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20.12.11 참선이 안됩니다(No.178)—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공부가 수월하게 되어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
  2. 2020.10.05 복혜구족(No.178)—부처님은 가장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 | 우리는 부처님 제자로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해야.
  3. 2020.10.04 대승계(No.178)—불방일이 참다운 용맹정진 | 한 생각 돌이켜 화두를 들어나가면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져 버리는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
  4. 2020.10.02 불방일(No.178)—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다.
  5. 2020.09.30 득력(No.178)—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공부가 수월하게 되어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
  6. 2020.09.27 교외별전(No.178)—(게송)夢裏明明有六趣~ | 부처님께서 환몽(幻夢)을 깨시고, 49년 동안 그 환몽 깨는 방법을 설하셨다 | 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7. 2020.09.26 참선(No.178)—자기의 생사해탈, 자기의 자유를 위해서 정진하는 것 | 참선은 '좌(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좌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
  8. 2020.09.25 자자(自恣) (No.178)—(게송)昨夜江南雨~ | "지난 안거(安居) 동안에 나에게 법도에 어긋난 일이 있으면 대중은 자비심으로 그것을 지적을 해 주시오"

참선이 안됩니다(No.178)—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화두를 들어도 아주 안될 때,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고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다.

 

*참선이 안됩니다 ; 처음부터 참선이 순일무잡하게 잘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 안되느냐 하면 무량겁을 업(業)을 짓고 업을 받으면서 끝없는 생사윤회의 흐름 속에 살아오다가 ‘이뭣고?’[자신의 본참화두]를 들고 참구해서 그 흐름을 거슬러 생사윤회의 수레바퀴를 꺼꾸로 돌려 가지고 근본의 우리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로 돌아가려 하니까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렵지마는, 생사윤회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부처님과 역대조사의 법문(法門)을 믿고 참선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바른 자세와 호흡 그리고 여법하게 화두를 들고 참구를 계속해서 하다 보면 결국은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망상을 물리치려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안 일어나,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순일무잡하게 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사윤회를 파(破)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심 · 분심 · 의심의 삼요(三要)를 갖추어 불방일(不放逸)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요약]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11분)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 다 용궁에는 그것이 다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교(敎), 경(經) 중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는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千七百)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쉬웁고 너무 가까와서 그래서 하기가 어렵고, 잘되어도 잘된 줄을 모르고 이미 화두가 들어져 갖고 있어... (녹음끊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바로 가르켜 줄 수 있는 스승을 자주 만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애써서 공부를 해 가지고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비를 잘 단속해 나갈 줄을 모르고, 공연히 거기서 스스로 분별심을 내 가지고 공연히 주저하고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스스로 혐의심(嫌疑心)을 내 가지고 아까운 고비를 헛되이 지내버리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의 법문을 보면,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처지고, 나귀를 끌고 우물로 들어가는 거와 같고, 앞도 맥히고 뒤도 맥히고 좌우도 끊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것이 이것이 공부가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크게 깨닫게 될 그 이전의 경계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을 때에 번뇌심을 내지를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두려워서 ‘이것이 내가 이거 잘못 될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서지를 말고 그러한 고비에서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겨라.

‘절대로 물러서거나 공부를 놓아버리지 말고, 잘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냐?’하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쩌 눌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이 오목가슴에 무슨 뭉텅이가 생겨 가지고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되고, 화두를 들어도 머리는 먹먹해 가지고 영 애를 먹을 때에,

그럴 때에는 앉아서 억지로 바울라고 하기보다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적당한 장소에 일직선으로 딱 정해 놓고서, 한 4~50미터를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 놓고 왔다갔다하면서, 단전호흡을 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그러면은 그 답답하고 복잡하고 하는 것이 스르르르~ 하니 그것이 없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말이여.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을 그렇게 포행을 하고서 시원해지거든 다시 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허리를 쭈욱 펴고 극히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아주 개운하고 시원하게 화두가 들릴 것이다 그말이여.

 

또 얼마 동안 잘되어 가다가 다시 또 답답해지면 또 그 앉아서 단전호흡을 몇 번을 하면 또 시원해지면 고대로 시간을 끌고 나가고, 그렇게 해도 또 공부가 안 되면은 또 조용하게 나가서 포행을 하고.

하기는, 여러 대중이 꽈악 짜고 정진하고 있는데 그렇게 들랑날랑하면 옆에 분들이 미안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지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억지로 앉아서 그 죽비(竹篦) 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참 대단히 거북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 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허리가 아프던지, 그렇게 정진이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질라고 하면 조용하게 나가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 가지고 이 고비를 넘긴다면, 그러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앞으로 산철 동안에는 그러한 규칙에 그렇게 크게 얽매이지 않는 계절인 만큼, 지금 산승(山僧)이 일러드린 말씀을 십분 참작해서 그 여름 더운 동안에 못다 한 공부를 이 산철 동안에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그 봉을 빼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27분6초~38분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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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세로판 p28, p34. 가로판 p29, p35.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 若人 失之於口則拈花微笑 皆是敎迹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 皆是敎外別傳禪旨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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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복혜구족2020. 10. 5. 19:02

복혜구족(No.178)—부처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 | 우리는 부처님 제자로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해야 | (게송)塵勞逈脫事非常~.

 

*복혜구족(福慧具足) ; 복(福)과 혜(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함. 복혜양족(福慧兩足)이라고도 한다.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선원이 잘 운영 되었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됩니다.

 

(8분 9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일인데,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은 바로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하는 보살님과 그 근본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백일기도에 들었기 때문에, 그 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이 용화선원이 잘 운영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스님네들이 정진을 잘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 선원이 잘 운영되어 가는데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에 살았겠느냐 그말이여.

법회 때 나와서 법문(法門)을 듣고, 법문을 듣고 가셔서 댁에서 이 활구참선법, 참선을 댁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참선을 하셨으니 어찌 그것이 이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말이여.

 

바로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이다 그말이여. 복을 지어서 선원을 잘 운영해 나갔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어느 분이 복(福)과 혜(慧)를 가장 원만히 구족하신 분이냐?’하면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야말로 천상천하에서 복과 혜,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이다.

 

그래서 삼귀의(三歸依)를 할 때에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두 가지가 족[兩足]한 최고의 높으신 어른께 귀의합니다’

'두 가지가 구족하다'하는 것은 바로 ‘복(福)과 혜(慧), 두 가지가 구족하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에 의해서 닦아 가는 불제자로서 그 두 가지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을 한다면 우리의 정진은 결단코 삿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백일기도 회향이 바로 오늘입니다.

 

‘백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나는 뭐 닦아야 할 복도 없고, 닦아야 할 혜도 없다’ 그리 생각하지를 말고 산철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고, 상(相)에 떨어지지 않는 정진을 해 나가시면, 또 다시 음력 10월 15일이 들면 그때 또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또 가정 형편이 허락이 되면 또 여기에 정식으로 방부를 들여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셔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그 공덕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었던 크고 작은 소원이 반드시 성취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진로형탈(塵勞逈脫)—티끌 수고로운 거,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하는 것이 이 일이 조그만한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밀하게 승두(繩頭)를 잡아서—화두를 놓치지 말고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이 추위가 뼛골 속에 사무치지 아니할 거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것이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핀 매화라야 코를 치는 그러한 향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異常) 기온이 되어가지고 뜨뜻해서 강추위를 아니하면 그런 끝에 핀 매화는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매화꽃이 그러듯이 우리가 정말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뼛골에 사무치는 그러한 간절하고도 알뜰한 정진을 하지 않고서 어찌 고불조(古佛祖)와 같은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을까 보냐 이 말씀이여.

 

이 게송은 황벽 스님께서 우리 후래(後來) 불자를 위해서 일러주신 게송입니다. 수행 납자(衲子)가 하루 한때라도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좋은 좌우명(座右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43분30초~51분3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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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참고]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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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승계2020. 10. 4. 09:52

대승계(No.178)—불방일(不放逸)하는 것이 참다운 용맹정진 | 한 생각 돌이켜 화두를 들어나가면 지킬려고 안 해도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져 버리는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

 

*대승계(大乘戒) ; 몸(행동)으로 지키는 것은 소승계(小乘戒)이고,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으로 지키는 계'입니다.

'행동으로만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지마는, 대승계는 '마음의 계'이기 때문에 행동으로 안 해도 마음으로 살생(殺生)을 할 생각을 먹으면 이미 살생죄(殺生罪)를 범(犯)한 것입니다.

또한 계(戒)를 지키려고 마음을 낼 때, 벌써 계를 범(犯)하게 된 도리가 있어서 몸과 마음으로 다 지키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 마음에서 <한 생각 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몸(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을 단속하는 참선(參禪)을 해 나간다면 계(戒)는 의식적으로 지킬려고 안 해도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佛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를 지킨다는 상(相)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지는 것입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5분 19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정진(精進)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방일(不放逸)인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 '아니 불(不)'자, '놓을 방(放)'자, '편안할 일(逸)'자.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방일한다’고 하는 것은 ‘놓아 지낸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놓아 지낸다’ 그말인데, 그럭저럭 놓아 지내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참정진'이다 이 말씀이여.

 

‘정진을 한다’하면은 꼭 아주 그 가행정진 · 용맹정진, 그 정진상(精進相)을 지어서 막! 이 몸을 갖다가 얽어매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한 것을 갖다가, 몸과 마음을 억지로 구속하고 얽어매 가지고 몸을 못살게 구는 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다 또는 용맹정진이라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마는.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 글자 석 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불방일만 한다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바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화두가 들린다면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24시간 간단없이.

장차(將次)는 참으로 정진이 익숙해지면 꿈속에서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릴 것이고, 꿈도 없고 그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떠억 들린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용맹정진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그렇게 될라면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우리 수행인은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계속해서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다져 간다면 무슨 파(破)해야 할 계율이 있으며, 다시 또 무슨 지켜야 할 계율이 어디가 있으며, 무슨 따져야 할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떡이면 떡, 국수면 국수 그때그때 공양 시간이 되면 공양하고, 잘 시간이 되면 자고, 울력 시간이 되면 울력을 하고, 소지(掃地) 시간이 되면 소지를 하고, 또 빨래를 할 시간에는 빨래를 하고.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만을 알뜰하고 간절하게 단속해 나간다면, 비구 250계(戒), 비구니 348계, 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의식적으로 지킬려고 안 해도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六祖) 스님께서는 『법보단경(法寶壇經)』에 자심(自心), 그 마음, 그름이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계(戒)요, 마음 어지러운 것 · 산란한 것 없는 것이 자성(自性) 정(定)이요, 마음에 그름 · 허물이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 자성(自性)의 혜(慧)라, 이렇게 설파를 하신 것입니다.(38분8초~43분2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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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 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爲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 爲圓滿善法 常習常修堅作恒作 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18권 ‘26. 사의단품(四意斷品)’ 제1~4경 참고 요약.(동진 계빈 승가제바 한역 | 김월운 번역 | 동국역경원)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①비유하면 마치 산(山) · 강(江) · 석벽(石壁) · 온갖 풀百草] · 다섯 가지 곡식[五穀]은 모두 땅을 의지해서 자라나고 큰다. 그래서 땅은 가장 높고 최상(最上)이다.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 도(道)인 37도품(道品)의 법이 다 방일(放逸)하지 않은 땅에 머물러 모든 착한 법을 거기에서 자라나게 한다. 그래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四意斷)을 닦는다.

②여러 조그만 나라의 왕과 여러 큰 나라의 왕들이 다 전륜성왕(轉輪聖王)에게 와서 붙어 가까이한다. 전륜성왕은 거기에서 가장 높고 최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37도품법(道品法) 가운데에서 방일(放逸)하지 않는 법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4의단(四意斷 또는 四正斷)을 닦는다.

③모든 별빛 가운데 달빛이 제일인 것처럼, 이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착한 공덕의 37도품 가운데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가장 제일이요 가장 높고[最尊] 가장 귀[最貴]하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느니라.

④첨복화(瞻蔔華) · 수마나화(須摩那華) 등 천상(天上)과 인간(人間) 세상의 모든 꽃들 중에서 바사화(婆師華)가 가장 제일인 것처럼, 모든 착한 공덕(功德)의 37도품 가운데서는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러면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악(惡)은 생기지 않도록 하고(律儀斷), 이미 생긴 악은 없어지게 하고(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善)은 생기게 하고(隨護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많아지고 오래 가도록 하는 것(修斷)이며, 원만하게 갖추어 닦아 수행하고 마음과 뜻에 잊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4의단을 닦아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불방일의 가르침은 결국 붓다(깨어있는 자, 覺者)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455)—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부처님께서 아함경(阿含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不放逸)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善法]에 있어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 「잡아함경」 (882. 불방일근본경 不放逸根本經), 「상윳다니까야」 (S45:146) 달(月)경 참고.

*선법(善法, 산스크리트어: kuśalā dharmāh, 팔리어: kusala dhamma) ; 선법(착한 법)은 '선한 교법'의 줄임말로, 5계(五戒) · 10선(十善) · 3혜(三慧) · 4혜(四慧) · 4성제(四聖諦) · 3학(三學) · 5온설(五蘊說) · 12연기설(十二緣起說) · 8정도(八正道) · 37도품(三十七道品) · 6바라밀(六波羅蜜) 등 이치에 맞고, 자신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법(法), 즉 도리와 방편, 즉 가르침 또는 선한 행위와 수행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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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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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불방일2020. 10. 2. 18:11

불방일(No.178)—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다.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 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2분 31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이 정진(精進)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방일(不放逸)인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 '아니 불(不)'자, '놓을 방(放)'자, '편안할 일(逸)'자.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방일한다’고 하는 것은 ‘놓아 지낸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놓아 지낸다’ 그말인데, 그럭저럭 놓아 지내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참정진'이다 이 말씀이여.

 

‘정진을 한다’하면은 꼭 아주 그 가행정진 · 용맹정진, 그 정진상(精進相)을 지어서 막! 이 몸을 갖다가 얽어매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한 것을 갖다가, 몸과 마음을 억지로 구속하고 얽어매 가지고 몸을 못살게 구는 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다 또는 용맹정진이라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마는.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 글자 석 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불방일만 한다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바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화두가 들린다면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24시간 간단없이.

장차(將次)는 참으로 정진이 익숙해지면 꿈속에서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릴 것이고, 꿈도 없고 그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떠억 들린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용맹정진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그렇게 될라면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우리 수행인은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계속해서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38분8초~40분4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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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爲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 爲圓滿善法 常習常修堅作恒作 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18권 ‘26. 사의단품(四意斷品)’ 제1~4경 참고 요약.(동진 계빈 승가제바 한역 | 김월운 번역 | 동국역경원)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①비유하면 마치 산(山) · 강(江) · 석벽(石壁) · 온갖 풀百草] · 다섯 가지 곡식[五穀]은 모두 땅을 의지해서 자라나고 큰다. 그래서 땅은 가장 높고 최상(最上)이다.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 도(道)인 37도품(道品)의 법이 다 방일(放逸)하지 않은 땅에 머물러 모든 착한 법을 거기에서 자라나게 한다. 그래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四意斷)을 닦는다.

②여러 조그만 나라의 왕과 여러 큰 나라의 왕들이 다 전륜성왕(轉輪聖王)에게 와서 붙어 가까이한다. 전륜성왕은 거기에서 가장 높고 최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37도품법(道品法) 가운데에서 방일(放逸)하지 않는 법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4의단(四意斷 또는 四正斷)을 닦는다.

③모든 별빛 가운데 달빛이 제일인 것처럼, 이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착한 공덕의 37도품 가운데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가장 제일이요 가장 높고[最尊] 가장 귀[最貴]하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느니라.

④첨복화(瞻蔔華) · 수마나화(須摩那華) 등 천상(天上)과 인간(人間) 세상의 모든 꽃들 중에서 바사화(婆師華)가 가장 제일인 것처럼, 모든 착한 공덕(功德)의 37도품 가운데서는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러면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악(惡)은 생기지 않도록 하고(律儀斷), 이미 생긴 악은 없어지게 하고(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善)은 생기게 하고(隨護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많아지고 오래 가도록 하는 것(修斷)이며, 원만하게 갖추어 닦아 수행하고 마음과 뜻에 잊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4의단을 닦아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불방일의 가르침은 결국 붓다(깨어있는 자, 覺者)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455)—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부처님께서 아함경(阿含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不放逸)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善法]에 있어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 「잡아함경」 (882. 불방일근본경 不放逸根本經), 「상윳다니까야」 (S45:146) 달(月)경 참고.

*선법(善法, 산스크리트어: kuśalā dharmāh, 팔리어: kusala dhamma) ; 선법(착한 법)은 '선한 교법'의 줄임말로, 5계(五戒) · 10선(十善) · 3혜(三慧) · 4혜(四慧) · 4성제(四聖諦) · 3학(三學) · 5온설(五蘊說) · 12연기설(十二緣起說) · 8정도(八正道) · 37도품(三十七道品) · 6바라밀(六波羅蜜) 등 이치에 맞고, 자신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법(法), 즉 도리와 방편, 즉 가르침 또는 선한 행위와 수행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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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득력2020. 9. 30. 08:57

득력(No.178)—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화두를 들어도 아주 안될 때,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고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 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11분)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 다 용궁에는 그것이 다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교(敎), 경(經) 중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는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千七百)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쉬웁고 너무 가까와서 그래서 하기가 어렵고, 잘되어도 잘된 줄을 모르고 이미 화두가 들어져 갖고 있어... (녹음끊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바로 가르켜 줄 수 있는 스승을 자주 만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애써서 공부를 해 가지고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비를 잘 단속해 나갈 줄을 모르고, 공연히 거기서 스스로 분별심을 내 가지고 공연히 주저하고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스스로 혐의심(嫌疑心)을 내 가지고 아까운 고비를 헛되이 지내버리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의 법문을 보면,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처지고, 나귀를 끌고 우물로 들어가는 거와 같고, 앞도 맥히고 뒤도 맥히고 좌우도 끊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것이 이것이 공부가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크게 깨닫게 될 그 이전의 경계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을 때에 번뇌심을 내지를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두려워서 ‘이것이 내가 이거 잘못 될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서지를 말고 그러한 고비에서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겨라.

‘절대로 물러서거나 공부를 놓아버리지 말고, 잘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냐?’하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쩌 눌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이 오목가슴에 무슨 뭉텅이가 생겨 가지고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되고, 화두를 들어도 머리는 먹먹해 가지고 영 애를 먹을 때에,

그럴 때에는 앉아서 억지로 바울라고 하기보다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적당한 장소에 일직선으로 딱 정해 놓고서, 한 4~50미터를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 놓고 왔다갔다하면서, 단전호흡을 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그러면은 그 답답하고 복잡하고 하는 것이 스르르르~ 하니 그것이 없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말이여.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을 그렇게 포행을 하고서 시원해지거든 다시 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허리를 쭈욱 펴고 극히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아주 개운하고 시원하게 화두가 들릴 것이다 그말이여.

 

또 얼마 동안 잘되어 가다가 다시 또 답답해지면 또 그 앉아서 단전호흡을 몇 번을 하면 또 시원해지면 고대로 시간을 끌고 나가고, 그렇게 해도 또 공부가 안 되면은 또 조용하게 나가서 포행을 하고.

하기는, 여러 대중이 꽈악 짜고 정진하고 있는데 그렇게 들랑날랑하면 옆에 분들이 미안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지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억지로 앉아서 그 죽비(竹篦) 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참 대단히 거북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 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허리가 아프던지, 그렇게 정진이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질라고 하면 조용하게 나가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 가지고 이 고비를 넘긴다면, 그러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앞으로 산철 동안에는 그러한 규칙에 그렇게 크게 얽매이지 않는 계절인 만큼, 지금 산승(山僧)이 일러드린 말씀을 십분 참작해서 그 여름 더운 동안에 못다 한 공부를 이 산철 동안에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그 봉을 빼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27분6초~38분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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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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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교외별전2020. 9. 27. 20:42

교외별전(No.178)—(게송)夢裏明明有六趣~ | 부처님께서는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49년 동안 설하신 것은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다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세로판 p28, p34. 가로판 p29, p35.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 若人 失之於口則拈花微笑 皆是敎迹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 皆是敎外別傳禪旨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8분 48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한데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러니,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분명하게 육도(六道)가 있더니—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고, 축생도 있고, 아귀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분명히 그 꿈속에서는 그러한 육도가 있더니, 각후(覺後)에는 공공무대천(空空無大千)이로구나. 깬 뒤에는 비고 비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없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꿈속에 돈 뭉탱이를 주섰다. 하! 이런 보배 뭉탱이를 주섰다.

'이러한 좋은 보배를 평생에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내가 얻었던가!' 그렇게 기쁘고 흐뭇하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꿈을 딱! 깨고 보니까 그렇게 좋아하고 만지작거렸던 그 보물이 간 곳이 없더라.

꿈속에 그 독사란 놈이 물려고 쫓아와서 그 진땀을 흘리고 두려운 공포에 떨었었는데 탁! 눈을 뜨고 보니까 그 혀를 널름거리고 달라들었던 독사가 간 곳이 없더라.

 

천당과 지옥도 중생의 환몽(幻夢)—환상(幻想)의, 환각(幻覺)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천당이 있었고 지옥이 있었고 축생이 있었지만, 중생의 그 환몽을 깨버린다면 천당도 간 곳이 없고 지옥도 간 곳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의 그 피나는 고행을 하셔서, 마침내 납월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 뜬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깨달으신 것이 무엇을 깨달렀냐?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설하신 것이 무엇을 설하셨냐 하면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여.

 

처음에는 바로 그 환몽(幻夢)을 깨는 법을 설하셨지만, 중생의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해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알아듣기 쉬운, 행하기 쉬운 방편(方便)을 설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 바로 이 깨는 법을 여지없이 설하셨다 그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 다 용궁에는 그것이 다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교(敎), 경(經) 중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는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千七百)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22분11초~31분)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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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처전심(三處傳心) ;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한 것. 세 곳이란 첫째는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둘째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세째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다.

 

선종에서는 이를 통해 가섭존자를 전등(傳燈)의 초조(初祖)로 삼는 동시에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 · 이심전심(以心傳心) 등의 근거로 삼는다.

 


①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bahuputraka-caity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śālī)성 서북쪽에 있다. 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 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ūta-parva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 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 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Rā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ś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ī)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세로판 p28~29. 가로판 p29~30.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註解) 三處者 多子塔前 分半座 一也 靈山會上擧拈花 二也 雙樹下 槨示雙趺 三也 所謂迦葉 別傳禪燈者 此也 一代者 四十九年間所說五敎也 人天敎 一也 小乘敎 二也 大乘敎 三也 頓敎 四也 圓敎 五也 所謂 阿難 流通敎海者 此也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니,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禪)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는 것이 이것이다. 한평생 말씀하신 것이란 49년 동안 말씀하신 다섯 가지 교(敎)인데, 첫째는 인천교, 둘째는 소승교, 셋째는 대승교, 넷째는 돈교, 다섯째는 원교이다. 이른바 「아난존자가 교(敎)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然則禪敎之源者 世尊也 禪敎之派者 迦葉阿難也 以無言 至於無言者 禪也 以有言 至於無言者 敎也 乃至心是禪法也 語是敎法也 則法雖一味 見解則天地懸隔 此 辨禪敎二途

 

그러므로 선과 교의 근원은 세존이시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니,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선(禪)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교(敎)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교법이다. 법은 비록 한맛이라도 견해는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떨어진 것이니, 이것은 선과 교의 두 길을 가려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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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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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20. 9. 26. 17:17

참선(No.178)—자기의 생사해탈, 자기의 자유를 위해서 정진하는 것 | 정진이란 '화두를 어떻게 단속을 하고 어떻게 거각(擧却)하느냐'하는 것 | 참선은 '좌(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좌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0분 8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오늘 해제를 하면 걸망을 짊어지고 어디로 갈 것인가? 오대산을 가느냐, 설악산을 가느냐 또는 남해를 가느냐?' 이렇게 걸망 귀신이, 벌써 반살림 지나면 걸망 귀신이 들썩들썩한다고 옛날부터 그런 말이 전해 내려오고.

겨울철에는 납월팔일(臘月八日) 용맹정진(勇猛精進)이 끝나면 벌써 그때부터서는 걸망 귀신이 동요가 되아 가지고 정진할 마음은 벌써 들떠버린다고 그런 말이 있어 왔습니다마는.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반살림이 지내면서부터 더 열심히 정진들을 하시고 해제에 임박해서는 더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들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회룡사나 망월사, 원효사 그 밖에 강진 백련사 그런 데서도 여러 대중들이 많이 오셨습니다마는 거기서도 각각 못지않게 정진들을 잘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진(精進)이라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다른 사람을, 물론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일체 중생을 참으로 위하려면은 우선 자기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사해탈, 자기의 자유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이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고행 정진을 하게 된 만큼, 오늘 해제한 뒤에 참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더욱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동안에 석 달 동안은 삼복더위 중이라 대단히 정진하기가 어려웠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한 더위 속에서도 정진을 늦추지 아니하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하셨거든 하물며 앞으로 넉 달 반이라고 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겨울 결제를 할 때까지는 넉 달—다른 해에는 석 달밖에 없었는데 금년은 윤달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넉 달 반이라고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기간은 춥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는 그러한 좋은 계절입니다. 어쨌든지 그 긴 좋은 기간을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동안에 여기서 저기서 모다 정진하고 오신 스님네들로부터서 여러 가지 그 정진에 관한 문의를 해 왔는데, 정진이란 게 '화두(話頭)를 어떻게 단속(團束)해 나가느냐?' 한마디로 말해서 화두 하나만을 잘 잡드리할 줄 안다면 그 밖의 것은 저절로 다 따라오는 것인데.

사실 정진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화두를 어떻게 단속을 하고 어떻게 거각(擧却)하느냐’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참선은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 그러면 서서 종일 일을 하고, 종일 말을 하고, 종일 서성거려도 상관이 없느냐 하면, 앉은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또한 좌(坐)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 이것입니다.

 

참으로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좌(坐)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고 하는 참뜻을 안다면, 종일 앉아서 한다 해도 상관이 없는 일이요, 종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정진은 여일(如一)하게 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좌(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좌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한 이 뜻을 잘 못 이해한 사람은 ‘좌(坐)에 있지 않다’ 그 말에만 잘못 집착을 하면, 공연히 서서—정진은 진짜 속으로는 되지도 아니하면서 공연히 미친 사람처럼 나부대고 설쳐 대는 데에 가까웁게 될 것이고.

또 ‘좌(坐)를 여의지 않는다’한 그 말에만 집착을 한다면, 너무 앉은뱅이처럼 앉아서만 하는 것만이 공부라고 해서 좌에 국집(局執)하는 그러한 잘못된 정진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좌(坐)에 국집하지 아니한다’해 가지고 공연히 설쳐 대서도 아니 될 것이고, 또 ‘좌를 여의지 아니한다’해 가지고 너무 좌(坐)에만 국집하는 것도, 그것도 올바른 정진이 아닐 것이다.

 

이 두 가지 뜻—‘좌에 국집하지도 아니하고 또한 좌를 여의지도 아니한다’고 하는 이 두 가지 뜻을 참으로 올바르게 인식을 한다면 행주좌와 사위의(四威儀)가 다 좌(坐) 아님이 없을 것이고.

이 도리를, 이 두 가지 뜻을 잘 이해를 못한다면 비록 좌(坐)를 여의지 아니한다 해도 참다웁게 좌선(坐禪)을 못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앞으로 넉 달 반에, 그 긴 좋은 기간 동안에 좌(坐)에 국집하지도 말고 또한 좌(坐)를 여의지도 아니하면서 정진을 알뜰히 해 주실 것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혹 어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러 갈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어느 좋은 도반(道伴)을 찾아갈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어느 성지(聖地) 도량에 순례차 떠날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건강상 휴양차, 건강을 위해서 어느 의원을 찾아가거나 또는 약을 먹기 위해서 어느 장소를 찾아가거나 또는 모래찜을 하기 위해서 강변이나 해변을 찾아가시는 도반도 계실 줄 생각을 합니다.

 

어디를 가시건, 누구를 만나러 가시건, 어데 가서 무엇을 하건, 사람이 살아 있는 이상은 가야 할 데도 있고, 만나야 할 곳도 있을 것이고, 만나 해야 할 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때 그 장소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여의지 아니한다면 어데 간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누구를 만난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어데를 가서 강에 몸을 담그거나 모래 속에 몸을 묻거나,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거나 또는 어느 계곡 어느 봉우리를 발로 등산을 하고 거닌다 하더라도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우리의 한 마음, 한 생각에 있을 것입니다.(12분2초~22분1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ㅈ/자자2020. 9. 25. 14:31

 

 

자자(自恣) (No.178)—(게송)昨夜江南雨~ | "지난 안거(安居) 동안에 나에게 법도에 어긋난 일이 있으면 대중은 자비심으로 그것을 지적을 해 주시오"

 

*자자(自恣 스스로 자/물을·마음대로 자) ; 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자거(恣擧 마음대로 듦)하게 해 그것을 참회(懺悔)하는 의식. 또 타인의 뜻을 따라 자신의 허물을 자거(恣擧)하므로 수의(隨意)라고도 한다.

 

(11분 47초)

 

[법문]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작야강남우(昨夜江南雨)에  동정추수심(洞庭秋水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엽고주객(一葉孤舟客)이  월중천리심(月中千里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작야강남우(昨夜江南雨)에, 어젯밤 강남 비에,

동정추수심(洞庭秋水深)이로구나. 동정(洞庭)에 가을 물이 깊구나.

 

일엽고주객(一葉孤舟客)이  월중천리심(月中千里心)이라.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타고 가는 손[客]이 달 가운데에 천리(千里)의 마음이더라.

 

 

오늘은 임술년 여름 안거 해제일입니다. 동시에 백일기도 회향(廻向)날이기도 합니다.

음력 4월 15일에 결제를 해 가지고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해제를 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금년은 4월에 윤달이 들어서 그래서 6월 15일에 해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동서남북 사방에서 여름 결제를 한 비구 · 비구니 수행 납자(衲子)들이 망월사 또 도봉산에 원효사, 의정부 회룡사, 저 전라도 맨 끄터리 강진 만덕산 백련사, 또 부산에서는 대성암 이런 모다 멀고 가까운 여러 선원에서 정진을 하다가 해제를 맞이해서 이렇게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도 각기 자기 인연 따라서 여기저기에서 정진을 하고서 오늘 해제일에 몇십 리, 몇백 리를 걸어서 부처님 회상(會上)에 모여 가지고 자자(自恣)라 해서 빙 둘러서 앉아 가지고 자자의 의식을 거행을 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자(自)자, 물을 자(恣)자, '자자(自恣)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하면 ‘스스로 묻는다’

‘무엇을 묻느냐?’하면, ‘자기에게 어떠한 허물이 있었던가?’하고 각자 자기의 허물을 대중에게 물어 가지고, 자진해서 대중으로부터 자기의 허물을 직접 지적해 주실 것을 간청을 했던 것입니다.

 

이 법요식(法要式)은 맨 먼저 부처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지난 석 달 안거(安居) 동안에 나에게 수행에 방해가 될 만한 법도에 어긋난 일이 있으면 대중은 자비심으로 그것을 지적을 해 주시오" 이렇게 대중을 향해서 부처님께서 몸소 제일 먼저 자자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대중이 아무 말이 없으면 그 허물이 없었던 걸로 인정을 하고 또 그 다음 목련존자, 또 사리불존자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차례대로 그러한 법요식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물론 부처님께는 무슨 허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법(法)을 존중하는 뜻으로 부처님께서 맨 먼저 그렇게 대중에게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물었을 때에 맨 위에 첫자리에 앉았던 목련존자나 또는 가섭존자나 사리불 그러한 수제자가 부처님 곁으로 경건하게 가까이 가서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면서—그 자자(自恣)를 할 때에는 왼쪽 무릎은 땅에 대고 오른쪽 무릎은 세우고서 합장을 하고 대중에게 묻는데,

부처님께서 그렇게 물으실 때에 그 옆에 있던 맨 윗자리 제자가 부처님께 다가가서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면서,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부처님께 무슨 허물이 있겠사옵니까" 이렇게 해서 공경스럽게 부처님을 일으켜드림으로써 다음 사람으로 그 법요식은 진행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원시경전(原始經典)을 보면 그때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설법을 하시고 제자들을 이끌으시고 하는 그 생생한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승불교(小乘佛敎)라 해서 수천 년간을 푸대접을 받아왔었지만 근자에 이 소승불교 『아함경(阿含經)』과 같은 이러한 경전이 새롭게 학자들에 의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자자를 행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해서 '석 달 동안 어떻게 수행을 했는가? 수행을 하는 동안 행여나 자기에게 어떤 잘못이 없었던가? 다른 대중에게 어떠한 피해는 끼친 바가 없었던가? 자기로 인해서 불법(佛法)에 누명(陋名)은 끼치지 않했던가?' 이렇게 해서 반성을 하고, 자기 혼자 반성을 할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그것을 지적해 달라고 스스로 간청하는 그러한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지금도 해인사나 그 밖에 총림(叢林)에서는 이러한 법요식이 거행되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대단히 좋은 법도(法度)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해제 법요식을 맞이해서 여기에 모이신 비구 스님 또는 비구니 스님 또 여러 청신사 · 청신녀,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낱낱이 부처님 당시에 행해졌던 그 자자(自恣) 법요식을 경건한 마음으로 상기하면서, '스스로 자기에게 어떠한 수행상에 잘못은 없었던가? 부처님 법도에 어긋나는 그러한 일은 없었던가? 나로 인해서 다른 대중에게 피해를 입힌 바는 없었던가?'

고요히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을 해서 행여나 잘못이 있으면 그러한 잘못은 이 자리에서 참회를 하시고, 앞으로 수행해 나가는 데에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청정하게 원만하게 수행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가 한 철, 한 철을 거듭해 나갈 때마다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바로잡아 나가고 자신의 수행을 올바른 궤도에 올려 나간다면, 결정코 금생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말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처음~11분5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