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단속(No.445)—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 구경(究竟)의 깨달음이어야 한다 | 팔만사천 마구니.

비로자나불의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견성성불은 ‘일념단속’하는 속에 있는 것.


*한 생각 단속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 10분 21초. (2) 16분 21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1)------------------


아까 전강(田岡) 조실 스님 법문에 ‘이 화두(話頭)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왜 그러냐?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참선법(參禪法)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된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안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지옥도 없는 것이고, 뭐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딱!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한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갈 까닭도 없고, 그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할 수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그 사람은.


숨 거둘 때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의 사자(使者)가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이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다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다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이 좀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좀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해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해 버려야 되거든.


또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에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것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식(識)이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에 저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저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저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안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境界)가 나타나면 공부에 참 큰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식(識)이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法門)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이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다 된 것처럼 착각을 해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저 스님이 뭣을 훤히 잘 아는 스님이다. ‘저 스님은 도통했다’ ‘저 스님은 도인이다’ 해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막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척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남 점쳐 주고 해 가지고 그거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이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참!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돼.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구니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道)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그 팔만사천 마구니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온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해 나가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한 생각 삐끗 딴 생각[別念]을 낸 그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한 생각을 동(動)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가 솥을 씻어 가지고 그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이 쌀 한 톨에 시주(施主)의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이 쌀을 이렇게 함부로 해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이 나타나 가지고 ‘여러 해 동안을 내가 이 도량(道場)에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그 스님은 평소에 항상 그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그 스님을 볼라야 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한 생각 화를 내니까 그 좀을 타서 도량신이 그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한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또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그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해 나가느냐’가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에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요, 이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안 걸려드느냐의 그 판가름이 한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분46초~53분6초)



(2)------------------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리요

나무~아미타불~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라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이여. 물과 같고 구름과 같은 이 꿈속의 몸뚱이여.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라. 이 밖에 다시 무엇을 친근(親近)히 할 것인가 아지 못하겠더라.


이 몸뚱이는 꿈속에 몸뚱이거든. 실다운 것이 아니여. 잠시 꿈속에서 내가 임금이 되기도 하고, 꿈속에 내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꿈 깨면 임금도 간 곳이 없고 부자도 간 곳이 없듯이.

현실적으로 우리 몸뚱이 받아 가지고 있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하는 이 몸뚱이는 절대로 실다운 것이 아니요 꿈속에 몸뚱이인데, 뭣과 같으냐 하면은 물과 같애.


물이라 하는 것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곳에 따라서 모난 그릇에다 담으면은 물이 모난 모양으로 되고,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이 둥그렇게 담겨지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은 차츰차츰 채워가지고 다 차면 넘어가고, 때로는 폭포수가 되었다, 때로는 강물이 되었다,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가면은 짠물이 되었다가.


또 안개가 되어서 피어 올라가고 구름이 되었다가 찬 기운을 만나면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고, 우박이 되기도 하고, 더우면 녹아서 물이 되었다가, 때와 장소와 기온에 따라서 액체가 고체가 되고 고체가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 또 기체가 되었다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도 지은 업(業)에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또 지옥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되 남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여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잘생긴 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밥맛 떨어지게 태어나기도 하고.

아, 이러니 우리 이 몸뚱이라 하는 것이 업에 따라서 천만 가지의 모양으로 받아난다 그말이여.


또 구름과 같애. 구름과 같애 가지고 때로는 흰구름, 먹구름, 큰 구름 덩어리, 작은 구름 덩어리, 구름도 소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말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바람 따라서 동쪽으로 날아갔다 서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도 금방 소같이 생긴 것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변형되어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저 산에서 이 산으로, 산에서 들로 들에서 바다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권서자유(捲舒自由)여. 뭉쳤다 흩어졌다 달아났다 모였다 이 몸뚱이가 꼭 그와 같애.


빈부귀천, 흥망성쇠 속에서 가지각색으로 놀아나거든.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인데 그렇게 살아가. 때로는 건강하다가 때로는 병들었다가 생로병사 흥망성쇠.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무정(無情)한 물과 같이 무심(無心)한 구름과 같이 인연 따라서, 때 따라서, 곳 따라서 그렇게 돌아치는 이 몸뚱이 말고 다시 무엇을 더 가까이 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그놈은 누가 그놈을 구속할 수도 없고, 이 몸뚱이는 구속을 해서 두드려 팰 수도 있고 감옥에다 가둘 수도 있고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놈은 죽일 수도 없고, 묶어 맬 수도 없고, 가둘 수도 없고, 아무도 어찌 할 수가 없어. ‘그놈’을 누가 어떻게 가두며 ‘그놈’을 어떻게 죽이며 ‘그놈’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여.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여, 이 낱 가운데에 다른 물건을 여기서 용납할 수가 없더라. 아무도 이것을 어찌해 볼 수가 없어.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여. 황매산(黃梅山)에서 오조(五祖) 스님이 육조(六祖) 스님한테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이 소식을 분부(分付)를 하셨더라 이거거든.

오조 스님이 육조 스님한테 분부한 것이 우리도 부처님으로부터 구원겁(久遠劫) 전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부터서 분부를 받은 것입니다. 그 분부를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갈 뿐이지 우리는 분명히 그 분부를 받았어.


우리도 확철대오할 수 있고, 무량 중생을 제도해야 할 대사명(大使命)을 분부 받은 것입니다.


마치 국민학교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분명히 숙제를 받어 가지고 왔지만 노는데 탐착해 가지고 숙제를 다 잊어버려. 그래 가지고 놀다가 해가 저물어 버리고 집에 와서는 배고프니까 밥 먹고, 곤(困)한 데에 밥을 먹어 놨으니 졸음이 오니까 초저녁부터 자 버렸다 그말이여. 그 이튿날 늦잠을 자 가지고 밥도 못 먹고 학교로 갔는데 숙제를 안 해가지고 갔거든.


우리도 오욕락(五欲樂)에 탐착해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중생(衆生)의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윤회(輪廻)를 하는 동안에 보고 듣는 것이 오욕락이거든.

재산 모으는 것, 남녀 간에 색(色)을 즐기는 것, 또 맛있는 거 먹는 거, 또 명예 권리를 하는 거, 다 그런 거 하면 재미가 있거든. 그러다가 편안하게 잠자고. 이러한 것에 길들여 놓으면 좀해 그놈을 벗어날 수가 없어.


그놈이 어떻게 무량겁(無量劫)을 길을 들여 놨던지 그것이 아주 본능(本能)으로 굳어 버렸어.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는 아주 본능으로 굳어 가지고, 인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버렸다.


불법(佛法)을 듣기 전에는 ‘그것이 뭐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지,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렇게 살고 있지만,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불법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는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정말 내가 나를 깨달라야겠다’ ‘정말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겠다’

참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늦다고 생각할 때가 이른 때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절대로 늦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 놓쳐버리면 무량겁을 흘러간 뒤에 언제 다시 또 우리가 불법을 만날지, 발심(發心)을 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설사 지금 말세(末世)가 되었다 해도 지금 우리가 불법을 만난 것은 너무도 다행(多幸)한 일이고 경행(慶幸)한 일이어서 조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60세가 넘고 70세가 넘었어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몸뚱이는 젊다고 오래 살고, 늙었다고 빨리 죽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죽을런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이리 생각을 하시고.

‘앞으로 인자 여름철이 되면은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말 열심히 하리라’ 그 생각도 틀린 거여.


지금 이 찰나(刹那)부터 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하거든. 1초도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여. 다른 것은 다 미뤄도 이것은 1초 뒤로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이거든』 지금.

지금 바로 탁! ‘이뭣고?’ 챙긴 것이 그것이 공부고, 그것이 가행정진이고 그것이 용맹정진이여. ‘앞으로 내가 3년 결사(結社)에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다 너저분한 생각이야.


지금이거든. 지금!

여기 앉은 이 자리가 ‘지금’이고, 나갈 때는 나갈 때가 ‘지금’이고, 차 탈 때는 차 탈 때가 ‘지금’이고, 밥 먹을 때는 밥 먹을 때가 ‘지금’이고, 똥 눌 때는 똥 눌 때가 ‘지금’이고 『언제나 그때그때가 지금이거든』 이렇게 공부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그게 참 수행인이거든.


물과 같이 구름과 같이 이렇게 무정하게 정처없이 흘러가고 흘러가는데, 그 무상(無常)한 속에서 ‘무상하지 않는 것’을 챙기는 거거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은 ‘일념단속(一念團束)’한 속에 있는 것이고,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 것도 일념단속 안 한 데에서 삼악도에 떨어진 것이거든.


일념(一念)이야말로, 일념이야말로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내일이면 입하(入夏)가 되어서, ‘아직 봄이 한창이다’ 생각을 했는데 벌써 봄은 지나가고 내일부터 여름이 시작이 됩니다. 계절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무상(無常)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한 매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온 세계도 시끄럽고, 나라 안에도 정치도 시끄럽고, 경제도 시끄럽고, 학원도 시끄럽고 정말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철저히 무상을 깨닫고, 나라를 걱정하고 또 우리의 자녀를 걱정하고 세계 인류를 참으로 걱정한다면 일념단속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진리의 눈을 뜬 사람이 나와야겠습니다.


진리의 눈을 뜨는 사람이 나와야 그것이 새 부처님의 탄생이요, 새 부처님이 탄생을 해야 업(業) 많은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53분7초~69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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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요지부동(搖之不動 흔들다·흔들리다 요/어조사 지/아닐 부/움직일 동) ;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경계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말.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사자(使者사신 사/놈 자)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견지(見地) ; 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 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 · 말나식(末那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 ; '잠깐(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매우 짧은 시간)'의 사투리.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챗구녁 ; ‘수챗구멍(허드렛물이나 빗물 따위가 빠져나가는 구멍)’의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이 쌀 한 톨에 시주(施主)의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 일미칠근(一米七斤).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②]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의 수호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또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그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태굴(懈怠窟 게으를 해/게으를 태/굴 굴)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의 굴(窟).

*기로(岐路 갈림길 기/길 로) ; ①길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②갈림길(둘 이상의 갈래로 나누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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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수여운일몽신~' ; [금강경오가해]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야부 게송 참고.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권서(卷舒, 捲舒 돌돌 감아쌀 권/펼 서) ; ①말았다 폈다 함. ②나아감과 물러남. ③재덕(才德)의 숨김과 나타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오조(五祖) : (602 – 675)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주(周)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제 4조(四祖) 도신(道信)의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두 분이 있었으므로, 6조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의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의 북종선이 되어 두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은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을 거쳐 4조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이 생겼다. 그리고 5조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 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麈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麈埃)」라고 지었다。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분부하다(分付-- 나누다·나누어 주다 분/주다·맡기다·부탁하다 부) ; ①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시키거나 나누어[分] 주다[付].

②(...에/에게 ...을) (...에/에게 -고) (...에/에게 -도록)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다, 또는 당부(當付)하다.

③건네주다 · 넘겨주다. 전수(傳授) · 부촉(付囑) · 부여(付與) 등과 같은 말이다. 주로 '법을 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구원겁(久遠劫 오랠 구/멀 원/오랜 세월 겁)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사명(使命) ; 맡겨진 임무.

*곤하다(困-- 곤하다·졸리다·지치다 곤) ; ①기운이 없이 나른하다. ②몹시 고단하여 잠든 상태가 깊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좀해 : 좀처럼(‘않다’, ‘없다’ 따위의 부정하는 말과 함께 쓰여, 웬만해서는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음 또는 쉽게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본능(本能) : 사람이나 동물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나 감정.

*'정말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겠다' ; 고향(故鄕).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참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참고] 『서장(書狀)』 '답탕승상(答湯丞相)' 참고.

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제1 제조법어절요(諸祖法語節要 : 여러 조사의 법어 중에서 오직 공부 지어 가는 데에 요긴한 대목만을 뽑아 요약함)」 '황룡사심신선사소참(黃龍死心新禪師小參)' 참고.

諸上座 人身難得 佛法難聞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상좌들이여!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듣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할 때 결사(結社)를 함.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그때그때 ; ①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때. ②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때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부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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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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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