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13분 24초)
[법문] 송담스님(No.122)—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용122)
앞으로 이 일요법회 때는 참선법(參禪法)에 대해서 주로 중점을 두고 법회를 운영해 나가겠습니다마는,
혹 참선을 하면 무엇이 나타나고 보이고, 그래가지고 무엇이 뭐 허연 옷을 입은 사람이 획 지내가고, 뭐라고 나를 내 이마를 만져주면서 뭐라고 법문을 해주시고 그런다고 아주 처음 들어와서 아지도 못한 사람한테 자랑을 하고, 자기가 아주 반쯤 도통(道通)한 것처럼 갖다 위세(威勢)를 부리고 그런 사람이, 그런 삿된 소견(所見)을 가진 사람이 가끔 있는 걸로 듣고 있습니다.
처음 오신 분은 암만 앉아 봤자 가슴만 답답할 뿐이지 도대체 보이는 것도 없고.
'벌써 내가 이 화두(話頭)를 타고 참선한 지가 벌써 3년이나 되는데 아무것도 알아진 것도 없고 보인 곳이 없습니다. 근데 제가 뭘 화두를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까?' 이렇게 문의를 하신 신도님이 계십니다.
근데 절대로 이 참선은 옳게 하는 한에는 그런 것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잘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른거리고 무엇이 보이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 잘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떡! 처음 들어온 후배들한테 으시대기 위해서 그러한 못된 소리를 지껄이고 으시댄다고서야 그것 참 부끄럽기 한량이 없는 일입니다.
누가 그러한, 40년 50년을 댕겼다 하더라도 그런 소리하걸랑 '아하, 이 분이 공부가 잘못되었구나' 이렇게 탁! 알아차리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그런 말을 듣고 '아이구, 나도 그런 것이 좀 빨리 나타났으면' 그렇게 생각한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또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만 되었다 하면은 그 사람은 참선은 참 바로잡기가 어렵습니다. 공부만 하려고 하면 그런 것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래가지고 그 사람은 공부 잘 못하게 되는 거여.
그래서 그런 것이 나타나기를 바래지도 말고, 누가 나타난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면 '음, 당신 공부 잘못했구나'
'당신 잘못했다'고 일러줄 필요도 없습니다. 벌써 다 알고 있습니다. 많이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도 원래 삿된 생각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나타난 것이에요. 일러줘도 소용이 없어요.
일러주면 '아, 그렇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그래놓고는 나가서 또 고 짓을 하거든요. 그래서 절대로 그러한 말을 곧이듣지도 마세요.
공부할 때에 하다 보면,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쉬흔 가지의 그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가 있다.
누굴 보면 '아, 저 사람이 지금 시장에 간다고 나와 가지고는 친구 집에 춤추러 가는구나' 사람 떡! 보면 알아. '저 사람은 곗돈 가지고 계 추리러 가는구나' 그것도 척 보면 알아요. '아하! 저 사람은 시집을 두 번 갔구나' 척 보면 알거든.
'옴마니반메훔'이나, '관세음보살'이나, 기도 같은 거 또는 참선 하다 보면 그러한 것이 알아지는 수가 있어요. 근데 그것이 잘 공부를 해 갖고 도통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신통력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알았으면...' 한 소원을 가지고 했다 이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런 것이 나타나는데, 그런 것이 나타나도 이것이 정법(正法)이 아니요, 이것이 깨달음 바른 깨달음이 아니라고 한 것을 애당초에 알고 탁! 용기허게 독하게 그것을 뿌리쳐 버리고서 탁! '이뭣고?'를 올바르게 해 가면 그런 것이 맥을 못 추리고 그냥 없어져 버리는데.
아, 그 묘하거든. '내가 어떻게 해서 내가 이런 좋은 것을 알았는가' 속으로 생각하면 재미가 옥실옥실하고.
또 딴 사람한테 그것을 탁! 한마디씩 알아맞출 때 그 사람이 나를 그냥, 아주 그냥 도사로 숭배를 하고, 막 내 말 한마디면 뭐 천하 없는 사람도 무릎을 꿇고 굽신굽신하니까 '이거 보통 좋은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그놈을 살살 눈치봐 가면서 한마디씩 써먹고 도사 노릇을 갖다가 하니까, 모두 그냥 사람들이 그냥 굽신굽신하니까는 거기서 그냥 아주 그냥 행세하기가 썩 좋다 그말이여.
돈도 갖다 주고, 옷도 갖다 주고, 말 한마디면 뭐 지가 장관부인 아니라 천하 없는 놈도 지 앞에는 호령 한마디에 그냥 꿈쩍을 못하거든.
그렇게 해가지고 삿된 짓을 하고, 도사 노릇을 하고 있는 그러한 분을 여러분 가운데에 혹 살살 나 몰래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은 참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을 하시고.
내가 설사 내일 어떻게 될 줄을 모르고, 내가 이 사업이 잘될지 못될지를 모르고, 자기 남편이 잘될지 못될지, 자기의 운수가 어떻게 될지 답답하고 모를망정 모를수록에 화두를 들고 자기의 근본 문제, 참나를 찾기를 위해서 노력을 해야지, 설사 자기 남편이 잘되고 못되고 한 것을 미리 알아봤자 별수가 없습니다.
잘될 때 잘되고, 결국은 아무리 그것을 알고 있더라도 또 망할 때 망하는 것입니다. 안다고 해서 안 망하는 것이 아니에요.
망하되 그 망함으로 인해서 자기의 본심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 흥하되 흥함으로 인해서 자기가 흔들림을 받지 아니할 것,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공자님과 같은 성현도 진나라에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이라고 하는 기간을 굶주림에 시달림을 받았고,
양허라고 하는 공자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그놈이 온갖 못된 짓을 해가지고 관가에 쫓김을 받고 있었는데 마치 공자님 모습이 그 불량한 못된 사람하고 얼굴이 비슷해가지고 그 범인인줄 의심을 받아가지고 큰 곤경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제자가 공자님에 묻기를 "세상에 선생님은 성현이신데, 성현이 세상에 이러한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까? 성현도 이러한 곤란을 당할 수가 있습니까?"
"성현이라고 해서 어찌 곤경을 안 당할 수가 있느냐, 당하되 범부(凡夫)는 이러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마음이 변해가지고는 가누지를 못하는 것이고, 성현은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해도 조끔도 마음에 동요를 받지를 아니하고, 그것이 범부와 성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이 논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러한 삼계(三界)에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시고, 성인 가운데에 성현이시지만 때로는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다. 조달(調達)이로부터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당하셨고.
목련존자와 같은 (성현은) 그러한 신통이 자재한 그러한 성현이지만 외도(外道)의 돌팔매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아가지고 결국은 열반(涅槃)에 드신 것입니다.
성현이라 해서 어려운 일을 안 당한 것이 아니어요. 자기가 과거에 지은 업(業)에 따라서 받을 것은 다 받습니다.
받되, 범부는 복수를 할 마음을 내고 마음이 독사처럼 되아 가지고 원망을 하고 저주를 하다가 결국은 죽어가지만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 정법에 있어서는 쪼끔도 마음에 동요가 없어.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이 곱게 그것을, 피할 수가 있어도 일부러 안 피한 것이여. 피해 봤자 오히려 이자까지 더 불어서 더 고약하게 당한 것인데 뭐하러 그것을 피할 것이냐 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것을 어떻게 미연에 피해 보자고 점쟁이 집으로, 관상 사주쟁이로 쫓아대닐 것이 아니라 자꾸 이 공부를 쌓아서 정법을 닦아서 과거에 지은 업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능력으로 그것을 곱게 받아넘기고 수월하게 받아넘기고, 마음의 움직임이 없이 그것을 잘 받아넘기고 오히려 웬수가 자기로 인해서 감화를 받도록 이러한 길을 우리는 모색해 나가야 할 걸 생각을 합니다.
불법은 방편(方便)이, 팔만사천 가지 방편이 있어서 정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방편법이 다 버릴 것이 없이 다 좋은 법이 되는 것이고 도(道)에 보탬이 되는 것이고, 정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방편에 떨어지면 오히려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는 것이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이 되는 것이여.
정법을 믿는 사람은 온갖 방편법이 다 조도법(助道法)이요, 도에 도움이 되는 법이 되고, 정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불법을 믿는다고 죽도록 한다는 것이 결국은 사도(邪道)에 떨어지는 원인밖에는 아니 되는 것이에요.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그러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난 것이라 여러분은 반드시 금생에 이 정법을 통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하고 꼭 그렇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다음 법회는 사월초파일입니다. 앞으로 18일 간이 남아있습니다마는 서로서로 권고해서 사월초파일,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경축일에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더구나 그날은 공휴일로 지정이 되아 있어서 모두 다 참석하시기가 좋을 것입니다.
'가봤자 뭐 앉아서 밥 먹을 데도 없고, 뭐 비빔밥이나 뭐 거지처럼... 그래서 내가 챙피해서 못 간다'
맛있는 음식은 댁에서 잘해서 잡숫고, 절에는 법(法)의 밥을 잡수러 오시는 것입니다.
물질로 된 음식은 이 육체에 영양을 공급을 하는 음식이라면, 이 정법(正法)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입니다.
그날 오셔서 정법 들은 것으로써 배부른 것을 삼으셔야지, 맛있는 대접, 편안하니 앉어서 고급으로 잡숴 영혼과 육체까지 갖다 영양을 공급하려고 하는 생각은 너무 욕심이 지나치신 것입니다.
밥을 못 잡수면 물이라도 한 모금 먹고 가도 그것도 고맙게 생각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하고, 그날은 꼭 참석을 하셔서 우리의 스승이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부처님의 탄생을 마음껏 축복하고 그래가지고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을 가뜩 타 가지고 가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1시간13분44초~1시간27분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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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위세(威勢 위엄·세력·힘 위/형세·권세·기세 세) ; ①위엄(威嚴)이 있거나 맹렬한 기세(氣勢). ②사람을 두렵게 하여 복종하게 하는 힘.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쉬흔 가지의 그러한 증상이 나타난다, 나타날 수가 있다' ;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 - 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삼계(三界)에 대도사(大導師)' ; 삼계도사(三界導師).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스승[師].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의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번역하여 천열(天熱), 천수(天授), 천여(天與).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목건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목련존자와 같은 (성현은) 그러한 신통이 자재한 그러한 성현이지만 외도(外道)의 돌팔매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아가지고 결국은 열반(涅槃)에 드신 것입니다' ;
[참고] 『법구경 - 담마파다』 (전재성 역주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p451~454, 『법구경이야기 2』 (무념·응진 역 | 옛길) p 384~390.
〇목련존자의 과거 업연(業緣) ; 먼 과거 전생에 목련(目連)은 늙은 눈먼 부모를 모시고 나이가 들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고 살고 있었는데, 부모는 그것이 안타까워 성화를 하는 바람에 그는 젊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시집온 여인은 처음 며칠 동안에는 별 불평없이 눈먼 시부모를 잘 모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부모를 보기만 해도 짜증을 내며 같이 살수 없다고 했으나,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모른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외출하여 일을 보러 간 사이에 그녀는 일부러 진흙과 쌀겨와 쌀죽의 찌꺼기를 집안 여기저기에 흩뜨려 놓았다.
이렇게 해 놓고 돌아온 남편에게 눈먼 당신의 부모가 이렇게 해 놓았다고, 자기는 이제 시부모와 더이상 같이 못 산다고 하며 계속 들볶자 그는 아내의 말만 믿고 부모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딴 곳에 사는 친척이 부모님더러 한번 오라고 한다고 말하고는 수레에 태워 숲속에 깊이 들어가서, ‘아버지, 이 고삐 좀 잡고 계세요. 황소가 길을 잘 알고 있어서 가만 놔두어도 잘 갈 겁니다. 여기는 도둑들이 출몰하는 곳이니 저는 내려서 살펴봐야겠습니다.’하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에 들어간 그는 마치 도둑들이 공격을 해오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니까, 부모는 놀라면서 ‘아들아,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너라도 어서 도망쳐라’고 하였다. 아들은 소리를 외치며 도적들처럼 다가와 부모를 죽여 시체를 숲속에 버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악업으로 그는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고도 악행의 과보가 아직 다하지 않아서 100생 동안 온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아죽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 때 그는 미래 세상에 고따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면 자기는 그 부처님 밑에서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많은 공덕 바라밀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목련존자의 태어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고, 결국 외도들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라한을 이룬 성자였기 때문에 중생처럼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적멸(寂滅)을 실현했던 것이다.
이같이 목련존자의 전생과 그에 따른 과보를 말씀하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법구경 137~140)을 읊으시었다.
“죄가 없고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는 자에게, 폭력를 사용하여 해를 끼치면, 참으로 아주 빠르게 다음 10가지 중 하나에 떨어지리라.
①심한 고통을 당함. ②아주 가난해짐. ③몸의 상해(신체적 절단). ④중대한 질병이나 정신이상을 일으킴. ⑤왕의 노여움을 사 모든 재산을 빼앗김. ⑥재산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고소를 당함. ⑦가족이 생명을 잃음. ⑧재산이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됨. ⑨집에 벼락이 내리거나 불에 탐. @그런 뒤 그 어리석은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리.”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42초)
〇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