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분별경계2017. 12. 19. 08:33
*분별계(分別界) ; 분별 경계(分別境界).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 희로애락 · 빈부귀천 · 시비이해 · 삼독오욕 · 부모형제 · 춘하추동 ·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 · 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4분 58초)

 

[법문]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용336)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 투득(透得) 버리면,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관(生死關) 뚫어 버리면 비로소 산하대지(山河大地) 너그러운 것을 깨닫게 되더라.
 
공안을 타파하지 못하고 우리의 생사관을 타파하지를 못하면  우주법계와 산하대지가 이렇게 넓건마는  곳이 없습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겠습니까.
 
마치 파리란 놈을, 방안에서 문을 닫고 방바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 천장에  붙고, 천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은 동쪽 벽에  붙고, 동쪽 벽에 붙은 파리를 내키면은 서쪽에  붙고, 어디가 붙든지 (자기)가 사방과 상하에 붙지, 지가 붙지 않고 어떻게  것이냐, 어디를  것이냐 그말이여.
 
공안을 타파하지 못하고, 생사관을 투득을 하지 못하면  곳이 어디입니까?
죽어서 지옥에 가고, 축생이 되고, 아귀 나찰이 되고, 중음신(中陰身) 되어가지고 허공계를 헤매면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영원토록 육도윤회(六途輪廻) 벗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두를 열심히 참구(參究) 해서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고 보면 산하대지가 정말 걸림이 없어.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 인간의 분별계(分別界) 떨어지지 안혀.
 
인간의 분별계란  무엇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五欲樂)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인간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냐. 푸른 , 푸른  무엇에 걸릴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40분36초~45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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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65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13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 관문이 된다.
*투득하다(透得-- 통할 /얻을 ) ; (사람이 무엇을)막힘이 없이 환하게 깨닫다.
*화두(공안) 타파(打破) ;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
*생사관(生死關) ; 생사의 관문.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내키다 ; (사람이 무엇을)공간을 넓히려고 바깥쪽으로 물리어 내다.
*중음신(中陰身) ;  () 끝내고 다음 ()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樂, 五欲, 五慾)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Posted by 닥공닥정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①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②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③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14분27초)

 

[법문]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용336)
 
 참선(參禪)을 하려면 그래서 대신심(大信心) 있어야 . 대신심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대분심(大憤心) 있어야 하고, 대의심(大疑心)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지를 삼요(三要) 그러는데, 대신심이란 것이 무엇이냐?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올리고 모다 그런 것도 신심의  표현이라고  수가 있겠지만,  최상승법(最上乘法) 있어서 대신(大信)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부처다하고 믿는 거여.
 
 자신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
 생각 () 가지고 내가 부처인 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지, 본래 내가 원만(圓滿)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깨달으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견성성불(見性成佛) 수가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이것이 바로 대신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생각 () 가지고 중생노릇을 하고 있지만  실지 내용에 있어서는 부처님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성내고 괴로워하고 하는 이러한 작용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뚱이 속에 살아 있는 부처님의 작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마음도 내고, 탐심도 내고, 진심(瞋心) 내고 그렇지만,  자체는 다른 데에서 그러한 작용이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님한테서 나오는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작용을 일으킬  있는 사람이면 자기의 몸뚱이 속에 살아계신 부처님이 분명히 계신 증거이기 때문에 자기도 깨달을  있다’고 깊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리 참선을 해봤자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깨달을  있다’고 믿어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 해보지도 않고 나는 깨달을 수가 없다’ ‘나는 중생이기 때문에 나는 지옥밖에는  간다 자꾸 스스로를 자포자기하고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그런  신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신심이 있어도 분심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공부가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분심은 바로 용기인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분심을 내야 공부를 계속해서  나갈 수가 있고 깨달음에 나아갈 수가 있지, 분심이 죽어버리고 용기가 없으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모든 조사, 선지식들은 진즉  문제를 해결을 해서 생사해탈을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육도(六途) 윤회(輪廻)하고 있는가
그러한 생각으로 분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또는 재산 모다 그런 것에 관해서는 시기를 내고 질투를 내고, 그래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싸우면서, 심지어는 동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형제 친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도 싸우면서,
어째서 영원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기 위한  깨달음을 위해서는  그러한 분심을  수가 없느냐?
 
정말  문제에 관해서는 부모한테도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분심을 내고 도업(道業) 성취하는데 있어서의  욕심은 아무한테도 양보해서는 아니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른 중생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양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욕심, ‘ 나는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는가?’  공부에 대한 분심은 천하 없이도 양보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밤을 패서 공부하고,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은 앉아서 하더라도 자기는 앉을 시간이 없으면은 서서 하고, 차를 타면서 하고, 방부(房付) 들이고금년에도 88명이나 방부를 들이고 보살님네들이 정진하고 계십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방(禪房) 와서 공부는 못하신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수가 있겠느냐! ’ 집에서 살림하고, 빨래하고, 소지하고,  짓고 또는 직장에서 이를 갈아붙이고  생각  생각을 무섭게 돌이켜 가며 다잡이를  간다면 그분이 먼저 대도를 성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심을 가지고,  다음에 대분심을 가져야 한다.
 
 
 번째 가서  의심(疑心) 가져야 한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을 통해서 화두를 일러 주셨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뭣고?’  가지를 말씀을 하셨는데, 이미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하셔야 하고,
 
조실 스님께 이뭣고?’ 타셨거나 또는 산승으로부터 탔거나, 오늘 화두를 타시려는 분은 이뭣고?’
이뭣고?’  말은 한문으로는 시심마(是甚)’ 그러는데, 우리말로는 번역하면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거든.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말로는 이뭣고?’ 그러거든.
, , , , , , 하면 일곱 자인데 , , 하면  자란 말이여. 그래서 간단하면서도 의심이  .
그래서 옛날부터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경상도 말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이냐?’한 거, ‘이것’을 무엇을 지칭해서 이것이라고 하냐 하면은 『지금 말하는 바로 이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계시는데 무엇이 듣고 있느냐?’ 그말이거든. 『듣는 그놈』
 
그놈이 바로 욕도  줄도 알고, 칭찬할 줄도 알고  정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할 줄도 알고, 그놈이   삐뚤어지면은 찰나간(刹那間) 악마가 되기도 하고, 그놈이  생각 ! 돌이켜서 착하게 쓰면은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도 있고,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  수도 있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수도 있고,
그놈이 나찰(羅刹) 귀신도  수도 있고, 독사도  수도 있고, 아귀(餓鬼)  수도 있고, 지옥찌꺼기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떻게 해서 그놈이 그렇게 찰나간에 천당에 올라갔다가, 찰나간에 지옥에 떨어졌다가, 찰나간에 독사 배때기로 들어갔다가, 찰나간에 돼지가 되었다가, 찰나간에 사람이 되었다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신기하고 묘하기가 어디다가 비유할 데가 없어. 그래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이뭣고?’
 
의심을   라야   수가 없어!
 
의심을 할려고 해도 자꾸 화두가  잊어버린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분은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고, 분심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으로 신심이 돈독하고 분심이 있다면 의심을  할라야   수가 없어! 일부러 의심을  하고  생각을  해볼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을 감으나 뜨나, 앉으나 서나, 그냥 제절로, 자동으로 그냥 이뭣고?’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하고 억울한 소리를 해도 이뭣고?’
옛날부터서  내온  습기(習氣) 있어서 잠깐 부애가   하다가도 냉큼 이뭣고?’ ! 챙겨 버리면 이뭣고?’거든.
언제 속상할 겨를도 없고, 언제 억울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고, 미워할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 하나 ! 챙길  알면 그냥  몸뚱이 요대로 바로 천사가 되고 싶으면 천사가 되고, 관세음보살이 되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이 되고,
자기가 일부러 독사가 되고 싶으면 독사도 되고, 호랑이가 되고 싶으면 호랑이가 되고, 지옥에도 한번 가보고 싶으면   수가 있다 그말이여.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다가도 !  생각 돌이켜 버리면 금방 천상에 올라간다 그말이여.
 
죽어서 지옥에 가고, 죽어서 천당에 가는 그렇게도 믿어야 하고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죽어서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찰나간에 생사 문제』가  소중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몸뚱이 살아서 이렇게  쉬고,  먹고,  입고  때에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화두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를 해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도록 노력한 사람은 죽어서 어디에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인연 따라서 천당에 가게 되면 가는 거고, 인연 따라서 지옥에 가게 되면 가는 것이지,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도 없고, 참으로 죽어서 지옥에 가기 싫고, 축생에 가기 싫거든 지금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지금  생각 등한히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이지, 지옥에  사람이 미리부터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지옥에도 가고, 천당에도 가고, 극락에도 가고, 인도환생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를 믿어도 그렇게 믿어야 옳게 믿는 것이고, 그렇게 믿어야 최상승 학자의 믿음인 것입니다.(26분7~403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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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7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 19)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 만나 6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  갠지스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 2 15. 입적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다잡이 ;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비로자나 부처님(毘盧遮那佛)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화두(공안)를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ㅎ/화두 공안2017. 12. 18. 19:19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話頭 말씀 /어조사 )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활구(活句) 참선이다.
 

(10분)

 

[법문]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용336)
 
오늘 화두를 새로 타고  불명(佛名) 타고, () 받으려고 하는 분들은 특별히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을 들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화두(話頭), 화두는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법인 것입니다.
 법에 의해서 관청의 모든 사무를 보고  백성을 다스리고 하는 근본법을 갖다가 관공(官公) 기관의 ()이다, 법안(法案)이다 이래서 공안이라 그렇게도 말하고  꼬집어서 화두라고도 하고 그러는데.
 
 화두라고 하는 것은 이론으로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속의 모든 문제, 모든 수수께끼나 문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그것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는 종합하기도 하고  비교하기도 하고 또는 적용해 보기도  가지고, 그래 가지고 어떠한 ! 이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얻어내는 것인데, 참선(參禪)하는 데에 과제인  화두는 그러한 이론이 동원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서 알려고 하는 그러한 방법은 올바른 참선이 아니고 올바른 수행이 아니고 올바른 참구(參究) 아닌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공안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불교의 교리나 어떤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리 따져서 아하 그렇구나!’ 이렇게 아는 것은 그것은 의리선(義理禪)이라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이지 그것이 바른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무리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해도 그것은 마침내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 것이요, 분별심인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과 분별은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힐 뿐이지, 깨달음에 나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 쳐부수고, 중생심을 돌이켜서 참나 돌아가는 것이고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지, 무슨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근자에 일본식 참선,  의리선이 많이 한국에 흘러들어 와 가지고  많은 지식인들이 그런 일본 참선에 물들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경향이 있습니다.
공안을 갖다가 의리로 따져 가지고  , 스무 ,   내지 오백 ,   이렇게 해서  공안을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통과를 하면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나아갔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의리선(義理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보고   말을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그러한 의리선을 오래전부터서  오고 지금도 역시  가고 있어서 오백 개를 통과를 하면은 법사(法師)로서 참선을 지도할 수가 있고,  개 이상을 통과를 하면 조실이  자격이 있다 이런 말도 내가 들었습니다마는.
 
우리 한국의 참선은 그러한 의리선이 아닙니다.
깨달을 때까지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화두를 갖다가 타파(打破)함으로써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일시에  터지는, 그래 가지고 자성(自性) 깨닫고 불조(佛祖) 면목(面目) 깨닫는 이러한 참선인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똑같은 중국으로부터서  받아들인 참선인데 그렇게 의리선으로 그렇게 나아가냐?
내가 생각해 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섬사람들이 되어서 생각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고, 느긋하지를 못해서 빨리 무슨 마음의 얻은 바가 있고, 느끼는 바가 있고, 알아지는 것이 있어야지,
한국처럼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내지 이십 , 삼십  내지 일생 마지막 숨질 때까지라도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잡드리해 나가는 그렇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리선이 발달이 되지 아니했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안을  , 이백 , 수백 개를 통과한들 그것이  깨달음 아니라면 그것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세속의 어떤 학문은 그만큼 열심히 해서 석사도 되고 박사가 되고 한다면 그것으로써 자기의 일생 동안 보람을 거기서 찾을 수도 있고, 그걸 가지고 학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의  먹고사는 방책도 되겠지만,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인데 그것을  의리(義理) 따져서 안들 그것 했다고 해서 어디 취직을  가지고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 몇백  통과했다고 해서 생사해탈하는 것도 아니요, 그거 했다고 해서 불조의 혜명(慧命)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지옥에  봤자 그것   알았다고 해서 염라대왕이 알아  바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애써서 참선을  해가지고 아무 소용이 없다면 그거 무얼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교를 만났고, 불교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 믿고 실천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대관절 무엇이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이 끊어진다 말이여.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고, 알아 들어갈 것이 없어.  갈수록  막혀서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가는 것입니다.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이놈이 무엇인고?’  갈수록  수가 없고,  막혀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자꾸  가면 무엇이 알아지는 것이 있고, ‘아하 그렇구나! 그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지면 중생심(衆生心)이여.
알아지는 참선은 그것은 분별만 조장을 시키고, 사량분별이라 하는 것은 더욱 생사심(生死心) 갖다가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거여. 불타는데 기름을 찌틀어 가지고  불이 훨훨 타게 만드는 것이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여.
 
 의심이 독로해서  막혀야 거기에서 분별이 끊어지고, 사량이 끊어지고, 생사심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여.
끊어짐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 사량분별을 점점 치성하게  가지고 참선한다고 앉아서 계속해서 분별로 따지고 앉아 있으면 언제 사량분별이 끊어질 것이냐 그말이여.
 
길을 막고 물어봐도 확연한 것이고,   먹은 어린애 보고 물어봐도 그렇게  갔고 깨달음에 나아갈 것인가?(16분5초~26분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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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참선(參禪) ; 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화두(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더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차고,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 삼세제불(三世諸佛), () 역대(歷代) 조사를 말함.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 의미하는 .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치성(熾盛 성할 /성할 )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Posted by 닥공닥정
ㅈ/제도2017. 12. 18. 18:08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함[].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법문]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용336)

부처님께서 중생 교화를 하시기 위해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서 대자비심을 일으키셔 가지고 사바세계(娑婆世界) 탄생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마는 중생을 어떻게 제도(濟度)합니까?
중생을 제도한다니까 무슨 돈을 많이 주어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겠습니까? 무엇을 많이 주어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시겠습니까?

순전히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신다 하는 것은  생각,  생각 돌이키고,  생각 다스려서 일념(一念) 속에 육도윤회를 해탈(解脫)하게 하는 그러한 의미의 중생 제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복을 빌고, 부처님을 믿는다고 삼십 , 사십 년, 일생을 절에 다니지만 유루복(有漏福)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올리고 모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처님의 참뜻을, 부처님이 우리를 제도하시려는 참뜻을 이해를 못하고 유루복을 빌기 위해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물론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참회(懺悔)하고, 불공(佛供) 드리면 소원을 이루지 아니한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그러한 것은  불법 옳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마음 다스리는 ,  생각 돌이켜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법』을 우리는 들어야 하고 그것을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13분40초~16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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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해탈(解脫) :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해탈이라고도   있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 51초)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깨달음 ; 각(覺).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ㅅ/삼재2017. 12. 18. 17:40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3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용336)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요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한데, 돌과 돌이 부딪치면 불이 번쩍 나는데,  석화(石火)같이 빠른 광음(光陰) 세월이 그렇게 달아나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데,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홍안(紅顔), 청소년의  불그스레한  얼굴이 모두가  허연 서릿발 같은 흰머리가 되고 말았구나.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 인간의   동안 꾸는 꿈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하루살이의 일생사와 같구나.
 
인간이 태어나서 빨리 죽은 사람은 태중에서 죽기도 하고, 출산하다 죽기도 하고, 10 이내에 죽기도 하고, 오래  사람은 구십 , 백  사는 사람도 더러는 있지마는,
 
그저  년을 산다고  봤자 그동안에 잠자는 시간 빼고, 앓는 시간 빼고, 근심 고통 고민하는 시간 빼고 하면 정말 기쁘게 사는, 보람 있게 사는 시간은 불과 얼마가 되지를 않는,
꿈도 길몽이 아니라 기쁜 꿈이 아니라 정말 악몽에 시달리는 그러한 하루살이와 같은 일생에 지나지 못합니다.
 
엊그제 내가 소년 시절로 불그스레한 얼굴을 가지고 그렇게 생기발랄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 육십을 넘어서 흰머리가 허옇게 나게 되는 것입니다. 너나   없이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태풍과 폭우로 인해서 전국 방방곡곡이 모다  수재(水災)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오륙백   아까운 생명을 잃고, 많은 수십  되는 재산을 손실을 당했습니다.
 
 가운데에 오신  가운데에도 그러한  가족이나 일가친척 또는 친지 가운데에 그러한 재난을 당하신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그런 재난에도 불구하시고 이렇게  법회에 참석을 해서  법당에서 법문을 듣게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비록 우리는 그런  손실을 입지 않고 생명을 부지해 가지고  자리에 참석을 해서 ! 감사할 일이나  비참한 그러한 재난을 당한 사람을 생각을 하면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런지 가슴이 아플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재난이라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화재로 일어난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화두 법문,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마는, 비록 녹음을 통해서 들었으나 상태가 대단히 좋아서 그렇게 생존시에 대사자후(大獅子吼) 하신  육성을 마치 살아계셔서 설하신 것처럼 우리는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거기에 너무  감동적인 설법, 그리고 고구정녕(苦口叮嚀) 설법이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겠습니다마는, 오늘 8 일요법회는 새로 화두(話頭)를 타실  그리고 불명(佛名) 받으실   재가오계(在家五戒) 받으실 분들이 많이 신청을 하셔서 아울러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에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조용합니다.  내년에 이맘때 되면은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나가고 모다 댐이라든지 그런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건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상처를  아물게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태풍과 폭풍, 폭우 모다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는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생각으로 인해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 찰나간(刹那間) 윤회(輪廻) 하면서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처음~13분3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송담스님(No.258) - 1985년(을축년) 신수기도 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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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
*석화(石火) ; ①돌과 돌이 부딪치거나, 돌과 쇠가 맞부딪칠  번쩍하고 일어나는 . ②몹시 빠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
*서릿발 ; 겨울철에 땅속의 수분이 얼어 성에처럼 되어 기둥 모양으로 뻗어 있는 . 또는 그로 말미암아 지면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수재(水災) ; 홍수로 입은 재해(災害).
*팔풍(八風) : 팔경(八境). 팔풍경계(八風境界).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몽산법어 p155, 용화선원刊>
--이쇠(利衰 이로울 /약할 )  뜻에 맞고()  뜻에 어기는 ()
--예훼( 기릴 /비방할 )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
--칭기(稱譏 일컬을 /나무랄 ) 면전에서 찬미하는 (), 면전에서 비방하는 ()
--고락(苦樂 괴로울 /즐거울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
[참고] 팔풍=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세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 칭찬과 비난, 고통과 행복<칠각지 p57,고요한소리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역경계와 순경계이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로서 전혀 구제받을  없다 . 고통이 끊임없으므로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아귀(餓鬼) ; 육도(六道,六途)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 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과보로 사후(死後)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〇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 아니다 ; 비교가 되지 아니할 정도로 높거나 심하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광음2017. 12. 18. 17:10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4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용336)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요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한데, 돌과 돌이 부딪치면 불이 번쩍 나는데,  석화(石火)같이 빠른 광음(光陰)이, 세월이 그렇게 달아나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데,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홍안(紅顔), 청소년의  불그스레한  얼굴이 모두가  허연 서릿발 같은 흰머리가 되고 말았구나.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 인간의   동안 꾸는 꿈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하루살이의 일생사와 같구나.
 
인간이 태어나서 빨리 죽은 사람은 태중에서 죽기도 하고, 출산하다 죽기도 하고, 10 이내에 죽기도 하고, 오래  사람은 구십 , 백  사는 사람도 더러는 있지마는,
 
그저  년을 산다고  봤자 그동안에 잠자는 시간 빼고, 앓는 시간 빼고, 근심 고통 고민하는 시간 빼고 하면 정말 기쁘게 사는, 보람 있게 사는 시간은 불과 얼마가 되지를 않는,
꿈도 길몽이 아니라 기쁜 꿈이 아니라 정말 악몽에 시달리는 그러한 하루살이와 같은 일생에 지나지 못합니다.
 
엊그제 내가 소년 시절로 불그스레한 얼굴을 가지고 그렇게 생기발랄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 육십을 넘어서 흰머리가 허옇게 나게 되는 것입니다. 너나   없이  마찬가지입니다.(처음~4분2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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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
*석화(石火) ; ①돌과 돌이 부딪치거나, 돌과 쇠가 맞부딪칠  번쩍하고 일어나는 . ②몹시 빠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서릿발 ; 겨울철에 땅속의 수분이 얼어 성에처럼 되어 기둥 모양으로 뻗어 있는 . 또는 그로 말미암아 지면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