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가부좌(참선자세)2018. 9. 13. 22:08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11분 24초)

 

[법문]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용524)

 

편안히 앉으십시오.

 

계유년 동안거가 종말에 가까워 왔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의 신심과 원력으로 큰 탈없이 이렇게 정진(精進)을 해 오신 것에 대해서 치하(致賀)를 드립니다.

 

여러분들 낱낱이 다 개별적으로 만나면 나름대로 다 이야기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겠지만, 여러 가지 형편상 그러지를 못해서 이렇게 서면(書面)상으로 질문을 받아서 요약을 해서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질문을 했어도 잘 들어 두시면 여러 가지로 정진하는 데 참작이 될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앉아 있을 때는 화두(話頭)가 잘 들리고 그러다가, 그런데 서서 돌아다니거나 일을 하면 앉았을 때 보단 산만해져서 화두가 순일하게 안되는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앉아서 정진을 하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초학자(初學者)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고, 설사 구참(久參)도 시간 있는 대로 앉아서 정진하신 것은 여러 가지로 효과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생활해 나가는 데에는 종일토록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거고, 설 때도 있고 돌아다닐 때도 있고, 말할 때도 있고 무슨 일을 할 때도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 화두를 아주 놔 버리고 그럭저럭 지내면 정진이 순일하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서서 다니더라도 앉았을 때 같이 순일한 경계가 흩어지지 않느냐?

그것은 자기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 경계(境界)에 팔려 나가면은 화두를 놓치게 되는 거고.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바로 그때그때 화두를 챙기면은 나갈 뻔하다가 다시 자기로 돌아온 것이니까, 자기가 정성스럽게 챙기는 도리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섰을 때나 걸어갈 때도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하고.

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앉았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서서도 항상 단전(丹田)에다가 가볍게 힘을 주고서 걷기도 하고 일도 하고, 또 말을 할 때에도 그 단전을 중심으로 해서 거기다가 가볍게—힘을 너무 세게 주면 못쓰는 거고, 가볍게 단전에다 힘을 주어야 하는데, 가볍게 단전에다 힘을 줄라면 몸을 쭈욱 펴야 하는 것입니다. 펴면 자연히 단전에 힘이 들어가는 거고.

 

허리가 탁 꼬부라져 버리면 단전에 힘을 줄 수도 없고 그냥 경계에 팔리게 되는 것이니까, 행주좌와(行住坐臥) 간에 항상 화두가 흩어지지 않게 할라면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아랫배에다 가볍게 힘을 주도록 그렇게 한번 시도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선을 하다 보면 답답하고 벽처럼 딱딱해지고 굳어지는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단정히 한답시고 너무 긴장을 해 가지고 등에다가, 어깨에다, 목에다가 너무 힘을 주면 그렇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고. 그게 대단히 자세를 바르게 하는데 중요한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단정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그러면서 단전호흡을 자연스럽게 하면 갑갑하고 벽처럼 딱딱해지고 굳어지는 그러한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 입술이 퉁퉁 붓는 것도 입에다 너무 세게 힘을 주기 때문에 그런 거여.

그래서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 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와.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 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 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데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그다음에, 화두가 훨씬 그전 때보다도 잘 들리고, 잘되어 가는 그런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야! 공부가 잘되어서 좋다’ 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이렇게 공부가 잘되어 가면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벌써 정진이 잘된다고 기쁜 마음을 내면은 환희의 마구니가 거기에 붙게 되는 거고, 정진이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구니가 거기에 붙게 되는 거여.

그래서 안된다고 해서 너무 짜증을 내고 그러지도 말고, 정진이 잘되어서 화두가 순숙(純熟)해서 잘된다고 해서 좋아하는 마음도 내지를 말아라.

 

잘되고 못되고 그건 그냥 그대로 놔둔 채, 자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꾸준히 해 나가면 그것이 정진을 올바르게 해 나가는 법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안되면 안된다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고, 또 조금 잘되면 잘된다고 좋은 생각을 내 가지고, 그 좋은 경계를 흩어버리게 되는 거다 말이여. 그것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하고.

 

좌선 중에 주먹을 이렇게 딱! 쥐고서 양 무릎에다 놓고 하는—이게 금강권(金剛拳)이라 그러는 건데, 혼침(昏沈)이 오거나 생각이 너무 무력해져 가지고, 그럴 때에는 주먹을 이렇게 딱 쥐고 허리를 쭉 펴고서 이렇게 해서 그런 자세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잘되면 다시 근본자세로 이렇게 해서—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개고, 양 엄지손가락 끝을 살짝 맞대 가지고 배꼽 앞에다 따악 놓고, 이렇게 해 나가고.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빠지고 혼침이 오고 무력해졌을 때는 또 금강권을 쥐고 이렇게 해서 타악 정신을 차려서 해 나가고.

 

노상 처음부터서 이렇게 해서 잘되어 가고 그렇게 해서 아무 불편이 없다면 그렇게 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 금강권은 혼침이 와서 그러거나, 힘이 없어서 무력해지거나 할 때는 누구라도 이렇게 해서 허리를 주욱 펴고 이렇게 해서, 그 경계를 갖다 벗어나도록 그렇게 활용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처음~11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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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부지런히 힘씀. ②불법(佛法)을 깨닫기 위해 수행에 힘씀.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 걷기, 머물기, 앉기, 눕기 등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움직임.

*단정하다(端正-- 바를 단/바를 정)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회광자간(廻光自看).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순/익을 숙) ; 완전히 익음.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