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금생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3분 39초)
[법문] 송담스님(N0.427)—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427)
요새 더위도 갔고 아직 추위도 오지 안 했으니, 옛날에 학문을 하는 사람은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 할 때다, 독서를 하기 좋은 때다 했습니다마는 우리는 펴 봤자 한 글자도 없는 경(經)을 읽는 거여.
알 수가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만 잡드리한다면,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세수하고 양치질 하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해 갈수록 뭣이 환히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드리해.
인간에는 생노병사가 있고, 세상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이 지구도 앞으로 백만 년 후에는 뭐 없어진다던가? 지구도 틀림없이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은 결국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우주 이 세계나 우리의 몸뚱이나 결국 없어지는 것인데, 그 없어진 것 가지고 그놈에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거고.
언젠가는 없어질 줄 알았다면 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을 우리는 발견을 했으니 그 길에 벗어부치고 대든다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금생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뭣한 사람은 그것이 궁금해서 나한테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고 한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깨달을 수 없다면 공연히 이 아까운 인생을 거기다 바치면 허송세월 할 것이고, 그러니 깨달을 수 있다면 내가 마음놓고 공부를 하겠습니다'
아! 거 대단히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하냐 하면은 '깨달을 수는 틀림없이 있는데, 앞으로 3년 후에 깨달을지, 10년 후에 깨달을지, 30년 후에 깨달을지, 마지막 숨 딱 질 때 깨달을지, 금생에는 못 깨닫고 내생에 깨달을지, 그것은 내가 알 수가 없으나,
그 언제 깨달을 것이냐 하는 것은 본인이 첫째, 과거에 어떻게 닦아 왔느냐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고 또 금생에 얼마 만큼 바른 법에 의해서 전력투구를 하느냐, 금생에 얼마만큼 여법(如法)하게 닦느냐 그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제 깨달을 것인가?' 자꾸 미리부터 그것에 신경쓰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 따질 시간이라도 화두(話頭)를 들어야 그만큼 시간은 단축 된다 이것입니다.(42분36초~46분1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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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펴 봤자 한 글자도 없는 경을 읽는 거여' ; '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 '내게 한 권의 경(經)이 있으니 종이나 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펴보면 한 글자도 없건만 항상 큰 광명을 놓는구나' 서산대사의 『운수단가사(雲水壇謌詞)』 [부록(附錄)] '거량(擧揚)'에 있는 게송.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뭣한 ; 뭣하다(무엇하다). 형용하기 어렵거나 그것을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암시적으로 둘러서 쓰는 말. 주로 '거북하다' '곤란하다' '난처하다' '딱하다' '미안하다' '쑥쓰럽다' 따위의 느낌을 나타낼 때 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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