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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24 분부(No.445)—비로자나불의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지금! 언제나 지금! 용맹정진 | 견성성불은 ‘일념단속’하는 속에 있는 것.
  2. 2020.11.17 법보시(세등선원No.39)—스님과 신도가 여러 생을 지내는 동안 서로 교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게끔 공양을 해 주고 있다 | 무주상보시 | 무슨 핑계 안돼!
  3. 2020.10.16 발심(세등24)—불보살은 중생의 생사해탈을 위해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신다 | 발심을 하면 불보살 ·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4. 2020.10.05 복혜구족(No.178)—부처님은 가장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 | 우리는 부처님 제자로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해야.
  5. 2020.10.02 불방일(No.178)—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다.
  6. 2020.09.14 법문(세등37)—법문이라 하는 것이 원래 설(說)할 것이 없는 것이다 | 若以色見我~不能見如來 | (게송)雲開空自濶~ | 不說一字 | (게송)但知聲色本非眞~.
  7. 2020.05.22 딴생각[別念] (No.445)—타성일편이 되면 악업(惡業)에 안 끌려간다 | 구경(究竟)의 깨달음 | 팔만사천 마구니 | 참선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이 중요.
  8. 2020.05.18 포구발심(No.445)—진짜 화두 | '이뭣고?'는 가장 최초의 화두, 가장 근원적인 화두 | 화두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렵다.
  9. 2020.05.17 본분(No.445)—(게송)花笑山前洩天機~ | 본분(本分)과 신훈(新熏) | 운문 선사의 방(棒) | 부처님의 자비, '생사 없는 도리'를 일러주기 위해서 오신 것.
  10. 2020.05.02 밖에서 찾지 말라(복전암No.22)—마조과 혜해, 自家寶藏 | 여래장이 나가서 전개된 것이 우주법계, 법계를 거두면 바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ㅂ/분부(分付)2020. 11. 24. 12:43

분부(No.445)—(게송)似水如雲一夢身 不知此外更何親 箇中不許容他物 分付黃梅路上人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견성성불은 ‘일념단속’하는 속에 있는 것.

 

*분부(分付 나누다·나누어 주다 분/주다·맡기다·부탁하다 부) ; ①건네주다 · 넘겨주다. 전수(傳授) · 부촉(付囑) · 부여(付與) 등과 같은 말이다. 주로 '법을 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②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시키거나 나누어[分] 줌[付].

③(...에/에게 ...을) (...에/에게 -고) (...에/에게 -도록)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이나 지시, 또는 당부(當付).

 

(16분 21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리요

나무~아미타불~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라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이여. 물과 같고 구름과 같은 이 꿈속의 몸뚱이여.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라. 이 밖에 다시 무엇을 친근(親近)히 할 것인가 아지 못하겠더라.

 

이 몸뚱이는 꿈속에 몸뚱이거든. 실다운 것이 아니여. 잠시 꿈속에서 내가 임금이 되기도 하고, 꿈속에 내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꿈 깨면 임금도 간 곳이 없고 부자도 간 곳이 없듯이. 현실적으로 우리 몸뚱이 받아 가지고 있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하는 이 몸뚱이는 절대로 실다운 것이 아니요 꿈속에 몸뚱이인데, 뭣과 같으냐 하면은 물과 같애.

 

물이라 하는 것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곳에 따라서 모난 그릇에다 담으면은 물이 모난 모양으로 되고,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이 둥그렇게 담겨지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은 차츰차츰 채워가지고 다 차면 넘어가고, 때로는 폭포수가 되었다, 때로는 강물이 되었다,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가면은 짠물이 되었다가.

또 안개가 되어서 피어 올라가고 구름이 되었다가 찬 기운을 만나면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고, 우박이 되기도 하고, 더우면 녹아서 물이 되었다가, 때와 장소와 기온에 따라서 액체가 고체가 되고 고체가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 또 기체가 되었다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도 지은 업(業)에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또 지옥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되 남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여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잘생긴 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밥맛 떨어지게 태어나기도 하고.

아, 이러니 우리 이 몸뚱이라 하는 것이 업에 따라서 천만 가지의 모양으로 받아난다 그말이여.

 

또 구름과 같애. 구름과 같애 가지고 때로는 흰구름, 먹구름, 큰 구름 덩어리, 작은 구름 덩어리, 구름도 소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말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바람 따라서 동쪽으로 날아갔다 서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도 금방 소같이 생긴 것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변형되어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저 산에서 이 산으로, 산에서 들로 들에서 바다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권서자유(捲舒自由)여. 뭉쳤다 흩어졌다 달아났다 모였다 이 몸뚱이가 꼭 그와 같애.

 

빈부귀천, 흥망성쇠 속에서 가지각색으로 놀아나거든.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인데 그렇게 살아가. 때로는 건강하다가 때로는 병들었다가 생로병사 흥망성쇠.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무정(無情)한 물과 같이, 무심(無心)한 구름과 같이 인연 따라서, 때 따라서, 곳 따라서 그렇게 돌아치는 이 몸뚱이 말고 다시 무엇을 더 가까이 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그놈은 누가 그놈을 구속할 수도 없고, 이 몸뚱이는 구속을 해서 두드려 팰 수도 있고 감옥에다 가둘 수도 있고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놈은 죽일 수도 없고, 묶어 맬 수도 없고, 가둘 수도 없고, 아무도 어찌 할 수가 없어. ‘그놈’을 누가 어떻게 가두며 ‘그놈’을 어떻게 죽이며 ‘그놈’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여.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여, 이 낱 가운데에 다른 물건을 여기서 용납할 수가 없더라. 아무도 이것을 어찌해 볼 수가 없어.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여. 황매산(黃梅山)에서 오조(五祖) 스님이 육조(六祖) 스님한테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이 소식을 분부(分付)를 하셨더라 이거거든.

오조 스님이 육조 스님한테 분부한 것이 우리도 부처님으로부터 구원겁(久遠劫) 전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부터서 분부를 받은 것입니다. 그 분부를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갈 뿐이지 우리는 분명히 그 분부를 받았어.

 

우리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 있고 무량 중생을 제도해야 할 대사명(大使命)을 분부 받은 것입니다.

마치 국민학교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분명히 숙제를 받어 가지고 왔지만 노는데 탐착해 가지고 숙제를 다 잊어버려. 그래 가지고 놀다가 해가 저물어 버리고 집에 와서는 배고프니까 밥 먹고, 곤(困)한 데에 밥을 먹어 놨으니 졸음이 오니까 초저녁부터 자 버렸다 그말이여. 그 이튿날 늦잠을 자 가지고 밥도 못 먹고 학교로 갔는데 숙제를 안 해가지고 갔거든.

 

우리도 오욕락(五欲樂)에 탐착해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중생(衆生)의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윤회(輪廻)를 하는 동안에 보고 듣는 것이 오욕락이거든.

재산 모으는 것, 남녀 간에 색(色)을 즐기는 것, 또 맛있는 거 먹는 거, 또 명예 권리를 하는 거, 다 그런 거 하면 재미가 있거든. 그러다가 편안하게 잠자고. 이러한 것에 길들여 놓으면 좀해 그놈을 벗어날 수가 없어.

 

그놈이 어떻게 무량겁(無量劫)을 길을 들여 놨던지 그것이 아주 본능(本能)으로 굳어 버렸어.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는 아주 본능으로 굳어 가지고, 인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버렸다.

불법(佛法)을 듣기 전에는 ‘그것이 뭐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지,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렇게 살고 있지만,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불법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는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정말 내가 나를 깨달라야겠다’ ‘정말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겠다’ 참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늦다고 생각할 때가 이른 때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절대로 늦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 놓쳐버리면 무량겁을 흘러간 뒤에 언제 다시 또 우리가 불법을 만날지, 발심(發心)을 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설사 지금 말세(末世)가 되었다 해도 지금 우리가 불법을 만난 것은 너무도 다행(多幸)한 일이고 경행(慶幸)한 일이어서 조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60세가 넘고 70세가 넘었어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몸뚱이는 젊다고 오래 살고, 늙었다고 빨리 죽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죽을런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이리 생각을 하시고. ‘앞으로 인자 여름철이 되면은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말 열심히 하리라’ 그 생각도 틀린 거여.

 

지금 이 찰나(刹那)부터 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하거든. 1초도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여. 다른 것은 다 미뤄도 이것은 1초 뒤로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이거든』 지금.

지금 바로 탁! ‘이뭣고?’ 챙긴 것이 그것이 공부고, 그것이 가행정진(加行精進)이고 그것이 용맹정진(勇猛精進)이여. ‘앞으로 내가 3년 결사(結社)에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다 너저분한 생각이야.

 

지금이거든. 지금!

여기 앉은 이 자리가 ‘지금’이고, 나갈 때는 나갈 때가 ‘지금’이고, 차 탈 때는 차 탈 때가 ‘지금’이고, 밥 먹을 때는 밥 먹을 때가 ‘지금’이고, 똥 눌 때는 똥 눌 때가 ‘지금’이고 『언제나 그때그때가 지금이거든』 이렇게 공부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그게 참 수행인이거든.

 

물과 같이 구름과 같이 이렇게 무정하게 정처없이 흘러가고 흘러가는데, 그 무상(無常)한 속에서 ‘무상하지 않는 것’을 챙기는 거거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은 ‘일념단속(一念團束)’한 속에 있는 것이고,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 것도 일념단속 안 한 데에서 삼악도에 떨어진 것이거든.

 

일념(一念)이야말로, 일념이야말로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내일이면 입하(入夏)가 되어서, ‘아직 봄이 한창이다’ 생각을 했는데 벌써 봄은 지나가고 내일부터 여름이 시작이 됩니다. 계절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무상(無常)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한 매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온 세계도 시끄럽고, 나라 안에도 정치도 시끄럽고, 경제도 시끄럽고, 학원도 시끄럽고 정말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철저히 무상을 깨닫고, 나라를 걱정하고 또 우리의 자녀를 걱정하고 세계 인류를 참으로 걱정한다면 일념단속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진리의 눈을 뜬 사람이 나와야겠습니다.

 

진리의 눈을 뜨는 사람이 나와야 그것이 새 부처님의 탄생이요, 새 부처님이 탄생을 해야 업(業)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53분7초~69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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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수여운일몽신~' ; [금강경오가해]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야부 게송 참고.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권서(卷舒, 捲舒 돌돌 감아쌀 권/펼 서) ; ①말았다 폈다 함. ②나아감과 물러남. ③재덕(才德)의 숨김과 나타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오조(五祖) : (602 – 675)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주(周)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제 4조(四祖) 도신(道信)의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두 분이 있었으므로, 6조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의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의 북종선이 되어 두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은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을 거쳐 4조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이 생겼다. 그리고 5조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 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麈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麈埃)」라고 지었다。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분부하다(分付-- 나누다·나누어 주다 분/주다·맡기다·부탁하다 부) ; ①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시키거나 나누어[分] 주다[付].

②(...에/에게 ...을) (...에/에게 -고) (...에/에게 -도록)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다, 또는 당부(當付)하다.

③건네주다 · 넘겨주다. 전수(傳授) · 부촉(付囑) · 부여(付與) 등과 같은 말이다. 주로 '법을 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구원겁(久遠劫 오랠 구/멀 원/오랜 세월 겁)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명(使命) ; 맡겨진 임무.

*곤하다(困-- 곤하다·졸리다·지치다 곤) ; ①기운이 없이 나른하다. ②몹시 고단하여 잠든 상태가 깊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좀해 : 좀처럼(‘않다’, ‘없다’ 따위의 부정하는 말과 함께 쓰여, 웬만해서는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음 또는 쉽게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본능(本能) : 사람이나 동물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나 감정.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정말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겠다' ; 고향(故鄕).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참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참고] 『서장(書狀)』 '답탕승상(答湯丞相)' 참고.

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제1 제조법어절요(諸祖法語節要 : 여러 조사의 법어 중에서 오직 공부 지어 가는 데에 요긴한 대목만을 뽑아 요약함)」 '황룡사심신선사소참(黃龍死心新禪師小參)' 참고.

諸上座 人身難得 佛法難聞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상좌들이여!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듣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할 때 결사(結社)를 함.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그때그때 ; ①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때. ②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때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부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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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법보시2020. 11. 17. 11:04

법보시(세등선원No.39)—스님과 신도가 여러 생을 지내는 동안 서로 교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게끔 공양을 해 주고 있다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무슨 핑계 안돼!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참고] 『제경요집(諸經要集)』 10권. 18. 육도부(六度部) [육도부에는 여섯 가지 편(篇)이 있음]

제1 보시편(布施篇第一)[보시에 따로 일곱 가지 연(緣)이 있음] (4)법시연(法施緣).

故智度論云 佛說 施中法施第一 何以故 財施有量 法施無量 財施欲界報 法施出三界報 財施不能斷漏 法施淸升彼岸 財施但感人天報 法施通感三乘果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 중에는 법시(法施)가 제일이다. 왜냐 하면 재물의 보시는 한량이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한량이 없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욕계(欲界)의 과보를 얻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번뇌[漏]를 끊을 수 없으나 법(法)의 보시는 저 언덕[彼岸]에 청정하게 오르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다만 인간 세계와 천상의 과보를 감득(感得)하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승(三乘)의 과보를 감통(感通)하기 때문이다.

 

財施愚智俱閑 法施唯局智人 財施唯能施者得福 法施通益能所 財施愚畜能受 法施唯局聰人 財施但益色身 法施能利心神 財施能增貪病 法施能除三毒

 

재물의 보시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다 할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게 국한되었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오직 보시한 사람만이 복을 얻을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보시한 사람과 보시를 받은 사람이 통틀어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짐승도 받을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총명한 사람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다만 색신(色身)만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법(法)의 보시는 능히 마음과 정신까지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탐욕과 질병을 증장시킬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삼독(三毒)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니라'

 

제6 지혜편(智慧篇第六)[여기에는 두 가지 연(緣)이 있음] (2)구법연(求法緣第二)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者 濟一世之厄 增益生死 說法敎化者 能令衆生 出世間道 得三乘果 免三惡道 受人天樂 是故佛說 以法布施 功德無量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 동안의 목숨만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진귀한 보배로 보시하는 것은 한 세대의 재액을 구제해 주고 생사에 이익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만,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나게 하는 도(道)로써 삼승(三乘)의 과(果)를 얻고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를 면하게 하여 인간이나 하늘의 즐거움[人天樂]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法)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7분 35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9)—1982(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세등39)

 

스님네는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가 정성스럽게 바친 보시와 공양(供養)에 의해서 이 도(道)를 닦아가야 할 이 소중한 육체를 보전해 나가고, 그러한 여러분의 신심과 공양하는 공덕(功德)으로 도업을 잘 닦아서 스스로 깨닫고 나아가서는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정성으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잘 공양하고 보호하고 받듬으로써 스님으로부터서는 법(法)의 보시(布施)를 받는 것입니다.

재물을 물질을 여러분은 스님네에게 보시하고, 스님네는 수행으로써 여러분에게 법보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밤낮 보시만 하고, 스님네는 우리한테 무엇을 보시를 해 주느냐?'

법을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숙명통(宿命通)을 얻지를 못해서 전생사(前生事)를 잊어버려서 잘 모릅니다마는, 전생에 여러분이 스님이었었고 우리가 신도였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전생에) 우리가 신도가 되어서, 스님으로 공부하시는 여러분에게 보시를 해서 그 인연으로 금생에는 우리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고, 여러분은 세속에서 신도가 되어 가지고 교대해서 여러분이 우리를 또 이렇게 보시를 하고 우리를 잘 공양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가운데 혹 숙명통이 열린 분이 보면 틀림없이 그러한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보시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이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야말로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이 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무주상으로 보시를 하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해서 스님네가 어쨌든지 영양보충을 충분히 해서 건강한 육체로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을 잘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도록 잘해 주시고.

그 공덕으로 여러분 가정에는 항시 신심과 기쁨이 넘쳐 흘러서 모든 재앙은 다 물러나가 버리고, 크고 작은 소원이 차례로 다 성취가 되어서 부처님 제자로서 만복(萬福)을 성취하고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을 갖추어 구족(具足)해서, 위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로 인해서 부처님께 귀의(歸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인연이 되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오늘도 강영선 보살이라고 하는 신심 있는 보살이 대중공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공양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고 그 인연으로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法喜禪悅)을 얻으셔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그 강영선 보살님과 함께—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항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만나서 대도를 성취할 인연이 되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리는 말씀을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생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아! 내가 그때 송담 스님이 그렇게 목이 쇠도록 일러준 그 말할 때 공연히 아들 핑계, 딸 핑계, 살림 핑계, 무슨 핑계, 뒤로 미루고 그럭저럭 지내가지고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어째서 내가 그때 열심히 공부를 안 했던가!’

염라대왕 앞에 가서, 저승에 가서 아무리 후회하고 한탄을 해봤자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선해 나가는 구체적인 법문에 대해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너무너무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하좌하겠습니다.(53분3초~60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참고] 『제경요집(諸經要集)』 10권. (석도세釋道世 집集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18. 육도부(六度部) [육도부에는 여섯 가지 편(篇)이 있음]

제1 보시편(布施篇第一)[보시에 따로 일곱 가지 연(緣)이 있음] (4)법시연(法施緣).

 

述曰:此明財 法相對 挍量優劣

故智度論云 佛說 施中法施第一 何以故 財施有量 法施無量 財施欲界報 法施出三界報 財施不能斷漏 法施淸升彼岸 財施但感人天報 法施通感三乘果

財施愚智俱閑 法施唯局智人 財施唯能施者得福 法施通益能所 財施愚畜能受 法施唯局聰人 財施但益色身 法施能利心神 財施能增貪病 法施能除三毒

 

[自述] 이것은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를 서로 대비시켜 그 우세하고 하열함을 비교하여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 중에는 법시(法施)가 제일이다. 왜냐 하면 재물의 보시는 한량이 있지만 법의 보시는 한량이 없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욕계(欲界)의 과보를 얻지만 법의 보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번뇌[漏]를 끊을 수 없으나 법의 보시는 저 언덕[彼岸]에 청정하게 오르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다만 인간 세계와 천상의 과보를 감득(感得)하지만 법의 보시는 삼승(三乘)의 과보를 감통(感通)하기 때문이다.

재물의 보시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다 할 수 있지만 법의 보시는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게 국한되었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오직 보시한 사람만이 복을 얻을 수 있으나 법의 보시는 보시한 사람과 보시를 받은 사람이 통틀어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짐승도 받을 수 있지만 법의 보시는 오직 총명한 사람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다만 색신(色身)만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법의 보시는 능히 마음과 정신까지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탐욕과 질병을 증장시킬 수 있으나 법의 보시는 삼독(三毒)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니라.’

 

故大集經云 施寶雖多 不如至心誦持一偈 法施最妙 勝過飮食

又未曾有經云 天帝問野干曰 施食 施法 有何功德 唯願說之 野干答曰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財物 濟一世之乏 增益繫縛 說法敎化 名爲法施 能令衆生 出世間道

 

그러므로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아무리 많은 보물을 보시했어도 그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한 게송을 외워 지니느니만 못하나니, 법의 보시는 가장 절묘하여 많은 음식을 보시한 것보다 우세하다'

또 『미증유경(未曾有經 : 未曾有因緣經)』에서 말하였다.

천제(天帝)가 야간(野干)에게 물었다. '음식을 보시하거나 법을 보시하면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부디 설명하여 주십시오'

야간이 대답하였다. ‘음식을 보시하면 하루의 목숨을 구제하고, 귀중한 보배나 재물을 보시하면 한 생[世]의 궁핍함을 구제하지만, 그것은 다 계박[繫縛 : 집착]만을 더할 뿐이다.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을 법시(法施)라고 하는데, 이것은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世間)의 도를 벗어나게 한다'

 

又大丈夫論云 財施者 人道中有 法施者 大悲中有 財施者除衆生身苦 法施者除衆生心苦 財施愛多者施與 財寶 愚癡多者施與 其法 財施者爲其作無盡錢財 法施者爲得無盡智 財施者爲得身樂 法施者爲得心樂 財施者爲衆生所愛 法施者爲世間所敬 財施者爲愚人所愛 法施者爲智者所愛 財施者能與現樂 法施者能與天道涅槃之樂 如偈曰

 

佛智處虛空 大悲爲密雲 法施如甘雨 充滿陰界池

四攝爲方便 安樂解脫因 修治八正道 能得涅槃果

 

또 『대장부론(大丈夫論)』에서 말하였다.

“재물의 보시는 인간 세계에 있는 일이고 법의 보시는 큰 자비 가운데 있는 일이다. 재물을 보시하면 중생들 몸의 고통을 없애주고, 법을 보시하면 중생들 마음의 고통을 없애준다. 재물의 보시는 애착이 많은 이에게는 재물과 보배를 베풀어 주지만, 어리석음이 많은 이에게는 그 법을 베풀어 준다. 재물을 보시하면 그 행위로 인하여 다함이 없는 재물을 얻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으며, 재물을 보시한 사람은 몸의 안락을 얻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마음의 안락을 얻으며, 재물을 보시한 사람은 중생들에게 사랑을 받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세간의 존경을 받으며, 재물을 보시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재물을 보시한 사람에겐 현재의 즐거움을 주고 법을 보시한 사람에겐 하늘 세계나 열반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부처님의 지혜가 허공에 있을 때에

큰 자비는 빽빽한 구름이 되며

법의 보시는 마치 단비와 같아

음계(陰界)의 못에 가득 찬다.

 

네 가지 섭법(攝法)은 방편이 되고

안락(安樂)과 해탈의 씨앗이 되며

여덟 가지 바른 도를 닦고 다스리면

능히 열반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리.”

 

又月燈三昧經云 佛言 若有菩薩 行於法施 有十種利益 何等爲十 一棄捨惡事 二能作善事 三住善人法 四淨佛國土 五趣詣道場 六捨所愛事 七降伏煩惱 八於諸衆生施福德分 九於諸衆生修習慈心 十見法得於喜樂

 

또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보살이 법시(法施)를 실천하면 열 가지 이익이 있느니라. 그 무엇이 열 가지 이익인가?

첫째는 악한 일을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능히 착한 일을 지으며, 셋째는 착한 사람의 법에 머무르고, 넷째는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하며, 다섯째는 도량으로 나아가고, 여섯째는 사랑하는 일을 버리며, 일곱째는 번뇌를 항복받고, 여덟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복덕의 일부분을 베풀어 주며, 아홉째는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자비의 마음을 닦아 익히고, 열째는 법을 보고 기쁨을 얻는 것이니라.’”

 

又菩薩地持論云 菩薩知彼邪見求法智者 不授其法 不與經卷 若性貪財 賣經卷者 亦不施與法 若得經卷 隱藏不現 亦不施與法 若非彼人所知義者 亦不施與 若是彼所知義 於此經卷 已自知義 則便持經 隨所樂與 若未知義 自須修學 又知他人所有如是經 示語其處 若更書與 菩薩當自觀心 少有法慳者 當持經與 爲法施故 我寧以法施 現世癡瘂 爲除煩惱 猶尙應施 況作將來智慧方便

 

또 『보살지지론(菩薩地持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저들이 삿된 견해로 법의 지혜를 구하는 것을 알면 그에게는 법을 주지 않고 경전도 주지 않는다. 만약 그의 성질이 재물을 탐하여 경전을 파는 사람인 줄 알면 그에게는 법을 베풀어 주지 않고, 만약 경전을 감춰두고 내어놓지 않으면 그에게도 법을 주지 않는다.

만약 그가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그에게도 베풀어 주지 않고, 만일 그가 이치를 알고 이 경전에 대하여 이미 스스로 그 이치를 알면 곧 경전을 가져다가 그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줄 것이다. 만약 그 뜻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 꼭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또 다른 사람이 이와 같은 경전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 그 대목의 뜻을 가르쳐 주거나 또는 베껴서 주느니라. 보살은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조금이라도 법을 아끼는 이가 있으면 법의 보시를 위해서라도 마땅히 경전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나는 차라리 법을 보시함으로써 현재 세계에 벙어리가 될지언정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마땅히 보시해야 하겠거늘 더구나 그것이 장래에 지혜와 방편이 되는 것이겠는가?

 

又優婆塞戒經云 若有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能敎化人 具足戒施多聞智慧 若以紙墨 令人書寫 若自書寫如來正典 然後施人令得讀誦 是名法施 如是施者 未來天上得好上色 何以故

衆生聞法 斷除瞋心 以是因緣 未來世中 得成上色

衆生聞法 慈心不殺 以是因緣 未來世中 得壽命長

衆生聞法 不盜他財寶 以是因緣 未來世中 多饒財寶

衆生聞法 開心樂施 以是因緣 未來世中 身得大力

衆生聞法 離諸放逸 以是因緣 未來世中 身得安樂

衆生聞法 除瞋癡心 以是因緣 未來世中 得無礙辯

衆生聞法 信心無礙 以是因緣 未來世中 信心明了

戒施聞慧 亦復如是 故知法施殊勝過於財施

 

또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사람을 잘 교화하여 계율ㆍ보시ㆍ다문(多聞)ㆍ지혜를 원만하게 갖추거나, 혹은 종이와 먹으로써 사람들을 시켜 쓰고 베끼게 하거나, 혹은 여래의 바른 경전을 스스로 베껴 쓴 뒤에 남에게 보시하여 그로 하여금 읽고 외우게 하면 이것을 법시(法施)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법을 보시하는 사람은 미래 세상엔 천상에 태어나서 최고로 좋은 몸을 얻는다.

 

왜냐 하면 중생들이 그 법을 들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어 없애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몸을 얻는다.

중생들이 법을 들으면 인자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긴 수명을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다른 사람의 재물과 보배를 훔치지 않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많은 재물과 보배를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보시하기를 좋아하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몸에 큰 힘을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모든 방일한 행위를 여의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안락한 몸을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걸림이 없는 말재주를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믿는 마음에 의심이 없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상엔 믿는 마음이 밝고 또렷해진다.

계율ㆍ보시ㆍ다문ㆍ지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법을 보시하는 것은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問 旣知法施勝過財施 今時 衆生但學法施 不行財施 未知得不

答 爲不解財施 迷心而施 苟求色聲人天樂報 恐墜三塗 不成出世 所以聖人慇懃歎法 令其悟解三事體空 而行財施 速成菩提涅槃勝果 自餘戒 忍六度萬行 皆藉智慧 開導成勝

 

【문】 법을 보시하는 것이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런데도 현재의 중생들이 오직 법을 보시하는 것만 배우고 재물 보시는 실행하지 않는다면, 모르기는 해도 그래도 되는 것인가?

【답】 재물 보시하는 것을 진정 모르고 미혹한 마음으로 보시하여 구차하게 빛깔과 음성, 인간 세계나 천상의 즐거운 과보만 구하다가 삼악도(三惡塗)에 떨어져서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은근히 법을 찬탄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 가지 일의 본체가 공(空)한 것임을 깨닫고, 재물을 보시하게 함으로써 속히 보리(菩提) 열반(涅槃)의 뛰어난 과업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밖의 계율과 인욕 등 육도(六度 :육바라밀)의 만행(萬行)은 다 지혜의 힘을 빌어 우세한 과업을 이룬다는 것을 개도(開導)한 것이다.

 

又智度論云 前五度譬同盲人 第六般若事同有目 若不得般若 開導前五 便墮惡道 不成出世 若聞法施 過於捨財 愚人不解 卽便秘財 唯樂讀經 若行此法 不如有人解心捨施一錢 勝過迷心讀經百千萬卷

是以如來設敎意存解行 若唯解無行 解則便虛 若唯行無解 行則便孤 要具解行方到彼岸 若唯解無行 如人有目無足 不能遠涉 若唯行無解 如人有足無目 不能見道 又唯解無行 譬同狂花不結子實 若唯行無解 譬同子實不依花發 是故要須解行雙行 方成佛果也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앞의 다섯 바라밀[度]은 비유하면 눈먼 사람과 같고, 여섯 번째 반야바라밀의 일은 밝은 눈이 있는 사람과 같다. 만약 반야(般若)를 얻지 못하고 앞의 다섯 바라밀을 개도(開導)하면 곧 악한 세계에 떨어져서 세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법을 보시하는 것이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낫다는 설법을 듣고서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를 못하고, 곧 재물을 감추어 두고 오직 경전 읽기만 즐겨한다. 만일 이러한 법을 실행한다면 이는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깨닫고 일 전의 돈을 보시하는 것만 못하다. 일 전이라도 보시하는 것은 미혹한 마음으로 백천만 권의 경전을 읽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해(解)와 행(行)에 뜻을 두라고 가르침을 베푸신 것이다. 만일 알기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그 앎은 곧 공허한 것이요, 만일 오직 실천만 있고 앎이 없으면 그 실천은 곧 외로울 것이니, 아는 것과 실천을 모두 갖추어야 비로소 저 열반의 언덕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到彼岸].

만약 오직 알기만 하고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눈만 있고 발이 없어서 멀리 건너갈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만일 오직 실천만 있고 앎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발만 있고 눈이 없어서 길을 보지 못하고 마구 가는 것과 같다.

또 오직 알기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마치 헛꽃과 같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고, 또한 오직 실천은 하되 앎이 없으면 마치 종자와 같아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이해와 실천을 함께 행해야 비로소 부처님의 과업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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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 지혜편(智慧篇第六)[여기에는 두 가지 연(緣)이 있음] (2)구법연(求法緣第二) 중에서.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者 濟一世之厄 增益生死 說法敎化者 能令衆生 出世間道 得三乘果 免三惡道 受人天樂 是故佛說 以法布施 功德無量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 동안의 목숨만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진귀한 보배로 보시하는 것은 한 세대의 재액을 구제해 주고 생사에 이익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만,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나게 하는 도(道)로써 삼승(三乘)의 과(果)를 얻고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를 면하게 하여 인간이나 하늘의 즐거움[人天樂]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法)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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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보시(布施) : [범] dāna 음을 따라 단나(檀那) · 다나(柁那) · 단(檀)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물질 또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만복(萬福) ; 온갖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4분 42초)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 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 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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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발심2020. 10. 16. 18:48

발심(세등24)—불보살은 중생의 생사해탈을 위해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신다 | 발심을 하면 불보살 ·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4분 38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우리는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佛菩薩)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善知識)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28분41초~33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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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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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복혜구족2020. 10. 5. 19:02

복혜구족(No.178)—부처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 | 우리는 부처님 제자로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해야 | (게송)塵勞逈脫事非常~.

 

*복혜구족(福慧具足) ; 복(福)과 혜(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함. 복혜양족(福慧兩足)이라고도 한다.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선원이 잘 운영 되었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됩니다.

 

(8분 9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일인데,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은 바로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하는 보살님과 그 근본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백일기도에 들었기 때문에, 그 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이 용화선원이 잘 운영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스님네들이 정진을 잘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 선원이 잘 운영되어 가는데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에 살았겠느냐 그말이여.

법회 때 나와서 법문(法門)을 듣고, 법문을 듣고 가셔서 댁에서 이 활구참선법, 참선을 댁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참선을 하셨으니 어찌 그것이 이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말이여.

 

바로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이다 그말이여. 복을 지어서 선원을 잘 운영해 나갔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어느 분이 복(福)과 혜(慧)를 가장 원만히 구족하신 분이냐?’하면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야말로 천상천하에서 복과 혜,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이다.

 

그래서 삼귀의(三歸依)를 할 때에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두 가지가 족[兩足]한 최고의 높으신 어른께 귀의합니다’

'두 가지가 구족하다'하는 것은 바로 ‘복(福)과 혜(慧), 두 가지가 구족하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에 의해서 닦아 가는 불제자로서 그 두 가지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을 한다면 우리의 정진은 결단코 삿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백일기도 회향이 바로 오늘입니다.

 

‘백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나는 뭐 닦아야 할 복도 없고, 닦아야 할 혜도 없다’ 그리 생각하지를 말고 산철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고, 상(相)에 떨어지지 않는 정진을 해 나가시면, 또 다시 음력 10월 15일이 들면 그때 또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또 가정 형편이 허락이 되면 또 여기에 정식으로 방부를 들여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셔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그 공덕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었던 크고 작은 소원이 반드시 성취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진로형탈(塵勞逈脫)—티끌 수고로운 거,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하는 것이 이 일이 조그만한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밀하게 승두(繩頭)를 잡아서—화두를 놓치지 말고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이 추위가 뼛골 속에 사무치지 아니할 거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것이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핀 매화라야 코를 치는 그러한 향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異常) 기온이 되어가지고 뜨뜻해서 강추위를 아니하면 그런 끝에 핀 매화는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매화꽃이 그러듯이 우리가 정말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뼛골에 사무치는 그러한 간절하고도 알뜰한 정진을 하지 않고서 어찌 고불조(古佛祖)와 같은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을까 보냐 이 말씀이여.

 

이 게송은 황벽 스님께서 우리 후래(後來) 불자를 위해서 일러주신 게송입니다. 수행 납자(衲子)가 하루 한때라도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좋은 좌우명(座右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43분30초~51분3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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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참고]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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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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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불방일2020. 10. 2. 18:11

불방일(No.178)—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다.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 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2분 31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이 정진(精進)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방일(不放逸)인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 '아니 불(不)'자, '놓을 방(放)'자, '편안할 일(逸)'자.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방일한다’고 하는 것은 ‘놓아 지낸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놓아 지낸다’ 그말인데, 그럭저럭 놓아 지내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참정진'이다 이 말씀이여.

 

‘정진을 한다’하면은 꼭 아주 그 가행정진 · 용맹정진, 그 정진상(精進相)을 지어서 막! 이 몸을 갖다가 얽어매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한 것을 갖다가, 몸과 마음을 억지로 구속하고 얽어매 가지고 몸을 못살게 구는 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다 또는 용맹정진이라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마는.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 글자 석 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불방일만 한다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바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화두가 들린다면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24시간 간단없이.

장차(將次)는 참으로 정진이 익숙해지면 꿈속에서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릴 것이고, 꿈도 없고 그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떠억 들린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용맹정진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그렇게 될라면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우리 수행인은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계속해서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38분8초~40분4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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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爲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 爲圓滿善法 常習常修堅作恒作 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18권 ‘26. 사의단품(四意斷品)’ 제1~4경 참고 요약.(동진 계빈 승가제바 한역 | 김월운 번역 | 동국역경원)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①비유하면 마치 산(山) · 강(江) · 석벽(石壁) · 온갖 풀百草] · 다섯 가지 곡식[五穀]은 모두 땅을 의지해서 자라나고 큰다. 그래서 땅은 가장 높고 최상(最上)이다.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 도(道)인 37도품(道品)의 법이 다 방일(放逸)하지 않은 땅에 머물러 모든 착한 법을 거기에서 자라나게 한다. 그래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四意斷)을 닦는다.

②여러 조그만 나라의 왕과 여러 큰 나라의 왕들이 다 전륜성왕(轉輪聖王)에게 와서 붙어 가까이한다. 전륜성왕은 거기에서 가장 높고 최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37도품법(道品法) 가운데에서 방일(放逸)하지 않는 법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4의단(四意斷 또는 四正斷)을 닦는다.

③모든 별빛 가운데 달빛이 제일인 것처럼, 이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착한 공덕의 37도품 가운데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가장 제일이요 가장 높고[最尊] 가장 귀[最貴]하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느니라.

④첨복화(瞻蔔華) · 수마나화(須摩那華) 등 천상(天上)과 인간(人間) 세상의 모든 꽃들 중에서 바사화(婆師華)가 가장 제일인 것처럼, 모든 착한 공덕(功德)의 37도품 가운데서는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러면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악(惡)은 생기지 않도록 하고(律儀斷), 이미 생긴 악은 없어지게 하고(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善)은 생기게 하고(隨護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많아지고 오래 가도록 하는 것(修斷)이며, 원만하게 갖추어 닦아 수행하고 마음과 뜻에 잊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4의단을 닦아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불방일의 가르침은 결국 붓다(깨어있는 자, 覺者)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455)—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부처님께서 아함경(阿含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不放逸)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善法]에 있어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 「잡아함경」 (882. 불방일근본경 不放逸根本經), 「상윳다니까야」 (S45:146) 달(月)경 참고.

*선법(善法, 산스크리트어: kuśalā dharmāh, 팔리어: kusala dhamma) ; 선법(착한 법)은 '선한 교법'의 줄임말로, 5계(五戒) · 10선(十善) · 3혜(三慧) · 4혜(四慧) · 4성제(四聖諦) · 3학(三學) · 5온설(五蘊說) · 12연기설(十二緣起說) · 8정도(八正道) · 37도품(三十七道品) · 6바라밀(六波羅蜜) 등 이치에 맞고, 자신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법(法), 즉 도리와 방편, 즉 가르침 또는 선한 행위와 수행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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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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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법문(듣는 법)2020. 9. 14. 14:24

법문(세등37)—(게송)雲開空自濶~ | 법문이라 하는 것이 원래 설(說)할 것이 없는 것이다 | 설(說)할 바 법(法)이 없고, 들을 바 법(法)이 없는 것이 이것이 '참 설법(說法)' | 불설일자(不說一字)

설(說)할 바가 없으면서도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시는 것, 그래서 대중들도 들을 것이 없지만 위법망구적으로 법문을 듣되 한마디도 들은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 (게송)但知聲色本非眞~.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13분 46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7)—1981년(신유년) 동안거 반살림 법문(81.11.22)(세등37)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회수연파리(廻首煙波裏)에  어가과원촌(漁歌過遠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껌껌허게 구름이 끼었다가 그 구름이 활짝 열리니까 저 허공은 저절로 환히 열렸다.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라. 가을이 되서 단풍이 져가지고 그 이파리가 떨어지니 곧 뿌리로 돌아가더라.

 

회수연파리(廻首煙波裏)하니, 머리를 돌이켜, 머리를 돌려서 안개 연기 자욱한 파도 속에 돌리니,

어가과원촌(漁歌過遠村)이라. 고기잡이 노래가 먼 마을을 지내가더라.

 

오늘은 신유년(辛酉年) 삼동결제(三冬結制) 반살림 날입니다.

결제(結制) 때 법문을 듣고 공부를 시작하면 해제(解制) 때까지 한결같이 정진(精進)을 지어가면 되겠지만 우리의 근기(根機)가 그렇지를 못해서, 그래서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어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이 일어나도록 그래가지고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채찍을 가하기 위해서 결제 중간에 법회를 한번 갖는 것입니다.

 

원래 반살림은 동짓달 그믐날 갖는 것이 일반 준례(準例)지만 오늘은 동짓달 스무 이튿날, 이 세등선원을 창설한 원장 스님, 세등 스님의 생신날로써 대중스님네께 공양(供養)도 올리기 겸해서 오늘 이렇게 반살림 법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祖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가 들어야 할 법문을 남김없이 다 들었습니다. 

그 법문 밖에 무슨 또 할 말이 있을까마는, 법문(法門)이라 하는 것이 원래 설(說)할 것이 없는 것이여. 들을 것이 없어.

 

설(說)할 바 법(法)이 없고, 들을 바 법(法)이 없는 것이 이것이 '참 설법(說法)'이여.

 

부처님께서 열반회상(涅槃會上)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 녹야원(鹿野苑)에서부터 오늘 이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49년 동안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시고서 마지막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이것이 '참 설법(說法)'인 것입니다.

 

설(說)할 바 법(法)이 있어서 설한다면 그 설법(說法)은 틀려버린 것입니다.

설(說)할 바 법(法)이 없다고 해서 아주 입을 꼭 다물고 법회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설(說)할 바가 없으면서도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들도 들을 바가 없어. 들을 것이 없지만, 그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법문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법문을 귀로 듣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져서 속에 기억할 것이 있고, 알아들어서 얻은 바가 있고, 이것은 법문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그 위법망구적으로 정성(精誠)을 들여서 법문을 듣되 한마디도 들은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색상(色相)을 보고 음성(音聲)을 듣고 그래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얻은 바가 있고 나를 구(求)한다면, 이것은 삿된 길을 행(行)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행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색상(色相)과 음성(音聲) 소리에 즉(卽)하지도 말고, 색상과 음성을 여의지도 말아야 할 것이여.

 

 

단지성색본비진(但知聲色本非眞)이요  자연불피성색혹(自然不被聲色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진자어현지회(見盡自於玄旨會)하면  정망능여도상친(情忘能與道相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불피성색혹(自然不被聲色惑)이니라.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견진자어현지회(見盡自於玄旨會)하면 정망능여도상친(情忘能與道相親)이라.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생각이 생각 다한 데에 이르러서, 다해가지고 생각 없는 곳에 이르르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하리라.

생각이, 생각이 다해가지고 생각 없는 곳에 이르러서 참나를 확철대오를 하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하리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문(六門)으로부터 항상 자금광(紫金光)을 놓으리라. 바로 견성(見性)하야 성불(成佛)할 것이다.

 

정법학자(正法學者)가 이 법문을 듣고 화두(話頭)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다면 이 법문을 바로 들은 것이 될 것이여.(처음~13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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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제4권 115칙 신주(新州)’ 송원(松源) 송(頌) 참고.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열반회상(涅槃會上) ;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임해서 열린 법회. 세존의 마지막 설법으로서 간절한 유훈(遺訓 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타일러 잘못이 없도록 일깨워 주는 말)을 남기셨고, 『유교경』 · 『열반경』 등의 경전으로 전승되었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부처님께서 열반회상(涅槃會上)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 녹야원(鹿野苑)에서부터 오늘 이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 불설일자(不說一字).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미증(未曾), 부증(不曾) : 일찍이 ~한 적이 없다]

부처님의 교설은 언어문자로 드러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자의 틀을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원래 『반야경』이나 『능가경』 등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이 말을 선종에서 강조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참고 ❶] 『금강선론(金剛仙論)』 (세친=천친 造 | 금강선 釋 | 보리유지 한역) 제5권.

如來從得道夜 至涅槃 更不說一字者 明證法無名相 言語道斷 心行處滅 不可以名相往說 故言不說一字也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밤부터 열반에 드시는 날에 이르기까지 결코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말은 법(法)은 명상(名相)이 없어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고, 마음으로 헤아릴 방법도 소멸하여 명상으로써 설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참고 ❷] 『선교석(禪敎釋)』 (서산대사)

世偈云 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曾說一字 此固敎外別傳之謂也.<智度論>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처음 녹야원에서부터 마지막 발제하까지, 이 두 기간 사이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교외별전의 취지를 가리킨다.<『지도론』>

 

[참고 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제5권 (실차난타 역 | 김진철 번역 | 한글대장경) '3. 무상품 ② 無常品第三之餘'

大慧 若人說法墮文字者 是虛誑說 何以故 諸法自性離文字故 是故 大慧 我經中說 我與諸佛及諸菩薩 不說一字 不答一字 所以者何 一切諸法離文字故 非不隨義而分別說

 

대혜여, 만약 어떤 이가 법을 설하되 문자에 떨어진다면 이것은 허망하게 속이는 설법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자성은 문자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나는 경 가운데서 '나와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은 한 자도 설하지 않고 한 자도 답하지 않았다'고 설하였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문자를 떠났으므로 뜻을 따르지 않고 분별하여 설하지 않는다.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상주(常住) ; 과거 · 현재 · 미래 등 삼세(三世)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생멸의 변화를 겪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것. 상(常)이라고도 하는데, 무상(無常)과 대칭한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금강경』 爾時 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色見聲求 是行邪道 作麼生 不行邪道去 但知聲色本非眞 自然不被聲色惑 見盡自於玄旨會 情忘能與道相親

 

색상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는 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즉(卽)하다 ; 어떤 사실에 의거(依據)하다. *의거(依據)하다 : 어떤 사실이나 원리 따의에 근거(根據)하다.

*(게송) '단지성색본비진(但知聲色本非眞)~' ; 『금강경오가해』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현현하다(玄玄--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현) ;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미묘(微妙)하다.

*미묘(微妙 작다·정교精巧하다·은밀隱密히 미/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훌륭하다 묘) ; 인간의 생각이나 언어로는 헤아리거나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훌륭한 대상, 또는 상태를 형용하는 말. 주로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장엄한 모습, 깨달음의 경지 등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정(情) ; ①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②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③[불교] 혼탁한 망념(妄念).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하리라' ;

[참고] 『한가로운 도인의 길 - 나옹화상법어집』 (김달진 역주, 세계사刊).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보임(示諸念佛人/8首)’ 게송 참고. p166.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계신고?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마음을 부딪쳐 가지고 간절히 잊어버리지 말아라.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생각이, 생각이 다해가지고 생각 없는 곳에 이르르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문(六門)에 항상 자금광(紫金光)을 놓으리라. (바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이다)

 

*육문(六門) ; 육근(六根,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을 말한다. 육식(六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는 경우, 그 입구가 되므로 문(門) 또는 뿌리(根)라 하는 것이다.

*자금광(紫金光) ; 자마금(紫磨金 : 황금 중의 최고인 자색을 띈 금) 색(色)을 띄고 있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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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別念] (No.445)—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 구경(究竟)의 깨달음이어야 한다 | 팔만사천 마구니 | 참선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딴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10분 21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아까 전강(田岡) 조실 스님 법문에 ‘이 화두(話頭)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왜 그러냐?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참선법(參禪法)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된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안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지옥도 없는 것이고, 뭐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딱!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한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갈 까닭도 없고, 그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할 수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그 사람은.

 

숨 거둘 때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의 사자(使者)가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이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다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다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이 좀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좀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해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해 버려야 되거든.

 

또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에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것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식(識)이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에 저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저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저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안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境界)가 나타나면 공부에 참 큰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식(識)이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法門)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이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다 된 것처럼 착각을 해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저 스님이 뭣을 훤히 잘 아는 스님이다. ‘저 스님은 도통했다’ ‘저 스님은 도인이다’ 해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막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척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남 점쳐 주고 해 가지고 그거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이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참!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돼.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구니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道)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그 팔만사천 마구니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온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해 나가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한 생각 삐끗 딴생각[別念]을 낸 그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한 생각을 동(動)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가 솥을 씻어 가지고 그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이 쌀 한 톨에 시주(施主)의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이 쌀을 이렇게 함부로 해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이 나타나 가지고 ‘여러 해 동안을 내가 이 도량(道場)에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그 스님은 평소에 항상 그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그 스님을 볼라야 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한 생각 화를 내니까 그 좀을 타서 도량신이 그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한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또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그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해 나가느냐’가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에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요, 이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안 걸려드느냐의 그 판가름이 한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분46초~53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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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요지부동(搖之不動 흔들다·흔들리다 요/어조사 지/아닐 부/움직일 동) ;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경계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말.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사자(使者 사신 사/놈 자)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견지(見地) ; 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 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 · 말나식(末那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 ; '잠깐(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매우 짧은 시간)'의 사투리.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챗구녁 ; ‘수챗구멍(허드렛물이나 빗물 따위가 빠져나가는 구멍)’의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이 쌀 한 톨에 시주(施主)의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 일미칠근(一米七斤).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②]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의 수호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또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그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태굴(懈怠窟 게으를 해/게으를 태/굴 굴)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의 굴(窟).

*기로(岐路 갈림길 기/길 로) ; ①길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②갈림길(둘 이상의 갈래로 나누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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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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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발심2020. 5. 18. 09:20

포구발심(No.445)—세상이 온통 공안으로 가득차 있다 | 진짜 화두에서 대발심 | 전강 스님의 포구발심 | 이뭣고?(是甚麼)는 가장 최초의 화두, 가장 근원적인 화두 | 화두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렵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9분 44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용445)

 

앞으로 초파일이 지나고 또 4월 15일이 되면 하안거, 여름 결제가 시작이 됩니다.

새로 계(戒)를 받을 행자(行者)나 또 앞으로 선방에 가고자 하는 수좌(首座)들이 '화두를 받어 가지고 그래가지고 선방에 가야겠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법상(法床)에 올라온 기회를 타서, 선방에 여름 결제에 방부(房付)를 들이고자 한 보살님이나 또 선방에 가서 방부를 들이고자 한 스님네를 위해서 이 화두 드는 것에 대해서 간략히 설하고자 합니다.

 

이 화두(話頭)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千七百) 화두요, 더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이 세상이 온통 공안(公案)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여.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우리가 닥치는 모든 경계(境界)와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하나하나가 공안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처 일체시에서 낱낱이 그 자체가 공안 도리를 설하고 있는 것이어서, 새로 화두를 탄다고 하는 것은 부득이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는 것이지,

정말 진짜 화두는 중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닥치는 일—정든 가족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거기서 진짜 화두를 얻게 되며, 진짜 거기서 대발심(大發心)을 하게 되며, 거기서 대분심(大憤心)이 일어나게 되며, 거기서 대의단(大疑團)이 돈발(頓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그 화두는 매(昧)할래야 매할 수가 없고, 잃어버릴라야 잃어버릴 수가 없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저절로 발심이요, 저절로 분심이요,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는 것이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그 어리신 나이에 다정한, 같이 글 배우고 같이 뛰어놀던 친구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바로 그것을 보고 발심을 하셨고,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꿈속에서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시고서 정말 포구발심(怖懼發心)을 허셔.

 

그 지옥고 받는 무서운, 인간의 그 생사고(生死苦)라고 하는 것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느끼시고 그래 가지고 출가하셔서, 누가 ‘선방 규칙을 잘 지켜라’ ‘묵언을 해라’ ‘말을 많이 하지 말어라’ 뭐 어째라 저째라 하는 그러한 자자꾸레한 그런 말이 전혀 필요가 없어. 저절로 대분발 해 가지고 젊으신 나이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변에도 그만큼 발심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이웃에서, 우리나라 안에서, 나라 밖에서 날이면 날마다 무수한 사건들이 연거퍼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강 건너 불처럼 ‘직접 내 일이 아니다’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뭐 무심히 지나쳐 버리고,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지나쳐서 그렇지 사실은 알고 보면 참 기가 막힐 일이죠.

 

시삼마(是甚麼).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아버지의 피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 한 방울이 만나 가지고 이 몸을 받아 낳는데, 이 몸은 머지않아서 병들어서 늙어서 결국은 또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主人公)이 있거든.

 

그놈이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성도 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욕심도 낼 줄도 알고,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고, 한 생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면은 찰나간(刹那間)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같이 되기도 하고 천사와 같이 되기도 하는데,

한 생각 비뚤어지면은 찰나간에 악마가 될 수도 있어. 나찰(羅刹) 귀신이 될 수도 있고, 독사가 될 수도 있고.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음흉하기가 구렁이보다도 더 고약하게 될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놈을 우리가 낱낱이 다 가지고 있어. 대관절 그놈이 무엇인가?

이거 화두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불법(佛法)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가만히 자기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의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거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시삼마 화두는 천칠백 공안 가운데에 가장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여. 화두를 새로 타기 전에 모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참공안(本參公案)이여.

 

의심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거든. 이건 화두를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몰랐으니 의심이 없을 수가 없고, 다못 올바르게 참구(參究)해 나가는 법만 몰랐지 이 시삼마 본참공안은 사람 사람이 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그 참구하는 방법을 바로 알고 하면 공부하다가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고, 이걸 바르게 참구를 안 하면 이거 하다가 정신이 샐쭉해지기도 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수가 있고, 이걸 참구를 잘못하면 상기병(上氣病)이 올라서 골이 뽀개질라 그러고 눈알이 빠질라 그러고 잘 안돼.

 

그래서 바르게 이 화두를 들어가는 법을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17분39초~27분2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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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분발(奮發 떨칠 분/꽃이 핌·이룰 발) ;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세간(世間 : 이 세상, 미혹한 세계)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보살. 자비의 화신.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본분 본분사2020. 5. 17. 16:31

본분(No.445)—(게송)花笑山前洩天機~ | 본분(本分)과 신훈(新熏) |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것은 무풍기랑(無風起浪) | 운문 선사의 방(棒) | 부처님의 자비, '생사 없는 도리'를 일러주기 위해서 오신 것 | 사바세계, 이 오탁악세에 태어난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삼아 발심 정진해야.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17분 23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洩天機)하고  조가임외설무생(鳥歌林外說無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하니  득지무처불봉원(得至無處不逢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洩天機)요  조가임외설무생(鳥歌林外說無生)이다.

산 앞에 꽃이 웃으니 천기(天機)를 누설(漏洩)함이요. 숲 밖에 새 노래는 무생(無生)을 설하는구나. 산 앞에 꽃이 울긋불긋 곱게 핀 것은 바로 천기를 누설한 것이다. 그리고 숲 밖에서 새가 노래하는 것은 바로 무생(無生), 진리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하니, 꽃이 곱게 피는 것이나, 새가 노래하는 것이나 그 밖에 바람이 부는 소리, 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일체 하늘의 별, 태양,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육근(六根)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그 자체가 무궁(無窮)한 뜻을 지니고 있어.

득지무처불봉원(得至無處不逢原)이라. 그 도리(道理)를 바로 봐 버리면 근원을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다. 어데서나 언제나 진리, 근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 신미년 5월 첫째 일요일을 맞이해서 신해년에 설하신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화두를 참구(參究)해서 ‘참나’를 깨달아 가는 그 수행 참선학자에게 간곡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본분(本分)에 들어가서는 법(法)을 설(說)할 것도 없고, 법을 들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그런 것이지만, 신훈(新熏)에 나아가서는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법을 설해야 하고 또 법을 들어야 하고 또 화두를 타서 목숨 바쳐 참구를 하고 도(道)를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분 실상(實相)에 들어가서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세하시고 가섭 존자에 법을 전하고 한 것들이 모두 무풍기랑(無風起浪)이여.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어나는 것이여.

그래서 본분 도리에 들어가서는 삼계(三界)의 대성현이시고 삼계도사(三界導師)이신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도 운문 선사의 방(棒)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이 본래부터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닦을 것이 없는 것이고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여. 누구를 제도(濟度)하며, 제도 받을 자가 누구냐 그말이여.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2535년의 부처님오신날이 돌아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실 것도 없는 곳을 향해서 출세하신 것은 중생을 위한 너무나 뜨거운 자비심에서 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生死) 없는데, 분명히 생사를 받고 한량없는 고통 속에 헤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 ‘생사 없는 도리’를 일러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가 없는데, 왜 중생은 생사고(生死苦)를 그렇게도 받고 있는가? 그것은 ‘생사 없는 도리’를 미(迷)해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거든.

내게 좋은 보물이 있어도 있는 줄 모르면 천상 가난뱅이로 거지 신세를 면하지를 못하니, 내게 평생 쓰고도 남을 보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일러주는 것은 그것은 자비의 소치(所致)다 그말이여.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궁에 태자로 탄생을 하셨어.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 가운데에도 그렇게 무서운 고행(苦行)을 하신 분은 없을 것이라고 부처님 자신께서 술회를 하실만큼 그런 무서운 고행을 겪으시고 그리고 나아가서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건데.

 

그것 자체가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그러한 발자취를 보고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서 나오는 오욕락(五欲樂)을 거기에 빠지지 말고 용기로써 그것을 박차버리고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도록 하시기 위해서 몸소 시범을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넘치는 자비가 없으셨다면 진리 속에서 영원히 열반(涅槃)의 낙(樂)을 누리시고 계시면 그만이지만, 원래가 부처님이나 우리 육도(六途) 법계에 모든 중생이 원래 한 몸뚱이였었거든.

한 가족이요, 한 몸뚱이였는데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고 있으니, 부처님으로서 어찌 그것을 보고 가만히 계실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보잘것없는 우리 중생도 한 가족으로 태어나면—원래는 한 가족도 아니지만 과거의 업연(業緣)으로 한 가족으로 태어나는 것인데,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형제의 인연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부부의 인연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일가친척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친구 간으로 태어나기도 하는데,

그러한 조그마한 인연으로 태어났어도 한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으면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그것을 도와주고 붙들어주고 이끌어주고자 하는 것인데,

 

하물며 진리이신 부처님이야 일체 중생을 어찌 고통을 받고 있는 그것을 보시고 그냥 놔둘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은 일체 모든 중생을 당신의 아들이신 라후라 존자처럼, 그렇게 조금도 라후라와 차등이 없이 그렇게 사랑하시고 그렇게 자비심으로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돌아가실 때까지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을 설하셨습니다. 그 부처님의 법문 가운데 한 말씀이라도, 한 글귀라도 올바르게 봐 버리면 자기의 면목을 볼 수 있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면목(面目)을 바로 봐 버리면 또 부처님의 설하신 법문의 요지를 바로 깨닫게 되면, 뜰 앞에 피어있는 한 송이 꽃, 또 나무가지에서 노래하는 새소리,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이런 것은 보통 시(詩) 속에 나오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방향을 바꿔서 어린 아이가 넘어져서 우는 소리, 어떤 사람이 병으로 꿍꿍 앓는 소리,

요새 사람이 이래 죽고 저래 죽고 날마다 참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심지어는 교통사고로 수없는 사람이 죽어가고, 학생들이 자기의 주장을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방법으로 부르짖고 있고, 앞으로 또 얼마가 죽어 갈른지도 모릅니다마는 이러한 극한적인 중생의 생로병사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이런 것들마저도 큰 눈으로 보면, 깨달은 눈으로 보면 진리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본분(本分)에 들어가서 보면 생(生)이나 사(死)가 똑같은 것이고, 흥(興)과 망(亡)이 똑같은 것이고, 선(善)과 악(惡)이 똑같은 것이여. 부처와 중생이 다 똑같은 것이여. 그러니 제도할 중생도 없는 것이고 또 법을 설할 부처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생보다는 죽음이 괴로운 것이고, 흥보다는 망하는 것이 더 괴로운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는 더 괴로운 것이고, 병난 것이 건강보다는 확실히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닌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모습은 좋은 것보다는 고통이 더 많고, 착한 것보다는 악(惡)이 더 많어.

이런 속에 태어났으니, 우리가 과거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 좋은 천상(天上) 세계를 가지를 못하고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고, 이 사바세계도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났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마는.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 불법(佛法)을 바로 믿는 사람은 오히려 천상 세계보단 이 사바세계, 이 오탁악세에 태어난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있고, 그것을 소화시켜 나갈 수가 있고, 이런 것을 발판으로 해서 더욱 큰 발심으로 정진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는, 그렇게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7분3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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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화소산전설천기~' ; [금강경오가해] 如法受持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洩(설)새다, 비밀이 흘러나옴 *窮(궁)다하다, 궁구하다 *逢(봉)만나다

*천기(天機) ; ①매우 중대한 기밀. ②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이나 대자연의 비밀. 또는 신비.

*누설(漏泄·漏洩 샐 루/샐 설) ; ①비밀이 남에게 은밀히 알려짐. ②기체나 액체 따위가 밖으로 새어 나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무궁(無窮 없을 무/다할·끝날 궁) ; 끝이 없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신훈(新熏) : 어떤 중생이나 다 저절로 두렷한 본래 면목(本來面目)은 부처님과 털끝만큼 이라도 다를 것이 없다。그것을 본각(本覺)이라 한다。그러나 무명의 업장(業障)이 두터운 중생은 불보살의 교화를 받아서 발심(發心)하고 부지런히 닦아 비로소 크게 깨치는 부처의 열매(佛果)를 새로 맺게 되는 것이다。이것을 시각(始覺)이라 하는데, 시각을 이루는 수단 방법이 새로 닦는 것 곧 신훈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무풍기랑(無風起浪) ;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어나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 刊) p19~20에서.

佛祖出世가 無風起浪이니라.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이 마치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킴이로다.

 

<註解> 佛祖者는 世尊迦葉也요 出世者는 大悲爲體하야 度衆生也라. 然이나 以一物觀之則人人面目이 本來圓成커니 豈假他人의 添脂着粉也리요. 此가 出世之所以起波浪也라.

虛空藏經云, 文字도 是魔業이요, 名相도 是魔業이라, 至於佛語하여도 亦是魔業이라하심이 是此意也라. 此는 直擧本分인댄 佛祖도 無功能이라.

【 乾坤이 失色하고 日月이 無光이로다.

 

부처님과 조사는 즉 석가세존과 가섭존자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대자대비가 바탕이 되어 미(迷)한 중생을 건지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물건」으로써 본다면, 사람마다 본래 면목이 저절로 원만히 이루어졌거늘, 어찌 남이 연지 찍고 분 발라 주기를 기다리리요. 그러므로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잔잔한 물에 파도를 일으키는 격이다.

<허공장경>에 이르기를 「문자도 마(魔)의 업(業)이요, 이름과 형상도 마의 업이라,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또한 마의 업이라」고 하신 것이 이 뜻이다. 이것은 본분(本分)을 바로 들어 보일 때에는 부처님이나 조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말함이다.

【 하늘과 땅이 빛을 잃고, 해와 달도 어둡구나.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함.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함.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음.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됨.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심.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의 내용을 말함. 『선문염송(禪門拈頌)』 제2칙 '주행(周行)‘ 참고.

[참고]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大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병이니라』하였다.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2535년의 부처님오신날이 돌아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실 것도 없는 곳을 향해서 출세하신 것은 중생을 위한 너무나 뜨거운 자비심에서 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生死) 없는데, 분명히 생사를 받고 한량없는 고통 속에 헤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 ‘생사 없는 도리’를 일러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소치(所致) : [주로 ‘~의 소치’의 구성으로 쓰여]어떠한 까닭으로 빚어진 바.

*삼세(三世) : 과거와 현재와 미래. 또는 전세(前世)와 현세(現世)와 내세(來世).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열반락(涅槃樂) ; 열반의 즐거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온한 열반의 경계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말한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인(業因)에 의하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보잘것없다 ; (무엇이)가치가 없고 하찮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물심양면(物心兩面) :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두 면.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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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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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밖에서찾지말라2020. 5. 2. 09:06

밖에서 찾지 말라(복전암No.22)—마조 스님과 혜해 스님의 법문답, 자가보장(自家寶藏) | (게송)白雲雲裏靑山重~ | 여래장(如來藏)이 나가서 전개된 것이 이 우주법계(宇宙法界)다. 법계를 거두면은 바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주관과 객관이 별개(別個)의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여.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이뭣고?’로 돌아와야.

 

*밖에서 찾지 말라 ; 나이가 많건 적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열심히만 참선 정진해 가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니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찾으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루 속에 든 자라는, 자기가 아무리 종일토록 버르적거려도 자루 속에 들어있는 자라는 거기에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개야!” “예” 바로 거기에 있거든. 그놈을 내놓고 찾는 것이 아니거든.(송담스님 No.577—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지눌 스님)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 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의 마음만 알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아니 하여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여래(如來)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으며, 또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환화(幻化, 幻과 같은 變化)가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묘한 마음[圓覺妙心]에서부터 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오직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마음을 닦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행할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간절히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切莫外求]. 마음의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님이다.

 

(17분 24초)

 

[법문] 송담스님(복전암No.22)—1990년 관음칠성회 기도회향 법문(90.10.07) (복전암22)

 

화두(話頭)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내 마음을 찾는 방법이여.

 

불법(佛法)은 '내가 내 마음을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내 마음,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이라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마조(馬祖) 스님의 제자인 혜해(慧海) 스님의 지으신 법문이여.

그런데 그 스님은 중국에 월주(越州) 땅에 있는 대운사(大雲寺) 스님이었었는데, 마조 스님이라고 한 큰 도인(道人)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그 마조(馬祖)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떠억 절을 하니까 마조 스님이 묻기를, "어디서 왔는고?"하고 물으니까, "저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러 왔는고?"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집 보배 창고는 놓아두고서 뭣 하러 사방을 이렇게 돌아다니는고? 나한테는 아무 한 물건도 없는데 무슨 불법을 나한테 구하러 왔단 말인가?"

그러니까 그 혜해 스님이 일어서서 떠억 절을 하고서 묻기를, "어떤 것이 혜해의 자기집 보배 창고입니까?" 그렇게 여쭈었어.

 

 

오늘 십선대계도 받고 불명도 받고 화두도 받지마는, 진짜 이 산승(山僧)이 여러분께 꼭 간절히 일러드리고 싶은 말을 할라고 마음을 먹고 있으니까 전기가 딱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그만큼 신심(信心)이 돈독(敦篤)해서 진짜 마음에 보배를 찾아서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표를, 진짜 표를 타게 될 이 순간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인연(因緣)과 복(福)을 가지셨기 때문에 이 시간 맞춰서 전기가 들어온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이 혜해(慧海)의 자가보장(自家寶藏)입니까?"하고 여쭈어봤어.

 

마조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끔 내게 묻는, '어떤 것이 이 혜해의 자가보장입니까?'하고 묻는 바로 그놈이 너의 자가보장(自家寶藏)이니라. 바로 그 보장(寶藏) 속에는 일체가 다 원만구족(圓滿具足)해 있으며 조끔도 부족함이 없으며, 영원히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보장을 가지고 있으니 그 보장을 놔두고 어찌 밖에서 그 보장을 찾는단 말인고?"

 

그 말 한말씀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이것을 ‘언하대오(言下大悟)’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혜해 스님은 지적 이론(知的理論)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 부처님과 똑같이 확철대오를 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여. 안 것과 깨달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가운데에도 언하에 대오한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사 이 찰나 동안에 언하대오를 못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이 법문을 들은 그 인연으로 여러분은 반드시 확철대오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몸뚱이 있을 때, 금생(今生)에 못하면은 내생(來生)에라도 하게 되겠지만, 같은 값이면 금생에 이 몸뚱이 있을 때 확철대오 한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지끔 이 법문을 듣고 있는—그 듣는 것이 귀가 듣는 것이 아니어요. 듣는 놈은 속에 있고 다못 귀를 통해서 듣는 것이거든.

그 귀를 통해서 듣는 놈, 그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항상 그 의심(疑心)을 관(觀)해.

 

속이 상할 때도, 불끈 속에서 속상하는 놈이 요렇게 주먹탱이 같은 놈이 일어날 때, 바로 '이 일어난 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슬플 때 '이 슬퍼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고?'

괴로울 때 '괴로워 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고?'

가끔씩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플 때도 '이 아플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속이 상할 때마다, 원망스러울 때 괴로울 때, 그 찰나 찰나가 바로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바로 그 기회(機會)다.

 

 

백운운리청산중(白雲雲裏靑山重)하고  청산산중백운다(靑山山中白雲多)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여운산장작반(日與雲山長作伴)하면  안신무처불위가(安身無處不爲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운운리청산중(白雲雲裏靑山重)이요  청산산중백운다(靑山山中白雲多)로구나.

흰구름 뭉게뭉게 속에 청산(靑山)이 중중(重重)하고, 청산 산 가운데에 백운(白雲)이 많구나.

 

일여운산장작반(日與雲山長作伴)하면, 날이면 날마다 첩첩산중에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고,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 곳에 청산이 첩첩한, 구름과 그 청산을 길이길이 도반(道伴)을 삼고 살아갈 때에,

안신무처불위가(安身無處不爲家)로구나. 구름 뭉게뭉게 일어나는 곳, 청산이 첩첩한 바로 그곳이 내 몸 편안히 할 나의 집 아닌 곳이 없구나.

 

이건, 구름은 객관 세계(客觀世界)를 비유한 것이고, 청산은 주관(主觀)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객관(客觀)은, 주관(主觀)은 무엇이냐?

내가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코를 통해서 온갖 내음을 맡고, 입을 통해서 온갖 맛을 보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 육근을 통해서 모든 것을 느끼는 이 육근(六根), 느낄 줄 아는 놈이 그것이 주관(主觀)이고.

 

육경(六境),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모든 빛깔과 모냥, 모든 형형색색의 소리, 모든 냄새, 모든 맛, 몸뚱이를 통해서 느끼는 모든 색진(色塵), 촉(觸), 그리고 우리의 생각으로 하는 모든 법(法)이 다 그것이 객관 세계(客觀世界)인데,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이것이 객관(客觀)이여.

 

그런데, 모든 객관은 주관이 있기 때문에 객관이 인식(認識)되는 것이고, 또 모든 객관이 있기 때문에 객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관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여.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그 육진(六塵, 육경六境)이 없으면,

우리에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식(識)이, 육근(六根)을 통해서 식(識)이 일어나는 것이여.

 

그래서 육진(六塵, 육경六境)과 육근(六根)과 육식(六識)은 항상 이것이 삼위가 연관이 되어서 우리가 생활을 하고 온 세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여.

 

그래서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이 삼라만상 두두물물은 우리의 제팔(第八) 아뢰야식(阿賴耶識), 우리에게 그 여래장(如來藏)이 있기 때문에 그 여래장이 나가서 전개(展開)된 것이 요 삼라만상 두두물물 우주법계(宇宙法界)다.

우주법계가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여래장(如來藏)이 나가서 벌어져 있는 것이 바로 요 법계(法界). 법계를 거두면은 바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여.

 

그래서 주관과 객관이 두 개가 따로따로 별개(別個)의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여.

그래서 우리 참선(參禪) 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이뭣고?’로 돌아올 줄 아는 것이여. 귀로 무슨 소리를, 그 소리가 좋은 소리가 되었건 나쁜 소리가 되었건, 법문이 되었건 개 짖는 소리가 되었건, 무슨 소리든지 듣자마자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 법을 믿는 사람이 세계 60억 가운데 몇 사람이 되나 그말이여.

최상승, 불법(佛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법문(法門)을 듣고 믿는 사람만이 이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거여.

 

이 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밤낮 육진 세계(六塵世界), 외부 세계(外部世界)에만 팔려서 사는 거여.

그것을 비유해서 말하기를, 고향을 떠나서 타관(他官) 객지(客地)로 떠돌아다니면서 그 자기 딴은 참 좀 잘살아 볼려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나그네 신세(身世), 방랑객 신세로 일생을, 무량겁(無量劫)을 그렇게 살아가는 거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법문을 듣고 믿는 사람은 바로 자기의 쓰고 쓰고 써도 다함이 없는 보배창고에 보배가 가득—실컷 쓰고, 온 사람들한테 다 노놔 주어도 끝이 없는, 편히 살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밖에서 그 보물을 찾고 잘살 수 있는 길을 찾지마는, 지혜(智慧) 있는 사람은 내게서 찾어야 하는 거여.

 

만석꾼이가 되아도, 실제로 만석꾼이 갑부도 정법(正法)을 안 믿는 사람은 천하에 불쌍한 가난뱅이인 것이고, 별로 큰 재산이 없이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최상승법을 믿고 내 마음 속에서 영원을 찾는 사람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어.

보리밥에 나물밥을 먹고 살아도, 된장찌개 하나로 먹고 살아도 조끔도 부족함이 없는 거여.

 

자기가 지은 대로 잘살면 잘사는 대로 좋고,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좋고,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함이 없이 부러운 것 없이 충족(充足)하다 그말이여.(21분5초~38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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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마조(馬祖) : (709 – 788) 법명은 도일(道一), 속성은 마(馬)씨。사천성(四川省) 성도부(成都府) 십방(什放)에서 나서 어려서 출가하였다.

남악(南嶽)에 가서 좌선(坐禪)하고 있는데 회양선사(懷讓禪師)가 묻기를,

『무엇하고 있는가?』

『좌선합니다』

 

『좌선은 해서 무엇하려는가?』

『부처 되려고 좌선하지요』

 

그 이튿날 회양선사가 도일의 앞에 가서 벽돌을 돌에 갈고 있었다.

도일이 묻기를 『스님 벽돌은 갈아서 무엇하렵니까?』

『거울을 만들려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겠읍니까?』

『앉아 있어서 부처가 될줄 아는가?』

 

『......그러면 어찌 하오리까?』

『우차가 가지 않을 때에 수레를 때려야 되겠는가, 소를 때려야 되겠는가? 선은 앉거나 눕는 데 상관없는 것이며, 부처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집착이 없고 취사(取捨)가 없는 것이 선이다!』하는 말 끝에 크게 깨쳤다.

 

그의 법을 받아 가지고, 강서성 남강(南康)의 공공산(龔公山)과 강서성 남창부(南昌府) 종릉(鍾陵) 개원사(開元寺)에서 교화하니, 그의 법을 받은 제자가 139인이나 되었다.

 

그의 제자 남전 보원(南泉普願)에게서 신라의 도균(道均)선사와 철감(哲鑑)국사가 나왔고, 염관 제안(鹽官齊安)에게서 범일(梵日) • 진감(眞鑑)의 두 국사가, 귀종 지상(歸宗知常)에게서 대모(大茅)화상이, 대매 법상(大梅法常)에게서 가지(迦智)선사와 충언(忠彥)선사가, 마곡 보철(麻谷寶徹)에게서 무염(無染)국사가, 서당 지장(西堂智藏)에게서 도의(道義)국사와 혜철(惠哲)국사와 홍척(洪陟)선사가, 장경 회운(章敬懷暉)에게서 현욱(玄昱)국사와 각체(覺體)선사 같은 신라의 큰스님들이 나왔다.

당나라 덕종(德宗) 정원(貞元) 4년에 80세로써 입적하였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자가보장(自家寶藏) ; '자기집[自家] 보배 창고[寶藏]' 중생이 각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가리킴.

[참고] 『전등록(傳燈錄)』 제6권. 마조(馬祖)의 법손(法孫), 월주(越州) 대주사(大珠寺) 혜해(慧海) 선사.

越州大珠慧海禪師者建州人也 姓朱氏 依越州大雲寺道智和尙受業 初至江西參馬祖 祖問曰 從何處來 曰越州大雲寺來 祖曰 來此擬須何事 曰來求佛法 祖曰 自家寶藏不顧 拋家散走作什麼 我遮裏一物也無 求什麼佛法

 

그는 건주(建州)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인데,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 도지(道智) 화상에게 업을받았다. 처음에 강서(江西)로 가서 마조(馬祖)를 뵈었는데,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自家寶藏]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린 채 사방을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찌 불법을 구하겠는가?"

 

師遂禮拜問曰 阿那箇是慧海自家寶藏 祖曰 卽今問我者 是汝寶藏 一切具足更無欠少 使用自在 何假向外求覓 師於言下自識本心不由知覺 踊躍禮謝 師事六載

 

대사가 드디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慧海)의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온갖 것이 구족(具足)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으니,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대사가 그 말끝에 근본 마음[本心]은 지각(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바로 알아채고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하고 사례하였다. 그리하여 대사는 6년 동안 시봉하였다.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지끔 이 법문을 듣고 있는—그 듣는 것이 귀가 듣는 것이 아니어요. 듣는 놈은 속에 있고 다못 귀를 통해서 듣는 것이거든. 그 귀를 통해서 듣는 놈, 그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항상 그 의심(疑心)을 관(觀)해'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게송) '백운운리청산중(白雲雲裏靑山重)~'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운산(雲山)'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진(六塵) ; 육경(六境).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육진(六塵)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여래장(如來藏) ; 산스크리트어 tathāgata-garbha 본래부터 중생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가 될 가능성. 중생의 마음 속에 저절로 갈무리되어 있는 여래의 청정한 씨앗. 중생이 모두 갖추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져 있는 여래의 성품. 모태(母胎)의 태아(胎兒)처럼, 중생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부처의 성품.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