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스님의 수행 (No.537)—어떠한 경우에도 자기의 본참공안에 몰입해야 | 중국 천목산 고봉(高峰) 스님의 수행 (『선요禪要』 28. 通仰山老和尙疑嗣書)]

 

*고봉(高峰) ; (1238~1295) 송대 말기 원대 초기의 임제종 스님. 법명은 원묘(原妙), 법호는 고봉(高峰), 속성은 서(徐)씨. 강소성(江蘇省) 오강(吳江) 출신. 15세에 부모에게 출가할 것을 간청하여 가화(嘉禾) 밀인사(密印寺)의 법주(法住) 스님에게 귀의하여 은사로 삼고 16세에 삭발하여 17세에 구족계를 받아 18세에는 천태교학을 익히다가 20세에 선문(禪門)으로 공부를 바꾸어 정자사(淨慈寺)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단교묘륜(斷橋妙倫 1201~1261) 선사가 주석하고 있었다.

 

22세에 3년 사한(死限)을 정하고 참선에 들어가 단교묘륜 선사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 약정했던 3년의 기한이 다가왔을 때 태주(台州)의 정(淨) 사형의 권유로 설암조흠(雪巖祖欽 1215~1287) 선사께 가르침을 청해 지도를 받아 수행하였다. 1271년 임안(臨安 : 浙江省 杭州) 용수사(龍鬚寺)에서 어느날 잠에서 깨어 화두를 의심하던 차에 함께 잠자던 도반이 목침을 밀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설암 선사의 법을 이었다.

 

1274년 무강(武康 : 浙江省 湖州) 쌍계봉(雙髻峰)에 주석하였다. 1279년 항주(杭州) 천목산(天目山)으로 가서 서봉(西峰)의 위쪽에 있는 사자암에서 지내다가, 사자암 서편 바위 동굴에다가 작은 토굴을 지어 사관(死關)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입적할 때까지 15년 동안 지냈다.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으며, 수계자는 수만에 이르렀다. 1295년 세수 58, 법랍 43세로 입적하였다.

『고봉대사어록』 상하 2권과 고봉대사어록 上下권 중 법어 · 서신을 수록한 상권에서 발췌한 『선요(禪要)』가 전한다.

 

[참고] 고봉스님의 수행에 대한 법문송담스님(No.201)(『선요禪要』 2. 시중示衆)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9분 21초)

 

[법문] 송담스님(No.537)—1994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537)

 

참선(參禪)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이것이 옳게 하고 있나? 내가 잘못하고 있나?' 항상 그런 의심이 날 수가 있고, 그래서 법문(法門)을 자주 들어야 하고.

실지로 살아 계신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기가 쉽지 아니하면 큰스님네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서 자기 공부해 나가는 데 잘못된 것을 교정해 가면서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수좌(首座)가 몽중(夢中)에 화두가 일여(一如)한 것에 대해서 몹시 궁금하고, 깨달은 뒤에도 몽중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이렇게 몸을 바꿀 때, 이승을 살다가 입태(入胎)하고 또 태중에 주태(住胎)하고 또 태중에서 나올 때에도 매(昧)하지 않으냐? 이게 모두 그러한 것이 몹시 궁금한 모양이고.

또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발원하는 것과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기를 발원한 것이 같은 것이냐? 어떤 것이 나은 것이냐? 그런 것도 궁금하게 생각이 된 모양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참선 하다 보면 영판 여러 가지가 궁금한 생각이 나가지고 경을 떠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뒤져보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하고 또는 요새 무슨 서양철학, 동양철학이다, 모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참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무슨 의심이 나던지—불법에 관해서 의심이 나던지, 참선에 관해서 의심이 나던지 또는 다른 공안에 대해서 의심이 나던지 또 어떤 선지식의 법문을 듣게 되면은 어떤 공안을 거량(擧揚)을 해 가지고 '일르라'고 이렇게 핍박을 당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발심(發心)한 수행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몰입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참공안을 놔버리고 잠깐이라도 다른 것에 한 눈을 팔고, 다른 것을 다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생각을 다른 데로 발산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정진(精進)에 대해서 손해가 막심한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의심이 나더라도 진정으로 그것을 알고 싶으면 책을 통해서 알려고 하지 말고, 누구한테 물어서 알려고 하지 말고, 자기의 본참공안에 박차를 가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은 후일에 자연히 그러한 의심이 얼음 녹듯이 녹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설명을 듣는다 해도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 깨달음에는 아무 보탬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한 분 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을 위해서 중국 천목산에 고봉(高峰) 스님이 어떻게 정진을 했는가, 어떻게 해서 깨달았는가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면 유익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고봉 선사는 16세에 출가를 해 가지고 20세에 참선을 하기 위해서 선방에 나왔습니다.

'3년을, 3년 동안 공부를 해 가지고 만약에 내가 확철대오를 못하면 자살을 하리라' 그래 가지고 3년을 사한(死限)을 해 가지고 단교 화상(斷橋和尙)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화두를 탔는데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어디서 어디로부터 내가 이 세상에 왔으며, 죽으면 어느 곳으로 가느냐?' 그 화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생각이 두 갈래로 갈라져. 그래가지고 암만 분심을 내 가지고 열심히 하려고 해도 생각이 가지런해지지 않고, 마치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처럼 그럭저럭 3년이 그렇게 지내왔다 그말이여.

 

그러자 설암 화상(雪巖和尙)이라고 하는 큰 선지식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그 선지식을 찾아갔어. 가니까 다짜고짜로 주먹으로 대갈통을 얻어맞았어. 그래가지고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딱 잠가 버렸네.

그래가지고 그 이튿날 또 찾아가서 정식으로 '무자(無字)' 화두를 받았어. '무자(無字)' 화두를 받아 가지고 떠억 정진을 해 보니까 어두운 밤중에 등불을 얻은 것 같이 화두가 잘 들리는데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그런데 "매일 길을 가는 거와 같아서 오늘 하루를 올바르게 왔는가? 그것을 점검할 필요가 있듯이 네가 공부를 하룻동안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그것을 점검을 할 필요가 있으니 매일 한 번씩 내 방에 들어오너라" 그런 명령을 받았어.

그래서 매일 문을 열고 떠억 들어가는데, "이 죽은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인고?"

뭐라고 입을 벌릴려고 하기도 전에 주먹으로 대골통을 두드려 패서 쫓겨나.

 

매일 그렇게 지내다, 그렇게 그러한 참 엄청난 특별한 배려로 그렇게 정진을 쭉 하다가,

꿈속에서—맨 처음에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화두를 주신 단교 화상을 친견을 해 가지고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하는 화두를, 그 공안을 단교 스님한테 질문을 받았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깨고 보니 꿈이여.

 

그러니 '무자(無字)' 화두도 어디로 가버렸고,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도 어디로 가버렸고,

'만법귀일 일귀하처'의 의단(疑團)이 들라고 안 해도—원래 화두는 이 화두를 들었다, 저 화두를 갔다 그런 법이 아닌데—'만법귀일 일귀하처'가 저절로 독로(獨露)를 해 가지고 밥을 먹으나, 화장실을 가나 그냥 화두가 일여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었어. 밥 먹을 줄도 잊어버리고, 잠자는 중도 잊어버리고 시간 가는 중을 몰라.

 

그러자 그러한 상태에서, 몽중에서도 꿈을 깨도 그러고, 일체처 일체시에 순일무잡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뭐 이 화두를 들자, 저 화두를...' 일부러 들라고 드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들어져 버렸다.

그래가지고 엿새가 그렇게 지냈는데, 어느 날 삼탑(三塔)—달마(達摩) 스님,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 또 세 조사 스님을 모신 영각에, 그날이 달마 스님의 열반하신 날이라 대중이 전체가 합동으로 그 진영각(眞影閣)에 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

예배를 드리다가 얼굴을 이렇게 떠억 쳐드는데 오조법연 화상의 진영에,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백년삼만육천 아침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다,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한 놈이 원래로 이 놈이로구나'하는 그 게송 한 구절 떡!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버렸어.

 

전날 설암 스님께서 '이 죽은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하는 공안, 확! 뭐 아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그렇게 되었어.

 

그래 가지고 그렇게 깨닫게 된 동기를 전부 다 이 설암 스님께 낱낱이 다 말씀을 드리고, 그동안에 매일 공안에 대해서 단련을 받고, 사람에게 속임을 받지 않게 되었어.

그런데 입을 열라고 하면 마음이 내려앉아 가지고 마치 무슨 빚진 사람처럼 일용 중에 자유를 얻지 못해. 그런 상태로 28세가 되도록 항상 그런 세월을 보냈는데.

 

그 설암 스님과 어디를 여행하면서 "일간호호시(日間浩浩時)에 환작득주마(還作得主麼), 도리어 주를 짓느냐?"

"예. 주인을 짓습니다"

 

"수몽중(睡夢中)에도 작득주마(作得主麼)"

"예. 수몽중에서도 주인을 작득합니다"

 

"그러면 정수착시(正睡着時)에 무몽무상(無夢無想) 무견무문(無見無聞),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보는 바도 없고 들은 바가 없을 때 주인은 어느 곳에 있느냐?"

이렇게 물으시는 데 뭐라고 입을 벌려서 말을 할 수가 없어. 콱! 막혔어.

 

그래 가지고 말을 못하고 있으니까 설암 화상께서 간곡히 부촉을 하시기를,

"오늘날로부터 부처를 배우려고 하고 법을 배우려고 하는 생각도 하지 말고, 옛[古]을 궁구(窮究)하고 이제[今]를 궁구하려고 하는 그런 것도 하지 말고, 다못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잠을 자다가 문득 눈을 뚝 뜨면 번쩍 정신을 차려 가지고 '나의 이 일각 주인공(一覺主人公)이 필경에 어느 곳에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는고' 그렇게 해 나가거라"

 

그 말씀을 듣고 스스로 맹세하기를, '나의 일생을 다 버리고 일생의 모든 것을 다 버려 버리고, 완전히 바보 천치가 되어서 오직 이 일착자(一着子), 일각 주인공이 필경에 어느 곳에 안신입명을 하는가? 이것을 밝히리라'하고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지내기를 5년 간을 지냈어. 5년 간을 하루와 같이 그렇게 지냈다 그말이여.

그러다가 어느 날 어느 암자에서 자는데, 문득 밤중에 눈이 떠져서 떠억 일어나서 그 화두를 들고 떠억 앉았는데, 옆에 같이 자던 도반이 목침을 갖다가 툭 떨궈 가지고 머리빡이 땅에 툭 떨어졌다 말이여. 그 소리에 정말 타파의단(打破疑團)을 했어.

 

「필경에 일각 주인공이 어느 곳에 안신입명 하느냐?」의 공안이 확, 공안을 완전히 타파했다 그말이여.

 

그때의 경계가 어떠냐 하면은 마치 그물에 갇혀 있다가 뛰쳐나온 것처럼, 전날 의심하던 불조(佛祖)의 공안, 고금의 차별인연(差別因緣)에 대해서 마치 사주(泗州)에 대성(大聖)을 친견한 거와 같고, 먼 객지로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온 거와 같아서 원래로 다못 이 옛 때의 사람이더라 그말이여.

 

그동안에 지내온 옛 때의 행리처(行履處)를 고치지 아니하고 그냥 그대로 안반정국(安邦定國)이여. 나라를 편안히 하고 나라를 평정해서 천하가 태평해.

한 생각 함이 없이, 일념무위(一念無爲)여. 한 생각 무위(無爲)로 시방(十方)을 좌단(坐斷)해. 시방세계를 앉아서 끊는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천목산에 고봉 스님은 설암 화상의 법(法)을 잇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야 하느냐? 깨달은 뒤에도 몽중에 화두가 일여해야만 입태, 출태에 매(昧)하지 않으냐? 극락세계와 도솔천내원궁이 같은 것이냐?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도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서 성불 할 수가 있느냐?'

이러한 의심들이 고봉 스님처럼 이렇게 여법하게 정진함으로써 그런 의심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에 무자(無字)를 가지고 공부를 하시던 분,

'이뭣고?'를 이렇게 산승이 권장한다고 해서 이미 다른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하신 분은 고대로 무자(無字)나 또는 마삼근(麻三斤)이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자기의 본참공안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기를 바랍니다.(37분50초~57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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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찰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주태(住胎) ; 모태(母胎)에 머물러 있는 것.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조사어록(祖師語錄) ;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거량(擧揚 들 거/나타낼•밝힐 량)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단교 묘륜(斷橋妙倫) ; (1201~1261) 남송(南宋) 임제종 양기파(楊岐派) 스님. 절강성(浙江省) 황암현(黃巖縣) 송산(松山) 출신. 속성은 서(徐)씨. 18세에 스님이 된 뒤 처음에는 마삼근(麻三斤) 화두를 들었고, 그 뒤 설두산(雪竇山)으로 가서 무준 사범(無準師範) 문하에서 공부하고 그의 법을 이었다.
1241년 대주(臺州) 기원사(祇園寺)에 주석하다가 다음에는 서암의 정토선사(淨土禪寺) 천태산 국청사(國淸寺) 임안 정자사(淨慈寺) 등 여러 절에 두루 주석하였다. 1261년, 세수 61세로 입적하였다. 시자 문보(文寶) 선정(善靖) 등이 『단교화상어록』 2권을 엮었다.
*설암 조흠(雪巖祖欽) ; (1215~1287) 임제종 양기파(楊岐派) 가운데 파암파(破庵派) 스님. 절강성 무주(婺州) 출신으로 5세 때에 출가하여 16세 때 삭발하고 18세부터 유행(遊行)하였다. 무준 사범(無準師範)의 법을 이었다. 원(元) 세조(世祖) 지원(至元) 24년(1287) 73세에 입적하였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달마대사(達摩大師) : [범]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오조 법연(五祖法演) : (? – 1104) 속성은 등(鄧)씨。사천성 면주부(綿州府) 파서(巴西)에서 났다。35세에 출가하여, 처음엔 강당에서 <백법(百法)> <유식론(唯識論)> 같은 것을 공부하였다.
뒤에 백운 수단(白雲守端)선사의 회상에 가서 있을 때, 어떤 스님이 남전(南泉) 화상의 「마니주 화두」에 대하여 묻는데, 백운선사가 크게 꾸짖는 것을 듣고 곧 깨치어 온 몸에 땀을 흘리면서 아래와 같은 게송을 지어 바쳤다.

『저 산 밑에 한뙈기 묵은 밭, 왜 즐기노 노인에게 물었더니, 몇 번 팔고 또 산건, 대숲과 소나무에 맑은 바람 온다고(山前一片閑田地 叉手叮嚀問祖翁 幾度賣來還自買 爲隣松竹引淸風)』
이에 백운선사의 인가를 받고, 그의 법을 이어서 서주(舒州) 사면산(四面山)에서 출세하였다.

다시 백운산, 그 다음에는 태평산(太平山), 마지막으로 기주(蘄州) 오조산 동선사(五祖山東禪寺)에서 크게 교화하여 많은 제자가 있었다。그 가운데서도 불안 청원(佛眼清遠) • 태평 혜근(太平慧懃) • 원오 극근(圜悟克勤)은 오조 문하의 세 부처라고 하였다。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3년에 80여 세로써 입적하였다.

마니주(摩尼珠) 화두란, 사조(師祖)라 하는 이가 영가(永嘉)의 <증도가(證道歌)>에 있는 「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裡親收得」의 귀절을 끌어다가 남전에게 묻기를 『마니주를 세상에서 모르는데, 여래장 속에서 찾아 냈구나 하였으니, 어떤 것이 여래장이오니까?』
남전이 대답하기를 『내가 너하고 같이 다니는 것이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은?』
『그도 또한 그것이지』

『마니주는 어떤 것이오니까?』
『가거라! 네가 내 말을 모른다』하는 데서 사조가 깨쳤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일각 주인공(一覺主人公) ; '한결같이 깨닫는 주인공'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안신입명(安身立命) ; 몸을 편안히 하고 명(命)을 세우다. 몸을 편안히 하고 목숨을 보존하다.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 생사를 벗어나 심신(心身)이 편안해졌음을 표현한 말이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사주(泗州)에 대성(大聖)' ; 사주(泗州)에있는 보광사(普光寺) 승가대사(僧伽大士)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분의 신통력을 보아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라고 한다. 회수(淮水)에서 신통력으로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좋은 마음으로 시주하게 하여 그들의 죄를 감해 주고 옥살이를 면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원묘 지음 |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170. 각주(脚註) 참고.

*행리처(行履處 가다·행하다 행/밟다·행하다 리/곳 처) ; 행리는 직접 몸으로 실천, 실행하고 살아온 과정을 의미하는 말. 곧 행주좌와 어묵동정 등의 일상 생활, 일상의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를 말한다.

*시방좌단(十方坐斷) ; '시방세계를 앉아서 끊는다' 시방 전체에 눌러앉는다는 말. 시방(十方)은 여기서는 모든 속박 · 집착을 의미한다. 모든 속박 · 집착을 끊어버리고 활달한 경지에 이르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