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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10.06 십선(전강선사 No.018)—사람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 | 십악(十惡)을 참회하고, 십선봉행하고 참선을 해야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2. 2024.10.05 의심(전강선사 No.018)—『고봉선요』 법문 | 화두 의심은 불이고 번뇌망상은 나무인데, 다 태워버린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 십선봉행허고 참선해야 도솔천내원궁으로 간다.
  3. 2024.10.04 여상부모(전강선사 No.018)—(게송)千里長城牧笛晩~ | 깨달으면은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 수은(水銀) 비유 | 悟前 如喪父母 悟後 如喪父母 |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을 해야 되아.
  4. 2024.07.22 인신난득(전강선사 No.018)—사람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금생에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 | 십선봉행허고 참선해야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 화두가 일체 번뇌 망상을 다 태와 버려.
  5. 2024.07.21 『선요』 법문(전강선사 No.018)—若論此事 如大火聚 烈焰亘天 曾無少間 世間所有之物 悉皆投至 猶如片雪 點着便消 爭容毫末 若能恁麽提持 剋日之功 萬不失一 儻不然者 縱經塵劫 徒受勞矣.
  6. 2024.07.16 법거량(전강선사 No.018)—금봉 스님과 법거량, “조주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일러주십시오”[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 | 남전문수(南泉文殊) 공안.
  7. 2024.07.15 일사천하미진수품(전강선사 No.018)—참선 공부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기 | 깨달랐으면 전부 망상 자체가 각(覺) | 수은 비유 | 금정사 선원에서의 일화,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8. 2024.07.14 참선은 쉽다(전강선사 No.018)—참선 공부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기 |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 깨달랐으면 전부 망상 자체가 각(覺) | 수은 비유.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
  9. 2024.06.25 이즉돈오 사비돈제(전강선사 No.018)—(게송)千里長城牧笛晩 | 깨달으면은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 수은(水銀) 비유 | 悟前 如喪父母 悟後 如喪父母 |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을 해야 되아.
  10. 2024.06.20 전강선사(전강선사 No.018)—전강선사 직지사에서 첫 설법.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ㅅ/십선계 십악2024. 10. 6. 12:57

십선(전강선사 No.018)—지금 말세(末世)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사람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 | 십악(十惡)을 참회하고, 십선봉행하고 참선을 해야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14분 18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다맛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요놈에서, 알 수 없는 요놈 거각(擧却)한 디서, 망념이 무엇이 생겨날 디가 없어! 아, 해보면 알제.

헐똥말똥 좀 허다 말다 “아이고, 이놈의 것! 안 되니 그만 말아 버릴까 어쩔까” 요렇게 헌 놈의 참선이래야 안 되지. 괘명(掛命)허고, 목숨을 한번 그까짓 것 죽고 사는 걸 불고(不顧)해 버리고 한번 해보아라, 안 되는가? 죽도 않느니라, 그래도.

안 허고 어떻게 헐 꺼여? 이렇게 한바탕해서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봐야지, 그 요따구로 살다 말아? 요따구로 살다 죽고 말아? 어디 가 처백힐 것이며, 그놈의 곳 참! 궁금혀. 어디가 처백힐 것인가?
참, 이놈 안 갈 수 없다. 가는 길이로구나. 돌아오지 못헐 놈의 길을 간다. 다시는 못 와. 요까짓 몸뚱이 가지고 어떻게 오나? 요 몸뚱이 내버리고 어디를 와? 한번, 부모 처자 권속이라도 작별허고 이별해 버리면 그만이다. 다시는 그건 못 만나는 것이여.

그까짓 영(靈), 그것 뭐 이 몸뚱이 안에 있든 거, 누가 보기나 알기나 허간디? 그놈의 처백힐 곳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지금 말세(末世)다. 지금 가장 말세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그놈의 처백힌 곳이 무간지옥인가, 아비지옥인가, 소 배때기인가, 말 배때기인가, 귀신 배때기인가 알 수는 없다마는, 한번 처백히면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누가 저번에 질문허기를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이 생겨 나오는디 참, 사람 때문에 주체 못허겄는디, 그렇게 사람 몸뚱이가 나기 어렵다고 그래 놨답니까? 그 가뜩 사람 땜에 못 살겠는디” 이러드구만.
“야, 그것도 설찬히 질문도 헐 만한 말이다마는, 그게 어리석느니라” 내가 그랬어.

“그놈이 모도 그 이 몸뚱이 있는 물건, 몸뚱이로 모도 생명 붙어 있는—사람 몸뚱이 말고—짐승 몸뚱이, 벌거지 몸뚱이, 날라댕기는 연비(蜎飛) 몸뚱이, 바다 가운데 있는 몸뚱이, 큰 놈 작은 놈 다 모도 한량도 없는 놈 다 그놈 숫자를 좀 쳐 보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개구락지니 꺼갱이니, 뭐 또 저 물속에서 모도 그 해치깡에서 생겨난 그런 충이니, 박테리아 충이니, 공중 드리 전부 수륙공해(水陸空海) 전부를 다 쳐서, 사람 인명허고 그놈 비교 좀 해 보자.

부처님 말씀에 영(靈)은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돼지 영이나, 소 영이나, 사람 영이나, 개 영이나 똑같다 했으니 또 뭐 벌레 몸뚱이는 달라?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부처 되는 불성이 있다 했으니—그놈이, 대구 같은 놈 저런 놈이, 그 큰 놈이 알 낳아 놓으면은 처음에 나올 때는 찌끄만 눈만 생겨 가지고, 허다가 그놈이 차츰차츰 이물성대(以物盛大), 뭘 많이 먹고 크면 이만큼 커지고. 그렇제, 어디 본래 그놈이 무슨 뭐 불성(佛性)이 적고 큰가?
허니, 그렇게 한번 따져 보아라. 짐승취에 들어가거나, 공계에 일체 중음신(中陰身 ), 귀신 배때기에 들어가던지 이렇게 허제, 이 사람 몸뚱이 그렇게 쉽게 들어오겄나? 허니 그 어리석은 말이다” 내가 그랬어.

이 몸뚱이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턱 가서 얼른 장만해 오면 거 괜찮허제. 허지마는, 그렇게 못 되아. 과약(果若) 참, 어렵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사람 몸뚱이 다시 장만허기가 그렇게 어려우니라. 그거, 허니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한번 생각해 봐라. 몸뚱이 다시 얻기 어려운 생각을 한번 지어라. 지어서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57분41초)

지금이 말세다. 지금 이 말세가 어떤 말세인고? 우리 석가모니불 나오신 이 사바세계 출세(出世)—백 세에 출세허셨는데, 인자 백 년 지나가면 일 년씩 감해져서 천 년 지나가면 십 년 감해져서 육천 년만 지나갈 것 같으면 십 세 정명(定命)이 온다.
십 세 정명 올 것 같으면은 인자 거기에서 도병겁(刀兵劫) 일어나, 무슨 질병겁은 뭐, 도병겁, 도창겁이 막 일어나 가지고는 다 거그서 몸뚱이 생긴 것들 다 뿌어져 버리고 다 모가지 잃어버리고 중음신(中陰身)으로 되는디, 중음신으로 삼재(三災) 속에 들어가서 그놈의 속에서 이 육신 몸뚱이는 없지마는, 중음신 몸뚱이라는 것이 꿈에 있는 몸뚱이 같은 거, 몽혼신(夢魂身)도 아니지, 이것은 아주 꿈도 없제. 업신(業身)이지.

업신이 그 중에 들어서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네! 그놈의 고(苦)라는 것은, 중음신의 고라는 것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여. 그렇게 얼마를 고(苦)를 받고 있을 터이니, 거그 한번 빠져 놓으면 6억 7천만년 후에도 미륵회상(彌勒會上)을 못 참여혀. 언제 그것들이 나와서 미륵존불 회상에 참여헐 것이여?
지금 잘 닦아야, 잘 닦아서 견성을 했다고 하드래도 견성해 가지고 입태(入胎), 태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주태(住胎), 태에 들어가서도 안 매하고, 출태(出胎), 태어날 때도 안 매할 정도가 되어야사 허느니라. 미륵회상에 참여하니라. 우리가 그때 어디 가 있을 거여? 다시 사바세계 나오드래도 그래 깨달라 가지고 나와야사 환허제.

이렇게 이렇게 미(迷)해 가지고 이렇게 멍청해 가지고 오늘 이 목숨 잊어버리면은 향하처거(向何處去)오? 요 지경, 요 따위 되아 가지고서는 그만 이 숭악한 말세, 이 삼재(三災)에 들어가 버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그서 이렇게 해 놓은 거 무언 줄 아시요? 뭔 줄 알아?

여다가 딱! 예불(禮佛)은 고대로 하고, 예불은 각 사찰에서 허는 대로 고대로 예불 내가 딱 해 놓고는, 거다가서 우리 참선 학자들, 우리 선학자들 부처님께 축원(祝願) 하나, ‘그저 정법문중(正法門中)에 퇴타(退墮) 않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나도 깨달라서 일체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그러면은 거그에 수명 부귀 장수가 거그 다 들었고. 수명 부귀 장수가 무엇이여, 정법문에 물러가지 않고 확철대오허면은 천하에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축원 딱 해 번지고는, 고 밑에 가서는 떠억 십악참(十惡懺)을 허거든. 십악참이라 하는 것이 그 십중대계(十重大戒)여. 그 범망경(梵網經)에서 나온 것이여.
십중대계를 딱, 그 심지법문(心地法門)이거든. 견성(見性)해야사, 견성헌 이야 법(法)을 설혀. 견성해야 대승계(大乘戒)를 설혀.

멋대가리도 없이 그깟... 비구계(比丘戒), 내가 그걸 비방하는 게 아니여. 비구계 이백오십 계, 비구니계(比丘尼戒) 오백 계, 받아 놓았자 그 당장에 잊어버리는 거, 계상(戒相)도 모르는 거. 내가 설허는 것 안 됐다고 혀?

십중대계는 그대로 환해서, 참선 화두학자면 그대로 가지게 되아. 다 십중대계 딸렸거든. 그러면 계행(戒行)도—살생도 않는디, 또 살생도 않지만 파(破)할 것이 어디 있어? 가지고 범허는 것이 없으니 계상(戒相)까장 다 없어, 화두를 해 나가니까.

화두 학자가 십선(十善)을 봉행(奉行)해야 되아. 십악(十惡)을 이렇게 참회(懺悔)하고 십선봉행을 해야사 대번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간다 했거든.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선봉행만 하면은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간다 그 말이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갈 것 같으면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내려오지, 그냥 범부(凡夫)로 내려오는 법은 없어.

허니까, 똑 이렇게 예불허고, 아침에는 십중대계 그 참회를 따악 십악참회를 허면은—십악을 안 하면은, 내가 십악 죄를 안 지으면은 십선봉행(十善奉行)이여. 지악위선(止惡爲善)이니까. 꼭 십선봉행을 해야사, 십선봉행허고 화두를 참선 화두를 해야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인자는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서 우리가 피난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성불(成佛)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사바세계 어름어름허다가는 안 되아. 응! 그 말 잘 듣겠소? 그걸 잘 알아, 잘 알아들어야 되아.

그러니 여그서 이렇게 예불 똑 하고, 그 십악참 허는 거 고것 알고, 화두 딱 배운 보살님네 고렇게 해서 아침이라도 일어나시거들랑 방에서 딱 고렇게 예불 젓수고.
일어나서—모도 잠자고 그런디, 모도 뿌시럭뿌시럭 일어나서 잠 못 자게 그러지 말고, 가만히 혼자 일어나서 심배(心拜)라도, 마음으로라도 따악 이렇게 앉어서 도솔천 내원궁을 향해서 저! 제오천 도솔천인게.
극락세계(極樂世界) 가 버리면은, 극락세계 가서 넨장! 몇천만 겁을 나오도 않고 말 것이여 고대로? 속히 또 나와서 사바세계 우리 모도 인연(因緣) 중생을 제도(濟度)해야지. 고렇게 똑 해 주십시오.

내가 여다가 이렇게 해 놓고—다른 데야 허든 말든, 내 여그서 딱 작정을 해 놨습니다. 작정해 가지고는 고대로 꼭 해 나가니까. 그래 가지고 나, 또 용주사도 중앙선원이라 해서 거그도 “그렇게 해라!” 거그도 그렇게 합니다. 나! 다른 디야, 내가 관계없는 디야 내가 뭣 헐라고 내 말 비방허고 안 들을 턴디 뭣 헐라고 그렇게 헐 것이여. 안 혀.
여, 장삼(長衫)도 이렇게 맨들아서, 예복 장삼 간단허게 맨들아서 이렇게 떡 입고. 여그서만 내 입지, 다른 데 나가서 입으라고 안 허거든. 여그 딱 대중이 걸어 놨다가 요렇게 똑 허고 그럽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안 가르켜 논 짓을 내가 혀? 거, 외도(外道)라고?

부처님 꼭 고대로 해논 대로 내가 딱 해 논 것입니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하생경(下生經) 보시란 말씀이여. 거기에 어떻게 해 놨는가. 십선봉행을 허면은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는 것과 도솔천 내원궁에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미륵회상에 오는 것과. 환혀!
그런디 요새 모도 사교(邪敎)라는 것은 ‘곧 미륵님이 나오신다. 명년에 나오신다, 우명년(又明年)에 나오신다’ 요렇게 잡아 꾀이여. 어디 그건가?

이거 이대로, 부처님께서 미래불(未來佛) 그대로 다 설해서 수기(受記) 주어서 해 놓은 미륵회상을 내가, 다 미륵상생 하생경을 보고 내가 이렇게 딱 했지, 벌로 내가 이렇게 해 논 줄 아십니까? 꼭 우리 화두학자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 사상사(事象事) 그까짓 소용 있나? 참선허면 그만이제”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래서는 안 됩니다.(1시간8분22초~1시간22분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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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No.09)—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4분21초)
다맛 단정(端正)히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이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싹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또 무자(無字)를 허는 이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혹 혼침(昏沈)이 와 가지고 꾸벅 또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 (한두 번 소리내어) 화두를 또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한 5분—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한 5분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또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마(魔)가 소멸(消滅)이 되고. ‘마가 소멸된다’는 것은 혼침도 그것이 마(魔)고, 산란심(散亂心)도 그것도 마(魔)다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마(魔), 안에서 일어나는 마(魔), 모든 것이 다 마(魔)여, 마(魔)라고 볼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그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그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따악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12분8초~16분28초)


[참고 ❷]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3분57초)
화두를 들으라 들으라 하니까, "화두를 어떻게 듭니까? 어디가 놔졌어야 그놈을 들지, 어떻게 화두를 듭니까? 들어서 배꼽 밑에다가 딱 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그다가 붙이며.." 아주 그 대답하기가 대단히 거북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화두를 든다」고 하는 것은 「화두를 생각한다」고 우선 초학자(初學者)는 이해를 하시면 되는 것이고.

"생각은 되는데 관(觀)이 안 됩니다. 근데 그 어떻게 하면 관(觀)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을 묻는 이도 있습니다. 또 "관(觀)이란 게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도 있는데.
「관(觀)」이라 하는 것도 내나 「생각」입니다. 생각에 일종인데, 그 생각을 자꾸 화두를 생각하고—사량심(思量心)으로 생각해 갖고는 안 되고, 사량심이 아닌 꽉 맥힌 의심(疑心),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렇게 한 번씩 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고 그러고.

한 번 '이뭣고?' 하고 화두를 한 번 생각하면, 들었으면, 그 생각이 한참 동안, 1분이 되었건 3분이 되었건 내지 10분 동안이라도 그 생각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여가 딱 있으면 그동안에 「화두가 들어져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딴생각이 쑥 들어와 가지고 화두가 어디로 가 버리고 없으면 그때 다시 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고.
또 딴생각이 들어오지는 안 했지마는 '이뭣고?' 한 그 생각이 희미해져 버려. 그래 가지고는 화두를 든 것인지 안 든 것인 중도 모르고 그냥 조용한 채 우두거니 앉어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자기도 모른 새에 까빡 이렇게 (졸게) 되고 하는데. 그럴 때는 또 다시 화두를 떠억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또 한 번씩 챙기는 것이여.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딱 들어져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계속 그렇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드는 것은 아니에요.
한 번 들어서 그 생각이 쭈욱 있으면 자꾸 연거퍼 그 위에다 자꾸 포개 놓지 안 해도 되어요.

이 단전호흡(丹田呼吸)과 화두(話頭)가 언제나 같이 되어 가도록 그렇게 익혀 나가면, 단전호흡을 터억 하면 화두는 그 가운데 제절로 딱! 들어지고, 또 화두를 딱! 들면 제절로 단전호흡이 제절로 같이 따라오도록 이렇게 나중에는 되어 가는 것입니다.(15분5초~19분2초)


[참고 ❸]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2분28초)
내가 부모한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원래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본래 갖추고 있다. 진여불성이라고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마는 사실은 원래는 그러한 이름도 없는 것이고, 그런 특정한 모냥다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합니다.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대관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조화(造化)가 무쌍(無雙)하냐 그 말이여.
여기 법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울을 생각하면 서울이 환하거든. 목포를 생각하면 목포가 환하고, 부산을 생각하면 부산이 환하고, 지리산을 생각하면 지리산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왔다갔다 번갯불보다도 더 빠르다.

눈을 통해서는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는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는 맛볼 줄 알고, 말도 할 줄 알고, 발로는 걸어 다니고, 손으로는 뭘 잡고, 대관절 무슨 물건이 눈에도 보이지도 않고 손에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그렇게 조화가 무궁무진하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러면서도 알 수가 없으니, 그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벌써 그거 '이뭣고?' '이뭣고?'
자꾸 '이뭣고?'를 챙겨서 그놈이 무엇인가를 참구(參究)를 하다 보면, '이뭣고?' 하고 혀도 까딱도 않고 '이뭣고?' 소리도 하기도 전에 벌써 알 수 없는 생각이 탁! 있거든. 그러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하면 벌써 그것이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라.

지끔 요 얘기할 때도 환히 있거던, 화두가.
틀림없이 여러분들 지끔 제 말씀을 듣고 계시면서도 '이뭣고?'가 타악 되어져 있을 거여. '이뭣고?'(37분50초~40분19초)

*괘명(掛命 걸다 괘/목숨 명) ; ‘목숨 걸고’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❶]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❷]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벌거지 ; ‘벌레’의 사투리.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꺼갱이 ; ‘지렁이’의 사투리.
*해치깡 ; ‘수채, 시궁창, 늪, 진흙, 해감’의 사투리. 해초, 해초깡, 해치 등도 같은 뜻의 사투리이다.
*수륙공해(水陸空海) ; 물[水]과 육지(陸地)와 바다와 같은 하늘[空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涅槃經)』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역 北涼 天竺三藏 曇無讖 譯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제7권, 4.여래성품(如來性品)④.
佛說中道 一切衆生悉有佛性 煩惱覆故 不知不見 是故應當勤修方便 斷壞煩惱

부처님께서 중도를 말씀하실 때에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지만 번뇌가 가려서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서 번뇌를 끊어야 한다」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 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짐승취 ; 축생취(畜生趣).
*육취(六趣) ; 육도(六途, 六道)와 동일.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축생취(畜生趣), 아수라취(阿修羅趣), 인간취(人間趣), 천상취(天上趣)가 있다.
*취(趣) ;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중유(中有) · 중온(中蘊)이라고도 한다. 중음신은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진 의생신(意生身) 또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도 한다.
중유 또는 중음신의 기간은 불교 부파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보통 49일 동안 중음신의 상태로 머문다고 하여, 절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십구재(四十九齋)[또는 칠칠재(7·7재, 七七齋)]는 이 중음신의 기간에서 비롯되었다.

*사유(四有) ; 산스크리트어 catvāro bhavāh. 사유(死有) · 중유(中有) · 생유(生有) · 본유(本有) 등 한 번의 윤회 과정을 넷으로 나눈 것. 유(有)는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바바(bhava)의 한역어(漢譯語)로 유정중생(有情衆生)의 생존을 뜻한다.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유정중생은 모두 사유(四有)를 갖춘다. 사유 중에서 생유(生有)와 사유(死有)의 기간은 아주 짧은 찰나이지만 중유(中有)와 본유(本有)의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①사유(死有) : 죽는 찰나를 말한다.
②중유(中有) :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으로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에 이르는 기간이니 중음(中陰)이라고도 한다.
③생유(生有) : 태어나는 순간, 즉 모태에 탁태(托胎) · 결생(結生)하는 찰나이다.
④본유(本有) : 본시유(本時有) · 전시유(前時有) 등이라고도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으로 생유(生有)로부터 사유(死有)에 이르는 기간이다.
*과약(果若) ; 과연(果然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알고 보니 정말로.
*난조지상(難遭之想 어려울 난/만날 조/갈 지/생각 상) ;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정명(定命) ; ①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도병겁(刀兵劫) ; 중겁(中劫) 말기에 일어나는 소삼재(小三災)의 하나. 분노로 말미암아 서로 해치려는 마음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무기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재난이다. 도병겁은 칠일 밤낮 동안 계속되며 인구가 만 여명으로 줄어들어서야 비로소 자비심을 일으켜 끝이 나고 다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도병재(刀兵災) · 도재(刀災) · 도병중간겁(刀兵中間劫)이라고도 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몽혼(夢魂) ; 꿈속의 넋.
*업신(業身) ; 업(業)의 몸[身]. 육식(六識)—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이 무량겁으로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한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사람에게 세 가지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업신(業身)이요, 셋째는 육신(肉身)이로다. 법신은 불신(佛身)이요, 업신은 곧 귀신(鬼身)이요, 육신은 곧 사람의 색신(色身)이로다.
색신 가운데 업신과 법신이 구족(具足)하여 서로 여의지 않건마는 중생의 업보(業報)가 중하여 다못 업신이 구원겁을 드나들며 사생(四生) 육취(六趣)의 육신(肉身)으로 인하여 모든 악업을 짓도다.(p231)

사람에게 법신(法身) · 업신(業身) · 육신(肉身), 세 가지 몸이 있다 하니 어떠한 것이 육신인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다. 지(地)는 살이요, 수(水)는 눈물 · 콧물 · 대소변이요, 화(火)는 따뜻한 기운이요, 풍(風)은 콧김 · 입김 · 동정(動靜)이니 이 네 가지를 부모에게서 얻어 육신을 지었다가 명(命)이 다하여 임종을 하매 지(地)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물로 돌아가고, 화(火)는 불로 돌아가고, 풍(風)은 바람으로 돌아가 사대가 흩어지니 허황(虛荒)하기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장마에 두엄 버섯이니라.

어떠한 것이 업신(業身)인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이 여섯 가지 식심(識心)이로다.
눈으로 일체 만물을 보아 탐하여 모든 업을 지으며, 귀로 일체 소리를 들어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코로 모든 냄새를 맡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혀로 모든 음식을 맛보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몸으로 춥고 더운 분별망상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뜻으로 밉고 어여쁘고 좋고 나쁜 일체 망상(妄想)을 내어 모든 업을 지어, 이 여섯 놈이 무량겁(無量劫)으로 드나들며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니, 이러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법신(法身)인고?
일찌기 발심하여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다생죄업(多生罪業)을 참회하고, 옛 성현의 친절언구(親切言句) 천칠백 화두(話頭) 가운데 자기에게 합당한 화두를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중에 모든 망상(妄想)이 적적(寂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여, 들지 아니하되 화두가 스스로 들림이 샘물 흘러가듯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에 이르러,
홀연히 망상 구름이 흩어지고 마음달이 홀로 드러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 그 밝은 빛이 하늘과 땅이 궤멸(潰滅)하여도 이 광명(光明)이 길이 멸하지 아니하며, 이것을 이름하되 불생불멸지도(不生不滅之道)라 하나니라.

이같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 이름하며, 혹 도사(導師)라 이름하며, 혹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며, 혹 부처라 이름하나니, 천당(天堂) · 불찰(佛刹)에 임의 자재하여 천상(天上)에 가서 나매 천상 사람을 제도하며, 인간에 나매 인간을 제도함에 이르므로 인천(人天)에 스승이 되며, 사생(四生)에 자비로운 부모가 되는 고로 이 사람의 이름이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이로다.(p233~236)

누구든지 육신(肉身) · 업신(業身) ·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p247)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p257)

인생은 자기 업신(自己業身)의 반영(反映)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實相)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異性)으로 감응(感應)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으니라.(p266)

우리가 느끼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육식(六識)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흩어지나니,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천류(遷流)하는 육식으로 어찌 인생이 근본 정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p270)

*무수(無數 없을 무/세다·셈하다·헤아리다 수) ; 헤아릴[數] 수 없음[無].
*일구난설(一口難說 한 일/입 구/어려울 난/말씀 설) ; 내용이 복잡하거나 길어서 한[一] 입[口]으로는 다 설명(說明)하기 어려움[難].
*미륵불(彌勒佛) : [산스크리트어]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향하처거(向何處去) ; 어디로 갈 것이냐?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⑩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범망경(梵網經) : 이 경은 범어나 파리어(巴利語 pali)로 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록대로 본다면 본래 61품, 백이십 권 되는 원문을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그 중 열째 권인 「노사나불이 말씀하신 보살의 심지 계품(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만을 번역하여 상•하 두 권으로 만들었다. 상권에는 심지 법문(心地法門)을 말하였고, 하권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 경구죄(輕垢罪)를 말하였는데, 경구죄란 것은 중대한 죄악은 아니나 깨끗하지 못한 허물이 된다는 뜻이다.
보살계는 심지 법문을 주장하는 대승계이며 성계(性戒)이다. 그러므로 이 경은 율부(律部)에 속하지 않고 <화엄경>과 같은 부류에 들게 된다.
이 경을 해석한 글이 많지마는 신라의 대현(大賢)이 지은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과 원효(元曉)의 <사기(私記)> 2권과 의적(義寂)의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상•하권 같은 것들이 가장 유명하다.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 법문.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 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 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계(戒)의 상(相). 계율에 대한 생각. 그 계상(戒相)의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권10 제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계를 지킨다는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어름어름하다 ; ①말이나 행동을 똑똑하게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자꾸 우물쭈물하다. ②일을 대충하고 눈을 속여 넘기다.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미래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설함.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명년(明年) ; 올해의 바로 다음에 오는 해.
*미래불(未來佛) ; ①미래에 나타날 부처님. 특히 미래에 나타날 미륵불(彌勒佛)은 현재 미륵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면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며,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예정되어 있다.
②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가능성을 가진 중생을 일컫는 말.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기 때문애, 여러 가지 수행을 통해 미래세에 성불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중생을 미래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기(受記, 授記) ; 부처가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그 교설(敎說).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사상(事象 일 사/모양 상) ; 관찰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물(事物)과 현상(現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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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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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의심(전강선사 No.018)—『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五)’ | 화두 의심은 불이고 번뇌망상은 나무인데, 다 태워버린다. 망상이 있을수록에 화두가 점점 커져! | 사람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 십선봉행허고 참선 화두를 해야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아래 전강선사 법문에 들어 있는 『고봉선요(高峰禪要)』 내용.
[참고]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五)’ (고봉 화상 |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69~70, 72.
若論此事인댄 如大火聚 烈焰亘天하야 曾無少間이라 世間所有之物을 悉皆投至라도 猶如片雪 點着便消어니 爭容毫末이리오. 若能恁麽提持하면 剋日之功을 萬不失一이어니와 儻不然者인댄 縱經塵劫이라도 徒受勞矣리라

만일 이 일[此事]을 말하자면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는데, 세간의 온갖 물건을 무엇이나 집어 던져도 한 조각의 눈[雪]이 닿자마자 곧 녹아버리는 것과 같나니 어찌 털끝만치인들 딴 생각이 용납되겠는가. 만일 이렇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기한내에 성취하는 공(功)을 만(萬)에 하나도 잃지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도 고생만 할 뿐이리라.

 

(1) 16분 17초.

 

(2) 11분 17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1)------------------

조금 화두 허는 경계나 내가 한마디 얘기허고 내려갈까? 여까장 해두고 잉.
기운 없어 못허겄고. 법문이 고함지르기 시작허먼 법문 못해야. 뱃속에서 안 나오니깐 고함을 지르거든.

약론차사(若論此事)인댄, 이 일을 의논할진대. 이 일은 무엇인고? 참선법, 화두법이여.
여대화취(如大火聚)다. 큰 불무더기 같다. 불무더기가 조그만헌 불무더기가 아니라 큰 불무더기다.

어째 큰 불무더기냐? 집채라도 큰 집채에 불이 타면 클 것이고, 적은 집에 불타면 적은 불무더기일 것이다. 불무더기라 하는 것은 나무가 많이 쟁여져 있어야, 거그 불이 붙어야 큰불이다. 나무 없으면은 불이 붙을 수가 있나? 나무가 가뜩 쟁여져 가지고 그 불붙어야사 큰 불무더기니라.

그런 참선법도 여차(如此)하다. 망상(妄想)이 잔뜩 있는 사람, 습기(習氣)도 많고 망상도 많고 그렇게 그만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뜩 괴어 차 있는 사람일수록에 그 사람이 공부를 허는 것이여.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안 되지마는, 그 사람이 공부를 해야사 공부가 인자 된다 그 말이여.
그렇게 많이 구원겁(久遠劫) 중으로 오면서 그 많이 탐진치를 익혀 왔고, 그 망상! 망상이 무엇인가, 모도 그 습기 망상이지. 살생 · 도둑질 · 거짓말 그저 모도 이런 망상, 그거 모도 그런 것으로써 습기 지어서 그 망상이지.
그러니 그런 망상이 많이 있는 사람이래야 화두가 떠억 되는 것이여. 큰 불무더기가 냉기가 많이 있으면 불이 잘 타데끼—불은 화두인디, 나무는 그놈이 번뇌 망념인디, 나무 그놈을 막 들입대 큰불이 태워 버린다 그 말이여.

처음에는 마침 화두를 배워 놓으니,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놈을 배워 놓으니, 잔뜩 불 땐 굴뚝에 연기 뻥뻥 나오는데 들여다보는 것 같지. 그 들여다볼 수 있나? 막 연기가 눈으로 푹 대들고, 코로 입으로 막 대든디 들여다볼 수 있어? 그와 같혀.
그와 같기도 허고, 문자상철우상사(蚊子上鐵牛相似)여. 모구(모기)란 놈이 쐬소, 쐬로 된 소 뚫는 것 같여. 그 모구 부드러운 주뎅이, 고것으로 쐬소를 뚫으니 되아? 그렇게, 안 들어가. 되도 안 혀. 그렇다 그 말이여. 그러지마는 화두라 하는 것은 그러헌 사람이 해야 혀.

젠장! 영리해서 말, 법문 잘 알아듣고 이치를 딱딱 분석해서 알고, 그 사람 못혀. 고 영리한(靈利漢)은, 날카로운 영리헌 사람은 이치길을 자꾸 만들아, 이치를 모두 뭘 만들아서 그래서 못혀.
망상이 꽉 찬 사람이 척 들어와서 화두를 배워 보면 깜깜 칠통(漆桶)이여. 무슨 어떻게 헌 지도 몰라. 그래도 그만 그대로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렇게 그만 무식허게 대들어야 혀. 영리허게 요리조리 주박성(湊泊性)으로 대들면 못써. 상량선(商量禪)으로 대들면 아무짝에도 못써.

확 대들어서 알 수 없는 놈을 하나 추켜들고는 자꾸 이놈을 챙긴다. ‘어째서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그놈 없어지기 전에 어서 또 끄집어 일받고 일받고 허면은 그놈의 망상이 어디 틈, 비집을 틈을 어디 얻어서 나올 수가 없어. 못 나와.
그까짓 거 나오거나 말거나 판대기 이빨에 털만 자꾸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아! 요놈만 자꾸 거각(擧却)하는데, 어디 망상이 어디서 불거져?

그까짓 염(念), 일어나는 망상 두려워허지 말어라. 자꾸 화두만 이놈 이렇게 자꾸 챙겨라. 그러면 맹렬헌 불이 낭기 태우데끼, 일체 망상이 판치생모 생각하는 디 당최 어리대도 못헌다. 그와 같여.

그러헌 더운 불꽃[烈焰]이 큰 불무더기가 긍천(亘天)이다. 하늘까장 뻐질렀다. 원청 큰 불무더기이기 따문에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그 불무더기가 원청 냉기가 하도 많이 쟁여져 있으니까, 그 큰 불무더기가 타도 ‘일찍이 조금도 사이가 없다’ 어떻게 많이 드리 타는지.(43분1초)

그러니 망상 번뇌가 많이 있는 그 사람은 화두 그놈이 점점점점 불무더기 타데끼 자꾸 커지제. 망상이 있을수록에 화두가 점점 커져!
소유지물(所有之物)을—비단 냉기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일체 도모지 모냥 있는 물건은 다 태운다. 옥석(玉石)도 태우고 쐬도 녹아 버리고 무슨 물건이든지 다 태와 버린다.

실개투지(悉皆投至)면은, 거다가 집어넣어 봐라. 뭣이 안 타는가? 유여편설(猶如片雪)이다. 그 큰 불무더기가 불이 많이 크게 탈수록에 더 열이 많고 굉장한 강해서 여간 천하없는 무슨 못 태울 물건이라도 거그 들어가면은 봄눈같이 녹아져 버린다.
이 비유인디, 화두를 이와 같이 다루어라. 화두만 자꾸 챙기면은,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 턱 챙기면은 의심 그놈이 불인디 뭐가 안 녹아지겄나? 무슨 망상이 거 와 붙겠나? 자꾸 화두 의심만 길러라! 알 수 없는 놈만 키워 길러 나가거라.

세상에! 이 법같이 쉬운 참선법이 없는데, 더군다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인데 어째서 안된다고 하냐 그 말이여. 그저 바람 쐬다가도 또 한번썩 생각하고, 들어가 또 좌(座)에 앉어서 생각허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을 그놈을 자꾸 생각해야제, 고것 의심 없이 지해(知解) 상량(商量)으로 들어가 봐. 요리 알고 저리 알고, 무슨 이치고, 뭐 요따구 놈의 선(禪) 해봐, 무엇이여? 그런 선은 그건... 무슨 그러니 그러기 따문에 뭐 신선도도 못 되제. 그것이 무엇이여?

점착변소(點着便消)다. 그 불무더기에는 그저 집어넣기 전에 다 탄다. 어디 뭐, 거그 부닥쳐서 타나? 더도 들어오도 못혀.
화두가 일념이, 이렇게 의심이 성대(盛大)헐 것 같으면은 큰 불무더기와 같애서 참!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만(萬)이 참선허는데 하나도 잃은 법이 없어. 하나도 안된 법이 없어.

쟁용호말(爭容毫末)이냐? 호말(毫末)같은 거, 터럭겉은 걸 집어넣어 봐라. 거가 어디 어리댈 수나 있나?
화두 의심이 돈발(頓發)되면은 그깥은 무슨 세상, 무슨 번뇌 망상이 무슨 소용이 있어? 번뇌 망상 그까짓 걱정헐 게 뭐여? 또 잠이 그것이 어디서 와? 잠! 잠이 그것이 뭐 근본이 있는 것인가, 그것이? 근본도 없는 것이 공연히 들어와서 심월(心月)을 어둡게 만들지.

약능임마제지(若能恁麼提持)를 해 봐라. 활구참선허는 사람이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화두를 제지(提持)해 봐라. 똑 날로 날로 다루어 해봐라.
다맛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요놈에서, 알 수 없는 요놈 거각한 디서, 망념이 무엇이 생겨날 디가 없어! 아, 해보면 알제.

헐똥말똥 좀 허다 말다 “아이고, 이놈의 것! 안 되니 그만 말아 버릴까 어쩔까” 요렇게 헌 놈의 참선이래야 안 되지. 괘명(掛命)허고, 목숨을 한번 그까짓 것 죽고 사는 걸 불고(不顧)해 버리고 한번 해보아라, 안 되는가? 죽도 않느니라, 그래도.

안 허고 어떻게 헐 꺼여? 이렇게 한바탕해서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봐야지, 그 요따구로 살다 말아? 요따구로 살다 죽고 말아? 어디 가 처백힐 것이며, 그놈의 곳 참! 궁금혀. 어디가 처백힐 것인가?
참, 이놈 안 갈 수 없다. 가는 길이로구나. 돌아오지 못헐 놈의 길을 간다. 다시는 못 와. 요까짓 몸뚱이 가지고 어떻게 오나? 요 몸뚱이 내버리고 어디를 와? 한번, 부모 처자 권속이라도 작별허고 이별해 버리면 그만이다. 다시는 그건 못 만나는 것이여.

그까짓 영(靈), 그것 뭐 이 몸뚱이 안에 있든 거, 누가 보기나 알기나 허간디? 그놈의 처백힐 곳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지금 말세(末世)다. 지금 가장 말세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그놈의 처백힌 곳이 무간지옥인가, 아비지옥인가, 소 배때기인가, 말 배때기인가, 귀신 배때기인가 알 수는 없다마는, 한번 처백히면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누가 저번에 질문허기를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이 생겨 나오는디 참, 사람 때문에 주체 못허겄는디, 그렇게 사람 몸뚱이가 나기 어렵다고 그래 놨답니까? 그 가뜩 사람 땜에 못 살겠는디” 이러드구만.
“야, 그것도 설찬히 질문도 헐 만한 말이다마는, 그게 어리석느니라” 내가 그랬어.

“그놈이 모도 그 이 몸뚱이 있는 물건, 몸뚱이로 모도 생명 붙어 있는—사람 몸뚱이 말고—짐승 몸뚱이, 벌거지 몸뚱이, 날라댕기는 연비(蜎飛) 몸뚱이, 바다 가운데 있는 몸뚱이, 큰 놈 작은 놈 다 모도 한량도 없는 놈 다 그놈 숫자를 좀 쳐 보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개구락지니 꺼갱이니, 뭐 또 저 물속에서 모도 그 해치깡에서 생겨난 그런 충이니, 박테리아 충이니, 공중 드리 전부 수륙공해(水陸空海) 전부를 다 쳐서, 사람 인명허고 그놈 비교 좀 해 보자.

부처님 말씀에 영(靈)은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돼지 영이나, 소 영이나, 사람 영이나, 개 영이나 똑같다 했으니 또 뭐 벌레 몸뚱이는 달라?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부처 되는 불성이 있다 했으니—그놈이, 대구 같은 놈 저런 놈이, 그 큰 놈이 알 낳아 놓으면은 처음에 나올 때는 찌끄만 눈만 생겨 가지고, 허다가 그놈이 차츰차츰 이물성대(以物盛大), 뭘 많이 먹고 크면 이만큼 커지고. 그렇제, 어디 본래 그놈이 무슨 뭐 불성(佛性)이 적고 큰가?
허니, 그렇게 한번 따져 보아라. 짐승취에 들어가거나, 공계에 일체 중음신(中陰身 ), 귀신 배때기에 들어가던지 이렇게 허제, 이 사람 몸뚱이 그렇게 쉽게 들어오겄나? 허니 그 어리석은 말이다” 내가 그랬어.

이 몸뚱이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턱 가서 얼른 장만해 오면 거 괜찮허제. 허지마는, 그렇게 못 되아. 과약(果若) 참, 어렵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사람 몸뚱이 다시 장만허기가 그렇게 어려우니라. 그거, 허니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한번 생각해 봐라. 몸뚱이 다시 얻기 어려운 생각을 한번 지어라. 지어서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57분41초~1시간13분57초)





(2)------------------

지금이 말세다. 지금 이 말세가 어떤 말세인고? 우리 석가모니불 나오신 이 사바세계 출세(出世)—백 세에 출세허셨는데, 인자 백 년 지나가면 일 년씩 감해져서 천 년 지나가면 십 년 감해져서 육천 년만 지나갈 것 같으면 십 세 정명(定命)이 온다.
십 세 정명 올 것 같으면은 인자 거기에서 도병겁(刀兵劫) 일어나, 무슨 질병겁은 뭐, 도병겁, 도창겁이 막 일어나 가지고는 다 거그서 몸뚱이 생긴 것들 다 뿌어져 버리고 다 모가지 잃어버리고 중음신(中陰身)으로 되는디, 중음신으로 삼재(三災) 속에 들어가서 그놈의 속에서 이 육신 몸뚱이는 없지마는, 중음신 몸뚱이라는 것이 꿈에 있는 몸뚱이 같은 거, 몽혼신(夢魂身)도 아니지, 이것은 아주 꿈도 없제. 업신(業身)이지.

업신이 그 중에 들어서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네! 그놈의 고(苦)라는 것은, 중음신의 고라는 것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여. 그렇게 얼마를 고(苦)를 받고 있을 터이니, 거그 한번 빠져 놓으면 6억 7천만년 후에도 미륵회상(彌勒會上)을 못 참여혀. 언제 그것들이 나와서 미륵존불 회상에 참여헐 것이여?
지금 잘 닦아야, 잘 닦아서 견성을 했다고 하드래도 견성해 가지고 입태(入胎), 태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주태(住胎), 태에 들어가서도 안 매하고, 출태(出胎), 태어날 때도 안 매할 정도가 되어야사 허느니라. 미륵회상에 참여하니라. 우리가 그때 어디 가 있을 거여? 다시 사바세계 나오드래도 그래 깨달라 가지고 나와야사 환허제.

이렇게 이렇게 미(迷)해 가지고 이렇게 멍청해 가지고 오늘 이 목숨 잊어버리면은 향하처거(向何處去)오? 요 지경, 요 따위 되아 가지고서는 그만 이 숭악한 말세, 이 삼재(三災)에 들어가 버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그서 이렇게 해 놓은 거 무언 줄 아시요? 뭔 줄 알아?

여다가 딱! 예불(禮佛)은 고대로 하고, 예불은 각 사찰에서 허는 대로 고대로 예불 내가 딱 해 놓고는, 거다가서 우리 참선 학자들, 우리 선학자들 부처님께 축원(祝願) 하나, ‘그저 정법문중(正法門中)에 퇴타(退墮) 않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나도 깨달라서 일체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그러면은 거그에 수명 부귀 장수가 거그 다 들었고. 수명 부귀 장수가 무엇이여, 정법문에 물러가지 않고 확철대오허면은 천하에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축원 딱 해 번지고는, 고 밑에 가서는 떠억 십악참(十惡懺)을 허거든. 십악참이라 하는 것이 그 십중대계(十重大戒)여. 그 범망경(梵網經)에서 나온 것이여.
십중대계를 딱, 그 심지법문(心地法門)이거든. 견성(見性)해야사, 견성헌 이야 법(法)을 설혀. 견성해야 대승계(大乘戒)를 설혀.

멋대가리도 없이 그깟... 비구계(比丘戒), 내가 그걸 비방하는 게 아니여. 비구계 이백오십 계, 비구니계(比丘尼戒) 오백 계, 받아 놓았자 그 당장에 잊어버리는 거, 계상(戒相)도 모르는 거. 내가 설허는 것 안 됐다고 혀?

십중대계는 그대로 환해서, 참선 화두학자면 그대로 가지게 되아. 다 십중대계 딸렸거든. 그러면 계행(戒行)도—살생도 않는디, 또 살생도 않지만 파(破)할 것이 어디 있어? 가지고 범허는 것이 없으니 계상(戒相)까장 다 없어, 화두를 해 나가니까.

화두 학자가 십선(十善)을 봉행(奉行)해야 되아. 십악(十惡)을 이렇게 참회(懺悔)하고 십선봉행을 해야사 대번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간다 했거든.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선봉행만 하면은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간다 그 말이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갈 것 같으면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내려오지, 그냥 범부(凡夫)로 내려오는 법은 없어.

허니까, 똑 이렇게 예불허고, 아침에는 십중대계 그 참회를 따악 십악참회를 허면은—십악을 안 하면은, 내가 십악 죄를 안 지으면은 십선봉행(十善奉行)이여. 지악위선(止惡爲善)이니까. 꼭 십선봉행을 해야사, 십선봉행허고 화두를 참선 화두를 해야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인자는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서 우리가 피난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성불(成佛)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사바세계 어름어름허다가는 안 되아. 응! 그 말 잘 듣겠소? 그걸 잘 알아, 잘 알아들어야 되아.

그러니 여그서 이렇게 예불 똑 하고, 그 십악참 허는 거 고것 알고, 화두 딱 배운 보살님네 고렇게 해서 아침이라도 일어나시거들랑 방에서 딱 고렇게 예불 젓수고.
일어나서—모도 잠자고 그런디, 모도 뿌시럭뿌시럭 일어나서 잠 못 자게 그러지 말고, 가만히 혼자 일어나서 심배(心拜)라도, 마음으로라도 따악 이렇게 앉어서 도솔천 내원궁을 향해서 저! 제오천 도솔천인게.
극락세계(極樂世界) 가 버리면은, 극락세계 가서 넨장! 몇천만 겁을 나오도 않고 말 것이여 고대로? 속히 또 나와서 사바세계 우리 모도 인연(因緣) 중생을 제도(濟度)해야지. 고렇게 똑 해 주십시오.

내가 여다가 이렇게 해 놓고—다른 데야 허든 말든, 내 여그서 딱 작정을 해 놨습니다. 작정해 가지고는 고대로 꼭 해 나가니까. 그래 가지고 나, 또 용주사도 중앙선원이라 해서 거그도 “그렇게 해라!” 거그도 그렇게 합니다. 나! 다른 디야, 내가 관계없는 디야 내가 뭣 헐라고 내 말 비방허고 안 들을 턴디 뭣 헐라고 그렇게 헐 것이여. 안 혀.
여, 장삼(長衫)도 이렇게 맨들아서, 예복 장삼 간단허게 맨들아서 이렇게 떡 입고. 여그서만 내 입지, 다른 데 나가서 입으라고 안 허거든. 여그 딱 대중이 걸어 놨다가 요렇게 똑 허고 그럽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안 가르켜 논 짓을 내가 혀? 거, 외도(外道)라고?

부처님 꼭 고대로 해논 대로 내가 딱 해 논 것입니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하생경(下生經) 보시란 말씀이여. 거기에 어떻게 해 놨는가. 십선봉행을 허면은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는 것과 도솔천 내원궁에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미륵회상에 오는 것과. 환혀!
그런디 요새 모도 사교(邪敎)라는 것은 ‘곧 미륵님이 나오신다. 명년에 나오신다, 우명년(又明年)에 나오신다’ 요렇게 잡아 꾀이여. 어디 그건가?

이거 이대로, 부처님께서 미래불(未來佛) 그대로 다 설해서 수기(受記) 주어서 해 놓은 미륵회상을 내가, 다 미륵상생 하생경을 보고 내가 이렇게 딱 했지, 벌로 내가 이렇게 해 논 줄 아십니까? 꼭 우리 화두학자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 사상사(事象事) 그까짓 소용 있나? 참선허면 그만이제”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래서는 안 됩니다.

화두, 화두... 여까장 내가 그랬는데. 되아서 그만허고 내려가야써.

이렇게만 화두를 잡드리헐 것 같으면 극일지공(剋日之功)이, 날로 허는 공(功)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조금도 실(失)이 없다. 잃어진 법이 없어. 꼭! 화두 의심만 찾어라.

의심이 아니면은 그 모든 중생의 번뇌 망상을 태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일체 번뇌 망상을 화두가 태워 버리는 법이고, 일체 티끌 우주 삼라만상, 초목 총림 다 태우는 건 불이 태우는 것인데, 불 그놈이 일체 냉기 초목 총림 산하대지를 막 다 태워 버린 뒤에는 불도 없네. 불 자체도 없어.
그놈으로 인해서 불이 있다가 냉기 다 타 버리면 불도 없네. 그걸 연소화멸(煙消火滅)이라 그려. 연소(煙消), 연기도 없어지고 불도 멸해 버리고 냉기 다 타 버리고 없어.

우리 화두도 화두 고놈이 일체 번뇌 망상을 다 태와 버려. 모도 집어생켜 버려! 찌깽이도 없이 다 먹어 버려! 판치생모(板齒生毛), 알 수 없는 의심이! 다 씹어 쌔그라 돌려 없애 버린 뒤에는 화두도 없어. 화두 없어. 번뇌 망상 꽉 맥힌 놈이 화두인디, 화두도 없어.
아! 화두도 없고 번뇌 망상도 없네! 그 지경을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이라 햐. 사람도 없어져 버리고 경계도 없어진 곳이여. 거그서 그대로 근쳐 버리면은 될 것인가?

확철대오허는 공안이, 그걸 깨닫는 공안이 거그 있어! 그래야사 인자 거그에 생사 없는 곳까장 다 봐 버리지.(1시간13분58초~1시간25분13초) (일대기 8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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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습기(習氣 익히다·익숙하다·습관 습/기운·기세·힘 기)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냉기 ; ‘나무’의 사투리.
*들입대 ; 들입다. 세차게 마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문자상철우상사(蚊子上鐵牛相似) ; ‘모기가 쇠로 된 소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참고] 『고봉화상 선요 어록』 (고봉 1238~1295 |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시중(示衆 其十四)’ p112.
若論此事 如蚊子上鐵牛相似 更不問如何若何 便向下觜不得處 拌命一鑽 和身透入 正恁麼時 如處百千萬億香水海中 取之無盡 用之無竭 設使志不堅心不一 悠悠漾漾 東飛西飛 饒你飛到非想非非想天 依舊只是箇餓蚊子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모기가 쇠로 된 소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이러쿵 저러쿵 묻지 않고 당장에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 번 뚫어서 몸으로까지 뚫고 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런 때 마치 백천만억 향수해(香水海)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아서 취(取)해도 다함이 없고 써도 고갈됨이 없지만, 설사 뜻이 견고하지 않고 마음이 한결같지 않아 아득히 출렁대며 동으로 날고 서로 날다가 설사 네가 날아서 비비상천에 이른다하더라도 여전히 다만 한 마리 굶주린 모기일 뿐이더라.

*영리한(靈利漢) ; 명석한 이해력을 지닌, 두뇌가 민첩한. 또는 그러한 사람. 영리(靈利). 영리(伶利)라고도 한다. 분별에 치우쳐 불도(佛道)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주박(湊泊 모일·항구 주/머무르다·배를 대다 박) ; ‘배가 정박한다’는 뜻. 머뭇거리다. 머무르다.
*상량선(商量禪 헤아릴 상/헤아릴 량/좌선 선) ;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상량(商量 : 알음알이, 知解)이다.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해(知解) ; 상량(商量). 알음알이.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심월(心月) ; 마음의 달. 밤의 어둠을 비추는 달처럼 밝고 깨끗하게 닦인 마음으로 실상을 밝게 아는 ‘지혜’를 비유한다. 대상을 비추어보는 마음 자체를 나타내보이기도 한다.
*괘명(掛命 걸다 괘/목숨 명) ; ‘목숨 걸고’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❶]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❷]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벌거지 ; ‘벌레’의 사투리.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꺼갱이 ; ‘지렁이’의 사투리.
*해치깡 ; ‘수채, 시궁창, 늪, 진흙, 해감’의 사투리. 해초, 해초깡, 해치 등도 같은 뜻의 사투리이다.
*수륙공해(水陸空海) ; 물[水]과 육지(陸地)와 바다와 같은 하늘[空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涅槃經)』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역 北涼 天竺三藏 曇無讖 譯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제7권, 4.여래성품(如來性品)④.
佛說中道 一切衆生悉有佛性 煩惱覆故 不知不見 是故應當勤修方便 斷壞煩惱

부처님께서 중도를 말씀하실 때에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지만 번뇌가 가려서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서 번뇌를 끊어야 한다」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 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짐승취 ; 축생취(畜生趣).
*육취(六趣) ; 육도(六途, 六道)와 동일.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축생취(畜生趣), 아수라취(阿修羅趣), 인간취(人間趣), 천상취(天上趣)가 있다.
*취(趣) ;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중유(中有) · 중온(中蘊)이라고도 한다. 중음신은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진 의생신(意生身) 또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도 한다.
중유 또는 중음신의 기간은 불교 부파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보통 49일 동안 중음신의 상태로 머문다고 하여, 절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십구재(四十九齋)[또는 칠칠재(7·7재, 七七齋)]는 이 중음신의 기간에서 비롯되었다.

*사유(四有) ; 산스크리트어 catvāro bhavāh. 사유(死有) · 중유(中有) · 생유(生有) · 본유(本有) 등 한 번의 윤회 과정을 넷으로 나눈 것. 유(有)는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바바(bhava)의 한역어(漢譯語)로 유정중생(有情衆生)의 생존을 뜻한다.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유정중생은 모두 사유(四有)를 갖춘다. 사유 중에서 생유(生有)와 사유(死有)의 기간은 아주 짧은 찰나이지만 중유(中有)와 본유(本有)의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①사유(死有) : 죽는 찰나를 말한다.
②중유(中有) :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으로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에 이르는 기간이니 중음(中陰)이라고도 한다.
③생유(生有) : 태어나는 순간, 즉 모태에 탁태(托胎) · 결생(結生)하는 찰나이다.
④본유(本有) : 본시유(本時有) · 전시유(前時有) 등이라고도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으로 생유(生有)로부터 사유(死有)에 이르는 기간이다.
*과약(果若) ; 과연(果然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알고 보니 정말로.
*난조지상(難遭之想 어려울 난/만날 조/갈 지/생각 상) ;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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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정명(定命) ; ①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도병겁(刀兵劫) ; 중겁(中劫) 말기에 일어나는 소삼재(小三災)의 하나. 분노로 말미암아 서로 해치려는 마음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무기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재난이다. 도병겁은 칠일 밤낮 동안 계속되며 인구가 만 여명으로 줄어들어서야 비로소 자비심을 일으켜 끝이 나고 다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도병재(刀兵災) · 도재(刀災) · 도병중간겁(刀兵中間劫)이라고도 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몽혼(夢魂) ; 꿈속의 넋.
*업신(業身) ; 업(業)의 몸[身]. 육식(六識)—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이 무량겁으로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한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사람에게 세 가지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업신(業身)이요, 셋째는 육신(肉身)이로다. 법신은 불신(佛身)이요, 업신은 곧 귀신(鬼身)이요, 육신은 곧 사람의 색신(色身)이로다.
색신 가운데 업신과 법신이 구족(具足)하여 서로 여의지 않건마는 중생의 업보(業報)가 중하여 다못 업신이 구원겁을 드나들며 사생(四生) 육취(六趣)의 육신(肉身)으로 인하여 모든 악업을 짓도다.(p231)

사람에게 법신(法身) · 업신(業身) · 육신(肉身), 세 가지 몸이 있다 하니 어떠한 것이 육신인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다. 지(地)는 살이요, 수(水)는 눈물 · 콧물 · 대소변이요, 화(火)는 따뜻한 기운이요, 풍(風)은 콧김 · 입김 · 동정(動靜)이니 이 네 가지를 부모에게서 얻어 육신을 지었다가 명(命)이 다하여 임종을 하매 지(地)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물로 돌아가고, 화(火)는 불로 돌아가고, 풍(風)은 바람으로 돌아가 사대가 흩어지니 허황(虛荒)하기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장마에 두엄 버섯이니라.

어떠한 것이 업신(業身)인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이 여섯 가지 식심(識心)이로다.
눈으로 일체 만물을 보아 탐하여 모든 업을 지으며, 귀로 일체 소리를 들어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코로 모든 냄새를 맡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혀로 모든 음식을 맛보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몸으로 춥고 더운 분별망상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뜻으로 밉고 어여쁘고 좋고 나쁜 일체 망상(妄想)을 내어 모든 업을 지어, 이 여섯 놈이 무량겁(無量劫)으로 드나들며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니, 이러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법신(法身)인고?
일찌기 발심하여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다생죄업(多生罪業)을 참회하고, 옛 성현의 친절언구(親切言句) 천칠백 화두(話頭) 가운데 자기에게 합당한 화두를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중에 모든 망상(妄想)이 적적(寂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여, 들지 아니하되 화두가 스스로 들림이 샘물 흘러가듯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에 이르러,
홀연히 망상 구름이 흩어지고 마음달이 홀로 드러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 그 밝은 빛이 하늘과 땅이 궤멸(潰滅)하여도 이 광명(光明)이 길이 멸하지 아니하며, 이것을 이름하되 불생불멸지도(不生不滅之道)라 하나니라.

이같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 이름하며, 혹 도사(導師)라 이름하며, 혹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며, 혹 부처라 이름하나니, 천당(天堂) · 불찰(佛刹)에 임의 자재하여 천상(天上)에 가서 나매 천상 사람을 제도하며, 인간에 나매 인간을 제도함에 이르므로 인천(人天)에 스승이 되며, 사생(四生)에 자비로운 부모가 되는 고로 이 사람의 이름이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이로다.(p233~236)

누구든지 육신(肉身) · 업신(業身) ·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p247)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p257)

인생은 자기 업신(自己業身)의 반영(反映)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實相)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異性)으로 감응(感應)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으니라.(p266)

우리가 느끼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육식(六識)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흩어지나니,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천류(遷流)하는 육식으로 어찌 인생이 근본 정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p270)

*무수(無數 없을 무/세다·셈하다·헤아리다 수) ; 헤아릴[數] 수 없음[無].
*일구난설(一口難說 한 일/입 구/어려울 난/말씀 설) ; 내용이 복잡하거나 길어서 한[一] 입[口]으로는 다 설명(說明)하기 어려움[難].
*미륵불(彌勒佛) : [산스크리트어]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향하처거(向何處去) ; 어디로 갈 것이냐?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⑩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범망경(梵網經) : 이 경은 범어나 파리어(巴利語 pali)로 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록대로 본다면 본래 61품, 백이십 권 되는 원문을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그 중 열째 권인 「노사나불이 말씀하신 보살의 심지 계품(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만을 번역하여 상•하 두 권으로 만들었다. 상권에는 심지 법문(心地法門)을 말하였고, 하권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 경구죄(輕垢罪)를 말하였는데, 경구죄란 것은 중대한 죄악은 아니나 깨끗하지 못한 허물이 된다는 뜻이다.
보살계는 심지 법문을 주장하는 대승계이며 성계(性戒)이다. 그러므로 이 경은 율부(律部)에 속하지 않고 <화엄경>과 같은 부류에 들게 된다.
이 경을 해석한 글이 많지마는 신라의 대현(大賢)이 지은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과 원효(元曉)의 <사기(私記)> 2권과 의적(義寂)의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상•하권 같은 것들이 가장 유명하다.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 법문.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 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 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계(戒)의 상(相). 계율에 대한 생각. 그 계상(戒相)의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권10 제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계를 지킨다는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어름어름하다 ; ①말이나 행동을 똑똑하게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자꾸 우물쭈물하다. ②일을 대충하고 눈을 속여 넘기다.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미래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설함.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명년(明年) ; 올해의 바로 다음에 오는 해.
*미래불(未來佛) ; ①미래에 나타날 부처님. 특히 미래에 나타날 미륵불(彌勒佛)은 현재 미륵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면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며,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예정되어 있다.
②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가능성을 가진 중생을 일컫는 말.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기 때문애, 여러 가지 수행을 통해 미래세에 성불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중생을 미래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기(受記, 授記) ; 부처가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그 교설(敎說).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사상(事象 일 사/모양 상) ; 관찰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물(事物)과 현상(現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극일지공(剋日之功 해내다·이루어내다 극/날·해·기한 일/~에·~에 있어서 지/공·공로·공적 공) ; 기한[日] 내에[之] 성취하는[剋] 공(功).
*만불실일(萬不失一 일만 만/아니다·아니하다·없다 불/잃다·잘못하다·그르치다·어긋나다 실/한 일) ; 만(萬)에 하나도 그르치지[失 잃지·잘못하지·어긋나지] 아니하다[不]. 만(萬)에 하나도 그르침[失]이 없다[不]. ①조금도 틀림이 없다. ②실수(失手)가 한 번도 없음.
[참고]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五)’ (고봉 화상 |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69~70, 72.
若論此事인댄 如大火聚 烈焰亘天하야 曾無少間이라 世間所有之物을 悉皆投至라도 猶如片雪 點着便消어니 爭容毫末이리오. 若能恁麽提持하면 剋日之功을 萬不失一이어니와 儻不然者인댄 縱經塵劫이라도 徒受勞矣리라

만일 이 일[此事]을 말하자면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는데, 세간의 온갖 물건을 무엇이나 집어 던져도 한 조각의 눈[雪]이 닿자마자 곧 녹아버리는 것과 같나니 어찌 털끝만치인들 딴 생각이 용납되겠는가. 만일 이렇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기한내에 성취하는 공(功)을 만(萬)에 하나도 잃지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도 고생만 할 뿐이리라.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찌깽이 ; ‘찌꺼기’의 사투리.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인 사료간(四料揀)의 하나.
*사료간(四料揀) :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 인(人)은 주체로서의 자기(自己). 경(境)은 객관(客觀). 탈(奪)은 부정하는 것.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08. 212.
四料揀(사료간)
奪人不奪境(탈인불탈경)은  待下根(대하근)이요  奪境不奪人(탈경불탈인)은  待中根(대중근)이요  人境兩俱奪(인경양구탈)은  待上根(대상근)이요  人境俱不奪(인경구불탈)은  待出格人(대출격인)이라.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은 하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고,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은 중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며,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은 상등 근기를 다루는 법이고,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은 ‘격 밖의 사람[出格人]’을 다루는 법이다.

*‘생사 없는 곳까장’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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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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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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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여상부모(전강선사 No.018)—(게송)千里長城牧笛晩~ | 깨달으면은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 수은(水銀) 비유 |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만공 스님,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 理卽頓悟 事非頓除 |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保任)을 해야 되아.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 ‘오전도, 깨닫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할 것이고,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할 것이니라’

[참고 ❶]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55칙 ‘대사(大事)’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妣  大事已辦  如喪考妣

목주(睦州)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未辦 如喪考妣]”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큰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已辦 如喪考妣]”는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에는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핀 뒤엔 또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고 하였다.

“고비(考妣)”라 함은, 아버지가 죽으면 고(考)라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비(妣)라 한다. 어떤 이는 선고(先考) · 선비(先妣)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상(喪) 자는 평음(平音:平聲)으로 읽어야 하니 '장사 지낸다[行喪]'는 뜻이다. 칙음(則音:上聲)으로 읽으면 '잃는다'는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喪失] 하겠는가?



[참고 ❷]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1206칙 ‘대사(大事)’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峰山) 전초(傳楚)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大事已成]...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큰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라”고 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不得春風]....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19분 6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천리장성목저만(千里長城牧笛晩)이요  운납암상낙화홍(雲衲岩上落花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송하(松下)에 월명정다소(月明情多少)오  산계연심추색만(山溪煙深秋色滿)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데.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妄想) 따문에 못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허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話頭)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또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허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헐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금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혀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하나도.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華嚴經)』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華嚴)이란 화엄 도리는 다 각(覺)인디. 낱낱이 각이여.


내가 만공 스님께... 만공 스님 문집(文集)이 여기 인자 이번에 누가 하나 보내 주어서 여기 있구만. 만공 스님 문집을 좀 잘 보시란 말씀이여.

거, 학자(學者)들 모도 뭐 누구누구 모도 다 ‘입실(入室)을 했다’
입실은 견성(見性)허기 전에도 입실을 해 주어. 입실이라고 다 게송(偈頌) 붙여서 그 다 해 주지. 아, 사판(事判)에도 다 그렇게 해 주는 건데. 입실을 헐 것 같으면 당호(堂號) 지어서, 게송 다 지어서 그래 해 주는 법이다 그 말이여. 처음에 은사(恩師)로 정해 가지고 그다음에 법사(法師)를 정헐 것 같으면 그렇게 다 해 주어.

그와 달라! 떠억 척! 깨달은 공안(公案)을 척! 가지고서는, 거다가서 게송을 척! 해 주거든.
뭐 내가, 내가 허기는 이것 참! 인격답지 못허구마는 거, 안 했어 거? 보란 말이여, 가서 봐. 그만 딱딱 있제! 여태까지 저 각 선지식(善知識) 찾아서 내, 그 모도 그 법담(法談)해 논 거, 다 주욱 다 해 왔지. 그 없는 것을 내가 그렇게 위조로 해 놔? 위조로 헐 수가 있나? 못하는 법이여.

마지막 만공 스님한테,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터억 이거! (전강 스님이 땅을 허부적 허부적 하고 일렀다) 이것 한번 알아 봐. 이거, 그 무슨 짓일까? 뻘로 그 짓을 헐까?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 허고는 그 송(頌) 딱! 붙여 놓았지. 나, 그때 그 입실송 아니여, 그건 오도송(悟道頌)이지. 정전강(鄭田岡) 오도송이지 거, 입실송 아니다 그 말이여.
법 배우는 우리 학자들께 내가 무엇 따문에 그걸 감추아 놓으며, 무엇 때문에 겸양 “헤헤 그렇지 않다“ 인자 그런 것 할 거 뭐 있나? 그 뭣 헐라고 그려? 화반탁출(和盤托出)이지. 척 까 내놓을 일이지, 뭣 헐라고 감추며 거다가 뭐 그런 겸양이 뭐 그것이 거 뭐 있어?

거그, 학자 그렇게 많이 있어. 뭔 법담 뭐 해 놨자, 고렇게 된 것 없어. 나는 그 몇 말...
나 없을 적에 그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거, 만공 스님 문집을 모도 꾸며 놨드구만. 십대문답(十大問答)도 못쓰게 답을 해 놨어. 즈그가 집험서, 결집(結集)험서 알 수가 있나? 무슨 놈의...

“지장도량내 유업경대(地藏道場內有業鏡臺)허니 업다소마(業多少麼)?”
“차문이전(此問以前)에 합긱삼십방(合喫三十棒)이니라” 그때 그렇게 허셨제, ‘차문 뭐, 뒷문 뭐 후에 어쩌고...’ 알아야제. 허, 그것!

내가 그랬구만. “십대문답을 함부로 써 놔?” 즈그 집(集)헌 사람 보고 내가 그랬어. “나한테라도 찾아와 좀 묻제. 즈그까지 그래 놨어?” 내가 그랬구만.

내가 그놈. 그 답, 십대문답 탁! 대답하고는 인자 뭐 다 답했으니, 뭐 내가 인자 목적 달성했으니, 여지없이 인가(印可) 척! 받곤 뭐 떠나야지, 뭣 헐 것이여?
나는 그때 입실도 요구 안 했고, 다맛 그저 묻는 도리만 내가 답허고는 척 돌아서서 나올라고 하니까 그 문답을 물어서, “자네 별은 어떤 별인가?” 해서 땅을 터억 내가 이렇게 허니까, “선재선재라! 잘 이르고 잘 일렀느니라!” 거, 송(頌) 거 해 놓았제.

자! 일 마친 분상에는 아무 일이 없다. 생사(生死) 일밖에 더 있는가? 생사를 두고 그밖에 무슨 일이 있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천리나 된 진 성(城) 가운데에서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거 무슨 말인고 하니, 천리장성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모도 인자 이 모도 사바세계(娑婆世界) 오탁악세(五濁惡世) 이러헌 세상에 와서, 어째 이렇게 참,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터억 깨달라 가지고는 내 깨달은 마음을 어디로 도망가지 않게 잘 멕인다 그 말이여.
딱! 그 이놈 깨달라는 놨지마는, 아! 이놈—이즉돈오(理卽頓悟)다마는, 이치는 몰록 다 깨 놨다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여. 그 과거에 익혀 내려온 습기(習氣)라는 게 있어서, 자꾸 이놈이 도망간다. 자꾸 그저 풍진(風塵) 경계로 나가니까, 이놈을 못 나가게 자꾸 거두어서 멕여. 그걸 멕이는 젓대가 늦었느니라.

그놈 멕이니라고 연대갑자(年代甲子)를 총부지(總不知)허고, 날이 간 지 온 지도 모르고 멕이다 보니 늦었다. 그놈 멕인다 그 말이여. 나를 깨달라 가지고 내가 내 주인공(主人公)을 바로 인자 이놈을 길들인단 말이여!
밤낮 깨달지 못허고, 이 중생이라는 것은 그저 조금도 잠정(暫停)이 없이 그저 도망간다. 깨달아 놨어도 이놈이 또 오후(悟後)도 업이 역시 그러네. 깨달라 놓으면은 안 그럴 줄 알지마는, 오후도 그런다 그 말이여, 이것이!
그러니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그랬어.

처꺽 깨달으면—코빼기 만지기보담 쉬우니, 낯 씻다가 코빼기 만질, 그렇게 그 찰나간에 처꺽 깨달라 버리면은 그만 그만인가?
그만인 상근대지(上根大智), 그저 언하(言下)에 척 대오(大悟)허자, 다 증(證)해 버리면은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다시 무슨 후각(後覺) 뭐 그거 소용없지.
허지마는 그 상근대지라야 그렇게 되아. 없는 것은 아니여. 허지마는 중근이나 하근부텀은 그렇게 된 법이 없어.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保任)을 해야 되아.

잘 참, 깨달기는 밥 먹을 사이에 깨달을 수가 있고, 언하에 대오헐 수가 있고. 허지마는 보림은, 깨달라 가지고 보림은 삼십 년도 허고, 사십 년도 허고, 일생도 허고, 일생 다 해도 다할 수가 없어.
또 견성해 가지고는 보림밖에 할 것 더 있어? 아! 그놈 잘, 그저 보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슨 뭐 힘든 것이 아니고, 깨달은 경계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니까. 척 깨달라 가지고는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토록 항상 반조(返照)를 해 나가는 것이여.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금설(金屑)이 수귀(雖貴)다마는 금싸래기가 그렇게 좋다마는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된다. 허니, 피운차각(被雲遮却)을 구름이 밝은 달을 가리우데끼 거, 무슨 중생견이 깨달라 버린 뒤에 무슨 망상이 있으리요마는, 그래도 고놈이 그 매(昧)할 수가 있거든. 매해여.
매허니까, 그놈을 매허지 않고 항상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보림인데. 견성헌 후에도 그렇게 보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그게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그 말은 항상 깨달라 가지고는 고 소[牛] 멕이데끼, 내 마음을 자꾸 어디로 도망가지 못허게 깨달은 그 각(覺)을 항상 보호해 나간다 그 말이여. 그래 놨제.
그런데 그 지경이 운납(雲衲)은 암상(岩上)에서 낙화홍(落花紅)이로구나. 그 구름 같은 납승(衲僧)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놓고 보니, 암상에서 그저 낙화 경계여. 꽃 떨어진 경계다 그 말이여. 그 무슨 뭐, 그 무슨 별 경계인가? 처억 깨달라 놓고 보니 암상낙화홍(岩上落花紅)이니라.

송하(松下)에 월명(月明)인디, 정다소(情多少)냐? 솔 아래에 달은 환허니 밝았는디, 그 정이 얼마나 되느냐? 솔 밑에 달 밝았는데 거그서 무슨 그런 인간 정(情), 시시비비(是是非非) 정, 무엇이 있겄느냐 그 말이여. 무슨 정다소냐?
산계연심(山溪煙深)헌데 추색만(秋色滿)이로구나. 그게, 그게 해탈 경계, 보림 경계라 그 말이여. 산 시내 연기는 깊었는데 추색은 찼구나. 가을빛은 찼다. 그게 그 모도 내 보림허는 경계여. 보림허는 경계, 송(頌) 하나 갖다가 내가 여기서 말을 했어.(처음~19분2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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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 이 '참선은 쉽다'의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問 : 本旣是佛 那得更有四生六道種種形貌不同

배휴가 여쭈었다. "중생이 본래 부처라고 한다면 어째서 4생(四生) 6도(六道)가 있어 여러 모습들이 같지 않습니까?

師云 : 諸佛體圓 更無增減 流入六道 處處皆圓 萬類之中 箇箇是佛 譬如一團水銀 分散諸處 顆顆皆圓 若不分時 祇是一塊 此一卽一切 一切卽一 種種形貌 喩如屋舍 捨驢屋入人屋 捨人身至天身 乃至聲聞緣覺菩薩佛屋 皆是汝取捨處 所以有別 本源之性 何得有別

황벽선사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는 그 본체가 원만하여 거기에 또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 육도(六道)에 흘러든다 할지라도 그 어느 곳에서나 원만하다. 이와 같이 모든 종류의 중생들도 하나하나가 부처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水銀)이 사방으로 나누어 흩어질지라도 그 한 방울 한 방울은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뉘지 않았을 때에도 다만 한 덩어리일 뿐이니, 이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다.
여러 가지 모습들은 비유하자면 집과 같은 것이다. 즉 나귀의 집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사람의 몸[人身]을 버리고 하늘의 몸[天身]에 이르며, 내지 성문 · 연각 · 보살 · 부처의 집은 모두 너 자신이 어디에 들어가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집의 차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래 근원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티끌과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①아주 작은 티끌이나 먼지. ②[불교]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사천하(四天下) ; 고대인도의 세계관 및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일곱 번째 산의 바깥에 있는 큰 바다에 사방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대륙을 사천하라 한다. 사주(四洲) · 사대주(四大洲) · 사대부주(四大部洲) · 수미산주(須彌山洲)라고도 한다.

 

 

 

[참고 ❶]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8호(경술년 12월 13일)(1971년 1월 9일)(3분24초)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따악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하나도.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2분2초~5분24초)

 

 

 

[참고 ❷]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8호(경술년 12월 13일)(1971년 1월 9일)(13분50초)

직지사에서 며칠 쉬고서는, 동래온천이나 가서 온천을 좀 허고—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 하고. 간뎅이 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 쌓고 살 수가 있나. 그래 인자 동래 온천을 내려갔지. 가서, 금정사를 들어갔더니 기인벽이가 그 사람이 유담인데, 유담이 반가와 혀. 아주 반가와험서 오! 참 반가와 혀.

사방서 선지식 스님, 큰스님 찾아다니면서 인가 다 맞고 만공 큰스님한테까장 다 돌아서 왔다는 것 다 알고. 뭐 그러니깐 뭐, 대접헐 건 사실이지 뭐. 오히려 그 조실 큰스님네 오신 것보담도 더 반갑지. 새로 그렇게 인자 참, 학자로써서 아! 그렇게 모도 인가 맞고, 아! 그랬다고 인자 사방 가면 그 대접허는 것이 너무 과했제.

 

그런디 이번에 금정사에 들어가서는 너무 지나쳤지.

척 들어가니까 유담이 그때 감원(監院)을 허고 있는데, 그 만찬을 해 가지고는 적을 굽고 다시마를 잘 모도 굽고 그래 잘해서, 부꾸미 떡도 부치고 뭐 혀 가지고는 좋은 술을, 참! 좋은 술 일등주를 받아 가지고 와서, “아! 신 수좌(信首座)님, 참 내 뜻대로 내가 한번 이런 걸 차렸으니 잘 잡솨 주십시오. 내 어떻게 했으면 더 잘 좀 대접헐까 싶고, 얼마나 내가 좀더 잘 만족스럽게 헐까 싶고, 정성이 부족합니다. 좀 많이 잡솨 주십시오” 아! 출출헌 판에 참 좋드구만.

 

뭐, 그때쯤 인자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무약가요(無藥可療)여!

“약으로 낫을 수 없으니 자연치료를 해라” 자연치료를 허라고 떡 허니 의사가 그래 주어.

 

“그 어떻게 헌 것이 자연치료입니까?”

“뭐든지 그저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고, 그저 어디 가서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고. 내 마음을 활발스럽게 펴놓고, 그저 임산임수(臨山臨水)에 물을 대하나 산을 대하나 어떠헌 그 노는 경계를 대허나 구김살이 없이 활발스럽게 아주 이렇게 놀고 그러면은, 그 마음이 활발발(活潑潑)허면은 병이 나을 수 있으니” 아! 그러고는 ‘약으로는 못 낫우겄다’고 나를 갖다가 턱 퇴병(退病)을 혀.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인자 대체 그렇게 되었어. 공부허다가 나온 놈의 피가 그것이 어디 그쳐져야제. 인자는 하도 나오다 나올 것이 없으니까 목구녁 가슴속에 가서 간뎅이처럼, 묵 어리데끼 어렸어. 그려 가지고 콱 뱉으면은 뎅이 하나씩 나와. 인자 줄줄 흘리든 않고. 그러면은 그만 비린내가 들입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제.

그래 그만 인자는 뭐, 인자 이렇게 좀 돌아댕기는데, 여그도 갔다 저그 돌아댕기는데 속마음으로는 인자 자연생활을 헐 판이여. 자연치료를 헐 판이여.

 

인자는 욕을 먹던지 누가 찬성을 허던지 그런 데 얽힐 것 없고, 중옷을 입고 돌아댕김서 막행막식헐 수 없고. 첫째, 고기를 얻어먹어야 허겄으니, 고기도 맘대로 먹고, 술도 맘대로 그저 먹고, 춤출 디 있으면 내 멋대로 춤도 좀 춰 보고 이렇게 활발스럽게 인자 지낼 판인디, 속으로는 딱 작정해 놨지마는 그동안에 선방에 댕기면서 지낸 숙습(熟習)이 있어서, 그렇게 어떻게 당장에 태도를 행동을 고칠 수는 없고. 그래도 인자 어디 가면 대접헌다고, 날 대접헌다고 허면은 받아먹지, 뭐 어쩌?

아직 그때는 안 헐 때인디, 아! 안 헐 때고 잘 그저 옷 입고 그러고 거그를 들어갔는데, 인벽 수좌가—요런 놈 다 넣어야제. 거 넣어서 허제, 별수 있나?—대접헌다고 그래 내놨네.

 

뭘 빼고 좋은 것만 넣으면 쓸 수가 있나? 그런 것 저런 것 다 넣어야지. 술도 먹었다고 허면은 거, 술 먹은 중이라고 허면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계를 파(破)헌 중이라고 하지마는 안 넣을 수가 있나? 넣을 건 넣어 버려야지.

 

술을 따라 주는데, 안주 좀 먹고 술을 한잔 척 받아서 막 부을라 하니까, 병에 붓떼끼 때려 부을라 하니까—경명 스님이 일대 강사(講師)여! 강사라도 이만저만헌 강사여. 그만 저 안에 선방에 계시다가, 어째 누가 일렀는가 어쨌는가, 이짝 방에서—저짝 방은 선방이고, 내가 선방에 들어가서는 안 먹고 이짝 방에서, 주지실에서 먹는디.

 

누가 일렀든고 일러, “저 수좌가 와서, 정영신(鄭永信)이가 와서 막 술을 먹는디, 잔뜩 뭐 채려놓고 술 먹는디 거, 스님께서 좀 혼을 내시요” 인자, 수좌가 어째 그랬든가 부여.

그러니 쫓아 나왔어. 와서는 착 들어오더니 “여그가 어디라고 술을 먹어! 에이! 술이 뭐여? 에이!” 아, 이러면서 그만 노장이 입이 그냥 덜덜 떨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와.

 

그것 참! 나보담 나이 많으시고—나이 그 어른은 근 오십 되고, 나는 인자 뭐 스물서너 살 인자 되았는데. 아! 이거 참, 죄송도 허고, 일대 강사고. 아, 그것 참 ‘이놈의 술잔을 내던지고 그냥 나올까, 달아나 버릴까? 그냥 빌어먹을 먹어 버릴까?’ 쳐다 보고는. 그러다가는 ‘에이 이놈의 것’

 

“내가 기이 든 술잔입니다. 좀 가라앉히시고, 심로(心勞)허시고 들어 보십시오” 술잔 들고.

“화엄경이, 상본(上本) 화엄경이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니” 상본, 중본, 하본, 약본(略本) 그렇거든, 화엄경이.

“화엄경이,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이거 법, 무서운 법이여. 보살님들 다 알란 말이여. 여 술값 내는 것이여.

 

“이거, 화엄경 몇째 품입니까? 이거 좀,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고함을 내, 더 크게 질러 버렸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아! 일사천하미진수품이니, 뭔 안 든 것 있나? 중생(衆生) 환화(幻化)가 다 들었지. 추어망담(醜語妄談)도 다 들었지.

 

아! 그러니깐 경봉 스님도 물 대다가, 논에 물 대다가 막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그만, 막 들입대 그만 이러고 앉어서 그만—거그 그 인자 참, 한번 봐 노니까 아마 그러든 것이지. 그만 이래 가지고는.

양산서, 언양서, 여자가 모도 올라왔다 그 말이여. 경봉 스님 견성했다고 헌게 모도 와서 친견을 허고 절을 허니께, 이러고 앉어서 “네, 이년들! 응!” 아! 욕을 냅대 퍼붓고. “이게 화엄 도리지! 이게 화엄경이지!”(21분23초)

 

욕을 해도 이만저만헌 욕을 해 놨어. 내, 그 욕은 안 혀!

뭐 욕이, 그 욕이 화엄 도리라고 헌 것이여, 그게. 일대 강사인디 또 견성을 해 가지고 보니깐 틀림없거든! 추어망담(醜語妄談)이, 추헌 말과 거짓말이 어디 무슨 하나나 무슨 뭐, 어디 어김이 있나? 십삼천대천세계(十三千大千世界)에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이 다 딱딱 들어맞는 거여, 법에.

 

그러나 그 법은 그건 체중현(體中玄) 법밖에는 안 되는 것이여! 조사 공안은 안 되아. 공안이라는 것은 그런 법 없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그건 안 될 말이고.

그래 그만 들입대 욕을 막 드리 퍼붓고는 “이게 화엄경이야, 화엄경이여!” 아! 이러고 있었어. 그러니 뭐, 무엇이 도무지 무슨 뭐 일사천하미진수품 속에 안 들어갔어?

 

“이 술은 화엄경 몇째 품이냐?” 고함을 지르며 “몇째 품입니까?” 묻는디, 입이 딱 붙어 버렸네, 입이. 응! 아, 그렇게 고함을 질러 “술을 먹느냐?”고 허더니 입이 그냥... 어림도 없네. 내가 참, 기운이 나대! 아, 이런 놈의 것.

 

그래 가지고 대듬서, 여기를 잡고 막 대듬서 멱살이나 쥐고 “나가라 이놈!” 허면 큰일날 텐디, 그냥 거기 쩔려 가지고. 강사는 강사인디, 화엄경 바로 분명히 있거든! 그런게 뭐 꼭 물을 말이지, 뭐.

‘몇째 품이냐?’고 묻는데, 딸싹 못했네. 허! 그것 참. 아무리 글을 잘해도 글 가지고는 못혀.

 

그만 암말도 않고 이리 쳐다보고 있는디, 술을 들고는 쭈욱 마셨어. 쭉 들어마시고서는, 안주 턱 한 점 먹고 입을 싹 닦고는,

 

니우(泥牛)는 입해성룡거(入海成龍去)헌디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니라

나무~아미타불~

 

니우(泥牛)는 입해(入海)하야 성룡거(成龍去)헌디,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 용이 되아 갔는데,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로구나. 다리 뿌러진 자라는 앞을 의지해서 그물에 들어갔구나.

아, 이렇게 점검을 탕! 해 버렸제. 딸싹 혀?

 

술 잘 먹고, 그 잘 채려 논 놈 배(아주) 그거 잘 먹고, 나 그러고 오래 안 있었구만. 또 그러고 그냥 나오제 뭐 그렇게, 처억 한번 나온 일이 있고.(33분13초~47분2초)

 

 

 

[참고 ❸]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5분25초)

**아래 송담스님 법문은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하신 법문입니다.

 

<송담스님 법문>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하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 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번 움직이고 발 한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한 것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하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한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하는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놓고 절만 많이 하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 낼 줄 알고 진심 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한다면 나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8분4초~13분29초)

 

 

 

[참고 ❹]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3분10초)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아 그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 말이여.

어디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쳐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마는,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해.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 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허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27분45초~30분55초)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입실(入室) : ①선문(禪門)에 있어서 수행자가 깨달은 바를 점검받기 위해서 조실에 들어가 직접 가르침과 지도를 받는 것. ②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는 것.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사판(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함. 또는 그 일을 하는 스님.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마지막 만공 스님한테,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터억 이거! (전강 스님이 땅을 허부적 허부적 하고 일렀다) 이것 한번 알아 봐. 이거, 그 무슨 짓일까? 뻘로 그 짓을 헐까? ; 이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뻘로 ; ‘허튼(쓸데없이 함부로, 쓸데없이 막된)’의 사투리.
*선재선재(善哉善哉 착하다·좋다·훌륭하다·찬동하다·잘하다 선/어조사 재) ; '옳다, 옳다' '좋다 좋다'
[법문] 전강선사(No.014)—전강선사 일대기 제7호(경술1970년 12월 10일 새벽. 음)
(만공 스님) “저 하날에 별이... 부처님은 샛별을 보고 오도(悟道)허셨지만, 자네 오도헌 별은 어떤 별인가?” 내가 땅을 허부적 허부적 하고 일렀다.

이런께, 턱! 보고서는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 그 선(善) 자가 ‘착헐 선(善)’ 자인디 ‘잘했다’는 선(善) 자입니다. 그 잘 선(善)이여. ‘옳다, 옳다!’ 그 선(善)이여. ‘옳다’는 선(善) 자여.
“옳고 옳다!” 그말이여. “옳다, 옳다!” 바로 인가여, 그게! (1시간30분44초~1시간31분33초)
*정전강(鄭田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전강선사 오도송(悟道頌) ;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刊) p23.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일 마치다 ; 생사해탈(生死解脫). ‘일’은 ‘생사의 일’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事)는 몰록 제(除)할 수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生)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일[事]은 곧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고 하셨다.

 

故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물[水]인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잘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부처[眞佛]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풍진(風塵 바람·풍속 풍/티끌·더럽히다 진) ; ①세상의 속된 일 또는 속세. ②바람에 날리는 티끌. ③병진(兵塵 :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티끌이라는 뜻으로, 전쟁으로 인한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일이나 분위기를 이르는 말).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연대갑자(年代甲子) 총부지(總不知) ; ‘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참고 ❶]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55칙 ‘대사(大事)’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妣  大事已辦  如喪考妣

목주(睦州)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未辦 如喪考妣]”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큰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已辦 如喪考妣]”는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에는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핀 뒤엔 또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고 하였다.

“고비(考妣)”라 함은, 아버지가 죽으면 고(考)라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비(妣)라 한다. 어떤 이는 선고(先考) · 선비(先妣)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상(喪) 자는 평음(平音:平聲)으로 읽어야 하니 '장사 지낸다[行喪]'는 뜻이다. 칙음(則音:上聲)으로 읽으면 '잃는다'는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喪失] 하겠는가?

[참고 ❷]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1206칙 ‘대사(大事)’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峰山) 전초(傳楚)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大事已成]...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큰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라”고 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不得春風]....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증(證) ; ①깨달음. ②깨달은 바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체화(體化)함.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금싸래기 ; 금싸라기(①금의 잔부스러기. ②아주 드물고 귀중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싸래기는 '싸라기(①부스러진 쌀알. ②빗방울이 갑자기 찬 바람을 만나 얼어서 쌀알처럼 되어 떨어지는 눈)'의 사투리.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납승(衲僧 옷을 꿰맴 납/중 승) ; 납자(衲子).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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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인신난득2024. 7. 22. 12:30

인신난득(전강선사 No.018)—지금 말세(末世)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사람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 | 십선봉행허고 참선 화두해야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 화두 고놈이 일체 번뇌 망상을 다 태와 버려.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❶]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❷]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16분 53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다맛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요놈에서, 알 수 없는 요놈 거각(擧却)한 디서, 망념이 무엇이 생겨날 디가 없어! 아, 해보면 알제.

헐똥말똥 좀 허다 말다 “아이고, 이놈의 것! 안 되니 그만 말아 버릴까 어쩔까” 요렇게 헌 놈의 참선이래야 안 되지. 괘명(掛命)허고, 목숨을 한번 그까짓 것 죽고 사는 걸 불고(不顧)해 버리고 한번 해보아라, 안 되는가? 죽도 않느니라, 그래도.

안 허고 어떻게 헐 꺼여? 이렇게 한바탕해서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봐야지, 그 요따구로 살다 말아? 요따구로 살다 죽고 말아? 어디 가 처백힐 것이며, 그놈의 곳 참! 궁금혀. 어디가 처백힐 것인가?
참, 이놈 안 갈 수 없다. 가는 길이로구나. 돌아오지 못헐 놈의 길을 간다. 다시는 못 와. 요까짓 몸뚱이 가지고 어떻게 오나? 요 몸뚱이 내버리고 어디를 와? 한번, 부모 처자 권속이라도 작별허고 이별해 버리면 그만이다. 다시는 그건 못 만나는 것이여.

그까짓 영(靈), 그것 뭐 이 몸뚱이 안에 있든 거, 누가 보기나 알기나 허간디? 그놈의 처백힐 곳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지금 말세(末世)다. 지금 가장 말세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그놈의 처백힌 곳이 무간지옥인가, 아비지옥인가, 소 배때기인가, 말 배때기인가, 귀신 배때기인가 알 수는 없다마는, 한번 처백히면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누가 저번에 질문허기를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이 생겨 나오는디 참, 사람 때문에 주체 못허겄는디, 그렇게 사람 몸뚱이가 나기 어렵다고 그래 놨답니까? 그 가뜩 사람 땜에 못 살겠는디” 이러드구만.
“야, 그것도 설찬히 질문도 헐 만한 말이다마는, 그게 어리석느니라” 내가 그랬어.

“그놈이 모도 그 이 몸뚱이 있는 물건, 몸뚱이로 모도 생명 붙어 있는—사람 몸뚱이 말고—짐승 몸뚱이, 벌거지 몸뚱이, 날라댕기는 연비(蜎飛) 몸뚱이, 바다 가운데 있는 몸뚱이, 큰 놈 작은 놈 다 모도 한량도 없는 놈 다 그놈 숫자를 좀 쳐 보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개구락지니 꺼갱이니, 뭐 또 저 물속에서 모도 그 해치깡에서 생겨난 그런 충이니, 박테리아 충이니, 공중 드리 전부 수륙공해(水陸空海) 전부를 다 쳐서, 사람 인명허고 그놈 비교 좀 해 보자.

부처님 말씀에 영(靈)은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돼지 영이나, 소 영이나, 사람 영이나, 개 영이나 똑같다 했으니 또 뭐 벌레 몸뚱이는 달라?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부처 되는 불성이 있다 했으니—그놈이, 대구 같은 놈 저런 놈이, 그 큰 놈이 알 낳아 놓으면은 처음에 나올 때는 찌끄만 눈만 생겨 가지고, 허다가 그놈이 차츰차츰 이물성대(以物盛大), 뭘 많이 먹고 크면 이만큼 커지고. 그렇제, 어디 본래 그놈이 무슨 뭐 불성(佛性)이 적고 큰가?
허니, 그렇게 한번 따져 보아라. 짐승취에 들어가거나, 공계에 일체 중음신(中陰身 ), 귀신 배때기에 들어가던지 이렇게 허제, 이 사람 몸뚱이 그렇게 쉽게 들어오겄나? 허니 그 어리석은 말이다” 내가 그랬어.

이 몸뚱이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턱 가서 얼른 장만해 오면 거 괜찮허제. 허지마는, 그렇게 못 되아. 과약(果若) 참, 어렵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사람 몸뚱이 다시 장만허기가 그렇게 어려우니라. 그거, 허니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한번 생각해 봐라. 몸뚱이 다시 얻기 어려운 생각을 한번 지어라. 지어서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57분41초)

지금이 말세다. 지금 이 말세가 어떤 말세인고? 우리 석가모니불 나오신 이 사바세계 출세(出世)—백 세에 출세허셨는데, 인자 백 년 지나가면 일 년씩 감해져서 천 년 지나가면 십 년 감해져서 육천 년만 지나갈 것 같으면 십 세 정명(定命)이 온다.
십 세 정명 올 것 같으면은 인자 거기에서 도병겁(刀兵劫) 일어나, 무슨 질병겁은 뭐, 도병겁, 도창겁이 막 일어나 가지고는 다 거그서 몸뚱이 생긴 것들 다 뿌어져 버리고 다 모가지 잃어버리고 중음신(中陰身)으로 되는디, 중음신으로 삼재(三災) 속에 들어가서 그놈의 속에서 이 육신 몸뚱이는 없지마는, 중음신 몸뚱이라는 것이 꿈에 있는 몸뚱이 같은 거, 몽혼신(夢魂身)도 아니지, 이것은 아주 꿈도 없제. 업신(業身)이지.

업신이 그 중에 들어서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네! 그놈의 고(苦)라는 것은, 중음신의 고라는 것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여. 그렇게 얼마를 고(苦)를 받고 있을 터이니, 거그 한번 빠져 놓으면 6억 7천만년 후에도 미륵회상(彌勒會上)을 못 참여혀. 언제 그것들이 나와서 미륵존불 회상에 참여헐 것이여?
지금 잘 닦아야, 잘 닦아서 견성을 했다고 하드래도 견성해 가지고 입태(入胎), 태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주태(住胎), 태에 들어가서도 안 매하고, 출태(出胎), 태어날 때도 안 매할 정도가 되어야사 허느니라. 미륵회상에 참여하니라. 우리가 그때 어디 가 있을 거여? 다시 사바세계 나오드래도 그래 깨달라 가지고 나와야사 환허제.

이렇게 이렇게 미(迷)해 가지고 이렇게 멍청해 가지고 오늘 이 목숨 잊어버리면은 향하처거(向何處去)오? 요 지경, 요 따위 되아 가지고서는 그만 이 숭악한 말세, 이 삼재(三災)에 들어가 버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그서 이렇게 해 놓은 거 무언 줄 아시요? 뭔 줄 알아?

여다가 딱! 예불(禮佛)은 고대로 하고, 예불은 각 사찰에서 허는 대로 고대로 예불 내가 딱 해 놓고는, 거다가서 우리 참선 학자들, 우리 선학자들 부처님께 축원(祝願) 하나, ‘그저 정법문중(正法門中)에 퇴타(退墮) 않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나도 깨달라서 일체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그러면은 거그에 수명 부귀 장수가 거그 다 들었고. 수명 부귀 장수가 무엇이여, 정법문에 물러가지 않고 확철대오(廓徹大悟)허면은 천하에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축원 딱 해 번지고는, 고 밑에 가서는 떠억 십악참(十惡懺)을 허거든. 십악참이라 하는 것이 그 십중대계(十重大戒)여. 그 범망경(梵網經)에서 나온 것이여.
십중대계를 딱, 그 심지법문(心地法門)이거든. 견성(見性)해야사, 견성헌 이야 법(法)을 설혀. 견성해야 대승계(大乘戒)를 설혀.

멋대가리도 없이 그깟... 비구계(比丘戒), 내가 그걸 비방하는 게 아니여. 비구계 이백오십 계, 비구니계(比丘尼戒) 오백 계, 받아 놓았자 그 당장에 잊어버리는 거, 계상(戒相)도 모르는 거. 내가 설허는 것 안 됐다고 혀?

십중대계는 그대로 환해서, 참선 화두학자면 그대로 가지게 되아. 다 십중대계 딸렸거든. 그러면 계행(戒行)도—살생도 않는디, 또 살생도 않지만 파(破)할 것이 어디 있어? 가지고 범허는 것이 없으니 계상(戒相)까장 다 없어, 화두를 해 나가니까.

화두 학자가 십선(十善)을 봉행(奉行)해야 되아. 십악(十惡)을 이렇게 참회(懺悔)하고 십선봉행을 해야사 대번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간다 했거든.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선봉행만 하면은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간다 그 말이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갈 것 같으면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내려오지, 그냥 범부(凡夫)로 내려오는 법은 없어.

허니까, 똑 이렇게 예불허고, 아침에는 십중대계 그 참회를 따악 십악참회를 허면은—십악을 안 하면은, 내가 십악 죄를 안 지으면은 십선봉행(十善奉行)이여. 지악위선(止惡爲善)이니까. 꼭 십선봉행을 해야사, 십선봉행허고 화두를 참선 화두를 해야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인자는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서 우리가 피난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성불(成佛)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사바세계 어름어름허다가는 안 되아. 응! 그 말 잘 듣겠소? 그걸 잘 알아, 잘 알아들어야 되아.

그러니 여그서 이렇게 예불 똑 하고, 그 십악참 허는 거 고것 알고, 화두 딱 배운 보살님네 고렇게 해서 아침이라도 일어나시거들랑 방에서 딱 고렇게 예불 젓수고.
일어나서—모도 잠자고 그런디, 모도 뿌시럭뿌시럭 일어나서 잠 못 자게 그러지 말고, 가만히 혼자 일어나서 심배(心拜)라도, 마음으로라도 따악 이렇게 앉어서 도솔천 내원궁을 향해서 저! 제오천 도솔천인게.
극락세계(極樂世界) 가 버리면은, 극락세계 가서 넨장! 몇천만 겁을 나오도 않고 말 것이여 고대로? 속히 또 나와서 사바세계 우리 모도 인연(因緣) 중생을 제도(濟度)해야지. 고렇게 똑 해 주십시오.

내가 여다가 이렇게 해 놓고—다른 데야 허든 말든, 내 여그서 딱 작정을 해 놨습니다. 작정해 가지고는 고대로 꼭 해 나가니까. 그래 가지고 나, 또 용주사도 중앙선원이라 해서 거그도 “그렇게 해라!” 거그도 그렇게 합니다. 나! 다른 디야, 내가 관계없는 디야 내가 뭣 헐라고 내 말 비방허고 안 들을 턴디 뭣 헐라고 그렇게 헐 것이여. 안 혀.
여, 장삼(長衫)도 이렇게 맨들아서, 예복 장삼 간단허게 맨들아서 이렇게 떡 입고. 여그서만 내 입지, 다른 데 나가서 입으라고 안 허거든. 여그 딱 대중이 걸어 놨다가 요렇게 똑 허고 그럽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안 가르켜 논 짓을 내가 혀? 거, 외도(外道)라고?

부처님 꼭 고대로 해논 대로 내가 딱 해 논 것입니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하생경(下生經) 보시란 말씀이여. 거기에 어떻게 해 놨는가. 십선봉행을 허면은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는 것과 도솔천 내원궁에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미륵회상에 오는 것과. 환혀!
그런디 요새 모도 사교(邪敎)라는 것은 ‘곧 미륵님이 나오신다. 명년에 나오신다, 우명년(又明年)에 나오신다’ 요렇게 잡아 꾀이여. 어디 그건가?

이거 이대로, 부처님께서 미래불(未來佛) 그대로 다 설해서 수기(受記) 주어서 해 놓은 미륵회상을 내가, 다 미륵상생 하생경을 보고 내가 이렇게 딱 했지, 벌로 내가 이렇게 해 논 줄 아십니까? 꼭 우리 화두학자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 사상사(事象事) 그까짓 소용 있나? 참선허면 그만이제”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래서는 안 됩니다.

화두, 화두... 여까장 내가 그랬는데. 되아서 그만허고 내려가야써.

이렇게만 화두를 잡드리헐 것 같으면 극일지공(剋日之功)이, 날로 허는 공(功)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조금도 실(失)이 없다. 잃어진 법이 없어. 꼭! 화두 의심만 찾어라.

의심이 아니면은 그 모든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을 태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일체 번뇌 망상을 화두가 태워 버리는 법이고, 일체 티끌 우주 삼라만상, 초목 총림 다 태우는 건 불이 태우는 것인데, 불 그놈이 일체 냉기 초목 총림 산하대지를 막 다 태워 버린 뒤에는 불도 없네. 불 자체도 없어.
그놈으로 인해서 불이 있다가 냉기 다 타 버리면 불도 없네. 그걸 연소화멸(煙消火滅)이라 그려. 연소(煙消), 연기도 없어지고 불도 멸해 버리고 냉기 다 타 버리고 없어.

우리 화두도 화두 고놈이 일체 번뇌 망상을 다 태와 버려. 모도 집어생켜 버려! 찌깽이도 없이 다 먹어 버려! 판치생모(板齒生毛), 알 수 없는 의심이! 다 씹어 쌔그라 돌려 없애 버린 뒤에는 화두도 없어. 화두 없어. 번뇌 망상 꽉 맥힌 놈이 화두인디, 화두도 없어.
아! 화두도 없고 번뇌 망상도 없네! 그 지경을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이라 햐. 사람도 없어져 버리고 경계도 없어진 곳이여. 거그서 그대로 근쳐 버리면은 될 것인가?

확철대오허는 공안이, 그걸 깨닫는 공안이 거그 있어! 그래야사 인자 거그에 생사 없는 곳까장 다 봐 버리지.(1시간8분22초~1시간25분13초)(일대기 8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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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No.09)—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4분21초)
다맛 단정(端正)히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이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싹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또 무자(無字)를 허는 이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혹 혼침(昏沈)이 와 가지고 꾸벅 또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 (한두 번 소리내어) 화두를 또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한 5분—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한 5분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또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마(魔)가 소멸(消滅)이 되고. ‘마가 소멸된다’는 것은 혼침도 그것이 마(魔)고, 산란심(散亂心)도 그것도 마(魔)다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마(魔), 안에서 일어나는 마(魔), 모든 것이 다 마(魔)여, 마(魔)라고 볼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그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그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따악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12분8초~16분28초)


[참고 ❷]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3분57초)
화두를 들으라 들으라 하니까, "화두를 어떻게 듭니까? 어디가 놔졌어야 그놈을 들지, 어떻게 화두를 듭니까? 들어서 배꼽 밑에다가 딱 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그다가 붙이며.." 아주 그 대답하기가 대단히 거북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화두를 든다」고 하는 것은 「화두를 생각한다」고 우선 초학자(初學者)는 이해를 하시면 되는 것이고.

"생각은 되는데 관(觀)이 안 됩니다. 근데 그 어떻게 하면 관(觀)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을 묻는 이도 있습니다. 또 "관(觀)이란 게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도 있는데.
「관(觀)」이라 하는 것도 내나 「생각」입니다. 생각에 일종인데, 그 생각을 자꾸 화두를 생각하고—사량심(思量心)으로 생각해 갖고는 안 되고, 사량심이 아닌 꽉 맥힌 의심(疑心),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렇게 한 번씩 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고 그러고.

한 번 '이뭣고?' 하고 화두를 한 번 생각하면, 들었으면, 그 생각이 한참 동안, 1분이 되었건 3분이 되었건 내지 10분 동안이라도 그 생각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여가 딱 있으면 그동안에 「화두가 들어져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딴생각이 쑥 들어와 가지고 화두가 어디로 가 버리고 없으면 그때 다시 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고.
또 딴생각이 들어오지는 안 했지마는 '이뭣고?' 한 그 생각이 희미해져 버려. 그래 가지고는 화두를 든 것인지 안 든 것인 중도 모르고 그냥 조용한 채 우두거니 앉어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자기도 모른 새에 까빡 이렇게 (졸게) 되고 하는데. 그럴 때는 또 다시 화두를 떠억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또 한 번씩 챙기는 것이여.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딱 들어져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계속 그렇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드는 것은 아니에요.
한 번 들어서 그 생각이 쭈욱 있으면 자꾸 연거퍼 그 위에다 자꾸 포개 놓지 안 해도 되어요.

이 단전호흡(丹田呼吸)과 화두(話頭)가 언제나 같이 되어 가도록 그렇게 익혀 나가면, 단전호흡을 터억 하면 화두는 그 가운데 제절로 딱! 들어지고, 또 화두를 딱! 들면 제절로 단전호흡이 제절로 같이 따라오도록 이렇게 나중에는 되어 가는 것입니다.(15분5초~19분2초)


[참고 ❸]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2분28초)
내가 부모한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원래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본래 갖추고 있다. 진여불성이라고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마는 사실은 원래는 그러한 이름도 없는 것이고, 그런 특정한 모냥다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합니다.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대관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조화(造化)가 무쌍(無雙)하냐 그 말이여.
여기 법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울을 생각하면 서울이 환하거든. 목포를 생각하면 목포가 환하고, 부산을 생각하면 부산이 환하고, 지리산을 생각하면 지리산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왔다갔다 번갯불보다도 더 빠르다.

눈을 통해서는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는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는 맛볼 줄 알고, 말도 할 줄 알고, 발로는 걸어 다니고, 손으로는 뭘 잡고, 대관절 무슨 물건이 눈에도 보이지도 않고 손에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그렇게 조화가 무궁무진하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러면서도 알 수가 없으니, 그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벌써 그거 '이뭣고?' '이뭣고?'
자꾸 '이뭣고?'를 챙겨서 그놈이 무엇인가를 참구(參究)를 하다 보면, '이뭣고?' 하고 혀도 까딱도 않고 '이뭣고?' 소리도 하기도 전에 벌써 알 수 없는 생각이 탁! 있거든. 그러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하면 벌써 그것이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라.

지끔 요 얘기할 때도 환히 있거던, 화두가.
틀림없이 여러분들 지끔 제 말씀을 듣고 계시면서도 '이뭣고?'가 타악 되어져 있을 거여. '이뭣고?'(37분50초~40분19초)

*괘명(掛命 걸다 괘/목숨 명) ; ‘목숨 걸고’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❶]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❷]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벌거지 ; ‘벌레’의 사투리.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꺼갱이 ; ‘지렁이’의 사투리.
*해치깡 ; ‘수채, 시궁창, 늪, 진흙, 해감’의 사투리. 해초, 해초깡, 해치 등도 같은 뜻의 사투리이다.
*수륙공해(水陸空海) ; 물[水]과 육지(陸地)와 바다와 같은 하늘[空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涅槃經)』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역 北涼 天竺三藏 曇無讖 譯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제7권, 4.여래성품(如來性品)④.
佛說中道 一切衆生悉有佛性 煩惱覆故 不知不見 是故應當勤修方便 斷壞煩惱

부처님께서 중도를 말씀하실 때에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지만 번뇌가 가려서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서 번뇌를 끊어야 한다」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짐승취 ; 축생취(畜生趣).
*육취(六趣) ; 육도(六途, 六道)와 동일.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축생취(畜生趣), 아수라취(阿修羅趣), 인간취(人間趣), 천상취(天上趣)가 있다.
*취(趣) ;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중유(中有) · 중온(中蘊)이라고도 한다. 중음신은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진 의생신(意生身) 또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도 한다.
중유 또는 중음신의 기간은 불교 부파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보통 49일 동안 중음신의 상태로 머문다고 하여, 절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십구재(四十九齋)[또는 칠칠재(7·7재, 七七齋)]는 이 중음신의 기간에서 비롯되었다.

*사유(四有) ; 산스크리트어 catvāro bhavāh. 사유(死有) · 중유(中有) · 생유(生有) · 본유(本有) 등 한 번의 윤회 과정을 넷으로 나눈 것. 유(有)는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바바(bhava)의 한역어(漢譯語)로 유정중생(有情衆生)의 생존을 뜻한다.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유정중생은 모두 사유(四有)를 갖춘다. 사유 중에서 생유(生有)와 사유(死有)의 기간은 아주 짧은 찰나이지만 중유(中有)와 본유(本有)의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①사유(死有) : 죽는 찰나를 말한다.
②중유(中有) :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으로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에 이르는 기간이니 중음(中陰)이라고도 한다.
③생유(生有) : 태어나는 순간, 즉 모태에 탁태(托胎) · 결생(結生)하는 찰나이다.
④본유(本有) : 본시유(本時有) · 전시유(前時有) 등이라고도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으로 생유(生有)로부터 사유(死有)에 이르는 기간이다.
*과약(果若) ; 과연(果然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알고 보니 정말로.
*난조지상(難遭之想 어려울 난/만날 조/갈 지/생각 상) ;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정명(定命) ; ①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도병겁(刀兵劫) ; 중겁(中劫) 말기에 일어나는 소삼재(小三災)의 하나. 분노로 말미암아 서로 해치려는 마음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무기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재난이다. 도병겁은 칠일 밤낮 동안 계속되며 인구가 만 여명으로 줄어들어서야 비로소 자비심을 일으켜 끝이 나고 다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도병재(刀兵災) · 도재(刀災) · 도병중간겁(刀兵中間劫)이라고도 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몽혼(夢魂) ; 꿈속의 넋.
*업신(業身) ; 업(業)의 몸[身]. 육식(六識)—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이 무량겁으로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한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사람에게 세 가지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업신(業身)이요, 셋째는 육신(肉身)이로다. 법신은 불신(佛身)이요, 업신은 곧 귀신(鬼身)이요, 육신은 곧 사람의 색신(色身)이로다.
색신 가운데 업신과 법신이 구족(具足)하여 서로 여의지 않건마는 중생의 업보(業報)가 중하여 다못 업신이 구원겁을 드나들며 사생(四生) 육취(六趣)의 육신(肉身)으로 인하여 모든 악업을 짓도다.(p231)

사람에게 법신(法身) · 업신(業身) · 육신(肉身), 세 가지 몸이 있다 하니 어떠한 것이 육신인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다. 지(地)는 살이요, 수(水)는 눈물 · 콧물 · 대소변이요, 화(火)는 따뜻한 기운이요, 풍(風)은 콧김 · 입김 · 동정(動靜)이니 이 네 가지를 부모에게서 얻어 육신을 지었다가 명(命)이 다하여 임종을 하매 지(地)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물로 돌아가고, 화(火)는 불로 돌아가고, 풍(風)은 바람으로 돌아가 사대가 흩어지니 허황(虛荒)하기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장마에 두엄 버섯이니라.

어떠한 것이 업신(業身)인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이 여섯 가지 식심(識心)이로다.
눈으로 일체 만물을 보아 탐하여 모든 업을 지으며, 귀로 일체 소리를 들어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코로 모든 냄새를 맡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혀로 모든 음식을 맛보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몸으로 춥고 더운 분별망상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뜻으로 밉고 어여쁘고 좋고 나쁜 일체 망상(妄想)을 내어 모든 업을 지어, 이 여섯 놈이 무량겁(無量劫)으로 드나들며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니, 이러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법신(法身)인고?
일찌기 발심하여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다생죄업(多生罪業)을 참회하고, 옛 성현의 친절언구(親切言句) 천칠백 화두(話頭) 가운데 자기에게 합당한 화두를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중에 모든 망상(妄想)이 적적(寂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여, 들지 아니하되 화두가 스스로 들림이 샘물 흘러가듯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에 이르러,
홀연히 망상 구름이 흩어지고 마음달이 홀로 드러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 그 밝은 빛이 하늘과 땅이 궤멸(潰滅)하여도 이 광명(光明)이 길이 멸하지 아니하며, 이것을 이름하되 불생불멸지도(不生不滅之道)라 하나니라.

이같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 이름하며, 혹 도사(導師)라 이름하며, 혹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며, 혹 부처라 이름하나니, 천당(天堂) · 불찰(佛刹)에 임의 자재하여 천상(天上)에 가서 나매 천상 사람을 제도하며, 인간에 나매 인간을 제도함에 이르므로 인천(人天)에 스승이 되며, 사생(四生)에 자비로운 부모가 되는 고로 이 사람의 이름이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이로다.(p233~236)

누구든지 육신(肉身) · 업신(業身) ·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p247)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p257)

인생은 자기 업신(自己業身)의 반영(反映)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實相)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異性)으로 감응(感應)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으니라.(p266)

우리가 느끼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육식(六識)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흩어지나니,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천류(遷流)하는 육식으로 어찌 인생이 근본 정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p270)
*일구난설(一口難說 한 일/입 구/어려울 난/말씀 설) ; 내용이 복잡하거나 길어서 한[一] 입[口]으로는 다 설명(說明)하기 어려움[難].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⑩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범망경(梵網經) : 이 경은 범어나 파리어(巴利語 pali)로 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록대로 본다면 본래 61품, 백이십 권 되는 원문을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그 중 열째 권인 「노사나불이 말씀하신 보살의 심지 계품(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만을 번역하여 상•하 두 권으로 만들었다. 상권에는 심지 법문(心地法門)을 말하였고, 하권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 경구죄(輕垢罪)를 말하였는데, 경구죄란 것은 중대한 죄악은 아니나 깨끗하지 못한 허물이 된다는 뜻이다.
보살계는 심지 법문을 주장하는 대승계이며 성계(性戒)이다. 그러므로 이 경은 율부(律部)에 속하지 않고 <화엄경>과 같은 부류에 들게 된다.
이 경을 해석한 글이 많지마는 신라의 대현(大賢)이 지은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과 원효(元曉)의 <사기(私記)> 2권과 의적(義寂)의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상•하권 같은 것들이 가장 유명하다.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 법문.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 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 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계(戒)의 상(相). 계율에 대한 생각. 그 계상(戒相)의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권10 제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계를 지킨다는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어름어름하다 ; ①말이나 행동을 똑똑하게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자꾸 우물쭈물하다. ②일을 대충하고 눈을 속여 넘기다.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미래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설함.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미래불(未來佛) ; ①미래에 나타날 부처님. 특히 미래에 나타날 미륵불(彌勒佛)은 현재 미륵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면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며,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예정되어 있다.
②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가능성을 가진 중생을 일컫는 말.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기 때문애, 여러 가지 수행을 통해 미래세에 성불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중생을 미래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기(受記, 授記) ; 부처가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그 교설(敎說).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사상(事象 일 사/모양 상) ; 관찰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물(事物)과 현상(現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극일지공(剋日之功 해내다·이루어내다 극/날·해·기한 일/~에·~에 있어서 지/공·공로·공적 공) ; 기한[日] 내에[之] 성취하는[剋] 공(功).
*만불실일(萬不失一 일만 만/아니다·아니하다·없다 불/잃다·잘못하다·그르치다·어긋나다 실/한 일) ; 만(萬)에 하나도 그르치지[失 잃지·잘못하지·어긋나지] 아니하다[不]. 만(萬)에 하나도 그르침[失]이 없다[不]. ①조금도 틀림이 없다. ②실수(失手)가 한 번도 없음.
[참고]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五)’ (고봉 화상 |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69~70, 72.
若論此事인댄 如大火聚 烈焰亘天하야 曾無少間이라 世間所有之物을 悉皆投至라도 猶如片雪 點着便消어니 爭容毫末이리오. 若能恁麽提持하면 剋日之功을 萬不失一이어니와 儻不然者인댄 縱經塵劫이라도 徒受勞矣리라

만일 이 일[此事]을 말하자면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는데, 세간의 온갖 물건을 무엇이나 집어 던져도 한 조각의 눈[雪]이 닿자마자 곧 녹아버리는 것과 같나니 어찌 털끝만치인들 딴 생각이 용납되겠는가. 만일 이렇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기한내에 성취하는 공(功)을 만(萬)에 하나도 잃지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도 고생만 할 뿐이리라.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찌깽이 ; ‘찌꺼기’의 사투리.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인 사료간(四料揀)의 하나.
*사료간(四料揀) :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 인(人)은 주체로서의 자기(自己). 경(境)은 객관(客觀). 탈(奪)은 부정하는 것.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08. 212.
四料揀(사료간)
奪人不奪境(탈인불탈경)은  待下根(대하근)이요  奪境不奪人(탈경불탈인)은  待中根(대중근)이요  人境兩俱奪(인경양구탈)은  待上根(대상근)이요  人境俱不奪(인경구불탈)은  待出格人(대출격인)이라.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은 하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고,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은 중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며,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은 상등 근기를 다루는 법이고,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은 ‘격 밖의 사람[出格人]’을 다루는 법이다.

*‘생사 없는 곳까장’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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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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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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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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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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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선요』 법문(전강선사 No.018)—若論此事 如大火聚 烈焰亘天 曾無少間 世間所有之物 悉皆投至 猶如片雪 點着便消 爭容毫末 若能恁麽提持 剋日之功 萬不失一 儻不然者 縱經塵劫 徒受勞矣.


*선요(禪要) ; 『선요』는 중국 송대 말기에서 원대 초기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 법어집으로 대중과 개인을 위한 법문과 편지글 및 스님 자신의 수행과정을 직접 말씀한 편지글을 포함해 29단락의 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참선 수행인이 생사 일대사(生死 一大事)의 해결을 위하여 간절하게 화두 참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五)’ (고봉 화상 |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69~70, 72.
若論此事인댄 如大火聚 烈焰亘天하야 曾無少間이라 世間所有之物을 悉皆投至라도 猶如片雪 點着便消어니 爭容毫末이리오. 若能恁麽提持하면 剋日之功을 萬不失一이어니와 儻不然者인댄 縱經塵劫이라도 徒受勞矣리라

만일 이 일[此事]을 말하자면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는데, 세간의 온갖 물건을 무엇이나 집어 던져도 한 조각의 눈[雪]이 닿자마자 곧 녹아버리는 것과 같나니 어찌 털끝만치인들 딴 생각이 용납되겠는가. 만일 이렇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기한내에 성취하는 공(功)을 만(萬)에 하나도 잃지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도 고생만 할 뿐이리라.

 

(1) 16분 17초.

 

(2) 11분 17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1)------------------

조금 화두 허는 경계나 내가 한마디 얘기허고 내려갈까? 여까장 해두고 잉.
기운 없어 못허겄고. 법문이 고함지르기 시작허먼 법문 못해야. 뱃속에서 안 나오니깐 고함을 지르거든.

약론차사(若論此事)인댄, 이 일을 의논할진대. 이 일은 무엇인고? 참선법, 화두법이여.
여대화취(如大火聚)다. 큰 불무더기 같다. 불무더기가 조그만헌 불무더기가 아니라 큰 불무더기다.

어째 큰 불무더기냐? 집채라도 큰 집채에 불이 타면 클 것이고, 적은 집에 불타면 적은 불무더기일 것이다. 불무더기라 하는 것은 나무가 많이 쟁여져 있어야, 거그 불이 붙어야 큰불이다. 나무 없으면은 불이 붙을 수가 있나? 나무가 가뜩 쟁여져 가지고 그 불붙어야사 큰 불무더기니라.

그런 참선법도 여차(如此)하다. 망상(妄想)이 잔뜩 있는 사람, 습기(習氣)도 많고 망상도 많고 그렇게 그만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뜩 괴어 차 있는 사람일수록에 그 사람이 공부를 허는 것이여.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안 되지마는, 그 사람이 공부를 해야사 공부가 인자 된다 그 말이여.
그렇게 많이 구원겁(久遠劫) 중으로 오면서 그 많이 탐진치를 익혀 왔고, 그 망상! 망상이 무엇인가, 모도 그 습기 망상이지. 살생 · 도둑질 · 거짓말 그저 모도 이런 망상, 그거 모도 그런 것으로써 습기 지어서 그 망상이지.
그러니 그런 망상이 많이 있는 사람이래야 화두가 떠억 되는 것이여. 큰 불무더기가 냉기가 많이 있으면 불이 잘 타데끼—불은 화두인디, 나무는 그놈이 번뇌 망념인디, 나무 그놈을 막 들입대 큰불이 태워 버린다 그 말이여.

처음에는 마침 화두를 배워 놓으니,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놈을 배워 놓으니, 잔뜩 불 땐 굴뚝에 연기 뻥뻥 나오는데 들여다보는 것 같지. 그 들여다볼 수 있나? 막 연기가 눈으로 푹 대들고, 코로 입으로 막 대든디 들여다볼 수 있어? 그와 같혀.
그와 같기도 허고, 문자상철우상사(蚊子上鐵牛相似)여. 모구(모기)란 놈이 쐬소, 쐬로 된 소 뚫는 것 같여. 그 모구 부드러운 주뎅이, 고것으로 쐬소를 뚫으니 되아? 그렇게, 안 들어가. 되도 안 혀. 그렇다 그 말이여. 그러지마는 화두라 하는 것은 그러헌 사람이 해야 혀.

젠장! 영리해서 말, 법문 잘 알아듣고 이치를 딱딱 분석해서 알고, 그 사람 못혀. 고 영리한(靈利漢)은, 날카로운 영리헌 사람은 이치길을 자꾸 만들아, 이치를 모두 뭘 만들아서 그래서 못혀.
망상이 꽉 찬 사람이 척 들어와서 화두를 배워 보면 깜깜 칠통(漆桶)이여. 무슨 어떻게 헌 지도 몰라. 그래도 그만 그대로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렇게 그만 무식허게 대들어야 혀. 영리허게 요리조리 주박성(湊泊性)으로 대들면 못써. 상량선(商量禪)으로 대들면 아무짝에도 못써.

확 대들어서 알 수 없는 놈을 하나 추켜들고는 자꾸 이놈을 챙긴다. ‘어째서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그놈 없어지기 전에 어서 또 끄집어 일받고 일받고 허면은 그놈의 망상이 어디 틈, 비집을 틈을 어디 얻어서 나올 수가 없어. 못 나와.
그까짓 거 나오거나 말거나 판대기 이빨에 털만 자꾸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아! 요놈만 자꾸 거각(擧却)하는데, 어디 망상이 어디서 불거져?

그까짓 염(念), 일어나는 망상 두려워허지 말어라. 자꾸 화두만 이놈 이렇게 자꾸 챙겨라. 그러면 맹렬헌 불이 낭기 태우데끼, 일체 망상이 판치생모 생각하는 디 당최 어리대도 못헌다. 그와 같여.

그러헌 더운 불꽃[烈焰]이 큰 불무더기가 긍천(亘天)이다. 하늘까장 뻐질렀다. 원청 큰 불무더기이기 따문에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그 불무더기가 원청 냉기가 하도 많이 쟁여져 있으니까, 그 큰 불무더기가 타도 ‘일찍이 조금도 사이가 없다’ 어떻게 많이 드리 타는지.(43분1초)

그러니 망상 번뇌가 많이 있는 그 사람은 화두 그놈이 점점점점 불무더기 타데끼 자꾸 커지제. 망상이 있을수록에 화두가 점점 커져!
소유지물(所有之物)을—비단 냉기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일체 도모지 모냥 있는 물건은 다 태운다. 옥석(玉石)도 태우고 쐬도 녹아 버리고 무슨 물건이든지 다 태와 버린다.

실개투지(悉皆投至)면은, 거다가 집어넣어 봐라. 뭣이 안 타는가? 유여편설(猶如片雪)이다. 그 큰 불무더기가 불이 많이 크게 탈수록에 더 열이 많고 굉장한 강해서 여간 천하없는 무슨 못 태울 물건이라도 거그 들어가면은 봄눈같이 녹아져 버린다.
이 비유인디, 화두를 이와 같이 다루어라. 화두만 자꾸 챙기면은,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 턱 챙기면은 의심 그놈이 불인디 뭐가 안 녹아지겄나? 무슨 망상이 거 와 붙겠나? 자꾸 화두 의심만 길러라! 알 수 없는 놈만 키워 길러 나가거라.

세상에! 이 법같이 쉬운 참선법이 없는데, 더군다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인데 어째서 안된다고 하냐 그 말이여. 그저 바람 쐬다가도 또 한번썩 생각하고, 들어가 또 좌(座)에 앉어서 생각허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을 그놈을 자꾸 생각해야제, 고것 의심 없이 지해(知解) 상량(商量)으로 들어가 봐. 요리 알고 저리 알고, 무슨 이치고, 뭐 요따구 놈의 선(禪) 해봐, 무엇이여? 그런 선은 그건... 무슨 그러니 그러기 따문에 뭐 신선도도 못 되제. 그것이 무엇이여?

점착변소(點着便消)다. 그 불무더기에는 그저 집어넣기 전에 다 탄다. 어디 뭐, 거그 부닥쳐서 타나? 더도 들어오도 못혀.
화두가 일념이, 이렇게 의심이 성대(盛大)헐 것 같으면은 큰 불무더기와 같애서 참!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만(萬)이 참선허는데 하나도 잃은 법이 없어. 하나도 안된 법이 없어.

쟁용호말(爭容毫末)이냐? 호말(毫末)같은 거, 터럭겉은 걸 집어넣어 봐라. 거가 어디 어리댈 수나 있나?
화두 의심이 돈발(頓發)되면은 그깥은 무슨 세상, 무슨 번뇌 망상이 무슨 소용이 있어? 번뇌 망상 그까짓 걱정헐 게 뭐여? 또 잠이 그것이 어디서 와? 잠! 잠이 그것이 뭐 근본이 있는 것인가, 그것이? 근본도 없는 것이 공연히 들어와서 심월(心月)을 어둡게 만들지.

약능임마제지(若能恁麼提持)를 해 봐라. 활구참선허는 사람이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화두를 제지(提持)해 봐라. 똑 날로 날로 다루어 해봐라.
다맛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요놈에서, 알 수 없는 요놈 거각한 디서, 망념이 무엇이 생겨날 디가 없어! 아, 해보면 알제.

헐똥말똥 좀 허다 말다 “아이고, 이놈의 것! 안 되니 그만 말아 버릴까 어쩔까” 요렇게 헌 놈의 참선이래야 안 되지. 괘명(掛命)허고, 목숨을 한번 그까짓 것 죽고 사는 걸 불고(不顧)해 버리고 한번 해보아라, 안 되는가? 죽도 않느니라, 그래도.

안 허고 어떻게 헐 꺼여? 이렇게 한바탕해서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봐야지, 그 요따구로 살다 말아? 요따구로 살다 죽고 말아? 어디 가 처백힐 것이며, 그놈의 곳 참! 궁금혀. 어디가 처백힐 것인가?
참, 이놈 안 갈 수 없다. 가는 길이로구나. 돌아오지 못헐 놈의 길을 간다. 다시는 못 와. 요까짓 몸뚱이 가지고 어떻게 오나? 요 몸뚱이 내버리고 어디를 와? 한번, 부모 처자 권속이라도 작별허고 이별해 버리면 그만이다. 다시는 그건 못 만나는 것이여.

그까짓 영(靈), 그것 뭐 이 몸뚱이 안에 있든 거, 누가 보기나 알기나 허간디? 그놈의 처백힐 곳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지금 말세(末世)다. 지금 가장 말세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그놈의 처백힌 곳이 무간지옥인가, 아비지옥인가, 소 배때기인가, 말 배때기인가, 귀신 배때기인가 알 수는 없다마는, 한번 처백히면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누가 저번에 질문허기를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이 생겨 나오는디 참, 사람 때문에 주체 못허겄는디, 그렇게 사람 몸뚱이가 나기 어렵다고 그래 놨답니까? 그 가뜩 사람 땜에 못 살겠는디” 이러드구만.
“야, 그것도 설찬히 질문도 헐 만한 말이다마는, 그게 어리석느니라” 내가 그랬어.

“그놈이 모도 그 이 몸뚱이 있는 물건, 몸뚱이로 모도 생명 붙어 있는—사람 몸뚱이 말고—짐승 몸뚱이, 벌거지 몸뚱이, 날라댕기는 연비(蜎飛) 몸뚱이, 바다 가운데 있는 몸뚱이, 큰 놈 작은 놈 다 모도 한량도 없는 놈 다 그놈 숫자를 좀 쳐 보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개구락지니 꺼갱이니, 뭐 또 저 물속에서 모도 그 해치깡에서 생겨난 그런 충이니, 박테리아 충이니, 공중 드리 전부 수륙공해(水陸空海) 전부를 다 쳐서, 사람 인명허고 그놈 비교 좀 해 보자.

부처님 말씀에 영(靈)은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돼지 영이나, 소 영이나, 사람 영이나, 개 영이나 똑같다 했으니 또 뭐 벌레 몸뚱이는 달라?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부처 되는 불성이 있다 했으니—그놈이, 대구 같은 놈 저런 놈이, 그 큰 놈이 알 낳아 놓으면은 처음에 나올 때는 찌끄만 눈만 생겨 가지고, 허다가 그놈이 차츰차츰 이물성대(以物盛大), 뭘 많이 먹고 크면 이만큼 커지고. 그렇제, 어디 본래 그놈이 무슨 뭐 불성(佛性)이 적고 큰가?
허니, 그렇게 한번 따져 보아라. 짐승취에 들어가거나, 공계에 일체 중음신(中陰身 ), 귀신 배때기에 들어가던지 이렇게 허제, 이 사람 몸뚱이 그렇게 쉽게 들어오겄나? 허니 그 어리석은 말이다” 내가 그랬어.

이 몸뚱이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턱 가서 얼른 장만해 오면 거 괜찮허제. 허지마는, 그렇게 못 되아. 과약(果若) 참, 어렵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사람 몸뚱이 다시 장만허기가 그렇게 어려우니라. 그거, 허니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한번 생각해 봐라. 몸뚱이 다시 얻기 어려운 생각을 한번 지어라. 지어서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57분41초~1시간13분57초)





(2)------------------

지금이 말세다. 지금 이 말세가 어떤 말세인고? 우리 석가모니불 나오신 이 사바세계 출세(出世)—백 세에 출세허셨는데, 인자 백 년 지나가면 일 년씩 감해져서 천 년 지나가면 십 년 감해져서 육천 년만 지나갈 것 같으면 십 세 정명(定命)이 온다.
십 세 정명 올 것 같으면은 인자 거기에서 도병겁(刀兵劫) 일어나, 무슨 질병겁은 뭐, 도병겁, 도창겁이 막 일어나 가지고는 다 거그서 몸뚱이 생긴 것들 다 뿌어져 버리고 다 모가지 잃어버리고 중음신(中陰身)으로 되는디, 중음신으로 삼재(三災) 속에 들어가서 그놈의 속에서 이 육신 몸뚱이는 없지마는, 중음신 몸뚱이라는 것이 꿈에 있는 몸뚱이 같은 거, 몽혼신(夢魂身)도 아니지, 이것은 아주 꿈도 없제. 업신(業身)이지.

업신이 그 중에 들어서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네! 그놈의 고(苦)라는 것은, 중음신의 고라는 것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여. 그렇게 얼마를 고(苦)를 받고 있을 터이니, 거그 한번 빠져 놓으면 6억 7천만년 후에도 미륵회상(彌勒會上)을 못 참여혀. 언제 그것들이 나와서 미륵존불 회상에 참여헐 것이여?
지금 잘 닦아야, 잘 닦아서 견성을 했다고 하드래도 견성해 가지고 입태(入胎), 태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주태(住胎), 태에 들어가서도 안 매하고, 출태(出胎), 태어날 때도 안 매할 정도가 되어야사 허느니라. 미륵회상에 참여하니라. 우리가 그때 어디 가 있을 거여? 다시 사바세계 나오드래도 그래 깨달라 가지고 나와야사 환허제.

이렇게 이렇게 미(迷)해 가지고 이렇게 멍청해 가지고 오늘 이 목숨 잊어버리면은 향하처거(向何處去)오? 요 지경, 요 따위 되아 가지고서는 그만 이 숭악한 말세, 이 삼재(三災)에 들어가 버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그서 이렇게 해 놓은 거 무언 줄 아시요? 뭔 줄 알아?

여다가 딱! 예불(禮佛)은 고대로 하고, 예불은 각 사찰에서 허는 대로 고대로 예불 내가 딱 해 놓고는, 거다가서 우리 참선 학자들, 우리 선학자들 부처님께 축원(祝願) 하나, ‘그저 정법문중(正法門中)에 퇴타(退墮) 않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나도 깨달라서 일체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그러면은 거그에 수명 부귀 장수가 거그 다 들었고. 수명 부귀 장수가 무엇이여, 정법문에 물러가지 않고 확철대오허면은 천하에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축원 딱 해 번지고는, 고 밑에 가서는 떠억 십악참(十惡懺)을 허거든. 십악참이라 하는 것이 그 십중대계(十重大戒)여. 그 범망경(梵網經)에서 나온 것이여.
십중대계를 딱, 그 심지법문(心地法門)이거든. 견성(見性)해야사, 견성헌 이야 법(法)을 설혀. 견성해야 대승계(大乘戒)를 설혀.

멋대가리도 없이 그깟... 비구계(比丘戒), 내가 그걸 비방하는 게 아니여. 비구계 이백오십 계, 비구니계(比丘尼戒) 오백 계, 받아 놓았자 그 당장에 잊어버리는 거, 계상(戒相)도 모르는 거. 내가 설허는 것 안 됐다고 혀?

십중대계는 그대로 환해서, 참선 화두학자면 그대로 가지게 되아. 다 십중대계 딸렸거든. 그러면 계행(戒行)도—살생도 않는디, 또 살생도 않지만 파(破)할 것이 어디 있어? 가지고 범허는 것이 없으니 계상(戒相)까장 다 없어, 화두를 해 나가니까.

화두 학자가 십선(十善)을 봉행(奉行)해야 되아. 십악(十惡)을 이렇게 참회(懺悔)하고 십선봉행을 해야사 대번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간다 했거든.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선봉행만 하면은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간다 그 말이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갈 것 같으면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내려오지, 그냥 범부(凡夫)로 내려오는 법은 없어.

허니까, 똑 이렇게 예불허고, 아침에는 십중대계 그 참회를 따악 십악참회를 허면은—십악을 안 하면은, 내가 십악 죄를 안 지으면은 십선봉행(十善奉行)이여. 지악위선(止惡爲善)이니까. 꼭 십선봉행을 해야사, 십선봉행허고 화두를 참선 화두를 해야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인자는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서 우리가 피난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성불(成佛)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사바세계 어름어름허다가는 안 되아. 응! 그 말 잘 듣겠소? 그걸 잘 알아, 잘 알아들어야 되아.

그러니 여그서 이렇게 예불 똑 하고, 그 십악참 허는 거 고것 알고, 화두 딱 배운 보살님네 고렇게 해서 아침이라도 일어나시거들랑 방에서 딱 고렇게 예불 젓수고.
일어나서—모도 잠자고 그런디, 모도 뿌시럭뿌시럭 일어나서 잠 못 자게 그러지 말고, 가만히 혼자 일어나서 심배(心拜)라도, 마음으로라도 따악 이렇게 앉어서 도솔천 내원궁을 향해서 저! 제오천 도솔천인게.
극락세계(極樂世界) 가 버리면은, 극락세계 가서 넨장! 몇천만 겁을 나오도 않고 말 것이여 고대로? 속히 또 나와서 사바세계 우리 모도 인연(因緣) 중생을 제도(濟度)해야지. 고렇게 똑 해 주십시오.

내가 여다가 이렇게 해 놓고—다른 데야 허든 말든, 내 여그서 딱 작정을 해 놨습니다. 작정해 가지고는 고대로 꼭 해 나가니까. 그래 가지고 나, 또 용주사도 중앙선원이라 해서 거그도 “그렇게 해라!” 거그도 그렇게 합니다. 나! 다른 디야, 내가 관계없는 디야 내가 뭣 헐라고 내 말 비방허고 안 들을 턴디 뭣 헐라고 그렇게 헐 것이여. 안 혀.
여, 장삼(長衫)도 이렇게 맨들아서, 예복 장삼 간단허게 맨들아서 이렇게 떡 입고. 여그서만 내 입지, 다른 데 나가서 입으라고 안 허거든. 여그 딱 대중이 걸어 놨다가 요렇게 똑 허고 그럽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안 가르켜 논 짓을 내가 혀? 거, 외도(外道)라고?

부처님 꼭 고대로 해논 대로 내가 딱 해 논 것입니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하생경(下生經) 보시란 말씀이여. 거기에 어떻게 해 놨는가. 십선봉행을 허면은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는 것과 도솔천 내원궁에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미륵회상에 오는 것과. 환혀!
그런디 요새 모도 사교(邪敎)라는 것은 ‘곧 미륵님이 나오신다. 명년에 나오신다, 우명년(又明年)에 나오신다’ 요렇게 잡아 꾀이여. 어디 그건가?

이거 이대로, 부처님께서 미래불(未來佛) 그대로 다 설해서 수기(受記) 주어서 해 놓은 미륵회상을 내가, 다 미륵상생 하생경을 보고 내가 이렇게 딱 했지, 벌로 내가 이렇게 해 논 줄 아십니까? 꼭 우리 화두학자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 사상사(事象事) 그까짓 소용 있나? 참선허면 그만이제”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래서는 안 됩니다.

화두, 화두... 여까장 내가 그랬는데. 되아서 그만허고 내려가야써.

이렇게만 화두를 잡드리헐 것 같으면 극일지공(剋日之功)이, 날로 허는 공(功)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조금도 실(失)이 없다. 잃어진 법이 없어. 꼭! 화두 의심만 찾어라.

의심이 아니면은 그 모든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을 태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일체 번뇌 망상을 화두가 태워 버리는 법이고, 일체 티끌 우주 삼라만상, 초목 총림 다 태우는 건 불이 태우는 것인데, 불 그놈이 일체 냉기 초목 총림 산하대지를 막 다 태워 버린 뒤에는 불도 없네. 불 자체도 없어.
그놈으로 인해서 불이 있다가 냉기 다 타 버리면 불도 없네. 그걸 연소화멸(煙消火滅)이라 그려. 연소(煙消), 연기도 없어지고 불도 멸해 버리고 냉기 다 타 버리고 없어.

우리 화두도 화두 고놈이 일체 번뇌 망상을 다 태와 버려. 모도 집어생켜 버려! 찌깽이도 없이 다 먹어 버려! 판치생모(板齒生毛), 알 수 없는 의심이! 다 씹어 쌔그라 돌려 없애 버린 뒤에는 화두도 없어. 화두 없어. 번뇌 망상 꽉 맥힌 놈이 화두인디, 화두도 없어.
아! 화두도 없고 번뇌 망상도 없네! 그 지경을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이라 햐. 사람도 없어져 버리고 경계도 없어진 곳이여. 거그서 그대로 근쳐 버리면은 될 것인가?

확철대오허는 공안이, 그걸 깨닫는 공안이 거그 있어! 그래야사 인자 거그에 생사 없는 곳까장 다 봐 버리지.(1시간13분58초~1시간25분13초) (일대기 8호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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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습기(習氣 익히다·익숙하다·습관 습/기운·기세·힘 기)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냉기 ; ‘나무’의 사투리.
*들입대 ; 들입다. 세차게 마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문자상철우상사(蚊子上鐵牛相似) ; ‘모기가 쇠로 된 소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참고] 『고봉화상 선요 어록』 (고봉 1238~1295 |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시중(示衆 其十四)’ p112.
若論此事 如蚊子上鐵牛相似 更不問如何若何 便向下觜不得處 拌命一鑽 和身透入 正恁麼時 如處百千萬億香水海中 取之無盡 用之無竭 設使志不堅心不一 悠悠漾漾 東飛西飛 饒你飛到非想非非想天 依舊只是箇餓蚊子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모기가 쇠로 된 소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이러쿵 저러쿵 묻지 않고 당장에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 번 뚫어서 몸으로까지 뚫고 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런 때 마치 백천만억 향수해(香水海)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아서 취(取)해도 다함이 없고 써도 고갈됨이 없지만, 설사 뜻이 견고하지 않고 마음이 한결같지 않아 아득히 출렁대며 동으로 날고 서로 날다가 설사 네가 날아서 비비상천에 이른다하더라도 여전히 다만 한 마리 굶주린 모기일 뿐이더라
*영리한(靈利漢) ; 명석한 이해력을 지닌, 두뇌가 민첩한. 또는 그러한 사람. 영리(靈利). 영리(伶利)라고도 한다. 분별에 치우쳐 불도(佛道)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주박(湊泊 모일·항구 주/머무르다·배를 대다 박) ; ‘배가 정박한다’는 뜻. 머뭇거리다. 머무르다.
*상량선(商量禪 헤아릴 상/헤아릴 량/좌선 선) ;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상량(商量 : 알음알이, 知解)이다.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해(知解) ; 상량(商量). 알음알이.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심월(心月) ; 마음의 달. 밤의 어둠을 비추는 달처럼 밝고 깨끗하게 닦인 마음으로 실상을 밝게 아는 ‘지혜’를 비유한다. 대상을 비추어보는 마음 자체를 나타내보이기도 한다.
*괘명(掛命 걸다 괘/목숨 명) ; ‘목숨 걸고’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❶]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❷]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벌거지 ; ‘벌레’의 사투리.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꺼갱이 ; ‘지렁이’의 사투리.
*해치깡 ; ‘수채, 시궁창, 늪, 진흙, 해감’의 사투리. 해초, 해초깡, 해치 등도 같은 뜻의 사투리이다.
*수륙공해(水陸空海) ; 물[水]과 육지(陸地)와 바다와 같은 하늘[空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涅槃經)』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역 北涼 天竺三藏 曇無讖 譯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제7권, 4.여래성품(如來性品)④.
佛說中道 一切衆生悉有佛性 煩惱覆故 不知不見 是故應當勤修方便 斷壞煩惱

부처님께서 중도를 말씀하실 때에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지만 번뇌가 가려서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서 번뇌를 끊어야 한다」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짐승취 ; 축생취(畜生趣).
*육취(六趣) ; 육도(六途, 六道)와 동일.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축생취(畜生趣), 아수라취(阿修羅趣), 인간취(人間趣), 천상취(天上趣)가 있다.
*취(趣) ;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중유(中有) · 중온(中蘊)이라고도 한다. 중음신은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진 의생신(意生身) 또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도 한다.
중유 또는 중음신의 기간은 불교 부파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보통 49일 동안 중음신의 상태로 머문다고 하여, 절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십구재(四十九齋)[또는 칠칠재(7·7재, 七七齋)]는 이 중음신의 기간에서 비롯되었다.

*사유(四有) ; 산스크리트어 catvāro bhavāh. 사유(死有) · 중유(中有) · 생유(生有) · 본유(本有) 등 한 번의 윤회 과정을 넷으로 나눈 것. 유(有)는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바바(bhava)의 한역어(漢譯語)로 유정중생(有情衆生)의 생존을 뜻한다.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유정중생은 모두 사유(四有)를 갖춘다. 사유 중에서 생유(生有)와 사유(死有)의 기간은 아주 짧은 찰나이지만 중유(中有)와 본유(本有)의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①사유(死有) : 죽는 찰나를 말한다.
②중유(中有) :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으로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에 이르는 기간이니 중음(中陰)이라고도 한다.
③생유(生有) : 태어나는 순간, 즉 모태에 탁태(托胎) · 결생(結生)하는 찰나이다.
④본유(本有) : 본시유(本時有) · 전시유(前時有) 등이라고도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으로 생유(生有)로부터 사유(死有)에 이르는 기간이다.
*과약(果若) ; 과연(果然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알고 보니 정말로.
*난조지상(難遭之想 어려울 난/만날 조/갈 지/생각 상) ;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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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정명(定命) ; ①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도병겁(刀兵劫) ; 중겁(中劫) 말기에 일어나는 소삼재(小三災)의 하나. 분노로 말미암아 서로 해치려는 마음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무기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재난이다. 도병겁은 칠일 밤낮 동안 계속되며 인구가 만 여명으로 줄어들어서야 비로소 자비심을 일으켜 끝이 나고 다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도병재(刀兵災) · 도재(刀災) · 도병중간겁(刀兵中間劫)이라고도 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몽혼(夢魂) ; 꿈속의 넋.
*업신(業身) ; 업(業)의 몸[身]. 육식(六識)—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이 무량겁으로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한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사람에게 세 가지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업신(業身)이요, 셋째는 육신(肉身)이로다. 법신은 불신(佛身)이요, 업신은 곧 귀신(鬼身)이요, 육신은 곧 사람의 색신(色身)이로다.
색신 가운데 업신과 법신이 구족(具足)하여 서로 여의지 않건마는 중생의 업보(業報)가 중하여 다못 업신이 구원겁을 드나들며 사생(四生) 육취(六趣)의 육신(肉身)으로 인하여 모든 악업을 짓도다.(p231)

사람에게 법신(法身) · 업신(業身) · 육신(肉身), 세 가지 몸이 있다 하니 어떠한 것이 육신인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다. 지(地)는 살이요, 수(水)는 눈물 · 콧물 · 대소변이요, 화(火)는 따뜻한 기운이요, 풍(風)은 콧김 · 입김 · 동정(動靜)이니 이 네 가지를 부모에게서 얻어 육신을 지었다가 명(命)이 다하여 임종을 하매 지(地)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물로 돌아가고, 화(火)는 불로 돌아가고, 풍(風)은 바람으로 돌아가 사대가 흩어지니 허황(虛荒)하기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장마에 두엄 버섯이니라.

어떠한 것이 업신(業身)인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이 여섯 가지 식심(識心)이로다.
눈으로 일체 만물을 보아 탐하여 모든 업을 지으며, 귀로 일체 소리를 들어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코로 모든 냄새를 맡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혀로 모든 음식을 맛보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몸으로 춥고 더운 분별망상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뜻으로 밉고 어여쁘고 좋고 나쁜 일체 망상(妄想)을 내어 모든 업을 지어, 이 여섯 놈이 무량겁(無量劫)으로 드나들며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니, 이러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법신(法身)인고?
일찌기 발심하여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다생죄업(多生罪業)을 참회하고, 옛 성현의 친절언구(親切言句) 천칠백 화두(話頭) 가운데 자기에게 합당한 화두를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중에 모든 망상(妄想)이 적적(寂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여, 들지 아니하되 화두가 스스로 들림이 샘물 흘러가듯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에 이르러,
홀연히 망상 구름이 흩어지고 마음달이 홀로 드러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 그 밝은 빛이 하늘과 땅이 궤멸(潰滅)하여도 이 광명(光明)이 길이 멸하지 아니하며, 이것을 이름하되 불생불멸지도(不生不滅之道)라 하나니라.

이같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 이름하며, 혹 도사(導師)라 이름하며, 혹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며, 혹 부처라 이름하나니, 천당(天堂) · 불찰(佛刹)에 임의 자재하여 천상(天上)에 가서 나매 천상 사람을 제도하며, 인간에 나매 인간을 제도함에 이르므로 인천(人天)에 스승이 되며, 사생(四生)에 자비로운 부모가 되는 고로 이 사람의 이름이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이로다.(p233~236)

누구든지 육신(肉身) · 업신(業身) ·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p247)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p257)

인생은 자기 업신(自己業身)의 반영(反映)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實相)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異性)으로 감응(感應)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으니라.(p266)

우리가 느끼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육식(六識)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흩어지나니,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천류(遷流)하는 육식으로 어찌 인생이 근본 정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p270)
*일구난설(一口難說 한 일/입 구/어려울 난/말씀 설) ; 내용이 복잡하거나 길어서 한[一] 입[口]으로는 다 설명(說明)하기 어려움[難].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⑩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범망경(梵網經) : 이 경은 범어나 파리어(巴利語 pali)로 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록대로 본다면 본래 61품, 백이십 권 되는 원문을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그 중 열째 권인 「노사나불이 말씀하신 보살의 심지 계품(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만을 번역하여 상•하 두 권으로 만들었다. 상권에는 심지 법문(心地法門)을 말하였고, 하권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 경구죄(輕垢罪)를 말하였는데, 경구죄란 것은 중대한 죄악은 아니나 깨끗하지 못한 허물이 된다는 뜻이다.
보살계는 심지 법문을 주장하는 대승계이며 성계(性戒)이다. 그러므로 이 경은 율부(律部)에 속하지 않고 <화엄경>과 같은 부류에 들게 된다.
이 경을 해석한 글이 많지마는 신라의 대현(大賢)이 지은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과 원효(元曉)의 <사기(私記)> 2권과 의적(義寂)의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상•하권 같은 것들이 가장 유명하다.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 법문.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 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 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계(戒)의 상(相). 계율에 대한 생각. 그 계상(戒相)의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권10 제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계를 지킨다는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어름어름하다 ; ①말이나 행동을 똑똑하게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자꾸 우물쭈물하다. ②일을 대충하고 눈을 속여 넘기다.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미래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설함.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미래불(未來佛) ; ①미래에 나타날 부처님. 특히 미래에 나타날 미륵불(彌勒佛)은 현재 미륵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면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며,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예정되어 있다.
②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가능성을 가진 중생을 일컫는 말.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기 때문애, 여러 가지 수행을 통해 미래세에 성불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중생을 미래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기(受記, 授記) ; 부처가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그 교설(敎說).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사상(事象 일 사/모양 상) ; 관찰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물(事物)과 현상(現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극일지공(剋日之功 해내다·이루어내다 극/날·해·기한 일/~에·~에 있어서 지/공·공로·공적 공) ; 기한[日] 내에[之] 성취하는[剋] 공(功).

*만불실일(萬不失一 일만 만/아니다·아니하다·없다 불/잃다·잘못하다·그르치다·어긋나다 실/한 일) ; 만(萬)에 하나도 그르치지[失 잃지·잘못하지·어긋나지] 아니하다[不]. 만(萬)에 하나도 그르침[失]이 없다[不]. ①조금도 틀림이 없다. ②실수(失手)가 한 번도 없음.

[참고]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五)’ (고봉 화상 |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69~70, 72.

若論此事인댄 如大火聚 烈焰亘天하야 曾無少間이라 世間所有之物을 悉皆投至라도 猶如片雪 點着便消어니 爭容毫末이리오. 若能恁麽提持하면 剋日之功을 萬不失一이어니와 儻不然者인댄 縱經塵劫이라도 徒受勞矣리라

 

만일 이 일[此事]을 말하자면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는데, 세간의 온갖 물건을 무엇이나 집어 던져도 한 조각의 눈[雪]이 닿자마자 곧 녹아버리는 것과 같나니 어찌 털끝만치인들 딴 생각이 용납되겠는가. 만일 이렇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기한내에 성취하는 공(功)을 만(萬)에 하나도 잃지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도 고생만 할 뿐이리라.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찌깽이 ; ‘찌꺼기’의 사투리.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인 사료간(四料揀)의 하나.
*사료간(四料揀) :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 인(人)은 주체로서의 자기(自己). 경(境)은 객관(客觀). 탈(奪)은 부정하는 것.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08. 212.
四料揀(사료간)
奪人不奪境(탈인불탈경)은  待下根(대하근)이요  奪境不奪人(탈경불탈인)은  待中根(대중근)이요  人境兩俱奪(인경양구탈)은  待上根(대상근)이요  人境俱不奪(인경구불탈)은  待出格人(대출격인)이라.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은 하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고,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은 중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며,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은 상등 근기를 다루는 법이고,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은 ‘격 밖의 사람[出格人]’을 다루는 법이다.

*‘생사 없는 곳까장’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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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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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4. 7. 16. 17:15

법거량(전강선사 No.018)—금봉 스님과 법거량, “조주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일러주십시오”[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 『선문염송』 제207칙] | 남전문수(南泉文殊) 공안(『선문염송』 제215칙).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0분 56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그래 가지고는 인자 그만 갔다왔다 가네, 인자는. 뭐 공연히 아무 일없이 가되 어떤 데를 가는고 하니, 그 만공(滿空) 큰스님한테 있으면서 모도 공부 잘했다고, 한 소식 얻었다는 사람들만 찾아다니네. 찾아다녀.

그래 부안(扶安), 청련암 금봉 스님한테를 갔다. 금봉 스님한테 가서—금봉 스님은 어떻게 성질이 급헌지, 입에서 말허면은 입속에 침이 툭투투투 튀어나오제. 투투투투투투 그러니까 그 뭔 말 함부로 못혀. 당신 말만 하제, 남은 말 못혀.

그러니깐, 차근차근 “조주(趙州)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내가 당신 밑에 와서—당신네 한참 공부 잘헐 때 나는 들어와서 공부했으니 후학(後學)으로, 당신 밑에 저 후학으로 납짝허니 보고.
거그 앉어서도 들었어, 듣기는. ‘그 영신(永信)이가 돌아댕김서 뭐, 사방 뭐 선지식(善知識)의 인가(印可) 맞고 만공 큰스님한테 둘러 오고’ 그건 다 듣고 앉었으면서도 눌러. ‘요까짓 게, 뭐 저놈 저게 뭐’ 이렇게 눌러 버려.

나는 환혀! 어떤 공안(公案)에 어떻고, 어떤 공안에 어떻고 착착 보고 앉었는디, 어쩔거냐 이 말이여! 틀림없거든 다시.

“조주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일러주십시오” 안 이를 수 있나? 뭐라고 일러.
“아이고! 그거 안됩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입니다”
“네가 뭘 알아서 응? 응? 네, 뭐 응?” 아따, 이러고 일어나서. 아, 그 좀 홰 안 내고 그냥 허면 어째서—그래도 뭐 주먹질허거나 그러지는 안 혀. 성질이 급해서 툭툭 허제.

그러면 또 내가 사르르 눅어져 버려. 암말도 안 허고 “아! 그만 그만두시오” 그래 놓고는 또 한참 있다가 “조주 신짝 이고 간 의지를 한마디 일러주시오”
“아! 저놈이 또 그래 또 응? 또”

아, “또” 할 것이 아니라, 헐 수 없어. 아, 그래 놓으면은 그만 훌떡훌떡 뛰는구만. 한참 뛸 때에는 말 못혀. 와서 쿡 한 볼테기 때리면 큰일나겄다 그 말이여. 그래 때리든 않지마는 허들 못혀.
그러면 내가 도로 숙어져 암말도 않다가 또 다, 또 개면 또 가서 “아! 조주 신짝 이고 간 의지 한마디만 일러주시오”
“야! 가 이놈아 가! 가 이놈아 가! 어디서 이놈아 가!”

“아! 가고 안 가는 것이야 그거 무슨 별 문제요, 그 내 가는 것은 별거 아니지마는. 스님, 그 나를 가르켜 나오지 안 했소, 여태까지. 나 초학(初學)으로 어릴 때부텀 나를 잘 가르켜 나오고 그랬은께 아, 내가 스님 밑에서 배워 여지없이 해 가지고 나가야지, 자꾸 가라 하요” 그래 놓고는.
몇 번을 애를 멕였든지. 달포를 그랬어, 달포를. 그냥 두고 있을 수가 없어, 달포를 그랬어! 나도 에지간하지. 가라고 허면 안 가네. 내가 이래 뵈도 체면도 무척 있고 그런 사람이지마는, 체면 없을 때는 이렇구만. 뭐 무가내하(無可奈何)제.

아! 그래 놓으니 그만, 그 조주 굉이(고양이) 법문이 무서운 법문이거든, 신짝 이고 나간 법문이.

또 묻고 또 묻고, 그러나저러나 내가 한 달을 삐댔소 거그서. 한 달 동안을 있었어. 그런데 “자, 그러시지를 말고 나를 그렇게 업신여기지 마십시요. 내가 큰스님네한테 전부 나오면서 인가 다 받았소. 인가 다 받고 내가 인가 다, 그래 가지고는 내가 인가 받은 공안 쏵 다 털어 내놓을 텐게 들어 보실라우? 나를 왜 그렇게 해요? 내가 잘 몰랐으면 스님께 다시 내가 인가를 얻어야 헐 꺼고, 스님이 잘 몰랐으면은, 못 봤으면 나한테 인가를 얻어야 헐 것이고 그런 것이제, 어디 선참 후참이 있소? 또 그러고 그래 어째 그렇게 그만 그냥, 그렇게 그만 고함을 지르고 홰를 내시고 그냥 바쁘고 그려요? 왜 그러시요, 글쎄?” 아, 그래 따져 놓고는.

“저 조주 굉이 법문을 스님도 격외(格外)로 그렇게 뭐든지 일르고 나도 격외로 일르고. 스님만 내가 이르시라 하고 나는 내가 감추고 안 이르고 되겄습니까? 스님도 일러 놓고 나도 일러 놓고 둘이 앉어서 탁마(琢磨)헙시다. 우리 그놈을 막 의리(義理)로도 막 합시다” 그러고 대들었다 그 말이여. 허니 “그러자 그려! 해 보자!”

그래 둘이 앉아서, “거 스님 모냐 이르시오”
“네가 모냐 일러라!”

“예! 내가 이릅니다” 내가 척 일렀다. 헌게 당신도 일렀다. 일러 놓고, “자! 그러면 인자 큰스님 이른 것, 인자 저 금봉 스님 이른 것 허고, 내 이른 것 허고 우리 이놈을 가지고 우리 탁마합시다. 저 의리로 우리 분석헙시다. 뭐, 의리로 못헐 것 뭐 있소. 우리 의리 분석 한번 합시다”
내한테 꼼짝 못했네! 꼼짝 못해. 응? 의리로 막 물으니까 덜덜덜덜 험서 나보다 더 못허네. “자! 이것이 이런 것입니다” 허고는...

고것도 했구나, 참! 고거. 남전 스님이 계시다가—그때 처음 고걸 먼저 해 놨고. 남전 스님이 조실에 계시다가 조주가 밖에서 척 들어오니까, 척! 남전 스님께서 일어나시면서, “작야삼경(昨夜三更)에 문수보현(文殊普賢)을 이십방 축출(二十棒逐出)이다. 어젯밤 삼경에 문수와 보현을 이십방 주어 쫓아냈다”
조주 스님이 있다가 “화상봉(和尙棒)은 교수긱(敎誰喫)고? 화상 방맹이는 누구로 하여금 씹히리까?” 요렇게 된 말이여. 그것 새기도 못허는 것이여, 한문에.

그러면 또 알아듣게 내가 말허자면, “큰스님께서는 어젯밤 삼경에 문수와 보현을 이십방을 주어 쫓아냈지마는, 큰스님은 조실 스님은 뉘 방맹이를 씹으실랍니까?” 그 말이여. 응, 고래야 그 법문이 되는 거 아닌가?
“왕노사(王老師)는 과재심마처(過在甚麽處)냐? 이 왕늙은이는 허물이 어디 있느냐?” 조주가 예배를 썩 허고 출거(出去)했거든.

그놈을 내놓고서는, “이거 분석합시다. 그 조주 예배는 무슨 예배며...”
영! 뭐 뭐! 침, 튀튀튀튀 허니라고 못혀! 자서히 못혀. 하등 그 성격이 그려. 탁마도 그러기에 그렇게 몽그라지게 좀 몽글몽글허니 다 해야 허는 것인디, 그냥 뭐, 그러고 되아?

그놈을 내가 해석을 주욱... 어쩔 수 없어. 안 헐 수 없어. 해석은 죽어도 않는 것이지마는, 헐수할수없어. 한번 해 놓으니까, 그래도 공부를 많이 허신 이기 따문에 서로 해석 답도 헐만 하거든. 아무것도 초대야 어떻게 헐 것인가? 초대는 해석해 주니 뭐 아나? 소용없제. 지금 이런 말허니 누가 알겠어.

“옳다! 옳다! 옳다! 옳다! 옳다!” 허고는 한번 고함지르더니 그다음부텀은 뭐 뭐 여지없이 나를 믿어! 말로 헐 수 없이 믿어! 공안 공안 얘기허면 “참! 네가 옳게 알어. 옳다! 옳다!” 이렇게 되었다.
그다음부텀은 공안을 드리 놓고 해야, 뭐 그저 묻기만 허면 놀래네. 그만해야 되아. 암만 자기가 암만 뭣이 좀 있다 헌들, 고까짓 것을 갖다가 내놔? 그래 가지고서는 금봉 스님 평생에 말씀이 있지. 여그 다 들은 학자 있지? 있을 거여!

그래서, 가서 한 달 동안에 금봉 스님을 턱 내가 탁마를 참 한바탕 멋지게 허고. 그러고는 인자 사방 댕김서 뭐 헌 것이 있는디, 그런 것을 다 내가 어떻게 얘기를 다 헐 것이여? 조금 조금씩 허다가 말고, 인자 차츰 법문을 해야제. 응.

조금 화두 허는 경계나 내가 한마디 얘기허고 내려갈까? 여까장 해 두고 잉.
기운 없어 못허겄고. 법문이 고함지르기 시작허먼 법문 못해야. 뱃속에서 안 나오니깐 고함을 지르거든.(47분3초~57분5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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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 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 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 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부안(扶安), 청련암(靑蓮庵)’ ; 전북 부안군 진서면에 있는 내소사(來蘇寺)의 산내 암자(庵子).
*“조주(趙州)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제7권) 207칙 ‘참묘(斬猫)’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南泉이  一日에  因東西堂이  爭猫兒하여  師遂提起云하되  大衆아  道得則救取요  道不得하면  卽斬却也하리라하니  衆이 無對어늘  師斬爲兩段하다  復擧前話하여  問趙州한대  州便脫草鞋하여  於頭上戴出이어늘  師云하되  子若在런들  恰救得猫兒로다하다

남전(南泉)이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에서 고양이 때문에 싸우자, 고양이를 번쩍 쳐들고는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말하면 살릴 것이요, 말하지 못하면 베리라.”
그러자 대중에서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에 선사가 두 동강 내었다. 나중에 이 일을 들어 조주(趙州)에게 물으니, 조주가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니, 선사가 말하였다.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후학(後學) ; 학문에서의 후배.
*영신(永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공안(公案) : 화두(話頭).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참선(死句參禪)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공안(화두)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 도저히 될 가망이 없이 사리(事理)에 맞지 아니함.
* ; 화(火).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감정).
*눅어지다 ; ①(물건이) 무르거나 부드러워지다. ②(감정, 성질 따위가) 흥분되거나 긴장되어 있다가 약해지거나 부드러워지다. ③(분위기나 기세가, 또는 추운 날씨가) 정도가 덜하여지다.
*암말 ; ‘아무 말’이 줄어든 말.
*볼테기 ; ‘볼따구니’의 사투리.
*볼따구니 ; ‘볼’을 속되게 이르는 말.
*초학(初學) ; ①학문을 처음으로 배움. ②학문 따위가 아직 숙달하지 못한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달포 ; 한 달 조금 넘는 동안.
*무가내하(無可奈何) ; 막무가내(莫無可奈 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굉이(괭이) ; ‘고양이’의 사투리.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원오극근)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평창(評唱) 참고.
大凡參禪問道  明究自己  切忌揀擇言句  何故  不見趙州擧道  「至道無難唯嫌揀擇」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고자 함이니, 절대로 언구로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조주 스님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又不見雲門道  「如今禪和子  三箇五箇聚頭  口喃喃地便道  『這箇是上才語句  那箇是就身處打出語』  不知古人方便門中  爲初機後學未明心地  未見本性  不得已而立箇方便語句  如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那裏如此葛藤  須是斬斷語言  格外見諦  透脫得去  可謂如龍得水  似虎靠山」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고들 한다. 이는 고인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見性成佛],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 버리고 격외(格外)에서 참다운 이치[諦]를 보아 투철하게 벗어나야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의리(義理)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
*모냐(머냐) ; ‘먼저’의 사투리.
*남전문수(南泉文殊)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제7권) 215칙 ‘문수(文殊)‘ (헤심, 각운 지음)
南泉  有時云 文殊普賢 昨夜三更 每人 與二十棒 趂出院也 [別本 云 貶向二鐵圍山] 趙州云 和尙棒 敎誰喫 師云 且道 王老師過在什麽處 州禮拜而出
*喫(긱, 끽) : 먹다. 당(當)하다. 받다.
*몽글몽글하다 ; (작게 덩이진 물건이) 연하고 무르며 미끄럽다.
*초대(初-) ; 어떤 일에 경험이 없이 처음 나선 사람. 또는 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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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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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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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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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일사천하미진수품(전강선사 No.018)—참선 공부는 쉽다.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 | 망상 그놈 때문에 참선을 허는 것 |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망상 자체가 각(覺) | 수은(水銀)의 비유.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 |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상기병 자연치료 | 금정사 선원에서의 일화,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 (게송)泥牛入海成龍去 破鼈依前入網羅.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사천하(四天下) ; 고대인도의 세계관 및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일곱 번째 산의 바깥에 있는 큰 바다에 사방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대륙을 사천하라 한다. 사주(四洲) · 사대주(四大洲) · 사대부주(四大部洲) · 수미산주(須彌山洲)라고도 한다.

 

(1) 3분 24초.

 

(2) 13분 50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1)------------------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따악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하나도.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2분2초~5분24초)





(2)------------------

직지사에서 며칠 쉬고서는, 동래온천이나 가서 온천을 좀 허고—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 하고. 간뎅이 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 쌓고 살 수가 있나. 그래 인자 동래 온천을 내려갔지. 가서, 금정사를 들어갔더니 기인벽이가 그 사람이 유담인데, 유담이 반가와 혀. 아주 반가와험서 오! 참 반가와 혀.
사방서 선지식 스님, 큰스님 찾아다니면서 인가(印可) 다 맞고 만공(滿空) 큰스님한테까장 다 돌아서 왔다는 것 다 알고. 뭐 그러니깐 뭐, 대접헐 건 사실이지 뭐. 오히려 그 조실(祖室) 큰스님네 오신 것보담도 더 반갑지. 새로 그렇게 인자 참, 학자로써서 아! 그렇게 모도 인가 맞고, 아! 그랬다고 인자 사방 가면 그 대접허는 것이 너무 과했제.

그런디 이번에 금정사에 들어가서는 너무 지나쳤지.
척 들어가니까 유담이 그때 감원(監院)을 허고 있는데, 그 만찬을 해 가지고는 적을 굽고 다시마를 잘 모도 굽고 그래 잘해서, 부꾸미 떡도 부치고 뭐 혀 가지고는 좋은 술을, 참! 좋은 술 일등주를 받아 가지고 와서, “아! 신 수좌(信首座)님, 참 내 뜻대로 내가 한번 이런 걸 차렸으니 잘 잡솨 주십시오. 내 어떻게 했으면 더 잘 좀 대접헐까 싶고, 얼마나 내가 좀더 잘 만족스럽게 헐까 싶고, 정성이 부족합니다. 좀 많이 잡솨 주십시오” 아! 출출헌 판에 참 좋드구만.

뭐, 그때쯤 인자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무약가요(無藥可療)여!
“약으로 낫을 수 없으니 자연치료를 해라” 자연치료를 허라고 떡 허니 의사가 그래 주어.

“그 어떻게 헌 것이 자연치료입니까?”
“뭐든지 그저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고, 그저 어디 가서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고. 내 마음을 활발스럽게 펴놓고, 그저 임산임수(臨山臨水)에 물을 대하나 산을 대하나 어떠헌 그 노는 경계를 대허나 구김살이 없이 활발스럽게 아주 이렇게 놀고 그러면은, 그 마음이 활발발(活潑潑)허면은 병이 나을 수 있으니” 아! 그러고는 ‘약으로는 못 낫우겄다’고 나를 갖다가 턱 퇴병(退病)을 혀.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인자 대체 그렇게 되었어. 공부허다가 나온 놈의 피가 그것이 어디 그쳐져야제. 인자는 하도 나오다 나올 것이 없으니까 목구녁 가슴속에 가서 간뎅이처럼, 묵 어리데끼 어렸어. 그려 가지고 콱 뱉으면은 뎅이 하나씩 나와. 인자 줄줄 흘리든 않고. 그러면은 그만 비린내가 들입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제.
그래 그만 인자는 뭐, 인자 이렇게 좀 돌아댕기는데, 여그도 갔다 저그 돌아댕기는데 속마음으로는 인자 자연생활을 헐 판이여. 자연치료를 헐 판이여.

인자는 욕을 먹던지 누가 찬성을 허던지 그런 데 얽힐 것 없고, 중옷을 입고 돌아댕김서 막행막식헐 수 없고. 첫째, 고기를 얻어먹어야 허겄으니, 고기도 맘대로 먹고, 술도 맘대로 그저 먹고, 춤출 디 있으면 내 멋대로 춤도 좀 춰 보고 이렇게 활발스럽게 인자 지낼 판인디, 속으로는 딱 작정해 놨지마는 그동안에 선방에 댕기면서 지낸 숙습(熟習)이 있어서, 그렇게 어떻게 당장에 태도를 행동을 고칠 수는 없고. 그래도 인자 어디 가면 대접헌다고, 날 대접헌다고 허면은 받아먹지, 뭐 어쩌?
아직 그때는 안 헐 때인디, 아! 안 헐 때고 잘 그저 옷 입고 그러고 거그를 들어갔는데, 인벽 수좌가—요런 놈 다 넣어야제. 거 넣어서 허제, 별수 있나?—대접헌다고 그래 내놨네.

뭘 빼고 좋은 것만 넣으면 쓸 수가 있나? 그런 것 저런 것 다 넣어야지. 술도 먹었다고 허면은 거, 술 먹은 중이라고 허면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계를 파(破)헌 중이라고 하지마는 안 넣을 수가 있나? 넣을 건 넣어 버려야지.

술을 따라 주는데, 안주 좀 먹고 술을 한잔 척 받아서 막 부을라 하니까, 병에 붓떼끼 때려 부을라 하니까—경명 스님이 일대 강사(講師)여! 강사라도 이만저만헌 강사여. 그만 저 안에 선방에 계시다가, 어째 누가 일렀는가 어쨌는가, 이짝 방에서—저짝 방은 선방이고, 내가 선방에 들어가서는 안 먹고 이짝 방에서, 주지실에서 먹는디.

누가 일렀든고 일러, “저 수좌가 와서, 정영신(鄭永信)이가 와서 막 술을 먹는디, 잔뜩 뭐 채려놓고 술 먹는디 거, 스님께서 좀 혼을 내시요” 인자, 수좌가 어째 그랬든가 부여.
그러니 쫓아 나왔어. 와서는 착 들어오더니 “여그가 어디라고 술을 먹어! 에이! 술이 뭐여? 에이!” 아, 이러면서 그만 노장(老長)이 입이 그냥 덜덜 떨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와.

그것 참! 나보담 나이 많으시고—나이 그 어른은 근 오십 되고, 나는 인자 뭐 스물서너 살 인자 되았는데. 아! 이거 참, 죄송도 허고, 일대 강사고. 아, 그것 참 ‘이놈의 술잔을 내던지고 그냥 나올까, 달아나 버릴까? 그냥 빌어먹을 먹어 버릴까?’ 쳐다 보고는. 그러다가는 ‘에이 이놈의 것’

“내가 기이 든 술잔입니다. 좀 가라앉히시고, 심로(心勞)허시고 들어 보십시오” 술잔 들고.
“화엄경이, 상본(上本) 화엄경이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니” 상본, 중본, 하본, 약본(略本) 그렇거든, 화엄경이.
“화엄경이,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이거 법, 무서운 법이여. 보살님들 다 알란 말이여. 여 술값 내는 것이여.

“이거, 화엄경 몇째 품입니까? 이거 좀,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고함을 내, 더 크게 질러 버렸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아! 일사천하미진수품이니, 뭔 안 든 것 있나? 중생(衆生) 환화(幻化)가 다 들었지. 추어망담(醜語妄談)도 다 들었지.

아! 그러니깐 경봉 스님도 물 대다가, 논에 물 대다가 막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그만, 막 들입대 그만 이러고 앉어서 그만—거그 그 인자 참, 한번 봐 노니까 아마 그러든 것이지. 그만 이래 가지고는.
양산서, 언양서, 여자가 모도 올라왔다 그 말이여. 경봉 스님 견성(見性)했다고 헌게 모도 와서 친견을 허고 절을 허니께, 이러고 앉어서 “네, 이년들! 응!” 아! 욕을 냅대 퍼붓고. “이게 화엄 도리지! 이게 화엄경이지!”(21분23초)

욕을 해도 이만저만헌 욕을 해 놨어. 내, 그 욕은 안 혀!
뭐 욕이, 그 욕이 화엄 도리라고 헌 것이여, 그게. 일대 강사인디 또 견성을 해 가지고 보니깐 틀림없거든! 추어망담(醜語妄談)이, 추헌 말과 거짓말이 어디 무슨 하나나 무슨 뭐, 어디 어김이 있나? 십삼천대천세계(十三千大千世界)에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이 다 딱딱 들어맞는 거여, 법에.

그러나 그 법은 그건 체중현(體中玄) 법밖에는 안 되는 것이여! 조사공안(祖師公案)은 안 되아. 공안이라는 것은 그런 법 없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그건 안 될 말이고.
그래 그만 들입대 욕을 막 드리 퍼붓고는 “이게 화엄경이야, 화엄경이여!” 아! 이러고 있었어. 그러니 뭐, 무엇이 도무지 무슨 뭐 일사천하미진수품 속에 안 들어갔어?

“이 술은 화엄경 몇째 품이냐?” 고함을 지르며 “몇째 품입니까?” 묻는디, 입이 딱 붙어 버렸네, 입이. 응! 아, 그렇게 고함을 질러 “술을 먹느냐?”고 허더니 입이 그냥... 어림도 없네. 내가 참, 기운이 나대! 아, 이런 놈의 것.

그래 가지고 대듬서, 여기를 잡고 막 대듬서 멱살이나 쥐고 “나가라 이놈!” 허면 큰일날 텐디, 그냥 거기 쩔려 가지고. 강사는 강사인디, 화엄경 바로 분명히 있거든! 그런게 뭐 꼭 물을 말이지, 뭐.
‘몇째 품이냐?’고 묻는데, 딸싹 못했네. 허! 그것 참. 아무리 글을 잘해도 글 가지고는 못혀.

그만 암말도 않고 이리 쳐다보고 있는디, 술을 들고는 쭈욱 마셨어. 쭉 들어마시고서는, 안주 턱 한 점 먹고 입을 싹 닦고는,

니우(泥牛)는 입해성룡거(入海成龍去)헌디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니라
나무~아미타불~

니우(泥牛)는 입해(入海)하야 성룡거(成龍去)헌디,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 용이 되아 갔는데,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로구나. 다리 뿌러진 자라는 앞을 의지해서 그물에 들어갔구나.
아, 이렇게 점검을 탕! 해 버렸제. 딸싹 혀?

술 잘 먹고, 그 잘 채려 논 놈 배(아주) 그거 잘 먹고, 나 그러고 오래 안 있었구만. 또 그러고 그냥 나오제 뭐 그렇게, 처억 한번 나온 일이 있고.(33분13초~47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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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 이 내용의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問 : 本旣是佛 那得更有四生六道種種形貌不同

배휴가 여쭈었다. "중생이 본래 부처라고 한다면 어째서 4생(四生) 6도(六道)가 있어 여러 모습들이 같지 않습니까?

師云 : 諸佛體圓 更無增減 流入六道 處處皆圓 萬類之中 箇箇是佛 譬如一團水銀 分散諸處 顆顆皆圓 若不分時 祇是一塊 此一卽一切 一切卽一 種種形貌 喩如屋舍 捨驢屋入人屋 捨人身至天身 乃至聲聞緣覺菩薩佛屋 皆是汝取捨處 所以有別 本源之性 何得有別

황벽선사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는 그 본체가 원만하여 거기에 또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 육도(六道)에 흘러든다 할지라도 그 어느 곳에서나 원만하다. 이와 같이 모든 종류의 중생들도 하나하나가 부처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水銀)이 사방으로 나누어 흩어질지라도 그 한 방울 한 방울은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뉘지 않았을 때에도 다만 한 덩어리일 뿐이니, 이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다.
여러 가지 모습들은 비유하자면 집과 같은 것이다. 즉 나귀의 집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사람의 몸[人身]을 버리고 하늘의 몸[天身]에 이르며, 내지 성문 · 연각 · 보살 · 부처의 집은 모두 너 자신이 어디에 들어가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집의 차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래 근원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사천하(四天下) ; 고대인도의 세계관 및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일곱 번째 산의 바깥에 있는 큰 바다에 사방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대륙을 사천하라 한다. 사주(四洲) · 사대주(四大洲) · 사대부주(四大部洲) · 수미산주(須彌山洲)라고도 한다.

 


[참고 ❶]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5분25초)
**아래 송담스님 법문은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하신 법문입니다.

<송담스님 법문>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하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 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번 움직이고 발 한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한 것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하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한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하는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놓고 절만 많이 하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 낼 줄 알고 진심 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한다면 나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8분4초~13분29초)

 


[참고 ❷]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 (3분10초)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아 그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 말이여.
어디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쳐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마는,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해.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 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허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27분45초~30분55초)





------------------(2)

*‘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 하고. 간뎅이 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 쌓고 살 수가 있나’ ; 상기병(上氣病).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간뎅이 ; 간덩이(肝--).
*간덩이(肝--) ; ‘간(肝)’을 속되게 이르는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 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 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 · 정혜사(定慧寺) · 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 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 · 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신수좌(信首座) ; 전강선사(田岡禪師)의 별칭.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객 스님들은 법명의 ‘뒷 글자[信] + 수좌’를 붙여 호칭(呼稱)하기도 한다.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활발발(活潑潑)하다 ; 더없이 활발하다(생기 있고 힘차며 시원스럽다).
*활발발(活潑潑 살다·생기가 있다 활/물을 뿌리다·활발하다·솟아나다 발) ; 고기가 기운 좋게 물 위로 뛰노는 모습.
*퇴병(退病) ; 병(病)을 퇴각(退却)하게 하다. 병을 물리치다.
*들입대 ; 들입다. 세차게 마구.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숙습(熟習) ; 익숙하여 몸에 밴 습관.
*계를 파(破)하다 ; 계(戒)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김.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정영신(鄭永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노장(老長 늙을 로/길·맏·어른·우두머리 장) ; ①노장 스님의 줄임 말. ②노스님(나이 많은 스님)의 존칭. 나이가 많고[老] 덕행이 높은[長] 스님.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심로하다(心勞-- 마음 심/일하다·힘들이다·애쓰다·근심하다 로(노)) ; 마음을 수고스럽게 쓰다. 마음이 시달리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 • 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친견(親見 가까이하다·몸소·친히 친/보다·뵙다·만나다 견) ; 몸소 가까이서 뵙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두두물물(頭頭物物) ; ‘두(頭)‘는 사물이나 사람의 단위. ‘각각의 존재[頭頭]와 모든 사물[物物]’이라는 말. 곧 모든 것을 가리킨다.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 • 句中玄 • 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가로판 p215, p219)
[三玄] 삼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삼현 ; 보조국사의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서.
[참고 ❶] 『보조국사어록,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보조지눌 1158~1210 |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p176~180. p200~201.
『선문촬요(禪門撮要)』 (청허당 휴정 엮음 | 연관 옮김 | 희양산 봉암사)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p542~546.

問 向來所說 旣聞命矣 古今禪門達者 見性成佛 豈非一分性淨之體 不具相用耶

또 물었다. “지금까지 한 말은 잘 들었다. 그러나 고금 선문(禪門)의 통달한 사람이 견성하여 성불한 것이 어찌 일부분 성정(性淨)의 체성이 모양[相]과 작용[用]을 갖추지 못함이 아니겠는가?”

答 不然 汝豈不聞 永嘉眞覺大師 一宿曹溪 開悟本心作歌 其略 曰 心鏡明鑑無碍 廓然瑩徹周沙界 萬像森羅影現中 一顆圓光 非內外 一性 圓通一切性 一法 遍含一切法 一月 普現一切水 一切水月 一月攝 諸佛法身 入我性 我性 還共如來合

나는 답하였다.
그렇지 않다. 그대는 왜 듣지 않았던가? 영가 진각(眞覺) 대사는 조계(曹溪)에서 하룻밤을 묵다가 본심을 깨치고 노래를 지었었다.
간략히 말하면 ‘마음 거울이 밝아 걸림이 없음이여. 탁 트이고 밝게 사무쳐 사계(沙界)를 두루했다. 삼라만상의 그림자가 그 가운데 나타나니, 한 덩이 뚜렷한 광명은 안팎이 없다. 한 성품이 일체의 성품에 뚜렷이 통하고 한 법이 일체의 법을 모두 머금고 있다. 한 달이 일체의 물에 두루 나타나매, 일체의 물의 달이 한 달에 포섭된다. 모든 부처의 법신이 내 성품에 들어오매, 내 성품이 여래와 하나로 합한다’ 하였다.

又英邵武 開悟本心作偈 其略 曰 十方齊現一毛端 華藏重重帝網寒
又大慧禪師 秉拂云 欲識佛性義 當觀時節因緣 時節 若至 其理自彰 乃至須知微塵諸佛出世 降王宮坐道場 轉法輪降魔軍 度衆生入涅槃 摠不出這箇時節 諸人 若信得及 無邊刹境 自他不隔於毫端 十世古今 始終不離於當念

또 영소무(英邵武)도 본심을 깨치고 게송을 지었었다. 간략히 말하면 ‘시방 세계가 한 털끝에 한꺼번에 나타나매, 화장세계(華藏世界)가 중중하여 제망(帝網)이 차다[寒]’
또 대혜(大慧) 선사는 불자(拂子)를 들고 ‘불성(佛性)의 뜻을 알고자 하면 시절인연을 관찰해야 하나니, 시절이 오면 그 이치가 스스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티끌수 같이 많은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와 왕궁에 태어나 도량에 앉고, 법륜을 굴려 마군을 항복하게 하고 중생을 구제하신 뒤에 열반에 들되, 그 모두가 이 시절을 벗어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그런 줄을 믿으면 가없는 세계의 경계의 나와 남이 털끝만큼의 간격이 없고, 십세(十世)의 고금(古今)이 처음과 끝이 지금 바로 한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 하였다.

如是等開悟本心 得見自心鏡內 帝網重重無盡法界者 禪門傳記中 不可勝數 昧者 不知其源 不覽禪錄 亦不見華嚴大論之旨故 纔聞禪者 說卽心卽佛 以謂不過性淨佛也 是大愚惑
非謂華嚴敎門 說理未盡 但學者 滯在言敎義理分際 未能忘義了心 速證菩提 所以達摩西來 欲令知月不在指 法是我心故 不立文字 以心傳心耳

본심을 깨치고 제 마음 거울 속에 제망(帝網)처럼 중중한 무진법계(無盡法界)를 본 이런 일들은 선문의 기록 가운데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있다. 그런데 우매한 사람들은 그 근원을 알지 못하고 선문의 기록도 보지 못하고, 또 화엄대론(華嚴大論)의 뜻도 보지 못하였으므로 참선하는 이들의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것은 성정(性淨)의 부처에 지나지 않는다 하니, 매우 어리석고 미혹한 일이다.
화엄교문에서 이치를 다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학자들이 말로 표시된 의리(義理 사상이나 내용)의 한계에 걸리어, 능히 뜻을 잊고 마음을 깨달아 보리를 빨리 증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달마 스님이 서쪽에서 와 달은 손가락에 있지 않듯이, 법이 곧 내 마음임을 알게 하려 하셨기 때문에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마음을 마음에 전한 것이다[以心傳心].

是以禪門 只貴破執現宗 不貴繁辭義理施設 故 所有破執言句 近於一分理性 離言絶慮之義 昧者 不知其義 每將相似語例 便謂同於頓敎 是大不然 設於華嚴無盡法界重玄法門 生於法愛 解分 未忘 亦爲所破也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다만 집착을 부수고 종지(宗旨)를 나타내는 것을 귀히 여기고, 번거로운 말로 뜻을 나열해 놓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착을 타파한 여러 가지 언구(言句)가 일부분 말을 여의고 생각이 끊어진 이성(理性)의 뜻에 어느 정도 가깝지마는, 우매한 사람들은 그 뜻를 알지 못하고 매양 비슷한 말의 예(例)를 가져 돈교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설사 「화엄경」의 다함없는 법계의 매우 심오한 법문에 대해서도 그 법에 애착하여 지해(知解)를 버리지 못하면 그것도 타파해야 할 것이다.

台敎 亦云 圓門生着 尙爲初敎 所破 但性海果分 是法界證處 不可預談 亦不是心思意解 所及 故 淸凉祖師 亦云 圓音 非扣而常演 果海 離念而心傳 又云 佛證離言
是知禪門 離念相傳 是頓證法界處也 決非頓敎中 不說法相 唯見眞性 一念不生 卽名爲佛也

천태교(天台敎)에서도 ‘원문(圓門)이라도 집착하는 마음을 내면 초교(初敎)와 같이 타파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다만 성해(性海)의 과분(果分)은 법계를 증득한 곳이라, 미리 말할 수도 없고 또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뜻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량 조사는 ‘원음(圓音)은 묻지 않아도 항상 연설하시고, 과해(果海)는 생각을 여의고 마음으로 전한다’ 하고, 또 ‘부처님은 말을 여의었음을 증득하셨다’ 하였다.
이로써 선문에서는 생각을 여의고 서로 전한 것이 법계를 단박 증득한 곳이요, 결코 돈교에서와 같이 법상(法相)을 설하지 않고 오직 진성만 보아 한 생각도 내지 않는 것이 곧 ‘부처’인 것은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何以知其然 禪有三玄門 一 體中玄 二 句中玄 三 玄中玄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선문에는 삼현문(三玄門)이 있다. 첫째는 체중현(體中玄 체 가운데 현)이요, 둘째는 구중현(句中玄 구 가운데 현)이며, 셋째는 현중현(玄中玄 현 가운데 현)이다.

初體中玄門 引無邊刹境 自他不隔於毫端 十世古今 始終不離於當念等事事無碍法門 以爲初機悟入之門
此亦是言敎中 解分 未忘故 以句中玄無跡平常灑落言句 令其破執 頓忘佛法知解也 此亦有灑落知見 灑落言句故 以玄中玄良久默然棒喝作用 鍛鍊
當此之時 頓忘前來第二玄門灑落知見 灑落言句 故 云 得意忘言道易親 是謂頓證法界處也(此中三玄 雖非臨濟本意 且順古師之意 明之)

첫째의 체중현의 문에서는 ‘가없는 세계의 경계의 자기와 타인은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고, 십세(十世)의 고금이 처음과 끝이 지금 바로 한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권1)’는 등의 일일이 서로 걸리지 않는[事事無碍] 법문을 인용하여, 첫 근기의 깨쳐 들어가는 문을 삼았다.
그러나 이것도 언교(言敎)에 대해 지해(知解)와 분별을 버리지 못했으므로, 구중현의 자취 없고 평상(平常)한 쇄락(灑落 산뜻한)한 언구(言句)로 그 집착을 부수어 불법의 지해를 단박 잊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쇄락한 지견과 쇄락한 언구가 있기 때문에, 현중현의 양구(良久)와 방할(棒喝) 등의 작용으로 단련하는 것이다.

이때에는 앞의 둘째 현문의 쇄락 지견과 쇄락 언구를 잊기 때문에 ‘뜻을 얻고 말을 잊으매 도와 친하기 쉽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법계를 단박 증득하는 곳이다.(이 가운데 비록 삼현三玄이 임제臨濟의 본의가 아니나 옛 스님의 뜻을 따라 밝힌 것이다)

禪門 亦有爲初機下劣人 指示隨流妄染中 有性淨妙心 令其易解信入 信入然後 忘其解分 方爲親證
若不忘解分 坐在解脫深坑 不能於萬行緣起門中 轉身無滯故也

선문에도 처음 들어온 사람이나 하열한 근기를 위해 흐름을 따르는 허망과 더러움[妄染] 속에도 성품이 깨끗한 묘한 마음[性淨妙心]이 있다고 가리켜 보여, 그들로 하여금 쉽게 알고 믿어 들어가게 하였다. 믿어 들어간 뒤에 그 지해와 분별을 잊어야 비로소 몸소 증득하였다 할 수 있다.
만약 지해와 분별을 잊지 못하면, 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 속에 앉아 있을 것이니, 그것은 온갖 행의 연기문 가운데서 몸을 돌려 걸림이 없이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고 ❷] 『보조국사어록,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심을 풀어주는 글)’ p210~211. P216~217. P229. P231.
『선문촬요(禪門撮要)』 (청허당 휴정 엮음 | 연관 옮김 | 희양산 봉암사)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p564~565. P571.

禪門亦有爲密付難堪 借敎悟宗之者 說眞性緣起 事事無碍之法 如三玄門 初機得入 體中玄所明云 無邊刹境自他 不隔於毫端 十世古今始終 不離於當念 又云 一句明明該萬像等 是也

선문에도 은밀히 부촉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 교문을 빌어, 종지를 깨닫는 자를 위하여 진성(眞性)이 연기(緣起)하는 사사무애 법을 설하는 경우도 있으니, 삼현문(三玄門)에서 처음 근기[初機]가 들어갈 수 있는 체중현(體中玄)에서 밝힌 것과 같다. 거기에 “가없는 세계 경계[刹境]의 나와 남이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고, 십세(十世)의 고금이 처음과 끝이 지금 바로 한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권1)”하고, 또한 “한 글귀가 밝고 밝아 온갖 현상을 거두어 들인다”한 등등이 이것이다.

禪門中 此等圓頓信解 如實言敎 如河沙數 謂之死句 以令人生解碍故 竝是爲初心學者 於徑截門活句 未能參詳 故 示以稱性圓談 令其信解不退轉故 若是上根之士 堪任密傳脫略窠臼者 纔聞俓截門 無味之談 不滯知解之病 便知落處 是謂一聞千悟 得大摠持者也

선문 가운데도 이런 원돈(圓頓) 신해(信解)하는 진실한 말씀이 항하의 모래수와 같지만, 이것을 사구(死句)라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해의 장애를 내게 하기 때문이며, 아울러 초심 학자는 경절문(徑截門)의 활구(活句)를 아직 참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품에 부합하는 원만한 말씀을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믿고 이해하여 퇴전치 않게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상근기로서 은밀히 전한 뜻을 감당하여 기존의 격식[窠臼]을 벗어날 수 있는 이라면, 경절문의 맛없는 말을 조금 듣기만 하고도 알음알이[知解]의 병통에 걸리지 않고 곧 속뜻[落處]을 아니, 이 이를 ‘하나를 듣고 천을 깨달아 대총지(大摠持)를 얻은 자’라 한다.

禪門亦有多種根機 入門稍異 或有依唯心唯識道理 入體中玄 此初玄門 有圓敎事事無碍之詮也 然 此人 長有佛法知見在心 不得脫灑 或有依本分事祇對灑落知見 入句中玄 破初玄門佛法知見 此玄 有徑截門 庭前栢樹子麻三斤等話頭

선문에도 또한 여러 가지 근기가 있어서 들어가는 문이 다소 다르다. 어떤 이는 유심(唯心)과 유식(唯識)의 도리에 의하여 체중현(體中玄)에 들어가기도 하니 이는 처음 현문[初玄門]인데, 원교의 사사무애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항상 불법의 지견(知見)이 마음에 남아있어서 이를 벗어나 깨끗함을 얻지 못한다.
어떤 이는 본분사에 의지하여 쇄락한 지견에만 대하여 구중현(句中玄)에 들어가 초현문(初玄門)의 불법 지견을 타파한다. 이 현문(玄門)에 경절문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와 마삼근(麻三斤) 등의 화두가 있다.

然 立此三玄門古禪師之意 以本分事祇對話頭 爲破病之語 故 置於第二玄 然 未亡灑落知見言句 猶於生死界 不得自在 故 立第三玄中玄 良久默然棒喝作用等 破前灑落知見 所以云 三玄施設 本由遣病 若望上祖初宗 卽未可

그러나 이 삼현문을 세운 것은 옛 선사의 뜻인데, 본분사에 상응하는 화두로 병을 타파한다는 말을 삼기 때문에 제이현(第二玄)에 둔 것이다. 그러나 쇄락한 지견이라는 언구를 잊지 못하여 오히려 생사에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삼(第三) 현중현(玄中玄)의 양구, 묵연, 방, 할의 작용 등을 세워서 앞의 쇄락한 지견을 타파한다.
그러므로 “삼현문을 시설한 것은 본래 병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 만일 옛 조사의 처음 종지에서 보면 그것도 옳지 않다”

*체중현(법문에서) ;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한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19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2분 26초)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어떤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가려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2분 36초)
가끔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고 ❺]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에서.(반기이파) (4분 18초)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참고 ❻]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1분 57초)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玄中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 말이여.(32분56초~34분55초)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 ; ’아주, 매우’의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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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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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은 쉽다2024. 7. 14. 10:44

참선은 쉽다(전강선사 No.018)—참선 공부는 쉽다.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 | 망상 그놈 때문에 참선을 허는 것 |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망상 자체가 각(覺) | 수은(水銀)의 비유.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 |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금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이여.

 

(3분 24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따악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하나도.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2분2초~5분2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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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 이 내용의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問 : 本旣是佛 那得更有四生六道種種形貌不同

배휴가 여쭈었다. "중생이 본래 부처라고 한다면 어째서 4생(四生) 6도(六道)가 있어 여러 모습들이 같지 않습니까?

師云 : 諸佛體圓 更無增減 流入六道 處處皆圓 萬類之中 箇箇是佛 譬如一團水銀 分散諸處 顆顆皆圓 若不分時 祇是一塊 此一卽一切 一切卽一 種種形貌 喩如屋舍 捨驢屋入人屋 捨人身至天身 乃至聲聞緣覺菩薩佛屋 皆是汝取捨處 所以有別 本源之性 何得有別

황벽선사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는 그 본체가 원만하여 거기에 또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 육도(六道)에 흘러든다 할지라도 그 어느 곳에서나 원만하다. 이와 같이 모든 종류의 중생들도 하나하나가 부처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水銀)이 사방으로 나누어 흩어질지라도 그 한 방울 한 방울은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뉘지 않았을 때에도 다만 한 덩어리일 뿐이니, 이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다.
여러 가지 모습들은 비유하자면 집과 같은 것이다. 즉 나귀의 집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사람의 몸[人身]을 버리고 하늘의 몸[天身]에 이르며, 내지 성문 · 연각 · 보살 · 부처의 집은 모두 너 자신이 어디에 들어가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집의 차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래 근원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사천하(四天下) ; 고대인도의 세계관 및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일곱 번째 산의 바깥에 있는 큰 바다에 사방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대륙을 사천하라 한다. 사주(四洲) · 사대주(四大洲) · 사대부주(四大部洲) · 수미산주(須彌山洲)라고도 한다.

 


[참고 ❶]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8호(경술년 12월 13일)(1971년 1월 9일)(13분50초)
직지사에서 며칠 쉬고서는, 동래온천이나 가서 온천을 좀 허고—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 하고. 간뎅이 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 쌓고 살 수가 있나. 그래 인자 동래 온천을 내려갔지. 가서, 금정사를 들어갔더니 기인벽이가 그 사람이 유담인데, 유담이 반가와 혀. 아주 반가와험서 오! 참 반가와 혀.
사방서 선지식 스님, 큰스님 찾아다니면서 인가 다 맞고 만공 큰스님한테까장 다 돌아서 왔다는 것 다 알고. 뭐 그러니깐 뭐, 대접헐 건 사실이지 뭐. 오히려 그 조실 큰스님네 오신 것보담도 더 반갑지. 새로 그렇게 인자 참, 학자로써서 아! 그렇게 모도 인가 맞고, 아! 그랬다고 인자 사방 가면 그 대접허는 것이 너무 과했제.

그런디 이번에 금정사에 들어가서는 너무 지나쳤지.
척 들어가니까 유담이 그때 감원(監院)을 허고 있는데, 그 만찬을 해 가지고는 적을 굽고 다시마를 잘 모도 굽고 그래 잘해서, 부꾸미 떡도 부치고 뭐 혀 가지고는 좋은 술을, 참! 좋은 술 일등주를 받아 가지고 와서, “아! 신 수좌(信首座)님, 참 내 뜻대로 내가 한번 이런 걸 차렸으니 잘 잡솨 주십시오. 내 어떻게 했으면 더 잘 좀 대접헐까 싶고, 얼마나 내가 좀더 잘 만족스럽게 헐까 싶고, 정성이 부족합니다. 좀 많이 잡솨 주십시오” 아! 출출헌 판에 참 좋드구만.

뭐, 그때쯤 인자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무약가요(無藥可療)여!
“약으로 낫을 수 없으니 자연치료를 해라” 자연치료를 허라고 떡 허니 의사가 그래 주어.

“그 어떻게 헌 것이 자연치료입니까?”
“뭐든지 그저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고, 그저 어디 가서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고. 내 마음을 활발스럽게 펴놓고, 그저 임산임수(臨山臨水)에 물을 대하나 산을 대하나 어떠헌 그 노는 경계를 대허나 구김살이 없이 활발스럽게 아주 이렇게 놀고 그러면은, 그 마음이 활발발(活潑潑)허면은 병이 나을 수 있으니” 아! 그러고는 ‘약으로는 못 낫우겄다’고 나를 갖다가 턱 퇴병(退病)을 혀.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인자 대체 그렇게 되었어. 공부허다가 나온 놈의 피가 그것이 어디 그쳐져야제. 인자는 하도 나오다 나올 것이 없으니까 목구녁 가슴속에 가서 간뎅이처럼, 묵 어리데끼 어렸어. 그려 가지고 콱 뱉으면은 뎅이 하나씩 나와. 인자 줄줄 흘리든 않고. 그러면은 그만 비린내가 들입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제.
그래 그만 인자는 뭐, 인자 이렇게 좀 돌아댕기는데, 여그도 갔다 저그 돌아댕기는데 속마음으로는 인자 자연생활을 헐 판이여. 자연치료를 헐 판이여.

인자는 욕을 먹던지 누가 찬성을 허던지 그런 데 얽힐 것 없고, 중옷을 입고 돌아댕김서 막행막식헐 수 없고. 첫째, 고기를 얻어먹어야 허겄으니, 고기도 맘대로 먹고, 술도 맘대로 그저 먹고, 춤출 디 있으면 내 멋대로 춤도 좀 춰 보고 이렇게 활발스럽게 인자 지낼 판인디, 속으로는 딱 작정해 놨지마는 그동안에 선방에 댕기면서 지낸 숙습(熟習)이 있어서, 그렇게 어떻게 당장에 태도를 행동을 고칠 수는 없고. 그래도 인자 어디 가면 대접헌다고, 날 대접헌다고 허면은 받아먹지, 뭐 어쩌?
아직 그때는 안 헐 때인디, 아! 안 헐 때고 잘 그저 옷 입고 그러고 거그를 들어갔는데, 인벽 수좌가—요런 놈 다 넣어야제. 거 넣어서 허제, 별수 있나?—대접헌다고 그래 내놨네.

뭘 빼고 좋은 것만 넣으면 쓸 수가 있나? 그런 것 저런 것 다 넣어야지. 술도 먹었다고 허면은 거, 술 먹은 중이라고 허면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계를 파(破)헌 중이라고 하지마는 안 넣을 수가 있나? 넣을 건 넣어 버려야지.

술을 따라 주는데, 안주 좀 먹고 술을 한잔 척 받아서 막 부을라 하니까, 병에 붓떼끼 때려 부을라 하니까—경명 스님이 일대 강사(講師)여! 강사라도 이만저만헌 강사여. 그만 저 안에 선방에 계시다가, 어째 누가 일렀는가 어쨌는가, 이짝 방에서—저짝 방은 선방이고, 내가 선방에 들어가서는 안 먹고 이짝 방에서, 주지실에서 먹는디.

누가 일렀든고 일러, “저 수좌가 와서, 정영신(鄭永信)이가 와서 막 술을 먹는디, 잔뜩 뭐 채려놓고 술 먹는디 거, 스님께서 좀 혼을 내시요” 인자, 수좌가 어째 그랬든가 부여.
그러니 쫓아 나왔어. 와서는 착 들어오더니 “여그가 어디라고 술을 먹어! 에이! 술이 뭐여? 에이!” 아, 이러면서 그만 노장이 입이 그냥 덜덜 떨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와.

그것 참! 나보담 나이 많으시고—나이 그 어른은 근 오십 되고, 나는 인자 뭐 스물서너 살 인자 되았는데. 아! 이거 참, 죄송도 허고, 일대 강사고. 아, 그것 참 ‘이놈의 술잔을 내던지고 그냥 나올까, 달아나 버릴까? 그냥 빌어먹을 먹어 버릴까?’ 쳐다 보고는. 그러다가는 ‘에이 이놈의 것’

“내가 기이 든 술잔입니다. 좀 가라앉히시고, 심로(心勞)허시고 들어 보십시오” 술잔 들고.
“화엄경이, 상본(上本) 화엄경이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니” 상본, 중본, 하본, 약본(略本) 그렇거든, 화엄경이.
“화엄경이,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이거 법, 무서운 법이여. 보살님들 다 알란 말이여. 여 술값 내는 것이여.

“이거, 화엄경 몇째 품입니까? 이거 좀,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고함을 내, 더 크게 질러 버렸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아! 일사천하미진수품이니, 뭔 안 든 것 있나? 중생(衆生) 환화(幻化)가 다 들었지. 추어망담(醜語妄談)도 다 들었지.

아! 그러니깐 경봉 스님도 물 대다가, 논에 물 대다가 막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그만, 막 들입대 그만 이러고 앉어서 그만—거그 그 인자 참, 한번 봐 노니까 아마 그러든 것이지. 그만 이래 가지고는.
양산서, 언양서, 여자가 모도 올라왔다 그 말이여. 경봉 스님 견성했다고 헌게 모도 와서 친견을 허고 절을 허니께, 이러고 앉어서 “네, 이년들! 응!” 아! 욕을 냅대 퍼붓고. “이게 화엄 도리지! 이게 화엄경이지!”(21분23초)

욕을 해도 이만저만헌 욕을 해 놨어. 내, 그 욕은 안 혀!
뭐 욕이, 그 욕이 화엄 도리라고 헌 것이여, 그게. 일대 강사인디 또 견성을 해 가지고 보니깐 틀림없거든! 추어망담(醜語妄談)이, 추헌 말과 거짓말이 어디 무슨 하나나 무슨 뭐, 어디 어김이 있나? 십삼천대천세계(十三千大千世界)에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이 다 딱딱 들어맞는 거여, 법에.

그러나 그 법은 그건 체중현(體中玄) 법밖에는 안 되는 것이여! 조사 공안은 안 되아. 공안이라는 것은 그런 법 없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그건 안 될 말이고.
그래 그만 들입대 욕을 막 드리 퍼붓고는 “이게 화엄경이야, 화엄경이여!” 아! 이러고 있었어. 그러니 뭐, 무엇이 도무지 무슨 뭐 일사천하미진수품 속에 안 들어갔어?

“이 술은 화엄경 몇째 품이냐?” 고함을 지르며 “몇째 품입니까?” 묻는디, 입이 딱 붙어 버렸네, 입이. 응! 아, 그렇게 고함을 질러 “술을 먹느냐?”고 허더니 입이 그냥... 어림도 없네. 내가 참, 기운이 나대! 아, 이런 놈의 것.

그래 가지고 대듬서, 여기를 잡고 막 대듬서 멱살이나 쥐고 “나가라 이놈!” 허면 큰일날 텐디, 그냥 거기 쩔려 가지고. 강사는 강사인디, 화엄경 바로 분명히 있거든! 그런게 뭐 꼭 물을 말이지, 뭐.
‘몇째 품이냐?’고 묻는데, 딸싹 못했네. 허! 그것 참. 아무리 글을 잘해도 글 가지고는 못혀.

그만 암말도 않고 이리 쳐다보고 있는디, 술을 들고는 쭈욱 마셨어. 쭉 들어마시고서는, 안주 턱 한 점 먹고 입을 싹 닦고는,

니우(泥牛)는 입해성룡거(入海成龍去)헌디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니라
나무~아미타불~

니우(泥牛)는 입해(入海)하야 성룡거(成龍去)헌디,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 용이 되아 갔는데,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로구나. 다리 뿌러진 자라는 앞을 의지해서 그물에 들어갔구나.
아, 이렇게 점검을 탕! 해 버렸제. 딸싹 혀?

술 잘 먹고, 그 잘 채려 논 놈 배(아주) 그거 잘 먹고, 나 그러고 오래 안 있었구만. 또 그러고 그냥 나오제 뭐 그렇게, 처억 한번 나온 일이 있고.(33분13초~47분2초)

 


[참고 ❷]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5분25초)
**아래 송담스님 법문은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하신 법문입니다.

<송담스님 법문>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하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 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번 움직이고 발 한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한 것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하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한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하는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놓고 절만 많이 하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 낼 줄 알고 진심 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한다면 나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8분4초~13분29초)

 


[참고 ❸]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 (3분10초)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아 그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 말이여.
어디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쳐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마는,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해.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 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허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27분45초~30분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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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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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이즉돈오 사비돈제(전강선사 No.018)—(게송)千里長城牧笛晩 | 깨달으면은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 수은(水銀) 비유 |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만공 스님,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 理卽頓悟 事非頓除 |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保任)을 해야 되아.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事)는 몰록 제(除)할 수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生)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일[事]은 곧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고 하셨다.

故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물[水]인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잘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부처[眞佛]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19분 20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천리장성목저만(千里長城牧笛晩)이요  운납암상낙화홍(雲衲岩上落花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송하(松下)에 월명정다소(月明情多少)오  산계연심추색만(山溪煙深秋色滿)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데.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妄想) 따문에 못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허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話頭)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또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허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헐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금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혀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하나도.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華嚴經)』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華嚴)이란 화엄 도리는 다 각(覺)인디. 낱낱이 각이여.


내가 만공 스님께... 만공 스님 문집(文集)이 여기 인자 이번에 누가 하나 보내 주어서 여기 있구만. 만공 스님 문집을 좀 잘 보시란 말씀이여.

거, 학자(學者)들 모도 뭐 누구누구 모도 다 ‘입실(入室)을 했다’
입실은 견성(見性)허기 전에도 입실을 해 주어. 입실이라고 다 게송(偈頌) 붙여서 그 다 해 주지. 아, 사판(事判)에도 다 그렇게 해 주는 건데. 입실을 헐 것 같으면 당호(堂號) 지어서, 게송 다 지어서 그래 해 주는 법이다 그 말이여. 처음에 은사(恩師)로 정해 가지고 그다음에 법사(法師)를 정헐 것 같으면 그렇게 다 해 주어.

그와 달라! 떠억 척! 깨달은 공안(公案)을 척! 가지고서는, 거다가서 게송을 척! 해 주거든.
뭐 내가, 내가 허기는 이것 참! 인격답지 못허구마는 거, 안 했어 거? 보란 말이여, 가서 봐. 그만 딱딱 있제! 여태까지 저 각 선지식(善知識) 찾아서 내, 그 모도 그 법담(法談)해 논 거, 다 주욱 다 해 왔지. 그 없는 것을 내가 그렇게 위조로 해 놔? 위조로 헐 수가 있나? 못하는 법이여.

마지막 만공 스님한테,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터억 이거! (전강 스님이 땅을 허부적 허부적 하고 일렀다) 이것 한번 알아 봐. 이거, 그 무슨 짓일까? 뻘로 그 짓을 헐까?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 허고는 그 송(頌) 딱! 붙여 놓았지. 나, 그때 그 입실송 아니여, 그건 오도송(悟道頌)이지. 정전강(鄭田岡) 오도송이지 거, 입실송 아니다 그 말이여.
법 배우는 우리 학자들께 내가 무엇 따문에 그걸 감추아 놓으며, 무엇 때문에 겸양 “헤헤 그렇지 않다“ 인자 그런 것 할 거 뭐 있나? 그 뭣 헐라고 그려? 화반탁출(和盤托出)이지. 척 까 내놓을 일이지, 뭣 헐라고 감추며 거다가 뭐 그런 겸양이 뭐 그것이 거 뭐 있어?

거그, 학자 그렇게 많이 있어. 뭔 법담 뭐 해 놨자, 고렇게 된 것 없어. 나는 그 몇 말...
나 없을 적에 그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거, 만공 스님 문집을 모도 꾸며 놨드구만. 십대문답(十大問答)도 못쓰게 답을 해 놨어. 즈그가 집험서, 결집(結集)험서 알 수가 있나? 무슨 놈의...

“지장도량내 유업경대(地藏道場內有業鏡臺)허니 업다소마(業多少麼)?”
“차문이전(此問以前)에 합긱삼십방(合喫三十棒)이니라” 그때 그렇게 허셨제, ‘차문 뭐, 뒷문 뭐 후에 어쩌고...’ 알아야제. 허, 그것!

내가 그랬구만. “십대문답을 함부로 써 놔?” 즈그 집(集)헌 사람 보고 내가 그랬어. “나한테라도 찾아와 좀 묻제. 즈그까지 그래 놨어?” 내가 그랬구만.

내가 그놈. 그 답, 십대문답 탁! 대답하고는 인자 뭐 다 답했으니, 뭐 내가 인자 목적 달성했으니, 여지없이 인가(印可) 척! 받곤 뭐 떠나야지, 뭣 헐 것이여?
나는 그때 입실도 요구 안 했고, 다맛 그저 묻는 도리만 내가 답허고는 척 돌아서서 나올라고 하니까 그 문답을 물어서, “자네 별은 어떤 별인가?” 해서 땅을 터억 내가 이렇게 허니까, “선재선재라! 잘 이르고 잘 일렀느니라!” 거, 송(頌) 거 해 놓았제.

자! 일 마친 분상에는 아무 일이 없다. 생사(生死) 일밖에 더 있는가? 생사를 두고 그밖에 무슨 일이 있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천리나 된 진 성(城) 가운데에서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거 무슨 말인고 하니, 천리장성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모도 인자 이 모도 사바세계(娑婆世界) 오탁악세(五濁惡世) 이러헌 세상에 와서, 어째 이렇게 참,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터억 깨달라 가지고는 내 깨달은 마음을 어디로 도망가지 않게 잘 멕인다 그 말이여.
딱! 그 이놈 깨달라는 놨지마는, 아! 이놈—이즉돈오(理卽頓悟)다마는, 이치는 몰록 다 깨 놨다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여. 그 과거에 익혀 내려온 습기(習氣)라는 게 있어서, 자꾸 이놈이 도망간다. 자꾸 그저 풍진(風塵) 경계로 나가니까, 이놈을 못 나가게 자꾸 거두어서 멕여. 그걸 멕이는 젓대가 늦었느니라.

그놈 멕이니라고 연대갑자(年代甲子)를 총부지(總不知)허고, 날이 간 지 온 지도 모르고 멕이다 보니 늦었다. 그놈 멕인다 그 말이여. 나를 깨달라 가지고 내가 내 주인공(主人公)을 바로 인자 이놈을 길들인단 말이여!
밤낮 깨달지 못허고, 이 중생이라는 것은 그저 조금도 잠정(暫停)이 없이 그저 도망간다. 깨달아 놨어도 이놈이 또 오후(悟後)도 업이 역시 그러네. 깨달라 놓으면은 안 그럴 줄 알지마는, 오후도 그런다 그 말이여, 이것이!
그러니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그랬어.

처꺽 깨달으면—코빼기 만지기보담 쉬우니, 낯 씻다가 코빼기 만질, 그렇게 그 찰나간에 처꺽 깨달라 버리면은 그만 그만인가?
그만인 상근대지(上根大智), 그저 언하(言下)에 척 대오(大悟)허자, 다 증(證)해 버리면은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다시 무슨 후각(後覺) 뭐 그거 소용없지.
허지마는 그 상근대지라야 그렇게 되아. 없는 것은 아니여. 허지마는 중근이나 하근부텀은 그렇게 된 법이 없어.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保任)을 해야 되아.

잘 참, 깨달기는 밥 먹을 사이에 깨달을 수가 있고, 언하에 대오헐 수가 있고. 허지마는 보림은, 깨달라 가지고 보림은 삼십 년도 허고, 사십 년도 허고, 일생도 허고, 일생 다 해도 다할 수가 없어.
또 견성해 가지고는 보림밖에 할 것 더 있어? 아! 그놈 잘, 그저 보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슨 뭐 힘든 것이 아니고, 깨달은 경계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니까. 척 깨달라 가지고는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토록 항상 반조(返照)를 해 나가는 것이여.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금설(金屑)이 수귀(雖貴)다마는 금싸래기가 그렇게 좋다마는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된다. 허니, 피운차각(被雲遮却)을 구름이 밝은 달을 가리우데끼 거, 무슨 중생견이 깨달라 버린 뒤에 무슨 망상이 있으리요마는, 그래도 고놈이 그 매(昧)할 수가 있거든. 매해여.
매허니까, 그놈을 매허지 않고 항상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보림인데. 견성헌 후에도 그렇게 보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그게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그 말은 항상 깨달라 가지고는 고 소[牛] 멕이데끼, 내 마음을 자꾸 어디로 도망가지 못허게 깨달은 그 각(覺)을 항상 보호해 나간다 그 말이여. 그래 놨제.
그런데 그 지경이 운납(雲衲)은 암상(岩上)에서 낙화홍(落花紅)이로구나. 그 구름 같은 납승(衲僧)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놓고 보니, 암상에서 그저 낙화 경계여. 꽃 떨어진 경계다 그 말이여. 그 무슨 뭐, 그 무슨 별 경계인가? 처억 깨달라 놓고 보니 암상낙화홍(岩上落花紅)이니라.

송하(松下)에 월명(月明)인디, 정다소(情多少)냐? 솔 아래에 달은 환허니 밝았는디, 그 정이 얼마나 되느냐? 솔 밑에 달 밝았는데 거그서 무슨 그런 인간 정(情), 시시비비(是是非非) 정, 무엇이 있겄느냐 그 말이여. 무슨 정다소냐?
산계연심(山溪煙深)헌데 추색만(秋色滿)이로구나. 그게, 그게 해탈 경계, 보림 경계라 그 말이여. 산 시내 연기는 깊었는데 추색은 찼구나. 가을빛은 찼다. 그게 그 모도 내 보림허는 경계여. 보림허는 경계, 송(頌) 하나 갖다가 내가 여기서 말을 했어.(처음~19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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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 >>> 이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問 : 本旣是佛 那得更有四生六道種種形貌不同

배휴가 여쭈었다. "중생이 본래 부처라고 한다면 어째서 4생(四生) 6도(六道)가 있어 여러 모습들이 같지 않습니까?

師云 : 諸佛體圓 更無增減 流入六道 處處皆圓 萬類之中 箇箇是佛 譬如一團水銀 分散諸處 顆顆皆圓 若不分時 祇是一塊 此一卽一切 一切卽一 種種形貌 喩如屋舍 捨驢屋入人屋 捨人身至天身 乃至聲聞緣覺菩薩佛屋 皆是汝取捨處 所以有別 本源之性 何得有別

황벽선사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는 그 본체가 원만하여 거기에 또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 육도(六道)에 흘러든다 할지라도 그 어느 곳에서나 원만하다. 이와 같이 모든 종류의 중생들도 하나하나가 부처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水銀)이 사방으로 나누어 흩어질지라도 그 한 방울 한 방울은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뉘지 않았을 때에도 다만 한 덩어리일 뿐이니, 이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다.
여러 가지 모습들은 비유하자면 집과 같은 것이다. 즉 나귀의 집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사람의 몸[人身]을 버리고 하늘의 몸[天身]에 이르며, 내지 성문 · 연각 · 보살 · 부처의 집은 모두 너 자신이 어디에 들어가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집의 차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래 근원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티끌과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①아주 작은 티끌이나 먼지. ②[불교]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사천하(四天下) ; 고대인도의 세계관 및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일곱 번째 산의 바깥에 있는 큰 바다에 사방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대륙을 사천하라 한다. 사주(四洲) · 사대주(四大洲) · 사대부주(四大部洲) · 수미산주(須彌山洲)라고도 한다.

 


[참고 ❶]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5분25초)
**아래 송담스님 법문은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하신 법문입니다.

<송담스님 법문>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하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 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번 움직이고 발 한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한 것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하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한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하는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놓고 절만 많이 하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 낼 줄 알고 진심 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한다면 나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8분4초~13분29초)

 


[참고 ❷]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 (3분10초)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아 그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 말이여.
어디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쳐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마는,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해.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 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허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27분45초~30분55초)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입실(入室) : ①선문(禪門)에 있어서 수행자가 깨달은 바를 점검받기 위해서 조실에 들어가 직접 가르침과 지도를 받는 것。 ②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는 것.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사판(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함. 또는 그 일을 하는 스님.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마지막 만공 스님한테,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터억 이거! (전강 스님이 땅을 허부적 허부적 하고 일렀다) 이것 한번 알아 봐. 이거, 그 무슨 짓일까? 뻘로 그 짓을 헐까? ; >>> 이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뻘로 ; ‘허튼(쓸데없이 함부로, 쓸데없이 막된)’의 사투리.
*선재선재(善哉善哉 착하다·좋다·훌륭하다·찬동하다·잘하다 선/어조사 재) ; '옳다, 옳다' '좋다 좋다'
[법문] 전강선사(No.014)—전강선사 일대기 제7호(경술1970년 12월 10일 새벽. 음)
(만공 스님) “저 하날에 별이... 부처님은 샛별을 보고 오도(悟道)허셨지만, 자네 오도헌 별은 어떤 별인가?” 내가 땅을 허부적 허부적 하고 일렀다.

이런께, 턱! 보고서는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 그 선(善) 자가 ‘착헐 선(善)’ 자인디 ‘잘했다’는 선(善) 자입니다. 그 잘 선(善)이여. ‘옳다, 옳다!’ 그 선(善)이여. ‘옳다’는 선(善) 자여.
“옳고 옳다!” 그말이여. “옳다, 옳다!” 바로 인가여, 그게! (1시간30분44초~1시간31분33초)
*정전강(鄭田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전강선사 오도송(悟道頌) ;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刊) p23.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일 마치다 ; 생사해탈(生死解脫). ‘일’은 ‘생사의 일’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事)는 몰록 제(除)할 수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生)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일[事]은 곧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고 하셨다.

故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물[水]인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잘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풍진(風塵 바람·풍속 풍/티끌·더럽히다 진) ; ①세상의 속된 일 또는 속세. ②바람에 날리는 티끌. ③병진(兵塵 :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티끌이라는 뜻으로, 전쟁으로 인한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일이나 분위기를 이르는 말).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연대갑자(年代甲子) 총부지(總不知) ; ‘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참고 ❶]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55칙 ‘대사(大事)’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妣  大事已辦  如喪考妣

목주(睦州)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未辦 如喪考妣]”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큰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已辦 如喪考妣]”는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에는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핀 뒤엔 또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고 하였다.

“고비(考妣)”라 함은, 아버지가 죽으면 고(考)라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비(妣)라 한다. 어떤 이는 선고(先考) · 선비(先妣)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상(喪) 자는 평음(平音:平聲)으로 읽어야 하니 '장사 지낸다[行喪]'는 뜻이다. 칙음(則音:上聲)으로 읽으면 '잃는다'는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喪失] 하겠는가?

[참고 ❷]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1206칙 ‘대사(大事)’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峰山) 전초(傳楚)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大事已成]...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큰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라”고 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不得春風]....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증(證) ; ①깨달음. ②깨달은 바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체화(體化)함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금싸래기 ; 금싸라기(①금의 잔부스러기. ②아주 드물고 귀중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싸래기는 '싸라기(①부스러진 쌀알. ②빗방울이 갑자기 찬 바람을 만나 얼어서 쌀알처럼 되어 떨어지는 눈)'의 사투리.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납승(衲僧 옷을 꿰맴 납/중 승) ; 납자(衲子).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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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ㅈ/전강선사2024. 6. 20. 18:47

전강선사(전강선사 No.018)—전강선사 직지사에서 첫 설법.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건 그만두고 어떤 것이 차사(此事)냐?”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13분 46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만공 스님, 마지막 거그서(예산 보덕사) 떠억 떠나 가지고서는 김천 직지사를 내가 왔어. 또 인자 그전에 있든 디니까. 직지사를 와 가지고는—거, 몸은 형편없지마는, 그 좀 나는 견성했다고 그때 그 지경이 좀 어떻게 되아 영 뭐 그런 병 뭐 여하약하한 것은, 잔뜩 그 목구녁에서 피는 차 올라와서 간뎅이 같은 건 밭지마는, 그런 데 구애(拘礙) 없어.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해 가지고는 그 무슨 경계에 취해서, 응...

그만 직지사를 척 오니까, 직지사 대중이 한 30명 모아 있다가, 참! 반가허드구만. 소식이 어떻게 앞을 질러서 다 알고 있제. 참! 반가혀. “아따! 이 신(信) 수좌님이 여기에 돌아왔다”고 야단들이여. 그러더니 법문을 청헌다.

이런 것은 안 넣었으면은 좋겄구마는 그것도 좀 넣으라고 쌓으니깐, 넣는데.
당최 배가 고파서 영 못허겄구만, 법문을. 엊저녁에 쌀가리 똑 반 숟갈 타 먹었네. 한 숟갈도 못 타 먹고. 그랬더니 당최는 이건 이렇게 안 돼. 되나 안되나 어찌 올라왔으니깐 또 좀 허고.

나를 법문(法門)을 청했어. 그래서 올라갔제. 그 인자 처음이여. 내 생전 처음이여 법상(法床)에는, 인자 잉!
아, 거 새파란 사람이 인자 그때가 스물세 살이여. 허! 스물세 살에 무슨 놈의 법상에 올라갈 것이여? 두 철 만에 나와서, 두 철 만에 지내고 산철이니까, 어디 뭐 얼매 시일이 되았어?

법상에 올라가서 첫 설법이여! 첫 설법이니 한번 대중이 잘 들어요. 잘 듣고 거그 좀 잘, 답도 있어.

이 주장자(柱杖子)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살림 밑천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모도 이거 살림, 요놈 가지고 살림해 왔어. 나도 직지사 와서, 주장자 이놈을 처억 들어서 내가 이렇게 보였어.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건 그만두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이렇게 물었어. 거그, 한마디 다 모도 해. 내가 첫 법문이니깐, 고놈 한마디씩 대답해 보아.

미개구착(未開口錯)이면 제이구(第二句)인디, 입 열기 전에 그르쳐도 제이구인디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입 열면 그르쳤다” 입 열기 전에 그르친 게 아니여. 이 일은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친다” 했제, 입 열기 전에 그르친다 안 했어!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건 그만두어라. 어떤 것이 차사(此事)냐?” 간단혀! 천하에 간단혀.

우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이치부텀 봐야사 도를 닦는 것이여. 이치 보지 않고 어떻게 닦아?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여. 깨달지 못허고 닦는다는 것은 무명(無明)만 기루어. 허니 어서 화두를 타파(打破)해야 하지.
화두 타파한 것이라는 것은 글쎄, 일향간(一餉間)에 있어. 밥 한번 먹을 때에도 깨달을 수 있고, 젓가락 집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잠깐 깨달라 가지고는 그다음 일이 설찬히 크다 그 말이여.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쳐? 그르치고, 안 그르치고 그만두라 그 말이여. 내가 그르친 걸 뭐 말헌 것 아니여. 그건 그만두어 버리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인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아, 우리가 밤낮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일로써 그 이렇게 밤낮 쥐어뜯고 있으니 아, 이거 하나 턱 일러 보아. 거그에 그 하나 이르련마는 모도 이렇게 환해도 안 이르고 있는가? 환히 보여도 못 이른가? 의심 나면 못 이르제. 더듬으면 못 일러! 찾다가 죽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그르치고 그르치 않고 그만두고 어떤 것이 차사오?” 아! 세상에 이렇게, 답을 거다가서 그만 가르켜 놓고 들어가는데.
청송 선생님 하나 일러! 벌써 며칠 했어? 청송 선생 하나 턱 일러! 며칠 동안이여 벌써? 삼 일 동안에도 확철대오하는 것인디.
청송 :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직 못 일러? 아주 유명하신 그 뭐 거그서 굉장헌 선생이시란디. 어디, 광명 선생도 한번 일러 보고. 그놈 선생도 못 허겄다 인자, 선생은 무슨 놈의 선생이여? 조실(祖室) 스님한테 선생 소리 들어 되아? 한 번 일러 봐, 며칠이나 공부했어?

아따, 우리 대중같이 이거 참말로 그것 참, 그렇다 그려.
방(棒) 주는 게 아니여. 벌써 그거 능히 이르고 별짓 다헐터이지마는, 그렇게 참다와. 그런 거여. 그렇게 참다와야 혀.
어름해 가지고 어떻게 이르며, 또 확철히 보이드래도 또 역득(亦得)이여! 그렇게 아무 말이 없이 양구(良久)허고 있는 경계 좋아.


그때 당시에 직지사에서 30명 대중이 있었는데 답을 하나 허되, 그때 초를 요렇게 써 놨은게 “촉(燭)불이 밝습니다” 그건 누가 그렇게 이른고 하니 병률이가 그렇게 일렀어. 병률이라고 우리 동갑쯤 된 사람인디, 일찍 들어왔다가 일찍 퇴타해 버렸어.
그이가 한번 나와서 답헌디, “촉화명(燭火明)입니다” 그려. “촉불이 밝습니다” 해.

“내가,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것은 그만두고, 차사(此事)를 내가 이르라 했지, 촉불 밝은 것을 내가 이르라 했나? 뭔 촉불 밝은 걸 왜 거다가 들어대아?” 아! 그래 놓으니 또 꼼짝달싹 암말도 못허제.
“그 역시 무공저(無孔저)로구나. 그것도 역시 소리 없는 젓대로구나” 내가 그래 놓고.

또 어떤 분이 나오더니 또 이르기를 “도리(桃李)가 환다사(還多事)하니, 도화꽃과 오얏꽃이 오히려 일이 많으니, 도화꽃 복숭아꽃 없어지면은 이르겄습니다” 이래서,
“그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이르라 한디, 그르친 도리를 일렀나? 그르치지 않는 도리를 일렀나?” 그 아무 말이 없어.

그것도 그저 그대로 둘 일이제, 거 다시 무슨 야행인(夜行人)을 끄어 일받을 것 없고, 밤사람 행헌 것을 다시 얘기헐 것 없고.
그 몇이 그러고는, 법문은 인자 그다음 뭐라고 인자 헌 것 다 내가 지금 알 수 있어야제, 고것만 내가 헌 것 지금 기억허제, 그밖에 여러 소리 뭣 헌 건 알 수 없고.

마치고 내려와서, ‘내가 처음 법문헌 것이니까, 만공 큰스님헌테 이 법문을 보내야겄다’ 해 가지고는 만공 큰스님한테다가, 「영신(永信)이가, 첫 법문을 직지사에서 청해서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시중(示衆)허고, 들어 보이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오?’ 이렇게 물었으니 큰스님 수시일구(垂示一句)하야 주시옵소서. 큰스님 여기에 대해서 일구를 드리워 보여 줍소사」

그래 편지를 올렸더니, 며칠 내가 거기 오래 있든 않고 있는데, 편지가 왔는데 고 편지에다가 답장에다가 까꾸라 한 걸 이래 그려 버렸어. 요 까꾸라 요렇게 된 걸 그려 버렸어. 응, 요렇게 생긴 것을. 요렇게 된 걸 그려 보냈어.
그것! 그것 다 모르겠제? 알다니? 모르제. 삼매(三昧)로 다 써 논 것이니깐 모르제. 그 첫 법문을 했기 따문에 그래 올렸더니 그렇게 해 보냈드구만.(19분25초~33분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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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그런 병(病) 뭐 여하약하한 것은, 잔뜩 그 목구녁에서 피는 차 올라와서 간뎅이 같은 건 밭지마는’ ; 상기병(上氣病).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간뎅이 ; ‘간덩이(肝덩이)’의 사투리.
*간덩이(肝덩이) ; 간(肝)을 낮잡아 이르는 말.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이병위사(以病爲師) ; ‘병(病)으로써 스승[師]을 삼아라’
우리가 일상 생활이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병(病)을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이 몸의 유한하고 무상함을 깨닫게 해 준 스승으로 삼아 병 속에서도 퇴전하지 않고 수행 · 신심을 더욱 다지고 진작하라는 경구(警句).
[참고 ❶]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묘협 스님)
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乃生 貪欲生必破戒退道 是故大聖化人以病苦爲良藥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겨 반드시 계를 파하고 도에서 물러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참고 ❷] 전강선사(No.014)—전강선사 일대기 제7호(경술1970년 12월 10일 새벽.음)(4분30초)
생사에 무상(無常)헌 마음이, 죽고 사는 이 생사심(生死心)!
그 생사! 인생이라는 건 이 몸 얻어 와 가지고 곧 이 몸뚱이 내버릴 그 생사심. 받아와 가지고 내버릴 걸 생각하니 세상에 이렇게 무상해. 갈 바도 모르고 올 바도 몰라.

눈 감으면 죽었다. 그만 뚝 떨어진 곳이 무서운, 그놈의 감옥은 참말로 무서운 감옥이다. 그 지옥 감옥이란 게 어떠헌가?
이같은 뭐, 뭐 우리 이 몸뚱이 가지고 죄지어서 가는 감옥 같을까니? 그 감옥은 참 기맥히다! 몸뚱이도 없는 업신(業身), 죄몸뚱이가 들어가지마는, 나올 수 없다. 도저히 못 나오는 놈의 감옥.

온 곳도 컴컴헌 어느 세상에서, 무슨 감옥에서 겨우 나와 가지고 이 몸 하나 얻어 가지고는 또 이 오탁, 사바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는 감옥 아닌가? 이 감옥에 들어와 가지고 또 인자 전근(轉勤), 그 전근 가는 거 아닌가?
이 감옥 내버리고는 인자 또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지는 놈의 감옥은,  변시신후지감옥마(便是身後之監獄麽)? 이 몸뚱이 내버린 뒤에 감옥을 아느냐? 백 배나 더 무서운 놈의 감옥이 있다 그 말이여.

요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사대(四大) 색상, 색신 몸뚱이, 이놈을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놈의 사바세계에서 맨 사는 전체가 우리도 뭐 고통이지, 뭐 고통 빼놓으면 뭐 있나? 맨 고통뿐이제.

‘아주 요까짓 몸뚱이 하나 얻었으니 고통 없다’
없는가? 이것도 감옥이여.

뒷 감옥, 참! 무섭다.
포구발심(怖懼發心)을 혀. 두려운 응, 포구발심. ‘두렵다, 무섭다’ 그 말이여. 이 몸 내버린 뒤에 그 무서운 감옥으로 처백힐 걸 생각해 봐. 무섭다! 그래, 포구발심을 제일 쳤어. 발심만 해버리면은 설사 이 몸이 죽게 되아도 화두를 안 헐 수가 없어!

‘사부득활(死不得活)이다. 죽어 가지고 살지 못헐까 두려워허지 말아라[不怕死不得活]. 활부득사(活不得死)니라. 살아가지고 죽지 못헐까 근심해라[只怕活不得死]’ 고인(古人)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
한번 죽을 고비에 들어가야 되느니라. 설사 공부허다가 그런 피가 좀 나와서 몸뚱이에 피 한 방울 없다고—목숨 붙어 있는 동안에는 해야제, 안 해 될 것이냐 말이여. 참으로 해야 한다!

병이 나고 더 죽을 지경이 있다 하드래도 더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해라. 병으로써서 스승을 삼어라. 병 있다고 내던지고 말면 어찌 될 것이냐. 참말로 꺼꾸러지는 곳인디.
거그서 맹렬헌 마음을 가져라! 맹렬헌 마음이다마는, 분심(憤心)도 거그서 가져. 거그서 의심은 절로 일어난다.

내가 나를 몰랐으니, 내가 내 면목(面目)을 몰랐으니, 알 수 없는 그놈이 내나 해야 조사관(祖師關)이여. 조사관 꽉 맥혀 알 수 없는 게 ‘판때기 이빨에 털났다’는 놈이, 고놈이 바로 탁! 깨달으면은 불조(佛祖)의 패궐처(敗闕處), 부처님의 얼굴을 바로 잡아내는 것이고, 조주 스님의 면목을 바로 깨달라 아는 것이고, 내 면목은 그대로 나오는 것이여.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은 거그서 출현헌다 그 말이여.(32분27초~36분55초)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신수좌(信首座) ; 전강선사(田岡禪師)의 별칭.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객 스님들은 법명의 ‘뒷 글자[信] + 수좌’를 붙여 호칭(呼稱)하기도 한다.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쌀가리 ; ‘쌀가루’의 사투리.
*법상(法床 부처님의 가르침 법/평상 상)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 동안거)가 아닌 시기.
*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미개구착(未開口錯)이면 제이구(第二句)인디‘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07 (가로판 p212~213)
[三句]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셋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이치부텀 봐야사 도를 닦는 것이여. 이치 보지 않고 어떻게 닦아?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여. 깨달지 못허고 닦는다는 것은 무명(無明)만 기루어’ ; 미심수도(迷心修道) 단조무명(但助無明),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82. (가로판 p86)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화두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일향간(一餉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밥 한번 먹을 때에도 깨달을 수 있고, 젓가락 집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잠깐 깨달라 가지고는 그다음 일이 설찬히 크다’ ; 오후보림(悟後保任).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찾다가 죽고!‘ ; 

 


[참고 ❶] 송담스님(No.111)—1979년 동지 법회(1979.12.22)(7분)
우리는 진묵겁(盡墨劫) 전에 이미 깨달음,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부처님과 조끔도 차별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도 원만구족(圓滿具足)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구족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한 생각 딱 돌이키면—어디서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요, 누가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곳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원만구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기를 “찾다가 저 죽는다” 이런 너무나도 간결하고 송곳으로 찌르듯 하는 그러헌 법문을 해 주신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꽉 맥힌 의심, ‘이 무엇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았거나 누웠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죄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괴롭거나 쓰리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프다고 가려 내놓고, 바쁘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잠잘 때라고 가려 내놓고, 속상헌다고 가려 내놓고, 기쁘다고 가려 내놓고, 이리저리 다 가려 내놓으면 언제 공부를 해야 할 때냐?
중생은 단 한 생각 동안이라도 생각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생각 없는 편안하고 고요하고 그러헌 때를 찾어서 공부를 할려고 하면 일생 동안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는 보아야 하고, 귀를 통해서는 들어야 하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아야 하고, 숨쉬어야 하고, 입을 통해서 맛보고 말을 해야 하고, 손과 몸을 통해서는 따뜻하고 차웁고 딱딱하고 부드러운 거 그런 것을 다 감각을 해야 합니다. 잠시도 육근(六根)을 쉬고 일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나 끊임없이 자동적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활동하는 시간을 없이 하고 참선을 헐랴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토록 그 사람이 생각하는 참선은 헐 기약이 없습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위대하고, 너무나도 맑고 깨끗하고 영특해서,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언제나 어디에나 두루하지 아니헌 곳이 없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요.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육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진여불성의 표현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눈으로 볼 수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없고, 손을 통해서 잡을 수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는 깨달라야 합니다.

왜 눈으로 코로 귀로 육식(六識)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진여불성의 표현인데, 어째서 눈으로 볼랴고 하면 보이지 아니하고, 귀로 들을랴고 하면은 들리지 아니하고, 손으로 잡을랴고 하면은 잡히지를 않는 것이냐?
우리는 목숨 바쳐서,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라도 진여불성 아닌 것이 없고 법신불(法身佛) 아닌 것이 없건만, 왜 볼려고 허면 볼 수가 없고, 들을려고 허면 들을 수가 없느냐? 우리 모두에게 진묵겁 전부터서 원만구족해 있으면서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냐?

육도법계(六道法界)가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시기 때문에 육도(六道)를 여의고 적광토(寂光土)는 따로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요긴한 길은 오직 이 한마디 밖에는 없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할 때, 불이 펄펄 타오르는 지옥으로 느껴졌던 것이, 한 생각 돌이킨 곳에 바로 그것이 천당이 되고, 극락이 되는 그 묘한 방법이 바로 참선법, 활구참선법 ‘이 무엇고?’ 뿐인 것입니다.(12분14초~19분14초)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국사 지눌) 「진심소재(眞心所在)」
或曰息妄心而眞心現矣라 하니 然則眞心體用이 今在何處오
曰眞心妙體가 遍一切處니 永嘉云 不離當處常湛然이나 覓卽知君不可見이라 하며 經云 虛空性故며 常不動故며 如來藏中에 無起滅故라 하시며 大法眼云 處處菩提路요 頭頭功德林이라 하시니 此卽是體所在也니라

혹 말하길, “망심(妄心)을 쉬면 진심(眞心)이 나타난다니, 그렇다면 진심의 체(體)와 용(用)이 이제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답하길, “진심묘체(眞心妙體)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다. 영가(永嘉) 스님이 이르시길, ‘당처(當處)를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고요[湛然]하나, 찾은 즉은 알거라 그대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며, 경에 이르시길, ‘허공의 성품인 연고며, 항상 동(動)하지 아니한 연고며, 여래장(如來藏) 중에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 연고라’ 하며, 대법안[大法眼文益] 스님이 이르시길, ‘처처가 정각[菩提]의 길이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공덕의 총림이라’ 하시니, 이것이 곧 이 마음의 체(體)가 있는 곳이니라.

眞心妙用은 隨感隨現홈이 如谷應聲이니라 法燈云 今古에 應無墜하야 分明在目前이로다 片雲은 生晩谷하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하니 所以로 魏府元華嚴云 佛法이 在日用處하며 在行住坐臥處하며 喫茶喫飯處하며 語言相問處하며 所作所爲하나 擧心動念하면 又却不是也라 하시니

참마음[眞心]의 미묘한 작용은 감(感)을 따라 나타남이 산골짜기 소리를 응(應)하여 메아리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법등태흠(法燈泰欽) 스님이 이르시길, ‘고금에 마땅히 떨어짐이 없어 분명히 목전(目前)에 있다. 조각구름은 날 저문 골짜기에서 나고 외로운 학은 먼 하늘에서 내려옴이라’ 하니, 그런 까닭으로 위부(魏府)의 원화엄(元華嚴) 장로가 이르시길, ‘불법(佛法)이 날마다 작용하는 곳[日用處]에 있고, 행주좌와하는 곳[行住坐臥處]에 있으며, 차 마시고 밥 먹는 곳에 있고, 말하고 서로 묻는 곳에 있으며, 짓고 행위를 하나 마음을 들어 생각을 동(動)하면 또 옳지 못하니라‘

故知하라 體則遍一切處하야 悉能起用이나 但因緣有無不定일새 故로 妙用不定耳이어니와 非無妙用也이니라 修心之人이 欲入無爲海하야 度諸生死인댄 莫迷眞心體用所在也어다.

그러므로 알라. 마음의 본체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여 다 능히 작용을 일으키나니, 다만 인연의 유무(有無)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묘용(妙用)도 또한 일정하지 않거니와 묘용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마음 닦는 사람은 무위(無爲)의 바다에 들어가 모든 생사를 건너려고 한다면 진심(眞心)의 체(體)와 용(用)이 있는 곳을 미혹하지 말지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柱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 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 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무공저(無孔저) ; 무공적(無孔笛).
* ;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管樂器)를 통틀어 이르는 말. 젓대. 적(笛).
*무공적(無孔笛 없을 무/구멍 공/피리 적) ; 구멍 없는 피리.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영수(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도화(桃花 복숭아나무복숭아 도/꽃 화) ; 복사나무(복숭아나무)의 꽃.
*오얏 ; 자두.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영신(永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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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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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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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