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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4.24 만공스님(No.086)—전강 스님의 선지식 정화 | 전강 스님에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법을 쓰신 만공 스님의 지도.
  2. 2022.04.13 무상(전강선사 No.013)—(게송)今朝相別後~ |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모여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인연 |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
  3. 2022.03.26 만법귀일일귀하처((No.259))—(게송)問一歸源最的談~ | 공안은 중생의 사량분별로써는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 활구참선객은 자기의 본참공안을 거각할 따름.
  4. 2021.08.15 마니주((세등51))—(게송)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裏親收得 六般神用空不空 一顆圓光色非色 | 여래장 속에 마니주가 들어 있다.
  5. 2021.08.12 묵언((세등51))—우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맹렬하게 정진하는 일 밖에는 없다 | 화두에 일념이 되다 보니 제절로 묵언이 되게.
  6. 2021.05.08 무상((No.233))—우리는 금생에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난 그 인연으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永遠)을 찾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7. 2021.03.28 무량겁((No.117))—인과(因果)의 법칙 | 무량겁, 자기의 운명도 오직 현생(現生)의 한 생각 한 생각이 중대한 원인이 된다.
  8. 2021.02.12 무기공(No.454)—(게송)石火光陰走~ | 망령된 식신(識神) | 화두 의심을 놓치면 정념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고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9. 2021.02.08 무쟁삼매((No.596))—(게송)行年忽忽急如流~ | 정말 무상(無常)한 줄을 깨달라야 | 정치는 보살심(菩薩心)으로 해야 | 無諍三昧 | 놓는 공부가 '이 뭣고?'여.
  10. 2021.02.06 무상((No.596))—(게송)萬物榮枯自有時~ | 달팽이 뿔 | (게송)雁飛天末迹留沙~ | (게송)行年忽忽急如流~ | 정말 무상한 줄을 깨달라 탐욕심을 버려야.
ㅁ/만공스님2022. 4. 24. 16:24

만공스님(No.086)—전강 스님의 선지식 정화 | 전강 스님에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법을 쓰신 만공 스님의 지도.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 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 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19분 51초)



[법문] 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78.08.27) (용086)

입추(入秋)가 지나고 처서(處暑)가 지났는데 아직도 잔서(殘暑)가 혹심(酷甚)해서 대단히 더웁고 훈증(薰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오늘 7월 관음재(觀音齋)에 여기 사부대중께서 많이 법회에 참석을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모다 제방(諸方)에서 해제(解制)를 마치시고, 석 달 동안 그 더위를 이겨내면서 용맹, 가(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시고 해제를 마치고 오신 모다 납자(衲子) 스님네 그동안 정진하시느라고 대단히 노고가 많으셨을 줄 생각합니다.


오늘은 전강 조실 스님의 6대 선지식(六大善知識)으로부터 인가(印可) 받으신 내용에 대해서 법문이 계셨습니다.


원래 참선(參禪)은 처음 시작할 때에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가지신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참선을 시작해야 하고 또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정진을 해야 하고 정진을 한 끝에 무슨 소견이 나거나 얻은 바가 있을 때에도 반드시 그런 바른 정법(正法)을 갖으신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達摩)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스승 없이 깨달은 사람은 만 명 가운데에도 드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걸어가는 길도 가다가 두 갈래 세 갈래 길이 나오면은 반드시 그 길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만 자기의 목적지에 어김없이 도착할 수가 있거든,
하물며 눈으로 보이지 아니한 마음으로 가는 이 도(道), 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선각자(先覺者)의 바른 지시 없이 자기 마음대로 공부를 지어간다든지, 바른 안목을 갖추지 못한 그러한 분에게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백 명이면 백 명, 만 명이면 만 명, 중간에 가다가 주저앉거나 또는 곁길에 빠져서 헤매거나, 삿된 길에 떨어져서 영원히 자기 신세를 망치고 남을 망치고 그리고 불법(佛法)을 망하게 할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전생에 얼마나 도를 많이 닦으셨는지, 아마도 전생에 불보살(佛菩薩)이나 위대한 조사(祖師) 스님네가 말세(末世)의 정법을 선양하기 위해서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신 그러한 성현이신, 필시 그러한 어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23살의 젊은 연세로 견성(見性)을 하셔서 한국의 여섯 분의 큰 선지식으로부터 차례차례 인가를 다 맡으시고,
거의 지리산, 태백산을 위시(爲始)한 명산대찰에 선지식들을 차례차례 다 만나시고 강사가 되었건, 선사가 되었건 조실로 계신 분은 닥치는 대로 법(法)을 거량(擧揚)을 해서 거의, 확철대오 하지 못하고 선지식 노릇하고 계신 그러한 분들 모조리 다 색출을 해서 소탕을 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 태백산에 8대 도인(道人)이라 해가지고 태백산 골짝 골짜구니마다 도인이라 해가지고 도인 노릇을 하고 있는 그런 가짜 도인들을 전부 다 이 법문답(法問答)을 통해서 다 스스로 도인의 감투를 벗어버리고 조실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는 없도록 그렇게 하셔서 노상 박 금봉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지식 정화(淨化)를 전강 스님이 하셨다”고 이렇게 노상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금봉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스님은, 전강 스님은 일생동안을 차라리 조실 자리에 앉지 말고 납자의 위치에서 일생을 지내셨으면 참 좋았을 것을 그랬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왜 그렇습니까?”하고 여쭤 봤더니 “납자의 위치에 있으면 얼마든지 어떠한 선지식이라도 가서 법거량(法擧揚)을 해가지고 정화를 할 수가 있는데, 스스로 조실(祖室)의 위치에 앉게 된 뒤에는 조실의 체모(體貌)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선지식의 인가도 없이 절절이 많은 조실들이 지금 한국에 수십 명의 조실 스님이 계십니다. 이럴 때에 정말 확철대오 했고 또 선지식으로부터 분명히 인가를 받은 그러한 조실이라야 정말 학자(學者)를 바로 제접(提接)해서 정법을 유통해 나갈 것이어늘, 자기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선지식의 분명한 인가도 없이 조실의 책임을 띄고서 많은 후배들을 그르치고 있지 않느냐.

이럴 때에 전강 스님이 그러한 정화를 다시 한번 해주어야만 말세의 정법이, 불법이 바른 것과 삿된 것이 깨끗이 가려질텐데 전강 스님이 조실의 명예를 띄고 그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제 선지식 정화를 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참 안타깝다” 이러한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6대 선지식으로부터 차례차례 다 인가를 받고서 마지막 판에 만공(滿空) 스님 회상(會上)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서 떠억 절을 하시니까 “십마물(什麽物)고? 무슨 물건인고?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와서 절을 허는고?” 다시 한번 일어서서 떠억 절을 하시니까 “무슨 물건이여?” 또 물으신다 말씀이여.
그래 조실 스님께서는 주먹을 들어서 만공 스님 앞에 턱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허! 습기를 버리지를 못했구나” 만공 스님께서 그렇게 점검을 하셨던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자신(自信)이 만만(滿滿)해서 쪼끔도 막힐 바가 없고, 의심이 없으셨건마는 그날 이후로 계속 만공 스님 회상에 머물러 계시는데 기회 있을 때마다 전강 조실 스님의 하시는 말씀, 하시는 거동에 대해서 만공 스님께서는 인증을 하시지 아니하고, 사사건건이 전강 조실 스님을 비웃고, 놀려 대고 이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뭐라고 입만 벌리시면 “자네보다는 나어” 도대체 입을 벌리지도 못하게 하시고 비웃고, 조롱하고 해서 그러니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열흘을 지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절대로 선지식이 학자를 조롱하실 리도 없고, 속일 리도 없고, 아니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시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정신을 재차 가다듬어서 철봉대(鐵棒臺)를 붙잡고 서서 밤을 지새기를 몇날 며칠, 한 달, 두 달, 이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던 것입니다.

‘결단코 선지식이 나를 조롱할 까닭도 없고 속이실 리가 없다. 반드시 까닭이 있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다’ 이리 생각하시고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하는 화두를 들고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만공 스님을 최후로 만나지 못하셨던들, 만공 스님의 법 쓰시는 것을 정말 깊이 믿지 아니 하셨던들, 조실 스님께서는 꼭지가 덜 떨어진 채로 선지식 노릇을 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선지식은 정말 학자로 하여금 정말 조끔도 의심 없는 경지에까지 들어가도록 이렇게 대자비를 가지시고 법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참선을 올바르게 하고자 할 때에는 그러한 만공 스님과 같은 그러한 훌륭한 선지식의 지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재삼(再三) 느끼게 됩니다.

만공 스님 말고 용성 스님이라든지, 한암 스님이라든지 혜월 스님이라든지 혜봉 스님이라든지, 그러한 선지식들도 다 만공 스님 만큼 그렇게 훌륭한 선지식이셨고, 각기 그 선지식마다 특이한 좋은 점을 장점을 가지고 계셔서 그러한 선지식들도 다 학자로서는 두루 다 찾아뵈어야 하고 지도도 받아야 하지마는, 그 여러 선지식 가운데에도 특별히 만공 스님은 그러한 점에 있어서 학자의 마지막 중요한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그러한 밝고도 밝은 그러한 안목을 갖으셨던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혜봉 스님께서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요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러니, 금년 가난이 시(是)가난이라 추야무(錐也無)로다. 그 공안에 있어서 어떻게 일러야 조사선(祖師禪)을 보았다고 하겠느냐?”
조실 스님께서는 거침없이 “능각이 뾰족하고 뽀족해서 저와 같지 않습니다[稜角尖尖不似他]” 이렇게 대답하심으로써 쪼끔도 의심이 없으셨지마는,
후일에 그때 혜봉 스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은 것을 인가해 주신 걸로 알았었던 것을 후에사 그것이 아니라, ‘분명히 내가 그것을 잘못 일른 것이고 혜봉 스님께서 인가해 주신 것이 아니다’한 것을 스스로 깨달으시고 이 용화사에서 연전(年前)에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운집(雲集)한 가운데에 그것을 대중 앞에 공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은 우리의 정진도 일기지사(一期之事)로 느낀 바가 있다든지, 얻은 바가 있다든지, 어떠한 한 분의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해서 득소위족(得少爲足) 조그만한 것을 얻은 것으로써 만족을 삼을 일이 결단코 아니라고 한 것을 다시 또 뼈아프게 느끼게 됩니다.
진리는 한(限)이 없이 높고 크고 깊은 것이어서 우리가 정진하는 가운데에 조그마한 쪼끔 느낀 바가 있고, 어떤 공안에 맥힌 바가 한두 공안에 통과한 바가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족(足)함을 삼고 살림을 삼고 주저앉아서는 아니될 줄 생각합니다.

‘옳다! 인자 되었다!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할 때 그 사람은 기껏 옳게 공부를 해 가다가 거기서부터 비뚤어 가는 것이 되는 것이고, 계속 정진을 해 나가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되는 것이고,
좋은 제호(醍醐), 우유로 만들어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바로 제호라고 하는 음식인데, ‘그 좋은 맛있는 제호상미(醍醐上味)를 변질케 해서 독약으로 만드는 격이 된다’고 고인이 말씀하신 뜻이 얼마나 뼈아프고 소중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가운데에 스님이 되었건 또는 거사가 되었건 또는 청신녀가 되었건 참으로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잇고자 하신다면 바른 선지식을 찾아서 올바른 지도하에 공부를 하실 것이고, 공부하시다가 어떠한 종류의 얻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눈밝은 선지식의 점검을 통해서 씻어버릴 것은 씻어버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다시 올라서야 할 사람은 다시 올라서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바입니다.(처음~20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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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 ; 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 이십사절기의 하나. 양력으로 8월 23일경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는 시기이다.
*잔서(殘暑 남을 잔/더울·더위 서) ; 늦여름의 한풀 꺾인 마지막 남은[殘] 더위[暑].
*혹심(酷甚 독할·심할 혹/심할 심) ; ①정도가 가혹(苛酷)하고 심(甚)함. ②매우 지나침.
*훈증(薰蒸 불피움·태울 훈/찔 증) ; ①불피워 태우고[薰] 찜[蒸]. ②찌는 듯이 무더움.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정법안장(正法眼藏) ; 부처님의 바른 교법이라는 뜻.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체득한 깨달음을 뜻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〇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체모(體貌 몸 체/얼굴 모) ; 체면(體面). 남을 대하기에 번듯하고 떳떳한 입장이나 면모.
*학자(學者) ; 학인(學人). 도학자(道學者).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연전(年前) ; 여러 해 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일. 일시적인 일. ②당장의 일.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제호(醍醐) : 옛날 인도에서 우유로써 만드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맛이 제일 좋고, 열병(熱病)에 귀중한 약품도 되는 것이 제호다。이것은 히말라야 산에 있는 「비니」라는 풀만을 먹은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다고 한다.
*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가로판 p78)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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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상2022. 4. 13. 09:42

무상(전강선사 No.013)—(게송)今朝相別後 消息幾時聞 明日秋雲隔 思君不可見 |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모여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인연 |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倏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과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15분 30초)


[법문] 전강선사(No.013)—전강선사 일대기 제6호(경술1970년 12월 9일 음) (전013)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소식기시문(消息幾時聞)고
나무~아미타불~
명일(明日)은 추운격(秋雲隔)이다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 별(別)‘ 자를 딱 붙여져 가지고 있어.
우리가 다생 겁 중에 얼마나 정법에 인연을 심어 놨길래, 같은 세계에 같은 이 몸뚱이를 얻어 가지고 같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서로 도반(道伴)이 되아 가지고 같이 도를 닦는 이러헌 지중헌 인연이 있는가.

허지마는 이렇게 모아진 것은 원인이 갈릴 원인이니라. 어쩔수 없이 갈려. 서로 상별(相別)이 앞에 있어서,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모여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인연이여. 인연은 취산(聚散)이다. 인연이라 하는 것은 취해졌다가 흩어지는 것이여.
비단 우리 이렇게 모인 우리 정법문중 도반만 두고 헌 말이 아니여. 속가의 가정도 부부가 서로 만나고, 부자가 서로 만나고, 손자 그저 고손자 그저 며느리 그저 모도가 서로 만난 인연이라는 것은 취산(聚散)헐 장본(張本)이여. 흩어지고 갈려 버릴 장본인데.

사별(死別)이라 하는 것은, 이 몸뚱이 요녀러 것 죽어 버린 뒤에 갈린 것이라 하는 것은 몸뚱이 보고 서로 부부지간이니 자식이니 손자니 며느리니 몸뚱아리, 콧빼기, 눈깔, 고것 보고 알았제. 고놈 와서 받아 가지고 내버린 뒤에는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무엇으로 그놈 증거해서 알 것이냐?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主人公) 그 자체는 서로 서로 보지 못헌 것이다. 그 본래면목(本來面目) 낯반대기는 저도 제 낯반대기를 모르고, 제 면목을 모르는디 어찌 하물며 아버지, 어머니, 부부지간이 알리요? 몰라!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도대체 알 길이 없는 것을 추운격이락 햐. 허니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요.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가히 볼 수 없어. 시방 이렇게 된 것이니, 그 무상허고 허망헌 몸뚱이 요까짓 것으로써서 서로 모여 있다가 서로 갈리게 된 것이 도대체 참 인생의 허망이다.


그러면 용성 스님한테 가서 이렇게 여러 그 법문 모도 물어서 내가 답헌 것도 있고, 또 내가 모도 다 해 논 법문을 듣고 묻는 것도 있고 헌 가운데, 지금 요리 늘 헌 법문, 저 고승집(高僧集)이고 늘 헐 때 모도 헌 법문, 그 법문 원인을 또 아침에 얘기...

그 용성 스님께 물어서 내가 또 답헌 것이 있으니깐, 그거 늘 그 전부 몇 번 들은 거지마는 오늘 아침에 인자 이놈을 이 불가불 이번 이 일대기(一代記)에는—뭐 일대기인가, 원 내 역사기인가, 거다가 넣어 달락 하니 이놈을 안 넣을 수가 없어서 원인부텀 얘기를 허는 것이여. 원인도 천 번 들어도 또 듣는 것이여.
이게 우리 불가(佛家)에도 있는 법문이지마는 유가에도 있고, 저 천주교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다 있어, 이 비유가. 우리 불가에만 있는 것이면 허지만, 전부 다 있어. 공자 공문(孔門)에도 있고.

그러니 뭐, 허지만 오늘 아침에 또 이놈을 또 처음부텀 우리 불가에 갖다 맨들아 논 원인부텀 말을 허게 되니 잘 들어야겄어.


사미과(沙彌科)에, 우리 중 되면은 인자 사미과에 있는 건디, 『치문(緇門)』에.
부업계수신(夫業繫受身)은, 업으로써 이 몸을 받는 것이다. 지은 대로. 금생에 지으면 지은 놈 가지고 내생에 받아 나온다. 금생에 받은 몸뚱이는 전생에 지어서 받아 온 것이다.
여자 될 몸을 지었으니, 여자 될 업(業)을 지었으니 여자 되아 온 것이고, 남자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남자 몸 받아 온 것이고, 축생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축생 몸 받아 오고, 아귀 될 업을 지었으니 아귀 몸이 되아 오고, 지옥 업을 지었으니 지옥죄 몸을 받아 오고, 전부가 이것은 원인이 업계수신(業繫受身)이다. 업으로써 받아 온 우리 몸뚱이니라.

그러니 업이 다 똑같이 짓지를 못허고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명이면 만 명, 다 달러. 똑같이는 못 짓거든. 그러니 똑같이 못 나와.
업으로 대체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명(命)도 질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짜룹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하루 있다 죽는 사람도 있고, 한 시간에 죽는 놈도 있고, 뱃속에서 내 버리는 놈, 맨 그 업이니라. 왜 그러헌 그 차별이 있는 업을 모도 지었길래 업으로써 이 몸뚱이를 받았느니라.

미면형루(未免形累)니라. 업으로 또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업도 다 달라서 명한(命限)도 다 그렇게 고르지 못허지마는 얼굴조차 모도 생김 생김이 전체가 다 달라. 구랭이 된 놈이 있고, 그저 소 된 놈이...
똑같은 자리인디. 그 주인공 영(靈) 자리는 똑같은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똑같은 것인데, 아! 이렇게 그 짓는 업보(業報) 그놈이 달라.
그래서 얼굴이 진 놈도 있고 짜룬 놈도 있고, 큰 놈도 있고 적은 놈도 있고, 모도 못쓰게 된 것도 있고 잘된 것도 있고, 몸뚱이라도, 사람 몸뚱이라도 그저 그만 문둥이 출추신(出醜身)도 있고, 그걸 형루(形累)락 햐. 형루를 면치 못허느니라. 똑같이 좋은 몸을 가지고 오들 못혀, 업 따문에.

품부모지유체(稟父母之遺體)로구나. 부모의, 허나 못허나 그런 몸뚱이라도 또 부모한테 가서 그 유체(遺體)를 받아.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그러헌 몸뚱이를 받아 온다 그 말이여.
가중연이공성(假衆緣而共成)이로구나. 여러 인연이 또 가자(假藉)해 된다. 이 몸 하나 얻을 때 인연(因緣)이, 몇 인연이 들어? 아버지 인연이 있어, 어머니 인연이 있어, 내 혼백 그놈이 마침 적당헌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어떻게 의탁(依託)혀야 되아.

아! 이놈 그 인연이라는 것이 아버지여, 어머니여, 내여.
또 그런 '때' 인연이 있어. 꼭 적당헌 때에 이 몸을 가서 어떻게 얻어야 되는디, 그놈이 그 인연이라는 게 여러 가지 인연이 들어간다. 중연(衆緣)이 아니면 이 몸을 받들 못혀. 그래서 받아 왔는데.
솔찬히 그 어려와. 이 몸뚱아리, 그 추헌 몸뚱이이나따나 받아 오기가 쉽지 못혀. 균일치 못혀. 어렵단 말이여.

수내사대부지(雖乃四大扶持)로구나. 그러나저러나 그 가운데에 그 몸뚱이, 한량없는 몸뚱이 가운데에 사람 몸뚱이,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받아 온 것이 무척 또 다행하다. 보통 문제 아니다.

받아오기는 왔다마는 상상위배(常相違背)다. 어긴다.
이놈 몸뚱이가 사대(四大) 가운데 물이 많아도—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된 몸뚱이인디 물, 또 그 화(火) 기운, 또 바람 기운, 그 땅 기운, 그 네 가지로 되았는데, 이 몸뚱이에 물, 수대(水大)만 물이 너무 많아도 습기가 많아 못쓰고, 화기가 너무 많아도 홧병 따문에 못쓰고, 그놈 그 토(土)성만 너무 많아도 비대해서 아주 그만 숭악해 메주 단지처럼 못쓰고, 바람 많아도 풍(風)이 막 들입대 풍증이 있어서 못쓰고. 아! 이놈이 모두 이런 어긴 것이 있다.
그래 가지고는 그놈의 몸뚱이는 무상(無常)헌 병이 그만 들어오기 시작할 것 같으면은 몸뚱이는 어떻게 어떻게 이리저리 받아 왔다마는, 그놈 여러 가지가 서로 어겨서 병이 모도 이놈이 몸뚱이 모도 얽히게 된다 그 말이여.

조존석망(朝存夕亡)이로구나.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기도 허고, 밤에 있다가 새벽에 죽기도 허고, 이놈의 몸뚱이 생사라는 것은 누가 알 수가 있나. 참 믿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찰나이세(刹那異世)니라. 잠깐 동안에 이 세상이 그만 죽어버린 뒷세상이 된다. 후세(後世)가 와 버려. 이 몸 가지고 있을 때에는 금생이더니 이놈 턱 내버리면 후생(後生)이 된다. 아! 이런 꼴이 있나.
변시내생(便是來生)이여 찰나이세(刹那異世)다. 찰나, 잠깐 동안 이 몸뚱이 그만 이별해 버리고는 내생이 오는데, 그때 가서는 인자 몸뚱이는 내던져 버렸으니 혼만, 영혼만 내생 떠억 되아 가지고 나타난다.

비여춘상효로(譬如春霜曉露)로구나. 비유컨댄 봄에 서리가 와 가지고 볕 나면 녹아 버리는 것이나 같구나. 새벽 이슬 끝에 맺혀 있는 풀 끝에 달려 있는 이슬같구나. 이 몸을 얻어 와 가지고 이 몸을 내 버린 그 무상한 것이 여차(如此)허다.
숙홀즉무(倏忽卽無)로구나. 금방 이 몸을 받아 왔다마는 금방 그만 내버리게 되는구나. 그만 그거 이거 참, 이 몸을 믿다니. 요거 요까짓 것을 믿다니. 숙홀즉무다.(처음~15분3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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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조상별후~’ ; 『청허당집(淸虛堂集)』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참고.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장본(張本 어떤 일을 벌이다 장/근본·뿌리 본) ; ①어떤 일이 크게 벌어지게 되는 근원(根源). ②장본인(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낯반대기 ; 낯바대기('낯—눈·코·입 등이 있는 얼굴의 앞쪽 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낯판대기.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명한(命限) ; 목숨의 한도.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질다 ; ‘길다’의 사투리.
*짜룹다 ; ‘짧다’의 사투리.
*형루(形累 형상·모양·몸 형/묶다·괴롭히다·근심 루) ; 형(形)은 중생의 형태, 루(累)는 거기에 따르는 고달픈 삶을 말한다. 중생의 몸이 전생의 업에 묶여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므로 ‘형루(形累)’라고 한다.
*유체(遺體 남길 유/몸 체) ; ①’부모가 남겨 놓은 몸’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이르는 말이다. ②‘시체(屍體)’를 달리 이르는 말.
*가자(假藉 임시·일시/깔다·빌리다 자) ; 임시로 빌림.
*솔찬이 ;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몸뚱이 이나따나 ; 몸뚱이 이것이나마.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들입다 ; 세차게 마구.
*뒷세상 ; 내세(來世).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세상.
*후생(後生) ; 내생(內生).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倏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과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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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만법귀일일귀하처((No.259))—(게송)問一歸源最的談~ | 공안은 도저히 우리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써는 종잡을 수가 없고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 모름지기 최상승학자(最上乘學者)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만법귀일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 화두(공안)의 하나.
〇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僧問 萬法歸一一歸何所 師云 老僧在靑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 『전등록(傳燈錄)』 제10권. 조주선사.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제45칙.

 

(4분 36초)


[법문] 송담스님(No.259)—1985년 신수기도 회향 (1985.01.09.음) (용259)

문일귀원최적담(問一歸源最的談)이여  작가친대칠근삼(作家親對七斤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헌디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기를 "만법(萬法)이 귀일(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닜고?,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여쭈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내가 청주 땅에서 베적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참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되어서, 우리는 왜 '모든 법이 다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하고 묻는데 대해서 엉뚱하게 '내가 청주 땅에서 적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다'
도저히 우리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써는 종잡을 수가 없고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사량분별로 따질라고 하면은 이것은 얼토당토않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최상승학자(最上乘學者)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여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이나, 소금을 물에다 넣으면 그 물에 녹아버린 소금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다. 맛을 보면 바야흐로 짭짤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소금을 아무리 많이 타도 눈으로 봐 가지고는 도저히 맹물인지 소금물인지, 짠지 싱거운지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월에 간장을 모다 담으시게 되겠지만, 짜고 안 짠 것은 눈으로 봐 가지고는 알 수가 없으나, 맛을 보아야 비로소 얼마만큼 짜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못다 한 말을 주장자(柱杖子)에 부탁을 하고 내려가겠습니다.(1시간25분57초~1시간30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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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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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ㅁ/마니주2021. 8. 15. 11:32

마니주((세등51))—(게송)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裏親收得 六般神用空不空 一顆圓光色非色 | 여래장 속에 마니주가 들어 있다 | 마니주를 가진 사람이 부릴 수 있는 신묘한 신통.


*마니주(摩尼珠) ; 불성(佛性 부처의 성품, 자성自性, 깨달음 그 자체),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 번뇌에 의해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궁극적인 해탈)을 신비한 불가사의한 보배 구슬, 마니주(摩尼珠)에 비유한다.

마니(摩尼)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ṇi 의 음사(音寫). 마니(麽尼 · 摩抳 · 磨抳) · 말니(末尼)로도 쓰이며, 주(珠), 보주(寶珠)라고 한역(漢譯)한다. 마니주(摩尼珠) · 마니보주(摩尼寶珠)라고도 한다.
마니주(摩尼珠)는 산스크리트어[범어梵語] 음사어와 한역어를 병칭(倂稱)한 형태의 단어이다.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컫는다.

경전에서는 재난과 질병과 해독(害毒)을 없애주고, 더러운 물을 맑게 해주는 등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가진 보주(寶珠)로 언급된다.

 

 

 

(9분 53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마니주인불식(摩尼珠人不識)이여  여래장리친수득(如來藏裏親收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육반신용(六般神用)이 공불공(空不空)이요  일과원광색비색(一顆圓光色非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마니주(摩尼珠), 이 마니주를 터억 지니면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아니하고, 육도법계를 자유자재로 댕기되 하나도 손상을 입지를 안 해. 그 마니주를 지녔건만 사람이 알지를 못하더라.
여래장리친수득(如來藏裏親收得)이여. 그 마니주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 여래장(如來藏) 속에 그것이 떠억 감추어져 있더라 그 말이여. 여래장이 무엇인가?

여래장은 바로 우리 중생심(衆生心)이어늘, 중생심 그 제8식(第八識)이 바로 그것이 여래장인데, 그 여래장 속에서 일체 희로애락과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일어나는 색성향미촉법, 육근 · 육식 · 육진(六塵. 六境)이 바로 여래장 속에서 일어나는 물결인데, 그 여래장 속에 그 마니주가 들어 있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여섯 가지 신통(神通)을 부리는데, 그 여섯 가지 신통이—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고, 혀를 통해서 맛을 보고, 육체 몸을 통해서 차고 덥고 하는 것을 느끼고, 의식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인식을 한다. 그 여섯 가지가 바로 그것이 마니주를 가진 사람이 부릴 수 있는 신묘한 신통이다.

그런데 그 신통은 비었으되 빈 것이 아니요, 분명히 있으되 비어 있는 것이고, 분명히 비었으되 빈 것이 아니다.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 그렇게 소소영령하건마는 그놈을 찾어보면 돌이켜 찾어보면 자취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비었으되 비지 아니한 것이요.
일과원광색비색(一顆圓光色非色)이로구나. 이 마니주, 이 한 알갱이 구슬이 뚜렷하게 빛나고 있건마는, 분명히 색깔이 빛깔이 있으되 빛깔이 없더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차 있으되 찾으면 간 곳이 없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하건마는 볼라야 볼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으니, 어찌 이것이 색상(色相)이 있다고 하며 색상이 없다고 할 것인가? 있다고 해도 맞지 아니하고, 없다고 해도 맞지 아니하니,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가 없어.

중생의 소견으로 '있네, 없네' 따질 필요가 없어. 따져봤자 맞지 아니한 것을 왜 따져?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 가지고서는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따져도 이것은 해결 날 문제가 아니여. 오직 본참공안에 충실해서—나아가자니 앞이 맥히고, 물러서자니 뒤도 맥혀. 꽉 맥힌 의심으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불 속에 들어앉은 거와 같아서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앞이 맥혔으니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서자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어. 왼쪽으로도 맥혔고, 오른쪽으로도 맥혔어.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불이 훨훨훨 타고 있다 그 말이여. 그냥 있을 수도 없고 나가자니 팔방이 사방이 꽉 맥혔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거냐?

'이뭣고?'

우리는 꿈을 꿀 때에 무서운 호랑이나 큰 구랭이나 그렇지 않으면 무슨 뿔 달린 무서운 악귀 같은 것에 핍박을 받아서 도망갈라고 하니 발이 떨어지지를 않고, 그 자리에 있자니 잡혀 죽게 생겼고,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꿈을 꾸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옛날에 참선하지 아니할 때에는 고함을 지른다든지, 막 도망갈라고 몸부림을 치되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러다가 한참동안 그러한 상황 속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자기가 지르는 자기의 고함소리에 눈을 뜨고 보면 전신에 땀이 흠뻑 젖어 갖고 있는 그러한 꿈을 꾼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선법을 알아 가지고 참선을 한 뒤에는 그러한 상황 속에 화두를 탁! 들어 버리면 눈이 딱! 떠져 버린단 말이여.
비단 꿈속에 뿐만이 아니여. 인간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성나는 일, 속상하는 일, 기분 나쁜 일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하거나, 기쁜 일을 당하거나, 일체 선악 경계를 당했을 때, 화두를 딱! 들어 보라 그 말이여. 어디에 속상한 일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분한 생각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슬프고 괴로운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말이여.

이렇게 정진을 다그쳐 나가면 깨닫기를 바랠 것이 없어. 독 안에 든 자라와 같아서 지가 어디를 갈 거냐 그 말이여. 깨달음을 기다리지도 말고, 조급한 생각을 내지도 말고, 누가 와서 나를 깨닫게 해 주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어. 바로 공부를 지어 가는 마당에 깨닫지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어.

'어서 빨리 깨달러 가지고 남 앞에 큰소리 한번 쳐보리라'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가 있어. 큰소리쳐서 뭣해?(32분4초~41분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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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102권. (오백 아라한 지음 | 현장玄奘 한역漢譯 | 송성수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참고.
如契經說 佛告舍利子 若有苾芻苾芻尼等 成就不動心解脫末尼寶者 能斷不善法 能修習善法
問 : 何故不動心解脫 說名末尼寶耶
答 : 以不動心解脫 堅牢故 勝妙故 無過故 明徹故 無垢故 淸淨故 難得故 可愛樂故 名末尼寶

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사리자(舍利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필추ㆍ필추니 등이 부동심해탈의 마니보를 성취하면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을 끊고 선한 법[善法]을 닦아 익힌다.’”
문 : 무엇 때문에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을 마니보[末尼寶]라 하는가?
답 : 부동심해탈은 굳고 단단하기[堅牢] 때문이요, 훌륭하고 묘하기[勝妙] 때문이며, 허물[過]이 없기 때문이요, 명철(明徹)하기 때문이며, 번뇌의 때가 없기[無垢] 때문이요, 청정(淸淨)하기 때문이며, 얻기 어렵기 때문이요, 좋아할 만하기 때문에 마니보라고 한다.

復次 以不動心解脫 能破無明闇故 名末尼寶 如以光明末尼 置闇室中 能破彼闇 作顯照事 如是 以不動心解脫末尼寶 置相續中 能破無明闇 作顯照事

또 부동심해탈은 무명(無明)의 어둠을 타파하기 때문에 마니보라고 한다. 광명(光明) 마니보를 캄캄한 방 안에다 두면 그 어둠을 타파하고 환히 비추는 일을 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부동심해탈이라는 마니보를 상속(相續) 중에 두면 무명의 어둠을 타파 소멸하면서 환히 비추는 일을 한다.

復次 以不動心解脫 能除煩惱塵垢故 名末尼寶 如淸水末尼 置濁水中 水便澄淨 如是 以不動心解脫末尼寶 置相續中 能除一切煩惱塵垢

또 부동심해탈은 번뇌의 티끌 때[塵垢]를 없애기 때문에 마니보라고 한다. 청수(淸水) 마니보를 흐린 물속에다 두면 물이 곧 맑고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그와 같이 부동심해탈이라는 마니보를 상속(相續) 중에 두면 온갖 번뇌의 티끌 때가 없어진다.

復次 以不動心解脫 善安住故 名末尼寶 如方等末尼 隨所置處 卽善安住 如是 以不動心解脫末尼寶 置相續中 卽善安住 定無退失

또 부동심해탈은 잘 안주(安住)하기 때문에 마니보라고 한다. 방등(方等) 마니보는 놓이는 곳마다 곧 잘 안주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부동심해탈이라는 마니보를 상속(相續) 중에 놓으면 곧 잘 안주하면서 물러나거나 잃는 일이 없다.

復次 以不動心解脫 能除貧乏聖財故 名末尼寶 如無價末尼 置室宅內 能引財寶 除諸貧匱 如是 以不動心解脫末尼寶 置相續中 能引聖財 除乏功德

또 부동심해탈은 가난을 제거하는 성재(聖財)이기 때문에 마니보라고 한다. 값을 매길 수 없는[無價] 귀중한 마니보를 방 안에다 놓으면 재보(財寶)를 끌어와서 모든 가난을 제거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부동심해탈이라는 마니보를 상속(相續) 중에 놓으면 성재를 끌어오면서 공덕을 성취한다.

復次 以不動心解脫 能饒益諸有情故 名末尼寶 如如意珠 置高幢上 隨意所樂 雨諸寶物 充濟百千貧匱有情 如是 世尊 以不動心解脫末尼寶 置不放逸無量幢上 隨諸有情所樂差別 雨正法寶 能令無量無邊有情 離生死苦 善根滿足
由如是等 種種因緣 說不動心解脫 名末尼寶

또 부동심해탈은 모든 유정(有情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마니보라고 한다. 여의주(如意珠)를 높은 당기(幢旗) 위에 놓으면 원하는 바대로 온갖 보물을 비처럼 내려 백천의 가난한 유정을 충분히 구제해 주는 것처럼,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부동심해탈이라는 마니보로써 방일하지 않은[不放逸] 한량없는 당기 위에 놓고 모든 유정들의 좋아하는 바의 차별에 따라 바른 법[正法]의 보배를 비처럼 내려 한량없고 그지없는 유정으로 하여금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여의고 선근(善根)이 만족되도록 한다.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부동심해탈을 마니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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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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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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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묵언2021. 8. 12. 06:41

묵언((세등51))—출가한 우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맹렬하게 정진을 해 나가는 일 밖에는 없다 | 화두에 일념이 되다 보니 제절로 할말이 없고, 제절로 시비가 끊어지는 그러한 묵언을 하도록 나는 권장을 한다.


*묵언(默言)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음.
선방에서는 꼭 필요할 때는 간단히 한마디하고,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저절로 묵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짜 훌륭한 묵언은 할말 있으면 한마디 탁! 하고, 딱! 끝나자마자 바로 묵언이여. 하루에 한마디 내지 반 마디 이런 정도, 그렇게 꼭 필요한 말이 없거든. 여기에 모인 대중들도 그러한 묵언을 해야 할 것이다

 

 

 

(6분 29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방금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에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정든 고향과 부모와 형제 그리고 청춘을 불살라 버리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出家)한 우리 도반들, 이미 모든 것을 다 버렸거니 무슨 애착이 있으며, 무슨 시비가 있으며, 무슨 걸거칠 것이 있겠습니까.
앉으나 서나, 눕거나 거닐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맹렬하게 정진을 해 나가는 일 밖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보냐.
밥이 질면 진 대로, 밥이 되면 된 대로, 찌개가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언제 밥이 되다 질다, 찌개가 짜다 싱겁다, 그러한 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냐.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묵언(默言)을 일부러 하려고 해서 묵언을 하는 것이 아니여. 묵언패(默言牌)를 목에다가 써서 붙이고, 벙어리 흉내를 내고 뭐 글씨를 써서 문답을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정진을 하다 보니까 제절로 묵언이 되어버린다. 꼭 할말이 있으면 한마디하고, 누가 부르면 대답하고, 한마디 말 끝나 버리면 바로 묵언이여. 하루 종일 지내봤자 뭐 그리 할말이 있겠느냐 그 말이여.
하루에 한마디하기도 하고 또는 한마디 안 하기도 하고, 때로는 두 마디 하기도 하고 세 마디 하기도 하나, 그 한마디 두 마디 한다고 해서 정진에 방해되는 것은 아니여. 꼭 할말은 하되 쓸데없는 말을 안 하게 되니까, 일부러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화두에 일념으로 해 나가기 때문에 제절로 그것이 묵언이여. 이것이 진짜, 선객(禪客)이 해야 할 묵언인 것입니다.

산승(山僧)이 20대에 출가하자마자 느낀 바가 있어서 10년을 묵언을 했지마는, 나는 근기(根機)가 약해서 할말을 하면서 그냥 고대로 묵언을 한 그러한 묵언을 하지 못하고, 할말이 있거나 없거나 무조건하고 완전히 벙어리처럼 묵언을 했는데, 묵언을 한 뒤에 가만히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지금도 그때 상황을 돌이켜보건대 그렇게 썩 훌륭한 묵언을 하지를 못했어.
진짜 훌륭한 묵언은 할말 있으면 한마디 탁! 하고, 딱! 끝나자마자 바로 묵언이여. 하루에 한마디 내지 반 마디 이런 정도, 그렇게 꼭 필요한 말이 없거든. 여기에 모인 대중들도 그러한 묵언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흔히 '소승(小僧)도 묵언을 하고 싶습니다. 묵언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러한 말들을 가끔 와서 문의를 하는 선객들을 만났는데, 나는 그러한 형식적인 벙어리 흉내낸—속으로는 온갖 분별 다 하고 시비에 참견하면서 억지로 입만 딱 다물고 벙어리 흉내내는 그러한 묵언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니 진짜 묵언을 해라. 할말 한마디 두 마디는, 부득이해서 해야 할 한마디 두 마디는 하되 정말 화두에 일념, 화두에 일념이 되다 보니 제절로 할말이 없어져 버리고, 제절로 시비가 끊어져 버리는 그러한 묵언을 하도록 나는 권장을 해 오고 있습니다.(8분40초~15분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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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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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무상2021. 5. 8. 06:33

무상((No.233))—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어서 우리는 금생에 이렇게 불법(佛法) -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법, 참나를 찾는 법, 이 진리법을 만난 그 인연으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永遠)을 찾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5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233)—1984년 3월 첫째일요법회 (용233)

아까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法門) 속에 '우리 인간은 전부가 이별(離別)뿐이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처음에 그 자식을 낳아 가지고서는 그 자식을 위해서 그 부모는 몸과 목숨과 모든 그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자식을 위해서 다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고, 다 바치고서도 자식만 잘된다면 한이 없이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길렀지만, 그 자식이 차츰 커가면 결국은 부모의 품안에서 떨어져나가서 독립을 하게 되고, 또 자식으로서는 부모가 평생도록 살아계시기를 바래지만 세월이 지내면은 그 부모도 결국은 저승으로 떠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 사랑하는 부부간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형제간이나 친구 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이별(離別)을 전제(前提)로 하고 우리는 만나게 되는 것이고, 벼슬이나 명예나 또는 재산이나 모든 그런 인간에 오욕(五欲)도 역시 언젠가는 나로부터 떠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바로 이 무상(無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상 속에 몸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그 무상 속에 몸을 받아나서 무상 속에서 무상을 살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일평생을 살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갈 때까지 온전히 무상 속에서 일평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법, 참나를 찾는 법, 이 진리법을 설(說)해 주시지 아니했다면, 우리는 완전히 무상(無常) 속에서 무상을 살다가 무상(無常)하게 이승을 하직을 하고 또다시 새로운 몸을 어느 땅 어느 때에 받어나서 또 무상하게 일생을 살다가 끝을 또 마치고,
이러한 되풀이를 하면서 수없이 고의적으로, 또는 본의(本意) 아니게 업(業)을 지어서 그 업으로 인해서 육도(六道)를 끊임없이 돌고 돌다가 축생(畜生)이나 아귀도(餓鬼道)나 그렇지 않으면 지옥(地獄) 같은 데에 한번 떨어지고 나면 영겁(永劫)을 두고 나올 기약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宿世)의 인연(因緣)이 있어서 금생에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불법을 만난 그 인연으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永遠)을 찾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남전(南泉) 스님과 또 근처에 있는 어느 토굴에 스님과의 관련으로 이루어진 법문을 들었습니다마는, 우리는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기도 하고 선지식이 또 학자(學者)를 찾기도 하고 해서, 서로의 안목(眼目)을 점검을 하고 탁마(琢磨)를 해서 어쨌든지 바른 스승을 찾고 바른 도반(道伴)을 찾어서 삿된 데에 떨어지지 않고 또 중간에 멈추는 일이 없이 구경(究竟)에 깨달음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18분7초~23분2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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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무량겁2021. 3. 28. 20:41

무량겁((No.117))—인과(因果)의 법칙 | 일 초 일 초가 모여서 일평생이 되고,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서 무량겁이 되는 것 | 무량겁, 자기의 운명도 오직 현생(現生)의 한 생각 한 생각이 중대한 원인이 된다.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 • 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 • 세로 • 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 • 세로 • 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2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117)—1980(경신)년 신수기도 회향(80.02.24) (용117)

인생은 육칠십 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돌아오고 맙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물질적인 육체에 지내지 못하고, 육체가 고장이 나면 그 육체를 버리고 다시 또 새 옷을 갈아입게 됩니다.
천상의 옷을 갈아입든지, 인간의 옷을 갈아입든지, 짐승의 털 난 가죽옷을 입든지, 뱀과 같은 파충류의 옷을 입든지, 귀신의 몸을 받든지, 지옥의 신세가 되든지, 모든 것은 자기가 어떻게 짓고 닦고 살았느냐 한 것에 따라서 그러한 옷이 자기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인과(因果)의 법칙은 추호도 어김이 없는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그러한 지극히 과학적 사실에 지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인과의 법칙을 우리의 눈앞에서 현실적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인과의 법칙을 미루어서 생각하면 전생(前生) 일도 또한 내생(來生) 일도 환히 다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어서의 일 초 일 초가 모여서 결국은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서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미래가 약속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을 바르게 그리고 충실하게 사는 사람만이 자기가 금생 동안에 죽을 때까지의 자기의 운명도 결정되려니와 이 몸을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내생에 저 내생, 무량겁을 두고의 자기의 운명도 오직 현생(現生)의 한 생각 한 생각이 중대한 원인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53분26초~55분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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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무기 무기공2021. 2. 12. 15:12

무기공(No.454)—(게송)石火光陰走~ |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하지 마라 | 화두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치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고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악(惡),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11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454)—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이 세월은 탁! 돌과 돌을 부딪치면 불이 번쩍 하듯이 그렇게 참 세월은 빠른 것이고,
홍안(紅顔)은 진백두(盡白頭)다. 엊그제 빨간 소년이 금방 흰머리가 난 노인이 되고 말아.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생각해 보면 새파란 소년 소녀일 때가 엊그제 같을 것입니다.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인간의 백년 세월이라는 것이 꿈같은 것인데, 일생의 모든 일이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안 돼.
잘살 건 못살 건, 잘낫 건 못낫 건, 지내 놓고 보라 그말이여. 백년이라는 게 무엇이여? 그것이 꿈에 지내지 못하고, 하루살이 신세에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참 많은 도반들이 운집을 하셨고 또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참 이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법문은 더할 것이 없으나 기왕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셨으니까, 앞으로 해제 동안에 더운 여름도 다 갔고, 이 서늘한 해제 동안에 산철 결제를 들어가던지 또는 그냥 행각(行脚)을 하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정진을 잘 하시되.

흔히 성성(惺惺)하고 깨끗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성성하고 깨끗하고 담담(淡淡)한 그런 경계(境界)만을 자꾸 그런 경계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그러한 경계에 탐착하는 것도 그것도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잠깐 동안도 바른 생각, 정념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정념을 잃어버리면은 벌써 이단(異端)에 떨어지는 거여.
한 생각 삐끗하면은 돌이키기가 어려워. 얼마 동안을, 까딱하면 영원히 잘못 떨어질 수도 있어.


그래서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망상이 일어나고, 물론 그런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징징담담(澄澄湛湛),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거, 참 그렇게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 죽비만 안 치면은 4시간도 좋고 5시간도 좋고 계속 이렇게 앉아 있고 싶을 그러한 경지가 오는데 그러한 순청절점(純淸絶點),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지에 따악 빠져서 그놈을 지키고 앉았는 거, 그것 참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정념을 잃어버리는 가장 무서운 경계다 그거거든.


왜 그것이 무서운 경지냐?

'능히 강(講)하고, 능히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고 그러한 것을,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냐. 말할 때는 말하는 놈, 밥 먹을 때는 밥 먹은 놈, 무슨 연설할 때는 연설하는 놈, 일할 때는 일하고,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지, 그것 밖에 부처가 어디가 있으며 그것 밖에 나의 주인공이 어디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경지다’ 해 가지고 바른 정진을 해 나가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자기가 한소식 한 것처럼 그것이 바로 바른 경지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
그것은 자기의 망식(妄識)이여. 그게 망식,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는 ‘맑고 깨끗한, 성성한 그것이 바로 자기의 참 경계’로 한 것은 ‘맑고 깨끗하다’라고 하는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참 경계를 삼아. 그것이 바로 정념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거든.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또 무슨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그리고는 딱 그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경계로써 정념을 삼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경지가 지속이 되면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말할 수가 없지. 그러나 그것은 돌로 풀을 눌러 놓는 거와 같애.
그래서 돌만 떠들면은 다시 터 나오고, 오랫동안 눌러놔도 돌 어느 틈인가 뚫고 다시 (풀이) 노라니 있다 뚫고 나온 거라, 그것도 바른 경지가 아니고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또 자기의 몸을 ‘이 몸뚱이는 허공(虛空)과 같은 것이다’ 해 가지고, 허공과 같은 것이니 그래가지고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 해. 아무 생각을 안 일으키고 허공과 같은 경지에서 꼭 그 경계를 벼람빡과 같이, 장벽(牆壁)과 같이 그렇게 따악 그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참 바른 공부다’ 이리 생각하고 그러는 경지로 지켜 나가는 거.
이런 것은 공망(空亡),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다’ 그랬는데,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고요한 그걸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봤자 그것은 무기공에 떨어진 것이여.


앞에 말한 것이 전부가 다 ‘왜 그것이 바른 경지(境地)가 아니냐? 바른 공부가 아니냐?’하면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망상이 일어나도 그것을 누르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을 의심만을 딱!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을 탁!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또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話頭)를 놔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것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입니다.

바르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의심이 더이상 깊을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어. 그러한 가운데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언젠가는 툭! 터져서 의단을 타파(打破)하면 자기 면목을 보게 되고, 그때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야 하는 거야.(53분18초~64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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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담담하다(淡淡-- 묽을·담담할 담) ; 동요없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參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징징담담(澄澄湛湛 맑을 징/즐길·가라앉을 담) ; 맑고 깨끗한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순청절점(純淸絶點) ; 순수하고 맑고 티끌[點]이 끊어진 것.
*망식(妄識) ; 망(妄)으로서의 식(識). 망령된 사유분(思惟分)에 근거한 진실되지 않은 식(識).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인식 주체. 마음(心).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참고] 『벽암록(碧巖錄)』 제99칙 '본칙평창(本則評唱)'
長沙云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如今人 只認得箇昭昭靈靈 便瞠眼努目 弄精魂 有什麼交涉

장사경잠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법신으로)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식신은 무량겁으로부터 이어 온 생사의 근본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인(本來人)이라고 부른다. 지금 사람들이 단지 또렷또렷하고 신령한[昭昭靈靈] 그것을 진실이라 오인하여 눈을 치켜뜨고 그 헛것과 놀아나지만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 신수기도 입재(85.02.22).
학도지인불식진(學道之人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대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학도지인(學道之人)이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그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청·황·적·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은 ‘저거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그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무슨 말을 들으면 ‘저것은 좋은 일이다, 저것은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 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의 작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생사본(生死本)이여. 저 비롯함이 없는 저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 낳다 죽었다, 낳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은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사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은 '바로 이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이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참 면목이다. 이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 생각 낼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마는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일 수 있으나 또 한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사(生死)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 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를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이 그렇게 무서운 죄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그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가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세하셔도 구제할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를 하면 용서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에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識神)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本來身)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24분24초~32분8초)
*(게송)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來認識神 無始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身'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 (동국역경원刊) 제495칙 본명(本命)' p36 참고.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경지(境地 지경·경계 경/땅 지)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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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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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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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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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쟁삼매2021. 2. 8. 12:49

무쟁삼매((No.596))—(게송)行年忽忽急如流~ | 정말 무상(無常)한 줄을 깨달라 탐욕심을 버려야 | '이 뭣고?' 한마디면 억겁다생에 업장(業障)이 탁! 소멸이 되어 버린다 | '이뭣고?'를 한 사람은 궁극(窮極)에 무쟁삼매(無諍三昧), 다툼이 없는 삼매에 들어간다 | 진정한 행복 평화는, 탁!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놓는 공부가 '이 뭣고?'여.

*무쟁삼매(無諍三昧) ; ①진리에 안주(安住)하여 다른 것과 다툼이 없는 선정(禪定)을 말한다.
②타인과 다툼이 없는 경지. 다툼이 없는 것은 마음 속에 갈등이 없는 것. 나아가서는 ‘미혹이 없는 것’이다. 쟁(諍)은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니, 무쟁(無諍)은 곧 무번뇌(無煩惱)이니,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다.

이 한 몸뚱이도 내것이 아닌데, 무엇을 구(求)하려고 하느냐 그 말이여.(休休身外更何求)

 

(21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596)—1997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용596)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커늘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리오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헌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퍼뜩 퍼뜩 퍼뜩 지내가서 흘러가는 물과 같이 급하게 흘러간다 그 말이여.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으면, 번듯번듯 날이면 날마다 머리 위로 올라간다 그 말이여. 머리가 자고 나면 허옇고, 자고 나면 허옇고 우시우시 머리가 쏟아진다 그 말이여.
늙은 것이, 속으로 기운이 없어지고 여러 가지로 나타나기도 하지마는, 제일 쉽게 나타나는 것이 귀밑 머리로부터서 허옇기 시작해 가지고 금방 머리 여기저기서 희끗희끗 흰머리가 솟아 온다 그 말이여.

우리가 태어나면 백 년 이백 년 오래오래 살 것 같지만, 뱃속에 포태(胞胎) 되어 가지고 뱃속에서도 죽을 수도 있고, 뱃속에서 몇 달 안 되어서 유산(流産)할 수도 있고, 태어나다가 죽을 수도 있고, 태어나서 며칠 안 있다 죽기도 하고 몇 달 안 되다 죽기도 하고, 열 살 안에도 죽고 스무 살 안에도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병으로 죽고, 싸우다가 죽고, 친구 칼에 맞아 죽기도 하고, 도둑한테 죽기도 하고, 인생의 목숨이라는 게 도무지 파리 목숨만도 못해. 언제 어떻게 죽을는지도 모른다 그 말이여.
정말 무상(無常)을 깨달라야 하고 정말 믿을 것이 없어. 믿을 것이 없이 허망(虛妄)하고도 무상(無常)한 줄을 확실히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지나친 탐욕심(貪慾心)도 안 부리게 되고, 자기의 욕심을 챙기기 위해서 남을 죽이고 해롭게 하는 일을 안 할 것이다 그 말이여.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사람이 남을 죽이고 돈을 뺏겠습니까? 남을 죽이고 돈을 뺏을 때는 그것 갖고 잘먹고 잘살 줄 알고 그러지만, 정말 무상(無常)한 줄을 깨달라야 지나친 탐욕심(貪慾心)을 안 일으키게 되는 것이고.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여. 알고 보면 이 한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여.


우리는 이것을 '내 몸이다' 생각해 가지고 음식을 보면 맛있는 거, 영양 있는 것 많이 먹으려고 그러고, 다른 사람보다도 우선 제 입에 먼저 넣으려고 그러고, 좋다고 하면은 마구 먹어대고, 그리고 그 피부가 좋아진다고 하면은 온갖 것을 얼굴에다 처바르고 비싼 화장품을 사 가지고 얼굴에다 찍어 바르고 토닥거리는데, 그래봤자 내나 늙는 것은 마찬가지고, 그런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이 몸뚱이는 흙기운과 물기운과 불기운과 바람기운과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 사대(四大), 뭐 요새 여러 가지 원소(元素)는 수백 수십 가지 원소가 되겠지만, 인도(印度)에서는 네 가지로 크게 분류를 했어. 중국(中國)에서는 수화금목토(水火金木土) 다섯 가지로 분류를 했고, 인도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네 가지로 분류를 했는데. 그야 분류를 하기에 달린 건데.

그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육체(肉體)는 몽쳐지고, 또 오온(五蘊)이라 해 가지고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물질적(物質的)인 것과 정신적(精神的)인 것으로 요렇게 또 두 가지로 노누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분류하면 노나져 버리는데, 그러면 '내'라는 게 어디가 있느냐? 하면 죽음에도 없어.
지금 요새 과학적으로 해부를 하고 분류를 해서 다 분석을 하면 여러 가지 원소(元素)가 나오겠지마는 '내'라 하는 놈 찾아보면 원자현미경으로 봐도 '내'라는 놈은 없다 그 말이여. 그러니 이것을, '내'가 없는데 '내 것'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내가 내 앞으로 등기(登記)를 해 놓은 집이나 땅이나, 모다 그런 통장이나 그걸 '자기 소유다. 내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건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잠시 관리(管理)를 맡고 있는 것뿐이지, 자기 것은 사실은 아닌 거여. '내 개인 소유다. 내 것이다' 그러지만 자기 것은 아닌 거여. 관리만 하고 있다가 그냥 죽을 때면 그냥 고대로 놓고 가는 거여.
자손한테 남겨주기 위해서 그 못 먹고 못 입고 애끼고 그러지만, 그것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서양에서는 자손한테 준 것은 세금을 많이 뜯어가지고, 주어봤자 세금 물다 보면은 별로 자손한테 돌아갈 것이 없으니까 차라리 공익 단체에다가 기증을 하고 가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는데, 그건 대단히 우리도 본받아야 할 만한 좋은 법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내 이 한 몸뚱이도 내것이 아닌데, 무엇을 구(求)하려고 하느냐 그 말이여.(休休身外更何求)

정치도 자기가 아니면 대통령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마는, 서로 험담을 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싸우고, 과거에는 상대와 맞수가 되면은 죽이고 자기가 하는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확실히 증명이 안 되고 있지마는, 그래 가지고 해 봤자 무엇입니까 그게. 결국은 자기도 제 명(命)에 못 죽는 거고.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아들들에게 정치하라고 시키지 말고, 첫째는 불법(佛法)을 믿어라. 그리고 무엇이든지 너에게 소질(素質)이 있는 거, 니가 하고 싶은 거, 음악이면 음악, 뭐 그림이면 그림, 또 학문이면 학문, 꼭 나가서 권리를 잡으려고 하는 그런 데로만 가야만 좋은 것으로 그렇게 억지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전생(前生)에 정치를 많이 해서 그런지 정치라고 하면 아주 이가 갈립니다.멀쩡한 사람이 출마만 하면 정신병자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도 혹 출마를 하면 저렇게 될까?'
나도 과거에 정치했을 때—내가 숙명통(宿命通)이 안 나서 전생에 내가 왕 노릇을 했는가 어쨌는가, 내가 확실히는 몰라도 언젠가는 왕도 한번은 했지 않을까 속으로 짐작이 그렇게 가요. 왜 그러냐?
그런 거 하기 싫은 것을 보면은 내가 과거에 했지 않은가 싶어요. 젊어서 어려서 보리밥을 너무 많이 먹어 가지고 신물이 나면 보리밥을 보면 아주 정떨어져 보기도 싫다고 그러거든요? 그런 것을 보아서 정치를 별로 안 좋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면, 과거에 전생에 임금 노릇도 몇 번 쯤은 해봤지 않을까?

임금님을 했다면 여기에 모이신 분들은 또 거기서 장관도 하고 대신도 하고, 또 임금이 되면 많은 처첩을, 궁녀를 거느리고 후궁을 거느리고 하니까 또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
그래서 여러분들도, 정치하면은 명예가 올라가고 권리가 생기고 그러니까 그런 맛으로 서로 하려고 그러고, 한번 잡으면 안 내놓으려고 그러거든.
그게 사실은 별로 좋은 것도 아니고 그 할 짓이 못되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잘한다'고 한 사람은 일부분이고 대부분 '잘못했다'고 한 사람이 더 많다 그 말이여. 어떻게 아무리 임금 노릇을 잘하고 대통령 노릇을 잘하기로서니 온 국민을 다 좋게 해 줄 수가 있는 문제냐 그 말이여.
이것을 법을 이렇게 제정하면 일부에서는 좋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손해 본 사람은 다 싫다고 하는 거여.

그래서 정치를 이미 손을 대 가지고 손을 뗄 수가 없고, 그것 아니면은 해 묵을 것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또 해야지, 여태까지 여당이다 야당이다 하다가 이 법문(法門) 듣고 '아이고, 내 그거 그만두어야 겄다' 할 사람 한 사람도 있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하기는 하되 정당(正當)하게 하고, 일단 하게 되면 정말 사심(私心)없이 해야 하고, 이 몸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바친다는 그러한 마음으로 보살(菩薩)의 정신(精神)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렇다면 거기에 사욕(私慾)이 있을 수가 없고, '어떻게 하면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잘할 수가 있을까?' 그렇게 대통령을 하고 나오면, 대통령 하고 나오면은 호위하는 사람이 없어도 가는 곳마다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대통령 할아버지' 이렇게 할 것이 아니냐 그 말이여. 그러한 대통령을 해야 하고.

정말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없고, 자기에게 경륜(經綸)이 있어서 이 침체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모든 교육과 모든 것을 정말 잘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경륜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원력(願力)을 세우고 한번 해 볼 만하는데, 그거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겄습니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은 그러한 대원력(大願力)과 대자비(大慈悲)와 대지혜(大智慧)를 갖춘 사람이 할 일이 바로 대통령이고 왕(王)이다 그 말이여. 그렇지 않으면은 할 짓이 못돼.

여러분은 (IMF 경제 위기)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뉴스를 듣고, 그러한 속에서 귀를 막고 살 수는 없고, 그런 흐름 속에도 우리도 다 같이 이렇게 국가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도 같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그래도 이 자리에 모이신, 또 산승(山僧)의 이러한 간곡한 말을 들으신 인연(因緣) 있는 분은, 정치를 하되 자기의 위치에서 사욕과 사심이 없이 성실히 하고, 인연이 있어서 관여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그만 둘 때는 깨끗하게 미련없이 놓아 버리고, 니아까를 끌던지 운전사를 하던지 농사를 짓던지 장사를 하든지, 영국에 윌슨 수상은 옥스포든가 켐브리진가 그 영국에 좋은 대학을 나와 가지고 영국에 수상이 되었는데, 아직 임기가 아직 남아 있어도 후배들을 위해서 미리 사표를 내고 나와 가지고 그 이튿날 운전사로 취직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쯤 되어야 하거든. 할 때는 멋들어지게 하고, 그만둘 때는 깨끗이 끝내고.
우리나라 이조(李朝) 동안에도, 그 이름은 내가 잊어버렸는데, 훌륭한 정승(政丞)이 있었는데 구십구 칸이나 되는 큰 건물 집을 짓고 많은 권속을 들이고 그렇게 참 권리를 누리고 정치를 하다가, 인연이 돌아와서 그만두게 되니까, 그것 다 고대로 버리고 자기가 키우고 있는 학 한 마리와 개나리 봇짐만 짊어지고 저 시골 고향 농촌으로 돌아간 그러한 훌륭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치라는 게 권리(權利)를 잡을 때는 명예와 권리가 따르고, 내놓을 때는 비참한 것입니다. 예나 이제나 마찬가집니다. 할 때는 열심히 하고 멋지게 하고, 내놓을 때는 깨끗하게 내놓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그러한 멋있는 장부(丈夫)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이라야, 그런 각오가 있어야 탁! 현재 가정에 살림도 하고 사업도 하고 직장도 있지만 딱! 법회(法會) 때가 돌아오면 법회에 와 가지고 법문(法門)을 따악 듣고 '이 뭣고?'를 하고.

'이 뭣고?'를 해야 그런 멋진 사람이 될 수가 있다 그말이여.
왜 '이뭣고?'를 해야 그렇게 되냐 하면, 한 생각으로 억만 겁 일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억만 겁 미래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천금 만냥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목숨도 놓아 버릴 수가 있거든. 오욕락(五慾樂) 부귀영화(富貴榮華) 그까짓 것이 탁! 놓아 버릴 수가 있는 거여.
'이 뭣고?' 한마디면은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업장(業障)이 탁! 소멸(消滅)이 되어 버리는데 무엇을 아낄 것이 있느냐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이뭣고?'를 한 사람은 궁극(窮極)에 어디에 도달하냐 하면 무쟁삼매(無諍三昧)에 들어가, 다툼이 없는 삼매에 들어가는 거여.
우리는 무한경쟁(無限競爭) 시대라 해 가지고 노상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이렇게 해서 한시도 방심을 할 수가 없고, 회사에 들어가도 경쟁, 학교에 가도 경쟁, 정치를 해도 경쟁, 우두거니 있다가는 내가 쫓겨나고 내가 짓밟히고 하니까 그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뇌물을 쓰고 모략중상(謀略中傷)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동안에는 사회는 좋아지지 않습니다. 세계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 진정한 평화는, '탁!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여. 놓는 공부가 '이 뭣고?'여.
번뇌(煩惱)와 망상(妄想), 욕심(慾心) 탐심(貪心), 정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 개인적인 것 가정적인 것 사회적인 것, 탁! 생각을 돌이키고 자기 본심(本心)으로 돌아올 줄을 알어야 한다 그 말이여. 돌아오는 방법이 '이 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또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놈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며, 이렇게 외로우며, 이렇게 괴로우며, 이렇게 원망스러울까, 이렇게 억울허까?' 그러한 생각 속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에는 날 새기를 하고 잠을 안 자도 안 없어집니다.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 뭣고?' 자꾸 하다 보면 스르르르~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다같이,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 뭣고?'
(대중) '이 뭣고?'

다시 한 번, '이 뭣고?'
(대중) '이 뭣고?'

우리가 참사람 되는 길이 여기에 있고, 개인의 평화, 가정의 평화, 세계의 평화가 바로 이 '한 생각' 돌이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으로써 오늘 말을 맺고자 합니다.

벌써 날씨가 추워져서 겨울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모두 건강에 조심하시고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 뭣고?'로써 우선 자기 중심(中心)을 딱! 잡고서, 그리고서 모든 일을 느긋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연구하면 반드시 지혜(智慧)와 자비(慈悲)가 떠오를 것입니다. (39분29초~60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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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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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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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상2021. 2. 6. 05:26

 

 

무상((No.596))—(게송)萬物榮枯自有時~ | 명예 · 권리 · 부귀영화라 하는 것이 달팽이 뿔과 같다 | (게송)雁飛天末迹留沙~ | (게송)行年忽忽急如流~ | 정말 무상(無常)한 줄을 깨달라 탐욕심(貪慾心)을 버려야.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1) 12분 14초.

(2) 8분 10초.

 

 

[법문] 송담스님(No.596)—1997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용596)


(1)------------------

만물영고자유시(萬物榮枯自有時)하야  난향춘일국개지(蘭香春日菊開遲)니라
나무~아미타불~
세간궁달개여차(世間窮達皆如此)하야  선후수수일양사(先後雖殊一樣思)니라
나무~아미타불~

만물영고자유시(萬物榮枯自有時)하야  난향춘일국개지(蘭香春日菊開遲)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번영(繁榮)할 때가 있고 또 쇠퇴(衰退)할 때가 있어. 마치 봄, 여름에 잎이 피고 꽃이 피어서 한참 번성해 가지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져서 시들고, 겨울이 되면 앙상한 고목나무만 남는다. 인생도 마찬가지여. 한때,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모든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봄에는 난초가 향기를 풍기다가 가을이 되면 모든 꽃들이 다 시들어 버리고 시들어 버리고 국화만이 서리를 이기면서 향내를 풍긴다 그 말인데.

세간궁달(世間窮達)도 개여차(皆如此)해서, 세간(世間)에 고생하다가 또 벼슬을 하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고 한참 명예와 권리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또 시절(時節)이 지나가면 참 허망하고 비참하게 그런 권좌(權座)로부터 물러나. 그러한 것을 우리는 과거에 역사 속에서도 숱하게 많이 봐 왔고 현실적으로도 그런 것을 보고 있습니다.
선후수수(先後雖殊)나 일양사(一樣思)다. 시간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때 성(盛)하면 그 고비를 넘기면은 또 운명이 바뀌고 세월이 바뀌고 운세가 바뀌어서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수천 년 만 년 전부터서 파장(波長)을 이루면서 역사가 흘러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 공부를 하면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라 하는 것이 달팽이 뿔과 같아서 푸욱 솟아올랐다가 푹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그렇게 믿을 것이 못되고 허망한 것인 줄을 충분히 알 수가 있어서 그까짓 것에 그렇게 목숨을 걸고 대들만한 가치가 없는 일인데, 그러한 허망하고 비참한 모냥을 번연히 보면서도 그러한 데에 대한 욕망(欲望)과 애착(愛着)을 끊지를 못한 것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형편인 것 같습니다.

고인(古人)이 시(詩)를 읊기를,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가 놀다간 모래사장에는 기러기의 발자죽만 남아 있고,
인거황천(人去黃泉)에 명재가(名在家)다. 사람이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저 황천객(黃泉客)이 되었는데 그 이름만 집에 남아 있구나.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일백(一百) 꽃에서 꿀을 따다가, 벌이 꿀을 따다가 떠억 벌집에다가 모아놨는데,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그 벌이 그 날이면 날마다 멀고 가까운 꽃은 꽃은 다 찾아다니고 개천에도 찾아다니고, 심지어는 변소 시궁창까지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따다가 맨들아논 그 꿀, 그 벌의 고생은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그러한... 누구를 위해서, 누구의 입을 달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벌들이 고생을 하면서 꿀을 만들아놨던가 이 말이여.

세상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와 인류를 위해서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정치도 하고, 학문도 하고 모다 그런 명분을 세워서 일생 동안을 몸과 목숨을 거기다 바칩니다. 물론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그러한 분들의 피땀으로 인(因)해서 이 역사가 이루어졌고 오늘날과 같이 문명사회(文明社會)가 이루어져서 모두가 다 살기가 편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좋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할아버지들, 역대(歷代)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피땀 흘려서 애를 쓰셔 가지고 이루어놓은 그것으로 인해서 그 아들과 딸과 손자손녀들이 또 잘살고 그 가문을 전통해 나가고 또 그런 점도 있습니다마는.

정말 넓은 의미로 보면, 기러기가 하늘갓으로 날아가 버린 뒤에 그 발자죽이 모래밭에 남아 있다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그 자죽은 없어져 버리고, 또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저생(저승)으로 가버린 뒤에는 아무 소용도 없고 이름만 얼마 동안 남아 있는 것뿐이다 그 말이여. 그러한 것을 위해서 정말 목숨과 모든 것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었던가?

벌이 그 고생을 하면서 꿀을 모아놓은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걸 따 먹으라고 벌이 꿀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벌은 벌대로 따다 놓아 가지고 겨울에 꽃이 없을 때 그것을 자기들 먹을라고 해 놓은 것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따다가 먹는 것뿐이다 그 말이여.
자손들을 위해서 그 못 먹고 못 입고 재산을 모아놓는데, 그 자손들이 부모가 애써서 모아놓은 그 재산으로 정말 행복하게 꼭 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유산을 많이 받었다고 해서 그 자손이 행복하라는 법도 없고, 부모가 아무것도 남겨 준 것이 없어도 고생 고생하면서 자수성가(自手成家)해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큰 사업도 하고 큰 정치가도 되고 학자도 되고 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자손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자손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 하는 그러한 생각보다는, 자손을 위해서 부모가 꼭 해야 할 일은 재산을 많이 넘겨주기보다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가리켜 주는 것이 정말 부모로서 할 도리고, 정말 자손을 위한 부모의 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속담에 '고기를 잡어서 갖다가 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리켜 주는 것이 낫다'고 그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처음~12분25초)




(2)------------------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커늘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리오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헌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퍼뜩 퍼뜩 퍼뜩 지내가서 흘러가는 물과 같이 급하게 흘러간다 그 말이여.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으면, 번듯번듯 날이면 날마다 머리 위로 올라간다 그 말이여. 머리가 자고 나면 허옇고, 자고 나면 허옇고 우시우시 머리가 쏟아진다 그 말이여.
늙은 것이, 속으로 기운이 없어지고 여러 가지로 나타나기도 하지마는, 제일 쉽게 나타나는 것이 귀밑 머리로부터서 허옇기 시작해 가지고 금방 머리 여기저기서 희끗희끗 흰머리가 솟아 온다 그 말이여.

우리가 태어나면 백 년 이백 년 오래오래 살 것 같지만, 뱃속에 포태(胞胎) 되어 가지고 뱃속에서도 죽을 수도 있고, 뱃속에서 몇 달 안 되어서 유산(流産)할 수도 있고, 태어나다가 죽을 수도 있고, 태어나서 며칠 안 있다 죽기도 하고 몇 달 안 되다 죽기도 하고, 열 살 안에도 죽고 스무 살 안에도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병으로 죽고, 싸우다가 죽고, 친구 칼에 맞아 죽기도 하고, 도둑한테 죽기도 하고, 인생의 목숨이라는 게 도무지 파리 목숨만도 못해. 언제 어떻게 죽을는지도 모른다 그 말이여.
정말 무상(無常)을 깨달라야 하고 정말 믿을 것이 없어. 믿을 것이 없이 허망(虛妄)하고도 무상(無常)한 줄을 확실히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지나친 탐욕심(貪慾心)도 안 부리게 되고, 자기의 욕심을 챙기기 위해서 남을 죽이고 해롭게 하는 일을 안 할 것이다 그 말이여.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사람이 남을 죽이고 돈을 뺏겠습니까? 남을 죽이고 돈을 뺏을 때는 그것 갖고 잘먹고 잘살 줄 알고 그러지만, 정말 무상(無常)한 줄을 깨달라야 지나친 탐욕심(貪慾心)을 안 일으키게 되는 것이고.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여. 알고 보면 이 한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여.
우리는 이것을 '내 몸이다' 생각해 가지고 음식을 보면 맛있는 거, 영양 있는 것 많이 먹으려고 그러고, 다른 사람보다도 우선 제 입에 먼저 넣으려고 그러고, 좋다고 하면은 마구 먹어대고, 그리고 그 피부가 좋아진다고 하면은 온갖 것을 얼굴에다 처바르고 비싼 화장품을 사 가지고 얼굴에다 찍어 바르고 토닥거리는데, 그래봤자 내나 늙는 것은 마찬가지고, 그런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이 몸뚱이는 흙기운과 물기운과 불기운과 바람기운과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 사대(四大), 뭐 요새 여러 가지 원소(元素)는 수백 수십 가지 원소가 되겠지만, 인도(印度)에서는 네 가지로 크게 분류를 했어. 중국(中國)에서는 수화금목토(水火金木土) 다섯 가지로 분류를 했고, 인도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네 가지로 분류를 했는데. 그야 분류를 하기에 달린 건데.

그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육체(肉體)는 몽쳐지고, 또 오온(五蘊)이라 해 가지고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물질적(物質的)인 것과 정신적(精神的)인 것으로 요렇게 또 두 가지로 노누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분류하면 노나져 버리는데, 그러면 '내'라는 게 어디가 있느냐? 하면 죽음에도 없어.
지금 요새 과학적으로 해부를 하고 분류를 해서 다 분석을 하면 여러 가지 원소(元素)가 나오겠지마는 '내'라 하는 놈 찾아보면 원자현미경으로 봐도 '내'라는 놈은 없다 그 말이여. 그러니 이것을, '내'가 없는데 '내 것'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내가 내 앞으로 등기(登記)를 해 놓은 집이나 땅이나, 모다 그런 통장이나 그걸 '자기 소유다. 내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건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잠시 관리(管理)를 맡고 있는 것뿐이지, 자기 것은 사실은 아닌 거여. '내 개인 소유다. 내 것이다' 그러지만 자기 것은 아닌 거여. 관리만 하고 있다가 그냥 죽을 때면 그냥 고대로 놓고 가는 거여.
자손한테 남겨주기 위해서 그 못 먹고 못 입고 애끼고 그러지만, 그것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서양에서는 자손한테 준 것은 세금을 많이 뜯어가지고, 주어봤자 세금 물다 보면은 별로 자손한테 돌아갈 것이 없으니까 차라리 공익 단체에다가 기증을 하고 가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는데, 그건 대단히 우리도 본받아야 할 만한 좋은 법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내 이 한 몸뚱이도 내것이 아닌데, 무엇을 구(求)하려고 하느냐 그 말이여.(休休身外更何求) (39분29초~47분3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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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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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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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