라 / 우란분=구도현(救倒懸),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 목련존자와 청제부인 / 백종의 유래 / 최상승법, 정법을 뿌리로 해서 서로 친한 인연을 맺어야.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6분 9초)

 


[법문] 송담스님(No.245)—1984년(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회(84.08.11) (용245)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한데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증위낭자편련객(曾爲浪子偏憐客)이요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多生), 무량겁(無量劫) 원수가 친한 데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말이여.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라. 그러기 때문에 다생에 사람 아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 친해지고, 친해지면 웬수가 되기 때문에 웬수를 맺고 싶지 않거든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제일이다 그 말이여.

증위낭자(曾爲浪子)라 편련객(偏憐客)이여. 일찍이 방랑 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치우쳐 객(客)을 불쌍히 여긴다 그 말이여. 자기가 직접 고향을 떠나서 타향살이, 방랑자 노릇을 많이 해 봤기 때문에 객을 보면 지나치게 그 사람에게 동정심이 가고, 그 사람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라. 내가 참!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많이 먹고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어디에서 술취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사정을 내가 충분히 이해가 되고 동정이 가더라 그 말이여.

부처님께서 무량겁(無量劫)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갖은 고행(苦行)을 겪으면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으시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내 몸을 희사(喜捨)하지 아니한 곳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수없이 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 목숨을 보시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백 겁 동안을,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동안을 그렇게 많은 고행난행(苦行難行)을 겪으면서 성불하실 때까지 그러한 경험을 가지셨기 때문에 중생을 보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면서 부처님 자신이 겪었던 일이 있기 때문에 중생의 그 윤회(輪廻)하는 모습을 보면, 고해(苦海)에 빠져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치우치게 지나칠 정도로 불쌍하게 여기시더라 그 말이여.


오늘은 갑자년 7월 15일 우란분재(盂蘭盆齋) 날입니다. ‘우란분’이라 하는 말은 ‘구도현(救倒懸),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꺼꾸로 매달렸느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린 채 갖은 고문을 당하고, 하룻밤 하루낮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살아나는 그러한 고통을 받고 계시는데 ’그 선망부모를 구제해 드리는 날이다’ 그래서 우란분이라 그래. '우란분'이란 말은 인도말로써 우리말로는 꺼꾸로 매달리는 것을 해방시켜 주는 날이다.

왜 오늘 그 꺼꾸로 매달린 선망부모를 해방을 시켜 드리는 날이냐 하면,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 십대제자(十大弟子)가 계시는데, 그 십대제자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가는 목건련(目犍連)이라 하는 존자가 계셨는데, 그 목련존자의 속가의 어머니는 이름을 청제부인이라 했는데, 그 어머니가 행실이 좋지 못하고 또 심성이 옳지 못해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지옥문」이라 하는 영화를 보셨으면 잘 아시겠지만, 그리고 또 『목련경(目連經)』을 보시면은 잘 아시겠지마는 그 청제부인이 행실이 좋지 못하고 심성이 옳지 못하고 살생을 많이 하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청제부인의 아들 목련존자가 출가해 가지고 신통(神通)을 얻어 가지고 그 ‘어머니가 어디서 무슨 고통을 받고 계신가‘ 하고 떠억 관(觀)을 해 보니까, 지옥에 떨어져서 차마 볼 수 없는 그러한 참혹한 고통을 받고 계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신통력으로 지옥에를 가 가지고 그 어머니를 만나서, 목이 마르고 배고픈데 물을 주면 그 물이 피가 되고, 밥을 주면 거기서 불이 되어 가지고 목이 훨훨훨훨 타. 아무것을 주어도 아무 효과가 없고 오히려 더 고통만을 주게 됐더라 그 말이여.

그래서 다시 부처님 계신 데로 와 가지고 부처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모친이 생존 시에 많은 죄업을 짓고, 현재 저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니 저를 생각해서라도 그 모친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사랑하는 제자 목련의 청을 듣고서 “네가 그 모친을 구제하고저 하거든 칠월 백종날—여름 해제하는 날, 모든 선원에서 해제를 하고 대중들이 한군데 모여서 자자(自恣)회를 할 때에 그날을 기해서 백 가지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부처님과 그 부처님 제자들에게 공양을 해라. 그러면 부처님과 청정한 부처님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 공양을 받아 잡숫고, 그리고 그 청정한 마음으로 축원을 해 주시면 그 공덕으로 지옥의 무서운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그 방법을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그길로 나가서 탁발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해제날을 기해서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게 백 가지 과일과 음식을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으로 지옥의 문이 열려서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부인은 지옥고를 벗어나 가지고 천상에 태어나시게 되었다. 여러분이 『목련경』을 읽으시면 좀 더 소상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날 목련존자가 어머니 청제부인을 천도(薦度)해 드리는 그것이 시초가 되어 가지고, 해마다 칠월 백중(백종)이 되면은 모든 불자(佛子)들이—동남아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들은 백종날을 기해서 백 가지 음식을 공양을 올린다 해서 백종(百種)이라 그러거든. 백종날 이렇게 우란분 천도재를 삼천년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것을 봉행(奉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에서도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천도된 그날을 기해서 일제히 지옥문을 열고서 목에 팔목에 발목에 모다 채워 놓았던 쇠사슬을 다 풀어주기 때문에, 오늘도 지금 이 용화사 법보선원 법보전 안에도 우리의 무량겁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이 법당에 가득히 와서 계십니다. 더군다나 이 법회가 시작하기 전에 그러한 우리의 선망부모 또 우주법계에 가득하신 모든 영가(靈駕)들을 다 이 자리에 법으로써 청해 모셨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그러한 여러분의 선망부모를 위해서 모두가 다 동참을 하셨고 또 지극정성으로 천도를 해 드리려는 그 정성이 넘쳐흐르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그러한 영가들은 다 천도가 되실 것입니다.

‘다생에 웬수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나니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이 게송을 여러분들이 들으시고 ‘과연 그렇기는 그렇다. 그러니 어떻게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할 수가 있을까?’
알고 지내면 친해지기 마련이고 친해지면 나중에 언젠가는 웬수가 된다니—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친(親)이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며, 알고 지내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이여.
여기서 말하는 ‘친하다’고 하는 것은 중생의 오욕락(五欲樂)을 위한 정으로 얼크러진 친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정법을 뿌리로 해서 서로 맺어진 그 친한 것이야 친하면 친할수록 모든 업을 소멸을 하고, 마침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고(生死苦)를 해탈할 수 있는 중요한 인연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중생의 사욕(私慾)을 충당하기 위해서, 오욕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알고 지내고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그 뒤끝은 물어볼 것도 없이 웬수로 맺어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맺은 그 인연으로 금생에 부모 자식 간이 되고, 형제자매가 되고, 또 부부간이 되고, 친구 간이 되고 이렇게 해서 일가친척이 되고, 그러한 관계가 전부 과거로부터 짓고 심고 맺어온 그 원인으로 해서 금생에 만나지게 됩니다마는, 과연 그 맺은 인연이 오욕락, 중생의 정으로 얼크러진 것이냐, 또는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닦아 가는 데에 있어서 그런 청정한 인연으로 맺어졌느냐는 여러분이 잘 관찰을 해 보면 짐작이 갈 것입니다.(처음~16분2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우란분재2021. 1. 24. 16:53

백종(百種)날((No.479))—백종 법회로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축생 · 아귀 · 지옥,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는 근본. 원인 |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의 마음을 돌릴 때,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화합이 되는 것.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백중일(百中日) · 백중(百中/百衆) · 백종(百種) · 백종(百種)날이라고도 한다.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로,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재 盂蘭盆齋).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 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재(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齋)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1분 6초)

[법문]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오늘은 백종날, '일백 백(百)' 자, '가지 종(種)' 자, 백종(百種).

백 가지의 과일과 음식으로써 부처님과 오늘 해제를 맞이한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림으로 해서, 그 공양을 받으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위해서 그 청정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축원(祝願)을 해 주시기 때문에, 또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우리의 삼악도(三惡道)에 빠져서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가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중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에 빠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부인(靑提夫人)을 그 고통으로부터 구제(救濟)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애를 썼으나 워낙 그 업(業)이 중(重)하기 때문에 목련존자의 신통력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그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가르켜주시라'고 간청(懇請)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백 가지 과일과 백 가지 음식으로써 오늘 해제(解制)를 맞이한 대중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리도록 권하셨던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백 가지 음식과 과일, 맛있는 공양으로써 해제를 맞이한 스님네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功德)으로 청제부인은 무서운 지옥고로부터 벗어났던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因緣)으로 해서 해마다 돌아오는 해제일, 7월 15일 백중날에는 지옥(地獄)에 문(門)이 열려서 오늘 이 법당(法堂)에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이, 선망부모에 그 영가(靈駕)들이 어데서 무슨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 이 법회(法會)에 귀빈(貴賓)으로 초청(招請)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들도 또 이 법보전(法寶殿)에 만년위패(萬年位牌) 법보영가들과 함께 법문(法門)을 듣고 또 여러분의 정성으로 올리는 많은 과일과 음식을 공양을 받고 그리고서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고 받고 있는 우리의 부모들의 얼마나 그 고통스러운가를 우리는 우리의 육안(肉眼)으로는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마는, 경전이나 또는 드라마나 그런 영화 같은 것을 통해서 우리는 실지로 본 바와 다름없을 만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전이나 그런 영화에 나오는 고통은 그 일부에 지내지 않고, 정말 그 팔만사천 감옥에서 고통 받는 모냥은 우리는 차마 볼 수가 없고 말로써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인 것입니다.


왜 그러한 고통을 받게 되느냐? 순전히 탐심(貪心) 때문입니다. 탐심, 무엇이든지 자기 욕심(欲心)을 부리는 거여.

그다음에는 진심(瞋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안되면은 썽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생의 버릇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의 주장을 하다가 자기 주장대로 안되면 썽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해 보고 안되고, 두 번 해 봐도 안되고, 세 번 해 봐도 안되면, '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는 것은 내 욕심대로 무엇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로구나. 내 주장만 내세우다 보니까 상대방과 부딪치게 되고 결국은 싸우게 되고 서로 감정을 사게 되는구나. 그러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尊重)하고, 내 주장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양보할 중도 알고, 이렇게 해야 서로 화합(和合)이 되고 서로 마음과 마음이 합하고 힘과 힘이 합해서 어떠한 어려운 일도 성공할 수가 있겠구나' 이렇게 지혜(智慧)로운 마음을 내야 할 텐데,

어려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그러한 지혜로운 마음을 낼 줄을 모르고 끝까지 점점 고집이 세어지고 심술이 궂어지고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이 조끔도 누그러지지 않아. 그러니 그것이 어리석은 중생(衆生)이더라 그 말이여.

탐내는 마음, 썽내는 마음, 그걸 빨리 깨달을 줄을 모르고 끝까지 버릇을 못 고치니 그것이 어리석더라 그거거든.


그래서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은 자기도 지옥고로 가고, 남도 뒤흔들어서 남에게 해독(害毒)을 끼친 그런 악한 못된 독(毒)이더라 이거거든.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축생 · 아귀 · 지옥에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 거여. 삼악도에 근본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거든.


선방(禪房)에서도 자기의 욕심만 챙기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고, 그래 가지고 그 안되면은 썽내고, 간 곳 마다 그러한 성질을 쓰는 사람.

가정(家庭)에서도, 가정이라는 게 참 가장 가까운 식구끼린데, 어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자기의 욕심만을 챙기고 그래 가지고는 부모자식 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부부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고부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형제자매 간에도 화합이 안되는 거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여. 관공서나 회사에서나 어느 단체 어느 모임에 가서도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되는 일이 없어.


국회도 마찬가지요, 정부도 마찬가이요, 당(黨)도 마찬가지요, 어떠한 친목 단체도 마찬가지여.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주장만 옳다 그러고, 상대방의 의사를 짓밟고 업신여겨 가지고서는 잘될 수가 없어요. 큰 기업체도 그렇게 해서 망(亡)하고 큰 국가도 그렇게 해서 망(亡)하는 거야.

잘못된 것은 전부 상대방한테 몰아붙여. 여당은 야당한테 몰아붙이고 야당은 여당한테 몰아붙이지만, 책임은 각자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할 때에 그 집안이 화목을 찾게 되고, 국회도 정상화되고 한 당내(黨內)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여.


불법(佛法)을 올바르게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실천한 사람이라야 '자기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의 마음을 돌릴 때, 상대방의 마음도 누그러지고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화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단한 원리를 모른 사람이 어떻게 큰 정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대통령 선거니 무슨 지방장 선거니 그런 게 있겠습니다마는,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을 역적(逆賊)으로 몰아붙이는, 이조(李朝)에 노론(老論) 소론(少論) 그런 사색정당(四色政黨)과 같은 그런 사람에게는 표를 찍어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표를 던지면 또 이조와 같이 나라를 망해 먹고, 나라를 왜(倭)놈한테 팔아넘길 수밖에는 없게 될 것이여.(38분35초~49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우란분재2020. 11. 4. 08:27

우란분재(No.454)—(게송)若人透得上頭關~ | 백종(百種) 우란분재(盂蘭盆齋).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薦度) | 불설목련경(佛說目連經). 나복(목련존자)의 그 어머니 청제 부인 구제.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 20분 47초.

(2) 9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454)—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1)------------------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뚫어 버리면 비로소 산하대지가 너그러운 줄을 깨달을 것이다. 상두관(上頭關). 상두관은 확철대오(廓徹大悟), 생사 없는 도리를 확철대오 하는 것이어.

 

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너그러운 것을 깨달아.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고 막힐 것이 없고.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인간의 분별계(分別界)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요. 푸른 물과 푸른 산에 무엇이 걸릴 것이 있느냐.

 

분별심. ‘어디는 좋고 어디는 나쁘고, 어디는 수용(受用)이 좋고, 어디는 공기가 좋고, 어디는 경치가 좋고, 어디는 시끄럽고...’ 그러한 분별계에 떨어지기 때문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에이, 저기는 안 좋다더라, 이리 가자. 저리 가면 운력(運力)이 많고, 이리 가면 수용이 좋고...’

그래 가지고 해제를 해 가지고 방부(房付)를 들일 때가 되면은 그것 때문에 몹시 모다 복잡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화두를 타파해 버리고 분별심만 없다면 동쪽으로 간들 무엇이 걸리며, 남쪽으로 간들 무엇이 걸릴 것이냐.

어느 선방 어느 절에 간다 하더라도 분별심만 떨어져 버리고, 오직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건 줄만 확실히 느끼고서 정진해 나간다면 어디를 간들 걸릴 것이냐 그말이여.

 

 

오늘 신미년 해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삼십 명 대중과 보살선원의 백육십여 명의 보살 대중을 비롯해서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또 전주 위봉사 비구니 선객 대중, 그리고 의정부 회룡사 회룡선원 대중, 그리고 수원에 보명선원 대중, 기타 멀고 가까운 모두 선원이나 사암(寺庵)에서 정진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들이 이렇게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안팎에 가득히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이 해제 법요식(法要式)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 활구선을 수행해 나가는 것에 대한 자상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에다가 백종(百種) 우란분재(盂蘭盆齋),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薦度)하는 백종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이 백종날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날로 오래전부터서 전해 내려오는 날인데, 일주일 전에 칠석날은 살아 있는 사람의 수명장수와 복덕구족을 비는 그러한 전통 법요식 날이라면, 오늘은 돌아가신 분, 선망부모나 선망 칠세(七世) 부모, 억겁다생(億劫多生)의 선망부모와 또 인연 있는 가족 친척의 모다 영가(靈駕)를 천도하는 그러한 참 뜻깊은 날입니다.

 

어째서 오늘 이 백중날, 7월15일 해제날 우리의 선망부모를 천도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부처님 때부터서 부처님의 제자 목련존자(目連尊者)가 부처님의 법력(法力)과 부처님의 지시에 따라서 죄를 짓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 있는 어머니 청제 부인을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은 이래로 오늘날까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날로 전해 내려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마는 우란분(盂蘭盆)이란 말은 인도 말인데 구도현(救倒懸),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하는 날이다.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거꾸로 매달려 가지고 참 무서운 고(苦)를 받는 선망부모를 그걸 구제하는 날이다’ 그래서 우란분재인데.

 

 

목련존자는 원래 백만장자의 아들로 왕사성에 태어났었는데 그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그 청제 부인이라고 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재산이 차츰 없어지고 삼천 관이 남았어.

 

삼천 관(三千貫)이라 하면은 요새 돈으로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삼천 관이 남아서 그 천 관은 어머니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집안 살림을 꾸려 가시라’ 그러고.

또 천 관은 ‘이것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좋은 곳으로 가시기 위해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공양(供養)을 올리고 매일 오백 명의 수행하는 스님네들을 초청해다가 공양을 올리도록’ 그렇게 부탁을 하고,

그 다음에 천 관은 ‘자기가 가지고 저 멀리 가서 장사를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 관은 자기가 가지고 가고, 이천 관은 어머니께 맡기고 떠났습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이신 청제 부인은 이천 관이라고 하는 큰돈을 가지고 아들이 떠난 그 다음날부터서 종을 모다 불러다 놓고,

“이제 아들이 떠났다. 그러니 이 재산과 모든 것은 내 권한이고 내 책임이니까, 첫째 너희들이 주의할 것은 승려들이 우리집 앞에 얼씬을 못하게 해라. 와서 나를 교화하려고 하거나, 탁발을 오거나 걸식을 오면은 무조건 몽둥이로 뚜드려 패서 쫓고 그래도 안 가면 때려 죽여라”

 

그렇게 아주 엄명을 내려 놓고, 그리고서는 날이면 날마다 돼지와 양과 닭과 개 이런 짐승들을 사서, 강아지 모다 그런 것을 사서 모아 가지고 잘 먹여 가지고는, 그놈이 살진 다음에는 그놈을 매달아 놓고 칼로 찔러서 피를 받아서 동이에다 담고, 그리고 그놈을 뚜드려 패서 피를 모아 가지고,

그 피로 무엇을 하느냐 하면은 사교(邪敎), 삿된 종교를 믿어 가지고 제를 지내. 그래야 자기가 부자가 되고 그런다 해 가지고.

 

근자에 오대양 사건(五大洋事件)으로 그 삿된 종교를 믿어 가지고 모다 사기를 치고, 사람을 모다 자살을 했는지 타살을 했는지 많은 사람을 죽이고 해 가지고 몇 해 전에 있었던 사건인데, 요새 그것이 다시 자수한답시고 뒤집어져 가지고 요새 세상을 참 시끄럽게 하고 있는데 사교를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종교를 믿을라면은 정교(正敎), 정법(正法)을 믿어야지 삿된 종교를 믿으면 저도 죽고 남도 죽이고 사회도 그것으로 인해서 혼란이 일어나고 나라도 망하는 법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져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여. 사교라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을 지내고 있는데, 그 목련존자는 고향을 떠나가지고 천 관을 가지고 가 가지고 장사를 잘해서 삼천 관이나 돈을 벌어 가지고 고향에 돌아왔어.

돌아오는데 그 먼저 자기 수하를 보내 가지고, 가서 우리 어머니가 내 말대로 살림을 잘 꾸려 나가고 또 날마다 오백 스님네를 청해다가 공양을 올리고 이렇게 잘하고 계시면 내가 이 삼천 관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잘살 것이고, 어머니가 그것을 지키지 아니 하시고 잘못하고 계신다면은 나는 이 길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길로 가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 이 돈을 다 보시를 하고 공양을 하리라.

 

그렇게 해서 사람을 보내 보니까, 그 (청제 부인의) 종이 멀리 바라보니 그 목련존자와—목련존자는 그때는 목련존자가 아니고 나복(羅卜)인데, 나복이와 같이 떠난 종이 저만큼 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나복이) 온다고 그 청제 부인한데 말하니까 “그럼 나가서 문을 처닫고 못 들어오게 하라” 그래 놓고는 갑자기 모다 돼지, 뭐 매달아 놓은 거 다 치우고 그리고는 그릇이다, 반찬 그릇이다 모두 다 널어놓고 오백 승(僧)을 모셔다가 공양을 올린 것처럼 모다 다 꾸며 놨다 그말이여.

 

그래 놓고는 (나복의) 종에다가 “여봐라, 내가 내 아들이 떠난 뒤에 3년 동안을 이렇게 오백 승을 청해다가 공양을 올리고 재를 지내고 이렇게 잘했다. 그러니 어서 도련님을 모시고 오너라”

 

그래 인자 목련존자는 그 종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와 가지고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떠난 뒤에 사교를 믿고 살생을 하고, 집에 오는 스님네는 날마다 몽둥이로 뚜드려 패서 죄만 많이 짓고 그랬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나복이가 거기서 혼절을 해 가지고 넘어졌다 그말이여.

 

그래 청제 부인은 이제나 올까, 저제나 돌아올까 하고 만단(萬端)의 준비를 해 놓고 기다려도 아들이 안 오니까, 그래 나가 보니 아들이 기절을 해 가지고 땅에 쓰러져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흔들어 깨웠어.

그래 가지고 “너는 내가 맹세한 것을 잘 들어 봐라. 저 강물이 저렇게 출렁이건만 그 상류에는 반드시 근원이 있는 법이다.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자는 적고, 사람을 망하게 하는 자는 많은 것이니라” 아주 시치미를 뚝 따고,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놓는데,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내가 만일 네가 집을 떠난 뒤로부터 날마다 너를 위해 오백 승을 청해다가 재를 올리지 않았다면 이제 내가 집에 돌아가자마자 중병에 걸려 가지고 7일 뒤에는 죽어 가지고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맹세를 해도 못 믿겠느냐?” 그러니까,

목련 존자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머니가 저렇게 까지 맹세를 하시니 어머니 말씀이 옳겠지’하고, 집에 가보니까 정말 오백 스님네를 청해다가 공양을 올린 뒤의 반찬 그릇이 늘어져 있고, 음식 그릇이 널어져 있고 숟갈과 그런 것이 모다 있는데, 거판스럽게 모다 큰 잔치한 뒤끝이 분명하다 그말이여.

 

‘그렇구나! 마을 사람이 공연히 나한테 어머니를 모략(謀略)을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 있는데, 아!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나더니 중병에 걸려 가지고 7일 뒤에는 돌아가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 너무 기가 막혀서 어머니를 갖다가 장례를 잘 지내고, 3년 동안을 시묘(侍墓)살이를 했어.

 

시묘살이를 하고, 그 정성을 다해서 어머니가 참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축원을 하면서 시묘살이를 하고서 살림을 다 정리해 버리고 그리고 부처님을 찾아가서 출가를 했습니다.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열심히 도를 닦았어.

도를 닦아 가지고 십대제자(十大弟子) 중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이 되었어. 십대제자 중에 여러 가지 참 훌륭한 제자들이 많지마는 신통으로서는 목련존자를 덮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제자가 되었으나 신통으로써 저 천상에를 올라가 보니 ‘틀림없이 거기를 가면 아버지도 거기 계실 것이고 어머니도 거기 계실 것이다’하고 올라가서 보니까 화락천(化樂天)에를 가니 아버지는 거기 계셔서 만났는데 어머니가 없어.

‘그 이상하다’하고 내려와서 부처님께 여쭈니까 “느그 어머니는 죄를 많이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다”

 

어머니가 죄를 지을 리가 없고, 그래 지옥에 가서 이리저리 다 온갖 지옥을, 팔만 지옥을 다 찾아봐도 어머니를 못 찾어. 그래서 부처님 앞에 다시 와서 여쭤보니까 “너의 어머니는 무간지옥에 가서 있느니라”

그래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찾아가서 들어가려고 그러니 어떻게 성벽이 높고 칠중(七重)으로 싸여 가지고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어. 문을 열 수가 없어.

 

그래서 다시 부처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그 무간지옥을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처음~20분55초)

 

 

 

 

(2)------------------

 

“보통 신통으로도 못 들어간다”

부처님께서 가사(袈裟)를 벗어서 주시고 그것을 입게 하고, 당신이 가지고 다니신 육환장(六環杖)을 주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지옥문 앞에 가서 3번을 흔들고 3번을 땅을 치면은 지옥문이 열릴 것이다” 그래 가지고 가 가지고 그렇게 하니까 자물쇠통이 떨어지면서 지옥문이 열린다 그말이여.

 

들어가니까 옥졸(獄卒)들이 나와서 “어떻게 이 문을 열고 들어왔느냐?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는데 어떻게 들어왔느냐?”

“나는 부처님 제자 목련존자다”

 

“부처님이 누구냐?”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이 세상에 제일가는 성현이시다”

 

그러냐고, “그럼 여기를 뭣하러 왔는고?”

“우리 어머니를 찾으로 왔다”

 

“어머니가 여기에 있는 줄 어떻게 알았느냐?”

“우리 부처님께서 '여기에 있다'고 가르켜 주셨다”

 

그래 들어가서 청제 부인을 찾았어. 청제 부인이 나왔는데 “당신 아들 목련이 찾아왔는데 그런 아들이 있느냐?” 그러니까 “내 아들은 목련이가 아니다. 내 아들은 중이 된 일도 없고, 목련도 아니다”

그래서 다시 와서 “당신과 같은 아들을 없다고 그런다”하니까, “내가 출가하기 전에는 목련이 아니고 나복(羅卜)이다. '나복'이는 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청제 부인'이다”

 

다시 가서 물어 보니까 그렇다고 그러거든. 그래서 옥졸이 청제 부인을 창으로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갈쿠리로 턱! 갈빗대에다 걸어서 끌고 나왔다 그말이여.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머리는 풀어서 산발(散髮)해 가지고 도대체 알아 볼 수가 없어.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고 자세히 통성명(通姓名)을 해보니까 분명히 어머니다 그말이여.

 

이야기도 “내가 이렇게 참 일일일야(一日一夜)에 만사만생(萬死萬生)을 하는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으니 무슨 수를 쓰든지 나를 좀 구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데,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말도 몇 마디 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었으니까 다시 고문을 받으러 들어가야 한다’고 창으로 탁 찍어 가지고 끌고 들어가는데 그 비참하고 참혹한 광경을 볼 수가 없어.

그래서 거기서 머리를 땅에다 짓치면서 목련존자도 유혈이 낭자하도록 땅에다 머리를 치면서 통곡을 했어.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 돌아와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이 우리 어머니를 구제(救濟)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보살(大菩薩)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어라” 그래서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런 대보살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으니까 그 지옥문이 열려 가지고 모두가 다 풀려났는데 자기 어머니는 안 풀려나.

 

그래서 또 다시 부처님께 여쭤서 “어떻게 우리 어머니 찾을 길이 없으니 우리 어머니가 어디로 갔습니까?”

“너의 어머니는 죄가 무거워서 대지옥에서 나와 가지고 소흑암(小黑闇) 지옥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또 어머니를 풀려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대보살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어라” 또 그대로 했단 말이여. 그러니 소흑암 지옥에서 풀려났는데 또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어.

 

“어디를 갔습니까?” 부처님께 여쭈니까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졌느니라”

 

“그럼 아귀도에서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대보살들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어라” 또 그렇게 하니까 아귀도에서 풀려났는데 신통력으로 찾아 봐도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습니까?”

“간신히 풀려나 가지고 이 왕사성 안에 어느 부잣집 개가 되어 가지고 있느니라”

그래 가서 보니 개가 있는데 개가 알아봐. 알아보고 “내가 네 어미 청제다” 그러면서 그렇게 좋아하고 펄떡펄떡 뛰면서 허리를 몸으로 뛰어오르면서 핥아먹고 그런다 그말이여.

 

그러니 “고통이 어떠냐?”하니까,

“이것은 인자 견딜만하다. 뭐 식은 밥도 주고, 고기 뼉다구도 주고 하니 이만하면 살겠다. 무간지옥, 그 무서운 지옥고를 받던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리고 다시는 내가 거기는 갈 마음이 없다. 개만 되어도 이만하면 살겠다” 그러는데 목련존자가 보니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저 개 과보(果報)를 받고 있는 우리 어머니를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백중날, 7월 보름달 해제를 하고 자자(自恣)회 법회를 열기 위해서 운집한 사부대중을 위해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올려라. 백 가지 음식과 과일을 잘 장만해 가지고 그 해제를 맞이한 선객(禪客)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면 개의 과보를 받고 해탈도를 증득할 것이다”

 

보통 백중날에는 선망부모를 천도한답시고 이렇게 영단(靈壇)에다가 많은 음식과 과일을 이렇게 올려서 어쨌든지 선망부모를 천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정성을 드리는데 그 정성은 참 감탄할 만하나, 그 백중날 선망부모를 천도하기 위해서 영가 앞에다가 산더미처럼 쌓아 놓음으로써 영가 천도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해제날, 참선을 하고 해제(解制)하신 스님네께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공양을 올려야 아귀도에 떨어지거나, 무간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도에 떨어진 선망부모를 정말 천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거여.

 

그래서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은 백종의 뜻을 잘 알아야 돼. 영단에다 차려 놓는 게 아니야.

물론 영단에도 정성을 다해서 차려 올린 것도 좋지만 첫째는 스님네께 공양을 잘 올려야 해. 맛있는 음식도 가지가지 좋은 음식도 올리고, 맛있는 과일도 올리고 또 여비도 형편 따라서 올리고 이렇게 해서 그 스님네..

 

어째서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려야 하냐 하면은 석 달 동안을 참선을 하시고, 정진을 하시고, 용맹정진 하셨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는 반드시 견성(見性)한 도인(道人) 스님네도 있을 것이고,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했을망정 업장(業障)이 소멸(消滅)하고 깨끗이 식(識)이 맑아져서 머지않아서 도를 통할 분도 있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리고 모두가 계행(戒行)을 지키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았기 때문에 다 무심(無心) 경계에 모다 들어가서,

그러한 스님네께 공양을 올려야 그 공덕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진 선망부모, 아귀도에 떨어진 선망부모, 축생도에 떨어진 선망부모가,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축원을 해 주시고 또 경을 읽어 주시고, 축원을 해 주심으로써 선망부모를 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20분56초~30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제65책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제13권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 없는 도리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분별계(分別界) ; 분별 경계(分別境界).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참고]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인간의 분별계(分別界)란 게 무엇이냐? 탐진치 삼독이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인 것입니다.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씀.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암(寺庵) ; 절과 암자.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백종(百種)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중(百中)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존자(尊者) ; ①산스크리트어 āyuṣmat 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수행자를 일컫는 말. ②성자. 현자.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오대양 사건(五大洋事件) ; 1987년 8월 29일에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리의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오대양의 사주이자 교주인 박순자와 그 가족과 신도들 32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

*정교(正敎) ; ①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②불교의 전적(典籍, 서책書冊).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치미를 떼다[따다] ; (사람이) 매를 훔친 사람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 매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

'시치미'는 매의 주인를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서 매의 꽁지 털 속에 매어 둔 네모난 뿔을 이르는 말.

*시묘살이(侍墓-- 모실 시/무덤 묘) ; 죽음에 대한 의례(儀禮)로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탈상(脫喪, 상喪을 마치고 상복을 벗는 일)을 할 때까지 3년간을 무덤 옆에서 막(幕)을 짓고 산소를 돌보고 사는 일.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①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②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③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④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⑤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⑥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⑦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⑧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⑨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⑩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2)

 

*가사(袈裟) ; 스님이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법의(法衣).

*육환장(六環杖) ; 산스크리트어 khakkhara 수행승의 지팡이. 머리 부분에 주석(朱錫)으로 된 큰 고리가 있고, 거기에 여섯 개의 작은 고리가 끼워져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산길을 갈 때 흔들어 짐승이나 해충을 쫓고, 걸식할 때 흔들어 자기가 온 것을 알린다. 석장(錫杖)이라고도 한다.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 ‘하루 밤과 낮에 만번 죽고 만번 다시 태어난다’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고 또 고통으로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기를... 하루 밤낮에 만번이나 겪는다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표현한 말.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 ①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②[불교]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도(濟度) 함.

*아귀도(餓鬼道) ; 육도(六道,六途)의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함.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자자(自恣 스스로 자/마음대로 자) ; 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우란분재2020. 5. 10. 21:10

우란분재(No.593)—목련존자의 효도, 목련존자가 수행자들에게 올린 공양 공덕으로 아귀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제 | 『사십이장경』 제11장, 무심도인(無心道人) | 여러분은 정말 자식들을 사랑하듯이 부모님께 잘해야 하고, 나의 부모한테 잘하듯이 다른 연세 많은 분한테도 그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 15분 24초.

(2) 16분 49초.

 

[법문] 송담스님(No.593)—1997년 정축년 하안거 해제 (용593)

 

(1)------------------

 

오늘은 정축년 하안거(夏安居) 해제(解制)날입니다.

하안거 해제에다가, 백중(百中) 우란분재일(盂蘭盆齋日)에다가, 백일기도 회향을 겸해서 이렇게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게 되었는데, 어째서 우란분재,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薦度)하는 우란분재에 법요식을 하안거 해제일에 행하게 되느냐?

이것은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의 효도(孝道)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靑提) 부인은 남편이 남겨놓은 많은 재산을 삿된 생각으로 낭비를 하면서 살생(殺生)을 하고 갖은 죄(罪)를 지었습니다. 그 죄 지은 과보로 아귀도(餓鬼道), 무간지옥도(無間地獄道)에 떨어져서 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그 아들 목련이 효심(孝心)이 지극해가지고 그 어머니가 어디서 무얼하고 무슨 고통을 받고 계신가 그것이 궁금했고, 급기야는 지옥고(地獄苦)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서 갖은 방법으로 어머니를 그 지옥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려고 애를 썼지마는 끝내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부처님께 간청을 해서 어머니를 구제(救濟)하는 방법을 여쭈어보니까, '여름 하안거 해제날 석 달 동안을 더위를 무릅쓰고 열심히 도 닦은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림으로 해서 그 공덕(功德)으로 어머니를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가 있느니라' 그 방법을 가르켜 주셨어.

 

그래서 목련존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양할 거리를, 백 가지 과일과 모다 맛있는 음식을 잘 마련을 해가지고 해제 때—부처님 회상(會上)에서 지내던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멀고 가까운 데에서 각기 모다 공부하고 있던 수행자(修行者)들이 부처님 회상에 해제 때에는 모다 모여들었습니다.

그 많은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이 공양(供養)을 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그 어머니 청제 부인을 지옥고로부터 이렇게 벗어나게 해 드린 고사(故事)가 『목련경(目連經)』이라든지 『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든지 그런 경전을 보시면은, 사람으로서는 그 처절한 고통 받는 그 내용을 소상(消詳)하니 알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因緣)으로해서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지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에 이르도록 동남아 여러 국가나 중국 · 한국 · 일본 불교국가에, 믿는 나라에서는 이 칠월(七月) 해제일을 기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저 선망부모를 위시(爲始)해서, 가족에 아들딸 형제자매 원근친척들의 영혼을,

물론 그 가운데는 비명(非命)으로 돌아가신 분—횡사(橫死)해서 돌아가신 분, 교통사고나 또는 물에 빠져죽고 목 매달아 죽고, 약 먹고 자살하고 한 온갖 비명횡사한 그런 영가(靈駕)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영가들을 천도하는 법요식을 해마다 연례 행사로써 거행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왜 백중(百中)날이 좋으냐 하면은 석달 동안을 열심히 수행해서 몸도 청정하고 마음도 청정한 수행자들, 수행자들에게 공양 올린 공양공덕(供養功德)이 얼마나 장(壯)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보면은,

‘악(惡)한 사람 백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단 착한 사람 한 사람한테 공양(供養)하는 것이 낫고,

착한 사람 천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단 오계(五戒)를 지키는 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게 낫고,

 

오계를 지키는 사람 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단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한 한 사람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수다원과를 증득한 백만 명에게 공양한 것보단 사다함(斯陀含)을 증득한 한 성현한테 공양한 것이 낫고,

사다함 천만 인에게 공양한 것보단 아나함(阿那含) 한 사람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아나함 일 억의 성현에게 공양한 것보단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한 분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십 억의 아라한에게 공양한 것보단 한 분의 벽지불(辟支佛)에 공양한 것이 낫고,

백 억의 벽지불에게 공양한 것보단 한 사람에, 삼세제불(三世諸佛)의 한 분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천 억의 삼세제불에 공양한 것보단 한 무심도인(無心道人)에게 공양한 것이 낫다’

 

『사십이장경』에는 '무념(無念) · 무주(無住) · 무수(無修) · 무증(無證)한 사람에게 공양(供養)한 것이 낫다' 그러는데.

무념(無念)이요, 무주(無住)요, 무수(無修)요, 무증(無證)한 사람은 한마디로 말해서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 그말인데.

 

이 무심도인은 어떠한 것이 무심도인(無心道人)이냐?

생각을 하되 생각 없는 생각을 하고, 행(行)을 하되 행이 없는 행을 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고, 증(證)하되 증한 바가 없이 증하는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서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 하는데, 이 무심(無心)이라 하는 것은 사실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이러한 것이 무심도인이다’ 이렇게 말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무심도인(無心道人)인지 아닌지를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석 달 동안을 열심히 수행한 수행자 가운데에는 몸도 마음도 청정(淸淨)해서 무심(無心)한 경계(境界)에 들어간, 들어갈 공부를 했고 그 가운데에는 이미 무심한 경계에 들어간 스님이 몇 분인가는 있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설사 오늘날 당장 완전히 진무심(眞無心) 경계에 들어가지 안 했다 하더라도 그 목적지를 향해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도 준(準) 무심도인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 해제 때 모이신 그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올리면은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비명횡사해서 거리 중천에서 갈 곳을 모르고 해매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와 가족들로 하여금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공덕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무심도인(無心道人).

 

'내가 무심도인이다'하면 그게 무심도인이 아니여.

'내가 한 소식을 했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무심도인이 아니고, '나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다'한 생각을 가지면 이미 그것이 무심도인이 아닌 거여.

 

어떻게 하면 무심(無心)의 경지에 들어가느냐?

 

본참공안(本參公案)—'이뭣고?' 화두가 되었건, '판치생모(版齒生毛)' 화두가 되었건, '무자(無字)' 화두가 되었건,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정(指定) 받은 그 본참공안을 하나를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은산철벽(銀山鐵壁)에 탁! 부딪힌 것처럼, 나아갈라야 나아갈 데도 없고 물러설라야 물러설 수도 없고, 오직 꽉 맥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본참공안에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나감으로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마침내는 무심도인이 되는 것이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왕궁에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雪山)에서 고행(苦行)을 하셔가지고 일생,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설(說)하신 요점이, 목적(目的)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해제법문(解制法門)은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그것을 경청(敬聽)을 했음으로 해서 해제법문을 산승(山僧)이 설할 것은 없습니다. 또 설할 줄도 모릅니다.

다맛 석 달 동안을 그 삼복성염(三伏盛炎)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행을 하고 모이신 여러 도반(道伴)들을 만났으니 너무 반갑고, 고향에 일가친척을 만난다고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일가친척은 만나봤자 거북하고 신경쓰이고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서 저기서 한 철을 지내고 모인 도반들은 안면이 있는 분이나, 안면이 없는 분이나 이렇게 해제를 하고 만나면 수십년 보고 싶었던 고향친구가 이보다 더 반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변이 없어서 내가 반가운 척은 못합니다마는, 마음속으로는 정말 반가운 것입니다.

 

나와 같이 한 목적을 향(向)해서 가는 도반이요, 현재 한 목적을 향해서 고행(苦行)을 해 나가는 형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또 다시 만나야 할 도반이요 궁극(窮極)의 목적지에서 다시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가지고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해야 할 그러한 도반이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을 합니다.(5분38초~21분1초)

 

 

 

 

(2)------------------

 

오늘 백중날을 기해서 선망부모와 비명에 간 원근친척 형제자매의 그 영가(靈駕)를 천도하기 위해서 모이신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에게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그동안에 칠칠일, 천도재(薦度齋)도 지내시고 사십구재(四十九齋)도 지내시고 백일이나 또 이 소상(小祥) · 대상(大祥)의 천도재도 여러 번 모다 지내시고 해서 그러한 정성(精誠)으로 이미 다 좋은 곳에 가서 태어나신 영가도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인연이 아직 도래하지 못해서 좋은 곳에 태어나지 못한 그런 영가를 위해서는 이런 칠월 백중날 이런 우란분재(盂蘭盆齋)에—우란분(盂蘭盆)이란 말은 범어(梵語)인데, 한문으로는 '구도현(救倒懸)'이여. '구제할 구(救)'자, '꺼꾸러질 도(倒)'자, '매달릴 현(懸)'자. '꺼꾸로 매달려서 지옥고를 받고 있는 그런 선망부모에 영가를 구제한다'는 뜻에 '구도현'인데, 범어로는 '우란분(ullambana)'이라 그러는 거여.

 

우란분재일(盂蘭盆齋日)을 맞이해서 여러분이 이렇게 오셨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자리에는 용주사 선방, 또 저 승련사라든지 또 전주 위봉사라든지, 또 대전에 세등선원이라든지 또 회룡사라든지 또 저기 윤필암이라든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다 열심히 공부한 수행자, 무심도인(無心道人)이거나 준(準) 무심도인 후보자거나 그러한 수행자(修行者)들이 이 자리에는 많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법회(法會)가 끝나면은 그런 분들에게 여러분이 내신 정성스러운 동참금, 모다 가지고 오신 모든 맛있는 과일들, 그런 것들, 그 정성 들여 온 공양구(供養具)가 그러한 스님네께 바쳐질 것입니다.

 

그런 스님네께 공양한 그 공덕으로 여러분이 그렇게 마음속에 묻었던, 마음속에 떠나지 못한 그러한 영가들이 좋은 곳으로 다 해탈해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동안에 마음속에 묻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그런 영가들을 오늘을 기해서 깨끗이 잊어버리시고 밝고 명랑한 마음으로, 그 대신 철저히 정법(正法)을 믿고 여러분들은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셔야 합니다. 참선을 해야 아귀도나 지옥고나 축생도에 떨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떨어진 뒤에, 여러분의 자손들이—또 우란분재(盂蘭盆齋)에 해주면 그때 가도 늦지 않으리라—그런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식들이 나중에도 또 이 불법(佛法)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알 수가 없고, 개종(改宗)을 할는지 종교를 안 믿게 될는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셨거든요.

자기가 자기 마음도 믿지를 못하는데, 똥 누러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르고, 아침에 먹은 마음 막 금방 일어서면서 마음이 변하는 건데, 어떻게 자식이 아무리 착한들 자식을 꼭 믿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살아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해 놔야 금생에 확철대오를 하면 그건 말할 것도 없고, 확철대오 하는 길로 가는 길을 알고 열심히 가기만 해도 그 어디냐 그말이여.

정법을 믿고 화두(話頭)를 타고 안거증(安居證)을 탁 타놓으면 도솔천내원궁에 가는 특별 뭐, 그 차표라고 하나, 비행기표라고 하나, 티케트(ticket)를 타놓은 것이나 마찬가지거든.

 

그러니까 첫째는 믿어야 하고, 믿었으면 그것을 실천을 해야 하고, 실천을 하되 실다웁게 실천을 해 나가면 그거이 어디로 가냐 그말이여. 공든 탑은 절대로 무너지는 법이 아니거든.

 

이 법문이 끝나면은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리고 축원(祝願)을 하고 그다음에는 이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셔진—위패는 오만육천 번의 위패가 모셔져가 있고, 그 위패 가운데 모셔진 영가 수는 팔만육천 위(位)의 법보영가(法寶靈駕)가 이 법당(法堂)에 모셔져 있습니다. 나날이 그 위패의 수가 불어나서 머지않아서 이 법당 안에 가뜩차게 되아서 법당을 새로 짓던지 무슨 수를 내야겄는데.

 

이것은 그 여기 법보단(法寶壇)에 영가를 모셔 놓으면 이렇게 법회(法會) 때마다 영가도 우리와 같이 법문(法門)을 듣고—다 몸, 육체는 없지마는 그 영가의 그 영식(靈識)은 소소영령(昭昭靈靈)해서 우리 육체를 가진 사람보다도 법문을 더 잘 들으십니다.

그래서 생존시에 얽혔던 원한 관계도 다 풀어지고, 못다 푼 한도 다 풀고, 그래가지고 영가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터억 정진을 하다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환생(還生)을 할 거고 또 인간에 인연이 있으면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해서 여러분의 좋은 아들로, 손자 손녀로, 며느리로 이렇게 또 만나게 됩니다.

 

만나봤자 숙명통(宿命通)이 열리지 아니하면 한솥밥을 같이 평생을 먹어도 모릅니다.

모르지만 아들딸 · 손자 · 손녀 · 며느리 · 손자 · 손부가 우연히 만나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우연히 만나지는 것이 아니고, 인연(因緣)을 지어가지고 그 인연에 의해서 만나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인연을 맺어야 좋은 가족으로 또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으로 오는 사람이 꼭 남의 식구만 오는 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자기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또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집에 돌아오는 확률이 제일 많습니다.

 

왜 많으냐?

제일 인연을 많이 지어놨거든.

 

그러니 부모님께 또는 조부모님께 효도로써 잘 봉양(奉養)을 하면, 그 집에 아들딸 · 손자 · 손녀 · 손부로 요렇게 오되 효자 · 효녀 · 효부로 들어온다 그말이고.

 

부모에게 불효(不孝)를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불효를 하고 그러면, '이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가르켰는데, 내가 못 먹고 못 입으면서 너를 내가 어떻게 가르켰는데, 니가 나한테 불효를 해? 장가가더니 기집한테 빠져서 나한테 불효를 해?'

 

부모가 성현(聖賢)이 아니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성현이 아닙니다.

잘해 드리면은 좋아하시고, 잘 못해 드리면은 '이놈! 두고보자'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중생(衆生)이기 때문에.

그러한 원한을 품고 돌아가셨을 때에 그 집에 아들딸 · 손자 · 손부(孫婦)로 오면은 그 사람이 효자(孝子) 효부(孝婦)가 되겠냐 이 말씀이여.

 

그러니 자기의 부모는 자기를 그렇게 키웠는데, 자기는 부모한테 효도를 못하거든. 그러면서 그 자식이 자기한테 효도를 하기를 바래겠습니까?

못 바랩니다. 그놈은 더 불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안이 문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이야 정법(正法)을 믿는 여러분인데 이런 말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 효자이시고 효부이시고 다 그러셔서 이런 말이 군더더기 말인 줄 알면서도 그래도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식으로 내가 말씀을 드리는 건데, 여러분은 정말 자식들을 사랑하듯이 부모님께도 효도를 해야 합니다. 그동안에 효도를 하셨어도 더욱 잘하셔야 합니다.

 

효도하는 방법은 맛있는 것 많이 해 드리고 좋은 옷 해 드린 것, 그것은 껍데기 효도고,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마는 마음으로부터서 우러나와서 해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해 드리냐 하면은 '시부모다' 생각하지 말고, '친어머니, 친아버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좀 말도 좀 임의(任意)롭게 해도 좋고, 그냥 형편이 안되면 쪼끔 잘 못해 드려도 흉허물이 없습니다.

 

'시어머니다, 시아버지다' 생각하니까, 형식적(形式的)으로 하니까 하기가 매우 힘들고,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시부모는 먼저 알고 있습니다. 흥! 지가 형식적으로 한 것 빤히 알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받드는 것 잘 압니다.

미처 형편이 안 닿고, 미처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형편이 안되어서 못해 드려도 더 알고 있어.

친정 친어머니 친아버지는 더 잘 아시는 법이예요. "염려마라!" 피차 지내기가 대단히 편합니다.

 

여러분이 아들, 딸을 시집보낼 때 "시어머니한테 잘해라. 잘해라"하지 말고, "친정어머니 아버지한테 하듯 해라" 그 말만 하면 더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가 없어.

나는 어쩌다 한 번씩 옛날에는 주례(主禮)를 섰는데, 지금은 해달라고 해도 내가 그거 하다보면 한이 없으니까 미안하지마는 나는 사절(謝絶)을 하고 통 안 하는데, 이 자리에 아들딸 여의지 않은 분들에게 주례사(主禮辭) 겸해서 하는데, 친정어머니한테 하듯, 친정아버지한테 하듯 하면 그 복잡한 주례사가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가운데 연세가 많으신 분도 있고, 연세가 아직 젊으신 분도 있고 어린 사람도 있고 그러는데, 정말 부모한테는 잘해야 하고, 그 나의 부모한테 잘하듯이 다른 연세 많은 분한테도 그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 집안도 복(福)을 받게 되고, 그 사회도 살기 좋은 사회가 되고, 그러한 사람이 기업을 운영을 해야 그 기업체도 잘되어가고, 그러한 분이 정치를 해야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해야 정치도 잘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인간세상이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만드는 법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내가 나를 찾는 사람은 자연히 십선(十善)을 행하게 되고, 십선을 하나로 뭉치면 그것이 바로 '이뭣고?'요, 그것이 바로 부모에게는 효도가 되고 나라에게 대면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한 말씀은 육체를 가진 여러 도반들뿐만이 아니라 이 법보전(法寶殿)에 팔만육천의 법보영가(法寶靈駕)를 비롯한 우주법계에 가득찬 우리의 인연 있는, 인연 없는 모든 영가(靈駕)도 다 이 말씀을 들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사 과거에 인연을 잘못 지어서 아직 좋은 곳에 가시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山僧)의 이 간곡한 말씀을 듣고서 원한을 다 풀어버리시고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시게 되기를 바래고,

기왕이면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해서 우리 법보가족이 되기를 바래고, 인간이 아주 질렸으면 저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가셔서 거기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시기를 바랩니다.

 

이것으로써 오늘 정축년 하안거 해제와 또 우란분재와 백일기도 회향에 즈음해서 산승이 여러분께 간곡히 말씀드리는 것을 맺고자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곡히 해 드린 말씀을 믿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세에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43분34초~60분2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목련경(目連經) ; 목련 존자(目連尊者)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진 일을 다룬 경문으로, 음력 칠월 백중날이면 이 경을 읽고 기도한다.

*우란분경(盂蘭盆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목련(目連)존자가 아귀(餓鬼)의 고통을 겪고 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세존의 가르침대로 자자일(自恣日)에 여러 부처님와 보살, 그리고 스님에게 갖가지 음식과 과일을 지성으로 공양하여 어머니를 제도하였다는 효성을 설한 경.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의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이 함께 한역.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등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경(經).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十一)』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 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백 명의 악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오계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만 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만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만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일 억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십 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 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삼세제불 가운데, 한 분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 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무념(無念) · 무주(無住) · 무수(無修) · 무증(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무심도인(無心道人) ; ①모든 번뇌망상이 사라져 더이상 추구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모든 것에 대하여 구하는 것이 없고 얻는 것도 없는 수행자.

②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 무심적적(無心寂寂)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사량계교심을 다 놓아버리고 언제나 천진무구한 본연자성(本然自性)으로 살아가는 사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진무심(眞無心) ; [참고 ①]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19권 대혜보각선사법어(大慧普覺禪師法語) '시청정거사(示淸淨居士)'에서. (김태완 옮김 | 소명출판) p25~26 참고.

古德有言 尋牛須訪跡 學道訪無心 跡在牛還在 無心道易尋 所謂無心者 非如土木瓦石頑然無知 謂觸境遇緣 心定不動 不取著諸法 一切處蕩然無障無礙 無所染汚 亦不住在無染汚處 觀身觀心如夢如幻 亦不住在夢幻虛無之境 到得如此境界 方始謂之眞無心 且非口頭說底無心 若未得眞無心 只據說底 與默照邪禪何以異哉

 

옛 스님이 말했습니다. '소를 찾으려면 모름지기 자취를 찾아야 하고, 도를 배우려면 무심(無心)해야 한다. 자취가 있으면 소 또한 있을 것이요 무심이 되면 도를 찾기 쉽다'

이른바 무심(無心 마음이 없다)이라는 것은 마치 흙 · 나무 · 기와 · 돌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에 접촉하고 인연을 만남에 마음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일체처에 탕연해 무장무애하고, 오염된 바가 없으나 오염이 없는 곳에 머물지 않고, 몸과 마음을 꿈이나 환(幻)같이 보면서도 꿈이나 환이라는 허무한 경계에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경계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진무심(眞無心 참으로 마음이 없다)'이라 할 수 있고, 입으로만 말하는 무심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아직 진무심에 이르지 못했으면서 단지 말만하고 있다면 묵조사선(默照邪禪)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참고 ②]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법어(法語)」에서 '상강종대왕심요(上康宗大王心要, 강종 대왕에게 심요를 올림)'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156~158 참고.

佛言此法 非思量分別之所能解 又云 菩薩住是不思議 於中思議不可盡 入此不可思議處 思與非思皆寂滅 是故若要廣談義路 不無萬論千經 若圓直造眞源 曷若無心無事 老龐偈云 無心心不起 超三越十地 究竟眞如果 到頭只這是

 

부처님 말씀에 「이 법은 사량과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시고, 또 「보살은 이 불가사의한 경지에 머무르고, 거기서는 생각이나 헤아림으로는 다 알 수 없다. 이 불가사의한 경지에 들어가면 생각과 생각 아닌 것이 모두 적멸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로(義路 뜻)를 널리 말하려면 만론천경(萬論千經)이 없지 않지만, 두렷이 참 근원에 바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어찌 마음이 없고 일이 없는 것만이야 하겠습니까?

노방(老龐)의 게송에, '마음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삼현(三玄)과 십지(十地)를 뛰어넘는다. 진여의 결과를 이루어 보면 필경에 다만 그것이니라' 하였고.

 

德山和尙云 但無心於事 無事於心 虛而靈 空而妙 若毛端許言之本末者 皆爲自欺 毫氂繫念 三途業因 瞥爾生情 萬劫覊鏁

聖名凡號 盡是虛聲 殊相劣形 皆爲幻色 汝若求之 得無累乎 是知直下無心 最爲省要 內若無心 外卽無事 無事之事 是名大事 無心之心 是名眞心

 

덕산 화상은 「다만 일에 마음이 없어야 한다. 마음에 일이 없으면 허(虛)이면서 신령하고 공(空)이면서 묘하다. 털끝만큼도 말[言]의 본말(本末)을 허락하면 그것은 다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생각에 매이면 삼도(三途)의 업이 잠깐 동안에 정(情)을 내어 만겁 동안을 얽매이고 만다. 그리하여 성인이란 이름과 범부란 이름이 모두 빈 음성이요, 뛰어난 모양과 못난 형상이 모두 허깨비의 빛깔이다. 만일 네가 그것을 구하려 한다면 어찌 누(累)가 없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장에 무심(無心)한 것이 가장 긴요한 일입니다. 안으로 마음이 없으면 밖으로 일이 없을 것이니 일이 없는 일이 큰 일[大事]이요, 마음이 없는 마음이 참 마음[眞心]입니다.

 

所謂無心者 無心無無心 亦無無心盡 是眞無心 無事者 無事無無事 亦無無事盡 是眞無事 若以事遣事 事事彌增 將心無心 心心却有

 

이른바 ‘마음이 없음[無心]'이란 마음도 없고 마음 없는 것도 없으며, 마음의 없음이 다했다는 것도 없는 것이라 그것이 '참 무심[眞無心]'이며, '일이 없음[無事]'이란 일도 없고 일의 없음도 없으며, 또 일의 없음이 다했다는 것도 없는 것이라 그것이 '참으로 일이 없는 것[眞無事]'입니다. 만일 일로써 일을 보내려면 일마다 더욱 늘 것이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없애려면 마음과 마음이 도리어 있게 될 것입니다.

 

不若一刀截斷左右葛藤 更不思前念後 直然放下放到無放下處 無放下處 亦放下 到者裏 方始大事現前 朗然獨耀 此是諸聖 放身捨命之處 成佛作祖之處 此名大眞佛 亦名法身佛 亦名如如佛

 

한 칼로 좌우의 갈등을 끊고, 앞뒤 생각을 하지 않고 당장 놓아버리되[放下], 놓아버림이 놓아버릴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 놓아버릴 것이 없는 것까지도 놓아버리고 거기에 이르면 비로소 큰 일이 앞에 나타나 환히 홀로 빛날 것이니, 이것은 모든 성인이 몸과 목숨을 놓아버린 곳이요,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 곳입니다. 이것을 대진불(大眞佛)이라 하고 또 법신불(法身佛)이라 하며 또 여여불(如如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然若以此名句文義 掛在心頭 又却不是 所以道 微言滯於心首 飜爲緣慮之場 實際居於目前 盡是名相之境 知是般事 撥置一邊 但向十二時中四威儀內 看箇話頭

 

그러나 이런 이름이나 뜻을 마음에 두면 그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세한 말도 마음에 걸리면 도리어 생각을 반연하는 마당이 되고, 실제가 눈앞에 있으면 모두 이름과 형상의 경계다'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일은(이 일을 안 바에야) 한 쪽에 치워 두고, 다만 십이시(十二時)와 사위의(四威儀) 안에서 저 화두를 간(看)해야 할 것입니다.

 

 

僧問法燈 百尺竿頭 如何進歩 燈云啞 世出世間 善惡攀緣 種種分別 莫敎相續 亦莫斷除 念念起時 但擧話頭云啞 不得作瘖啞會 不得向意根下思度 不得向擧起處承當 不得將心待悟 莫管有味無味 悟與不悟 但時時擧覺 念念提撕 日久月深 知其功能耳

 

어떤 스님이 법등(法燈) 스님에게 「백 척의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법등 스님은 「아(啞)!」 하였습니다.

세간과 출세간의 선악의 반연과 갖가지 분별을 계속하게 하지도 말고 또 끊어 버리려 하지도 말며,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다만 <아> 하고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로써 알려고 하지 말고(음아瘖啞라는 알음알이를 짓지 말고) 의근을 향하여 따지고 헤아리지 말며, 종사가 거량하는 곳을 향하여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마십시오. 맛이 있고 없음과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것에 관계하지도 마십시오. 다만 때때로 들어 느끼고 생각을 거듭해, 세월이 오래 되면 그 공능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昔茶陵 郁和尙 常看此話 至於喫茶喫飯 未嘗忘却 一日因赴外請 騎驢過橋 橋陷驢倒 不覺失聲云啞 豁然大悟 便作偈云 我有神珠一顆 久被塵勞關鏁 今朝塵盡光生 照破山河萬朶 此是古今實參實悟底樣子也 請陛下 依此樣子參 隨有見處 宣問山僧 山僧敢不得穴加針 應病進藥 鍊金作礪 濟川作舟乎

 

옛날 다릉(茶陵)의 욱(郁) 화상은 항상 이 화두를 들되,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일찍이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외부 청을 받아 나귀를 타고 다리를 지나가다가 다리가 무너져 나귀가 거꾸러지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 하는 소리를 내어 활연히 깨우쳐 게송을 읊기를, '내게 있는 한 알의 신령한 구슬 오랫동안 티끌 속에 묻혔더니, 오늘에야 티끌이 없어지고 광명이 나서 모든 산과 물을 두루 비춘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진실로 참구하고 진실로 깨우치는 본보기입니다. 청컨대 폐하께서도 이 본보기에 의하여 참구하시되, 보신 곳[見處]을 따라 산승에게 물으시면 산승이 어찌 감히 혈(穴)을 얻어 침을 놓고, 병을 따라 약을 쓰며, 금을 단련하는 데에 숫돌이 되고, 물을 건너는 데 배가 되지 않겠습니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 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直面)하여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거기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킴.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어리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처쑤셔박는 것처럼,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근기(根機)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한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따질 것이 없다.[송담스님(No.577) 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7~158 에서.(가로판 p150~151)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실참(實參), 실답게 참구(參究)한다는 것은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을 말한다. 참(參)은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관념에 그치거나 들어서 아는 지식에 그치지 않고 참으로 실천하는 선수행을 말한다.

*공안(公案, 話頭)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습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1600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2)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無常)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 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소상(小祥 작을 소/제사 상) ;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

*대상(大祥 큰 대/제사 상) ; 사람이 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

*무심도인(無心道人) ; ①모든 번뇌망상이 사라져 더이상 추구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모든 것에 대하여 구하는 것이 없고 얻는 것도 없는 수행자.

②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 무심적적(無心寂寂)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사량계교심을 다 놓아버리고 언제나 천진무구한 본연자성(本然自性)으로 살아가는 사람.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임.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식(靈識) ; 영묘한(靈妙- 신령하고 미묘한) 의식. 제8식. 영혼.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人道]로 다시[還] 태어남[生].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임의롭다(任意롭다) ; ①얽매이는 것이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②서로 친하여 거북하지 아니하고 행동에 구애됨이 없다.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이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생각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생각 意)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