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8분 37초부터 시작됩니다>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〇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眞]부처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16분 9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세등09)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佛祖)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난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친견을 못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좋은 경지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참 애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마치 제호(醍醐)는 인도에서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런 우유로써 만든 것인데, 그 제호를 잘 관리를 못함으로써 그것이 변질이 되면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약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좋은 맛있는 귀중한 제호와 같은 음식을 얻어 가지고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독약을 만든다고 해서는 기가 막히게 애석한 일이다.
그렇게 애를 써 가지고 깨달은 경지에 도달을 했다 허드라도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오후(悟後)에 공부 지어가는 구체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은 큰 외도 마구니가 되어 갈 수도있고, 공부가 지지리 고비에 올라서 가지고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공부를 해서 어떤 그런 좋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드라도 그것을 족(足)함을 삼지를 말어야 한다.
깨달은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은 그 해(害)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만나서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반드시 불조기연(佛祖機緣), 일체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를 해야 하고, 불조의 그 제자를 지도하는 가운데에 문답이라든지,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교화하는 모든 기연상(機緣上)에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이것은 깨달은 것이 옅은 것이여. 그래서 현묘(玄妙)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이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고서 일기지사(一期之事)—정진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그 일기지사가 있는데, 그러한 일기지사로써 만족함을 삼고 현묘함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원만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롭게 맨들고 결국은 불법(佛法)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깨달은 뒤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탁마를 하고 정식으로 인가(印可)를 받아서 일체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에 맥힘이 없도록 이렇게 한 다음에 터억 자기의 자취를 감추고 철저히 오후(悟後)에 보림(保任)을 한 다음에 유교, 불교, 도교의 그러한 심지어 제자백가지설(諸子百家之說)까지라도 다 한바탕 다 거쳐서 다 보고 그래 가지고 다생습기(多生習氣)를다 녹여야 한다.
그래 가지고 원명무애(圓明無碍)해서, 그저 밝아서 조금도 맥힘이 없어야사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어서, 그 빛이 멀고 그리고 넓게 비추어서 자기 자신도 정말 확철대오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할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맥힘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욕되게 하지 아니하고 그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여법(如法)하게, 공부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이렇게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함을 삼고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한다 하면은 반드시 다시 옛날 깨닫기 이전의 그러한 생활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말할 때에는 깨달은 것 같지마는 경계를 당하면은 도로 미(迷)해 버려. 말이 법도가 없이 꼭 미친 사람처럼 술 취한 사람처럼 말이 함부로 나와 가지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큰소리치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입에 못 담을 상스러운 소리로 세월을 보내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도인 같고, 어찌 보면 술 취한 사람 같고,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고.
이 불법에는 공공연하게 누구에게라도 말을 할 수 있는 면이 있고, 또 함부로 까발쳐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은밀히 때와 장소를 가려서 또 그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해 줄 말이 있고, 해 주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것이여.
함부로 그 말해 주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한 사람에게는 말해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될 그러한 말씀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하고 함부로 말을 해 가지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심이 떨어지게 맨든다든지, 오히려 의심을—쓸데없는, 망설이는, 주저하는, 갈팡질팡하는 의심을, 회의심(懷疑心)을 일으키게 하는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말하셨지마는 그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다 말해 주어도 다 이익이 되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반드시 그 근기와 그 사람의 현재 도달해 있는 그 경지에 따라서 해 줄 말이 있고, 해 주어서는 안 될 말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깨달은 뒤에 바른 선지식의 철저하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오후(悟後)에 깨달은 뒤에 정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서 잘못 단속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큰 폐단이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 옳은 선지식의 철저한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탁마와 오후(悟後)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여법하게 정진을 한 사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을 망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따, 참 큰 도인(道人)이다. 참 거리낌이 없고 참 기가 맥힌 도인’이라고 잘못 좋게 판단한 사람이 있지마는,
이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원만한 것이기에 그렇게 방편을 선방편(善方便)을 쓸 줄을 모르고, 정(正)과 사(邪)를 가리지를 못하고,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를 못하고서 함부로 인과(因果)를 갖다가 부정해 버려.
말을 나투어서 할 말이 있고, 은밀히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해 가지고는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 망하고, 이것이 얼마나 큰 해가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참, 공부라는 것이 깨닫기 전에도 기가 맥히게 참 중요한 것이지마는 중간에 공부가 잘되어 갈 때에도 참으로 지혜스럽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해 나가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바른 선지식의 알뜰하고 직접적이고 간절한 지도를 받어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참, 그것에 대해서 깊이 명심을 해야 해.
그리고 이 공부는 한(限)이 없는 것이여. 큰 바다와 같아서 깊이 들어갈수록 한량이 없이 드는 것이여.
‘부처님’하면은 부처님은 공부 안 하고 인자 다 끝났으니까 아무 것도 안 하고, 그것으로써 마지막 도달할 데에 도달했으니까 딴 더이상 갈 곳이 없냐 하면 그게 아니라, 부처님도 한량없이 공부를 해 나가시는 것이여.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끝이 없는 것에 공부라 하는 것이여. 부처님이라고 해서 다 끝났으니까 더 안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여.
하물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어. 깨달은 뒤에도 한이 없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공부라, 이 세계에 육도법계(六道法界)에 한 중생도 없을 때까지 나도 공부하고 중생 교화하고, 중생 교화하면서 내 공부하고, 이 공부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둘이 아니고, 동시에 한 중생도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여.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마음 깨닫는 이 도리가 우리가 우리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데, 깨달은 부처님이나, 그 마음이나,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다’
‘부처님’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그 마음과 우리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성, 본분(本分) 도리(道理)에 입각(立脚)해서 보면은 하나도 차별이 없는 것이여. 부처나, 마음이나, 우리 중생이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는 더 깨달을 것도 없고 미(迷)할 것도 없고, 생(生)도 없고 사(死)도 없고, 열반도 없고 조금도 차등이 없는 거여.
우리가 참선(參禪) 하는 것은 그 차등(差等)이 없는 그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공부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37분55초~54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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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의 사투리.
*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불•보살이 그 근기(根機)와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기연(機緣)•공안 등을 말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때 기/인연·이유·연줄 연) ; ①시기인연(時機因緣)의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것.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된 스승과 제자의 인연.
*현묘하다(玄妙--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현/묘할·신묘할·젊을 묘) ;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헤아릴 수 없이 미묘하다.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일. 일시적인 일. ②당장의 일.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여러 학자 및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 음양가(陰陽家)인 추연, 유가(儒家)인 공자와 맹자 순자, 묵가(墨家)인 묵자, 법가(法家)인 한비자, 도가(道家)인 노자와 장자, 병가(兵家)인 손자 등이 있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공공연하다(公公然--) ; (사실이)거리낌이나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회의심(懷疑心)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것.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법(法)을 설함에, 교묘하게 잘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것.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입각(立脚 설 립/다리 각) ; 어떤 사실이나 주장 따위을 근거로 삼아 거기에 발[脚]을 디딤[立](그 입장에 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차/등급·같을 등)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