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법거량2022. 4. 30. 20:34

법거량(전강선사 No.014)—만공스님과 법거량 | 전강스님에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법을 쓰신 만공스님의 지도 | 판치생모를 하다 마조원상 공안을 보다 |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만공 · 한암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 만공선사로부터 받은 전법게(傳法偈).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41분 32초)


[법문] 전강선사(No.014)—전강선사 일대기 제7호(경술1970년 12월 10일 새벽.음) (전014)

만공(滿空) 스님께 와서 절을 척 했다.
대번에 와서 절헐 것 아니여? 그전에 모시고 있다가 나갔다 인자 휙 둘러서 북회우동류(北廻又東流)를 해서 왔으니까.

절을 척 허니까 “심마물(甚麽物)이냐? 무슨 물건이 왔느냐?” 묻네.
절을 한 자리 해 놨으니까 또 절을 나부시 했다. 절 두 번 했지.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똑같이, 조끔도 변태 없이.
그래 그때는 주먹을 불끈 들어. 아! 이런 놈의, 다시 의심 없이 주먹을 불끈 들었다.

허! 그만 거그서... 아따! 그때 그 큰스님의 얼굴! 그만 찌푸리시면서 “저! 저렇게 체면없는 사람이 견성했닥 햐? 네 습기(習氣)냐? 네가 그 무슨 체면이 없어 이러허냐. 무슨 짓이냐” 아따! 이러고는...

헌디, 나는 그래도 말이여. 나는 옳게 바로 일렀는데, 나를 그만 여지없이 방(棒) 주니라고 그런 줄만 알았어. 방맹이는, 그저 방맹이라는 것은 이 선문(禪門)에는 방(棒) · 할(喝)이니까, 방(棒) 아니면 할(喝)이니깐 ‘그저 학자 제접(提接)하는 법이 여차(如此)헌가 보다’ 그랬어.
그래놓고는 나는 그 나대로 ‘알았다’ 한다. 나대로. 나대로 그만, 하나 그런 거기에 구애없이 그만 내대로 이렇게 지냈다.

그다음에는 나를 보기만 하시면은 비웃어 버려.
“허! 저 사람, 저런 사람이 견성했다 하니, 저것 참! 불법이 이것 말세 불법이 이렇게도 이럴 수가 있는가? 저 선지식 스님네 다 가서 모도 뭐 인가 맞고 왔고, 가 다 뭐 법문허고 왔다고 그런 자반대구(者般大口)를 벌려?” 아! 이러고는 늘 조롱을 허네. 한번 들어 조롱을, 한번 나를 갖다 이렇게 비웃어 주어.

또 두 번째 늘 그만, 뭐라고 말허면 “그 사람이 자네보담은 낫네” 아! 이래 주고. 뭔 말만 허면 이려! 아 이런, ‘모도 나보담 낫다’고 해 버리고 나를 비웃어.
한 번 혀. 두 번 혀. 그래 따나덜 못혀, 갈라고 해도—여지없이 다른 큰스님네처럼 인가(印可)만 척 해주면은 나는 거그서 인자 떠날 작정만 허고 있는데, 안 해 줘.

몸뚱이는 지금 뭐 당최 병이 들어서 그 피를 하도 쏟아서, 다른 병은 없는디 피를 다 빼 버리는 놈의 병이여. 그래 (숨이) 가빠서 못살아. 그러니 어디 가서 무슨 약이라도 해 먹고, 어디 가서 무슨 뭐 별짓이라도 해 봐야 허겄는데, 인가를 해 주셔야제? 인가를 안 해 줘.

“왜, 학자가 바로 깨달랐을 것 같으면은 어떻게 인가를 안 해 줄 수가 있나? 인가를 안 해 주어 봤던들, 내가 오히려 인가 안 해 준 사람이 학자한테 거 벌써 밟혔는데, 어떻게 인가를 안 해 줄 것인가”
아! 이렇게 말씀을 허다가 또 비웃다가. 이것 참! 큰스님이 그래 쌓은게 안 되았어.

한 번 그려, 두 번 그려. 누차 그러니까 떠날 수도 없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러면은 네가 그렇게 다 깨달라서 알았다 하니, 저 매미가 저렇게 우는데 저 매미 우는 소리를 그만 두고, 우는 소리는 그 그만 두고, 매미 울음 나온 그 전(前)을 향해서 매미의 그 면목을 잡아오너라” 아! 그렇게 묻는다 그 말이여.

그래 그 소리에 모도 여러 사람들이 여러 가지 대답을 다 이렇게 헌디, 석암 스님이라고 있어. 이석암. 아! 이석암이라고 헌 이는.

“매미 마음을 잡아오면은 내가 한 택 내고, 매미 우는 놈, 그 소리 그만 두고 그 매미 울기 전의 그 마음을 못 잡아오면은 내가... 잡아오면은 내가 한 택을 내고, 못 잡아오면은 못 잡아온 사람이 한 택씩을 내라” 여름 산림, 해제 산림 끝에 그렇게 물었어.

물으니까... 내가 이 법문은 처음이여. 그거 뭐, 그런 것 그전에는 안 했어.

다 뭐라고 대답을 허고, ‘매앰 매앰’ 소리를 허기도 허고, 무슨 뭐 뭐 그저 모도 자기 멋대로 뭐라고 말헌디, “다, 매미 마음은 못 잡아왔다. 안 된다” 허고는.
이석암이라고 헌 이가 다 이른 뒤에 돈을 떡 가지고 와서, 돈을 그때 얼맨지 몰라. 돈을 상당히 얼매를 가지고 와서 앞에다가 돈을 척 놓고 “저는 한 택 냅니다” 그러고는 절을 척 허고 나가.
“아! 저 사람이 매미 마음을 잡아왔나?” 그러신다 그 말이여. 그 말뿐이여, 다른 말은 없고.

이렇게 법문을 묻다가 그래 놓고는 “그 의지가 무슨 의지인고?”
아! 이래도, 그 전 같으면 뭐 당최 무슨 주먹을 못 내밀면 할(喝)이라도 한 번 헐 수 있고, 뭐 예배라도 허고 갈 수도 있고, 별짓 다 헐 수 있지마는 거 당최 대답 못하겠어, 그때부텀은.
절려서, 아니라고 벼락 내는 바람에 절려서 당최 못허겄어. 말 나오지도 않고, 원! 정이 떨어져서 당최 입도 못 벌리겄고 아, 이거 불안해 죽겄고!

참! 그때 부애... 그 분심(憤心) 일어나는 거. 분심이지, 뭐 부애가 날 것이여?
“어째서 내가 걸려 가지고는 저 조실 스님 밑에 저래 꼼짝을 못하고. 에이! 이놈의 것, 한바탕 해 봐야 겄구나! 그까짓 놈의 몸뚱이는 허다가 죽으면 뿐이제! 거, 뭐 더 말헐 것 뭐 있나”

앞에, 여름이니까 그 보덕사(報德寺) 요렇게 앞에 나가는 조그만헌 그 큰방 앞에서 보면 나가는 산이 있는데, 그 산 위에다가서 운동대를 딱 요렇게 짬매 논 게 있는데, 고놈을 붙잡고 서서, 안 잘라고.
어디 앉으면 잠이 오고, 앉으면 그냥 이려. 피가 하나도 없으니께, 뭐 앉어서도 못해, 인자 정진도. 빼짝 말라 가지고 죽게 된 것인게, 공부를 허라는 소리도 안 혀, 만공 큰스님이.

나 혼자 허거나 말거나—누가 허라고 해서 헐 것이여? 내가 내 생사 무서운 발심(發心)헌 사람이 누가 허라고 해서 할 것이여? 누가 ‘해라, 마라’ 할 것이여. 규칙을 안 지킬라니, 안 지킬 수 있어?

뭐라고 그 장난을 내고, 그저 그만 제멋대로 혼자 지내고, 제멋대고 휙 달어나고 그럴라면 뭣 헐라고 글쎄 청정 대중(淸淨大衆)에 와 지내냐 그 말이여.
청정대중에 그렇게 공부를 헐 수 없지마는, 내 그때 산철에 들어와 가지고 아직 결제도 안 했는데 그대로 대중에 내가 섞여 있지만, 어디 말 한마디 혀? 무슨 말을 혀? 한마디 없어! 다른 말 없어. 제대로 묵언(默言)이제, 무슨 놈의 말이여.
그러니 거기에 무슨 내가 갔다왔다 허는 거, 규칙 어기는 거 뭐 있는가? 하나도 규칙 어길 것 없제.

그러고 나서 가행정진(加行精進)을—넘 잘 때는 나 혼자 가서 이놈을 붙잡고, 양쪽 손으로 딱! 붙잡고는 착 해서.
발, 이렇게 손 닿으면 붙잡으면 대져, 여그 인자 붙잡으면. 올라가면 올라가지만, 대면 발이 땅에 닿아져. 그래 조끔 짤루어서, 좀 키가 절루어서, 밑에다가 돌을 하나 납닥헌 놈 하나 갖다 놓고 올라서서 따악 붙잡고서는 공부를 허네.

공부를 허는디, 하나도 화두(話頭)가 맥혀야 하지! 화두 의심(疑心)이 있어야 하지! 다 뭐, 의심 하나도 없어.
없는데, 아니라고만 헌다. 아, 이런 놈의...

그래 거그서... 다 그렇게 여지없이 공안을 봐버렸으니깐 의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혼자 내 딴에 의심이 없든 것이제. 아! 우선 봐 봐. 세상에! 무슨 뭐 뭐 화두가 어디 걸릴 것이 무엇이여?

불불(佛佛)이 불상견(不相見)도 걸릴 것이 없고, 석가(釋迦)가 유미회(猶未會)라고 해도 걸릴 것이 없고, 천성(千聖)이 역불식(亦不識)이라고 해도 걸릴 것이 없고, 유(有)도 아니요, 무(無)도 아니요, 비유(非有)도 아니요, 비무(非無)도 아니요, 허무(虛無)도 아니요, 뭐 허공(虛空)도 아니요, 비허공(非虛空)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닌 그곳에 나아가서 무엇이 하나가 있다 헌들, 그것도 패궐(敗闕)이라, 그것도 허물이라고 해 놨으니, 아! 무엇이 걸릴 거냔 말이여?

일체 공안이 다 그런 것이지 뭐 다를 것이 무엇이 있어? 천 공안, 만 공안이 일관도천(一串都穿)이라고 했으니 한 도리(道理)지 두 도리가, 둘 될 게 뭐 있어?
아, 이래 가지고는 그만 탕탕호연(蕩蕩浩然) 해 버려서 걸릴 것이 있어야지? 아! 이런 놈의 꼴 보소. 뭣이 탁 맥혀야 허는데, 맥힐 게 있어야지?

아! 그래 가지고 공부를 헐라니 되어야지.
당최 아니라고는 허시는데, 뭐라고 말하면 대답험서도 인자 그놈의 대답을 헐 수가 없네. 또 뭐라고 꼭 맞게 뭐라고 해야 헐텐디, 뭐라고만 해 놓으면 아니라고 해 버리니, 이거 참말로 큰일나...

그래 가지고 가만히 화두를 자꾸 여러 공안을 갈려 보다가, 요놈도 좀 해보고—거그서 인자 혼자, 화두 내버리고 지내다가 요놈 좀 해보고.
소용없어. 안 걸린 게 못혀. 의심이 나야 하지.

참! 거그 걸려 놓으면 큰 병이여. 그게 체중현(體中玄)이거든. 체중현이여. 체중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인디, 체중현이여.
지무생사(知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거든. 그 지무생사여. 생사 없는 이치, 그게 지무생사여.

오늘 아침 법문이 이랬다저랬다, 이리갔다 저리갔다, 동서남북 야단이여. 그러지마는 거기에 무슨 뭐, 그 질서가 다 있어! 없는 거 아니여.

그 지무생사(知無生死)만 허드래도... 뭐여, 이것, 이런 것 분석해서 얘기헌 것은 화두 학자한테, 현구(玄句) 학자한테 자미없는 것이여. 허니까, 너무 많이 말자 그 말이여.

허지마는, 위산 스님 같은 이가 “모도 다 옛 일이니, 지내간 사(事)가 다 왕사(往事)는 물론 왕사다. 왕사는 그만두자. 여하시(如何是) 지금 사(事)냐? 지내간 일 그만두어. 어떤 게 지금 일이냐?” 허니께,
위산(앙산) 스님이 차수근전(叉手近前)이라. 차수(叉手), 이렇게 손을 이렇게 차수해 가지고 앞으로 척 왔다.

“유시(猶是) 지금 사(事)니, 오히려 지금 일이니 왕사(往事)를 자마(作麽)냐?”
(앙산 스님이) 뒤로 물러가버렸다.

그런 것이 그것이 뭣이냔 말이여? 왕사도... 내 혼자 허는 거여 이게.
‘왕사도 쓸데없는 것인데, 지금 사(事)면 또 뭣허는 것이냐?’ 아! 이렇게 해 가지고, ‘지금 사, 왕사가 그것이 어디 가서 무슨 뭐 무엇이여 그것이’

말키 도무지 걸림이 하나도 없으니까 화두를 들을 수가 없어. 이러고 잡고 섰어도.
그 가운데 화두를 한번 척, 그 여러 화두를 이놈을 한번 해보니, 판치생모가 제일 걸렸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版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났다’는 놈이 걸렸거든. 어째 걸렸든지 걸렸어.

‘판대기도 본래 그까짓 놈의 것이 무슨 없는 것이요, 거기에 터럭이는 또 뭣이 그 있는 것이냐? 판대기니 무슨 뭐 터럭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없는 것이 그것이 생사 없는 것이다. 생사 없는 곳을 일러 주니라고, 판대기고 털이고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 다 붙여 놓은 것이로구나’
이렇게 했다가도 ‘그게, 고인(古人)의 공안이라 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여. 그런 것이 아니여! 전부 모도 이렇게 고인네가 모도 말씀해 논 것이 그렇게 그만, 무무(無無)로만 때려 붙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 이렇게 차츰차츰 들어가면서... 분석을 안 했어. 따지들 안 했어.

고래 따지면은 고런 못된 버릇이 나와!
‘판대기는 그 어디 있는 것이며, 터럭은 어디 있는 것이며, 본래 생사가 없는 곳에다가 그놈 때려 붙여 논 것이제’ 요렇게 따져 놓으면은 참선케니는 문둥이여 그게! 문둥이 참선이라! 그게.

그 말, 부디 들으란 말이여. 그런 짓 헐라거들랑 당최 그만 선방에 들어올 것도 없어. 하루인들, 한 시간인들 왜 들어와서 공송(空送)을 왜 해? 왜 그 죄를, 대죄를 지어?

참으로! 조사 면목(面目)이 거기 있고, 조주 면목이 거기 있고, 내 면목이, 생명이 거기 붙어 있어.

그 꿀 한 방울 먹을 때에 “달다!” 헌 놈, 고 말은 그 일러 놨지마는 절대 몰라!
얼른 들으면은 “달다! 헌 놈이 그 참 그 맞는가 보다. 어쩌고” 그거 소용없는 소리여. 안 되아.

바로 척! 바로 깨달라야 헌다 그 말이여. 되들 안해.
그렇게 잘 일러... 그만두고.

그래 그놈이 걸려서 그때부텀은 따지는 법 없어. 절대 따지지 않고, ‘어째서 판대기 이빨이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나?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아! 요놈만 헌다. 밥만 먹으면 고놈 허고, 밥 먹을 때도 고놈이 인자, 고놈만.

‘내가 따진 데 가서, 분석헌 데 가서 큰 죄를 짓고 있구나’ 때려 치워번지고는.
그전에도 그래 따지든 안 했지마는, 내가 점점 내가 나를 단도리허기를, 단속허기를 그렇게 했다 그 말이여.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아! 요렇게 한... 그냥 인자 그러다가 결제(結制)가 돌아와서 결제를 안 갔지. 인자 못 가지. 큰스님한테 인가를 받아야 가지, 인가 없이 가? 죽어도 안 가지! 뭔, 천만 번 가라고 해야 소용없어.
백지장(白紙張)같이 되아 가지고는 뭐, 당최 앉어 좌선은 못허니께, 헐 수 없은게 어디 밖에 가서 혼자 그저 섰다가 앉었다, 인자 이러고 허지. 가다니? 죽으면 거그서 그 자리에서 죽었지, 내 가기는 어떻게 갈 수 있느냔 말이여?

그래가지고는 인자 결제를 허고선 결제 헌 뒤에 반 가량 되았구만, 반까장.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뿐이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뿐이지, 조주의(趙州意)를 가 찾을 것도 말 것도 없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가 알 수 없거든.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그러면 그 알 수 없는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 없는 의심(疑心)뿐이여. 아지 못헌 게 의심(疑心)이니까. 이놈을 가지고 했네! 화두를 그것.

내가 그래서 이렇게 판대기 이빨을, 판치 이빨 생모를 처억 내가 바로! 봤기 따문에 내가 이것 화두를 주지, 어떻게 내가 만약에 이놈을 가지고는 바로 못 봤다면은 천하 학자를 다 죽이게?
어떻게 인가헐 것이여? 당장 공부를 모도 시켜 놓고는 깨달라 가지고 오면 어떻게 인가헐 꺼여?


아, 합천 해인사에서 그러헌 일이 있지 않는가?
저도 깜깜해 아지 못헌 사람이 제가 입 벌려서 넘 화두를 가르켜? 천하에 그런 건 없어! 그거 못 가르키는 거여. 말 한마디지만.
그거 무슨 주둥이로써 그런 죄를 짓냐 그 말이여. 큰일나지!

내 일전에도 ‘누가 무슨 화두를 어떻게 허라고 가르켰다’고 그래. 버릇때기 없는 것! 그 나오라고 헌 게, 안 나오는구만 지금.

화두를 떠억 그 무슨 가르켜주었네. 안산, 그 저 해인사 그 내원인가 뭐, 저 가야산 밑에 있지. 내원터에 들어가서 토굴을 짓고 화두를 했다. 강사나 되든 것이여.
화두를 가르켜 놨는데 그대로 가 공부를 했네. 아! 공부를 허다가 이거 참 그 얼마 후에 견성했다고 그만 나왔어.

“아, 내가 견성했으니, 이것 옳은가 보라”고 턱 이른게, “아따, 옳다! 그것 참, 옳게 견성했다!” 그랬네.
무엇을 그 깨달은고 하니, 내원암에 앉어서 가만히 참선을 헐 것 같으면, 홍류동서 사람이 몇이 올라온 것 다 보이고, 구광루(九廣樓)에 와서 사람 몇 선 것 다 보이고, 법당에 사람 왔다갔다헌 게 환히 보이여.

내원암이 어디인디, 가야산 밑에 산골짜기인디, 해인사가 보이지도 않는데, 앉어서 가만히 참선만 허면 홍류동 사람 오는 것 다 보이지, 어디 뭐 사람 다 보이지. 심지어 사람만 보인 것이 아니다. 산 밑 구녁에 어디 호랭이 토깽이 있는 거 다 보인다.
아! 이렇게 환히 다 보이니, “내가 견성했소!” 헌게, “아! 그렇다”고, “잘 되었다!”고 인가를 했다.

그때부텀은 좋아서, 눈만 깜아도 보이고, 눈 떠도 보이고, 산산수수(山山水水)가 각(各) 완연체(宛然體)가 다 보이면서, 연비지류(蜎飛之類)까장 날라댕기는 것 다 보이네. 아! 이런 좀 꼴 봐. 그런 광명이 나왔네.

그런 가운데서 아, 그만 공부허는 젊은 사람이, 공부허는 사람이 그러헌 무슨 색심(色心)이 안 동(動)헐 것인가, 공부허다가?
아, 색심이 뿌르르 동험서 아! 그놈 자지가 일어나버렸네. 일어나니께, “아! 이놈이 이런 못된 놈이 일어난다”고 칼로 탁 쳐버렸네.

그러고 나서는 그만 그놈이 들입대 거가 막 부어 가지고는 야단쳐 가지고는 그만, 그길로 그만 어떻게 죽을 고생 고생허다가 그 낫으기는 겨우 낫어 가지고는.
그런 경계켕이는 아! 그런 광명이라도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항상 비쳐 주면 좋제, 허기야. 허지마는 그것이 무슨 그 어디 견성인가?

광명을 무슨 뭐 고까짓 놈의 광명보담도 제 몸뚱이 전체가 광명장인들 뭣 하며, 세계가 그런 광명이면 뭣 헐 것인가? 어디 그 견성인가? 그건 숭악한 사견(邪見)이지. 색견(色見) 아니여? 색견.
부처님이 말했지. ‘색견아 음성구아 행사도(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라고 안 했어? 색을 보거나, 무슨 상을 보거나, 별걸 다 나온 걸 본다한들 그 사견(邪見) 아닌가?

그래 가지고 그만 그 경계 하나도 없어져 버리고는, 영 그만 그때부텀 영원히 못쓰게 되아 가지고는, 엉뚱헌 모도 제 보배를 끊어 버리고 못쓸 물건 되아 가지고는, 영 그래 죽어 버렸어. 그런 게 한 둘이 아니여. 잘못 들어가 다 그런 것이여.
그러니, 심사(尋師)면, 곧 스승을 찾지 않으면은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니라.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니라. 이게지.

어찌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해논 놈만 했더니—그저 그저 서서 아무리 기운은 있으나 없으나 그것 못혀? 그밖에는 헐 것 없은게.
‘판치생모? 어찌 판치생모?’ 하도 말라 배틀어 피도 없으니까, 다른 망상 날 것도 없어! 그걸로만 앉아 있다 해 나왔은께. 몇 철을 그래 놔.

아! 뜻밖에 그 판대기 이빨에 털은 그만두고...
그래 내가 늘 그 시방 묻는 게 그거여. 제일 학자가 바로 깨달을 곳이여! 그것이!

마조(馬祖)가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원상 속에 들어가도 치고 원상에 나와도 친다”
그놈이 그놈이 참! 마조가 답살천하인(踏殺天下人)헌 공안이여! 천하인을 답살(踏殺)해 죽이는 공안이여!

세상에! 이 공안에 가서, ‘아! 나는 그 공안 뚝 원상 그려논 놈이 그것이 그만 고불(古佛)이 미생전(未生前)에, 부처도 생기기 전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허는 곳인디, 응연일상원이라고 말은 했다마는, 거기에 일상원이라는 이름도 붙일 것도 없이 그거 곧, 그거 곧 비심(非心)이요, 비불(非佛)이요, 도역가명(道亦假名)이요, 무일물(無一物)이요,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요, 고불(古佛)도 생기기 전이요. 그것 뭐, 뭐 의심헐 것이여?’

아! 이렇게만 그거 알고 있었다가, 아! 뜻밖에 판치생모를 턱 허다가는 판치생모는 그만두고, 원상(圓相)에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헌디, 탁! 그만 보이는디 말이여! 세상에! 그놈의 그...!

거, 잘못 떨어져 가지고 그놈의 함정인디, 저 빠져 죽는 놈의 함정인디, 고따구 견해를 가지고 그렇게 봤다가, 참! 고인을 비방을 해도 분수가 있고, 정법 비방도 분수가 있지.

바로 보이는데. 아따! 인자는 아! 그전 경계가 아니란 말이여, 틀림없이! 하, 이런 놈의 꼴 좀...

대번에 보월 스님한테 쫓아 들어갔제. 만공 스님한테서 시방 이 방맹이를 맞고는—저 별실에 가서 계시는데, 쫓아 들어갈 수가 없어서 조실 스님 방부텀 머냐(먼저) 들어갔다.
문 앞에 가서 문을 척 열고 들어가서, “마조 스님이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 불입야타 했으니, 들어가도 치고 나가도 친닥 했으니, 조실 큰스님께서 일러줍소사”

공경히 묻는 법이여! 법도 묻는 법이 그려.
건방지게! 툭 가서는 어디... 어디 그런 법이 있어? 만고에 그런 법이 있어? 학자의 공경이라는 것이...

가서 절을 허고는, “입야타 불입야타 했으니 조실 스님 일러줍소사” 하고 절을 허고 물은게, 아! 그 어른이 원상을 척 뭉켄다. 원상까장 뭉케아.
그러니, ‘원상은 본래 당처(當處)를, 근본당처(根本當處)를 가서 뭐라고 거다가 붙일 것인가? 근본당처까장 만들아 놓고 당처지해(當處之解)까장 응, 허공인데 허공지량(虛空之量)까장 쏴악 쓸어 버리는 것이로구나’ 요렇게 나도 본 그 원상, 그 나 그전 도리, 원상 뭉켄 걸 보인다 그 말이여.

거그서 그만, “조실 스님!”
건방진 행동은 조금도 아닌 것이여. “조실 스님” 인자 거그서는 그렇게,
“납자를, 천하납자(天下衲子)를 사재갈등과굴리(死在葛藤窠窟裡)입니다. 갈등과굴(葛藤窠窟) 속에다가 죽입니다. 조실 스님, 그렇게 일러 가지고는 타니대수(拖泥帶水)요, 진흙을 짊어지고 진흙 속에 빠지게 맨들아 학자를. 그렇게 해 되겄습니까?” 이랬네.
아! 여지없이 보이니 그런 점검을 안 혀?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할 거 아닌가.

“아닙니다” 허니까, “허! 그 사람...” 그 어른이 인자 “아, 그 사람 보소! 저 사람 봐!”
그래서 내가 거그 두말헐 것이 없거든. “저는 물러갑니다”

물러와서, 만공 큰스님이 그 건네—퇴실(退室)해 조실방 인자 내 놓고 가 계시는데, 들어갔어.
들어가서 “큰스님께 사룰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말인고”

“보월 큰스님한테 가서, 조실 스님 큰스님한테 가서, 마조 원상 법문을 물었습니다. 원상을 그려놓고 ‘입야타 불입야타 이렇게 마조 스님이 물었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조실 스님, 일러줍소사. 여하즉득(如何卽得)입니까? 어떻게 일러야 되겄읍니까?’ 물으니까 원상을 뭉켔습니다. 원상을 뭉켔으니, 학자를 갖다가서 진흙 속에다가 파묻은 거 아니에요. 그래 가지고 조실방에 계셔요?” 이랬다.

벌떡 일어나시더니 “그러면 나한테 하나 자네가 이르소. 마조가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 불입야타’ 했으니, 여하즉득인가?” 물어서, 합장을 허고 서서 “조실 큰스님한테는 이르들 못허겄습니다” 그랬네.

그게 무슨 말인고? 어디.
내가 합장허고 서서 “조실 스님한테는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 무슨 말이고? 거, 어떻게 된 말인가? 고런 디 가서 봐야 혀.

그 법량(法量), 법견(法見). ‘무도 아니고, 유도 아니다, 유무(有無)도 다 아니다’ ‘무슨 범정(凡情) 다하고 성해(聖解)도 없다’ 고런 건 법량인 것이여. 법굴로 들어가.
법(法)이니, 비법(非法)이니 고런 것 가지고 얘기해선 틀린 곳이라, ‘일물(一物)도 없다,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다’ 고런 것 가지고는 틀려!

이것 바로 오늘 아침 법문이라는 것은 그대로 내가 지금 대중께 헌 거여.
어따가 이 법문을 헐 것인가?

고 무엇일까? 그놈 알아버리면 그만인데, 그 뭐여?
합장을 하고서는 “큰스님께는 못 이르겄습니다” 무슨 소리일까? 응?

그것! 참말로 이거, 내가 이거 참말로 이거, 이...

그러니까, 인자 또 인자 장만헐 밖에는.
그때에 마침 용담(龍潭)이라고 김초안(金初眼)이여, 이름이. 참! 좋은 학자지. 김초안이가 옆에 있어. 나허고 똑같이 도를 닦는 사람인데, 내가 그때 한창 알았다고 야단친게 내 뒤를 따라. 어떻게 답헌가 이런 걸 볼라고 따라.

“저 초안이한테, 그러면 나한테 자네가 못 이른다니 저 초안이한테 그러면 이르소. 초안이가 묻게. 자네가 묻소. ‘마조 원상에 입야타 불입야타 했으니 여하즉득이냐’고 자네가 묻소” 헌게, 초안이가 나한테 “입야타 불입야타, 여하즉득고?” 허고 묻제.

허. 내가 거그서 답을 여지없이 했지. 안 헐 수 있나, 해야지.
답했다는 것을 내가 여그서 그건 안 해 주어! 못혀. ‘어떻게 했느니라’ 못혀. 그건 알아야 혀.
내가 학자를 위해서, 내가 감출 것은 여지없이 감추거든. 헐 수가 없으니까.

그래 이르니깐, 그다음 만공 큰스님께서 점두(點頭)를 끄덕끄덕, 이래 척 앉어 계서서 “수지갱유야행인(誰知更有夜行人)인고? 누가 밤사람 행헌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

“큰스님! 그때 그 법문 다시 헐랍니다. 처음에 와서 절헐 때에, 절허고 나니께 ‘심마물(甚麽物)고?’ 그 또 절을 한 자리 허니까 또 ‘심마물고?’ 허셨지요? 다시 헐랍니다. 다시 물어주십시요” 헌게,
“허! 허! 허!” 물을 것도 없어. “허! 허! 허!” 허더니 “거 보게” 벌써 알아버려. 뭐 다시, 대답 물을 게 없어.

“허! 허! 허!” 허더니 “거 보게” 그뿐이여. 그뿐이여. “거 보게”

(다 했냐? '좀 남았습니다' 그 다 해버려야지)

그때가서는, 인자는 나는 큰스님께 여지없이 허락받았으니 ‘인자 갑니다’여.
떠난단 말이여. 뭐 두말헐 것 없어. 뭐 해제고 뭐이고 헐 것도 없어. 나는 떠난다 그 말이여.

‘어디 가서 치료를 허든지, 괴기를 먹어야 헌다’고. 영, 죽게 되았으니 ‘고기를 먹어야 헌다’고 이래 쌓아나, 괴기를 먹으러 갔다가 괴기를 먹을라고 허면 ‘왜액’ 허고 나와 버려. 못 먹어. 당최 맡도 못해. 그 틀려. 뭐, 누가 사줄라고는 많이 허는데 못 먹어.
그리고 내가 대중 중에 있으면서 그런 걸 내가 죽어도, 그 어디 가서 그런 법이 있어? 나가서 괴기나 먹고 들어오고. 어디 가서 모도 그런 어디가 그런 행동을 헐 거여? 저 혼자 가서 어디 가서 먹었으면 먹었지, 그런 행사를 안 혀. 절대 그런 법이 없지. 청정 대중(淸淨大衆) 가운데 먹고 냄새 피우고 돌아댕기고 모도 같이 모도 그만 군대를 이루고, 떼를 이루고 그 될 것인가 말이여? 그래 못혀.

나가서 인자 괴기를 먹던지, 뭘 하든지 내 멋대로 지낼 밖에 없다고 그러고는.
(다 있어? 어째? 그 빼면 안 되야. 이것 뭣, 모두 헌다고 허니께 내가 이렇게 허고 앉었는 것이여)

그래 가지고는 떠나가지고 갈라고 나온께—오! 그러고 그 십대문답(十大問答)! 저번에 내 다 해놨지, 그 십대문답.
십대문답 낱낱이 다 물으시고. 한암 스님한테 처음 물은... 그 고문차문이전합긱삼십방(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도 다 해 놨지. 네모진 백지, 백지 네모진 데 한 귀텡이에다 원상 그린 놈, 그 원상으로 봐 틀리거든. 그런 놈 다 물어서...

뭐, 하나 알면 다 알아 버린게. 하나 봐 버린디 모를 게 있나, 열 가지 일을. 어디서 죽고 어디서는 어떻게 된 거 다 아는 거지, 환허니!

세상에! 세상 일은 뭐, 서울 가서 낱낱이 장안 전체 모도 동물원까장 다 살펴본 것은, 눈으로 다 본 것은 오히려 혹 어름헌 데가 있을랑가 몰라, 공안은 그런 법 없어. 어름이라니! 무엇이 어름이 있어. 구긴 대문이 어디 있으며.
틀려! 호리무차(毫釐無差)지! 호리(毫釐)도 차별없어. 확 해버려 물을 게 없는 것이여!

딱! 해버린 뒤에는 “인자 갈랍니다” 허고 하직을 허고, 금선대 내려가 하직허고 올락하니까. 새벽이여 그때.

“저 하날에 별이... 부처님은 샛별을 보고 오도(悟道)허셨지만, 자네 오도헌 별은 어떤 별인가?”
내가 땅을 허부적 허부적 하고 일렀다.

이런께, 턱! 보고서는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
그 선(善) 자가 ‘착헐 선(善)’ 자인디 ‘잘했다’는 선(善) 자입니다. 그 잘 선(善)이여. ‘옳다, 옳다!’ 그 선(善)이여. ‘옳다’는 선 자여.

“옳고 옳다!” 그말이여. “옳다, 옳다!” 바로 인가여, 그게!
“옳다, 옳다!” 그러고는 그 게송(偈頌), 송구(頌句)로 마쳤습니다. 그 송구 내가 여기서, 오늘 아침에 인자 이 송구로 마지막 합니다.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다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잘했다!” 그거 잉, 그걸 보고 “잘허고 잘했다!”

불조(佛祖)도 미증전(未曾傳)인디, 불조도 일찌기 전허지 못했다.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다.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다.
차일(此日)에 추색모(秋色暮)인디, 이날에 추색이 저물었는데, 원소(猿嘯)는 재후봉(在後峰)이로구나.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이것이 인가송(印可頌)입니다!

자, 만공 스님 문집(文集)에 있는가 없는가를 한번 보시란 말씀이여. 만공 스님 문집에 다 내놨으니까. 나도 그래서 나도 고승집(高僧集)에 그런 것 한번 내놨을 것이요. 왜 털어 내놓지 못혀. 왜 겸양을 혀? 탁! 털어 내놓아야제, 뭣 때문에 싸두어?
뭐 금이나, 금같으면은 도둑놈이 가지고 갈까 싸놓지마는, 이 법을 싸놔? 왜 싸놔? 바로! 거 퍼트려 내놓아야지. 모도 이 법은 모도! 모도 다 낱낱이 다 가지고 있는 법인데, 무얼 싸놓을 것인가 말이여.

거기서 내가 인가 척 받고서는, 그러고 내 떠나왔습니다. 떠나와 가지고는 인자 그... 여기서 다음 법문으로써 잇으겄습니다.(53분26초~1시간34분5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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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나부시 ; ①공손하게 천천히 고개를 숙이거나 엎드려 절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②작은 사람이나 물체가 천천히 땅으로 내리거나 앉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여차(如此)하다 ; (일의 상태나 속성이)이와 같다.
*자반대구(者般大口) ; ‘이런 큰 입’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 ; ‘턱(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에게 베푸는 음식 대접)’의 사투리.
*절리다 ; ‘결리다(남에게 억눌려 기를 펴지 못하다)’의 사투리.
*벼락 ; ①공중에 있는 전기와 땅 위의 물체에 흐르는 전기와의 사이에서 방전(放電)으로 일어나는 현상. ②몹시 호되게 나무라거나 꾸짖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어떤 일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짤르다 ; ‘짧다’의 사투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석가(釋迦)가 유미회(猶未會) ;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하다.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일관도천(一串都穿 한 일/꼬챙이 관/모두 도/꿰뚫을 천) ;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다.
*탕탕호연(蕩蕩浩然) ; 탕탕(蕩蕩)의 뜻은 ①넓고 큰 모양. ②평탄한 모양. 호연(浩然)의 뜻은 ‘넓고 큰 꼴’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〇[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〇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체달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修德寺 能仁禪院) p262.
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理無碍) • 사무애(事無碍)하게 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나니라.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현구(玄句) ;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 · 공안을 말함).
*『위앙록(潙仰錄)』 (장경각) P一九~二十. P39~40.
師問仰山 卽今事且置 古來事作麼生 仰山叉手近前 師云 猶是卽今事 古來事作麼生 仰山退後立 師云 汝屈我 我屈汝 仰山便禮拜

스님께서 앙산 스님에게 물으셨다. “지금의 일은 우선 그만두고, 옛날의 일은 어떠한가?”
앙산 스님이 차수를 하고 앞으로 가까이 가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것은 지금의 일이네. 옛날의 일은 어떠한가?”
앙산 스님이 뒤로 물러가 서자 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이겼느냐, 내가 너를 이겼느냐?”
그러자 앙산 스님은 절을 올렸다.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공송(空送) ; 허송(虛送 하는 일 없이 시간을 헛되이 보냄).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백지장(白紙張 흰 백/종이 지/낱·얇고 넓적한 조각 장) ; ①흰 종이의 낱장. ②’핏기가 없이 창백(蒼白)한 얼굴빛’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색심(色心) ; 색욕(色慾 : 성적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욕구)이 일어나는 마음.
*들입대 ; 들입다. 세차게 마구.
*켕이 ; ‘커녕’의 사투리.
*커녕 ; ①체언의 뒤에 붙어,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뜻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보다 못한 것까지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②체언의 뒤에 붙어, ‘그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法身非相分‘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달마혈맥론(達摩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마조(馬祖)가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원상 속에 들어가도 치고 원상에 나와도 친다” 그놈이 그놈이 참! 마조가 답살천하인(踏殺天下人)헌 공안이여! 천하인을 답살(踏殺)해 죽이는 공안이여!' ;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 참청기연품(參請機緣品)에서.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禪師)
懷讓禪師  金州杜氏子也  初謁嵩山安國師  安發之曹溪參扣  讓至禮拜 師曰 甚處來  曰 嵩山  師曰 什麼物 恁麼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회양 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처음 숭산의 혜안 국사를 뵈니 혜안 국사는 조계로 보내 공부하도록 하였다. 회양 스님이 찾아뵙고 예배하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육조) “어디에서 왔느냐?[甚處來]”  (회양) “숭산에서 왔습니다[嵩山]”

(육조)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什麼物 恁麼來]”  (회양)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說似一物卽不中]”

(육조) “도리어 닦아 증득할 수 있느냐?[還可修證否]”  (회양) “닦아 증득함은 없지 없지 않으나 오염은 없습니다[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師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 讖汝足下出一馬駒 踏殺天下人 應在汝心 不須速說  讓豁然契會 遂執侍左右一十五載 日臻玄奥 後往南嶽 大闡禪宗

(육조) “다만 오염되지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라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서천의 반야다라 존자가 '너의 발 아래 한 망아지가 나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예언을 하셨으니 네 마음속에 두고 모름지기 함부로 말하지 말라.
회양이 훤칠하게 깨우치고는 육조 스님을 15년 동안 모시면서 날이 갈수록 공부가 깊어졌다. 뒷날 남악으로 가서 선종(禪宗)을 크게 떨쳤다.
*답살(踏殺 밟을 답/죽일 살) ; 짓밟아 죽임.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천하납자(天下衲子)를 사재갈등과굴리(死在葛藤窠窟裡)입니다’ ; ‘천하 납자(衲子 수행승)들을 갈등(葛藤)의 구덩이[窠窟] 속에서 죽게 하다’
*갈등(葛藤) ; 칡과 등나무 넝쿨 같이 다른 풀 또는 나무에 뒤얽혀 사는 것.
①언어와 문자가 사물의 본질이나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도리어 속박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 전도(顚倒)된 언어. ②공안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 또는 문답공부. ③깨달음을 방해하는 것, 또는 번뇌를 뜻한다.
*갈등과(葛藤窠 칡 갈/등나무 등/둥지·방·오목한 곳 과) ; 갈등과리(葛藤窠裏)와 같으며, 갈등굴(葛藤窟)이라고도 한다. 갈등의 둥우리. 전도(顚倒)된 언어나 문자.
언어를 매개로 복잡한 관념으로 생각하나 깨달음에는 미치지 못하여 결국 언어와 관념의 속박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퇴실(退室 물러날 퇴/방·거처 실) ; 조실(祖室) 자리를 내 놓고 물러남.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김(金)씨,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를 인증(認證)받았다. 그 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4월19일,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그 뒤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점두(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寒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어름 ; ‘어림(대강 짐작으로 헤아림)’의 사투리.
*호리(毫釐 털·붓 끝·척도 또는 분량의 단위 호/아주 작은 수·척도 또는 무게의 단위 리) ; ①자 또는 저울 눈금의 호(毫)와 이(釐)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더할 수 없는 정도로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 하날에 별이... 부처님은 샛별을 보고 오도(悟道)허셨지만, 자네 오도헌 별은 어떤 별인가?” ; 견명성(見明星). 부처님이 12월 8일 새벽별[明星]을 보시고 성도하였다는 고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저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샛별 ; 새벽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1권 3칙 ‘오도(悟道)’
<염송설화(拈頌說話)>
大慧云 釋迦老子正覺山前 從定而起 因見明星忽然悟道 信知時節若至 其理自彰 但記悟道時節因緣而已 則世尊悟處 不在明星上 香嚴悟處 不在擊竹邊

대혜가 이르기를 “석가 노자께서 정각산 앞에서 선정에서 일어나 샛별을 보시는 순간 홀연히 도를 깨달으셨으니, 이는 시절이 이르면 그 이치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인데, 다만 도를 깨달은 시절과 인연을 기록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세존의 깨달음은 샛별에 있지 않고 향엄의 깨달음은 대나무를 때리는 데 있지 않다.
*하날 ; ‘하늘’의 사투리.
*전강 스님이 만공선사로부터 받은 전법게(傳法偈) ;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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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