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의 81행(전강선사 No.008)—통도사 극락암 혜월 스님과 법거량.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일러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 혜월 스님의 영아행(嬰兒行) | 혜월 스님 직지사 조실로 모심.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혜월 스님께서 거그서 견성을 했어 |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인가를 했어.
*도인(道人)의 81행(行) ;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〇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20분 26초)
[법문]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전008)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그만 혜월 스님한테를 갔다 그 말이여.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니까,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데 소를 두 마리를 길러. 키워. 큰 황소를 키움서 밤낮 소꼴 베다가서 소 주고, 소 요리저리 모두 옮겨 매고 그러고 계시어.
학자(學者)는 뭐 몇 안 되고. 학자 그저 그 스님, 그 어른 믿고 있는 학자 불과해야 한 2~3인 될까 시봉 겸해서, 뭐 그 어른이 시봉도 안 시키고 그래.
그런데 소를 멕이는 것은 그 통도사 그 극락 평전(平田) 그 밑에 모도 산비탈 극락 평전을 논을 쳐서 농사지어 가지고 수좌 멕인다고 그 소를 사 논 거여. 아! 그 산비탈을 언제 땅을 파서 어디 물을 잡아 넘겨서 그 헐 것이여. 편편하기는 허니까.
아 그래 가지고는 그저 그만 앉으면 법문(法門), 서면 법문, 가면 법문허기 때문에 그 어른을 모시고 따라댕기면서 법문을 들어. 들은데, 오늘 들으나 내일 들으나 열흘을 들으나 똑같은 법문이여. 헌 놈 또 했지, 딴 놈이 없어.
평생 그 가운데 무슨 법문을 허냐 하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다” 이 말이 처음 나와. 당신 자랑이란 건 말헐 수가 없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인가했다” 꼭 그려.
언제든 눈꼽재기 여가 여 둘이 달렸어. 허연 놈이 달려 가지고. 말만 허면 입에서 침이 튀튀튀튀튀 튀어나와, 이렇게. 그래 가지고 앉어서 여 앉어서 이렇게. 하도 들을 수가 없어, 오래 들으면 듣기 오죽헌게 살며시 밖으로 나가면―하도 오래 있어 나가야제. 나가면 혼자 그러고 앉었어, 혼자. 아주 한참 (법문)허다가 “어디 갔나? 응, 갔어? 갔구나” 이런 어른이라.
다시 뭔 세상에 무슨 인사(人事), 뭐 그런 것 없어.
“아, 저 스님, 군수가 큰스님 뵐라고 왔습니다. 인사헐락 합니다”
“군수가 왔어? 응. 군수가 어디 있나? 내가 보제” 아따 가만히 계시라니 “그 내가 봐야지, 오라고 혀” 아, 이래 가지고 “군수 응, 군수 군수여? 어디 군수여? 응” 그 어른은 평생에 반말이제, 온말 헐 줄 몰라.
“밥 채려! 밥해! 군수 밥해” 밥을 시켜 놓고는 “찬 놨나?” 찬 논 디 가서 요것도 좀 집어서 잡숫고, 요것도 집어서 잡숫고 “짜냐, 싱겁냐?” 짜고 싱거운지도 몰라. 참 도인(道人)이제. 참 도인이여. 꾸며 대고 억지 없제.
아, 그러고 댕기니께 군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보면은 어쩔 것이냐 그 말이여. 그런게 가리와. 중이 있다가 가리와. 스님 못 보게 가린다. 또 거그 못 오게 허면 “왜 그래?” 아, 원 홰를 내고 야단인게 못혀. 참 세상에는.
그러고 조끔 있다 보면 없어. 아! 조실(祖室) 스님 어디 가셨는고 허면, 그 앞에 가서 저 솔방울 따네. 망태 하나 요만한 것, 망태 쬐끄만한 것 하나 턱 짊어지고 올라가서 솔방울 따네. 불 땔라고 솔방울 따.
천하에 도인이란 행은, 도행(道行)은 81행이 있닥 하지마는 그런 행이 없어. 그 천진행(天眞行) 영아행(嬰兒行), 그 영아행을 제일 쳤거든.
도인행(道人行)이 광행(狂行)이나 미친 행, 광행. 광행이나―또 그렇다 해서 도인행이 광행이고, 모도 그러헌 천진행이고, 그러헌 영아행 어린아 행이니까 도인행헌다고 해봐. 그녀러 건 참 못 본다. 그 위조로 나와서 해봐. 견성(見性)도 못헌 것이, 도인도 아닌 것이 해봐. 그런 똥을 콧구녁에다 붙여 가지고 대니지, 고놈의 더러운 냄새는 못 맡네. 보도 못허고.
천진행과 영아행이라는 것은 꾸며서 된 법이 없어. 억지로 된 법이 없어. 조태가 나타나기 따문에 안되야. 혜월 스님은 그게 안 나타나. 아무리 볼래야 소용없어. 꾸미도 않고 뭣도 소용없어. 뭐 그대론게 소용없어.
그래 가지고는 법문을 해 주시되, 내가 그래 중방내까지 따라갔구만. 법문 들을라고. 그런 법문이라도 들을라고 거그 따라갔어. 혜월 큰스님이 천하 도인이니까 ‘다시는 도인밖에 없다’고 그 믿음이 내 모가지까장 차올랐으니, 뭐 소용 있나? 소용없어. 뭐 눈에 눈꼽재기가 드글드글허거나 말거나, 뭐 허는 행은 당최 어따 비유헐 수 없는 아, 글쎄 어린아 행이라니까. 어린아가 그 뭐 서너살 먹은 놈이 애비상이 있고, 할아버지상이 있고 뭐, 뭐이고 소용 있어? 밥상에 올라가 똥을 싸고 그러지 뭐, 소용 있어?
그 영아행이라는 것은 미친놈도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지마는, 영아(嬰兒)라는 건 말귀도 못 알아들어. 그 영아행을 제일 쳤어. 바로 옳은 도인 같으면은 옳은 영아행을 헌디 그건 위조가 없어, 위조 못햐. 참, 진짜지. 우리나라에서 혜월 스님같이 진짜 영아행이 없어.
그래 가지고는 턱 법문을 헐 땐 처음, 처음 시작헐라면 그게여.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지. ‘북으로 관세음보살이 향(向)헌 의지(意旨)가 여하(如何)냐?’ 우리 큰스님이 물어 내가 대답했지. 아, 우리 큰스님이 인가했제!” 평생 그려. 틀림없거든, 뭐 틀림없어. 그 뭣 헐라고 감춰. 감추면 뭣혀.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오면은 인자 법문부터 물어. 그 자주 묻는 것도 좋은 것이여.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일러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등지(等持), ‘같을 등(等)’ 자, ‘가질 지(持)’ 자, 고놈을 일러야사 인가(印可)를 혀.
그건 참, 참! 기가 맥힌 공안이제. 당신이 이렇게 맨들아 묻는 것인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 고놈 묻고, 공적영지를 묻고, 영지에 공적영지를 묻고,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해야사 인가를 혀. 그것! 참, 내가 대답했지. 나도 역시 혜월 스님 타겠구만(닮았구만). 내가 대답했어.
공적영지 물어 딱! 대답헌게,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 착, 고 둘만 대답하면 그 밑 등지는 바로 있는 것 아닌가.
“등지를 일러라” 그놈 척 일러 논게, “아따야! 이 우리 한국에, 우리 한국에 참 이 큰 도인 났다. 이런 도인이 나!” 아! 이러고는 대찬(大讚)을 허는디, “누가 공적영지 등지를 이를 사람이 있느냐?” 아, 이래 가지고는 대찬을 했네.
그래 놓고는 일러 놓고는 ‘자, 내가 큰스님을 좀 좋은 디다 모셔야겄구나’ 그런 마음이 난다.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스님 밑에서 모도 나야겄구나’ 이 마음이 나 가지고는 거그서 하직허고 직지사(直指寺)를 또 올라왔네. 또 올라와 가지고는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허고.
직지사로 말하면 산중이 크고 한국에 제이창이여. 규모는 이창이고, 선방도 천불전(千佛殿)은 조그만 허지마는 도량은 크고. 그 어른이 오셨으면은, 그 국내(局內)가 널직허고 그때에 토지도 많고 거다가 모셨으면 좋을 듯해서 아! 내가 그때 그 운동을 했네.
그러면 제산(霽山) 큰스님은 벽안당에 조실로 계시는디, 가만히 조실로만 앉어 계시제 학자 눈을 띄울 수가 없으니까. 하나도 일구(一句) 법문을 해 준 법도 없고. 아,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혜월 큰스님이 여그 와 계셔야만 도량이 참말로 불일증휘(佛日增輝)가 되고 법륜상전(法輪常轉)이 되겄어.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여그서 한번 크게 휘황찬란허게 될 듯허고 이래서 “혜월 큰스님을 직지사 조실로 한번 모셨으면은 어떻겠습니까?” 하고는 내가 인자...
그때쯤 벌써 인자 소문이 나 가지고는 ‘정영신(鄭永信)이...’ 해 가지고 이름이 났어. 내 말 한마디―공부헐 때 원청간 다잽이를 기가 맥히게 했기 때문에 그 애를 써 가지고는 견성했다 해 노니까 소문이 다 나 버렸거든 인자.
아, 다 날 것 아닌가. 그만 벌써 혜봉 스님한테로 해서, 허태오 스님한테로 해서, 하혜일 스님한테로 해서, 그다음에는 인자 공부 잘헌다는 스님네는 다 찾아댕긴다 인자. 방방곡곡이고 어디고 다 가지.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서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 딱! 했다고 소문이, 뭐뭐 소문이 앞을 서.
소문이 나 가지고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허고, 제산 스님한테 가 그런 말씀을 허니 ‘아! 선방에서 다 도 닦는 공부허는 스님네가 아, 그런 큰스님이 오셔서 그 조실로 계시면은 좀 좋겄나’ 다 그런 마음뿐이지. 그때 모도 인자 선방에 그 스님네 이름 다 잘 모르겄구마는. 아, 그래 공포를 헌게 ‘좋다’고, ‘아주 좋다’고.
그래 내가 또 내려갔어. 가서 “큰스님, 김천 직지사에서 아주 큰스님을 청해서 거가 큰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이렇게 모두 대중이 기다리고 있고 헌게 가셔야겄습니다” 허니께. “그리야, 갈꺼나” 뭐 두말도 헐 것도 없고 “가 볼꺼나” 아, 그래 나셔셔.
그래 모시고서는, 내가 그만 모시고서는 올라오다가 너무 밤에 갈 수가 없고 해서 김천에 내려서, 그때 그 김천에 경상북도 김천 역전(驛前)에 대화여관이라고 있어. 대화여관에 들어가서 하룻밤 모시고 자고서는 아침에 올라갈라고 자시는디, 요런 놈도 거다 집어넣어야 되겄구만.
여관 주인이 그 아침 진지를 해 드렸는데 “아, 당최 고기도 안 잡숫고 허니까, 청정허게 마늘 겉은 거 넣지 말고 깨끗하게 그래 좀 해 주십시오” 아, 그랬더니 여관에서 어디 무슨 뭐, 저 따로 된장을 지질 수가 있나. 된장을 그놈을 잘 지졌는디 모두 손님상에 놓을라고 지졌는디 거다가는 파 마늘도 넣고, 소고기를 다져서, 소고기 좋은 놈을 잘 다져서, 그 무슨 그놈이 그 된장도 아니고 찌개처럼 맨들은 거여. 찌개로 맨든 것이여. 잘 지져서 요런 냄비, 쪼그만 냄비에다가 찌개를 딱 놨네.
아, 이놈을 떠억 잡순디, 한참 잡솨. 아주 잘 잡솨. 한참 잡숫더니 고기 덤벵이가 그놈이 좀 씹히든 것이여. 하나도 없이 잘 쫒다가 씹히든 것이여.
“이거 이 뭐이냐?” 맛있은 게 씹힌게, “이거 뭐냐, 괴기냐?”
“된장이요”
“된장 아니다. 괴기다. 맛있다, 맛있어” 괴기를 발견허고는 안 잡솨. 그래 놓고는. 아! 그 잡솨 버리지 잡쐈지, 그녀러 것을 뭐 해필 또 그럴 게 뭐 있냔 말씀이여, 그러지만 또 그래도 안 잡솨, 알더니. 그거 잡술 리야 없지마는 아, 그것들이 그렇게 나와서 잡쐈다 말이여.
잡숫고는 그날 그만 모시고 올라와서 대중 공포를 허고, 큰스님께서 여그 와서 조실로 계셔서 광도중생(廣度衆生) 허시도록 이렇게 대중 결의를 했지.
아, 통도사에서 또 안 된다고, 또 저 중방내 토지 뭐 그런 것 저런 것을 전부 인자 여그 조실 스님이 모두 농사짓고 어쩌고 해서 선객(禪客) 기룬다고 허면서, 거그서 초청이 다시 뭐... 아, 이래 가지고 여그 모실라 거그 모실라 야단스럽게 헌디, 그때에도 벌써 동부산(東釜山) 신도가 꽉 차 가지고는 그 큰스님, 저 무슨 계? 그 어른 모신다는 계(契)를 모두 조직했네.
계를 조직해 가지고 그때쯤 수도든가, 계(契)를 떡! 조직해 가지고는 그 계금(契金) 만원을 갖다 가서 그 어른을 드렸네. 내나 그 어른 위허는 계니까, 그 어른 갖다 드리면은 알아서 범연히 잘허리야 하고는 돈 만 원을 올려놓고. 이렇게 부산서 왼통 신도들이 야단친디, 모시고 올라니 될 수 있나? 뭐, 뭐 어떻게 헐 수가 있어야지.
돈 만 원, 그래 그 계를 모아 가지고 계금이니까 큰스님께 맽긴다고 갖다가 맽긴 모냥이지. 돈을 한푼이나 헛돈 써 뭣혀. 조실 스님 갖다 드리면은 당신이 무슨 뭐 어따 쓸 것이여, 학자 위해 쓸 것이지.
그래 그만 갖다 드렸든가. 이놈을 가지고는 논을 친닥 하면서 논 나락 한 다발이나 두 다발, 그걸 가을에 가면은 한 다발 두 다발도 안 나오는 놈의 논을 그놈을 쳐 가지고. 한 거다가 몇십 원을, 그때 몇십 원인가? 몇십 원을 들여서 고까짓 놈의 논, 고것 쳤자 뭐 그 일 원어치도 안되는 놈의 것을 몇십 원을 주고 모도 쳐 가지고는 가을에 나락 한 다발 나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냐? 이거 봐라” 든 밑천은 하나도 안 생각하고. 그런 양반이라 무슨 그 획량이 있어? 그런거 무슨 계획량이 어디 있어? 요것만 보시제. 돈 많이 들어간 것은 못 봐.
그래 가지고서는 아, 이 만 원 돈을 막 집어써 버리네. 이놈도 달라면은 ‘그래’ 저놈이 달라면은 ‘그래’ 아! 이렇게 써 버린다 그 말씀이여. 아! 그러니 그 못 쓰게도 못하고 이것 참 큰일났제.
그래 가지고 되아 있는 형편, 만 원을 모두 모아 드린 그런 것이 모두 있제, 저런 것이 있제, 어디 가 있을 도리가 있어야제. 당최 못 있어. 본래 또 그저... 여까장 해 놓고.
본래 그 저 견성(見性)해 가지고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턱! 허니까―그 본래 견성헌 공안은 그건 아니여. 견성헌 후에 고놈 물어 대답했지.
이것이 나와야 되겄는디 나올란가 모르겄네. 역사 법문이니께 내 이런 걸 다 집어넣어야겄다 그 말이여.
‘단지불회면...’ 저 혈맥론(血脈論)에 가서, 혈맥론에 있나? 그 무슨 그 위에는 다 내가 다 외울 수 없고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다’ 거그서 견성(見性)을 했어.
거 언하대오(言下大悟)여, 그 뭐.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만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그만, 그 또 그 어른이 글쎄 어린아같은 양반이 거 뭐 앞뒤 무슨 뭐 조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뭐 있나. 나온 대로 막 해 버리는디.
아, 그러니깐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인가(印可)를 어떻게 한고 하니, 이거 다 중요하거든. 나밖에 몰라. 아무도 모르는 거여.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이거 꼭 여그 시방 혜월 스님한테 다 인가한 것이여. 그런 인가 있어야 하는 거여, 꼭.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잡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등등(燈燈)이 상속헐 것이니라. 네 깨달은 도리를 또 상속해라’ 인가한 것이여.(1시간8분30초~1시간28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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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 · 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평전(平田 평평할 평/밭 전) ; ①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 ②평야에 있는 좋은 밭.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눈꼽재기 ; ‘눈곱’의 사투리.
*오죽하다 ;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대단하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홰 ; 화(火).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감정).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도인(道人)의 81행(行) ;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〇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영아행(嬰兒行) ;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도인(道人)의 81행(行)이 있는데, 81행 가운데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조태 ; 자태(姿態). ①어떤 모습이나 모양. ②몸가짐과 맵시(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의지(意旨 뜻 의/뜻 지) ; 취지(趣旨 어떤 일의 근본이 되는 목적이나 긴요한 뜻). 의지. 의향. 의도(意圖).
*공적영지(空寂靈知) ; 혜능(慧能, 638-713)의 제자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를 개조(開祖)로 하는 하택종(荷澤宗)의 근본 사상으로 마음의 본질을 ‘공적(空寂)하면서 동시에 신령스럽게 아는’—공적(空寂)한 영지(靈知)의 뜻으로 파악한 것.
[참고 ❶] 『도서(都序) · 절요(節要)』 (규봉종밀 술 | 김탄허 현토역해 | 교림) p70~72.
云諸法如夢을 諸聖이 同說하시니 故로 妄念이 本寂하고 塵境이 本空이라 空寂之心이 靈知不昧하나니 卽此空寂之知 是汝眞性이라.
이르되 모든 법(法)이 꿈과 같음을 모든 성인(聖人)이 한가지 설하시니, 고(故)로 망념(妄念)이 본래(本來) 고요하고 진경(塵境)이 본래(本來) 공(空)한지라 공적(空寂)한 마음이 신령(神靈)히 알아 매(昧)하지 않나니, 곧 이 공적(空寂)의 지(知)가 이 너의 진성(眞性)이라.
任迷任悟하야 心本自知하야 不藉緣生이며 不因境起라 知之一字 衆妙之門이언마는 由無始迷之故로 妄執身心爲我하야 起貪嗔等念하나니,
미(迷)함에 맡기고 깨달음에 맡겨 마음이 본래(本來) 스스로 알아서 연(緣)을 가자(假藉)해 나지 않으며, 경계(境界)를 인(因)하여 일어나지 않는지라 지(知)의 한 글자가 뭇 묘(妙)한 문(門)이언마는 무시(無始)에 미(迷)함을 말미암은 고(故)로 망령되이 몸과 마음을 집(執)하여 아(我)를 삼아서 탐진(貪嗔) 등 생각을 일으키나니,
若得善友의 開示하야 頓悟空寂之知하면 知且無念無形이어니 誰爲我相人相이리오 覺諸相空하면 心自無念이라 念起卽覺하라 覺之卽無니 修行妙門이 唯在此也니라.
만일 선우(善友)의 개시(開示)함을 얻어서 몰록 공적(空寂)의 지(知)를 깨달으면 지(知)는 또 생각이 없고 형(形)이 없거니 무엇이 아상(我相) 인상(人相)이 되리오. 모든 상(相) 공(空)함을 깨달으면 마음이 스스로 생각이 없는지라 생각이 일어나면 곧 각(覺)하라. 각(覺)하면 곧 없음이니, 수행(修行)하는 묘문(妙門)이 오직 이에 있느니라.
[참고 ❷]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 1卷. 卍新纂大日本續藏經 第63冊. (唐 裴休問 宗密答)
荷澤 又收束無爲無住 乃至不可說等種種之言 但云空寂知 一切攝盡 空者 空却諸相 猶是遮遣之言 唯寂是實性不變動義 不同空無也 知是當體表顯義 不同分別也 唯此方爲眞心本體故 始自發心 乃至成佛 唯寂唯知 不變不斷
하택은 또한 무위(無爲) · 무주(無住) 내지 불가설(不可說) 등 여러 종류의 말을 하나로 묶어 다만 공적(영)지(空寂知)라고 하고, 일체를 그 속에 통일시켰다. 공(空)이란 제상(諸相)을 제거하는 것이니 차견(遮遣 : 부정적 방법으로 뜻을 드러냄)의 말이다. 적(寂)이란 실상의 본성이 변동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전혀 없다[空無]’는 뜻과 다르다. (영)지(知)란 마음의 당체(當體)를 표현(表顯 : 긍정적 방법으로 뜻을 드러냄)하는 뜻으로 분별(分別)과 같지 않다. 이들 뜻을 갖추어야 비로소 진심(眞心)의 본체(本體)가 된다. 그러므로 처음 공부할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적(寂)과 지(知)만이 있을 뿐이니 변하지 않고, 끊어지지도 않는다.
[참고 ❸] 『보조어록(普照語錄) - 정혜결사문 · 수심결』 (보조국사 지눌 지음 | 대성 · 강건기 옮김 | 무각사) p170~173. p176~179. p188~191.
〇問 上上之人 聞卽易會 中下之人 不無疑惑 更說方便 令迷者趣入
묻는다. 근기(根機)가 아주 높은 사람은 들어서 쉽게 알겠지만 그렇지 못한 중하근기(中下根機)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다. 다시 방편(方便)을 설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듣게 해 달라.
答 道不屬知不知 汝除却將迷待悟之心 聽我言說 諸法如夢 亦如幻化 故妄念本寂 塵境本空 諸法皆空之處 靈知不昧 卽此空寂靈知之心 是汝本來面目 亦是三世諸佛 歷代祖師 天下善知識 密密相轉底法印也
답한다. 도(道)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는다. 그대는 깨치기를 기다리는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내 말을 들어 보라. 모든 법(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다. 그러므로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고요[寂]하고 객관 대상[塵境]은 본래 공(空)하다.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그곳에서 신령스러운 앎[靈知]은 어둡지 않다. 바로 이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마음’이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祖師), 천하의 선지식(善知識)들이 서로 은밀히 전해 온 법인(法印)이다.
若悟此心 眞所謂不踐階梯 徑登佛地 步步超三界 歸家頓絶疑 便與人天爲師 悲智相資 具足二利 堪受人天供養 日消萬兩黃金 汝若如是 眞大丈夫 一生能事已畢矣
만약 이 마음을 깨치면, 이것이 참으로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올라 걸음걸음에 삼계(三界)를 초월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단박에 의심을 끊으며, 이내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인간과 천상에 공양을 받을 만하고, 하루에 능히 만 냥의 황금을 소비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가 만일 이와 같으면 참다운 대장부(大丈夫)이니, 한평생에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다.
問 據吾分上 何者是空寂靈知之心耶
묻는다. 나의 분상(分上)으로 본다면 어떤 것이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마음인가?
答 汝今問我者 是汝空寂靈知之心 何不返照 猶爲外覓 我今據汝分上 直指本心 令汝便悟 汝須淨心 聽我言說 從朝至暮 十二時中 或見或聞 或笑或語 或瞋或喜 或是或非 種種施爲運轉 且道 畢竟是誰能伊麽運轉施爲耶
답한다.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는 바로 그것이 그대의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마음이다. 어째서 돌이켜 비추지 않고 밖에서 찾는가? 내가 이제 그대의 분상(分上)에 의거해서 본마음[本心]을 바로 가리켜 깨치도록 하겠으니,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내 말을 잘 들어 보라. 그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보고 듣고, 웃고 말하고, 성내고 기뻐하며, 옳다 그르다 하는 갖가지로 행위하고 움직이는데, 필경 누가 이렇게 움직이고 행위할 수 있는지 말해 보라.
若言色身運轉 何故有人 一念命終 都未壞爛 卽眼不自見 耳不能聞 鼻不辨香 舌不談論 身不動搖 手不執捉 足不運奔耶 是知 能見聞動作 必是汝本心 不是汝色身也 況此色身 四大性空 如鏡中像 亦如水月 豈能了了常知 明明不昧 感而遂通恒沙妙用也 故云 神通幷妙用 運水及搬柴
만약 색신이 움직인다면, 어째서 어떤 사람이 일순간 목숨이 끊어지면 몸이 다 무너지지도 않았는데도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고,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며, 혀는 말을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내달리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보고 듣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본래 마음이지 색신(色身)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하물며 이 색신을 만든 사대(四大)의 성품은 비어 있어 거울 가운데 비친 영상과 같고 물속에 비친 달과 같은데, 어떻게 그것이 항상 뚜렷이 알며[了了常知] 밝고 밝아 어둡지 않으면서[明明不昧], 감응하면 마침내 무수한 묘용(妙用)에 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신통(神通)과 묘용(妙用)은 물을 긷고 나무를 나르는 것이다(『경덕전등록』 권8, 방거사龐居士의 말)”라고 한 것이다.(p170~173)
〇然諸法皆空之處 靈知不昧 不同無情 性自神解 此是汝空寂靈知 淸淨心體 而此淸淨空寂之心 是三世諸佛勝淨明心 亦是衆生本源覺性
그러나 모든 법(法)이 비고 고요한 곳에서도 영지(靈知)는 어둡지 않으니, 생명 없는 것[無情]들과는 달라서 성품이 스스로 신령스럽게 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空寂)하고 신령스럽게 아는 청정한 마음의 본체이다. 이 청정하고 공적한 마음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의 수승하고 깨끗한 밝은 마음[勝淨明心]이며, 또한 중생의 본래 근원인 깨친 성품[本源覺性]이다.
悟此而守之者 坐一如而不動解脫 迷此而背之者 往六趣而長劫輪廻 故云 迷一心而往六趣者 去也動也 悟法界而復一心者 來也靜也
이 마음을 깨달아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꼼짝 않고 앉은 채로 해탈할 것이며, 이것을 모르고 등지는 사람은 육취(六趣)에 떨어져 오랜 겁(劫)을 윤회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마음에 미혹하여 육도에 떨어지는 사람은 가는 것이요 흔들리는 것이며, 법계(法界)를 깨달아 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오는 것이요 조용한 것이다(청량징관淸凉澄觀의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권1)”라고 하였다.
雖迷悟之有殊 乃本源則一也 所以云 所言法者 謂衆生心 而此空寂之心 在聖而不增 在凡而不減 故在聖智而不耀 隱凡心而不昧 旣不增於聖 不少於凡 佛祖奚以異於人 而所以異於人者 能自護心念耳
비록 미혹하고 깨친 것이 다르지만 근본에서는 하나이다. 그래서 “법(法)이란 중생의 마음이다(『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입의분立義分」)”라고 하였다. 이 공적(空寂)한 마음은 성인(聖人)이라고 해서 늘지 않고, 범부(凡夫)라고 해서 줄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지혜 속에 있어도 빛나지 않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 있어도 어둡지 않다. 이미 성인에게서 더하지 않고 범부에게서 덜하지 않는다면, 부처와 조사가 어찌 보통 사람과 다르겠는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능히 스스로 마음을 보호하는 것뿐이다.(p176~179)
〇問 後修門中 定慧等持之義 實未明了 更爲宣說 委示開迷 引入解脫之門
묻는다. 깨친 후에 닦는 문[後修門]에서 정(定)과 혜(慧)를 고르게[等] 가지는[持] 뜻을 아직 확실히 모르겠다. 다시 자세히 설명하여 미혹을 없애고 해탈의 문(門)에 들게 해 달라.
答 若設法義 入理千門 莫非定慧 取其綱要 則自性上 體用二義 前所謂空寂靈知 是也 定是體 慧是用也 卽體之用故 慧不離定 卽用之體故 定不離慧 定則慧故 寂而常知 慧則定故 知而常寂
답한다. 만약 법(法)과 그뜻을 말한다면, 진리에 들어가는 천 가지 문(門)이 모두 정(定)과 혜(慧) 아님이 없다. 그 요점을 들면 자기 성품의 본체[體]와 작용[用]의 두 가지 뜻에 불과하니, 앞에서 말한 빈 고요함[空寂]과 신령스러운 앎[靈知]이 그것이다.
정(定)은 본체이고 혜(慧)는 작용이다. 본체에 즉(卽)한 작용[卽體之用]이므로 혜(慧)는 정(定)을 떠나지 않고, 작용에 즉(卽)한 본체[卽用之體]이므로 정(定)은 혜(慧)를 떠나지 않는다. 정(定)이 곧 혜(慧)이므로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寂而常知], 혜(慧)가 곧 정(定)이므로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知而常寂].
如曹溪云 心地無亂自性定 心地無癡自性慧 若悟如是 任運寂知 遮照無二 則是爲頓門箇者 雙修定慧也
조계(曹溪) 스님이 “마음자리에 어지러움 없음이 자성(自性)의 정(定)이요, 마음자리에 어리석음 없음이 자성의 혜(慧)이다(『육조단경』 「돈점품」)”라고 한 말씀과 같다. 이와 같이 깨달아서 고요함[寂]과 앎[知]이 자유자재하고, 막음[遮]과 비춤[照]이 둘이 아니면, 이것이 바로 돈문(頓門)에 들어간 사람이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는 것이다.
若言先以寂寂 治於緣慮 後以惺惺 治於昏住 先後對治 均調昏亂 以入於靜者 是爲漸門劣機所行也 雖云惺寂等持 未免取靜爲行 則豈爲了事人 不離本寂本知 任運雙修者也 故曹溪云 自悟修行 不在於諍 若諍先後 卽是迷人
만약 먼저 고요함[寂寂]으로써 망념[緣慮]을 다스리고 그 다음에 또렷함[惺惺]으로써 혼침[昏住]을 다스려, 선후로 대치(對治)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다스리며 고요함[靜]에 들어간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점문(漸門)의 열등한 근기가 하는 행이다. 이는 비록 또렷함[惺]과 고요함[寂]을 고르게[等] 가진다[持]고 하지만 고요함[靜]을 취해 수행으로 삼는 것을 면치 못하니, 어찌 ‘할 일을 마친 사람[了事人]’이 본래의 고요함[寂]과 본래의 앎[知]을 떠나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두 가지를 함께 닦는 것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조계(曹溪) 스님이 말하기를, “스스로 깨닫고 수행함은 따지는[諍] 데 있지 않다. 만약 선후를 따지면 그는 미혹한 사람이다(『육조단경』 「정혜품」)”라고 하였다.(p188~191)
*타기다 ; ‘닮다’의 사투리.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국내(局內 판·마을·방·구획 국/안 내) ; ①묘지나 절의 구역 안. ②관청이나 회사에서 부서(部署)의 하나인 국(局)의 안.
*제산정원(霽山淨圓 1862~1930) ; 1862년(조선 철종 13년) 3월 13일에 경남 합천 가야면 구원리에서 태어나셨다. 속성은 김씨, 법명은 정원. 호는 제산(霽山).
1873년, 14세 때 해인사에 들어가 신해화상을 의지하여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1899년 경허 스님이 해인사 조실로 추대되었고, 경허 스님이 해인사 조실로 계실 당시 원주 소임을 보면서 참선 정진하셨다. 해인사에 있을 당시 경허 스님으로부터 "자네는 어디 가든지 50~60명의 수좌는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셨다. 그 뒤로 스님은 사명대사 법맥을 계승한 우송(友松) 스님의 법을 이으셨다.
스님은 1913년 봄, 41세 때 해인사로부터 황악산 직지사로 옮겨와서 17년 동안 직지사 벽안당에 앉아 평생을 장좌불와하고 동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천불선원 조실로서 후학들을 제접하는 등 수행에 매진하셨다. 그래서 당시 교계에서는 제산 스님을 '수행제일'로 평했다.
스님은 1930년 8월 24일(음) 입적하니, 세수 69세, 법랍이 56년이셨다.
입적에 들기 전 문인 등이 물었다. "생(生)이란 무엇입니까?"
"본래 불생(不生)이거늘 어찌 죽음이 있겠는가. 바람과 북이 서로 침에 불이 바다를 태우니 천고만고에 다만 이러할 뿐이로다" 스님은 이 말을 남기시고 단정히 앉은 채로 고요히 입적하셨다. 직지사에 '제산정원선사비'가 세워져 있다. 비명(碑銘)은 한암중원이 찬(撰)했다.
[참고] 『한암일발록(漢岩一鉢錄)』 (한암문도회) 「제산정원선사 비명병서(霽山淨圓禪師 碑銘幷序)」 p334~336. 직지사 홈페이지 (사찰안내<선원<중요 인물)에서 참고 요약 정리.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더욱 빛나고, 법의 수레바퀴가 항상 구르다(불법의 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법륜(法輪 부처님의 가르침 법/바퀴 륜) ; 불법(佛法)을 수레바퀴[輪]에 비유한 것.
①불법으로 인해 중생의 죄악이 무너지는 것이,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악과 암석을 두드려 부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을 윤보에 비유하였다.
②부처님의 설법이 한 사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두루 퍼지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고 구르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을 수레바퀴에 비유하였다.
③부처님께서 설한 가르침이 원만하여 결함이 없는 것이, 수레바퀴가 둥글어 모난 것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을 수레바퀴에 비유하였다.
*법륜상전(法輪常轉) ; 법륜이 항상(恒常) 쉬지 않고 구른다[轉]는 말. 불법의 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뜻. 또는 불법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펼쳐지고 있다는 도리를 나타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정영신(鄭永信) ; 전강선사(田岡禪師). 영신(永信)은 법명. 전강(田岡)은 법호(法號).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과거시험(科擧試驗 예전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관리 채용 시험 제도로서 보는 시험)을 보는 장소에서 유추된 말이다.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선당(禪堂) · 승당(僧堂) · 선방(禪房) 등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 선방에서 좌선하여 도를 깨달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참고 ❶]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4권 「단하천연전(丹霞天然傳)」
鄧州 丹霞天然禪師不知何許人也 初習儒學 將入長安應擧 方宿於逆旅 忽夢白光滿室 占者曰 解空之祥也 偶一禪客 問曰 仁者何往 曰 選官去 禪客曰 選官何如選佛 曰 選佛當往何所 禪客曰 今江西馬大師出世 是選佛之場 仁者可往 遂直造江西
등주 단하천연선사는 어느 곳의 사람인지 모른다. 처음에 유교를 배워서 장안으로 과거에 응시하러 가던 길에 여관에서 자다가 홀연히 밝은 빛이 방에 가득차는 꿈을 꾸었다. 이에 점치는 자가 '공을 터득할[解空]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풀었다.
우연히 어떤 선객(禪客)이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 '관리 뽑는 시험을 보러 갑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선객이 '관리 뽑는 시험이 어찌 부처 뽑는 시험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단하가 '부처 뽑는 시험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선객이 '지금 강서(江西)에서 마조대사가 출세 했습니다. 그곳이 부처를 뽑는 시험장[選佛之場]이니 그곳에 가보도록 하십시오'라고 한 말을 듣고 그길로 강서로 갔다.
[참고 ❷]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진지 ; 밥(끼니로 먹는 음식)을 높여 이르는 말.
*덤벵이 ; 덤벙이(묽은 액체 따위가 뭉쳐진 덩이).
*광도중생(廣度衆生) ; 광도제중생(廣度諸衆生). 모든 중생(衆生)을 널리[廣] 제도(濟度)하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계(契) ;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상부상조의 민간 협동 조직.
*계금(契金) ; 곗돈(契-). ①계에 들어서 내는 돈. ②계를 부어 찾는 목돈. ③계에서 가지고 있는 돈.
*범연(泛然)히 ; 범연(氾然)히.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泛(범)은 氾(범)과 동자(同字, 같은 글자). 汎(범)과 통자(通字 같은 뜻의 글자).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다만[但] 알지 못할[不會] 줄 알면[知] 곧[是卽]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언하대오(言下大悟) ; 말 아래에 크게 깨닫는다. 말(법문) 듣다 깨닫는다. '직하흔번(直下掀飜 바로 뒤집다)'도 같은 뜻의 말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참고] 송담스님(No.157)—전강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81.12.02.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에 법문하시기를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라, 말 아래 크게 깨달으라” 하셨습니다.
말은, 꼭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차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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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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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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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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