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천하미진수품(전강선사 No.018)—참선 공부는 쉽다.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 | 망상 그놈 때문에 참선을 허는 것 |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망상 자체가 각(覺) | 수은(水銀)의 비유.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 |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상기병 자연치료 | 금정사 선원에서의 일화,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 (게송)泥牛入海成龍去 破鼈依前入網羅.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사천하(四天下) ; 고대인도의 세계관 및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일곱 번째 산의 바깥에 있는 큰 바다에 사방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대륙을 사천하라 한다. 사주(四洲) · 사대주(四大洲) · 사대부주(四大部洲) · 수미산주(須彌山洲)라고도 한다.
(1) 3분 24초.
(2) 13분 50초.
[법문]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전018)
(1)------------------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따악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하나도.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2분2초~5분24초)
(2)------------------
직지사에서 며칠 쉬고서는, 동래온천이나 가서 온천을 좀 허고—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 하고. 간뎅이 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 쌓고 살 수가 있나. 그래 인자 동래 온천을 내려갔지. 가서, 금정사를 들어갔더니 기인벽이가 그 사람이 유담인데, 유담이 반가와 혀. 아주 반가와험서 오! 참 반가와 혀.
사방서 선지식 스님, 큰스님 찾아다니면서 인가(印可) 다 맞고 만공(滿空) 큰스님한테까장 다 돌아서 왔다는 것 다 알고. 뭐 그러니깐 뭐, 대접헐 건 사실이지 뭐. 오히려 그 조실(祖室) 큰스님네 오신 것보담도 더 반갑지. 새로 그렇게 인자 참, 학자로써서 아! 그렇게 모도 인가 맞고, 아! 그랬다고 인자 사방 가면 그 대접허는 것이 너무 과했제.
그런디 이번에 금정사에 들어가서는 너무 지나쳤지.
척 들어가니까 유담이 그때 감원(監院)을 허고 있는데, 그 만찬을 해 가지고는 적을 굽고 다시마를 잘 모도 굽고 그래 잘해서, 부꾸미 떡도 부치고 뭐 혀 가지고는 좋은 술을, 참! 좋은 술 일등주를 받아 가지고 와서, “아! 신 수좌(信首座)님, 참 내 뜻대로 내가 한번 이런 걸 차렸으니 잘 잡솨 주십시오. 내 어떻게 했으면 더 잘 좀 대접헐까 싶고, 얼마나 내가 좀더 잘 만족스럽게 헐까 싶고, 정성이 부족합니다. 좀 많이 잡솨 주십시오” 아! 출출헌 판에 참 좋드구만.
뭐, 그때쯤 인자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무약가요(無藥可療)여!
“약으로 낫을 수 없으니 자연치료를 해라” 자연치료를 허라고 떡 허니 의사가 그래 주어.
“그 어떻게 헌 것이 자연치료입니까?”
“뭐든지 그저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고, 그저 어디 가서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고. 내 마음을 활발스럽게 펴놓고, 그저 임산임수(臨山臨水)에 물을 대하나 산을 대하나 어떠헌 그 노는 경계를 대허나 구김살이 없이 활발스럽게 아주 이렇게 놀고 그러면은, 그 마음이 활발발(活潑潑)허면은 병이 나을 수 있으니” 아! 그러고는 ‘약으로는 못 낫우겄다’고 나를 갖다가 턱 퇴병(退病)을 혀.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인자 대체 그렇게 되었어. 공부허다가 나온 놈의 피가 그것이 어디 그쳐져야제. 인자는 하도 나오다 나올 것이 없으니까 목구녁 가슴속에 가서 간뎅이처럼, 묵 어리데끼 어렸어. 그려 가지고 콱 뱉으면은 뎅이 하나씩 나와. 인자 줄줄 흘리든 않고. 그러면은 그만 비린내가 들입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제.
그래 그만 인자는 뭐, 인자 이렇게 좀 돌아댕기는데, 여그도 갔다 저그 돌아댕기는데 속마음으로는 인자 자연생활을 헐 판이여. 자연치료를 헐 판이여.
인자는 욕을 먹던지 누가 찬성을 허던지 그런 데 얽힐 것 없고, 중옷을 입고 돌아댕김서 막행막식헐 수 없고. 첫째, 고기를 얻어먹어야 허겄으니, 고기도 맘대로 먹고, 술도 맘대로 그저 먹고, 춤출 디 있으면 내 멋대로 춤도 좀 춰 보고 이렇게 활발스럽게 인자 지낼 판인디, 속으로는 딱 작정해 놨지마는 그동안에 선방에 댕기면서 지낸 숙습(熟習)이 있어서, 그렇게 어떻게 당장에 태도를 행동을 고칠 수는 없고. 그래도 인자 어디 가면 대접헌다고, 날 대접헌다고 허면은 받아먹지, 뭐 어쩌?
아직 그때는 안 헐 때인디, 아! 안 헐 때고 잘 그저 옷 입고 그러고 거그를 들어갔는데, 인벽 수좌가—요런 놈 다 넣어야제. 거 넣어서 허제, 별수 있나?—대접헌다고 그래 내놨네.
뭘 빼고 좋은 것만 넣으면 쓸 수가 있나? 그런 것 저런 것 다 넣어야지. 술도 먹었다고 허면은 거, 술 먹은 중이라고 허면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계를 파(破)헌 중이라고 하지마는 안 넣을 수가 있나? 넣을 건 넣어 버려야지.
술을 따라 주는데, 안주 좀 먹고 술을 한잔 척 받아서 막 부을라 하니까, 병에 붓떼끼 때려 부을라 하니까—경명 스님이 일대 강사(講師)여! 강사라도 이만저만헌 강사여. 그만 저 안에 선방에 계시다가, 어째 누가 일렀는가 어쨌는가, 이짝 방에서—저짝 방은 선방이고, 내가 선방에 들어가서는 안 먹고 이짝 방에서, 주지실에서 먹는디.
누가 일렀든고 일러, “저 수좌가 와서, 정영신(鄭永信)이가 와서 막 술을 먹는디, 잔뜩 뭐 채려놓고 술 먹는디 거, 스님께서 좀 혼을 내시요” 인자, 수좌가 어째 그랬든가 부여.
그러니 쫓아 나왔어. 와서는 착 들어오더니 “여그가 어디라고 술을 먹어! 에이! 술이 뭐여? 에이!” 아, 이러면서 그만 노장(老長)이 입이 그냥 덜덜 떨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와.
그것 참! 나보담 나이 많으시고—나이 그 어른은 근 오십 되고, 나는 인자 뭐 스물서너 살 인자 되았는데. 아! 이거 참, 죄송도 허고, 일대 강사고. 아, 그것 참 ‘이놈의 술잔을 내던지고 그냥 나올까, 달아나 버릴까? 그냥 빌어먹을 먹어 버릴까?’ 쳐다 보고는. 그러다가는 ‘에이 이놈의 것’
“내가 기이 든 술잔입니다. 좀 가라앉히시고, 심로(心勞)허시고 들어 보십시오” 술잔 들고.
“화엄경이, 상본(上本) 화엄경이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니” 상본, 중본, 하본, 약본(略本) 그렇거든, 화엄경이.
“화엄경이,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이거 법, 무서운 법이여. 보살님들 다 알란 말이여. 여 술값 내는 것이여.
“이거, 화엄경 몇째 품입니까? 이거 좀,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고함을 내, 더 크게 질러 버렸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아! 일사천하미진수품이니, 뭔 안 든 것 있나? 중생(衆生) 환화(幻化)가 다 들었지. 추어망담(醜語妄談)도 다 들었지.
아! 그러니깐 경봉 스님도 물 대다가, 논에 물 대다가 막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그만, 막 들입대 그만 이러고 앉어서 그만—거그 그 인자 참, 한번 봐 노니까 아마 그러든 것이지. 그만 이래 가지고는.
양산서, 언양서, 여자가 모도 올라왔다 그 말이여. 경봉 스님 견성(見性)했다고 헌게 모도 와서 친견을 허고 절을 허니께, 이러고 앉어서 “네, 이년들! 응!” 아! 욕을 냅대 퍼붓고. “이게 화엄 도리지! 이게 화엄경이지!”(21분23초)
욕을 해도 이만저만헌 욕을 해 놨어. 내, 그 욕은 안 혀!
뭐 욕이, 그 욕이 화엄 도리라고 헌 것이여, 그게. 일대 강사인디 또 견성을 해 가지고 보니깐 틀림없거든! 추어망담(醜語妄談)이, 추헌 말과 거짓말이 어디 무슨 하나나 무슨 뭐, 어디 어김이 있나? 십삼천대천세계(十三千大千世界)에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이 다 딱딱 들어맞는 거여, 법에.
그러나 그 법은 그건 체중현(體中玄) 법밖에는 안 되는 것이여! 조사공안(祖師公案)은 안 되아. 공안이라는 것은 그런 법 없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그건 안 될 말이고.
그래 그만 들입대 욕을 막 드리 퍼붓고는 “이게 화엄경이야, 화엄경이여!” 아! 이러고 있었어. 그러니 뭐, 무엇이 도무지 무슨 뭐 일사천하미진수품 속에 안 들어갔어?
“이 술은 화엄경 몇째 품이냐?” 고함을 지르며 “몇째 품입니까?” 묻는디, 입이 딱 붙어 버렸네, 입이. 응! 아, 그렇게 고함을 질러 “술을 먹느냐?”고 허더니 입이 그냥... 어림도 없네. 내가 참, 기운이 나대! 아, 이런 놈의 것.
그래 가지고 대듬서, 여기를 잡고 막 대듬서 멱살이나 쥐고 “나가라 이놈!” 허면 큰일날 텐디, 그냥 거기 쩔려 가지고. 강사는 강사인디, 화엄경 바로 분명히 있거든! 그런게 뭐 꼭 물을 말이지, 뭐.
‘몇째 품이냐?’고 묻는데, 딸싹 못했네. 허! 그것 참. 아무리 글을 잘해도 글 가지고는 못혀.
그만 암말도 않고 이리 쳐다보고 있는디, 술을 들고는 쭈욱 마셨어. 쭉 들어마시고서는, 안주 턱 한 점 먹고 입을 싹 닦고는,
니우(泥牛)는 입해성룡거(入海成龍去)헌디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니라
나무~아미타불~
니우(泥牛)는 입해(入海)하야 성룡거(成龍去)헌디,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 용이 되아 갔는데,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로구나. 다리 뿌러진 자라는 앞을 의지해서 그물에 들어갔구나.
아, 이렇게 점검을 탕! 해 버렸제. 딸싹 혀?
술 잘 먹고, 그 잘 채려 논 놈 배(아주) 그거 잘 먹고, 나 그러고 오래 안 있었구만. 또 그러고 그냥 나오제 뭐 그렇게, 처억 한번 나온 일이 있고.(33분13초~47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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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 이 내용의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問 : 本旣是佛 那得更有四生六道種種形貌不同
배휴가 여쭈었다. "중생이 본래 부처라고 한다면 어째서 4생(四生) 6도(六道)가 있어 여러 모습들이 같지 않습니까?
師云 : 諸佛體圓 更無增減 流入六道 處處皆圓 萬類之中 箇箇是佛 譬如一團水銀 分散諸處 顆顆皆圓 若不分時 祇是一塊 此一卽一切 一切卽一 種種形貌 喩如屋舍 捨驢屋入人屋 捨人身至天身 乃至聲聞緣覺菩薩佛屋 皆是汝取捨處 所以有別 本源之性 何得有別
황벽선사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는 그 본체가 원만하여 거기에 또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 육도(六道)에 흘러든다 할지라도 그 어느 곳에서나 원만하다. 이와 같이 모든 종류의 중생들도 하나하나가 부처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水銀)이 사방으로 나누어 흩어질지라도 그 한 방울 한 방울은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뉘지 않았을 때에도 다만 한 덩어리일 뿐이니, 이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다.
여러 가지 모습들은 비유하자면 집과 같은 것이다. 즉 나귀의 집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사람의 몸[人身]을 버리고 하늘의 몸[天身]에 이르며, 내지 성문 · 연각 · 보살 · 부처의 집은 모두 너 자신이 어디에 들어가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집의 차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래 근원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사천하(四天下) ; 고대인도의 세계관 및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주위를 일곱 개의 산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일곱 번째 산의 바깥에 있는 큰 바다에 사방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대륙을 사천하라 한다. 사주(四洲) · 사대주(四大洲) · 사대부주(四大部洲) · 수미산주(須彌山洲)라고도 한다.
[참고 ❶]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5분25초)
**아래 송담스님 법문은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하신 법문입니다.
<송담스님 법문>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하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 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번 움직이고 발 한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한 것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하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한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하는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놓고 절만 많이 하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 낼 줄 알고 진심 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한다면 나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8분4초~13분29초)
[참고 ❷]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 (3분10초)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아 그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 말이여.
어디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쳐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마는,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해.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 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허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27분45초~30분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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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 하고. 간뎅이 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 쌓고 살 수가 있나’ ; 상기병(上氣病).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간뎅이 ; 간덩이(肝--).
*간덩이(肝--) ; ‘간(肝)’을 속되게 이르는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 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 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 · 정혜사(定慧寺) · 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 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 · 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신수좌(信首座) ; 전강선사(田岡禪師)의 별칭.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객 스님들은 법명의 ‘뒷 글자[信] + 수좌’를 붙여 호칭(呼稱)하기도 한다.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활발발(活潑潑)하다 ; 더없이 활발하다(생기 있고 힘차며 시원스럽다).
*활발발(活潑潑 살다·생기가 있다 활/물을 뿌리다·활발하다·솟아나다 발) ; 고기가 기운 좋게 물 위로 뛰노는 모습.
*퇴병(退病) ; 병(病)을 퇴각(退却)하게 하다. 병을 물리치다.
*들입대 ; 들입다. 세차게 마구.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숙습(熟習) ; 익숙하여 몸에 밴 습관.
*계를 파(破)하다 ; 계(戒)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김.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정영신(鄭永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노장(老長 늙을 로/길·맏·어른·우두머리 장) ; ①노장 스님의 줄임 말. ②노스님(나이 많은 스님)의 존칭. 나이가 많고[老] 덕행이 높은[長] 스님.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심로하다(心勞-- 마음 심/일하다·힘들이다·애쓰다·근심하다 로(노)) ; 마음을 수고스럽게 쓰다. 마음이 시달리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 • 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친견(親見 가까이하다·몸소·친히 친/보다·뵙다·만나다 견) ; 몸소 가까이서 뵙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두두물물(頭頭物物) ; ‘두(頭)‘는 사물이나 사람의 단위. ‘각각의 존재[頭頭]와 모든 사물[物物]’이라는 말. 곧 모든 것을 가리킨다.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 • 句中玄 • 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가로판 p215, p219)
[三玄] 삼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삼현 ; 보조국사의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서.
[참고 ❶] 『보조국사어록,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보조지눌 1158~1210 |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p176~180. p200~201.
『선문촬요(禪門撮要)』 (청허당 휴정 엮음 | 연관 옮김 | 희양산 봉암사)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p542~546.
問 向來所說 旣聞命矣 古今禪門達者 見性成佛 豈非一分性淨之體 不具相用耶
또 물었다. “지금까지 한 말은 잘 들었다. 그러나 고금 선문(禪門)의 통달한 사람이 견성하여 성불한 것이 어찌 일부분 성정(性淨)의 체성이 모양[相]과 작용[用]을 갖추지 못함이 아니겠는가?”
答 不然 汝豈不聞 永嘉眞覺大師 一宿曹溪 開悟本心作歌 其略 曰 心鏡明鑑無碍 廓然瑩徹周沙界 萬像森羅影現中 一顆圓光 非內外 一性 圓通一切性 一法 遍含一切法 一月 普現一切水 一切水月 一月攝 諸佛法身 入我性 我性 還共如來合
나는 답하였다.
그렇지 않다. 그대는 왜 듣지 않았던가? 영가 진각(眞覺) 대사는 조계(曹溪)에서 하룻밤을 묵다가 본심을 깨치고 노래를 지었었다.
간략히 말하면 ‘마음 거울이 밝아 걸림이 없음이여. 탁 트이고 밝게 사무쳐 사계(沙界)를 두루했다. 삼라만상의 그림자가 그 가운데 나타나니, 한 덩이 뚜렷한 광명은 안팎이 없다. 한 성품이 일체의 성품에 뚜렷이 통하고 한 법이 일체의 법을 모두 머금고 있다. 한 달이 일체의 물에 두루 나타나매, 일체의 물의 달이 한 달에 포섭된다. 모든 부처의 법신이 내 성품에 들어오매, 내 성품이 여래와 하나로 합한다’ 하였다.
又英邵武 開悟本心作偈 其略 曰 十方齊現一毛端 華藏重重帝網寒
又大慧禪師 秉拂云 欲識佛性義 當觀時節因緣 時節 若至 其理自彰 乃至須知微塵諸佛出世 降王宮坐道場 轉法輪降魔軍 度衆生入涅槃 摠不出這箇時節 諸人 若信得及 無邊刹境 自他不隔於毫端 十世古今 始終不離於當念
또 영소무(英邵武)도 본심을 깨치고 게송을 지었었다. 간략히 말하면 ‘시방 세계가 한 털끝에 한꺼번에 나타나매, 화장세계(華藏世界)가 중중하여 제망(帝網)이 차다[寒]’
또 대혜(大慧) 선사는 불자(拂子)를 들고 ‘불성(佛性)의 뜻을 알고자 하면 시절인연을 관찰해야 하나니, 시절이 오면 그 이치가 스스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티끌수 같이 많은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와 왕궁에 태어나 도량에 앉고, 법륜을 굴려 마군을 항복하게 하고 중생을 구제하신 뒤에 열반에 들되, 그 모두가 이 시절을 벗어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그런 줄을 믿으면 가없는 세계의 경계의 나와 남이 털끝만큼의 간격이 없고, 십세(十世)의 고금(古今)이 처음과 끝이 지금 바로 한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 하였다.
如是等開悟本心 得見自心鏡內 帝網重重無盡法界者 禪門傳記中 不可勝數 昧者 不知其源 不覽禪錄 亦不見華嚴大論之旨故 纔聞禪者 說卽心卽佛 以謂不過性淨佛也 是大愚惑
非謂華嚴敎門 說理未盡 但學者 滯在言敎義理分際 未能忘義了心 速證菩提 所以達摩西來 欲令知月不在指 法是我心故 不立文字 以心傳心耳
본심을 깨치고 제 마음 거울 속에 제망(帝網)처럼 중중한 무진법계(無盡法界)를 본 이런 일들은 선문의 기록 가운데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있다. 그런데 우매한 사람들은 그 근원을 알지 못하고 선문의 기록도 보지 못하고, 또 화엄대론(華嚴大論)의 뜻도 보지 못하였으므로 참선하는 이들의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것은 성정(性淨)의 부처에 지나지 않는다 하니, 매우 어리석고 미혹한 일이다.
화엄교문에서 이치를 다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학자들이 말로 표시된 의리(義理 사상이나 내용)의 한계에 걸리어, 능히 뜻을 잊고 마음을 깨달아 보리를 빨리 증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달마 스님이 서쪽에서 와 달은 손가락에 있지 않듯이, 법이 곧 내 마음임을 알게 하려 하셨기 때문에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마음을 마음에 전한 것이다[以心傳心].
是以禪門 只貴破執現宗 不貴繁辭義理施設 故 所有破執言句 近於一分理性 離言絶慮之義 昧者 不知其義 每將相似語例 便謂同於頓敎 是大不然 設於華嚴無盡法界重玄法門 生於法愛 解分 未忘 亦爲所破也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다만 집착을 부수고 종지(宗旨)를 나타내는 것을 귀히 여기고, 번거로운 말로 뜻을 나열해 놓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착을 타파한 여러 가지 언구(言句)가 일부분 말을 여의고 생각이 끊어진 이성(理性)의 뜻에 어느 정도 가깝지마는, 우매한 사람들은 그 뜻를 알지 못하고 매양 비슷한 말의 예(例)를 가져 돈교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설사 「화엄경」의 다함없는 법계의 매우 심오한 법문에 대해서도 그 법에 애착하여 지해(知解)를 버리지 못하면 그것도 타파해야 할 것이다.
台敎 亦云 圓門生着 尙爲初敎 所破 但性海果分 是法界證處 不可預談 亦不是心思意解 所及 故 淸凉祖師 亦云 圓音 非扣而常演 果海 離念而心傳 又云 佛證離言
是知禪門 離念相傳 是頓證法界處也 決非頓敎中 不說法相 唯見眞性 一念不生 卽名爲佛也
천태교(天台敎)에서도 ‘원문(圓門)이라도 집착하는 마음을 내면 초교(初敎)와 같이 타파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다만 성해(性海)의 과분(果分)은 법계를 증득한 곳이라, 미리 말할 수도 없고 또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뜻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량 조사는 ‘원음(圓音)은 묻지 않아도 항상 연설하시고, 과해(果海)는 생각을 여의고 마음으로 전한다’ 하고, 또 ‘부처님은 말을 여의었음을 증득하셨다’ 하였다.
이로써 선문에서는 생각을 여의고 서로 전한 것이 법계를 단박 증득한 곳이요, 결코 돈교에서와 같이 법상(法相)을 설하지 않고 오직 진성만 보아 한 생각도 내지 않는 것이 곧 ‘부처’인 것은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何以知其然 禪有三玄門 一 體中玄 二 句中玄 三 玄中玄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선문에는 삼현문(三玄門)이 있다. 첫째는 체중현(體中玄 체 가운데 현)이요, 둘째는 구중현(句中玄 구 가운데 현)이며, 셋째는 현중현(玄中玄 현 가운데 현)이다.
初體中玄門 引無邊刹境 自他不隔於毫端 十世古今 始終不離於當念等事事無碍法門 以爲初機悟入之門
此亦是言敎中 解分 未忘故 以句中玄無跡平常灑落言句 令其破執 頓忘佛法知解也 此亦有灑落知見 灑落言句故 以玄中玄良久默然棒喝作用 鍛鍊
當此之時 頓忘前來第二玄門灑落知見 灑落言句 故 云 得意忘言道易親 是謂頓證法界處也(此中三玄 雖非臨濟本意 且順古師之意 明之)
첫째의 체중현의 문에서는 ‘가없는 세계의 경계의 자기와 타인은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고, 십세(十世)의 고금이 처음과 끝이 지금 바로 한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권1)’는 등의 일일이 서로 걸리지 않는[事事無碍] 법문을 인용하여, 첫 근기의 깨쳐 들어가는 문을 삼았다.
그러나 이것도 언교(言敎)에 대해 지해(知解)와 분별을 버리지 못했으므로, 구중현의 자취 없고 평상(平常)한 쇄락(灑落 산뜻한)한 언구(言句)로 그 집착을 부수어 불법의 지해를 단박 잊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쇄락한 지견과 쇄락한 언구가 있기 때문에, 현중현의 양구(良久)와 방할(棒喝) 등의 작용으로 단련하는 것이다.
이때에는 앞의 둘째 현문의 쇄락 지견과 쇄락 언구를 잊기 때문에 ‘뜻을 얻고 말을 잊으매 도와 친하기 쉽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법계를 단박 증득하는 곳이다.(이 가운데 비록 삼현三玄이 임제臨濟의 본의가 아니나 옛 스님의 뜻을 따라 밝힌 것이다)
禪門 亦有爲初機下劣人 指示隨流妄染中 有性淨妙心 令其易解信入 信入然後 忘其解分 方爲親證
若不忘解分 坐在解脫深坑 不能於萬行緣起門中 轉身無滯故也
선문에도 처음 들어온 사람이나 하열한 근기를 위해 흐름을 따르는 허망과 더러움[妄染] 속에도 성품이 깨끗한 묘한 마음[性淨妙心]이 있다고 가리켜 보여, 그들로 하여금 쉽게 알고 믿어 들어가게 하였다. 믿어 들어간 뒤에 그 지해와 분별을 잊어야 비로소 몸소 증득하였다 할 수 있다.
만약 지해와 분별을 잊지 못하면, 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 속에 앉아 있을 것이니, 그것은 온갖 행의 연기문 가운데서 몸을 돌려 걸림이 없이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고 ❷] 『보조국사어록,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심을 풀어주는 글)’ p210~211. P216~217. P229. P231.
『선문촬요(禪門撮要)』 (청허당 휴정 엮음 | 연관 옮김 | 희양산 봉암사)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p564~565. P571.
〇禪門亦有爲密付難堪 借敎悟宗之者 說眞性緣起 事事無碍之法 如三玄門 初機得入 體中玄所明云 無邊刹境自他 不隔於毫端 十世古今始終 不離於當念 又云 一句明明該萬像等 是也
선문에도 은밀히 부촉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 교문을 빌어, 종지를 깨닫는 자를 위하여 진성(眞性)이 연기(緣起)하는 사사무애 법을 설하는 경우도 있으니, 삼현문(三玄門)에서 처음 근기[初機]가 들어갈 수 있는 체중현(體中玄)에서 밝힌 것과 같다. 거기에 “가없는 세계 경계[刹境]의 나와 남이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고, 십세(十世)의 고금이 처음과 끝이 지금 바로 한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권1)”하고, 또한 “한 글귀가 밝고 밝아 온갖 현상을 거두어 들인다”한 등등이 이것이다.
禪門中 此等圓頓信解 如實言敎 如河沙數 謂之死句 以令人生解碍故 竝是爲初心學者 於徑截門活句 未能參詳 故 示以稱性圓談 令其信解不退轉故 若是上根之士 堪任密傳脫略窠臼者 纔聞俓截門 無味之談 不滯知解之病 便知落處 是謂一聞千悟 得大摠持者也
선문 가운데도 이런 원돈(圓頓) 신해(信解)하는 진실한 말씀이 항하의 모래수와 같지만, 이것을 사구(死句)라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해의 장애를 내게 하기 때문이며, 아울러 초심 학자는 경절문(徑截門)의 활구(活句)를 아직 참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품에 부합하는 원만한 말씀을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믿고 이해하여 퇴전치 않게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상근기로서 은밀히 전한 뜻을 감당하여 기존의 격식[窠臼]을 벗어날 수 있는 이라면, 경절문의 맛없는 말을 조금 듣기만 하고도 알음알이[知解]의 병통에 걸리지 않고 곧 속뜻[落處]을 아니, 이 이를 ‘하나를 듣고 천을 깨달아 대총지(大摠持)를 얻은 자’라 한다.
〇禪門亦有多種根機 入門稍異 或有依唯心唯識道理 入體中玄 此初玄門 有圓敎事事無碍之詮也 然 此人 長有佛法知見在心 不得脫灑 或有依本分事祇對灑落知見 入句中玄 破初玄門佛法知見 此玄 有徑截門 庭前栢樹子麻三斤等話頭
선문에도 또한 여러 가지 근기가 있어서 들어가는 문이 다소 다르다. 어떤 이는 유심(唯心)과 유식(唯識)의 도리에 의하여 체중현(體中玄)에 들어가기도 하니 이는 처음 현문[初玄門]인데, 원교의 사사무애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항상 불법의 지견(知見)이 마음에 남아있어서 이를 벗어나 깨끗함을 얻지 못한다.
어떤 이는 본분사에 의지하여 쇄락한 지견에만 대하여 구중현(句中玄)에 들어가 초현문(初玄門)의 불법 지견을 타파한다. 이 현문(玄門)에 경절문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와 마삼근(麻三斤) 등의 화두가 있다.
然 立此三玄門古禪師之意 以本分事祇對話頭 爲破病之語 故 置於第二玄 然 未亡灑落知見言句 猶於生死界 不得自在 故 立第三玄中玄 良久默然棒喝作用等 破前灑落知見 所以云 三玄施設 本由遣病 若望上祖初宗 卽未可
그러나 이 삼현문을 세운 것은 옛 선사의 뜻인데, 본분사에 상응하는 화두로 병을 타파한다는 말을 삼기 때문에 제이현(第二玄)에 둔 것이다. 그러나 쇄락한 지견이라는 언구를 잊지 못하여 오히려 생사에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삼(第三) 현중현(玄中玄)의 양구, 묵연, 방, 할의 작용 등을 세워서 앞의 쇄락한 지견을 타파한다.
그러므로 “삼현문을 시설한 것은 본래 병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 만일 옛 조사의 처음 종지에서 보면 그것도 옳지 않다”
*체중현(법문에서) ;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2분 48초)
〇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한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19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〇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2분 26초)
〇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어떤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가려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2분 36초)
〇가끔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고 ❺]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에서.(반기이파) (4분 18초)
〇‘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참고 ❻]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1분 57초)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玄中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 말이여.(32분56초~34분55초)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배 ; ’아주, 매우’의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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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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