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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3.09 법거량(전강선사 No.012)—용성스님이 만공스님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 전강스님의 반문(反問)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2. 2022.03.08 법거량(전강선사 No.011)—이회광 스님과 석두 스님의 법거량 | 제산 스님과 해인사 선방 대중이 주지에게 쫓겨나 김천 직지사로 감.
  3. 2021.12.13 불(佛) ((No.472))—(게송)邪路不用行~ | '불(佛)'이란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 일체처 일체시에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4. 2021.11.28 보살((세등51))—『논어』 | (게송)從他謗任他非~ | 누가 나를 헐뜯어도 그 말을 감로수처럼 달게 받아 마셔서 수행하라 | 바다와 같은 아량을 가지고 살아 가라.
  5. 2021.11.27 본참공안((세등51))—대의지하 필유대오 | 최상승법은 일념 속에서 육도를 끊어버리는 것 | (게송)摩尼珠人不識~ | 깨닫기를 바랄 것이 없다.
  6. 2021.11.25 방편((세등51))—달마 조사가 전해준 직지인심,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하는 활구참선법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설.
  7. 2021.11.23 법거량(전강선사 No.011)—용성 스님과 법거량.
  8. 2021.11.20 법거량(전강선사 No.008)—통도사 극락암 혜월 스님과 법거량 | 혜월 스님의 영아행(嬰兒行) | 무애(無礙)라는 것은 법체(法體)에 걸림이 없다.
  9. 2021.11.19 법거량(전강선사 No.008)—지리산 쌍계사 동방장에 계신 허태오 스님과 법거량 | 모든 경계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10. 2021.11.18 법거량(전강선사 No.008)—(게송)暮山促笻雨~ | 전강선사 오도송(悟道頌) | 혜봉 스님과 법거량.
ㅂ/법거량2022. 3. 9. 09:19

법거량(전강선사 No.012)—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 전강 스님의 반문(反問)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 ‘찾다가 죽는다’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4분 28초)


[법문]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전012)

오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우리 부처님이 도(道) 깨달은 납월팔일인디, 납월팔일 아침에 우리 부처님 도 깨달은 역사를 말씀을 해야 옳을턴디.
오늘은 납월팔일이기 따문에 참, 성도재(成道齋)여. 성도재인디, 오늘 오후 오늘 아마도 12시에 시작하면 한 2시경까지 또 법문이 있겠으니 그때에 성도 법문은 헐 요량하고.

저번에 뭐 일대기에 가서, 저 용성 스님 회상(會上)에 가서 용성 스님께 제일귀(第一句) 문답해서 제일귀 문답 마치고, 그다음에 말후구(末後句) 문답 마치고. 거기에 또 문답이 있거든.
저번에 그걸 내가 안 했구만. ‘한암 스님한테 간다’는 이렇게까장만 하고는 그 용성 스님께 마지막 문답(問答) 안 했어.

고 문답을 마자 해야지. 그 내 기이(旣已) 과거에 공부헌 역사기 따문에 조꼬만헌 것이라도 빼놓을 수가 없고. 쪼옥 역사라 하는 것이 꼭 그것은 그대로 똑 해놓아야 허는 게 역사니까.
조끔이라도 거기에 위조가 있다면은 그 미래 학자한테 거짓말로 속여 놓은 거 아닌가? 그 죄를 어떻게 헐 텐가. 죄보담도 정법문중에서 어찌 그렇게 꾸며대는 말이 어디 있을 건가?


내가 거기에는, 인자 용성 큰스님께 묻는 말이여. 내가 들은 법문이거든! 과거에.
용성 큰스님께서—만공 스님이 서울을 올라오셨는디. 서울 선학원(禪學院)에 오셔서 계시는데,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그랬거든. ‘어묵동정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것입니까’

어묵동정(語默動靜), '말씀 어(語)' 자, 어묵 묵(默)이라는 건 말 없는 경계를 묵(默)이라 하지 않소.
“어(語)와 묵(默)과 동(動)허고 정(靜)허는 거 여의고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니 어묵동정을 여의고 그 이르라고 했네.
그러니깐 만공 큰스님께서 아무 말이 없어. 그 말 없는 경계를 양구(良久)락 햐. 가만히 있었다 그 말씀이여. 일체 말도 않고, 동도 않고, 정도 않고, 가만히 말만 없이 계셨다.

용성 큰스님께서 “양구(良久)시오?” 그랬다. “양구십니까?”
아무 말이 없는 도리가 양구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한마디 일러달락 하니까 아무 말씀이 없이 계시니 “그 양구십니까?” 이렇게 또 물었다.
만공 스님, 또 아무 말이 없다. 아무 말이 없으셨어. 아, 그러고 말았네.


내가 그때에—그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그걸 내가 전신구(轉身句) 답헌 뒤에 그걸 물었어.

용성 큰스님이 만공 큰스님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아무 말씀이 없으니까 “양구십니까?”—오! 또 아무 말 없는 게 아니라, 또 “양구십니까?” 그러니께,
“아니요” 이랬다. 고렇게 했어, 인자 끝에. 그러고 말았어.

“세상에 용상대덕(龍象大德)이 두 분이, 두 어른네가 법문을 해 놓으신 이 법이, ‘어묵동정 여의고 이르십시오’ 아무 말이 없으니까, ‘양구요?’
‘아니요!’ 이래 놓았으니, 학자의 눈을 멀려 놓고 만 짓이제, 이렇게까장 허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어른네가 멱사리을 잡고 같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말았지, 거 학자 죽인 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가 이랬다. 이 조잔헌 것이. 허, 이거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 이랬다 그 말이여.

황송허기야 짝이 없고, 감히 어디가서 그런 큰스님네 앞에 그렇게 법을...
'두 큰스님네가 멱사리을 붙잡고 한 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지, 어디 학자의 눈을 띄울 수가 있습니까?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을 뿌리고 물에 들어갔습니다' 물속으로 빠진 거여.

허지마는 내가 아무리 조잔하고 내가 아무리 학자지마는 학자가 어른 앞에 어디 감히 그렇게 함부로 입을 열어서 경망헌 행동을 허리요마는, 법체(法體)에 들어가서는 헐 수 없어. 시비헐 건 시비해야 하는 것이지, 안 헐 수가 있어?

아, 비단 그뿐 아니라 어떻게 아구지가 세고 쬐끄만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막 들어서제. 막 덤벼. 아, 이런 꼴이 있는가?
나도 그런 줄 알지마는 별 도리 없어! 이 참선 도리야 어쩔 수가 있는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역사에 없는 우리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신데, 갬히 그 앞에 몇백 년 뒤일지언정 손자 중, 손자도 아니고 아무 저 밑에 천삼백 년 후에 나온 운문승(雲門僧)이 우리 부처님한테 그만 그 법문 좀 봐.
“아유당시(我有當時)면, 내가 만약에 그때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여구자긱(與狗子喫)이다. 한 방맹이로 타살(打殺)해 죽여서 개를 준다”

어찌 그 말을 헐 것이냐!
이건 헐 수가 없어. 요런 도리를 썼다.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요렇게 썼닥 해서 아무라도 그렇게 써? 그 운문 눈이래야 바로 보고 쓰지!
운문선사는 그대로 써 놓은 말인디, 그건 부처님의 그 무슨 체면과 무슨 우리 부처님의 무슨 천상천하에 거룩헌 명예에 무슨 떨어져서, 그것 소용 없어. 그건 막 보고 쓴 법문인데.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요.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범틀 못헌 법이고. 불입호혈(不入虎穴)이면 쟁득호자(爭得虎子)제. 호랭이 구럭에 들지 아니허면 호랭이 새끼를 어떻게 얻을 것이냐? 선(禪)의 도리라는 것은 헐 수가 없드라 그 말이여.

그런 바른 눈이 있을 것 같으면 큰스님 앞에 별 도리라도 쓸 수 있어! 허지마는 눈도 없는 것이 그따구 짓 했다가는 어째? 참말로 못된 것이고, 참말로 건방진 것이고, 참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활살같이 떨어지는 법이여. 못 허고, 또 허들 못 혀!

뭔, 내가 그러면은 ‘나는 그런 눈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 같지마는, 눈이 있으면은 그 말 같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무슨 뭐 뭣을 내가 두고 머물거릴 것이여?
뭐 거그서는 한번 아주 건방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막 들어서는 자리다 그 말이여. 안 헐 수 있어? 아무리 큰스님네지마는, 흙탕 속에 바로 떨어진 것 아닌가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영신이는 어떻게 이를 테냐? 우리 둘이는 만공 큰스님과 용성 스님은 한 흙탕 속에 그대로 빠졌다면, 자네가 하나 일르소. 자네는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테냐?”

나는 거그서 반문(反問)을 했어. 반문.
좀 여러 여그 모이신 우리 대중이 자서히 들어보라 그 말이여! 벌로 듣지를 말고.
건방진가 안 건방진가 좀 봐. 참인가 아닌가도 좀 보고! 간택을 허라 그 말이여! 거그서.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
양구(良久), 그 말 묻는데 내가 떨어지지 않고 어(語)니, 묵(默)이니, 동(動)이니, 정(靜)이니, 그러헌 데다 떨어지지 않고,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입니까?”
그 문(問)이, 한번 묻는 것이 그 무슨 문(問)이여? 응, 그 무슨 문이냔 말이여?

아무리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가루가 그렇게 좋다마는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되는 법이다.
거그서 제일구(第一句)를 일러? 거그서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일러? 거그서 본분(本分)을 추켜 들어 일러?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처(道亦假名處)를 일러? 천하 없는 것을 이를라고 이치를 잡아 찾으면은 저 죽는 것이다 그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이냐. 한번 보라 그말이여!
‘찾다가 죽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여.

“자네는 어떻게 이를텐가?”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공경히 허니 어쩔 것이냐 그 말이여, 거그서.

다시 그대로, 그대로 거그서, 뭐 그대로 그만 말 없는 곳에서 그대로 인가여! 뭐, 두말헐 것 없어. 그 전국에 다, 내 그 다 해 놓은 거 전국에 다 있는 것이여. 고놈 마쳤다 그 말이여. 건방지게 어디 했지.
건방진 걸 봐, 거그서? 참말로 내가 못된 것인가? 여지없지.

거그서 문답 한번 해봐. 답 한번 해봐!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한 그곳에 나아가서, 얼마나 큰스님이 그 무거운 방맹이를 짊어졌는지 거두(擧頭) 못 혀. 바로 거그서 바로 살피지 못허면은, 바로 거그서 그 활살 피허지 못허면은 안 되아.

내가 모도 그 다 법문허는디 다 설해 놨지마는 이 법문을 잘 들어두라 그 말이여. 녹음 잘될 것이고 뭐 기위(旣爲) 이 내의 무슨 그 역사를 말해 달락하니 요 법문헌 것이여.(8분20초~22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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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대종사 법어』 (용화선원刊) p19~20 참고.
같은 해에 대각사에 계신 용성 스님을 배방하였다.
용성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냐? (如何是第一句)” 나는 높은 음성으로 “예?” 하니 용성 스님께서 또 묻기를, “여하시 제일구여?” 나는 박장대소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셨다.

내가 여쭙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였더니 용성 스님이 부르시기를 “영신아!”  “예.”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용성 스님은 즉시 “제일구니라.” 하셨다.  나는 또 박장대소 하였다.
용성 스님께서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하시기에, 나는 “그러면 전신구를 물어주십시오.” 했더니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내가 답하되, “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하고 물러 나왔다.

수일 후에 용성 스님께서 대중에게 공포하시기를, “허!  내가 영신이에게 속았구나!” 하셨다.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만공 스님은 “속은 줄을 아니 과연 용성 스님일세.” 라고 하셨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마자 ; ‘마저(남김없이 죄다. 또는 마지막까지 다)’의 사투리.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어묵동정(語默動靜) ; 말하고[語] 침묵하고[默] 움직이고[動] 쉬는[靜]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언행(言行)을 총괄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하나의 짝으로 쓰이기도 한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용상대덕(龍象大德) ;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덕행을 구족한 걸출한 수행자’를 가리킨다.
*멱사리 ; ‘멱살(사람의 멱 부분의 살. 또는 그 부분.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의 사투리. *멱 : 목의 앞쪽.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속이 좁다)’라는 뜻의 사투리.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아구지가 세다 ; 하는 말이 세다(강하다). *아구지 ; ‘아가리(‘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천상천하(天上天下) ;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병이니라』하였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거두(擧頭 들 거/머리 두) ; ①머리를 듦. ②머리를 숙이는 일 없이 떳떳하게 남을 대함. ③중한 병이 조금 차도가 있어 머리를 들 정도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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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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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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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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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2. 3. 8. 10:58

법거량(전강선사 No.011)—해인사 이회광 스님의 진산식 설법상에서 석두 스님(효봉스님의 은사스님)의 법거량 | 제산 스님과 해인사 선방 대중이 해인사 주지에게 쫓겨나 김천 직지사로 감.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5분 15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그래 가지고는 제산 큰스님이 그렇게 깨끗허게 청정허게 오래오래 화두를 조금도 밥 먹을 사이도 틈이 없이 공부를 잘허셨기 따문에 ‘제산스님’ 헌 이름이 나서 학자는 많이 그 어른 밑에 지낸다 그 말이여. 그때는 더더군다나 그리 선지식(善知識)이 귀혔고.

그래 가지고는 합천 해인사에서 하도 오래 지내—경허 큰스님은 인자 거그서 좀 계시다가, 조실에 계시다가 딴 디로 가셨고—합천 해인사에 들어오셔서 오래오래 계시니깐 그대로 제산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셔. 뭐 학자들 뭐 그렇게 눈을 띄워 주든 못허는 그러헌 스님이시지마는 그래도 원청 수행이 참 존중허시니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데.

그때 마침 학자가 한 30여 명 있는데, 그때 주지(住持)는 누구든고 하니 이회광(李晦光) 스님이여. 이회광 스님이라고 굉장헌 이가 있었소. 시방 그저 ‘이회광 스님’이면 그이 얼굴을 본 이가 있는가 없는가는 몰라 그러허되, 이회광 스님이 주지인디.
이회광 스님이 첫 주지로 인자 되아 가지고, 합천 해인사 큰 법당에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주지된 후에 진산식(晉山式)에 대중이 인자 그 삼백 명 대중이 주지 스님으로 모셔 가지고는 그 법상에 올라오셔서 설법을 척 헌다.

아주 그때는 처음 와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설법상(說法床)에 올라가서 설법을 척 허는데, 그때 제산 큰스님 회상에 수좌(首座) 하나가 누가 있는고 하니 보택(寶澤)이, 택수좌가 있어.
보택이, 택수좌라는 스님은 누군고 허니 석두(石頭) 스님이여, 임석두 스님인디. 임석두 스님은 누군고 허니 돌아가신 종정스님, 효봉(曉峰) 스님의 은사스님이여.

그 스님 이름이 보택이, 택수좌인디. 보택이 택수좌로 그때 그 제산 스님 회상에 참선을 허고 있다가, 이회광 스님 주지가 되아 가지고 진산식 설법허는디 그 법회에 참례해서 법을 듣는데, 그 회광 스님도 수좌로 공부를 허고 댕기다가 해인사에 들어와서 주지가 되았거든. 인자 진산식 설법에 회광 스님이 법문을 허시는데, 그 법문을 들어보란 말이여.
인유(因由)를 다 말해야 되는 것이여.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것이여. 부처님 법문에도 인유분(因由分)이 있거든, 인유분. 그 주욱 얘기를 해 가지고는 인자 딱 헌다, 이런 인유가 있어. 무조건 툭 허고만 나오면 되아?

그래 해인사 큰 법당에 이회광 스님 인자 진산식 설법허러 올라가서 진산식으로 법상에 올라가 설법헐 땐디. 얼마나 그 법보종찰(法寶宗刹)에 참, 주지가 되아 가지고는 산중이 다 모였는데 삼백 명 대중이 모았어.
그리고 또 서울서 그 소문이 난 이회광 스님이기 따문에, 서울 상궁(尙宮)들이 다 믿은 스님이기 따문에 천상궁 이하에 그 상궁들이 수백 명이 내려왔어. 상궁이 꽉 차고 산중 스님네가 한 삼백 명이 차고 뜰까장 꽉 찼는데.
그 큰 법당에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을 허는데—지금 설법을 지금 헐 판이지, 올라갔지. 턱 앉었는데, 회광 스님 참 인물이 잘났거든. 그 이상 더 잘날 수 없지. 틀이 잘 생겨 가지고 올라가 법문허는디, 주장자를 추켜들고. 이게 법문이여!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과 금일대중(今日大衆)이 산승(山僧)의 입으로 나왔느니라” 그랬네.

아, 그래 놓으니깐 불가불 물을 수밖에 없지. 효봉 스님 은사스님 보택이 택수좌, 그 스님이 척! 나와서 앞에 와서 척 공경허게 절을 한 자리 딱—그 묻는 법이 그려. 다 그래야지.
절을 딱 허고는 합장하고 척 서서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금일대중은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회광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화상(和尙)은 종하처출(從何處出)고? 화상은 어느 곳으로써 나왔습니까?” 물었네.

그 대답헐 자신(自信) 있는가? 자신 있는가?
바로 보여야 하지, 못허는 것이여! 거, 어름해 가지고는 못 헌다니까 그래. 요리조리 생각허다가는 허들 못 하고 더군다나 말헐 것 없지마는, 바닥이 툭 드러나지 않고는 못 혀.

고놈 한마디 해 놓으면은 그 밖에 더 무서운 답이 나오네. 문답이 그 밖에가 더 있어.
그 하나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제. 어디 여그 우리, 또 우리 저 모도 먼 디서 모도 온 보살님네도 한마디 대답해 보고.

많이 선방에 댕김서 공부허신 어른들이 여기 시방 모도 계신디, 원 체면만 채려도 못써. 툭! 견성해 가지고는 또 애끼기만 허는구만. 애껴 놓으면 뭣 혀. 푹 나와야지.
한마디씩 모도 허면은 나도 한마디 헐 터이지마는, 정말 법문을 들을라면은 한마디씩 해 볼 것이지마는, 밑천이 짤러 가지고는 못 햐. 고놈 한마디 겨우 답해 놓고 나면 어쩌라고. 큰일나제.

다 제 방맹이에 죽느니라. 제 방맹이에 저 죽고 마는 것이여.

그러니까 그만 그 보택이 택수좌님이 아, 거그서 그만 들나지 않게 은근하게 한마디 잘 이르고 나오면은 그 좋을 것이다 그 말이여.
세상에 그... 헌디 아, 옷을 벗어서 장삼(長衫)을 척 벗어서 어깨에다가 척 걸쳐 메고는 “분허다!” 쳐다보고, 법상에 앉었는디 “분허구만! 속한(俗漢)이 놈한테 내가 절헌 것이 분혀!” 아, 이러고는 그냥 장삼을 메고는 불수변거(拂袖便去)를 해버렸네.

그러니 그 위신(威信)이 그 무엇이여. 그렇게 큰 대중이 다 모이고 서울서 상궁 대중이 다 모이고, 비구니 대중이 다 모이고 그런디 그렇게 헐 수가 있어?
허, 이거 참, 어쩔 것이여 그거, 회광 스님으로서 어쩔 것이여. 참 기가 차제!
법문을 헐래야 헐 수가 있소? ‘속한이 놈한테 절했다고 분허다’고 나가 놓으니. 아, 그랬다더니.

아, 이번에 내가 또 들었구만. 나 인자 이번에 들었구만.
수련대회 학생이 송광사로 갔드랴. 간디, 그 대회에 따라온 이가 누군고 하니, 요새 그 왜 처사님이 견성했다고 헌 이가 있는데. 백봉처사라고 허나? 그 처사가 요새 그랬다는데.

여그 이 자혜 수좌가 잘 알고 와서 얘기해서 들었구만. 아, 거그에 창영 수좌가 있다 하나? 창영 수좌인가 누가 있었는디, 가서 그만 법문을 가만히 듣다가는 무슨 법문에 그 졸가리가 나왔드만, 나 그건 모르겄구만. 나 인자 들어.

탁! 채고 물으니께 그만 어름어름 말대답을 못 하니까, “요까짓 것들이 다 어느 곳에서 와서 견성했다고 입을 벌려? 당장 여가 어디인디, 16국사 도량인디 여그 와서”
아, 그래 가지고 거그서 헐 수 없어 그만, 그 냅대 그만 법방(法棒)을 냅대 내리는 바람에 도망갔대아. 그냥 도망가지. 도망가 버렸대 그냥. 마누라까장 데리고 왔다가.
아, 그랬다고, 여그 조그만헌 자혜 수좌가 그 소리를 해서 내가 그저껜가 들었구만.
그 그런 것이란께. 아, 그 어떤 처사인지 모르지마는 그 참, 그 우세 그 큰 우세여. 함부로 입 벌릴 수 없는 것이여.


아, 그렇게 점잖은 이가 그래도 거그서 그만 바싹 절단나 버려. 살림살이 푹 베져 버리고.
못 하네, 그거. 자, 그만 그래 그만 법문헐 수가 있는가? 법문을 해야 헐턴디 법문을 못 혀, 그 정도면.

그만 그길로 법문 못 허고 내려와서는 가만히 그만 주지실에 와 있다가, ‘이놈의 주지를 내가 공연히 왔구나, 이러헌 산중에 이러헌 놈의 우세가 어디 있노’ 우세 안 헐 수밖에 없제.
위신이 암만 점잖하고 암만 학식이 넉넉헌들 이 법은, 이 일착자(一着子) 도리는 헐 수 없어.

대체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정여무정과 금일 대중까장이라도 내 입에 나왔느니라’ 자기가 해 놓았으니, 자기는 어디서 나온 걸 바로 일러야 할 것 아닌가? 저 나온 걸 일러야 헐 것 아니여?
이런 도무지 아, 그놈을 못 일러 놓았으니, 대갈빡이만 있고 몸뚱이 없는 것이제, 뭣이여?

법문 못 혀. 내려와서는 그날 밤 잠 한숨 못 자고는 주지실에 띄우고는 그 이튿날부텀은 달리 어떻게 헐 수 없으니까, ‘합천 해인사 그 퇴설당을 못 파라, 못을 파라’ 그 이유는? 왜 못을 파라느냐?
‘못 파라’는 것은 장경각(藏經閣)에 불을 꺼야 허겄으니깐 못을 파라 이거여.

인자 쫓아내는 것이지. ‘수좌, 쏵 가거라’ 주지니까, 주지 직권이니깐, 헐 수 있어? ‘못을 팔 터이니 나가거라’
헐 수 없어서 그때 쫓겨나는데, 보택이 택수좌님 따문에 온 대중이 다 쫓겨나는데, 헤 기차제! 그때만 해도 주지 권리가 참 무섭다.

불통령 재를 넘어서... 목통령(木通嶺) 재가 불통령(不通嶺)일세. 이 정공은 잘 알거네.
목통령이 거 불통령이여. 왜 불(목)통령인고 허니 ‘아니 불(不)’ 자 대각빡이 올라간께 목(木) 자가 되었어. 갖다가 불통령을 목(木)자로 목통령(木通嶺)으로 된 거여. 그래 목통령인디.

목통령 재를 넘어서 김천 직지사를 오셨네, 제산 스님이. 그래 가지고 그 김천 직지사에 가서 그 어른이 와 계시면서 또 선객(禪客)이 한 사오십 명 모아서 살기 따문에 직지사가 그 참, 한국에 제일가는 선방이 되았었구만.
여까지, 내가 이 말허니라고 여까지 헌 것이여. 그 인유를 얘기허니라고 여까장 헌 것이다 그 말이여.(43분37초~58분5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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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으나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을 성립한 이래 1910년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또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진산식(晉山式 나아갈 진/뫼 산/법 식) ; 절의 주지가 새로 취임하여 거행하는 의식.
*설법상(說法床)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인유(因由 인하다·인연·유래 인/말미암을·까닭 유) ; 일의 내력(來歷)이나 까닭.
*법보종찰(法寶宗刹) ; 불 · 법 · 승(佛法僧) 삼보(三寶) 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 놓은 팔만대장경판인 법보(法寶)를 봉안하고 있는 절. 우리나라에서 합천 해인사가 법보종찰이다.
*상궁(尙宮) ; 조선 시대에, 내명부(內命婦 궁중에서 여러 벼슬자리에 대하여 매기던 등급인 품계品階를 받은 여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하나인 여관(女官)의 정오품 벼슬.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짤르다 ; ‘짧다’의 사투리.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불수변거(拂袖便去) ; 소매를 떨치고 문득 가버리다.
*위신(威信) ; 지위나 신분에 따른 위엄(威嚴 위세가 있어 의젓하고 엄숙한 태도나 기세)과 신망(信望 믿고 기대함. 또는 그런 믿음과 덕망).
*졸가리 ; ①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②사물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버린 나머지의 골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우세 ; 남에게서 놀림이나 비웃음을 받음. 또는 그 놀림이나 비웃음.
*일착자(一着子) ; 일착(一着). ①(바둑에서) 한 수 두다. 일수(一手)와 같음. 선승이 불교의 교리나 수행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는 것을 비유하여 한 말. ②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마음자리를 뜻한다.
*장경각(藏經閣) ; 장경각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고려대장경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을 말한다. 남쪽의 수다라전(修多羅殿)과 북쪽의 법보전(法寶殿)이 있으며, 서쪽과 동쪽에는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보 제52호로 정식 명칭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퇴설당은 장경각 옆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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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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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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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불(佛) 불법(佛法)2021. 12. 13. 16:53

불(佛) ((No.472))—(게송)邪路不用行~ | '불(佛)'이란 말이 인도 말로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 일체처 일체시에 그 경계(境界)에 팔려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불(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역(音譯)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7분 22초)

 


[법문] 송담스님(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용472)

사로불용행(邪路不用行)하라  행지왕신고(行之枉辛苦)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요구불과(不要求佛果)하라  식취심왕주(識取心王主)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산(寒山), 습득(拾得),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 화현(化現)이고,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화신(化身)이다' 하는데, 지금 산승(山僧)이 읊은 게송은 문수보살의 화현이신 한산의 게송입니다.

사로불용행(邪路不用行)이라, 삿된 길은 가지를 말아라.
행지왕신고(行之枉辛苦)니라, 삿된 길을 가면은 쓸데없이 쓰라림과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를 하는데, 자꾸 옆에서,
"이뭣고를 해 봤자 하근기(下根機)는 깨닫지도 못하고, 밤낮 해봤자 맛도 없고 아무것도 되는 것도 없고, 어쨌든지 지장경을 읽어라. 금강경을 읽어라. 무슨 주력을 해라. 아미타불을 불러라. 아미타불은 부르다가 마지막 죽을 때 열 번만 부르면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반야용선을 가지고 데리러 오는데 그걸 하면은 돈도 안 들고, 참 고생할 것도 없고.
이뭣고 해 봤자 결제(結制)하러 가면은 돈 내야 하고 또 잠도 마음대로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죽비(竹篦) 치고 시간 맞춰서 앉으려면 허리 아프고 그러니 그까짓 거 뭐하러 그걸 하려고 하냐? 이것을 해라. 이거 읽으면 참 좋다는데 이것을 하지, 그거 참선은 다 최상근기를 타고 나야 그 사람이 닦지, 지금 참선한다고 해 봤자 누구 견성한 사람 봤어? 하지 말고 요렇게 이거하라"고 자꾸 옆에서 속삭속삭하면,

'대체 며칠 가서 해 봤지마는 별로 얻은 것도 없고, 누구는 꿈에 무엇을 나타나고 무엇을 했다는데 나는 별로 보인 것도 없고' 솔깃하니. 그래도 와서 법문 들어보면 '참선을 해야 한다'고 그러고, 또 그 옆에 말을 들어보면은 또 그것이 좋을 것 같고 갈팡질팡 갈팡질팡해.
그러지 말고 '굿을, 아무개가 굿을 잘하는데 굿을 하면은 어쩌고저쩌고 한다'
또 '굿을 할까?' 갈팡질팡하면 그 사람이 무엇이 되냐 그 말이여.

불요구불과(不要求佛果)여.
부처님이 탄생하신 뒤에 부처님 법에 의지해서 도 닦은 스님네나 청신사 청신녀가 수백만 명이지만, 부처님 같은 사람 한 번이나 나왔냐 이거거든. '그러니까 그거 다 소용없고 어쨌든지 아미타불 불러 갖고 극락세계 가는 것이 제일이다' 들어보면 그럴싸하거든.

참선을 하는데, 부처님과 같은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불과(佛果)를 구하지 말아라 이거여.

식취심왕주(識取心王主)니라.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공을 탁! 알아버려라 그 말이여.
그것을 깨달아 버려야지, 거기다가 목표를 둬야지—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야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놈이 다 있거든.
바로 그놈을 탁! 식취(識取)하라 그 말이여. 딱! 알아차리라 그거거든.

성날 때, '이뭣고?'
탁! 이 성난 놈, 그놈을 챙기는 거거든.

뭘 볼 때, 탁! 볼 줄 아는 '이뭣고?' 탁! 챙겨라.
그렇게 챙겨 나갈 때 찰나찰나에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거여, 그게.
그놈 내놓고 무엇을 깨닫느냐 그 말이여.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佛)'이여.

'불(佛)'이란 말이 인도(印度) 말인데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말이거든.
실달 태자(悉達太子)가 출가해 가지고 구담(瞿曇) 사문(沙門)이 되었는데 견성, 그걸 깨달았거든.

별을 보고 깨달으셨는데, 깨달은 뒤에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것이 아니어. 내나 깨닫기 전에 그 모습을 가지고 계셨어.

우리는 32상도 갖추지 못하고, 80종호도 갖추지 못하고, 배고프면 밥 생각나고, 때리면 아프고, 욕하면 성내니까 흉악한 박지범부(博地凡夫)지만,
성날 때 '이뭣고?' 하고, 슬플 때 '이뭣고?' 하고, 속상할 때 '이뭣고?' 하고, 원망스러울 때 탁!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이뭣고?' 한 그 찰나찰나 우리도 부처님이여. 그놈 내놓고 절대로 부처가 따로 없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부지런히 일체처 일체시에 그 경계(境界)에 팔려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그것밖에 정법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활구참선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견성성불의 길도 없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1시간11분13초~1시간18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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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보살2021. 11. 28. 08:21

보살((세등51))—『논어(論語)』,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 (게송)從他謗任他非~ | 누가 나를 그렇게 헐고 뜯고 해도 그 말을 감로수(甘露水)처럼 달게 받아 마셔서 수행해 나가는 데 밑거름을 삼아라 | 불자(佛子)라면 바다와 같은, 하해(河海)와 같은 아량을 가지고 살아 가라.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한다.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12분 8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유교 경전에 『논어(論語)』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이 사서(四書) 중에 하나인데, 그 논어의 첫마디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워서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즉 기쁘지 아니한가'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乎)아. 벗이 있어서 먼 데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별로 뭐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지 아니한데, 깊은 뜻이 있지 아니하면 왜 논어에 첫마디에 그것이 있을까 보냐?  무슨 경전이든지 첫마디에 있는 법문이 그 경전에 최고에 깊은 진리를 표현했다고 보면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워서 때때로 익힌다' 하는 것은 무슨 글공부를 글을 배워 갖고 그것을 자꾸 읽어 쌓으면 기쁘지 아니하냐. 그러한 피상적인 뜻이 아니라, 도(道)를 얘기한 것입니다.

선지식으로부터—우리 불교, 이 선학(禪學) 이 종문(宗門) 중에다가 비유를 한다면,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도 닦는 법을 배워 가지고 시시때때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열심히 공부를 하면 얼마나 기쁘냐 그 말이여. 기쁘지 않겠느냐?
아 공부를 하면 '참 내가 어쩌다가 이런 좋은 최상승법을 만났는가? 내가 어쩌다가 이 몸뚱이를 받아 나서 이런 좋은 법을 만났는가?' 밥 먹다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기쁘고, 중생들의 그 고해(苦海)에 빠져서 그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허덕이는 것을 보면은 불쌍하면서 가엾으면서, 내 자신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참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 말이여.

그다음에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乎)아.
벗이 있어서 먼 데서 오면—막걸리 친구나 뭐 동창생이 찾아오면 얼마나 기쁘냐? 그러한 말이 아닙니다. 같이 발심(發心)을 해서 도를 닦은 도반이 내가 공부를 참 잘한다는 말을 듣고 나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온다면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그 말이여. 내가 출가해 가지고 별로 훌륭하지를 못하고 도를 잘 못 닦고...(녹음 끊김)

성내지 아니하면 이것이 군자(君子)가 아니냐?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수행인이 아니냐 그 말이여.
자기가 조금 뭣 좀 한다고 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래고 그것을 자랑하고, 내가 제일이라 하는 생각을 갖고 남을 헐뜯고 한다면은 이것을 어찌 참다운 수행인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유교에 있어서 군자(君子)란 말은 불교에 있어서 '진실한 수행인이다. 또는 보살이다' 이러한 정도에 뜻과 같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살 십중대계(十重大戒) 가운데에 하나에, 불자찬훼타(不自讚毁他)라고 하는 조항이 있는데,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고 하는 것은 보살이 지켜야 할 십중대계에 하나를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답지 못한 사람이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을까 보냐 그 말이여.
세속에 선비도 조금 어지간한 사람은 그러한 법이 없거늘, 하물며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을 결별해 버리고 생사를 바쳐서 최상승법을 닦아 가는 수행인이고서야 더욱 말할 것이 있느냐 그 말이여.


종타방임타비(從他謗任他非)여  파화소천도자피(把火燒天徒自疲)니라
나무~아미타불~
아문흡사음감로(我聞恰似飮甘露)하고  소융돈입부사의(銷融頓入不思議)니라
나무~아미타불~

종타방임타비(從他謗任他非)여, 남이 나를 비방하면 비방하는 대로 맽겨둬 버리고, 나를 헐고 뜯으면 헐고 뜯는 대로 그 사람한테 그 맡겨둬. 맘대로 하라고.
파화소천도자피(把火燒天徒自疲)니라. 횃불을 들고 허공을 불사르려고 하는 것 같애서 저만 피로하고 말 것이다 그 말이여. 횃불을 들고, 아무리 훨훨 타는 큰 횃불을 가지고 이 하늘을 불사를라고 막 해봐라 그 말이여. 허공이 타는가? 그러다가 저만 피로해 가지고 지쳐 쓰러지거나 잘못하면 불똥이 튀겨서 지 몸이 타고 말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나 아문흡사음감로(我聞恰似飮甘露)하면, 나는 누가 나를 그렇게 헐고 뜯고 해도, 그 헐고 뜯고 비방하는 그 말을 감로수(甘露水)처럼 달게 받아서 마시면—내가 잘못해서 나의 단점을 누가 헐고 뜯는다면은 그 말을 감사하게 듣고 자기를 반성하고 고칠 것이고, 나는 실지로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모략 중상을 한다면 그렇더라도 그 말을 '아 내가 그래도 전생에라도 뭣을 잘못한 점이 있거나,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지마는 나에게 그런 잘못이 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말을 감사하게 듣고, 감로수처럼 받아서 먹어서 잘 소화를 시켜버리면,
소융돈입부사의(銷融頓入不思議)하리라.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 비방하고 헐고 뜯고 한 그것이 소화가 되어 가지고 부사의(不思議)한 경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는 선지식이 되고 불보살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 감로수를 마시고. 이것이 바로 진실로 발심한 수행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조금 뭐라고 한다고 파르르르르 신경질을 내고 속으로 감정를 품고, 꽁하니 미운 생각을 속으로 품고, '언젠가 저년을 갖다가 내가 한바탕 봐주리라' 이러한 소인(小人)의 근성을 가져서 쓸 것인가 이 말이여.
부모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도를 닦은 사람이 어찌 감로수처럼 받어 마셔야지, 그러한 말을 듣고 감정을 품고 언젠가는 봐줄려고 하는 꽁한 복수심을 갖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냐.

아 그말을 감로수처럼 받아 마시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누가 나 안 듣는 데서 욕을 하거나, 듣는 데서 욕을 하거나, 나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면 어찌 나에 대해서 말을 할까보냐 그 말이여.
속인의 성현의 말씀에도 나를 칭찬해 준 사람은 도적이요, 나의 단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은 스승이요 은인이다 그랬어. 하물며 출가인 분상에 그만한 것을 이해를 못하고, 소화를 시키고 거기에서 살아가지를 못하고 죽음의 무덤을 판대서야 말로 할 수가 없거든.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대중방에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만한 정신 자세가 되어 있지 아니해 가지고 선방에 나갈 자격이 있는가? 선방에 나간다면 강원의 학인도 그러지 못하고, 선방에 나가서 참선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쯤은 되어야 해. 이쯤되어 가지고 나가 보라 그 말이여.
무슨 시비가 나한테 상관이 있어? 칭찬을 해도 좋아할 것도 없고,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울뿐이여. 나를 헐고 뜯는다 하더라도 그 그렇게 속상할 것이 없어. 거기서 터억 너그러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여서 더욱 수행해 나가는 데 밑거름을 삼는다면 그 사람은 일장월취(日將月就)여. 나날이 발전하고 다달이 승화되어 갈 것이다 그 말이여.

스님네뿐만이 아니라 세속에 계시는 청신사 청신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자(佛子)라면 응당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이만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바다와 같은 하해(河海)와 같은 아량을 가지고 살아 가신다면은 바로 그이가 보살(菩薩)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보살, 여자 신도를 보살(菩薩)이라고 부르는데 그만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 나가셔야 한다 그 말이여.(42분2초~54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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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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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본참공안(화두)2021. 11. 27. 03:35

본참공안((세등51))—참선에 가장 중요한 것은 큰 의심(疑心)을 가져라.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을 가져야 반드시 크게 깨닫는다 | 어떻게 해야 큰 깨달음을 가질 수가 있느냐? 천의만의(千疑萬疑)가 지시의(只是疑)다.
일념(一念) 속에 삼악도가 들어있고, 육도(六道)가 들어 있다.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일념(一念) 속에서 육도를, 일념 속에서 삼악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 (게송)摩尼珠人不識~ | 바로 공부를 지어 가는 마당에 깨닫지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어.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서 참구(參究)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18분 46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처음에 선방에 와 가지고 정진을 하되, 올바르게 공부를 못해 가지고 참 가석하게도 몸에 병이 난다든지 또는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돌이키기 어려운 그러한 지경에 이른 사람을 가끔 봅니다.

이 참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큰 의심(疑心)을 가져라 이거여. 화두를 타 가지고 그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는 데 있어서 큰 의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여.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여. 큰 의심을 가지고 정진을 해야 그 큰 의심이 터지면서 크게 깨달어. 의심이 시원찮으면 깨닫기도 어려우려니와 설사 어떠한 소견이 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큰 깨달음이라 볼 수가 없어. 그러니 큰 깨달음(의심)을 가져야 반드시 크게 깨닫는다.

어떻게 해야 큰 깨달음을 가질 수가 있느냐? 천의만의(千疑萬疑)가 지시의(只是疑)다.
무슨 법문을 듣거나, 무슨 경을 보거나, 무슨 일을 만나거나 온갖 종류에 의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 의심이 날 때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일에 대한 의심이 일어날 때에 그 다른 의심을 풀려고 하지 말고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바로 자기의 본참으로 돌아오라 그 말이여.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유리병이 있는데, 그 유리병은 주둥이는 쪼끄마하고 그 밑에 몸뚱이는 크낙해 가지고 그 유리병 속에다가 오리 새끼를 집어넣었다. 오리 새끼 금방 깐 거야 조그마하기 때문에 그 유리병 작은 주둥이로 집어넣었어. 오리 새끼를.
넣어 가지고 날마다 물도 주고 먹이도 주고 해 가지고 그 오리를 먹여 살렸는데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크니까, 그 오리가 크막한 애미가 되었어. 몸뚱이는 크니까 그 안에서 맘대로 오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컸는데, 그 오리를 유리병 밖으로 꺼내야겠다 그 말이여. 그런데 '그 유리병을 깨지도 말고 그 오리도 다치지 않게 어떻게 이 오리를 꺼낼 수가 있느냐?' 이러한 문제를 냈다.

이것도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 중에 하나지만, 어떤 사람이 수수께끼처럼 이 문제를 물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그 말이여. '유리병을 어떻게 깨지 않고 그 오리를 꺼낼 수가 있는가?' 그 암만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
오리를 죽여 가지고 대가리 띠어서 꺼내고, 날갯죽지 꺼내고, 발목쟁이 꺼내고, 몸뚱이도 토막을 내서 꺼내고, 아 그렇게나 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유리병을 유리를 갖다가 확 깨 가지고 그렇다면은 오리를 다치지 않고 꺼낼 수가 있겠으나, '유리병도 조금도 깨지 말고 다치지 않게 하고 그리고서 오리도 상하지 않게 어떻게 꺼낼 수가 있는가?' 암만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

자기는 '이뭣고?' 화두를 하고 있는데, 누가 그 오리 꺼내는 문제를 제기를 했다 그 말이여. 그럴 때에도 '어떻게 하면 오리를 꺼낼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바로 자기는 '이뭣고?'를 해라 그 말이여.
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하는 분은, 설사 다른 공안—오리 새끼 꺼내는 공안이 되었건, 또는 이뭣고 공안이 되었건, 또는 판치생모 화두에 대한 어느 스님의 법문을 들었건 간에, 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이외의 화두나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말고 바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로 돌아오라 그 말이여. '이뭣고?'

하물며 세속에 어떠한 문제나 경전에 있는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어. 천 가지 만 가지 모든 의심을 만났을 때에 탁! 똘똘 그놈을 뭉쳐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라 그 말이여.
이렇게 해 나간다면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산을 보더라도 '아, 산이 푸르르구나, 산봉우리에는 구름이 끼였구나' 이런 식으로 쫓아가지 말고, 푸른 산을 보자말자 바로 자기의 화두(話頭)로 돌아오라 그 말이여. '이뭣고?'

정전백수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판치생모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의 본참화두로 돌아와. 이것이 바로 천의만의(千疑萬疑)가 병작일의(倂作一疑)다 그 말이여. 이 화두에, 자기의 본참(本參)에 대한 의심이 철저하지 못하면 이것이 큰 병(病)이여.
꺼떡허면 자기 화두는 놔 버리고 어믄 다리를 긁어. 어믄 일에 신경을 쓰고, 어믄 일에 걸려든다 그 말이여. 이것이 병 중에서는 최고의 큰 병이여.

눈으로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고, 귀로 무엇을 들으면 듣는 데에 끄달리고, 먹는 데에 끄달리고, 뭘 생각하는 데에 끄달리고, 남이 잘하고 잘 못하는 데에 끄달리고, 그게 다 발심(發心)이 철저하지를 못하고 자기의 본참(本參)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이 육근(六根) 육식(六識) 십팔계(十八界)에 잠시도 편안할 겨를이 없이 십팔천(十八天)을 돌고 돌아. 그러다가 잘못 끌어 박히면은 삼악도에 떨어져서 헤어날 기약이 없다 그 말이여.

삼악도(三惡途)가 어디에 있으며, 십팔천(十八天)이 어디가 있는가? 일념(一念) 속에 삼악도가 들어있고, 육도(六道)가 일념 속에 들어 있고, 십팔천이 일념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한 생각을 맹렬히 단속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에 충실하다면 당장 금생에 그 사람에게는 삼악도도 찾을 길이 없고, 십팔천도 어디서 찾느냐 그 말이여.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금생에 결정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근본을 끊어버리게 될 것이요, 세세생생에 어느 곳에 삼악도를 찾을 것이냐 그 말이여. 내가 떨어져야 할 삼악도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 그 말이여.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일념(一念) 속에서 육도를 끊어버리고, 일념 속에서 삼악도를 끊어버리고, 일념 속에서 십팔천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마니주인불식(摩尼珠人不識)이여  여래장리친수득(如來藏裏親收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육반신용(六般神用)이 공불공(空不空)이요  일과원광색비색(一顆圓光色非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마니주(摩尼珠), 이 마니주를 터억 지니면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아니하고, 육도법계를 자유자재로 댕기되 하나도 손상을 입지를 안 해. 그 마니주를 지녔건만 사람이 알지를 못하더라.
여래장리친수득(如來藏裏親收得)이여. 그 마니주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 여래장(如來藏) 속에 그것이 떠억 감추어져 있더라 그 말이여. 여래장이 무엇인가?

여래장은 바로 우리 중생심(衆生心)이어늘, 중생심 그 제8식(第八識)이 바로 그것이 여래장인데, 그 여래장 속에서 일체 희로애락과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일어나는 색성향미촉법, 육근 · 육식 · 육진(六塵. 六境)이 바로 여래장 속에서 일어나는 물결인데, 그 여래장 속에 그 마니주가 들어 있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여섯 가지 신통(神通)을 부리는데, 그 여섯 가지 신통이—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고, 혀를 통해서 맛을 보고, 육체 몸을 통해서 차고 덥고 하는 것을 느끼고, 의식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인식을 한다. 그 여섯 가지가 바로 그것이 마니주를 가진 사람이 부릴 수 있는 신묘한 신통이다.

그런데 그 신통은 비었으되 빈 것이 아니요, 분명히 있으되 비어 있는 것이고, 분명히 비었으되 빈 것이 아니다.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 그렇게 소소영령하건마는 그놈을 찾어보면 돌이켜 찾어보면 자취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비었으되 비지 아니한 것이요.
일과원광색비색(一顆圓光色非色)이로구나. 이 마니주, 이 한 알갱이 구슬이 뚜렷하게 빛나고 있건마는, 분명히 색깔이 빛깔이 있으되 빛깔이 없더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차 있으되 찾으면 간 곳이 없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하건마는 볼라야 볼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으니, 어찌 이것이 색상(色相)이 있다고 하며 색상이 없다고 할 것인가? 있다고 해도 맞지 아니하고, 없다고 해도 맞지 아니하니,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가 없어.

중생의 소견으로 '있네, 없네' 따질 필요가 없어. 따져봤자 맞지 아니한 것을 왜 따져?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 가지고서는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따져도 이것은 해결 날 문제가 아니여. 오직 본참공안에 충실해서—나아가자니 앞이 맥히고, 물러서자니 뒤도 맥혀. 꽉 맥힌 의심으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불 속에 들어앉은 거와 같아서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앞이 맥혔으니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서자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어. 왼쪽으로도 맥혔고, 오른쪽으로도 맥혔어.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불이 훨훨훨 타고 있다 그 말이여. 그냥 있을 수도 없고 나가자니 팔방이 사방이 꽉 맥혔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거냐?

'이뭣고?'

우리는 꿈을 꿀 때에 무서운 호랑이나 큰 구랭이나 그렇지 않으면 무슨 뿔 달린 무서운 악귀 같은 것에 핍박을 받아서 도망갈라고 하니 발이 떨어지지를 않고, 그 자리에 있자니 잡혀 죽게 생겼고,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꿈을 꾸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옛날에 참선하지 아니할 때에는 고함을 지른다든지, 아 도망갈라고 몸부림을 치되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러다가 한참동안 그러한 상황 속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자기가 지르는 자기의 고함소리에 눈을 뜨고 보면 전신에 땀이 흠뻑 젖어 갖고 있는 그러한 꿈을 꾼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선법을 알아 가지고 참선을 한 뒤에는 그러한 상황 속에 화두를 탁! 들어 버리면 눈이 딱! 떠져 버린단 말이여.
비단 꿈속에 뿐만이 아니여. 인간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성나는 일, 속상하는 일, 기분 나쁜 일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하거나, 기쁜 일을 당하거나, 일체 선악 경계를 당했을 때, 화두를 딱! 들어 보라 그 말이여. 어디에 속상한 일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분한 생각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슬프고 괴로운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말이여.

이렇게 정진을 다그쳐 나가면 깨닫기를 바랠 것이 없어. 독 안에 든 자라와 같아서 지가 어디를 갈 거냐 그 말이여. 깨달음을 기다리지도 말고, 조급한 생각을 내지도 말고, 누가 와서 나를 깨닫게 해 주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어. 바로 공부를 지어 가는 마당에 깨닫지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어.

'어서 빨리 깨달러 가지고 남 앞에 큰소리 한번 쳐보리라'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가 있어. 큰소리쳐서 뭣해?(23분11초~41분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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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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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방편2021. 11. 25. 06:38

방편((세등51))—달마 조사가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셨다 |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이 총섭제행이여 |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설에 떨어져 있다면 어리석고 가엽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 안에는 팔만사천 가지 법문(法門)이 있어서 그 팔만사천 가지의 법문이 모두가 다 이 정법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방편이 아니면은 도저히 정법, 실법(實法)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방편 가운데에도 악방편(惡方便)과 선방편(善方便)이 있습니다. 선방편(善方便)은 일시적으로 의지했다가 바로 그 방편을 발판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들어오게 하는 방편은 이것은 선방편이 되는 것이고.
사람을 방편으로 들어오게 해 가지고, 방편으로 긁어 들여 가지고 영원히 그 방편을 벗어나게 하지를 못하고 방편에 딱! 걸려 가지고 오금을 피지 못하고, 그 방편을 발판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뛰지를 못하고서 그 방편에 딱! 얽매여 가지고 일생 동안을 그 방편에 걸려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한 방편은 그것은 악방편(惡方便)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법, 내 마음 닦는 참선하는 사람은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일체 선법(善法)을 닦을 수가 있는 것이고, 모든 선법이 그 사람에게는 다 선방편(善方便)이요, 정법의 조도(助道)가 되는 것입니다. 보조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벗어나지 못한 불법(佛法)은 설사 그 사람이 삿된 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그것이 정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사법(邪法)이 되는 것입니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일생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마음이 선량하고, 정직하고, 점잖하고, 그 말할 수 없이 착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사람은 사도(邪道)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7분 54초)

 


우리가 해야 할 나아갈 일은—달마 스님! 우리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만, 우리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부처님으로부터 28번째 법등(法燈)을 전수하신 달마 조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 조사가 140세의 고령으로 인도를 떠나서 중국으로 오셔 가지고 이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시지 안 했다면, 우리는 계율이나 지키고 경전이나 연구하는 그러한 불법에 빠져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그러한 묘(妙)한 문(門)이 있는 것을 모르고 말았을런지도 모릅니다.

달마 스님을 인해서 우리는 참으로 부처님이 위대하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달마 스님의 법(法)은 선정, 선정(禪定)을 닦아서 신통을 얻고 그러한 불법이 아닙니다. 물론 참선하는 데에 계율도 지켜야 하고, 선정도 닦아야 하고, 교리에도 밝으면 좋고, 불법에 한 법도 버릴 법은 없으나, 그 근원 그 핵심이 무엇인가를 바로 파악을 해 가지고 그 중심을 바로잡아서 수행을 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뜩이 근기(根機)는 약해서 자기 몸 하나도 추단해 나가기 어려운 그러한 처지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잔뜩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 보고 싶어 한다면, 까딱하면 근본은 잊어버리고 지엽(枝葉)에 걸려서 평생을 그르치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출가 수행인이 계율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계율을 또 지켜야 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육바라밀을 닦어야 하고.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추어야 하고. 그러나 계율을 지키기 위한 계율을 지키고, 육바라밀을 지키기 위한 육바라밀을 지키고, 팔만세행을 갖추기 위한 팔만세행을 갖추어서는 그것은 이 몸을 가지고 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여.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마음을 관하는 한 법! 화두를 참구(參究)해서 생각생각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한 경계에 들어가면 계행(戒行)을 지키려고 하지 안 해도 제절로 계행이 지켜져 있고, 육바라밀을 닦을려고 안 해도 바로 행하는 것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행하고, 생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제절로 육바라밀이 지켜지 버리게 된다. 팔만세행도 역시 일부러 갖추려고 안 해도 제절로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화두가 순일한 사람이 어찌 살생을 할 마음을 내며, 어찌 도둑질할 마음을 내며, 어찌 간음을 할 생각을 낼 것이냐 그 말이여. 한 마음 단속해서 화두가 순일하게 나아가면 일체 행(行)이 바로 거기에 다 제절로 갖추어지는 거여. 이것이 바로 달마 스님께서 주창하신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오계(五戒)와 팔만사천 법문이 낱낱이 다 묘한 문이어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도 마침내는 깨달음에 이르러 다 문이 열려져 있는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지만, 그 묘한 법을 잘못 이해하고 그 방편문(方便門)에 국집(局執)해서 얽매이게 되면, 그것은 마치 달 가르키는 손가락을 잘못 이해를 해 가지고, 그 손가락을 인해서 하늘에 있는 달을 봐야지, 달은 보지 아니하고 그 손가락만 국집해서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제 달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겨우 돌이 지내갈락말락한 어린아이에게 '저 하늘에 달을 보라' 하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는 그 손가락을 통해서 하늘에 달을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자꾸 쳐다보고 있다 그 말이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팔만장경이,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경(經)에는 온갖 방편설이 있지만 그런 방편설에 떨어져 가지고, 바로 가리키는 자기의 마음을, 자기의 본자성(本自性)을 보지 않고서 방편에만 떨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어리석고 가엽기가 그지없는 것입니다.(15분13초~23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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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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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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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법거량2021. 11. 23. 06:34

법거량(전강선사 No.011)—용성 스님과 법거량.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3분 39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그러니 내가 그 (직지사) 회상에서 혜월 큰스님을 모시고 선방—그저 그때 그 다 말허니께 퇴운 스님도 좋아 하시고 또 그 제산 큰스님도 조끔도 당신이 조실(祖室)이라고 해서 그런 큰스님이 오는 것을 반대헐 어른이 아니거든. ‘내 자리인디, 어찌 그 어른이 와?’ 없어!
'좋다'고. 그 뜻을 얻어 가지고는 갖다가 모시자고 했는디 뭐 내가 자발로 헌 건 아니지마는, 발써 그만큼 그만 내 말이 그만 그렇게 권리가 있어. 말 한마디 허면 모두 세워 주고.

또 법을 ‘정영신(鄭永信)이 벌써 혜봉 스님이 다 인가했다’ 아, 이거 소문이 나니 어쩔 꺼여. 또 ‘혜월 스님한테 그 안에 가서 다 벌써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 다 일렀다’ 소문나 놓으니께 뭐 어쩌.
그만 퇴운 스님도 말로 헐 수 없이 좋아하고, 제산 큰스님도 그만 내 말을 여지없이 참 신용하고. 아, 그래서 직지사에 모실라고 딱 했는데, 당최 그만 통도사에서 막 모셔 갈라고 하는디, 허는 수가 없어서 기어이 못하고는.

‘아이고, 헐 수 있나. 어라, 나는 내 목적이나 달성헐 수밖에 없다. 불가불 내가 용성 큰스님을 찾아가 또 내가 한번 또 인가도 받고. 물으면 내가 답(答)도 하고 탁마상성(琢磨相成)을 해 보리라’ 그러고는 용성 큰스님 회상으로 올라갔다 그 말이여.
대번 올라오니까, 소문이 앞에 가서 턱 ‘발써 정영신이가 혜봉 스님한테로 댕겨서, 혜월 스님한테로 댕겨서 올라왔다’ 머녀(먼저) 그렇게 알았다는 것도 다, 법담(法談)했다는 것도 다 듣고 있고. 또 ‘왔다’ 소문이, 그래 ‘정영신이가 왔다’ 헌 말이 벌써 용성 큰스님 귀에 먼첨 들어갔네.

아, 그러니깐 대번에 그만 나오시더니 “정영신이가 여그 왔다는디” 그래 쫓아 들어가서 절을 헌께 “오! 네가 정영신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응, 너 글안해도 내가 만나고저 했더니 왔구나. 자, 그려 척 만났으니 너와 나와 서로 법거량(法擧揚)을 한번 해 보자”
“죄송헙니다. 황송헙니다” 그러니깐.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그때 한참 제방(諸方)에 제일구가 퍼졌을 때라. 그래서 제일구 문답이 어디서부텀 시작되았는고 하니 동화사에서 시작되아. 동화사 금당(金堂)에서 시작이 되았어.

그때 금당에 누가 있었든고 하니 무렴 스님이라고 있었는디, 무렴 스님이 답을 했는디 제일 옳게 답을 했닥 하는 제일귀(第一句) 답이 있어.
내가 그 무렴 스님 답헌 제일귀 답을 듣고, “흥, 아무리 제일귀 답을 무렴 스님이 옳게 했다고 판단은 났다마는 아니니라!” 내, 그래버린 거여.

그러면 그 제일귀 답은 어떻게 일렀는고 허니,
“여하시제일구냐?” 물으니까, 답이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냐?” 요렇게 나왔어.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왔어. 그 답이 제일이라고 했거등. “아니니라” 해 버렸어.

그렇게 해서 모도 인자 제방에 제일귀 답이 많이 모도 있을 때인디, 나한테 용성 큰스님께서 제일귀 답을 묻거든.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묻길래, 내 답을 좀 보란 말이여, 응.

또 저번에 다 해놓은 놈이지마는 이번에는 그 이걸 내 그저 과거 모도 역사를 저렇게 야(얘)들이 깨끗이 잘혀. 이번에는 아주 그대로 결집을 허는구만. 모도 결집해서 저 일러주는 것 다 봤지만 어저께 그 청암거사도 아주 듣고는 공찬(公讚)을 혀. ‘그 참 잘했다’고. ‘어저께 일대기(一代記) 중에서 뭐 얼매를 일렀는데 참 좋다’고.

아, 나는 녹음기에다 내가 넣어 놓고 들을라니, 듣기 싫어! 맨 놈이 법문이, 모도 그만 내 법문이 그려. 모도 그만 그 사투리에 뭣에 잉, 듣기 싫어! 내가 해 놓고도.
그런디 인자 야(얘)는 그대로 써 가지고, 인자 그대로 읽으니깐 아, 그런 게 없드구만. 아, 그런데 그 나는 잘 듣는구만. 야가 읽으면 잘 들어, 끝까장. 안되아 버리면 그만 안 듣는디.

용성 큰스님께서 “여하시제일구냐?”
영신 : “예?”(높은 음성으로)

그 왜 대답이 그려? ‘예’ 허든지 그러지, “예?” 그려?
“예?” ”예?”는 왜 여가 “예?” 그려? 그것 좀 잘...

왜 “예?” 그려?
참, 그거. 언하대오(言下大悟)다. 세상에...

“예?” 그런게, ‘여하시제일구여?’ 또 묻거든.
용성 : “여하시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내가 그랬다. 응. 그 어른 답 가운데 좀 불싸스럽지마는 헐 수 없어, (손뼉을 치며) “허허!” 그러니깐,

용성 : “아니다, 아니니라” 용성 큰스님께서 그래서,
영신 : 다시 절을 척 허고서는 “큰스님 일러줍소사, 큰스님 일러줍소사. 여하시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그때는 “예”지. “예”
“예?” 그것 아니여 잉. “예” 그런게,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영신 : 내가 또 (손뼉을 치며) “허허!” 이랬다 그 말이여.

세상에 법전에, 큰스님 앞에 요렇게 했다는 것을, 그 대중이 그때 오십 명 대중(大衆)이여.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중이. 봉익동이여. 고때가 봉익동 시방 2번지인데, 1번지인가 그려. 거그 계셨는디.

그러니깐 내가 또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를 했는데 그건 그만두고.

용성 : “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느니라. 전신을 못했구나”
전신(轉身)—‘구를 전(轉)’ 자, ‘몸 신(身)’ 자. “전신을 못했느니라” 몸뚱이를 전(轉)허지, 몸뚱이를 옮기지 못했느니라 그 말이여. 구르지 못했느니라.
영신 : “그러면 전신구(轉身句)를 물어 줍소사”

용성 : “응 그러제. 여하시제일구냐?” 거기에 내가 답허기를... 어? “전신구냐?” 전신구여! 전신구를 물어 내가 답허기를,
영신 :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그러고는 더니깐 그 끝에 그 큰스님 말씀은, 귀방장(歸方丈), 방장(方丈)으로 들어가셨거든. 그냥 돌아가셔. 뭐 인가(印可)야, ‘옳다’야, 가부여하(可否如何) 없고는 가셨다 그 말이여.
그러면 뭐 ‘옳다, 그르다’ 헌 것을, 내가 무슨 뭐 인가를 맞으러 갔다고 하지마는 내가 인가(印可)해 주기를 뭐, ‘옳다, 그르다’ 헌 걸 바래는 법인가? 법문만 딱 해 놓으면 거그서 인자 까달(까닭)이 나는 것이지!

그대로 나는 나왔지. 나와 버렸는데, 사흘 되든 날이여. 그 뒤 사흘 되든 날이여. 3일 되던 날에 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했어.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대중께다가.
그때 대중 입승(立繩)은 경봉 스님인디, 시방 양산 통도사 경봉이 아니여. 또 그때 노인 경봉이 있었어, 눈 하나 미영씨(무명씨) 백히고. 그때인디.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러니까, “아, 영신이가 그 뭘 어떻게 일렀다고 속았다고 하십니까?” 하동산 스님은 그랬다 그 말이여.

동산 스님은 “아, 영신이가 뭐 어째서 그래 속았다고 그런 말씀허십니까?”
그 어른 말이 “자네가 영신이 이른 도리를 알겠는가?” 이랬다 그 말이여.

나는 못 들었는디, 대중에 그랬다고. 그때 그 대중에는 누가 있었느냐 허면은 장설봉도 있었고, 저 죽은—다 죽었구만, 둘 다 다 인자. 윤세호라고 있었어.
갑장사 많이 지낸 윤세호가 있었는데, 윤세호가 그 소리를 듣고 만공 스님한테 내려와서 그 말을 했어.
“아, 제일귀 답에 영신이한테 속았다고 큰스님께서, 용성 스님께서 대중께 공포했답니다”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만공 큰스님이 그랬다 그 말이여.

나 떠나 버린 뒤에 인가헌 것이여! 그게 다, 속은 줄을 알고, 속은 것이 인가(印可)지 무엇이여!
어디, 꼭 옳다는 게 인가인가? 방맹이 맞고 방맹이 맞은 줄 아는 것이 인가고, 꼼짝 못헌 것이 인가여. 속은 줄 알았다, 이거여.

대중께 공포를 안 했으면은 그 안 되아. 공포를 했기 때문에 벌써 척 당신이 속은 줄 알어.
학자한테는 속지 않나? 허, 이거.
거그서 내가 그 문답을 턱 마쳤어.

그러면 저 윤세호가 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그런 말을 전허니깐, 만공 스님은 거그서 듣고 “당신이 속은 줄을 아셨으니 용성 스님일세”
그 내가 거가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고 뒤에 그러고 갔는디 거그 확 그 말이 팍! 퍼져 버렸제. 뭐 다 퍼진 것이제 어디.

시방 내가 이렇게 ‘견성했다’ 하고 돌아댕기면서지만, 선지식을 이렇게 친견해 나가는데 용성 스님까장밖에 시방 안 했다 그 말이여. 그러고는 지금 인자 만공 스님은 아직 안 봤거든. 안 봤는디 고놈이 먼첨 벌써 다 들어가서 환히 알고 계신다 그 말이여.

여그서는 어디로 가냐 허면은 인자 금강산으로 가는 편이여. 금강산 한암 스님한테로 가는 편이여.(1시간6분2초~1시간19분4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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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글안해도 ; ‘그렇지 않아도. 그렇지 아니해도’의 사투리.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공찬(公讚 공평할·드러낼 공/기리다·칭찬함 찬) ; 드러내어 칭찬함.
*불싸스럽다(불쌀시롭다) ; ‘불손하다(不遜-- : 말이나 행동 따위가 버릇없거나 겸손하지 못하다)’의 사투리.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가부여하(可否如何) ; 옳고 그름[可否]이 어떠한가(어떻다)[如何].
*까달 ; ‘까닭(어떤 일이나 현상의 원인 또는 조건)’의 사투리.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미영씨 ; ‘무명씨(목화木花의 씨)’의 사투리. ‘명씨’라고도 한다.
*눈 하나, 미영씨 박히다 ; 미영씨는 목화의 씨를 말하는데, ‘미영씨 박히다’는 말은 눈병 때문에 눈동자에 하얀 점이 생겨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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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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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1. 11. 20. 04:31

법거량(전강선사 No.008)—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 혜월 스님과 법거량.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일러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 혜월 스님의 영아행(嬰兒行) | 혜월 스님 직지사 조실로 모심.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혜월 스님께서 거그서 견성을 했어 |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인가(印可)를 했어 | 무애(無礙)라는 것은 법체(法體)에 걸림이 없다.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법문]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전008)

 

 

(1) 18분 16초.

 

(2) 17분 14초.

 


(1)------------------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그만 혜월 스님한테를 갔다 그 말이여.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니까,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데 소를 두 마리를 길러. 키워. 큰 황소를 키움서 밤낮 소꼴 베다가서 소 주고, 소 요리저리 모두 옮겨 매고 그러고 계시어.
학자(學者)는 뭐 몇 안되고. 학자 그저 그 스님, 그 어른 믿고 있는 학자 불과해야 한 2-3인 될까 시봉 겸해서, 뭐 그 어른이 시봉도 안 시키고 그저...

그런데 소를 멕이는 것은 그 통도사 그 극락 평전(平田) 그 밑에 모도 산비탈 극락평전을 논을 쳐서 농사지어 가지고 수좌 멕인다고 그 소를 사논 거여. 아! 그 산비탈을 언제 땅을 파서 어디 물을 잡아 넘겨서 그 헐 것이여. 편편하기는 허니까.

아 그래 가지고는 그저 그만 앉으면 법문, 서면 법문, 가면 법문허기 때문에 그 어른을 모시고 따라 댕기면서 법문을 들어. 들은데, 오늘 들으나 내일 들으나 열흘을 들으나 똑같은 법문이여. 헌 놈 또 했지, 딴 놈이 없어.
평생 그 가운데 무슨 법문을 허냐 하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다” 이 말이 처음 나와. 당신 자랑이란 건 말헐 수가 없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인가했다” 꼭 그려.

언제든 눈꼽재기 여가 여 둘이 달렸어. 허연 놈이 달려 가지고. 말만 허면 입에서 침이 튀튀튀튀튀 튀어 나와, 이렇게.
그래가지고 앉어서 여 앉어서 이렇게. 하도 들을 수가 없어, 오래 들으면 듣기 오죽헌게 살며시 밖으로 나가면—하도 오래 있어 나가야제. 나가면 혼자 그러고 앉었어, 혼자.
아주 한참 (법문)허다가 “어디 갔나? 응, 갔어? 갔구나” 이런 어른이라.

다시 뭔 세상에 무슨 인사(人事), 뭐 그런 것 없어.
“아, 저 스님, 군수가 큰스님 뵐라고 왔습니다. 인사헐락 합니다”
“군수가 왔어? 응. 군수가 어디 있나? 내가 보제” 아따 가만히 계시라니 “그 내가 봐야지, 오라고 혀”

아, 이래가지고 “군수 응, 군수 군수여? 어디 군수여? 응” 그 어른은 평생에 반말이제, 온말 헐 줄 몰라.

“밥 채려! 밥해! 군수 밥해” 밥을 시켜 놓고는 “찬 놨나?” 찬 논디 가서 요것도 좀 집어서 잡숫고, 요것도 집어서 잡숫고 “짜냐, 싱겁냐?” 짜고 싱거운지도 몰라.
참 도인이제. 참 도인이여. 꾸며 대고 억지 없제.

아, 그러고 댕기니께 군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보면은 어쩔 것이냐 그 말이여.
그런게 가리와. 중이 있다가 가리와. 스님 못 보게 가린다. 또 거그 못 오게 허면 “왜 그래?” 아, 원 홰를 내고 야단인게 못혀. 참 세상에는.

그러고 조끔 있다보면 없어. 아! 조실 스님 어디 가셨는고 허면, 그 앞에 가서 저 솔방울 따네. 망태 하나 요만한 것, 망태 쬐끄만한 것 하나 턱 짊어지고 올라가서 솔방울 따네. 불 땔라고 솔방울 따.

천하에 도인이란 행은, 도행(道行)은 81행이 있닥 하지마는 그런 행이 없어. 그 천진행(天眞行) 영아행(嬰兒行), 그 영아행을 제일 쳤거든.
도인행이 광행(狂行)이나 미친 행, 광행. 광행이나—또 그렇다 해서 도인행(道人行)이 광행(狂行)이고, 모도 그러헌 천진행이고, 그러헌 영아행 어린아 행이니까 도인행 헌다고 해 봐. 그녀러 건 참 못 본다.

그 위조로 나와서 해 봐. 견성도 못헌 것이, 도인도 아닌 것이 해 봐. 그런 똥을 콧구녁에다 붙여 가지고 대니지, 고놈의 더러운 냄새는 못 맡네. 보도 못허고.
천진행과 영아행이라는 것은 꾸며서 된 법이 없어. 억지로 된 법이 없어. 조태가 나타나기 따문에 안되야. 혜월 스님은 그게 안 나타나. 아무리 볼래야 소용없어. 꾸미도 않고 뭣도 소용없어. 뭐 그대론게 소용없어.

그래 가지고는 법문을 해 주시되, 내가 그래 중방내까지 따라갔구만. 법문 들을라고. 그런 법문이라도 들을라고 거그 따라갔어. 경허(혜월) 큰스님이 천하 도인이니까 ‘다시는 도인밖에 없다’고 그 믿음이 내 모가지까장 차올랐으니, 뭐 소용 있나? 소용없어.
뭐 눈에 눈꼽재기가 드글드글허거나 말거나, 뭐 허는 행은 당최 어따 비유헐 수 없는 아, 글쎄 어린아 행이라니까.
어린아가 그 뭐 서너살 먹은 놈이 애비상이 있고, 할아버지상이 있고 뭐, 뭐이고 소용 있어? 밥상에 올라가 똥을 싸고 그러지 뭐, 소용 있어?

그 영아행이라는 것은 미친놈도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지마는, 영아(嬰兒)라는 건 말귀도 못 알아들어. 그 영아행을 제일 쳤어. 바로 옳은 도인 같으면은 옳은 영아행을 헌디 그건 위조가 없어, 위조 못햐. 참, 진짜지. 우리나라에서 혜월 스님같이 진짜 영아행이 없어.

그래 가지고는 턱 법문을 헐땐 처음, 처음 시작헐라면 그게여.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지. ‘북으로 관세음보살이 향(向)헌 의지(意旨)가 여하(如何)냐?’ 우리 큰스님이 물어 내가 대답했지. 아, 우리 큰스님이 인가했제!” 평생 그려.

틀림없거든, 뭐 틀림없어. 그 뭣 헐라고 감춰. 감추면 뭣혀.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오면은 인자 법문부터 물어. 그 자주 묻는 것도 좋은 것이여.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일러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등지(等持), '같을 등(等)' 자, '가질 지(持)' 자, 고놈을 일러야사 인가(印可)를 혀.
그건 참, 참! 기가 맥힌 공안이제.

당신이 이렇게 맨들아 묻는 것인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 고놈 묻고, 공적영지를 묻고, 영지에 공적영지를 묻고,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해야사 인가를 혀.
그것! 참, 내가 대답했지. 나도 역시 혜월 스님 타겠구만(닮았구만). 내가 대답했어.

공적영지 물어 딱! 대답헌게,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 착, 고 둘만 대답하면 그 밑 등지는 바로 있는 것 아닌가.
“등지를 일러라” 그놈 척 일러 논게, “아따야! 이 우리 한국에, 우리 한국에 참 이 큰 도인 났다. 이런 도인이 나!” 아! 이러고는 대찬(大讚)을 허는디, “누가 공적영지 등지를 이를 사람이 있느냐?” 아, 이래 가지고는 대찬을 했네.


그래 놓고는 일러 놓고는 ‘자, 내가 큰스님을 좀 좋은 디다 모셔야겄구나’ 그런 마음이 난다.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스님 밑에서 모도 나야겄구나’ 이 마음이 나 가지고는 거그서 하직허고 직지사(直指寺)를 또 올라왔네. 또 올라와 가지고는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허고.
직지사로 말하면 산중이 크고 한국에 제이창이여. 규모는 이창이고, 선방도 천불전(千佛殿)은 조그만 허지마는 도량은 크고. 그 어른이 오셨으면은, 그 국내(局內)가 널직허고 그때에 토지도 많고 거다가 모셨으면 좋을 듯해서 아! 내가 그때 그 운동을 했네.

그러면 제산 큰스님은 벽안당에 조실로 계시는디, 가만히 조실로만 앉어 계시제 학자 눈을 띄울 수가 없으니까. 하나도 일구(一句) 법문을 해 준 법도 없고.
아,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혜월 큰스님이 여그 와 계셔야만 도량이 참말로 불일증휘(佛日增輝)가 되고 법륜상전(法輪常轉)이 되겄어.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여그서 한번 크게 휘황찬란허게 될 듯 허고 이래서 “혜월 큰스님을 직지사 조실로 한번 모셨으면은 어떻겠습니까?” 하고는 내가 인자...
그때쯤 벌써 인자 소문이 나 가지고는 ‘정영신(鄭永信)이...’ 해 가지고 이름이 났어. 내 말 한마디—공부헐 때 원청간 다잽이를 기가 맥히게 했기 때문에 그 애를 써 가지고는 견성했다 해 노니까 소문이 다 나 버렸거든 인자.

아, 다 날 것 아닌가. 그만 벌써 혜봉 스님한테로 해서, 허태오 스님한테로 해서, 하혜일 스님한테로 해서, 그다음에는 인자 공부 잘헌다는 스님네는 다 찾아댕긴다 인자. 방방곡곡이고 어디고 다 가지.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서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 딱! 했다고 소문이, 뭐뭐 소문이 앞을 서.
소문이 나 가지고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허고, 제산 스님한테 가 그런 말씀을 허니 ‘아! 선방에서 다 도 닦는 공부허는 스님네가 아, 그런 큰스님이 오셔서 그 조실로 계시면은 좀 좋겄나’ 다 그런 마음 뿐이지. 그때 모도 인자 선방에 그 스님네 이름 다 잘 모르겄구마는. 아, 그래 공포를 헌게 '좋다'고, '아주 좋다'고.

그래 내가 또 내려갔어. 가서 “큰스님, 김천 직지사에서 아주 큰스님을 청해서 거가 큰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이렇게 모두 대중이 기다리고 있고 헌게 가셔야겄습니다” 허니께.
“그리야, 갈꺼나” 뭐 두 말도 헐 것도 없고 “가 볼꺼나” 아, 그래 나섰어요.

그래 모시고서는, 내가 그만 모시고서는 올라오다가 너무 밤에 갈 수가 없고 해서 김천에 내려서, 그때 그 김천에 경상북도 김천 역전(驛前)에 대화여관이라고 있어.
대화여관에 들어가서 하룻밤 모시고 자고서는 아침에 올라갈라고 자시는디, 요런 놈도 거다 집어넣어야 되겄구만.

여관 주인이 그 아침 진지를 해 드렸는데 “아, 당최 고기도 안 잡숫고 허니까, 청정허게 마늘겉은 거 넣지 말고 깨끗하게 그래 좀 해 주십시오”
아, 그랬더니 여관에서 어디 무슨 뭐, 저 따로 된장을 찌질 수가 있나. 된장을 그놈을 잘 지졌는디 모두 손님상에 놀라고 지졌는디 거다가는 파 마늘도 넣고, 소고기를 다져서 소고기 좋은 놈을 잘 다져서 그 무슨 그놈이 그 된장도 아니고 찌개처럼 맨들은 거여. 찌개로 맨든 것이여. 잘 지져서 요런 냄비, 쪼그만 냄비에다가 찌개를 딱 놨네.

아, 이놈을 떠억 잡순디, 한참 잡솨. 아주 잘 잡솨. 한참 잡숫더니 고기 덤벵이가 그놈이 좀 씹히든 것이여. 하나도 없이 잘 쫒다가 씹히든 것이여.
“이거 이 뭐이냐?” 맛있은 게 씹힌게, “이거 뭐냐, 괴기냐?”
“된장이요”

“된장 아니다. 괴기다. 맛있다, 맛있어” 괴기로 발견허고는 안 잡솨. 그래 놓고는.
아! 그 잡솨 버리지 잡솨지, 그녀러 것을 뭐 해필 또 그럴 게 뭐 있냔 말씀이여, 그러지만 또 그래도 안 잡솨. 그거 잡술리야 없지마는 아, 그것들이 그렇게 나와서 잡솼다 말이여.

잡숫고는 그날 그만 모시고 올라와서 대중 공포를 허고, 큰스님께서 여그 와서 조실로 계셔서 광도중생(廣度衆生) 허시도록 이렇게 대중 결의를 했지.

아, 통도사에서 또 안 된다고, 또 저 중방내 토지 뭐 그런 것 저런 것을 전부 인자 여그 조실 스님이 모두 농사짓고 어쩌고 해서 선객(禪客) 기룬다고 허면서, 거그서 초청이 다시 뭐...
아, 이래 가지고 여그 모실라 거그 모실라 야단스럽게 헌디, 그때에도 벌써 동부산(東釜山) 신도가 꽉 차 가지고는 그 큰스님, 저 무슨 계? 그 어른 모신다는 계(契)를 모두 조직했네.

계를 조직해 가지고 그때쯤 수도든가, 계(契)를 떡! 조직해 가지고는 그 계금(契金) 만 원을 갖다 가서 그 어른을 드렸네. 내나 그 어른 위허는 계니까, 그 어른 갖다 드리면은 알아서 범연히 잘 허리야하고는 돈 만 원을 올려 놓고. 이렇게 부산서 왼통 신도들이 야단친디, 모시고 올라니 될 수 있나? 뭐, 뭐 어떻게 헐 수가 있어야지.

돈 만 원, 그래 그 계를 모아 가지고 계금이니까 큰스님께 맽긴다고 갖다가 맽긴 모냥이지.
돈을 한푼이나 헛돈 써 뭣혀. 조실 스님 갖다 드리면은 당신이 무슨 뭐 어따 쓸 것이여, 학자 위해 쓸 것이지.

그래 그만 갖다 드렸든가. 이놈을 가지고는 논을 친닥 하면서 논 나락 한 다발이나 두 다발, 그걸 가을에 가면은 한 다발 두 다발도 안 나오는 놈의 논을 그놈을 쳐 가지고.
한 거다가 몇십 원을, 그때 몇십 원인가? 몇십 원을 들여서 고까짓 놈의 논, 고것 쳤자 뭐 그 일 원어치도 안되는 놈의 것을 몇십 원을 주고 모도 쳐 가지고는 가을에 나락 한 다발 나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냐? 이거 봐라” 든 밑천은 하나도 안 생각하고. 그런 양반이라 무슨 그 획량이 있어? 그런거 무슨 계획량이 어디 있어? 요것만 보시제. 돈 많이 들어간 것은 못 봐.

그래 가지고서는 아, 이 만 원 돈을 막 집어써 버리네. 이놈도 달라면은 ‘그래’ 저놈이 달라면은 ‘그래’ 아! 이렇게 써 버린다 그 말씀이여. 아! 그러니 그 못 쓰게도 못하고 이것 참 큰일났제.
그래 가지고 되아 있는 형편, 만 원을 모두 모아 드린 그런 것이 모두 있제, 저런 것이 있제, 어디 가 있을 도리가 있어야제. 당최 못 있어. 본래 또 그저... 여까장 해 놓고.(1시간8분30초~1시간26분46초)





(2)------------------

본래 그 저 견성(見性)해 가지고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턱! 허니까—그 본래 견성헌 공안은 그건 아니여. 견성헌 후에 고놈 물어 대답했지.

이것이 나와야 되겄는디 나올란가 모르겄네. 역사 법문이니께 내 이런 걸 다 집어넣어야겄다 그 말이여.
‘단지불회면...’ 저 혈맥론에 가서, 혈맥론(血脈論)에 있나? 그 무슨 그 위에는 다 내가 다 외울 수 없고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다’ 거그서 견성을 했어.
거 언하대오(言下大悟)여, 그 뭐.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거그서 견성(見性)을 했어.

그만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그만, 그 또 그 어른이 글쎄 어린아같은 양반이 거 뭐 앞뒤 무슨 뭐 조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뭐 있나. 나온대로 막 해버리는디.
아, 그러니깐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인가(印可)를 어떻게 한고 하니, 이거 다 중요하거든. 나 밖에 몰라. 아무도 모르는 거여.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이거 꼭 여그 시방 혜월 스님한테 다 인가한 것이여. 그런 인가 있어야 하는 거여, 꼭.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잡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등등(燈燈)이 상속헐 것이니라. 네 깨달은 도리를 또 상속해라' 인가한 것이여.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정혜사에서 견성헌 후에는 그만 뭔 산하석벽(山河石壁)이 불응장애(不應障碍)요, 산하석벽이 어디가 장애가 있으며. 녹수(綠水)가 하구여청산(何拘與靑山)가, 녹수가 어찌 청산에 걸릴까보냐.
그만 그길로 나가서 아무 참, 무애(無礙)라. 무애여. ‘걸림이 없다’ 그 말이여.

그 무애(無礙)라는 것은 법체(法體)에 걸림이 없다 그 말이지, 무애에 가서 술 먹고 고기 먹고 마음대로 헌 무애 그것인가, 어디? 잘못 알면 큰일나, 그런 것 다. 소용없어.
술 먹을디 술 안 먹는 것이 그것이 걸림이 없는 도리고. 잡행(雜行), 못된 행실 안 헐 것을 않는 것이 그것이 무애(無碍)지.

막 무애—잡행(雜行), 막 음주식육(飮酒食肉)이 무방반야(無防般若)고, 막 떨어져 거꾸러지고 그것이 무애가 아니여. 잘못 알면 못써, 학자들이.
술 안 먹을 걸 꼭 안 먹어야 하고, 계행(戒行) 지킬 걸 꼭 지켜야 그것이 곧 자체가 무애(無碍)지.

술 그까짓 것 막 먹고, 그저 괴기도 막 먹고, 그저 질도 막하고, 질도 여러 가지여. 도둑질도 있고 음행질도 있고, 무슨 뭐 질도 막하고 그것이 무애(無碍) 아닌 것이여. 그것 고약한 짓이제.
왜 처음에 내가 그 동리(桐裏山)에서 왜 견성했다 해 가지고 마당 앞에다 갖다 뜰에다 오줌을 싸고는 그게 옳다고 그려? 고런 것이 그 못쓴 것이다 그 말이여. 어디가 있을 것이여.

탁자에 부처님을 모셔 논 것을 ‘저걸 뭐 부처냐?’고 가서 쿡 밀어 버리고, 그게 무애(無碍)여? 그게 거 도통(道通)헌 짓이여?
숭악한 그거는 무애(無碍)가 아니라 못된 사마외도행(邪魔外道行)이다 그 말이여. 이걸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그만 그대로 무애여. 아무 거침없다. 어디가서 뭘 허든지 거침없다. 도행이다.
길가에, 홍성 나가다 길가에 숭악한 집이 있는디, 그 숭악한 집 그것 다 떨어져 엎어진 그런 집이 인자 누가 내던져 버려서 살 사람도 없고 헌 것을 꼬쟁이로 겨우 괴우고, 작대기로 괴우고 거그를 쓸고서는 뭔 짚다발 갖다가 우게다(위에다) 이어 놓고서는 신을 삼아.

그 어른이 어릴 때, 뭐 어릴 때 교육이 저 속가 저 마을 촌가에서 교육을 받았어.
혜월 스님도 역시 어릴 때에 무슨 거 부모 밑에서 따뜻허게 교육 받고 커나지 않은 어른이거든. 그래 아주 무식해. 무식헌 어른인디, 또 육조 스님 뭐 무식허데끼 다 그렇지 뭐.
그 천박허게 마을에서 날처럼 커나든 안 했지마는, 나같이 무슨 서모 밑에 커나든 안 했겠지마는 그 어른도 역시 글 하나 못 배우고 커났으니까 알아볼 지경이지 뭐. 그래 가지고 무슨 국문(國文)도 잘 모르시는 어른이니까.

당신이 평생에 아는 것이 신 삼는 것이여. 신 그걸 삼아서 알아—‘신을 삼아서 벌어먹고 살아야겄다. 견성을 했으니까 보림(保任)을 해야 허겄다’
보림을 헌 지경인데 거그서 그런 찌그러진 집 하나를 어떻게 가다가 줏어 가지고는 거그 들어앉아서 신을 삼고 있는디, 그때 나이 그렇게 많지 않으시고 헌게 마누라를 하나 얻었다 그 말이여. 마누라를 얻어야지, 혼자는 있을 수가 있나. 고독해서.

그러니 그 마누라도 무슨 뭐 부귀헌 그런 마누라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이도 역시 가난헌 그런 마누라를 하나 얻어 가지고서는 내외간에, 그 큰스님은 신을 삼는다. 그러면 그 여자는 신 수장(修粧)을 혀. 요렇게 뀌어서 옛날에 짚세기같은 거 뀌어서 모도 그 수장을 해서 신도록 만드는 걸 혀. 골 치고.
아, 이렇게 해서 하루 다섯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네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밤까장 삼으면 다섯 커리썩 삼고 요렇게 해서 그 이튿날은 홍성장에 가서 팔아 와.
팔면은 그 몇 냥 받으면은 쌀팔고 해가지고 먹고, 두 분이, 혜월 큰스님은 신 삼고 그 부인은 신 삼으면은 수장 다 해가지고 갖다 팔아서 양식 사다가서 참, 생애가 족혀.

그래 먹고 살았는데 ‘혜월 스님 견성해서 경허 큰스님이 인가했다’는 말씀은 확 났고.
그때에는 한국의 수좌가 몇 못 되아. 얼매 없어. 전부 다 보탰자 수좌라고 공부헌 이가 몇 안 되아. 그러지마는 견성한 이는 썩 귀헐 때거든.

경허 스님 마침 계셔 가지고 인자 경허 스님 밑에 제일 수제자 하나 났는데, 그다음에 만공 스님이지마는. 그래 그만 그대로 떡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마을에 저 나가다 어디 길가에서 떨어진 집, 무너진 집 하나 얻어 가지고 신 삼아 팔고 사는데.

없어, 선객이. 인자 이렇게 많이 모두 선(禪)이 자꾸 발전되제. 앞으로 인자 참선 참 크게 발전되는구만.
저 범어사도 미국 사람이 시방 와서 여그서 배워 가지고 나가 즈그 나라에 선(禪) 편다고 있다구만.
아! 여그 이 녀석은 나가더니 그 어디 붙잽혔다는구만, 인자 들은게. 아주 붙잽혀서 아(兒)들 가르키기 겨를이 없다는구만. 뭐 영어 가리키고. 막 반하제, 그 모두 배울라고.

아, ‘혜월 큰스님이 홍성 노변(路邊)에서 그렇게 신 장사허고 계신다’ 그말 듣고는, 그때 인자 차츰 그때도 선이 좀 발전되든 때인디,
아, 젊은 선객이 한 몇 있다가는 ‘아! 그럴 수가 있겠냐’고. ‘모시러 가야겄다’고. 그래 사방 찾아서 인자 큰스님을 모시러.

아! 와 보니까 홍성 노변에서 이리저리 참 찾다 보니 거기에서 신 장사를 허고 계시는디 참, 형편없네. 그렇게 바쁘니까 언제 무슨 뭐 그릇 치울 겨를도 없고, 밥 먹으면 밥그릇 숟구락 치우도 않고 고대로 놔두고, 또 된장도 떠먹다가 씻도 안 허고 고대로 놔두고, 고러고는 앉어서 두 내외가 신 삼으면 수장허느라고 정신없어. 그러 안혀. 반찬이고 뭐 아무것도 없고 깨진 솥.

아, 그래 가서 “큰스님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와야? 어디서 왔냐?”

“저 통도사에서 왔습니다”
“그려? 나 봐라. 신 삼고 나 우리 마누라허고 산디 내가 어찌 가야?”

“아따, 가셔야 합니다. 마나님이랑 가시지요. 가셔야 합니다”
“못 간다. 안 된다”

“아, 가셔야 한다”고, 아! 그만 대들어서, 서넛이 가서 대들어서 뒤에서 밀고 그만 앞에서 스님을 업고, 업고 밀고 아! 이러고는 가자고 헌게.
업힘서 말여 “아이고,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라고 이러냐”

“아따 가셔요, 마누라...”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란 말이냐, 아아아!” 아, 이럼서 그만 업혀 가네.

그때 참 기가 맥혀. 돌아보고 울고 돌아보고, 기어니 업혀가 간게. 남에게 업힌게 떠방치는 못허고 가시기는 가시면서도 돌아보면서 울어. ‘불쌍하다’고. 허허.
마누라도 문턱에서 문가에서 울고. 그래 거그서 아! 이렇게 작별을 시켰소.

자, 도인은 여차(如此)하거늘, 이와 같이 참, 노변에서 신 삼고 그러고 계시는 그런 큰스님을 그렇게 모시러 가는데. 세상에, 시방은 도인이라고 허면 숭부텀 볼락 하네. 어디 도인, 도인이면 무슨 도인은 구름 속에서나 사는 줄 알고, 어디 저 무슨 탁자에 부처님보담 더 높은 줄 알고. 이런 꼴 좀 봐.

그렇게 믿겄오, 누가? 누가 믿어?

그것 저것을 불구허고 도 배울 욕심으로 학자들은 가서 업고 그만 나와 가지고는 그 어른을 모셔다가 놨소 그려. 모셔다 놓고는 절을 턱 허고, 산중이 모도 큰스님 모셔 왔다고 절을 헌게, 응 절 딱 받고는 또 그냥 마누래 생각은 꿈도 없네. 거, 뭐 마누래 그까짓 녀러 것, 뭐 또 그때뿐이제. 아무 소용없어.

“아 큰스님, 거 거그 그 모도 집안 생각 안 납니까?”
“뭔 집이야? 아따 뵈기도 싫다, 인자. 그 뵈기도 싫다” 그러고는 인자 논 친다고 그러고 계셨다 그 말씀이여.
그러니 도인이 그런 영아행같은 그런 도인을 그래 인자 참 믿을 줄 알아야 하고, 모실 줄 알아야 하고, 위법망구(爲法忘軀)를 헐 줄 알아야 혀. 그래야제.

넨장칠 것! 정전강 조실 스님이요, 정전강이 큰스님 스님이라고 턱 해 가지고 여그서 6년 동안이나 앉어서 도(道) 가르키고 요러고 앉었는디, 밤낮 내가 요렇게 6년 동안 설법허되 꼭 참선법밖에는 설해 드리들 않고 아! 이러고 있는디.
밤낮 그 내 모두 숭만 봐내지, 뭐 누가 한 번이나 참말로 법을 배울 줄 알어? 내 참말로 가만히 앉어서 내 혼자 우는구만. 나 혼자 울어.

세상에 내게도 이러헌 법이 있건만, 혜월 큰스님도 나한테 인가를 했고. 이게 자랑이여. 별수없어.
없는 걸 내가 있다고—내게 답이 다 있어. 그놈 답 다 해놔야 되지만 학자한테 해로워. 그래 내가 안 혀.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등지를 일러라. 공적영지 등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그놈을 내가 여그서 턱 해 놓으면 좋지. 하지마는 학자한테 해로워서 그래 내가 안 혀.

그래도 죽백천추(竹千秋)에, 인자 여 오늘 설법이 지금 기재(記載)를 헌다니까 여그 다 들어가 가지고 이 다음엔 결집(結集)을 해 놓으면은 거그 다 나올 터이니, 학자가 모도 그런 걸 봐 가지고서는 대단히 해로워. 그래서 내가 그건 않고 인가를 받았단 말만 해 놔.

고 가다가 그 제일귀 답 같은 것도 있어. 용성 스님한테. 그런 것은 답을 바로 해 놔. 바로 그놈이 해서 그놈 공포된 놈이니께 그리 해 논다 말이여.
이것도 혜월 큰스님한테 헌 것도 그때 당시에 다 알아. 다 알지마는 그거는 너머 갖다 그만 드러나 버려서, 그런게 인자 저놈 모도 헌 놈은 내가 다 해 놓지마는 요것은 헐 수가 없어.
내가 먼첨 헐 때는 그걸 갖다 해 놨어. 그놈을 가서 어디 해 논 것을 들어보고 찾아보고 그러지 말어. 알 필요가 없어.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이 중헌 게 아니여.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서 설파치 말어라. 이것이 참으로 진면목(眞面目)이요, 참말로 도가(道家)에 가서는 여차(如此)헌 법이다 그 말이여. 그 해석을 기달치 말고, 그러헌 데 법문을 알라고 말어. 학자한테 해로워.

그렇게 혜월 큰스님 어른을 갖다 모셔 놓고는 그 당시에 동래 범어사와 그때 당시에 학자가 혜월 큰스님을 어떻게 모셨냐 그 말이여.
인자 선지식 모시는 법을 여까장 말씀했지마는 여그서 이어서 또 인제 더 헐 것이여. 많이 헐 것이여.

오늘 법문 아침에 마쳤어. 반산림 법문을 여까장 마쳤어.
왼통 못 견디는구만. 모도 법문 듣느라고 되아서. 응, 세 시에서 네 시, 다섯 시 삼십 분인데.

올 삼동에 법문 무척 헌다 인자. 이 법문을 옳게 들어서 양을 채와야 하는 거여. 법량(法量)을 채와야 혀. 법밖에 없는 거여.
들을 때는 싫으면 되아? 귀찮으면 되아? 듣기 싫어서 왼통 야단이다. 궁딩이를 드리 받치고 무릎도 꿇고. 에이고, 나 참말로.(1시간26분47초~1시간43분5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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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꼴 ; 소에게 먹이는 풀.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평전(平田 평평할 평/ 밭 전) ; ①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 ②평야에 있는 좋은 밭.
*오죽하다 ;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대단하다.
*도인(道人)의 81행(行) ;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조태 ; 자태(姿態). ①어떤 모습이나 모양. ②몸가짐과 맵시(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
*영아(嬰兒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 ; 젖먹이.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
*타기다 ; ‘닮다’의 사투리.
*대찬(大讚 큰 대/기릴·찬양할 찬) ; 크게 칭찬함. 또는 큰 칭찬.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국내(局內 판·마을·방·구획 국/안 내) ; ①묘지나 절의 구역 안. ②관청이나 회사에서 부서(部署)의 하나인 국(局)의 안.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더욱 빛나고, 법의 수레바퀴가 항상 구르다(불법의 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원청간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역전(驛前 역·역참·정거장 역/앞 전) ; 역의 앞쪽. ‘역 앞’. 정거장 앞.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계(契) ;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상부상조의 민간 협동 조직.
*계금(契金) ; 곗돈(契-). ①계에 들어서 내는 돈. ②계를 부어 찾는 목돈. ③계에서 가지고 있는 돈.
*집어쓰다 ; 돈 따위를 닥치는 대로 쓰다.





------------------(2)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다만[但] 알지 못할[不會] 줄 알면[知] 곧[是卽]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무애(無礙, 無碍) ; 산스크리트어 apratihata 의 한역어(漢譯語). 무애(無閡), 무장애(無障礙), 무가애(無罣礙)라고도 한다.
①물질적으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장애를 주지 않는 것.
②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없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 어떤 것에도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 자재함.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잡행(雜行 섞이다·천하다 잡/다닐·행할 행) ; ①잡스러운(순수하지 아니하고 천하고 교양이 없는) 행실. ②스님이 계율을 범하는 행위.
*음주식육(飮酒食肉) 무방반야(無防般若) ;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일이 반야에 방해되지 않는다’라는 삿된 소견.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란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중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국문(國文 나라 국/글월 문) ; 나라 고유의 글자. 또는 그 글자로 쓴 글.
*삼다 ; 짚신이나 미투리 따위를 결어서(겯다 : 대, 갈대, 싸리 따위로 씨와 날이 서로 어긋매끼게 엮어 짜다) 만들다.
*짚신 ; 볏짚으로 삼아 만든 신.
*미투리 ; 삼[麻]이나 노(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골 치다 ; 골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다.

* :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일정한 모양을 잡거나, 잘못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는 데 쓰는 틀.
*커리 ; ‘켤레(신발, 버선, 방망이 따위의 두 짝을 한 벌로 하여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의 사투리.
*다섯 커리썩 ; ‘다섯 켤레씩’

*-썩 : ‘-씩’의 사투리.
*쌀팔다 ; 쌀을 돈주고 사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넨장칠 ; 네 난장(亂杖)을 칠 만하다는 뜻으로, 못마땅할 때 욕으로 하는 말.
*난장(亂杖) ; ①고려 · 조선 시대에,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마구 매로 치던 고문. ②몰매(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어 때리는 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가로판 p179)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참고 ⑤] 『전등록(傳燈錄)』 제11권.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p718~720.
鄧州香嚴智閑禪師靑州人也 厭俗辭親觀方慕道 依潙山禪會 祐和尙知其法器 欲激發智光 一日謂之曰 吾不問汝平生學解及經卷冊子上記得者 汝未出胞胎未辨東西時 本分事試道一句來 吾要記汝

등주 향엄지한 선사는 청주(靑州) 사람이다. 속세를 싫어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도를 흠모하다가 위산(潙山)의 선회(禪會)에 의지했다. 영우(靈祐) 화상은 그가 법을 이을 만한 그릇임을 알고 지혜의 광명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평생 배운 견해와 경전이나 책에서 기억해 가진 것을 묻지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胎)에서 아직 나오지 않아서 동쪽과 서쪽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本分事)에 대해서 시험 삼아 한마디[一句]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수기하겠다”

師懵然無對 沈吟久之 進數語陳其所解 祐皆不許 師曰 却請和尙爲說 祐曰 吾說得是吾之見解 於汝眼目何有益乎 師遂歸堂 遍檢所集諸方語句無一言可將酬對 乃自歡曰 畵餠不可充飢 於是盡焚之曰 此生不學佛法也 且作箇長行粥飯僧兔役心神

대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다가 오래 침음(沈吟)한 끝에 몇 마디의 견해를 말했으나, 영우가 모두 허락하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영우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사가 결국 방으로 돌아가서 수집해 놓은 제방(諸方)의 어구(語句)들을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대꾸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대사는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으로는 굶주림을 채울 수 없구나”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할 바에는 먼 길을 떠나 죽이나 밥을 먹어치우는 중이 되어서 심신(心神)의 괴로움이나 면하리라”

遂泣辭潙山而去 抵南陽覩忠國師遺迹遂憩止焉 一日因山中芟除草木 以瓦礫擊竹作聲 俄失笑間廓然惺悟 遽歸沐浴焚香遙禮潙山 賛云 和尙大悲恩逾父母 當時若爲我說却 何有今日事也 仍述一偈云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踪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그리고는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陽)에 이르러 혜충국사(慧忠國師)의 옛터를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를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면서 멀리 위산을 향해 절을 하며 찬탄했다.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저에게 설명하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게송 하나를 지었다.

한 번 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되었네.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초조해 하는 근기에 떨어지지 않네.
곳곳마다 자취를 남기지 않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통달한 자들이 모두 상상기(上上機)라 말하네.

[참고 ⑥]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80-181) (가로판 p171~172)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참고 ⑦] 송담스님(No.122)—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에서.
학자(學者)에게, 참선(參禪)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공안을 설파해 주면 이 세상에 제일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타파(打破)를 해야지, 이론을 통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스스로 타파를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지, 이 공안을 갖다가 요리조리 힌트를 줘가지고 알것께 맨든 것은 이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이 되아서 그것은 그럴싸하니 답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깨달을 분(分)을 없게 맨들아 주는 것이 되는 것이여.

참선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중생(衆生)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신음을 하던 사람이 겨우 인자 그 병을, 병근(病根)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공안을 갖다가 설파를 해주면 겨우 일어설라고 몸부림친 놈을 여지없이 몽둥이로 쳐서 꺼구러뜨려 버린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힘이 없어가지고 일어설라 말라 하는데 몽둥이로 쳐서 꺼꾸러뜨려 버리니 인자는 그 사람은 일어나기가 틀린 것입니다. 공안을 설파해 준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57분59초~59분25초)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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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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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1. 11. 19. 06:45

법거량(전강선사 No.008)—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위에 동방장(東方丈)에 계신 허태오 스님과 법거량 | 모든 경계(境界)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외경(外境)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모든 경계(境界)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외경(外境)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분다헌 것이라든지, 시(是)와 비(非)라든지, 일체 추헌 경계와 만경(萬境)이 내 자심소현(自心所現)이니,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마음을 단속하고 어쩠든지 도를 한번 닦아 보소.

 

 

(1) 16분 40초.

 

(2) 14분 14초.

 


[법문]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전008)

(1)------------------

그만 거그서 뚝 떠나 가지고는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위에 동방장(東方丈)이라고 있어. 아, 학자들이 다 봤을 터이제.
동방장에 그때 누가 있었드냐 하면 허태오라는 스님이 있어. 허태오. 허태오인디 이름은 태오인디, 그 다음에는 당호 누구한테... 그 당호(堂號)를 허운송이여. 운송(雲松), '구름 운(雲)' 자, '솔 송(松)' 자, 허운송 스님이여.

운송 스님이 그때는 허태오라고 했제, 운송 스님이라고 안 했는디.
동방장에 계시는데, 동방장 조실(祖室)로 있는 것도 아니고—언제 그분이 나와서 조실 살림 헌 일도 없고 동방장 뒷방에 가만히 이래 앉어 공부헌 분인데. 누데기는 누데기는 한국에서 그런 누데기는 없어. 참 진짜 누데기인데. 무풍 스님보담 더 혀.

왜, 옛날에 만공 큰스님 다 계시고 헐 때 무풍 스님이 있었거든. 무풍 스님은 누데기로 누데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 허태오 스님은 그 무풍 스님 계통도 아닌데, 그렇게 누데기를 입었어.
굉장하니 전부 실이제, 바늘로 꾸맨 실뿐이제, 베 자체라는 건 하나도 없어. 고렇게 집어서 입고.

음식은 잡숫되, 솔잎을 따다가서 빻아서 그 가리를 바리때에다 넣어 가지고는 물에다 타서 자시고. 그밖에는 없제. 아무것도 먹는 게 없어. 거 무슨 콩가리 조금씩 먹는다 하드구만.
세상에는, 그러헌 누데기에다가 송엽 빻아서 가리, 콩가루에다 묻혀서 그 물에 좀 타서 자시고 그러고 앉었는 걸 보니 참, 세상에 도인의 아무리 참 탈속(脫俗)헌 도인의 생활이라고 헌다 헐지라도 그 이상은 더없어. 참 고상허고 깨끗허고 기맥히게 해 가지고는 딱 지내는데.

마침 그 스님 책상 위에다가서 법문을 하나 써 붙여 놨는디. 그 또 책도 그 뭔 책을 많이 그 법문을 해서 모도 지어 놓고 책상에다가 걸어 놨는디.

그 법문이 월조(月照) 스님 찬(讚)이여. '달 월(月)' 자, '비출 조(照)' 자, 월조선사찬(月照禪師讚)이여. 영찬(影讚).
‘월야할(月也喝)이요, 월에도 할이고. 조야할(照也喝)이요, 조에도 할이요. 월조니까. 월도 할, 조도 할. 비월비조(非月非照)라도 역할(亦喝)이니라. 월도 아니고 조도 아니드래도 또한 할이다’
요렇게 딱 해 놨어. 월조 스님 영찬에다가.

내가 묻기를, 거가서 인자 보고 절 한 자리 하고는 앉었다가 내가 묻되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라도 역할이라 했으니”
그 할도 빈할(賓喝)도 있고, 주할(主喝)도 있고—빈은 ‘손 빈(賓)’ 자, 손에 대해서 할(喝)도 있고, 주인에 대해서 할(喝)도 있고, 빈할도 있고 주할도 있으며 타할(他喝)도 있고 자할(自喝)도 있을 터이제. 다른 이한테 할도 있고 나, 내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지마는 이건 내가 헌 소리고.

‘빈할 주할 타할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니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도 할이다 하는 것이 그렇게 다 할 수가 있겄다’ 내가 짐작을 딱 하고서는, “그래 그러면 월(月), 조(照), 비월비조(非月非照) 다 할(喝)을 했다면은 그 할은 어따가 하는 것입니까?”

불가불 할로 들어갈 밖에 없제. 빈할 · 주할 · 타할 · 자할 다 툭 떼 번지고 인자 불가불 바로 들어갈 수 밖에 있나. “할(喝)은 어따가 허는 것입니까?” 고런디 가서...


잔 사람은 나가! 눈깔 감고 잔 사람은 나가!
고런 놈의 심리를 가지고 선방에 들어와서 밥 도둑질 말어! 공연히 씨잘데없이 밥 도둑질이나 해 먹고 앉아서 그렇게 지낼라고 말아! 시주것 함부로 없앨 수 없고. 제 죄 퍼짓고. 고래 가지고 무슨 되나 말이여?

그런디 그 바로 보이면은 답 하나 해야 혀. 그 바로 보이지 않고는 답 못혀. 왜 못 허냐? 왜 그렇게 어리석게 해 가지고 어쩔라고? 응, 더듬허니 의심이 나 가지고는 그...
자기를, 내 경계를 내가 살펴 봐. 그래 가지고 해 되야? 바로 보이거든 해 봐.

아, 그래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서로 탁마(琢磨)인디. 탁마상성(琢磨相成) 해야 하는디. 그 묻는 것 그런 거, 벌써 척 헌데 가서 처컥 보면 왜 못혀.


허태오 스님이, 그때 허태오 스님이어. 그 말 대답을 나한테 통쾌하게 한마디를 못 일러 주었겄다. 다 알면서도, 나한테 그랬던지 어쨌든지 법을 애꼈든지 안 해 주었어.
나 안 해 준 줄만 알지, ‘몰랐다, 못 봤다, 못 깨달랐다’ 그런 말 안 해아. 나 고때 그 지경만 얘기했지.

또 그런 것을 그렇게 탈속하게 참 도를 닦고 계신 분한테 내가 함부로 거다가서 뭐 방맹이—요새 꺼떡 허면 무슨 '방맹이 준다'고. 제가 무슨 뭐 방맹이, 무슨 갖춘 방맹이나 있나?
쫓아 들어가서 선지식 방맹이부터 줄라고? 고렇게 평생 고런 것이 있어. 거, 천하 그런 것 천하 참 때려잡기 천하 쉽네.

그놈이 참말로 눈깔 가진 놈이야 아! 그것 무슨 뭐 편영이행(鞭影而行)이제. 말헐 것이 있나.
발써 남 방맹이 줄라고 고런 거 엿보고 댕기는 것은 가짜인 것이여. 틀렸어.


내가 뭐 들으니 어저께, 여그 무슨 자혜 수좌 한테 들었나?
자혜가 통 묵언허고 들입대 공부를 해제끼는디 하! 가당(可當)토 안 혀. 지금 이 대중에서 응, 압도(壓倒)구만. 압도적이여. 그 밖에 나가서도 그만 그 공부를 허는 것 보면 냅대 버티고 허며. 아! 한바탕 그래야제. 저 담 밖에 댕긴 걸 봐도 화두를 꽉 붙잡고 그 들입대 참 용맹 참 정진이여.

그런디 저 먼첨은 원청 여그가 그래아. 원 돌아설 디도 없어. 방이 좀 넉넉한 방이 아! 여그저그 좀 있어야 헐턴디. 저 저짝 방, 선객 스님네 지금 지내는, 우리 대중 지내는 선방 쬐끄만헌 디서 밥을 먹고 거그 잠자고, 거그서 서서 왔다갔다하고, 원 이것 당최 원청 복잡햐.
고런 것이 그만헌 방이라도 어디 서너 개나 있어야 헐 텐디, 원 없어. 개복실(改服室)도 있어야 하고 좀 허리 펴는 디도 있어야 헐 것인디.
아! 뒷방은 쬐깐헌 것 메주를 거다가 시방 띄우느라고 두고. 거, 부인 손님 오시면은 그 방에서 밥을 잡숫게 하고, 원 당최 꼼짝헐 수가 없어.

어디 뒷방이라도 넉넉한 방이 있으면은 같이 큰방에서 정진허고 나와서, 그 뒷방에 와서 용맹정진을 헐 생각이 꽉 차고. 거 그런 숭악헌 방에라도 들어가면 그만 정진을 허고 있고.
아, 어떻게 했으면 참 쓰련만 당최 뭐 용납헐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는 당최 마음대로 제 양대로 한바탕 도를 닦아 봐야 하겠는디, 그 양대로 못해 봅니다. 자연 모도 걸리게 되고.

그래 내가 말을 허되, “자, 천 경계 만 경계가 내게 있으니 그 좀 복잡허고, 그 좀 처소가 방연(尨然)치 못허드래도 어쨌든 그런 데서 한번 참, 인행(忍行)을 허소. 참는 행을 허고. 약무인행(若無忍行)이면 만행(萬行)은 불성(不成)이여. 참는 행이 없으면 만행을 이루지 못혀.
집도 절도 없어 바위 틈새기 가서도 도를 닦고, 거 다 고인(古人)네가 다 옛날 고인네가 토굴터, 산중에 들어가서 토굴터 잡아 가지고 방을 맨들되 둘도 못 앉게 맨들어 가지고 눕도 못허고 다맛 앉어서 다리도 못 펴고 꼼짝없이 들어앉아서 공부헌 도인도 있어.

역부러 그렇게 방을 지어. 발 뻗고 허면은 눕고 싶기도 허고, 그런게 이리 앉어도 당최 뭐 몸뚱이 돌이킬 곳이 없이 혼자 몸뚱이 꽉 찌어 앉게 요렇게 해 가지고 도(道)도 닦았으매, 한 철 넉넉헌 방이 없고 그러드래도 불끈 참고 산림(山林) 중에 휘딱 달아나고 그러지를 말고.
다 똑 도 닦는 스님네니까, 도 닦는 스님네가 모여서 서로서로 찡겨서 그 용납할 길이 없다 하드래도 다 도 닦는 스님네니 그러헌 디서 넉넉헌 마음을 품고 화두(話頭)를 잘 잡드리허고 좀 지내고 잘 지내소.

모든 경계(境界)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외경(外境)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분다헌 것이라든지, 시(是)와 비(非)라든지, 일체 추헌 경계와 만경(萬境)이 내 자심소현(自心所現)이니,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마음을 단속하고 어쩠든지 도를 한번 참아, 그 참아 가면서 닦아 보소”해서 내가 가서 인자 대중 큰방에서 묵언도 허고 좀 잘 좀 닦아 달라고 부탁하고, 그래서 그동안에 공부를 알뜰이 잘 허더니 또 엊저녁에 또 다시 와서 묵언(默言)을 트고—나한테 와 또 틀 밖에 없지.

묵언을 트고 말을 허되 “스님네는 참 그렇게 공부를 알뜰히 잘 허십니다. 허신 가운데 저도 좀 그 가운데 들어서 참아 가면서 잘 닦았으면 좋겠는디, 늘 그 가운데 공부는 허느라고 딴에는 애를 씁니다.
허지마는 양껏 못 해서, 양대로 좀 못 해서, 아! 우리 스님한테 ‘그 용(茸)을 좀 보내 달라’ 했더니 용을 보내 주어서 그놈을 달여서 먹고는 기운도 나고 앉어서 정진허기도 좋고 아, 그래서 양대로 좀 해 보고 싶은디 뒷방이 하나가 있으면은 한바탕 거그서 했으면 좋겠는데.

아, 모도 공부허시는 방에 나 혼자 부셔대고 나 혼자 잠을 안 자고, 다 주무시는디 혼자 부스럭대고 거그서 좀 잠 오면 또 일어나기도 허고, 또 잠 안 오면 앉기도 허고, 일어났다 앉었다 허는 가운데도 제 좀 그 양대로 한바탕해 볼 마음이 납니다.
그러헌디 아, 뒷방 하나가 없고 허니까 양껏 못 해서 이것 큰일나고, 반산림은 다 되아 가고 또 금년 삼동에 일을 마추지 못헐 걸 생각하니 참 근심이 됩니다” 아, 이려!

아, 거 인자 나이도, 뭐 나이가 있을까마는 5세에 견성도인도 있는 것인데, 나이 18세니 뭐 넉넉허지마는 그때를 여의고 언제 있겄는고 말이여. 아! 그 참 기특허다 그 말이여.(32분15초~48분55초)





(2)------------------

“오냐, 정 그렇다면은 내가 네 허는 짓을 보니 그래 애쓰는 것이 보인다. 그거 참 퍽 기특하다. 나는 아무것도 없고 그것밖에는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 와서 그저 내 이 처소도 아닌디 토굴도 아닌디, 이런 데 오셔서 모도 고생허고 계신 그것은 내가 미안키도 허고, 허지마는 그 가운데에 참말로 그렇게 용맹정진헌 것이 보인다면은 자기 일이고 당신네 일이... 자기네 일이기 따문에 내가 고마운 것이여. 누가 나 해달락 하나?

무척 고마운디. 오냐, 그렇다면 방 하나를 들여 만들아 줄 수가 있나. 어디 여그서 방 하나를 치워 줄 수도 없고. 그러헌즉 용주사로 가거라.
용주사도 내가 조실(祖室)로 있고, 내가 거그 중앙선원(中央禪院)이라고 허고 있으니 거그는 방이 많다마는 원청 경제 곤란으로 큰방만 불 딱! 너 놓고는 ‘큰방에 모여서 삼직(三職)이고 누구고 아무도 거그는 도 닦을 사람이면 다 들어오니라’ 해 가지고는 사미(沙彌), 지금 저 사미가 아니라 행자(行者)라도 다 내려와서 도를 닦고 있어. 거그 들어가서 한번 해봐라.

방이 원청 넓찍허니 큰디 그 방이 훈훈허니 좋다. 저 한쪽에 앉아서 제 마음대로 해도 누가 시비헐 사람도 없지마는, 눈에 어디 뭐 원청 큰게 아무 걸림 없다.
그러고 또 다른 방은 모두 안 때아. 다 그 꼭다리만 열어 놓으면은 곧 훈훈허지마는 기름 관계로써 기름을 한 달에 10만원어치 가량 때아.

그러니 그렇게 경제가 없기 따문에 큰방 하나만 때면은 불과해야 돈 몇만 원만 가지면 때니까, 그런 데 가서—그래 뒷방 하나 불 때 달라고 해서 하나를 떡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없을 것이나, 지대방도 또 있으니깐 어떻게 그렇게 어떻게 한번 해 봐라” 했더니 참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그러면 그래 보겄습니다” 여까장 했어.

내가 오늘 법상(法床)에서 법문 겸해서 그런 어린 사람이 발심(發心)해서 도 닦는 것이 참 찬탄헐만하고 그래서 내가 여까장 말한 것이니 대중은 그렇게 알고, 오늘 반산림이니까 반산림 법문 듣고 그렇게 그리 가도록, 내나 해야 한 산림, 한 중앙선원이니까 그렇게 대중이 다 알아주어.


그래 또 연속해서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이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다. 송곳도 없도다’
그래 우리 도인은 참선법(參禪法)은, 참선 도리는 그 가난헌 법이여. 이렇게 가난혀.
돈과 쌀과 뭐 그런 것이 없어서 가난이 아니라 우리 참말로 가난헌 도리가 있어.

생사(生死)가, 죽고 사는 것이 없으니 발써 가난하제. 사는 것도 없다. 죽는 것도 없다. 생사가 우선 없으니 퍽 무척 가난하지 않는가.

흉중무물(胸中無物)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다. 고인도 ‘흉중무물이니라,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무슨 물건이 있어? 아무것도 없제.

그 의리(義理)로 거, 저 수수께끼처럼 그 ‘흉중무물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느니라. 아주 가난해서 생사가 없느니라’
그러면 흉중무물 가운데에 참말로 그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다’ 한디, 그런데 가서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이 없느니라, 물건이 없느니라. 또 생사가 없느니라’ 고런 것은 비유해서 말허자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밖에는 안 되거든.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다. 그밖에는 안 되아.

반기이파(飯器已破)가 있어. 밥그릇은 이미 깨졌느니라. 고 어디가 들어맞는 말일까? 이것 이렇게 무척 가깝고, 내가 자꾸 바탕을 울려준디 이렇게도 모도 멍청헌가. 멍청허단 말 들어야제. 멍청이 소리 들어야제. 어째 할 수 없제.

어째 반기이파(飯器已破)일까? 응, 모두가 공안이라는 것도 경계요, 비유인디.

아! 뭐 공안이 뭣인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다' 바로 경계 아니여. 그놈 갖다 막 잡아 썼지, 뭐여.
그놈을 바로 봤다면은 다른 공안이 왜 맥혀? 천칠백(공안)이 왜 맥혀? 맥힐 거가 뭐여? 하나면 똑같은디.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그런 데가 인자 조사관(祖師關)이 딱딱 백혀야 되아.
생사가 없느니라. 생사가 없는 데 거가 조사관이 꽉꽉 들어가서 탁! 탁! 장엄을 해버려야 되아.
반기이파(飯器已破)가 그놈이 있어야 되거든.

격외(格外)로 볼 게 따로 있제.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 반기이파(飯器已破)는 격외로 봐도 안 되거든. 거 격외로 보면 되아? 큰일나지. 안 되아.
모도 그만 격외로만 보면 될 꺼여? 평상화(平常話)로만 보면 될 꺼여? 되지 않아.


허태오 스님한테 가서 그 법문을 딱 내가 인자 물었어. 답이 없었고.
여까장 허다가 지금 모도 별상(別相)에 가서 여태까지 있었어.

내가 하룻밤 자고 떠나올 적에 또 물었다. 이것 천천히 해야 되는 법문이여. 한참 내가 견성했다고 미쳐 가지고 지금 인자—왜 미쳐 미치기야 행각(行脚), 활발헌 행각이지.
아침 하룻밤 자고, 나는 그래도 밥을 얻어먹었어. 공양주가 밥—다른 사람 다 밥을 먹으니까. 허태오 스님만 뒷방에서 그렇게 지내지.

아침에 떠나올 적에 물었어. 고봉 스님 사구게(四句偈).

해저이우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허고 암전석호포아면(岩前石虎抱兒眠)이라
바다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는디, 바위 앞에 돌 호랭이는 아이를 아듬고 조는구나.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여. 쇠뱀이는 금강눈을 뚫고 들어가는디,
곤륜기상노사견(崑崙騎象鷺鷥牽)이여. 곤륜산이 쾨코리(코끼리)를 타니 해오라비란 놈이 말 마부가 되어 가지고 이끈다.

사구내(四句內)에 이 네 글귀 가운데, 유일구(有一句)한디 한 글구가 있는데, 능살(能殺)이요 능히 죽이고, 능활(能活)이여 능히 살리고. 능종(能縱)이요 능히 주고, 능탈(能奪)이요 능히 뺏고.
그러헌 글구가 있으니 고놈만 가려내면 네가 견성했다고, 일 마쳤다고 허락해 주마.

“그런 공안, 그런 글귀가 있으니 그 글귀 하나를 일러줍소사” 공경히 묻제.

‘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하라’ 뭐 어쩌고 그려? 건방진 녀러 녀석들. 제가 견성해 가지고 요렇게 일구래(一句來)라 하는가?

공경히, 참 그 이상 더 공경(恭敬)이 어디 있어? 공경히 묻제. 허니까, “해저이우함월주에, 혜월 스님이 해저이우...” 그이는 평생에, 허태오 스님은 혜월 스님을 제일 믿어. 그때 알았어, 또 믿은 것도.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드라”고. 이려. 대답이 아니라 혜월 스님한테 핑계를 대서 그렇게 말을 햐.
“아, 거 혜월 스님께서는,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그렇게 일렀다 하시드래도 아, 스님 바로 일러주신 말 한마디 요구헙니다. 한마디 일러줍소사” 그러니, 그 말 한마디뿐이고는 어름혀.

내가 그때에 가서 허태오 스님의 그 살림살이를 그대로 다 봐 버렸제. 틀림없어.
뭣 헐라고 바로 봤으면은 바로 한마디를 일러주든지, 못허면 못허든지, ‘혜월 스님은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고. 될 수가 있나.

그러고, 해저이우함월주가 될 리가 있는가? 생각해 봐. 살림살이 다...
그만 그저 “예” 허고는 나는 물러났지. 더 말헐 필요가 없어.

살림살이 보기가 그렇게도 쉽고, 벼락이여. 억지로는 도인 노릇 못허는 것이고, 억지로는 천하 없이 해도 그렇게 겉으로 참 없어. 도인인 체허고 암만 채리고 앉었어야 소용없는 거여.
도만 있다면 척! 세상에 초부아동(樵夫兒童)이 되드래도, 나무 베는 아이가 되고 별 천하에 걸객(乞客), 비는 걸인이 된다 하드래도 천하에 그건 거그 있지.
누구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헐 것이냐 이 말이여. 허지마는 아무리 채려야 소영없어. 묘허제.

내가 거그서 떠나와서 그 다음부터는 그 허태오 스님이 나와서 용성 큰스님 밑에 와서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제2세 교주다’ 나오드구만. ‘2세 교주(敎主)다’ 나와 가지고는 대구를 들어와서 대구에서 참선을 가르킨다고 있어.
허지만 나는 다 알아 버렸은게 소용없지. 나와 태오 스님과는 거리가 참 퍽 멀어져 버렸지. 방장(方丈)에서 떡 하룻밤 자고 허태오 스님과 그와 같이 문답을 헌 후에는.(48분56초~63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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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집다 ;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에 다른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의 사투리.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찬(讚, 贊) ; ①남의 훌륭한 행적이나 서화 따위를 기리어 칭찬하는 글. ②서화(書畵)에 쓰는 시문(詩文)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영찬(影讚) ;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찬양하여 지은 글.
*씨잘데 없이 ; ‘쓸데없이. 소용없이(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이)’의 사투리.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편영이행(鞭影而行) ; ‘여세양마(如世良馬) 견편영이행(見鞭影而行),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들입다 ; 세차게 마구.
*가당하다(可當-- 옳을·정도·가히 가/마땅·필적하다 당) ; ①대체로 이치에 맞다. ②능력이나 수준 따위가 비슷하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개복실(改服室) ; 옷을 갈아입는 방.
*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방연하다(尨然-- 삽살개·높고 크다 방/그럴·~이다 연) ; 두툼하고 크다.
*약무인행(若無忍行) 만행불성(萬行不成) ;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7~108.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註解)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 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 「참는 마음이 꼭둑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 하시니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산림(山林) ; 안거(安居).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한마음 ; 일심(一心). 궁극적 근저(根底 사물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사물이 생기는 본바탕)로서의 마음. 만유(萬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체진여(實體眞如)를 말함.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 우주 사상의 기본에 있는 절대적인 진실.
*용(茸) ; 녹용(鹿茸 : 새로 돋은 사슴의 연한 뿔). 녹용은 양기(陽氣)를 보하며 심장, 근골(筋骨)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보약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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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들어맞다 ; 정확히 맞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해오라비[鷺鷥 노사] ; ‘해오라기(왜가릿과의 새)’의 사투리. *백로(白鷺) ; 왜가릿과의 새 가운데 몸빛이 흰색인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 ; ‘속히 일러 보시오’
*녀러(-녀러) ; ‘~놈의’를 뜻하는 단어.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초부(樵夫 나무할 초/지아비·사내 부) ; 나무꾼(땔나무를 하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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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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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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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1. 11. 18. 19:31

법거량(전강선사 No.008)—(게송)暮山促笻雨 欹笠遠江風 長天尺雁沒 秋空寒影落| 전강선사 오도송(悟道頌) | 혜봉 스님과 법거량.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3) 17분 44초.

 

(2/3) 14분16초.

 

(3/3) 2분 46초.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 (전011)

 


[법문]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전008)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 (전011)

(1/3)----------------

모산촉공우(暮山促笻雨)요  기립원강풍(欹笠遠江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모산(暮山)에 촉공우(促笻雨)다. 저문 날에 작대기가 급허고 그 걸음이 바쁘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모산(暮山)에, 날은 저물었는데 발도 바쁘고 작대기도 급허고 비는 오는구나.

거, 우리가 이렇게 참 온 곳이 하도 무량겁(無量劫)이요, 하도 과거요, 하도 구원겁(久遠劫)이요. 말로 할 수 없다. 저물었다 그말이여. 이렇게 이렇게 저물도록 왔구나.
뭘 했느냐? 여태까지 뭘 했어, 대관절.

오늘이 경술년 동짓달 보름 지나고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半山林)이로구나. 발써 금년 삼동(三冬)도 반산림이 되았다. 여태까지 오면서 오늘 섣달, 음력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까지 왔구나.
그게 모산(暮山)이요, 저문 산이요. 작대기가 급허고 발자취가 급허다. 비는 오는구나.
비가 와, 비가 와. 이렇게 저문 산에 그 바쁜 가운데 비는 온다.

우중(雨中) 속에 비 가운데 있는, 비가 오니 비 온 속에 들었으니, 우중에 있으니 깜깜한 우중에 있어. 여태까장 깨달지 못했구나. 여태까장 날 밝은 비 안 오는 하날(하늘)을 보지 못했구나.
비 안 오는 하날을 봐야 할턴디, 이 비 가운데에서 이렇게도 발자취도 급허고, 작대기도 급허고, 산은 저물었구나.

기입원강풍(欹笠遠江風)이냐. 또 거다가 비는 오니까 삿갓을 뒤집어썼는데 그놈의 그 산풍이 냅대 불어 제끼니 작대기가(삿갓이) 벗거지면 왼 몸뚱이에 비를 맞게 되었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중생의 버르정머리가 여차(如此)허구나.
원, 강풍에 삿갓은 벗어지제, 비는 냅대 오제, 저 발자취는 급허제, 산은 저물었제, 이 지경이로구나. 아, 이렇게 지경이 됐으니 어쩔 꺼나.

처억 한번 거 비바람 없는 곳, 한번 쾌청헌 날빛. 아, 그 툭! 한번 터져보지 못헐 꺼나?

한번 툭 깨달라버린 지경이 있을 텐디, 반다시 비 갠 하날이 있을 텐디, 구름 안개가 다 벗겨지고 환헌 화창헌 천일(天日)이 있을 텐디. 없을까?


장천척안몰(長天尺雁沒)이요  추공한영락(秋空寒影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長天)에는 척안몰(尺雁沒)이요, 긴 하날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졌고,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로구나, 가을 하날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건 무슨 말인고?

장천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진다.
아, 이놈 저 창공 장천(長天)에 구름이 벗겨지고 만리청천(萬里靑天)에 확! 거 구름 한 점 일점무운(一點無雲)헌데, 외기러기란 놈은 재질을 해서 간다. 훌훌 날아가는 게 시방 재질 헌 거 아닌가. 허공 재질을 혀.
처억 그저 그러다가 빠진다. 빠진 것은 멀리 가버리니 빠졌지. 없지. 허공 속에 풍 빠져 버리드라.

추공(秋空)에 한영락(寒影落)이다. 거 뭐가 있나?
가을 하날에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 바로 갖춘 놈 아닌가. 바로 조사관(祖師關) 바로 갖춘 놈 아닌가. 그놈 봐버리면 아! 그만 그 문제 해결이지.

장천(長天)에 척안몰(尺雁沒)이요, 진(긴) 하날에는 재질해 가는 기러기가 빠졌어.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다. 가을 허공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졌느니라. 아, 그 그...


오늘은 경술년 동안거 반산림이다.

‘내가 견성(見性)을 했다’ 허, 인자 또, 또 인자 또 천하에 못된 자찬(自讚), 제 자랑은 천하에 못된 것이라는구만.

마누래 자랑, 반 미친 이고. 온 미친 이라 하드나? 온 미친 이고. 자식 자랑, 그 반 미친 이고.
자찬(自讚), 제 자랑은 그건 못쓴다는구만, 그녀러 건. 암작에도 못쓴대야.

반만 미쳤으니 그래도 그 뭐 좀 쓸모가 있고. 다 미쳤드래도 그래도 그 미친놈이라도 그래도 그 등거리는 남아 있고. 자찬은 못써, 그녀러 거. 버려 버려.
허지마는 독찬, 자찬이란 것도 그것도 어디 꼭 못쓸 데만 갖다 붙일 거 뭐 있나. 그거 쓸 데다가 붙여 보지.

바로만 견성을 했고, 바로만 일 마쳤으면 그대로 참, 이상 더 있어?
견성을 잘 못했으면 영 못쓴 것이고, 옳게 했다면 영 쓰는 것이고, 남 찬(讚)을 바랠 것도 없고 자찬도 능히 할 수 있는 문제지.

내가 견성을 해 가지고—몰라, 인자 참 했는지 그릇했는지, '내가 견성을 내가 했다' 이게니깐.
다 인자 그, 인자 참, 선지식(善知識)들이 다 시험을 해 보아야 하고 시험에 합격이 되아야 하는 것이지, 제 자랑, 제 찬, 제 견성은 소용없다 그 말이여.

나는 내 견성을 했드라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선 그 오도송(悟道頌)을 척 그날 저녁에, 뭐 그대로 나와. 참 견성인지, 거짓 견성인지 그건 분간할 것 없고, 그대로 나와.

산 넘어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에 턱 거닌디 그날 밤의 달은 환허다.
나온 것이 견성—내가 언제 글 지어 봤나. 뭐, 글을 한바탕 해 봤나. 아, 그런 그 경계가 척 들어오면서 나온다 그 말이여.

그때 진 것은, 요새는 내가 그걸 조금 그냥 거다가서 떼어 버렸지만 그때 진 놈은 그대로여.
거그 좀 가닥을 추켜들어서 머냐(먼저) 헌 놈을 다시 해야사 분단이 있으니까 그래서 헌 거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요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이요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昨夜三更)에 월만루(月滿樓)다. 어젯밤 삼경 달도 누(樓)에 가득찼다.
작야(昨夜)를 넣었어. 오늘밤인데, 오늘밤 밝은 다락 누(樓) 앞에서 지은 글이 작야(昨夜)를 넣었다 그 말이여. 어젯밤 삼경 달, 다락에 그득 찼다.

고가창외(古家窓外)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그때 가을이제. 뭐 다른 말 썼나? 아무 다른 말 없어.
달빛에 보니 거 터억 태안사 그 밑에, 그 모두 그 인자 경계,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불조(佛祖)도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인디, 부처님과 조사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을 했는데. 상신실명은 거다가 붙일 것 없어.
상신(喪身)과 실명(失命) 왜 둘을 놓았는고? 상신도 몸 죽은 것이고, 실명도 명 잃었는데.

암하(岩下)에 유수(流水)는 과교래(過橋來)로구나.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이놈을 했지.

그 경계가 어떻게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그 경계를 말을 헐 것인고.

그러고 나서 아침에, 저번에 했지마는 아침에 그만 아무데나 갖다 오줌을 싸버리니까 그 원주(院主)란 놈이 나오더니—그 경계를 알 수가 있나.
그 오줌도 못 가렸으니 나는 거그서 쫓겨나야 옳고, 아침도 못 얻어먹어야 옳지. 그 옳은 일이여.
허지마는 저 원주, 저는 그 경계를 모른다 그 말이여.

나는 미친 행동을 했으며 쫓겨난 짓을 했거니와 그 감원 원주는 제가 선방 원주를 허지마는 그 도리(道理)를 알 수가 있나. 아무데나 오줌 퍼싼 것을 저는 보들 못혀.

허지만 또 거다가 “어디가 이놈 오줌 눌 곳이냐? 진대지(盡大地)가 부처의 전신(全身)인디 어따가 눌 것이냐?” 한바탕 또 물었다. 그것 뭐 물어 보니 쌩댕이가 뭐 뭔 말이 있나.
아침에 밥도 안 주고 쫓겨났네. 그래 가지고 마곡사를 갔다 그 말이여.(처음~17분59초)





(2/3)----------------

마곡사 혜봉 스님이 계시니까, 혜봉 스님한테를 가서 다짜고짜 뭐 절 한 자리 턱 해 붙이고는—패철(佩鐵) 차고 댕겨. 도인(道人)이 풍수(風水), 산에 묏자리 잡는 패철 차고 댕겨.

머리도 안 깎아서 이렇게 흘러내려 와 가지고는 그냥 영감탱이로 아들,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이 있고, 마누라는 그 혜봉 스님 부인은 천하에는 그렇게 못난 분은, 어디 시집갈 데 없을 거여. 어디로 시집갈 수가 있나, 그렇게 못난 이가.
눈도 홱 비틀어지고 볼 아래 뽈따구는 하나도 없고. 그 이상해. 다 얘기헐 수가 없어. 그렇게 생긴 인데, 아마도 그분은 어디 시집갈 데가 없겄드구만. 아무디 시집갈 데 없을 꺼여.

허니, 혜봉 큰스님 그 도인 스님이라 누가 하나 거둬 둘 이가 없을 거 같으니까 마누라를 했든가 부여. 그러니까 그런 못난 부인을 살제. 초가집에서.
아들은 참 잘 나놨어. 그렇게 얼굴이 못난 이라도 아들은 잘났단 말이여. 둘이 다, 다 잘났제.

지금도 혜봉 스님 아들이 큰아들이 다 있고, 어머니 잘 못났단 말 들으면은 섭섭할 터이지마는 또 거다가서 ‘아들 잘 낳았다’ 하니 들으면 좋아할 터이지. 그거 그저 그 내 사실대로만 허니까.

그래 가지고는 뭔 인자 머리는 기다큼헌 참 촌노인처럼 된 이가 나이는 그때 한 50살, 거지반 50살 되었는데 패철을 딱 찼어. 묏자리 잡는 동서남북 가르키는 패철 차고 그러고 계셔.

가서 절 한 자리 턱 하고. 수좌(首座) 옷 입었으니까 그 뭐 수좌인 줄은 알 터이고.
절을 척 허니까, 나를 척 쳐다봐.

나도 한번 쳐다보고서 합장을 허고서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그저 간단허게, 뿐이지.
“무자 반만 일러주십시오.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만 요구합니다. 일러주십시오”
“무(無)”

“그거 반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이르게. 어떤 것이 무자의지(無字意旨) 반인가?”

내가 합장을 허고 “무” 이렇게 했지.

“고인이 이르되, 고인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여. 송곳 꽂을 땅이 없어.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금년 가난이 참으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 했으니 수좌는 어떻게 이를 텐고?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게” 저번에 여까장 했겄다.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화두를 혀.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혀.
본참화두를 딱! 헌 가운데에서 법문도 안 들어와. 그 지경 좋지.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디, 내 참선은 내 화두 허느라고 법문도 안 들어온디, 거 뭐 뭐 다시 그 경계 외에 뭣을 구헐 것이여. 뭣을 바랠 것이여. 법문은 들어서 뭣 헐 것이여. 화두 의단(疑團)만 독로(獨露) 했는데.

그러면 화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가운데에서 이 법문도 안 듣킨가? 법문도 통 귀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 의단독로만 나오는가?

법문,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 고놈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할 수 있는 것이, 언하에 대오를 허는 법이여.

참선 화두 그대로 역력(歷歷)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그대로 척 들어오는 것이여. 헌디, 화두 독로(獨露)했다고 법문이 안 듣켜? 다 듣고도 능히 화두는 그대로 독로(獨露)헌 것이여.

저 조인광중중(稠人廣衆中)에, 조인(稠人)이라 하는 것은 모지라질 조(稠) 자인디, 사람이 수천 명이 꽉 콩나물처럼 섰는 디가 조인이여.
우묵헌 조인광중중에 여러 조인(稠人)들이, 여러 사람들이 그저 떠들고 대고 잡화(雜話)하고 뭐 와각 와각하고 그런 것은 소용없어.

의단독로에 뭐가 들어와? 뭔 말, 그 같은 게 들어올 게 뭐 있어?
아무리 시끄럽게 아니라, 아무리 무슨 천지를 뒤집는다 하드래도 화두학자한테는 안 들어와.

허지마는 이런 공안 법문이 화두 역력허면서 그 법문은 그대로 낙구(落臼)가 척척 되아.
낙구(落臼)라는 것은 뭐냐? 문을 척 열면 제대로 가서 탁 맞는 것을 낙구라 하고, 방아 찧으면은 올려 놔두면 제대로 툭 떨어진 게 낙구여. ‘구(臼)에 떨어진다[落]’ 그 말이여.

뭐 들을라고 해서 들어지나. 화두 헌 학자가 그대로 법문이 그만 그 제일구(第一句) 법문 턱턱 들어온 거지. 그래서 언하대오(言下大悟)여, 언하에 대오다. 말 아래 크게 깨달는다.

‘공부, 참선 화두, 화두 허니라고 언제 법문 들을 겨를이 있느냐?’ 이런 말도 들었지마는, 그렇게까장 공부를 헐 것 같으면은, 화두 허니라고 법문도 안 듣키면은 그 지경—그 화두가 그것이 그 법문도 안 듣킨다 허는 그 지경이 반 쪼가리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화두를 들고 역력헌 가운데에 이러헌 공안(公案) 법문을 들을라고 해 듣는 것이 아니라 낙구가 된다 그 말이여, 내 말은.

이런 말을 잘 들어! 부처님 설법을 조옥 설법헐 때에는 그 뭐락 했어? 뭐라고.
‘허공이 되아가지고 들을지니라. 다 비워라! 다 비워 놓아 버려라. 안 마음, 바깥 경계 툭 놓아 버려라’
뭐 놓을 것이 뭣이 있나? 처컥 귀 들고 들으면은 그 놓고, 안 놓은 게 어디 있는가? 여여독문(如如獨聞) 이지.


‘거년 가난은 참으로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다’ 그 뭔 말이여?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도 없다’ 뭐 그런 말을 못 알아들을 이치가 있으며, 거가서 낙안성예(落眼成翳)가 될 것이 뭣이 있나.
밝은 눈이면 다 볼 수 있지. 왜 그 밝은 눈에 가시가 될 것이 뭣이 있어. 그 밝은 눈깔에 티끌 될 것이 뭐냔 말이여.

‘거년 가난은 비(非)가난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까장 없구나’
그 어떻게 했으면은—거그서 고인(古人)이 점검하되 ‘여래선(如來禪) 밖에는 네가 몰랐느니라 했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조사선(祖師禪)을 옳게 이르겄는가?’ 무섭게 잡드린 말이제.

혜봉 스님, 패철을 타고(차고) 묏자리나 잡고 지나셨지마는 참 도인이여. 참으로 도인은 툭! 깨달라 버리니 그것 뭐 어디 가서 무슨 뭐 인연도세(因緣度世)를 헐 것이제. 인연(因緣) 따라서 도세(度世) 헐 것이제. 별것 뭐 있나.
그때 어디 가서 조실(祖室) 스님이 되아 가지고 학자를 제접(提接)했으면은 대단히 좋으련만, 또 그 혜봉 스님의 그때 사정이 형편이 그렇게 못 되아서 그랬을런지 모르제. 허지마는 속가에 가서 패철을 차고 천하에 못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턱 나 놓고 요요자재(了了自在)하게 자재요요하게 그렇게 지내드란 말이여.

거그서 말이여, 그것 참.
내가 답을 허되, 대답을 했단 말이여. “능각(菱角)은 첨첨불사타(尖尖不似他)입니다. 능각은 첨첨해서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아, 이랬다 그 말이여.
그러니 그 어른이 그때 ‘아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내 거그 안 떠나. 세상없어도 안 떠나! 내가 그 어른 밑에서 불을 때 주고 내가 심바람해 주고 마당을 쓸어주고 패철을 내가 가지고 대니면서, 산에 대니면서 내가 시봉(侍奉)을 헐지언정 안 떠나.

옳단 말도 없고!
거 학자를 그렇게 잡드리해서는 안 되겄드구만.

‘옳다’고 헌 말도 없고, ‘그르다’고 헌 말도 없고. 그만 그대로 그 뒤가 그만 아무 말씀도 없고. 그 말씀 없는 태도도 그렇게 부인(否認), ‘아니다’ 소리 아니여.
그래서 ‘아니다, 기다’할 것도 없고, 맞으니께 그런가 보다.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그런 말이 없이 태연허니 그래서, '옳다! 인가(印可)를 허신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았다 그 말이여. 여그는 그래 두거든 내가.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가 절대 아니여,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그 말이여.
하, 이런 놈의 꼴 좀 보소. 그 뒤에 내가 아닌 걸 발견했거든. 내가 스스로 발견을 다 한 거여.(17분59초~32분12초)





(3/3)----------------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

나는 그때 그만 벌써 그만 수좌로서 조고만헌 것이 글쎄 참 견성인지, 그릇 견성인지 ‘견성했다’고 내 딴에 그만—머냐 다 얘기했지—막 오도송(悟道頌)을 짓고, 그래가지고 더군다나 그 혜봉 스님한테 가서 척 인가를 아, 여지없이 혜봉 스님이 나를 인가해 주어. 두말헐 것도 인가를 해주니 그 어떻게 헐 거여, 내가.

그 인가해 준디 말이여, 저번에 내가 얘기했지마는, 지금 절대 내가 ‘그건 아니다’ 그 말이여.
아닌데! 아, 그 어른, 아니라도 그것 터꺽! 다 그대로 알게 됐제! 되아 버렸어. 공안이 그놈이 그 이상혀.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시(是) 가난이여, 참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 송곳도 없다고 했는디, 거기에 점검을 고인이 허기를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허니 어떻게 일렀으면, 송곳까장 없어졌다 했으니 여래선밖에는 안되니 어떻게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느냐?’ 헌디,
내가 답허기를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여. 능각은 첨첨헌디 타와 같지 않다’ 아 이렇게 일러놨네. 그게 그렇게 일러 꼭 될... 인가허지. 허지마는 나는 지금 그렇게 않겄다, 도저히.
그거 내가 답헌 소리인디 '능각첨첨...' 그때 답 안 혀. 인자 못 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답을 헐 것이냐?
내 답이 시방 여그 탁! 있어. 탁 있지마는 이 답을 내가 어따가 써 놓들 못 혀. 내가 확철대오허는 선객이 있다면은 답 딱! 허지. 거그밖에는 해 줄 도리가 없어.

저번에 허든 놈 내가 끝을 여그다 또 요렇게 좀 맞추니라고 요렇게 해놓고. 저번에도 그렇게 했든가 몰라?(60분47초~63분3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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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게송) ‘모산촉공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송원선자지관동(送願禪子之關東) - 원선자(願禪子)를 관동(關東)으로 보내며’ 참고.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반산림(半山林) ; 안거 기간의 중간.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제끼다 ; 제치다(동사의 연결어미 ‘-어’ 뒤에 쓰여, 어떤 동작이 신나고 거침없음을 나타내는 말).
*버르정머리 ; ‘버르장머리(‘버릇’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날빛 ; 햇빛.
*반다시 ; ‘반드시(틀림없이 꼭)’의 사투리.
*천일(天日) ; ①하늘과 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늘에 떠 있는 해. 또는 그 햇볕.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암작 ; ‘아무짝(‘아무 데’를 비하하여 이르는 말)’의 사투리.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偈頌), 또는 노래.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머냐 ; ‘먼저’의 사투리.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2/3)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조사선이 곧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행복도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송담스님 No.685에서)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조인광중(稠人廣衆) ;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조인(稠人 빽빽할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낙구(落臼 떨어질 락/절구·곡식을 찧는 기구·찧다 구) ; ‘절구[臼]에 떨어진다[落]’는 말로 ‘백발백중(百發百中)‘, ’틀림없는 결과’의 뜻을 나타낸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화상 | 조계종출판사) ‘7. 示衆‘ p65 주석에서.
추문낙구(推門落臼) : 문을 여닫을 적에 문이 암돌짝[臼 : 절구처럼 구멍이 패인 곳]을 벗어나지 않고 자유롭게 열리고 닫히는 상태로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말과 같다.[臼是門開閉之處也 開門之時 亦發於臼 閉門之時 亦落於臼 猶言百發百中].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도세(度世 건널 도/인간 세상 세) ;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또는 중생을 구제하여 해탈하게 하는 것.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세상없어도(世上---) ;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심바람 ; ‘심부름(남이 시키는 일을 하여 주는 일)’의 사투리.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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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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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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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