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20.04.20 하심(No.685)—선방에 들어와서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던지 똑똑한 체하지 말고, 항상 하심을 하고, 남을 존경하고 자비심으로 대해야 | 得道者出.
  2. 2020.02.28 진로(No.685)—(게송)塵勞逈脫事非常~ | 매화꽃 향기 비유, 알뜰하게 화두를 잡고 정진을 해야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大疑大悟 小疑小悟 不疑不悟.
  3. 2020.02.27 공양(No.685)—선방을 외호하는 소임자는 음식 등, 모든 것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서 잘 외호를 해 드려야 합니다 | 공양하는 법 | 入衆五法.
  4. 2020.02.26 조사선(No.685)—(게송)爲他爲己雖微善~ | 무루 조사선인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해야 영원히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5. 2019.12.31 대의대오 소의소오 불의불오(No.685)—(게송)塵勞逈脫事非常~ | 매화꽃 향기 비유, 알뜰하게 화두를 잡고 정진을 해야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6. 2019.12.30 대중생활(No.685)—선방에 들어와서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던지 똑똑한 체하지 말고, 항상 하심을 하고, 남을 존경하고 자비심으로 대해야 | 得道者出.
  7. 2019.12.29 외호(No.685)—선방을 외호하는 소임자는 음식 등, 모든 것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서 잘 외호를 해 드려야 합니다 | 공양하는 법 | 入衆五法.
  8. 2019.12.27 입중오법(No.685)—'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달아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하는 대원력을 가지고 결제를 한다.
  9. 2019.12.26 활구참선(No.685)—(게송)爲他爲己雖微善~ | 무루 조사선인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해야 영원히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ㅎ/하심2020. 4. 20. 06:59

하심(No.685)—선방에 들어와서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던지 똑똑한 체하지 말고, 항상 하심을 하고, 남을 존경하고 자비심으로 대해야 | 得道者出.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8분 19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이 선방(禪房)에 들어와서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던지 똑똑한 체해서는 참 그것은 안 됩니다.

 

자기가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체해서는 왜 안 되냐 하면은, 세속에서는 대통령을 살거나 장관을 살거나 국회의원을 살거나 지방 뭐 장관을 살거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기가 똑똑한 체해야 먹고삽니다.

사실은 인격적으로 보면은 참 우스울 일이나 세속에서는 잘 살라면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면 밤낮 봉만 잡히고 짓밟히고 살 수가 없으니까 뭣이든 똑똑한 체하고 자기 자랑을 하고 그래야 국회의원도 되고 당선이 되니까 선거 때 되면은 한 사람도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을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자랑하고 남은 어쨌든지 흠집을 내가지고 짓밟고 그래야 뭣이 당선이 되기 때문에 그럽니다마는, 앞으로는 그런 사람 뽑아서는 안 되아 나라꼴이 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마는. 우선 그런 상황인데.

 

선방에 와서 그런 속세(俗世)의 추잡한 언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절에서는 항상 하심을 하고, 남을 존경하고 자비심으로 해야 다른 스님네가 그분을 존경하게 됩니다.

말로써는 안 해도 마음속으로 '참 저분은 수행을 제대로 하신 분이로구나!' 그 스님을 보면 제대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나도 앞으로 저렇게 되어야겠다' 이렇게 될 것입니다.

절에 와선 똑똑한 체해 갖곤 점수가 올라가기커녕은 점점 떨어지고 아무도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특히 시민선방(市民禪房)이나 보살선방(菩薩禪房)에, 집안에 계시면은 다 대접받고 큰소리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오십, 육십, 칠십, 팔십이 되어도 기를 쓰고 방부를 들이고 와서 정진을,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참! 감사할 수밖에 없고 참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소중한 분들이지요.

 

개중에는 그런데 큰소리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그런 분들이 가끔 있다 이 말씀이여. 이번 철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으시기를 바라고, 하심하고 대중법규를 자진해서 지키고 혹 다른 분이 안 지키는 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입승(立繩)이나 그 소임을 가지신 분이 적절히 처리하실 것이니까 다른 분은 전혀 눈에 혹 보이더라도 '아, 나는 저렇게 안 해야겠구나' 그런 정도로만 생각하고 냉큼 화두(話頭)만을 들으시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 잘못하면 시비하고 하다보면 거기서 시비가 일어나기 때문에 일절 보고도 못 본 체, 들어도 못 들은 체, 여기 법당에 들어온 계단 머리에 원숭이 세 마리가 한 마리는 입을 가리고, 한 마리는 눈을 가리고, 한 마리는 귀를 가리고 그런 석상(石像)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정진하는데 그런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들어오시면서 그것을 보시라 이것입니다.

 

선방에는 옛날에 「입차문래(入此門來)인댄 막존지해(莫存知解)다」 이런 글귀도 써 붙이고 또 뭣한 데는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도를 얻은 자는 나가라' 이것입니다. 견성(見性)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으면 나가서 중생 교화를 해야지,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입니다.

 

아마 뭣인가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거나, 속칭 뭐 초견성을 했느니, 한소식을 했느니 그런 생각을 속에다 품고 있어 가지고, 선방에 있어 가지고 꺼떡하면 무슨 아는 소리 하고, 꺼떡하면 무슨 법담(法談)을 한답시고 하다가 수틀리면 목침으로 머리빡을 깨기도 하고 발길로 차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걸망 싸 짊어지고 나가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런 일이 옛날부터서 가끔 있어 왔습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이나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이나 승련사 대중, 위봉사 대중 또 이 세등선원 대중, 복전선원 대중, 이 자리에 모이신 선방 스님네는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는 걸로 알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이런 말씀을 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해서 받아들이시길 부탁을 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머리를 깎고 출가한 여러 도반 스님네, 선배나 동료 후배 스님네 다 같이 금년 여름은 몸도 건강하고, 건전한 신심과 철저한 정법(正法)을 믿는 그러한 마음으로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정말 정말 알뜰하게 정진한 그런 한 철이 되도록 노력을 해 주시고.

또 보살선방이나 시민선방 또는 선방에 방부를 안 들이셔도 가정에서 정진을 하신 보살님네들도 또 거사님네들도 방부 들인 스님네, 방부 들인 보살님네 못지않게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이 정진(精進)은 정말 자기를 위하는 수행이고 그것이 바로 정법으로 연결이 되고, 그것이 바로 이 영원한 행복과 연결이 되고, 세계평화의 근본이 되는 그러한 것이라고 깊이 명심을 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하시고 일초일초를 알뜰히 단속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25분19초~33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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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속세(俗世) ; 세속(世俗).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시민선방(市民禪房) ; 시민선원(市民禪院). 직장인, 학생, 주부 등과 같은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없는 분들이 언제든지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정진할 수 있도록 용화선원에 개설되어 있는 신도 선원.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지어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20. (가로판 p227)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야  萬古徽猷(만고휘유)로다  入此門來(입차문래)에  莫存知解(막존지해)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 천태평전보안선사(天台平田普岸禪師)의 말씀.

天台平田普岸禪師洪州人也  於百丈門下得旨  後聞天台勝槪聖賢間出  思欲高蹈方外遠追遐躅  乃結茅薙草宴寂林下  日居月諸爲四衆所知  創建精藍號平田禪院焉  有時謂衆曰  神光不昧萬古徽猷  入此門來莫存知解

 

천태산 평전보안 선사는 홍주 사람이다. 백장의 문하에서 종지를 얻은 뒤에 천태산의 수승한 경치에서 성현이 가끔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번 가보고자 하여 멀리 찾아가서 띠집을 짓고는 숲 밑에서 조용히 참선을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부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어 큰 절을 짓고 평전선원이라 하였다.

어느 때 대중에게 말했다. “신령한 광명이 어둡지 않아서 만고에 빛나니, 이 문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전등록 1」 동국역경원, 김월운 옮김. p575-576)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 · 방해가 없음.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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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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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ㅈ/진로(塵勞)2020. 2. 28. 15:33

진로(No.685)—(게송)塵勞逈脫事非常~ | 매화꽃 향기 비유, 알뜰하게 화두를 잡고 정진을 해야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大疑大悟 小疑小悟 不疑不悟.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5분 57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樸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황벽희운(黃壁希運) 선사의 게송(偈頌)입니다. 이 게송을 특별히 단서를 붙이시기를 '이 게송은 후래(後來) 선객들에게, 수행자들에게 대단히 도움이 될 만한 게송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 게송을 읊는다'고 이 게송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진로는 생사진로(生死塵勞)여. 생사해탈하는 일이 이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꽉! 승두(繩頭)를 잡고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한다 이겁니다.

 

승두(繩頭)라고 하는 것은 '노끈 승(繩)'자인데. '노끈 승(繩)'은 목수가 나무를 다듬을 때 먹줄을 탁 튕겨 가지고 그래야 똑바로 그 나무를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하 없는 대목수(大木手)도 먹줄 없으면 나무를 바르게 깎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하는 데서는 무엇이 승두(繩頭)냐 하면은 화두(話頭)입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그것을 탁! 잡아 가지고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한다.

 

이 한바탕이라고 하는 것은 석 달 열흘이 바로 한마당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기간이 바로, 그것이 바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합해서 그것이 한마당인 것입니다.

청춘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처자권속을 버리고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우리는 이 길을 나섰기 때문에 이 화두 하나 이것밖에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樸鼻香)이리요. 매화가 코를 치는 향기를 얻을 수가 있겠느냐.

 

이것은 매화꽃에다가 비유해서 했습니다. 겨울 날씨가 난동(暖冬) 기온으로 뜨뜻하면 매화꽃이 피어도 향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매화가 피어야 향취가 진동을 한다 이것입니다.

알뜰하게 화두를 잡고 정진을 해야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을 여기 비유해서 읊으신 게송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의심(疑心)이 적으면 깨달아 봤자 적은 깨달음 밖에는 못 얻는 거고, 크게 의심을 해야 큰 의심으로 정진을 해 나가야 크게 깨닫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다」 했습니다.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있어서는 의심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리저리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음알이로 뭣을 알려고 하는 그런 참선은 참선도 아닙니다. 그렇게 정진해 가지고서는 아무짝에도 못쓰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은 처음부터서 끝까지 활구참선을 주장을 하셨습니다. 구구절절이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은 뼈에 사무치는 그런 법문인 것입니다.

신심이 없는 사람이 들으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진짜 발심(發心)을 해서 신심으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이런 활구참선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이 돈발(頓發)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당부에 말씀은 조실 스님의 법문에 미루고 이상 내려가고자 합니다.(35분40초~41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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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황벽희운 선사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먹줄 ; ①먹통에 담겨 있는 실줄. 먹물이 묻어 있는 실줄을 먹통에서 잡아 당겨, 줄을 긋고자 하는 곳에 실줄 양쪽을 고정시키고 실줄 가운데를 튕겨서 줄을 내는 데 쓴다. ②먹줄을 튕겨서 낸 줄.

*대목수(大木手) ; 대목(大木). ①목수의 우두머리. ②큰 건축물을 잘 짓는 목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대의대오(大疑大悟) 소의소오(小疑小悟) 불의불오(不疑不悟) ;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참고] 『박산화상참선경어(博山和尙參禪警語)』 (成正 集) <卍續藏 第63冊 No.1257> '시초심주공부경어(示初心做工夫警語)'에서.

做工夫 貴在起疑情 何謂疑情 如生不知何來 不得不疑來處 死不知何去 不得不疑去處 生死關竅不破 則疑情頓發 結在眉睫上 放亦不下 趁亦不去 忽朝樸破疑團 生死二字是甚麼閑家具 噁 古德云 大疑大悟 小疑小悟 不疑不悟

 

공부를 짓되 귀한 것이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에 있으니 무엇을 일러 의정이라 하는고? 태어나되 어디서 온 줄을 모를진댄 온 곳을 의심치 않을 수 없고, 죽되 어디로 가는지 모르건댄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

생사의 관문을 깨뜨리지 못한 즉 의정이 몰록 일어나리니, 눈썹 위에 맺어 두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고 쫓아도 가지 아니하야 홀연 하루아침에 의심덩어리[疑團]를 깨뜨리면, 생사 두 글자가 이 무슨 부질없는 것일까 보냐? 엑[噁] !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Posted by 닥공닥정
ㄱ/공양(하는 법)2020. 2. 27. 18:48

공양(No.685)—선방을 외호하는 소임자는 음식 등, 모든 것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서 잘 외호를 해 드려야 합니다 | 공양하는 법 | 入衆五法.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8분 5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그 철에 소임자는 어쨌든지—여기에서 말한 소임은 첫째는 주지나 원장이요, 원주(院主)나 총무 · 교무 · 재무요 또는 공양주(供養主)나 채공(菜供)이나 별좌(別座)나 모다 이러한 이 선방을 외호(外護)하는 그런 소임자—정성을 다해서 음식에 대해서나, 모든 것에 대해서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정성을 다해서 신심으로 잘 외호를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어째서 소임자만 그 무슨 빚이 져서 외호만 그렇게 잘해야 하냐?' 혹 그런 생각을 생각할는지 모르나, 현재 선방에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하는 스님네는 과거에 다 그런 소임을 거쳐서 외호를 하다가 또 발심(發心)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을 것이고, 그러니 지금 소임을 보고 있는 스님도 앞으로 소임을 내놓고 걸망을 지고 나가면 또 선방 대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임자는 선방 정진 대중스님네를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외호를 다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방 스님네가 정진을 잘 하시게 되어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방 방부 들이고 정진하는 스님네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국수면 국수, 만두면 만두, 찰밥이면 찰밥, 들어오는 대로 말없는 가운데에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하면서 잘 씹어서 과식(過食)하지 말 것이며, 속식(速食)하지 말 것이며, 적당하니 공양(供養)을 받아 가지고 잘 씹어서 그 공양이 소화가 잘되도록, 그래야 정진하는 데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국수가 들어오면 좋아한다 해 가지고 몇 사람 몫을 옆구리가 퍼지고 목에다 손가락을 넣으면 묻어나올 정도로 그걸 먹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고 나서는 끅끅 트림을 하고 소화제를 먹고 그것은 올바른 공양법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들어와도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만두면 만두, 좋아하는 음식이 들어올수록에 팔부(八部)쯤만 받아. 조금 더 먹고 싶어도 적당한 선에서 먹고 그것도 잘 씹어서 먹고 뱃속이 편안해야 정진이 되는 것입니다.

 

뱃속이 불안해 가지고는 절대로 정진이 되지 않습니다. 끌끌거리고 트림이 올라오고, 트림이 나올라다 들어가고 뱃속이 부글부글 끓고 그래가지고 화장실을 노상 드나들고 그래 가지고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수행을 해 가지고 도업을 성취하려는 그런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유치원 학생들한테 한 말이지 최상승법을 닦는 대덕 스님네나 참선하신 그런 스님네께 해당사항이 아니라고 혹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산승도 일찍이 걸망(乞網)을 지고 다닌 때가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도 그렇고 옆에 모다 정진하는 스님네 하는 모습을 보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걸망을 지고 선방에 다닌 스님네는 참 훌륭하고 거룩하고 뒤에다 대고도 절을 하고 싶고, 저절로 합장이 되고 전부 훌륭한 스님네인 것은 사실이나, 다른 어떤 면에서 보면 철이 하나도 안 났습니다. 금방 먹고 배탈 날 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 잔뜩 먹고, 그리고도 고생을 하고도 그다음에 또 국수를 보면 자제를 못합니다.

너무 천진하고 너무 단순해 가지고 아무도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면이 선객(禪客) 스님네한테는 있는 것을 내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한 철 장애 없이 정진하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공양(供養)을 잘 자셔야 정진이 되지, 과식하거나 속식하거나 무리하게 그렇게 잔뜩 먹고는 도저히 정진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씩 그 여독(餘毒)이 가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서 조심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양주 · 채공은 말할 것도 없고, 원주 · 별좌 스님도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올려야 그 공양을 잡숫고 스님네가 배탈이 안 나지, 공양주나 별좌나 채공이나 원주 그런 스님네가 정성 없이 툴툴거리면서 불평불만으로 그럭저럭해서 공양을 올리면 그 공양을 잡숫고 배탈이 많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임을 보신 스님네도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만들고 그리고 받들어야 하는 거고, 선방 스님네는 정말 그러한 정성을 다 잘 알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말로써는 표현은 안 하더라도 적당량을 잘 저작(咀嚼)을 해서 잘 공양을 해야 그래서 배탈이 안 나고 정진을 잘하셔야 그래야 그 정진한 사람에 대한 보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치문(緇門)』 소임장에 보면 소상히 적혀 있어서 여러분은 다 그것을 줄줄, 강원(講院)을 나오신 분은 다 외우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외우면서도 실지로는 실천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런 말씀을 결제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까 이 「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절에 와서 특히 선방에 와서, 비구 선방에나 비구니 선방이나 보살선방(菩薩禪房)이나 전부가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17분14초~25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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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을 책임지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속식(速食) ; 음식을 빨리 먹음.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팔부(八部)쯤만 ; 보통 양의 80% 정도 만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걸망(乞網 빌다·구걸하다 걸/그물·싸다 망) ; 망태기처럼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바랑). 또는 동냥할 때 매고 다니는 베낭(배낭背囊)을 말한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여독(餘毒) ; 몸에 남아 있는 독기.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강원(講院) ; 사찰에 설치되어 있는, 불전(佛典)을 공부하는 교육 기관.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 · 대교과(大敎科)의 네 과정으로 편성되어 있다.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사집과(四集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를 배우고 나서 수학하는 과정이다. 곧 규봉 종밀 스님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都序』), 대혜 스님의 『대혜선사서장(大慧禪師書狀)』(『書狀』), 보조 지눌 스님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節要』), 고봉 원묘 스님의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禪要』)를 말한다.

*사교과(四敎科)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에 이어 배우는 과정이다.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 ; 입중오법(入衆五法).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차제(次第) ; 차례(次例 여럿을 선후先後 관계로 하나씩 벌인 순서).

출가하여 스님으로서의 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출가 생활을 한 햇수를 승납(승랍 僧臘) · 법랍(法臘)이라고 하는데, 스님은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절에서는 속세의 나이로 헤아리지 않고 승납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장유(長幼)의 순서[차제(次第)]를 정하여 왔다.

*불설여사(不說餘事 아닐 불/말할 설/나머지·정식 이외의·다른 여/일 사) ; '자기 소임 이외의 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마라'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자자법(自恣法)'에 나오는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인 입중오법(入衆五法)의 하나.

이 불설여사(不說餘事)라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소임을 가져서 소임의 자격으로써 대중을 위해서 부득이해서 말을 할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벌리지 말라 이것입니다.

 

주지로서 또는 총무로서 또는 원주(院主)로서 당연히 그 소임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대중 스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혹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는 일절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보나, 궂은 일을 보나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만을 묵묵히 성실히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열심히 정진할 뿐인 것입니다.[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에서.

*비구(比丘) : [범] bhikṣu  [파] bhikkhu 파리어(巴利語)를 음대로 쓴 것이다。걸사(乞士) • 포마(怖魔) • 파악(破惡) • 제근(除饉) 등으로 번역한다。남자가 출가하여 중이 되어, 이십 세 이상 된 때에 2백5십 계 되는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뒤에라야 비구라고 부른다.

비구에 다섯 가지 뜻이 있는데  1. 사유 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지내는 것。2. 번뇌 망상을 깨뜨려 버리는 것。3. 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불붙는 번뇌의 집에서 뛰어나는 것。4.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5. 외도와 악마가 무서워하는 것 등이다.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ㅈ/조사선2020. 2. 26. 13:46

조사선(No.685)—(게송)爲他爲己雖微善~ | 무루 조사선인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해야 영원히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조사선이 곧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8, p34. (가로판 p29, p35)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4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이나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廻生死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위타위기(爲他爲己)는 수미선(雖微善)이나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廻生死因)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거, 비록 그것이 선(善)이 아닌 것은 아니야. 틀림없이, 남에게 보시를 한다든지 자원봉사를 한다든지 다 그것이 선(善)이기는 선이나 그것이 조그만한 선(善)이다 그말이지. 그러나 이것이 다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 원인밖에는 안 된다 그거죠.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해 가지고 상(相)을 내고, 자랑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선을 지은 만큼 복을 받기도 하고 또 천당에 가기도 하고 하나 영원성이 없어.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쏘면 아무리 큰 장사(壯士)가 화살을 쏘았다 하더라도 그 올라간 만큼 올라갔다 다시 또 땅으로 떨어지듯이 좋은 일을 해서 복을 받는데, 큰 복을 받는 사람도 있고 작은 복을 받기도 하나, 크나 작으나 복 받을 만큼 받으면 다시 또 타락을 하게 되니까 그것이 영원성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무슨 일을 해야 영원성이 있느냐?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원컨대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이 비치는 그런 데에 가서 길이 무루(無漏)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한다.

무루 조사선이라는 게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활구참선(活句參禪)이여.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행복도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 말씀입니다.(처음~4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 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세 곳.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 세째이다.

 


(1)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 Vaisali)성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 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2)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3)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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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는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漏)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조사선이 곧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행복도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전강 조실 스님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의지하필유대오2019. 12. 31. 18:14

대의대오 소의소오 불의불오(No.685)—(게송)塵勞逈脫事非常~ | 매화꽃 향기 비유, 알뜰하게 화두를 잡고 정진을 해야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대의대오(大疑大悟) 소의소오(小疑小悟) 불의불오(不疑不悟) ;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참고] 『박산화상참선경어(博山和尙參禪警語)』 (成正 集) <卍續藏 第63冊 No.1257> '시초심주공부경어(示初心做工夫警語)'에서.

做工夫 貴在起疑情 何謂疑情 如生不知何來 不得不疑來處 死不知何去 不得不疑去處 生死關竅不破 則疑情頓發 結在眉睫上 放亦不下 趁亦不去 忽朝樸破疑團 生死二字是甚麼閑家具 噁 古德云 大疑大悟 小疑小悟 不疑不悟

 

공부를 짓되 귀한 것이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에 있으니 무엇을 일러 의정이라 하는고? 태어나되 어디서 온 줄을 모를진댄 온 곳을 의심치 않을 수 없고, 죽되 어디로 가는지 모르건댄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

생사의 관문을 깨뜨리지 못한 즉 의정이 몰록 일어나리니, 눈썹 위에 맺어 두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고 쫓아도 가지 아니하야 홀연 하루아침에 의심덩어리[疑團]를 깨뜨리면, 생사 두 글자가 이 무슨 부질없는 것일까 보냐? 엑[噁] !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가로판 p53)

當於本參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參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5분 57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樸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황벽희운(黃壁希運) 선사의 게송(偈頌)입니다. 이 게송을 특별히 단서를 붙이시기를 '이 게송은 후래(後來) 선객들에게, 수행자들에게 대단히 도움이 될 만한 게송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 게송을 읊는다'고 이 게송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진로는 생사진로(生死塵勞)여. 생사해탈하는 일이 이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꽉! 승두(繩頭)를 잡고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한다 이겁니다.

 

승두(繩頭)라고 하는 것은 '노끈 승(繩)'자인데. '노끈 승(繩)'은 목수가 나무를 다듬을 때 먹줄을 탁 튕겨 가지고 그래야 똑바로 그 나무를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하 없는 대목수(大木手)도 먹줄 없으면 나무를 바르게 깎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하는 데서는 무엇이 승두(繩頭)냐 하면은 화두(話頭)입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그것을 탁! 잡아 가지고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한다.

 

이 한바탕이라고 하는 것은 석 달 열흘이 바로 한마당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기간이 바로, 그것이 바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합해서 그것이 한마당인 것입니다.

청춘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처자권속을 버리고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우리는 이 길을 나섰기 때문에 이 화두 하나 이것밖에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樸鼻香)이리요. 매화가 코를 치는 향기를 얻을 수가 있겠느냐.

 

이것은 매화꽃에다가 비유해서 했습니다. 겨울 날씨가 난동(暖冬) 기온으로 뜨뜻하면 매화꽃이 피어도 향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매화가 피어야 향취가 진동을 한다 이것입니다.

알뜰하게 화두를 잡고 정진을 해야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을 여기 비유해서 읊으신 게송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의심(疑心)이 적으면 깨달아 봤자 적은 깨달음 밖에는 못 얻는 거고, 크게 의심을 해야 큰 의심으로 정진을 해 나가야 크게 깨닫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다」 했습니다.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있어서는 의심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리저리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음알이로 뭣을 알려고 하는 그런 참선은 참선도 아닙니다. 그렇게 정진해 가지고서는 아무짝에도 못쓰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은 처음부터서 끝까지 활구참선을 주장을 하셨습니다. 구구절절이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은 뼈에 사무치는 그런 법문인 것입니다.

신심이 없는 사람이 들으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진짜 발심(發心)을 해서 신심으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이런 활구참선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이 돈발(頓發)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당부에 말씀은 조실 스님의 법문에 미루고 이상 내려가고자 합니다.(35분40초~41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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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황벽희운 선사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먹줄 ; ①먹통에 담겨 있는 실줄. 먹물이 묻어 있는 실줄을 먹통에서 잡아 당겨, 줄을 긋고자 하는 곳에 실줄 양쪽을 고정시키고 실줄 가운데를 튕겨서 줄을 내는 데 쓴다. ②먹줄을 튕겨서 낸 줄.

*대목수(大木手) ; 대목(大木). ①목수의 우두머리. ②큰 건축물을 잘 짓는 목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대의대오(大疑大悟) 소의소오(小疑小悟) 불의불오(不疑不悟) ;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참고] 『박산화상참선경어(博山和尙參禪警語)』 (成正 集) <卍續藏 第63冊 No.1257> '시초심주공부경어(示初心做工夫警語)'에서.

做工夫 貴在起疑情 何謂疑情 如生不知何來 不得不疑來處 死不知何去 不得不疑去處 生死關竅不破 則疑情頓發 結在眉睫上 放亦不下 趁亦不去 忽朝樸破疑團 生死二字是甚麼閑家具 噁 古德云 大疑大悟 小疑小悟 不疑不悟

 

공부를 짓되 귀한 것이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에 있으니 무엇을 일러 의정이라 하는고? 태어나되 어디서 온 줄을 모를진댄 온 곳을 의심치 않을 수 없고, 죽되 어디로 가는지 모르건댄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

생사의 관문을 깨뜨리지 못한 즉 의정이 몰록 일어나리니, 눈썹 위에 맺어 두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고 쫓아도 가지 아니하야 홀연 하루아침에 의심덩어리[疑團]를 깨뜨리면, 생사 두 글자가 이 무슨 부질없는 것일까 보냐? 엑[噁] !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중생활2019. 12. 30. 19:18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10분 44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그리고 한 가지 아까 이 「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절에 와서 특히 선방에 와서, 비구 선방에나 비구니 선방이나 보살선방이나 전부가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이 선방에 들어와서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던지 똑똑한 체해서는 참 그것은 안 됩니다.

 

자기가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체해서는 왜 안 되냐 하면은, 세속에서는 대통령을 살거나 장관을 살거나 국회의원을 살거나 지방 뭐 장관을 살거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기가 똑똑한 체해야 먹고삽니다.

사실은 인격적으로 보면은 참 우스울 일이나 세속에서는 잘 살라면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면 밤낮 봉만 잡히고 짓밟히고 살 수가 없으니까 뭣이든 똑똑한 체하고 자기 자랑을 하고 그래야 국회의원도 되고 당선이 되니까 선거 때 되면은 한 사람도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을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자랑하고 남은 어쨌든지 흠집을 내가지고 짓밟고 그래야 뭣이 당선이 되기 때문에 그럽니다마는, 앞으로는 그런 사람 뽑아서는 안 되아 나라꼴이 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마는. 우선 그런 상황인데.

 

선방에 와서 그런 속세(俗世)의 추잡한 언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절에서는 항상 하심을 하고, 남을 존경하고 자비심으로 해야 다른 스님네가 그분을 존경하게 됩니다.

말로써는 안 해도 마음속으로 '참 저분은 수행을 제대로 하신 분이로구나!' 그 스님을 보면 제대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나도 앞으로 저렇게 되어야겠다' 이렇게 될 것입니다.

절에 와선 똑똑한 체해 갖곤 점수가 올라가기커녕은 점점 떨어지고 아무도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특히 시민선방(市民禪房)이나 보살선방(菩薩禪房)에, 집안에 계시면은 다 대접받고 큰소리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오십, 육십, 칠십, 팔십이 되어도 기를 쓰고 방부를 들이고 와서 정진을,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참! 감사할 수밖에 없고 참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소중한 분들이지요.

 

개중에는 그런데 큰소리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그런 분들이 가끔 있다 이 말씀이여. 이번 철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으시기를 바라고, 하심하고 대중법규를 자진해서 지키고 혹 다른 분이 안 지키는 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입승(立繩)이나 그 소임을 가지신 분이 적절히 처리하실 것이니까 다른 분은 전혀 눈에 혹 보이더라도 '아, 나는 저렇게 안 해야겠구나' 그런 정도로만 생각하고 냉큼 화두(話頭)만을 들으시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 잘못하면 시비하고 하다보면 거기서 시비가 일어나기 때문에 일절 보고도 못 본 체, 들어도 못 들은 체, 여기 법당에 들어온 계단 머리에 원숭이 세 마리가 한 마리는 입을 가리고, 한 마리는 눈을 가리고, 한 마리는 귀를 가리고 그런 석상(石像)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정진하는데 그런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들어오시면서 그것을 보시라 이것입니다.

 

선방에는 옛날에 「입차문래(入此門來)인댄 막존지해(莫存知解)다」 이런 글귀도 써 붙이고 또 뭣한 데는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도를 얻은 자는 나가라' 이것입니다. 견성(見性)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으면 나가서 중생 교화를 해야지,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입니다.

 

아마 뭣인가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거나, 속칭 뭐 초견성을 했느니, 한소식을 했느니 그런 생각을 속에다 품고 있어 가지고, 선방에 있어 가지고 꺼떡하면 무슨 아는 소리 하고, 꺼떡하면 무슨 법담(法談)을 한답시고 하다가 수틀리면 목침으로 머리빡을 깨기도 하고 발길로 차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걸망 싸 짊어지고 나가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런 일이 옛날부터서 가끔 있어 왔습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이나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이나 승련사 대중, 위봉사 대중 또 이 세등선원 대중, 복전선원 대중, 이 자리에 모이신 선방 스님네는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는 걸로 알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이런 말씀을 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해서 받아들이시길 부탁을 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머리를 깎고 출가한 여러 도반 스님네, 선배나 동료 후배 스님네 다 같이 금년 여름은 몸도 건강하고, 건전한 신심과 철저한 정법(正法)을 믿는 그러한 마음으로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정말 정말 알뜰하게 정진한 그런 한 철이 되도록 노력을 해 주시고.

또 보살선방이나 시민선방 또는 선방에 방부를 안 들이셔도 가정에서 정진을 하신 보살님네들도 또 거사님네들도 방부 들인 스님네, 방부 들인 보살님네 못지않게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이 정진은 정말 자기를 위하는 수행이고 그것이 바로 정법으로 연결이 되고, 그것이 바로 이 영원한 행복과 연결이 되고, 세계평화의 근본이 되는 그러한 것이라고 깊이 명심을 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하시고 일초일초를 알뜰히 단속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무슨 공안을 선지식(善知識)한테 받았건 간에 그 화두를 자주 바꿔서는 안 됩니다. 정진이 안 되어도 계속해서 한 화두만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땐가는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정진이 때로는 잘된다고 느껴도 좋은 생각도 내지 말고, 정진이 잘 안된 망상이 일어나고 혼침이 오고 그런 때라도 짜증을 내지 말고 잘 선심(善心), 선용기심(善用其心) 해 가지고 그 마음을 잘 지혜롭게 다스려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그리고 그 화두를 들고 해서 잘 그것을 다스려 나갈 줄 알아야 하거든.

이것은 우격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악물고 어거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선원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으시면서 열심히 모다 정진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금년 여름철은 더욱 알뜰하게 정진해 주시기를 재삼 부탁을 드리고 게송(偈頌)을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24분51초~35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육화(六和) ; 교단의 화합과 함께 대중의 수행 자세를 일깨워주는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 육화합(六和合), 육화경(六和敬)이라고도 함. 수행자(修行者)가 서로에게 행위 · 견해를 같게 하여 화합하고, 서로 경애하는 여섯가지 방법.

① 같은 계율을 가지고 수행하여 화동(和同)하고 애경(愛敬)하라[戒和].

② 정견(正見)을 같이하여 함께 해탈하라[見和].

③ 의식을 함께 하여 이로움을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라[利和].

④ 같이 살며 부드럽게 행동하라[身和].

⑤ 다투지 말고 자비롭게 말하라[口和].

⑥ 같이 일하며 남의 뜻을 존중하라[意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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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 ; 입중오법(入衆五法).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차제(次第) ; 차례(次例 여럿을 선후先後 관계로 하나씩 벌인 순서).

출가하여 스님으로서의 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출가 생활을 한 햇수를 승납(승랍 僧臘) · 법랍(法臘)이라고 하는데, 스님은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절에서는 속세의 나이로 헤아리지 않고 승납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장유(長幼)의 순서[차제(次第)]를 정하여 왔다.

*불설여사(不說餘事 아닐 불/말할 설/나머지·정식 이외의·다른 여/일 사) ; '자기 소임 이외의 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마라'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자자법(自恣法)'에 나오는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인 입중오법(入衆五法)의 하나.

이 불설여사(不說餘事)라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소임을 가져서 소임의 자격으로써 대중을 위해서 부득이해서 말을 할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벌리지 말라 이것입니다.

 

주지로서 또는 총무로서 또는 원주(院主)로서 당연히 그 소임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대중 스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혹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는 일절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보나, 궂은 일을 보나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만을 묵묵히 성실히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열심히 정진할 뿐인 것입니다.[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에서.

*비구(比丘) : [범] bhikṣu  [파] bhikkhu 파리어(巴利語)를 음대로 쓴 것이다。걸사(乞士) • 포마(怖魔) • 파악(破惡) • 제근(除饉) 등으로 번역한다。남자가 출가하여 중이 되어, 이십 세 이상 된 때에 2백5십 계 되는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뒤에라야 비구라고 부른다.

비구에 다섯 가지 뜻이 있는데  1. 사유 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지내는 것。2. 번뇌 망상을 깨뜨려 버리는 것。3. 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불붙는 번뇌의 집에서 뛰어나는 것。4.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5. 외도와 악마가 무서워하는 것 등이다.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속세(俗世) ; 세속(世俗).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시민선방(市民禪房) ; 시민선원(市民禪院). 직장인, 학생, 주부 등과 같은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없는 분들이 언제든지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정진할 수 있도록 용화선원에 개설되어 있는 신도 선원.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지어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20.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야  萬古徽猷(만고휘유)로다  入此門來(입차문래)에  莫存知解(막존지해)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 천태평전보안선사(天台平田普岸禪師)의 말씀.

天台平田普岸禪師洪州人也  於百丈門下得旨  後聞天台勝槪聖賢間出  思欲高蹈方外遠追遐躅  乃結茅薙草宴寂林下  日居月諸爲四衆所知  創建精藍號平田禪院焉  有時謂衆曰  神光不昧萬古徽猷  入此門來莫存知解

 

천태산 평전보안 선사는 홍주 사람이다. 백장의 문하에서 종지를 얻은 뒤에 천태산의 수승한 경치에서 성현이 가끔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번 가보고자 하여 멀리 찾아가서 띠집을 짓고는 숲 밑에서 조용히 참선을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부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어 큰 절을 짓고 평전선원이라 하였다.

어느 때 대중에게 말했다. “신령한 광명이 어둡지 않아서 만고에 빛나니, 이 문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전등록 1」 동국역경원, 김월운 옮김. p575-576)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 · 방해가 없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
ㅇ/외호2019. 12. 29. 16:58

외호(No.685)—선방을 외호하는 소임자는 음식 등, 모든 것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서 잘 외호를 해 드려야 합니다 | 공양하는 법 | 入衆五法.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8분 5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그 철에 소임자는 어쨌든지—여기에서 말한 소임은 첫째는 주지나 원장이요, 원주나 총무 · 교무 · 재무요 또는 공양주(供養主)나 채공(菜供)이나 별좌(別座)나 모다 이러한 이 선방을 외호(外護)하는 그런 소임자—정성을 다해서 음식에 대해서나, 모든 것에 대해서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정성을 다해서 신심으로 잘 외호를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어째서 소임자만 그 무슨 빚이 져서 외호만 그렇게 잘해야 하냐?' 혹 그런 생각을 생각할는지 모르나, 현재 선방에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하는 스님네는 과거에 다 그런 소임을 거쳐서 외호를 하다가 또 발심(發心)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을 것이고, 그러니 지금 소임을 보고 있는 스님도 앞으로 소임을 내놓고 걸망을 지고 나가면 또 선방 대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임자는 선방 정진 대중스님네를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외호를 다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방 스님네가 정진을 잘 하시게 되어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방 방부(房付) 들이고 정진하는 스님네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국수면 국수, 만두면 만두, 찰밥이면 찰밥, 들어오는 대로 말없는 가운데에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하면서 잘 씹어서 과식(過食)하지 말 것이며, 속식(速食)하지 말 것이며, 적당하니 공양(供養)을 받아 가지고 잘 씹어서 그 공양이 소화가 잘되도록, 그래야 정진하는 데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국수가 들어오면 좋아한다 해 가지고 몇 사람 몫을 옆구리가 퍼지고 목에다 손가락을 넣으면 묻어나올 정도로 그걸 먹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고 나서는 끅끅 트림을 하고 소화제를 먹고 그것은 올바른 공양법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들어와도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만두면 만두, 좋아하는 음식이 들어올수록에 팔부(八部)쯤만 받아. 조금 더 먹고 싶어도 적당한 선에서 먹고 그것도 잘 씹어서 먹고 뱃속이 편안해야 정진이 되는 것입니다.

 

뱃속이 불안해 가지고는 절대로 정진이 되지 않습니다. 끌끌거리고 트림이 올라오고, 트림이 나올라다 들어가고 뱃속이 부글부글 끓고 그래가지고 화장실을 노상 드나들고 그래 가지고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수행을 해 가지고 도업을 성취하려는 그런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유치원 학생들한테 한 말이지 최상승법을 닦는 대덕 스님네나 참선하신 그런 스님네께 해당사항이 아니라고 혹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산승도 일찍이 걸망(乞網)을 지고 다닌 때가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도 그렇고 옆에 모다 정진하는 스님네 하는 모습을 보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걸망을 지고 선방에 다닌 스님네는 참 훌륭하고 거룩하고 뒤에다 대고도 절을 하고 싶고, 저절로 합장이 되고 전부 훌륭한 스님네인 것은 사실이나, 다른 어떤 면에서 보면 철이 하나도 안 났습니다. 금방 먹고 배탈 날 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 잔뜩 먹고, 그리고도 고생을 하고도 그다음에 또 국수를 보면 자제를 못합니다.

너무 천진하고 너무 단순해 가지고 아무도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면이 선객(禪客) 스님네한테는 있는 것을 내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한 철 장애 없이 정진하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공양(供養)을 잘 자셔야 정진이 되지, 과식하거나 속식하거나 무리하게 그렇게 잔뜩 먹고는 도저히 정진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씩 그 여독(餘毒)이 가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서 조심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양주 · 채공은 말할 것도 없고, 원주 · 별좌 스님도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올려야 그 공양을 잡숫고 스님네가 배탈이 안 나지, 공양주나 별좌나 채공이나 원주 그런 스님네가 정성 없이 툴툴거리면서 불평불만으로 그럭저럭해서 공양을 올리면 그 공양을 잡숫고 배탈이 많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임을 보신 스님네도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만들고 그리고 받들어야 하는 거고, 선방 스님네는 정말 그러한 정성을 다 잘 알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말로써는 표현은 안 하더라도 적당량을 잘 저작(咀嚼)을 해서 잘 공양을 해야 그래서 배탈이 안 나고 정진을 잘하셔야 그래야 그 정진한 사람에 대한 보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치문(緇門)』 소임장에 보면 소상히 적혀 있어서 여러분은 다 그것을 줄줄, 강원(講院)을 나오신 분은 다 외우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외우면서도 실지로는 실천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런 말씀을 결제(結制)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까 이 「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절에 와서 특히 선방에 와서, 비구 선방에나 비구니 선방이나 보살선방이나 전부가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17분14초~25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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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을 책임지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속식(速食) ; 음식을 빨리 먹음.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팔부(八部)쯤만 ; 보통 양의 80% 정도 만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걸망(乞網 빌다·구걸하다 걸/그물·싸다 망) ; 망태기처럼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바랑). 또는 동냥할 때 매고 다니는 베낭(배낭背囊)을 말한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여독(餘毒) ; 몸에 남아 있는 독기.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강원(講院) ; 사찰에 설치되어 있는, 불전(佛典)을 공부하는 교육 기관.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 · 대교과(大敎科)의 네 과정으로 편성되어 있다.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사집과(四集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를 배우고 나서 수학하는 과정이다. 곧 규봉 종밀 스님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都序』), 대혜 스님의 『대혜선사서장(大慧禪師書狀)』(『書狀』), 보조 지눌 스님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節要』), 고봉 원묘 스님의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禪要』)를 말한다.

*사교과(四敎科)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에 이어 배우는 과정이다.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 ; 입중오법(入衆五法).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차제(次第) ; 차례(次例 여럿을 선후先後 관계로 하나씩 벌인 순서).

출가하여 스님으로서의 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출가 생활을 한 햇수를 승납(승랍 僧臘) · 법랍(法臘)이라고 하는데, 스님은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절에서는 속세의 나이로 헤아리지 않고 승납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장유(長幼)의 순서[차제(次第)]를 정하여 왔다.

*불설여사(不說餘事 아닐 불/말할 설/나머지·정식 이외의·다른 여/일 사) ; '자기 소임 이외의 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마라'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자자법(自恣法)'에 나오는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인 입중오법(入衆五法)의 하나.

이 불설여사(不說餘事)라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소임을 가져서 소임의 자격으로써 대중을 위해서 부득이해서 말을 할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벌리지 말라 이것입니다.

 

주지로서 또는 총무로서 또는 원주(院主)로서 당연히 그 소임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대중 스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혹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는 일절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보나, 궂은 일을 보나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만을 묵묵히 성실히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열심히 정진할 뿐인 것입니다.[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에서.

*비구(比丘) : [범] bhikṣu  [파] bhikkhu 파리어(巴利語)를 음대로 쓴 것이다。걸사(乞士) • 포마(怖魔) • 파악(破惡) • 제근(除饉) 등으로 번역한다。남자가 출가하여 중이 되어, 이십 세 이상 된 때에 2백5십 계 되는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뒤에라야 비구라고 부른다.

비구에 다섯 가지 뜻이 있는데  1. 사유 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지내는 것。2. 번뇌 망상을 깨뜨려 버리는 것。3. 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불붙는 번뇌의 집에서 뛰어나는 것。4.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5. 외도와 악마가 무서워하는 것 등이다.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입중오법2019. 12. 27. 09:27

입중오법(No.685)—'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달아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하는 대원력을 가지고 결제를 한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8분 35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우리가 이렇게 결제(結制)를 하면서 삼복성염(三伏盛炎)에 더위를 이겨가면서 청규(淸規)를 지키면서 그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한다고 하는 것은 비록 여러 가지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들 것입니다마는.

 

청규를 지키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에 의지해서 정진하다 보면 그 힘든 속에서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느끼고, 도반과 도반끼리 서로 존경하며 화합하면서 수행 정진해 나가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생사해탈(生死解脫) 길로 우리를 가게 만들고, 구경(究竟)에 가서는 해탈도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우리가 인생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貪瞋癡)를 극복하면서 목숨 바쳐서 도(道) 닦는 충분한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결제 법문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다 들어서 산승(山僧)으로서 노바심절(老婆心切)한 마음으로 몇 마디, 여러분이 앞으로 석 달 동안 정진해 나가는데 보탬이 되기를 원해서 몇 마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세속 일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서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자기도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리라’하는 그런 대원력(大願力)을 가지고 우리는 결제를 하게 된 만큼 결제에 정진을 해 나가는 데에는 반드시 그 선원 나름대로 청규, 규약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분율(五分律)』이라고 하는 경(經)에 다섯 가지를 특별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중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해 나감에 있어서,

첫째는 '하의(下意), 하심(下心)을 해라' 이겁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자기하고 싶은 대로만 해 가지고서는 그 대중이 정진을 올바르게 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각자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항상 겸손하고 하심하고 남의 뜻을 존중히 여기고 청규를 잘 지키면서 그렇게 지내야 한다 그것입니다.

 

둘째는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자비심이라는 게 자기 편할 대로만 하고 자기의 의사만 존중히 여기고, 남을 짓밟고 남의 괴로운 줄을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건 자비심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자비심으로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지장이 있을까?' 항상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과 다른 사람의 하는 일에 대해서 배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심하고 겸손하고 남을 위한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이거거든.

 

셋째는 하심하고 자비심을 가지면 자연히 무엇이 우러나냐 하면은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이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가 잘생겼다. 자기가 많이 배왔다. 자기가 힘이 세다. 자기가 일찍 중이 되었다. 일찍 선방에 나왔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대중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분을 공경하는 마음—자기보다 못 배웠거나, 자기보다 얼굴이 잘 못생겼거나, 자기보다 승납(僧臘)이 낮거나, 자기보다 못한 점이 있다하더라도 그런 점만 볼 게 아니라 그분에 좋은 점을 보고, 그 사람의 잘못된 점은 구태여 보지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의) 좋은 점만을 보고, 남에 단점만 보고 시비를 하면은 그 사람은 대중에서 같이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공경을 하라' 이것입니다.

 

네 번째는 '지차제(知次第)다, 차제(次第)를 알아야 한다'

대중에는 반드시 청규가 있고 법도(法度)가 있고 순서가 있어서 그 차례를 알아서 해야지 그 차례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언행을 한다면 대중을 소란케 만들고 대중 수행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주고, 그 선방이 장애가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시비가 끊일 날이 없어서, 그러한 차제를 몰라 가지고서는 대중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이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불설여사(不說餘事)다. 남의지기 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마라. 이 여사(餘事)라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소임을 가져서 소임의 자격으로써 대중을 위해서 부득이해서 말을 할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벌리지 말라 이것입니다. 그것이 불설여사(不說餘事)인 것입니다.

 

주지로서 또는 총무로서 또는 원주(院主)로서 당연히 그 소임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대중 스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혹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는 일절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보나, 궂은 일을 보나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만을 묵묵히 성실히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열심히 정진할 뿐인 것입니다.

 

이 첫째는 하의(下意)요. 둘째는 자비(慈悲)요. 셋째는 공경(恭敬)이요. 넷째는 지차제(知次第)요. 다섯째는 불설여사(不說餘事)라고 하는 이 입중5법(入衆五法)에 대해서 아마 여러 선방에도 이것이 써서 붙여져 있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이것이 지켜지지 아니할 때 그 철 살림은 무질서하고 엉망이 되고 장애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5법만을 잘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한다면은 무슨 지장이 있고 장애가 있겠습니까.(8분35초~17분1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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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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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고 애지중지 하듯이, 수행자를 따뜻하게 가르쳐 인도하는 마음이 깊고 두터운 것.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오분율(五分律) ;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을 줄인 이름. 5세기초(422~423)에 불타집(佛陀什)과 축도생(竺道生)이 공역. 오부율(五部律)의 하나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3백년 경에 상좌부 계통의 미사색부(Mahīśāsaka 化地部)에서 전해진 율장이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승납(승랍 僧臘 중 승/스님의 나이·승납 랍) ; 출가하여 스님으로서의 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출가 생활을 한 햇수를 말한다. 법랍(法臘) · 납(臘)이라고도 한다.

스님은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절에서는 속세의 나이로 헤아리지 않고 승납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장유(長幼)의 순서를 정하였다.

*차제(次第) ; 차례(次例 순서 있게 구분하여 벌여 나가는 관계).

*법도(法度 법 법/법도 도) ; 법칙(法則)과 제도(制度). 법규(法規)라고도 한다. 지켜야 할 규칙이나 의례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을 책임지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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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No.685)—(게송)爲他爲己雖微善~ | 무루 조사선인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해야 영원히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4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이나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廻生死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위타위기(爲他爲己)는 수미선(雖微善)이나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廻生死因)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거, 비록 그것이 선(善)이 아닌 것은 아니야. 틀림없이, 남에게 보시를 한다든지 자원봉사를 한다든지 다 그것이 선(善)이기는 선이나 그것이 조그만한 선(善)이다 그말이지. 그러나 이것이 다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 원인밖에는 안 된다 그거죠.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해 가지고 상(相)을 내고, 자랑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선을 지은 만큼 복을 받기도 하고 또 천당에 가기도 하고 하나 영원성이 없어.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쏘면 아무리 큰 장사(壯士)가 화살을 쏘았다 하더라도 그 올라간 만큼 올라갔다 다시 또 땅으로 떨어지듯이 좋은 일을 해서 복을 받는데, 큰 복을 받는 사람도 있고 작은 복을 받기도 하나, 크나 작으나 복 받을 만큼 받으면 다시 또 타락을 하게 되니까 그것이 영원성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무슨 일을 해야 영원성이 있느냐?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원컨대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이 비치는 그런 데에 가서 길이 무루(無漏)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한다.

 

무루 조사선이라는 게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활구참선(活句參禪)이여.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행복도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 말씀입니다.(처음~4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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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는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漏)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조사선이 곧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행복도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전강 조실 스님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