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전강선사 No.018)—전강선사 직지사에서 첫 설법.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건 그만두고 어떤 것이 차사(此事)냐?”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13분 46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만공 스님, 마지막 거그서(예산 보덕사) 떠억 떠나 가지고서는 김천 직지사를 내가 왔어. 또 인자 그전에 있든 디니까. 직지사를 와 가지고는—거, 몸은 형편없지마는, 그 좀 나는 견성했다고 그때 그 지경이 좀 어떻게 되아 영 뭐 그런 병 뭐 여하약하한 것은, 잔뜩 그 목구녁에서 피는 차 올라와서 간뎅이 같은 건 밭지마는, 그런 데 구애(拘礙) 없어.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해 가지고는 그 무슨 경계에 취해서, 응...
그만 직지사를 척 오니까, 직지사 대중이 한 30명 모아 있다가, 참! 반가허드구만. 소식이 어떻게 앞을 질러서 다 알고 있제. 참! 반가혀. “아따! 이 신(信) 수좌님이 여기에 돌아왔다”고 야단들이여. 그러더니 법문을 청헌다.
이런 것은 안 넣었으면은 좋겄구마는 그것도 좀 넣으라고 쌓으니깐, 넣는데.
당최 배가 고파서 영 못허겄구만, 법문을. 엊저녁에 쌀가리 똑 반 숟갈 타 먹었네. 한 숟갈도 못 타 먹고. 그랬더니 당최는 이건 이렇게 안 돼. 되나 안되나 어찌 올라왔으니깐 또 좀 허고.
나를 법문(法門)을 청했어. 그래서 올라갔제. 그 인자 처음이여. 내 생전 처음이여 법상(法床)에는, 인자 잉!
아, 거 새파란 사람이 인자 그때가 스물세 살이여. 허! 스물세 살에 무슨 놈의 법상에 올라갈 것이여? 두 철 만에 나와서, 두 철 만에 지내고 산철이니까, 어디 뭐 얼매 시일이 되았어?
법상에 올라가서 첫 설법이여! 첫 설법이니 한번 대중이 잘 들어요. 잘 듣고 거그 좀 잘, 답도 있어.
이 주장자(柱杖子)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살림 밑천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모도 이거 살림, 요놈 가지고 살림해 왔어. 나도 직지사 와서, 주장자 이놈을 처억 들어서 내가 이렇게 보였어.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건 그만두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이렇게 물었어. 거그, 한마디 다 모도 해. 내가 첫 법문이니깐, 고놈 한마디씩 대답해 보아.
미개구착(未開口錯)이면 제이구(第二句)인디, 입 열기 전에 그르쳐도 제이구인디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입 열면 그르쳤다” 입 열기 전에 그르친 게 아니여. 이 일은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친다” 했제, 입 열기 전에 그르친다 안 했어!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건 그만두어라. 어떤 것이 차사(此事)냐?” 간단혀! 천하에 간단혀.
우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이치부텀 봐야사 도를 닦는 것이여. 이치 보지 않고 어떻게 닦아?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여. 깨달지 못허고 닦는다는 것은 무명(無明)만 기루어. 허니 어서 화두를 타파(打破)해야 하지.
화두 타파한 것이라는 것은 글쎄, 일향간(一餉間)에 있어. 밥 한번 먹을 때에도 깨달을 수 있고, 젓가락 집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잠깐 깨달라 가지고는 그다음 일이 설찬히 크다 그 말이여.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쳐? 그르치고, 안 그르치고 그만두라 그 말이여. 내가 그르친 걸 뭐 말헌 것 아니여. 그건 그만두어 버리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인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아, 우리가 밤낮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일로써 그 이렇게 밤낮 쥐어뜯고 있으니 아, 이거 하나 턱 일러 보아. 거그에 그 하나 이르련마는 모도 이렇게 환해도 안 이르고 있는가? 환히 보여도 못 이른가? 의심 나면 못 이르제. 더듬으면 못 일러! 찾다가 죽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그르치고 그르치 않고 그만두고 어떤 것이 차사오?” 아! 세상에 이렇게, 답을 거다가서 그만 가르켜 놓고 들어가는데.
청송 선생님 하나 일러! 벌써 며칠 했어? 청송 선생 하나 턱 일러! 며칠 동안이여 벌써? 삼 일 동안에도 확철대오하는 것인디.
청송 :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직 못 일러? 아주 유명하신 그 뭐 거그서 굉장헌 선생이시란디. 어디, 광명 선생도 한번 일러 보고. 그놈 선생도 못 허겄다 인자, 선생은 무슨 놈의 선생이여? 조실(祖室) 스님한테 선생 소리 들어 되아? 한 번 일러 봐, 며칠이나 공부했어?
아따, 우리 대중같이 이거 참말로 그것 참, 그렇다 그려.
방(棒) 주는 게 아니여. 벌써 그거 능히 이르고 별짓 다헐터이지마는, 그렇게 참다와. 그런 거여. 그렇게 참다와야 혀.
어름해 가지고 어떻게 이르며, 또 확철히 보이드래도 또 역득(亦得)이여! 그렇게 아무 말이 없이 양구(良久)허고 있는 경계 좋아.
그때 당시에 직지사에서 30명 대중이 있었는데 답을 하나 허되, 그때 초를 요렇게 써 놨은게 “촉(燭)불이 밝습니다” 그건 누가 그렇게 이른고 하니 병률이가 그렇게 일렀어. 병률이라고 우리 동갑쯤 된 사람인디, 일찍 들어왔다가 일찍 퇴타해 버렸어.
그이가 한번 나와서 답헌디, “촉화명(燭火明)입니다” 그려. “촉불이 밝습니다” 해.
“내가, 그르치고 그르치 않는 것은 그만두고, 차사(此事)를 내가 이르라 했지, 촉불 밝은 것을 내가 이르라 했나? 뭔 촉불 밝은 걸 왜 거다가 들어대아?” 아! 그래 놓으니 또 꼼짝달싹 암말도 못허제.
“그 역시 무공저(無孔저)로구나. 그것도 역시 소리 없는 젓대로구나” 내가 그래 놓고.
또 어떤 분이 나오더니 또 이르기를 “도리(桃李)가 환다사(還多事)하니, 도화꽃과 오얏꽃이 오히려 일이 많으니, 도화꽃 복숭아꽃 없어지면은 이르겄습니다” 이래서,
“그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이르라 한디, 그르친 도리를 일렀나? 그르치지 않는 도리를 일렀나?” 그 아무 말이 없어.
그것도 그저 그대로 둘 일이제, 거 다시 무슨 야행인(夜行人)을 끄어 일받을 것 없고, 밤사람 행헌 것을 다시 얘기헐 것 없고.
그 몇이 그러고는, 법문은 인자 그다음 뭐라고 인자 헌 것 다 내가 지금 알 수 있어야제, 고것만 내가 헌 것 지금 기억허제, 그밖에 여러 소리 뭣 헌 건 알 수 없고.
마치고 내려와서, ‘내가 처음 법문헌 것이니까, 만공 큰스님헌테 이 법문을 보내야겄다’ 해 가지고는 만공 큰스님한테다가, 「영신(永信)이가, 첫 법문을 직지사에서 청해서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시중(示衆)허고, 들어 보이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오?’ 이렇게 물었으니 큰스님 수시일구(垂示一句)하야 주시옵소서. 큰스님 여기에 대해서 일구를 드리워 보여 줍소사」
그래 편지를 올렸더니, 며칠 내가 거기 오래 있든 않고 있는데, 편지가 왔는데 고 편지에다가 답장에다가 까꾸라 한 걸 이래 그려 버렸어. 요 까꾸라 요렇게 된 걸 그려 버렸어. 응, 요렇게 생긴 것을. 요렇게 된 걸 그려 보냈어.
그것! 그것 다 모르겠제? 알다니? 모르제. 삼매(三昧)로 다 써 논 것이니깐 모르제. 그 첫 법문을 했기 따문에 그래 올렸더니 그렇게 해 보냈드구만.(19분25초~33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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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그런 병(病) 뭐 여하약하한 것은, 잔뜩 그 목구녁에서 피는 차 올라와서 간뎅이 같은 건 밭지마는’ ; 상기병(上氣病).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간뎅이 ; ‘간덩이(肝덩이)’의 사투리.
*간덩이(肝덩이) ; 간(肝)을 낮잡아 이르는 말.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이병위사(以病爲師) ; ‘병(病)으로써 스승[師]을 삼아라’
우리가 일상 생활이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병(病)을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이 몸의 유한하고 무상함을 깨닫게 해 준 스승으로 삼아 병 속에서도 퇴전하지 않고 수행 · 신심을 더욱 다지고 진작하라는 경구(警句).
[참고 ❶]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묘협 스님)
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乃生 貪欲生必破戒退道 是故大聖化人以病苦爲良藥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겨 반드시 계를 파하고 도에서 물러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참고 ❷] 전강선사(No.014)—전강선사 일대기 제7호(경술1970년 12월 10일 새벽.음)(4분30초)
생사에 무상(無常)헌 마음이, 죽고 사는 이 생사심(生死心)!
그 생사! 인생이라는 건 이 몸 얻어 와 가지고 곧 이 몸뚱이 내버릴 그 생사심. 받아와 가지고 내버릴 걸 생각하니 세상에 이렇게 무상해. 갈 바도 모르고 올 바도 몰라.
눈 감으면 죽었다. 그만 뚝 떨어진 곳이 무서운, 그놈의 감옥은 참말로 무서운 감옥이다. 그 지옥 감옥이란 게 어떠헌가?
이같은 뭐, 뭐 우리 이 몸뚱이 가지고 죄지어서 가는 감옥 같을까니? 그 감옥은 참 기맥히다! 몸뚱이도 없는 업신(業身), 죄몸뚱이가 들어가지마는, 나올 수 없다. 도저히 못 나오는 놈의 감옥.
온 곳도 컴컴헌 어느 세상에서, 무슨 감옥에서 겨우 나와 가지고 이 몸 하나 얻어 가지고는 또 이 오탁, 사바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는 감옥 아닌가? 이 감옥에 들어와 가지고 또 인자 전근(轉勤), 그 전근 가는 거 아닌가?
이 감옥 내버리고는 인자 또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지는 놈의 감옥은, 변시신후지감옥마(便是身後之監獄麽)? 이 몸뚱이 내버린 뒤에 감옥을 아느냐? 백 배나 더 무서운 놈의 감옥이 있다 그 말이여.
요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사대(四大) 색상, 색신 몸뚱이, 이놈을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놈의 사바세계에서 맨 사는 전체가 우리도 뭐 고통이지, 뭐 고통 빼놓으면 뭐 있나? 맨 고통뿐이제.
‘아주 요까짓 몸뚱이 하나 얻었으니 고통 없다’
없는가? 이것도 감옥이여.
뒷 감옥, 참! 무섭다.
포구발심(怖懼發心)을 혀. 두려운 응, 포구발심. ‘두렵다, 무섭다’ 그 말이여. 이 몸 내버린 뒤에 그 무서운 감옥으로 처백힐 걸 생각해 봐. 무섭다! 그래, 포구발심을 제일 쳤어. 발심만 해버리면은 설사 이 몸이 죽게 되아도 화두를 안 헐 수가 없어!
‘사부득활(死不得活)이다. 죽어 가지고 살지 못헐까 두려워허지 말아라[不怕死不得活]. 활부득사(活不得死)니라. 살아가지고 죽지 못헐까 근심해라[只怕活不得死]’ 고인(古人)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
한번 죽을 고비에 들어가야 되느니라. 설사 공부허다가 그런 피가 좀 나와서 몸뚱이에 피 한 방울 없다고—목숨 붙어 있는 동안에는 해야제, 안 해 될 것이냐 말이여. 참으로 해야 한다!
병이 나고 더 죽을 지경이 있다 하드래도 더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해라. 병으로써서 스승을 삼어라. 병 있다고 내던지고 말면 어찌 될 것이냐. 참말로 꺼꾸러지는 곳인디.
거그서 맹렬헌 마음을 가져라! 맹렬헌 마음이다마는, 분심(憤心)도 거그서 가져. 거그서 의심은 절로 일어난다.
내가 나를 몰랐으니, 내가 내 면목(面目)을 몰랐으니, 알 수 없는 그놈이 내나 해야 조사관(祖師關)이여. 조사관 꽉 맥혀 알 수 없는 게 ‘판때기 이빨에 털났다’는 놈이, 고놈이 바로 탁! 깨달으면은 불조(佛祖)의 패궐처(敗闕處), 부처님의 얼굴을 바로 잡아내는 것이고, 조주 스님의 면목을 바로 깨달라 아는 것이고, 내 면목은 그대로 나오는 것이여.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은 거그서 출현헌다 그 말이여.(32분27초~36분55초)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신수좌(信首座) ; 전강선사(田岡禪師)의 별칭.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객 스님들은 법명의 ‘뒷 글자[信] + 수좌’를 붙여 호칭(呼稱)하기도 한다.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쌀가리 ; ‘쌀가루’의 사투리.
*법상(法床 부처님의 가르침 법/평상 상)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 동안거)가 아닌 시기.
*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미개구착(未開口錯)이면 제이구(第二句)인디‘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07 (가로판 p212~213)
[三句]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셋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이치부텀 봐야사 도를 닦는 것이여. 이치 보지 않고 어떻게 닦아?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여. 깨달지 못허고 닦는다는 것은 무명(無明)만 기루어’ ; 미심수도(迷心修道) 단조무명(但助無明),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82. (가로판 p86)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화두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일향간(一餉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밥 한번 먹을 때에도 깨달을 수 있고, 젓가락 집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잠깐 깨달라 가지고는 그다음 일이 설찬히 크다’ ; 오후보림(悟後保任).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찾다가 죽고!‘ ;
[참고 ❶] 송담스님(No.111)—1979년 동지 법회(1979.12.22)(7분)
우리는 진묵겁(盡墨劫) 전에 이미 깨달음,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부처님과 조끔도 차별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도 원만구족(圓滿具足)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구족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한 생각 딱 돌이키면—어디서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요, 누가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곳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원만구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기를 “찾다가 저 죽는다” 이런 너무나도 간결하고 송곳으로 찌르듯 하는 그러헌 법문을 해 주신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꽉 맥힌 의심, ‘이 무엇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았거나 누웠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죄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괴롭거나 쓰리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프다고 가려 내놓고, 바쁘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잠잘 때라고 가려 내놓고, 속상헌다고 가려 내놓고, 기쁘다고 가려 내놓고, 이리저리 다 가려 내놓으면 언제 공부를 해야 할 때냐?
중생은 단 한 생각 동안이라도 생각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생각 없는 편안하고 고요하고 그러헌 때를 찾어서 공부를 할려고 하면 일생 동안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는 보아야 하고, 귀를 통해서는 들어야 하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아야 하고, 숨쉬어야 하고, 입을 통해서 맛보고 말을 해야 하고, 손과 몸을 통해서는 따뜻하고 차웁고 딱딱하고 부드러운 거 그런 것을 다 감각을 해야 합니다. 잠시도 육근(六根)을 쉬고 일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나 끊임없이 자동적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활동하는 시간을 없이 하고 참선을 헐랴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토록 그 사람이 생각하는 참선은 헐 기약이 없습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위대하고, 너무나도 맑고 깨끗하고 영특해서,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언제나 어디에나 두루하지 아니헌 곳이 없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요.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육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진여불성의 표현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눈으로 볼 수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없고, 손을 통해서 잡을 수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는 깨달라야 합니다.
왜 눈으로 코로 귀로 육식(六識)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진여불성의 표현인데, 어째서 눈으로 볼랴고 하면 보이지 아니하고, 귀로 들을랴고 하면은 들리지 아니하고, 손으로 잡을랴고 하면은 잡히지를 않는 것이냐?
우리는 목숨 바쳐서,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라도 진여불성 아닌 것이 없고 법신불(法身佛) 아닌 것이 없건만, 왜 볼려고 허면 볼 수가 없고, 들을려고 허면 들을 수가 없느냐? 우리 모두에게 진묵겁 전부터서 원만구족해 있으면서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냐?
육도법계(六道法界)가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시기 때문에 육도(六道)를 여의고 적광토(寂光土)는 따로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요긴한 길은 오직 이 한마디 밖에는 없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할 때, 불이 펄펄 타오르는 지옥으로 느껴졌던 것이, 한 생각 돌이킨 곳에 바로 그것이 천당이 되고, 극락이 되는 그 묘한 방법이 바로 참선법, 활구참선법 ‘이 무엇고?’ 뿐인 것입니다.(12분14초~19분14초)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국사 지눌) 「진심소재(眞心所在)」
或曰息妄心而眞心現矣라 하니 然則眞心體用이 今在何處오
曰眞心妙體가 遍一切處니 永嘉云 不離當處常湛然이나 覓卽知君不可見이라 하며 經云 虛空性故며 常不動故며 如來藏中에 無起滅故라 하시며 大法眼云 處處菩提路요 頭頭功德林이라 하시니 此卽是體所在也니라
혹 말하길, “망심(妄心)을 쉬면 진심(眞心)이 나타난다니, 그렇다면 진심의 체(體)와 용(用)이 이제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답하길, “진심묘체(眞心妙體)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다. 영가(永嘉) 스님이 이르시길, ‘당처(當處)를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고요[湛然]하나, 찾은 즉은 알거라 그대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며, 경에 이르시길, ‘허공의 성품인 연고며, 항상 동(動)하지 아니한 연고며, 여래장(如來藏) 중에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 연고라’ 하며, 대법안[大法眼文益] 스님이 이르시길, ‘처처가 정각[菩提]의 길이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공덕의 총림이라’ 하시니, 이것이 곧 이 마음의 체(體)가 있는 곳이니라.
眞心妙用은 隨感隨現홈이 如谷應聲이니라 法燈云 今古에 應無墜하야 分明在目前이로다 片雲은 生晩谷하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하니 所以로 魏府元華嚴云 佛法이 在日用處하며 在行住坐臥處하며 喫茶喫飯處하며 語言相問處하며 所作所爲하나 擧心動念하면 又却不是也라 하시니
참마음[眞心]의 미묘한 작용은 감(感)을 따라 나타남이 산골짜기 소리를 응(應)하여 메아리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법등태흠(法燈泰欽) 스님이 이르시길, ‘고금에 마땅히 떨어짐이 없어 분명히 목전(目前)에 있다. 조각구름은 날 저문 골짜기에서 나고 외로운 학은 먼 하늘에서 내려옴이라’ 하니, 그런 까닭으로 위부(魏府)의 원화엄(元華嚴) 장로가 이르시길, ‘불법(佛法)이 날마다 작용하는 곳[日用處]에 있고, 행주좌와하는 곳[行住坐臥處]에 있으며, 차 마시고 밥 먹는 곳에 있고, 말하고 서로 묻는 곳에 있으며, 짓고 행위를 하나 마음을 들어 생각을 동(動)하면 또 옳지 못하니라‘
故知하라 體則遍一切處하야 悉能起用이나 但因緣有無不定일새 故로 妙用不定耳이어니와 非無妙用也이니라 修心之人이 欲入無爲海하야 度諸生死인댄 莫迷眞心體用所在也어다.
그러므로 알라. 마음의 본체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여 다 능히 작용을 일으키나니, 다만 인연의 유무(有無)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묘용(妙用)도 또한 일정하지 않거니와 묘용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마음 닦는 사람은 무위(無爲)의 바다에 들어가 모든 생사를 건너려고 한다면 진심(眞心)의 체(體)와 용(用)이 있는 곳을 미혹하지 말지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柱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 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 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무공저(無孔저) ; 무공적(無孔笛).
*저 ;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管樂器)를 통틀어 이르는 말. 젓대. 적(笛).
*무공적(無孔笛 없을 무/구멍 공/피리 적) ; 구멍 없는 피리.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영수(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도화(桃花 복숭아나무복숭아 도/꽃 화) ; 복사나무(복숭아나무)의 꽃.
*오얏 ; 자두.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영신(永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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