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용무생사2021. 11. 11. 17:40

용무생사((No.645))—조사스님네들이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깨달을 수 있도록 개척해서 남겨주신 최고의 훌륭한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뭣고?' | 공부하다 어떤 소견이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집착 말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해야.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한 마음으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야 |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러야.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修德寺 能仁禪院) 「법훈(法訓)」 '나를 찾는 법—참선법(參禪法)' p262. p264~265.

*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理無碍) • 사무애(事無碍)하게 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나니라.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체달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 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참고 ❸]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玄中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 말이여.(32분56초~34분55초)


[참고 ❹]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참고 ❺]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207, p212. (가로판 p215, p219)
[ 三玄(삼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역주(譯註)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❻]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10분 12초)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림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도 버리시고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그 법문이 문자화 된 것이 우리나라 해인사에도 팔만대장경 장경각에 목각(木刻)을 해서 잘 봉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팔만대장경의 법문이 그걸 다 읽기도 어려운 일이고, 다 해석해서 다 알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고인네들은, 조사스님네들은 그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 나가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을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몇 가지가 있지마는, 그 중에 최고의 훌륭한 법—간단하면서도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그것이 별 재미도 없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정말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다 보면 해 갈수록 뭣이 알아지는 것은 없어. 알아지는 것은 없지마는 해 갈수록 신심이 더욱 나오고, 더 무상을 철저히 느끼게 되고, 일분일초 시간을 아껴서 이 한 일에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은 '사람의 근기와 어떻게 정진을 해 가느냐'의 그런 차이로 해서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나오는 거와 같은 그러한 여러 가지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꼭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정진을 하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그런 가지가지의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는데, 나타난다고 해서 꼭 좋을 것도 없고. 그러나 그런 것이 나타나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아, 내가 이것이 견성(見性)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바로 도통(道通)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앞으로 좋은 징조인가 보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른 경지냐, 올바르지 못한 경지냐' 그것은 본인이 평소에 선지식(善知識)의 법문(法門)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면 스스로도 그것을 점검을 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는, 느껴보지 못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신기하고 묘해서 그것을 무슨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좋아하고 집착을 할 수가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경지를 여기서 50여 가지의 경계(境界)를 낱낱이 얘기할 시간은 없고 대별(大別)을 하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업장(業障)이 소멸되어서 그래 가지고 식(識)이 맑아졌다 하면은 그것을 꼭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공부가 앞으로 잘 되어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라면 거기에 집착을 아니하고 그런 것을 좋아할 겨를도 없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것에 집착을 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이 뭣이 알아진 것이 있고—무슨 조사의 어구(語句)나 『전등(傳燈)』 · 『염송(拈頌)』이나 경전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고 그런 수도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 내가 한소식 했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한다면 그 공부는 거기서 중단이 되고 말 것이고,
조금 더 보태서 시(詩)를 짓는다던지, 게송(偈頌)을 짓는다던지, 함부로 ‘자기가 한소식 했다’고 떠벌리고 과시를 한다던지, 또 막행막식을 하고 횡설수설해 가지고 많은 사람한테 자기가 도를 통한 것처럼 선전을 하고 과시를 하고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망하는 거고, 불법도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망하게 되는 거고, 많은 신도들도 그런 것을 보고 마음에 혼란심을 일으켜서 잘못된 데로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견(所見)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선지식을 믿거나 선지식의 법문을 의지하지 아니한 사람은 까딱하면 잘못된 지경에 말려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 대해서 각별히 주의를 하시고,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이냐 아니냐'—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무엇을 해먹을 짓이 없어서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가지고 대접을 받을라고 하는 그러한 짓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하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들은 전부 그러한 도반들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20분9초~30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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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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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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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직시현금갱무시절((No.645))—(게송)獅子窟中無異獸~ | 사자와 같은, 코끼리의 왕과 같은 마음과 행동으로 참선해야 | (게송)今生若不從斯語~ | 지금 이만할 때 철저하게 도를 닦자.


*직시현금 갱무시절(直是現今更無時節) ; '바로 지금일뿐 다른 시절이란 없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 「시중(示衆)」에서.

道流 大丈夫兒 今日 方知本來無事 祇爲爾信不及 念念馳求 捨頭覓頭 自不能歇 如圓頓菩薩 入法界現身 向淨土中 厭凡欣聖 如此之流 取捨未忘 染淨心在 如禪宗見解 又且不然 直是現今更無時節 山僧說處 皆是一期藥病相治 總無實法 若如是見得 是眞出家 日消萬兩黃金

도 배우는 이들이여! 대장부가 본래 아무 일 없는 줄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대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생각생각 내달려 구하면서 자기 머리는 놔두고 다른 머리를 찾아 스스로 쉬지를 못한것이다. 예컨대 원돈교(圓頓敎)의 보살들은 법계에 들어 몸을 나투고, 정토 가운데에서 범(凡)을 싫어하고 성(聖)을 좋아한다. 이러한 무리들은 취하고 버리는 것을 잊지 못하고, 물들었다느니 깨끗하다느니 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종의 견해는 그렇지 않아서 바로 지금일뿐 다른 시절이란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가 병에 따라 약을 쓰는 일회적인 치료일뿐 실다운 법이라고는 전혀 없다. 만약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참된 출가여서, 하루에 만냥의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5분 57초)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다.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가 없어. 사자굴에는 오직 사자끼리만 사는 것이지, 사자굴 속에 어떻게 다른 짐승들이 사자하고 같이 살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다. 코끼리의 왕, 상왕(象王)이 터억 떼를 지어서 걸어가는 데에는 여우같은 그러한 간특한 짐승들이 그 사이에 끼여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정법에 의해서 발심한 여러 도반들, 바로 사자요 코끼리의 무리와 비교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도반들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기왕 우리가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서 선방에 나와서 도를 닦는 최상승 학자일진대는 사자와 같이 상왕과 같이 그렇게 수행을 해 가야 할 것이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기왕 불법을 믿고 참선을 하실라면 사자와 같은, 코끼리의 왕과 같은 그러한 마음과 그러한 행동으로 수행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에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다. 정말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혀라’ ‘이때[此時]’ 라는 게 ‘바로 지금’ 입니다.
이 가운데는 팔십 노령의 연세 높으신 그런 분도 계시고 아주 아직 젊으신 분도 많지마는 바로 우리가 이만큼 건강할 때에, 나이야 조금 많거나 적거나, 생활이 조금 어렵거나 풍부하거나, 그것도 따질 것도 없고 아직은 우리가 이만큼 이만큼 살 때 철저하게 도를 닦자 이거거든.

백년광영(百年光影)이 전두비(轉頭非)다. 많이 살아봤자 백 살 사는데, 백년(百年)이라고 하는 세월도 잠깐 동안에 지나가는 것이니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를 말고.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이렇게 간절히 드리는 말씀을 따라서 실천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아! 그때 좀더 열심히 정진할 것을...’
더 늙어 가지고 육체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고, 대소변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행보도 자유롭지 못하고, 음식도 맘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자유롭게 못하게 될 그때에 가서 ‘그때 힘 좀 있을 때 정진을 열심히 할 것을...’ 그렇게 후회해 봤자 한(恨)만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30분22초~36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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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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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No.645))—조사스님네들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깨달을 수 있도록 개척해서 남겨주신 최고의 훌륭한 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뭣고?'
공부하다 어떤 소견(所見)이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집착하지 말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된다 |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한 마음으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야.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 영역.

 


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10분 12초)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림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도 버리시고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그 법문이 문자화 된 것이 우리나라 해인사에도 팔만대장경 장경각에 목각(木刻)을 해서 잘 봉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팔만대장경의 법문이 그걸 다 읽기도 어려운 일이고, 다 해석해서 다 알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고인네들은, 조사스님네들은 그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 나가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을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몇 가지가 있지마는, 그 중에 최고의 훌륭한 법—간단하면서도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그것이 별 재미도 없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정말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다 보면 해 갈수록 뭣이 알아지는 것은 없어. 알아지는 것은 없지마는 해 갈수록 신심이 더욱 나오고, 더 무상을 철저히 느끼게 되고, 일분일초 시간을 아껴서 이 한 일에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은 '사람의 근기와 어떻게 정진을 해 가느냐'의 그런 차이로 해서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나오는 거와 같은 그러한 여러 가지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꼭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정진을 하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그런 가지가지의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는데, 나타난다고 해서 꼭 좋을 것도 없고. 그러나 그런 것이 나타나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아, 내가 이것이 견성(見性)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바로 도통(道通)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앞으로 좋은 징조인가 보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른 경지냐, 올바르지 못한 경지냐' 그것은 본인이 평소에 선지식(善知識)의 법문(法門)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면 스스로도 그것을 점검을 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는, 느껴보지 못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신기하고 묘해서 그것을 무슨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좋아하고 집착을 할 수가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경지를 여기서 50여 가지의 경계(境界)를 낱낱이 얘기할 시간은 없고 대별(大別)을 하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업장(業障)이 소멸되어서 그래 가지고 식(識)이 맑아졌다 하면은 그것을 꼭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공부가 앞으로 잘 되어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라면 거기에 집착을 아니하고 그런 것을 좋아할 겨를도 없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것에 집착을 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이 뭣이 알아진 것이 있고—무슨 조사의 어구(語句)나 『전등(傳燈)』 · 『염송(拈頌)』이나 경전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고 그런 수도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 내가 한소식 했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한다면 그 공부는 거기서 중단이 되고 말 것이고,
조금 더 보태서 시(詩)를 짓는다던지, 게송(偈頌)을 짓는다던지, 함부로 ‘자기가 한소식 했다’고 떠벌리고 과시를 한다던지, 또 막행막식을 하고 횡설수설해 가지고 많은 사람한테 자기가 도를 통한 것처럼 선전을 하고 과시를 하고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망하는 거고, 불법도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망하게 되는 거고, 많은 신도들도 그런 것을 보고 마음에 혼란심을 일으켜서 잘못된 데로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견(所見)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선지식을 믿거나 선지식의 법문을 의지하지 아니한 사람은 까딱하면 잘못된 지경에 말려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 대해서 각별히 주의를 하시고,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이냐 아니냐'—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무엇을 해먹을 짓이 없어서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가지고 대접을 받을라고 하는 그러한 짓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하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들은 전부 그러한 도반들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20분9초~30분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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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理無碍) • 사무애(事無碍)하게 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나니라. 『만공법어 滿空法語』 (修德寺 能仁禪院) p262에.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체달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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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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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ㅈ/조사선2021. 7. 21. 06:17

조사선((No.645))—(게송)籠鷄有食湯鍋近 野鶴無糧天地寬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도를 닦을 때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제도를 받을 수가 있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조사선이 곧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가로판 p29, p35)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6분 22초)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이요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는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요. 닭장 속에 있는 닭은 먹을 것이 있지만, 시간 맞춰서 먹이를 후하니 주어서 배불리 먹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펄펄 끓는 전골냄비가 기다리고 있고,
야학(野鶴)은 무량천지관(無糧天地寬)이다. 들에 훨훨 날아다니는 학은 특별히 누가 양식을 주거나, 양식을 쌓아 놓은 것은 없지마는 천지에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자유롭게 살고 있구나.

이것은 세속에서 부(富), 재산을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모여서 남 보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마는, 그런 것을 모이느라고 죄를 짓고, 그것을 관리하느라고 죄를 짓고, 그것을 쓰느라고 본의 아니게 죄를 지어서 자칫 잘못하면은 그러한 업(業)으로 인해서 삼악도에 떨어질 우려가 다분히 있고,
그런 것을 다 무상(無常)한 것인 줄 철저히 깨닫고 그런 것을 다 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으면, 그건 마치 들 학과 같이 내 소유라고 하는 것은 땅 한 뙈기도 없고 아무것도 소유물도 없고 명예와 지위 부귀영화도 없지마는, 들 학처럼 걸망 하나 짊어지고 바리때, 장삼(長衫)만 하나 있으면 어느 선방에로 다니면서 도를 닦을 수가 있다. 그래 가지고 생사 요달(了達)을 해서 일체중생을 제도(濟度) 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도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을 보면서,
그 밑에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무루(無漏)의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기를 원하노라. 이런 고인(古人)의 시가 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비구 · 비구니, 도반 여러분은 이러한 게송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추위나 더위나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모든 그런 것을 신심과 용맹정진(勇猛精進)으로써 그런 것을 극복하면서 열심히 도를 닦어야 할 것이고, 머리는 깎지 않고 비록 세속에 몸을 담아 계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비록 몸은 세속에 있지마는 그 정신 만큼은 이런 출가한 스님네 못지않게 생사 속에서, 부귀영화 속에서, 무상(無常)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정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해서 스님네 못지않게 도업(道業)을 성취할 각오를 가지고 공부를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생사 문제는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계시지만, ‘삼세제불이 우리를 제도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얘기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정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아니하면 삼세제불의 그런 힘으로도 어찌 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도를 닦을 때 삼세제불의 제도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이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서 삼세제불이 억만 번을 출세(出世)하신다 하더라도 우리의 생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13분37초~19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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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처전심(三處傳心) ;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한 것. 세 곳이란 첫째는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둘째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세째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다.

선종에서는 이를 통해 가섭존자를 전등(傳燈)의 초조(初祖)로 삼는 동시에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 · 이심전심(以心傳心) 등의 근거로 삼는다.



 

①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bahuputraka-caity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śālī)성 서북쪽에 있다. 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 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②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ūta-parva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 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 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Rā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③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ś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ī)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세로판 p28~29. 가로판 p29~30.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註解) 三處者 多子塔前 分半座 一也 靈山會上擧拈花 二也 雙樹下 槨示雙趺 三也 所謂迦葉 別傳禪燈者 此也 一代者 四十九年間所說五敎也 人天敎 一也 小乘敎 二也 大乘敎 三也 頓敎 四也 圓敎 五也 所謂 阿難 流通敎海者 此也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니,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禪)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는 것이 이것이다. 한평생 말씀하신 것이란 49년 동안 말씀하신 다섯 가지 교(敎)인데, 첫째는 인천교, 둘째는 소승교, 셋째는 대승교, 넷째는 돈교, 다섯째는 원교이다. 이른바 「아난존자가 교(敎)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然則禪敎之源者 世尊也 禪敎之派者 迦葉阿難也 以無言 至於無言者 禪也 以有言 至於無言者 敎也 乃至心是禪法也 語是敎法也 則法雖一味 見解則天地懸隔 此 辨禪敎二途

그러므로 선과 교의 근원은 세존이시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니,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선(禪)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교(敎)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교법이다. 법은 비록 한맛이라도 견해는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떨어진 것이니, 이것은 선과 교의 두 길을 가려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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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우란분재2021. 7. 20. 05:24

우란분((No.645))—(게송)兀兀無事對靑山 | ‘백중(百中)날’은 옛날부터 ‘부모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 | 『목련경(目連經)』 목련존자와 어머니 청제부인 | 칠월 해제 때 대중 스님께 공양(供養) 올린 공덕으로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조상 선망부모를 구제한다.
'우리 자신들도 과연 삼악도에 안 떨어지고 세세생생에 생사윤회 속에 빠지지 않고 해탈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냉정히 스스로를 반성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야.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3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야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다.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하고,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한단 말은 일체를 도막사량(都莫思量) 하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생노병사까지라도 다 놓아 버렸으니 이것이 일 없는 무사(無事) 한도인(閑道人)이거든. 그리고서 청산을 떠억 대하고 앉아서 정진하는 거동(擧動)을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더위도 잊어버리고, 일체 시비(是非)도 다 끊어져 버리고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해서 석 달 해제를 맞이했어.
그러니 그 기상이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여. 그 청정하고 의연한 자세가 하늘에 뻗찌르는, 그러고 사해(四海)를 덮고도 남을 만한 그런 기상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천마(天魔),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의 권속들이 그런 것들이 다 그 앞에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그 말이거든.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옳고 그른 것을 다 놔 버리고,
일여청류(日與淸流)로 소명월(掃明月)이다. 날마다 흐르는 물이 마치 명월(明月)을 씻은 거와 같이 그렇게 모다—‘어떻게 흐르는 물이 명월(明月)을 씻느냐’ 하면은 하늘에 밝은 달이 물에 비추는데, 그 맑은 물이 계속 흘러가니까 흘러가는 물에 의해서 물에 뜬 달이 씻겨진 것에다가 비유해서, 우리가 정진하고 있는 경지가 마치 흐르는 물에 밝은 달이 씻겨가는 것에다가 비유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석 달 동안을 정진을 하셔서 그리고 해제 법요식에 이렇게 여러 곳 선방에서 운집을 했는데 오늘은 7월 15일 백중날이거든.
‘백중(百中)날’ 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부모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왜 그러냐 하면은 우란분(盂蘭盆)이라고도 하는데, 인도말로 '우란분'이라고 하는데 '우란분'이란 말을 번역을 하면 구도현(救倒懸)이여.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救濟)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려 가지고, 갖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영가를 구제하는 그래서 ‘구도현(救倒懸)’인데, 그것은 『목련경(目連經)』에 나오는 설화가—여기서 불가불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데.

목련존자(目連尊者)는 세속에 있을 때부터 효심이 지극했어. 출가하기 전에는 큰 장사를 하고, 그런데 (큰 장사를) 나갈 때 홀로 계신 어머니께 ‘어떻게 어떻게 하고 어떻게 어떻게 하시고 잘 계시라’고 했는데, 그 뜻을 전부 어기고 날마다 정법에도 어긋나고 도덕에도 어긋나는 그러한 언행으로써 갖은 악한 짓을 하다가 결국은 지옥에 떨어졌어.

지옥에 떨어져 가지고 갖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 목련존자가 출가를 해 가지고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신통제일(神通第一)인 그런 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도인이 되었는데, ‘그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어떻게 구제를 할 것인가?’ 갖은 방법으로 다 구제하려고 해도 이루어지지를 못해서, 그래서 부처님께 "지옥고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여쭈니까,
"칠월 해제 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면 석 달 동안 열심히 도를 닦은 그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린 그 공덕과 그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그 정신으로 작관(作觀)을 하고 그래서 너의 어머니를 구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셔서 목련존자는 탁발(托鉢)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려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어머니를 구제했다고 하는 목련경에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오늘도 이 해제 법요식에 많은 수행자들이 모다 이렇게 운집(雲集)을 하셨고 또 많은 청신사(靑信士) 청신녀(靑信女)들도 이 자리에 많이 모이셨습니다.
물론 이 용화사 법당 안에 모셔진 만년위패 법보영가들의 백중 천도 법요식도 아울러서 행해지겠습니다마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도 많고 그러시겠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께도 효도를 하고,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 선망부모에게도 이러한 때에 동참(同參)을 하셔서 돌아가신 분들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삼악도(三惡道)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있을런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이런 법요식에 참례를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천상 사람이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윤회를 하다가 금생에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또 이렇게 불자(佛子)로서 도반(道伴)으로서 이렇게 만나게 된 그 인연을 생각해 보면 참 깊고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와 선망부모의 천도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들도 과연 그런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의 윤회(輪廻) 속에 빠지지 않고 해탈(解脫)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런 때에 냉정히 스스로를 반성을 하고,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 그리고 청신사 · 청신녀 그리고 비구 · 비구니 여러 도반들께서는, 세상이 물질 문명은 점점 발달을 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발달이 되어서 살기는 퍽 편리하게는 되었으나, ‘진정으로 우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되었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물질 문명이 발달한 만큼 더 행복해진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속의 발달에 우리도 발을 안 맞출 수도 없고, 다 버리고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다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오직 인연 따라서 열심히 도만 닦으면 별것이 아니겠지만, 세속에서는 세속의 모든 흘러감을 외면하고 자기만 혼자 옛날처럼 살기는 퍽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전적으로 무시는 하지 아니하면서도 항상 불자(佛子)로서의 자기 마음 닦는 일에는 절대로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3분3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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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한도인(閑道人)2021. 7. 19. 06:56

한도인((No.645))—(게송)兀兀無事對靑山 眼高四海天魔拱 世間是非都不管 日與淸流掃明月

*한도인(閑道人) :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무애한 경지를 얻은 수행자를 말한다.
‘일 없다[閑]’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보살은 삼천 가지 위의[三千威儀]와 팔만 가지의 미세한 행실[八萬細行]과 여섯 가지 길[六度]을 닦는 데, 자기의 몸과 목숨과 재물을 다 바쳐서 중생을 건지려고 분투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몸은 무한히 분주하고 골몰하면서도, 마음은 밝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함이 없이 하는 것[無爲而作]이 도인(道人)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37~38 에서. (가로판 p38~39)
吾有一言하니  絶慮忘緣하고  兀然無事坐하니  春來草自靑이로다.

내가 한마디하고자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단정히 일 없이[無事] 앉았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註解) 絶慮忘緣者는  得之於心也니  所謂閑道人也라.  於戱라, 其爲人也가  本來無緣하며  本來無事하야  飢來卽食하고  困來卽眠하며  綠水靑山에  任意逍遙하고 漁村酒肆에  自在安閑하야  年代甲子를  總不知하되 春來依舊草自靑이로다.  此는  別歎一念廻光者니라 【 將謂無人이러니  賴有一個로다

(주해)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쉰다'는 것은 마음에서 자득함을 가리킴이니, 이른바 「일 없는 도인[閑道人]」이다。아! 그 사람됨이 본래 얽힘 없고 본래 일 없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자며, 녹수 청산에 마음대로 오고 가며, 어촌과 주막에 걸림 없이 지내 가리。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언만, 봄이 오면 예대로[依舊] 풀이 절로 푸르구나。이것은 특별히 한 생각을 돌이켜 반조하는 자를 찬탄함이라。 【 사람 없을까 했더니 마침 하나 있구나.

*무사(無事) ; ①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쳐서 할 일이 없는 것.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여 할 일이 사라진 경지. ②일이 생기지 않음. 근본적으로 문제 또는 장애가 없다는 말. 곧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모두가 진리를 구현하고 있으므로 억지로 추구하거나 조작할 일이 없다는 뜻. ③일말의 집착도 남아 있지 않은 궁극적인 경지.

*의구(依舊) ;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5분)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야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다.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하고,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한단 말은 일체를 도막사량(都莫思量) 하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생노병사까지라도 다 놓아 버렸으니 이것이 일 없는 무사(無事) 한도인(閑道人)이거든. 그리고서 청산을 떠억 대하고 앉아서 정진하는 거동(擧動)을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더위도 잊어버리고, 일체 시비(是非)도 다 끊어져 버리고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해서 석 달 해제를 맞이했어.
그러니 그 기상이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여. 그 청정하고 의연한 자세가 하늘에 뻗찌르는, 그러고 사해(四海)를 덮고도 남을 만한 그런 기상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천마(天魔),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의 권속들이 그런 것들이 다 그 앞에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그 말이거든.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옳고 그른 것을 다 놔 버리고,
일여청류(日與淸流)로 소명월(掃明月)이다. 날마다 흐르는 물이 마치 명월(明月)을 씻은 거와 같이 그렇게 모다—‘어떻게 흐르는 물이 명월(明月)을 씻느냐’ 하면은 하늘에 밝은 달이 물에 비추는데, 그 맑은 물이 계속 흘러가니까 흘러가는 물에 의해서 물에 뜬 달이 씻겨진 것에다가 비유해서, 우리가 정진하고 있는 경지가 마치 흐르는 물에 밝은 달이 씻겨가는 것에다가 비유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처음~5분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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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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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