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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05 참선 자세(No.578)—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에 힘을 빼고서 아주 자연스럽게 자세를 가져라 | 눈은 평상(平常)으로 뜬다.
  2. 2020.02.03 결제, 해제(No.578)—(게송)春從東海南飛錫 秋向西山又北方 三百六旬長擾擾 不知何日到故鄕.
  3. 2020.01.31 깨달음(No.122)—깨달음은 이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 | 분별심으로 이르지 못한 곳이 바로 '깨달음' | 불교의 목적은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
  4. 2020.01.20 각차수질(脚蹉手跌) (세등선원No.58)—화두순숙 의단독로 확철대오 | 자가철주 | 자포자기는 가장 큰 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정진해야.
  5. 2020.01.10 공화(空花) (No.176)—(게송)萬事悠悠此百年~ | 일점영명(一點靈明) | 생사는 본래 없다 | (게송)萬朶靑山圍梵刹~ | 생사 없는 진여불성 자리.
  6. 2020.01.06 결집(結集) (No.619)—대장경 결집 역사 | 고려대장경 전산화 수희동참 |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 공덕 이야기 | 아사세왕의 참회, 제1회 결집 외호공덕.
  7. 2020.01.05 결제(結制), 해제(解制) (No.214)—(게송)古今天地誰曾悟~ | 산철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정말 마음껏 정진할 수 있는 계절.
  8. 2019.11.12 경계(境界) (No.321)—어떠한 경계에도 바로 화두를 들어 자기로 돌아오면 흥망성쇠, 희로애락 한 장면 한 장면이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 되는 것입니다.
  9. 2019.11.11 근기(根機) (No.321)—적극적 요중선(鬧中禪)이야말로 훌륭한 참선 | 상근 · 중근 · 하근.
  10. 2019.11.08 공덕(功德) (No.619)—대장경 결집 역사 | 고려대장경 전산화 수희동참 |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 공덕 이야기 | 아사세왕의 참회, 제1회 결집 외호공덕.

참선 자세(No.578)—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에 힘을 빼고서 아주 자연스럽게 자세를 가져라 | 눈은 평상(平常)으로 뜬다.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4분 8초)

 

[법문] 송담스님(No.578)—96년(병자년) 동안거결제 법어(96.10.15) (용578)

 

초학자(初學者)는 첫째, 앉는 자세—몸을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해서, 될 수 있으면 가부좌를 하면 몸을 단정히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단정하게 된다 그말이여.

 

한국 사람은 다리가 좀 짧아서 가부좌를 처음에 할 때에는 발목이 아프고 좀 힘이 들지만 자꾸 해 버릇하면, 처음에는 한 5분씩 하다가 나중에는 한 10분씩 하다가 15분, 차츰차츰 여러 달을 두고 익혀 나가면 그것도 인자 길이 들어서 가부좌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마는. 그것이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도저히 가부좌를 해 가지고는 발목이 부러질 것처럼 아파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억지로 그것을 끝까지 할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서서히 연습을 해서 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해 보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정 가부좌가 안 되면 반가부좌만 해도 정진하는데 조금도 상관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오른발을 구부려서 딱 잡아당겨서 놓고, 오른발 위에다가 왼발을 딱 올려놓거나 그렇게 해서 얼마쯤 하다가 정 다리가 저리면 다리를 또 바꾸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허리는 쭉 등뼈를 펴되, 너무 힘을 주어 가지고 뒤로 자지바지 하니 그렇게 할 필요는 없고, 단정하되 앞으로 기울지도 말고 뒤로 너무 자지바지 하지도 말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에 힘을 빼고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세를 갖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너무 감지도 말고 평상으로 딱 떠서 평지에서 앉았을 때 눈앞에 2m 지점이 보일 정도로 이렇게 눈을 뜨되, 2m 지점 특수한 어떤 점을 지정해 놓고 거기를 응시(凝視)해서는 안 돼.

 

어떤 사람은 '2m 지점을 보이도록 하라'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그 지점에다가 콩 같은 것을 하나 놓고 종일 그 콩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런 사람을 봤는데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어.

볼려면 2m 지점이 보이게 하라는 것이지, 그 지점을 응시하고 주시(注視)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고.

 

이는 지그시 물되, 너무 꽉! 물거나 위 아랫니가 떠서는 안돼. 지그시 이렇게 힘을 들이지 않고 이를 다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 안에다 혀끝을 갖다 대도록. 그러면 혀 밑에서 침이 인자 요렇게 솟아오르는데, 쪼끔 나오면 꼴딱 생키고 쪼끔 올라오면 꼴딱 생키고 자주자주 삼키지 말고, 입안에 가뜩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뜩차거든 가만히 삼키는 거야.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법이고.(16분31초~20분3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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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자지바지 ; 좌선(坐禪)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어, 몸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할 때는 몸을 단정(端正)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Posted by 닥공닥정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5분 49초)

 

[법문] 송담스님(No.578)—96년(병자년) 동안거결제 법어(96.10.15) (용578)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야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봄에는 동해로부터서 저 남쪽으로 주장자(拄杖子)를 날리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가을이 되면은 서산을 향하고 또 북방을 향해서 다니는구나.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야, 삼백육십일을 정처 없이 안착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다니드니,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냐. 아지 못해라, 어느 날에나 고향에 돌아갈 것인가.

 

해제(解制)를 하면 걸망을 짊어지고 저 동에서 남쪽으로 주장자를 들고 가고, 또 가을이 되면은 동결제를 위해서 저 서산을 향할까 가다가 또 북방으로 가고.

걸망을 짊어지고 주장자를 짚고 그리고 선방을 찾아서, 선지식을 찾아서, 도반을 향해서 행각(行脚)을 하는 수좌(首座) 스님들의 거동을 읊은 것입니다.

 

결제 · 해제를 당해서 '이 철에는 어디로 갈까? 다음 철에는 어디로 갈까?' 이렇게 철 따라서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옛날부터서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행해지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것을 꼭 나쁘다고 할 것도 없고.

 

부처님께서는 "한 돌 위에, 한 나무 밑에 사흘 저녁을 자지 말아라"

'한군데서 붙배기로 있게 되면은 거기에 애착심이 생기니까 그렇게 한곳에 집착해서 있지 말라'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시나,

 

어디가 있던지 한 철을 지내건, 두 철을 지내건, 항상 새로 방부(房付)를 들이고, 새로 첫 철로 그 선원에 들어온 것처럼 엄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면 삼 년 내지 십 년을 지낸들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이냐.

한번 딱! 방부를 들이면 옛날 스님네는 그 선지식(善知識)을 믿으면 그 선지식 밑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 십 년이고 내지 삼십 년도 거기를 떠나지 아니하고, 거기서 아주 바닥을 볼 때까지 그 회상(會上)을 떠나지 않고 정진을 한 그런 예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냥 멋으로, 취미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으레이 해제하면 걸망짐 싸매 지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그렇게 뜻 없이 방황한 것에 대한 그것을 경계(警戒)하는 게송(偈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처음~6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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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춘종동해남비석~'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행각승(行脚僧)' 게송 참고.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붙배기 ; '붙박이(어느 한 자리에 고정되어 박혀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 또는 그런 사물이나 사람)'의 사투리.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바닥(을) 보다 ; ①(사람이) 밑천이 다 없어지다. ②(사람이) 어떤 일의 끝장을 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으레이 ; 으레(①거의 틀림없이 언제나 ②두말할 것 없이 마땅히)의 사투리.

*경계(警戒 경계할 경/경계할 계) ; ①뜻밖의 사고나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여 단속함. ②적의 기습이나 간첩 활동과 같은 예상하지 못한 침입을 막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살펴 지킴.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
ㄱ/깨달음2020. 1. 31. 16:10

깨달음(No.122)—깨달음은 이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 | 분별심으로 이르지 못한 곳이 바로 '깨달음' | 불교의 목적은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14분 43초)

 

[법문] 송담스님(No.122)—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 (용122)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는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판치생모라고 하는 공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공안(公案)은 어떻게 해서 생겼느냐 하면 조주 스님께 어떤 스님이 (묻기를) '달마 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사서래의,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입니까?'

'달마 스님이 무엇하러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셨습니까?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근본 뜻이 무엇입니까?' 이 말은 「불교의 근본 진리가 무엇입니까?」 내나 표현은 다르지만 근본은 있어서는 같은 뜻인 것입니다.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판치생모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참선법을 가르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하기 위해서 달마 스님이 오셨다' 이렇게 대답할 것 같은데, 그러한 대답을 하시지 아니하고 '판치(板齒)에 털이 났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판치에 털이나?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자 이빨 위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이것이 또한 우리의 의심거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개나 됩니다. 천칠백이 넘는 것입니다.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은 수없이 많고 문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이나 되는데, 그러면 그 많은 공안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 것이냐?

 

일본에서는 의리선(義理禪)이라 해가지고 이 공안을 하나씩 스승으로부터 받아가지고 그 하나를 며칠 동안에 걸쳐서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고 해서 온갖 방법, 지식과 이론을 총동원해 가지고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가지고 그 스승한테 가서 딱 이릅니다. 이르면 '되었다' 그러면 그다음에 또 하나의 공안을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 개 이상의 공안을 통과를 하면 '너는 조실(祖室)이 될 자격이 있다. 너의 제자들에게 참선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하고 자격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 있어서는, 중국에서부터서 쭉 내려오는 정통적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있어서는 공안을 애당초부터 이론을 사용하지 말도록 지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을 가지고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하고 이리 해가지고 어떠한 결론을 얻은 것은 설사 그 결론이 부처님의 말씀이나 경전에 있는 말씀과 상통하는 그럴싸한 결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공안에 바른 답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이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 이론, 우리가 아무리 체계 있는 이론을 세웠다 해도 깨달음 앞에서는 일종에 분별심(分別心)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별심을 가지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가르켜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태여 10년 20년을 헛세월을 시간을 낭비하면서 그것을 애쓸 필요가 없이 그 공안에 대한 답을 다 가르켜서 알겄게만 하면 되는 것을 뭐하러 그것을 애를 쓸 필요가 없지 않느냐 이 말씀이여.

 

분별심으로 이르지 못한 곳이 바로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깨달음은 차라리 분별심을 놔 버린 데에서 오히려 깨달음에 들어갈 분(分)이 있는 것이지, 분별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서는 깨달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분별심을 가지고 공안을 천착(穿鑿)을 하지를 말아라. 따지고 분석하지 말아라.

 

분별심을 가지고 하는 것은 이것을 바로 '죽을 사(死)'자, '글귀 구(句)'자,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여.

 

분별심을 버리고 일체 이론과 일체 말 길과 일체 더듬어 들어가는 그러한 버릇을 버리고서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꽉 맥힌 생각으로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또는 '어떻게 하면 병도 깨지 않고 오리도 다치지 않고 그 오리를 병 밖으로 꺼낼 수가 있을까?' 이렇게 다못 그렇게만 다구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입니다. '살 활(活)'자, '글귀 구(句)'자, 활구참선(活句參禪), 사구참선의 반대 활구참선.

 

활구참선! 이 활구참선을 해야만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붓다(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이라 이 말이여.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불법(佛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여.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여.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흐뭇해 할 줄 알고, 자기 뜻대로 되면 좋아하고, 자기 뜻에 어긋나면은 근심 걱정하고 성을 내고 하는, 바로 눈으로는 보이지 아니하고, 손으로도 잡히지 아니하면서 온갖 것을 보고, 온갖 것을 듣고, 온갖 일을 하는 그 신기하고도 묘한 대관절 그놈, 그놈이 무엇이냐? 그것을 깨닫는 것이여.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이여.

 

자기가 자기 밖에 모든 것을 땅속으로부터 저 하늘세계까지를 모든 이치를 다 알고 다 안다 하더라도 자기의 근원, 자기 자신, 참나를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중생이요, 중생이기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생사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는 없는 것이여.

자기는 바로 우주의 중심점이요, 우주의 근원이라고 아까 말씀했습니다마는 그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이요, 거기에 이르는 길이 활구참선법이라 하는 것이여.

 

 

수수께끼 하나를 여러분에게 하겠습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데 많이 먹으면 죽는다. 그런데 안 먹을래야 안 먹을 수가 없다. 대관절 이것이 무엇이냐?」

 

'공기다, 물이다' 별별 소리 합니다마는 다 맞지 않는 소리고, 그것은 '나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이는 아무리 먹어봤자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이 먹으면 지가 안 죽고 못 배깁니다.

그런데 그건, 다른 것은 안 먹을라면 안 먹을 수가 있는데 나이는 아무리 안 먹을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떡국을 보지도 않고 되돌아서도 나이는 먹어지는 것입니다.

 

또 수수께끼 하나를 말하겠습니다.

「눈은 희고 배는 둥근 것이 무엇이냐?」

 

'눈은 희어? 눈은 희고... 그래 사람 눈이 희지. 흰창이 희니까. 사람, 배는 둥글어? 아닌데. 사람 눈이 희다고만 할 수가 없고 가운데 검은창이 있어서 그게 안 맞다' 아무리 생각해봤자 도저히 분별심으로 따져 갖고는 알게 되아 있지를 않습니다. 이건 수수께끼는 수수께낀데 따질수록에 점점 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눈이 희고 배는 둥근 거... 북극에 가면 흰곰이 있다는데 흰곰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봤자 그건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안이 아니고 수수께끼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설파(說破)를 해 드리는데,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학자(學者)에게, 참선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공안을 설파해 주면 이 세상에 제일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공안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타파(打破)를 해야지, 이론을 통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스스로 타파를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지, 이 공안을 갖다가 요리조리 힌트를 줘가지고 알것께 맨든 것은 이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이 되아서 그것은 그럴싸하니 답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깨달을 분(分)을 없게 맨들아 주는 것이 되는 것이여.

 

참선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중생(衆生)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신음을 하던 사람이 겨우 인자 그 병을, 병근(病根)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공안을 갖다가 설파를 해주면 겨우 일어설라고 몸부림친 놈을 여지없이 몽둥이로 쳐서 꺼구러뜨려 버린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힘이 없어가지고 일어설라 말라 하는데 몽둥이로 쳐서 꺼꾸러뜨려 버리니 인자는 그 사람은 틀린 것입니다, 일어나기가. 공안을 설파해 준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설파를 한다고 한 것은 공안이 아니라 수수께낀데 쪼끔 이상한 수수께끼여. 「눈은 희고 배는 둥근 것이 무엇이냐?」 '하늘에서 내린 눈은 희고, 우리가 먹는 과일 배는 둥글다' 이 말이예요.

이것을 갖다가 눈과 배를 결부(結付)를, 한 몸뚱이에다 붙여놓고 그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동물을 아무리 생각해봤자 알 수가 없거든. '하늘에서 내린 눈은 희고 깎아 먹는 배는 둥글다' 이렇게 볼 때에는 여지없이 이거 들어맞거든.

 

화두를 그런 식으로 '판치생모?' 판치(板齒)와 생모(生毛)를 함께 붙이니까 모르니까, 둘로 띄어 갖고 '그럼 판치가 무엇이냐? 생모가 무엇이냐?' 그렇게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이것은 그렇게 알아맞힐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를 따져서 알아맞춘 것이 아니고 '조주가, 조주 스님이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느냐?' 그 조주, 판치생모라고 한 그 뜻을 우리는 참구(參究)를 해야 하는 것이여.

 

그것도 이론을 가지고 따져서 알아맞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그 「어째서」에다가 우리의 의심(疑心)의 눈을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왜? 왜 조주는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가 무엇인고'가 아니에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조주가 판치생모라고 한 그 조주의 뜻을 우리는 참구를 해야 하는 거여.

 

참구를 한다고는 하되 이론적으로 따져서 '이러이러해서 그랬는가? 저래저래해서 그랬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어째서」에다가 우리의 의심의 눈을 박아야 한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법이여. 활구참선을 하는 요령이여.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고, 그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나기는 틀림없이 만났는데, 그것을 올바르게 지어 가야 공부를 다져 나가야 되는 것이여.(47분25초~62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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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조실 스님, 조주 스님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달마(達摩) : [범]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분별(分別)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 자기 본분의 소식, 궁극적인 진실을 가리키는 선종의 화두이다.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미생면목(父母未生面目)이라고도 한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제15권)』 (5) (동국역경원) 제597칙 ‘일격(一擊)’ p375~378.

『전등록(제11권)』 (동국역경원) ‘등주 향엄 지한 선사’ p718~720.

대혜(大慧)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향엄(香嚴) 화상이 백장(百丈) 스님 문하에 있을 때 총명 영리하고 본 것, 들은 것이 많았으나 여러 해를 참선(參禪)해도 이루지 못했다. 백장 스님이 천화(遷化)하고 나중에 위산(潙山)으로 가니, 위산 스님이 묻기를 ‘듣자 하니 그대는 백장의 회상에 있을 때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는데, 이는 그대의 지식과 상념(想念)일 뿐이다. 그대의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일로써 한 구절 대답해 보라[父母未生時 試道一句看]’ 하였다.

선사는 위산의 이 한 물음을 받자 당장 앞뒤가 막막해져서 곧장 방으로 돌아가 평소에 읽었던 문자를 뒤적이면서 대답거리를 찾았으나 한 구절도 알맞은 대답거리를 구하지 못해 끝내 스스로 탄식하되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없구나[畵餠不可充飢]’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주 위산에게 설파(說破)해 주기를 청했는데 위산은 ‘내가 만일 그대에게 설파해 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에게 원망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파해 줄 수 없다(전등록 :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고 하였다.

하는 수 없어 평생에 모은 문자와 서적들을 끌어내다가 불사르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이에 위산에게 하직을 고하고 곧장 남양(南陽)으로 가서 충(忠) 국사의 유적에 참배하고 거기에 머물렀다. 어느날 초목을 베다가 기와 조각을 주워 던진 것이 대나무에 맞아 소리가 나자, 자신도 모르게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콧구멍을 만났다.(깨달은 뒤에 다음과 같이 송했다)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蹤跡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한번 쳐서 알든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됐네.

행동하는데 옛길을 드날리니 초췌한 처지가 되지 않는다.

곳곳에 자취가 없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최상의 근기라 하네.

 

그때의 경지는 마치 어두운 데서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병든 이가 의원을 만난 것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은 것 같고, 아기가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마침내 목욕 분향(焚香)하고 멀리 위산 쪽을 향해 절을 하면서 찬탄하되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가 부모보다 낫습니다. 그때 만일 제게 설파해 주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흰창 ; '흰자위(눈알의 흰 부분)'의 사투리.

*검은창 ; '검은자위(눈알의 검은 부분)'의 사투리.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가로판 p179)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참고 ⑤] 『전등록(傳燈錄)』 제11권.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p718~720.

鄧州香嚴智閑禪師靑州人也 厭俗辭親觀方慕道 依潙山禪會 祐和尙知其法器 欲激發智光 一日謂之曰 吾不問汝平生學解及經卷冊子上記得者 汝未出胞胎未辨東西時 本分事試道一句來 吾要記汝

 

등주 향엄지한 선사는 청주(靑州) 사람이다. 속세를 싫어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도를 흠모하다가 위산(潙山)의 선회(禪會)에 의지했다. 영우(靈祐) 화상은 그가 법을 이을 만한 그릇임을 알고 지혜의 광명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평생 배운 견해와 경전이나 책에서 기억해 가진 것을 묻지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胎)에서 아직 나오지 않아서 동쪽과 서쪽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本分事)에 대해서 시험 삼아 한마디[一句]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수기하겠다”

 

師懵然無對 沈吟久之 進數語陳其所解 祐皆不許 師曰 却請和尙爲說 祐曰 吾說得是吾之見解 於汝眼目何有益乎 師遂歸堂 遍檢所集諸方語句無一言可將酬對 乃自歡曰 畵餠不可充飢 於是盡焚之曰 此生不學佛法也 且作箇長行粥飯僧兔役心神

 

대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다가 오래 침음(沈吟)한 끝에 몇 마디의 견해를 말했으나, 영우가 모두 허락하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영우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사가 결국 방으로 돌아가서 수집해 놓은 제방(諸方)의 어구(語句)들을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대꾸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대사는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으로는 굶주림을 채울 수 없구나”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할 바에는 먼 길을 떠나 죽이나 밥을 먹어치우는 중이 되어서 심신(心神)의 괴로움이나 면하리라”

 

遂泣辭潙山而去 抵南陽覩忠國師遺迹遂憩止焉 一日因山中芟除草木 以瓦礫擊竹作聲 俄失笑間廓然惺悟 遽歸沐浴焚香遙禮潙山 賛云 和尙大悲恩逾父母 當時若爲我說却 何有今日事也 仍述一偈云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踪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그리고는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陽)에 이르러 혜충국사(慧忠國師)의 옛터를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를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면서 멀리 위산을 향해 절을 하며 찬탄했다.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저에게 설명하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게송 하나를 지었다.

 

한 번 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되었네.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초조해 하는 근기에 떨어지지 않네.

곳곳마다 자취를 남기지 않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통달한 자들이 모두 상상기(上上機)라 말하네.

 

[참고 ⑥]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80-181) (가로판 p171~172)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참고 ⑦] 송담스님(No.122)—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에서.

학자(學者)에게, 참선(參禪)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공안을 설파해 주면 이 세상에 제일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타파(打破)를 해야지, 이론을 통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스스로 타파를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지, 이 공안을 갖다가 요리조리 힌트를 줘가지고 알것께 맨든 것은 이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이 되아서 그것은 그럴싸하니 답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깨달을 분(分)을 없게 맨들아 주는 것이 되는 것이여.

 

참선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중생(衆生)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신음을 하던 사람이 겨우 인자 그 병을, 병근(病根)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공안을 갖다가 설파를 해주면 겨우 일어설라고 몸부림친 놈을 여지없이 몽둥이로 쳐서 꺼구러뜨려 버린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힘이 없어가지고 일어설라 말라 하는데 몽둥이로 쳐서 꺼꾸러뜨려 버리니 인자는 그 사람은 일어나기가 틀린 것입니다. 공안을 설파해 준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57분59초~59분25초)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구선(死句禪) ; 사구참선(死句參禪).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병근(病根 병 병/뿌리 근) ; 병(病)이 생겨난 뿌리[根], 근본적(根本的)인 원인.

*결부(結付 맺을묶을 결/붙일의지할 부) ; 일정한 사물이나 현상을 서로 연관시켜[結] 붙임[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만났고'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Posted by 닥공닥정
ㄱ/각차수질2020. 1. 20. 10:32

각차수질(脚蹉手跌) (세등선원No.58)—화두순숙 의단독로 확철대오 | 자가철주 | 자포자기는 가장 큰 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정진해야.

 

*각차수질(脚蹉手跌 다리 각/미끄러질·넘어질 차/손 수/거꾸러질·넘어질 질) ; (몸이 균형을 잃고) 손과 발이 미끄러지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50~52, 『선요』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40~42 참고.

若要的實明證인댄  須開特達懷하며  發丈夫志하야 將從前惡知惡解와  奇言妙句와  禪道佛法과  盡平生眼裏所見底와  耳裏所聞底하야  莫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와  到與不到와  徹與不徹하고

 

만일 이 일을 적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려면 특별한 포부를 품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종전의 나쁜 알음알이와 기묘한 언구(言句)와 선도(禪道)와 불법(佛法)과 평생동안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들에서 위태로움과 죽음, 얻음과 잃음, 남과 나, 옳음과 그름,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 사무침과 사무치지 못함 따위를 돌아보지 말고,

 

發大忿怒하며  奮金剛利刃하야  如斬一握絲에  一斬에  一切斷이라  一斷之後에  更不相續하야  直得胸次中이  空勞勞地와  虛豁豁地가  蕩蕩然 無絲毫許滯碍하야  更無一法可當情이  與初生으로  無異니라

 

크게 분발심을 내어 마치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한줌의 실을 벨 때, 한 번 베면 모두 다 끊어져서 그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당장 가슴속이 텅 비어 호호탕탕(浩浩蕩蕩)해서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한 법도 정식(情識)에 매이지 않음이 마치 갓난아기와 같을 것이다.

 

喫茶不知茶하고  喫飯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이  頓淨하고  計較都忘이  恰如箇有氣底死人相似하며  又如泥塑木雕底相似리라 到者裏하야  驀然脚蹉手跌하면  心華頓發하야  洞照十方이  如杲日麗天하고  又如明鏡當臺하야  不越一念하고  頓成正覺이라

 

차를 마셔도 차 마시는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 먹는 줄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몰라 정식(情識)이 단박 깨끗해지고 계교(計較)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 흡사 숨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 같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과 발이 미끄러져서 마음꽃이 단박에 피어 시방세계를 훤히 비춤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 뜬 것 같으며,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인 것 같아서 찰나에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이다.

 

非惟明此一大事라  從上若佛若祖의  一切差別因緣을  悉皆透頂透底하며  佛法世法을  打成一片하야  騰騰任運하고  任運騰騰하며  灑灑落落하고  乾乾淨淨하야  做一箇無爲無事出格眞道人也라 恁麼出世一番하야사  方曰  不負平生參學之志願耳니라

 

이 일대사만을 밝힐 뿐 아니라, 위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因緣)을 몽땅 아래 위로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한 조각으로 만들어 무심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며, 물 뿌린 듯 쇄락하고, 씻어 말린 듯 정결하여 하나의 격식에서 벗어나 일없는 참 도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번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서 ‘평생동안 참선하려는 뜻과 원력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원문에 있는 '驀然 脚蹉手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문득 발이 미끄러지고 손이 미끄러지는 것이니, 아차! 하는 순간을 말한다. 轉身移步 懸崖撒手. (원순 스님 주)

 

(7분 18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8)—을축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1.17) (세등58)

 

화두(話頭)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면은 거기에는 망상(妄想)도 끼어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망상도 끼어들지를 못할 때에 그것을 '적(寂)'이라 그러는데. '적적(寂寂)하다, 적멸(寂滅)이라' '적적(寂寂)하다'고 그 ‘고요 적(寂)’자를 쓰는데.

 

그 적적하면 너무나 적적하고 고요하고 깨끗해서 그 경계(境界)를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그 경계를 맛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적적하고 깨끗하고 그 경지에서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하다 보니까,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경계에서 자칫하면 화두를 망각하기가 쉬우니라.

 

그러한 경계에서 화두를 들면 오히려 화두를 듦으로 해서 그 고요하고 성성(惺惺)한 경계가 깨질까 두려워서, 화두도 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 수가 있어.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거여.

 

적적하고 성성하고 맑고 고요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있어야 돼.

 

그때는 ‘어떻게 화두를 드냐?’하면—‘이뭐꼬!’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막 어거지로 힘을 써 가지고 막 그렇게 드는 것이 아니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있으면 그 의단만을 떠억 관(觀)할 뿐이지, 자꾸 뭐 ‘이뭣고! 이뭣고!’해 가지고는 그렇게 우악스럽게 그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어.

 

성성(惺惺)한 가운데 적적(寂寂)하고, 그 적적하고 성성한 가운데 의단이 성성하게, 그 고요한 호수에 달이, 저기 달이 비추듯이 그렇게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 의단이 현전(現前)해야 하거든.

 

그렇게 되면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똥을 눠도 그 화두가 고대로 있고, 어딜 걸어가도 고대로 있고, 울력을 해도 고대로 있고.

뭣헌 이는 옆에서 떠들면 화두가 없어져 버린다는데 그 아직 덜된 거여, 그것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잡담을 해도 소용없고, 자기는 자기거든. 그렇게 되도록—그건 애를 쓰는 데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럭저럭 지내는 데에는 생전 해봤자 그렇게는 안되는 것이여.

정말 전체적으로 결제(結制)를 하지마는, 전체적으로 결제하는 속에서 다시 또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자기의 결제가 새로 있어야 되거든.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데...(녹음 끊김)

 

그런 생각도 못쓰는 거여.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누가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그 성성적적한 가운데에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만 그렇게 단속을 해 나가면,

일주일을 넘지 못해서 귀로 들리는 어떠한 소리나, 눈에 들어오는 어떠한 경계나, 스스로 무슨 발을 잘못 디디거나, 또는 자다가 벼개에서 뚝 떨어지거나, 어떠한 그러한 특수한 그런 사건을 만나면 통 밑구녁이 빠지듯이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반드시 그때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맡어 가지고, 그것이 잘못 되았다 하면 다시 새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른 경계면 공안에 맥힘이 없어야 하고.

천칠백 공안에 선지식과 탁마(琢磨)를 해서 그래서 맥힘이 없으면 다시, 진짜 그때부터서 정진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산중에 들어가서 정말 오후(悟後)에 보림(保任)을 철저하게, 몇백 배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다생 습기(多生習氣)를 다 소멸을 하고 그때에 가서 경(經)도 사교(四敎) · 대교(大敎)를 다 보고 심지어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까지 다 간과(看過)를 한 다음에, 그때 비로소 중생 교화를 하러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수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누구라도 정말 ‘죽을 사(死)’자를 써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여법(如法)히 수행한다면,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 있는 자격과 가능성을 우리가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성현(聖賢)이나 하지. 특수한 상근대지(上根大智)나 하지, 원’ 다른 사람한테 미루고 자기는 이미 될 수 없는 그러한 존재다. '나는 영 도(道)는 금생에 못 닦을 사람이다'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한 것만큼 큰 죄는 없는 것입니다.

 

사바라이(四波羅夷) 죄를 범하면 불통참회(不通懺悔)라고 그러는데, ‘나는 틀렸어’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통참회커녕은 이건 스스로 자기의 보리종자(菩提種子)를 끊어버리는 것이라, 이 죄(罪)야말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부모를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유 · 무식(有·無識)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어.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43분36초~50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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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관(觀)한다 ;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2분)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스스로 무슨 발을 잘못 디디거나, 또는 자다가 벼개에서 뚝 떨어지거나, 어떠한 그러한 특수한 그런 사건을 만나면 통 밑구녁이 빠지듯이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 각차수질(脚蹉手跌 다리 각/미끄러질·넘어질 차/손 수/거꾸러질·넘어질 질), (몸이 균형을 잃고) 손과 발이 미끄러지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50~52, 『선요』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40~42 참고.

若要的實明證인댄  須開特達懷하며  發丈夫志하야

將從前惡知惡解와  奇言妙句와  禪道佛法과  盡平生眼裏所見底와  耳裏所聞底하야  莫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와  到與不到와  徹與不徹하고

 

發大忿怒하며  奮金剛利刃하야  如斬一握絲에  一斬에  一切斷이라  一斷之後에  更不相續하야  直得胸次中이  空勞勞地와  虛豁豁地가  蕩蕩然 無絲毫許滯碍하야  更無一法可當情이  與初生으로  無異니라

 

喫茶不知茶하고  喫飯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이  頓淨하고  計較都忘이  恰如箇有氣底死人相似하며  又如泥塑木雕底相似리라

到者裏하야  驀然脚蹉手跌하면  心華頓發하야  洞照十方이  如杲日麗天하고  又如明鏡當臺하야  不越一念하고  頓成正覺이라

 

非惟明此一大事라  從上若佛若祖의  一切差別因緣을  悉皆透頂透底하며  佛法世法을  打成一片하야  騰騰任運하고  任運騰騰하며  灑灑落落하고  乾乾淨淨하야  做一箇無爲無事出格眞道人也라

恁麼出世一番하야사  方曰  不負平生參學之志願耳니라

 

만일 이 일을 적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려면 특별한 포부를 품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종전의 나쁜 알음알이와 기묘한 언구(言句)와 선도(禪道)와 불법(佛法)과 평생동안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들에서 위태로움과 죽음, 얻음과 잃음, 남과 나, 옳음과 그름,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 사무침과 사무치지 못함 따위를 돌아보지 말고,

 

크게 분발심을 내어 마치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한줌의 실을 벨 때, 한 번 베면 모두 다 끊어져서 그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당장 가슴속이 텅 비어 호호탕탕(浩浩蕩蕩)해서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한 법도 정식(情識)에 매이지 않음이 마치 갓난아기와 같을 것이다.

 

차를 마셔도 차 마시는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 먹는 줄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몰라 정식(情識)이 단박 깨끗해지고 계교(計較)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 흡사 숨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 같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과 발이 미끄러져서 마음꽃이 단박에 피어 시방세계를 훤히 비춤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 뜬 것 같으며,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인 것 같아서 찰나에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이다.

 

이 일대사만을 밝힐 뿐 아니라, 위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因緣)을 몽땅 아래 위로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한 조각으로 만들어 무심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며, 물 뿌린 듯 쇄락하고, 씻어 말린 듯 정결하여 하나의 격식에서 벗어나 일없는 참 도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번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서 ‘평생동안 참선하려는 뜻과 원력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원문에 있는 '驀然 脚蹉手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문득 발이 미끄러지고 손이 미끄러지는 것이니, 아차! 하는 순간을 말한다. 轉身移步 懸崖撒手. (원순 스님 주)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사교(四敎)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에서 배우는 중급 과정의 네 과목.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 ; 유교와 도교[儒道], 여러 학자들이나 작가[百家]들의 모든 책[諸書].

*간과(看過 볼 간/지날 과) ; 어떤 문제나 현상 따위를 대수롭지 않게 대강 보아 넘김.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사바라이(四波羅夷]) ; 사중금계(四重禁戒), 사중금(四重禁), 사중(四重).

(1)승단에서 추방되어 비구의 자격이 상실되는 네 가지 가장 무거운 죄.

①사람을 죽임(살생 殺生). ②도둑질함(투도 偸盜). ③음란한 짓을 함(사음 邪淫). ④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거짓말함(망어 妄語).

(2)밀교에서 가장 무거운 죄.

①바른 가르침을 버림. ②보리심(菩提心)을 버림. ③가르침을 베푸는 데 인색함. ④중생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함.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살불살조(殺佛殺祖) ;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임'

 

Posted by 닥공닥정
ㄱ/공화(空花)2020. 1. 10. 17:27

공화(空花) (No.176)—(게송)萬事悠悠此百年~ | 일점영명(一點靈明) | 생사는 본래 없다 | (게송)萬朶靑山圍梵刹~ | 생사 없는 진여불성 자리.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8~89. (가로판 p92~94)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槃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중생이 나는 것 없는[無生]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註解) 性本無生故로  無生涅也요  空本無花故로  無起滅也라  見生死者는  如見空花起也요  見涅槃者는  如見空花滅也니라  然이나  起本無起요 滅本無滅이라  於此二見에  不用窮詰이니  是故로  *思益經云, 諸佛出世가  非爲度衆生이요  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라 하시니라.

 

(주해) 성품에는 본래 남이 없으므로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없고 허공에도 본래 꽃이 없으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생사가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타나도 나타남이 없고, 사라져도 사라짐이 없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하여서는 더 따질 것이 없다。그러므로 『사익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건지기 위해서다」라고 하시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 (No.521)  (No.636)에서.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1) 13분 19초.

(2) 9분 44초.

 

[법문] 송담스님(No.176)—민대법화 영가 3재(82.07.10) (용176)

 

(1)------------------

 

만사유유차백년(萬事悠悠此百年)한데  환여역려잠류련(還如逆旅暫留連)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별천애구시객(一別天涯俱是客)인데  부운유수석양변(浮雲流水夕陽邊)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만사유유차백년(萬事悠悠此百年)한데  환여역려잠류련(還如逆旅暫留連)이로구나.

만사(萬事)가 유유(悠悠)한 이 백년(百年), 사람이 나서 한평생을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백 년인데, 그 백 년 동안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울다가 웃다가 슬퍼하다가 성내다가 기뻐하다가, 이럭저럭하면서 백 년 동안 인생살이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 여행을 하는 거와 같다.

 

여행을 하는데, 출발해 가지고 목적지에까지 도달하는데 때로는 날씨가 좋았다가 때로는 비가 왔다가 때로는 바람이 불었다가, 겨울이면 눈이 왔다가 먹구름이 끼다가, 평지를 가다가 또는 물을 건너기도 하고 또는 산을 오르기도 하고 산을 내리기도 하고, 인생 일생사가 마치 긴 여행을 하는 거와 같다.

 

일별천애구시객(一別天涯俱是客)인데  부운유수석양변(浮雲流水夕陽邊)이로구나. 한번 저 하늘갓으로 떠나버리면, 이별을 해서 뚝 떠나버리면 떠나는 사람도 손이요, 전송을 하는 사람도 손이더라.

나도 여행을 하고 저 사람도 여행을 하는데, 여행하는 도중에 두 사람이 만나서 잠시 한 여관에 들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을 자다가 날이 새면 한 사람은 동쪽으로 떠나고, 한 사람은 서쪽으로 떠나는 그러한 경우에 동쪽으로 떠나는 사람도 손이요, 서쪽으로 떠나는 사람도 객(客)이더라.

 

전송(餞送)을 하면서 또 전송을 받으니까 두 사람이 다 손인데, 부운유수석양변(浮雲流水夕陽邊)이여. 구름은, 하늘에서 떠 있는 구름은 바람 따라서 저 하늘갓으로 날아가고, 흐르는 물은 높은 데서 낮차운 데로 낮차운 데로 흐르고 흘러서 결국은 바다에 이르는데, 동쪽으로 떠나는 사람이 뜬구름같이 떠났다면 서쪽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흐르는 물처럼 흘러 내려가고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 부모를 의지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때로는 남자로 태어나고 또 어떤 경우는 여자로 태어났어. 태어난 사람이 서로 결혼을 해서 아들딸 낳고 돈 벌고 이리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떠나고 또 한 사람은 나중에 떠나는데.

뜬구름이 하늘에서 바람 따라서 날아갔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흐르는 물이 지세(地勢) 따라서 흐르고 흘러서 바다로 내려갔다고 해서 그것을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여행 중에 두 사람이 만나가지고 여관에서 하룻밤 같이 이야기하고 지내다가 그 이튿날 이별할 때에 조금 섭섭은... 아주 다정한 경우에는 좀 섭섭한 생각은 있을 수가 있겠지만, 그걸 다리를 뻗고 땅을 치고 통곡하고 그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가족을 이루다가 한 사람이 먼저 가고 뒷사람이 뒤에 간다고 해서 그렇게 통곡을 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그럴 것도 사실은 없는데.

정(情)으로 얽힌 존재들이라 기왕이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같이 해로(偕老)를 하고 자기의 명(命)을 다했으면 좋겠지만, 생사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라, 이렇게 젊은 나이로 인생을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습니다.

 

민대법화 영가, 오늘 3재를 맞이해서 숙세의 인연이 있어서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서 3재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미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최상승 법문에 의해서 무량겁 업장(業障)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아버렸고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서 다시 거기에다가 더 설할 법이 없지만 재자(齋者)의 간청으로 산승(山僧)이 잠간 법상(法床)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뜬구름 같은 인생이요, 흐르는 물과 같은 인생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 몸뚱이가 이루어졌지만 이 몸뚱이를 주재하는 일점영명(一點靈明)은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지수화풍 사대가 무너져서 이 육신은 버렸지만 이 일점영명은 무너진 것이 아니여.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낳다’고 해서 새로 태어난 것이 없고 ‘죽었다’고 해서 없어질 것도 없을 바에는—마치 허공에 꽃이 눈병 걸린 사람의 눈에만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원래 공화(空花)는 없는 것이여.

눈병 걸린 사람에게 있어서 허공에 공화가 피었다고 해서 그 공화 자체가 피어 있는 것이 아니고, 눈병이 나아 버린 뒤에는 공화가 그 찰나에 없어진다고 해서 원래 없어졌든 공화가 새롭게 무엇이 없어질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공화 자체는 눈병이 난 뒤에나, 눈병이 치료가 된 뒤에나 원래 공화는 없었던 것이여.

중생의 생사도 또한 그와 같아서 생사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본래 없는 생사에 무엇을 슬퍼할 것이 있고, 무엇을 천도(薦度)할 것이 또한 있느냐 이 말씀이여.

 

생사는 뜬구름 공화(空花)와 같은 것이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 원망하고 친숙하고 한 것도 또한 무엇을 원망하며 무엇을 애착을 가질 것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처음~13분21초)

 

 

 

(2)------------------

 

만타청산위범찰(萬朶靑山圍梵刹)한데  일간홍일조령대(一竿紅日照靈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하고  가가문외통장안(家家門外通長安)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타청산위범찰(萬朶靑山圍梵刹)인데  일간홍일조령대(一竿紅日照靈臺)라.

만 송이 울긋불긋한 꽃과 잎이 우거진 청산에 둘러싸인 절이여. 절은 만 송이의 청산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고, 일간홍일조령대(一竿紅日照靈臺)라. 한 장대 길이만큼 높이 뜬 붉은 해는 영대(靈臺)를 비추더라.

영대는, 우리의 몸뚱이를 끌고 다니던 주인공 그 영대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같이 빛나고, 지금 우리 용화사 법당 주변의 산이 천산만산(千山萬山)이 위요(圍繞)하고 있고, 붉은 꽃과 푸른 숲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는데.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요, 곳곳이 푸른 버드나무에는 가히 말을 매 둘만 하다. 말을 버드나무에다가 말을 매 놓듯이—목적지를 향해서 가는데 말을 타고 가는데, 그 말을 쉬는데 있어서 어디라도 그 있는 버드나무에 묶어 맬 수가 있고.

가가문외통장안(家家門外通長安)이라. 어느 집이든지 문밖에 나가면 방향을 잡어가면은 결국은 서울에 도달할 수가 있더라. 모든 길은 다 서울로 통하고 있더라.

 

생사(生死)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는 일정한 모양과 일정한 국집(局執)된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뜨면 해와 달이요, 땅으로 내려오면 산이요 물이요 나무요. 인연 따라서 천당도 좋고 극락도 좋습니다.

새로운 몸을 받아 날 때까지는 이 용화사 법보전에 여러 도반들과 더불어 법문을 듣고 삼매(三昧)에 들었다가 인연이 도래하면 다시 좋은 곳에 태어나서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아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없는데 무엇을 도(道)를 닦으며, 본래 생사가 없는데 무슨 중생을 제도(濟度)하리요마는, 생사 없는 곳을 향해서 해탈(解脫)을 해야 하고, 설할 바 없는 법(法)을 향해서 법을 설해야 하고, 닦을 바 없는 곳을 향해서 닦아야 하고, 한 중생도 제도 받을 바가 없는 곳을 향해서 제도를 하는 것이 바로 이 불법(佛法)인 것입니다.

 

분명 생사가 없지마는 태어났다가 한평생을 살다가 또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치에 있어서는 분명 생사가 없지마는 현실에 있어서는 면할 수 없는 생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이 출현을 하셔야 하고, 우리는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 의지해서 닦아야 하고, 이렇게 또 천도 법요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인생에 있어서 짧은 생애를 가졌지만 본래 어질고 착하고, 불법에 깊은 인연을 맺었고 그러한 공덕(功德)으로 인해서 이 정법(正法) 도량에서 천도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한이 있다 하더라도, 못다 푼 한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 이 시간을 기해서 깨끗이 다 잊어버리고, 다 풀어버리고, 실상(實相)의 자리에 안주하시기를 바랍니다.(13분25초~23분9초)

 

 

 

------------------(1)

 

*(게송) ‘만사유유차백년~’ ; 1, 2, 3구는 『경허집(鏡虛集)』 (경허성우 스님) ‘和映湖堂(영호당에게 화답하다)’ 4구는 ‘別友人(벗을 작별하며)’.

*만사(萬事) ; ①여러 가지 온갖 일. ②집착으로 가득 찬 마음의 모든 것.

*유유하다(悠悠-- 멀·아득할·한가할 유) ; ①움직임이 한가하고 여유가 있고 느리다. ②아득하게 멀거나 오래되다.

*한평생(한平生) ; 살아 있는 동안. 일평생(一平生). 평생. 필생(畢生).

*하늘갓 ; 하늘가(하늘의 끝). 천애(天涯 : 하늘의 끝.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손님. 객(客). ①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②남의 집을 방문한 사람. 남의 집이나 여관 따위에 묵고 있는 사람. ③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

*전송(餞送 전별할·보낼 전/보낼·전송할 송) ; 서운하여 전별(餞別 떠나는 사람에게 잔치를 베풀어 작별함) 인사를 하여 보냄[送]. 예를 갖추어 떠나보냄을 이르는 말.

*뜬구름 ; ①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②덧없는 세상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해로(偕老 함께 해/늙을 로) ;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살며 늙음.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천도 법요식(薦度 法要式) ; 천도재(薦度齋).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재자(齋者) ; 절에 재(齋)를 올리거나 불공(佛供)하러 온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일점영명(一點靈明) ; 일점영광(一點靈光). 한 점의 신령한 밝음. 우리 본래 마음. 불성을 가리킨다.

*'공화 자체는 눈병이 난 뒤에나, 눈병이 치료가 된 뒤에나 원래 공화는 없었던 것이여. 중생의 생사도 또한 그와 같아서 생사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2)

 

*(게송) ‘萬朶靑山圍梵刹  一竿紅日照靈臺’ ; 불교 장의(葬儀) 의식 「시다림(尸陀林) : 죽은 이를 위해 설법하는 의식」 ‘염습(殮襲)’ 안좌게(安坐偈) 참고.

*(게송) ‘處處綠楊堪繫馬  家家門外通長安’ ; 불교 장의(葬儀) 의식 「시다림(尸陀林) : 죽은 이를 위해 설법하는 의식」 ‘발인(發靷)’ 기감(起龕) 참고.

*영대(靈臺 신령할 영/대·받침대 대) ;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

*위요(圍繞 둘레·에워쌀 위/두를·에워쌀 요) ; 어떤 지역이나 현상을 둘러쌈.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삼매(三昧) : 정(定).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을 집중 · 통일시키는 수행, 또는 그 수행으로 이르게 된 평온한 마음 상태.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Posted by 닥공닥정
ㄱ/결집2020. 1. 6. 10:52

결집(結集) (No.619)—대장경 결집 역사 | 고려대장경 전산화 수희동참 |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 공덕 이야기 | 아사세왕의 참회, 제1회 결집 외호공덕.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상기티는 합송(合誦) · 합창(合唱)으로 한역. 본래 의미는 붓다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워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이나, 후대에 이르러 성전(聖典) 편집을 의미하게 되었다.

 

붓다의 열반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이 흩어져 없어지게 되거나 계율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또는 교권(敎權)을 확립하기 위해 제자들이 모여 결집을 하였는데, 인도에서는 붓다의 입멸 후부터 기원후 2세기경까지 네 차례의 결집이 있었고, 그 후 현대에 오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장경(大藏經) 결집이 있었다. 인도에서의 네 차례의 결집은 결집을 전하는 여러 문헌들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제1차 결집은 붓다의 입멸 직후, 왕사성(王舍城) 교외의 칠엽굴(七葉窟)에 가섭(迦葉)이 5백 명의 뛰어난 비구들을 소집하여 이루어지는데, 교법에 대해서는 아난(阿難)이, 계율에 대해서는 우파리(優波離)가 소리내어 외우면 비구들이 합송(合誦)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5백결집(五百結集) · 왕사성결집(王舍城結集)이라고도 한다.

 

제2차 결집은 붓다 열반 후 백여 년경에 바이샬리(vaiśālī)에 거주하는 비구들이 계율에 대해 열 가지 사항을 들어 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므로 7백 명의 비구들이 바이샬리의 파리가(婆利迦) 동산에 모여 붓다가 설한 계율을 기억으로 확인한 후, 계율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비법(非法)이라 판정하였다. 이를 발단으로 하여 불교교단은, 후에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분열된다. 7백결집(七百結集) · 비사리결집(毘舍離結集)이라고도 한다.

 

제3차 결집은 붓다 열반 후 2백여 년경에 아쇼카(aśoka) 왕의 주선으로 화씨성(華氏城, 파탈리푸트라)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 계원사)에 천여 명의 비구들이 모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하였다. 이때 경전이 최초로 팔리어로 문자화되었다. 천인결집(千人結集)이라고도 한다.

 

제4차 결집은 기원후 2세기경에 카쉬미르(Kaśmīra) 왕국의 카니슈카(kaniṣka) 왕의 주선으로 협존자(脇尊者) · 세우(世友)가 중심이 되어 5백여 명의 비구들이 모여 경(經)·율(律)·논(論), 삼장을 새로 결집하였다고 한다.

 

(1) 12분 36초.

(2) 14분 27초.

 

[법문] 송담스님(No.619)—99년 2월 첫째일요법회(99.02.07) (용619)

 

(1)------------------

 

정말 여러분에게 참 오늘은 특별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현재 전강 조실 스님까지는 77대가 법(法)의 등불이 이렇게 이어져 왔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 법으로 그렇게 법도 이어오면서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우리나라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작년엔가 그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 부처님과 종묘(宗廟), 세 문화재가 유네스코로부터서 이 「세계의 문화재(세계문화유산)」로 지정받은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단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문화재로 지정을 받아서 불이 타지 않도록, 습기가 침범하지 않도록, 벌레가 먹지 않도록 또 도적이 침범 못하도록 잘 보존해서 몇천 년이고, 몇만 년이고 보존을 잘 지키고 그렇게 해야 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써 팔만대장경을 모신 목표가 거기에서 끝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얼마나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 해인사에까지 팔만대장경이 모셔졌는가 여러분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부처님 열반하신 해에, 부처님 돌아가시니까 부처님 제자들이 통곡을 하고 머리를 땅에다가 부딪치면서 통곡을 하니까 어떤 늦게 된 스님, 조끔 머트럽게 말해서 늦깨끼 한 사람이 나와서 "여러분 통곡할 것 없습니다. 그동안에는 부처님이 계셔서 '이것은 해라, 이것은 하지 마라' 여러 가지 계율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꼼짝달싹을 못하게 하셨는데 인자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우리도 좀 자유롭게 좀 살 때가 되었는데 뭐 그렇게 울어쌌냐" 아! 그렇게 소리를 지른 스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가섭 존자(迦葉尊者)께서 '아하!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일 만에 오백 성승(五百聖僧)을 모아가지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결집(結集)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속기술로 했는지, 그때는 녹음기가 없었으니까 녹음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전해 온 바로는 외워가지고, 아란(阿難) 존자를 시켜서 죽죽죽죽 죽죽죽 '어데서 누구 있을 때 어떻게 이 법문을 하셨다' 죽죽 외우면 오백 성승들이 '과연 그렇게 했다'고 전부가 인정을 하면 그것으로써 또 한 경전이 결집이 되고 해서 외워가지고 결집을 했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외워가지고 무슨 결집이 되냐?'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한 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아란 존자는 외우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기억력이 좋았으니까요.

 

제1회는 그렇게 오백 성승이 모여서 왕사성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회 결집을 했고, 두 번째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년 만에 야사(耶斯)라고 하는 존자가 제의를 해가지고 비사리성에서 칠백의 아라한(阿羅漢)들이 모여가지고 제2회 결집을 했습니다.

또 제3회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삼백삼십 년 만에 아육왕(阿育王)의 보호 아래 제수라고 하는 존자의 사회로 파타리자성에서 천 명의 아라한들이 모여가지고 제3회 결집을 했던 것입니다.

 

제 4회 결집은 불멸후 육백 년경에 가니색가왕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가습미라에서 협존자(脇尊者)와 세우 존자를 상좌로 오백의 성자들이 모여서 제4회 결집을 했습니다. 그때 삼장(三藏)을 결집을 하고 그 삼장에 대해서 주석도 달고 그랬습니다.

그 뒤로 대승경전이라든지 또 비밀장 밀교 그런 경전도 모다 결집이 되었습니다마는, 오늘은 그 자세한 것을 생략을 하고.

 

그렇게 해서 삼장법사 구마라습이라든지 현장법사 그밖에 많은 범어와 중국어에 통달한 성자들이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티베트어로 번역하고 그렇게 해서 한문 경전으로 된 것을 고려 때에 그 고려 현종이 그것을 그 원본을 책으로 갖다가 우리나라에서 그것을 경판에다 새겼습니다.

 

새겼는데 무슨 목적으로 새겼느냐 하면은, 거란족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해 들어오니깐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오천사십팔 권의 그 경전을 새겨가지고 부인사, 부인사가 아마 경북 영천에 있는 절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을 부인사에 설치를 했습니다.

그것이 1232년 고종 19년에 몽고병이 침입을 해왔습니다. 그래가지고 거기다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 불타버리니까 1236년 4년 뒤에 그 고종이 다시 경판을 새기기를 시작했습니다. 16년 동안에 걸쳐서 강화도에서 1511부 6802권이고, 판수로는 81,258장이라고 그걸 완성을 해서 해인사에 봉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화 선원사에 보관했다가 이태조(李太祖) 7년에, 1398년에 서울 지천사에 옮겼다가 다시 해인사로 옮겨 모신 것이 오늘날까지 지금 해인사에 잘 봉안이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잘했던지, 소금물에 담구고 말리고 모다 칠(漆)을 먹이고 해가지고 한 장도 버러지 먹은 것도 없고, 귀지도 않게, 그래서 잘 보존이 되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국보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그렇게 보존이 되어서 그걸 대단히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영구히 잘 보존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써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말이여.

 

21세기를 우리는 맞이한 마당에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세계가 다 자기 있는 곳에서 미국에서나 소련에서나 영국에서나 독일에서도 컴퓨터만 누르면 인터넷을 통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가 있게 된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데 일본에서는 한국의 이 대장경을 본따서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이란 것을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전산화를 해가지고 일본에 있는 신수대장경은 세계에서 다 열람할 수가 있는데 그보다도 훨씬 더 잘되고 좋은 경전이 우리나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가지고 우리나라 경전을 보려면 여기까지 와야만 됩니다.

 

그 쉽게 팔만대장경을 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을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라도, 외국에 있는 어떠한 불교 학자라도 그 팔만대장경을 거기에서 열람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바로 고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불사(佛事)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런 불사는 국가적으로 해야 할만한 불사고 또 국가에서 못하면은 불교 종단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 텐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라는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인해서 경제가 말이 아니고, 종단은 참 내 입으로 벌리기도 참 안되었지마는, 종단이 저렇게 분규가 일어나가지고 시끌사끌 한데 그런 불사를 할 정신이나 있겠습니까?

 

다행히 불보살(佛菩薩) 화현(化現)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가지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이 전산화 불사를 94년도부터서 시작해가지고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삼성문화재단에서 이 불사를 찬동해 가지고 꽤 많은 돈을 내서 참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기본 입력은 되었으나 그것을 한 자, 한 자 틀림없이 되었나, 그것을 낱낱이 다 대조를 해가지고 해야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는 또 한글로 번역을 또 해서 한문을 모른 사람도 집안에 앉아서 팔만대장경을 무슨 경에 무슨 품에 몇 조에 이걸 딱 볼 수 있게 그렇게 해야 하고.

 

또 더 나아가서는 영어라든지 세계의 다른 나라 외국어로도 번역해가지고 외국 사람들도 자기 나라에서 자기집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 있게 이렇게 한, 그러한 역사 이래로, 불교 삼천년 역사 이래로 처음이라고 할 만한 그런 위대한 불사가 원력(願力)을 세운 불보살 화현에 의해서 이 불사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사는 우리 불교도(佛敎徒)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여기에 다 동참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이엠에프 시대가 되어가지고 우리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불사를 하느냐? 동참을 하느냐?' 혹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이렇게 어려울 때 불사에 동참을 하고 성의를 바쳐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예를 내가 경전에 나온 말씀을 빌려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14분6초~26분43초)

 

 

 

(2)------------------

 

수달장자(須達長者)라고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 첫머리 읽으면 기수급고독장자(祗樹給孤獨長者)라고, 그 기수급고독장자가 누구냐 하면 수달장자입니다.

그 수달장자가 처음에 대단히 부자로 살다가 마지막 가난해지고 또 가난해져 가지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녁 끓일 것도 없고, 뭐 속담에 뭣이 짝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지요.

 

그렇게 가난한데, 부부가 굶고 살다시피 그러다가 수달장자가 밖에를 슬슬 댕겨서 봤습니다. 혹 뒤엄이나 쓰레기통에 혹 먹다가 버린 쉰 빵 쪼가리라도 혹 있나하고 보다 보니까 나무토막 하나를 얻었습니다.

흠흠 맡아보니까 그 쓰레기 속에서 주었는데 향내가 진동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놈을 씻어가지고 보니까 전단향(栴檀香) 나무토막이라. 그놈을 가지고 팔았습니다. 팔아가지고 쌀 너 말을 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여러 날을 굶다시피 하다가 쌀 너 말을 구했으니.

그 쌀 너 말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그 부인 보고 '우선 한 말만 밥을 해가지고 오늘 좀 배를 채워야겠다. 밥을 하라'고. '나는 슬슬 다시 가서 쓰레기통에 배추 이파리나 무 이파리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주워가지고 와서 다글다글 끓여서 먹어야 할 테니까 밥을 하라'고 해서 밥을 해 놓고, 인자 밥이 있고 아직 수달장자 안 왔는데.

 

부처님이 가만히 정사(精舍)에서 관(觀)을 해 보시니까 '수달장자가 이제 참 때가 되었구나. 수달장자를 정말 제도할 때가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고서 사리불(舍利佛)을 가서, 수달장자한테 가서 걸식(乞食)을, 바리때를 가져가서 밥을 얻으러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인이 밥을 해가지고 냄새는 코로 술술술 들어오는데 속에서 회(蛔)가 동(動)해 가지고 견딜 수 없이 그런데, 아! 사리불 존자가 왔으니 안 드릴 수가 없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한 말밥을 드렸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또 한 말을 퍼서 밥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목련(目連) 존자, 네가 또 가서 밥을 빌어 오너라' 목련 존자가 가서, 밥을 다 익을만 할 때 들어가서 바리때를 떠억 펴니까 두말없이 또 두 번째 한 밥을 퍼줬습니다.

그리고 또 세 번째 한 말을 퍼서 또 밥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부처님께서 가섭(迦葉) 존자를 시켜서 '가서 밥을 빌어라'하니까 가섭 존자가 또 가 가지고 밥이 김이 풀풀풀 난 데가 바리때를 떠억 가니까 두말없이 또 딱 퍼줬습니다.

 

그런 마지막 한 말 남은, 네 말 밥을 딱 밥을 했습니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몸소 바리때를 가지고 가서 딱 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또 두말할 것도 없이 그놈을 퍼서 (드리니까), 이렇게 바리때를 받아 놓고 부처님께서 작관을 하시고 축원을 하시기를 "금일죄멸복생(今日罪滅福生)이니라, 오늘날 그 가난해야 할 그 죄는 없어지고 멸하고, 큰 복을 받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딱 축원(祝願) 한마디 하는데, 그때 마치 수달장자가 나물거리 주워가지고는 들어왔습니다.

와서 보니 부처님 와서 계시지, 크게 기뻐해가지고 부처님 받은 밥, 사리불, 목련, 가섭 존자 할 것 없이 다 와가지고 그 밥을 퍼 놓고 찌개를 끓여서 거기서 공양(供養)을 잡쉈는데, 공양이 끝나자 여기서 저기서 보물이 막 솟아오르는데 금은보화 칠보와 비단과 곡식과 또 그런 것이 와 가지곤 땅에서 솟아나가지고 옛날에 부자일 때와 같이 되었다 이거여.

 

그러니까 수달장자는 그때 다시 잘 차려놓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다시 초청을 해가지고 공양을 올리고서 법문(法門)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니까 수달장자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도를 다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과연 수달장자의 부인이라면 식구가 쫄쫄 굶다가 모처럼 얻은 거 밥해 놓은 거 스님네가 오면 탁 떨어주고, 탁 떨어주고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직장에 다니다가 다 퇴출 당하고 또 유학 간 애들도 다 불러들이고, 대학도 휴학을 시키고 군대에 보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으시겠지만 그렇다고 역사 이래로 없는 이런 불사에 빠지면 참 언제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복을 받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안 해도 아까 말한 팔만장경의 그 전산화 불사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기만 하셨다면 여러분은 진즉 하셨겠는데 아마 잘 모르고 안 하신 분은 이런 기회에 다 동참을 하시고.

 

'이 경전 불사에 동참하는 그것이 얼마나 공덕이 장하냐?'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아사세(阿闍世)왕이라고 아실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조달(調達)이,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하는데, 그 조달이의 꼬임에—이 아사세왕에 뭐라고 꾀셨냐 하면은 아사세왕 아버지는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āra 빔비사라)왕인데,

"빈바사라왕이 명이 길게 생겨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태자는 임금 맛도 못 보고 죽게 생겼어.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을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을 죽이고 내가 신불(新佛)이 되고, 아사세 태자는 빈바사라왕, 부왕(父王)을 죽이고 신왕(新王)이 되라. 신왕과 신불이 나와 가지고 이 세계를 한번 휘어잡아 보자"

 

꾀서우니까 아사세왕이 솔깃해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갖다가 칠중(七重) 감옥에다 가두고 굶겨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죽였단 말도 있고, 죽이러 올라온 줄 알고 자결을 했단 말도 있고 그럽니다마는, 하여간 경전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아사세는 자기 부왕을 죽인 걸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사세왕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가지고, 아조 문둥이처럼 되어가지고 아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파(耆婆) 어의(御醫)가 너무너무 볼 수가 없으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懺悔)를 하면은 어쩌면 낫을런지 모르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를 하라 그러니까,

'나 같은 이러한 대역죄(大逆罪), 오역죄(五逆罪)를 지었는데 부처님이 받아 주실까요?'

'틀림없이 받아 주실 테니까...'

 

'그러면 그대가 먼저 가서 내가 참회를 오면은 받아 주시겠느냐고 먼저 가서 말씀을 여쭤봐라'

가서 말씀을 드리니까, '그러면 진실로 참회한다면야 내가 왜 참회를 안 받아 주겠느냐' 그래서 참회를 하고 그래가지고는 차츰차츰 병도 낫고 그래가지고,

 

부처님 당시에 파사익왕이니 뭐 아사세왕이니 여러 왕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 삼보(三寶)를 외호(外護)하는 왕으로서 경전마다 나와 있고, 참 그런데다가 가장 뚜렷한 공적은 무엇이냐 하면은 제1회 결집(結集) 때 아사세왕이 공양 · 의복 · 약, 일체를 전부 뒷바라지를 해가지고 제1회 결집을 무난히 성취를 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은 아사세왕은 그 아버지를 죽이고 한—그 부모를 죽이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하고, 아라한(阿羅漢)을 죽이고 그런 것이 오역죄에 해당이 되는데, 그 오역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돼.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함지옥(生陷地獄)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세왕은 그러한 죄로 해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지자마자 다시 거기에 고통도 받을 겨를도 없이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부처님께 참회를 했고, 적극적으로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외호할 뿐만 아니라 제1회 결집을 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외호를 한 그 공덕으로 결국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받을 죄가 소멸이 되어가지고 천상에 올라간 것이다 그말이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지금은 여러분들이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을 믿는 여러분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을까마는, 무량겁을 오면서 수천만 생을 오면서 산같이 지은 입으로 지은 죄, 바다와 같은 그 몸으로 지은 죄, 허공과 같이 지은 죄를 마음으로 지었다고...

안 지었다고 누가 보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지은 죄도 낱낱이 빼놓지 않고 다 받게 될 것입니다마는, 오늘 내가 소개한 이런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통해서 온 세계 사람에게 이 팔만대장경을 읽게 하는 그 공덕으로 그 죄도 소멸이 되리라고 저는 감히 보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편이 넉넉한 분은 좀 넉넉하니 하고 아무리 적어도 적은 돈이라도 아까 수달장자처럼 그것을 안 먹으면 굶어 죽게 생겼어도 탁! 갖다 바칠 때에 큰 부자의 복을 받게 되는 이런 경전에 말씀을 명심을 하시고 여기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同參)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로 25년, 사석(私席)에서나 법석(法席)에서나 단 한 번도 여러분에게 시주(施主)를 하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불사는 여러분의 어려운 난국을 해나가기 위해서도 또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 국난을 맞이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세계가 말세(末世)의 현상이 나가지고 도처에서 사람을 죽이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이러한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서도 이 전산화 불사는 하루속히 원만히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의 역사를 깨고 불사(佛事)에 동참하시라고 감히 권고를 하는 것입니다.

 

형편 따라서 성의껏 하시면 되고 한 번에 안 내더라도 다달이 요렇게 해서 하셔도 되고, 구체적인 것은 앞으로 여기 고려대장경 연구소장으로 이 불사를 하고 있는 스님께서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설명을 해드릴 것입니다. 게송 하나를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事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소장님 잠깐 나와 주십시오.(26분44초~41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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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 삽삼조사(卅三祖師).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는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선종에서 법(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것이므로, 따로 언어•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 국제 연합(UN) 전문 기관의 하나. 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과 국제 교류 증진을 통한 국제간의 이해와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 1946년에 창설되었으며, 본부는 파리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UNESCO 世界文化遺產) ;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 유산 및 문화 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의 규정에 따라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산.

*머트럽다 ; 말이나 행동이 일정하게 바르게 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늦깨끼(늦깎이) ; ①나이가 많이 들어서 스님이 된 사람. ②나이가 꽤 들어서 어떤 것을 시작하거나 성공한 사람.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상기티는 결경(結經) · 집법(集法) 또는 합송(合誦) · 합창(合唱)으로 해석하며, 회의(會議)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많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불전(佛典)을 올바로 평가하고 편찬하는 일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붓다의 입멸 후부터 2세기경까지 4차례의 결집이 있었고, 그 후 현대에 오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장경(大藏經) 결집이 있었다.

*가섭 존자, 아난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무학(無學) · 이악(離惡) · 살적(殺賊) · 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 - 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천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하였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하였고,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하였다.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하였다.

*삼장(三藏) ;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세 가지 불서(佛書)를 통틀어 이르는 말.

*범어(梵語) ; 인도 · 유럽 어족 가운데 인도 · 이란 어파에 속한 인도 · 아리아어 계통으로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고대 인도 문학이나 불경(佛經)은 이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고급 문장어이다. 산스크리트(Sanskrit) · 산스크리트어(Sanskrit語) · 천축어(天竺語).

*귀지다 ; '귀나다(모가 반듯하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비뚤어지거나 기울어지다)'의 옛말.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 ; 일본에서 간행한 대장경. 원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의 주관으로 대정(大正) 11년(1922)에 기획하여 소화(昭和) 7년(1932) 2월에 완성됨.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고 여러 간행본과 사본등을 대조하여 많은 차이점을 각 페이지 하단에 자세히 주기(註記)하고, 여기에 팔리어와 산스크리트를 일부 병기(倂記)함.

총 100권 중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 일본 찬술부가 29권, 돈황 사본이 1권, 도상부(圖像部) 12권, 목록 3권으로 이루어짐. 이중 도상부와 목록을 제외한 85권이 불전(佛典)으로 총 3,053부, 1만 1,970권에 이른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아이엠에프(IMF) ; ‘IMF 경제 위기’ ‘IMF 외환 위기’ ‘IMF 관리체제’ ‘IMF 시대’ 한국에서 기업부도와 금융위기가 확산되어 1997년 12월 정부가 IMF(국제 통화 기금 ;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된 사건.

한국은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 금융기관의 부실과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국 채무의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겪게 되어 한국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을 할 사태에 이르자, 1997년 12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실천하여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으나,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엄격한 재정 긴축과 가혹한 구조 개혁,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제를 받는 나라는 금리가 상승되고 실업률이 상승되는 등의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각종 경제 개혁과 전국민적 노력 덕분에 2001년 8월에 IMF 관리체제가 종료되었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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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장자 부부의 공양(供養) 공덕 '죄멸복생(罪滅福生)' 이야기 ; 잡비유경(雜譬喩經) (하권) '28(二八)'

*수달(須達)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udatta의 음사. 온전한 이름은 수달다(須達多). 소달다(蘇達多)라고도 음사. 선시(善施), 선수(善授), 선여(善與), 선급(善給), 선온(善溫) 등이라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때 중인도 사위성(舍衛城)에 살던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 성품이 인자하여 평소에 고아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급고독(給孤獨)이라고도 불렸음.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다.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부처님은 20여 년간 이 정사에 머물면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다원림수달다정사(祇陀園林須達多精舍)의 약어(略語).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서,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인 수달(須達)은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고,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단향(栴檀香) ; 전단향 나무. 인도에서 나는 향나무의 하나. 목재는 불상을 만드는 재료로 쓰고 뿌리는 가루로 만들어 단향(檀香)으로 쓴다.

*정사(精舍) ; vihara. 수행승들이 머물면서 불도(佛道)를 닦는 집. 사원. 절.

*사리불 존자, 목련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회(蛔)가 동(動)하다 ; 뱃속에 있는 회충(蛔蟲)이 먼저 알고 요동(搖動)을 칠 정도로 입맛이 당긴다는 뜻이다. 뜻이 변하여, 어떤 음식이나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입맛이 당기거나 즐거운 호기심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말밥 ; 한 말가량의 쌀로 지은 밥. '말[斗]'은 부피의 단위로 곡식 · 액체 · 가루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말은 한 되[升]의 열 배로 약 18리터에 해당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아사세(阿闍世) ; (산스크리트) Ajātaśatru (팔리어) Ajātasattu 부처님 제세 시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왕과 위제희(韋提希)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하여 태자가 된 후, 제바달다의 꼬임에 넘어가 부왕(父王)을 감옥에 가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부왕을 시해한 죄로 인해 온몸에 부스럼이 생겼는데, 기파(耆婆) 어의(御醫)의 권유로 부처님 앞에서 참회한 뒤 치유되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왕사성에 사리탑을 세우고 공양하였으며, 마하가섭을 비롯한 부처님 제자들이 칠엽굴에서 1차 결집을 행할 때, 대단월(大檀越)이 되어 음식 · 재물 · 당우(堂宇) 등을 지원하여 불교 교단을 외호하였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번역하여 천열(天熱), 천수(天授), 천여(天與).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imbisāra의 음사. 부처님 재세시 마가다국(magadha國)의 왕(재위 기원전 五八〇년경~기원전 五五〇년경). 빈비사라(頻毘娑羅), 빔비사라 등으로 음사하고 병사왕(缾沙王·萍沙王), 영승왕(影勝王), 안모단정왕(顔貌端正王) 등으로 한역한다. 왕비 위제희(韋提希)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그 제자들인 승가에 공양하고 불교를 호지(護持)하며 교단을 지원한 최초의 외호자(外護者)이다. 만년에는 궁전에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 등을 봉안하고 예배하였다. 후에 태자 아사세(阿闍世)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아나함과를 증득한 후 죽었다.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기파(耆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jīvak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위성에서 살던 의사.

덕차시라국의 반가라에서 7년간 배운 뒤 본국인 바가타성에 귀국, 여러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고 남쪽 나라의 폭군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불교에 귀의하여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대역죄(大逆罪 큰 대/거스를 역/죄 죄) ; 예전에, 국가와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크게[大] 거스르는[逆] 일을 저지른 죄(罪). 왕권을 범하거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큰 죄를 이르던 말. 불교에서는 오역죄(五逆罪)에 해당한다.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生] 지옥(地獄)에 떨어짐[陷].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10분 46초)

 

[법문] 송담스님(No.214)—83년 추계산철 결제법회(계해년 음 8.1) (용214)

 

고금천지수증오(古今天地誰曾悟)헌디   무오하증갱유미(無悟何曾更有迷)리요

나무~아미타불~

번억온주노진각(飜憶溫州老眞覺)헌디   무단일숙게조계(無端一宿憩曹溪)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금천지(古今天地)에 수증오(誰曾悟)헌디, 고금천지(古今天地)에 누가 일찍이 깨달았는냐?

무오하증갱유미(無悟何曾更有迷)로구나. 깨달음이 없을진댄 어찌 일찍이 다시 미(迷)할 것이 있겠는가.

 

번억온주노진각(飜憶溫州老眞覺)허니, 도리어 온주땅에 늙은 진각 선사를 생각하니, 진각 선사는 육조 스님께 법(法)을 이어 받은 영가진각 선사(永嘉眞覺禪師)를 뜻합니다.

온주의 노진각을 생각하니  무단일숙게조계(無端一宿憩曹溪)로구나. 무단히 쓸데없이 조계산에, 육조 스님이 계신 그 조계산에 하룻밤을 잤구나.

 

영가 스님이 깨달라 가지고 육조 스님을 조계산으로 찾아가 뵈었습니다.

가서 육조 스님과 법거량(法擧揚)을 하고 그리고 ‘여역여시(汝亦如是)하고 오역여시(吾亦如是)다. 너도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받고서 그길로 돌아서서 떠날려고 하니까, ‘하룻밤 쉬어가거라’

이렇게 해서 하룻밤을 쉬어간 일이 있어서 그래서 영가진각 선사의 별호(別號)가 일숙각(一宿覺)이라, ‘하룻밤 쉬어간 객이다’해서 일숙각이라고 하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본각(本覺) 도리에 입각해서 보면 본래 미(迷)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시 또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따라서 미할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기 때문에 구태여 미한 것을 돌려보내지 아니해도, 미(迷)함을 쫓아 보내지 아니해도 깨달을 것도 또한 없다 그말이여.

 

미(迷)한 바가 없으니 무엇을 다시 더 깨달을 것이 있느냐? 깨달을 것이 없으니 또한 닦을 것이 무엇이 있어?

깨달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그렇다면은 오늘 이렇게 결제(結制)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부터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해마다 여름이 오고 겨울이 오면 결제를 해서 석 달 안거(安居)를 했습니다.

 

지금은 엊그제 7월 백중날 해제(解制)를 하고 지금은 해제 기간이라 걸망을 짊어지고 동서남북에 걸림이 없이 행각(行脚)을 하며 도반을 찾고 선지식(善知識)을 찾는 그러한 계절인데,

수년 이래로 산(散)철 동안이라 할지라도 공연히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산철 결제를 해 가지고 알뜰히 정진(精進)을 하는 것이, 정진해 나가는 데에 이익이 많을 것이다 해 가지고 이렇게 산철 결제를 여기저기 선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도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산철에도 결제 때나 다름없이 계속해서 그렇게 정진을 쭉 해 오다가, 수년 전부터서는 산철에 그냥 막연하게 정진하기 보다는 정식으로 간략히 결제 법요식(法要式)을 갖고서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고 정진을 하는 것이 좋다, 이래 가지고 이렇게 산철 결제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용화사에서 이렇게 하게 되니까 이 용화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봉산 원효사라든지, 저 의정부 회룡사라든지, 또 수원에 봉래사 같은 절에서도 비구니 수좌(首座)들이 10여 명씩 모여서 거기서도 산철 결제를 하게 되어서 오늘 이 결제 법요식에 모다 참석을 했습니다.

 

기왕 이렇게 결제 법요식을 갖고 산철 결제를 할 바에는 다른 여름 안거나 겨울 안거 못지않게 더욱 굳게 정신을 가다듬어서 알뜰하게 정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여름에는 그 오뉴월, 유월 칠월 계속해서 더워, 더위 속에 시달리면서 더위와 싸우느라고 참 애를 많이 쓰고 그랬지만 앞으로 두 달간 가을 산철 결제는 춥지도 더웁지도 안 해서 정말 정진을 할 마음만 낸다면 밤에나 낮에나 마음껏 정진할 수 있는 계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10분5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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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고금천지수증오~’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p161 게송 참고. *(頻伽藏)天目中峰和尙廣錄 卷第十二之中 信心銘闢義解中 게송 참고.

*曾(증)일찍,지난날  *飜(번)뒤치다,엎어짐,날다,넘치다  *憶(억)생각하다,늘 생각하다  *端(단)바르다,끝,실마리,근본,일  *憩(게)쉬다

*고금천지(古今天地) ;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온 세상.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영가(永嘉)스님, 육조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육조 스님과 법거량 ;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 德異本) (원순 역해 | 법공양) p244~249.

영가현각(永嘉玄覺) 선사는 어려서 경전과 논서를 익혀 천태(天台)의 지관(止觀) 법문에 정통하고 『유마경(維摩經)』을 본 인연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우연히 육조 스님의 제자 현책(玄策)이 찾아와 그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는 이야기들이 모든 조사 스님의 말씀과 합치되었다. 현책 스님이 말하였다.

 

현책 : 그대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현각 : 제가 『방등경론(方等經論)』에서 “공부를 마친 이는 누구나 나름대로 스승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뒷날 『유마경(維摩經)』을 보다 부처님 마음의 종지를 깨달았지만 이를 증명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현책 : 위음왕(威音王) 이전은 혼자서도 깨달음을 얻었지만, 위음왕 이후에는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은 모두 천연외도(天然外道)입니다.

현각 : 당신께서 저를 위하여 증명해 주옵소서.

 

현책 : 저는 큰 법을 감당 못합니다. 조계에 계신 육조 스님께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그대가 가신다면 같이 가겠습니다.

 

현책과 함께 육조 스님을 찾아갔던 현각은 최소한의 존경심은 나타내었지만 육환장을 흔들며 그대로 우뚝 서 있었다.

육조 : 사문(沙門)이란 삼천위의(三千威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대는 어디에서 왔기에 잘난 마음이 그리 크신가?

현각 : 생사의 일이 큰데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빠릅니다.[生死事大 無常迅速]

 

육조 : ’생멸이 없는 법’과 변함이 없는 영원한 자리를 어찌 체득하여 알지 못하는가?[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현각 : 체득해보니 생멸이 없는 법이고, 알고 보니 본디 빠르고 더디게 변해 갈 것이 없었습니다.[體卽無生 了本無速]

 

육조 : 맞다, 맞는 소리이다.[如是如是]

현각이 위의를 갖추어서 육조 스님께 절을 하고 떠날 인사를 하니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육조 :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크신가?[返太速乎]

현각 : 본디 마음은 움직이는 것이 아닌데 어찌 빠르고 더딘 마음이 있겠습니까?[本自非動 豈有速耶]

 

육조 : 누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는고?[誰知非動]

현각 : 스님께서 분별하고 계십니다.[仁者 自生分別]

 

육조 : 그대는 정말 ‘생멸이 없는 뜻’을 알았구나.[汝甚得無生之意]

현각 : 생멸이 없거늘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無生 豈有意耶]

 

육조 :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는고?[無意 誰當分別]

현각 : 분별한다 해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分別亦非意]

 

육조 : 훌륭하다. 적어도 하룻밤은 쉬었다 가라.[善哉 少留一宿]

이때의 인연으로 그를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불렀다. 뒷날 증도가(證道歌)와 영가집(永嘉集)을 저술하니, 훌륭한 책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많이 보았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별호(別號 나눌•따로 별/부를 호) ; 본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걸망(乞網 빌다·구걸하다 걸/그물·싸다 망) ; 망태기처럼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바랑). 또는 동냥할 때 매고 다니는 베낭(배낭背囊)을 말한다.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 동안거)가 아닌 시기.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오뉴월[五六月] ; 오월과 유월을 아울러 이르는 말. 흔히 여름 한철을 이른다.

 

Posted by 닥공닥정

경계(境界) (No.321)—어떠한 경계에도 바로 화두를 들어 자기로 돌아오면 흥망성쇠, 희로애락 한 장면 한 장면이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 되는 것입니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1) 20분 7초.

(2) 8분 29초.

 

[법문] 송담스님(No.321)—1987년 2월 첫째 일요법회(87.02.01) (용321)

 

(1)------------------

 

해마다 새해가 돌아오면 무엇인가 그 일 년 동안 항상 마음에 명심하고 그것을 하나의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아서 자기에 그 채찍을 삼고 자기를 다스려 나가는 말씀을 한마디씩을 했었습니다.

저지난해에는 ‘스스로 성내지 말아라’ 이런 말씀도 했고, 또 그다음에는 ‘남을 성나게 하지 말아라’ 이런 말도 했고.

 

그런데 금년에는 '속지 말아라. 경계(境界)에 속지 말아라'

우리는 항상 명심을 해서 도(道)를 닦을라고 그러고 부처님을 믿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깜박한 사이에 경계에 속고 마는 것입니다.

 

경계라고 하는 것은 외경(外境)도 있고 내경(內境)도 있는데, 밖에 모든 사람이나 사물에 그것에 내가 속는 것입니다. 그 속아 가지고 진심(瞋心)을 내기도 하고 또 원망하기도 하고 또 미워하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성을 내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밖에 있는 모든 경계는 그 원인이 까닭 없이 밖에서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잘 관찰을 해 보면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기와 관계되는 사건이, 인연이 전부 자기로부터서 자기라고 하는 뿌리로부터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자기한테 있는 것이지, 나타나기는 밖에 나타났지마는 그 원인의 뿌리는 자기한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중심을 잃어버리면 항상 속는 것입니다.

 

우리 도(道)를 닦는 사람이 '중심을 잃었다'고 하는 것은 화두(話頭)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화두를 놓쳐버리면 보는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듣는 것이 제대로 들리지를 않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생각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 하나를 바로 거각(擧却)을 하고 바로 관조(觀照)를 할 줄 안다면 언제나 중심이 잡혀 있기 때문에 밖에 어떠한 사태가 벌어지고 어떠한 일이 자기에게 충격을 준다 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않는 것입니다.

 

도 닦는 사람이 가장 경계(警戒)하고 두려워할 것은 속지 않는 것입니다.

바깥 경계에 속지 않는 것은 그래도 쉬운데, 정말 자기 자신에게 속지 않는 거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하다보면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獨露)하게 되고, 망상(妄想)을 없앨라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없어져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화두가 독로하는 그런 경계를 만나게 되는데,

거기에서 밖에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시끄러운 줄을 모르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마저도 전혀 느끼지를 않는,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신기로운 그러한 경지를 맛보게 되는 것인데, 그럴 때에 자기에게 속는 것입니다.

 

‘아! 바로 이것이 참 경계로구나. 이러한 상태로 영원히 있었으면. 이럴 때 누가 나를 깨닫게 해 주지 아니할까. 어서 여기서 툭 터졌으면’ 이러한 생각들이 바로 경계에 속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독로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 끊어져서 순일무잡한 경계가 온다 하더라도 좋다고 하는 생각을 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물론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혼침(昏沈)이 일어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모다 그래도 짜증을 내서는 아니된 것처럼, 경계가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순일무잡한 경지가 온다 하더라도 깨달음을 기다리거나, 빨리 깨닫기를 바래거나, '하! 좋다'고 하는 생각을 낸 것, 이것도 또한 경계에 속는 것입니다.

 

세속에서는 희로애락(喜怒哀樂)—기뻐하지 아니하면 성내고, 성내지 아니하면은 슬퍼하고, 슬퍼하지 아니하면 즐거워하고, 희로애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또 흥망성쇠(興亡盛衰), 지금 한참 모든 일이 잘 되어가지 아니하면은, 또 모든 일이 또 여의치 못하고, 흥망성쇠 이게 잠시도 고대로 있지를 않는 것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모다 이러한 상황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러한 상황에 나도 계속해서 마음이 말려들어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미워했다가, 때로는 원망했다가, 때로는 저주하고, 때로는 불평불만을 하고, 때로는 근심 걱정을 하고, 이러는 가운데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일평생 동안을 그렇게 살다가 결국은 한(恨)을 남긴 채 숨을 거두게 되는데, 다행히 이 불법을 만나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참선법을 아는 사람은 뭔 일이 내 뜻대로 되어도 우쭐대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뭔 일이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을 당해도 근심을 하고 성내기 대신 바로 화두를 들고.

바로 흥망성쇠와 희로애락 그 한 장면 한 장면이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요,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이요, 그것이 바로 참나로 돌아오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을 믿는 도학자는 산중에서 도를 닦건, 세간에서 도를 닦건, 슬픈 일을 당하면 바로 그 슬픈 일 자체가 나로 돌아오는 발판이요,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기분 나쁜 그 일로 해서 오랫동안 그러한 경계에 묶여 있지를 않고 퍼뜩 화두를 들고 참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 손님이 오셔서 변비증이 심하고, 또 삼백육십 골절이 마디마디 아프고, 또 기억력이 다 없어지고 그런다는 말씀을 호소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 드렸습니다.

 

몸에 육체는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는 그 생로병사의 단계를 거쳐서 결국은 백년 미만에 이 몸뚱이를 버리고서 다시 새 몸을 받기 위해서 떠나는데, 그동안에라도 우리는 몸이 건강하기를 다 바랩니다.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거두어도 그래서 건강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백년을 못 넘기고 다 가게 되는데, 그래도 사는 동안에는 건강을 해야지요.

 

어떻게 하면 건강하냐 하면, 첫째는 대소변을 잘 배설을 해야 합니다. 잘 먹어야 한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배설을 잘하는 것은 먹는 것보단 몇십 배가 더 중요합니다.

 

먹기만 잘 먹고 배설을 못하면 그 건강이 유지가 되지 않고, 그건 참 집안에서도 하수구가 맥혀서 고장이 난다든지, 또 화장실의 변기가 막혀서 안 나간다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뭐 밥 한 끼니 두 끼니 굶어서는 별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수구가 막혀서 주방에 구정물이 나가지 않는다면 그거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변기가 막혀서 안 나간다면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대소변리(大小便利)가 잘 배설이 되지 아니하면 건강에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게 인자 의학적으로 여러 가지로 그것이 다 설명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여러분은 설명을 하지 아니해도 잘 아실 것입니다.

대변을 눌 때 매일매일 배설을 하지 아니하고 이틀 삼일 이렇게 못 누게 되면, 그 처음에 영양을 섭취하고 그다음에는 그래도 안 나가면은 수분을 섭취하고, 그래도 안 나가면 대소변 속에 있는 독소까지 계속해서 흡입을 해 가지고 그 흡입된 그 독소는 혈관으로 몸으로 해서 전부 몸을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비가 있는 분은 결국은 몸이 무겁고 골치가 아프고 삭신이 아프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삭신만 아픈 게 아니라 오장육부에 독소가 다 돌고 돌기 때문에 오장육부에 전부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진대사(新陳代謝)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데, 활발하게 유지해 나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음식물, 그런 육체적인 물질적인 신진대사만 필요하냐 하면 우리 정신적인 것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기쁜 생각이 되었건, 성내는 생각이 되었건, 슬픈 생각이 되었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러한 생각에 오래 묶여 있으면, 그런 생각이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 있어 가지고 없어지지 아니하면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성을 내고 있으면 그거 심장도 나빠지고 소화도 안 되고, 계속 아침부터서 성내는 일만 당하고 속에서 그 성내는 마음이 풀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얼굴빛이 대번에 아무리 원래 이쁘게 생긴 얼굴도 매일매일 성내 갖고 있다면 그 얼굴은 주름살이 생기고, 눈과 눈 사이에 ‘내 천(川)’자가 생기고, 눈에는 독사와 같은 독기(毒氣)와 살기(殺氣)가 풍기게 될 것입니다.

슬픈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슬픔에 잠겨 있다면 혈액순환도 잘 안될 것이고, 몸의 건강도 나빠질 것이고, 정신적인 것도 의기(意氣)가 소침(消沈)이 되고, 백병(百病)이 다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기쁜 것, 세속에도 기쁘면 참 좋은 것같이 생각이 되지만, 기쁨도 적당하니 기뻐야지 기쁜 것이 지나치면은 그것도 사람이 기절을 해서 죽기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영양이 있는 거라고 해서 많이 먹으면 좋을 거 같지마는 그것도 과잉섭취를 하면 당뇨병이 생기고 여러 가지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쁨도 역시 슬픔이나 성내는 것이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등불이 파랑 불이나 노랑 불이나 빨강 불이나 다 전깃불인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감정 그런 것은 지나치게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 것은 우리의 정신위생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낮 성내고 있다든지, 밤낮 슬퍼하고 있다든지 감정에 오랫동안 언짢은, 특히 그 원망하는 마음이 속에 항상 마음속에 있다든지, 남을 미워하는 생각이 항상 가슴속에 있어 가지고 없어지지 않는다든지, 그러면 결국은 남을 저주하게 됩니다.

남을 저주하게 되면 물론 상대방에게도 안 좋지마는, 상대방을 망하기를 바라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하면 먼저 자기 먼저 안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안 좋기 때문에 그런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잠깐 일어난다 하더라도 바로 그 생각을 돌려서 없애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선 자기가 그 독에 중독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대변 소변이 오랫동안 체내에 머물러서 배설이 아니되면 병이 난 것 몇백 배 해로운 것이 성내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슬픈 마음, 저주하는 마음, 불평불만하는 마음, 이런 부정적인 이러한 생각들이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우선 자기의 정신 상태도 안 좋지마는, 자기 건강을 해롭게 하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운명을 어찌해 볼 수 없는 그러한 구렁텅이로 몰고 가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서 들어오는 어떠한 경계를 보고 속지를 말어.

속지를 말고서 바로!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터억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서 일 초 동안에 그것을 흩어 버려야 돼.

 

음식은 어느 시간만큼 위장에서 십이지장으로 소장으로 대장으로 그리 내려가면서 적당한 시간 동안 체내에 머물러 있어야 영양을 섭취하지요. 먹자마자 밑으로 흘러 내려간다면은 밤낮 설사만 하다가 영양실조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으면은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로 화두를 돌이켜서 깨달음으로 향하는 생각으로 돌이켜야지, 좋은 생각이나 기쁜 생각이나 슬픈 생각이나 성나는 생각, 심지어 원망하고 저주하는 생각은 자체가 그런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면사 좋지만, 우리는 무량겁을 지어온 업(業)이 있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육창(六窓)을 통해서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속지를 말고 바로 화두로 돌이켜라 그거거든.(11분50초~31분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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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생각을 억지로 참고, 성내는 마음을 억지로 참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억지로 참으면 임시 그 자리는 보류가 되겠지만 그 속에서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고 해 가지고 오랫동안 쌓이게 되면 결국은 그놈이 일시에 폭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소! 참어! 참는 것이 약이네'

그리 나는 참기를 별로 권하지를 않고 돌리라고 그럽니다.

 

탁! 돌이켜. 돌이켜서 화두로 돌이켜 버리고 그래서 아무것도 우리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것이 없도록 그때그때 돌려서 풀어서 어떠한 종류의 생각도 바로 이 화두를 드는 밑거름으로 삼어라 이거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해 버릇하면 그것도 길이 나서 습관이 되어 가지고, 주먹 같은 놈이 치밀어 오르다가도 탁!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해 버리면 스르르르르 녹아져서 없어져 버리거든. 이건 경험을 해 보신 분은 누구든 아실 것입니다.

이 가운데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불행한 자기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고약한 성격을 아주 훌륭한 성격으로 개선을 하신 분도 참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경계에 속지 말고 바로 자기로 돌아오라.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염기불파(念起不怕)하고 유공각지(唯恐覺遲)라.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각(覺) 더딘 것을 두려워하라'

이 각(覺) 더디다고 하는—'각(覺), 빨리 깨닫도록 해라'하는 게 ‘빨리 화두로 돌이켜라’ 그말이거든.

 

깨달은 사람은 대원각지(大圓覺智), 크고 뚜렷하게 깨달은 그 지혜가 낭연독존(朗然獨存)을 하도록 항상 그렇게 인자 다스려 나가겠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떤 것이 깨달은 경계인가를 모르는 우리로서는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첩경이니까 그렇게 화두를 자꾸 들면, 하근(下根)이 자꾸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상근(上根)이 되어 가는 거고.

 

서커스단에 그 묘기라든지, 올림픽 때에 체조하는 그 선수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어렵게 어렵게 부축을 받으면서 스폰지 위에서 수백 번, 수천 번을 되풀이해서 하면서 결국은 그러한 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뭣고?’야 무슨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고.

자꾸 생각은, 끊임없이 참선할 수 있는 계기는 자동으로 우리는 무진장 타고났으니까 그 계기를 놓치지 말고 그때그때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든다 말이여.

 

해 보면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이 어디가 있는가?'

해 보기 전에는 ‘아이구! 그거 어려워서 상근대지(上根大智)나 하지 우리 업보중생(業報衆生)은 그런 거 해 봤자 어려울 거다’ 전부 다 해 보지도 않고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마는, 해 보면 '이렇게 간단하고, 이렇게 쉬웁고, 정말 이렇게 신기하고도 묘한 것은 없구나' 그런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활을 해 나가는 데 항상 모든 것을 밝은 면을 볼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어두운 면도 있고 밝은 면도 있습니다. 똑같은 일 하나를 놔 놓고도 어떤 사람은 '잘했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못했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좋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좋지 않다'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밝은 면을 볼려고 노력을 하면 모든 것이 다 좋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운명을 밝게 운명을 열어가고자 하면 모든 것을—사람이 되었건, 어떠한 사건이 되었건, 어떤 물건이 되었건 무엇이든지 밝은 면으로 보도록 그렇게 습관을 들이십시오. 그러면 자기 운명이 밝아지는 것이여.

똑같은 일을 가지고 놓고도 그것을 어두운 쪽으로만 보고 비관적으로만 보고 그러면 점점 그 사람 운수 팔자는 점점 어두운 데로만 열려 나가는 것입니다.

 

밝은 쪽으로 볼려고 노력을 하고, 낙관적으로 모든 것을 볼려고 노력을 하고, 그러면 성격도 차츰 밝아지고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기고, 자기 마음도 편안하고 또 모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밝아짐으로 해서 얼굴도 밝아지고, 모든 생각이 밝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모두가 밝고 명랑하고 희망적인 말이 입에서 흘러나오고, 행동도 역시 보람을 느끼게 되고.

남에게 그 사람을 보면은 용기가 나고, 부애 났던 생각도 그 사람하고 얘기를 좀 하다보면 그 부애 나는 것이 다 없어지게 되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서는 항상 향내가 풍기게 되고 앞뒤에서 봐도 멋이 줄줄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우리의 정신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불행과 암흑으로 나를 끌고 가느냐, 행복과 희망으로 우리를 끌고 가느냐는 그 한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밝게 시원하게, 그리고 보람 있게 지혜롭게 우리의 생각을 가져 나가면서 어떠한 일을 보거나 어떠한 소리를 듣거나 무슨 생각을 느낄 때라도 항상 화두 ‘이뭣고?’ 이리 돌이키면서 산다면,

우리는 너무너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다행스럽고, 나에게는 얼마든지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새록새록 느끼게 될 것입니다.(31분56초~40분2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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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座右銘 자리 좌/오른쪽 우/새길 명) ; 늘 자리[座] 옆[右]에 새겨[銘]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를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등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을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공(空)하여 체성(體性)이 없음이 마치 물에 뜬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남[出]이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그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온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성(城)을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행[功行]은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絕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곧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적(寂)과 조(照)가 앞에 나타나 응(應)해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일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에 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삼라만상의 사상인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세계의 생성소멸 과정을 나타내는 성주괴공(成住壞空)도 동일한 형식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대소변리(大小便利 큰 대/작을 소/똥오줌 변/편리할 리) ; 대변(大便 '똥'을 점잖게 이르는 말)과 소변(小便 '오줌'을 점잖게 이르는 말). *便利(변리) : 똥, 오줌 따위를 무의식중에 배설함.

*삭신 ; 몸의 근육과 뼈마디.

*신진대사(新陳代謝 새 신/묵을 진/대신할·교체할 대/물러날 사) ; 생물체가 몸 밖으로부터 섭취한 영양물질을 몸 안에서 분해하고, 합성하여 생체 성분이나 생명 활동에 쓰는 물질이나 에너지를 생성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 물질대사(物質代謝)라고도 함.

*의기소침(意氣銷沈, 意氣消沈 뜻 의/기운 기/사라질 소/잠길·가라앉을·잃을 침) ; 의기(意氣 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이나 기개)가 사라지고[銷] 가라앉음[沈].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육창(六窓 여섯 육/창문 창) ; '육근(六根)'을 여섯 개의 창으로 비유한 것.

*육창일원(六窓一猿) ; 여섯 창문이 있는 집에 한 마리의 원숭이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이리저리 여섯 개의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다는 비유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육창(六窓)에 비유하고 심식(心識)을 한 마리의 원숭이에 비유한 것.

 

 

 

------------------(2)

 

*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不怕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一O入九 ~ 一一六三) ‘答 汪內翰‘

先聖云 ’瞥起是病 不續是藥‘ ’不怕念起 唯恐覺遲‘

옛 성인이 이르시되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병이요, 계속되지 않는 것이 약이다’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종경록(宗鏡錄)』 제38권 (영명연수 九O四 ~九七五)

禪門中云 不怕念起 唯慮覺遲 又云瞥起是病 不續是藥 以心生卽是罪生時故 是以初心攝念爲先 是入道之階漸 如諸經要集云 攝心一處 便是功德叢林 散慮片時 卽名煩惱羅刹 所以曇光釋子 降猛虎於膝前 螺髻仙人 宿巢禽於頂上

 

선문 가운데 이르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닫기가 더딜까 염려할 따름이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되 “갑자기 일어남은 병이요 계속되지 않음은 약이니, 마음을 낸즉 죄가 생기는 때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처음 마음이 났을 때 생각을 거두어들임이 으뜸이 되나니, 이것이 도에 들어가는 단계점차이다. 마치 제경요집경에서 이르되 “마음을 한곳으로 거두어들임은 공덕의 총림이요, 생각이 조각조각 흩어질 때를 곧 번뇌의 나찰이라고 한다”고 함과 같다.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상근(上根 위 상/뿌리 근) ; 상근기(上根機).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소질과 능력, 또는 그러한 소질과 능력을 지닌 사람.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業,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고락苦樂). 업과(業果)라고도 하며, 업인(業因)과 과보(果報)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근기2019. 11. 11. 04:25

근기(根機) (No.321)—적극적 요중선(鬧中禪)이야말로 훌륭한 참선 | 상근 · 중근 · 하근.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3분 56초)

 

[법문] 송담스님(No.321)—1987년 2월 첫째 일요법회(87.02.01) (용321)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세간(世間)에 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인간 세상에 모든 희로애락과 흥망성쇠 속에서 바로 그 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고 적극적 임운선(任運禪)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상근인이 할 수 있는 참선이다. 그 적극적(積極的) 요중선(鬧中禪)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참선(參禪)이다' 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전부가 상근인(上根人)이냐 하면은, 상근인도 더러는 있지마는 대부분은 중근, 하근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중근, 하근이라도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화두(話頭)를 들고 일체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의 일을 당했을 때 그리 따라가지 아니하고, 그리 말려들어 가지 아니하고 바로 화두를 들고 또 들고 이렇게 해 나가서 그런 세간의 흥망성쇠에 내가 끌려 들어가지만 않으면 그것이 바로 상근인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상근이 따로 있고 하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근인다웁게 모든 일에 임해서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그놈을 디디고 극복을 하고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상근의 가풍(家風)인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 가지고 도(道)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이 공부를 위해서 고향과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서 오직 이 하나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는 그러한 특별한 생각을 발심(發心)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하근이냐 하면 상근도 그러한 철저한 신심이 있다면 할 수가 있는 것이고,

하근(下根)도 그렇게 출가해 가지고 일대사(一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다면 하근도 자기를 깨달라서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상근도 닦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고, 하근・중근, 하근도 공부해서 도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도(道) 자체에 가서는 조금도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근기(根機) 따라서 취향하는 방법에 가서 차이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보면은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7분50초~11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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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흐른다는 시간의 뜻이 있고, 간(間)은 가운데·간격·틈새라는 공간의 뜻이 있다.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요중선(鬧中禪 시끄러울 뇨/가운데 중/참선 선)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조용한 가운데 하는 참선은 정중선(靜中禪)이라 한다.

*임운(任運 맡길·마음대로 할 임/옮길·움직일·운수 운) ;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일어남. 아무런 조작이나 인위적인 힘을 첨가하지 않고, 법이(法爾), 여연(如然), 자연(自然), 으레히라는 뜻.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상근(上根 위 상/뿌리 근) ; 상근기(上根機).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소질과 능력, 또는 그러한 소질과 능력을 지닌 사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공덕 공력2019. 11. 8. 14:31

공덕(功德) (No.619)—대장경 결집 역사 | 고려대장경 전산화 수희동참 |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 공덕 이야기 | 아사세왕의 참회, 제1회 결집 외호공덕.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1) 12분 36초.

(2) 14분 27초.

 

[법문] 송담스님(No.619)—99년 2월 첫째일요법회(99.02.07) (용619)

 

(1)------------------

 

정말 여러분에게 참 오늘은 특별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현재 전강 조실 스님까지는 77대가 법(法)의 등불이 이렇게 이어져 왔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 법으로 그렇게 법도 이어오면서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우리나라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작년엔가 그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 부처님과 종묘(宗廟), 세 문화재가 유네스코로부터서 이 「세계의 문화재(세계문화유산)」로 지정받은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단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문화재로 지정을 받아서 불이 타지 않도록, 습기가 침범하지 않도록, 벌레가 먹지 않도록 또 도적이 침범 못하도록 잘 보존해서 몇천 년이고, 몇만 년이고 보존을 잘 지키고 그렇게 해야 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써 팔만대장경을 모신 목표가 거기에서 끝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얼마나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 해인사에까지 팔만대장경이 모셔졌는가 여러분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부처님 열반하신 해에, 부처님 돌아가시니까 부처님 제자들이 통곡을 하고 머리를 땅에다가 부딪치면서 통곡을 하니까 어떤 늦게 된 스님, 조끔 머트럽게 말해서 늦깨끼 한 사람이 나와서 "여러분 통곡할 것 없습니다. 그동안에는 부처님이 계셔서 '이것은 해라, 이것은 하지 마라' 여러 가지 계율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꼼짝달싹을 못하게 하셨는데 인자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우리도 좀 자유롭게 좀 살 때가 되었는데 뭐 그렇게 울어쌌냐" 아! 그렇게 소리를 지른 스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가섭 존자(迦葉尊者)께서 '아하!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일 만에 오백 성승(五百聖僧)을 모아가지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결집(結集)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속기술로 했는지, 그때는 녹음기가 없었으니까 녹음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전해 온 바로는 외워가지고, 아란(阿難) 존자를 시켜서 죽죽죽죽 죽죽죽 '어데서 누구 있을 때 어떻게 이 법문을 하셨다' 죽죽 외우면 오백 성승들이 '과연 그렇게 했다'고 전부가 인정을 하면 그것으로써 또 한 경전이 결집이 되고 해서 외워가지고 결집을 했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외워가지고 무슨 결집이 되냐?'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한 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아란 존자는 외우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기억력이 좋았으니까요.

 

제1회는 그렇게 오백 성승이 모여서 왕사성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회 결집을 했고, 두 번째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년 만에 야사(耶斯)라고 하는 존자가 제의를 해가지고 비사리성에서 칠백의 아라한(阿羅漢)들이 모여가지고 제2회 결집을 했습니다.

또 제3회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삼백삼십 년 만에 아육왕(阿育王)의 보호 아래 제수라고 하는 존자의 사회로 파타리자 성에서 천 명의 아라한들이 모여가지고 제3회 결집을 했던 것입니다.

 

제 4회 결집은 불멸후 육백 년경에 가니색가왕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가습미라에서 협존자(脇尊者)와 세우 존자를 상좌로 오백의 성자들이 모여서 제4회 결집을 했습니다. 그때 삼장(三藏)을 결집을 하고 그 삼장에 대해서 주석도 달고 그랬습니다.

그 뒤로 대승경전이라든지 또 비밀장 밀교 그런 경전도 모다 결집이 되었습니다마는, 오늘은 그 자세한 것을 생략을 하고.

 

그렇게 해서 삼장법사 구마라습이라든지 현장법사 그밖에 많은 범어와 중국어에 통달한 성자들이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티베트어로 번역하고 그렇게 해서 한문 경전으로 된 것을 고려 때에 그 고려 현종이 그것을 그 원본을 책으로 갖다가 우리나라에서 그것을 경판에다 새겼습니다.

 

새겼는데 무슨 목적으로 새겼느냐 하면은, 거란족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해 들어오니깐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오천사십팔 권의 그 경전을 새겨가지고 부인사, 부인사가 아마 경북 영천에 있는 절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을 부인사에 설치를 했습니다.

그것이 1232년 고종 19년에 몽고병이 침입을 해왔습니다. 그래가지고 거기다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 불타버리니까 1236년 4년 뒤에 그 고종이 다시 경판을 새기기를 시작했습니다. 16년 동안에 걸쳐서 강화도에서 1511부 6802권이고, 판수로는 81,258장이라고 그걸 완성을 해서 해인사에 봉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화 선원사에 보관했다가 이태조(李太祖) 7년에, 1398년에 서울 지천사에 옮겼다가 다시 해인사로 옮겨 모신 것이 오늘날까지 지금 해인사에 잘 봉안이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잘했던지, 소금물에 담구고 말리고 모다 칠(漆)을 먹이고 해가지고 한 장도 버러지 먹은 것도 없고, 귀지도 않게, 그래서 잘 보존이 되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국보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그렇게 보존이 되어서 그걸 대단히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영구히 잘 보존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써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말이여.

 

21세기를 우리는 맞이한 마당에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세계가 다 자기 있는 곳에서 미국에서나 소련에서나 영국에서나 독일에서도 컴퓨터만 누르면 인터넷을 통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가 있게 된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데 일본에서는 한국의 이 대장경을 본따서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이란 것을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전산화를 해가지고 일본에 있는 신수대장경은 세계에서 다 열람할 수가 있는데 그보다도 훨씬 더 잘되고 좋은 경전이 우리나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가지고 우리나라 경전을 보려면 여기까지 와야만 됩니다.

 

그 쉽게 팔만대장경을 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을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라도, 외국에 있는 어떠한 불교 학자라도 그 팔만대장경을 거기에서 열람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바로 고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불사(佛事)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런 불사는 국가적으로 해야 할만한 불사고 또 국가에서 못하면은 불교 종단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 텐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라는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인해서 경제가 말이 아니고, 종단은 참 내 입으로 벌리기도 참 안되었지마는, 종단이 저렇게 분규가 일어나가지고 시끌사끌 한데 그런 불사를 할 정신이나 있겠습니까?

 

다행히 불보살(佛菩薩) 화현(化現)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가지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이 전산화 불사를 94년도부터서 시작해가지고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삼성문화재단에서 이 불사를 찬동해 가지고 꽤 많은 돈을 내서 참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기본 입력은 되었으나 그것을 한 자, 한 자 틀림없이 되었나, 그것을 낱낱이 다 대조를 해가지고 해야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는 또 한글로 번역을 또 해서 한문을 모른 사람도 집안에 앉아서 팔만대장경을 무슨 경에 무슨 품에 몇 조에 이걸 딱 볼 수 있게 그렇게 해야 하고.

 

또 더 나아가서는 영어라든지 세계의 다른 나라 외국어로도 번역해가지고 외국 사람들도 자기 나라에서 자기집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 있게 이렇게 한, 그러한 역사 이래로, 불교 삼천년 역사 이래로 처음이라고 할 만한 그런 위대한 불사가 원력(願力)을 세운 불보살 화현에 의해서 이 불사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사는 우리 불교도(佛敎徒)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여기에 다 동참(同參)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이엠에프 시대가 되어가지고 우리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불사를 하느냐? 동참을 하느냐?' 혹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이렇게 어려울 때 불사에 동참을 하고 성의를 바쳐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예를 내가 경전에 나온 말씀을 빌려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14분6초~26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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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장자(須達長者)라고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 첫머리 읽으면 기수급고독장자(祗樹給孤獨長者)라고, 그 기수급고독장자가 누구냐 하면 수달장자입니다.

그 수달장자가 처음에 대단히 부자로 살다가 마지막 가난해지고 또 가난해져 가지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녁 끓일 것도 없고, 뭐 속담에 뭣이 짝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지요.

 

그렇게 가난한데, 부부가 굶고 살다시피 그러다가 수달장자가 밖에를 슬슬 댕겨서 봤습니다. 혹 뒤엄이나 쓰레기통에 혹 먹다가 버린 쉰 빵 쪼가리라도 혹 있나하고 보다 보니까 나무토막 하나를 얻었습니다.

흠흠 맡아보니까 그 쓰레기 속에서 주었는데 향내가 진동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놈을 씻어가지고 보니까 전단향(栴檀香) 나무토막이라. 그놈을 가지고 팔았습니다. 팔아가지고 쌀 너 말을 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여러 날을 굶다시피 하다가 쌀 너 말을 구했으니.

그 쌀 너 말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그 부인 보고 '우선 한 말만 밥을 해가지고 오늘 좀 배를 채워야겠다. 밥을 하라'고. '나는 슬슬 다시 가서 쓰레기통에 배추 이파리나 무 이파리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주워가지고 와서 다글다글 끓여서 먹어야 할 테니까 밥을 하라'고 해서 밥을 해 놓고, 인자 밥이 있고 아직 수달장자 안 왔는데.

 

부처님이 가만히 정사(精舍)에서 관(觀)을 해 보시니까 '수달장자가 이제 참 때가 되었구나. 수달장자를 정말 제도할 때가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고서 사리불(舍利佛)을 가서, 수달장자한테 가서 걸식(乞食)을, 바리때를 가져가서 밥을 얻으러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인이 밥을 해가지고 냄새는 코로 술술술 들어오는데 속에서 회(蛔)가 동(動)해 가지고 견딜 수 없이 그런데, 아! 사리불 존자가 왔으니 안 드릴 수가 없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한 말밥을 드렸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또 한 말을 퍼서 밥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목련(目連) 존자, 네가 또 가서 밥을 빌어 오너라' 목련 존자가 가서, 밥을 다 익을만 할 때 들어가서 바리때를 떠억 펴니까 두말없이 또 두 번째 한 밥을 퍼줬습니다.

그리고 또 세 번째 한 말을 퍼서 또 밥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부처님께서 가섭(迦葉) 존자를 시켜서 '가서 밥을 빌어라'하니까 가섭 존자가 또 가 가지고 밥이 김이 풀풀풀 난 데가 바리때를 떠억 가니까 두말없이 또 딱 퍼줬습니다.

 

그런 마지막 한 말 남은, 네 말 밥을 딱 밥을 했습니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몸소 바리때를 가지고 가서 딱 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또 두말할 것도 없이 그놈을 퍼서 (드리니까), 이렇게 바리때를 받아 놓고 부처님께서 작관을 하시고 축원을 하시기를 "금일죄멸복생(今日罪滅福生)이니라, 오늘날 그 가난해야 할 그 죄는 없어지고 멸하고, 큰 복을 받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딱 축원(祝願) 한마디 하는데, 그때 마치 수달장자가 나물거리 주워가지고는 들어왔습니다.

와서 보니 부처님 와서 계시지, 크게 기뻐해가지고 부처님 받은 밥, 사리불, 목련, 가섭 존자 할 것 없이 다 와가지고 그 밥을 퍼 놓고 찌개를 끓여서 거기서 공양(供養)을 잡쉈는데, 공양이 끝나자 여기서 저기서 보물이 막 솟아오르는데 금은보화 칠보와 비단과 곡식과 또 그런 것이 와 가지곤 땅에서 솟아나가지고 옛날에 부자일 때와 같이 되었다 이거여.

 

그러니까 수달장자는 그때 다시 잘 차려놓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다시 초청을 해가지고 공양을 올리고서 법문(法門)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니까 수달장자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도를 다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과연 수달장자의 부인이라면 식구가 쫄쫄 굶다가 모처럼 얻은 거 밥해 놓은 거 스님네가 오면 탁 떨어주고, 탁 떨어주고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직장에 다니다가 다 퇴출 당하고 또 유학 간 애들도 다 불러들이고, 대학도 휴학을 시키고 군대에 보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으시겠지만 그렇다고 역사 이래로 없는 이런 불사에 빠지면 참 언제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복을 받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안 해도 아까 말한 팔만장경의 그 전산화 불사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기만 하셨다면 여러분은 진즉 하셨겠는데 아마 잘 모르고 안 하신 분은 이런 기회에 다 동참을 하시고.

 

'이 경전 불사에 동참하는 그것이 얼마나 공덕이 장하냐?'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아사세(阿闍世)왕이라고 아실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조달(調達)이,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하는데, 그 조달이의 꼬임에—이 아사세왕에 뭐라고 꾀셨냐 하면은 아사세왕 아버지는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āra 빔비사라)왕인데,

"빈바사라왕이 명이 길게 생겨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태자는 임금 맛도 못 보고 죽게 생겼어.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을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을 죽이고 내가 신불(新佛)이 되고, 아사세 태자는 빈바사라왕, 부왕(父王)을 죽이고 신왕(新王)이 되라. 신왕과 신불이 나와 가지고 이 세계를 한번 휘어잡아 보자"

 

꾀서우니까 아사세왕이 솔깃해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갖다가 칠중(七重) 감옥에다 가두고 굶겨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죽였단 말도 있고, 죽이러 올라온 줄 알고 자결을 했단 말도 있고 그럽니다마는, 하여간 경전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아사세는 자기 부왕을 죽인 걸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사세왕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가지고, 아조 문둥이처럼 되어가지고 아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파(耆婆) 어의(御醫)가 너무너무 볼 수가 없으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懺悔)를 하면은 어쩌면 낫을런지 모르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를 하라 그러니까,

'나 같은 이러한 대역죄(大逆罪), 오역죄(五逆罪)를 지었는데 부처님이 받아 주실까요?'

'틀림없이 받아 주실 테니까...'

 

'그러면 그대가 먼저 가서 내가 참회를 오면은 받아 주시겠느냐고 먼저 가서 말씀을 여쭤봐라'

가서 말씀을 드리니까, '그러면 진실로 참회한다면야 내가 왜 참회를 안 받아 주겠느냐' 그래서 참회를 하고 그래가지고는 차츰차츰 병도 낫고 그래가지고,

 

부처님 당시에 파사익왕이니 뭐 아사세왕이니 여러 왕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 삼보(三寶)를 외호(外護)하는 왕으로서 경전마다 나와 있고, 참 그런데다가 가장 뚜렷한 공적은 무엇이냐 하면은 제1회 결집(結集) 때 아사세왕이 공양 · 의복 · 약, 일체를 전부 뒷바라지를 해가지고 제1회 결집을 무난히 성취를 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은 아사세왕은 그 아버지를 죽이고 한—그 부모를 죽이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하고, 아라한(阿羅漢)을 죽이고 그런 것이 오역죄에 해당이 되는데, 그 오역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돼.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함지옥(生陷地獄)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세왕은 그러한 죄로 해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지자마자 다시 거기에 고통도 받을 겨를도 없이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부처님께 참회를 했고, 적극적으로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외호할 뿐만 아니라 제1회 결집을 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외호를 한 그 공덕으로 결국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받을 죄가 소멸이 되어가지고 천상에 올라간 것이다 그말이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지금은 여러분들이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을 믿는 여러분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을까마는, 무량겁을 오면서 수천만 생을 오면서 산같이 지은 입으로 지은 죄, 바다와 같은 그 몸으로 지은 죄, 허공과 같이 지은 죄를 마음으로 지었다고...

안 지었다고 누가 보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지은 죄도 낱낱이 빼놓지 않고 다 받게 될 것입니다마는, 오늘 내가 소개한 이런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통해서 온 세계 사람에게 이 팔만대장경을 읽게 하는 그 공덕으로 그 죄도 소멸이 되리라고 저는 감히 보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편이 넉넉한 분은 좀 넉넉하니 하고 아무리 적어도 적은 돈이라도 아까 수달장자처럼 그것을 안 먹으면 굶어 죽게 생겼어도 탁! 갖다 바칠 때에 큰 부자의 복을 받게 되는 이런 경전에 말씀을 명심을 하시고 여기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同參)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로 25년, 사석(私席)에서나 법석(法席)에서나 단 한 번도 여러분에게 시주(施主)를 하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불사는 여러분의 어려운 난국을 해나가기 위해서도 또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 국난을 맞이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세계가 말세(末世)의 현상이 나가지고 도처에서 사람을 죽이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이러한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서도 이 전산화 불사는 하루속히 원만히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의 역사를 깨고 불사(佛事)에 동참하시라고 감히 권고를 하는 것입니다.

 

형편 따라서 성의껏 하시면 되고 한 번에 안 내더라도 다달이 요렇게 해서 하셔도 되고, 구체적인 것은 앞으로 여기 고려대장경 연구소장으로 이 불사를 하고 있는 스님께서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설명을 해드릴 것입니다. 게송 하나를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事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소장님 잠깐 나와 주십시오.(26분44초~41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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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 삽삼조사(卅三祖師).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는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선종에서 법(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것이므로, 따로 언어•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 국제 연합(UN) 전문 기관의 하나. 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과 국제 교류 증진을 통한 국제간의 이해와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 1946년에 창설되었으며, 본부는 파리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UNESCO 世界文化遺產) ;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 유산 및 문화 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의 규정에 따라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산.

*머트럽다 ; 말이나 행동이 일정하게 바르게 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늦깨끼(늦깎이) ; ①나이가 많이 들어서 스님이 된 사람. ②나이가 꽤 들어서 어떤 것을 시작하거나 성공한 사람.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상기티는 결경(結經) · 집법(集法) 또는 합송(合誦) · 합창(合唱)으로 해석하며, 회의(會議)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많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불전(佛典)을 올바로 평가하고 편찬하는 일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붓다의 입멸 후부터 2세기경까지 4차례의 결집이 있었고, 그 후 현대에 오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장경(大藏經) 결집이 있었다.

*가섭 존자, 아난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무학(無學) · 이악(離惡) · 살적(殺賊) · 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천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하였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하였고,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하였다.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하였다.

*삼장(三藏) ;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세 가지 불서(佛書)를 통틀어 이르는 말.

*범어(梵語) ; 인도 · 유럽 어족 가운데 인도 · 이란 어파에 속한 인도 · 아리아어 계통으로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고대 인도 문학이나 불경(佛經)은 이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고급 문장어이다. 산스크리트(Sanskrit) · 산스크리트어(Sanskrit語) · 천축어(天竺語).

*귀지다 ; '귀나다(모가 반듯하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비뚤어지거나 기울어지다)'의 옛말.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 ; 일본에서 간행한 대장경. 원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의 주관으로 대정(大正) 11년(1922)에 기획하여 소화(昭和) 7년(1932) 2월에 완성됨.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고 여러 간행본과 사본등을 대조하여 많은 차이점을 각 페이지 하단에 자세히 주기(註記)하고, 여기에 팔리어와 산스크리트를 일부 병기(倂記)함.

총 100권 중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 일본 찬술부가 29권, 돈황 사본이 1권, 도상부(圖像部) 12권, 목록 3권으로 이루어짐. 이중 도상부와 목록을 제외한 85권이 불전(佛典)으로 총 3,053부, 1만 1,970권에 이른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아이엠에프(IMF) ; ‘IMF 경제 위기’ ‘IMF 외환 위기’ ‘IMF 관리체제’ ‘IMF 시대’ 한국에서 기업부도와 금융위기가 확산되어 1997년 12월 정부가 IMF(국제 통화 기금 ;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된 사건.

한국은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 금융기관의 부실과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국 채무의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겪게 되어 한국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을 할 사태에 이르자, 1997년 12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실천하여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으나,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엄격한 재정 긴축과 가혹한 구조 개혁,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제를 받는 나라는 금리가 상승되고 실업률이 상승되는 등의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각종 경제 개혁과 전국민적 노력 덕분에 2001년 8월에 IMF 관리체제가 종료되었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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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장자 부부의 공양(供養) 공덕 '죄멸복생(罪滅福生)' 이야기 ; 잡비유경(雜譬喩經) (하권) '28(二八)'

*수달(須達)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udatta의 음사. 온전한 이름은 수달다(須達多). 소달다(蘇達多)라고도 음사. 선시(善施), 선수(善授), 선여(善與), 선급(善給), 선온(善溫) 등이라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때 중인도 사위성(舍衛城)에 살던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 성품이 인자하여 평소에 고아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급고독(給孤獨)이라고도 불렸음.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다.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부처님은 20여 년간 이 정사에 머물면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다원림수달다정사(祇陀園林須達多精舍)의 약어(略語).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서,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인 수달(須達)은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고,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단향(栴檀香) ; 전단향 나무. 인도에서 나는 향나무의 하나. 목재는 불상을 만드는 재료로 쓰고 뿌리는 가루로 만들어 단향(檀香)으로 쓴다.

*정사(精舍) ; vihara. 수행승들이 머물면서 불도(佛道)를 닦는 집. 사원. 절.

*사리불 존자, 목련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회(蛔)가 동(動)하다 ; 뱃속에 있는 회충(蛔蟲)이 먼저 알고 요동(搖動)을 칠 정도로 입맛이 당긴다는 뜻이다. 뜻이 변하여, 어떤 음식이나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입맛이 당기거나 즐거운 호기심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말밥 ; 한 말가량의 쌀로 지은 밥. '말[斗]'은 부피의 단위로 곡식 · 액체 · 가루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말은 한 되[升]의 열 배로 약 18리터에 해당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아사세(阿闍世) ; (산스크리트) Ajātaśatru (팔리어) Ajātasattu 부처님 제세 시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왕과 위제희(韋提希)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하여 태자가 된 후, 제바달다의 꼬임에 넘어가 부왕(父王)을 감옥에 가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부왕을 시해한 죄로 인해 온몸에 부스럼이 생겼는데, 기파(耆婆) 어의(御醫)의 권유로 부처님 앞에서 참회한 뒤 치유되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왕사성에 사리탑을 세우고 공양하였으며, 마하가섭을 비롯한 부처님 제자들이 칠엽굴에서 1차 결집을 행할 때, 대단월(大檀越)이 되어 음식 · 재물 · 당우(堂宇) 등을 지원하여 불교 교단을 외호하였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번역하여 천열(天熱), 천수(天授), 천여(天與).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imbisāra의 음사. 부처님 재세시 마가다국(magadha國)의 왕(재위 기원전 五八〇년경~기원전 五五〇년경). 빈비사라(頻毘娑羅), 빔비사라 등으로 음사하고 병사왕(缾沙王·萍沙王), 영승왕(影勝王), 안모단정왕(顔貌端正王) 등으로 한역한다. 왕비 위제희(韋提希)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그 제자들인 승가에 공양하고 불교를 호지(護持)하며 교단을 지원한 최초의 외호자(外護者)이다. 만년에는 궁전에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 등을 봉안하고 예배하였다. 후에 태자 아사세(阿闍世)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아나함과를 증득한 후 죽었다.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기파(耆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jīvak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위성에서 살던 의사.

덕차시라국의 반가라에서 7년간 배운 뒤 본국인 바가타성에 귀국, 여러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고 남쪽 나라의 폭군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불교에 귀의하여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대역죄(大逆罪 큰 대/거스를 역/죄 죄) ; 예전에, 국가와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크게[大] 거스르는[逆] 일을 저지른 죄(罪). 왕권을 범하거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큰 죄를 이르던 말. 불교에서는 오역죄(五逆罪)에 해당한다.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生] 지옥(地獄)에 떨어짐[陷].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