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대중생활2024. 1. 16. 13:11

대중생활(No.151)—법회 때, 그리고 법당에서의 예절.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6분 19초)


[법문] 송담스님(No.151)—1981년 9월 첫째일요법회(81.09.06) (용151)

원래 이 일요법회는 설법하는 시간보다도 다 같이 죽비(竹篦)를 치고 참선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그렇게 생각을 해 오고 있습니다.

목탁을 치고 입선(入禪)을 해.
(목탁)


정진(精進).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법당을 나가셔서 댁으로 돌아가시는 걸음걸음 사이에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시고, 댁에 가셔서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이다음 법회 때에 언제라도 여기에 떠억 법당에 들어오시면 부처님께 참배(參拜)를 하시고, 그리고서 자리에 앞에부터 차례차례 적당한 자리에 따악 앉으시면, 앉자마자 따악 반가부좌(半跏趺坐) 따악 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십시요. 다음 그 바로 법회가 시작할 그 시간까지.

들어오신 대로 차곡차곡 차곡차곡 그렇게 해서 열 분, 스무 분, 백 분, 이백 분, 오백 명, 칠백 명 이렇게 들어오셨더라도 한 분도 안 계신 것처럼 그렇게 조용하게 정진을 하시는 가운데에 법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시도록.
여기는 극장도 아니고, 무슨 다른 그런 연회석상도 아니고, 이 법당 안에 들어오셨으면 오직 그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고서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30분이면 30분, 일찍 오신 분은 한 시간이라도 정진을 하시면 그 시간이 얼마나 참 귀중한 시간이 되겠습니까.

옆에 분하고 주거니 받거니 수근수근수근 잡담을 하면 여기에 오신 본의(本意)도 아니고 또 그 한 분, 여그서 떠들면 저그서 떠들고 해 가지고 이 법당 안이 도대체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여기에 오신 분 가운데에는 또 그렇게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또 그렇게 정진하시고 있는 분도 계시는데, 그 정진하시는 분에게 방해도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자기도 열심히 공부하면 남도 공부 잘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되는 것인데,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의 공부하는 것을 방해를 치는 것은 수행인의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용화사 선원은 처음 오신 분도 들어오자마자 탁! 스스로 엄숙해지고 경건해지도록 그러한 이 법보선원이 되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참배를 할 때 혹 향을 가지고 오시던지 초를 가지고 오셨을 때, 불이 안 켜졌으면 가지고 오신 촛불을 켜시면 좋고, 또 향불이 안 타고 있으면 또 당신이 가지고 오신 향을 사롸서 꽂고 절을 하시면 좋지만, 이미 촛불이 켜져 있거나 향이 꽂아 있으면 자기가 가지고 오신 것은 탁자 위에 가지론히 딱 놔놓고 그리고서 경건하게 예배만 올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촛불이 켜져 있는데, 그놈을 탁! 내려서 끄고 당신이 가져온 것을 꽂고, 향이 이미 꽂아 있는데 거기다 또 두 개 세 개 네 개를 잔뜩 꽂아 놓으면 그 연기가 너무 법당 안에 자욱해 가지고 목이 아프고 또 법당이 또 시커멓게 끄실리게 되면 그것도 안 좋은 것이고.

이 법당에 들어서면 은은한 향기가 감돌아야지, 너무 향을 많이 꽂아 가지고 공장 굴뚝같이 되어 가지고서는 존엄성도 없어지는 것이고 위생상으로도 안 좋은 것이고.
하도 부처님이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다고 그래서 유리로 문을 해 닫았습니다. 부처님은 문을 해 닫아 드려서 아무 말씀이 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향을 피는 거, 촛불을 켜는 것을 꼭 그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절대로 향을 많이 꽂는다고 해서 부처님이 복을 많이 주시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갖다 놓으시기만 해도 부처님은 다 아시니까 그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 말을 했습니다마는 제가 정말 여러분께 하고자 한 말을 못다 했습니다.(59분59초~66분14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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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년 동안거 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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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중생활2022. 6. 14. 10:13

대중생활(세등선원No.34)—이 도량(道場)은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도를 닦아 가는 곳 | 마음으로 다져 나가는 채찍질하는 공부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한목 돈발(頓發)하도록 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4분 1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 (세등34)

혼자 토굴(土窟)에 가서—견성(見性)한 뒤에 혼자 토굴에 가서 보림(保任)을 할 때에는 앉아서 졸거나, 누워서 졸거나, 도량을 거닐거나, 밤잠을 안 자고 돌맹이를 짊어지고 이 산봉우리에서 저 산봉우리로 댕기거나, 그거야 자기 멋대로 하겠지만. 이 자리는 득도자출(得道者出)이여. ‘도를 얻은 자는 나가!’

도를 얻어서 견성한 사람은 아무데라도 제멋대로 가서 토굴에 가서 살던지, 오장치를 짊어지고 댕기면서 두타행(頭陀行)을 하던지, 다리 밑에서 얻어먹고 거지떼 하고 어우러서 살던지, 그거야 삼천리강산에 간 곳마다 자기 잘 곳이요, 자기가 살 곳이요, 자기가 머무를 곳이지만.

이 자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알 수 없는 화두(話頭) 하나만을 거각(擧却)하고, 규칙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면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공양하고, 같은 시간에 정진을 하고, 같은 시간에 운력을 하면서 다 같이 금방 들어온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공부해 나가는 그러한 수도원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도량(道場)은 도를 닦아 가는 데에는 가장 이상적인 도량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초학자의 기분으로 도를 닦아 가는 것이다.
‘나는 구참(久參)이니까 그것을 안 해도 좋고, 신참(新參)이나 그런 것을 해라’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것을 구참이 다 솔선해서 다 해.  숙식 같이 하고 무엇이던지 같이 하면서 오히려 모범을 보이면서 그렇게 하는 곳이다.

그리해야 신참이 배우기가 좋고, 신참들이 구참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기 때문에 버럭버럭 수행인으로서의 자질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여.
밤잠을 안 자고 하는 것도 가행정진(加行精進)의 하나요, 오후불식(午後不食)이나 일종(一種)을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한 방법이요, 묵언을 하고 말을 아니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한 방법이지만,
말을 아니 한다든지, 잠을 안 잔다든지, 또는 밥을 굶는다든지, 이러한 것은 육체적인 면으로 가행정진이 표시된 것이고,

진짜 가행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은 그런 밖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정신적인, 마음으로 다져 나가는 채찍질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한목 돈발(頓發)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31분9초~35분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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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두타행(頭陀行) ; ‘두타의 수행’을 말한다. 두타(頭陀)는 산스크리트어 dhūta(흔들어 떨어뜨린다, 버리다, 씻다 등의 뜻)의 음역(音譯)으로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고 오로지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두타행에 12종이 있는데, ①재아란야처(在阿蘭若處, 인가人家를 멀리 떠나 산 숲이나 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는 것). ②상행걸식(常行乞食, 항상 밥을 빌어서 생활한다). ③차제걸식(次第乞食,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한다). ④수일식법(受一食法, 한 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아니한다). ⑤절량식(節量食, 발우 안에 든 것만으로 만족한다). ⑥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이나 사탕 따위도 먹지 아니한다).
⑦착폐납의(着弊衲衣, 헌옷을 빨아 기워 입는다). ⑧단삼의(但三衣, 重衣·上衣·內衣 밖에는 옷을 갖지 않는다). ⑨총간주(塚間住, 무덤 곁에서 살면서 무상관無常觀을 닦는다). (10)수하지(樹下止, 쉴 때에는 정자나 집을 택하지 않고 나무 밑에서 쉰다). (11)노지좌(露地坐, 나무 아래에서 자면 습기, 새똥, 독충의 피해가 있으므로 露地에 앉는 것). (12)단좌불와(但坐不臥, 앉기만 하고 드러눕지 않는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신참(新參 새·처음 신/참구할·참여할 참)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오전에만 걸식(乞食)으로 공양하도록 하고, 오후에는 씹을 수 있는 음식은 먹지 않는 것.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목 ; 한 번에 모두. 한꺼번에 몰아서 함.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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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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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중생활2021. 8. 10. 11:18

대중생활(No.124)—절 생활 전부가 바로 수행이다 | 남 공부 피해 주지 말고 오직 묵묵히 정진하라 | 전강 조실스님께서 말 · 시비 · 잡담하면 관(冠)을 씌운 방편.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11분 24초)

 

 


[법문] 송담스님(No.124)—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 법어(80.05.28) (용124)

금년 여름 안거[夏安居]가 오늘부터 시작이 됩니다. 보살님네들 결제에 들으시면 오래하신 분이나 새로 오신 분이나, 서로 부처님의 제자로서 도반으로서 겸손하고 조용하고, 맑고 깨끗하고 인자로운 마음으로써 오직 '생사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그 생각으로 일분일초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입선(入禪)할 때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방선(放禪)을 하고서도 이 방 저 방에서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무슨 '며느리가 어떻고, 아들이 어떻고, 손자가 어떻고, 뭐 미국을 가고 어디를 가고' 그 쓸데없는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주거니 받거니 해 가지고 옆 다른 사람 공부 좀 할려고 하는 사람까지 못하게 해서 큰 죄를 지을 것이 아니라.

입방선(入放禪) 죽비(竹篦)는 사실은 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오셔서 아침에 일어나서 예불(禮佛)을 하고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고, 그리고 들어가서 입선을 하고 방선을 하고 아침 공양을 하고 그러한 여기 생활 자체가 전부가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죽비 치고 앉은 그 시간만이 수행이 아니고, 세수할 때 그때도 그 화두(話頭)가 역력(歷歷)한가?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할 때 그때도 화두가 역력한가?
숟갈을 들고 젓갈을 들고 밥을 떠 놓고 찬을 뜨는 그때도 화두가 역력한가?
일분일초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아니하고 그렇게 알뜰히 단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편안한 집안을 놔 두고 무엇 하러 이 좁은 방에 이렇게 며느리 아들딸들이 효성으로 받드는 것을 버리고서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 백 리 밖에, 몇만 리 미국에서까지 이 용화사로 공부를 하러 오신 보살님이 계십니다. 그런 보살님은 미국이라고 해서 거기도 절도 있고 거기서도 뭐 편히 지내실라면 얼마든지 지낼 수 있지만 여기에 와서 첫째,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조실 스님이 계시던 그 도량에 와서 조실 스님을 믿는 여러 불자(佛子)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싶어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신심을 가지고 큰 사업을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걸 문을 닫어 놓고 여기를 오셨습니다. 우리는 설사 국내에서 오신 분도 그만한 신심으로 모다 오신 것입니다.
그랬을진대는 그 최초의 그 신심,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한결같이 중단함이 없이 그 생각으로 한 생각 한 생각, 일분 일분, 하루 하루가 이어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공부한다면 어느 누구라서 득력(得力)을 못할 것입니까? 어느 누구라서 깨닫지 못할 것입니까?

죽비 치면 형식적으로 앉었고, 방선하면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자리가 이 자리가 내 자리다, 내가 더 나이가 많고 내가 먼저 절에 들어왔으니까 여기가 내 자리다' 세상에 그러한 철이 안 든 부끄럽기 그지없는 그러한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용화사에 오신 보살님네 가운데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안 계실 줄 생각하지만, 비단 용화사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시드라도 자리를 가지고 문제가 될 것이 없고, 무슨 앉은 순서가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아무데라도 그때 형편 따라서 앞에 앉게 되면 앞에 앉고, 옆에 앉게 되면 옆에 앉고, 뒤에 앉게 되면 뒤에 앉고, 인연 따라서.

나만 좋은 자리에 앉고 다른 사람은 나쁜 데에 몰아넣을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거기에서 하고, 조금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 불편한 것을 자기의 정진력으로 극복하면서 정진을 해 나갈 때에 그 사람이 도업(道業)을 성취할 것이고, 불보살(佛菩薩)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불보살이 우리를 눈여겨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으음, 네가 정말 발심(發心)을 했나, 못했나. 네가 진실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냐, 못하고 있느냐'

속으로는 진실하게 공부를 못하면서 겉으로 남 보기에 진실하게 한 척 아주 그렇게 뽐내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중생도 그러한 모습을 보면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하물며 불보살이 그것을 모르실 까닭이 없습니다. 제석천왕(帝釋天王)과 도량 신장(神將)이 그것을 모르실 까닭이 없습니다.
자기도 참되게 공부를 못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방해를 친 사람이 어찌 성현의 귀여움을 받으며, 신장의 벌을 받지 않고 베기겠습니까?

그동안에 선방에 여러 철을 다니시면서 행여나 그러한 문제로 해서 자기도 신경을 쓰고 남에게 폐를 끼친 일이 있으신 분은 금년부터서는 아주 깨끗하게 그런 것을 청산하고 석 달 동안 거의 말 한마디도 한 바가 없을 정도로 묵묵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억지로 묵언표를 목에다 걸고 벙어리 흉내를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필요할 때는 간단히 한마디해 버리고, 한마디 끝났으면 당장 '이뭣고?' 이렇게 닦아 가는 것입니다. 묵언을 안 해도 저절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저절로 묵언이 되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용화사에 초창기 그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하도 보살님네들이 말을 많이 하고, 시비를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해서 종이로 관(冠)을 만들어 가지고 누구라도 입만 뻥끗했다 하면 그 사람 머리에다가 그 종이로 만든 관을 씌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는 주춤해 가지고 입을 다물고 한 30분이고 한 시간 말을 안 합니다. 그 사람은 계속 그 관을 쓰고 입선도 하고, 관을 쓰고 밥도 먹고 그러다가 누가 뭐라고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풀쑥 한마디하면 그 사람에게 그 종이로 맨든 관(冠)이 이양이 됩니다.

또 그 사람이 또 그 관(冠)을 쓰고 또 다음에 누가 말을 한 사람이 나올 때까지 잘 머리에다가 보관을 하고 있다가 또 누가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또 관(冠)을 그렇게 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그런 방편(方便)으로 잡담 시비를 못하게 하신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고. 그때 계시던 정광명 보살님이라든지 몇몇 보살님네들은 아마 그 관을 써 본 경험도 있으실 것이고 알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이건 참 전강 조실 스님의 우리 그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친손자나 어린 자식처럼 생각하신, 귀엽고 귀여워서 그런 방편을 쓰신 줄 생각을 합니다마는.

금년 여름에도 가만히 내가 밖으로 둘러보고 혹 내가 정진하는 데 들어가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공부를 정말 알뜰히 하신가, 안 하신가를 살펴봐 가지고 정 잡담하는 사람이 많으면 또 그런 종이로 만든 관을 한번 시험해 보기도 하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맨들어 놓으신 법칙 제 1호, 시비(是非)를 일바시거나 싸움하거나 자기도 공부 아니하면서 남 공부를 방해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보따리를 쌓여서 추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금년 여름에 한쪽에서는 불사(佛事)에 여념이 없고 또 법당은 또 금년 철 가운데에 혹 언제 또 철거가 될는지 안 될는지도 알 수가 없고, 설사 철거가 안 된다 하드라도 조실 스님께서 지으신 이 선방에서 공부하는 것은 금년 여름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조실 스님의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조실 스님의 자비가 지금도 도량에 훈훈히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정말 알뜰히 공부를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28분30초~39분5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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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역력(歷歷 지낼·수를 셀·다할·두루 력) ; '뚜렷하다'는 말.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묘사이다. 사유 분별할 여지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현상을 묘사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실 것입니다'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관(冠 갓 관) ; (검은 머리카락이나 말총으로 엮어 만든) 머리에 쓰는 쓰개의 종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일바시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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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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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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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중생활2021. 5. 2. 10:55

대중생활((No.479))—(게송)一波纔動萬波隨~ | 선방(禪房) 대중, 외호(外護) 대중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한마음이 되어야만, 그 회상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된다. 영산회상이 되어야 그 속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분이 나올 것. 이것이 바로 불사(佛事).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14분 50초)

 


[법문]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허고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고  출신방호장부아(出身方號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한 물결이 움직이자마자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 고요한 호수에 돌맹이나 낚싯대를 한번 던져 봐라 그 말이여. 그 찰나에 수천수만의 물결이 거기서 끝없이 일어나더라.
우리가 '한 생각' 딱! 돌이키면 될 일을, 한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탐진치 삼독으로 뻗어나갈 때에는 온 집안을 흔들어 놓고 온 세상을 꾸정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그러한 그 한 생각을 돌이키지를 못하고 끝없이 되풀이를 하니, 마치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이 돌고 돌고 또 돌고 해서 한량없이 도는데 언제 끝날 기약이 없더라.

금년에 이 법보선원(法寶禪院)에 선방 · 사무실 · 후원 · 보살선방 해서 이백 명 대중(大衆)이 이렇게 지내는데, 후원에서 행자들과 또 여러 보살님네들이 모다 참 그 더위 속에서 참 많은 애를 쓰셨는데, 그러한 속에서도 서로서로 말을 조심(操心)하고 행동을 조심(操心)하고, 그 가운데에 일을 잘한 사람도 있고 또 서투른 사람도 있고 그래서, 그 아침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애를 쓰는 가운데에 참 많은 애를 썼지만, 서로서로 충고하고 서로서로 잘 아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가르켜주고 이렇게 해서 화합(和合)한 가운데 일을 잘 추려 나갔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패당(牌黨)을 지어서, '니가 잘한다, 내가 잘한다' '내 시킨 대로 해라'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고 상대방을 짓누르고,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이 석 달 동안에 무장무애하게 이렇게 해제를 맞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자기의 패당(牌黨)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직접 간접으로 압박을 주고 피해를 주는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면, 한 쪽으로는 공덕(功德)을 쌓고 또 한 쪽으로는 공덕을 소멸(消滅)하는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은 공덕(功德)은 좁쌀만큼 짓고 나쁜 업(業)은 산만큼 지어서 그 지은 공덕과 악한 업을 비교하면 비교가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와서 일을 도운답시고 같이 일하는 대중에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주어서 모처럼 신심(信心)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 놓고 압박을 주고, 다시 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도록 한다면 그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무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백 명 식구를 석 달 동안 이렇게 외호(外護)를 하고 한다고 하는 것은 한 사람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 봉사하는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하는 그런 원력(願力)을 가진 신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용화사 후원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어느 선방 어느 후원이라도, 후원에서 그 겨울에는 손이 꽁꽁 얼고 발이 꽁꽁 얼고, 여름에는 아무리 씻고 옷을 갈아입어도 금방 흠뿍 젖고 몸에는 땀띠가 돋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말없이 원주(院主)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밖에 여러 후원 대중들의 그런 수고가 아니고서는 그 한 철 대중이 정진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이 있는 동안 선방(禪房)이 안 없어질 것이고, 선방이 있는 동안에는 어느 선방이나 후원에서 애쓰는 보살화현(菩薩化現)들이 없이는 선방이 잘 운영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원에서 소임(所任)을 보는 원주 스님이나 도감, 별좌나 공양주나 채공, 또 그걸 돕는 여러 자원봉사(自願奉仕)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들도 그런 긍지를 가지고 신심으로써 잘 함으로써 한량없는—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거든. 일하면서도 화두를 열심히 들면 남에게 피해를 줄 필요가 없고, 또 누가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말을 한다고 해도 조끔도 중심(中心)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는 분들이나, 외호(外護)하는 대중(大衆)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마음이 되어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만, 그 회상(會上)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될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되어야 그 속에서, 선방에서 정진하는 대중 가운데에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분이 나올 것이고, 후원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속에서 툭! 터지는 대중이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불사(佛事)인 것입니다. 불사는 자기 하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불사여. 일체 중생(衆生)을 위한 불사이기 때문에 불사는 아상(我相)이 없어야 하고,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아상과 자존심을 버릴 때, 저 사람이 바로 나요, 내가 바로 저 사람이어서 우리가 모두 한 몸뚱이가 되는 것이고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큰 불사(佛事)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용화사(龍華寺)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17년이 되었습니다마는, 이렇게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불사—법당이라든지 선방이라든지 또 이 각 기타 모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볼 수 있는 불사가 이렇게 잘 이루어지고,
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또 이렇게 신도님네들이 이렇게 많이 또 이 운집(雲集)을 하게 되는 것, 또 많은 분들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고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중심으로 해서 최상승법이 온 나라에 이렇게 자꾸 선양(宣揚)이 되고 외국에까지 이렇게 자꾸 선양이 되는 것은 이것이 온통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정진(精進)을 하신, 그와 같은 신심(信心)으로 모든 불사(佛事)에 동참(同參)하신 그 공덕(功德)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산승(山僧)은 믿고 있습니다.

이 살아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모셔 있는 4만7천 위(位)의 이 법보영가, 우주법계(宇宙法界)에 수없는 우리의 선망부모들도 이 법회(法會)와 불사(佛事)에 모두가 다 동참을 하실 수 있도록 항상 이 법회 때마다 그러한 영가들을 이 법회에 청(請)하는 거량(擧揚)을 한 것입니다.
이 법당에 들어온, 또 이 법당에 들어오지 못한 밖에 있는 모든 영가들도 이 법문(法門)을 듣고서 이 불사에 동참을 한 그 공덕으로 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백종날, 이 해제(解制) 법회는 다른 법회보다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또 비명액사한 모든 영가(靈駕)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그러한 법회인 것입니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들께서도 이 법회의 그러한 특별한 의의(意義)가 있는 법회에 대해서 깊이 인식을 하시고 앞으로 이어지는 천도 법요식(薦度法要式)에 경건하게 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49분56초~64분4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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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중생활2020. 4. 8. 18:08

대중생활(No.220)—한 생각 일어나는 그 찰나에 화두를 들어라 | 가정에서도 수행자답게 진실하게 생활해 가족의 존경을 받아야 | 선방 대중생활 규칙을 잘 지켜라 | 선방의 형식상 규칙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정진이 참으로 중대하다.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11분 2초)

 

[법문] 송담스님(No.220)—1983년(계해년) 동안거결제 법회(83.11.19) (용220)

 

이 참선(參禪)은 하나도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에 그 소리가 새 소리가 되었거나, 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되었거나, 애들이 떠들고 고함 지르는 소리가 되었거나, 기차 소리나 전철 소리가 들렸거나, 무슨 뭐 비행기 소리가 나거나,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거나, 무슨 소리를 듣건 바로 그 듣는 바로 거기에서 ‘이뭣고?’

 

누가 나를 칭찬해서 기쁜 마음이 나더라도 ‘이뭣고?’

누가 나를 억울한 소리를 해서 속에서 이 오장이 뒤집어질려고 하는 그 찰나(刹那)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이렇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의 육경六境에 대하여) 여섯 가지 식(識)이 발동을 할 바로 그 찰나에 화두(話頭)를 터억 들어보시란 말씀이여.

 

처음에는 아무 재미도 없고, '이렇게 해 갖고 뭣이 될 것인가?' 그렇게 느껴지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철저한 신심(信心)을 가지고 꾸준히 한결같이 해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모든 면이 자꾸 자꾸 개선되어 가고,

특히 자기의 그 고약한 성질이 어느새 자꾸 순화가 되어 가고, 옹졸한 생각이 하해(河海)와 같이 커지고, 중생(衆生)의 그 못된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어느새 불보살(佛菩薩)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자꾸 승화되어 가는 것을 자기도 느끼고 다른 사람이 봐도 현저하게 자꾸 향상되어 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냐 하면, 평생을 부처님을 믿고 그렇게 정성껏 불공(佛供)을 드리러 다니고 기도하러 다니고 또 노래(老來)에 와서는 선방(禪房)에 그렇게 철철이 다니고 그래도, 며느리나 아들이나 딸이나 손자들이 볼 때에 영 그 고약한 성질이 고쳐진 것이 눈에 띄지를 안해.

그래 가지고 며느리나 아들들의 눈에 '아,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절에를 다니시고 선방에를 다니시면서 참선을 하시는데 어째서 저 못된 성격이 안 고쳐질까? 참, 불교를 믿어도 헛 믿지 않는가' 이렇게 며느리나 아들딸들이 볼 때에 그렇게 보여진다면 그것은 참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이 불교를 가장 진실하게 그리고 돈독하게 믿는 것처럼 입만 벌렸다 하면은 ‘부처님, 관세음보살’ 며느리 보고도 ‘관세음보살 불러라’ 아들 보고도 ‘부처님을 믿어라’, 입으로는 부지런히 포교를 한답시고 부처님을 갖다가 입에다가 걸고 사는데,

그 성격 쓰는 것 보면 별로 존경할 만한 것이 못 되어 가지고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佛法)에 대한 회의심(懷疑心)을 품게 하고 오히려 그 자기 어머니, 자기 시어머니 때문에 불교 믿을 생각이 나지 않게 만든다면 그러한 큰 문제, 그러한 큰 죄가 어디가 있겠느냐 그 말씀이여.

 

절에서는 참 신심 있는 보살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가정에 돌아가면 별로 그렇게 훌륭하게 느껴지지 못한 그런 일이 있다면 잘 반성을 해서 ‘내가 왜 그렇게 된가?’ 그것을 한번 깊이깊이 반성을 해서 고쳐 나가야 할 것이고,

참으로 그 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철철이 빠지지 않고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참선을 하시는데, 선방에 그 간단한 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간단한 규칙을 지키지를 못 해 가지고 대중 가운데 항상 문제를 야기(惹起)를 시키고 다른 사람 공부를 크고 작고 직접 간접으로 방해를 치는 그러한 분이 계시다면 이것은 참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벌써 입선(入禪) 시간이 돌아오면 한 5분이나 10분 전에 다 화장실이고 어디고 갔다 올 데 다 갔다 와서 따악 자리를 안정을 하고 죽비(竹篦) 칠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지리 그 방선(放禪) 시간에는 지대방에서 이러쿵저러쿵 잡담(雜談)을 하다가 입선 시간 임박해 가지고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하다가 시간을 못 맞추는 일.

공양(供養) 시간도 제 시간 안에 다 일보고 와서 미리 와서 딱 안정을 해가지고 해야 할텐데, 다 다른 사람 발우(鉢盂)를 펴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사 모다 들어온다든지. 입선만 시켜 놓고는 밖에 나가서 뭣을 가서 목욕탕에 가서 뭣을 씻어 쌓고, 빨래를 해 쌓고 빨래를 만져 쌓고 야단이거든.

 

이러한 그 사소한 일이지만 이것이 벌써 처음 나온 사람도 그러지를 못할 텐데, 몇 철을 나온 구참(久參) 보살이라는 사람이 그러한 식으로 선방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뭣 하기 위해서 선방에 나왔는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금년 겨울철은 보살님네 선방, 내가 좀 철저하게 단속을 해서 ‘정말 용화사 선원에 가면 정말 공부가 저절로 되고 거기를 가야 진짜 참선 정진할 수가 있다’ 할 수 있을 만큼 그러한 한 철이 되도록 좀 철저하게 단속을 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구 스님네 선방도 해마다 전국에서 좋은 다 청풍납자(淸風衲子) 좋은 선객(禪客) 스님네들이 오셔서 아무 일이 없이 정진들을 잘하고 계십니다마는 잘 못하는 데에도 천차만별이 있지만 또 잘해 나가는 데에도 이만큼만 하면 된다고 하는 한계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잘한 것처럼 형식상으로도 규칙을 잘 지켜야 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정진이 참으로 더 중대하다고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이만큼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금년 겨울은 정말 알뜰하게 정진하셔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금년 이 삼동(三冬) 철에 아주 바닥을 내도록 결판을 내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도봉산에 회룡사 대중, 원효사 대중 또 이 팔정사 대중들도 설사 이 도량(道場)에서 백 리 이상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항시 이 한 도량에서 전강(田岡) 조실 스님을 모시고 여러 스님네와 같이 한 도량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한 철 동안이 하루와 같이 엄숙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정진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30분26초~41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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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늙어 가는 무렵)’을 점잖게 이르는 말.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회의심(懷疑心 품을 회/의심할 의/마음 심)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야기(惹起 이끌•어지러울 야/일으킬 기) ; 일이나 사건 따위를 끌어내어 일으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발우(鉢盂 바리때 발/바리•사발 우) ; '발(鉢)'은 (산스크리트어)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음식 그릇',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食器)를 일컬음.

나무를 그릇처럼 깎아서 칠을 한 스님의 공양(供養, 식사) 그릇. 보통 발우 한 벌은 4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지고, 4개의 그릇이 포개져서 하나의 그릇처럼 보관하며, 공양(식사)할 때 4개의 그릇을 펼쳐 놓는다.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 수행한 사람.

*청풍납자(淸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사람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淸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衲子]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중생활2019. 12. 30. 19:18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10분 44초)

 

[법문]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 (용685)

 

그리고 한 가지 아까 이 「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절에 와서 특히 선방에 와서, 비구 선방에나 비구니 선방이나 보살선방이나 전부가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이 선방에 들어와서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던지 똑똑한 체해서는 참 그것은 안 됩니다.

 

자기가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체해서는 왜 안 되냐 하면은, 세속에서는 대통령을 살거나 장관을 살거나 국회의원을 살거나 지방 뭐 장관을 살거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기가 똑똑한 체해야 먹고삽니다.

사실은 인격적으로 보면은 참 우스울 일이나 세속에서는 잘 살라면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면 밤낮 봉만 잡히고 짓밟히고 살 수가 없으니까 뭣이든 똑똑한 체하고 자기 자랑을 하고 그래야 국회의원도 되고 당선이 되니까 선거 때 되면은 한 사람도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을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자랑하고 남은 어쨌든지 흠집을 내가지고 짓밟고 그래야 뭣이 당선이 되기 때문에 그럽니다마는, 앞으로는 그런 사람 뽑아서는 안 되아 나라꼴이 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마는. 우선 그런 상황인데.

 

선방에 와서 그런 속세(俗世)의 추잡한 언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절에서는 항상 하심을 하고, 남을 존경하고 자비심으로 해야 다른 스님네가 그분을 존경하게 됩니다.

말로써는 안 해도 마음속으로 '참 저분은 수행을 제대로 하신 분이로구나!' 그 스님을 보면 제대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나도 앞으로 저렇게 되어야겠다' 이렇게 될 것입니다.

절에 와선 똑똑한 체해 갖곤 점수가 올라가기커녕은 점점 떨어지고 아무도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특히 시민선방(市民禪房)이나 보살선방(菩薩禪房)에, 집안에 계시면은 다 대접받고 큰소리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오십, 육십, 칠십, 팔십이 되어도 기를 쓰고 방부를 들이고 와서 정진을,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참! 감사할 수밖에 없고 참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소중한 분들이지요.

 

개중에는 그런데 큰소리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그런 분들이 가끔 있다 이 말씀이여. 이번 철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으시기를 바라고, 하심하고 대중법규를 자진해서 지키고 혹 다른 분이 안 지키는 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입승(立繩)이나 그 소임을 가지신 분이 적절히 처리하실 것이니까 다른 분은 전혀 눈에 혹 보이더라도 '아, 나는 저렇게 안 해야겠구나' 그런 정도로만 생각하고 냉큼 화두(話頭)만을 들으시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 잘못하면 시비하고 하다보면 거기서 시비가 일어나기 때문에 일절 보고도 못 본 체, 들어도 못 들은 체, 여기 법당에 들어온 계단 머리에 원숭이 세 마리가 한 마리는 입을 가리고, 한 마리는 눈을 가리고, 한 마리는 귀를 가리고 그런 석상(石像)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정진하는데 그런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들어오시면서 그것을 보시라 이것입니다.

 

선방에는 옛날에 「입차문래(入此門來)인댄 막존지해(莫存知解)다」 이런 글귀도 써 붙이고 또 뭣한 데는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도를 얻은 자는 나가라' 이것입니다. 견성(見性)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으면 나가서 중생 교화를 해야지,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입니다.

 

아마 뭣인가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거나, 속칭 뭐 초견성을 했느니, 한소식을 했느니 그런 생각을 속에다 품고 있어 가지고, 선방에 있어 가지고 꺼떡하면 무슨 아는 소리 하고, 꺼떡하면 무슨 법담(法談)을 한답시고 하다가 수틀리면 목침으로 머리빡을 깨기도 하고 발길로 차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걸망 싸 짊어지고 나가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런 일이 옛날부터서 가끔 있어 왔습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이나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이나 승련사 대중, 위봉사 대중 또 이 세등선원 대중, 복전선원 대중, 이 자리에 모이신 선방 스님네는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는 걸로 알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이런 말씀을 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해서 받아들이시길 부탁을 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머리를 깎고 출가한 여러 도반 스님네, 선배나 동료 후배 스님네 다 같이 금년 여름은 몸도 건강하고, 건전한 신심과 철저한 정법(正法)을 믿는 그러한 마음으로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정말 정말 알뜰하게 정진한 그런 한 철이 되도록 노력을 해 주시고.

또 보살선방이나 시민선방 또는 선방에 방부를 안 들이셔도 가정에서 정진을 하신 보살님네들도 또 거사님네들도 방부 들인 스님네, 방부 들인 보살님네 못지않게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이 정진은 정말 자기를 위하는 수행이고 그것이 바로 정법으로 연결이 되고, 그것이 바로 이 영원한 행복과 연결이 되고, 세계평화의 근본이 되는 그러한 것이라고 깊이 명심을 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하시고 일초일초를 알뜰히 단속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무슨 공안을 선지식(善知識)한테 받았건 간에 그 화두를 자주 바꿔서는 안 됩니다. 정진이 안 되어도 계속해서 한 화두만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땐가는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정진이 때로는 잘된다고 느껴도 좋은 생각도 내지 말고, 정진이 잘 안된 망상이 일어나고 혼침이 오고 그런 때라도 짜증을 내지 말고 잘 선심(善心), 선용기심(善用其心) 해 가지고 그 마음을 잘 지혜롭게 다스려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그리고 그 화두를 들고 해서 잘 그것을 다스려 나갈 줄 알아야 하거든.

이것은 우격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악물고 어거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선원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으시면서 열심히 모다 정진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금년 여름철은 더욱 알뜰하게 정진해 주시기를 재삼 부탁을 드리고 게송(偈頌)을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24분51초~35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육화(六和) ; 교단의 화합과 함께 대중의 수행 자세를 일깨워주는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 육화합(六和合), 육화경(六和敬)이라고도 함. 수행자(修行者)가 서로에게 행위 · 견해를 같게 하여 화합하고, 서로 경애하는 여섯가지 방법.

① 같은 계율을 가지고 수행하여 화동(和同)하고 애경(愛敬)하라[戒和].

② 정견(正見)을 같이하여 함께 해탈하라[見和].

③ 의식을 함께 하여 이로움을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라[利和].

④ 같이 살며 부드럽게 행동하라[身和].

⑤ 다투지 말고 자비롭게 말하라[口和].

⑥ 같이 일하며 남의 뜻을 존중하라[意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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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下心)을 하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공경심을 가지고, 차제(次第)를 알고, 불설여사(不說餘事) 하라」 ; 입중오법(入衆五法).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차제(次第) ; 차례(次例 여럿을 선후先後 관계로 하나씩 벌인 순서).

출가하여 스님으로서의 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출가 생활을 한 햇수를 승납(승랍 僧臘) · 법랍(法臘)이라고 하는데, 스님은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절에서는 속세의 나이로 헤아리지 않고 승납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장유(長幼)의 순서[차제(次第)]를 정하여 왔다.

*불설여사(不說餘事 아닐 불/말할 설/나머지·정식 이외의·다른 여/일 사) ; '자기 소임 이외의 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마라'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자자법(自恣法)'에 나오는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인 입중오법(入衆五法)의 하나.

이 불설여사(不說餘事)라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소임을 가져서 소임의 자격으로써 대중을 위해서 부득이해서 말을 할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벌리지 말라 이것입니다.

 

주지로서 또는 총무로서 또는 원주(院主)로서 당연히 그 소임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대중 스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혹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는 일절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보나, 궂은 일을 보나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만을 묵묵히 성실히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열심히 정진할 뿐인 것입니다.[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에서.

*비구(比丘) : [범] bhikṣu  [파] bhikkhu 파리어(巴利語)를 음대로 쓴 것이다。걸사(乞士) • 포마(怖魔) • 파악(破惡) • 제근(除饉) 등으로 번역한다。남자가 출가하여 중이 되어, 이십 세 이상 된 때에 2백5십 계 되는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뒤에라야 비구라고 부른다.

비구에 다섯 가지 뜻이 있는데  1. 사유 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지내는 것。2. 번뇌 망상을 깨뜨려 버리는 것。3. 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불붙는 번뇌의 집에서 뛰어나는 것。4.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5. 외도와 악마가 무서워하는 것 등이다.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속세(俗世) ; 세속(世俗).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시민선방(市民禪房) ; 시민선원(市民禪院). 직장인, 학생, 주부 등과 같은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없는 분들이 언제든지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정진할 수 있도록 용화선원에 개설되어 있는 신도 선원.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지어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20.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야  萬古徽猷(만고휘유)로다  入此門來(입차문래)에  莫存知解(막존지해)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 천태평전보안선사(天台平田普岸禪師)의 말씀.

天台平田普岸禪師洪州人也  於百丈門下得旨  後聞天台勝槪聖賢間出  思欲高蹈方外遠追遐躅  乃結茅薙草宴寂林下  日居月諸爲四衆所知  創建精藍號平田禪院焉  有時謂衆曰  神光不昧萬古徽猷  入此門來莫存知解

 

천태산 평전보안 선사는 홍주 사람이다. 백장의 문하에서 종지를 얻은 뒤에 천태산의 수승한 경치에서 성현이 가끔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번 가보고자 하여 멀리 찾아가서 띠집을 짓고는 숲 밑에서 조용히 참선을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부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어 큰 절을 짓고 평전선원이라 하였다.

어느 때 대중에게 말했다. “신령한 광명이 어둡지 않아서 만고에 빛나니, 이 문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전등록 1」 동국역경원, 김월운 옮김. p575-576)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 · 방해가 없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