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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3.28 의단독로((No.217))—(게송)南北東西無定着 生涯只在一枝筇 舌頭細嚼煙霞味 直入千峰更萬峰 | 오직 한 의단에 목숨을 걸어 가는 데에다가 비유하는 게송.
  2. 2022.03.26 인연 인과설화((No.259))—기도는 일심 정력(定力) | 오씨 부인의 낙산사 기도 가피 | 평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덕(德)을 베풀고, 청정한 마음을 지키고 행동해야.
  3. 2022.03.26 운명(숙명)론((No.259))—우리는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을 만났기에 정법(正法)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 부처님처럼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4. 2021.12.17 인연 인과(전강선사 No.349)—범어사 명학동지 이야기 | 죽는 지경을 생각해 봐 | 수업감보(隨業感報) | 生死二字 釘在額上 裂轉面皮 討箇分曉 | 打算飯錢.
  5. 2021.11.21 상량(전강선사 No.011)—(게송)商量是鬼窟 文字是糟糠~ |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 생사 없는 법이 사바세계밖에 없다 |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하는 법이 없다.
  6. 2021.11.11 용무생사((No.645))—어떤 근기라도 깨달을 수 있는 최고의 법이 참선법. 참선법에서도 '이뭣고?' | 오무생사하고 증무생사해서 용무생사할 지경에 이르러야.
  7. 2021.10.07 인연 인과설화((No.117))—왕의 노모 병환 치유 | 참회하고, 십선(十善)을 닦아야 | 기도는 올바르게, 정성 청정한 마음으로 | 보석사 주지스님 중풍 치료 | 단식(斷食).
  8. 2021.09.21 영산회상((No.479))—(게송)一波纔動萬波隨~ | 선방대중, 외호대중이 한마음이 되어야만, 그 회상이 바로 영산회상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불사(佛事).
  9. 2021.09.02 인행((No.472))—부처님은 자기를 이기신 분이기 때문에 대장부다 | 과거 인행 때(용의 몸) 인욕 | 우리도 부처님 같은 대신심 대분심 대원력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10. 2021.08.30 용화선원((No.587-2))—'조실(祖室)'이란? | 고봉 · 금봉스님의 전강스님 찬(讚) | 전강스님께서 남기신 녹음법문 | 용화사에서 조실로 전강스님을 모시는 이유.

의단독로((No.217))—(게송)南北東西無定着 生涯只在一枝筇 舌頭細嚼煙霞味 直入千峰更萬峰 | 오직 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그 의단을 향해서 목숨을 걸어 가는 데에다가 비유하는 게송입니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8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217)—1983년(계해년) 추계산철 해제 법회(83.09.30.음) (용217) (의심)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허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煙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한디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동서남북 정처가 없어. 출가해서 걸망을 지고 도반과 선지식을 찾아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하기 위해서 행각을 하는 분상에는 동서남북 정착(定着)함이 없어.
생애(生涯)는 지재일지공(只在一枝筇)이여. 오직 주장자 하나에 온 생애를 다 맽겨버렸다 그 말이여. 주장자가 동쪽으로 행하면 동쪽으로, 금년 여름에는 동쪽에서 지내다가 겨울철에는 북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주장자 하나로 생애를 맽겼는데.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煙霞味)여.
무엇을 먹고 사느냐? 무슨 음식을 먹고서 영양을 섭취해 가지고 이 생애를 끌고 가느냐?
연하(煙霞), 안개와 연기를 씹어서 먹고 거기에서 영양을 섭취한다.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도 안개는 끼고, 끼어 있는 그 안개를 먹고 살지, 쌀이나 콩이나 팥이나 무슨 고기나 그러한 세속에서 말하는 영양 있는 그것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왜 그러냐?

하루 세끼 밥을 먹되 맛없는 밥을 먹고, 옷을 입되 한 오리도 걸칠 것이 없이, 그러기 때문에 밥을 먹되 쌀이 없는 밥을 먹고, 옷을 입되 실오라기가 없는 그런 옷을 입고, 그리고 먹는 것은 연하(煙霞), 자욱이 아침에 끼었다 낮에는 또 벗거지고, 다시 해가 저물면 또 끼었다가 또 벗거지고 하는 그 자욱한 안개를 먹고 산다.
이 안개라고 하는 것은 생사(生死) 요달(了達)을 하기 위해서 입으로 물질로 된 그것을 먹고 이 영양을 섭취한 것이 아니라,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는 알 수 없는 공안 화두에 대의심(大疑心) 그놈 하나로 그놈에다가 나에 온갖 정성과 온갖 분심(憤心)과 생명을 거기다가 걸고, 먹어도 먹은 줄을 모르고 추워도 추운 줄을 모르고 더워도 더운 줄을 모르고 오직 그 의단(疑團) 하나에 생명을 걸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연하(煙霞)를 먹고 산다.

그래 가지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천봉(千峰), 바로 천(千) 봉아리 속을 향해서 들어가고 다시 또 만(萬) 봉아리를 향해서 간다.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그 수없는 것을 보고, 수없는 것을 듣고, 수없는 생각이 일어나는 그것들이 모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우리 앞에 제출되는 모든 것은 바로 그것이 천 봉오리고 만 봉오리다 그 말이여.
그 봉오리 봉오리 넘을 때마다 거기에서 피렴심(疲厭心)도 느끼지 아니하고, 소득심(所得心)도 갖지를 아니하고, 만족심도 갖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그 의단을 향해서 목숨을 걸어 가는 데에다가 비유하는 게송입니다.(처음~8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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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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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연 인과설화((No.259))—기도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우리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심 정력(定力)으로 하면 반드시 자기의 원(願)하는 만큼 성취를 하는 것 | 오씨(吳氏) 부인의 낙산사 기도 가피(加被) 설화.
평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덕(德)을 베풀고, 청정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행동해 나간다면 여러분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그 일들 자체가 낱낱이 다 기도가 되는 것.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17분 14초)


[법문] 송담스님(No.259)—1985년 신수기도 회향 (1985.01.09.음) (용259)

'참선을 하는 데에서 신수기도, 뭐 기도? 신수기도를 왜 해? 참선만 잘하면 그만이지, 기도는 그까짓 거 기복 불교(祈福佛敎)가 아니냐? 산신기도 · 칠성기도 · 신중기도, 기도라 하는 게 다 복(福)을 빌고 한다니 그것은 기복 불교지 그것이 최상승 불교(最上乘佛敎)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기도라고 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신 분 가끔 만납니다마는.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우리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심 정력(定力)으로 하면 반드시 자기의 원(願)하는 만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선조 대왕(宣祖大王) 때에 이응(李應)이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해 가지고 그 당쟁(黨爭), 그 사색정당(四色政黨)에 싸움이 치열해 가지고 훌륭한 사람,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하려고 하는 바른 사람들이 그 반대당에 의해서 모함을 받아 가지고 죽기도 하고, 귀양을 가기도 하고, 또 워낙 덕(德)이 있고 그런 사람은 저 제주도나 진도나 완도나, 지방 수령(守令)으로 좌천(左遷)이 되어 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이응이란 사람도 그 반대당의 모략으로 진도(珍島) 군수(郡守)로 좌천이 되어 갔는데—진도 군수로 있을 때 그 폭풍이 일어나 가지고 일본 사람이, 장사하는 일본 사람이 폭풍을 만나 가지고 진도, 그 섬 해변에 간신히 표류를 했습니다.

백성들의 보고를 받고 아전(衙前)들이 나가 가지고 그 사람들을 다짜고짜로 묶어서 감옥에다 때려넣고 그 배에 실은 보물을 전부 다 뺏을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이응이라고 하는 그 군수가 알고서 아전들을 갖다가 크게 꾸짖고, 그 감옥에서 그 사람들 다 포박(捕縛)을 지은 것을 풀어주고, 또 관아(官衙)에 방을 따뜻하게 불을 때서 방으로 하고, 옷도 다 갈아입히고 해 가지고 한 열흘 동안을 잘 먹이고, 그래 가지고 부서진 배도 다 수리를 하고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짐승도 내 집에 들어오면 잡아서 죽이는 법이 아닌데, 아무리 일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풍랑(風浪)을 만나서 표류(漂流)해 온 사람을 그 잘해서 돌려보내야지, 그것을 갖다가 죄 없이 포박을 지어 가지고 뚜드러패고, 싣고 온 보물을 갖다가 뺏을라고 한다면 어찌 그것이 참 훌륭한 처사(處事)라고 하겠느냐?" 그래 가지고 아전들을 꾸짖고 돌려보냈는데.

그 이응이라고 하는 사람에 손자가 이름이 '푸를 창(蒼)' 자, '바다 해(海)' 자 창해(蒼海)인데, 이창해(李蒼海)란 사람이 나중에 그 제주도 목사(牧使)가 되어 가지고 20여 명의 관속을 데리고 배를 타고서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폭풍을 만나 가지고 배가 뒤집어진 바람에 다 죽고, 그 창해란 사람과 또 다른 세 사람이 간신히 뱃조각 판때기를 붙잡고는 며칠을 표류를 해 가지고 도착을 했는데, 일본에 지마도(志摩島)란 섬에 도착을 했다 그 말이여.

그러니 일본 사람들이, 그 섬사람들이 와! 나와 가지고, 이창해를 비롯한 세 사람을 갖다가 무슨 간첩이나 무슨 그러한 걸로 취급을 해 가지고는 묶어서 때려 가뒀습니다.
"대관절 뭣 하는 놈들인데 이렇게 남의 땅에 이렇게 침입해 들어왔느냐?" 한게, "제주도로 그 목사로 가다가 폭풍으로 인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잘 곧이를 안 듣고 "바른대로 대라"고 막 고문을 하고 뚜드러패는데.

그 창해(蒼海)란 사람이 워낙 인품이 좋고 점잖해서 사실대로 다 말을 하니까, "음, 니가 그렇다면 혹 그 진도 그 군수로 있던 이응(李應)이란 사람을 혹 아느냐?" 하고 물어보는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요" 그러니까, 그 자세히 이리저리 물어보니까 틀림이 없다 그 말이여.
그때부터서는 포박을 다 풀어주고, 그래 가지고 옷도 갈아입히고 음식도 잘 먹이고, 모다 상처도 다 하고 그런데.

그래 가지고 여러 날을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인자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야 겠는데 이 관속(官屬)들이 다 죽어버리고 자기네들만 가봤자 별로...
그렇지 않아도 반대당의 거시기로 제주도로 이렇게 귀양 가나 다름없이 이렇게 좌천되어 가는 판인데, 한국으로 돌아가봤자 반대당으로부터 참 좋은 소리도 못 듣고, 그러니 갈 수도 없고. 또 갈라고 해봤자 배가 없으니 갈 수가 없고. 천상 그 지마도(志摩島) 도주(島主)가 배를 만들어서 태와다 주기 전에는 갈 수가 없는데, 몇 날이 되어도 보내줄 생각을 안 하고.

찬찬히 그 겪어보니까 사람이 괜찮하고, 또 도주(島主)에는 그때 참 그 당혼(當婚)한 규수가 하나, 무남독녀(無男獨女)가 있었는데, 이창해한테 '내 딸이 있으니 내 사위가 되어 달라. 내 아들이 없으니까 데릴사위를 해 가지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물려줄 터이니 내 사위가 되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참 생각해 보니, '내가 이 폭풍을 만나 가지고 간신히 죽지 않고 살아났기는 하나, 해필 왜놈에 데릴사위가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랬으나 이리저리 생각해봤자 도저히 뾰족한 수는 없고, 그래서 승낙을 했습니다. 날을 받아서 융숭하게 결혼식을 했는데, 그 규수가 자기보다 한 7~8세 아래가 되는데 꽃같이 이쁜 미인(美人)이었습니다.

이 창해란 사람은 한국에 있을 때 여섯 살 때 결혼을 했는데, 자기보다 훨씬 십여 세 많은 여자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늙은 처녀하고 결혼을 해 가지고 별로 재미도 없이 살다가 이렇게 폭풍을 만나서 와 가지고 자기보다 7~8세 아래 되는, 설사 왜놈에 딸이지만 그 꽃같은 계집하고 결혼을 하게 되니, '참 인생이라는 게, 참 운명이라는 게 묘(妙)하다' 그래 생각했습니다.
속담에 '마누라가 죽으면 변소에 가서 씨익 웃는다'고 그러는데, 이 사람 참 고향을 떠나서 이렇게 참 폭풍으로 이렇게 해서 왜놈 섬에 와 가지고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별로 싫지는 않고, 운우(雲雨) 정몽(情夢)을 이루어서 애기를 한 30~40년 간에 아들딸을 열두 명이나 낳았습니다.

열두 명이나 자녀를 두어 가지고 있는데, 그 장인이 인자 늙어서 그 사위한테 그 도주(島主)에—거기는 도(島)가 일본 땅이라 하지마는, 그 사백여 년 전이니까 그렇게 교통수단이 좋지 못하고 해서 이것은 바로 그 도주가 그 섬에 왕 노릇을 했습니다.
일본 본토(本土)에 별 지배도 받지 않고 자기네끼리 그렇게 사는데, 그 섬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서로 섬끼리 싸워 가지고 그러다가, 이 창해가 그 장인으로부터 그 도주(島主)에 직책을 이어받아 가지고는 군사훈련을 시키고 해 가지고는, 그 주변 섬을 전부 정복(征服)해서 자기 영토를 만들어 가지고 아주 참 썩 재미있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향땅에 어머니는 어떻게 계시며 동생은 어떻게 사는가?' 이 달 밝은 밤이면은 저 한국 쪽을 쳐다보면서 하염없이 시름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 세월을 지내다가 또 그 사람이 아들을, 열둘 가운데에 큰 아들이 썩 또 인물이 좋고 기운이 세고 해서 그 사람에게 또 그 자기의 직책을 다 물려주었습니다.
그때에 이창해의 나이는 칠십 고개를 넘어서 인자는 은퇴를 해 가지고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낚시질이나 하고 그렇게 참 소일(消日)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나 가지고는 쏜살같이 그 배가 달리고 달려가지고는 도착을 해서 잘 살펴보니까 한국에 강원도 고성(高城), 그 총석정(叢石亭) 있는 데에 도착을 했다 그 말이여.

그이가 본래 고성 사람이라, 그 강원도 뭐 십이경(十二景)인가 해 가지고 그 명승지(名勝地)를 다 두루 돌라봤기 때문에, 그러고 고향 지방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가 총석정이라 한 것을 알고서 그 인자 이...
근데 옷만 좀 젖었지 아무데도 다친 데가 없이 어떻게 그렇게 참, 이 요새 참 비행기처럼 빠른 그런 배가 달리듯이 그렇게 무사하게 동해(東海)를 건너서 총석정에 도달했다 그 말이여.

그래서 기어올라 가 가지고는 '요가 내 거시기인데 여까지 왔으니...'
옛날에 자기 어머니 따라서 낙산사(洛山寺) 기도를 다니던 그 생각을 하고 '낙산사나 한번 가 보리라' 그래 가지고는 낙산사 쪽으로 인자 서서히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오는데, 와서 요리 보더니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보아 하니 당신은 일본 사람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서 일본 사람이 여기를 왔소?" 하고, 창해 보고 물어보니까, "내 입은 옷은 일본 옷이나, 사람인즉슨은 조선(朝鮮) 사람이오"

"조선 사람이 어떻게 일본 옷을 입고 요렇게 여그를 서성거리고 있소?" 한게, 자기 얘기를 주욱 했습니다. 하니까 그 사람이, "형님!" 하면서 달라들면서 그러니께,
"여 왠 사람이 멀쩡히 남보고 형이라 그러요?" 하니까, 자기가 남양(南陽)이라고 하는, "남양입니다. 내가 남양입니다" 한게, "하! 니가 남양이냐?"

그 창해(蒼海)에게는 남양(南陽)이라고 하는 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남양이 왜 거기를 왔었냐 하면, 그 창해의 어머니가 오씨(吳氏)인데, 오씨는 평소에 불교의 신심(信心)이 돈독(敦篤)해서 항시 소원이 있으면은 그 낙산사에 와서 기도를 하고 집에서도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더욱이 그 창해가 제주도 목사로 떠난 날부터서는 더 열심히 기도를 하고, 또 그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전몰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서는, 그날 그 폭풍 일어나서 배가 파손이 된 그날을 기(期)해서 꼭 낙산사에 가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또 천도를, 제사를 지내고 그렇게 하다가, 그 오씨는 연만(年晩)해서 작고(作故)하고, 그 둘째 아들인 남양에게 유언(遺言)을 해서 "니가 꼭 그날에는 낙산사에 가서 꼭 기도를 하고, 니 형의 제사를 지내라. 그리고서 살아 있으면 반드시 돌아오고, 죽었다면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도록 부처님께 기도를 해라. 그리고 고기를 사서 방생(放生)을 해라"

이렇게 유언을 해 가지고 그 남양이 그 어머님의 유언을 받아가지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데, 해필 그날이 그 창해가 제주도 목사로 부임하러 떠나다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던 바로 그날이다 그 말이여. 그날 총석정에 도착해 가지고 동생과 상봉(相逢)을 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여러분, 관세음보살을 평소에 지극히 염(念)한다든지, 고왕경(高王經)을 독송(讀誦)을 한다든지, 또는 그런 성지(聖地)에 가서 기도를 한다든지,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신수기도(身數祈禱)를 정성껏 한다든지,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한결같은 마음, 정성(精誠)스러운 마음,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공(功)을 들이고 치성을 하고 기도를 하면 이와 같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성현의 가피(加被)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 이와 같은, 이보다도 훨씬 더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은 예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셔서 기도하신 여러분들도 '칠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또 그럭저럭 지내자' 이러시지를 말고, 평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덕(德)을 베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행동해 나간다면 여러분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그 일들 자체가 낱낱이 다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58분52초~1시간16분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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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운명(숙명)론2022. 3. 26. 09:00

운명(숙명)론((No.259))—우리는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을 만났기에 정법(正法)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위대한 부처님을 스승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도 부처님처럼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운명론(運命論) ; 숙명론(宿命論).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
세상이나 인생의 모든 것이 운명(運命)에 의해 예정되고 절대적으로 지배받는다고 보아 인간의지의 자유와 창조는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무력하다는 주장.

 

(1) 17분 9초.

 

(2) 1분 46초.


[법문] 송담스님(No.259)—1985년 신수기도 회향 (1985.01.09.음) (용259)

(1)------------------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그밖에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내 마음대로 얻어지면 기가 맥히게 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부러워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한동안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즐길 때에는 이 세상이 온통 나를 위해서 존재한 것처럼 느껴지고,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싶으지만.
그런 것들이 잠시 반짝거리는 풀끝에 이슬과 같은 것이요, 번쩍하다 말아버리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요,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환상과 같고 그리고 꿈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칠 만한 상대는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몸뚱이도 또한 그렇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미워하고 이뻐하는 그러한 모든 감정들이 또한 그렇고, 명예와 권리와 모든 재산도 또한 그렇고,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원망하는 그러한 인간 관계도 또한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허망(虛妄)하고 무상(無常)한 속에 우리는 이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나 가지고 그 무상한 속에서 무상한 것과 더불어 싸우며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끊임없이 굴러가고 또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상한 것을 마음대로, 마음먹은 만큼 얻어지기도 어려운 것이면서 얻어져봤자 끝내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가슴 아픔만 한아름 안겨 주고서 매정하게 떠나 버릴 그러한 것들, 계속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지내왔고, 현재도 역시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입으면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한량(限量)없는 겁(劫)을 향해서 계속 몽둥이질을 당하면서 가슴을 할큄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또 그놈을 따라가야만 할 그러한 어리석고 가련한 중생(衆生)들.

다행히 우리는 그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을 만났습니다. 만났기에 우리가 그것들에 속지를 아니하고 정신 차려서 정법(正法)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숙세(宿世)에 너무 깊고 깊은 인연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벌레가 여름밤에 촛불을 보고 그것이 좋은 줄 알고 모여들어서 그 불을 맴돌고 이리저리 날다가 결국은 그 불꽃에 나래(날개)와 다리가 타서 무수히 떨어져 죽는 것처럼,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을 향해서 그칠 줄 모르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따라가다가 결국은 그것들로 인해서 일어서지 못할 만큼 무서운 뭇매를 맞고 꺼꾸러지고, 그것들로 인해서 얽혀 가지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갈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났고, 정법(正法)을 만났기에 이렇게 신수기도를 하면서도 다른 어리석은 중생들이 그러한 것을 추구한 것과 같지를 않고, 그러한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원(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온전히 빠지지를 아니하고, 거기에서도 항시 정법을 믿는 마음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배반하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공부를 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 청정한 마음으로 잠깐 관(觀)만 해도, 잠깐 원(願)을 해도 그 원은 너무 빨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참으로 꼭 성취를 할 마음이 있으신 분은 어쨌든지 참선을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인간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리 신심(信心)이 있고 참선을 열심히 하신다 해도 또 가정에는 필요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들 없는 분은 아들을 구하게 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재산을 구하게 되고, 직장이 없는 사람은 직장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없고서는 당장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 만큼 있으면서도 욕심에 욕심이 붙어 가지고 끝없이 탐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러한 터무니없는 탐욕으로서가 아니라, 우선 가정이 살아가야 하고 애들 교육도 해야 하고 또 사람으로서 생활을 해 나갈 만큼의 재산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너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지나친 탐욕을 부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좋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구하고 적당하게 사용을 해 나가면 절대로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고 다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잘살고, 한결같이 또 못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한때는 잘살다가 또 한때는 못살다가 이렇게 됩니다. 그것은 과거(過去)에 우리가 짓기를 한결같이 좋은 일만 한 사람도 없고, 한결같이 나쁜 짓만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때로는 나쁜 짓도 하고, 때로는 좋은 짓도 하고 이러한 생을 수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우리가 금생(今生)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한 5년 내지 10년, 길면은 한 20년 이리 잘살다가 또 그 중간에 한 5년이나 한 10년 뭔 사업이 잘 안되고 재앙이 잇따라 일어나고, 또 그러다가 또 몇 해가 지내면은 또 서서히 또 뭔 일이 또 뜻대로 되다가, 이리 파장(波長)을 이루면서 부귀와 모든 공명이 나로부터 떨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초년(初年)에 참 부모 밑에 호강하다가 중년(中年) 이후로는 아주 형편없이 가난한 재난(災難)을 만난 사람, 초년에는 참 피나는 고생을 하다가 중년 이후에는 잘사는 사람, 또 초년 중년은 몹시 어려운 속에서 살았지만 말년(末年)에 가서 잘사는 사람, 사람들이 모두 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인 것입니다.
이것은 음양가(陰陽家)들은 사주팔자(四柱八字)가 그렇다 하지만, 사주팔자는 무엇이냐? 전생(前生)에 내가 지은 바에 의해서 해필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時)에 태어난 것입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달통한 사람들은 그러한 원리(原理)를 수학적으로 풀어 가지고 운명(運命)을 점(占)치고 있습니다마는, 음양오행이라 하는 것은 우주에 질서를 수학으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무시할 것도 못되나, 전적으로 그것에 얽매어 가지고 운명론자(運命論者), 숙명론자(宿命論者)와 같은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설사 사주(四柱)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실망할 것도 없고 생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죽 먹을 사람이 밥을 먹게 되고, 밥 먹을 사람이 좀더 풍족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지런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노력한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사람에게나 어떠한 일에나 대단히 좋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정신을 가다듬고 참선을 열심히 하면서 노력을 한다면, 아무리 비색(否塞)한 운(運)을 만난다 하더라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읊은 게송(偈頌)에 물은 달이 있음으로 해서 달빛이 비추어 주어야 그 물이 맑은 것을 알 수가 있듯이,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봐야 자기의 사람됨을 스스로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자기의 그릇이 얼마만큼 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당해봐야, 부자가 되어봐야 그 사람이 인간성이 참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또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그 사람의 끈기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달이 비추지 아니하고 껌껌하면 그 물이 썩 맑은지 탁한지를 알 수가 없다가, 밝은 달빛이 환히 비추어 줌으로 해서 물의 청탁(淸濁)을 가려낼 수가 있고, 하늘에 구름이 꽉 차 있으면 그 하늘이 얼마만큼 넓은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이 쏵 없어져야 그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재산을 많이 부자가 된 뒤에 그 사람을 봐야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 수가 있고, 그러다가 그 재산이 쏵 없어져봐야 그 사람의 참다운 인격(人格)을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道)를 닦아 가는데 있어서도 밤낮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여건하에서—아주 방사(坊舍)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의복이라든지, 모든 여건이 좋은 데에서만 정진(精進)을 하면 참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해서 금방 큰 도를 깨달을 거 같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좋은 환경에서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衣食住)가 부족하기도 하고, 주변이 시끄럽기도 하고, 어떠한 어려운 일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어려운 상태에 놓여서 봐야 자기의 수행력(修行力)이 얼마나 된가를 가늠할 수가 있고, 그런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한번 정진을 해봐야 거기에서 참으로 힘 있는 정진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고, 좋은 부모 밑에서 부모덕(父母德)으로 호강만 하고 자란 사람은 커서 별 볼 일이 없습니다. 조끔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감내(堪耐)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서 피나는 참 고생도 해 보고, 고통도 해 보고 그래야 어려운 사람의 사정도 알고, 그 사람이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많은 사람의 사정을 알아서 널리 덕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고행(苦行)을 쌓으시고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서 수없는 고통을 다 견디어내셨고, '손바닥만한 땅도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몸을 버리지 아니한 땅이 없다' 할 만큼 무수(無數)한 목숨을 중생을 위해서 보시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한량없는 보시와 공덕을 쌓으셨기에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투실 수가 있고,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두루 갖추어서 모든 성현(聖賢) 가운데에 최고의 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스승을 스승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그러한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41분38초~58분46초)





(2)------------------

'복을 부르느냐, 재앙을 부르느냐'는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도 관계가 있습니다마는, 금생(今生)에 내가 어떻게 노력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는 그것을 완화시킬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를 하고, 기도의 입재(入齋)와 회향(廻向) 때 법(法)을 설하는 것은 그러한 까닭인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대로만 받고만 만다면 우리는 아무런 기도도 할 것이 없고, 노력도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장래는 전생에 지은 바와 금생에 노력 여하가 합해져 갖고 우리의 앞에 모든 것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미 전생에 지은 것은 부처님께 참회를 하려니와, 앞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 한 문제에 대해서는 온통 우리 자신들에게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일 년 동안을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음을 가다듬고, 시시때때로 그림자 없는 채찍으로 스스로를 경책(警策)하면서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한 걸음도 퇴전(退轉)함이 없이 노력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1시간24분2초~1시간25분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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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인과(전강선사 No.349)—동래 범어사 명학동지 구렁이 몸 이야기 | 죽는 지경을 한번 생각해 봐 | 수업(隨業)허기가 업(業)을 이루기가 쉽고, 감보(感報)허기가 보(報) 받기가 그렇게 쉽다 | 生死二字 釘在額上 裂轉面皮 討箇分曉 | 閻羅老子 打算飯錢.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13분 37초)

 


[법문] 전강선사(No.349)—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1 (계축73.12.21)[몽산법어 부록 02-1](전349)

수시(須是) 생사이자(生死二字)를 가져라. 생사이자(生死二字)! 이 몸뚱이 나왔다마는 살아왔다마는 죽을 것을 생각해라. 생사 아니냐? 몸은 받아왔다마는 앞으로 죽을 일이 있지 않나. 죽는 지경을 한번 생각해 봐. 그 죽는 지경이 어떤 지경인가 한번 생각해 봐.

요 몸뚱이 얻지 못허고는 도 닦지 못하는 법이니, 요 몸뚱이 잃어버리면 잃어버린 그날부텀은 귀신으로 나타나서 그저 혼백으로 되어 가지고는 혼백이, 뭐 밤낮 이놈의 혼백이라는 건 중무소주(中無所主)해서, 제 정신 하나 없어서, 꿈! 꿈에 봐 꿈에, 꼭 꿈과 같은데 그와는 달라. 식(識)이 좀 다르다 그 말이여. 혼백(魂魄)과 몽식(夢識)과는 좀 달라.
몽식은 더 허망하지? 더 무주(無住)하고? 주(住)함도 없이 그저 그만 중무(中無)해서 뭐 뭐 이럭저럭 이럭저럭 그저 그만 싸우다가 또 어떤 놈허고 무슨 뭐 별짓을 다 해도 요놈의 것이 무슨 뭐 뭐 도무지 중무(中無)여.

아무 무슨 뭔 얼터거리도 없이 그렇게 무상허고 허망한 놈의 것이 귀신이 혼백이 돌아댕기면서 어디 가서 인자 붙어서 중음신(中陰身) 노릇이나 하거나, 글안허면 붙어서 인자 다행히 몸뚱이를 얻지. 그 몸뚱이를 얻으나, 옳은 몸뚱이 사람 몸뚱이를 얻으면 허지마는 혼백이 되기 때문에 어디 그놈이 가 붙은 대로 되지. 가 붙은 대로 되아부러. 개미한테 붙으면 개미가 되고, 뭔 비단 개구리한테 붙으면 비단 개구리가 되고, 벌한테 붙으면 벌이 되아번지고, 이놈의 것은 당초에 그 기가 맥히다 그 말이여.
그 붙는 법이 이상혀. 이 영(靈)이라는 게 모양이 모양 형편도 없으니 가서 그만 들어붙으면 되아번져. 그렇게 수업(隨業)허기가 업(業)을 이루기가 쉽고, 감보(感報)허기가 보(報) 받기가 그렇게 쉽다 그 말이여. 붙는 곳마다 그저 붙어 현신(現身)을, 몸을 얻어.

그러니 왜 그걸 뭐 언제 내가 법문도 했지마는 그 동래 범어사 명학동지(明鶴同知) 얘기허지 않았어? 명학동지가 그렇게 중이 되어 가지고는 돈만 모아서 큰 백만장자가 장자보담도 부자가 되어 가지고, 아! 그놈 가지고 있다가 죽은 뒤에 그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는 고방(庫房)에 제 돈 쟁여 놓은 고방에 가서 따악 지키고 있다 그 말이여.

상좌(上佐) 하나가 대도(大道)를 닦아 가지고 관(觀)을 해보니까 즈그 스승이 죽어서 구렁이가 되아 가지고 고방을 지키고 있거든. 그래 가서 고방 앞에 가서 “스님! 스님!” 부르니까, 아! 그래도 그 무슨 그 어쩐 일인지 이놈의 구렁이가 그 말을 듣고는 나왔다 그 말이여. 생전 못 나오다가.
업(業)을 받아 가지고는 그 고방 밑에 숨었으니 나오면 죽일까 싶으니까 못 나와. 그 애착이 또 무섭고 큰 방앳고 만헌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는 못 나오고 있으니까, 상좌가 도를 깨달라 가지고 가서 부르니께 나왔다 그 말이여.

그래 그 구렁이를 보고 “스님, 그 몸뚱이를 버리시오”
어떻게 버릴 거냐 그 말이여? 구렁이가 되아 가지고도 애착신이 되아 가지고 그 제 몸뚱이가 제일 소중하고 무서운디 어떻게 버릴 거냔 말이여.

“그 몸뚱이를 버리십시오” 이 몸 어디 버릴 수가 있어야지. “스님 머리를 대갈빡을 아무리 죽기 싫지마는 대갈빡을 그만 돌에다 쳐가 때려 가지고 자살하십시요”
원청 도인이니깐 도력으로 그랬던지 아!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을 철철 흘리고 울다가는 구렁이란 놈이 대갈빡을 때려 가지고 죽었네. 큰 구렁이가 죽었다 그 말이여. 그 혼백을 따라 가지고는 혼백을 데리고 나섰네. 혼을, 구렁이 끌고 댕기는 구렁이 속에서 꿈적꿈적허고 살던 그 혼을 앞세우고 나섰다 그 말이여.

나서 놓으니 이놈의 혼(魂)이, 구렁이 속에 들었던 혼(魂) 그놈이 몸뚱이는 내번지고 인자 혼 되아 가지고 나왔는데, 아! 그놈이 거 붙을라고 헌디 굉장해. 가다가도 그저 벌만 봐도 붙을라 하고, 개구리만 봐도 붙을라 하고, 어디 안 들어갈라고 헌 데 없다 말이여 당최. 이것 뭐 당초에 뭐 그저 꿈적꿈적헌 동충(動蟲) 연비충(蜎飛蟲)한테 다 붙을락 하네.
그놈을 기어니 못 붙게 때리고 때리고 인자 혼백을 때리는 법이 있었든가, 회초리를 가지고는 때렸다 했지? 못 들어가게 해 가지고는 인도해 가다가는 어느 산촌 산막에 들어가서 두 부부가 사는데 자식이 없어 그리 집어넣었어. 그라고 인자 그만두니까 가 붙지. 그 두 부부지간이 늦게까장 자식을 못 낳고 촌막에 사는디 그리 몰아넣었어. 그리 들어가서 거가서 아들이 되었다 그 말이여. 그래 그 아들을 데려다가서 그 도(道)를 가르킨 일이 있지 않어? 내가 얘기허지 않았어?

긍께 우리가 이 몸뚱이 신령으로 이 몸뚱이 잃어버리면은 혼이 되어 가지고는, 그 혼백이 뭐 안 들어갈라고 하는 데 없어. 그거 기가 맥히게 붙어번져. 그러니 실무(實無)지. 아무 실무가 없지. 그거 소용 있어? 이 몸뚱이를 얻어야사 이 몸뚱이를 가져야사—이 몸뚱이 가지고도 그저 망상은 도무지 뭐 분(粉) 싸라기 흩은 것처럼 일어나지마는, 그래도 이 몸 가져야사 화두(話頭)를 도(道)를 닦는다 그 말이여. 이 몸뚱이 없으면 도를 못 닦아.
그러니 이 몸뚱이를 잊어버려 되야? 될 수 있으면은 잊지 않고 도를 닦아야지. 어쨌든지 이 몸뚱이가 병이 나거들란 약도 잘해 먹고 그저 잘 조심해서 몸을 가져 가지고는 도를 닦어야지.

도 닦지 않은 몸뚱이야 그까짓 놈의 거 소용없지, 죄만 짓는 놈의 몸뚱이니까. 이놈의 몸뚱이 가지고는 구백생멸(九百生滅)이 모도 죄요, 거족동념(擧足動念)이 모도 죄요, 마음만 내도 죄요, 발만 들어도 죄업이요, 죄만 퍼짓는 놈의 몸뚱이거든. 도(道)가 있어야사 인자 참, 도(道)를 닦어야사 그 소중한 몸뚱이요, 참으로 이 귀중한 몸, 이 몸 가지고 도를 닦으니까.

헌디 이 몸이 사(死)가 앞에 있으니, 이 몸이 시방 사형선고를 받고 있으니, 오늘 죽을는지 내일 죽을는지 모르는 무서운 사형선고다. 죄인에 살인 강도를 하고 죄인의 사형은 아무 날 죽인다고 사형헌다고 기한이나 있건마는, 우리의 몸뚱이 사형이라는 것은 기한도 없다. 오늘이냐? 이 시간이냐? 이 뒷 시간인가? 어느 시간이고? 도무지 수유(須臾)를 뭐 앞으로 수유를 머무를 수가 없어. 잠깐 동안인들 안심할 수가 없어.

언제 죽을는지 알 수 없으니 생사이자(生死二字)를 가져라. 나왔다마는 살았다마는 죽을 것을 생각해라. 곧 사자(死字)가 앞에 있다. 금방 죽은 사람만 보고 그 사람은 금방 죽었다마는 나는 안 죽었으니까 오래 살까 싶지? 소용없어. 그 사람이나 내나 똑같어.
생사이자(生死二字)를 가져라. 정재액상(釘在額上)해라. 그 생사이자(生死二字)를 보통 가지지 말고 이 눈 사이에다 눈썹 사이에다 딱! 찍어 두어라, 도장 박듯기. 딱! 찍어라. 그 곧 죽는다.

열두 때 가운데 열전면피(裂轉面皮)해라. 열두 때 가운데 낯 껍데기를 펴지 말어라. '어째서 판치생모락 했는고?' 허면 이거 자연 낯 껍데기가 찡그러지지? 그놈을 생각하니까.
어째 그렇게 힘써서 하라는 건 아니여. '어째 판치생모락 했는고?' 이렇게 성의껏 정성껏 해라.

토개분효(討箇分曉)하야사 시득(始得)다. 확철대오해사 옳다. 공안이란 깨달은... 깨닫지 않은 게 아니다. 확철대오가 있어야 한다, 확철대오가 있어야 하니 분효(分曉)하야사 시득(始得)다. 깨달라야 옳다.
깨닫지 못하고 거가 물고만(묻고만) 있으면 뭐 할 거냐? 천년만년 그만 판치생모만 허고 말 것인가? 확철대오가 있어야 하지. 분명히 허고, 참다이 허고, 철저히 헐 것 같으면은 깨달은 각(覺)이 반다시 앞에 곧 온다.

약지수군축대(若秪隨群逐隊), 만약 느그가 군(群)을 따르고 떼를 쫓아서—그 모도 친구나 찾고, 모도 반연경계(攀緣境界)나 찾고, 그저 어디 놀 경계나 찾고, 화두허다가 안 되니 내던져번지고는 그만 쓸데없이 어디가 얘기나 할라 하고. 타공과시(打空過時)에는, 헛되이 공연히 때를 지낼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그만 그럭저럭 일평생을 그만 지내버린다면 도문(道門)에 나와서.
타시(他時)에 염라노자(閻羅老子)의 타산반전(打算飯錢)할 것이다. 다른 날에 염라대왕이 네 밥값 받을 때, 네 밥값 타산(打算)할 때 어떻게 헐래?

너, 도 닦는다고, 도 닦는다고 말은 허고선 네 평생에 뭣했나? 뭔 도 닦았나? 뭐 있어야지? 염라대왕 철방(鐵棒)을 맞아 갔으니—도 닦는 사람이면 참말로 닦은 사람이면 염라대왕이 철방을 내릴 이치가 있나?
철방으로써 잡아갔으니 염라국에 가서는 밥값 타산할 것이고, 시주것 네 헛되이 먹고 헛되이 보내고 네 무슨 짓 했나? 살생 도둑질 십악중죄(十惡重罪)만 퍼짓고 뭣했나? 이놈을 반전(飯錢)할 때 타산(打算)할 때 어떻게 헐래?

막도(莫道),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말 미리서 안 해 주었다고 원망하지 말아라.

저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가 그 상좌한테 지금 부탁한 법문이여.
내가 너한테 이렇게 설해 주었다고.. 이렇게 설해 주지 아니했다고 허지 말아라. 내가 미리서 이렇게 말해 주지 안 했나? 허니 그렇게 철저히 한번 닦아 나가면서 허송허지 말어라.

많이씩 못허겠구만. 조금씩 허지.(14분24초~28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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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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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상량(商量) (전강선사 No.011)—(게송)商量是鬼窟 文字是糟糠 若問何者是 棒行如雨滴 |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 생사 없는 법이 사바세계밖에 없다 |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하는 법이 없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찾기는 찾되 의심(疑心)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商量) 달러.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알음알이)

 

 

(15분 14초)

 


상량시귀굴(商量是鬼窟)이요  문자시조강(文字是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오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선(商量禪)이라는 게 못써.
공연히 앉어서 공부헌닥 하면서 참으로 의심을 허지 않고, 상량선을 하고 앉었거든. 요리 한번 생각해 보고 조리 한번 생각해서, 그 상량이 붙도록 화두를 든다 그 말이여. 상량선!
자꾸 그 무슨 이치를 찾고, 거다가 이상스럽게 모도 무슨 별별 도리를 끄집어다가 붙여서.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알 수 없는 의심만 딱 들고서는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걸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것이 조주(趙州)의 뜻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뜻이란 말이여.
그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거가서 무엇이 있을 것이여. 상량(商量)해서, 사량(思量)해서 붙여 봤던들 되냔 말이여.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이란 건 귀신굴이여.
귀신(鬼神)이라는 게 이 몸뚱이 내버리면 귀신인디. 또 귀신이 뭐, 따로 있나? 이 사람이 사람 몸 가지고 있다가 사람 몸 버리면 귀신이지.

귀신이라는 것은 그거 또 더 이상스럽게 사람 몸뚱이 가져 있을 때보담도 사람 몸뚱이 내버린 뒤에는 귀신의 상량이라는 것은 말로 못 혀. 이놈이, 귀신 상량이라는 것은 당초에 그건 뭐 어따가 비유헐 수 없이,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뿐이여.
숭악헌 근원도 없이 퍼일어난 놈이, 내 근본 정신도 없이 그만 일어나는 놈이 그 귀신 생각인디, 그걸 귀신 상량이라, 귀굴리(鬼窟裏)라 그려. 그래서 상량선이라는 것은 귀굴리선(鬼窟裏禪)이라 그런다 그 말이여.

그러니 제일 주의헐 것이 상량선이여.
안 헌닥허지마는 상량선을 허기 따문에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오들 않고, 화두일념(話頭一念) 지경이 오들 않고, 고 상량 따문에 망가(亡家)헌다. 집을 잊어버리고 실업(失業)한다. 업(業)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상량이 아닐 것 같으면은 화두(話頭)라는 것이 그대로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올 것이며, 어디 그 헛된 선(禪)인가? 참, 옳은 선(禪)이지.

공연히 따진다. 어서 깨달을라는 마음을 다 붙이기도 허고, 그놈이 그 무슨 이치를 찾아 붙인다. 아, 이런 놈의 꼴 봐라.
아무리 해봐도 이치는 아니여. 천하 없는 이치를 다 붙여봐. 그 이치가 무슨 이치가 참선인가. 아니거든. ‘깨달랐다’ 허니까, 뭐 깨달을 것 같으면 무엇이 뭐, 물건이 무엇이 하나가 있는 줄 알고.

어쩠던지 상량선은 안 해야 옳아. 그거 귀신 참선인디, 귀신 참선은 참선이 아니여.
그 까달(까닭) 따문에 타성일편 지경이, 의심 하나가 그저 의단독로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 덩어리가 뭉쳐져 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뭉쳐져 가지고는 독로(獨露)가 되지를 못혀.

문자(文字)는 시조박(是糟粕)이다. 문자라는 것이 조박(糟粕)이여.
일체 문자선, 문자 참선도 그 못써. 그 무슨 글귀를 집어대고 들어대고 해서 그 모도 문자 인증을 헌다 그 말이여. 문자 중 인증이 모도 그것이 조박—고인이 술 짜, 옛사람들이 술 짜 먹어 버린 술 찌꺼리인데, 그 찌꺼리 그것을 자꾸 내가 먹을라고, 술 찌꺼리를 먹어 보니 그 무엇이여. 아무 소용없지.

문자도 소용없는 법이여. 참선에는 문자도 소용이 없어. 그러헌즉 참선학자라는 것은 그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다. 문자에 얽히들 안 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배운 그 교(敎)를, 문자를 버려버리고 선(禪)에 들어온 것이다. 참선허는데 무슨 문자여? 무슨 교(敎)란 말이여? 거가서. 소용없다.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딱 참, 귀재의정(貴在疑情)이다. 귀헌 것이 의심이다.
화두 해 나가는 법! 내가 언제든지 올라와 화두 해 나가는 법을 이렇게 말해 주지 않어!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노? 아,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알 수가 없구나’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고것이 조주 뜻이여. 뭐 다른, 따로 조주 스님 뜻을 가 찾아?

‘해보니까 조주 스님 뜻이 다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의지가 다르고 아, 두 가지로 자꾸 생각이 나간다’고 요러고 앉었어. 그 무슨 그런 참선을 허고 앉었어.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가 없으니, 그 그놈 찾는 거 아닌가.

아, 그러면 그렇게 찾기는 찾되 의심(疑心)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商量) 달러.

인자 불 꺼버려라. 여그 올라오면 후끈해서 그만...

참, 이 이상 더, 천상천하에 어디 무슨 뭐 별별 세계에 다 없는 참선법(參禪法)이 우리 사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이 세계에 있단 말여. 남섬세계에 가서 남부세계에 가서 있거든.
세상에 이 세계는, 그저 인생이 나면 죄만 퍼짓고, 그저 인생이 나오면은 살래야 살 수 없고, 그저 나오다가 죽기도 허고, 이것 좀 살다가 죽기도 허고, 맨 놈의 남섬부주 죄짓는 세상인디, 아! 이 세계에 와서 있다. 이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

그 세상에 다 있제. ‘나’는 다 있고. 누가 주인공이 없어?
‘나’는 다 있고. 주인공은 다 있지마는 어째 남섬부주에 꼭 난 사람이래야 꼭 주인공,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이 있어. 그거 묘하다!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여의고는 없거든. 그러허니 불불(佛佛)이 성불(成佛)을 해가지고는 이 사바세계를 오신단 말이여. 사바세계에 내려오셔서 사바세계 중생을 제도헐려고 내려오신다 그 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이 대도(大道)를 이루어 가지고는, 불과(佛果)를 증(證)해 가지고는 오실 디가, 출세(出世)헐 디가 여그밖에 없어.

부처가 되아 가지고 불과를 증해 가지고는 가만히 중생교화도 않고 있을 수가 있나. 제일 큰 일이 중생교화(衆生敎化)인디, 중생을 교화 안 헐 것 같으면은 어찌 될 것이냐 말이여. 뭐가 될 것인가 말이여. 이 중생은 전부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있게.
부처님도 석일(昔日)에 우리와 같은 동아(同我), 똑같은 범부(凡夫)인데 그렇게 생사고를 같이 받아 오시다가 먼첨 성불을 했으니 어서 속히 중생을 위해야 헐 것 아닌가.

중생 때, 불과(佛果) 증허기 전 중생 때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생사고를 받았으며, 모도 미(迷)헌 우리 중생 사바세계에서 같이 부모형제가 되았으며, 그 인연 깊은 인연을 천만 겁 중에 같이 해 나왔는데 모도가 부모형제인데, 그 사바세계에서 생사고를 받고 있는 그 중생을 제도(濟度) 안 허고 무엇을 헐 것인가?
부처님이 불과를 이룰 것 같으면은 곧 당장에 그만 사바세계에 인자 하강(下降)허셔 가지고는 중생교화를 허는 것이여.

참선법!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허는 법이 없는데, 무엇을 헐 것이여!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냐? 그럼 묻노니 어떤 것이 옳느냐?
음, 세상에 상량(商量)도 귀신굴이요, 문자(文字)도 고인조박(古人糟粕)밖에는 안되아. 짜먹어버리고 내버린 찌꺼리밖에 안된다.
약문(若問)허노니, 내가 돌이켜 묻노니 하시(何是), 시(是)냐? 어떤 것이 그러면 참선법, 옳은 선법이냐?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다. 방맹이를 때리되, 방맹이로 막 치되 방맹이가 하나가 아니라 우적(雨滴)이니라. 빗방울이니라 했다. 그러니 어디 어떤 것이 참선이라고, 어떤 게 옳은 것이냐고 참선 도리를 묻거드면은 방맹이로 빗방울처럼 막 뚜드려 팬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디 어디 그 뭔 이치를 가르켜 놓았어? '참선이 요런 것이다' 가르켜 놓았어?

‘참선 이치가 요런 것이다’ 딱! 가르켜 놓을 것 같으면은 그것은 선이 아니여. 무엇이라고 딱 손가락처럼 착 나오면은 그거 참선법도 아니고 상견(相見)도 아니고 그거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허들 못혀.

게송(偈頌)으로 여까지.(처음~15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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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상량시귀굴~’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참고.
*조강(糟糠 지게미 조/겨 강) ;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와 쌀겨라는 뜻. ②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飮食). ③조강지처(糟糠之妻 : 가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의 준말.
*조박(糟粕 술지게미 조/지게미 박) ; 고인조박(古人糟粕).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숭악하다 ; ‘속이 응큼하다(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거나 음흉陰凶하다)’ ‘흉악凶惡하다(성격, 언행이 모질고 악랄하다)’의 사투리.
*귀굴리(鬼窟裏) ; 귀신 굴 속.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찌꺼리 ; ‘찌꺼기’의 사투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불과(佛果) ; 불인(佛因 :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苦].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석일(昔日 옛날 석/날 일) ; 옛적(이미 많은 세월이 지난 오래전 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고인조박(古人糟粕 예 고/사람 인/술지게미 조/술지게미 박)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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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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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용무생사2021. 11. 11. 17:40

용무생사((No.645))—조사스님네들이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깨달을 수 있도록 개척해서 남겨주신 최고의 훌륭한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뭣고?' | 공부하다 어떤 소견이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집착 말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해야.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한 마음으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야 |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러야.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修德寺 能仁禪院) 「법훈(法訓)」 '나를 찾는 법—참선법(參禪法)' p262. p264~265.

*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理無碍) • 사무애(事無碍)하게 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나니라.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체달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 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참고 ❸]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玄中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 말이여.(32분56초~34분55초)


[참고 ❹]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참고 ❺]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207, p212. (가로판 p215, p219)
[ 三玄(삼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역주(譯註)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❻]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10분 12초)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림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도 버리시고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그 법문이 문자화 된 것이 우리나라 해인사에도 팔만대장경 장경각에 목각(木刻)을 해서 잘 봉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팔만대장경의 법문이 그걸 다 읽기도 어려운 일이고, 다 해석해서 다 알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고인네들은, 조사스님네들은 그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 나가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을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몇 가지가 있지마는, 그 중에 최고의 훌륭한 법—간단하면서도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그것이 별 재미도 없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정말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다 보면 해 갈수록 뭣이 알아지는 것은 없어. 알아지는 것은 없지마는 해 갈수록 신심이 더욱 나오고, 더 무상을 철저히 느끼게 되고, 일분일초 시간을 아껴서 이 한 일에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은 '사람의 근기와 어떻게 정진을 해 가느냐'의 그런 차이로 해서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나오는 거와 같은 그러한 여러 가지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꼭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정진을 하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그런 가지가지의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는데, 나타난다고 해서 꼭 좋을 것도 없고. 그러나 그런 것이 나타나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아, 내가 이것이 견성(見性)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바로 도통(道通)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앞으로 좋은 징조인가 보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른 경지냐, 올바르지 못한 경지냐' 그것은 본인이 평소에 선지식(善知識)의 법문(法門)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면 스스로도 그것을 점검을 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는, 느껴보지 못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신기하고 묘해서 그것을 무슨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좋아하고 집착을 할 수가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경지를 여기서 50여 가지의 경계(境界)를 낱낱이 얘기할 시간은 없고 대별(大別)을 하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업장(業障)이 소멸되어서 그래 가지고 식(識)이 맑아졌다 하면은 그것을 꼭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공부가 앞으로 잘 되어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라면 거기에 집착을 아니하고 그런 것을 좋아할 겨를도 없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것에 집착을 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이 뭣이 알아진 것이 있고—무슨 조사의 어구(語句)나 『전등(傳燈)』 · 『염송(拈頌)』이나 경전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고 그런 수도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 내가 한소식 했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한다면 그 공부는 거기서 중단이 되고 말 것이고,
조금 더 보태서 시(詩)를 짓는다던지, 게송(偈頌)을 짓는다던지, 함부로 ‘자기가 한소식 했다’고 떠벌리고 과시를 한다던지, 또 막행막식을 하고 횡설수설해 가지고 많은 사람한테 자기가 도를 통한 것처럼 선전을 하고 과시를 하고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망하는 거고, 불법도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망하게 되는 거고, 많은 신도들도 그런 것을 보고 마음에 혼란심을 일으켜서 잘못된 데로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견(所見)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선지식을 믿거나 선지식의 법문을 의지하지 아니한 사람은 까딱하면 잘못된 지경에 말려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 대해서 각별히 주의를 하시고,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이냐 아니냐'—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무엇을 해먹을 짓이 없어서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가지고 대접을 받을라고 하는 그러한 짓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하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들은 전부 그러한 도반들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20분9초~30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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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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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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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연 인과설화((No.117))—부처님 당시에 왕의 노모 병환 치유 | 소원성취는 죄업(罪業)을 참회하고, 나아가서 십선(十善)을 닦아야 | 기도는 올바르게, 정성(精誠)으로,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해야.
충남 금산 보석사 주지스님 중풍 치료 이야기 | 단식(斷食) |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병자구입(病自口入)하고 화자구출(禍自口出)이라」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1) 18분 47초.

 

 

(2) 10분36초.

 


[법문] 송담스님(No.117)—1980(경신)년 신수기도 회향(80.02.24) (용117) (인연 인과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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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일 기도에 회향일로써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은 각기 어떠한 큰 소원과 또 작은 소원, 먼 소원과 가까운 소원들이 각기 있었을 줄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아주 효심이 지극해서, 그 노모(老母)가 한 분이 계셨는데 그 노모가 병환이 났습니다. 그 노모 병환을 낫우기 위해서 천하에 명의를 다 모아 가지고 치료를 했고, 좋다는 약은 아무리 비싼 약도 불구하고 만금(萬金)을 주어서 약을 구해 가지고 썼지만, 백약(百藥)이 무효였습니다.
그래서 바라문(婆羅門) 학자들을 수백 명을 초청을 해서 공양을 올리고, 그 바라문 학자들에게 자기 어머니의 병을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문의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리를 깨달은 대학자들이니까 반드시 우리 어머니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실 테니 그걸 좀 일러주십시요"

그러니까 그 바라문 가운데에 한 사람이 우멍하게 눈을 감었다 떴다 하더니, "지끔 하늘에 별들이 제자리에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혼잡을 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 음양의 질서가 흐트러져 가지고 그것 때문에 국왕에 모친이 병환이 난 것이니, 하늘에 태양과 달과 별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되 동물, 코끼리와 소와 말과 양 돼지 등 백 마리를 잡어서 희생으로 바치고, 거기에다가 아주 잘생긴 몸에 흠 하나 없는 소년을 갖다가 생(生)으로 그 희생(犧牲)으로 바쳐서 하늘나라에 제사(祭祀)를 지내면 병환이 낫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를 지내되 성 밖에 넓은 터에다가 제단을 차리고 직접 왕이 그 왕에 어머니를, 대비마마를 모시고 나와서 꿇고 앉아서 제사를 올리십시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믿고서 그러는 준비를 다 했습니다. 해 가지고 제사를 지낼려고 할 때에 부처님께서 가만히 관(觀)을 해 보시니까, 그냥 뒀다가는 백 마리의 그 산짐승과 아까운 소년 하나가 불에 타서 죽을 것을 염려하시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제(祭)를 지낼려고 하는 현장에 나아가셨습니다. 가셔서 법문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무릇 곡식을 얻으려면은 땅을 갈고 씨를 심어서 잘 가꿔야만 곡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고, 장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하려면 마음을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항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죽은 목숨을 살려 주고, 다른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서 약을 사 주고, 이렇게 해서 자비심을 갖는 것이 자기의 수명을 연장(延長)시키는 최선의 길이니라. 그리고 부귀를 얻으려면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布施)를 하고 사회복지를 위해서 희사(喜捨)를 해야만 부귀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를 얻으려면은 학문을 열심히 닦아야 지혜가 얻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지혜는 세속적인 지혜도 들어가고, 참으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벗어나서 진리의 지혜를 얻으려면 물론 마음을 비워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되겠습니다마는,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곡식과 장수와 부귀와 지혜를 얻는 방법을 말하셨습니다.

세상에 부자로 사는 부귀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음식과 옷을 주어도 먹지를 않고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부자로 고귀하게 사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그러한 음식을 주어도 잘 먹지를 않는 법이거늘, 하물며 하늘나라에 천신(天神)들은 그 집은 칠보(七寶)로 장엄이 된 궁전에서 살고, 입는 옷은 무겁지도 않고 아주 가볍고 따뜻하고 서늘하고 한 그러한 옷을 입으며, 음식은 감로(甘露)의 음식으로써 얼마든지 먹고만 싶으면 이미 배가 불러져 있을 만큼 그렇게 제절로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이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인간 세상에 소나 돼지나 말 염소 그러한 추악한 추한 그런 고기를 먹으며 또 사람을 갖다가 바친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그 신들이 그런 것을 먹기 위해서 이 제단에 올 수가 있겠느냐.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그 왕도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懺悔)를 하고 또 거기에 모였던 바라문들, 수백 명의 바라문들도 자기들이 그러한 진리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을 국왕에게 일러 가지고 큰 죄를 지을뻔한 것에 대해서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 국왕의 어머니는 그 법문을 듣고 거기에서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마음에 기쁨을 얻음과 동시에 백약이 무효했던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자기의 업, 죄업(罪業)을 참회를 우선해서 해야 한다고 한 것을 이 기도 입재일(入齋日)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참회를 하고 그리고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십선(十善)을 닦는 것이 소원을 성취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기도(祈禱)라 하는 것은 어떠한 절대자에게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나아가서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도록 기구(祈求)를 하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마는, 기도는 마치 산에서 산골짜기에서 고함을 치면 큰 고함을 치면 큰 메아리가 울려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 거와 같이 그 사람의 정성(精誠)이 얼마만큼 철저했느냐, 기도하는 방법이 얼마만큼 바르냐, 얼마만큼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소원의 성취 여하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충청남도 금산, 옛날에는 전라북도고 지금은 충청남도가 되었습니다마는 금산에 가면 보석사라고 하는 오래된 절이 있습니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이 6 · 25 동란이 나서, 그분은 부인을 데리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마는 6 · 25 동란을 맞아 가지고 부산으로 피난(避難)을 갔습니다. 부산에 금수사라고 하는 절이 있는데 그 절로 피난을 가서 방 한 칸을 얻어 가지고 그 할머니하고 같이 거기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많은 탓으로, 객지에 가서 날씨는 춥고 먹는 것은 센찬코, 도저히 그 고생이 형언(形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로왔던지 중풍병(中風病)이 일어나 가지고 반신(半身)을 쓰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방에서 대소변을 받아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백방으로 서둘러서 좋은 약은 다 구해다가 봉양을 하고, 좋은 의원이 있다고 하면 모셔다가 침(鍼)도 놓고 뜸도 뜨고 약도 쓰고 했지마는 전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보석사 그 주지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도—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나을까?' 하고 희망을 가지고 침도 맞고 약도 쓰고 백방으로 다 해 봤지만, 아무리 해 봤자 터럭끝만큼도 효험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병 나을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내가 하루 더 살면 하루 남을 괴롭게 하고 못살게 하고 나만 더 괴롭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내가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밥도 굶고, 죽도 안 먹고 그래 가지고 아주 죽기로 결심을 하고서 계속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열흘, 이렇게 해서—누울라야 몸이 아퍼서 누울 수도 없고 그래서 이불을 말아 가지고 벽에다 세워 놓고 그 이불에다 등을 대고 다리를 뻗고 앉어서, 그래 가지고 아주 한시라도 빨리 죽기를 원(願)을 세우면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2주일 이렇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루는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었는데 30년 전에 돌아가신 은사 스님이 떠억 찾어와서 "내가 지나다가 니가 여기서 고생을 하고 있다길래 잠깐 들렸다. 니 입은 옷이 센찬쿠나. 이 옷을 입어라" 하면서 조그만한 보따리를 주어서 그걸 끌러서 보니까 아주 얄팍한 얇은 그런 내복이었습니다.

"스님! 지금 아직 날씨가 추운데 이렇게 얇은 것을 입고 어떻게 지낼 수가 있습니까?"
"그래 괜찮다. 보기와는 달라서 이걸 입으면 가볍고 뜨시고 좋다. 그리고 니가 아프다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어디 진맥을 좀 해 보자" 그러면서 팔목도 만져 보고 왼쪽 팔, 왼쪽 다리, 아픈 데를 고로고로 문지르고 주무르고 고로고로 만져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잘 있거라. 그리고 병 치료 잘해라"
그리고서 그렇게 그 다리 속이 뼛속이 아프고 절리고 했던 것이 그 스님이 이렇게 만지는데 어찌 기분이 시원한 것 같애서 자기도 그 아픈 다리를 주물르면서 요렇게 다리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이렇게 드니까 깜박할 사이에 스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있어서 '참 이상하다' 그 스님한테 받은 옷은 간 곳이 없고 스님도 갔고, 그러고 만지고 하면서 있는데, 자기 그 할머니가 밖에 나갔다가 나가서 들어오면서 어디서 돌팔이같이 생긴 의원 영감님을 한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분이 중풍병 고치는데 아주 공이 있으신 의원이라"고, "아주 어렵게 찾아서 이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러니 좀 침(鍼)을 좀 맞읍시다" 헌께,
"나는 침 안 맞는다"고, "침 안 맞을 테니까 아주 그분을 보내라"고.

"그래도 여까지 왔으니까 한 번만 맞아 보라"고 하도 사정을 해서 '인자는 내가 30년 전에 돌아가신 스님이 와서 흰옷을 주고 간 것이 아무래도 나가 인자 오늘 죽거나 오래 살아도 수삼 일 이내에 내가 죽을 것이로구나. 내가 죽을 꿈을 그렇게 꾸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기왕 죽는 몸에, 죽는 김에 저렇게 그 마누라가 저렇게 서리가 부옇게 내린 새벽길에 나가서 의원을 저렇게 모시고 온 그것이 참 고마와서 그 사람 가슴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소원으로 이거 침을 맞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그러면 침을 놓으시라"고, 그래서 그 의원이 여기저기 몸에다가 수십 대 침을 놓았습니다.

놓고서 "어디 팔을 한번 들어 보라"고.
"그렇게 침을 맞고 약을 먹고 해도 낫지 않는 팔이 들어지겠습니까? 안 들어집니다"

"아니, 그래도 한번 들어 보라"고 하면서 의사가 그 노장님 팔을 쑥 들어올렸습니다. 뜻밖에도 팔이 들어올려지고, "다리도 한번 들어 보라"고. 다리도 딱 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원이 "그것 보라"고. "내 침이 보통 침이 아닌데, 아! 그렇게 그 팔이 움직여지고 다리가 움직여지는데 왜 안 들어진다고 하냐"고 아주 그 의원이 자기의 그 침이 그렇게 영험이 있다고 하는 것을 자랑삼아서 기고만장(氣高萬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장님은 '니가 침 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까 꿈에 그 스님이 와서 주물러 주어서 그래서 나은 것이지, 니가 가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그 자기 침 때문에 나은 줄 알고 야단이다'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인사로 "참 고맙다"고. "덕분에 이렇게 몸이 많이 효과가 있다"고 그렇게 인사를 하고 그분을 보냈습니다. 그 뒤로 그 노장님 병이 완쾌하게 나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산에 피난살이를 어느 정도 끝내고서 서울에 삼각산에 그 금선암이라고 하는 절을 짓고 10여 년간을 아주 건강하게 잘 사시면서 '이미 내 몸은 10여 년 전에 6 · 25 때 이미 죽은 몸인데,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내가 다시 살아났으니 이 몸뚱이는 내 몸이 아니라 오직 이 불법(佛法)을 펴기 위해서 일생을 마쳐야 할 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지막 80여 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신도 교화를 위해서 몸을 바치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실화로써 어째서 그러면 중풍, 세상에 중풍을 염불(念佛)해 갖고 중풍이라고 하는 그런 병이 나았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조끔 안 믿어지실 분이 있을런지 모릅니다마는 염불을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정말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그러한 중풍병 뿐만 아니라, 문둥병과 같은 그러한 병도 나은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18분42초~37분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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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보석사 주지 스님은 어째서 어떻게 했가데 병석에 앉아서 그렇게 했는데, 그런 무서운 중풍병이 나았느냐?
첫째는 '살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죽을려고 마음을 냈다' 죽되 왜 죽을라고 하느냐?
자기 몸이 괴로와서만이 아니라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해 줘야 하거늘 내가 육십 평생을 중노릇을 한 사람이 나로 인해서 저 나이 많은 마나님을 갖다가 저렇게 고생을 시키고, 이 피난살이에 그냥 와서 한쪽에 있는 것도 큰 폐가 되는데, 이러한 반신불수(半身不隨)의 병이 되어 가지고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똥오줌을 싸고 냄새를 피우니 이 부처님께나 이 절 주지 스님에게도 그러한 죄가 될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겠다' 이러한 마음을 가졌고, 또 하나는 단식(斷食)을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병이 나면 어쨌던지 먹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먹고, 정신을 차리고 원기를 보충을 해야만 병이 빨리 낫는다고 생각합니다마는 단식(斷食)을 한다고 하는 거, 단식을 하는 것이 어떠한 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짐승들은 병이 나면, 소나 말이나 돼지나 병이 났다 하면은 단식을 합니다. 입을 딱! 다물고 아무것도 먹지를 않습니다. 먹지 아니함으로써 한 사흘쯤 굶으면 어지간한 병은 다 낫습니다. 병이 나은 다음에사 비로소 돼지나 개나 소나 말이나 음식을 먹습니다.

짐승은 병이 나면 단식해 가지고 스스로 자기 병을 낫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리석게 영리해 가지고 병만 났다 하면 그렇게 먹기 싫고 귀미[口味]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먹어 가지고, 병(病)을 밥상 밑으로 내쫓는다 해 가지고 억지로 먹어 가지고 끌끌거리고 소화가 안 되고, 맛이 없으면 소화가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면은 영양이 흡수가 되지를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억지로 대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그 기력 없는 기력을 더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음식을 먹으면 활발하게 소화 작용이 벌어지고 또 흡수를 해 가지고 노폐물은 배설을 하고 영양은 섭취를 해 가지고 전신으로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병이 나면 그러한 일들이 병나는 데로 모든 피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 동원되기 때문에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하고 배설할 수 있는 그러한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음식이 들어와도 소화도 못 시키고 흡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는 자동신호가 바로 '귀미(구미)가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귀미가 떨어지면, '아하, 이거 먹지 말라 라고 하는 몸안에서의 소식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어디가 아퍼서 귀미가 떨어지던지 또는 속이 되게 상해 가지고 입맛이 뚝 떨어지던지, 무슨 근심 걱정이 있어 가지고 밥이 먹기 싫던지, 이럴 때에는 밥을 굶으십시요. 그리고서 냉수를 한 컵 마시세요. 이렇게 하면 병이 났다 하더라도 빨리 치유가 되고 또 체하는 법도 없고.
속이 되게 상할 때 밥을 억지로 먹어 놓으면 담방 체해 가지고 끌끌거리고 소화도 안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여러 날 고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요새 귀여운 아들과 딸을 가지신 분들은 애들이 아침에 밥을 안 먹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이걸 어떻게 달래고 타일르고 해 가지고는 억지로 먹여서 보낼라고 야단입니다. 이건 우리도 어렸을 때 겪어봐서 압니다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먹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안 먹으려고 하는 애들은 잘 달래서 물이나 한 컵 먹여서 보내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유도 좋지를 않고 계란도 좋지 않고, 더군다나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여서 보내 놓으면 좋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될 수 있으면은 혹 귀미(구미)가 있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은 모르지만, 먹기 싫거든 언제든지 먹지 마십시요.

우리가 일생 동안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열 가마니나 또는 스무 가마니 딱! 지정이 되어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먹는 양을 많이 먹으면 그 지정된 자기의 식량이 빨리 없어질 것이고, 조끔씩 먹고 또 먹기 싫을 때 안 먹고, 병이 났을 때 안 먹고 또 아침에 안 먹고 무슨 핑계를 대서든지 그거 식량을 아껴서 먹으면 그것이 바로 육십 세까지 다 먹을 것을 그렇게 해서 평소에 조끔씩 먹고, 귀미 없을 때 안 먹고 또 아침에 안 먹고, 기분이 나쁠 때 안 먹고, 슬플 때 안 먹고 해서 자꾸 핑계를 대서 적게 먹으면 육십 세밖에 못 살 사람이 칠십 세도 살 수 있고 또 팔십 세도 살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돈을 아껴서 쓰면 오래 쓰고 막 함부로 쓰면은 빨리 바닥이 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우스게 말로 들으실는지 모르지만, 적게 먹되 그것을 잘 소화를 시키고 완전히 흡수를 하면은 그것이 좋은 것이고, 많이 먹되 소화도 잘 못 시키고, 흡수도 잘 못하고 잔뜩 대변만 많이 누면 이것은 몸만 괴롭게 하고, 아까운 곡석[穀食]과 음식물을 헛되이 낭비한 것이 되고 말 것이며, 나아가서는 건강도 나빠지고 수명도 단축하는 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병자구입(病自口入)하고 화자구출(禍自口出)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병이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 하는 말은 음식물을 통해서 많은 병이 생긴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또 재앙이 왜 입에서 나오느냐? 말조심을 하지 아니하고 말을 함부로 하다가 모든 재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에 말 잘못해 가지고 죽는 예가 많고, 부부간에 얼마나 많은 싸움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일어나고 농짝을 때려 붓는 예가 많은 것입니다.
말이라 하는 것은 형제간에도 말 때문에, 일가 간에도 말 때문에, 친구 간에도 말 때문에 새이가 벙그러지고 웬수가 되는 예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은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 하는 말씀이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아주 내 몸을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참선을 할 때에 무아(無我), 무아의 경지를 겪어야만 깨달음에 도달한다. 또 기독교에서는 '나의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에게 다 바치고. 나는 죄 많은 중생이요, 아무 힘도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 전체를 다 바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려고 마음먹을 때에 그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구제를 받는다' 하는 교리와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칠 일 동안 가정에서 또는 이 법보선원에 나오셔서 각기 열심히 기도를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도를 아까 이 보석사 주지 스님처럼 완전히 부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다 맽기고, 나의 모든 죄를 참회(懺悔)를 하고 그렇게 간절히 하셨다면 여러분이 생각하신 크고 작은 소원은 반드시 성취가 될 것을 저는 보증합니다.(37분28초~48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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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영산회상2021. 9. 21. 09:45

영산회상((No.479))—(게송)一波纔動萬波隨~ | 선방(禪房) 대중, 외호(外護) 대중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한마음이 되어야만, 그 회상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된다. 영산회상이 되어야 그 속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분이 나올 것. 이것이 바로 불사(佛事).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임. 또는 그 자리).



*염화미소(拈花微笑) ;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범어의  Grdhraku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 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 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삼처전심(三處傳心) ;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한 것. 세 곳이란 첫째는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둘째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세째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다.

 

 

(14분 50초)

 


[법문]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허고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고  출신방호장부아(出身方號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한 물결이 움직이자마자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 고요한 호수에 돌맹이나 낚싯대를 한번 던져 봐라 그 말이여. 그 찰나에 수천수만의 물결이 거기서 끝없이 일어나더라.
우리가 '한 생각' 딱! 돌이키면 될 일을, 한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탐진치 삼독으로 뻗어나갈 때에는 온 집안을 흔들어 놓고 온 세상을 꾸정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그러한 그 한 생각을 돌이키지를 못하고 끝없이 되풀이를 하니, 마치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이 돌고 돌고 또 돌고 해서 한량없이 도는데 언제 끝날 기약이 없더라.

금년에 이 법보선원(法寶禪院)에 선방 · 사무실 · 후원 · 보살선방 해서 이백 명 대중(大衆)이 이렇게 지내는데, 후원에서 행자들과 또 여러 보살님네들이 모다 참 그 더위 속에서 참 많은 애를 쓰셨는데, 그러한 속에서도 서로서로 말을 조심(操心)하고 행동을 조심(操心)하고, 그 가운데에 일을 잘한 사람도 있고 또 서투른 사람도 있고 그래서, 그 아침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애를 쓰는 가운데에 참 많은 애를 썼지만, 서로서로 충고하고 서로서로 잘 아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가르켜주고 이렇게 해서 화합(和合)한 가운데 일을 잘 추려 나갔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패당(牌黨)을 지어서, '니가 잘한다, 내가 잘한다' '내 시킨 대로 해라'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고 상대방을 짓누르고,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이 석 달 동안에 무장무애하게 이렇게 해제를 맞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자기의 패당(牌黨)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직접 간접으로 압박을 주고 피해를 주는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면, 한 쪽으로는 공덕(功德)을 쌓고 또 한 쪽으로는 공덕을 소멸(消滅)하는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은 공덕(功德)은 좁쌀만큼 짓고 나쁜 업(業)은 산만큼 지어서 그 지은 공덕과 악한 업을 비교하면 비교가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와서 일을 도운답시고 같이 일하는 대중에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주어서 모처럼 신심(信心)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 놓고 압박을 주고, 다시 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도록 한다면 그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무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백 명 식구를 석 달 동안 이렇게 외호(外護)를 하고 한다고 하는 것은 한 사람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 봉사하는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하는 그런 원력(願力)을 가진 신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용화사 후원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어느 선방 어느 후원이라도, 후원에서 그 겨울에는 손이 꽁꽁 얼고 발이 꽁꽁 얼고, 여름에는 아무리 씻고 옷을 갈아입어도 금방 흠뿍 젖고 몸에는 땀띠가 돋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말없이 원주(院主)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밖에 여러 후원 대중들의 그런 수고가 아니고서는 그 한 철 대중이 정진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이 있는 동안 선방(禪房)이 안 없어질 것이고, 선방이 있는 동안에는 어느 선방이나 후원에서 애쓰는 보살화현(菩薩化現)들이 없이는 선방이 잘 운영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원에서 소임(所任)을 보는 원주 스님이나 도감, 별좌나 공양주나 채공, 또 그걸 돕는 여러 자원봉사(自願奉仕)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들도 그런 긍지를 가지고 신심으로써 잘 함으로써 한량없는—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거든. 일하면서도 화두를 열심히 들면 남에게 피해를 줄 필요가 없고, 또 누가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말을 한다고 해도 조끔도 중심(中心)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는 분들이나, 외호(外護)하는 대중(大衆)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마음이 되어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만, 그 회상(會上)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될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되어야 그 속에서, 선방에서 정진하는 대중 가운데에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분이 나올 것이고, 후원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속에서 툭! 터지는 대중이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불사(佛事)인 것입니다. 불사는 자기 하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불사여. 일체 중생(衆生)을 위한 불사이기 때문에 불사는 아상(我相)이 없어야 하고,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아상과 자존심을 버릴 때, 저 사람이 바로 나요, 내가 바로 저 사람이어서 우리가 모두 한 몸뚱이가 되는 것이고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큰 불사(佛事)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용화사(龍華寺)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17년이 되었습니다마는, 이렇게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불사—법당이라든지 선방이라든지 또 이 각 기타 모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볼 수 있는 불사가 이렇게 잘 이루어지고,
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또 이렇게 신도님네들이 이렇게 많이 또 이 운집(雲集)을 하게 되는 것, 또 많은 분들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고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중심으로 해서 최상승법이 온 나라에 이렇게 자꾸 선양(宣揚)이 되고 외국에까지 이렇게 자꾸 선양이 되는 것은 이것이 온통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정진(精進)을 하신, 그와 같은 신심(信心)으로 모든 불사(佛事)에 동참(同參)하신 그 공덕(功德)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산승(山僧)은 믿고 있습니다.

이 살아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모셔 있는 4만7천 위(位)의 이 법보영가, 우주법계(宇宙法界)에 수없는 우리의 선망부모들도 이 법회(法會)와 불사(佛事)에 모두가 다 동참을 하실 수 있도록 항상 이 법회 때마다 그러한 영가들을 이 법회에 청(請)하는 거량(擧揚)을 한 것입니다.
이 법당에 들어온, 또 이 법당에 들어오지 못한 밖에 있는 모든 영가들도 이 법문(法門)을 듣고서 이 불사에 동참을 한 그 공덕으로 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백종날, 이 해제(解制) 법회는 다른 법회보다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또 비명액사한 모든 영가(靈駕)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그러한 법회인 것입니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들께서도 이 법회의 그러한 특별한 의의(意義)가 있는 법회에 대해서 깊이 인식을 하시고 앞으로 이어지는 천도 법요식(薦度法要式)에 경건하게 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49분56초~64분4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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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인행(因行)2021. 9. 2. 18:18

인행((No.472))—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신 분이기 때문에 대장부다 | 부처님 과거 인행 때(용의 몸) 인욕 |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정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원력(大願力)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하리라.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9분 47초)

 


[법문] 송담스님(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용472)

앞으로 머지않아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 돌아오고 또 결제날도 또 일주일 더 지나가면 또 돌아올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제일가는 대장부(大丈夫)이십니다. 왕 가운데 왕이요, 성현 가운데 성현이신데, 정말 대장부이시거든.

부처님께서는 장육금신(丈六金身)이여. 그래서 대장부이시냐? 32상(三十二相)을 갖추셨기 때문에 대장부이시냐?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셨기 때문에 대장부이시냐?

그게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신 분이여.
어떻게 자기를 이기셨느냐?

과거 인행(因行) 때 부처님께서는 큰 힘을 가진 용의 몸을 받으신 때가 있었어. 어떻게 그 힘이 무섭고 그 안광(眼光)이 아주 태양보다도 더 밝고 그러던지, 담력이 약한 사람이 보면 그 용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담력이 큰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번만 보면 자기집에 돌아가서 죽게 되어.
그렇게 무서운 위력을 가진 용인데, 그 용이 날이 뜨뜻하니까 잠이 들었다 그 말이여. 졸았어.
푹 잠이 드니까 아무리 오색이 찬란하고 여의주를 가진 용이라도 잠이 들면은, 보통 잠이 들면 구렁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이여.

잠이 푹 들은 상태에서 어떤 포수가 그 잠들어 있는 용을 보았다 그말이여. 보니까 구렁이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 가죽 빛이 오색이 찬란한데 이 세상에서 그렇게 찬란하고 고운 것을 본 기억이 없어. 그래서 '저 구렁이를 잡아가지고 껍데기를 벗겨서 임금님한테 바쳐서 임금님의 옷을 만들게 하면 자기는 큰 상을 받고 큰 벼슬도 받으리라' 이러한 사견이 났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그 용을, 구렁이를 갖다가 두 갈래진 작대기로 목을 눌러 가지고 꼼짝을 못하게 딱 해 놓고는 생으로 그 구렁이 가죽을 벗겼어. 그때 그 용이 눈을 떠서 보니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 그 말이여.

그런데 용이 힘이 장사기 때문에 한바탕 꿈틀거리면 그까짓 작대기로 누른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고 무엇이고 이 지구도 갖다가 그냥 흔들어 놓을 정도로 그런 힘을 가졌지만,
'아서라! 내가 불법(佛法)을 믿는 용으로서 어떻게 내가 이러한 것 하나를 못 참을 수가 있겠느냐. 내가 저 포수도 죽여 버리고 온 세계도 갖다 발탁 뒤집어지고... 내가 한 생각을 참지 못하고 그런다면은 어찌 불법을 믿는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 가지고 그것을 꾹 참았어.

참으니까 가죽을 다 벗겼어. 벗기니까 완전히 벌건 살덤뱅이가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햇빛은 쨍쨍 나지, 개미와 벌레가 달려들어서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만약에 내가 여기서 꿈틀거린다면, 아픈 것을 참지 못하고 꿈틀거린다면 저 벌레들이 다 내 몸에 치어서 죽을 것이다' 그래 가지고 꼼짝을 않고 다 뜯어 먹히고 바짝 말라서 아주 뼈만 남을 때까지 다 참은 거여.
그래 가지고 인욕(忍辱)을 하고 또 살생을 하지 않고, 진심(瞋心)을 내지 않고 그래 가지고 그 용은 결국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어.

그 용이 결국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前身)이시고, 그때 그 구렁이를 죽여서 가죽을 벗긴 포수는 조달(調達)이여. 제바달다(提婆達多). 부처님의 사촌으로 태어났지마는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의 라이벌이 되어 가지고 부처님을 갖은 방법으로 해롭게 한 조달(調達)이다 그 말이여.
그리고 부처님 몸뚱이의 피와 살을 빨아먹던 수많은 개미와 벌레들은 부처님이 최초에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憍陳如)등 오비구(五比丘)에게 법을 설하실 때 그때 팔만의 모든 제천(諸天)이 다 득도를 했는데, 그 팔만사천의 하늘나라에 선신들이었다 그거거든.

부처님께서는 과거 인행 때에 그러한 인욕을 해 가지고 그러한 무서운 일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원한심을 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것을 신심과 지혜와 자비로써 그런 과정을 능히 성취한 그러한 과보로써 결국은 거룩한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였으면서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무량겁을 해서 오늘날에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마는 그래 가지고 이 정법을 듣고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조그만한 일로 진심(瞋心)을 내고, 탐심(貪心)을 내고, 원한심을 내서 선원에서는 도반(道伴)들에 혐오감을 주고, 도 닦아가는 데 장애를 주고, 그래도 견디지 못해서 걸망을 싸고. 이러한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금년 임신년 사월 초파일을 기해서 정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원력(大願力)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21분4초~30분5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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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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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용화선원2021. 8. 30. 08:32

용화선원((No.587-2))—불조(佛祖)와 같은 법력 · 도력 · 원력 · 덕행과 시절인연과 지연과 복력을 다 갖추고, 나아가서 건강까지도 갖추어야 조실(祖室)이라고 하는 직책을 가지고 부처님의 지혜 법등(法燈)을 높이 들어서 모든 후배 도반들에게 봉사하는 직책.

만공 스님의 제자이신 고봉 스님과 금봉 스님의 말씀 "말세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태어났을까? 만공 스님도 꼼짝을 못했거든. 그 혜(慧)가 빠르기를 번갯불과 같았다" |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 | 용화사에서 조실(祖室)로 전강 스님을 모시는 이유 | (게송)금생약불종사어~, 일파유조수부득~.


*용화선원(龍華禪院) ; 용화선원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수행하는 도량입니다.
조실인 전강선사께서는 23세에 견성하시어 혜봉, 혜월, 용성, 한암, 보월, 만공 등 당대의 6대 선지식과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의 법맥을 이으셨습니다.

그 후 1961년에 용화사에 선원을 개설하신 이래로 수많은 수행자들을 제접하시다가 1975년에 열반하시면서 송담스님께 법좌를 물려주셨고, 이후 용화사는 오늘에 이르도록 참선 수행도량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용화선원의 모든 운영은 스님들과 신도들의 수행 정진을 위한 공간으로서 움직여지고 있으며, 특히 일반 신도분들에게는 법회를 중심으로 신행활동을 하면서 더 나아가 불교의 진수인 활구참선을 널리 수행할 수 있도록 보살선방과 시민선방을 개설하여 참선입문에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13분 12초)

 


[법문] 송담스님(No.587-2)—1997년 동안거 해제 법어(97.02.22) (용587-2)

말씀이 나왔습니다마는, 이 '조실(祖室)'이라 하는 것은, 불조(佛祖)와 같은 법력(法力)과 불조와 같은 도력(道力)과 불조와 같은 원력(願力)과 불조와 같은 덕행(德行)과 시절인연(時節因緣)과 지연(地緣)과 복력(福力)을 다 갖추고, 나아가서 건강(健康)까지도 갖추어야 조실(祖室)이라고 하는 직책(職責)을 가지고 부처님의 지혜(智慧) 법등(法燈)을 높이 들어서 모든 후배 도반들에게 봉사(奉仕)를 하는 직책입니다.
지금 열거한 그런 여러 가지의 힘을 갖추지 못하고, 되나캐나 조실(祖室)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은 자기가 죽는 길이며, 대중(大衆)을 죽이는 것이며, 불법(佛法)을 망하는 일이라고 산승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전강(田岡) 대종사(大宗師)는 우리가 존경하는 만공(滿空) 스님의 제자이신 고봉(高峰) 스님, 또 만공 스님의 제자이신 금봉(錦峰) 스님, 그러한 스님께 들은 바로는, "말세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태어났을까? 만공 스님도 꼼짝을 못했거든. 그 혜(慧)가 빠르기를 번갯불과 같았다" 그런 큰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금봉 스님께는 내가 직접 들었고, 고봉 스님께는 내가 직접은 듣지 못하고 그 말을 가깝게 모신 시자(侍者)를 통해서 그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은 무슨 일을 처리한 데에는 두서(頭緖)가 없으셨고, 모도 참 '제삼자(第三者)가 어떻게 생각할 건가? 내가 이러한 행동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전혀 그런 것을 고려하시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뭐 이러쿵저러쿵, '돈 얘기를 많이 하시네 어쩌네' 녹음법문에도 돈 얘기도 많이 하신 것은 사실이나, 그 돈을 참 좋아하시고 그러시는 것 같애도, 내가 30여 년을 모신 바로는 전혀 돈을 모르셨습니다. 좋아하시기는 하면서도 전혀 그걸 모르셨고.
돈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 돈을 함부로 쓰시지도 않고 고스란히 다 예금을 해 놓고 열반(涅槃)하시면서 나에게 그것을 다 전(傳)하고 가셨습니다. 그것으로 대전에 불양답(佛糧畓)을 사놨다가 그것을 팔아서 여기 용궁장, 이 터를 사서 지금 시민선원도 하고 또 주차장도 하고 요긴하게 쓰고 있습니다마는.

좋아하신 것 같애도 전혀 애착심(愛着心)이 없었고, 그것을 하시기를 말년에 자꾸 그 통장을 나를 주실려 그러고, 나보고 자꾸 법상(法床)에 올라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극구(極口) 그것을 사양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 돈은 조실 스님 쓰시고 싶은 대로 쓰십시오. 병든 수좌(首座)들에게 약값도 주시고 여비(旅費)도 주시고 마음대로 쓰시지 그걸 뭐하러 그걸 저한테 전할라고 하십니까? 제가 능력이 있으면 조실 스님이 돈을...."
"그걸 내가 나 쓸라고 내가 돈을 모인 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서 내가, 돈을 내가 모인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시길래.

"저, 제가 힘이 있으면 조실 스님이 돈을 전해 주시지 안 해도 내가 얼마든지 하는 것이지, 돈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니가 참 내 뜻을 모르는구나" 하시고, 그렇게 참 섭섭하게 생각을 하셨습니다.

내가 주변이 없어서 신도한테 '돈 내라' 그런 얘기도 잘 못하고, 또 구변(口辯)이 없어서 설법(說法)도 잘 못하고, 또 내가 그런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그러한 여러 가지 능력, 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조실(祖室)을 안 하고, 조실 스님께서 열반을 하셨어도 우리가 조실 스님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하면, 우리가 조실로, 살아계신 조실(祖室)로 모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러한 것은 여담(餘談)입니다마는, 오늘 이런 말씀을 올릴 수밖에 없어서 이 자리를 빌려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조실 스님께서 (당신) 열반하신 뒤를 걱정을 하셔 가지고, 열반하시기 전 한 10년 이래로 마치 녹음기(錄音器)가 나와 가지고 그 녹음기를 통해서 날마다 대중을 앞에 놓고 그 기력(氣力)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녹음을 해 놓으셨습니다.
당신 「일대기(一代記)」에 대해서도 하셨고,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이나 『몽산법어(蒙山法語)』나 『선가구감(禪家龜鑑)』이나 또 이 닥치는 대로 후배 우리들을 위해서 많은 요긴(要緊)한 법문(法門)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해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사자후(獅子吼)를 우리는 다같이 듣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마는, 우리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을 교주(敎主)로 모시고 불교(佛敎)를 믿고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22년 전에 열반하셨지만,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는 꼭 생존 시에 하신 법문과 같이 우리는 경건하고 엄숙하게 법문(法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조실 스님 지난 추모재 때도 간략히 언급을 했습니다마는—제방(諸方)에 다른 선원(禪院)은 나는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스님을 조실로 모시건 다 그 문중에서 존경할 만한 법력(法力)이 있는 스님을 조실로 모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우리 이 용화사와 전강 조실 스님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까지라도 조실 스님 이상 가는 대도인(大道人)이, 앞에 말한 그런 여러 가지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원력(願力)과 덕행(德行)과 복력(福力)을 다 갖추신 그런 대도사가 나온다면 물론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서 조실로 추대된들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러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조실의 이름을 띠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나 대중을 위해서나 우리 정법문중(正法門中)을 위해서 삼가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참 숙세(宿世)에 깊은 인연(因緣)이 있어서 오늘 이 자리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해제 법요식을 갖게 된 것을 산승은 대단히 감격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늘 해제는 했지마는, 어느 산중(山中)에 가서 또 방부(房付)를 들인다 하더라도, 지난 한철보다도 훨씬 더 알차고 짬지게 정진(精進)을 하셔서 도업(道業)을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後世)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금생에, 오늘 이렇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산승(山僧)이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렸는데, 그리고 서산(西山) 스님의 법문과 5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법문을 소개를 했습니다마는, 이런 말씀을 깊이 명심(銘心)을 하고 따르지 아니하면, 후세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 이것입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한 줌 버들가지를 거두어 얻지 못해서, 거두어 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玉欄干)에 맺어두노라.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오늘 회향(回向)을 맞이했습니다. 회향을 맞이해서 소원을 모다 성취하고 보람 있는 새해를 맞이해서 또 열심히 법문 듣고 그 법문에 의해서 알뜰하게 생활을 통해서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26분~39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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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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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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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