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무기 무기공2021. 2. 12. 15:12

무기공(No.454)—(게송)石火光陰走~ |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하지 마라 | 화두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치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고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악(惡),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11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454)—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이 세월은 탁! 돌과 돌을 부딪치면 불이 번쩍 하듯이 그렇게 참 세월은 빠른 것이고,
홍안(紅顔)은 진백두(盡白頭)다. 엊그제 빨간 소년이 금방 흰머리가 난 노인이 되고 말아.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생각해 보면 새파란 소년 소녀일 때가 엊그제 같을 것입니다.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인간의 백년 세월이라는 것이 꿈같은 것인데, 일생의 모든 일이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안 돼.
잘살 건 못살 건, 잘낫 건 못낫 건, 지내 놓고 보라 그말이여. 백년이라는 게 무엇이여? 그것이 꿈에 지내지 못하고, 하루살이 신세에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참 많은 도반들이 운집을 하셨고 또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참 이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법문은 더할 것이 없으나 기왕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셨으니까, 앞으로 해제 동안에 더운 여름도 다 갔고, 이 서늘한 해제 동안에 산철 결제를 들어가던지 또는 그냥 행각(行脚)을 하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정진을 잘 하시되.

흔히 성성(惺惺)하고 깨끗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성성하고 깨끗하고 담담(淡淡)한 그런 경계(境界)만을 자꾸 그런 경계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그러한 경계에 탐착하는 것도 그것도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잠깐 동안도 바른 생각, 정념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정념을 잃어버리면은 벌써 이단(異端)에 떨어지는 거여.
한 생각 삐끗하면은 돌이키기가 어려워. 얼마 동안을, 까딱하면 영원히 잘못 떨어질 수도 있어.


그래서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망상이 일어나고, 물론 그런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징징담담(澄澄湛湛),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거, 참 그렇게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 죽비만 안 치면은 4시간도 좋고 5시간도 좋고 계속 이렇게 앉아 있고 싶을 그러한 경지가 오는데 그러한 순청절점(純淸絶點),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지에 따악 빠져서 그놈을 지키고 앉았는 거, 그것 참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정념을 잃어버리는 가장 무서운 경계다 그거거든.


왜 그것이 무서운 경지냐?

'능히 강(講)하고, 능히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고 그러한 것을,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냐. 말할 때는 말하는 놈, 밥 먹을 때는 밥 먹은 놈, 무슨 연설할 때는 연설하는 놈, 일할 때는 일하고,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지, 그것 밖에 부처가 어디가 있으며 그것 밖에 나의 주인공이 어디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경지다’ 해 가지고 바른 정진을 해 나가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자기가 한소식 한 것처럼 그것이 바로 바른 경지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
그것은 자기의 망식(妄識)이여. 그게 망식,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는 ‘맑고 깨끗한, 성성한 그것이 바로 자기의 참 경계’로 한 것은 ‘맑고 깨끗하다’라고 하는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참 경계를 삼아. 그것이 바로 정념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거든.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또 무슨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그리고는 딱 그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경계로써 정념을 삼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경지가 지속이 되면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말할 수가 없지. 그러나 그것은 돌로 풀을 눌러 놓는 거와 같애.
그래서 돌만 떠들면은 다시 터 나오고, 오랫동안 눌러놔도 돌 어느 틈인가 뚫고 다시 (풀이) 노라니 있다 뚫고 나온 거라, 그것도 바른 경지가 아니고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또 자기의 몸을 ‘이 몸뚱이는 허공(虛空)과 같은 것이다’ 해 가지고, 허공과 같은 것이니 그래가지고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 해. 아무 생각을 안 일으키고 허공과 같은 경지에서 꼭 그 경계를 벼람빡과 같이, 장벽(牆壁)과 같이 그렇게 따악 그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참 바른 공부다’ 이리 생각하고 그러는 경지로 지켜 나가는 거.
이런 것은 공망(空亡),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다’ 그랬는데,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고요한 그걸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봤자 그것은 무기공에 떨어진 것이여.


앞에 말한 것이 전부가 다 ‘왜 그것이 바른 경지(境地)가 아니냐? 바른 공부가 아니냐?’하면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망상이 일어나도 그것을 누르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을 의심만을 딱!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을 탁!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또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話頭)를 놔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것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입니다.

바르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의심이 더이상 깊을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어. 그러한 가운데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언젠가는 툭! 터져서 의단을 타파(打破)하면 자기 면목을 보게 되고, 그때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야 하는 거야.(53분18초~64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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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담담하다(淡淡-- 묽을·담담할 담) ; 동요없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參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징징담담(澄澄湛湛 맑을 징/즐길·가라앉을 담) ; 맑고 깨끗한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순청절점(純淸絶點) ; 순수하고 맑고 티끌[點]이 끊어진 것.
*망식(妄識) ; 망(妄)으로서의 식(識). 망령된 사유분(思惟分)에 근거한 진실되지 않은 식(識).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인식 주체. 마음(心).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참고] 『벽암록(碧巖錄)』 제99칙 '본칙평창(本則評唱)'
長沙云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如今人 只認得箇昭昭靈靈 便瞠眼努目 弄精魂 有什麼交涉

장사경잠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법신으로)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식신은 무량겁으로부터 이어 온 생사의 근본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인(本來人)이라고 부른다. 지금 사람들이 단지 또렷또렷하고 신령한[昭昭靈靈] 그것을 진실이라 오인하여 눈을 치켜뜨고 그 헛것과 놀아나지만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 신수기도 입재(85.02.22).
학도지인불식진(學道之人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대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학도지인(學道之人)이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그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청·황·적·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은 ‘저거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그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무슨 말을 들으면 ‘저것은 좋은 일이다, 저것은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 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의 작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생사본(生死本)이여. 저 비롯함이 없는 저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 낳다 죽었다, 낳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은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사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은 '바로 이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이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참 면목이다. 이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 생각 낼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마는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일 수 있으나 또 한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사(生死)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 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를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이 그렇게 무서운 죄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그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가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세하셔도 구제할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를 하면 용서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에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識神)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本來身)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24분24초~32분8초)
*(게송)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來認識神 無始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身'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 (동국역경원刊) 제495칙 본명(本命)' p36 참고.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경지(境地 지경·경계 경/땅 지)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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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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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ㅅ/식신2020. 12. 24. 20:27

식신(No.454)—(게송)石火光陰走~ |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하지 마라 | 화두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치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고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인식 주체. 마음(心).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참고] 『벽암록(碧巖錄)』 제99칙 '본칙평창(本則評唱)'

長沙云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如今人 只認得箇昭昭靈靈 便瞠眼努目 弄精魂 有什麼交涉

 

장사경잠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법신으로)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식신은 무량겁으로부터 이어 온 생사의 근본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인(本來人)이라고 부른다. 지금 사람들이 단지 또렷또렷하고 신령한[昭昭靈靈] 그것을 진실이라 오인하여 눈을 치켜뜨고 그 헛것과 놀아나지만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11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454)—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이 세월은 탁! 돌과 돌을 부딪치면 불이 번쩍 하듯이 그렇게 참 세월은 빠른 것이고,

홍안(紅顔)은 진백두(盡白頭)다. 엊그제 빨간 소년이 금방 흰머리가 난 노인이 되고 말아.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생각해 보면 새파란 소년 소녀일 때가 엊그제 같을 것입니다.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인간의 백년 세월이라는 것이 꿈같은 것인데, 일생의 모든 일이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안 돼.

잘살 건 못살 건, 잘낫 건 못낫 건, 지내 놓고 보라 그말이여. 백년이라는 게 무엇이여? 그것이 꿈에 지내지 못하고, 하루살이 신세에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참 많은 도반들이 운집을 하셨고 또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참 이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법문은 더할 것이 없으나 기왕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셨으니까, 앞으로 해제 동안에 더운 여름도 다 갔고, 이 서늘한 해제 동안에 산철 결제를 들어가던지 또는 그냥 행각(行脚)을 하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정진을 잘 하시되.

 

흔히 성성(惺惺)하고 깨끗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성성하고 깨끗하고 담담(淡淡)한 그런 경계(境界)만을 자꾸 그런 경계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그러한 경계에 탐착하는 것도 그것도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잠깐 동안도 바른 생각, 정념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정념을 잃어버리면은 벌써 이단(異端)에 떨어지는 거여.

한 생각 삐끗하면은 돌이키기가 어려워. 얼마 동안을, 까딱하면 영원히 잘못 떨어질 수도 있어.

 

그래서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망상이 일어나고, 물론 그런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징징담담(澄澄湛湛),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거, 참 그렇게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 죽비만 안 치면은 4시간도 좋고 5시간도 좋고 계속 이렇게 앉아 있고 싶을 그러한 경지가 오는데 그러한 순청절점(純淸絶點),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지에 따악 빠져서 그놈을 지키고 앉았는 거, 그것 참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정념을 잃어버리는 가장 무서운 경계다 그거거든.

 

왜 그것이 무서운 경지냐?

 

'능히 강(講)하고, 능히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고 그러한 것을,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냐. 말할 때는 말하는 놈, 밥 먹을 때는 밥 먹은 놈, 무슨 연설할 때는 연설하는 놈, 일할 때는 일하고,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지, 그것 밖에 부처가 어디가 있으며 그것 밖에 나의 주인공이 어디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경지다’ 해 가지고 바른 정진을 해 나가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자기가 한소식 한 것처럼 그것이 바로 바른 경지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

그것은 자기의 망식(妄識)이여. 그게 망식,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는 ‘맑고 깨끗한, 성성한 그것이 바로 자기의 참 경계’로 한 것은 ‘맑고 깨끗하다’라고 하는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참 경계를 삼아. 그것이 바로 정념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거든.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또 무슨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그리고는 딱 그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경계로써 정념을 삼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경지가 지속이 되면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말할 수가 없지. 그러나 그것은 돌로 풀을 눌러 놓는 거와 같애.

그래서 돌만 떠들면은 다시 터 나오고, 오랫동안 눌러놔도 돌 어느 틈인가 뚫고 다시 (풀이) 노라니 있다 뚫고 나온 거라, 그것도 바른 경지가 아니고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또 자기의 몸을 ‘이 몸뚱이는 허공(虛空)과 같은 것이다’ 해 가지고, 허공과 같은 것이니 그래가지고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 해. 아무 생각을 안 일으키고 허공과 같은 경지에서 꼭 그 경계를 벼람빡과 같이, 장벽(牆壁)과 같이 그렇게 따악 그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참 바른 공부다’ 이리 생각하고 그러는 경지로 지켜 나가는 거.

이런 것은 공망(空亡),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다’ 그랬는데,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고요한 그걸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봤자 그것은 무기공에 떨어진 것이여.

 

앞에 말한 것이 전부가 다 ‘왜 그것이 바른 경지(境地)가 아니냐? 바른 공부가 아니냐?’하면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망상이 일어나도 그것을 누르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을 의심만을 딱!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을 탁!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또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話頭)를 놔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것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입니다.

 

바르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의심이 더이상 깊을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어. 그러한 가운데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언젠가는 툭! 터져서 의단을 타파(打破)하면 자기 면목을 보게 되고, 그때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야 하는 거야.(53분18초~64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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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담담하다(淡淡-- 묽을·담담할 담) ; 동요없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參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징징담담(澄澄湛湛 맑을 징/즐길·가라앉을 담) ; 맑고 깨끗한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순청절점(純淸絶點) ; 순수하고 맑고 티끌[點]이 끊어진 것.

*망식(妄識) ; 망(妄)으로서의 식(識). 망령된 사유분(思惟分)에 근거한 진실되지 않은 식(識).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인식 주체. 마음(心).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참고] 『벽암록(碧巖錄)』 제99칙 '본칙평창(本則評唱)'

長沙云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如今人 只認得箇昭昭靈靈 便瞠眼努目 弄精魂 有什麼交涉

 

장사경잠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법신으로)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식신은 무량겁으로부터 이어 온 생사의 근본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인(本來人)이라고 부른다. 지금 사람들이 단지 또렷또렷하고 신령한[昭昭靈靈] 그것을 진실이라 오인하여 눈을 치켜뜨고 그 헛것과 놀아나지만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7분 45초)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 신수기도 입재(85.02.22).

학도지인불식진(學道之人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대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학도지인(學道之人)이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그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청·황·적·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은 ‘저거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그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무슨 말을 들으면 ‘저것은 좋은 일이다, 저것은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 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의 작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생사본(生死本)이여. 저 비롯함이 없는 저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 낳다 죽었다, 낳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은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사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은 '바로 이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이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참 면목이다. 이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 생각 낼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마는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일 수 있으나 또 한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사(生死)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 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를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이 그렇게 무서운 죄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그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가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세하셔도 구제할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를 하면 용서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에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識神)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本來身)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24분24초~32분8초)

*(게송)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來認識神 無始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身'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 (동국역경원刊) 제495칙 본명(本命)' p36 참고.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경지(境地 지경·경계 경/땅 지)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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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화현 화신2020. 12. 23. 12:58

보살 화현(No.454)—육군비구, 묵빈대처(默擯對處), 보살 화현 | 목련존자와 집장외도 | 목련존자의 전생 죄업으로 오백생 동안 타살 당함.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12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454)—19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부처님 당시에는 모두가 다 일대사(一大事), 생사 문제를 위해서 도 닦는 모두가 다 그런 스님이었고, 특수한 육군비구(六群比丘)와 같은 참 깡패 스님들이 부처님 당시에도 없는 것은 아니고 있었습니다. 그랬어도 부처님은 그것을 그냥 그대로 보셨어요.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신통력(神通力)과 덕행으로 얼마든지 그것들을 신통력으로 처벌을 주실 수도 있고, 다 내쫓아낼 수도 있고, 그 감화(感化)를 주실 수도 있으련만 그냥 그런대로 보셨어.

 

아난존자가 “부처님 돌아가신 뒤에는 어떻게 육군비구를 대우할까요?”하니까 “묵빈대처(默擯對處) 해라”

‘묵빈대처’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말을 안 해’ 봐도 말을 안 하고 그냥...

 

묵빈대처란 문구(文句)는 속가에서는 잘 모르고, 형제간끼리나 동서 간이나 일가친척 간에도 서로 싸우고 난 뒤에는 만나도 인사도 안 하고 말을 안 하지요.

그것을 ‘상조한다’ 그런 말이 있는데, 풀어지면은 말해도 그때까지는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거여. 말을 안 하니까 서로 왕래가 끊어지고, 완전히 남 보듯 하는 거지. 그것을 묵빈대처라 하는데.

 

이 사찰에서는 도저히 같이 어울려서 화합해서 살 수 없는 그런 스님네는 묵빈대처를 하는 거야.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서로 절대로 대화 안 해버리는 거야. 그것이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그 육군비구와 같은 못된 스님네는 묵빈대처법이란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 육군비구가 지금도 아마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몇몇 스님네는 부처님 때도 있었으니까 요새 또 없으란 법도 없고.

그런 몇 분의 스님이 있다고 해서 스님네를 몰아 때려서 다 “에이! 말세다. 요새는 중다운 중이 어디가 있어? 불법이 말세야. 맨 싸움만 하고” 그렇게 혹 보시는 분이 있을런지 모르지마는, 육군비구 가운데에도 나중에 다 아라한이 된 분도 있고, 성현이 된 분도 있고, 천상에 간 분도 있습니다.

 

지금 목련존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 목련존자가 나중에 사리불존자와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이 되어서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련존자가 마지막 열반하실 때에는 집장외도(執杖外道)의 무리들에게 맞아서 타살을 당했습니다.

그 목련존자가 어떻게 호되게 맞았던지 기절해서 쓰러졌는데—외도(外道)들은 왜 목련존자를 그렇게 타살을 했느냐 하면은 불법(佛法)이 나날이 융성을 하고 자기네 교(敎)를 믿던 사람들이 전부 불교를 믿게 되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네 교가 아주 완전히 멸망하게 생겼어.

 

그래서 ‘그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만 없애면 불교가 저렇게 번창을 하지 못할 것이다’해서 목련존자를 갖다가 타살을 했다 말이여.

그러고 (집장외도들이) 다 갔는데 목련존자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가지고 보니 몸뚱이가 말이 아니여. 아주 사지 삼백육십 골절이 성한 데가 없이 살은 터지고 뼈다구는 부러지고 꼼짝을 못하게 됐다 그말이여. 그래도 신통을 써 가지고 신통력으로 돌아왔다 말이여.

 

첫째 사리불존자를 자기 도반이니까 찾아가니까 사리불존자가 깜짝 놀래. “왜 신통제일인 목련존자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냐?”

“집장외도들이 날 이렇게 팼다”

 

“그럼 신통술을 써서 피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맞았느냐?”

“말 마라. 내가 과거에 지은 죄업으로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도 안 났는데, 어떻게 ‘통(通)’을 부려 가지고 내가 신통력을 부릴 수가 있겠느냐”

 

“그대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단 말이냐?”

“내가 오백 생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장가를 갔는데 어떻게 마누라가 이쁘던지 마누라한테 폭 빠져가지고 어머니한테 등한히 했더니, 어머니가 날마다 꾸지람을 하시고 ‘저놈이 계집을 얻더니 계집한테 빠져 가지고 에미를 우습게 안다’고 어떻게 참 그렇게 하시던지 부애가 나가지고, ‘어떤 장사가 와 가지고 우리 엄마 좀 뚜드려 팼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고약한 욕을 내가 했어.

그 어머니한테 그런 욕한 죄로 오백생 동안을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참혹하게 타살을 당했다. 내가 금생에까지 이렇게 오백생째 내가 이렇게 맞어 죽으니, 내가 지은 죄로 내가 이렇게 받는 것이니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 가지고 이제 곧 숨이 깔딱 깔딱 죽게 되니까 사리불존자가 “아직은 열반에 들지 말고 조금만 참으라”고, “내가 먼저 열반에 들거든 나중에 들으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니까 곧 죽게 생겼는데도 신통력으로 꽉 참고 있는데,

사리불존자는 그길로 부처님한테 가서 하직 인사를 하고,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모다 가족 친척들한테 설법을 하고 그리고 열반을 하고, 열반하자마자 목련존자도 또 열반에 들었는데.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는 왜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돌아가셨냐 하면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그 공경하고 신(信)하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그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먼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 준례(準例)라고 그럼니다.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집장외도들한테 맞아 돌아가셨단 말을 듣고서 그 왕이 엄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들을 체포를 해 가지고 불에 태워 죽이라’고 특명을 내렸습니다.

특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를 체포를 해 가지고 죽이려고 하는데, 목련존자가 그 소식을 듣고 “절대로 이건 나를 위한다면 참으로 나를 위한다면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하니까, 그 왕이 “불법의 자비는 참 훌륭하다” 그러고, ‘그러면 죽이지는 말고 국외로 추방을 하라’고 해서 국외로 추방 명령을 내렸는데,

 

목련존자의 제자 가운데 마숙(馬宿), 만숙(滿宿)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 두 제자가 육군비구(六群比丘)의 비구여.

아까 말씀드린 아주 깡패 중이여.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사람 때려죽이고 뭐 보통으로 하는, 그래 가지고는 육군비구인 그 마숙, 만숙 두 사람이 그 집장외도를 뒤쫓아가 가지고 붙들어 가지고는 몽둥이로 쳐서 때려죽여 버렸거든.

 

자기 스승을 죽인 사람을 가만 놔둘 수가 없다 해 가지고 때려죽여 버렸다 그말이여. ‘부처님 제자가 참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육군비구는 계율이고 뭣이고 그런 데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야.

그래도 그 마숙이는 죽어서 구렁이가 되었다가, 다시 그 사람을 죽이고 그랬으니 구렁이가 되었어도 용이 되었어. 또 다른 한 사람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고 그랬는데.

 

왜 그러한 육군비구가 파계(破戒)를 하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했는데도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느냐?

아마 그러한 막행막식을 한 가운데에도 그 속은 멀쩡하거든. 과거에 보살 화현(化現)이 비구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역행(逆行)으로 나타난 보살 화현』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혹 스님네 가운데에 막행막식을 하는 그런 스님네가 있다 하더라도 ‘아! 저분이 바로 보살 화현이로구나, 보살 화현이 말세에 태어나서 정말 다른 스님네로 하여금 정말 발심(發心)을 해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보살 화현으로 저렇게 나타났거니’ 이렇게 생각을 하고 불법(佛法)을 비방하지 말고 오히려 신심을 내서 불법을 잘 받들기를 바랍니다.(37분40초~49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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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육군비구(六群比丘) ; 육군(六群)이라는 것은 불제자(佛弟子) 중에, 항상 한무리가 되어 수행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행하고, 그 때문에 제계(制戒, 부처님이 제자에 대해 제정한 계율)의 인연이 된 여섯 사람의 악행비구(惡行比丘)를 말한다.

①난타(難陀, 팔리어 Nanda의 음사) ②발난타(跋難陀, 팔리어 Upananda의 음사) ③가류타이(迦留陀夷, 팔리어 kāḷudāyī의 음사) ④천나(闡那, 산스크리트어 chanda, 팔리어 channa의 음사) ⑤아설가(阿說迦, 산스크리트어 aśvaka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숙馬宿) ⑥불나발(弗那跋, 산스크리트어 punarvasu 팔리어 punabbasu의 음사. 만숙滿宿)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力).

*묵빈대처(默擯對處) ; 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즉 묵빈(默檳)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묵빈(默擯, 默檳) ; 산스크리트어 brahma-daṇḍa의 번역. 범단(梵檀, 梵壇)이라고도 함. daṇḍa는 벌(罰) · 형벌(刑罰) · 치죄(治罪)라는 뜻. 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준례(準例 모범으로 삼을 준/법식·관례 례) ; 기준이나 본보기가 될 만한 이전의 일.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역행보살(逆行菩薩) ; 그릇된 짓의 나쁜 과보를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그릇된 짓을 하는 보살. 수행자로 하여금 더욱 신심을 일으키고 수행이 견고하도록 돕는 뜻으로 일부러 역행하는 보살.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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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염주2020. 11. 9. 16:15

염주(No.454)—수행하는데 염지방편(念持方便)으로, 염불이 끊어지지 않고, 화두가 끊어지지 않는 방편으로 염주를 사용 | ‘이뭣고?’ 했을 때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하는 것이지,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다.

 

*염주(念珠) ; 산스크리트어 pāsaka mālā. 작은 구슬을 여러 개 실에다 꿰어 둥글게 만들어 불보살 명호 · 다라니 · 예배나 염송의 횟수 등을 헤아리는데 사용하는 법구(法具).

염주의 재료는 금 · 은 · 철 · 적동(赤銅) · 수정(水精) · 유리(瑠璃) · 침수단향(沈水檀香) · 진주 · 산호(珊瑚) · 목환자(木槵子) · 연자(連子) · 보리자(菩提子) 등을 사용한다. 염주 구슬의 개수는 108개 · 54개 · 27개 · 14개 등으로 만드나, 경전에 따라 차이가 있다.

 

(8분 13초)

 

[법문] 송담스님(No.454)—19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오늘 백중날을 기해서 몇 분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불자(佛子)들이 서로 정성을 모여서 이런 염주(念珠), 중국에서 참 어렵게 도입한 중국 향나무로 만든 염주입니다. 이 염주를 여러분에게 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염주는 염불(念佛)을 하는데 쓰이는 것인데, ‘염지방편(念持方便)’ 염지(念持)—생각 염(念)자, 가질 지(持)자, ‘염지’하는 염지는 억념(億念)하는 거야. 항상 생각하고 ‘가질 지(持)’자는 받아 갖는 거야.

 

잠시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 한 생각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또 그 다음에 딴 망념이 거기에 끼어 들어갈 기회를 주지 않고 다시 '나무아미타불'해서 이렇게 불러 가지고, 마지막 죽을 때 숨 딱 끊어질 때까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해서,

그렇게 하면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숨 딱 끊어지자마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오셔서 영접을 하러 오신다 그말이여.

 

그런 데에 쓰이는 것이 바로 이 염주여. 긴 것은 천염(千念)도 있지마는 보통 108염주고, 반으로 잘라서 54 또 그놈을 반으로 잘라서 27개 이렇게 하고,

또 굵은 것은 10개씩을 꿰매서 이렇게 따그락 따그락 이렇게 돌리는데 그렇게 큰 것은 보통 노스님네나 갖지, 젊은 스님네나 보살님네들이 따그락 따그락 하면 볼쌍 사나워서 못쓰는 거여. 보통 돌리면 백팔염주를 돌리시는데, 그리고 간편하게는 팔에다가 하는 그런 단주(短珠)도 있고 그렇죠.

 

그런데 그러한 염불할 때 쓰이는 것이지만 중국에 송나라 이후로는 염불선(念佛禪)이라 해서 한편으로는 염불도 하고 또 참선도 하고 두 가지를 겸해서 닦는 그러한 수행법이 번져서, 우리나라도 참선 하면서도 기도도 하고, 참선 하면서도 아침으로는 경(經)도 읽고, 참선 하면서도 또 염불도 하고 그러한 스님네도 있고 또 대부분의 보살님네들도 그렇게 하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나만을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으나 사나 ‘이뭣고?’ 하나만을 가지고 한 그런 스님네는 구태여 염주 돌릴 필요도 없고 그렇지마는,

또 염불 안 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참선하면서도—입으로나 마음으로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전혀 부르지 않고 ‘이뭣고?’ 화두만 들면서도—따그락 따그락 이렇게 단주도 돌리고 염주를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방(禪房)에 앉아서 따그락 따그락 하면 옆에 분들한테 방해가 되어서 도저히 안 됩니다. 안 되고,

혼자 행각(行脚)을 하거나, 혼자 토굴(土窟)에 있거나, 혼자 있을 때는 화두를 들고 ‘이뭣고?’하면서도 염주를 돌려도 괜찮은데, 혹 잘못 알아가지고 염주를 돌리면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 이래서는 안 돼.

 

‘이뭣고?’ 한번 부른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부른 공덕보다도 수승하다 그러니까, 오늘부터서 나도 하루에 십만 번씩을 ‘이뭣고’를 하리라.

‘이뭣고’ ..... ‘이뭣고’가 나중에는 ‘먹고 먹고 먹고’해 가지고 ‘먹고 먹고 먹고’ 나 그런 분을 봤는데, 절대로 참선(參禪)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이뭣고?’ 한 번 들어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탁! 관(觀)하는 거야.

‘이뭣고’ 횟수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여. ‘이뭣고?’를 한 번을 하고, 한 번 척 챙겨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관하는 거여.

 

관하는데, 혼침(昏沈)이 오고 잠이 올 때에는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미간(眉間)에다 탁 놓고 관하는 거여. 그리고 산란심(散亂心)이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할 때에는 그 화두를 단전(丹田)에다가 따악 놓고 관하는 거여.

그래서 따—악 그 의심을 관하는 거,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했을 때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하는 것이지, ‘이뭣고,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거든.

 

그것을 착각을 하시지 말고, 아침에 한 번 든 화두가 없어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고대로 있으면 점심 먹을 때까지 화두 한 번만 들어도 괜찮은 거야.

그러다가 화두가 없어지거나, 딴생각[別念]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 한 번 딱! 들고, 의심이 끊어졌을 때 한 번씩 들고 들고 하는 거여.

 

이 염주를 노나 드리는데, 여기서 노나 드리면 혼잡하고 복잡하니까 공양 잡숫고 저기 마당 끝에 나가시면 거기서 이렇게 싸놓고 노나 드릴테니까,

염주를 돌리시되, 돌릴 때마다 108개니까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거기서 끊어지고 또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의단 속에서 이렇게 돌리실 수도 있고 또 염불하실 때 돌릴 수도 있고 이것은 참 다목적이고.

 

항상 이렇게 목에 거시고, 돌리시고 하면은 백팔번뇌가 보리심(菩提心)으로 변하고, 그래서 그러한 수행하는데 염지방편(念持方便)으로, 우리의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항상 염불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가 끊어지지 않는 방편으로 이것을 사용하신다면은 이것을 시주(施主)한 그분네들이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고, 모두가 다 이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을 하면서 오늘 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걸 욕심 사납게 2개씩, 3개씩 가져가시려 하지 말고 한 개씩만 질서 있게 다 가지고.. 충분히 많이 준비를 했으니까 한 개씩만, 오늘 오신 분은 어른이나 애기나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다 노나 드리겠습니다.

 

오늘 백중일(百中日)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는 다 좋은 곳으로 해탈도(解脫道)로 나아가시게 될 것입니다.(64분47초~1시간13분)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불설목환자경(佛說木槵子經)』 (失譯) (송성수 번역 | 동국역경원)

聞如是 一時佛遊羅閱祇耆闍崛山中 與大比丘衆一千二百五十人俱 菩薩無數 名稱遠聞 天人所敬 時 難國王名波流離 遣使來到佛所 頂禮佛足 白佛言 世尊 我國邊小 頻歲寇賊 五穀勇貴 疾病流行 人民困苦 我恒不得安臥 如來法藏 多悉深廣 我有憂務 不得修行 唯願世尊 特垂慈愍 賜我要法 使我日夜易得修行 未來世中 遠離衆苦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羅閱祇 : 왕사성)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셀 수 없이 많은 보살과 함께 지내셨는데, 그 명성이 널리 전해져 천상과 인간의 공경을 받았다. 그때 난국(難國)의 왕 파유리(波流離)가 보낸 사신이 부처님께 찾아와 땅에 엎드려 발아래 예배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리나라는 변방의 소국이라 해마다 도적이 국경을 침범하고, 오곡이 너무도 귀해 질병이 유행하며 인민들이 곤궁한 곳입니다. 제가 이 일로 항상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여래의 모든 법장(法藏)이 비록 깊고 넓으나, 저는 근심과 일이 많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사랑과 연민을 베푸시어 저에게 요긴한 법을 주십시오. 제가 밤낮으로 쉽게 수행할 수 있게 하시고, 오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게 해주십시오.”

 

佛告王言 若欲滅煩惱障 報障者 當貫木槵子一百八 以常自隨 若行若坐若臥 恒當至心無分散意 稱佛陀 達摩 僧伽名 乃過一木槵子 如是漸次度木槵子 若十若二十 若百若千 乃至百千萬 若能滿二十萬遍 身心不亂 無諸諂曲者 捨命得生第三焰天 衣食自然 常安樂行 若復能滿一百萬遍者 當得斷除百八結業 始名背生死流 趣向泥洹 永斷煩惱根 獲無上果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번뇌장(煩惱障)과 보장(報障)을 없애고 싶다면 목환자(木槵子) 108개를 꿰어 항상 스스로 지니라. 다니거나 앉거나 눕거나, 늘 지극한 마음으로 뜻을 분산하지 말고 불타(佛陀)ㆍ달마(達摩)ㆍ승가(僧伽)를 부르며 목환자 한 알씩 돌려라. 이렇게 점차로 목환자를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 내지 백천만 번을 돌려라. 만일 20만 번을 채우면 몸과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모든 사특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죽어서는 제3 염천(焰天)에 태어나 옷과 음식이 저절로 풍족하고 항상 안락하리라. 백만 번을 채운다면 당연히 108번뇌의 업을 끊어 없애게 될 것이며, 비로소 생사의 흐름을 등졌다고 하거니와 열반[泥洹]으로 나아가 번뇌의 뿌리를 영원히 끊고 위없는 과보를 획득하리라.”

 

*목환자(木槵子) ; 학명 Sapindus mukorossi, Gaertn. 무환자(無患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또는 그 나무의 씨앗을 가리키는 말. 환자(槵子) 목환자(木患子) 무환자(無患子) 등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20미터에 달한다. 씨앗은 염주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여러 재료 중 하나이다. 역시 염주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모감주나무는 동일하게 무환자나무과에 속하기 때문에 같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나무이다.

『불설목환자경(佛說木槵子經)』에는, 부처님께서는 이 목환자로 만든 염주를 굴리면서 삼보(三寶)를 칭념하면 여러 종류의 좋은 과보를 얻을 수 있고, 마침내는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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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12. (가로판) p117.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염지방편(念持方便) ; 마음이 흐뜨러지지 않도록 생각을 가다듬고, 참뜻을 알기 위해 쓰는 수단과 방법.

*억념(億念 생각하다·기억하다·잊지 않다 억/생각·생각하다·기억하다·외우다·읊다·암송하다 념) ; ①기억함. 마음으로 생각하여 간직함. 계속 생각함. 마음 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 마음으로 생각하여 늘 생각해 냄. ②생각을 떠올리다. 생각해내다. 과거를 생각해내는 마음 작용.

③특히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계속 생각함. 늘 부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이름을 부름. 늘 아미타불을 외움.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 「나무」는 범어로 namas 또는 namo 인데, 경례(敬禮) • 공경(恭敬) • 순종(順從) • 귀명(歸命) • 귀의(歸依) 같은 여러 뜻이 있고, 「아미타(amita)」는 한량없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무량수(無量壽 amitayus)와 무량광(無量光 amitabha)의 뜻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 한량없는 목숨과 광명을 지닌 부처님께 경례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염불에는 옅고 깊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21가지의 염불삼매(念佛三昧)를 가르쳤고, 『지도론(智度論)』에는 염불하는 차례를 말하기를, 처음엔 부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다음으로 부처님의 몸 • 상호(相好) • 신통 • 공덕을 생각하고, 그다음으로 부처님의 오분 법신(五分法身)을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원만한 과덕(果德)을 생각하라 하였다.

또 천태(天台智顗禪師)의 오방편염불문(五方便念佛門)에는 명호를 불러 가서 나는 문[稱名往生門]과, 형상을 생각하여 죄악을 없애는 문[觀相滅罪門]과, 모든 경계가 오직 마음임을 생각하는 문[諸境唯心門]과, 마음과 경계를 함께 떠나는 문[心境俱離門]과, 성품이 두렷이 통하는 문[性起圓通門]의 다섯 가지를 말하였고,

지욱선사(智旭禪師)의 『우익종론(藕益宗論)』에서는 딴 부처를 생각하는 것[念他佛], 제 부처를 생각하는 것[念自佛], 나와 남을 함께 생각하는 것[自他俱念]의 세 가지로 말한 바도 있거니와,

 

가장 쉽게 똑바로 말하자면, 부처님의 참 몸은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無量光] 그것이며,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無量壽] 그것이다. 이것을 「十」으로 또는 「O」으로 표시한다.

가로 그은 「—」은 무한한 공간에 찼다[橫亘十方]는 뜻이고, 내리 긋는 「|」은 무궁한 시간에 뻗침[竪窮三際]을 표시한다. 그리하여 불교의 十은 기독교의 十과 모양도 다르고 뜻도 다르다.

 

그러므로 염불함에는 이 무량한 광명이 끝없이 뻗친 것을 생각하여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을 지어 가지만 나중에는 능소(能所)가 저절로 떨어져서, 생각하는 마음과 보이는 광명이 따로 없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온갖 생각이 빛 하나로 뭉쳐지고, 마침내는 그 빛까지도 떨어져서 천진한 부처(天眞佛)의 참 몸이 나타나고 성품의 극락세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망념(妄念) ; 망상(妄想).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 아미타불의 오른편 보처(補處). 산스크리트 Mahasthama-prapta  마하살타마발라발다(摩訶薩馱摩鉢羅鉢跢)라고 음역. ‘대정진(大精進)’ ‘대세지’ 또는 ‘득대세지(得大勢志)’라고도 하며 줄여서 그냥 ‘세지(勢至)’라고도 번역.

아미타불에게 자비문, 지혜문이 있는 가운데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문을 나타내고, 대세지는 지혜의 문을 나타낸다. 이 보살의 지혜 광명이 모든 중생에게 비치어 삼도(三途)를 여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또 발을 디디면 삼천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형상은 정병이 표현된 보관을 썼으며, 염불하는 수행자를 맞을 때에는 항상 합장을 하는 모습을 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 · 관세음(觀世音) · 관세자재(觀世自在) ·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 번 들어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탁! 관(觀)하는 거야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백팔번뇌(百八煩惱) ;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마음 작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 · 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 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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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ㅈ/정념2020. 11. 6. 07:26

정념(No.454)—(게송)石火光陰走~ |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이라고 착각을 하지 마라 | 화두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치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고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參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11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454)—19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이 세월은 탁! 돌과 돌을 부딪치면 불이 번쩍 하듯이 그렇게 참 세월은 빠른 것이고,

홍안(紅顔)은 진백두(盡白頭)다. 엊그제 빨간 소년이 금방 흰머리가 난 노인이 되고 말아.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생각해 보면 새파란 소년 소녀일 때가 엊그제 같을 것입니다.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인간의 백년 세월이라는 것이 꿈같은 것인데, 일생의 모든 일이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안 돼.

잘살 건 못살 건, 잘낫 건 못낫 건, 지내 놓고 보라 그말이여. 백년이라는 게 무엇이여? 그것이 꿈에 지내지 못하고, 하루살이 신세에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참 많은 도반들이 운집을 하셨고 또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참 이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법문은 더할 것이 없으나 기왕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셨으니까, 앞으로 해제 동안에 더운 여름도 다 갔고, 이 서늘한 해제 동안에 산철 결제를 들어가던지 또는 그냥 행각(行脚)을 하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정진을 잘 하시되.

 

흔히 성성(惺惺)하고 깨끗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성성하고 깨끗하고 담담(淡淡)한 그런 경계(境界)만을 자꾸 그런 경계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그러한 경계에 탐착하는 것도 그것도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잠깐 동안도 바른 생각, 정념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정념을 잃어버리면은 벌써 이단(異端)에 떨어지는 거여.

한 생각 삐끗하면은 돌이키기가 어려워. 얼마 동안을, 까딱하면 영원히 잘못 떨어질 수도 있어.

 

그래서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망상이 일어나고, 물론 그런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징징담담(澄澄湛湛),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거, 참 그렇게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 죽비만 안 치면은 4시간도 좋고 5시간도 좋고 계속 이렇게 앉아 있고 싶을 그러한 경지가 오는데 그러한 순청절점(純淸絶點),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지에 따악 빠져서 그놈을 지키고 앉았는 거, 그것 참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정념을 잃어버리는 가장 무서운 경계다 그거거든.

 

왜 그것이 무서운 경지냐?

 

'능히 강(講)하고, 능히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고 그러한 것을,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냐. 말할 때는 말하는 놈, 밥 먹을 때는 밥 먹은 놈, 무슨 연설할 때는 연설하는 놈, 일할 때는 일하고,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지, 그것 밖에 부처가 어디가 있으며 그것 밖에 나의 주인공이 어디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경지다’ 해 가지고 바른 정진을 해 나가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자기가 한소식 한 것처럼 그것이 바로 바른 경지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

그것은 자기의 망식(妄識)이여. 그게 망식,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는 ‘맑고 깨끗한, 성성한 그것이 바로 자기의 참 경계’로 한 것은 ‘맑고 깨끗하다’라고 하는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참 경계를 삼아. 그것이 바로 정념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거든.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또 무슨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그리고는 딱 그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경계로써 정념을 삼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경지가 지속이 되면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말할 수가 없지. 그러나 그것은 돌로 풀을 눌러 놓는 거와 같애.

그래서 돌만 떠들면은 다시 터 나오고, 오랫동안 눌러놔도 돌 어느 틈인가 뚫고 다시 (풀이) 노라니 있다 뚫고 나온 거라, 그것도 바른 경지가 아니고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또 자기의 몸을 ‘이 몸뚱이는 허공(虛空)과 같은 것이다’ 해 가지고, 허공과 같은 것이니 그래가지고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 해. 아무 생각을 안 일으키고 허공과 같은 경지에서 꼭 그 경계를 벼람빡과 같이, 장벽(牆壁)과 같이 그렇게 따악 그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참 바른 공부다’ 이리 생각하고 그러는 경지로 지켜 나가는 거.

이런 것은 공망(空亡),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다’ 그랬는데,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고요한 그걸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봤자 그것은 무기공에 떨어진 것이여.

 

앞에 말한 것이 전부가 다 ‘왜 그것이 바른 경지(境地)가 아니냐? 바른 공부가 아니냐?’하면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망상이 일어나도 그것을 누르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을 의심만을 딱!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을 탁!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또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話頭)를 놔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것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입니다.

 

바르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의심이 더이상 깊을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어. 그러한 가운데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언젠가는 툭! 터져서 의단을 타파(打破)하면 자기 면목을 보게 되고, 그때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야 하는 거야.(53분18초~64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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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담담하다(淡淡-- 묽을·담담할 담) ; 동요없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參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징징담담(澄澄湛湛 맑을 징/즐길·가라앉을 담) ; 맑고 깨끗한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순청절점(純淸絶點) ; 순수하고 맑고 티끌[點]이 끊어진 것.

*망식(妄識) ; 망(妄)으로서의 식(識). 망령된 사유분(思惟分)에 근거한 진실되지 않은 식(識).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인식 주체. 마음(心).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참고] 『벽암록(碧巖錄)』 제99칙 '본칙평창(本則評唱)'

長沙云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如今人 只認得箇昭昭靈靈 便瞠眼努目 弄精魂 有什麼交涉

 

장사경잠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법신으로)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식신은 무량겁으로부터 이어 온 생사의 근본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인(本來人)이라고 부른다. 지금 사람들이 단지 또렷또렷하고 신령한[昭昭靈靈] 그것을 진실이라 오인하여 눈을 치켜뜨고 그 헛것과 놀아나지만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 신수기도 입재(85.02.22) (7분 45초)

학도지인불식진(學道之人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대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학도지인(學道之人)이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그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청·황·적·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은 ‘저거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그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무슨 말을 들으면 ‘저것은 좋은 일이다, 저것은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 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의 작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생사본(生死本)이여. 저 비롯함이 없는 저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 낳다 죽었다, 낳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은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사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은 '바로 이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이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참 면목이다. 이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 생각 낼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마는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일 수 있으나 또 한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사(生死)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 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를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이 그렇게 무서운 죄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그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가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세하셔도 구제할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를 하면 용서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에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識神)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本來身)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24분24초~32분8초)

*(게송)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來認識神 無始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身'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 (동국역경원刊) 제495칙 본명(本命)' p36 참고.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경지(境地 지경·경계 경/땅 지)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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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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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ㅊ/천도재(영가천도)2020. 11. 5. 12:02

천도(No.454)—(게송)生涯如夢若浮雲~ | 몸과 목숨을 바쳐서 참선하는 스님네에 공양을 해야 | 목련의 전생 죄업으로 오백생 동안 타살 당함 | 육군비구, 보살화현 | 우리 자신이 참선을 해야.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보다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 · 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 16분 30초.

(2) 6분 1초.

 

[법문] 송담스님(No.454)—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1)------------------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하고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하야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애(生涯)는 여몽약부운(如夢若浮雲)이요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다.

인간 세상에 인생살이라는 것이 꿈과 같은 것이요, 뜬구름과 같은 것이여. 그러건만 세상 사람들은 꿈인 줄도 모르고 뜬구름인 줄들 몰라.

그것이 정말 나의 행복인 줄 알고, 그것이 실다운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집착해 가지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권리를 얻기 위해서, 높은 벼슬을 하기 위해서, 큰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청제 부인과 사촌이 될 만큼 그러한 탐착심(貪着心), 진심(瞋心)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말이여.

 

남편을 위하고 처자 권속을 위하고, 그것이 전부 꿈인 줄 알고 뜬구름인 줄 안다면 어찌 그것에 집착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은 분명히 그것이 꿈인 줄을 깨닫고, 그것이 뜬구름인 줄을 분명히 요달(了達)을 해 버렸어. 그러기 때문에 청춘을 버리고 인간의 영욕(榮辱), 득실,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처님의 뒤를 따라서 부모와 가정과 영화를 버리고 출가를 하셨다 그 말이거든.

그러니 육친(六親)을 다 버려 버려 인연을 다 끊어 버렸어. 무엇만 남아 있느냐 하면은 한 쌍의 푸르고 흰 눈만을 가지고 있어.(留得一雙靑白眼) 그래서 세상의 명예나 권리나 모든 것을 보기를—천하 없이 벼슬이 높고, 권리가 높고, 명예가 높고 그런 사람을 보기를 푸른 청백안으로 봐. 그리고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어.

 

그 푸르고 흰 눈으로 ‘참나’를 꿰뚫어 봐야 해. 아까 ‘상두관을 꿰뚫는다(透得上頭關)’ 그랬는데, 오직 화두(話頭) 하나만을 가지고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인연 따라서 수용하면서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나의 몸과 목숨을 바치는 것뿐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스님네께 공양을 올려야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薦度)할 수가 있다 그거거든.

 

맑고 시원한 물 한 그릇을 공양을 올려도—그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면 부처님께는 그것이 제호(醍醐)가 돼. 제호는 이 세상에서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특수한 우유로 만드는 것이여. 또 맑은 물 한 그릇을 스님네께 공양을 하면 그것은 감로수(甘露水)로 변하는 거고, 십선계(十善戒)를 닦은 십선인에게 그 맑은 물을 올리면은 그것이 갈증을 면하는 거고.

목련존자의 어머니와 같은 그런 죄지은,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 그런 이에게 물을 올리면 그 물이 훨훨 타는 불이 되고 마는 것이여. 똑같은 물인데 그렇게 다르거든.

 

그래서 여러분은 절에 가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모다 그런는데. 절마다 가면 다 부처님을 모셨어. ‘절은 다 같은 절이지, 뭐’ 다 같은 절, 부처님은 다 같지마는.

스님도 다 같은 스님이지. 다 스님도 먹물 옷을 입고 머리를 깎고 그렇게 살면 다 같은 스님이지만, 정말 청정한 계를 가지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참선을 하는 그런 스님네에 이렇게 공양을 해야.

 

부처님 당시에는 모두가 다 일대사(一大事), 생사 문제를 위해서 도 닦는 모두가 다 그런 스님이었고, 특수한 육군비구(六群比丘)와 같은 참 깡패 스님들이 부처님 당시에도 없는 것은 아니고 있었습니다. 그랬어도 부처님은 그것을 그냥 그대로 보셨어요.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신통력(神通力)과 덕행으로 얼마든지 그것들을 신통력으로 처벌을 주실 수도 있고, 다 내쫓아낼 수도 있고, 그 감화(感化)를 주실 수도 있으련만 그냥 그런대로 보셨어.

 

아난존자가 “부처님 돌아가신 뒤에는 어떻게 육군비구를 대우할까요?”하니까 “묵빈대처(默擯對處) 해라” ‘묵빈대처’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말을 안 해’ 봐도 말을 안 하고 그냥...

 

묵빈대처란 문구(文句)는 속가에서는 잘 모르고, 형제간끼리나 동서 간이나 일가친척 간에도 서로 싸우고 난 뒤에는 만나도 인사도 안 하고 말을 안 하지요.

그것을 ‘상조한다’ 그런 말이 있는데, 풀어지면은 말해도 그때까지는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거여. 말을 안 하니까 서로 왕래가 끊어지고, 완전히 남 보듯 하는 거지. 그것을 묵빈대처라 하는데.

 

이 사찰에서는 도저히 같이 어울려서 화합해서 살 수 없는 그런 스님네는 묵빈대처를 하는 거야.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서로 절대로 대화 안 해버리는 거야. 그것이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그 육군비구와 같은 못된 스님네는 묵빈대처법이란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 육군비구가 지금도 아마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몇몇 스님네는 부처님 때도 있었으니까 요새 또 없으란 법도 없고.

그런 몇 분의 스님이 있다고 해서 스님네를 몰아 때려서 다 “에이! 말세다. 요새는 중다운 중이 어디가 있어? 불법이 말세야. 맨 싸움만 하고” 그렇게 혹 보시는 분이 있을런지 모르지마는, 육군비구 가운데에도 나중에 다 아라한이 된 분도 있고, 성현이 된 분도 있고, 천상에 간 분도 있습니다.

 

지금 목련존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 목련존자가 나중에 사리불존자와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이 되어서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련존자가 마지막 열반하실 때에는 집장외도(執杖外道)의 무리들에게 맞아서 타살을 당했습니다.

그 목련존자가 어떻게 호되게 맞았던지 기절해서 쓰러졌는데—외도(外道)들은 왜 목련존자를 그렇게 타살을 했느냐 하면은 불법(佛法)이 나날이 융성을 하고 자기네 교(敎)를 믿던 사람들이 전부 불교를 믿게 되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네 교가 아주 완전히 멸망하게 생겼어.

 

그래서 ‘그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만 없애면 불교가 저렇게 번창을 하지 못할 것이다’해서 목련존자를 갖다가 타살을 했다 말이여.

그러고 (집장외도들이) 다 갔는데 목련존자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가지고 보니 몸뚱이가 말이 아니여. 아주 사지 삼백육십 골절이 성한 데가 없이 살은 터지고 뼈다구는 부러지고 꼼짝을 못하게 됐다 그말이여. 그래도 신통을 써 가지고 신통력으로 돌아왔다 말이여.

 

첫째 사리불존자를 자기 도반이니까 찾아가니까 사리불존자가 깜짝 놀래. “왜 신통제일인 목련존자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냐?” “집장외도들이 날 이렇게 팼다”

 

“그럼 신통술을 써서 피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맞았느냐?”

“말 마라. 내가 과거에 지은 죄업으로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도 안 났는데, 어떻게 ‘통(通)’을 부려 가지고 내가 신통력을 부릴 수가 있겠느냐”

 

“그대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단 말이냐?”

“내가 오백생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장가를 갔는데 어떻게 마누라가 이쁘던지 마누라한테 폭 빠져가지고 어머니한테 등한히 했더니, 어머니가 날마다 꾸지람을 하시고 ‘저놈이 계집을 얻더니 계집한테 빠져 가지고 에미를 우습게 안다’고 어떻게 참 그렇게 하시던지 부애가 나가지고, ‘어떤 장사가 와 가지고 우리 엄마 좀 뚜드려 팼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고약한 욕을 내가 했어.

그 어머니한테 그런 욕한 죄로 오백생 동안을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참혹하게 타살을 당했다. 내가 금생에까지 이렇게 오백생째 내가 이렇게 맞어 죽으니, 내가 지은 죄로 내가 이렇게 받는 것이니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 가지고 이제 곧 숨이 깔딱 깔딱 죽게 되니까 사리불존자가 “아직은 열반에 들지 말고 조금만 참으라”고, “내가 먼저 열반에 들거든 나중에 들으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니까 곧 죽게 생겼는데도 신통력으로 꽉 참고 있는데,

사리불존자는 그길로 부처님한테 가서 하직 인사를 하고,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모다 가족 친척들한테 설법을 하고 그리고 열반을 하고, 열반하자마자 목련존자도 또 열반에 들었는데.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는 왜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돌아가셨냐 하면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그 공경하고 신(信)하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그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먼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 준례(準例)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집장외도들한테 맞아 돌아가셨단 말을 듣고서 그 왕이 엄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들을 체포를 해 가지고 불에 태워 죽이라’고 특명을 내렸습니다.

특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를 체포를 해 가지고 죽이려고 하는데, 목련존자가 그 소식을 듣고 “절대로 이건 나를 위한다면 참으로 나를 위한다면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하니까,

그 왕이 “불법의 자비는 참 훌륭하다” 그러고, ‘그러면 죽이지는 말고 국외로 추방을 하라’고 해서 국외로 추방 명령을 내렸는데.(30분42초~47분10초)

 

 

 

 

(2)------------------

 

목련존자의 제자 가운데 마숙(馬宿), 만숙(滿宿)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 두 제자가 육군비구(六群比丘)의 비구여.

아까 말씀드린 아주 깡패 중이여.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사람 때려죽이고 뭐 보통으로 하는, 그래 가지고는 육군비구인 그 마숙, 만숙 두 사람이 그 집장외도를 뒤쫓아가 가지고 붙들어 가지고는 몽둥이로 쳐서 때려죽여 버렸거든.

 

자기 스승을 죽인 사람을 가만 놔둘 수가 없다 해 가지고 때려죽여 버렸다 그말이여. ‘부처님 제자가 참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육군비구는 계율이고 뭣이고 그런 데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야.

그래도 그 마숙이는 죽어서 구렁이가 되었다가, 다시 그 사람을 죽이고 그랬으니 구렁이가 되었어도 용이 되었어. 또 다른 한 사람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고 그랬는데.

 

왜 그러한 육군비구가 파계(破戒)를 하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했는데도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느냐?

아마 그러한 막행막식을 한 가운데에도 그 속은 멀쩡하거든. 과거에 보살 화현(化現)이 비구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역행(逆行)으로 나타난 보살 화현』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혹 스님네 가운데에 막행막식을 하는 그런 스님네가 있다 하더라도 ‘아! 저분이 바로 보살 화현이로구나, 보살 화현이 말세에 태어나서 정말 다른 스님네로 하여금 정말 발심(發心)을 해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보살 화현으로 저렇게 나타났거니’ 이렇게 생각을 하고 불법(佛法)을 비방하지 말고 오히려 신심을 내서 불법을 잘 받들기를 바랍니다.

 

그런 목련존자가 참 금생에는 그렇게 효심을 내고 신통제일인 부처님의 제자였었지마는, 과거에는 어머니께 그런 참 말 한마디—사람이 그래서 부애가 난다고 해서 함부로 진심(瞋心)을 내 가지고 부모한테, 스승한테 입에 못 담을 욕을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된 것입니다.

 

말 한마디 그렇게 부모에게 그렇게 욕을 했다고 해서 오백 생을 그렇게 타살을 당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신통제일인 목련존자도 마침내 돌아가실 때에는 외도한테 타살을 당한 것을 보시라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불법을 믿는 사람은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누구라도 살다 보면 부아가 날 때가 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그런 환경을 당하더라도 그렇게 말 한마디 조심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 목련존자가 과거에 그렇게 그런 인연으로, 금생에는 그렇게 부모에게 효자의 제일인자로서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아귀도에 떨어지고 축생도에 떨어진 그 어머니를 위해서 그렇게 참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 말입니다.

결국은 그 어머니를 구제하는 방법이 백중날, 참선(參禪) 수행하신 그러한 청정한 수행 납자(衲子)에게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천도했다 그거거든.

 

여러분들도 백중날의 그 뜻을 깊이 명심을 하셔서 해마다 돌아오는 백중날에는 돌아가신 부모와 선망부모와 가족 가운데에 비명(非命)에 간 그러한 영가(靈駕)들을 위해서도 꼭 백중날에는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도리로써 천도를 잘해 주시고, 여러분은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영원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쨌든지 악(惡)한 일을 아니하는 것은 물론 이려니와 정법을 믿고 여러분도 금생에 철저하게 참선(參禪)을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본의 아니게 삼악도에 떨어져서 자손들이 여러분을 구제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수 있도록 금생에 노력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47분11초~53분1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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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생애여몽약부운~’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뜬구름 ; ①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②덧없는 세상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탐착심(貪着心)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하는 마음.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육친(六親) ; 부모(父母), 형제(兄弟), 처자(妻子)를 통틀어 이르는 말.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제호(醍醐) : 옛날 인도에서 우유로써 만드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맛이 제일 좋고, 열병(熱病)에 귀중한 약품도 되는 것이 제호다. 이것은 히말라야 산에 있는 ‘비니’라는 풀만을 먹은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다고 한다.

*감로수(甘露水) ; 감로(甘露). 산스크리트어 amṛta 팔리어 amata

①신들(諸天)이 상용하는 음료. 이것을 마시면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된다고 한다. 신약(神藥). 불사의 영약. 도리천(忉利天)에 있다는 감미로운 영액(靈液). 장수하고 죽은 이를 환생시킨다고 함. 최고의 자미(滋味)에 비유함.

②맛은 달고, 마시면 죽지 않는다라고 일컬어지던 것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번 믿으면 끝없는 공덕과 이익을 얻는다는 뜻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디단 이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③불사(不死). 영원의 생(生)을 의미. ④최대의 경지. 깨달음. 열반(nirvana)와 동일. ⑤정갈하고 감미로운 물.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육군비구(六群比丘) ; 육군(六群)이라는 것은 불제자(佛弟子) 중에, 항상 한무리가 되어 수행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행하고, 그 때문에 제계(制戒, 부처님이 제자에 대해 제정한 계율)의 인연이 된 여섯 사람의 악행비구(惡行比丘)를 말한다.

①난타(難陀, 팔리어 Nanda의 음사) ②발난타(跋難陀, 팔리어 Upananda의 음사) ③가류타이(迦留陀夷, 팔리어 kāḷudāyī의 음사) ④천나(闡那, 산스크리트어 chanda, 팔리어 channa의 음사) ⑤아설가(阿說迦, 산스크리트어 aśvaka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숙馬宿) ⑥불나발(弗那跋, 산스크리트어 punarvasu 팔리어 punabbasu의 음사. 만숙滿宿)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力).

*묵빈대처(默擯對處) ; 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즉 묵빈(默檳)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묵빈(默擯, 默檳) ; 산스크리트어 brahma-daṇḍa의 번역. 범단(梵檀, 梵壇)이라고도 함. daṇḍa는 벌(罰) · 형벌(刑罰) · 치죄(治罪)라는 뜻. 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준례(準例 모범으로 삼을 준/법식·관례 례) ; 기준이나 본보기가 될 만한 이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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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역행보살(逆行菩薩) ; 그릇된 짓의 나쁜 과보를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그릇된 짓을 하는 보살. 수행자로 하여금 더욱 신심을 일으키고 수행이 견고하도록 돕는 뜻으로 일부러 역행하는 보살.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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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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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우란분재2020. 11. 4. 08:27

우란분재(No.454)—(게송)若人透得上頭關~ | 백종(百種) 우란분재(盂蘭盆齋).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薦度) | 불설목련경(佛說目連經). 나복(목련존자)의 그 어머니 청제 부인 구제.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1) 20분 47초.

(2) 9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454)—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1)------------------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뚫어 버리면 비로소 산하대지가 너그러운 줄을 깨달을 것이다. 상두관(上頭關). 상두관은 확철대오(廓徹大悟), 생사 없는 도리를 확철대오 하는 것이어.

 

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너그러운 것을 깨달아.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고 막힐 것이 없고.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인간의 분별계(分別界)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요. 푸른 물과 푸른 산에 무엇이 걸릴 것이 있느냐.

 

분별심. ‘어디는 좋고 어디는 나쁘고, 어디는 수용(受用)이 좋고, 어디는 공기가 좋고, 어디는 경치가 좋고, 어디는 시끄럽고...’ 그러한 분별계에 떨어지기 때문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에이, 저기는 안 좋다더라, 이리 가자. 저리 가면 운력(運力)이 많고, 이리 가면 수용이 좋고...’

그래 가지고 해제를 해 가지고 방부(房付)를 들일 때가 되면은 그것 때문에 몹시 모다 복잡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화두를 타파해 버리고 분별심만 없다면 동쪽으로 간들 무엇이 걸리며, 남쪽으로 간들 무엇이 걸릴 것이냐.

어느 선방 어느 절에 간다 하더라도 분별심만 떨어져 버리고, 오직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건 줄만 확실히 느끼고서 정진해 나간다면 어디를 간들 걸릴 것이냐 그말이여.

 

 

오늘 신미년 해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삼십 명 대중과 보살선원의 백육십여 명의 보살 대중을 비롯해서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또 전주 위봉사 비구니 선객 대중, 그리고 의정부 회룡사 회룡선원 대중, 그리고 수원에 보명선원 대중, 기타 멀고 가까운 모두 선원이나 사암(寺庵)에서 정진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들이 이렇게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안팎에 가득히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이 해제 법요식(法要式)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 활구선을 수행해 나가는 것에 대한 자상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에다가 백종(百種) 우란분재(盂蘭盆齋),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薦度)하는 백종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이 백종날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날로 오래전부터서 전해 내려오는 날인데, 일주일 전에 칠석날은 살아 있는 사람의 수명장수와 복덕구족을 비는 그러한 전통 법요식 날이라면, 오늘은 돌아가신 분, 선망부모나 선망 칠세(七世) 부모, 억겁다생(億劫多生)의 선망부모와 또 인연 있는 가족 친척의 모다 영가(靈駕)를 천도하는 그러한 참 뜻깊은 날입니다.

 

어째서 오늘 이 백중날, 7월15일 해제날 우리의 선망부모를 천도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부처님 때부터서 부처님의 제자 목련존자(目連尊者)가 부처님의 법력(法力)과 부처님의 지시에 따라서 죄를 짓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 있는 어머니 청제 부인을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은 이래로 오늘날까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날로 전해 내려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마는 우란분(盂蘭盆)이란 말은 인도 말인데 구도현(救倒懸),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하는 날이다.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거꾸로 매달려 가지고 참 무서운 고(苦)를 받는 선망부모를 그걸 구제하는 날이다’ 그래서 우란분재인데.

 

 

목련존자는 원래 백만장자의 아들로 왕사성에 태어났었는데 그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그 청제 부인이라고 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재산이 차츰 없어지고 삼천 관이 남았어.

 

삼천 관(三千貫)이라 하면은 요새 돈으로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삼천 관이 남아서 그 천 관은 어머니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집안 살림을 꾸려 가시라’ 그러고.

또 천 관은 ‘이것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좋은 곳으로 가시기 위해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공양(供養)을 올리고 매일 오백 명의 수행하는 스님네들을 초청해다가 공양을 올리도록’ 그렇게 부탁을 하고,

그 다음에 천 관은 ‘자기가 가지고 저 멀리 가서 장사를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 관은 자기가 가지고 가고, 이천 관은 어머니께 맡기고 떠났습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이신 청제 부인은 이천 관이라고 하는 큰돈을 가지고 아들이 떠난 그 다음날부터서 종을 모다 불러다 놓고,

“이제 아들이 떠났다. 그러니 이 재산과 모든 것은 내 권한이고 내 책임이니까, 첫째 너희들이 주의할 것은 승려들이 우리집 앞에 얼씬을 못하게 해라. 와서 나를 교화하려고 하거나, 탁발을 오거나 걸식을 오면은 무조건 몽둥이로 뚜드려 패서 쫓고 그래도 안 가면 때려 죽여라”

 

그렇게 아주 엄명을 내려 놓고, 그리고서는 날이면 날마다 돼지와 양과 닭과 개 이런 짐승들을 사서, 강아지 모다 그런 것을 사서 모아 가지고 잘 먹여 가지고는, 그놈이 살진 다음에는 그놈을 매달아 놓고 칼로 찔러서 피를 받아서 동이에다 담고, 그리고 그놈을 뚜드려 패서 피를 모아 가지고,

그 피로 무엇을 하느냐 하면은 사교(邪敎), 삿된 종교를 믿어 가지고 제를 지내. 그래야 자기가 부자가 되고 그런다 해 가지고.

 

근자에 오대양 사건(五大洋事件)으로 그 삿된 종교를 믿어 가지고 모다 사기를 치고, 사람을 모다 자살을 했는지 타살을 했는지 많은 사람을 죽이고 해 가지고 몇 해 전에 있었던 사건인데, 요새 그것이 다시 자수한답시고 뒤집어져 가지고 요새 세상을 참 시끄럽게 하고 있는데 사교를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종교를 믿을라면은 정교(正敎), 정법(正法)을 믿어야지 삿된 종교를 믿으면 저도 죽고 남도 죽이고 사회도 그것으로 인해서 혼란이 일어나고 나라도 망하는 법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져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여. 사교라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을 지내고 있는데, 그 목련존자는 고향을 떠나가지고 천 관을 가지고 가 가지고 장사를 잘해서 삼천 관이나 돈을 벌어 가지고 고향에 돌아왔어.

돌아오는데 그 먼저 자기 수하를 보내 가지고, 가서 우리 어머니가 내 말대로 살림을 잘 꾸려 나가고 또 날마다 오백 스님네를 청해다가 공양을 올리고 이렇게 잘하고 계시면 내가 이 삼천 관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잘살 것이고, 어머니가 그것을 지키지 아니 하시고 잘못하고 계신다면은 나는 이 길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길로 가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 이 돈을 다 보시를 하고 공양을 하리라.

 

그렇게 해서 사람을 보내 보니까, 그 (청제 부인의) 종이 멀리 바라보니 그 목련존자와—목련존자는 그때는 목련존자가 아니고 나복(羅卜)인데, 나복이와 같이 떠난 종이 저만큼 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나복이) 온다고 그 청제 부인한데 말하니까 “그럼 나가서 문을 처닫고 못 들어오게 하라” 그래 놓고는 갑자기 모다 돼지, 뭐 매달아 놓은 거 다 치우고 그리고는 그릇이다, 반찬 그릇이다 모두 다 널어놓고 오백 승(僧)을 모셔다가 공양을 올린 것처럼 모다 다 꾸며 놨다 그말이여.

 

그래 놓고는 (나복의) 종에다가 “여봐라, 내가 내 아들이 떠난 뒤에 3년 동안을 이렇게 오백 승을 청해다가 공양을 올리고 재를 지내고 이렇게 잘했다. 그러니 어서 도련님을 모시고 오너라”

 

그래 인자 목련존자는 그 종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와 가지고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떠난 뒤에 사교를 믿고 살생을 하고, 집에 오는 스님네는 날마다 몽둥이로 뚜드려 패서 죄만 많이 짓고 그랬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나복이가 거기서 혼절을 해 가지고 넘어졌다 그말이여.

 

그래 청제 부인은 이제나 올까, 저제나 돌아올까 하고 만단(萬端)의 준비를 해 놓고 기다려도 아들이 안 오니까, 그래 나가 보니 아들이 기절을 해 가지고 땅에 쓰러져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흔들어 깨웠어.

그래 가지고 “너는 내가 맹세한 것을 잘 들어 봐라. 저 강물이 저렇게 출렁이건만 그 상류에는 반드시 근원이 있는 법이다.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자는 적고, 사람을 망하게 하는 자는 많은 것이니라” 아주 시치미를 뚝 따고,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놓는데,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내가 만일 네가 집을 떠난 뒤로부터 날마다 너를 위해 오백 승을 청해다가 재를 올리지 않았다면 이제 내가 집에 돌아가자마자 중병에 걸려 가지고 7일 뒤에는 죽어 가지고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맹세를 해도 못 믿겠느냐?” 그러니까,

목련 존자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머니가 저렇게 까지 맹세를 하시니 어머니 말씀이 옳겠지’하고, 집에 가보니까 정말 오백 스님네를 청해다가 공양을 올린 뒤의 반찬 그릇이 늘어져 있고, 음식 그릇이 널어져 있고 숟갈과 그런 것이 모다 있는데, 거판스럽게 모다 큰 잔치한 뒤끝이 분명하다 그말이여.

 

‘그렇구나! 마을 사람이 공연히 나한테 어머니를 모략(謀略)을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 있는데, 아!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나더니 중병에 걸려 가지고 7일 뒤에는 돌아가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 너무 기가 막혀서 어머니를 갖다가 장례를 잘 지내고, 3년 동안을 시묘(侍墓)살이를 했어.

 

시묘살이를 하고, 그 정성을 다해서 어머니가 참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축원을 하면서 시묘살이를 하고서 살림을 다 정리해 버리고 그리고 부처님을 찾아가서 출가를 했습니다.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열심히 도를 닦았어.

도를 닦아 가지고 십대제자(十大弟子) 중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이 되었어. 십대제자 중에 여러 가지 참 훌륭한 제자들이 많지마는 신통으로서는 목련존자를 덮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제자가 되었으나 신통으로써 저 천상에를 올라가 보니 ‘틀림없이 거기를 가면 아버지도 거기 계실 것이고 어머니도 거기 계실 것이다’하고 올라가서 보니까 화락천(化樂天)에를 가니 아버지는 거기 계셔서 만났는데 어머니가 없어.

‘그 이상하다’하고 내려와서 부처님께 여쭈니까 “느그 어머니는 죄를 많이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다”

 

어머니가 죄를 지을 리가 없고, 그래 지옥에 가서 이리저리 다 온갖 지옥을, 팔만 지옥을 다 찾아봐도 어머니를 못 찾어. 그래서 부처님 앞에 다시 와서 여쭤보니까 “너의 어머니는 무간지옥에 가서 있느니라”

그래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찾아가서 들어가려고 그러니 어떻게 성벽이 높고 칠중(七重)으로 싸여 가지고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어. 문을 열 수가 없어.

 

그래서 다시 부처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그 무간지옥을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처음~20분55초)

 

 

 

 

(2)------------------

 

“보통 신통으로도 못 들어간다”

부처님께서 가사(袈裟)를 벗어서 주시고 그것을 입게 하고, 당신이 가지고 다니신 육환장(六環杖)을 주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지옥문 앞에 가서 3번을 흔들고 3번을 땅을 치면은 지옥문이 열릴 것이다” 그래 가지고 가 가지고 그렇게 하니까 자물쇠통이 떨어지면서 지옥문이 열린다 그말이여.

 

들어가니까 옥졸(獄卒)들이 나와서 “어떻게 이 문을 열고 들어왔느냐?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는데 어떻게 들어왔느냐?”

“나는 부처님 제자 목련존자다”

 

“부처님이 누구냐?”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이 세상에 제일가는 성현이시다”

 

그러냐고, “그럼 여기를 뭣하러 왔는고?”

“우리 어머니를 찾으로 왔다”

 

“어머니가 여기에 있는 줄 어떻게 알았느냐?”

“우리 부처님께서 '여기에 있다'고 가르켜 주셨다”

 

그래 들어가서 청제 부인을 찾았어. 청제 부인이 나왔는데 “당신 아들 목련이 찾아왔는데 그런 아들이 있느냐?” 그러니까 “내 아들은 목련이가 아니다. 내 아들은 중이 된 일도 없고, 목련도 아니다”

그래서 다시 와서 “당신과 같은 아들을 없다고 그런다”하니까, “내가 출가하기 전에는 목련이 아니고 나복(羅卜)이다. '나복'이는 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청제 부인'이다”

 

다시 가서 물어 보니까 그렇다고 그러거든. 그래서 옥졸이 청제 부인을 창으로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갈쿠리로 턱! 갈빗대에다 걸어서 끌고 나왔다 그말이여.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머리는 풀어서 산발(散髮)해 가지고 도대체 알아 볼 수가 없어.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고 자세히 통성명(通姓名)을 해보니까 분명히 어머니다 그말이여.

 

이야기도 “내가 이렇게 참 일일일야(一日一夜)에 만사만생(萬死萬生)을 하는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으니 무슨 수를 쓰든지 나를 좀 구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데,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말도 몇 마디 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었으니까 다시 고문을 받으러 들어가야 한다’고 창으로 탁 찍어 가지고 끌고 들어가는데 그 비참하고 참혹한 광경을 볼 수가 없어.

그래서 거기서 머리를 땅에다 짓치면서 목련존자도 유혈이 낭자하도록 땅에다 머리를 치면서 통곡을 했어.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 돌아와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이 우리 어머니를 구제(救濟)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보살(大菩薩)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어라” 그래서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런 대보살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으니까 그 지옥문이 열려 가지고 모두가 다 풀려났는데 자기 어머니는 안 풀려나.

 

그래서 또 다시 부처님께 여쭤서 “어떻게 우리 어머니 찾을 길이 없으니 우리 어머니가 어디로 갔습니까?”

“너의 어머니는 죄가 무거워서 대지옥에서 나와 가지고 소흑암(小黑闇) 지옥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또 어머니를 풀려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대보살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어라” 또 그대로 했단 말이여. 그러니 소흑암 지옥에서 풀려났는데 또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어.

 

“어디를 갔습니까?” 부처님께 여쭈니까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졌느니라”

 

“그럼 아귀도에서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대보살들을 청해다가 대승경전을 읽어라” 또 그렇게 하니까 아귀도에서 풀려났는데 신통력으로 찾아 봐도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습니까?”

“간신히 풀려나 가지고 이 왕사성 안에 어느 부잣집 개가 되어 가지고 있느니라”

그래 가서 보니 개가 있는데 개가 알아봐. 알아보고 “내가 네 어미 청제다” 그러면서 그렇게 좋아하고 펄떡펄떡 뛰면서 허리를 몸으로 뛰어오르면서 핥아먹고 그런다 그말이여.

 

그러니 “고통이 어떠냐?”하니까,

“이것은 인자 견딜만하다. 뭐 식은 밥도 주고, 고기 뼉다구도 주고 하니 이만하면 살겠다. 무간지옥, 그 무서운 지옥고를 받던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리고 다시는 내가 거기는 갈 마음이 없다. 개만 되어도 이만하면 살겠다” 그러는데 목련존자가 보니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저 개 과보(果報)를 받고 있는 우리 어머니를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백중날, 7월 보름달 해제를 하고 자자(自恣)회 법회를 열기 위해서 운집한 사부대중을 위해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올려라. 백 가지 음식과 과일을 잘 장만해 가지고 그 해제를 맞이한 선객(禪客)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면 개의 과보를 받고 해탈도를 증득할 것이다”

 

보통 백중날에는 선망부모를 천도한답시고 이렇게 영단(靈壇)에다가 많은 음식과 과일을 이렇게 올려서 어쨌든지 선망부모를 천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정성을 드리는데 그 정성은 참 감탄할 만하나, 그 백중날 선망부모를 천도하기 위해서 영가 앞에다가 산더미처럼 쌓아 놓음으로써 영가 천도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해제날, 참선을 하고 해제(解制)하신 스님네께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공양을 올려야 아귀도에 떨어지거나, 무간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도에 떨어진 선망부모를 정말 천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거여.

 

그래서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은 백종의 뜻을 잘 알아야 돼. 영단에다 차려 놓는 게 아니야.

물론 영단에도 정성을 다해서 차려 올린 것도 좋지만 첫째는 스님네께 공양을 잘 올려야 해. 맛있는 음식도 가지가지 좋은 음식도 올리고, 맛있는 과일도 올리고 또 여비도 형편 따라서 올리고 이렇게 해서 그 스님네..

 

어째서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려야 하냐 하면은 석 달 동안을 참선을 하시고, 정진을 하시고, 용맹정진 하셨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는 반드시 견성(見性)한 도인(道人) 스님네도 있을 것이고,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했을망정 업장(業障)이 소멸(消滅)하고 깨끗이 식(識)이 맑아져서 머지않아서 도를 통할 분도 있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리고 모두가 계행(戒行)을 지키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았기 때문에 다 무심(無心) 경계에 모다 들어가서,

그러한 스님네께 공양을 올려야 그 공덕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진 선망부모, 아귀도에 떨어진 선망부모, 축생도에 떨어진 선망부모가,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축원을 해 주시고 또 경을 읽어 주시고, 축원을 해 주심으로써 선망부모를 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20분56초~30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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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제65책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제13권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 없는 도리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분별계(分別界) ; 분별 경계(分別境界).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참고]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인간의 분별계(分別界)란 게 무엇이냐? 탐진치 삼독이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인 것입니다.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씀.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암(寺庵) ; 절과 암자.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백종(百種)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중(百中)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존자(尊者) ; ①산스크리트어 āyuṣmat 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수행자를 일컫는 말. ②성자. 현자.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오대양 사건(五大洋事件) ; 1987년 8월 29일에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리의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오대양의 사주이자 교주인 박순자와 그 가족과 신도들 32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

*정교(正敎) ; ①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②불교의 전적(典籍, 서책書冊).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치미를 떼다[따다] ; (사람이) 매를 훔친 사람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 매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

'시치미'는 매의 주인를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서 매의 꽁지 털 속에 매어 둔 네모난 뿔을 이르는 말.

*시묘살이(侍墓-- 모실 시/무덤 묘) ; 죽음에 대한 의례(儀禮)로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탈상(脫喪, 상喪을 마치고 상복을 벗는 일)을 할 때까지 3년간을 무덤 옆에서 막(幕)을 짓고 산소를 돌보고 사는 일.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①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②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③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④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⑤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⑥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⑦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⑧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⑨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⑩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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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袈裟) ; 스님이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법의(法衣).

*육환장(六環杖) ; 산스크리트어 khakkhara 수행승의 지팡이. 머리 부분에 주석(朱錫)으로 된 큰 고리가 있고, 거기에 여섯 개의 작은 고리가 끼워져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산길을 갈 때 흔들어 짐승이나 해충을 쫓고, 걸식할 때 흔들어 자기가 온 것을 알린다. 석장(錫杖)이라고도 한다.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 ‘하루 밤과 낮에 만번 죽고 만번 다시 태어난다’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고 또 고통으로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기를... 하루 밤낮에 만번이나 겪는다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표현한 말.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 ①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②[불교]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도(濟度) 함.

*아귀도(餓鬼道) ; 육도(六道,六途)의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함.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자자(自恣 스스로 자/마음대로 자) ; 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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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