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24.01.27 토굴(No.434)—(게송)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把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 유위법(有爲法)에 탐착하지 마라 | 수행자가 있으면 그 산이 바로 명산.
  2. 2019.03.20 즉(卽)해서 (No.434)—지혜에 눈뜨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한 방법은 ‘이뭣고?’ | 모든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 | 팔만대장경의 엑기스가 '이뭣고?'
  3. 2019.03.20 유위법(有爲法) (No.434)—금강경 사구게(四句偈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의 공덕.
  4. 2019.03.19 일념불생(一念不生) (No.434)—(게송)三界之中紛擾擾~ | 똑바로 무상(無常)을 깨달아 발심 하나를 철저히 해야 한다 | 온 세계가 평화적으로 사는 방법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
  5. 2018.10.16 번신일척(飜身一擲) (No.434)—(게송)百千經卷誦如沙~ | 모든 업장이 '한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한 생각을 이 최상승법으로 단속해 나가면 삼재팔난이 그 사람에게는 붙지를 못한다.
  6. 2018.10.15 부생(浮生) (No.434)—(게송)三間茅屋從來住~ | 사바세계의 모든 것은 부생(浮生), 뜬세상 | 활구참선법이 우리가 정말 세계에 내놓을만 한 문화유산.
  7. 2018.10.15 이뭣고(是甚麼) (No.434)—(게송)飢來思飯渴思飮~ | 지혜에 눈뜨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한 방법은 ‘이뭣고?’ | 모든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 | (게송)三間茅屋從來住~.
  8. 2018.10.14 금강경 사구게 (No.434)—금강경 사구게(四句偈)의 공덕 | 참선 공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 핑계를 대고 공부를 뒤로 미루지 마라.
  9. 2018.10.12 발심(發心) (No.434)—(게송)三界之中紛擾擾~ | 온 세계가 평화적으로 사는 방법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 | 똑바로 무상(無常)을 깨달아 발심 하나를 철저히 해야 한다.
ㅌ/토굴2024. 1. 27. 11:49

토굴(No.434)—(게송)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把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 유위법(有爲法)에 탐착하지 마라 | 수행자가 있으면 그 산이 바로 명산.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7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하니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하라  부생천착불상관(浮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삼간(三間), 삼 칸 조그마한 삼 칸에 뗏집에 종래로 머물러 왔는데. 삼간모옥(三間茅屋)이라는 것은 저 산중에 뗏집, 떼를 비어다가 조그만하게 토굴을 지은 형상입니다. 그 조그만한 토굴에 주욱 살아왔다 그 말이여.

이건 우리의 육체도 조그만한 방가루(bungalow)거든. 우리의 영식(靈識)이 숙세의 인연이 있어서 그 어머니 그 아버지에 의탁을 해 가지고, 요 조그만한 이 육체라고 하는 방가루를 하나 지었어.
이것이 바로 삼간모옥이거든, 뗏집 토굴이거든 이게. 얼마 동안 살다가 못 살 만큼 집이 낡아 버리면 이거 훌렁 벗어버리고 또 새집을 짓게 되겠죠.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한 길 싱그러운 빛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구나.
일도신광(一道神光)이라 하는 것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신 가운데에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본래 갖추어져 있는 큰 지혜 빛이거든. 해탈 광명이거든.

떡! 화두(話頭)를 들고,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그 화두 한마디에 나의 몸과 목숨과 모든 신심을 거기다 다 탁! 바쳐 버리거든. ‘이뭣고?’

이 ‘이뭣고?’로써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다 이겨 나가고, 흥망성쇠도 다 이 ‘이뭣고?’ 하나로써 다 극복해 나가고, 생로병사와 성주괴공도 다 ‘이뭣고?’ 하나로써 다 물리치고 극복을 해 나가거든.
그러한 철두철미한 신심을 가지고 나갈 때 25신장이 항상 옹호를 하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다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하시면서 이렇게 보살펴 주시니 어찌 그 몸에서 싱그러운 빛이 안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겉으로 보면은 보잘것없는 떼 풀로 이은 보잘것없는 토굴이지만, 그런 수행을 하는 스님이 계시면 그 집은 바로 삼매(三昧)의 빛으로 장엄을 하게 되고, 그러한 수행자가 그 산중에 있으면 그 산중은 바로 명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도 그러한 수행자가 있으므로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이 이렇게 청정도량으로써 많은 법보가족들이 모여서 법문을 듣고 또 정진을 하고. 이 도량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또 이 도량에 와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고 하면은 다 소원을 성취하고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을 하고 한 것이 다 헛된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다.
막파시비(莫把是非)를 내변아(來辨我)하라. 세상에 누가 잘하고 못하고, 누가 옳고 그르고, 누가 잘되고 못되고, 흥망성쇠와 성주괴공 생로병사 그런 시비를 나한테 와서 따지지 말라 이거거든.

부생천착(浮生穿鑿)이 불상관(不相關)이다. 이 사바세계의 모든 것은 부생(浮生)이거든.
유의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이, 유의법 속에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거, 모든 것은 뜬 생이거든. 뜬세상!

뜬세상에 있어서의 온갖 잘하고 못하고, 잘되고 못되고 하는 그러한 시비 천착(穿鑿)은 나는 그까짓 것 상관하지 않겠다 이거거든.
거기에 깊이 빠져서 골몰을 해봤자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뜻대로 일부가 된들 그것 가지고 무슨 영원한 행복이 오며 그것 가지고 무슨 생사(生死)가 해탈(解脫)이 되는,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 그 말이여. 또 일시 잘되어 봤자 또 얼마 안 가면 금방 또 틀어져 버리는 거다 그 말이여.

또 우선 잘못된 거 같아도 또 지내다 보면 또 잘되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 너무 지나치게 이 허망한 유위법(有爲法)에 깊이 빠져서 몸부림치고 너무 깊이 탐착(貪着)해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웬수 짓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53분15초~60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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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 『전등록(傳燈錄)』 제8권 '담주 용산(潭州龍山) 화상' 게송 참고.
*뗏집 ; 띠집. 띠로 지붕을 올린 집.
* ; 볏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방가루(bungalow 방갈로, 방가로) ; ①산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지어 여름철에 캠프용, 피서용으로 쓰는 작은 집. ②정면에 베란다가 있고 처마가 깊숙한 풀이나 기와 따위로 지붕을 한 작은 단층 집. 본래 인도 벵골 지방의 특유한 목조 주택 양식이다.
*영식(靈識) ; 영묘한(靈妙 - 신령하고 미묘한) 의식. 제8식. 영혼.
*의탁(依託 의지하다 의/부탁하다·의지하다 탁) ; 어떤 것에 몸이나 마음을 의지하여 맡김.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큰 지혜. 본구재도리(本具在道理)라고도 한다.
*본구재도리(本具在道理) ;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도리'
부처님이나 조사나 모든 성현, 우리 모든 범부, 범성(凡聖)을 막론하고 낱낱이 다 새로 닦아서 깨달을 것도 없이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도리. 본래면목(本來面目), 본각대지(本覺大智),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라고도 하는데,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성(自性)의 법신불(法身佛)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68) - 1987(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9분23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니라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모든 사람 사람 얼굴 앞에는 밝은 달이 희고,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사람 사람의 다리 아래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거울을 타파해서 그림자와 자취가 없으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은 부처님이나 조사나 모든 성현, 우리 모두 범부, 범성(凡聖)을 막론하고 낱낱이 다 본구재도리(本具在道理), 새로 닦아서 깨달을 것도 없이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그 도리가 있다.

그것을 본구재 도리(本具在道理)라고도 하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하고, 본각대지(本覺大智)라고도 하는데,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성(自性)의 법신불(法身佛)을 다 가지고 있지마는 왜 우리는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생사고(生死苦)를 받고 있는가?
까닭 없이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멀쩡한 탈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그 탈을 바꿔 쓰면서, 여기서 나서 저기서 죽고, 저기서 나서 여기서 죽기를 수없이 해왔어.

그 무량겁을 탈을 바꿔 쓰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오면서, 우리에는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한 거울을 가지고 있는데, 그 거울 속에 그 동안에 겪어오는 모든 일들 그 거울 속에 다 녹화(錄畵)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제8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이라 하는 것이여.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는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사실들이 터럭끝 만한 작은 일로부터서 이 세계가 파괴되는 그런 큰일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그 속에 다 녹화·녹음이 되어 있는 거여.

그 거울을 타파(打破)해 버려라.

그 거울 속에 녹화되고 녹음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어떠한 인연을 만나면은 거기서 녹화된 것이 밖으로 이렇게 현행(現行)을 하는 것이여. 밖으로 그것이 이렇게 나와. 행동으로 나타나고, 생각으로 나타나고, 눈을 통해서 나타나고, 귀를 통해서 나타나고, 그 현행을 하면서 동시에 또 새로운 사실들이 또 녹화가 되고 녹음이 돼.
녹화·녹음이 새로 되는 것을 훈습(薰習)이라 그러고, 또 훈습한 것이 밖으로 또 나타난 것을 현행이라 그러는데, 현행(現行)과 훈습(薰習)이 동시에 돌아가는 거여. 이것이 바로 우리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모습이여.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이 거울을 갖다가 여지없이  깨트려버려서 흔적조차도 없어질 때(打破鏡來無影跡),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생사 없는 도리’를 간단한 한 구절로 표현을 했지만, 새가 꽃가지에 올라와서 한 소리 우는 것이 그것이 평범한 사실이지만, 깨달은 도리를 말로써 표현할 수 없지마는 표현할 수 없는 바를 이렇게 고인(古人)은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 평범한 한 구절이 깨달은 사람은 여지없이 그 깨달은 경지를 바로 볼 수가 있지마는, 깨닫지 못한 사람이 볼 때에는 새가 꽃가지에 올라서 소리내어 우는 것이 하나의 평범한 사실에 불과한 것이여.
이 평범한 새 한 마리가 꽃가지에 올라가서 그 우는 것을 여기에다가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붙여서 이러쿵저러쿵 자기의 소견을 붙이고 사량분별을 붙인다면, 그 깨달은 도리를 표현한 이 법(法)이 완전히 죽은 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출가해서 스승을 찾아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이 화택(火宅)으로부터 해탈하는 법문을 고구정녕(苦口叮嚀)한 육성으로 들었습니다.(처음~9분40초)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4~135. (가로판 p139~141)
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시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시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이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 버린다」하시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시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하시니,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할지어다.

註解(주해)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을  莫虛度하라

몸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成] 지속되고[住] 파괴되고[壞] 없어져[空] 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生] 머물고[住] 변해 가고[異] 사라져[滅] 버리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덧없는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成],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住], 쇠퇴하여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壞], 모든 것이 괴멸되어 허공만 있는 과정(상태)[空]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삼세(三世) : [산스크리트어] trayo - dhvanah 과거 • 현재 • 미래, 또는 전생 • 금생 • 내생을 말한다. 그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삼매(三昧) : 정(定).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을 집중 · 통일시키는 수행, 또는 그 수행으로 이르게 된 평온한 마음 상태.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법보선원(法寶禪院) ; 인천시 미추홀구 주염로 43에 있는 용화선원(龍華禪院)에 있는 스님 선방(禪房)의 이름.
*법보가족(法寶家族) ;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 우리 법보가족은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향해서 가는 그러한 청정한 인연을 맺은 가족.
[참고 ❶]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8분50초~9분33초)

[참고 ❷] 송담스님(No.387)—1989년 법보재(89.04.21)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어올 뿐만 아니라 외국에 가 계신 모든 교포들도 서로 다투어서 여기 위패를 모시는 바람에 이렇게 많은 법보가족(法寶家族)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법보단에 위패(位牌)를 모신 분, 또 생축(生祝)으로 올리신 분, 우리는 모두가 남녀노소와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한 형제간이 된 것입니다.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세세생생에 여읠 수 없는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고 또 만나서 기어코 우리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일체중생을 다 제도(濟度)할 때까지 우리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한 목적지를 향해서 우리는 가야 할 그러한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세속에 인연은 혈통으로 맺고, 무슨 은혜로 맺고 원수로 맺고 이래 가지고 설사 어떤 좋은 인연으로 선연(善緣)으로 은혜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거든. 끝없이 얽히고설켜서 삼악도(三惡途)로 가는 인연인데, 우리 법보가족은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향해서 가는 그러한 청정한 인연인 것입니다.(48분44초~50분36초)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부생(浮生 뜨다·덧없다·정함이 없다 부/살다·삶 생) ; '허무하고 덧없는[浮] 인생[生]', '변화무상(變化無常 변화가 많거나 일정하지 않아 종잡을 수 없음)한 세간사(世間事 세상의 일, 세상살이의 일)'를 가리키는 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 위를 떠다니는 부초(浮草), 이리저리 일정한 모양없이 떠다니는 부운(浮雲), 일어났다 곧 사라지고 사라졌다 곧 일어나는 물거품[浮漚] 등으로 표현되는 '덧없는 인생', '변화무상한 세간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뜬세상[浮世] ; 헛되고 덧없는 세상.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탐착(貪着) ; ①만족할 줄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것. 욕심부려 집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②깊이 마음에 두는 것.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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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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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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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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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ㅈ/즉(卽)해서2019. 3. 20. 18:33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9분 10초)

 

[법문]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용434)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主人公)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經)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業)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參究)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 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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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고(膏 기름 고) ; ①식물이나 과실 따위를 끓이고 졸여서 곤 즙. ②동물에서 짜낸 기름.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
ㅇ/유위법2019. 3. 20. 06:42

*유위법(有爲法) ; 위(爲)란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고, 유위(有爲)란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을 가지는 것.
①여러 인연(因緣)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또는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및 존재(사물). 인연에 의해 생멸하는 현상계의 일체의 사물. 인과 관계 위에 있는 존재.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유위법(有爲法)은 인연에 의하여 화합생성된 것이므로 생(生)도 있고 멸(滅)도 있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하고, 무위법(無爲法)은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절대적인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6분 54초)

 

[법문]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용434)

 

송담스님


여기에는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이런 사구게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일체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인연(因緣)으로 생긴 모든 사물을 유위법이라 그럽니다.

그러면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어떠한 것들이냐?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밖에 어떤 색상을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안식(眼識)이 생기고, 우리의 귀가 밖에서 들리는 어떤 소리를 만나면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식(耳識)이 생기고, 코도 그렇고, 혀도 그렇고, 몸뚱이도 그렇고, 우리의 의식(意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래서 이 마음에는 무슨 생각이 그렇게 해서 나 가지고,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요렇게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없어져. 그래서 생주이멸(生住異滅)이여. 이런 것들이 마음의 유위법(有爲法)이여.

그다음에 우리의 몸뚱이는 과거에 지은 업으로 부모를 만나면 거기서 이 몸뚱이를 받아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태어나면 얼마 안 있으면 나이를 먹고 늙고, 늙으면 병들고 마침내는 언제 죽던지 죽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몸뚱이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것도 다 유위법이여.
그런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런 인연으로 태어나서 없어지니까 이것도 유위법(有爲法)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몸을 담고 있는 집이라든지, 우리 나라라든지, 온 세계, 또 해나 달이나 별들 산천초목 두두물물도 다 성주괴공(成住壞空),
어떤 인연으로 이루어졌다가 그것이 잠시 그 상태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마는 사실은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동안 그런 형태를 유지하다가 결국은 무너져서 없어져. 그래서 성주괴공이 있거든. 이것도 유위법이여.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우리의 몸뚱이나, 우리의 생각이나, 온 세계 삼라만상이 전부 유위법 아닌 것이 없는데, 이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허깨비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이슬,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갯불,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다.
풀끝에 이슬이 아침에 나가면 이슬이 맺혀서 햇빛에 빛날 때에는 영락없이 그 반짝이는 것이 보석과 같은데, 조끔 바람이 불거나 건드리면 툭 떨어져 버린다 그말이여.

우리의 몸뚱이도 지금은 이렇게 살아 있지만 하루 후에 어떻게 될른지, 한 시간 후에 어떻게 될른지, 일 분 후에 어떻게 될른지, 그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지 못할 것이 풀끝에 이슬보다도 더하다 그말이여.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뻑뻑이 이와 같이 관(觀)을 할지니라.

이 금강경의 이 게송은, 금강경에 칠사구게(七四句偈)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송입니다.

금강경에 '이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몸에 지니거나, 수지독송(受持讀誦)하거나, 남을 위해서 설해 주거나 하면은 그 공덕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다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공덕(功德)보다도 더 수승하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금강경전이나 사구게가 있는 곳은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며, 부처님의 탑이 거기에 봉안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의 탑이 모셔져 있으면 거기에는 항상 제석천왕(帝釋天王)을 비롯한 모든 선신(善神)과 25신장(神將)이 그걸 잘 외호(外護)를 하고 지키는 것입니다.(19분53초~26분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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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五七七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백오십~이백 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 • 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일념불생 불생2019. 3. 19. 18:48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 불생(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가로판 p88, 107~108)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不生]’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12분 25초)

 

[법문]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용434)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하되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하되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라.

삼계(三界)가, 삼계 가운데가, 온 세계가 분요요(紛擾擾)여. 그 도처(到處)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폭격을 하고, 사람이 죽고 불이 나고 집이 파괴가 되고 피비린내 나는 참, 그런 세상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하냐?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只爲無明不了絶]

 

무명(無明).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이 무명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 무명을 요달해 끊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탐진치 삼독이 벌어지고, 그래 가지고 작은 싸움 큰 싸움, 온 나라와 나라의 싸움, 세계 전쟁이 순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의 무명(無明)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한 생각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불생(不生), 나지 아니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면,[一念不生心澄然]

무거무래(無去無來)요,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으며 생멸(生滅)이 없을 것이다.[無去無來不生滅]

 

그 한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이 몸뚱이도 이 세상에 받아서 태어났고, 무명(無明)의 업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 태어났고,

따라서 끝없이 끝없이 일어나는 탐진치 삼독 때문에 수없는 새로운 업(業)을 지으면서 바짝 마른 나무 섶에 기름을 부어서—불이 붙은 풀 섶, 나무 섶에 계속해서 기름을 부어서 잘 타게 만들어.

 

그래 가지고 나무만 타는 게 아니라 나무 주변에 있는 집도 타고 다른 사람도 타고, 마침내는 자기도 자기집도 타고, 자기 몸뚱이도 타고, 자기 생명도 잃게 된다 그거거든.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훨훨 타고 있는 그 화택(火宅) 속에서 어떻게 하면 받아나기 어려운 이 몸뚱이 있을 때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느냐?

오직 발심(發心)! 발심 하나를 철저히 함으로 해서 이 무상한 생로병사 속에서 해탈도를 증득하는 법을 간곡히 설해 주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그 무서운 6년 고행을 하시고, 달마 스님도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묵무언(默無言)하시고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하시고.

또 고인(古人)도 7개 포단(蒲團), 어떻게 좌선을 열심히 했던지 방석이 7개가 구녁이 맞구녁이 뚫어지도록 그렇게 정진을 한 예도 있고.

 

고인(古人)들, 다 근기(根機)가 수승한 고인네들도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요달했으니, 하물며 말세에 태어난 우리 하근기들은 그 몇 배를 더 노력을 하고 애를 쓰지 않겠느냐.

이런 요지에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정말 말로만 '말세(末世)다, 말세!' 밤낮 그 말세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들어오고 있습니다마는.

말세는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다. 투쟁, 싸움만이 치성하게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나라와 나라, 온통 싸움으로써 직업을 삼어. 싸움으로써 일을 삼는 그런 시대다.

 

과연 가정도 부모자식간에, 부부간에, 고부간에, 형제간에 사소한 일로 말다툼, 재산 갖고 싸우고. 사회에서도 당파가 있어 가지고 서로 싸우고, 업체들도 서로 자기 회사가 잘되기 위해서 싸우고. 한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싸우고, 이웃 나라와 이웃 나라가 싸우고, 경제적으로 싸우고, 종교적으로 싸우고, 이러한 투쟁견고의 시대에 말세를 당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고 똑바로 자기 정신을 차리고, 우선 내가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찾고, 내 집안이 어떻게 바르게 살아가며,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며 온 나라가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아가는가? 그렇게 해서 온 세계가 어떻게 하면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가?

 

오직 여기에는 부처님의 법(法)에 따르는 것이 최선의 방책(方策)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경전에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매우 자상하게 모다 설하셨지만 여기에서 그걸 낱낱이 다 설명할 수가 없고. 그러한 모든 크고 작은 싸움, 갈등 알륵 속에서 간단하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인 것입니다.

 

모든 싸움은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지 않고, 밤낮 모든 싸움 모든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다른 사람에게 몰아붙이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데에서 크고 작은 싸움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싸움은 싸움으로써 그치지 아니하고, 원망은 원망으로써 그치지 않는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싸움은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싸움은 그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를 반성함으로 해서 싸움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2분3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송담스님(No.410)—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난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한 몸뚱이, 한 마음이여. 그런데 그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한 생각' 동(動)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과 같이 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한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몇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몇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이 세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칠 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를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을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그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의 번뇌염(煩惱染)이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분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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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지중분요요~'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습득(拾得)의 시.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면벽관심(面壁觀心) ; 벽(壁)을 향하여[面] 앉아 자신의 마음[心]을 관[觀]하여 그 본성을 밝히는 것.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면벽(面壁) ;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것.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마침내 물러나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말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벽을 향하여 좌선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면벽은 단순히 좌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론 등 문자에 의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관하여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수행법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알륵 ; 알력(軋轢 삐꺽거릴 알/수레바퀴가 쓸려 삐꺽거릴 력 : 수레바퀴가 삐꺽거린다는 뜻으로, 의견이나 입장이 서로 맞지 않아 충돌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ㅂ/번신일척2018. 10. 16. 14:27

*번신일척(飜身一擲 뒤집을 번/몸 신/한 일/던질 척) ; '몸을 뒤집어[飜] 한번 던지다[擲]'

 

모기란 놈이 쇠로 된 소, 무쇠소[鐵牛]의 등에 올라 여하약하를 묻지 않고 당장에 주둥이를 댈 수도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번 뚫어서 몸뚱이 채 처박고 들어가듯이,

무자(無字)나 ‘이뭣고?’나, 이 화두 의단(疑團) 하나에 나의 모든 것을 거기다 갖다 탁! 뭉쳐서 던지고 들어가는 가운데에 모든 번뇌와 망상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형용한 말.

 

(5분 14초)

 

[법문]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용434)

 

백천경권송여사(百千經卷誦如沙)하되  심지허로풍리사(心地虛勞風裡沙)니라

나무~아미타불~

하사조사공안상(何似祖師公案上)에  번신일척파진사(飜身一擲破塵沙)리요

나무~아미타불~

 

백천경권(百千經卷)을 외우기를 저 모래수와 같은 많은 경전을 다 외운 것은,

심지허로풍리사(心地虛勞風裡沙)다. 마음만 공연히 수고로운 것이 마치 바람 속에 먼지가 날으는 거와 같더라.

봄이 되면 저 중국 고비 사막에서 바람이 일어 가지고 우리나라에까지 흙비가 내리는데,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경전이지만 그 경전을 많이 외우고 읽는 것으로써 그것을 공부를 삼는다면 마치 마음속에 그 흙비가 내린 것처럼 공연히 마음만 수고로울 것이다 그거거든.

 

하사조사공안상(何似祖師公案上)에, 조사공안(祖師公案), ‘이뭣고?’ 또는 ‘판치생모’ ‘무자(無字)’ 이런 조사공안상(祖師公案上)에 한번 몸을 던져서 그 수없는 모래 먼지를 갖다가 깨쳐 버리라 이거거든.

 

자꾸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들고 또 들고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그 의심이 순수무잡해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면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어.

산을 봐도 의심이요, 물을 봐도 의심이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이 독로해서 순수무잡해서 하루를 그렇게 해, 이틀을 그렇게 해, 사흘 나흘 일주일 이렇게 가다 보면 발을 삐끗하거나 무슨 그럴 때에 그 화두를 타파(打破)하게 돼. 툭! 터져 버리는 것이여.

 

그럴 때에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

 

삼재팔난(三災八難), 모든 업장(業障)이 '한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한 생각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단속해 나가는데 삼재팔난이 그 사람에게는 붙지를 못하는 것이죠.

설사 가까이 왔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정진을 더 잘할 수 있는 발심(發心)을 하게 되게 때문에, 일어나지 않지만 설사 그놈이 나한테 가까이 왔어도 별로 문제가 없다.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이거든.(68분6초~1시간13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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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천경권송여사~' ; 『소요당집(逍遙堂集)』 (소요태능) '贈性源禪子'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발을 삐끗하거나 무슨 그럴 때에 그 화두를 타파(打破)하게 돼' ; 각차수질(脚蹉手跌 다리 각/미끄러질·넘어질 차/손 수/거꾸러질·넘어질 질). (몸이 균형을 잃고) 손과 발이 미끄러지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50~52, 『선요』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40~42 참고.

若要的實明證인댄  須開特達懷하며  發丈夫志하야 將從前惡知惡解와  奇言妙句와  禪道佛法과  盡平生眼裏所見底와  耳裏所聞底하야  莫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와  到與不到와  徹與不徹하고

 

만일 이 일을 적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려면 특별한 포부를 품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종전의 나쁜 알음알이와 기묘한 언구(言句)와 선도(禪道)와 불법(佛法)과 평생동안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들에서 위태로움과 죽음, 얻음과 잃음, 남과 나, 옳음과 그름,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 사무침과 사무치지 못함 따위를 돌아보지 말고,

 

發大忿怒하며  奮金剛利刃하야  如斬一握絲에  一斬에  一切斷이라  一斷之後에  更不相續하야  直得胸次中이  空勞勞地와  虛豁豁地가  蕩蕩然 無絲毫許滯碍하야  更無一法可當情이  與初生으로  無異니라

 

크게 분발심을 내어 마치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한줌의 실을 벨 때, 한 번 베면 모두 다 끊어져서 그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당장 가슴속이 텅 비어 호호탕탕(浩浩蕩蕩)해서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한 법도 정식(情識)에 매이지 않음이 마치 갓난아기와 같을 것이다.

 

喫茶不知茶하고  喫飯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이  頓淨하고  計較都忘이  恰如箇有氣底死人相似하며  又如泥塑木雕底相似리라 到者裏하야  驀然脚蹉手跌하면  心華頓發하야  洞照十方이  如杲日麗天하고  又如明鏡當臺하야  不越一念하고  頓成正覺이라

 

차를 마셔도 차 마시는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 먹는 줄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몰라 정식(情識)이 단박 깨끗해지고 계교(計較)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 흡사 숨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 같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과 발이 미끄러져서 마음꽃이 단박에 피어 시방세계를 훤히 비춤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 뜬 것 같으며,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인 것 같아서 찰나에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이다.

 

非惟明此一大事라  從上若佛若祖의  一切差別因緣을  悉皆透頂透底하며  佛法世法을  打成一片하야  騰騰任運하고  任運騰騰하며  灑灑落落하고  乾乾淨淨하야  做一箇無爲無事出格眞道人也라

恁麼出世一番하야사  方曰  不負平生參學之志願耳니라

 

이 일대사만을 밝힐 뿐 아니라, 위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因緣)을 몽땅 아래 위로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한 조각으로 만들어 무심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며, 물 뿌린 듯 쇄락하고, 씻어 말린 듯 정결하여 하나의 격식에서 벗어나 일없는 참 도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번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서 ‘평생동안 참선하려는 뜻과 원력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원문에 있는 '驀然 脚蹉手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문득 발이 미끄러지고 손이 미끄러지는 것이니, 아차! 하는 순간을 말한다. 轉身移步 懸崖撒手. (원순 스님 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〇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〇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부생2018. 10. 15. 16:40

*부생(浮生 뜨다·덧없다·정함이 없다 부/살다·삶 생) ; '허무하고 덧없는[浮] 인생[生]', '변화무상(變化無常 변화가 많거나 일정하지 않아 종잡을 수 없음)한 세간사(世間事 세상의 일, 세상살이의 일)'를 가리키는 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 위를 떠다니는 부초(浮草), 이리저리 일정한 모양없이 떠다니는 부운(浮雲), 일어났다 곧 사라지고 사라졌다 곧 일어나는 물거품[浮漚] 등으로 표현되는 '덧없는 인생', '변화무상한 세간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14분 39초)

 

[법문]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용434)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하니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하라  부생천착불상관(浮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삼간(三間), 삼 칸 조그마한 삼 칸에 뗏집에 종래로 머물러 왔는데. 삼간모옥(三間茅屋)이라는 것은 저 산중에 뗏집, 떼를 비어다가 조그만하게 토굴(土窟)을 지은 형상입니다. 그 조그만한 토굴에 주욱 살아왔다 그말이여.

 

이건 우리의 육체도 조그만한 방가루(bungalow)거든. 우리의 영식(靈識)이 숙세의 인연이 있어서 그 어머니 그 아버지에 의탁을 해 가지고, 요 조그만한 이 육체라고 하는 방가루를 하나 지었어.

이것이 바로 삼간모옥이거든, 뗏집 토굴이거든 이게. 얼마 동안 살다가 못 살 만큼 집이 낡아 버리면 이거 훌렁 벗어버리고 또 새집을 짓게 되겠죠.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한 길 싱그러운 빛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구나.

일도신광(一道神光)이라 하는 것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신 가운데에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본래 갖추어져 있는 큰 지혜 빛이거든. 해탈 광명이거든.

 

떡! 화두를 들고,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타 가지고 그 화두 한마디에 나의 몸과 목숨과 모든 신심을 거기다 다 탁! 바쳐 버리거든. ‘이뭣고?’

 

이 ‘이뭣고?’로써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다 이겨 나가고, 흥망성쇠도 다 이 ‘이뭣고?’ 하나로써 다 극복해 나가고, 생로병사와 성주괴공도 다 ‘이뭣고?’ 하나로써 다 물리치고 극복을 해 나가거든.

그러한 철두철미한 신심을 가지고 나갈 때 25신장(神將)이 항상 옹호를 하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다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하시면서 이렇게 보살펴 주시니 어찌 그 몸에서 싱그러운 빛이 안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겉으로 보면은 보잘것없는 떼 풀로 이은 보잘것없는 토굴이지만, 그런 수행을 하는 스님이 계시면 그 집은 바로 삼매(三昧)의 빛으로 장엄을 하게 되고, 그러한 수행자가 그 산중에 있으면 그 산중은 바로 명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도 그러한 수행자가 있으므로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이 이렇게 청정도량으로써 많은 법보 가족들이 모여서 법문을 듣고 또 정진을 하고. 이 도량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또 이 도량에 와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고 하면은 다 소원을 성취하고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을 하고 한 것이 다 헛된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다.

막파시비(莫把是非)를 내변아(來辨我)하라. 세상에 누가 잘하고 못하고, 누가 옳고 그르고, 누가 잘되고 못되고, 흥망성쇠와 성주괴공 생로병사 그런 시비를 나한테 와서 따지지 말라 이거거든.

 

부생천착(浮生穿鑿)이 불상관(不相關)이다. 이 사바세계의 모든 것은 부생(浮生)이거든.

유의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이, 유의법 속에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거, 모든 것은 뜬 생이거든. 뜬세상!

 

뜬세상에 있어서의 온갖 잘하고 못하고, 잘되고 못되고 하는 그러한 시비 천착(穿鑿)은 나는 그까짓 것 상관하지 않겠다 이거거든.

거기에 깊이 빠져서 골몰을 해봤자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뜻대로 일부가 된들 그것 가지고 무슨 영원한 행복이 오며 그것 가지고 무슨 생사가 해탈이 되는,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 그말이여. 또 일시 잘되어 봤자 또 얼마 안 가면 금방 또 틀어져 버리는 거다 그말이여.

 

또 우선 잘못된 거 같아도 또 지내다 보면 또 잘되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 너무 지나치게 이 허망한 유위법(有爲法)에 깊이 빠져서 몸부림치고 너무 깊이 탐착해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웬수 짓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는 가정의 길이 있고, 사회에는 사회의 법이 있고, 나라에는 나라의 다 법도가 있으니, 그런 것은 당연히 순응을 하면서 법에 어기지 말고 또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아니하면서 자기는 자기의 생애가 탁! 있어야 혀.

 

자기의 가장 중요한 생사 문제를 향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이 공부는 선방(禪房)에 와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철저히 하시면 백 번 천 번 좋고.

혹 가정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형편이면 가정에서 살림하면서 그저 하면서 그 속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화두를 들고, 시간이 있는 대로 앉아서 좌선도 하고 그렇게 해 보시라 그말이여.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다 모든 것은 형편 닿는 대로, 형편이 넉넉하면 잘 먹고 잘 입고 또 쓰고 남으면 보시도 하고, 또 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또 검박하게 살면서 그런 것이지, 다른 사람 잘먹고 잘사는 사람 좋은 차 굴린 걸 보고 자기도 그렇지 못한 걸 보고 부끄럽게 생각할 건 전혀 없습니다. 조금도 부끄럽고 창피할 것도 없는 거고.

자가용이 없으면 전철 타고 버스 타면 떳떳하고 좋고 그런 것이지, 꼭 자가용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어.

 

그래서 어린 자녀들을 둔 분들은 어려서부터 공연히 허영심(虛榮心)을 길러주지 말도록. 모든 것은 형편 대로 사는 것이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직접 몸소 실천을 함으로써 잘 가르켜 주어야 합니다.

과거에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은 금생에 부자도 되고, 복을 많이 짓지 못하면 또 형편이 부자가 안 되는 수도 있으나 부지런히만 하면 목구멍에 거미줄은 안 친 것으로 다 옛날부터서 다 그렇게 되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허영심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허영심 때문에 많은 사람이 쓸데없이 고민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허영심만 없다면 그리고 허영심 없이 정법(正法)을 믿고 공부를 해 나간다면 이 세상 사는 것이 그렇게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허영심으로 많은 돈을 가지고 호의호식하고 그렇게 산 사람이 훨씬 더 고통이 많고 편할 날이 없고 더 복잡한 것입니다. 차라리 좀 가난한듯 해 가지고 검소하게 살면 당장 근심 걱정이 없는 거고.

 

더군다나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면 왕후장상(王侯將相)도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쨌든지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정법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꾸 저변 확대가 됨으로 해서 우리나라가 정말 물질적으로 선진국 따라갈라고 하기보다는 정신으로, 이 정신적으로 정말 세계의 선진국이 되어야 세계 평화에 참다운 이바지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과학 문명을 자꾸 이렇게 발달시켜 가지고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서 외국에다 팔아서 부자가 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필요하나, 그것만 갖고는 까딱하면 오히려 미래의 장래에 불행의 결과를 초래할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항상 거기에 선행(先行)해서 정신적인 면에서 이 진리를 닦고 참나를 닦는 이것이 뒷받침이 되지 아니한 물질 문명은 결국은 불행과 멸망을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에 정말 내놓을만 한 것은 저 부처님으로부터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등등상속(燈燈相續) 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 정법, 불법 이것이 우리의 정말 세계에 내놓을만 한 문화유산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숙세의 쌓은 공덕으로 그냥 이것을 쉽게 정법을 만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철저히 공부를 해서 금생에 결정코 이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이 불법이 온 세계에 가득차도록 그렇게 해서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의 해탈도에 배부르도록 그럴 날이 오기를 항상 부처님께 발원하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53분15초~67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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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간모옥종래주~' ; 『전등록(傳燈錄)』 제8권 '담주 용산(潭州龍山) 화상' 게송 참고.

-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 부생천착불상관(浮生穿鑿不相關).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방가루(bungalow 방갈로, 방가로) ; ①산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지어 여름철에 캠프용, 피서용으로 쓰는 작은 집. ②정면에 베란다가 있고 처마가 깊숙한 풀이나 기와 따위로 지붕을 한 작은 단층 집. 본래 인도 벵골 지방의 특유한 목조 주택 양식이다.

*영식(靈識) ; 영묘한(靈妙 - 신령하고 미묘한) 의식. 제8식. 영혼.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〇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〇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삼매(三昧) : 정(定).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을 집중 · 통일시키는 수행, 또는 그 수행으로 이르게 된 평온한 마음 상태.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〇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뜬세상[浮世] ; 헛되고 덧없는 세상.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249.

〇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 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
ㅇ/이뭣고? 화두2018. 10. 15. 06:49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20분 51초)

 

[법문]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용434)

 

기래사반갈사음(飢來思飯渴思飮)하고  좌와동정상상수(坐臥動靜常相隨)니라

나무~아미타불~

경노음건창해수(鯨怒飮乾滄海水)하면  월명노출산호지(月明露出珊瑚枝)니라

나무~아미타불~

 

기래사반갈사음(飢來思飯渴思飮), 배고프면 밥을 생각하고 목마르면 물 먹기를 생각을 해.

좌와동정(坐臥動靜)에 상상수(常相隨)다. 앉고 눕고 움직이고 조용하고 고요하고 하는 가운데,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상상수(常相隨)여. 항상 따라댕겨.

 

배고프면 밥 먹고 싶어 하는 놈. 목마르면 물 생각할 줄 아는 놈.

앉고 싶고 눕고 싶고, 어디 가야 할 때 있으면 걸어가고, 자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전차를 타고, 비행기도 타고, 달음박질을 하거나 천천히 가거나 일을 하거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잠시도 여의고 산 적이 없어. 항상 그놈과 더불어 우리는 살고 있다 그말이여. 우리 가는 곳에 그놈도 항상 따라댕겨.

 

우리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 손으로도 잡을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으로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으나 그놈이 항상 이 몸뚱이를 주재를 해. '가거라'하면 이 발이 걸어가고, '가지 말라'하면 그놈이 안 가고, '앉으라'하면 앉고, '서라'고 하고 서고, '밥 먹어라'하면 밥 먹고.

아무리 다른 사람이 '밥 먹어라 먹어라'해도 그놈이 속에서 '먹지 마라' 딱! 명령하면 안 먹거든. 입이 안 먹는 게 아니에요. 속에서 명령을 해서 안 먹는 것이지 입이 제멋대로 먹고, 안 먹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리 입은 먹고 싶어도 속에서 그놈이 '먹지 마라'하면 안 먹어.

속상할 일이 있어서 부애가 나면 그놈이 속에서 '밥 먹지 말라'하면은 먹기 싫거든, 안 먹거든.

 

아무리 '어디를 가라, 심부름을 하러 가라'해도 그놈이 속에서 딱! 틀고서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거든. 그놈이 속에, 눈에도 보이지 않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가 없는데 이 몸뚱이를 완전히 좌우를 하거든.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 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하니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하라  부생천착불상관(浮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삼간(三間), 삼 칸 조그마한 삼 칸에 뗏집에 종래로 머물러 왔는데. 삼간모옥(三間茅屋)이라는 것은 저 산중에 뗏집, 떼를 비어다가 조그만하게 토굴을 지은 형상입니다. 그 조그만한 토굴에 주욱 살아왔다 그말이여.

 

이건 우리의 육체도 조그만한 방가루(bungalow)거든. 우리의 영식(靈識)이 숙세의 인연이 있어서 그 어머니 그 아버지에 의탁을 해 가지고, 요 조그만한 이 육체라고 하는 방가루를 하나 지었어.

이것이 바로 삼간모옥이거든, 뗏집 토굴이거든 이게. 얼마 동안 살다가 못 살 만큼 집이 낡아 버리면 이거 훌렁 벗어버리고 또 새집을 짓게 되겠죠.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한 길 싱그러운 빛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구나.

일도신광(一道神光)이라 하는 것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신 가운데에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본래 갖추어져 있는 큰 지혜 빛이거든. 해탈 광명이거든.

 

떡! 화두를 들고,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그 화두 한마디에 나의 몸과 목숨과 모든 신심을 거기다 다 탁! 바쳐 버리거든. ‘이뭣고?’

 

이 ‘이뭣고?’로써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다 이겨 나가고, 흥망성쇠도 다 이 ‘이뭣고?’ 하나로써 다 극복해 나가고, 생로병사와 성주괴공도 다 ‘이뭣고?’ 하나로써 다 물리치고 극복을 해 나가거든.

그러한 철두철미한 신심을 가지고 나갈 때 25신장이 항상 옹호를 하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다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하시면서 이렇게 보살펴 주시니 어찌 그 몸에서 싱그러운 빛이 안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겉으로 보면은 보잘것없는 떼 풀로 이은 보잘것없는 토굴이지만, 그런 수행을 하는 스님이 계시면 그 집은 바로 삼매(三昧)의 빛으로 장엄을 하게 되고, 그러한 수행자가 그 산중에 있으면 그 산중은 바로 명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도 그러한 수행자가 있으므로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이 이렇게 청정도량으로써 많은 법보 가족들이 모여서 법문을 듣고 또 정진을 하고. 이 도량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또 이 도량에 와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고 하면은 다 소원을 성취하고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을 하고 한 것이 다 헛된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다.

막파시비(莫把是非)를 내변아(來辨我)하라. 세상에 누가 잘하고 못하고, 누가 옳고 그르고, 누가 잘되고 못되고, 흥망성쇠와 성주괴공 생로병사 그런 시비를 나한테 와서 따지지 말라 이거거든.

 

부생천착(浮生穿鑿)이 불상관(不相關)이다. 이 사바세계의 모든 것은 부생(浮生)이거든.

유의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이, 유의법 속에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거, 모든 것은 뜬 생이거든. 뜬세상!

 

뜬세상에 있어서의 온갖 잘하고 못하고, 잘되고 못되고 하는 그러한 시비 천착(穿鑿)은 나는 그까짓 것 상관하지 않겠다 이거거든.

거기에 깊이 빠져서 골몰을 해봤자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뜻대로 일부가 된들 그것 가지고 무슨 영원한 행복이 오며 그것 가지고 무슨 생사가 해탈이 되는,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 그말이여. 또 일시 잘되어 봤자 또 얼마 안 가면 금방 또 틀어져 버리는 거다 그말이여.

 

또 우선 잘못된 거 같아도 또 지내다 보면 또 잘되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 너무 지나치게 이 허망한 유위법(有爲法)에 깊이 빠져서 몸부림치고 너무 깊이 탐착해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웬수 짓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39분37초~60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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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기래사반갈사음~'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卷之七 '잡체시(雜體詩)[爲因普濟生靈 承命渡海時所記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왕명을 받들고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갈 때에 기록]'에서 '贈松源宗長老僧(송원종 장로 스님에게 드림)' 참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고(膏 기름 고) ; ①식물이나 과실 따위를 끓이고 졸여서 곤 즙. ②동물에서 짜낸 기름.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게송) '삼간모옥종래주~' ; 『전등록(傳燈錄)』 제8권 '담주 용산(潭州龍山) 화상' 게송 참고.

-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 부생천착불상관(浮生穿鑿不相關)

*방가루(bungalow 방갈로, 방가로) ; ①산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지어 여름철에 캠프용, 피서용으로 쓰는 작은 집. ②정면에 베란다가 있고 처마가 깊숙한 풀이나 기와 따위로 지붕을 한 작은 단층 집. 본래 인도 벵골 지방의 특유한 목조 주택 양식이다.

*영식(靈識) ; 영묘한(靈妙 - 신령하고 미묘한) 의식. 제8식. 영혼.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〇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〇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부생(浮生 뜨다·덧없다·정함이 없다 부/살다·삶 생) ; '허무하고 덧없는[浮] 인생[生]', '변화무상(變化無常 변화가 많거나 일정하지 않아 종잡을 수 없음)한 세간사(世間事 세상의 일, 세상살이의 일)'를 가리키는 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 위를 떠다니는 부초(浮草), 이리저리 일정한 모양없이 떠다니는 부운(浮雲), 일어났다 곧 사라지고 사라졌다 곧 일어나는 물거품[浮漚] 등으로 표현되는 '덧없는 인생', '변화무상한 세간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뜬세상[浮世] ; 헛되고 덧없는 세상.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Posted by 닥공닥정
ㄱ/금강경사구게2018. 10. 14. 21:46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다. 뻑뻑이 이와 같이 관(觀)을 할지니라.

 

(20분 30초)

 

[법문]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용434)

 

내일 입춘을 기해서 이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사진과 이거는 또 달마(達摩) 스님이 그려져 있고, 또 이 속에는 금강경 사구게(四句偈)가 있는 이것을 오늘 나가실 때 전부 한 장씩 다 노놔 드리고, 또 내일 또 입춘 법요식에 참여하시면은 그때도 또 한 장씩 노놔 드릴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이게 넣어서 가지시던지 그것을 각자 알아서 하시기를 바라고. 이것은 왜 노놔 드리느냐 하면은.

 

여기에는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이런 사구게가 여기에 있습니다.

 

송담스님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일체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인연(因緣)으로 생긴 모든 사물을 유위법이라 그럽니다.

 

그러면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어떠한 것들이냐?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밖에 어떤 색상을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안식(眼識)이 생기고, 우리의 귀가 밖에서 들리는 어떤 소리를 만나면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식(耳識)이 생기고, 코도 그렇고, 혀도 그렇고, 몸뚱이도 그렇고, 우리의 의식(意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래서 이 마음에는 무슨 생각이 그렇게 해서 나 가지고,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요렇게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없어져. 그래서 생주이멸(生住異滅)이여. 이런 것들이 마음의 유위법(有爲法)이여.

 

그다음에 우리의 몸뚱이는 과거에 지은 업으로 부모를 만나면 거기서 이 몸뚱이를 받아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태어나면 얼마 안 있으면 나이를 먹고 늙고, 늙으면 병들고 마침내는 언제 죽던지 죽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몸뚱이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것도 다 유위법이여.

그런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런 인연으로 태어나서 없어지니까 이것도 유위법(有爲法)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몸을 담고 있는 집이라든지, 우리 나라라든지, 온 세계, 또 해나 달이나 별들 산천초목 두두물물도 다 성주괴공(成住壞空),

어떤 인연으로 이루어졌다가 그것이 잠시 그 상태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마는 사실은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동안 그런 형태를 유지하다가 결국은 무너져서 없어져. 그래서 성주괴공이 있거든. 이것도 유위법이여.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우리의 몸뚱이나, 우리의 생각이나, 온 세계 삼라만상이 전부 유위법 아닌 것이 없는데, 이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허깨비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이슬,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갯불,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다.

풀끝에 이슬이 아침에 나가면 이슬이 맺혀서 햇빛에 빛날 때에는 영락없이 그 반짝이는 것이 보석과 같은데, 조끔 바람이 불거나 건드리면 툭 떨어져 버린다 그말이여.

 

우리의 몸뚱이도 지금은 이렇게 살아 있지만 하루 후에 어떻게 될른지, 한 시간 후에 어떻게 될른지, 일 분 후에 어떻게 될른지, 그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지 못할 것이 풀끝에 이슬보다도 더하다 그말이여.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뻑뻑이 이와 같이 관(觀)을 할지니라.

 

이 금강경의 이 게송은, 금강경에 칠사구게(七四句偈)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송입니다.

 

금강경에 '이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몸에 지니거나, 수지독송(受持讀誦)하거나, 남을 위해서 설해 주거나 하면은 그 공덕은 삼천대천세계에다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금강경전이나 사구게가 있는 곳은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며, 부처님의 탑이 거기에 봉안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의 탑이 모셔져 있으면 거기에는 항상 제석천왕(帝釋天王)을 비롯한 모든 선신(善神)과 25신장(神將)이 그걸 잘 외호(外護)를 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이것을 손수 잘 써서 그것을 베겨 가지고 이렇게 노놔 드리게 되는 것은 새해를 맞이해서 이걸, 여기에 관세음보살과 또 이 사구게와 달마 스님까지,

그러면 관세음보살은 불보살이니까 「부처님」[佛]이시고, 또 이 사구게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法)」이고, 또 달마 스님은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으신 「28대 조사」[僧]여. 그래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가 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것을 몸에 잘 지니시면 항상 불법승 삼보를 몸에 지니시기 때문에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게송의 뜻을 한 번씩 읽기만 해도 업장이 소멸이 되고, 일체 잡귀가 범접을 못하고 항상 선신이 여러분을 옹호를 해 줄 것입니다.

 

특히 '새해로 삼재(三災)를 만나게 된 분은 이것을 특별히 잘 간직을 하시라'하는 뜻에서 내일 입춘날 노놔 드리기로 한 것인데, 또 직장에 나가신 분, 모다 여러 가지...

그래서 내일 참석 못하실 분도 계실 것 같고 그래서 오늘 일차적으로 다 노놔 드리고 그리고 내일 오신 분에게도 또 노놔 드립니다.

 

가족이 많으신 분은 5장, 10장도 필요하실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노놔 드리기로 하면은 굉장히 많이 준비를 해야 하고 그래서 일단은 여기에 오신 분에게, 오신 인연을 지으신 분들에게 먼저 오늘 노놔 드리고, 또 내일 오시면 내일 또 노놔 드리고 그럴 테니 그렇게 아시길 바랍니다.

 

그동안에 새로 이사를 가신다던지, 집을 수리를 하신다든지, 집안에 어떤 우환이 있다든지, 꿈에 가위를 눌린다든지, 집안에 어떤 분이 돌아가셨는데 항상 무서운 생각이 든다든지, 집안에 과거에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그렇게 집안이 액난(厄難)이 끊이질 않는다든지, 이런 말씀들 하신 분에게는 내가 이 금강경 사구게를 이렇게 써서 드리면서 집에 이렇게 모시라고 참 꽤 많은 분에게 이렇게 해 드린 일이 있는데,

 

아!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아 그걸 갖다가 딱 액자에다 넣어서 이렇게 딱 모시거나 또 몸에 이렇게 지니면은 그런 무서운 것도 없어지고, 액난도 없어지고, 또 꿈에 가위 눌린 것도 없어지고,

이런 말씀들을 들어왔기에 금년에는 이렇게 모든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여러분들께 이것을 노놔 드리기로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어떤 분이 이것을 무주상(無住相)으로 이것을 이렇게 베겨서 이렇게 법보시(法布施)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금강경 사구게는 철저하게 이 뜻을 이해를 하시고, 턱! 고대로 믿기만 해도 마음속에 온갖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실다운 것으로 믿고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그런 오욕락(五慾樂)들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이 있어야만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오욕락에 집착을 하는 것이고, 또 이 몸뚱이가 ‘참나’라고 착각을 하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천세 만세 살 것처럼 이 몸뚱이만을 집착을 하고 애끼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허망한 것들, 그런 유위법이 지극히 무상하고 허망하고 의지할 것 없는 것인데, 그것을 실다운 상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애착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온갖 시비가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고, 우리의 마음에 미움이 일어나고 사랑이 일어나고, 고통과 갈등과 슬픔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게송을 모르신 분은 거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이것을 그냥 글로만 해석을 하고 그렇게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그 약을 믿고 그것을 정성껏 법답게 복용을 함으로써 그 약이 효험이 나는 것이지, '그 약이 좋다더라' 그런 정도만 알고 실지로 복용을 하지 않고, 그냥 책상 위나 방바닥에 굴리고 만다면 그것이 신기하고도 좋은 약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와 같이 이 게송이 그렇게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그런 공덕이 있다 하더라도 철저히 믿고 그것을 완전히 그 뜻을 마음속에 새기고 달관(達觀)을 해서, 이 게송이 바로 자기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자기의 영혼 속에 녹아 들어가 버려야 이 게송 효능이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여러분들께서 몸에 다 간직하고, 어디를 가셔도 그것이 자기에서 떠나지 않도록 뜻으로도 마음속에 새기고, 실지로 이것을 몸에 잘 지니고 그리고 행동으로 이것을 잘 실천을 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새해는 모든 근심과 고통이 봄눈 녹듯이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삼재를 당하고, 삼재가 들었다 하더라도 조끔도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여기 용화사 신도 한 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돈을 벌기 위해서 갔었는데 비행기가 떨어져서 백여 명이 그때 다 죽었습니다. 그이도 그 떨어지는 비행기 속에 타고 있었는데 별로 다친 데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이가 가지고 갔던 가방이고 신발까지 다 벗어져서 없어졌는데 이거 하나만 몸에 지니고 있었어.

그런데 비행기가 떨어져서 한쪽에서 막 타들어 오는데 구멍이, 나갈 구멍이 있는데 자기가 먼저 나가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나가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거들어 주고 다 나갈라고 하다 마지막 자기가 나갈라고 하는데 문이 딱 닫쳐졌습니다. 영락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걸 몸에 딱 지니고 있었는데 그래도 조끔도 당황하지 않고 '이거, 송담 스님이 준 것이다' 해 가지고는 이것을 탁 가슴에 안고 기적적으로 다시 구녁이 뚫어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나오다가 그때는 벌써 불이 많이 타 가지고 비행기가 뜨거워져서 나오면서 살짝 화상은 입기는 했지마는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살아와 가지고 이것을 나한테 보이면서 "참말 이 덕을 봤다"고 나한테 눈물을 글썽이면서 "감사하다"고 사례를 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이것 때문에 뭐 도둑을 면했다. 뭣을 차를 잃어버렸는데 찾았다' 무슨 별별 그런 애기들 많이 들었습니다마는.

이런 말을 왜 내가 하냐 하면 이 금강경 사구게의 위신력(威神力)이 금강경 속에 참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이 공덕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듣고 모다 미쳐버릴까봐 전부를 얘기를 못한다」고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다 금강경을 읽으신 분은 다 그 대목을 다 보셨겠는데, 얼마만큼 그 말씀을 믿나?

'아, 그 공덕이 장하니까 많이 읽으라는 뜻으로 하셨겠지' 이런 정도로 대부분 아마 생각하실 겁니다.

 

근데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나는 백 프로, 이백 프로 그것을 믿었습니다. 믿고서 이것을 고대로 써 가지고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러한 불가사의한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이 조그만한 관세음보살 사진이요, 사구게요, 달마 스님이지만 정말 그렇게 믿고 잘 간직을 하시기를 부탁을 하고.

 

 

탐진치(貪嗔癡) 삼독심(三毒心)을 버리지 못한 것은 이 게송의 뜻을 철저하게 믿고 깨닫지를 못한 데에서 탐진치 삼독이 일어나는 것이고,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는 것이고, 오늘날 모든 싸움도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 게송 하나만 철저하다면 어찌 발심(發心)을 못하겠습니까!

 

다 핑계—집안 살림 핑계, 아들딸 핑계, 무슨 핑계 저런 핑계를 대고 '그것이 끝나야 공부를 하리라' 그렇게 모두 핑계를 대고 공부를 뒤로 미루고.

 

공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공부뿐인데, 그런 일 핑계를 앞세우고 가장 급한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로 뒤로 미루고 공부를 이렇게 철저히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19분2초~39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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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 · 관세음(觀世音) · 관세자재(觀世自在) ·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五七七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백오십~이백 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 • 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오욕락(五欲樂,五欲,五慾)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달관(達觀 통달할 달/볼 관) ; 인생의 진리를 꿰뚫어 보아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고 넓고 멀리 바라봄. 또는 그러한 경지.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발심2018. 10. 12. 19:30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18분 55초)

 

[법문]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용434)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하되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하되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라.

삼계(三界)가, 삼계 가운데가, 온 세계가 분요요(紛擾擾)여. 그 도처(到處)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폭격을 하고, 사람이 죽고 불이 나고 집이 파괴가 되고 피비린내 나는 참, 그런 세상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하냐?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只爲無明不了絶]

 

무명(無明).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이 무명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 무명을 요달해 끊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탐진치 삼독이 벌어지고, 그래 가지고 작은 싸움 큰 싸움, 온 나라와 나라의 싸움, 세계 전쟁이 순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의 무명(無明)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한 생각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불생(不生), 나지 아니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면,[一念不生心澄然]

무거무래(無去無來)요,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으며 생멸(生滅)이 없을 것이다.[無去無來不生滅]

 

그 한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이 몸뚱이도 이 세상에 받아서 태어났고, 무명(無明)의 업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 태어났고,

따라서 끝없이 끝없이 일어나는 탐진치 삼독 때문에 수없는 새로운 업(業)을 지으면서 바짝 마른 나무 섶에 기름을 부어서—불이 붙은 풀 섶, 나무 섶에 계속해서 기름을 부어서 잘 타게 만들어.

 

그래 가지고 나무만 타는 게 아니라 나무 주변에 있는 집도 타고 다른 사람도 타고, 마침내는 자기도 자기집도 타고, 자기 몸뚱이도 타고, 자기 생명도 잃게 된다 그거거든.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훨훨 타고 있는 그 화택(火宅) 속에서 어떻게 하면 받아나기 어려운 이 몸뚱이 있을 때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느냐?

오직 발심(發心)! 발심 하나를 철저히 함으로 해서 이 무상한 생로병사 속에서 해탈도를 증득하는 법을 간곡히 설해 주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그 무서운 6년 고행을 하시고, 달마 스님도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묵무언(默無言)하시고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하시고.

또 고인(古人)도 7개 포단(蒲團), 어떻게 좌선을 열심히 했던지 방석이 7개가 구녁이 맞구녁이 뚫어지도록 그렇게 정진을 한 예도 있고.

 

고인(古人)들, 다 근기(根機)가 수승한 고인네들도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요달했으니, 하물며 말세에 태어난 우리 하근기들은 그 몇 배를 더 노력을 하고 애를 쓰지 않겠느냐.

이런 요지에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정말 말로만 '말세(末世)다, 말세!' 밤낮 그 말세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들어오고 있습니다마는.

말세는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다. 투쟁, 싸움만이 치성하게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나라와 나라, 온통 싸움으로써 직업을 삼어. 싸움으로써 일을 삼는 그런 시대다.

 

과연 가정도 부모자식간에, 부부간에, 고부간에, 형제간에 사소한 일로 말다툼, 재산 갖고 싸우고. 사회에서도 당파가 있어 가지고 서로 싸우고, 업체들도 서로 자기 회사가 잘되기 위해서 싸우고. 한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싸우고, 이웃 나라와 이웃 나라가 싸우고, 경제적으로 싸우고, 종교적으로 싸우고, 이러한 투쟁견고의 시대에 말세를 당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고 똑바로 자기 정신을 차리고, 우선 내가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찾고, 내 집안이 어떻게 바르게 살아가며,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며 온 나라가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아가는가? 그렇게 해서 온 세계가 어떻게 하면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가?

 

오직 여기에는 부처님의 법(法)에 따르는 것이 최선의 방책(方策)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경전에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매우 자상하게 모다 설하셨지만 여기에서 그걸 낱낱이 다 설명할 수가 없고. 그러한 모든 크고 작은 싸움, 갈등 알륵 속에서 간단하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인 것입니다.

 

모든 싸움은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지 않고, 밤낮 모든 싸움 모든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다른 사람에게 몰아붙이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데에서 크고 작은 싸움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싸움은 싸움으로써 그치지 아니하고, 원망은 원망으로써 그치지 않는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싸움은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싸움은 그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를 반성함으로 해서 싸움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입춘날입니다. 입춘이 오므로 해서 새해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양력으로는 오늘이 2월 4일이지만, 음력으로는 아직 섣달이지만 입춘이 드는 그날 그 시간으로부터 새해 신미년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입춘기도 법요식이 있습니다마는,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이 경오년의 마지막 날을 기해서 우리는 정말 묵은해의 모든 것을 깨끗이 다 털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집안에 모든 먼지를 털고 소제(掃除)를 하고 모다 그런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또 몸도 깨끗이 씻고 그런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마음! 마음을 새로 갖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발심(發心) 하나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 발심에 대해서 매우 강조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공부가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암만 정신을 좀 차려서 정진을 좀 착실히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안되고, 화두가 순일하지 못하고, 의단(疑團)이 간절하지 못하고 자꾸 혼침이 오고 망상이 일어나고 영 공부가 제대로 안된다'고 많은 수좌(首座)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많이 호소를 하십니다마는 문제는 '발심을 철저히 못한 데에서 그런 것이다'

 

발심! 발심이 스스로 마음속에서 탁! 아주 일어나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발심의 동기는 친한 분이 참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든지, 친구가 비참하게 죽었다든지, 어떤 그러한 것을 계기로 해서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그 친한 친구가 그렇게 정신착란이 일어나 가지고 그래 가지고 미쳐서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무상을 철저히 깨닫고, 그래 가지고 어린 나이로 발심을 해서 17세 그 어린 나이로 선방에 나와 가지고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셔 가지고, 23세 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그때 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정말 아는 사람 가운데, 이웃에서 또는 한국 팔도 방방곡곡에서 온통 사람이 강도에게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죽고, 불타서 죽고 이렇게 해서 사람 죽는 것이 날이면 날마다 사람 죽는 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 또 사람 죽었구나’ 그 보통 느껴지겠지만.

 

그것이 자기 가족이요, 일가친척이요, 그러한 사람이 죽어도 ‘참 안되었다, 불쌍하다’ 그런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남의 일이겠습니까?

우리 자신에게도 언제, 어떻게 그러한 사항이 일어날른지 모르는 것입니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을 보고도 무상을 깨달을 수도 있고,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무상을 깨달을 수가 있고, 해가 서산에 지는 것을 보고도 깨달을 수가 있고.

우리는 똑바로 정신만 차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발심할 수 있는 계기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처음~18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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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지중분요요~'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습득(拾得)의 시.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 불생(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不生)’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참고] 송담스님(No.410)—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난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한 몸뚱이, 한 마음이여. 그런데 그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한 생각' 동(動)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과 같이 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한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몇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몇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이 세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칠 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를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을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그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의 번뇌염(煩惱染)이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분27초)

*면벽관심(面壁觀心) ; 벽(壁)을 향하여[面] 앉아 자신의 마음[心]을 관[觀]하여 그 본성을 밝히는 것.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면벽(面壁) ;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것.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마침내 물러나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말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벽을 향하여 좌선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면벽은 단순히 좌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론 등 문자에 의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관하여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수행법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알륵 ; 알력(軋轢 삐꺽거릴 알/수레바퀴가 쓸려 삐꺽거릴 력 : 수레바퀴가 삐꺽거린다는 뜻으로, 의견이나 입장이 서로 맞지 않아 충돌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