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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24 경계(No.198)—(게송)得之在心應在手~ | 공부 요점, 모든 경계 위에서 화두를 들어라 | 사바세계가 도닦기 좋다 | 대신통(大神通)과 소신통(小神通).
  2. 2021.04.08 깨달음((No.405))—“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千尺絲綸直下垂~ | 각주구검(刻舟求劍) | 깨달음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3. 2021.03.26 기도((No.117))—왕의 노모 병환 치유 | 참회하고, 십선(十善)을 닦아야 | 기도는 올바르게, 정성 청정한 마음으로 | 보석사 주지스님 중풍 치료 | 단식(斷食).
  4. 2021.03.17 경책(警責)(No.024)—꿈에 노장님이 꾸지람을 하심. '진실한 도를 닦았느냐? 네가 출가한 목적을 달성했느냐?' | 무주상 보시의 복은 무량하다.
  5. 2021.02.16 깨달음(No.319)—명성(明星) | 납월팔일. 용맹정진 | (게송)一見明星夢便廻 千年桃核長靑梅 雖然不是調羹味 曾與將軍止渴來.
  6. 2021.01.27 거울 법문((No.479))—(게송)三際求心心不見~ | 참선하는 사람은 소리를 듣거든 온전히 듣고, 모든 색상을 볼 때에는 보는 것밖에는 법(法)이 없다.
  7. 2020.12.22 경계(No.445)—타성일편이 되면 악업(惡業)에 안 끌려간다 | 구경(究竟)의 깨달음 | 팔만사천 마구니 | 참선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이 중요.
  8. 2020.12.03 가부좌(No.256)—바른 신심 · 뜨거운 분심 · 간절한 의심 | 자세가 바르면 정신도 바르게 된다 |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면 그 자세가 아름답다.
  9. 2020.11.11 깨달음(세등39)—(게송)黃鶯上樹一枝花~ | 무상설법(無上說法) | 오도(悟道) 기연 | 一超直入如來地 | ‘참으로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10. 2020.09.27 교외별전(No.178)—(게송)夢裏明明有六趣~ | 부처님께서 환몽(幻夢)을 깨시고, 49년 동안 그 환몽 깨는 방법을 설하셨다 | 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경계(No.198)—(게송)得之在心應在手~ | 부처님과 중생이 조금도 차별이 없다 | 공부 요점 - 일상생활을 여의고 따로 특별한 수행을 찾지 마라 | 모든 경계 위에서 화두를 들어라.
발심할 수 있는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다 | 대신통(大神通)과 소신통(小神通).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 희로애락 · 빈부귀천 · 시비이해 · 삼독오욕 · 부모형제 · 춘하추동 ·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 · 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1) 15분27초.

 

(2) 11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198)—19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 (용198)

(1)-----------------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한데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4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이것을 마음에 얻어. 이것을 얻되, 마음에 있어서 이것을 얻는다. 그리고 응재수(應在手)라. 응하는 데에는 손으로 응(應)을 한다 그말이여.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눈달, 겨울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 눈이 쏟아지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 그 봄바람 속에 꽃이 피어.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눈 내리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은 동풍이 부는데 그 동풍이 부는 속에 꽃이 피어난다 그말이여.

우리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六塵)이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졌을 때 그게 '마음에 얻는다'
마음에 그러한 육진(六塵)이 비추어지면 그것을 상대하게 될 때에는 손으로 글씨를 쓰게 될 때는 글씨를 쓰고,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일을 하고, 그것이 응할 때에는 손으로 그것을 응하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일신상(一身上)에는 그러려니와 우주법계에 자연계에 있어서는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가을에는 휘황창 달이 밝고, 봄이 오면 동풍이 불고 꽃이 피는 것이여. 이렇게 하기를 몇억만 겁(劫)을 그렇게 해 내려왔다 그말이여.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하는데, 새벽이 돌아오면 아침마다 닭은 오경(五更)이 되면은 울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봄이 돌아오면은 곳곳마다, 산이나 들이나 집이나 골짜구니마다 울긋불긋 꽃이 피더라.


방금 전강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이나,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신 부처님이나,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역대조사(歷代祖師)나,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인데,
부처님이라고 해서 더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고 해서 모자랄 것도 없는데, 왜 부처님은 해탈도를 증득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셨고, 우리 중생은 왜 깜깜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헤매고 있느냐?
우리가 부처님보단 우리의 본성(本性), 자성(自性) 자리에 있어서 모자라거나, 부처님이 우리 중생보다 더 나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뜻을, 내가 나를 깨닫지를 못해서 오직 그 하나 때문에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달이 법회를 열고 무슨 말을 할 말이 있느냐? 무슨 기특하고 재미있는 얘기 거리가 있는 것이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법상에 올라오며, 무엇을 듣기 위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이렇게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이렇게 모이시는 것이냐?
왜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성현들은 이 문제를 해결을 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동서 사방으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천 번 만 번 법문을 듣고 서울로 지방으로 법회를 법문을 들으러 다녀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냥 마찬가지여. 법문을 들을 때에는 가슴이 좀 후련하고 무엇인가 얻은 바가 있는 것 같다가, 한 시간 두 시간 지내고 하루 이틀이 지내면 도로 답답하고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공부해 나가는 그 근본 뜻을 바로 알아버리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정진(精進)이요, 수도(修道)요, 공부를 해가는 것인데, 그 공부해 나가는 그 요점을 바로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행여나 무슨 좋은 말씀을 들을까?’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법문을 들을까?’ 밤낮 들어봐도 들을 때 뿐이고 공부는 조금도 나아가는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일용 생활, 우리 일상생활(日常生活)—앉고, 서고, 눕고, 밥 먹고, 옷 입고, 세수하고, 오줌 누고, 똥 누고, 걸어 다니고, 차 타고, 하는 이러한 일상생활, 일상생활을 여의고 따로 특별한 수행을 찾는다면 이것은 영원히 찾아도 깨달음에 이르기가 어려운 것이여.
여의고 그놈을 떠나서—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잡고, 발로 걸어 다니고,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놈을 버리고, 그놈을 떠나서 나의 자성(自性) 자리가 있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그놈을 버리고 찾겠지만, 그놈을 떠나서는 세상없이도 없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놈을 버리고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항시 마음만 급하고 마음만 바뻐. ‘내가 이렇게 공부를 안 해서 어떻게 하나!’ ‘오늘도 이렇게 그럭저럭 하루가 지냈구나!’ ‘이러한 모다 그 이런 복잡한 일 때문에 내가 공부를 못한다’
남편 때문에 못하고, 자식 때문에 못하고, 살림살이 때문에 못하고, 병 때문에 못하고, 그러한 것 때문에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마음만 조급하다 그말이여.
마음이 조급하니까 짜증만 내고 신경질만 내고 일체 생활에 안정을 잃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평과 불만이 가뜩차 있어. 그러니 무슨 일을 한들 그 일이 제대로 되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기회(機會)와 경계(境界) 위에서 잡아가지고 쓸 수가 있다 그말이여.
기회,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기회와 경계상에 그놈을 여의지 않고,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턱! 잡어서 써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는 바로 거기서 잡아 낚아채야 하고, 귀로 무엇을 소리를 들을 때에는 듣는 그 찰나에 퍼뜩 잡아서 써야 해.

속담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번갯불 번쩍하는 그 번갯불에다가 콩을 구워 먹어.
번갯불 번쩍할 때 바로 그때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바늘에다 실을 폭 뀌듯이, 그 찰나를 잘 잡아 쓸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공부하는 바른 길을 터득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처음~15분39초)




(2)------------------

선방에 3년, 10년, 20년, 30년을 다녀도 그러한 기회와 경계를 여의고 따로 공부를 지어 나가려고 그러고, 그놈을 여의고 공부를 할려고 한 사람은 아무리 애써봤자 공부에 진취가 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쪼끔 시끄러우면 파르르 신경질을 내고, 쪼끔 복잡하면 도망할 궁리를 하고, 경계와 기회를 피하고 도피해 가지고 따로 공부를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맞는 일, 내 마음에 맞는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장소, 모든 일이 내 마음과 내 마음에 순(順)하는, 내 마음대로 되는, 조끔도 내 마음을 거슬리지 아니한 그러한 곳은 저 천상에, 하늘나라 천당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천당에 가면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고, 모든 즐겁고 기쁘고 편안하기는 하지만, 거기서는 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신 것입니다.

천당(天堂)은 좋고 기쁘고 편안한 일만 있어서 그러한 상태에서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없어. 축생(畜生)이나 지옥(地獄)은 모든 일이 괴로움만 있어서 괴로움이 지나치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우리의 근기(根機)로 그것을 이겨 나갈 수가 없어.
오직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 이 사바세계는 내 마음에 합당한 일도 있고, 기쁘고 편안한 일도 있으려니와 슬프고 괴롭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어서 우리가 분심(憤心), 발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일부러 무상(無上)의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해서, 대도를 성취해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사바세계에도 오셨는데, 우리는 과거에 무슨 수승한 인연이 있어서 다행히 금생에 이 사바세계에 왔습니다.
이 '사바세계가 좋다'고 하는 것은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져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가 좋다는 것이여.

그런데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피하고 슬픈 일은 피하고 기쁜 일만을 찾고, 괴로운 일을 피하고 즐거운 일만을 찾고, 시끄러운 것을 피해서 조용한 것만을 찾고, 벌써 시끄러운 것을 버릴려고 할 때에 그르쳐 버렸고, 다시 편안하고 즐거운 곳을 찾을 때에 두 번째 어긋나 버리는 것입니다. 계속 어긋나고 그르치기만 해 가지고 언제 바른길을 한 걸음이라도 갈 수가 있느냐 이말이여.

공부하는, 참으로 발심을 해서 진정으로 대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계—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어떠한 순경계(順境界)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지라도 바로 그 기회와 그 경계를 단 일분일초라도 놓치지 말고 바로 되잡아 써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지어간다면 우리가 있는 장소는 그 장소가 어디가 되었건, 그 시간이 어느 시간이 되었건, 어떠한 일을 만나건, 어떠한 사람을 상대하건, 우리는 곳곳마다 최상의 선방(禪房)이요, 바로 부처님 회상(會上)이요, 닥치는 일마다 부처님이요, 불보살을 친견한 것이요,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모든 소리는—나를 칭찬하는 소리나,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나, 새가 우는 소리나, 닭이 우는 소리나, 개가 짓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나, 모든 소리는 바로 부처님의 소리요, 부처님의 법문(法門)이 될 것이며,
내가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은—저 해와 달은 말할 것도 없고 흘러가는 구름과 물, 겨울에 내리는 눈이나, 봄에 피는 꽃이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나,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나, 모든 것이 다 불색(佛色), 부처님의 몸이, 불신(佛身)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접촉하는, 상대하게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 되고, 바로 그것이 최상의 육신통(六神通)으로 되는 것입니다.

소신통(小神通)은 내일 일을 알고, 여기서 서울 일을 알고, 앞으로 다가올 10년 20년 뒷일을 알고, 여기서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서울도 왔다갔다 축지법을 하고, 이러한 것은 소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조그마한 신통이라 하는 것이고.
참으로 최상의 대신통(大神通)이라 하는 것은, 부르면 대답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대간하면 한숨 자고, 이것이 바로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삿된 사람은 소신통이 대신통인 줄 착각을 하는 거고, 참으로 불법(佛法)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옳게 인식한 사람은 바로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바로 이것이 신통 중에 최고로 크고 높은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대신통을 착각을 해 가지고 소신통을 추구한 사람은 공부해 나가다가 사견(邪見)에 빠지기가 쉽고, 마구니의 권속으로 끌려가서 미치거나 삿된 경계에 빠지는 것이고.
소신통에 집착을 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대신통의 위대함에 눈뜬 사람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고 항시 부처님에 설법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못하겠습니까.(15분40초~27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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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육진(六塵)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대도사(大導師 큰 대/길·인도하다·이끌다 도/스승 사) ; 불(佛) · 보살(菩薩)의 존칭. '크신[大] 길 인도하는[導] 스승[師]'이라는 말.
도(導)는 「길[道] · 인도(引導)하다 · 이끌다」의 뜻으로, 대도사는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큰 스승이라는 말.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度] 하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대도사(大度師)와 같은 뜻이다.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신 부처님이나,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역대조사(歷代祖師)나,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인데,
부처님이라고 해서 더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고 해서 모자랄 것도 없는데, 왜 부처님은 해탈도를 증득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셨고, 우리 중생은 왜 깜깜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헤매고 있느냐?' ; 삼무차별(三無差別 : 마음[心]과 부처[佛]와 중생衆生, 세 가지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 삼법무차(三法無差)라고도 한다.

[참고] 60권본 『화엄경(華嚴經)』 불타발타라 역(佛馱跋陀羅 譯) 제10권, 제16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說偈品)에서.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마음은 (빛깔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화가와 같이 갖가지 오음으로 그림을 그리니, 일체의 세계 속에서 짓지 못하는 법이 없네. 마음과 같이 부처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 또한 그러하니, 마음 · 부처 ·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

[참고] 60권본 『화엄경(華嚴經)』 불타발타라 역(佛馱跋陀羅 譯) 제10권, 제16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說偈品)에서.
爾時 如來林菩薩承佛神力 普觀十方 以偈頌曰:
譬如工畫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色 四大無差別 四大非彩色 彩色非四大 不離四大體 而別有彩色
心非彩畫色 彩畫色非心 離心無畫色 離畫色無心 彼心不常住 無量難思議 顯現一切色 各各不相知
猶如工畫師 不能知畫心 當知一切法 其性亦如是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諸佛悉了知 一切從心轉 若能如是解 彼人見眞佛
心亦非是身 身亦非是心 作一切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 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

[참고] 80권본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제19권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송(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권)』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 없도다.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불원천리(不遠千里)하다 ; 천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다.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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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일분일초(一分一秒) ; '1분과 1초'로 아주 짧은 시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부처님 회상(會上) ; 불회상(佛會上).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불색(佛色) ; 불색신(佛色身). 형체를 갖춘 부처님의 몸을 일컫는 말. 상대어는 법신(法身)으로 진리를 인격화한 부처님을 가리킨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 (용화선원 刊) p94-95 (가로판 p99-100) 참조.
*대간하다 ; ‘고단하다(지쳐서 피곤하다)’의 사투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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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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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깨달음2021. 4. 8. 12:26

깨달음((No.405))—부처님께서 새벽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 하셨다 | 전강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 |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고인(古人)들의 오도(悟道) 인연 |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 줄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 모든 것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모든 소리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의 설법(說法) | 화두 의단이 독로해서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어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1권 3칙 ‘오도(悟道)’
<염송설화(拈頌說話)> 大慧云 釋迦老子正覺山前 從定而起 因見明星忽然悟道 信知時節若至 其理自彰 但記悟道時節因緣而已 則世尊悟處 不在明星上 香嚴悟處 不在擊竹邊

대혜가 이르기를 “석가 노자께서 정각산 앞에서 선정에서 일어나 샛별을 보시는 순간 홀연히 도를 깨달으셨으니, 이는 시절이 이르면 그 이치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인데, 다만 도를 깨달은 시절과 인연을 기록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세존의 깨달음은 샛별에 있지 않고 향엄의 깨달음은 대나무를 때리는 데 있지 않다.

 

 

(1) 20분 59초.

 

(2) 5분 13초.


[법문] 송담스님(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1)------------------

오늘 기사년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재(成道齋)를 맞이했습니다. 방금 17년 전, 임자년 납월팔일에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납월팔일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삼천년 전 우리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유성출가(踰城出家)해서,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 고행(苦行)을 하셨습니다. 그 고행은 일찍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그렇게 무서운 고행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해서—하루에 삼씨 한 알, 좁쌀 한 알 그런 정도로 곡식 알갱이 하나씩 이렇게 잡숫고 6년을 지내셨으니 완전히 고목사회(枯木死灰)처럼 되었어. 완전히 해골(骸骨)만 남았어.

그러시다가 ‘이렇게 고행을 위한 고행만이 참다운 정진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가로 내려가셔서 맑은 물에 목욕을 하셨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오시니까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에 청신녀가 유미죽(乳糜粥)을 쒀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부처님께 바치니까 부처님께서 그것을 받아 잡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을 보호하면서 같이 정진하던 정반왕(淨飯王)이 보낸 다른 다섯 사람들, 실달 태자(悉達太子)와 같이 서로 약속을 하기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단코 고행을 쉬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자'고 약속을 해 가지고 6년을 고행을 하셨는데, 실달 태자가 수자타가 바친 죽을 받아 잡수신 것을 보고 “아하! 고행을 견디지를 못하고 너무 배가 고프니까 저렇게 죽을 받아 자시니 저런 의지가 박약하고 약속을 깨트리는 사람과 우리가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은 녹야원(鹿野苑)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자리를 옮겨서 깨끗하고 쇄락(灑落)한 그리고 참 오랜만에 유미죽을 공양을 하시니 한결 기운이 좋다 그말이여. 맑고 깨끗하고 생기가 도는 그러한 몸과 마음으로 정진을 하셨어. 그러시다가 납월팔일 새벽에 별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밤마다 별은 반짝거립니다. 구름이 꽉 낀 날은 안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밤이면 언제나 별은 반짝거립니다. 삼천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밤에는 별이 빛납니다. 빛나는 번쩍거리는 그 별을 보고, 삼천년 동안에 아니 수억만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을 봅니다. 번쩍이는 별을 보지마는 별을 보았다고 해서 다 확철대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별빛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어.

해마다 제방(諸方)에서는 섣달 초하루부터 납월팔일 새벽까지 만 7일간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납월팔일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 그 뜻깊은 날을 우리가 그냥 범연(泛然)히 지낼 수가 없어. 그래서 선방에서는 용맹정진을 해. 7일 동안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완전히 앉은 채 그렇게 용맹정진을 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팔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팔일 새벽 하늘에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그 별을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그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한데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자나 되는 긴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그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마자 한 물결이 일어나니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더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그 낚시를 물지를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가득한 배에는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어.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다.
부처님께서 확철대오 하신 그 법을 가섭 존자에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란 존자, 아란 존자는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28대를 달마 조사까지 전하고, 달마 조사가 중국으로 오셔서 6조 스님까지, 6조 스님 이후로 5종 가풍이 벌어져서 전강 조실 스님까지 77대를 전해 내려왔습니다.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고, 설할라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이 도리를 깨닫고 또 그것을 전하고 받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꼭 깨달을 것이 있고, 꼭 전할 것이 있고 또 전해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됩니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따라서 그렇게 인식하고, 또 자기도 깨달으려고 생각을 하고. 이러한 말에 떨어져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그 갑판 위에서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그 칼을 잘못 놓쳐 가지고 바닷물에 빠트렸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뱃전에서 칼을 잃어 버렸다’해 가지고, 나중에 그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그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뱃전을 쪼아 가지고 그 표(標)를 해 놨습니다. 언제라도 그 뱃전 그 자리에서 떨구었으니까, 그 뱃전에다가 표를 해 놔야 그 뱃전 밑으로 내려가면은 그 밑바닥에 칼이 있을 것이다 이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느 나무 등걸 밑에서 토끼를 한 마리 보았는데, 그 토끼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나무 등걸에서 토끼를 발견했다가 놓쳤으니까, 항상 그 나무 등걸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끼가 달아났으니까 여기 가 있으면 그 토끼가 오려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칼을 잃어버리고 뱃전에다가 표를 한 사람이나, 토끼를 놓치고서 나무 등걸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퍽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셨으니까 행여나 나도 납월팔일 날 새벽에 하늘에 뜬 그 별을 보면 혹 깨달을란가?’ 이리 생각하고 추운데 새벽에 나가 가지고 그 동쪽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을 새벽부터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니라. 보는 놈이니라”

깨달음이 별로부터 오겠습니까?

저 먼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불이 났구나’ 뻘건 불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연기만 일어난 것만 보고도 ‘아! 저기에 벌써 불이 났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담 밖에 담 너머로 뿔만 지나간 것을 보아도 ‘아! 저 담 밖에 소가 지나갔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 몸뚱이는 담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고 뿔 끄터리만 보여도 담 밖에 소 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여.

영리한 사람은 척! 연기만 보고 불인 줄 알고, 뿔만 보고도 소인 줄 알아.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를 보고 불인 줄을 모르고, 그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저것이 무엇인가? 뿔 끄터리를 보고 벌써 소인 줄 알아야 할 텐데, 저것이 뾰족한 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말인가? 개인가? 사람인가? 지게인가? 이러쿵저러쿵 따진다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3분8초~24분6초)




(2)------------------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그말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다가, 무엇을 듣다가 깨달을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떠한 중대한 뉴스를 방송을 한다 할 때, 시간을 잘 모를 때에는 항상 다이얼을 맞춰서 딱 놔두고 기다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똥을 눌 때도 그렇고, 오줌을 눌 때도 그러고, 앉아서도 그러고 서서도 그러고.

이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되는 법이 없어. 고조사(古祖師)들이 ‘그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아주...

부처님께서는 ‘무엇 무엇이 안 하면 내가 어쩌리라’고 함부로 그러한 막담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인(古人)네는 우리 후인(後人)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그러한 맹세를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36분35초~41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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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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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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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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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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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ㄱ/기도2021. 3. 26. 16:22

기도((No.117))—부처님 당시에 왕의 노모 병환 치유 | 소원성취는 죄업(罪業)을 참회하고, 나아가서 십선(十善)을 닦아야 | 기도는 올바르게, 정성(精誠)으로,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해야.
충남 금산 보석사 주지스님 중풍 치료 이야기 | 단식(斷食) |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병자구입(病自口入)하고 화자구출(禍自口出)이라」


*기도(祈禱 빌·구할 기/빌·기원 도)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빌고 구하는 것. 기원(祈願), 기청(祈請), 기념(祈念) 등과 같은 말.

 

 

(1) 18분 47초.

 

(2) 10분 36초.

 


[법문] 송담스님(No.117)—1980(경신)년 신수기도 회향(80.02.24) (용117) (기도)

(1)------------------

오늘은 7일 기도에 회향일로써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은 각기 어떠한 큰 소원과 또 작은 소원, 먼 소원과 가까운 소원들이 각기 있었을 줄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아주 효심이 지극해서, 그 노모(老母)가 한 분이 계셨는데 그 노모가 병환이 났습니다. 그 노모 병환을 낫우기 위해서 천하에 명의를 다 모아 가지고 치료를 했고, 좋다는 약은 아무리 비싼 약도 불구하고 만금(萬金)을 주어서 약을 구해 가지고 썼지만, 백약(百藥)이 무효였습니다.
그래서 바라문(婆羅門) 학자들을 수백 명을 초청을 해서 공양을 올리고, 그 바라문 학자들에게 자기 어머니의 병을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문의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리를 깨달은 대학자들이니까 반드시 우리 어머니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실 테니 그걸 좀 일러주십시요"

그러니까 그 바라문 가운데에 한 사람이 우멍하게 눈을 감었다 떴다 하더니, "지끔 하늘에 별들이 제자리에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혼잡을 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 음양의 질서가 흐트러져 가지고 그것 때문에 국왕에 모친이 병환이 난 것이니, 하늘에 태양과 달과 별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되 동물, 코끼리와 소와 말과 양 돼지 등 백 마리를 잡어서 희생으로 바치고, 거기에다가 아주 잘생긴 몸에 흠 하나 없는 소년을 갖다가 생(生)으로 그 희생(犧牲)으로 바쳐서 하늘나라에 제사(祭祀)를 지내면 병환이 낫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를 지내되 성 밖에 넓은 터에다가 제단을 차리고 직접 왕이 그 왕에 어머니를, 대비마마를 모시고 나와서 꿇고 앉아서 제사를 올리십시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믿고서 그러는 준비를 다 했습니다. 해 가지고 제사를 지낼려고 할 때에 부처님께서 가만히 관(觀)을 해 보시니까, 그냥 뒀다가는 백 마리의 그 산짐승과 아까운 소년 하나가 불에 타서 죽을 것을 염려하시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제(祭)를 지낼려고 하는 현장에 나아가셨습니다. 가셔서 법문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무릇 곡식을 얻으려면은 땅을 갈고 씨를 심어서 잘 가꿔야만 곡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고, 장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하려면 마음을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항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죽은 목숨을 살려 주고, 다른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서 약을 사 주고, 이렇게 해서 자비심을 갖는 것이 자기의 수명을 연장(延長)시키는 최선의 길이니라. 그리고 부귀를 얻으려면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布施)를 하고 사회복지를 위해서 희사(喜捨)를 해야만 부귀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를 얻으려면은 학문을 열심히 닦아야 지혜가 얻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지혜는 세속적인 지혜도 들어가고, 참으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벗어나서 진리의 지혜를 얻으려면 물론 마음을 비워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되겠습니다마는,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곡식과 장수와 부귀와 지혜를 얻는 방법을 말하셨습니다.

세상에 부자로 사는 부귀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음식과 옷을 주어도 먹지를 않고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부자로 고귀하게 사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그러한 음식을 주어도 잘 먹지를 않는 법이거늘, 하물며 하늘나라에 천신(天神)들은 그 집은 칠보(七寶)로 장엄이 된 궁전에서 살고, 입는 옷은 무겁지도 않고 아주 가볍고 따뜻하고 서늘하고 한 그러한 옷을 입으며, 음식은 감로(甘露)의 음식으로써 얼마든지 먹고만 싶으면 이미 배가 불러져 있을 만큼 그렇게 제절로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이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인간 세상에 소나 돼지나 말 염소 그러한 추악한 추한 그런 고기를 먹으며 또 사람을 갖다가 바친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그 신들이 그런 것을 먹기 위해서 이 제단에 올 수가 있겠느냐.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그 왕도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懺悔)를 하고 또 거기에 모였던 바라문들, 수백 명의 바라문들도 자기들이 그러한 진리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을 국왕에게 일러 가지고 큰 죄를 지을뻔한 것에 대해서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 국왕의 어머니는 그 법문을 듣고 거기에서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마음에 기쁨을 얻음과 동시에 백약이 무효했던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자기의 업, 죄업(罪業)을 참회를 우선해서 해야 한다고 한 것을 이 기도 입재일(入齋日)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참회를 하고 그리고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십선(十善)을 닦는 것이 소원을 성취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기도(祈禱)라 하는 것은 어떠한 절대자에게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나아가서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도록 기구(祈求)를 하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마는, 기도는 마치 산에서 산골짜기에서 고함을 치면 큰 고함을 치면 큰 메아리가 울려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 거와 같이 그 사람의 정성(精誠)이 얼마만큼 철저했느냐, 기도하는 방법이 얼마만큼 바르냐, 얼마만큼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소원의 성취 여하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충청남도 금산, 옛날에는 전라북도고 지금은 충청남도가 되었습니다마는 금산에 가면 보석사라고 하는 오래된 절이 있습니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이 6 · 25 동란이 나서, 그분은 부인을 데리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마는 6 · 25 동란을 맞아 가지고 부산으로 피난(避難)을 갔습니다. 부산에 금수사라고 하는 절이 있는데 그 절로 피난을 가서 방 한 칸을 얻어 가지고 그 할머니하고 같이 거기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많은 탓으로, 객지에 가서 날씨는 춥고 먹는 것은 센찬코, 도저히 그 고생이 형언(形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로왔던지 중풍병(中風病)이 일어나 가지고 반신(半身)을 쓰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방에서 대소변을 받아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백방으로 서둘러서 좋은 약은 다 구해다가 봉양을 하고, 좋은 의원이 있다고 하면 모셔다가 침(鍼)도 놓고 뜸도 뜨고 약도 쓰고 했지마는 전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보석사 그 주지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도—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나을까?' 하고 희망을 가지고 침도 맞고 약도 쓰고 백방으로 다 해 봤지만, 아무리 해 봤자 터럭끝만큼도 효험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병 나을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내가 하루 더 살면 하루 남을 괴롭게 하고 못살게 하고 나만 더 괴롭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내가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밥도 굶고, 죽도 안 먹고 그래 가지고 아주 죽기로 결심을 하고서 계속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열흘, 이렇게 해서—누울라야 몸이 아퍼서 누울 수도 없고 그래서 이불을 말아 가지고 벽에다 세워 놓고 그 이불에다 등을 대고 다리를 뻗고 앉어서, 그래 가지고 아주 한시라도 빨리 죽기를 원(願)을 세우면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2주일 이렇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루는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었는데 30년 전에 돌아가신 은사 스님이 떠억 찾어와서 "내가 지나다가 니가 여기서 고생을 하고 있다길래 잠깐 들렸다. 니 입은 옷이 센찬쿠나. 이 옷을 입어라" 하면서 조그만한 보따리를 주어서 그걸 끌러서 보니까 아주 얄팍한 얇은 그런 내복이었습니다.

"스님! 지금 아직 날씨가 추운데 이렇게 얇은 것을 입고 어떻게 지낼 수가 있습니까?"
"그래 괜찮다. 보기와는 달라서 이걸 입으면 가볍고 뜨시고 좋다. 그리고 니가 아프다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어디 진맥을 좀 해 보자" 그러면서 팔목도 만져 보고 왼쪽 팔, 왼쪽 다리, 아픈 데를 고로고로 문지르고 주무르고 고로고로 만져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잘 있거라. 그리고 병 치료 잘해라"
그리고서 그렇게 그 다리 속이 뼛속이 아프고 절리고 했던 것이 그 스님이 이렇게 만지는데 어찌 기분이 시원한 것 같애서 자기도 그 아픈 다리를 주물르면서 요렇게 다리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이렇게 드니까 깜박할 사이에 스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있어서 '참 이상하다' 그 스님한테 받은 옷은 간 곳이 없고 스님도 갔고, 그러고 만지고 하면서 있는데, 자기 그 할머니가 밖에 나갔다가 나가서 들어오면서 어디서 돌팔이같이 생긴 의원 영감님을 한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분이 중풍병 고치는데 아주 공이 있으신 의원이라"고, "아주 어렵게 찾아서 이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러니 좀 침(鍼)을 좀 맞읍시다" 헌께,
"나는 침 안 맞는다"고, "침 안 맞을 테니까 아주 그분을 보내라"고.

"그래도 여까지 왔으니까 한 번만 맞아 보라"고 하도 사정을 해서 '인자는 내가 30년 전에 돌아가신 스님이 와서 흰옷을 주고 간 것이 아무래도 나가 인자 오늘 죽거나 오래 살아도 수삼 일 이내에 내가 죽을 것이로구나. 내가 죽을 꿈을 그렇게 꾸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기왕 죽는 몸에, 죽는 김에 저렇게 그 마누라가 저렇게 서리가 부옇게 내린 새벽길에 나가서 의원을 저렇게 모시고 온 그것이 참 고마와서 그 사람 가슴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소원으로 이거 침을 맞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그러면 침을 놓으시라"고, 그래서 그 의원이 여기저기 몸에다가 수십 대 침을 놓았습니다.

놓고서 "어디 팔을 한번 들어 보라"고.
"그렇게 침을 맞고 약을 먹고 해도 낫지 않는 팔이 들어지겠습니까? 안 들어집니다"

"아니, 그래도 한번 들어 보라"고 하면서 의사가 그 노장님 팔을 쑥 들어올렸습니다. 뜻밖에도 팔이 들어올려지고, "다리도 한번 들어 보라"고. 다리도 딱 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원이 "그것 보라"고. "내 침이 보통 침이 아닌데, 아! 그렇게 그 팔이 움직여지고 다리가 움직여지는데 왜 안 들어진다고 하냐"고 아주 그 의원이 자기의 그 침이 그렇게 영험이 있다고 하는 것을 자랑삼아서 기고만장(氣高萬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장님은 '니가 침 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까 꿈에 그 스님이 와서 주물러 주어서 그래서 나은 것이지, 니가 가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그 자기 침 때문에 나은 줄 알고 야단이다'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인사로 "참 고맙다"고. "덕분에 이렇게 몸이 많이 효과가 있다"고 그렇게 인사를 하고 그분을 보냈습니다. 그 뒤로 그 노장님 병이 완쾌하게 나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산에 피난살이를 어느 정도 끝내고서 서울에 삼각산에 그 금선암이라고 하는 절을 짓고 10여 년간을 아주 건강하게 잘 사시면서 '이미 내 몸은 10여 년 전에 6 · 25 때 이미 죽은 몸인데,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내가 다시 살아났으니 이 몸뚱이는 내 몸이 아니라 오직 이 불법(佛法)을 펴기 위해서 일생을 마쳐야 할 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지막 80여 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신도 교화를 위해서 몸을 바치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실화로써 어째서 그러면 중풍, 세상에 중풍을 염불(念佛)해 갖고 중풍이라고 하는 그런 병이 나았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조끔 안 믿어지실 분이 있을런지 모릅니다마는 염불을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정말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그러한 중풍병 뿐만 아니라, 문둥병과 같은 그러한 병도 나은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18분42초~37분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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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보석사 주지 스님은 어째서 어떻게 했가데 병석에 앉아서 그렇게 했는데, 그런 무서운 중풍병이 나았느냐?
첫째는 '살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죽을려고 마음을 냈다' 죽되 왜 죽을라고 하느냐?
자기 몸이 괴로와서만이 아니라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해 줘야 하거늘 내가 육십 평생을 중노릇을 한 사람이 나로 인해서 저 나이 많은 마나님을 갖다가 저렇게 고생을 시키고, 이 피난살이에 그냥 와서 한쪽에 있는 것도 큰 폐가 되는데, 이러한 반신불수(半身不隨)의 병이 되어 가지고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똥오줌을 싸고 냄새를 피우니 이 부처님께나 이 절 주지 스님에게도 그러한 죄가 될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겠다' 이러한 마음을 가졌고, 또 하나는 단식(斷食)을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병이 나면 어쨌던지 먹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먹고, 정신을 차리고 원기를 보충을 해야만 병이 빨리 낫는다고 생각합니다마는 단식(斷食)을 한다고 하는 거, 단식을 하는 것이 어떠한 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짐승들은 병이 나면, 소나 말이나 돼지나 병이 났다 하면은 단식을 합니다. 입을 딱! 다물고 아무것도 먹지를 않습니다. 먹지 아니함으로써 한 사흘쯤 굶으면 어지간한 병은 다 낫습니다. 병이 나은 다음에사 비로소 돼지나 개나 소나 말이나 음식을 먹습니다.

짐승은 병이 나면 단식해 가지고 스스로 자기 병을 낫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리석게 영리해 가지고 병만 났다 하면 그렇게 먹기 싫고 귀미[口味]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먹어 가지고, 병(病)을 밥상 밑으로 내쫓는다 해 가지고 억지로 먹어 가지고 끌끌거리고 소화가 안 되고, 맛이 없으면 소화가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면은 영양이 흡수가 되지를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억지로 대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그 기력 없는 기력을 더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음식을 먹으면 활발하게 소화 작용이 벌어지고 또 흡수를 해 가지고 노폐물은 배설을 하고 영양은 섭취를 해 가지고 전신으로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병이 나면 그러한 일들이 병나는 데로 모든 피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 동원되기 때문에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하고 배설할 수 있는 그러한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음식이 들어와도 소화도 못 시키고 흡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는 자동신호가 바로 '귀미(구미)가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귀미가 떨어지면, '아하, 이거 먹지 말라 라고 하는 몸안에서의 소식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어디가 아퍼서 귀미가 떨어지던지 또는 속이 되게 상해 가지고 입맛이 뚝 떨어지던지, 무슨 근심 걱정이 있어 가지고 밥이 먹기 싫던지, 이럴 때에는 밥을 굶으십시요. 그리고서 냉수를 한 컵 마시세요. 이렇게 하면 병이 났다 하더라도 빨리 치유가 되고 또 체하는 법도 없고.
속이 되게 상할 때 밥을 억지로 먹어 놓으면 담방 체해 가지고 끌끌거리고 소화도 안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여러 날 고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요새 귀여운 아들과 딸을 가지신 분들은 애들이 아침에 밥을 안 먹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이걸 어떻게 달래고 타일르고 해 가지고는 억지로 먹여서 보낼라고 야단입니다. 이건 우리도 어렸을 때 겪어봐서 압니다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먹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안 먹으려고 하는 애들은 잘 달래서 물이나 한 컵 먹여서 보내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유도 좋지를 않고 계란도 좋지 않고, 더군다나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여서 보내 놓으면 좋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될 수 있으면은 혹 귀미(구미)가 있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은 모르지만, 먹기 싫거든 언제든지 먹지 마십시요.

우리가 일생 동안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열 가마니나 또는 스무 가마니 딱! 지정이 되어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먹는 양을 많이 먹으면 그 지정된 자기의 식량이 빨리 없어질 것이고, 조끔씩 먹고 또 먹기 싫을 때 안 먹고, 병이 났을 때 안 먹고 또 아침에 안 먹고 무슨 핑계를 대서든지 그거 식량을 아껴서 먹으면 그것이 바로 육십 세까지 다 먹을 것을 그렇게 해서 평소에 조끔씩 먹고, 귀미 없을 때 안 먹고 또 아침에 안 먹고, 기분이 나쁠 때 안 먹고, 슬플 때 안 먹고 해서 자꾸 핑계를 대서 적게 먹으면 육십 세밖에 못 살 사람이 칠십 세도 살 수 있고 또 팔십 세도 살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돈을 아껴서 쓰면 오래 쓰고 막 함부로 쓰면은 빨리 바닥이 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우스게 말로 들으실는지 모르지만, 적게 먹되 그것을 잘 소화를 시키고 완전히 흡수를 하면은 그것이 좋은 것이고, 많이 먹되 소화도 잘 못 시키고, 흡수도 잘 못하고 잔뜩 대변만 많이 누면 이것은 몸만 괴롭게 하고, 아까운 곡석[穀食]과 음식물을 헛되이 낭비한 것이 되고 말 것이며, 나아가서는 건강도 나빠지고 수명도 단축하는 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병자구입(病自口入)하고 화자구출(禍自口出)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병이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 하는 말은 음식물을 통해서 많은 병이 생긴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또 재앙이 왜 입에서 나오느냐? 말조심을 하지 아니하고 말을 함부로 하다가 모든 재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에 말 잘못해 가지고 죽는 예가 많고, 부부간에 얼마나 많은 싸움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일어나고 농짝을 때려 붓는 예가 많은 것입니다.
말이라 하는 것은 형제간에도 말 때문에, 일가 간에도 말 때문에, 친구 간에도 말 때문에 새이가 벙그러지고 웬수가 되는 예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은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 하는 말씀이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아주 내 몸을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참선을 할 때에 무아(無我), 무아의 경지를 겪어야만 깨달음에 도달한다. 또 기독교에서는 '나의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에게 다 바치고. 나는 죄 많은 중생이요, 아무 힘도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 전체를 다 바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려고 마음먹을 때에 그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구제를 받는다' 하는 교리와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칠 일 동안 가정에서 또는 이 법보선원에 나오셔서 각기 열심히 기도를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도를 아까 이 보석사 주지 스님처럼 완전히 부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다 맽기고, 나의 모든 죄를 참회(懺悔)를 하고 그렇게 간절히 하셨다면 여러분이 생각하신 크고 작은 소원은 반드시 성취가 될 것을 저는 보증합니다.(37분28초~48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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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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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ㄱ/경책(警策 警責)2021. 3. 17. 08:50

경책(警責)(No.024)—꿈에 거룩하게 생긴 노장님이 꾸지람을 하심. '진실한 도를 닦았느냐? 네가 출가한 목적을 달성했느냐?' | 무주상(無住相) 보시의 복은 무량하다.

*경책(警責 깨우칠 경/꾸짖다·나무라다 책) ; 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음.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장군죽비(將軍竹篦) ; 보통 죽비(竹篦)는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약 1.5~2m의 큰 죽비.

 

 

(7분 29초)

 

 

[법문] 송담스님(No.024)—1976년(병진년) 동안거 결제(76.10.15.음) (용024)

오늘은 병진년 삼동 결제일이고, 삼동안거(三冬安居) 결제일이고 또 오늘부터서 내년 정월 15일까지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너 이놈!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찌 부모를 모시지 아니하고, 가정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손을 낳아서 그 가문을 번창하게 하지 아니하고, 사회에 나가서 국가 · 사회와 인류에 이바지한 바 없이, 부모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국가와 사회도 버리고 인류도 버리고서 머리를 깎고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그것 하나로써 네가 너 할 짓을 다 했느냐?
출가해서 오 년, 십 년, 삼십 년, 오십 년 내지 일생토록 머리를 깎은 부처님 제자로서 참으로 신도 피땀 흘려서 바친 신도의 밥과 옷을 정말 소화시킬 수 있는 진실한 도를 닦았느냐?

처음에 출가해서 일 년, 이 년, 삼 년은 그럭저럭 공부한 것 같이 애를 쓰더니만 사 년, 오 년, 육 년, 십 년, 이리 되니까 차츰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해태에 빠지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고, 나이는 차참 먹어가니까 거룩한 척하고 신도들의 절을 받고 시주(施主)를 받아서 '밥이 되다 질다, 반찬이 있다 없다, 방이 뜨시다 차웁다' 갖은 불평불만을 가진 채 정말 네가 출가한 목적을 달성했느냐?
그리해 가지고 정말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여의고 가정을 여의고 사회 국가를 버리고서 출가한 네 자신이 부끄럽지 않느냐?


네가 부처님을 믿는답시고 돈과 쌀을 갖다 바치고 '아들딸 잘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영감 승진하게 해 주십시오'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 '딸이 좋은 신랑을 만나도록 해 주십시오'
돈 · 쌀 갖다가 바치고 기도하고 불공하고, 그것이 네가 부처님 제자로서 정말 참되고 올바른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
그리고서 갖다 바치고서 자기의 상(相)을 내고 '나는 이러이러하게 부처님께 바쳤다. 이렇게 나는 암만의 돈을 바쳐서 부처님께 금을 입혀 드렸고, 이렇게 돈을 많이 바쳐서 법당을 지어 드렸고, 이렇게 불양답(佛糧畓)을 시주해서 복을 지었다. 나를 봐라. 내 이름은 지금 아무 절에 가서 지금 현판에 쓰여 있다. 나를 모르다니? 너희들이 얼마나 절에다 돈을 바쳤느냐?'

부처님을 믿되 구하는 바가 있으면은 그 신심은 정말 진실하고 참된 신심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구하는 바 없이, 내가 바치되 '바쳤다'는 생각이 없이 이렇게 시주(施主)를 하면은 단돈 한푼을 시주하고, 단 쌀 한 움큼을 갖다 바치고, 물 한 그릇을 떠서 바쳐도 그 복은 무량한 것입니다.
그러나 칠보(七寶)로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차는 보물로 탑을 쌓아 올리고 불상을 조성해 모시고 절을 지어 바쳤다 하드라도 '내가 바쳤다'고 하는 그러한 상을 가지게 되면은 그 힘들여서 바친 그 시주는 맥빠진 김빠진 맥주처럼 참 가치가 찰나간(刹那間)에 가치가 소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치라고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돈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형편이 넉넉하시면은 좀 많이 갖다가 내시고, 또 형편이 어려우시면 단돈 백 원도 좋고 오백 원도 좋고, 또 돈이 없으면 쌀 한 되도 좋고 두 되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물심양면으로 부처님과 법보(法寶)와 승보(僧寶)를 위해서 성의껏 여러분은 시주를 하시고, 동시에 법문을 듣고 열심히 스님네의 지도를 받아서 공부를 잘 하셔서 속세에 계시면서도 열심히 공부만 하신다면 얼마든지 머리 있는 채도 다 해탈도를 증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까 먼저 어떠한 말씀드린 그 말씀은 제가 어느 날 저녁에 꿈을 꾸니까 거룩하게 생긴 허연 노장님이 나와서 저한테 꾸지람을 그렇게 하신 것을 제가 듣고 소스라쳐 놀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꿈을 꾸었던 그 얘기는 나만 들을 얘기가 아니라 우리 용화사에 금년 삼동(三冬)에 공부하러 오신 우리 도반들, 청풍납자(淸風衲子) 우리 수좌(首座) 스님네들을 위해서도 이런 말씀은 들려드리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습니다.(28분42초~36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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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불양답(佛糧畓 부처 불/양식 량/논 답) ; 부처님[佛]에게 올리는 쌀[糧]을 생산하는, 절에 딸린 논밭[畓]. 불향답(佛享畓, 佛餉畓)이라고도 한다.
*칠보(七寶) : 일곱 가지의 보배。즉 금(金), 은(銀),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법보(法寶 부처님의 가르침 법/보배·보물 보) ; 불교도의 세 가지 귀의처,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하나.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보배[寶]에 비유한 말.
*청풍납자(淸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사람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淸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衲子]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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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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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깨달음2021. 2. 16. 08:42

깨달음(No.319)—명성(明星) | 납월팔일. 용맹정진 | (게송)一見明星夢便廻 千年桃核長靑梅 雖然不是調羹味 曾與將軍止渴來.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10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319)—86년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07) (용319)

해마다 돌아오는 납월팔일(臘月八日)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2531년이 되었습니다. 2531해의 납월팔일이 지내가고 또 이렇게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그 납월팔일 새벽별을 보시고서 그렇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2530회 동안 해마다 뜨는 그 별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철대오를 했을까요?

오늘 새벽에도 그 별은 떴습니다. 하늘이 안개가 끼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별은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납월팔일이 되면 초하루부터서 8일 새벽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선방(禪房)에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이런 불교를 믿는 절에 선방에서는 다 용맹정진(勇猛精進) 또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특별히 용맹정진을 하는 그러한 거시기를 안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개인적으로 다 일주일간을 용맹정진 하는 그 마음으로,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모두 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한데  천년도핵장청매(千年桃核長靑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여, 한 번 그 새벽별을 보시고서 꿈을 문득 돌이켰다 그말이여. 오랜 잠 속의 꿈을, 별을 한 번 봄으로 해서 꿈을 턱! 돌이켜서 깨달아 버렸어.
천년도핵(千年桃核)이 장청매(長靑梅)다. 천 년이나 묵은 복숭아씨에서 푸른 매화의 싹이 텃드라. 복숭아씨에서 복숭아 싹이 나지 않고, 복숭아씨는 분명히 복숭아씨인데 그 복숭아씨에서 매화의 싹이 텃드라 그말이여.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비록 그 매화를 가지고, 그 매화의 신맛을 가지고 국의 맛을 고르지는 못하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로구나. 일찍이 장군에게 그 목마른 것을 그치게 했더라.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군사들이 계속 격전을 거듭을 해가지고 땀을 많이 흘렸어. 그래서 목이 말라서, 그런데 모두 준비했던 물은 다 먹어버리고 미처 물 준비를 못하고 계속 싸우면서 나아가는데, 목이 말라가지고 군인들이 병사들이 발광을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때에 조조가 ‘저 산너머 가면 거기에 매실(梅實)이 많이 열렸다. 저 산만 넘으면 실컷 매실을 먹을 수가 있다’ 그 매실 얘기를 하니까 병사들이 ‘매실’ 말만 듣고도 침이 지르르르 하니 입안에 가득차가지고 갈증을 면한 고사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하는 말, 그 말을 듣고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납월 8일 무렵만 되면 온 천하에 총림 선원에서 모두 ‘우리도 부처님처럼 고행 정진하고, 용맹정진 다못 일주일간이라도 용맹정진을 하고 가행정진을 하자’ 그래가지고 하는데. 가행정진 용맹정진 중에 확철대오를 한 분도 간간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가행정진 했다고 해서 그 대중이 다 깨닫느냐 하면은 그렇지를 못해.
그래도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 또는 가행정진을 하면 그동안에 장군죽비(將軍竹篦)를 가지고 경책(警策)을 하고, 이렇게 경책을 맞으면서 7일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다 대지 아니하고 그렇게 정진을 하는데, 그 꾸벅 졸면은 입승(立繩) 스님이 와가지고 장군죽비로 등짝을 내다 친 바람에 잠이 버쩍 버쩍 잠이 달아나고 그런데.

그 장군죽비를 안 맞으려고 어떻게 눈을 갖다가—처음에 한 3일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사흘, 나흘이 되면은 눈 껍데기가 천근이나 되게 눌리고, 아무리 정신을 들라고 해도 금방 일 초도 못된 사이에 꺼벅한다 말이여. 또 금방 정신을 딱 차렸는데 또 꺼벅하고.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하다 보면 그때 하는 동안에는 순전히 잠을 안 자려고 싸울 따름이지만, 납월 8일을 지내고 나서 보면은 정말 정진하는 데에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실지로 일주일 동안은 그렇게 맑은 정신이 난 것 같지 않고 오직 잠과만 싸웠지만, 지내 놓은 뒤에 한결 정진하기에 힘이 생기고, 신심도 나고 그래서 납월 8일에는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해왔던 것입니다.

비록 매실을 가지고 국 맛은 고르지를 못해. 저 산너머에 있는 ‘매실이 있다’한 그걸 가지고 실지로 그 매실을 마시고, 먹을 수는 없지마는 그 말만 듣고서도 입안에 침이 주르르르 나와 가지고 입안에 고여서 갈증을 면할 수가 있더라.

이 게송(偈頌)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내가 설명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8분59초~19분2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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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새벽별 ; 샛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그 납월팔일 새벽별을 보시고서 그렇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이천오백삼십 회 동안 해마다 뜨는 그 별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철대오를 했을까요?' ;

『선문염송 · 염송설화』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1권 3칙 ‘오도(悟道)’
<염송설화(拈頌說話)> 大慧云 釋迦老子正覺山前 從定而起 因見明星忽然悟道 信知時節若至 其理自彰 但記悟道時節因緣而已 則世尊悟處 不在明星上 香嚴悟處 不在擊竹邊

대혜가 이르기를 “석가 노자께서 정각산 앞에서 선정에서 일어나 샛별을 보시는 순간 홀연히 도를 깨달으셨으니, 이는 시절이 이르면 그 이치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인데, 다만 도를 깨달은 시절과 인연을 기록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세존의 깨달음은 샛별에 있지 않고 향엄의 깨달음은 대나무를 때리는 데 있지 않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게송) ‘일견명성몽변회~’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권 3칙 '오도(悟道)' 취암종(翠嵓宗) 게송 참고.
[참고] 〇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내용으로,
조조(曺操)가 장수(張繡)를 정벌할 때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고통이 아주 심했는데, 이때 조조가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저 앞에는 넓은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잠시만 참고 힘을 내자.”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잊게 되었다 한다.


〇육조 시대 송(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있는 내용으로,
진(晉)을 세운 사마 염(司馬炎)이 오(吳)나라를 공격할 때 길을 잘못 들어 헤매어 식수가 바닥이 났고,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어 병사들은 갈증이 심하여 더 이상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때 사마염은 문득 꾀를 내어 말하기를 “여러분 조금만 참고 가면 저 언덕 너머에 매화 숲이 있소. 그 곳에 가면 매실이 가지가 휠 정도로 매달려 있소.”
매실이란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여 갈증을 잊었다.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장군죽비(將軍竹篦) ; 보통 죽비(竹篦)는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약 2m의 큰 죽비.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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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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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거울 법문2021. 1. 27. 20:54

거울 법문((No.479))—(게송)三際求心心不見 兩眼依前對兩眼 不須遺劍刻舟尋 雪月風花常見面 |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들을 때에는 소리를 듣거든 온전히 듣고, 모든 색상을 볼 때에는 보는 것밖에는 법(法)이 없다.


*거울 법문 ; 거울이라는 것은 그 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비추는 것이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이 다 이 거울에 나타나는 자기 모습입니다.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입니다.


이 허공의 거울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색상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모든 것도 그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허공으로 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내 허물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그 회사나, 그 사회나, 그 국가나, 그 세계에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엇을 맡을 때나, 무엇을 먹을 때나, 무슨 생각이 나거나 바로 그 찰나 찰나가 자기가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그 잘못된 곳을 반성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그리고 자기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거울로 잘 사용을 해 나간다면 우리는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나날이 향상이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볼 것입니다.



(8분 7초)

[법문]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삼제구심심불견(三際求心心不見)호되  양안의전대양안(兩眼依前對兩眼)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수유검각주심(不須遺劍刻舟尋)하라  설월풍화상견면(雪月風花常見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제구심심불견(三際求心心不見)이여. 과거 · 현재 · 미래, 이게 삼제(三際)인데, 과거의 마음을 구(求)해도 구할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을 구해도 구할 수가 없고, 미래의 마음을 구해도 구할 수가 없어. '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가?' 한 번 찾어보시라 그 말이여. 어떻게 생겼나?

암만 찾어봐도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손으로도 잡을 수가 없고, 우리의 생각으로도 아무리 어떻게 생겼는가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양안의전대양안(兩眼依前對兩眼)이여. 두 눈은 예나 다름없이 두 눈을 대하고 있더라.

거울을 떠억 보시라 그말이여. 거울을 따악 들여다보면 자기의 그 두 눈이 거울 속에 따악 들어 있거든.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그 두 눈이 바로 자기 두 눈에 영상(影像)이거든.

자기 두 눈을 아무리 보려고 해도, 하늘땅을 다 찾어봐도 그것은 찾을 수가 없는데, 거울을 딱 보면 그 속에 자기 두 눈이 딱! 들어 있거든.


그러면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그 눈이 진짜 자기 눈이냐 하면 아니여. 자기 눈에 그림자이지, 영상(影像)이지 진짜 자기 두 눈은 아니거든.

진짜 자기 두 눈은 아니지만, 자기 눈을 보려면은 거울을 보는 수밖에는 없어. 거울을 통(通)해서 자기 눈을 보는 거여.


거울을 딱! 보면은 자기 눈에 눈꼽이 끼인 것도 볼 수가 있고, 자기 눈이 빨갛게 충혈한 것도 볼 수가 있고, 그 거울을 가자(假藉)해서 진짜 자기 눈을 딱! 인식을 할 수가 있는 거여.

거울을 가자(假藉)하지 않고 아무리 눈을 찾어도, 땅을 파고 들어가도 그 속에는 없고, 하늘을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도 그건 없는 거다 그 말이여.


불수유검각주심(不須遺劍刻舟尋)이다.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뱃전을 찍지를 말아라.

배를 타고 가다가, 배에서 일을 하다가 칼을 잃어버렸어. '바로 여기에서 칼을 잃어버렸다' 해 가지고 그것을 표(標)하기 위해서 뱃전을 찍어서 표(標)를 하지 말아라 이거거든. 칼은 물에 빠졌는데, 그 물에 빠졌는데 뱃전에다가 표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거거든.


설월풍화상견면(雪月風花常見面)이여. 칼은 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자기 손에 들고 있거든.

자기 손에 들고 있으면서 칼을 잃어버린 줄 알고 뱃전에다가 그 칼로 '탁탁' 흠집을 내서 칼 잃어버린 자리를 표(標)를 했다면 어떻게 된 것이냐.


겨울이면은 펑펑 쏟아지는 흰 눈, 가을이면 휘황창 밝은 달, 여름이면 시원하게 부는 바람, 봄이면은 청황적백(靑黃赤白)으로 피는 아름다운 꽃, 설월풍화(雪月風花)를 항상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되더라 그거거든.


겨울에 나리는 눈과 가을에 밝은 달과 여름에 부는 바람, 봄에 피는 울긋불긋한 꽃들을 볼 때에 무엇을 봐?


'아! 꽃이 아름답다'

여름에는 아! 시원한 바람이 불면 '아! 시원하다'

달이 밝으면, '아! 달도 밝다'

눈이 펑펑 쏟아지면, '아! 눈도 참 잘 쏟아진다'


그것을 화가(畵家)는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을 것이고, 시인(詩人)은 그것을 보고 시를 읊을 것이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그것들을 보고 무엇을 해? 춤을 출까?


들을 때에는 소리를 듣거든 온전히 듣고, 모든 색상을 볼 때에는 보는 것밖에는 법(法)이 없느니라. (1시간4분56초~1시간13분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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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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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No.445)—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 구경(究竟)의 깨달음이어야 한다 | 팔만사천 마구니 | 참선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10분 21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아까 전강(田岡) 조실 스님 법문에 ‘이 화두(話頭)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왜 그러냐?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참선법(參禪法)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된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안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지옥도 없는 것이고, 뭐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딱!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한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갈 까닭도 없고, 그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할 수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그 사람은.

 

숨 거둘 때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의 사자(使者)가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이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다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다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이 좀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좀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해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해 버려야 되거든.

 

또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에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것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식(識)이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에 저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저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저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안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境界)가 나타나면 공부에 참 큰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식(識)이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法門)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이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다 된 것처럼 착각을 해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저 스님이 뭣을 훤히 잘 아는 스님이다. ‘저 스님은 도통했다’ ‘저 스님은 도인이다’ 해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막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척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남 점쳐 주고 해 가지고 그거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이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참!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돼.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구니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道)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그 팔만사천 마구니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온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해 나가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한 생각 삐끗 딴생각[別念]을 낸 그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한 생각을 동(動)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가 솥을 씻어 가지고 그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이 쌀 한 톨에 시주(施主)의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이 쌀을 이렇게 함부로 해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이 나타나 가지고 ‘여러 해 동안을 내가 이 도량(道場)에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그 스님은 평소에 항상 그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그 스님을 볼라야 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한 생각 화를 내니까 그 좀을 타서 도량신이 그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한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또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그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해 나가느냐’가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에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요, 이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안 걸려드느냐의 그 판가름이 한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분46초~53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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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요지부동(搖之不動 흔들다·흔들리다 요/어조사 지/아닐 부/움직일 동) ;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경계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말.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사자(使者 사신 사/놈 자)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견지(見地) ; 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 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 · 말나식(末那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 ; '잠깐(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매우 짧은 시간)'의 사투리.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챗구녁 ; ‘수챗구멍(허드렛물이나 빗물 따위가 빠져나가는 구멍)’의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이 쌀 한 톨에 시주(施主)의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 일미칠근(一米七斤).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②]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의 수호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또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그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태굴(懈怠窟 게으를 해/게으를 태/굴 굴)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의 굴(窟).

*기로(岐路 갈림길 기/길 로) ; ①길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②갈림길(둘 이상의 갈래로 나누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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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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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ㄱ/가부좌(참선자세)2020. 12. 3. 04:20

가부좌(No.256)—바른 신심 · 뜨거운 분심 · 간절한 의심 | 자세가 바르면 정신도 바르게 된다 |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면 그 자세가 아름답다 | 생각, 행동이 바뀌는 그 경계에 속아 화두를 놓치지 말고 들어야.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전가부좌(全跏趺坐) · 온가부좌(온跏趺坐) ·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는 참선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입니다. 그래서 대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 또 성불하신 부처님 같은 성현도 항시 시간 있는 대로 숲속에서, 당신 처소에서 항시 가부좌를 하셨던 것입니다.

 

(11분 10초)

 

[법문]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 (용256)

 

오늘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도 닦아가는 사람이 먼저 바른 스승을 만나야 한다.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옳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한다’ 옳게 지어 나갈라면, 첫째 바른 사상이 탁! 중심 잡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바른 믿음, ‘나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 결정코 나도 도(道)를 이룰 수가 있다’고 하는 신념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의 불보살(佛菩薩)과 모든 선지식(善知識)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지어가지고 대도를 성취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시고 계시는데, 나는 오늘날토록 무엇을 하느라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오늘까지 도를 이루지 못했던가’ 그 분심(憤心)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지식으로부터 간택 받은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해서 대의심(大疑心)이 돈발(頓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밑받침되지 않고서는 대의정(大疑情)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확고하고 불같은 그러한 뜨거운 신심, 분심이 한목 솟구치지 않고서는 화두를 들어도 들 때뿐이고 금방 돌아서면 없어져버리고, 하루는 겨우 한 듯하다가 이틀 사흘 가면 차츰차츰 풀어져 버리고. 이것이 모두가 다 그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게 뒷받침되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째서 화두를 들어도 간절한 의심이 안 나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진정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 점에 있어서 고민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지 못한 그 까닭이라고 할 것입니다.

 

 

첫째에 그런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다면 그다음에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여.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서—가부좌는 참선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입니다. 그래서 대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 또 성불하신 부처님 같은 성현도 항시 시간 있는 대로 숲속에서, 당신 처소에서 항시 가부좌를 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더 닦을 것이 있고, 무엇을 더 깨달을 것이 있으시리오마는, 그 가부좌를 하고 앉는 자세 그 자체가 훌륭한 것입니다.

일체 마군(魔軍)이 엿보지 못하고, 일체 악신(惡神)이 근접을 못하고, 항시 25선신(善神)이 그 주위를 호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 불법을 믿는 사람은 어디 가서 앉던지—차를 타던지, 정거장에 대합실에 앉던지, 가정에서나 어디를 가더라도 항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기는 조금 어렵겠습니다마는 설사 가부좌는 안 하더라도 항시 허리를 쭉 펴고 머리끝과 회음부(會陰部)가 수직상에 놓여지도록 그렇게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세 하나만 바르게 가져도 벌써 정신 상태가 딱! 근엄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리를 꼬부리고 그리고서 턱이 앞으로 나와 가지고 이렇게 앉으면 멀쩡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고, 농판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허리를 쭉 펴고 앉기만 하면 일자무식(一字無識)일망정 남 보매 호락 하게 보이지 아니하고 아주 그분은 보면은 학문도 많고, 수행도 있고, 인격자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속은 똥만 가득 들어갖고 남 보매 인격자로 보이라고 한 말씀이 아니라,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함으로써 정신이 딱! 차려지기 때문에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육체를 먼저 바로잡으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도를 안 닦은 일반 세속 사람도 조금 뭐한 사람은 다 보면 자세가 훌륭하고, 앉은 자세나, 선 자세나, 그 자세가 바른 것입니다. 대학자나 또는 장군이나, 대실업가의 두목이나, 다 세속에 아무개 한 사람 보면은 자세가 바르고 늠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은 사람이, 순(純) 그 바르고 근엄한 정신생활을 하는 수도인이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아니한다고 해서야 말이 안 될 것입니다.

 

첫째, 자세를 바르게.

 

자세를 바르게 하라니까 너무 어깨에다 힘을 주고 목에다 힘을 주어가지고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에 힘도 빼야 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는 그 요령을 터득을 해야 합니다.

 

단정하게 앉으면서도 헛심, 쓸데없는 힘을 뺀다고 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자기가 자기를 항시 요렇게 가늠해 보고 살펴보면서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

힘을 빼면서도 단정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면 그 자세가 너무너무 두 어깨의 선이라든지,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뒤에서 볼 때 너무너무 훌륭한 것입니다. 아름답기조차 하는 것입니다. 근엄하면서도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그 두 어깨의 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고 너무 힘을 주어가지고 뻣뻣하게 앉아 있으면 영판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공부하는 데에도 얼마 못 가서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앉는 법에 대해서 항시 스스로 잘 살피면서 또 잘 아는 분에게 점검을 받아서 어디가 잘못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교정을 받는 것도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좌선(坐禪)에 들어갈 때에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차츰차츰 이렇게 한가운데에다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포행(布行)을 한다든지, 방선(放禪)할 때 일어설 때에도 느닷없이 갑자기 불끈 일어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준비 운동도 하고, 다리도 앞으로 뻗어서 주무르기도 하고, 발목도 이리저리 돌려서 발목 운동도 하고, 이렇게 한 다음에 살며시 이렇게 두 손을 땅에다 짚고서 조용하게 일어나 가지고 기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불끈 일어나 가지고는 달음박질을 친다든지, 높은 데서 뛰어내린다든지, 이런 것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조용하게 앉았다가 갑작스런 운동으로 변하게 되면 피나 심줄이나 근육이 놀래기도 하고, 때로는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지거나 발목을 삐는 수도 있고.

 

그리고 정진은 앉아서만 하고 일어서면 아니한 것이 아니라, 앉아서 공부하다가 일어서더라도—일어서서 걷거나, 일을 하거나 하더라도 앉았을 때 공부하던 그 의단(疑團)이 고대로 유지가 되도록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랴면 자연히 앉은 자세에서 서는 자세로 옮길 그 한계선이 언제든지 중요한 것입니다.

앉았을 때까지는 잘되다가 불끈 일어서는 찰나에 놓쳐 버리기도 하고, 뭘 가만히 앉았다 무슨 소리가 딱! 들어오는 찰나에 화두(話頭)를 놓치기도 하고, 뭘 보다가 딱! 놓치기도 하고.

 

그래서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옮기는 그 즈음 새, 어떤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길 때에 그 중간 경계(境界), 그런 데서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때 딱! 그 경계에 속지 아니하고 화두를 이어서 관조(觀照)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한 철, 두 철, 공부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 터득되어질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53분19초~64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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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한다.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마군(魔軍) ; ①불도(佛道)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악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한 악마의 군사. ③일이 잘 풀리지 않도록 훼방을 놓는 무리.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회음부(會陰部) ; 사람의 음부(陰部, 남녀의 몸에서 바깥 생식 기관)와 항문 사이의 부위.

*농판 ; ‘멍청이(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의 사투리.

*일자무식(一字無識) ;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 또는 그런 사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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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깨달음2020. 11. 11. 15:48

 

 

깨달음(세등39)—(게송)黃鶯上樹一枝花~ | 육근을 통해 받아 들여지는 육식이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무상설법(無上說法) | 오도(悟道) 기연 | 一超直入如來地, 그러므로 이 공부는 일분일초도 등한히 할 수 없다 | ‘참으로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1) 14분 25초.

(2) 14분 19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9)—1982(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세등39)

 

(1)------------------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헌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다.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 점에 눈이더라.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인데, 밤새 오는 비바람 소리를 객(客)이 먼저 들었는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봄 산은 옛을 의지해서 초당 앞에 서 있구나.

 

 

임술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벌써 4월 17일 입하(入夏)가 지나서 뜰 앞, 뜰 뒤 산과 들은 바야흐로 연록(軟綠)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들도 지고 지금 모란꽃이 한창 피어 있습니다.

 

노란 꾀꼬리가 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꽃이요,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 점에 눈이다.

한 송이의 꽃, 노란 꾀꼬리 한 마리가 떠억 나뭇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다.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오를 때 한 가지의 아름다운 꽃이요. 산과 들과 방방곡곡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울긋불긋한 꽃과 잎이 비단에 수(繡)놓은 것처럼 이렇게 싱그럽고 아름답게 장엄(莊嚴)을 하고 있습니다.

 

범연(泛然)히 보면, 예사로 보면, 봄이 오니까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돌아오니까 이렇게 무성하게 잎이 모다 피어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 평범한 현실이 입으로 설할 수 없고,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에 진리를 남음이 없이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색상, 귀를 통해서 듣는 모든 소리, 코를 통해서 맡는 모든 냄새, 혀를 통해서 맛보는 모든 맛, 몸을 통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 뜻을 통해서 받아 들여지는 모든 의식이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무상설법(無上說法)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새벽 동천(東天)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견성성불(見性成佛)하셨고, 어떠한 도인(道人)은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물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멱살을 거머쥐고 서로 다투고 욕을 하는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확철대오를 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깨달을 때에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경계에 들어가서, 화두(話頭)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만 나가고 있으면 언제 어느 찰나에 의단이 타파(打破)될런지를 알 수가 없어.

 

예를 들자면, 어느날 중대한 뉴스가 발표가 된다. 확실한 시간은 모르지만 오늘 중으로 무슨 중대한 발표가 있다.

이럴 때에 아침부터 라디오나 TV 다이알을 딱 맞춰 놓고, 언제 중대한 발표가 돌연히 발표가 될는지 모를 때에 딱 다이알을 맞춰 놓고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벌써 다이알을 맞춰 놓지 아니한 채 있다가 지나가 버리면 중대한 발표를 듣지 못하는 거여.

 

언제 발표될지를 모를 때처럼 딱 다이알을 맞춰 놓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떠억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이여.

 

번갯불 번쩍할 때에 그 번쩍 하는 그 찰나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뀌듯이, 깨달음의 눈을 뜨는 그 장면은 마치 그와 같은 것이여.

점진적(漸進的)인 것이 아니고, 비약적(飛躍的)인 것이기 때문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공부는 일분일초라도 등한히 놓아 지낼 수가 없는 것이여.

 

다른 공부는 시간을 맞춰서도 하고, 또 공부 아니할 때에는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놀기도 하고, 먹고 잠도 자기도 하고, 사업이나 무슨 사무나 모든 것을 다 놔 버리고 훌쩍 떠나서 저 산이나 바다로 쉬러 가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의 공부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를 들고 먹어야 하고, 세수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세수를 해야 하고, 똥을 눌 때에도 화두를 들고 똥을 눠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꿍꿍 앓아야 하고, 속이 상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속을 상해야 하고.

다정한 사람이 죽어서 슬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괴로울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단 1초 동안이라도, 찰나 동안이라도 화두를 놔 버리면 그 사람은 진실한 수행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처음~14분42초)

 

 

 

 

(2)------------------

 

그런데 이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돛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또 어떤 때에는 뚝 변해 가지고 영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볼 수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안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때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때,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잘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이 말씀이여.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라면은 그러한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得力]' 이것입니다.

 

흔히 화두가 성성하게 잘 들리면은 공부가 잘된다고 좋아하고, 그러다가 보면 또 공부가 영 답답하고 잘 안되면 그 안되어서 성화를 내고 거기에서 번뇌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내고, 어쩔 줄을 몰라. '기도를 해 볼까? 주력을 해 볼까?'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진수궁의무로(山盡水窮疑無路)터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라.

꽃다운 풀 우거진 길을 지나가지 아니하면, 꽃 떨어진 마을에 이르기 어렵다. 향기 나는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가야 꽃이 활짝 피고 지고 한 아름다운 고장에 들어갈 수가 있다.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해서 이제 맥혀 가지고 인자 길이 없지 않나? 이렇게 의심했더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버들은 그윽히 드리워져 있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또 한 마을이 있더라.

 

아무리 화두를 들고 정진할라고 애를 써도 가도가도 답답하기만 하고, 한 걸음도 공부가 더 나아가는 늘어나는 수가 없어. 작년에 마냥해도 그 택이요, 금년에도 마냥해도 그 택이요. 그것 또 몇 해냐?

몇 해를 자기 딴에는 밤잠을 안 자고, 남 구경하고 놀러가도 자기는 구경하고 놀 것을 그만두고 자나깨나 화두를 들고 애를 써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만(萬)날 해도 죽 떠먹은 자리여. 누구한테 내놓을래야 내놓을 것이 있나, 무슨 콱! 맥혀서 답답하기만 하고.

 

‘참으로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공연히 이렇게 화두만—꽉 아무 생각 못하게 하고 잡념 못하게 하기 위해서, 풀라야 풀 수도 없고 아무 답도 있을 수도 없는 그런 공안(公案)이라 하는 문제를 주어 가지고 이 사람 골때리는 지서리가 아닌가?’

‘무슨 이거 방편(方便)으로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게 만들어 가지고 마침내 번뇌 망상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조사(祖師)가 방편으로 화두니, 공안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도 들드라 이 말씀이여.

 

3년, 5년, 10년 해봤자 무슨 소식이 있어야지?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혼침(昏沈)만 오고, 아무리 화두를 들라고 몸부림을 쳐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망상(妄想)뿐이고, 망상이 조금 잠잠해질라 하면 그때는 또 혼침이 와 가지고.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지루하고 얼마나 못 견뎠으면 웃옷을 벗어서 방바닥을 치면서 ‘이 조주(趙州)가 뭣 때문에 무자(無字) 화두를 내 가지고 이 사람을 이렇게 골탕을 먹이냐’고 다리를 뻗고 우는 스님도 있었고, 머리를 갖다가 벼람박에나 기둥에다 갖다가 이마를 수없이 들이받으면서 피가 나오도록 받으면서 죽어버리고 싶은 이러한 충동을 느끼는 수도 있고.

 

그러나 역대조사(歷代祖師)에 남기신 법어(法語)를 보면 결정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인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해결이 안 되지만,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에 의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그래 가지고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고, 머리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이 보이지 아니하고, 산을 봐도 산의 빛깔과 모냥에 대해서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으되 앉아있는 줄을 모르고, 천 명 만 명 사람이 있는 데에 서 있어도 한 사람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밥을 먹고 반찬을 먹어도 짜고 싱거운 줄을 모르고. 이러한 경지에—오직 화두의 의단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독로하고.

 

이러한 경계에 들어가서도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누가 나로 하여금 이럴 때에 툭!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가야 일주일이 가지 아니해서 반드시 의단이 타파가 되어서 확철대오를 할 것이다.

 

이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여. 역대조사가 다 그러한 과정을 다 겪으셨어.

 

‘이것이 만약에 거짓이라면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겠다’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도 맹세를 하셨고, 몽산(蒙山) 스님도 맹세를 하셨고, 산승(山僧)도 이 도리를 믿고 여러분 앞에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에게 선언을 합니다.

 

출가한 목적은 오직 이 한 문제! 이 일대사(一大事) 해결하는 이 밖에는 다시 무엇이 있습니까?

부모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의 모든 낙(樂)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한 우리들입니다. 정말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14분45초~29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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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黃鶯上樹一枝花 白鷺下野千點雪’ ; 『오등회원(五燈會元)』 제15권 「奉先深禪師」 참고.

師曰 ‘古人道白鷺下田千點雪,黃鶯上樹一枝花’ 維那作麼生商量?

*(게송) ‘夜來風雨客聞先 春山依舊草堂前’ ; 『매천집』 (제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 (제3권) - 시(詩) : 신축고(辛丑稿)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 역)

夜來風雨客聞先 隔嶺思家轉杳然 已過頭番摘茶候 將蕪一畝種蔘田 老懷慣與同庚話 詩訣勤從後輩傳 世事十年驚百變 春山依舊草堂前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첫 찻잎 딸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세상일은 십 년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9월10일 음독 자결하였다.

*연록(軟綠 연할 연/초록빛 록) ; 연한 녹색. 연녹색. 연한 초록색(草綠色).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무상설법(無上說法) ; 진리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가르침.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샛별 ; 새벽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어떠한 도인(道人)은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730.

福州靈雲志勤禪師本州長溪人也 初在潙山因桃華悟道 有偈曰 三十來年尋劍客 幾逢落葉幾抽枝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祐師覽偈詰其所悟與之符契 祐曰 從緣悟達永無退失 善自護持

 

복주(福州) 영운지근(靈雲志勤) 선사. 그는 본주(本州 : 福州)의 장계(長溪) 사람이니, 처음에 위산에 있다가 복사꽃을 보고서는 도를 깨닫고 게송을 지었다.

 

30년 동안 검(劍)을 찾던 나그네여. 몇 차례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았나.

스스로 복사꽃을 한 차례 본 뒤로는 지금에 이르도록 다시는 의심치 않네.

 

영우(靈祐)가 이 게송을 보고 그 깨달은 바를 따져서 서로 계합하였다. 영우가 말했다.

"인연 따라 깨달아 도달했으니,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리니 잘 보호하여 간직하라"

 

*'어떠한 도인은 물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운서주굉 스님 지음) 「제조고공절략(諸祖苦功節略 조사들의 공부법)」의 ‘이두촉주(以頭觸柱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다)’에서.

中峰本禪師 侍高峰死關 晝夜精勤 困則以頭觸柱 一日 誦金剛經 至荷擔如來處 恍然開解 自謂所證未極 彌益勤苦 咨決無怠 及觀流水 乃大悟

評曰 自謂所證未極 故終至極處 今之以途路 爲到家者 衆矣 嗟夫

 

중봉본(中峰本) 선사는 사관(死關)에서 고봉(高峰) 화상을 모시고 주야로 정진하며 지내는데, 곤(困)하면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곤 했다. 하루는 금강경을 외우다가 '하담여래처(荷擔如來處)'라는 대목에 이르러 환하게 개해(開解)하더니 스스로 말하기를 "증한 바가 아직 구경(究竟)이 아니다"하고 더욱 힘써 정진하여 부지런히 법을 묻고 결택하더니, 어느 날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마침내 대오(大悟)하였다.

(평) 중봉선사는 스스로 '증한 바가 구경이 아니다'라 했으니, 그런 까닭으로 마침내 지극한 곳에 이르렀거늘 지금에 길위에 있으면서도 집에 이른 것으로 아는 자가 많으니 딱한 일이다.

 

*'어떠한 도인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

[참고]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 : 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 · 지리산 · 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祖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뀌다 ; ‘꿰다’의 사투리.

*점진적(漸進的 점점 점/나아갈 진/조사 적) ; ①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②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비약적(飛躍的 날 비/뛸 약/조사 적) ; ①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②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것.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것.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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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돛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또 어떤 때에는 뚝 변해 가지고 영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볼 수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안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때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때,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잘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는 고비’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그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이 말씀이여.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라면은 그러한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得力]' 이것입니다 ; 득력(得力).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게송)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가로판 p174)

*(게송)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 중국 남송 세대의 시인, 육유(陸遊)의 시 《遊山西村》 참고.

莫笑農家臘酒渾,豊年留客足鷄豚。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近,衣冠簡樸古風存。從今若許閑乘月,拄杖無時夜叩門。

 

[참고] 송담스님(No.523)—93년(계유년)성도재 법회(93.12.08.음)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해. 목적지를 찾아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데 이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니 물도 다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인자 더이상 갈 곳이 없구나. 내가 갈 곳은 어디냐? 이렇게 물도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이제 길이 콱 끊어졌으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그러나 거기서 쉬지 않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서 한 고개를 넘어가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파란 버들은 그윽히 휘늘어지고 밝은 꽃은 환하니 핀 또 한 마을이 거기에 있구나.

*; 그 정도. 그 만큼. 그 수준.

*만날(萬-) ; ①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②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어느 때든. ③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매우 자주.

*골때리다 ; 어이없고 터무니없다.

*지서리 ; ‘짓거리('짓'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사투리. *짓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벼람박 ; ‘바람벽(--壁,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벽)’의 사투리.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몽산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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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교외별전2020. 9. 27. 20:42

교외별전(No.178)—(게송)夢裏明明有六趣~ | 부처님께서는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49년 동안 설하신 것은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다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세로판 p28, p34. 가로판 p29, p35.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 若人 失之於口則拈花微笑 皆是敎迹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 皆是敎外別傳禪旨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8분 48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한데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러니,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분명하게 육도(六道)가 있더니—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고, 축생도 있고, 아귀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분명히 그 꿈속에서는 그러한 육도가 있더니, 각후(覺後)에는 공공무대천(空空無大千)이로구나. 깬 뒤에는 비고 비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없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꿈속에 돈 뭉탱이를 주섰다. 하! 이런 보배 뭉탱이를 주섰다.

'이러한 좋은 보배를 평생에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내가 얻었던가!' 그렇게 기쁘고 흐뭇하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꿈을 딱! 깨고 보니까 그렇게 좋아하고 만지작거렸던 그 보물이 간 곳이 없더라.

꿈속에 그 독사란 놈이 물려고 쫓아와서 그 진땀을 흘리고 두려운 공포에 떨었었는데 탁! 눈을 뜨고 보니까 그 혀를 널름거리고 달라들었던 독사가 간 곳이 없더라.

 

천당과 지옥도 중생의 환몽(幻夢)—환상(幻想)의, 환각(幻覺)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천당이 있었고 지옥이 있었고 축생이 있었지만, 중생의 그 환몽을 깨버린다면 천당도 간 곳이 없고 지옥도 간 곳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의 그 피나는 고행을 하셔서, 마침내 납월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 뜬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깨달으신 것이 무엇을 깨달렀냐?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설하신 것이 무엇을 설하셨냐 하면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여.

 

처음에는 바로 그 환몽(幻夢)을 깨는 법을 설하셨지만, 중생의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해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알아듣기 쉬운, 행하기 쉬운 방편(方便)을 설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 바로 이 깨는 법을 여지없이 설하셨다 그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 다 용궁에는 그것이 다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교(敎), 경(經) 중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는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千七百)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22분11초~31분)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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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처전심(三處傳心) ;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한 것. 세 곳이란 첫째는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둘째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세째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다.

 

선종에서는 이를 통해 가섭존자를 전등(傳燈)의 초조(初祖)로 삼는 동시에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 · 이심전심(以心傳心) 등의 근거로 삼는다.

 


①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bahuputraka-caity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śālī)성 서북쪽에 있다. 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 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ūta-parva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 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 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Rā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ś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ī)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세로판 p28~29. 가로판 p29~30.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註解) 三處者 多子塔前 分半座 一也 靈山會上擧拈花 二也 雙樹下 槨示雙趺 三也 所謂迦葉 別傳禪燈者 此也 一代者 四十九年間所說五敎也 人天敎 一也 小乘敎 二也 大乘敎 三也 頓敎 四也 圓敎 五也 所謂 阿難 流通敎海者 此也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니,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禪)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는 것이 이것이다. 한평생 말씀하신 것이란 49년 동안 말씀하신 다섯 가지 교(敎)인데, 첫째는 인천교, 둘째는 소승교, 셋째는 대승교, 넷째는 돈교, 다섯째는 원교이다. 이른바 「아난존자가 교(敎)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然則禪敎之源者 世尊也 禪敎之派者 迦葉阿難也 以無言 至於無言者 禪也 以有言 至於無言者 敎也 乃至心是禪法也 語是敎法也 則法雖一味 見解則天地懸隔 此 辨禪敎二途

 

그러므로 선과 교의 근원은 세존이시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니,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선(禪)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교(敎)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교법이다. 법은 비록 한맛이라도 견해는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떨어진 것이니, 이것은 선과 교의 두 길을 가려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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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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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