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법거량2022. 3. 9. 09:47

법거량(전강선사 No.012)—경허 큰스님 오도송(悟道頌)에 대한 탁마(琢磨) |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0분 17초)


[법문]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전012)

내가, 이것은 뒤에 또 나오는 법문이지마는 여다가 한마디 넣을 것은 글씨 또 내가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때에 그 인자 그 어른 제자라도 보월 스님, 돌아가신 고봉 스님, 금봉 스님 쏵 그 호서(湖西) 대중이 다 모인 그 대덕(大德) 가운데에서, 그 큰 용상(龍象) 큰스님네 밑에서—아, 또 보소! 또 내가. 경허(鏡虛) 큰스님 오도송이 있어! 오도송(悟道頌).

그런 경허 큰스님 같은 오도송이 아, 얼마나 참말로 거룩헌 큰스님의 오도송인디, 거다가 갬히 내가 또 쎗바닥을 대아? 허지마는 댈 건 대야제, 어쩔 것인가.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허고,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요렇게 해 놓으셨는디, 내가 거그다가 인자 오도송에다 갖다가 허물을 떡 끄집어낸다.

“소 콧구녁 없단 말씀을 듣고,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다. ‘콧구녁 없다’는 도리나,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는 각견(覺見)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라’ 그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응! 천하에 큰스님에 아무리 큰스님에 법문일지언정, 뭐 어디 큰스님 법문이라고 어떻게 때꼽재기를 파내고 씻거야지, 어찌 그대로 둘 수가 있겄습니까? 이것이 다 탁마(琢磨)인디.

“무비공(無鼻孔) 도리와 삼천세계가 내 집이다고 깨달은 각견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것도 ‘그 천하에 경허 스님 송(頌), 오도송 잘 되았지’ 아, 이래 쌓어 내가 거다 입을 벌렸다 그 말이여.

“그러면 그 무비공 도리와 각견과 무사태평견을, 그놈을 자네는 여의고 한마디 어디 말해 보소. 어떻게 해야만 그놈을 여의고 말을 허겠는가?”

“예. 그러면 무비공 도리, 각견 도리, 거 다 큰스님 허신 대로 그대로 두고, ‘홀문인어무비공허고 돈각삼천시오가라.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만 그대로 그만 큰스님 법문 오도송대로 두고, 고 끝에 한 귀(句)만 제가 참으로 황송헙니다마는 한마디 일러보겠습니다”

“응, 일르게” 만공 스님이 “일르게”
그 선지식과 50명 학자가 꽉 찬 디서 내가 조실방 앞에서 헌 것입니다. 우리 보살님네도 잘 들으란 말이여. 이놈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언하대오(言下大悟)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라. 유월 달에 그 연암산 밑에 모 심구는 그때여, 때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유월 연암산 밑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란 건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 한다'는 것은 모 심구는 모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여. 그걸 보고 이르는 건디.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이, 우리 부처님의 법이라 하는 것이 어디 무슨 무사태평(無事太平)이니, 무슨 본래각(本來覺)이니, 무슨 뭐 소 콧구녁 없는 도리니, 그러헌 그 거가서는.... 말후(末後), 부처님의 그 우리 선법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가지고 확철대오헌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지 않는 거여. 확철대오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고 처백히면은 못쓴 것이여.

각(覺)이니, 무비공(無鼻孔)이니,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 인자 그 제삼구(第三句)로, 그 도인이 오도송에 그 쓸 수 있는 말이제. 쓰는 법이제, 안 쓰는 것 아니여.
‘허공(虛空)이다. 역무허공지량(亦無虛空之量)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니라’ 이렇게 또 들어가야 되지, 그걸 안 허고는 안되는 법이여.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인데, 그것을 여의고 헐 수가 또 있나. 허지마는 티를 뜯고 학자가 한번 눈을 파는데는 헐 수 없어!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내 거그 글 한 귀(句) 딱 떼고 해 놓은 송(頌)이 뭐냐 허면 이겁니다.

유월연암산하로에서 들사람이 모 심구는디, 모 심구는 내가 그 경계여.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 두고는, 거다가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곡을 붙여서) 이놈을 내가 하나 불렀드라. 응, 유월연암산하로에 그 모 심구는 곡조다. 다른 게 아니여, 그게. 농군들 노래여!

이놈 하나 딱 부르니까 만공 스님이 척 계시다가 “그 여여로 상사뒤여 의지(意旨)가 여하(如何)오?”
내가 그때는 또 춤을 또 추었네 인자, 또 더군다나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적자(嫡子)가 농손(弄孫)이로구나! 적자가 손자를 희롱허는구나!” 그게 점검이여.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일지언정 어디어디 거가서 그대로 뭐 보이는 때꼽재끼를 놔두어?

그래 가지고 거그서 보월 스님도 그때에사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이 삼구에서 허셨제. 제삼구(第三句)로 허셨제” 이랬고.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그 말이여.

나 역시 아무리 두 어른네가 해 놓았기로이 보이는 것을 안 헐 수가 있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손만 내밀고, 할(喝)만 허고, 방(棒)만 허면 제일인가?
법문이라는 것은 항상 그 참, 단진범정(但盡凡情)이여. 범정(凡情)은 다 깨달라 다 없다마는 성해(聖解)에 가서, 성해에 가 주(住)허지 말아라. 성해에 떨어지면 또 되는 겐가?
그러니 그 각견(覺見) 같은 것을, 불견(佛見) 같은 것을, 법견(法見) 같은 것을 척척 잡아내서 이게 탁마여.

여그서 그놈 척! 허고서는 내가 그다음에 가서 또 인자, 또 그건 아침에 날이 치워서(추워서) 거까장 맺어줄 수가 없어.
요것은 뭐냐하면 늘 듣는 법문이고 요새 헌 법문이지마는, 그 꿀 딱! 먹을 때, 꿀 딱 받아먹을 때, 어저께도 그 안 일렀나.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고거 있지. 요놈이 있지마는 전편이 좀 해야, 소소허게 전편을 다시 해 가지고 내가 일러야겄어.

고놈을 한마디 일러놓고 내가 전국 육대선지식(六大善知識)한테 한목 인가(印可) 받은 것이여. 한목.
하나도, 그런 놈이 나와야 되제. 배 벌로 ‘내가 인가 받았다. 내가 견성했다’ 그러고 나와. 그거 안되는 말이여. 딱딱 그 증거가 나와야 하제.

오늘 아침에 치워(추워) 여까장 허고 내려가겄어. 오늘은 12시에 법문이 있겄오.(22분48초~33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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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湖西) ; ‘호수의 서쪽’으로 오늘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대덕(大德) ; 덕이 있는 사람. 덕행이 있는 자의 의미. ①장로, 부처님, 보살, 고승 등에 대한 경칭. ②수행자에 대한 호칭. ③스님에 대한 경칭.
*용상(龍象) ; 용과 코끼리. 또는 용이나 코끼리 하나를 가리키는 말.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부처님만 가리키거나 보살의 용맹한 능력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확장하여 걸출한 인물이나 뛰어난 수행자를 가리킨다.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경허 스님 오도송 ;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쎗바닥 ; ‘혓바닥(①혀의 윗면. ②‘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심구다 ; ‘심다’의 사투리.
*말후(末後) ; ①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궁극(窮極), 최후의 뜻. ②생명이 끝날 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구(三句) ;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참고.
*농군(農軍 농사 농/군사 군) ; ①농민(農民).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②농민으로 조직된 군대.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 『선문염송(禪門拈頌)』 제2칙 '주행(周行)‘ 참고.
[참고]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大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 ; ’아주, 매우’의 옛말.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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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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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