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에 해당되는 글 68건

  1. 2019.04.07 득력(得力) (No.124)—공부하는 사람은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어서 올바르게 닦아야만 바른 깨달음에 도달한다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2. 2019.03.21 장부(丈夫) (No.427)—(게송)勸君須立丈夫志~ | 나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바른 법에 의해서 도(道)를 닦아 가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장부.
  3. 2019.03.21 동사섭(同事攝) (No.240)—각 선원마다의 가풍(家風)에 따르는 것이 동사섭(同事攝) 수행.
  4. 2019.03.03 참선의 자세, 단전호흡 (No.264)—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좌선 시간.
  5. 2019.02.24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No.385)—선종(禪宗)에서는 도솔천 내원궁에 탄생하기를 발원 | 탐진치 삼독심 | 십선법을 행하면 도솔천 내원궁에 갈 표를 끊어 논 것.
  6. 2018.11.09 대력보살(大力菩薩) (No.457)—용궁 스님 | 무서운 생사 속에서 정념을 잃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이 대력보살 | 화두를 드는 것이 정념 | 속효심 내지 말고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
  7. 2018.10.27 도반(道伴) (N0.427)—(게송)兀兀無事對靑山~ | 우리는 불조(佛祖)와 도반, 동창생 / 만나는 모든 사람들 전부가 다 도반이요 전부가 다 불보살 화현(化現).
  8. 2018.10.21 돈오(頓悟) 점수(漸修) (N0.427)—(게송)욕득불초무간업~ | 중봉선사의 돈오점수 말씀. 별립생애 | 깨달음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보다는 바로 활구참선을 해서 생사해탈을 하라.
  9. 2018.08.31 뜬구름[浮雲] (No.791)—(게송)生也一片浮雲起~ | 마지막 숨이 꼴딱 넘어갈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할 것은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밖에는 없다.
  10. 2018.08.31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No.791)—(게송)籠鷄有食湯鍋近~ |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죽게 되더라도 도솔천내원궁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ㄷ/득력2019. 4. 7. 06:51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16분 10초)

 

[법문] 송담스님(No.124)—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 법어(80.05.28)(용124)

 

공부는 다른 게 아니고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못하고 하는 것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언제까지 하냐, 안 하느냐'가 오직 우리의 한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은 마침내 생사해탈(生死解脫) 하는 것이고, 한 생각을 섣불리 방치한 채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를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그렇게 단속을 하신다면 금년 한 철에 결정코 득력(得力)을 하실 것을 저는 보장을 합니다.

'그렇게 알뜰히 공부를 해서 득력을 못한다면 내가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지겠다' 이렇게 과거에 모든 도인(道人)들이 자신 있게 보증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금년 여름에 방부(房付)를 들인 분은 그렇게 공부하시려니와 사정에 의해서 직접 방부를 들이고 와서 공부를 못하시고 가정에서 하신 분들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가정에서 생활하신 그 가운데—손자가 떠들거나 아들이 떠들거나, 무슨 집안에 근심 걱정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것 다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손으로 만질 때, 앉고 서고 눕고 할 때, 무슨 기쁨 · 슬픔 · 괴로움이 있을 때 그때그때를 잘 돌이켜서, 퍼뜩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도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특히 속이 상하고 도저히 그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어려울 때, 긴장하고 당황하고 그럴 때, 그럴 때는 심호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단전(丹田), 하복부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도록 그렇게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들어마시되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아랫배) 뒤에서 직선으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지도록, 그때 가슴은 신경을 쓰지를 말고 배만 아랫배만 약간 볼록해지도록 느끼면 되는 것입니다.

볼록해졌으면 그 상태로 딱 정지해 가지고 3초 동안, 약 3초 동안 지난 다음에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되, '코로 내쉰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로, 쑤욱 배를 당기면서 뒤에로 내 보낸다' 이리 생각을 하세요. 내쉬면은 배는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고.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떠한 초학자라도 그렇게 공부를 다져 들어가면 머지않아서 호흡과 화두(話頭)가 동시에 들어지게 되고 차츰차츰 잊어버리는 시간은 줄어지고 화두를 드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그 편안하고 맑고 깨끗하고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나면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도(道)의 기쁨이 느껴질 것입니다마는 그럴 때에도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아니됩니다.

기뻐하는 마음 내면 기쁨의 마구니에 이미 끌려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럴 때에도 '아! 좋다. 참 이런 상태로 영원히 있었으면' 이러한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됩니다.

 

조금도 잘된다는 생각, 기쁘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 그러한 가운데에도 계속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화두만을 역력(歷歷)히 들어 갈 따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가다가도 뚝 변해 가지고 영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의심이 잘 되지를 않고,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영 상태가 안되고, 그렇게 그러한 또 상태가 오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더라도 조금도 짜증을 내지 말고, 번뇌심도 내지 말고, 심호흡을 계속하되 그래도 여의치 못하면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일직선으로 길을 정해 놓고 한 5분 내지 10분 왔다갔다하면서 화두를 들어 보십시오.

자연히 가슴속이 후련해지고 머리가 청쾌해지면 그때 또 다시 자기 자리에 가서 딱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으십시오. 그렇게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 또 수월하게 또 공부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공부는 스스로 '아, 공부가 잘된다' 생각할 때 그때 보다도 영 공부가 시간이 지루하기가 말로 할 수 없고 몸도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그렇게 그 애를 먹을 때, 그때가 참으로 공부에 있어서 중요한 때인 것입니다.

그때 짜증을 낸다든지 번뇌심을 낸다든지 에이! 공부를 못할거라고 해서 중단한다든지 하면 그건 안되는 것이고, 그럴 때에 아까 말하는 바와 같이 포행(布行)을 하고 심호흡을 해서 잘 고비를 넘기면서 화두를 밀밀(密密)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 그때 공부가 한 걸음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 반드시 득력을 하고 도업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누차에 걸쳐서 말씀을 한 바지만 이 공부는 이론, 지식, 상식, 이러한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서 알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 참선하는 데는 동원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건 고대로 놔둬 버리고 다못 바보가 되어 가지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생각밖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많이 읽은 책, 많이 들은 법문이 하나도 필요가 없고 다못 「이뭣고?」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분별심으로 따져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거듭 말씀을 드리고.

공부를 하다가 어떠한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어떤 경지가 나타나면 설사 그런 경계가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던지, 부처님이 나타나서 무엇을 경책을 주시고, 무슨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시고, 또는 무슨 약을 주시고, 이런 것들이 그런 경계가 나타났다 하드라도 그것은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환상(幻相)으로 나타나는 것이여.

 

환각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참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눈을 뜨고 성성(惺惺)한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거각(擧却)해 나갈 따름이어야지 '하! 이런 것이 나타난 것 보니까 내가 무슨 큰 도를 통할란가보다. 어디 또 헌가 한번 눈을 감고 한번 찾어보자' 이래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가 나타나면 그것이 신기하고 묘해서 누구한테 자랑을 하고 싶고 그렇게 해 가지고 자기가 아주 공부를 잘한 증거로 그런 것이 나타난 것처럼 새로 들어온 사람한테 자랑을 해 가지고 한목 으시댈라고 그러한 짓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참으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옳게 공부를 해 나가면 그런 것이 나타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평소에 그러한 것이 나타나기를 바래는 마음이 잠깐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가지고 그러한 현상이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벽에다 던진 고무공이 다시 자기에게 튀겨져 오듯이 자기가 그러한 마음속에, 그러한 잠재의식 속에 그러한 것이 조금이라도 그런 그림자가 있을 때 그러한 것이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한다든지, 주력을 한다던지, 또는 염불한다든지, 참선 한다든지 해서 그런 경지가 나타난 것이 다 그러한 원인으로 해서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은 정신을 깨끗이 성성(惺惺)한 정신으로 해 나가고 눈을 절대로 감지 말고 뜨고 하고 그러면은 그런 것이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런 경지는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나타나는 것이어서 언제나 성성한 마음으로 공부를 다져 나가고 눈을 뜨고 하면 그런 것이 여간해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혹 본의 아니게 나타났다 하드라도 그것이 참 경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시고 그런 것에 대해서 두 번 다시 신경을 쓰지 말고, 없는 것으로 취급해 버리고 다못 화두만을 성성히 들어 나가십시오.

그러한 신기한 경지가 나타나되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관심을 거기에 기울이지 아니하면 해로울 것도 말 것도 없지만,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꾸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그런 것을 이리저리 남에게 말해 가지고 쓰여 먹고 하면 결국은 거기에서 외도(外道)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한번 삿된 경지에 떨어져 놓으면 여간해서는 바로 잡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나무나 판때기에 못을 박을 때 처음에 박을 때 정확하게 박어야지, 그 조끔 찌그러지게 박아 놓으면 빼서 다시 그 옆에다 박을라고 박아 봤자 다시 아까 그 구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처음에 올바르게 해 가야지, 한번 잘못 들어가 놓으면 잘못인 줄 알고 할려고 해도 하다 보면 다시 그 경지가 딱 나타나 버린다 그말이여.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처음 시작할 때 바른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어서 하고, 해 갈 때에도 자주자주 법문(法門)을 듣고서 그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또 법문을 들어야 빗나가지 아니하고 올바르게 닦을 수가 있고 올바르게 닦아야만 바른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생사해탈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진로형탈, 생사해탈이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여.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라. 긴히 화두를 잡어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이 한번 그 추위가 뼛속에 사무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어찌 매화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삼동(三冬)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만 그 강추위 끝에 핀 매화꽃에서 그 코를 치는, 진동하는 향내가 나는 것입니다. 겨울 날씨가 뜨뜻하면 그러한 뜨뜻한 기후 끝에 매화가 피면 매화꽃이 피기는 피었지만 아무 향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진을 하되 정말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 이 삼요소(三要素)가 돈발(頓發)해서 그 알뜰히 정진을 해야만 그 정진 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그럭저럭 오늘도 그럭저럭, 할 시비(是非) 다 참견하고, 잘 잠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할 짓 다 하고, 그래 가지고 도업을 성취한다고 하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39분56초~56분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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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그렇게 알뜰히 공부를 해서 득력을 못한다면 내가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지겠다'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六O二 ~ 六七五)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一O四五)’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一二三一 ~ 一二九八 또는 一三O八)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一二三八 ~ 一二九五)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역력(歷歷 지낼·수를 셀·다할·두루 력) ; '뚜렷하다'는 말.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묘사이다. 사유 분별할 여지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현상을 묘사한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밀밀(密密 빽빽할·촘촘할 밀) ; 빈틈없이 빽빽히 들어찬 것.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 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 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분별(分別)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 ; 완전히 잠이 들지도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정신이 어렴풋한 순간.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장부2019. 3. 21. 19:25

*장부(丈夫 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7분 54초)

 

[법문] 송담스님(No.427)—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427)

 

권군수립장부지(勸君須立丈夫志)하고  안리막착황금설(眼裏莫着黃金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생수시구장생(人生誰是久長生)고  가련부명재호흡(可憐浮命在呼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권군수립장부지(勸君須立丈夫志), 여러분께 권고하느니 모름지기 장부(丈夫)의 뜻을 세워.

 

장부(丈夫)의 뜻이 무엇인가?

「나도 부처님처럼 역대조사(歷代祖師)처럼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 원래 우리 자신도 부처님이었고, 현재도 우리 안에는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이 우리 몸을 주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닦으면 반드시 자성불(自性佛)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빈부귀천도 따질 것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따질 것이 없고, 나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바른 법에 의해서 도(道)를 닦아 가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장부여.

 

그러니 그 장부의, 대장부의 뜻을 확고하게 세워서 안리막착황금설(眼裏莫着黃金屑)이다. 눈 속에 황금 가루를 넣지 말아라.

 

무엇이 황금 가루인가?

황금이라 하면은 이 세상에 제일 좋은 것이고, 황금만 많이 있으면은 이 세상에 무엇이 부러울 것이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모다 생각을 합니다마는, 그렇게 황금 가루가 다 보물에 칠보(七寶)에 하나에 들어가고 황금 덩어리를 벌기 위해 온갖 참 아주 이 일평생을 바치고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모다 이 고생들을 하는데,

아무리 황금 가루가 칠보라 하지만 그 황금 가루를 눈에다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그말이여.

 

우리 도학자(道學者)에 있어서 황금 가루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부처님의 경전에 있는 말씀, 조사어록(祖師語錄)에 있는 말씀, 자기 나름대로 3년, 5년, 10년 닦아서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반딧불만한 소견(所見) 난 것, 그런 것들이 아무리 애를 써서 자기 나름대로 어떤 한 소견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조(佛祖)의 경지가 아니면 그것을 가지고 얻었다는 생각을 딱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황금 가루를 눈에다 집어넣고 있는 거여.

 

여지없이 버려 버려야지 그걸 짊어지고 자기 살림을 챙기고 있으면 더이상 공부가 나아가지를 않거든. 그러니 깨끗이 놓아버리고 항상 백지 상태로 돌아가야 해.

 

인생수시구장생(人生誰是久長生)인고,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이 누가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사는 사람이 누가 있냐 그말이여.

가련부명재호흡(可憐浮命在呼吸)이다. 참 가련하구나! 이 뜬 목숨이 호흡지간에 있구나.

 

뉴스에, 날이면 날마다 뉴스에 이래 죽고 저리 죽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갑니까. 60년, 70년 내지 8, 90세 살다가 가도 죽을 때는 마찬가진데, 한참 피어나는 고등학생, 대학생 그 어렵게 공부하고 세속에 나가서 겨우 어떻게 좀 살아 볼라고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이리 죽고 저리 죽고.

지금 우리 이렇게 살아있지마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강도 절도, 유괴범 요새는 아주 학생들이 또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그런 청소년 학생 불량배들, 거침없이 사람 목숨을 죽여 가는데, 전화 걸다가 죽고, 전화 기다리다가 죽고.

 

'죽을 사(死)'자를 이마에다 써 붙이고 참선(參禪)을 하라고 이 『몽산법어(蒙山法語)』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는데, 일부러 써서 붙일 것도 없고, 아주 관을 짜서 짊어지고 댕겨야 할 판이여.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까 관을 짜 가지고 댕겨야 거기다 담아야 하게 생겼으니, 이 세상이 얼마나 참 그렇지 않아도 허망한 것인데 나날이 이렇게 사람의 목숨이 하루살이만도 못하게 되어간 것이 여실히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정말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믿고 정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30분15초~38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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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권군수립장부지(勸君須立丈夫志)  안리막착황금설(眼裏莫着黃金屑)'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上) '示可禪人(가선인에게 보임)'

〇勸君須立丈夫志 此生了報大師恩 如今正法將欲墜 早續明燈度迷津 踏碎天下群邪綱 切須要見明眼人 眼裏莫着黃金屑 心田頓拔煩惱根 苦海常泛般若艇 二利功業日日新 丈夫功業只如是 如是之義誓不容易

 

그대는 모름지기 장부의 뜻을 세워 이 생에서 부처님[大師]의 은혜를 갚으시오. 지금에 바른 법이 끊어지려 하나니 빨리 등불[明燈 지혜]을 이어 미혹의 나루[迷津 삼계三界·육도六途]를 건너시오. 천하의 삿된 그물을 모두 찢어 버리고 부디 눈 밝은 사람[明眼人 明眼宗師, 선지식]을 찾아 보시오.

눈 속에는 황금 가루를 넣지 말고 마음밭[心田]의 번뇌의 뿌리를 다 뽑아서 고해(苦海)에 항상 반야의 배를 띄우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업(功業 功德業 선근공덕을 쌓는 일)이 날로 새로워질 것이오. 장부의 공업은 다만 이러하지만, 이 도리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오.

 

*(게송) '인생수시구장생(人生誰是久長生)  가련부명재호흡(可憐浮命在呼吸)'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上) '示祥禪人(상선인에게 보임)'

〇汝初依吾落髮時 雙親感歎便垂泣 父母恩愛重如山 放汝出家情何及 汝知如是父母恩 勤修精進如火急 汝求名利踈道行 便是無間黑業習

人生誰是久長生 可憐浮命在呼吸 是以於我本師尊 捨其王位出城邑 入山苦行示六年 蛛網於眉雀巢肩 蘆芽穿膝任從容 有甚毫氂利名顚 汝今依師學此行 雙親九族必生天 汝違師敎還作無髮俗 自累師親同墮無間獄

 

그대가 내게서 머리를 깎을 때에 양친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었소. 부모의 은애(恩愛)는 산처럼 중하거니 그대를 놓아 보낼 때에 그 심정이 어떠했겠소. 그대는 이와 같은 부모의 은혜를 알았거든 부지런히 정진하고 닦되 불난 것처럼 급히 하시오. 그대가 명리(名利)를 구해 도를 소홀히 하면 그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질 악업(惡業)을 짓는 것이오.

 

인간으로서 그 누가 오래 천년만년 살 것인가. 가련하구나, 뜬 목숨이 호흡 사이에 있소. 그러므로 우리 본사 세존께서는 왕의 지위를 버리시고 왕궁을 떠나 산에 들어가 6년을 고행할 때에 거미는 눈썹에 거미줄을 쳤고 새는 어깨에 둥지를 틀었소. 갈대 싹이 무릎을 뚫었으나 조용했으니 털끝만큼인들 명리에 엎어졌으랴.

그대 지금 스승께 의지해 그런 행을 배우면 양친과 구족(九族)이 천상에 날 것이나, 그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어 머리털 없는 속인[無髮俗]이 되면 스스로 스승과 부모를 안고 무간지옥에 함께 떨어질 것이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칠보(七寶) : [범]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금(金), 은(銀),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조사어록(祖師語錄) ;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Posted by 닥공닥정
ㄷ/동사섭2019. 3. 21. 19:07

*동사섭(同事攝) ;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4섭(四攝 :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하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그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이 일하며 어울려 지내면서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苦樂), 화복(禍福)을 함께 함으로써 자연스레 중생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2분 37초)

 

[법문]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용240)

 

다른 데 선방에 다니신 스님네들은 용화사에 와서 지내시면 무엇인가 좀 다른 데하고 다른 점이 있는 것을 혹 발견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송광사는 송광사대로 또 해인사는 해인사대로 또 통도사나 범어사는 거기 거기대로 또 불국선원은 불국선원대로 그 선원마다 가풍(家風)이 있고 법도가 있어서, 다른 점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쪼끔 자기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 여기는 이렇게 하는구나’

내 마음에는 쪼끔 언짢지마는, ‘여기의 법대로 한번 따라 보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나라고 해서 이렇게 못할 것이 뭐 있느냐’ 그렇게 의젓한 마음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넓은 마음으로 또 그렇게 한번 해 보거든.

 

이러한 좀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정진을 허시면 훨씬 그릇이—앞으로 우리는 내 자신의 생사 문제 뿐만이 아니라 일체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할 그러헌 대원(大願)을 가지고 수행을 해 나가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 중생들은 각기 업(業)이 달라서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얼굴이 다르듯이 그 성격도 다르고, 그래서 그 많은 중생을 제도헐랴면 나도 그 중생과 동사섭(同事攝)을 해야 하거든.

그 중생과 뜻을 맞춰 가면서 결국은 그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에, ‘내’라고 하는 것이 다 비워져 없어져 버려야만 되거든.

 

당장 이 선방에 와서 참선해 나가는 때부터 내 마음, 내 주견(主見), 내 선입관을 버려 버리고 이 선원의 법도에 따르는 연습부터 해야, 그래야 나중에 일체 중생을 제도할 때 동사섭 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갖추어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37분51초~40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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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풍(家風) ; ①종풍(宗風)—종문(宗門)의 풍규(風規 풍습상의 규정). 문풍(門風)—선문(禪門)에 있어서의 종풍(宗風).

②선림(禪林, 선종禪宗)에서의 행위의 규범. 청규(淸規, 선원에서 일상의 생활규정). 선종에서 가르침을 나타낼 경우, 각자가 갖는 독자적인 방식, 또는 지도의 방법을 말함.

③그 종(宗)만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④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주견(主見) ; 자기의 주장을 담은 의견.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19. 3. 3. 16:09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19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264)—1985년 4월 첫째 일요법회(용264)

 

법회 때마다 오셔서 ‘참선은 좋다. 이뭣고?를 해라’ 이런 말씀을 수없이 귀에 들었지만, 실상 이 가운데에 본격적으로 참선을 하고 계신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되시며,

참선이라고 헌 것에 대해서 얼마만큼 확실하게 이해를 하시고, 또 ‘이뭣고?’를 어떻게 해야 하며, 단전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하시고 실천하고 계신 분은 정말 그렇게 많지 못하시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자세>

 

참선(參禪)은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는 것은 이것이 참선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또는 시간이 있는 대로 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항상 익혀서 습관을 들이도록.

처음에는 발목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그렇지만 그러한 고비를 참고 견디면서 꾸준히 하면 나중에는 한 시간을 까닥하지 않고 앉았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두 시간 내지 서너 시간씩을 앉았어도 다리가 저린 법이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오랫동안 앉었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앉었거나 섰거나 상관없이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한결같이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 덩어리가 우리의 단전(丹田)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잘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부좌나 반가부좌는 참선의 기본자세인 만큼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은 서서도 헐 수 있고, 걸어가면서도 헐 수 있고, 누워서도 할 수 있고, 차를 타거나 일을 하면서도 헐 수가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어데서, 언제, 무엇을 허고 있을 때라도 이 공부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을 때처럼 똑같이 잘되도록 우리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은 그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이 순서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기본자세는 바로 이 가부좌, 반가부좌인 것입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다 올려놓고, 또 왼발을 오른쪽 무릎에다 올려서 이렇게... 다리를 이렇게 해서 딱 앉고.

그리고 손은 오른손 위에다가 왼손을 포개 놓고, 엄지손가락을 이렇게 딱 맞대서,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배꼽 앞에 아랫배 있는 데다 갖다가 딱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따악 이렇게 중심이 잡히도록 해 놓고서,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이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갖다 딱 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선하는데의 기본자세입니다.

눈을 너무 뚝 부릅뜨면 산란(散亂)하고, 눈을 너무 감으면은 혼침(昏沈)에 떨어지기 쉽고, 또 눈을 감고 하면은 처음에는 좀 밖의 경계가 보이질 아니하니까 잠잠하고 조용하고 공부가 더 잘된 것 같이 느껴지지만.

 

눈을 감고 참선을 해 버릇하면 나중에 이상한 헛것, 환상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이 망상(妄想)이 가라앉아서 심경(心境)이 고요해지면 그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에 떨어지기가 쉽기 때문에,

참선허는데 있어서 눈을 감고 익히지를 말고 눈을 항상 평상으로 떠서 자기 앉은 자리에서 약 2미터나 3미터 정도에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凝視)허거나 주시(注視)를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2미터나 3미터 지점에다가 콩 같은 것을 하나 갖다 놓고 그것을 갖다가 응시하는,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 해서, 서양 사람이 참선을 소개하는 책을 보니까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고 써진 것을 내가 본 일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유치원 학생들에게는 혹 그 콩을 놓고 ‘여기 봤다 저기 봤다 하지 말고, 그 콩을 한 30분 꼼짝 말고 들여다보고 있어라’ 이렇게 해서 유치원 학생에게 참선을 시킬 때는 혹 그런 방법을 써볼 수도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른들은 그렇게 허시지 말고 그냥 눈을 평상(平常)으로 뜨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하지는 말고, 다맛 눈을 2미터 지점에다가 떨구기만 허되 의식적으로 어떤 점을 응시(凝視)를 허지 말아라.

 

 

<준비 호흡>

 

그렇게 하고서 숨을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뜩 들어마시되, 가슴에 가뜩차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해 보세요.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꾹 참고 있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서 입으로 '후~'허고 다 내뿜어 보세요. 그러면 가슴이 미어질 듯 (숨이) 가득했던 가슴이 인제 더이상 바람이 한 점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다 토해 내는 것입니다.

다 뱉은 다음에 또 스르르르르 허니 또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또 가슴을 약간 들은 듯 허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다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또 입으로 후~ 허고 내뿜는 것입니다.

 

이렇게 2번 내지 3번을 허고 나면 가슴속에 있는 묵은 공기가, 저 가슴속에 구석구석 있던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고, 새 공기가 가슴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에 들어가는, 단전호흡에 들어가는 ‘준비 호흡’이라 하는 것입니다.

 

 

<본 호흡> ①방법 -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이렇게 준비 호흡이 3번이 끝났으면 그다음에는 인자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본 호흡은 아까처럼 빨리 그리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잔뜩 들어마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스르르르르르 허니 코로 들어마셔요.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배꼽 밑에 아랫배, 단전이 볼록해지도록 허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이 들어마신 공기가 가슴을 통하고 윗배를 통해서 아랫배까지 이렇게 해서 밀어넣는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왜 큰일이 나느냐?

 

아무리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보낼라고 해도, 이 가슴까지 밖에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왜 그러냐?

허파가 가슴에만 있고 허파 밑에는 횡경막(橫膈膜) 가로막이 있어 가지고, 그 가로막 밑에까지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는데, 그놈을 억지고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넣을라고 하니까 이 가슴에 콱 맥혀 가지고.

 

처음에 한두 번은 괜찮은데 10번, 20번, 하루, 이틀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 오목가슴 눌러보면 아프고 답답하고 뻐근하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이 좋다 좋다해서 단전호흡 허다가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답답한 병이 생겨서 고민을 허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그렇게 허기를 3번을 허되,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들어마신 호흡이 이리해서 아랫배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생각을 아니하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이 아랫배가 앞으로 이렇게 나오도록 그렇게 생각을, 의식을 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뿜을 때도 이리해서 코로 이리 내보낸다’ 이렇게 생각허지 말고,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호흡을 허는 것입니다.

 

숨을 들어마실 때는 가슴은 그냥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허게 맨들면 되아요, 의식적으로.

또 숨을 내쉴 때는 물론 코로 나가지만 ‘코로 내쉰다’는 생각은 전혀 허지 말고,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져 등어리가 붙으면서 ‘호흡은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리 생각을 하고 호흡을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이것입니다.

 

그렇게 헌다면 가슴이 답답할 것도 없고, 오목가슴이 아플 것도 없고, 소화가 안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미 올바르게 호흡을 해서 단전호흡을 잘하고 계신 분도 계시겠습니다마는, 호흡법을 아직 확실히 통달허지 못한 분, 그런 분은 오늘 제가 말씀드린 방법에 의해서 단전호흡을 서서히 익혀가도록.

 

 

②호흡의 양 - ‘8부쯤만’

 

주의할 것은 숨을 들어마실 때에,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지만 그렇게 허는 것은 3번만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숨을 들어마시며 배가 앞으로 차츰차츰차츰 볼록해지는데, 그때도 ‘배가 터지도록 맹꽁이처럼 잔뜩 들어마셔야 허냐’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8부쯤만 들어마셔. 앞으로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십분(十分) 다 들어마시지 말고, 100% 다 가득 터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8부쯤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부담이 없지요.

또 내쉴 때에도 완전히 다 내뿜는 게 아니여.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을 약간 조인 듯 허면서 완전히 다 내뿜지만,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내뿜을 때에도 너무 완전히 다 내뿜을라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드니까 8부쯤만 내뿜는 거여.

 

들어마실 때에도 8부쯤만 들어마시고, 내쉴 때에도 8부쯤만 내쉬어서, 부담없이 무리없이 편안하게 들어마시고 편안하게 내쉰다면, 30분을 계속해서 단전호흡을 한다 해도 하나도 힘들지를 않고 편안한 것입니다.

 

 

③호흡 시간 - ‘무리가 없이 하라’

 

이 단전호흡을 잘못해 가지고—너무 100% 들어마셔 가지고 또 될 수 있으면 오래 참을수록 좋다 하니까, 꽉 참아서 얼굴이 뻘게지도록 10초 20초 30초씩 억지로 참았다가 또 내쉬니까, 10번도 못해서 헐근헐근하고, 중간에 한번씩 쉬었다가 호흡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피가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고, 그렇게 해서 오래오래 허면 백 살 이백 살도 산다 하니까, 그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기 위해서 이 단전호흡을 허다가 사십도 못 가고 피를 막 토하면서 그렇게 죽은 사람도 중국에나 한국에나 일본에나 상당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좋다해도 잘 알아서 여법(如法)허게 해야지, 좋다고 한다고 마구잽이 막하면 반드시 해(害)를 보는 것입니다.

 

인삼, 녹용이 좋다 하니까 동이로 그놈을 삶아서 막 먹고 혈압이 올라서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요새 몸과 팔다리를 막 흔드는 에어라빅인가 그것 좋다고, 그러면 살이 빠지고 좋다니까, 그 몸이 비대하고 혈압 높은 분이 가서 막 흔들어 대다가 혈압이 막 오르고 해서 허리 아픈 생병(生病)을 얻은 그런 예도 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이 참선법도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러헌 좋은 것이지만, 이것도 방법을 잘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 잘못 허다가는 이것도 또한 얼마든지 병이, 생병이 날 수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이 호흡법도 잘 알아서 하되, 제일 중요헌 것은 ‘무리가 없이 허라’ 이거거든.

 

숨 한번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초, 8부쯤 들어마셨으면은 일단 딱 정지해 가지고 약 3초 동안을 딱 정지를 했다가 또 조용허게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은 약 3~4초 내지 4~5초 조금 길게 시간을 잡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분은, 숨 들어마셨다 잠시 정지했다가 내쉬는 거 합해서 10초 내지 십이삼 초 이런 정도로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것도 걸어다니다가 왔거나, 달음박질한 뒤끝에는 그렇게 안 됩니다. 그때는 숨이 급허면 급헌 대로, 숨이 짧으면 짧은 대로 하다가 차츰차츰 무리 없이 익혀 나가야지,

그래서 석 달이나 1년, 3년 나가면 이 숨도 차츰차츰 길어져서, 숨 한번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한 20초도 걸리기도 하고 30초도 걸리기도 허는데, 그것도 체질 따라서 숨이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체질에 맞추어서—꼭 길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니까, 억지로 길게 늘릴려다가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하시기를 바라고.

 

 

이 자세를 바르게 허고, 또 단전호흡을 허는 것은, 참선을 올바르게 해 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한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기초가 되는 것인 만큼 앉는 자세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좌선 시간>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고 그렇지만, 이것도 10분 20분씩 차츰차츰 늘려가고 30분씩 늘려가고 또 나중에 1시간이 되면 더이상은 계속해서 앉을려고 말고, 1시간이 되면은 일어서서 포행(布行)을 헌다든지 다리를 뻗고 다리를 오그리고 또 발목을 돌리는 그러헌 운동을 해서 몸을 좀 풀고 그래 가지고 한 10분간 그렇게 쉬었다가. 그래 가지고 다시 또 앉아서 1시간, 이렇게 해서 2시간을 하신다면 중간에 1시간 (앉은 후)에 쉬는 시간을 갖고.

또 1시간을 헌다면, 중간에 한 30분쯤 해서 한 5분쯤 잠깐 포행을 하고 발목 운동도 하고 이렇게 해서 중간에 그런 포행 시간을 갖고 이렇게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간다면 아무 부작용은 없이 공부는 나날이 익숙해질 것입니다.(33분34초~53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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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횡격막(橫膈膜) ; 포유류의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막. 수축과 이완에 따라 위아래로운동을 하여 폐의 호흡 작용을 돕는다.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Posted by 닥공닥정
ㄷ/도솔천내원궁2019. 2. 24. 08:47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11분 55초)

 

[법문] 송담스님(No.385)—1989년 3월 첫째 일요법회(용385)

 

오늘은 불명(佛名)을 신청하신 분이 불명을 타고, 또 화두(話頭)를 신청하신 분이 화두를 타고, 또 이 불명을 신청하신 분에게 오계, 십선법을 설해 드리는 날입니다.

 

계(戒)에는 오계가 있고, 처사 오계, 사미 오계가 있고 또 비구 이백오십계, 비구니 오백계 그리고 보살계에는 십중대계와 48경계가 있고. 이렇게 많은 여러 가지 종류의 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문중(禪門中)에서는 십선법, 십선계(十善戒)를 닦아가지고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에는 앞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이 염부제(閻浮提)에 출생하실 미륵(彌勒) 부처님이 현재 보살의 지위로 도솔천 내원궁에 지금 대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쨌든지 이 십선계를 잘 닦으면서 활구참선, 이 활구참선(活句參禪)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열심히 닦어.

이게 닦아가지고 도솔천 내원궁에 탄생하기를 항상 기도를 하고 축원(祝願)을 하고 발심(發心)을 하면 우리 숨이 뚝 떨어지자마자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탄생을 해 가지고 미륵 보살님을 친견하고.

 

그 미륵 보살님 회상(會上)에서 계속해서 법문을 들으면서 참선(參禪)을 하다가, 거기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미륵 부처님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실 때, 미륵 부처님을 모시고서 이 땅에 같이 하생(下生)을 해 가지고 미륵 부처님의 제자로서 미륵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거기에 미륵 부처님을 도와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그러한 원(願)을 세워 왔습니다.

 

우리 선종(禪宗)에서는 그래서 옛날부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러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지 않고 십선계를 잘 지키면서 참선을 해 가지고 도솔천 내원궁에 탄생하기를 발원(發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선계가 무엇이냐?

몸으로 세 가지, 또 입으로 짓는 죄 네 가지, 또 뜻으로 짓는 죄가 세 가지, 이렇게 해서 합해서 열 가지인데 이것을 십악(十惡)이라 그러는데.

 

그러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죄악은 무엇이냐?

산목숨을 죽이는 거, 둘째 도둑질하는 거, 셋째 사음을 하는 거. 이것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죄악이다.

 

그다음에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죄는 무엇인고?

망어(妄語), 거짓말하는 거. 기어(綺語), 이리저리 진실치 못하게 꾸며 대는 거. 셋째, 두 가지 말로 사람을 이간(離間)을 붙여. 이간을 붙여 가지고 간에 가 붙었다 쓸개에 가 붙었다 그러면서 남을 속이고 그래가지고 아첨을 하고 해가지고 그런 것이 '두 가지 말[兩舌]'이다.

넷째에 가서 악구(惡口), 욕하는 거여. ‘호랭이 물어 갈 놈’ ‘벼락 맞을 놈’ 온갖 입에 못 담을 고약한 욕을 아주 남에게 부해가 나서 남에게도 하지만 자기 집안에 애들한테도 꺼떡하면 입에 습관이 되어 가지고 그렇게 막 욕을 퍼붓는다 그말이여. 그 욕이 입으로 짓는 네 가지와.

 

그다음에 뜻으로 짓는 세 가지는 탐, 탐심(貪心), 욕심내는 거. 또 진심(瞋心), 골내는 성내는 거. 셋째에 가서 어리석은 마음[癡心]을 내는 거.

그래서 몸으로 세 가지, 입으로 네 가지, 뜻으로 세 가지, 합해서 이것이 열 가지인데 이것을 십악이라 그러는 것이고.

 

그 십악을—살생을 하지 않고 오히려 죽어 가는 목숨을 살려 주면 요것이 '착할 선(善)'자 선이 되고, 도둑질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물건을 남에게 보시를 하면 이것이 또 선(善)이 되는 것이고.

또 음행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항상 청정하게 갖는다 말이여. 그러면 몸으로 짓는 삼악이 삼선으로 변하는 거고.

 

또 거짓말하고 꾸며 대고, 또 두 가지 말로 이간질하고 또 욕하는 대신 항상 진실한 말을 하고 또 꾸며 대지 않고 항상 말을 했다 하면은 실다운 말을 하고 또 두 가지 말로 이간질을 하지 아니하고 항상 진실한 말, 믿을 수 있는 말을 해서 모든 사람을 서로 화합을 시키고.

또 욕을 퍼붓는 게 아니라 항상 부드럽고 자비스러운 말을 써 버릇하면, 곱고 아름답고 자비스럽고 그런 말을 쓰면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죄가 아니라 네 가지 선이 되는 것이고.

 

탐심을 내거나 진심을 내거나 치심을 내지 않고서, 탐심 대신 항상 분(分)에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아니하고.

이 탐심은 물질적인 것만 탐심이 아니라—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주관적으로 이기적으로 독선적이고 그러지를 않고, 항상 내 고집을 버리고서 항상 빈 마음으로 남의 의견을 존중히 여기고, 남의 인격을 존중히 여기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래야 하는데, 자기 뜻대로 안되고 제 고집 세우다가 뜻대로 안되면 성을 내거든. 그래서 자기 뜻대로 할라고 한 것이 벌써 그것이 탐심이여.

 

자기 뜻대로 고집을 내세우다가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은 범부(凡夫)는 전부 다 진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심을 내가지고 입으로 퍼붓고 속으로 성내고 뾰루퉁하고, 그리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부부간에도 그렇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고부간도 그렇고, 친구 간도 자기 의견을 따라 주지 아니하면 그냥 성을 내고 상대방을 원수로 여긴다 그말이여.

 

내가 내 고집을 세우고 내만 옳다고 하고 내 하고 싶은 대로만 할라고 그러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여. 상대방은 또 상대방대로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라고 고집을 세우면 백사불성(百事不成)이여. 화합이 되지를 않은 거여.

그래가지고 싸워가지고 나중에는 저도 망하고 나도 망하고, 되는 일이 없고, 집안도 파괴가 되고, 당도 파괴가 되고, 사회 국가도 파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말이여.

 

나의 의견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의견도 소중한 것이고, 나의 생명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생명도 소중한 것이고, 나의 재산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재산도 소중한 것이지, 제 것만을 위주(爲主)하고 제 것만을 내세우고 남을 갖다가 짓밟고 억누를라고 하면 가만히 있나요.

처음에는 조금 당하지마는 두 번 세 번 당하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상대방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모아가지고 대들면 결국은 사이가 벙그러져 버리고, 아무리 다정한 친구도 원수가 되고 말아버린다 그말이여.

 

그래서 탐심을 내지 아니하고 오히려 양보하고, 물질도 양보하고, 모든 주장도 한 걸음씩 양보를 해서 서로의 좋은 점을, 서로 내 의견보다 상대방 의견이 좋으면 상대방을 또 따라줄 줄을 아는, 이렇게 되면 은 진심을 내지 않고, 진심을 내지 아니하면 서로 화합이 될 것이다 그말이여.

 

중생은 한 번 해 봐 갖고 안되고, 두 번 해 가지고 안되면 세 번쯤에 가서는 ‘아하! 내 주장만 해서는 안되겠구나’ 그렇게 깨달으면 될 텐데, 그걸 깨닫지를 못해.

평생을 제 주견(主見)만을 내세우고 자기 의견만을 존중하는 그 버릇을 평생을 그 고집을 가지고 산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다.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것 때문에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의 삼악도(三惡途)가 벌어진 것이여. 그 탐진치 삼독심을 휘두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준비된 세계가 축생이요, 아귀요, 지옥 세계여.

그래서 탐진치를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지옥에 갈 차표를 딱 끊어 놓은 거와 같다 이거거든.

 

이렇게 해서 십악을 범하지 아니하고 그놈을 돌리면은 그것이 십선법이 되는 거여. 십선법을 행하면은 그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에 갈 표를 끊어 논 것이다 이거거든.(6분23초~18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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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〇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입[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佛典)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벙그러지다 ; 벌어지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력보살2018. 11. 9. 21:21

*대력보살(大力菩薩) ; 큰 힘을 가진 보살. '대력'은 무루업(無漏業)에 의하여 무명(無明)으로부터 벗어나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한 것을 형용한 말이다.

 

*무루업(無漏業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선악의 소행所行 업) ; 번뇌 없는 청정한 업. 오염된 과보도 청정한 과보도 초래하지 않는 업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조건이다. '무루'란 번뇌가 없거나 더이상 번뇌를 증장시키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유루업과 대칭된다.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6분 37초)

 

[법문]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용457)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사 바닷속에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가 생사의 바다요, 우리의 마음속도 생사심(生死心)의 그 바닷속이여 바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대해(生死大海)인데, 그 생사대해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 죽는 거여.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 줄 몰라. 불이 나거나, 자동차 무슨 사고가 나거나, 난리가 나거나, 정신 못 차리면 죽는 거고, 정신만 탁! 차리면 반드시 살아갈 길이 있는 거여.

 

그래서 저 호숫가에서 버스가 뒤집어져 가지고 다 죽었는데, 그중에 참선(參禪)하는 비구니 스님 한 사람이 그 차가 뒤집어져 가지고 바다에 빠진 그 속에서 화두(話頭)를 들었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환하니 문이 보여. 그리 요렇게 요렇게 헤쳐 나왔어.

나오고 보니까 돌도 안 돌아온 애기가 물속에 떠서 허우적허우적 하고 있다 말이여. 그래서 그 애기를 건지고 두 사람 딱 살아났거든. 지금 그 비구니 스님이 살아있거든. 그래서 용궁에 갔다고 해서 별명이 용궁 스님인데.

 

화두를 들면은 그런 경우에도 살아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는 거여. 왜 그러냐? ‘호랑이 열두 번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거든. 틀림이 없거든.

생사(生死),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의 그 무서운 생사 속에서 정념을 잃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을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했어. 대력보살! '큰 힘을 가진 보살'이라 그래.

 

정념(正念)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터억 화두를 드는 거여.

지금 우리는 무엇이 정(正)이고 무엇이 사(邪)고 그거 따질 겨를이 없거든. 화두 하나만 딱! 챙겨버리면 사심(邪心)은 거기에 붙지를 못하는 거여.

 

그렇게 화두를 들고 계속해 나가다 보면 저절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순일무잡한 타성일편 경지에 들어가면 거기에 망념이 붙질 못하니까 무념(無念)의 경지에 들어가서 타악!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해 버리면 바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 아니냐 그거거든.

 

따로 정진을 할라고 마음을 내지 말고 자꾸 화두만 들어. 되거나 안 되거나 따질 것도 없고 화두만 들면 저절로 망념은 거기에 붙지 못하고, 거기에 무슨 삿된 생각이 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아까 조실(祖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의리선(義理禪)을 하지 마라. 사량분별(思量分別)로 공안(公案)을 따지고 그런 짓을 하지 마라.

공안을 의리로 따져서 그럴싸하니 해답을 얻어봤자 그게 어디에 쓰는 것이냐 그거거든. 아무 소용없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을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얻어 가지고, 이 공안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저 공안을 물으면 저렇게 대답하고,

요새 조사어록(祖師語錄)들이 많이 번역이 되어 나와 가지고 그런 것을 죽죽 읽어서, 머리 좋은 사람은 몇 번 안 읽으면 이렇게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고 저렇게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고, 그 알아 가지고 제법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법담(法談)을 척척하고, 어디다 쓰는 것이냐 그말이여.

 

아무 소용없거든!

 

설사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공안(公案) 하나를 대답을 못해도 상관 없어.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반드시 금생(今生)에 타파하게 되고,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해도 금생에 숨을 거둘 때에도 터억 화두를 들고 그 의단 하나로서 숨을 거두어 보라 그말이여.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거나, 설사 사람 몸을 받더라도 내생(來生)에 다시 몸을 바꾸어 가지고 또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을 만나서 내생에는 전강(田岡) 조실 스님처럼 어린 나이에 툭 터져버리거든.

 

물론 금생에 참 어린 나이로 선방에 나오셔서 정말 생명을 바쳐서 정진을 하셨기도 했지만, 어떤 스님은 조실 스님 보고 ‘전생공부(前生工夫)'라고. '전생에 그렇게 해놨기 때문에 금생에 그렇게 툭 터졌다'고, '전생공부'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듣기도 했지만,

 

하여간 금생에 여법하게 해 놓은 공부는, 금생에 설사 깨닫지 못했어도 전혀 헛것이 아니고 내생에 일찍 툭 터지는 것이여. 그런 신념을 가지고 공연히 속효심(速效心)을 가지고 빨리 깨닫기를 기달릴 일이 아니라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는 것 뿐이여.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기다릴 것도 없고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어.(46분20초~52분5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무루업(無漏業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선악의 소행所行 업) ; 번뇌 없는 청정한 업. 오염된 과보도 청정한 과보도 초래하지 않는 업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조건이다. '무루'란 번뇌가 없거나 더이상 번뇌를 증장시키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유루업과 대칭된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曇無讖 譯) 권37 ‘迦葉菩薩品 第十二之五’

〇迦葉菩薩白佛言 世尊 是無漏業 非是黑法 何因緣故 不名爲白 善男子 無有報故 不名爲白 對治黑故 故名爲白 我今乃說 受果報者 名之爲白 是無漏業 不受報故 不名爲白 名爲寂靜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무루업은 삿되고 더러운 흑법(黑法)이 아닌데, 어떤 인연으로 청정하고 선한 백법(白法)이라 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과보가 없다고 하여 청정하다[白]고 하지 않으며, 삿되고 더러운 것[黑]을 대치하므로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과보를 받는 자를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무루업은 과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하지 않고 고요하다[寂靜]고 한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龍樹菩薩 造 | 鳩摩羅什 譯) 권94 ‘釋四諦品 第八十四’

〇無漏業 能破不善 有漏業 能拔衆生令離善惡果報中 問曰 無漏業應是白 何以言非白非黑 答曰 無漏法雖淸淨無垢 以空無相無作故無所分別 不得言白 黑白是相待法 此中無相待故不得言白 復次 無漏業能滅一切 諸觀中分別故有黑白 此中無觀故無白

 

무루업은 불선(악)의 유루업을 타파할 수 있어 중생을 빼낼 수 있고 선악의 과보에서 떠나게 한다.

묻는다. ‘무루업은 응당 청정할 것인데, 어째서 청정하지도 더럽지도 않다[非白非黑]고 말하는가?’

답한다. ‘무루법은 비록 청정하여 번뇌의 때가 없지만 공 · 무상 · 무작의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별할 여지가 없으므로 청정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더럽다거나[黑] 청정하다[白]는 것은 상대적 조건이 되는 법이지만 여기(무루법) 안에는 상대가 없으므로 청정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무루업은 모든 것을 소멸시킬 수 있다. 모든 관찰에서는 분별하는 작용으로 인하여 더럽거나 청정한 차별이 있지만 무루업 안에서는 관찰이 없으므로 청정함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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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〇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생사대해(生死大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중생이 생사유전하는 세계를 '큰 바다(大海)'에 비유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參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사심(邪心) ; 삿된 마음. 삿된 교설 · 외도를 따르거나,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이익을 구하며, 다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는 등 계율에 어긋나거나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마음을 총괄적으로 나타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무념(無念) ; ①망념이 없는 것. 정념(正念)을 말한다. ②모든 법을 보면서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어록(祖師語錄) ;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속효심(速效心) ; 빨리 효과 나기를 바라는 마음.

 

Posted by 닥공닥정
ㄷ/도반2018. 10. 27. 07:45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6분 8초)

 

[법문] 송담스님(N0.427)—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427)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 오똑이 일 없이 청산을 대(對)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다. 우리의 눈은 사해에 높아서, 사해(四海)는 천상천하(天上天下)거든. 사해에 높아서 천마(天魔), 하늘나라의 온 마구니가 다 팔짱을 끼고 물러서.

 

정법(正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 그걸 갖다가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이라. 그러니 이 세상에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으며, 뭣이 부러울 것이 있으며, 무슨 미련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러니 그러한 장부(丈夫)의 기개를 가지고 나아가는데 정법을 닦아 가는 사람에게는 모든 천마(天魔) 외도(外道)가 손을 비비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는 없다.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흥망성쇠와 시비곡절, 다 불관(不管)해 버려. 불관(不管)해 버리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다. 날마다 청정한 도반들과 더불어—우리는 모두가 다 부처님도 선배 도반이고, 조사도 우리의 선배 도반이고, 모든 불과(佛果) 성인들도 과거는 깨닫기 전에는 다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어. 그러니 우리보다 먼저 깨달은 도반(道伴)들이여. 그런 청류(淸流)와 더불어 명월(明月)을 쓸자. 밝은 달을 쓸어.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밝은 달이여. 구름이 끼어서 어둡게 보일지언정 그 달 자체는 구름이 낄 때나 안 낄 때나 똑같은 거여.

우리의 자성불 진여불성은 미(迷)했을 때나, 우리가 범부로 있을 때나, 축생으로 있을 때나, 언제나 부처님의 경계인 거여, 그것은. 우리가 잠시 깜빡 미(迷)했을 뿐이니까.

그 밝은 달을 우리가 쓸어 봤자 무엇이 더 밝아질 것도 없고, 안 쓴다고 해서 더 어두울 것도 없는 거여 그 달 자체는.

 

그래서 우리는 불조(佛祖)와 우리의 모두가 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우리의 도반이여. 선후배 도반들이여, 다 동창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바른 도반을 의지해야 우리는 게으름을 부릴라야 부릴 수가 없고, 사견(邪見)에 떨어질라야 떨어질 수가 없어.

이 법당(法堂)에 이렇게 불상(佛像)을 모신 것도 그러한 의미에서 불상을 모신 거여. 또 결제(結制)를 해서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한 것도 그런 도반을 가까이 해서 도반과 더불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또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일생동안에 만났다 헤어졌다 내 마음에 든 사람, 마음에 안 든 사람, 미운 사람 예쁜 사람이 전부가 다 도반이여. 전부가 다 도반이요 전부가 다 불보살 화현(化現)이거든.

그렇게 믿고 그렇게 자기 눈에 비추어진다면 그야말로 정말 발심(發心)을 한 사람이고, 그렇게 발심을 해야 우리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정말 사바세계가 우리가 가장 빨리 가장 훌륭하게 도(道)를 닦고 도를 성취할 수 있는 좋은 도량(道場)이 될 것입니다.(46분32초~52분4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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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下) '무외(無畏)'

*(게송)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下) '은계(隱溪)'

*천마(天魔) :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장부(丈夫 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Posted by 닥공닥정
ㄷ/돈오점수2018. 10. 21. 22:08

*돈오(頓悟) 점수(漸修) : 불도를 닦아 나아가는 데 그 사람의 바탕(기질)을 따라, 차츰차츰 여러 계단을 밟아 올라가서 나중에 대각(大覺)을 이루는 것을 「오래 닦음」 곧 점수(漸修)라 하고, 어떤 이는 단번에 크게 깨쳐서 한 뜀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을 「단박(몰록) 깨침」 곧 돈오(頓悟)라고 한다.

 

이치는 비록 단박에 깨쳤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익혀 온 버릇, 곧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는 한때에 완전히 끊어 버릴 수가 없고, 현실의 사물 처리에 자유자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오래 닦아 나아가야 한다。그러므로 결국은 누구나 「점수」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깨치지 않고는 옳게 닦을 수가 없는 것이므로 조사 스님들은 닦는 것보다 깨치는 것을 중요하게 말하는 바이다.

 

(1) 20분 41초.

(2) 9분 9초.

 

[법문] 송담스님(N0.427)—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427)

 

(1)------------------

 

욕득불초무간업(欲得不招無間業)인댄  막방여래정법륜(莫謗如來正法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야장천일월고(靜夜長天一月孤)한데  지음자유송풍화(知音自有松風和)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욕득불초무간업(欲得不招無間業)인댄, 무간업(無間業),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죄업을 부르고자 하지 않거든,

막방여래정법륜(莫謗如來正法輪)이다.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정야장천일월고(靜夜長天一月孤)한데, 고요한 밤 긴 하늘에 한 달이 외로이 밝았는데,

지음자유송풍화(知音自有松風和)로구나. 지음(知音)은 스스로 솔바람이 있어 화답하는구나.

 

 

요새 송광사, 전라도 순천 송광사에서 동양 서양의 세계적인 불교 석학들이, 교수 · 박사 그런 분들이 모여서 돈오(頓悟) · 점수(漸修)에 대해서 갑론을박하며 '돈오 · 점수의 바른 뜻이 무엇이냐?' 이런 것에 대해서 상당히 열기를 가지고 논란을 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을 불교신문을 통해서 봤습니다.

 

불교의 목적이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것이 목적이니—돈오(頓悟)란 말은 확철대오란 말인데, 확철대오와 또 확철대오한 뒤에 점수(漸修)해 나가는, 오후보림(悟後保任) 한다고 보통 말들 합니다마는.

 

'확철대오 했으면 그것으로써 더이상 닦을 것이 없어야지, 확철대오한 뒤에 점점(漸漸)이 닦아 갈 것이 있다면 어찌 그것이 참다운 확철대오라 할 수가 있겠느냐. 닦아 갈 것이 있다면 확철대오가 아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논란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참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참선을 해 가지고 그 애를 쓰는데 결국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해서 고행 정진을 한다면 참다운 깨달음을 얻어야지 바르지 못한 깨달음을 깨달음으로 착각을 해서야 되겠느냐?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학자들이 모여서 세계 국제학술대회를 갖는다고 하는 것은 참 뜻깊은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어느 큰스님이 이 돈오점수에 대한 책을 내 가지고 그 책을 낸 뒤로 참 십여 년이 흘렀는데, 그 뒤로 많은 그것에 대한 불교계에서 논란이 있어 와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학자들도 또 그 문제에 관해서 이렇게 학술회의까지 갖게 되니 참 좋은 뜻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전강 조실 스님께서 제창하시는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지해서 수행을 하는 우리 법보제자는 과연 이 돈오점수에 대해서 어떠한 마음으로 이것을 해석을 하며 또 바르게 해석을 해야 또 우리도 갈팡질팡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도를 닦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갑인년에 마치 조실 스님께서 이 돈오점수에 대해서 설하신 바가 있어서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는 다 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참선은 '무엇이 돈오(頓悟)고, 무엇이 점수(漸修)다' 이것을 실지로 참선도 하지도 아니하면서 입으로만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백날 모여서 토론을 해 봤자 이것은 참,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바르게 닦아 갈라면 어떻게 닦은 것이 돈수, 바른 닦음이고, 어떻게 깨달아야 바른 깨달음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나름대로 의리선(義理禪) 사구선(死句禪)에 의지하지 말고 다맛 알 수 없는 활구선(活句禪)에 의지해서 도(道)를 닦아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그런 신념에 의지해서 우리는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에 그런 것이, 그런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마음이 흔들릴 까닭은 없겠습니다.

 

 

중봉, 중국의 천목산 고봉 선사(高峰禪師)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중봉 선사(中峰禪師)께서 '깨달은 뒤에 닦아갈 것이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 설하신 것이 있어서 몇 말씀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마음 밖에 법이 없고, 법 밖에 마음이 없어. 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정습(情習), 과거로부터 쌓은 정습이 다하지 못했다면, 다하지 못한 바가 있다면 곧 이것은 깨달음이 원만치 못해서 그런 것이다. 혹 그 마음 깨달음이 원만치 못하다면 모름지기 이 원만치 못한 자취를 쓸어버리고 별립생애(別立生涯)여. 특별히 따로 생애를 세워서」

 

이 별립생애라고 하는 것은—'자기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데, 깨닫기는 깨달았으나 이제 보림(保任)만 하면 자기도 부처님처럼 될 수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정습이 다하지 못하고 또 공안에 막힌 바가 있으면 이것은 자기의 깨달음이 철저하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체중현(體中玄) 도리, 공(空)의 이치, 그런 것을 그런 이치를 좀 보고서 그런 이치에 입각해서 모든 공안을 보면 막힌 바가 없고 다 알 것 같고, 화엄경이고 법화경이고 다 읽어 보면 환히 자기 나름대로 다 알고. 그러니까 자기도 깨달았다고 이렇게 착각을 하고서 '이제 나는 보림만 하면 된다' 이러한 병에 걸린 사람이 참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안에 막히거나 정습이 다하지 못했으면 자기의 깨달음이 원만하지 못하다, 완전하지 못하다고 스스로 그렇게 딱! 결판을 내고 별립생애, 다시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다시 백지 상태로 돌아가서 거기다가 생명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기어코 확철대오를 하도록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중봉 스님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뒤에는 닦을 것이 없느냐? 닦을 것이 없단 말입니까?' 이렇게 또 자문을 하고서 답을 하시기를,

「미리 깨달아 보기도 전에 깨달은 뒤에 닦을 것이 있느니 없느니 미리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느냐? 통 밑구녁이 풍 빠지는, 통 밑구녁이 풍 둘러빠진 거와 같은 그러한 경지가 올 때까지, 다시 말하자면 확철대오 할 때까지 가행정진 용맹정진하면 닦은 뒤에 닦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아직 깨닫기도 전에 깨달은 뒤에 닦을 것이 있느니 없느니, 돈오(頓悟)하고 점수(漸修)할 것이 있느니 없느니, 이러한 것 가지고 논란을 하는 것은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해 가지고 무간업을 자초하는 것 밖에는 아니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산승이 이 법상에 올라올 때마다 항상 말씀을 하기를, 정말 조사의 깨달음과 같이 확철대오를 못했으면—조금 자기 나름대로 공(空)의 이치, 체중현(體中玄) 도리 이런 걸 조금 한 소견이 나면 그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았다 하는 그러한 견해에 집착을 해 가지고 막행막식하고,

그래 가지고 누구든지 자기와 비슷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만나면 쉽게 '옳다'고 인가를 해 주고, 이래 가지고 자기도 망하고 많은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불법까지 망하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오(頓悟), 기왕 깨달으면은 돈오에 돈수, 돈수(頓修)라 하는 것은 '닦을 것이 없다'는 얘기죠. 몰록 다 닦아 버렸어. 확철대오 함과 동시에 다 닦아 버려, 닦아 마쳐 버렸어.

그러니까 그것이 돈수(頓修)인데, 돈수란 말은 '닦을 것이 없어야 한다' 그 말인데. 그건 부처님이라든지 조사(祖師) 가운데에는 돈오돈수(頓悟頓修)한 그러한 조사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다 전생에 무량겁을 다 닦아서 금생에 잠시 몸만 바꿔 났을 뿐이지, 이미 닦고 깨닫고 한 것은 전생에 무량겁을 두고 다 이미 원만성취한 분들은 몸만 바꿔 났으니까 더 간단하게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해 버리고 닦을 것조차 없이 다 돈오돈수가 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을 할 때까지, 참선을 시작해 가지고 확철대오할 때까지 많은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사십 년 걸려 가지고 깨달은 분, 또 출가해 가지고 얼마 안 가서 그냥 언하에 확철대오한 분,

이러한 것은 마치 저 어느 산골짜구니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물이 있는데, 그 물이 흐르고 흘러서 결국은 바다에까지 도달하는데, 바닷가 바짝 가까이에서 솟은 물이면 금방 솟아나 가지고 몇 분 안 가서 바다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몇백 리, 몇천 리, 몇만 리 떨어진 깊은 산중에서 나온 물은 그 물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까지 도달하는 데는 많은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 닦는 사람은 자기가 언제부터서 전생, 저 전생, 십 생, 백 생 언제부터서 도를 닦았는가 우리는 숙명통(宿命通)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건 알 수가 없으나 다행히 금생에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났으면 그 바른 법에 의해서 목숨 바쳐서 열심히 도를 닦을지언정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고 할 것을 미리서부터서 따질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바른 법에 의지할 것이고, 다음에는 있는 정신을, 정력을 다해서 전력투구를 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일 년 만에 깨닫든지, 삼 년 만에 깨닫게 되든지, 삼십 년 후에 깨닫든지, 마지막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든지, 그래도 전력투구를 한 사람은 바른 법에 의지해서 생명 바쳐서 닦은 사람은 아무 후회가 있을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 숨질 때까지도 다맛 '이뭣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상태에서 숨을 딱 거둔다면 그 사람은 다음 생에 금방 몸을 바꿔 나가지고 또 불법을 일찍 만나서 또 정법을 만나 가지고 또 닦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생에 얼마만큼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공부를 잡드리했느냐에 따라서 그다음 생에 좀 일찍 깨닫기도 하고, 더디 깨닫기도 할 것입니다.

 

달마 스님의 「혈맥론(血脈論)」이나 「관심론(觀心論)」에 보면 오직 깨닫는 것만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깨닫고 나야 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는 자연히 닦을 것이 있고 없는 것은 스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처음~20분54초)

 

 

 

(2)------------------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이요  학도요궁심로단(學道要窮心路斷)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심로단시전체현(心路斷時全體現)하니  여인음수지냉난(如人飮水知冷暖)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여.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한다 그말이여. 조사관.

학도요궁심로절(學道要窮心路絶)이여. 도를 닦아. 도를 닦는 것이 내나 참선인데, 도를 닦아 가는 데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해.

밤낮 사량분별로 '이렇다. 돈오가 어떻고 점수가 어떻고, 이것이 어떻고 저것이 어떻고' 밤낮 교리를 가지고 이리저리 따지고 또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지고 따지고 따져 봤자 깨달음에서는 점점 멀어져 버리는 거다 그말이여.

 

정말! 바른 참선을 하고 바르게 도를 닦고자 하면 공안을 타파(打破), 의단이 독로하고 타성일편이 되어 가지고 그 공안의 의단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해.

'이뭣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을 거각(擧却)할 때에 앞뒤 생각이 탁탁 끊어져 나가야 돼.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금강경을 읽거나, 화엄경을 듣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마음길이 탁탁 끊어져 나가야지,

마음속으로 사량계교(思量計較), 사량복탁(思量卜度), 공안에 대해서, 교리에 대해서, 누가 뭔 말을 하면은 그놈을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이러는 동안에는 깨달음을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여.

 

심로단시전체현(心路斷時全體現)이여.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마음길이 끊어져 버리면은 전체가 드러나. 이러쿵저러쿵 따지기 전에 전체가 드러나는 거다 그말이여.

여인(如人)이 음수(飮水)에 지냉난(知冷暖)이여.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웁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알아.

 

'물이 얼마나 차운가? 얼마나 더운가?' 먹어 보지도 않고 남 보고 물어봤자 어떻게 그것을 가르키며, 먹어 보기도 전에 '이 물이 따신가? 차운가?' 이리저리 따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 그말이여. 떠억 꿀떡꿀떡 마셔 보면 얼마나 뜨시고 얼마나 차운 것을 알 수가 있어.

 

깨달은, 돈오가 깨달아 보지 않고서는 깨달음이 무엇인가는 정말 알 수가 없는 거여.

 

깨달아 보지도 않고 깨달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아직 깨닫기도 전에 '닦을 것이 있느냐 없느냐?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라야지 돈오점수는 그것은 바른 깨달음이 아니다'

백만 년을 두고 패를 갈라서 토론을 하고 따져 본들 그것 따지고 있는 동안에는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갈 뿐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 아니어.

 

물론 불교 학자들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으로 경전을 연구하고 또 조사의 어록도 학자로서 연구하고 그런 입장에서 그런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다' 학자로서 따져 가는 것을 나는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학자는 그렇게 따지는 것이 그것이 학자의 본업이고, 그거 학자의 그 나아갈 길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불교를 이론적으로 따지는 그러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또 전강 조실 스님이나 산승이 항상 마음으로 원하고 또 이렇게 바라는 것은 학자로서의 나아가는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정말 활구 선객(禪客)으로서, 참선하는 사람으로서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이론적인 연구나 추구보다는 바로 화두 공안에 입각해서 활구참선을 해 가야만 하루 하면 하루, 한 시간 하면 한 시간, 일 분 하면 일 분,

한 번 화두를 듦으로써 마음길이 일 분 동안 끊어진다면 그만큼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 마음길이 끊어짐으로써 그것이 바른 수행이고, 마음길이 끊어짐으로써 조사관을 타파해 가지고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다.

 

왜 그러냐?

생사(生死)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삼세육추(三細六麤)의 생각, 그 생각으로 인해서 온갖 몸으로 입으로 뜻으로 업(業)을 지어 가지고 거기서 생사윤회를 하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끊으려면은 우리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단속을 해야 한다.

 

단속은 덮어 놓고 그놈을 끊으려고 그러고 억누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계(境界)를 당하든지—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우리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식(六識)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에 즉(卽)할 때마다 화두를 들고 자꾸 화두를 들어 나가면 화두를 듦으로써 마음길은 저절로 거기서 끊어져 들어간다 그말이여.

마음길 끊어짐으로써 의단이 독로하게 되고,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이 되면 확철대오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돈수돈오냐, 돈수점오냐, 보조 스님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20분56초~30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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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욕득불초무간업(欲得不招無間業) 막방여래정법륜(莫謗如來正法輪)' ; '무간업(無間業)을 부르지 않고자 할진댄, 여래의 바른 가르침을 비방하지 말지어다’ 『증도가(證道歌)』에 나오는 구절.

*(게송) '정야장천일월고(靜夜長天一月孤) 지음자유송풍화(知音自有松風和)'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무간업(無間業) ; 무간악업(無間惡業). 무간죄(無間罪).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하는 업(業)으로 오역죄(五逆罪)를 가리키는 말.

오역죄, 곧 다섯 가지 무간업은 ①아버지를 시해하는 것[殺父]. ②어머니를 시해하는 것[殺母]. ③아라한을 죽이는 것[殺阿羅漢]. ④승단의 화합을 파괴하는 것[破僧].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하는 것[出佛身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정법륜(正法輪) ; 부처님이 설하신 올바른 가르침[正法]을 바퀴[輪]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법륜(法輪 부처님의 가르침 법/바퀴 륜) ; 불법(佛法)을 수레바퀴[輪]에 비유한 것.

①불법으로 인해 중생의 죄악이 무너지는 것이,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악과 암석을 두드려 부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을 윤보에 비유하였다.

②부처님의 설법이 한 사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두루 퍼지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고 구르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을 수레바퀴에 비유하였다.

③부처님께서 설한 가르침이 원만하여 결함이 없는 것이, 수레바퀴가 둥글어 모난 것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을 수레바퀴에 비유하였다.

*지음(知音) ; ①음악의 곡조를 잘 앎. ②새나 짐승의 소리를 가려 잘 알아들음. ③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말.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을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鐘子期)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보조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부처[眞佛]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깨달음 ; 각(覺).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의리선(義理禪).

이런 구두선(口頭禪) ·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중봉(中峰) 선사 ; (一二六三 ~ 一三二三) 중국 원나라 스님. 불명은 명본(明本). 항주 전당 사람. 보응(普應), 환주도인(幻住道人), 환주노인(幻住老人), 중봉보응국사(中峰普應國師)라고도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금강경, 원각경, 법화경, 전등록 등을 보고, 후에 고봉원묘(高峰原妙)의 사관(死關)을 찾아 심요(心要)를 묻고, 금강경을 읽다 뒤에 샘물이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활연히 깨쳤다.

고봉의 법을 받고는 일정하게 있는 곳 없이 배(船)에서 있기도 하고 암자에서 거주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북정자적(北庭慈寂) 스님이 편집한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30권이 있다. 『광록』안에는 「산방야화(山房夜話)」  「동어서화(東語西話)」  「신심명벽의해(信心銘闢義解)」가 포함되어 있다.

*'중봉 선사(中峰禪師)께서 '깨달은 뒤에 닦아갈 것이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 설하신 것' ;

[참고] 『산방야화(山房夜話)』 (중봉명본 선사) *天目中峰和尙廣錄 卷第十一之中 山房夜話中.

幻曰 心外無法 法外無心 若見有纖毫情習未盡 卽是悟心不圓而然也 或心悟不圓 須是掃其未圓之跡 別立生涯以期大徹可也

曰若然 則無履踐之說乎 答曰 茲不必預以有無履踐 自惑于心 請勤加鞭策 到桶底子一回脫落 其履踐之有無 當有以默契于中矣

*정습(情習) ; 망정(妄情)으로 생긴 번뇌의 습기(習氣).

*망정(妄情) ; 허망한 정식(情識). 진실한 인식과 견해를 벗어난 망령된 분별 · 생각.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 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 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러빠지다 ; 빙 둘려서 우묵하게 쑥 꺼지다.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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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참선수투조사관~'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示安山郡夫人妙幢(안산군 묘당부인에게 보임)'

〇參禪須透祖師關 學道要窮心路斷 心路斷時全體現 如人飮水知冷暖 到此田地莫問人 須參本色呈機看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사량계교(思量計較)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분별(思量分別)과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삼세육추(三細六麤 석 삼/가늘 세/여섯 육/거칠 추)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청정한 진여의 마음이 근본무명에 의하여 망동하여 유전하는, 진실에서 어긋난 마음으로의 3가지 미세한 마음 상태[三細]와 이어지는 거칠은 6단계의 마음 상태[六麤]를 설명하는 '대승기신론'에서 밝힌 교설.

*삼업(三業)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네 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세 가지가 있다。이것이 삼업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의 소의(所依)가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의 여섯 가지 기관(器官)을 말한다.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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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뜬구름[浮雲]2018. 8. 31. 16:49

*뜬구름[浮雲] ; ①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②무상하고 덧없는 세상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5분 49초)

 

[법문] 송담스님(No.791) - 2018(무술)년 하안거 결제.(용791)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이요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다.

인생이 한번 태어난 것은 우리에게는 대단히 소중하게도 느껴지기도 합니다마는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인생이 한번 태어난 것은 하늘에 뜬구름이 한 조각 생겨난 거와 같다.

또 한번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울고 슬퍼하고 죽음을 싫어하지마는 정말 깊이 관찰해 보면 죽음이라는 게 별거 아니고 하늘에 뜬구름이 한 조각 생겨났다가 바람 불면 흩어져 버리는 거와 똑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뜬구름 자체는 무엇이냐 하면은 수증기가 모인 수증기 뭉탱이가 구름인데 동서남북 바람에 따라서 이리 날아가고 저리 날아가다가 혹 비가 되어서 떨어지기도 하고 기후에 따라서 눈이 되어 가지고 눈이 내리기도 하는데, 그 뜬구름이라 하는 것은 영원성이 없어.

 

결국은 구름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에 따라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결국 흩어져 버리고 없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으로 태어나서 한평생 살다가 죽어가는 것은 어떠냐?

우리가 잘 먹고 잘 입고, 그래서 영양가 있는 음식과 약을 먹어서 아무리 건강하게 살면 오래 살 수가 있느냐? 혹 백 살 넘어서 사는 사람도 있지마는 우리의 생사 문제는 하루 동안에도 이승을 하직할 수도 있고,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도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는 것이여!

 

정말 생사 문제는 아무도 자신 가질 수가 없는 것이고, 언제 죽음이 닥쳐올런지 모르는 그런 무상(無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참선법(參禪法)을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은 정성껏 듣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을 산승(山僧)은 믿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예와 권리와 재산이 아니고 오직 참나를 찾는,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야말로 마지막 숨이 꼴딱 넘어갈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할 것은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고 그것을 지금 실천하고 계시고 앞으로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마지막 숨이 질 때까지도 ‘이뭣고’를 열심히 하고 그것을 열심히 해야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또는 극락세계에 가서 우리는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마음으로 결심하신 분은 박수를 한번 더 치세요.(박수)

(36분57초~47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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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생야일편부운기~' ; 『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목욕편(沐浴篇) '삭발(削髮)'참고.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

[참고]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 가운데 '위원경왕태후선가하어(爲元敬王太后仙駕下語, 원경왕 태후 영가를 위한 법문)'에 있는 게송.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철저공(浮雲自體澈底空)  환신생멸역여연(幻身生滅亦如然)」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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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도솔천내원궁2018. 8. 31. 14:25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13분 46초)

 

[법문] 송담스님(No.791) - 2018(무술)년 하안거 결제.(용791)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이요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니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는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요, 닭장 속에 있는 닭은 아침 저녁으로 먹이를 주어서 배불리 먹고 있지마는 언젠가는 전골냄비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닭을 다른 이유 없이 먹이를 주어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병아리를 키워서 큰 닭이 되면 결국은 잡아서 전골로 지져 먹기 위해서 닭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에 날아다니는 학은 아무도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동쪽으로 가서 날아가고 서쪽으로 날아가고, 이리 날아가고 저리 날아가고 해 가지고 그저 풀씨도 캐먹고 곡식알도 먹고 이리저리 해서 아무도 식량을 주지 않지마는 동서남북 어디라도 날아다니면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닭장 속에서 먹이를 주어서 먹고 살다가 결국은 전골냄비 속으로 들어가는 닭과 같은 그런 인생을 살 것이냐. 아무도 식량을 주는 사람이 없지마는 동서남북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살아가는 들 학과 같은 그런 삶을 살 것이냐.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다 머리을 깎고 스님이 되어서 도(道)를 닦아라' 그런 말로만 해석하시지 말고, 세속에서 아들딸 낳고 결혼해 가지고 살면서도 그 속에서도 ‘이뭣고?’를 하시면 들 학과 같은 수행하는 그런 인생을 살 길도 거기에 있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영양가 있는 좋은 약을 많이 먹고 좋은 주사를 맞고 편하게 산다 하더라고 결국은 칠팔십, 팔구십, 많이 살면 백, 백이십 살까지도 살 수도 있습니다마는.

언젠가는 자기가 지은 만큼 자기가 살 만큼 살면 우리는 이 몸을 버리고 지은 업(業)에 따라서 혹은 도솔천 내원궁에 가기도 하고 또는 인생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죄업을 지은 사람은 축생이 될 수도 있고 지옥에도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내생에는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시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여러분을 믿습니다.

(박수)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챙겨서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틀림없이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게 됩니다.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미륵존불(彌勒尊佛)을 친견하고 거기에서 영원을 살 수도 있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60억 가운데에 한 사람인데, 60억 인구가 종교가 다 다르고 빈부귀천이 다 다르고 그렇지만 최상승법을 믿고 참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한 사람은 몇 프로도 안 됩니다. 그 몇 프로도 안 되는 그 속에 여러분은 그 중에 한 사람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은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 때문에 인생을 살 만큼 살면 반드시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박수)

 

인생이 오래 살면 백 살 넘어서도 살지마는, 인생의 죽음이라 하는 것이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입고 한다고 꼭 백이십 세 사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고 언젠가는 이 몸뚱이를 버리고 이승을 하직하게 되는데,

이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인연에다 맡겨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은 살 만큼 살면 이 육체를 버리고 이승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은 면할 길이 없으나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최상승법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 만큼 살다가 이승을 떠나게 되면 도솔처 내원궁에 우리는 가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직업에 따라서 일을 하고, 인생을 살아갈려면은 돈도 있어야 하고 먹이도 있어야 하고 그러니 직업도 있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하는데 그 속에서 ‘이뭣고?’를 안 하고 그냥 산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돈을 버냐,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느냐, 목적이 뚜렷하지 않지 않겠습니까?

 

‘이뭣고?’를 한 사람은 각자 우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자성의 부처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최상승법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확실한 삶의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도 지혜롭게 관리를 해야 하고 직업에도 충실히 해야 하고 서로 부부간에도 쓸데없는 일에 싸우고 다툴 것이 아니라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사이좋게 살다가, 금생에 행복하게 살다가 내생에 다시 또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또 만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 맥없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인생을 삶의 가치가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살 만큼 살아서 죽게 되더라도 극락세계(極樂世界) 아니면 도솔천 내원궁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을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도 우리에게는 분명히 목표가 있고 살아가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목적이 뚜렷한 그런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단히 이 건강을 지혜롭게 관리하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하고.

그렇다고 해서 꼭 백이십 세, 삼백 세 사는 것은 아니지만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가치 있고, 남하고 다툴 필요도 없고 오욕락(五欲樂)을 위해서 싸울 필요도 없고.

 

우리가 인생살이가 소중한 수행의 과정이기 때문에 오늘 산승은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 사부대중 도반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말을 옳고 그렇게 실천을 하겠다고 하는 분은 박수를 치세요.

(박수)

 

여러분의 박수를 산승(山僧)은 정말 가슴 깊이 믿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는 그동안에도 불법을 믿고 다 ‘이뭣고?’를 해 오고 있는 여러분이라고 믿습니다마는 오늘부터서는 더욱 산승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이 헛되지 않도록 정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모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잠시도 놓치지 않도록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한 분도 빠짐없이 도솔천 내원궁에서 다 미륵부처님 회상(會上)에서 우리는 다시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박수)

(28분10초~41분5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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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 ; 지공 선사(志公禪師)의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 참고. *鍋 ①한자사전 : 노구솥 (과). 노구솥은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작은 솥. 자유로이 옮겨가며 따로 걸고 쓸 수 있다. ②국어사전 : 南鍋(남와) : 냄비.

*(게송)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전골냄비 ; 전골을 끓이는 냄비.

*전골 ; 쇠고기, 돼지고기, 해물이나 내장 따위를 잘게 썰어 양념을 한 뒤, 채소, 버섯 따위를 곁들여 전골틀이나 냄비, 벙거짓골(벙거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그릇) 따위에 담고, 국물을 조금 부어 끓인 음식.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미륵존불(彌勒尊佛) ; 미륵불(彌勒佛).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