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전강선사 No.011)—(게송)商量是鬼窟~ | 참선에는 상량, 문자도 소용없다. 귀한 것이 의심이다 |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 생사 없는 법이 사바세계밖에 없다 |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허는 법이 없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15분 14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상량시귀굴(商量是鬼窟)이요 문자시조강(文字是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오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선(商量禪)이라는 게 못써. 공연히 앉어서 공부헌닥 하면서 참으로 의심(疑心)을 허지 않고, 상량선을 하고 앉었거든. 요리 한번 생각해 보고 조리 한번 생각해서, 그 상량이 붙도록 화두를 든다 그 말이여. 상량선! 자꾸 그 무슨 이치를 찾고, 거다가 이상스럽게 모도 무슨 별별 도리를 끄집어다가 붙여서.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알 수 없는 의심만 딱 들고서는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걸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것이 조주(趙州)의 뜻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뜻이란 말이여. 그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거가서 무엇이 있을 것이여. 상량(商量)해서, 사량(思量)해서 붙여 봤던들 되냔 말이여.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이란 건 귀신굴이여. 귀신(鬼神)이라는 게 이 몸뚱이 내버리면 귀신인디. 또 귀신이 뭐, 따로 있나? 이 사람이 사람 몸 가지고 있다가 사람 몸 버리면 귀신이지.
귀신이라는 것은 그거 또 더 이상스럽게 사람 몸뚱이 가져 있을 때보담도 사람 몸뚱이 내버린 뒤에는 귀신의 상량이라는 것은 말로 못혀. 이놈이, 귀신 상량이라는 것은 당초에 그건 뭐 어따가 비유헐 수 없이,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뿐이여. 숭악헌 근원도 없이 퍼일어난 놈이, 내 근본 정신도 없이 그만 일어나는 놈이 그 귀신 생각인디, 그걸 귀신 상량이라, 귀굴리(鬼窟裏)라 그려. 그래서 상량선이라는 것은 귀굴리선(鬼窟裏禪)이라 그런다 그 말이여.
그러니 제일 주의헐 것이 상량선이여. 안 헌닥 허지마는 상량선을 허기 따문에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오들 않고, 화두일념(話頭一念) 지경이 오들 않고, 고 상량 따문에 망가(亡家)헌다. 집을 잊어버리고 실업(失業)한다. 업(業)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상량이 아닐 것 같으면은 화두(話頭)라는 것이 그대로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올 것이며, 어디 그 헛된 선(禪)인가? 참, 옳은 선(禪)이지.
공연히 따진다. 어서 깨달을라는 마음을 다 붙이기도 허고, 그놈이 그 무슨 이치를 찾아 붙인다. 아, 이런 놈의 꼴 봐라.
아무리 해봐도 이치는 아니여. 천하 없는 이치를 다 붙여 봐. 그 이치가 무슨 이치가 참선인가. 아니거든. ‘깨달랐다’ 허니까, 뭐 깨달을 것 같으면 무엇이 뭐, 물건이 무엇이 하나가 있는 줄 알고.
어쩠던지 상량선은 안 해야 옳아. 그거 귀신 참선인디, 귀신 참선은 참선이 아니여. 그 까달(까닭) 따문에 타성일편 지경이, 의심 하나가 그저 의단독로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 덩어리가 뭉쳐져 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뭉쳐져 가지고는 독로(獨露)가 되지를 못혀.
문자(文字)는 시조박(是糟粕)이다. 문자라는 것이 조박(糟粕)이여. 일체 문자선, 문자 참선도 그 못써. 그 무슨 글귀를 집어대고 들어대고 해서 그 모도 문자 인증을 헌다 그 말이여. 문자 중 인증이 모도 그것이 조박―고인이 술 짜, 옛사람들이 술 짜 먹어 버린 술 찌꺼리인데, 그 찌꺼리 그것을 자꾸 내가 먹을라고, 술 찌꺼리를 먹어 보니 그 무엇이여. 아무 소용없지.
문자도 소용없는 법이여. 참선에는 문자도 소용이 없어. 그러헌즉 참선학자라는 것은 그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다. 문자에 얽히들 안 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배운 그 교(敎)를, 문자를 버려 버리고 선(禪)에 들어온 것이다. 참선허는데 무슨 문자여? 무슨 교(敎)란 말이여? 거가서. 소용없다.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딱 참, 귀재의정(貴在疑情)이다. 귀헌 것이 의심이다.
화두 해 나가는 법! 내가 언제든지 올라와 화두 해 나가는 법을 이렇게 말해 주지 않어!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노? 아,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알 수가 없구나’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고것이 조주 뜻이여. 뭐 다른, 따로 조주 스님 뜻을 가 찾아?
‘해 보니까 조주 스님 뜻이 다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의지가 다르고 아, 두 가지로 자꾸 생각이 나간다’고 요러고 앉었어. 그 무슨 그런 참선을 허고 앉었어.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가 없으니, 그 그놈 찾는 거 아닌가. 아, 그러면 그렇게 찾기는 찾되 의심(疑心)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商量) 달러. 인자 불 꺼 버려라. 여그 올라오면 후끈해서 그만...
참, 이 이상 더, 천상천하에 어디 무슨 뭐 별별 세계에 다 없는 참선법(參禪法)이 우리 사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이 세계에 있단 말여. 남섬세계에 가서 남부세계에 가서 있거든.
세상에 이 세계는, 그저 인생이 나면 죄만 퍼 짓고, 그저 인생이 나오면은 살래야 살 수 없고, 그저 나오다가 죽기도 허고, 이것 좀 살다가 죽기도 허고, 맨 놈의 남섬부주 죄짓는 세상인디, 아! 이 세계에 와서 있다. 이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
그 세상에 다 있제. ‘나’는 다 있고. 누가 주인공이 없어?
‘나’는 다 있고. 주인공은 다 있지마는 어째 남섬부주에 꼭 난 사람이래야 꼭 주인공,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이 있어. 그거 묘하다!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여의고는 없거든. 그러허니 불불(佛佛)이 성불(成佛)을 해 가지고는 이 사바세계를 오신단 말이여. 사바세계에 내려오셔서 사바세계 중생을 제도(濟度)헐려고 내려오신다 그 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이 대도(大道)를 이루어 가지고는, 불과(佛果)를 증(證)해 가지고는 오실 디가, 출세(出世)헐 디가 여그밖에 없어.
부처가 되아 가지고 불과(佛果)를 증해 가지고는 가만히 중생교화(衆生敎化)도 않고 있을 수가 있나. 제일 큰 일이 중생교화인디, 중생을 교화 안 헐 것 같으면은 어찌 될 것이냐 말이여. 뭐가 될 것인가 말이여. 이 중생은 전부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있게.
부처님도 석일(昔日)에 우리와 같은 동아(同我), 똑같은 범부(凡夫)인데 그렇게 생사고를 같이 받아 오시다가 먼첨 성불을 했으니 어서 속히 중생을 위해야 헐 것 아닌가. 중생 때, 불과(佛果) 증허기 전 중생 때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생사고를 받았으며, 모도 미(迷)헌 우리 중생 사바세계에서 같이 부모형제가 되았으며, 그 인연 깊은 인연을 천만 겁 중에 같이 해 나왔는데 모도가 부모형제인데, 그 사바세계에서 생사고를 받고 있는 그 중생을 제도 안 허고 무엇을 헐 것인가? 부처님이 불과를 이룰 것 같으면은 곧 당장에 그만 사바세계에 인자 하강(下降)허셔 가지고는 중생교화를 허는 것이여.
참선법!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허는 법이 없는데, 무엇을 헐 것이여!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냐? 그럼 묻노니 어떤 것이 옳느냐?
세상에 상량(商量)도 귀신굴이요, 문자(文字)도 고인조박(古人糟粕)밖에는 안 되아. 짜 먹어 버리고 내버린 찌꺼리밖에 안 된다. 약문(若問)허노니, 내가 돌이켜 묻노니 하시(何是), 시(是)냐? 어떤 것이 그러면 참선법, 옳은 선법이냐?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다. 방맹이를 때리되, 방맹이로 막 치되 방맹이가 하나가 아니라 우적(雨滴)이니라. 빗방울이니라 했다. 그러니 어디 어떤 것이 참선이라고, 어떤 게 옳은 것이냐고 참선 도리를 묻거드면은 방맹이로 빗방울처럼 막 뚜드려 팬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디 어디 그 뭔 이치를 가르켜 놓았어? ‘참선이 요런 것이다’ 가르켜 놓았어? ‘참선 이치가 요런 것이다’ 딱! 가르켜 놓을 것 같으면은 그것은 선(禪)이 아니여. 무엇이라고 딱 손가락처럼 착 나오면은 그거 참선법도 아니고 상견(相見)도 아니고 그거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허들 못혀.
게송(偈頌)으로 여까지.(처음~15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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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상량시귀굴(商量是鬼窟)~’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참고.
*조강(糟糠 지게미 조/겨 강) ;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와 쌀겨라는 뜻. ②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飮食). ③조강지처(糟糠之妻 : 가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의 준말.
*조박(糟粕 술지게미 조/지게미 박) ; 고인조박(古人糟粕).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상량선(商量禪 헤아릴 상/헤아릴 량/좌선 선) ;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상량(商量 : 알음알이, 知解)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從諗)이고 속성은 학(郝)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의 법을 받고, 그 문하에서 20년 동안 있었다.
80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40년.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120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귀굴리(鬼窟裏) ; 귀신 굴 속.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불구문자(不拘文字) ; 문자(文字)에 걸리지[拘] 아니한다[不].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0~131 역주. (가로판 p126~127) 『전등록』 제9권, 『오등회원(五燈會元)』 제4권, 복주고령신찬선사(福州古靈神贊禪師).
고령 신찬선사(古靈神贊禪師)가 행각을 하던 중 백장(百丈) 선사를 만나서 깨달은 후에 본사로 돌아왔다.
은사 스님이 목욕하며 때를 밀게 하니, 신찬 선사가 등을 만지며 이르되 「좋은 불당(佛堂)에 부처가 성스럽지 못하다」하거늘 스승이 돌아보니, 신찬 선사가 이르되 「부처 비록 성스럽지 못하나 능히 방광(放光)은 할 줄 아는구나」하였다.
또 은사 스님이 경을 볼 때에 벌이 창에 와 나가려 하거늘, 신찬 선사가 보고 송(頌)을 읊되,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鑚故紙 何日出頭期
'빈 문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창문에 부딪히니 어리석구나. 백 년을 옛 종이(故紙 경전)를 비벼댄들 어느 날에 나갈 기약이 있으리오?'
은사 스님이 경을 놓고 묻되 「네 행각하야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신찬 선사가 이르되 「백장화상(百丈和尙)의 가르치심을 받아 이제 스님의 은덕을 갚고저 하옵니다」
스승이 재계(齋戒)하고 신찬 선사를 청하야 설법하라 하거늘, 신찬 선사가 법좌(法座)에 올라 이르되,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眞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영광(靈光)이 홀로 비취어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나며 체(體)는 진상(眞常)이 드러나 문자에 걸리지 아니하고, 진성(眞性)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하니 다만 망연(妄緣)을 여의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라'하니, 스승이 그 말에 깨달았다.
*사교입선(捨敎入禪) ; '교(敎)를 버리고[捨] 선(禪)에 들어간다[入]' '일정한 교학(敎學)을 마치고 선종(禪宗)에 입문하는 것'
선가(禪家)의 수행관(修行觀)의 하나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法門)인 교(敎)는 올바르게 공부하고 이해하면 참선을 철저히 할 마음이 날 수밖에는 없고, 진리는 실(實)답게 닦고, 참답게 깨달아서 체달(體達)하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가르쳐서 알게 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교(敎)에서 닦은 뒤에는 그것을 몽땅 내버리고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인 선(禪)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수행관이다.
수행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설하신 부처님 법문인 교(敎)는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공부하면 참선을 철저히 할 마음이 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참선을 올바르게 하면 교(敎)가 하나도 버릴 말씀이 없습니다. 교(敎)와 선(禪)은 둘이라 할 수가 없고, 전부가 다 소중하고도 훌륭한 법문(法門)입니다.
*귀재의정(貴在疑情) ; 귀재기의정(貴在起疑情). ‘귀한 것이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에 있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48~149. (가로판 p141~142)
做工夫호대 貴在起疑情이니 何謂疑情고 如生不知何來인대는 不得不疑來處오 死不知何去인대는 不得不疑去處이니라 生死關竅를 不破則疑情이 頓發하리니 結在眉睫上하야 放亦不下하며 趁亦不去하야 忽然一朝에 撲破疑團하면 生死二字가 是甚麼 閒家具오 噁
공부를 짓되 귀한 것이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에 있으니 무엇을 일러 의정이라 하는고? 태어나되 어디서 온 줄을 모를진댄 온 곳을 의심치 않을 수 없고, 죽되 어디로 가는지 모르건댄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 생사의 관문을 깨뜨리지 못한즉 의정이 몰록 일어나리니, 눈썹 위에 맺어 두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고 쫓아도 가지 아니하야 홀연 하루아침에 의심덩어리[疑團]를 깨뜨리면, 생사(生死) 두 글자가 이 무슨 부질없는 것일까 보냐? 엑[噁]!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생사 없는 법이!’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〇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증(證) ; ①깨달음. ②깨달은 바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체화(體化)함.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석일(昔日 옛날 석/날 일) ; 옛적(이미 많은 세월이 지난 오래전 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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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 다운로드.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