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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15 법보재(No.297)—(게송)因能生所所生能~ | 법문을 듣고, 참선해야만 생사 문제를 해결 | (게송)共知光影因燈現~ | (게송)佛說一切法~.
  2. 2020.01.12 만년위패(No.297)—만년위패의 설립 목적은 생사해탈 | 법문을 듣고 업(業)의 쇠사슬을 잘라야 | 용화선원에 만년위패를 모신 수승(殊勝) 인연.
  3. 2019.12.03 미루지 마라 (No.133)—지금 이만할 때 자기를 밝히라 |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다 부처님의 설법,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곳은 우주법계 전체.
  4. 2019.11.28 무상(無常) (No.133)—(게송)刹那生滅無常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진 것이 생사 | 안수정등 기능장구 | 일초일초 죽음을 향해서 쫓기고 있는 인생의 무상.
  5. 2019.11.14 무위진인(無位眞人) (No.321)—(게송)面門出入見還難 無位眞人咫尺間 去路一身輕似葉 高名千古重如山.
  6. 2019.10.04 무종적(無蹤迹) (No.201)—(게송)入草求人不奈何 利刀斫了手摩挲 雖然出入無蹤迹 紋彩全彰見也麽.
  7. 2019.09.11 무상 (No.537)—송담스님 어렸을 때 비오는 날 물거품 보고 하신 생각 | 불보살 원력으로 생활해야 | 참나를 깨닫는 최상승법에 우리 몸과 마음을 바쳐야.
  8. 2019.06.15 만년위패(萬年位牌) (No.683)—법신게 | 만년위패 제도는 영가를 위해서도 좋고, 살아있는 사람도 법문 듣고 참선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대도사가 되게 하는 길.
  9. 2019.06.06 미륵불(彌勒佛) (No.394)—(게송)見色時證時 聞聲時證處 念念釋迦出世時 步步彌勒下生處.
  10. 2019.06.04 무심(無心) (No.394)—(게송)昨日枝頭開爛漫 今朝地面落紛紛 令人嗟惜飜生愧 榮辱無心孰似君.
ㅁ/만년위패 법보재2020. 1. 15. 08:32

법보재(No.297)—(게송)因能生所所生能~ | 법문을 듣고, 참선해야만 생사 문제를 해결 | (게송)共知光影因燈現~ | (게송)佛說一切法~.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신도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대웅전(舊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1) 14분 42초.

(2) 12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297)—1986년 법보재 법회(86.03.16.음) (용297)

 

(1)------------------

 

인능생소소생능(因能生所所生能)하고  능소구망생불생(能所俱忘生不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노방흡건경해수(老蚌吸乾鯨海水)하니  산호지상월삼경(珊瑚枝上月三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능생소소생능(因能生所所生能)이요. 능(能)으로 인해서 소(所)가 생겨나고, 소(所)로 인해서 능(能)이 생겨난다. 능(能)이라 하는 것은 주체 · 주관이고, 소(所)라고 하는 것은 객체 · 객관을 말한 것입니다.

내가 ‘내’라고 한 이 능(能), 주체심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모든 바깥 경계가 인식되어 지는 것이고.

또 객관 세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그것으로 인해서 주체심(主體心)이 동(動)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만나면, 경계를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거든.

그 식(識)이 없다면 경계(境界)를 봐도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안 해. 식이 없으면 경계가 있다 해도 일어날 것이 없고, 경계가 없다면은 식이 있어도 발생할 계기를 갖지를 못해. 그래서 육식(六識)과 육진(六塵)은 표리(表裏)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이여.

 

능소구망생불생(能所俱忘生不生)이여. 그래서 능(能)과 소(所)가 함께 없어져 버리면, 주체와 객체가 동시에 공(空)해 버리면 생(生)하되 생(生)할 것이 없어.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여. 뻑뻑이 머무른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항상 이 주관과 객체가 서로 어울리고 서로 얽히고 서로 뒤범벅이 되어서, 이놈이—어린애들 싸우는데, 한 놈이 위에서 누르고 밑에 눌렸던 놈이 또 위로 뒤집어지고 그래가지고 위에서 누르다가 또 밑으로 깔리고 하듯이, 그 작업으로 인해서 무량겁(無量劫)토록 생사고해(生死苦海)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인데.

 

노방흡건경해수(老蚌吸乾鯨海水)여. 큰 조개! 조개가 있어서 온 바닷물을 한 입에 다 들어마셔 버려. 그래가지고 바닷물이 바짝 마르도록 바닷물을 다 들어마셔 버리면.

산호지상월삼경(珊瑚枝上月三更)이여. 바다 밑에 그 아름답고 찬란한 산호 가지가 삼경(三更) 달에 빛이 나더라.

 

여기서 이 노방(老蚌)이라고 하는 게, 늙은 조개가 얼마나 크면 그 한없이 깊은 그 넓고 깊은 그 바닷물을 쫘악 다 들어마셔 버릴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는 이 크고도 큰 늙은 조개, 인자 조개 새끼 쬐그만 것이 아니라 몇억 겁을 갖다가 커서 커 가지고 한번 쭉 들어마셔 버리면 바닷물이 그 조개 속으로 쏴악 다 들어가 버릴 만큼 그러한 늙은 조개가 어디에 있느냐?

 

비단 여기서는 바닷물을 둘러 마신다고 했지만 바닷물뿐만이 아니라, 이 시방(十方)에 가득차 있는 무한대(無限大)한 이 허공, 해와 달과 저 끝없는 하늘나라에 있는 수많은 별까지라도 한목 다 둘러 삼킬 수 있는 그러한 무서운 조개, 참 고조 할아버지보다도 더 무서운 조개가 우리 이 몸뚱이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조개는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히지도 않고,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으면서 우리의 콧구녁으로도 들락거리고, 우리의 눈으로도 드나들고, 우리의 귀로도 드나들고, 팔만사천 모공으로 드나들고 항상 우리의 눈앞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라 그말이여.

 

그놈이 형투리가 있는 놈 같으면, 모양과 빛깔이 있는 놈 같으면 제 아무리 큰들 한도가 있는 것이지만, 이놈은 빛깔과 모양이 없는 것이라 이것이 ‘크다’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어.

크고 작은 것을 떠나, 크기로 말하면은 우주를 다 둘러 삼키고도 한이 없고, 작기로 말하면은 바늘 꽂을 땅도 없는 것이니 그래서 이것이 신기하고도 묘(妙)하고 소소영령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도 왔다갔다하고, 무량겁 이전에 생겨난 때가 없이, 무량겁 미래에도 없어질 때가 없어.

그러한 물건을 우리는 이 똥주머니 속에, 이 가죽푸대 속에 항상 그놈이 살아 있다 그말이여.

 

몸뚱이를 부모한테 받아날 때에 그놈도 같이 왔고, 이 몸뚱이가 죽어도 그놈은 없어지는 법이 없이 다시 또 새 옷을 갈아입어. 생사(生死)에 걸림이 없어, 그놈은. 밤낮 옷을 갈아입지마는 그놈은 생할 것도 없고 죽을 것도 없는 것인데.

 

그놈을 깨달아야지, 그놈을 깨닫는 것이 불법(佛法)인데, 그놈을 찾는 것이 참선(參禪)이고, 그것을 깨닫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그 도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해탈(生死解脫)이요, 그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거든.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리는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생사윤회를 해탈을 하는 것입니다.

 

 

위패(位牌)에다가 이름을 써서 벽에다 거는 것이야 어디다 못 걸겠습니까? 한국에 수천 개 사찰이 있으니 사찰에 법당에 아무데라도 다 걸 수가 있고, 새로 절을 지어서 걸 수도 있고, 여러분 가정에다도 뭐 얼마든지 걸 수가 있어.

 

이름을 써서 거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나 또는 그렇게 위패로 모셔진 영가(靈駕)나 법문(法門)을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우리의 그 늙은 조개를 갖다가 바로 깨달아야 되거든.

바로 깨닫는 참선 법문을 듣고, 참선 수행을 해야만 이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이 법보단을 창설을 하시고, 조실 스님 자신께서 먼저 부모님의 위패를 여기다 모셨습니다.

1번, 만년위패 제 1번이 조실 스님의 어머님, 아버님의 위패고, 조실 스님 아버님의 제삿날이 바로 3월 16일인데 그날로 법보재일을 삼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부모님으로 인해서 조실 스님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셨고, 그 부모님이 이 몸뚱이를 낳아주셨기에 출가를 하셔서 정법을 만나서 참선을 해 가지고 견성을 하시게 되었어.

그러니 깨닫고 보니 부처님과 불보살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은혜도 한이 없지만 그 이치를 깨닫도록 해 주신 이 몸뚱이를 낳아주신 그 부모님이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에 그 부모님을 여기 만년위패 1번에 모시고 부모님의 돌아가신 날짜로 법보재일을 지정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 인연으로, 또 전강 조실 스님 부모님의 그 인연으로 해서 산승(山僧)도 작고하신 부모의 위패를 여기다 모셨고, 또 여러분들께서도 부모님과 조상과 자매질손, 제형숙백, 원근친척에 인연 있는 모든 영가를 여기다가 모셔서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 있어서, 법의 집안에 있어서 한 가족의 인연을 이렇게 맺게 되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의 문중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세세생생에 다시는 우리는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한 사람도 떨어진 일이 없이 부처님 회상(會上)에 다시 만나서 견성성불해서,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일체 중생을 다 제도(濟度)해 마칠 때까지 우리는 항상 형제자매요, 도반이요, 한 가족으로서 우리는 나날이 향상되어 가고, 다달이 도업(道業)이 나아가서 결정코 생사해탈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30분6초~44분47초)

 

 

 

 

 

(2)------------------

 

공지광영인등현(共知光影因燈現)이요  함위파도장수흥(咸謂波濤仗水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등멸수침파영진(燈滅水沈波影盡)하면  정감문외긱오등(政堪門外喫烏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빛과 그림자는 등불로 인해서 나타나. 누구든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등불이 켜짐으로써 그 등불로 인해서 빛이 나고, 그 빛으로 인해서 모든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여.

함위파도장수흥(咸謂波濤仗水興)이다. 파도는 어디서 일어났냐 하면은 물로 인해서 일어났다. 물이 없으면은 파도가 어떻게 일어날 것이여. 물결은 반드시 물 때문에 물이 있기 때문에 파도가 일어났다한 것을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알 것입니다.

 

등멸수침파영진(燈滅水沈波影盡)이여. 등불만 꺼져버리면 그림자도 동시에 없어질 것이고, 물만 없애 버리면 파도는 동시에 없어질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 주관이 공(空)해 버리면은 외부 경계, 객체도 따라서 없어지고. 그래서 객체니 주관이니 한 그러한 것을 둘 다 잊어버려야 한다.

 

늙은 조개가 온 바닷물을 둘러 마시듯이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는 바로 우리의 주인공, 마음자리 그놈 하나를 바로 깨달아 버림으로써 능소(能所)가 거기에서 끊어지고, 생사가 거기에서 끊어져 버려.

바다 밑에 그 곱고 아름다운 산호가 달빛에 찬란히 빛나듯이, 생사가 변해서 바로 열반이요, 생사고해가 바로 극락정토(極樂淨土)로 변하는 것입니다.

 

등불이 꺼지고 물이 없어져 버리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파도도 없어져서, 그렇게 되어야 문 밖에 오등(烏藤)채를 먹을 수가 있을 것이다.

 

오등(烏藤)이라 하는 것은 채(菜), 나물인데, 한약으로도 쓰이는 나물인데 맛이 쓰고 독은 없지만 기운이 허약하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그것을 소화를 잘 시키지를 못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 맛이 썩 좋고 향그러운 나물이지만 그것을 능히 먹을라면은 그 맛이 있는 쌉쓰름 하면서도 맛이 있는 그 오등채를 능히 먹고 소화를 시킬려면 첫째, 기력이 허약하지 아니하고 비위가 튼튼해야 그 오등나물을 먹을 수가 있다.

 

오늘 법보재를 맞이해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모든 인연 있는 영가를 여기에 모시게 된 법보단의 설립 의의와 이 법보단을 모신 우리의 법보제자들이 어떻게 닦아가야 하느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법보제자가 전국에 수만 명인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수천 명인 것 같습니다마는 전부 모이신다면은 이 도량에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컨대 법보단에 모신 영가들이 떠억 그 신령스러운 눈으로 이 법당 안과 밖을 관찰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의 유족들이 오늘 왔나 안 왔나?

아들과 딸 · 손주 · 손녀 · 며느리 · 아내와 남편 그 유족들이 오늘 이 법보재에 참석하시면 그 영가들도 얼마나 흐뭇하고 참, 이 기분이 좋으시겠습니까.

 

다른 영가들의 유족들은 모두가 참석을 해서 경건하게 동참을 하고 향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는데, 자기의 유족은 아무리 찾아봐도 오지를 않으면 그 영가가 얼마나 섭섭하시겠느냐 그말이여.

그 영가를 어쨌든지 마음을 편안하게 즐겁게 해 드릴라면 이런 법보재라든지, 또 백중이라든지 그러한 대천도재(大薦度齋)가 있을 때에는 꼭 참석을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참석을 하시나 안 하시나 이 영가가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당신이 살아있을 때 못다한 참선 공부, 불법을 철저히 믿고 실천하는 그 공부, 그것을 당신의 유족들이 열심히 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유족들이 법회 때 빠지지 아니하고 참석을 해서 법문을 잘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온갖 잘못된 고집과 잘못된 성격과 잘못된 행실을 고쳐서 자꾸 향상되어 가면서... 따라서 참선을 하고, 참선을 함으로써 자꾸 향상되어 가고 승화되어 가.

 

그렇게 해서 한 가정이 화평하고 모든 사람이 화목하고, 이렇게 해서 이 사바세계에 살면서 이미 천상이나 극락세계에 산 사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되어 진다면 그것이 영가로서 가장 바랜 바고 기뻐하는 바고, 영가가 마음놓고 해탈길로 떠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법보재자 여러분, 앞으로 법회 때에 꼭 빠지지 말고 나오시고, 다음해에 법보재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이 도량에서 만나게 되기를 기약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이  도아일체심(度我一切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아무일체심(我無一切心)커니  하용일체법(何用一切法)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이  도아일체심(度我一切心)이다.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 그 일체법(一切法)을 설하신 것은 나의 모든 마음을 제도하기 위하신 것이다. 내 마음을 제도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모든 법을 설하셨는데.

 

아무일체심(我無一切心)커니, 내게 모든 마음이 없는데, 내 마음이 공(空)해서 무심(無心)해 버렸는데,

하용일체법(何用一切法)이리요. 일체법(一切法)을 어디에 쓸 것이냐.(44분50초~57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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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능생소구생능~’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境由能境 能由境能’ p110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과 같음.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 함.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 희로애락 · 빈부귀천 · 시비이해 · 삼독오욕 · 부모형제 · 춘하추동 ·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 · 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공(空) ; 잇달아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상태. 번뇌와 분별이 소멸된 상태. 분별과 차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삼경(三更 석 삼/밤 시각 경) ;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셋째 부분.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사이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형투리(形투리) ; 물건의 모양과 테두리를 구어적으로 이르는 말.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견성의 성(性)은 본성(本性), 자성(自性), 본심(本心), 법성(法性) 등과 같으며, 이런 맥락에서 견성을 견자심불성(見自心佛性), 견불성(見佛性), 견자본성(見子本性), 견법성(見法性)이라고도 한다.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위패(位牌 지위·높여서 어떤 사람 위/명찰·위패 패) ; 죽은 사람의 위(位 이름 · 지위. 높여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를 모시는 나무패.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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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공지광영인등현~’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能隨境滅 境逐能沈’ p107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삼척동자(三尺童子) ; 키가 석[三] 자[尺]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童子]. 철없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 한 자[尺]는 약 30.3Cm에 해당한다.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이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現 대웅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게송) ‘불설일체법~’ ; 『완릉록(宛陵錄)』 황벽(黃檗) 선사 말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Posted by 닥공닥정
ㅁ/만년위패 법보재2020. 1. 12. 15:09

만년위패(No.297)—만년위패의 설립 목적은 생사해탈 | 법문을 듣고 업(業)의 쇠사슬을 잘라야 | 용화선원에 만년위패를 모신 수승(殊勝) 인연.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1) 18분 6초.

(2) 5분 39초.

 

[법문] 송담스님(No.297)—1986년 법보재 법회(86.03.16.음) (용297)

 

(1)------------------

 

오늘 병인년 3월 16일 법보재(法寶齋)를 맞이해서 원근 각지 방방곡곡에서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모이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보신 바와 같이 부처님을 모시고, 좌우에 전강 조실 스님 영정과 오른쪽에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그리고 그 좌우에 9천이나 되는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위패(位牌)가 꽉 차게 모셔져 있습니다. 한 위패에 두 분 내지 세 분씩 모신 데도 있고 보면 수만의 영가(靈駕)가 여기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위패는 선망부모(先亡父母), 한 말로 말하면은 다생겁래(多生劫來) 선망부모지만 자상하게 말하면 부모님 · 조부모 · 증조부 · 고조부 그리고 남편 · 아내 또 먼저 간 아들딸 · 숙부 · 숙모 · 원근 친척,

심지어는 집안에서 기르던 개가 죽어서 그 개의 영혼을 천도(薦度)하기 위해서 모신 이도 있고, 또 이웃집 아이가 내 집에 놀러왔다가 비명에 다쳐서 죽은 그런 영가도 모셔져 있고, 그래서 모두 합해서 다 숙세(宿世)의 우리의 부모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한 비명에 간—차 사고로 죽은 이, 물에 빠져 죽은 이, 또 자살을 한 이, 병고에 죽은 이, 여러 가지 한을 다 풀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이승을 하직한 수많은 영가들이 꽉 법보단(法寶壇)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고 천년만년(千年萬年)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약을 먹고 몸을 잘 봉양을 한다 해도 불과 백세 미만에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됩니다. 조금 앞서가고 뒤서가고 한 차등만 있지, 다 한번 태어난 사람은 다 마침내는 가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한을 다 풀지 못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우리는 태어났겠습니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태어나지 아니했으면은 나을 것을 무엇하러 태어나 가지고 단 하루도 사는가 싶이, 산다 싶이 살아 보지도 못하고 몸부림치다가 마침내는 떠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고 싶어서 마음대로 오고, 가고 싶어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와지기 때문에 온 것이고, 또 가지기 때문에 간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한 부처님이나 보살들 그러한 성현은 중생 교화를 하기 위해서 그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으로 자유자재(自由自在)하게 왔다갔다 하지만, 깨닫지 못한 생사에 자유하지 못한 우리 중생은 세상없이도 마음대로 올 수도 없고,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기는 마음대로 못 와도 가기는 마음대로 하지 않는냐. 뭐 자살을 해 버리면은 가는 것이지, 지가 안 가고 배기느냐’하지만, 그 자살을 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옷 껍데기만 벗었지, 껍데기만 벗었지 어디로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짐승으로 태어나거나 그 업(業)에 따라서 천상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가거나, 마냥 헌옷 벗어버리고 또 다른 옷 입고—노랑 옷 입었다가, 파랑 옷 입었다가, 검은 옷 입었다, 흰옷 입었다, 옷만 갈아입었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괴롭다고 해서 자살을 하고 그런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금생에 고(苦)를 받을 업(業)을 지어 가지고 고(苦)를 받는데, 차라리 깨끗이 그 고(苦)를 받고 업(業)을, 빚을 갚아 버려야 다음 생에는 또 좋은 곳에 태어나지, 빚 안 갚고 억지로 자살했다고 해서 지어놓은 빚이 삭감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남의 빚 쓰고 도망친다고 해서 그 빚이 갚아지겠습니까? 점점 이자와 죄까지 다 가산이 되어서 더 많은 빚을 갚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미 짓고 받은 마당에는 철저하게 갚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괴로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면할 것이냐? 왜 우리는 생로병사의 구렁텅이를 면하지를 못하고 무량겁(無量劫)을 거치고 돌고 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느냐?

순전히 우리 자신이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렇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짓느냐?

우리의 마음!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생각,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무량겁을 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을 잘 잡드리를 못하고 그 한 생각으로 온갖 업(業)을 지어 가지고, 받기는 무량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성냥 한 개비를 탁! 해서 그 불을 조심을 아니해 가지고 집을 다 태우고, 이웃집을 다 태우고, 온 도시도 다 태우고, 온 들판에 곡식을 다 태우고, 산에 붙으면은 온 그 숲을 다 태우듯이.

그 무서운 불이 최초에는 성냥불이나 담뱃불, 그 아주 참 조그마한 불로 인해서 그렇게 무서운 재난(災難)으로 번져 가는데, 우리 육도윤회(六途輪廻)도 원인은 우리의 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한 생각 딱! 일어났을 때 그것을 탁! 돌이켜서 잡드리를 해 버리면 그 업을 짓지 않고 생사윤회도 벌어지지 아니할 텐데, 그 한 생각을 잡드리를 아니해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번지고 발전을 해서 그것이 육체로, 행동으로 옮겨져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쉬운 이치입니다. 한 생각을 잘못 먹어 가지고 그 무서운 고(苦)를 받는 사실에 우리가 눈을 뜬다면, 우리는 여태까지는 비록 무량겁을 생사윤회 속에서 왔지만 오늘 이 시간부터서는 자기의 무량겁 그 여행, 고해(苦海)의 그 여행을 갖다가 반대 방향으로, 해탈(解脫)의 방향으로 돌이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佛法)인 것입니다.

 

 

오늘 이 법보재(法寶齋)! 법보단에 모셔진 이 만년위패(萬年位牌)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돌아가신 그 원한에 사무치는 영가들로 하여금 해탈도로 가게 하고, 동시에 살아 있는 우리들!

우리 살아 있는 법보제자(法寶弟子)들로 하여금 영가가 되어서 이 위패단에 모셔지기 전에 살아 있을 때에 법(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해서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이 만년위패 법보단의 설립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열반하신 전강 선사(田岡禪師)께서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시고, 또 이렇게 법보단을 창설을 해서 살아있는 사람은 결제(結制)를 해서 참선(參禪)을 하고 또 법문(法門)을 듣고 부지런히 닦아서 생사해탈하게 하고,

우리의 선망부모는 위패단에 이렇게 모시고 조석으로 축원(祝願)해 드리고 명절에는 차례를 젓숩고, 또 이렇게 3월 16일이나 4월 15일 그 밖에 법회 때 천도를 해 드리고, 법회 때마다 돌아가신 분이나 산 사람이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듣고서 바르게 실천을 해서 생사해탈하게 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산 사람은 귀가 있어 법문을 듣지마는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들을 수가 있을 것인가?’ 혹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다맛 산 사람은 「몸뚱이가 있는 영가」고, 돌아가신 분은 「몸뚱이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이 생각 저 생각, 귀로 생각이 헷갈리고, 코로 생각이 헷갈리고, 입으로 헷갈리고, 몸뚱이로 헷갈리고, 이리저리 헷갈려서 말을 일심(一心)으로 듣기가 어렵지만, 돌아가신 영가는 이 몸뚱이가 없기 때문에 정신이 헷갈리지 아니해서 오히려 살아 계신 분보단 더 법문을 잘 듣는 것입니다.

 

영가가 생존 시에 불법(佛法)을 잘 믿고 실천을 하신 그러한 영가는 말할 것도 없고, 생존 시에 불법을 믿지 아니하고, 불법이 무엇인 중도 모른다 할지라도 이 위패단에 모셔 놓으면 안 들을라야 안 들을 수가 없어.

언제든지 법회에 법문을 시작할 때에는 먼저 우리의 선망부모, 이 위패단에 모신 여러 영가들로 하여금 법문을 들으실 수 있도록 정식으로 초청을 해서 법문을 들으시도록 이렇게 법으로 그렇게 거량(擧揚)을 해서 하기 때문에 참 편안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법문을 들으시게 됩니다.

 

수없는 법문을 법회 때마다 듣고 또 듣고 하기 때문에 이 위패단에 모셔진 영가는 인자 '법문 귀'가 열려서 아무리 어려운 법문, 최상승 법문을 듣는다 해도 다 이해를 하게 되고,

그래서 생존 시에 가졌던 모든 그 원한심, 생존 시에 풀지 못한 어떠한 업연(業緣)의 원한이라 할지라도 다 봄눈 녹듯이 다 녹아져서, 업이 녹기 때문에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시는데 아무 장애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곳으로 떠나지 못한 것은 그 업의 쇠사슬에 걸려서 그래서 못 가는 것입니다.

 

산 사람이 몸뚱이나 발목을 갖다가 쇠줄로 묶어 놓으면 가고 싶은 데 가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것이나, 죽은 사람도 ‘업(業)의 쇠사슬’에 묶여 있으면,

‘업의 쇠사슬’이라는 게 원한심, 미워하는 마음 또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 재산에 대해 집착심, 사람에 대한 집착심, 무엇이든지 집착하고 탐착하고 애착하는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쇠사슬입니다.

 

차라리 쇠로 만든 쇠사슬은 강한 쇠 자르는 기계로 자르면은 뚝딱 잘라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애착심 · 집착심 · 탐착심 이러한 쇠사슬은 자를라야 자를 길이 없어. 본인 스스로 업(業)이 녹아져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산 사람은 법문을 듣고 스스로 마음에 감동이 되고 계합(契合)이 되어서 업이 스르르 녹아져 버리면은 거기서 집착이 툭툭 끊어지고 애착이 끊어지고 원한심이 끊어지고.

동시에 돌아가신 분도 그런 생전에 얽히고설킨 그런 탐착 · 애착 · 집착 그런 것이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다 녹아져 버린다면 그 영가가 천상이면 천상, 극락이면 극락, 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인연이 있으면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실 것은 너무나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6분18초~24분24초)

 

 

 

 

 

(2)------------------

 

그래서 이 용화사 법보전(現 대웅전)에 모셔진 이 수만의 영가들은 다행히 신심 있는 또 효심 있는 자손과 유족들을 가지셨기 때문에 이렇게 참 좋은 도량(道場)에 봉안이 되어서 이렇게 법문을 듣고 업을 소멸해서 좋은 곳으로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

 

또 그 영가를 여기에다 모신 그 인연으로 또 그 유족들이 불법을 믿게 된 경우도 수없이 많습니다.

원한에 사무쳐서 돌아가시고, 비명(非命)에 가신 그 영가가 있으신 분은 집안에 우환이 끓고, 되는 일이 없고 자꾸 그러니까 ‘용화사 법보전에 모시면은 좋다’ 그 말을 듣고 불교도 믿지 않고 심지어는 다른 종교를 믿는 분까지도 여기다가 위패를 모시고서, 그 위패를 모신 그 인연으로 차츰차츰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승(殊勝) 인연이라 하는 것이여.

 

세속(世俗)에 인연은 좋은 인연이나, 악한 인연이나 모두가 마침내는 생사의 쇠사슬밖에는 안 되는 것인데, 이 법으로 맺어진 인연! 이 법에 인연은 이것이 수승한 인연이라,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피차가 업이 소멸이 되고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세속에 인연은 좋은 인연으로 얽혀져도 마침내는 그것이 원수로 변하는 것입니다. 악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 좋아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참 좋은 것인데 그 좋은 인연이 결국은 악연으로 변하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의 게송에도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인데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다'

 

다겁생래(多劫生來)로 원수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나느니. 절대로 친하지 아니한 데에서는 원수가 생길 까닭이 없어. 아지 못하는데 무슨 원수가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반드시 서로 알고 지내고 친하게 지내다가 결국은 거기에서 원수가 되는 것인데,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여’ 그렇고 보면 차라리 사람을 아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게 되는 데에서 원수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불법은,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선인(善因), 친한 인연도 해탈로 가는 도반이고, 설사 본의 아니게 맺어졌던 악한 인연도 결국은 이 정법문중에 들어오면 해탈 인연으로 승화가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최상승 법문을 듣고, 자꾸 수행을 해 나가면 무엇을 미워하고 무엇을 이뻐하고 무엇을 친하고 무엇을 원수처럼 상대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나를 도와주는 사람에게도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나를 욕하고 비방하고 미워하는 그러한 사람, 그러한 일을 당하더라도 미워한 그러한 거기에서 탁! 생각을 돌이켜서 인연의 그 뿌리를 관찰을 하고서 화두를 들고 ‘참나’로 돌아오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을 보고도 나는 배워 나가고, 악한 사람을 보고도 나는 거기서 법의 이익을 얻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그렇게 상대하고, 모든 일을 그렇게 상대해 나갈 때에 우리는 일취월장(日就月將), 날로 달로 자꾸 승화되고 향상되어 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24분25초~30분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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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現 대웅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위패(位牌 지위·높여서 어떤 사람 위/명찰·위패 패) ; 죽은 사람의 위(位 이름 · 지위. 높여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를 모시는 나무패.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身]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意]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삼라만상의 사상인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세계의 생성소멸 과정을 나타내는 성주괴공(成住壞空)도 동일한 형식이다.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르는 일.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의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業]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人道]로 다시[還] 태어남[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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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게송) ‘多生怨債起於親 莫若多生不識人’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한국불교전서 제11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일취월장(日就月將 날 일/이룰·나아갈 취/달 월/얻을·나아갈 장) ; 나날이 다달이 발전하고 성장함.

 

Posted by 닥공닥정

미루지 마라 (No.133)—지금 이만할 때 자기를 밝히라 |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다 부처님의 설법,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곳은 우주법계 전체.

 

*미루지 마라 ; '지금은 내가 ~~때문에 못한다. ~~이 되면 하리라' 밤낮 핑계를 대고 뒤로 미루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정진하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7분 50초)

[법문] 송담스님(No.133)—1981년 1월 첫째일요법회 (용133)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라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좋이 이때를 향해서 참나를 밝힐지니라.

두상광음(頭上光陰)이 전두비(轉頭飛)니라. 머리 위에 광음(光陰)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느니라.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히라. 이때, 이때란 어느 때냐?

 

지금 이만큼 살 때, 이만큼 건강할 때—바쁘다 핑계 대지 말고, 아직은 시간이 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아들딸 키워 놓고 장가 보내 놓고 이러한 등등 핑계를 대지 말고. '몸이 건강치 못하니까 병을 낫은 다음에 하리라' 그러한 핑계도 대지 말고, '좀 더 부자가 되어가지고 하리라' 그러한 핑계도 대지 말고,

지금 이만큼 살 때, 이만큼 이만한 처지에서 바쁘면 바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당장 내일 일을 모르고 밤새 일을 모르고 한 시간 뒷일을 모르는 백지 한 장 밖을 내다보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 무엇을 믿고 뒤로 미루겠는가 이 말씀이여.

 

머리 위에 광음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시간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장소는 앉아 있을 때는 바로 그 자리가, 서 있을 때는 그 자리가, 걸어갈 때는 그곳이, 차를 탈 때는 바로 그 차 안이, 변소에 앉았을 때는 변소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감옥이, 병원에 있는 사람은 병원이 바로 그때 그 자리가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주법계에 가득차 계신 것입니다. 우주법계는 바로 부처님 품안이요, 부처님 손바닥인 것입니다.

부처님 계신 곳은 어디나 법당이요, 우주법계가 부처님이 꽉 차 계신다면 우주법계 · 허공계 · 육도법계는 온전히 바로 거기가 법당이요, 불회상(佛會上)인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곳은 우주법계 전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체가 대화엄경이요, 대열반경이요, 법화경이요, 금강경이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인 것입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온갖 소리는 다 부처님에 설법(說法)입니다.

날아가는 새 소리, 비행기 소리, 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까마귀 소리, 개 짖는 소리 하나도 빼 놓지 않고 고대로 전부 부처님에 설법입니다. 나를 칭찬하는 소리, 나에게 억울하게 욕하는 소리, 부처님에 설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여러분은 최상승법을 믿는 최상승 수행인이요, 불제자인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에 참석한 여러분은 이제부터서는 원망할 남편도 없고, 원망할 아내도 없고, 미워할 이웃도 없고 웬수도 없습니다. 어제까지 미웠던 사람도 이제부터서는 미워할 거리가 되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는 누구도 부처님인 것입니다. 어제까지 웬수도 이제부터서는 나로 하여금 참나를 깨닫게 해 주는 도반(道伴)이요, 관세음보살이요, 문수보살이요, 부처님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의 묘한 진리가 위력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렇게 말씀을 드린 이 말씀을 믿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입니다.(66분47초~1시간14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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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 ; '좋이 이때를 향해서 참나를 밝힐지니라. 머리 위에 광음(光陰)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느니라'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61 (가로판 p169) 게송 참고.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당장 이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광음(光陰 빛 광/응달 음) ; 햇빛[光]과 그늘[陰],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법계(法界) : [범] dharmadhatu  dharma 곧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다 들어 말하고  dhatu는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란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것(萬有)을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법 성품(法性)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만단(萬端) ; 수없이 많은 갈래.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상2019. 11. 28. 14:33

무상(無常) (No.133)—(게송)刹那生滅無常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진 것이 생사 | 안수정등 기능장구 | 일초일초 죽음을 향해서 쫓기고 있는 인생의 무상.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14분 58초)

 

[법문] 송담스님(No.133)—1981년 1월 첫째일요법회 (용133)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이여  취산순환유루인(聚散循環有漏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하고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 우리의 생사가 찰나간(刹那間)에 있어.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한 것이 이것이 생멸심(生滅心)인데, 이 생멸이 바로 생사(生死)다 이거여.

 

이 몸뚱이가 죽은 뒤에사 비로서 죽음이고 이 몸뚱이가 죽은 뒤에사 바로 그때가 내생(來生)이 아니라, 한 생각 일어났다가 꺼지면 그때가 바로 내생이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진 것이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또 실질적으로도 어제 멀쩡한 사람이 하룻밤 새에 저승 사람이 되고, 한 시간 전에 멀쩡했던 사람이 금방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내생이고, 1초 전에 멀쩡했던 사람도 1초 후에 저승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났다가 헤어지고, 모았다 흩어지고, 왔다가 가고 갔다가 다시 오고 이러한 것이 모두가 다 유위법(有爲法), 유루(有漏)의 인연(因緣)으로 그리된 것이다 이 말씀이여.[聚散循環有漏因]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쇠 금(金)'자, '까마귀 오(烏)'자, 금오(金烏)는 태양을 금오(金烏)라 하는데, 금까마귀라 하는데 금까마귀가 동쪽에서 솟아 가지고 서쪽으로 지고 또 그 이튿날 동쪽에서 떠 가지고 또 서산으로 지고 이것이 우리의 생명을 재촉하는 것이 된다. 하루해가 지나가면 하루 우리의 죽음을 향해서 다가가는 것이여.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다. 옥토끼는 달을 옥토끼라 하는데, 달이 떠 가지고 지고 또 떠 가지고 지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늙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하고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도자위경조수행(覩玆危境早修行)하여  근념미타생극락(勤念彌陀生極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 여름에 가물 때 웅덩이에 큰 고기, 작은 고기, 송사리가 더글더글더글더글 팔딱팔딱팔딱 뛰는데 물은 하루하루 물이 줄어져서 이제 거의 물이 다 바닥이 다 보이게 되었어.

물은 거의가 다 마르게 되고, 고기는 물이 마르니까 그런 데다 물은 햇볕에 데워져서 뜨겁고 고기가 우물우물우물하면서 곧 빨딱거리다 곧 죽게 된 그러한 형상을 농촌에서 혹 구경을 하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세계 40억이라고 하는 인류가 각 나라마다 자기나라 잘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한 나라 안에서는 각기 자기만, 자기가 보다 더 좀 잘살겠다고 발버둥치고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여름 뜨겁고 가문 날에 거의 말라가는 웅덩이 속에 송사리 떼가 몸부림친 거와 같은 현상을 띄고 있는 것입니다.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라. 큰 광야에 어떤 사람이 광야(曠野)를 지나가는데 코끼리란 놈이, 성난 코끼리가 자기를 쫓아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코끼리한테 잡혀서 짓밟히면 죽게 되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을 치다가 마치 큰 샘을 하나 만났다.

 

그 샘으로 피난을, 피하기 위해서 마치 그 샘 언덕에 등넝쿨이 있어서 그 등넝쿨을 잡고서 샘 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말이여. 저 밑에 샘 밑바닥을 내려다보니까 거기에는 독룡 독사가 바닥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

그래서 저 밑으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위에로 올라가자니 코끼리란 놈이 코를 내두르면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그런데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니까 그 절벽에다가 벌이 집을 지어 놨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똑똑 떨어진다. 아무리 죽게 되었지만 아! 꿀이 똑똑 이 콧등어리로 떨어지니까 할 수 없이 그놈을 받아서 쪽쪽 빨아먹는다 말이여.

그런데 그때 흰 쥐와 검은 쥐가 나와 가지고 등넝쿨을 번갈아가면서 갉아대. 얼마 안 있으면 흰 쥐가 한바탕 갉고, 조금 있으면 또 검은 쥐가 갉고 흰 쥐가 갉고 그래서 그 등넝쿨 뿌럭지가 똑 떨어지면 샘 밑바닥에 떨어져 가지고 독사의 밥이 되게 되았다 그말이여.

 

그러면서도 똑똑 떨어지는 꿀 받아먹는 재미로 코끼리가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두려움도 잊어버리고, 밑으로 떨어지면 독룡 독사에게 잡혀 먹는다고 하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면서 등넝쿨을 갉아 대고 있다고 하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그말이여.

꿀 받아먹는 재미로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을지언정 이 사람의 죽음은 시간 문제다 말이여.

 

「어떻게 했으면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 문제가 공안(公案)의 하나입니다.

「어떻게 했으면 이 꿀을 받아먹고 있는, 등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겠느냐?」

 

우리의 중생, 우리 중생의 운명이, 신세가 마치 이 등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말씀이여.

 

광야(曠野)는 생사의 광야요, 인생의 광야요. 우리는 그 한도 끝도 없는 무상(無常)한 생사의 광야를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데 무상살귀(無常殺鬼),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무상살귀로부터 쫓김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그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고, 흰 쥐 검은 쥐는 낮과 밤이고, 그리고 그 등넝쿨은 우리의 생명줄이고, 생명이 수명이 뚝 끊어지면 죽어서 무간(無間), 저승이 기다리고 있다 그말이여.

 

똑똑 떨어지는 꿀은 무엇이냐 하면은 인간에 오욕락이다 그말이여. 오욕락(五慾樂), 재산 · 색욕 · 명예욕 · 명예 · 권리, 또 수면 · 안락 이런 것이 다 다섯 가지 인생의 즐거움인데.

이 인생에 다섯 가지 즐거움, 그 오욕락에 팔려서 그 재미 보느라고 일초일초 죽음을 향해서 쫓기고 있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망각한 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했으면 칡넝쿨에 매달려 있는,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그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여름 웅뎅이에 물 마른 데 퍼드덕거리고 있는 우글대고 있는 송사리 떼와 같은 신세, 칡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그러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서, 도자위경조수행(賭玆危境早修行)이라. 이러한 위경(危境)을 뼈아프게 느끼고서 어서 속히 수행을 해라.

그래 가지고 근념미타생극락(勤念彌陀生極樂)이다. 부지런히 참선(參禪)을 해 가지고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얻을지니라.(10분25초~25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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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찰나생멸무상법 ~’ ; 『관음예문(觀音禮文)』 (용화선원刊)에 있는 ‘무상게(無常偈)’ p35, p64 참고.

刹那生滅無常法  聚散循環有漏因  金烏出沒促年光  玉兎昇沈催老像

忍受井枯魚少水  寧容象逼鼠侵藤  覩玆脆境早修行  勤念彌陀生極樂

 

한 찰나에 생하고 멸하는 것이 무상한 법이며,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는 것은 번뇌(有漏)의 원인이네. 해는 떳다 지면서 세월을 재촉하고, 달은 떳다 지면서 내 늙음 재촉하네.

우물이 말라 물이 적은 것 물고기는 어찌 참으며, 미친 코끼리에게 쫓기고, 쥐는 등넝쿨을 갉나니, 이같이 위급함을 절실히 알아 속히 수행을 하고, 부지런히 아미타 부처님 염(念)하여 극락왕생하세.

 

促 재촉할·빠를(촉), 催 재촉할·독촉할(최), 金烏(금오)는 '해'를 가리키는 말, 玉兎(옥토)는 '달'을 가리키는 말.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이 몸뚱이가 죽은 뒤에사 비로서 죽음이고 이 몸뚱이가 죽은 뒤에사 바로 그때가 내생(來生)이 아니라, 한 생각 일어났다가 꺼지면 그때가 바로 내생이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진 것이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p103-104. (가로판 p101~103)

念起念滅(염기염멸)을 謂之生死(위지생사)니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가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이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를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에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요 寂中(적중)에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과 靈知(영지)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유위법(有爲法) ; 위(爲)란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고, 유위(有爲)란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을 가지는 것.

①여러 인연(因緣)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또는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및 존재(사물). 인연에 의해 생멸하는 현상계의 일체의 사물. 인과 관계 위에 있는 존재.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유위법(有爲法)은 인연에 의하여 화합생성된 것이므로 생(生)도 있고 멸(滅)도 있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하고, 무위법(無爲法)은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절대적인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유루(有漏) ; ①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②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더글더글 ; (물체 따위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마구 모이거나 겹쳐 있다.

*우물우물하다 ; 큰 벌레나 물고기 따위가 한군데에 많이 모여 자꾸 굼뜨게 움직이다.

*가물다 ; 땅에 물기가 바싹 마를 정도로 오랫동안 계속하여 비가 오지 않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어떻게 했으면 이 꿀을 받아먹고 있는, 등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겠느냐?」 ; 이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달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할지어다.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무간(無間) ; ①곧. 즉시. 끊임없이. 끊어짐이 없음. 또는 중간에 끼이는 것이 없음. '무간'은 시간적으로 계속된다는 뜻이고, 공간적으로는 끼일 틈이 없다는 뜻. ②무간업(無間業)의 준말. ③무간지옥(無間地獄)의 준말.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위경(危境) ; 위태로운 처지나 지경.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위진인2019. 11. 14. 04:58

*무위진인(無位眞人) ; '무위(無位)'란 상하 · 귀천 · 범성 · 미오 등 어떤 지위나 차별도 없다는 말. 또는 지위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오간다는 뜻. 곧 '무위진인'이란 궁극적인 경지를 깨달아 모든 지위에 얽매이지 않게 된 참사람(절대자유인)을 가리킨다.

 

(1) 1분 50초.

(2) 8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321)—1987년 2월 첫째 일요법회(87.02.01) (용321)

 

(1)------------------

 

면문출입견환난(面門出入見還難)한데  무위진인지척간(無位眞人咫尺間)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거로일신경사엽(去路一身輕似葉)한데  고명천고중여산(高名千古重如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처음~2분1초)

 

 

 

(2)------------------

 

맨 처음에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은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체계화한 대도사이십니다. 달마 스님으로부터 육조 스님, 육조 스님으로부터 이 임제 스님에 이르러서 이 화두(話頭)를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이 활구참선을 체계화한 대도인인데.

 

임제 스님께서 대중에서 법을 설하시기를, "유일무위진인(有一無位眞人)하니, 한 위가 없는—지위(地位)! 지위가 없는, 계급이 없는—지위가 없는 참사람이 여기에 있으니, 상종여등제인(常從汝等諸人) 면문출입(面門出入)하되, 항상 너희들 여러 사람의 면문(面門)으로조차 출입을 해" 들랑거린다 그말이여.

면문(面門)이라 하는 게, 너희들 눈 ・ 코 ・ 입 ・ 귀 이게 면문(面門)이거든. 너희들 얼굴 면문으로부터 그 무위진인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을 확실히 증거(證據)치 못한 자는,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간간(看看)하라. 잘 살펴볼지니라. 어떠한 것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인가 잘 살펴보란 말이야.

여러 대중 낱낱이 무위진인이 있는데, 그 무위진인이 어디로 드나드냐 하면은 각자의 얼굴 문으로부터 면문(面門)으로부터 드나든다 이거거든.

 

그렇게 설법을 하시니까, 그때 한 승(僧)이 나와서 묻기를 "여하시무위진인(如何是無位眞人)잇꼬?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하고 그 (임제) 스님한테 터억 질문을 했습니다.

임제 스님께서 법상에서 터억 내려와 가지고, 그 질문한 스님의 멱사리를 턱! 거머쥐고서 "도도(道道)하라. 일러라" 그러니까.

 

그 스님이 뭐라고 이를려고 머뭇머뭇 그러니까, 냅다 갖다가 멱사리를 놓으면서 미트러 처내버리면서 이르기를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시심마(是甚麽)오? 무위진인이 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물으시고서 "간시궐(乾屎橛)이니라.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 마른 똥막대기, 이것도 하나의 공안입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나, 무자(無字)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과 마찬가지로, 이 마른 똥막대기니라.

"어떤 것이 무위진인인고?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셨습니다.

 

그 게송에 대해서 고인(古人)이 게송을 읊으시기를,

면문출입견환난(面門出入見還難)이요, 면문으로 출입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면문으로 출입하는데 면문으로 출입한 그 무위진인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말이여.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지척간(咫尺間)이니라. 그렇게 볼라야 볼 수 없지마는 그 무위진인이 지척간(咫尺間)이여. 바로 거기에 있다 그말이여.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말이여.

 

거로일신경사엽(去路一身輕似葉)이요, 가는 길에는 한 몸뚱이가 이파리처럼 가벼운데,

고명천고중여산(高名千古重如山)이다. 그 높은 이름은 천고(千古)에 무겁기가 산과 같도다.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맨 처음에 읊은 게송(偈頌)이 바로 이 게송입니다.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이 간시궐(乾屎橛)이다’ 이것은 무서운 공안으로써 오늘 여러분께 말씀을 드린 것은 이 공안을 가지고 천착(穿鑿)을 하고 분별심으로 따지라는 것이 아니고, 이 공안에 콱 맥혀서 알 수가 없거든 이 공안은 그냥 놔두고.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이뭣고?’ 또는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그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서 간절히 거각(擧却)을 하고 의심을 해서 공부에 박차를 가해 간다면, 어느 때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될 때에 이 공안도 의심 없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화두 타실 분, 또 불명(佛名)을 타실 분, 또 오계(五戒)를 받으실 분에 대한 간단한 법요식(法要式)이 있게 되겠습니다. 화두와 불명과 계를 신청하신 분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이 법당에 질서 있게 남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은 ‘경계(境界)에 속지 말아라’

한 생각 경계에 속아 가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지 말고, 그 한 경계로 인해서 퍼뜩 화두로 돌이켜 가지고 해탈도(解脫道)로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 불자(佛子)가 마땅히 가야할 최상승(最上乘)의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새해에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시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시고, 그렇게 해서 365일을 그렇게 단속하고 그렇게 살아가신다면, 여러분은 일 년 동안에 무량겁 윤회(輪廻)하던 윤회의 길이 거기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며, 영원히 누리고 남을 행복을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신수기도 중입니다마는 기도 성취는 내년 신수기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소원을 다 성취하시고 말 것입니다.(50분17초~58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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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면문출입견환난~' ;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617칙 '무위(無位)'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달마스님, 육조스님, 임제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무위진인(無位眞人) ; '무위(無位)'란 상하 · 귀천 · 범성 · 미오 등 어떤 지위나 차별도 없다는 말. 또는 지위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오간다는 뜻. 곧 '무위진인'이란 궁극적인 경지를 깨달아 모든 지위에 얽매이지 않게 된 참사람(절대자유인)을 가리킨다.

*미틀다 ; ‘밀뜨리다(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갑자기 세차고 힘있게 밀어 버리다)’의 사투리.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參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위산(潙山) 선사가 향엄(香嚴)에게 이르기를 『평생에 듣고 본 것을 떠나서, 네가 세상에 나오기 전 너의 본래면목에 대하여 한마디 말하여 보라』하는데,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져서 몇 마디 대답하여 보았으나 모두 아니라고만 하는 것이다.

 

자기 방에 가서 가지고 다니던 여러 가지 책들을 내어놓고 아무리 찾아보았으나, 듣고 본 것을 여의고는 말할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기를 『그림의 떡으로는 배를 불릴 수 없다』하고 다시 위산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소견이지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하기에 모든 서적을 다 불살라 버리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여 남양(南陽)에 가서 혜충(慧忠)국사의 유적을 보고 거기에 있었다.

 

하루는 그 산중에서 큰 역사가 있어서 그도 같이 일하는데, 돌멩이를 주워 던진 것이 대숲에 맞아서 「딱」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나서, 목욕하고 향을 사르고 멀리 위산을 바라보면서 절하고 게송을 지었다.

『한 번 치는데 모두 잊었네。더 다시 애써 닦을 것 없네......(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그리고 곧 위산에 가서 법을 받고는, 등주(鄧州)의 향엄사에서 교화하였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종적2019. 10. 4. 21:53

 

 

무종적(無蹤迹) (No.201)—(게송)入草求人不奈何  利刀斫了手摩挲  雖然出入無蹤迹  紋彩全彰見也麽.

 

*무종적(無蹤迹, 無蹤跡 없을 무/발자취·흔적 종/발자취·자취 적) ; ①종적이 없다. 또는 종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 종적이란 발자취 또는 어떤 것이 지나간 뒤에 남은 흔적이나 사람들이 남긴 업적 등을 가리킨다. '종적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한 언행 또는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②없어지거나 떠난 뒤에 남는 자취가 없다. 발자취가 없다.

 

(5분 53초)

 

[법문] 송담스님(No.201)—1983년(계해년) 춘계산철 해제 법회 (용201)

 

입초구인불내하(入草求人不奈何)한데   이도작료수마사(利刀斫了手摩挲)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연출입무종적(雖然出入無蹤迹)헌데   문채전창견야마(紋彩全彰見也麽)오

나무~아미타불~

 

입초구인불내하(入草求人不奈何)한데, 풀에 들어가 사람을 구함을 어찌 하지 못혀.

부처님께서 중생 교화를 하기 위해서 중생 속에 발을 벗고 들어가신 그것이 풀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풀’이라 하는 것은 ‘중생(衆生)’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풀과 가시덤불이 우거진 속에 들어가서 잠시도 쉴 겨를이 없이 그렇게 왕래를 하시니까, 이도작료수마사(利刀斫了手摩挲)라. 날카로운 칼로 손 살을 갖다가 갈기갈기 쪼슨 거와 같더라.

가시덤불 속에, 중생의 그 고(苦)를 받고 있는 그 고해(苦海) 속에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부처님이 들어갔다 나왔다 동서남북으로 출입을 하시는데, 갈기갈기 손이 찢기고 발이 찢기고 옷이 찢기고 그 살이 찢기기를, 날카로운 칼로 쪼사논 것처럼 그렇게 참 많은 상처를 입으셨더라.

 

수연출입무종적(雖然出入無蹤迹)이나, 그러나 비록 그렇기는 그러나, 부처님이 들어가고 나오고 하시는데 종적(蹤迹)이 없어. 들어가시되 들어간 바가 없고 나오시되 나온 바가 없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셔서도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八萬四千法門)을 설하셔서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지만, 한 글자도 한 말씀도 설하신 바가 없고,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셨건만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중생이 없더라 그말이여. 그래서 이거 자취가 없는 것이여.

만약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법(法)을 설하셨으되 설한 바가 있다면 그 법은 참법이 아닐 것이고, 한 중생이라도 제도 받은 바가 있다면은 부처님께서 참으로 중생을 제도하시지를 못했을 것이다 그말이여.

 

비록 출입하시되 종적이 없으나, 문채전창견야마(紋彩全彰見也麽)라. 그 문채(紋彩)가 온전히 드러났으니 그 드러난 문채, 그 부처님의 모습을 참으로 보았느냐?

큰 눈이 아니면 감히 볼 수가 없을 것이다.(처음~5분5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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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입초구인불내하~’ ; 『금강경오가해』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야부 게송 참고.

*奈(내)어찌 *何(하)어찌 *奈何;어찌함,어떻게 *利(이)날카롭다 *斫(작)베다,자르다,치다

*了(료)마치다,완전히,마침내 *摩(마)문지르다,갈다 *挲(사)만지다,벌리다

*雖(수)비록,그러나 *然(연)그러하다,그렇기는 하지만 *蹤(종)발자취 *迹(적)자취(=跡)

*紋(문)무늬 *彩(채)빛깔,무늬 *彰(창)드러나다,뚜렷하다,선명하다 *麽(마)작다,의문 어조사,어조사. 麼는 麽의 속자(俗字).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문채(紋彩 무늬·아름다운 광채 문/고운 빛깔·무늬·빛·모양 채) ; 문채(文彩)와 같은 말. ①어떤 사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무늬. 어떤 분별이나 행위의 결과로 남는 흔적 또는 자취. ②사물의 실상 또는 본분의 소식.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상2019. 9. 11. 17:16

무상 (No.537)—송담스님 어렸을 때 비오는 날 물거품 보고 하신 생각 | 불보살 원력으로 생활해야 | 참나를 깨닫는 최상승법에 우리 몸과 마음을 바쳐야.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18분 27초)

 

[법문] 송담스님(No.537)—1994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537)

 

동서고금에 역사를 보면 원나라를 세워서 태조가 된 징기스칸이나 또는 인도를 갖다가 통일해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된 아쇼카 왕이나 또는 불란서에서 난 영웅 나폴레옹이나 다 자기의 정치적 야욕, 야망을 채우기 위해서 크고 작은 많은 전쟁을 치러 가지고 많은 인명(人命)을 살상(殺傷)을 했습니다.

 

아쇼카 왕도 처음에 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될 때 백 명이 넘는 형제와 친척과 왕족을 무참하게 다 죽여 가지고 왕이 되었고 또 수없는 나라와 사람을 죽여 가지고 인도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무참한 살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참회를 하고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정말 불법에 의한 그러한 정치를 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참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칭송을 역사적으로 받고 있지만, 정말 부처님이나 불보살의 높고도 큰 자비의 눈으로 본다면 그런 일을 꼭 잘했다고 칭찬할 수도 없습니다.

 

조카를 죽이고 임금이 된 수양대군 세조, 그것을 도운 한명회 일당들이 참 무자비한 방법으로 충신을 모다 죽이고 권력을 누렸으나 그런 것도 썩 칭찬할 만한 일이 못되는 것이고 또 풍신수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가지고 한국에 피바다를 만드는 일, 6·25 동란에 김일성이가 남침을 해 가지고 많은 동포를 그렇게 무참하게 죽게 했습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를 침공해 가지고 무참한 전쟁을 일으킨 일하며, 우리나라도 홍경래 난(亂)이라든지, 이괄의 난이라든지 그밖에 수없는 크고 작은 난이 있었지만, 이러한 일들이 수없이 동서고금에 되풀이되면서 오늘날까지 역사를 꾸며 왔습니다.

 

산승(山僧)이 어렸을 때 고향에서 마루에서, 비 오는 날 마루턱에 앉아서 그 초가집을 이은 처마에서 물이 주르르르 하니 처마끝에서 물이 떨어진 것을 보고 있었는데, 큰 물방울이 떨어지면 작은 물방울은 그 물방울로 인해서 없어지게 돼.

물방울이 뚝 떨어지면 동그란 버큼이 일어가지고 1, 2초 또는 오래 간 것은 3초 동안 있다가 또 위에서 다음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그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저절로 꺼지기도 하고, 그런 것을 보는데.

 

이 세상에 영웅달사와 크고 작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 가지고 서로 권력 다툼, 세력 다툼, 부자—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나서 다 자기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일생을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이 하나의 물방울과 같은 것이다.

내가 대학을 나오고 그래서 벼슬을 하고, 판검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큰 갑부가 된들 저런 물방울의 신세와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는가!

 

그걸 보고는 세상에 나가서 출세하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차라리 그러한 빈부귀천과 명예와 권리와 모다 그러한 데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 없을까? 정말 남을 해롭게 하지 아니하면서 자기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철없는 생각에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방울이 꺼지고 또 다른 물방울을 꺼지게 하면서 자기는 또 다른 물방울에 꺼짐을 당하면서 그 처마밑에 물이 흐르고 흘러서 개천을 이루고, 개천과 개천이 모여서 큰 강이 되고, 그 강이 흘러 흘러서 바다에 간다 말이여.

그렇듯이 인생이 서로 남을 뺏기고 빼앗기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면서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큰 업적을 남기고 인류에 공헌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아쇼카 왕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랬지만 그것을 참회(懺悔)하고, 불법에 귀의해서 전륜성왕이 되어 가지고 불법에 의한 자비의 정치를 해 가지고 그런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분은 주로 도덕적인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런 법을 제정을 해 가지고 석벽이나 암굴 또는 석주(石柱)를 세워서 그것을 조각을 해 가지고 일반 백성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큰 목표가 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그것이 다 발견이 되어 가지고 옛날 그 비문(碑文)을 다 판독을 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정치를 하거나 무슨 사업을 하거나 그 아쇼카 왕처럼 반드시 불법에 의해서 자비와 지혜로써 한다면 그것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땅히 정치를 하려면 불보살 화현이 나타나 가지고 왕이 되어서 정치를 하고, 부자도 불보살 화현이 나타나 가지고 그 부력(富力)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갖다가 긍휼히 여기는 자비 보시를 행하는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려면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마땅히 십선대계(十善大戒)를 몸소 믿고 실천해서, 그리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자성(自性)을 깨달아 가지고 지혜와 자비의 권화신(權化身)으로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출현을 한다면 바로 불보살의 화현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함부로 정치를 할 것이 아니고, 큰 재산도 가질 것이 못 됩니다.

그러한 능력과 원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쓸데없이 탐욕심과 야욕심과 허영심을 가지고 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리를 획득을 하고 또는 재산을 획득해서, 짓느니 못된 짓만 하게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탄압을 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갈 죄를 짓는 것밖에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십선대계를 받은 그리고 불명(佛名)을 받고 화두(話頭)를 타신 분들은 기왕 그러한 원력(願力)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을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최상승법은 대단히 힘이 들고 고행이라 할 수가 있겠으나 사실은 대안락지법문(大安樂之法門)이라고 고조사(古祖師)는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앉기도 힘이 들고, 다리도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잠도 마음대로 못 자고 초 단계에서는 힘이 든 것은 사실이나, 올바른 방법으로 자세를 단정히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긴장을 다 풀고 그렇게 몸을 단정히 하고. 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 호흡은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되 무리가 있어서는 안 돼. 자연스럽게 자기의 체격에 맞도록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되, 천천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천천히 내쉬면서 '이뭣고?'

 

오늘 시간 관계상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녹음 테이프가 있으니 사무실에서 그것을 구해서 처음으로 참선(參禪)하신 분은 열 번, 스무 번, 오십 번, 백 번을 항상 틀어놓고 집에서 고대로 해 나가면 자연히 단정히 앉는 법,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을 터득을 하게 될 것이고.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할 줄 알면 화두를 바르게 들 줄 알아서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급하게 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않게.

눈에다가, 눈 미간에다가 '내 천(川)'자를 쓰면서 용을 쓰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아주 자연스러운 자세와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불급불완하게 의단(疑團)을 하되, 화두를 배꼽 밑에 단전(丹田)에다 따악 놔두고 알 수 없는 의단으로 그 의심(疑心)을 하되,

여기 앉아서 집을 생각하면 집안이 환하고 또 서울역을 생각하면 서울역이 환하고, 어릴 적에 그 어떠한 광경을 지금 생각하면 환하듯이 그러한 정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그런데 무슨 힘이 들것이냐 그말이여. 해 갈수록 편안하고, 해 갈수록 힘을 덜게 되는 거여.

 

빨리 깨달으려고 그런 조급한 생각을 내지도 말고, 빨리 누가 툭! 터지게 해 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 들어가지 말고, 올바른 방법으로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할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해 놔야, 이것 말고는 우리가 목숨 바칠 곳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군인으로 나가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싸워 가지고 나라에게 목숨을 바친 수없는—우리나라 참, 국군묘지에 가면은 군인들의 묘지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를 하면 나라를 위해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 각기 자기 나라 있는 대로 그 나라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일해서 서로 이웃나라도 없는 것을 교환하면서 서로 다 잘 살면 되는 것인데 뭐 하러 싸울 것이냐 그말이여.

 

무력으로 이웃을 침공해 가지고 자기 나라를 넓히려고 하는 것은 옛날 얘기고, 지금은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러나 이웃나라에서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침공하려고 무력을 증강하고 노리고 있다면 마땅히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근본 생각은 항상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관리나 민간인이나 모두가 다 참나를 깨닫는 이 최상승법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농사도 짓고, 장사도 짓고, 그래야만 이 나라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고, 한 가정이 화합이 되고, 이웃과 서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만나게 되고, 회사도 남의 회사를 망하게 하고 자기만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잘되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고, 온 나라가 다 화합을 하게 되면 감히 이웃나라도 우리나라를 침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서로 마음과 마음이 화합이 안 되고, 저만 잘살라고 남을 함부로 짓밟고, 각 가정은 불화가 일어나고, 이렇게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남을 해코자 하고, 이렇게 되어서는 이웃나라가 침공을 하게 되고, 침공을 해도 그것을 잘 방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 가정의 행복, 사회 국가의 행복,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 참나를 찾는, 이 최상승법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좋은 법은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 산승이 간곡히 말씀드린 이 말씀을 믿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머지않은 후세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57분24초~1시간15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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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를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왕.

32상(相: 신체의 특징) · 7보(寶)를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지배한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윤보(輪寶)를 굴려 모든 장애를 물리친다고 함.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는데, 금륜보(金輪寶)를 지닌 금륜왕(金輪王)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은륜보(銀輪寶)를 지닌 은륜왕(銀輪王)은 세 대륙을, 동륜보(銅輪寶)를 지닌 동륜왕(銅輪王)은 두 대륙을, 철륜보(鐵輪寶)를 지닌 철륜왕(鐵輪王)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함.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을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아쇼카왕 ; ‘아육왕(阿育王)’. 무우(無憂)라고 번역.

*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 - 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천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함.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함.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함.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함.

 

아쇼카의 '다르마(法)'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삶 ①바른 인간관계 : 웃어른 · 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삶 : 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 :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함, 보시와 복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法)’를 근본으로 한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부력(富力) ; ①재산을 지닌 정도. ②많은 재산으로 인하여 생기는 힘.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입[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뜻[意]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권화신(權化身) ;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만단(萬端) ; 수없이 많은 갈래.

 

Posted by 닥공닥정
ㅁ/만년위패 법보재2019. 6. 15. 10:26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20분 57초)

 

[법문] 송담스님(No.683)—2004년 법보재 법회(04.05.04)(용683)

 

부처님께서 법신게(法身偈)를, 법신송(法身頌)을 설하시기를, 제법(諸法)은 종인생(從因生)이요. 모든 법(法)은 인연(因緣)으로 좇아 났으며 모든 법은 인연으로 좇아 멸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다가 한평생을 살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데,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는 것을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인연으로 좇아 생한다. 인연이 다하면은 멸한다’ 그 말씀은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고 하는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왜 분명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생이고, 숨을 거둔 것을 죽는다고 하는 것인데 어째서 생사가 없다고 하셨느냐?

 

우리 중생의 생각으로는 조금 납득하기가 어려운 면이 없지 않지마는,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새로 생했다고 말할 것이나 사실은 그 근본 자체는 생한 것이 없고, 다맛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의 인연이 모여가지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보이고, 그 사대가 흩어져 인연이 다하면은 죽은 것처럼 보이나,

다맛 인연이 다해서 우리 중생의 눈에 죽은 것으로 보일 뿐 그 본체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무생(無生)이라고 한다.

 

중생은 그 본체를 보지 못하고, 껍데기로 보이는 것만 보고 새로 태어났다고 기뻐하고 나중에 일평생을 살다가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면 죽었다고 그것을 슬퍼하지마는, 그것은 본체를 보지 못한 탓으로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은 그것은 인연이 뭉쳤냐, 인연이 흩어졌느냐 그 문제지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법신(法身) 본체를 우리가 분명히 깨닫는다면은 부처님의 말씀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확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법보재(法寶齋)를 맞이해서 비구, 비구니, 사미, 행자, 청신사, 청신녀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법요식(法要式)에 참례했습니다.

이 법보재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뜻으로 인해서 이 법보재가 생겨났느냐? 무슨 목적으로 이 법보재가 생겨났느냐?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대부분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마는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법보전(法寶殿) 안에는 오늘 7만9천3백9번까지 위패(位牌) 번호가 나와 있고, 이 위패에 모셔진 영가(靈駕)의 수는 12만2천2백5십5위에 영가가 봉안이 되었습니다.

 

이 영가 가운데에는 제 1번에 전강(田岡) 대종사 조실스님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위패가 1번에 모셔져 있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인연 있는 청신사 청신녀 또 비구 비구니, 다 이승을 하직한 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대통령을 지내신 분도 있고, 장관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도 있고, 교수님 박사님도 있고, 정치가 예술가 학자 농민 상업을 하신 분, 가지각색의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학생도 있고, 그 가운데에는 잘 사시다가 돌아가신 분도 있고, 교통사고로 가신 분, 자살하신 분, 물에 빠져 돌아가신 분, 참 각양각색에 영가들이 모셔져 있습니다마는.

 

아까 법신 게송에 말씀하신 부처님의 뜻에 입각해서 본다면은 인연이 있어서 이 세상에 왔다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신 분들이고,

깨달은 눈으로 보면은 생사는 본래 없다고 볼 때에 슬퍼할 것도 없고 기뻐할 것도 없는 것이다마는, 우리 중생들은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분명히 생(生)도 있고 사(死)도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조실 스님께서 창설하셨냐 하면은 우리의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들과 딸, 형제자매, 친구, 많은 영가들이 영가의 상태로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거리중천에 고통을 받고 있는 영가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영가로 하여금 첫째,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나아가서는 그 영가로 하여금 법문(法門)을 듣고 천도(薦度)를 받아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해 드리기 위해서 이런 만년위패 제도를 창설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그칠 뿐만 아니라 효자 · 효부들, 효도하는 정성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만년위패에 모셔 드림으로 해서 그 인연으로 그 유족들도 정법(正法)을 믿게 되고, 정법에 의해서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고 수행을 함으로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결정코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가시도록,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지 않고, 생사고해(生死苦海)에 윤회를 하지 않고 해탈도를(解脫道) 증득하게 하려는 그러한 대자비심으로 이 만년위패 제도를 창설하신 것입니다.

 

어째서 만년위패를 모시면은 영가가 해탈도를 증득하냐?

 

보통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가 매장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풍수지리(風水地理), 그런 설에 입각해서 명당(明堂)을 찾아 가지고 좋은 길지(吉地)에다가 모시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종교가 되다시피 되어왔습니다. 현재도 역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땅에다가 매장을 하면 땅속에도 물이 있고, 불이 있고 그래서 얼마 안 가서 새카맣게 타기도 하고, 물구덩이에 쟁기기도 하고, 나무뿌리 풀뿌리가 들어가서 이 사대삭신과 눈 귀 코로 얽혀가지고 그 흉참(凶慘)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무덤 속에 개미가 들끓기도 하고, 심지어는 뱀이 들어가서 살기도 합니다.

 

명당을 써서 자손이 잘되고 복을 받기 원해서 명당을 썼다가 이러한 차마 말로 하기도 어려운 흉참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그 영가는 자기 가정에 들어가서 ‘내가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으니 나를 다른 데로 옮겨다오. 나를 화장을 해다오’

그렇게 말을 해도 영가와 살아 있는 사람과는 여간해서 언어가 의사가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집안에는 우환(憂患)이 끓고, 비명액사로 가고, 그러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수장법(水葬法)이 있는데, 죽으면 물에다가 갖다가 던지기도 하고, 여러분이 '바이킹'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습니다마는 배에다가 장작을 쌓고 그 위에다가 시체를 놓고 그래가지고 그 배를 저 바다에다 띄우고 화살에다 불을 붙여서 화살을 쏴가지고 그 배에 명중을 시키면 그 배에서 불이 나가지고 또 시체가 타는, 물 가운데에서 화장을 하는 그러한 화장법도 있고,

아주 물에다가 시체를 던져가지고 물고기들로 하여금 시체를 뜯어먹게 하는 그런 풍속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풍장(風葬)이라고 하는 방법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숲속에다 갖다가 버립니다.

버리면, 독수리나 산짐승들이 나와서 그걸 다 뜯어먹어서 뼈만 앙상히 남고, 뼈가 남으면은 그것이 풍마우습(風磨雨濕)해서 세월이 지내가면은 삭아서 언젠가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에 화장(火葬)이 있는데, 화장법은 돌아가시면은 염불을 하면서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기도 하고 또 스님네들이 돌아가시면은 산중에서 스님네끼리 모여서 장작을 쌓고 화장을 하는 예식도 있습니다.

땅에다가 매장하고, 물에다 수장하고, 산에다가 버려가지고 풍장을 하고, 불로 태워서 화장을 하고, 네 가지 법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화장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화장을 하냐 하면은, 앞에 말한 세 가지 법보다는 훨씬 좋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은 땅에다 묻어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고, 흙으로 완전히 돌아갈 때까지는 그런 짐승들로 침해를 받고, 풀뿌리에 얽혀서 침해를 받고 그런 일이 없고.

 

땅에다 묻기로 하면은 병든 사람에 만약에 전염성이 있는 병을 앓다가 죽은 사람을 땅에다 묻으면 그놈이 썩어서 그 균이 지하수로 스며들면 그 균이 다른 사람에게 또 전염이 될 우려성도 있는데, 화장을 하면 거기서 완전히 살균이 되어가지고 그 화장한 그걸로 인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까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 묻거나, 풍장을 하거나, 수장을 하면 영가가 자기가 한평생 의지하던 그 육체가 있는 곳에 가서 거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거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머물러 있게 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장을 해서 물에다 뿌리거나, 산에다 뿌리면 육체에 대한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고, 더군다나 그 영가로 하여금 편안하게 안주할 곳을 마련해 드리면 거기에 계시다가 인연이 돌아오면은 다른 곳으로 탄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용화사 이 만년위패처럼 여기다가 딱 모셔 놓으면 아침마다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명절 때마다 차례(茶禮)를 봉행을 하고, 법회 때마다 영가로 하여금 법문을 듣게 해서 이생뿐만이 아니라 무량겁을 두면서 오늘날까지, 이생에 올 때까지 수없는 생사윤회 속에서 겪은 원한심, 슬픔, 괴로움, 그러한 영가들도 여기서 그렇게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들으면서 영가로서 그 업장이 소멸이 되고 원한심이 다 소멸이 되어서, 그리고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은 도솔천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하실 것이고,

또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으면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시되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서 자기의 사명을 완성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도 하고, 자기 자신이 못다한 한이 있으면 그 목적을 달성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년위패에 동참을 하시면은 돌아가신 그 영가도 좋고, 그 영가를 만년위패에 모신 그 유족들도 그 인연으로 정법을 믿고, 좋은 일도 하고 나아가서는 정법에 의해서 참선을 열심히 하신다면은 그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 문제가 거기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만년위패 제도는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도 좋고, 살아있는 사람에도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해탈(解脫)을 증득을 해가지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대도사(大導師)가 될 수 있는 길을 가게 되니 이 만년위패 제도 이것이야말로 조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시고 창설해 주신 그 자비와 지혜를 정말 뼛속 깊게 감사하게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년위패 제도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는 방방곡곡에서 형제자매 법보가족(法寶家族) 여러분들이 이 한 법당에서 우리는 법요식을 봉행하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리고 오늘 천도 법요식을 함께 거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해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고, 한 도반이 되어서 한 분도 빠짐없이 세세생생에 다시 또 한 가족으로 만나고, 한 같은 도반으로 만나서 결정코 부처님 불회상(佛會上)에 만나고 정법도량(正法道場)에 만나서 우리는 영원히 생사해탈의 길을 가게 되고, 나아가서는 이 법보가족이 못 된, 만년위패 제도가 없는 분도 우리들로 인해서 다 한 가족이 되어서 손에 손을 잡고 해탈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먼 데에서 이렇게 오늘 법보재일을 잊지 않고 동참해주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께 이 원장으로서 대단히 반가운 인사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1분51초~22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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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종인생(諸法從因生) 제법종인멸(諸法從因滅)' ;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참고]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48권 '사리목련인연품(舍利目連因緣品) 하'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爾時 大德阿濕波踰祇多 告優波低沙言 「仁者 我彼大師 說因緣法 談解脫路 我師偈說如是之法」 (摩訶僧祇師作如是說 迦葉惟師又復別說) 「是義云何 仁者 我師說是法句」

『諸法從因生 諸法從因滅 如是滅與生 沙門說如是』

 

그러자 대덕(大德) 아습파유기다(阿濕波踰祇多=馬勝,馬星,阿說示)는 곧 우바저사(優波低沙=舍利弗)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우리 큰 스승께서는 인연법을 설하시고 해탈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을 게송으로 설하십니다" (마하승기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유사는 또 다음과 같이 다르게 말하였다) "그 뜻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의 구절을 설하셨습니다"

 

『모든 법은 인(因)을 따라 생겨나고, 모든 법은 인을 따라 멸하니, 이렇게 멸하고 또 생기는 것을 사문께서는 이와 같이 말하셨습니다』

 

爾時 優波低沙波離婆闍迦 善達文字之法 時大德彼阿濕波踰祇多比丘 能解文義 又能攝彼義及文字 是何多耶 「諸法因生者 彼法隨因滅 因緣滅卽道 大師說如是」

時 優波低沙波離婆闍迦 觀見如此法行之時 卽於是處 遠塵離垢 盡諸煩惱 得法眼淨 諸有爲法 皆得滅相 如實觀知

 

그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문자의 법에 잘 통달하였고, 당시 대덕 아습파유기다 비구는 글귀의 뜻을 잘 이해하였고, 또 그 뜻과 문자를 아주 잘 이해하여 받아들였으니 무슨 많은 글자가 필요하겠는가.

 

「인(因)을 따라 생겨난 모든 법은 그 법은 인을 따라 멸하나니, 인연이 멸하면 곧 도(道)라고 큰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이런 법행(法行)을 관하여 보고 곧 그 자리에서 티끌과 때[垢]를 멀리 버리고 모든 번뇌를 없애고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으며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모두가 멸하는 상(相)임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알았다.

 

*'인연진고멸(因緣盡故滅) 아작여시설(我作如是說)' ; 『불설조탑공덕경(佛說造塔功德經)』

[참고] 『불설조탑공덕경(佛說造塔功德經)』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爾時 世尊 說是偈言 『諸法因緣生 我說是因緣 因緣盡故滅 我作如是說』

善男子 如是偈義名佛法身 汝當書寫置彼塔內 何以故 一切因緣 及所生法 性空寂故 是故 我說名爲法身 若有衆生解了如是因緣之義 當知是人卽爲見佛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나는 것이며 내가 이 인연을 설하느니라. 인연이 다한 까닭에 없어지나니 여래는 이렇게 설하노라』

 

"선남자야, 이 게송의 뜻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이라 이르니, 너는 반드시 이 게송을 서사하여 그 탑 안에 두어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인연과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법의 성품이 공적(空寂)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법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러한 뜻을 깨달으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법신게(法身偈) ; 불교의 근본교설인 사제(四諦) · 연기(緣起)를 함축적으로 시설한 게송.

석가세존의 성도(成道) 후 오비구(五比丘) 중 마승(馬勝) 비구가 사리불에게 설해 준 게송으로 부처님의 몸(사리)와 같은 위상을 갖기에 법신게(法身偈) · 법신사리게(法身舍利偈) · 법신연기게(法身緣起偈) · 법송사리(法頌舍利)라고도 하고, 탑신(塔身) · 복장(腹藏) 등 탑과 불상 내부에 안치한다. 범본 · 티베트본 불전(佛典)의 회향게(回向偈) 끝에, 또는 불상(佛像) 등에 인장(印章)처럼 새겨져 전한다.

또한 첫 번째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한다[諸法從緣生]'라는 구절에 따라 연생게(緣生偈) · 연기게(緣起偈) · 연기법송(緣起法頌) · 연생법송(緣生法頌) 등이라고도 한다.

 

이 법신게(法身偈)의 내용이 경전상에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참고 ①] 팔리 율장(律藏)의 「마하막가」(大品)

"생겨나는 모든 법의 원인을 여래는 설하셨네, 마찬가지로 그 사라짐을 대사문은 말씀하시네"

 

[참고 ②]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출가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出家事)』

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

모든 법은 연(緣)에서 일어나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인(因)을 설하셨노라. 저들 법의 인과 연은 결국 사라지리니, 이것이 대사문의 말씀이라네.

 

[참고 ③] 『불설초분설경(佛說初分說經)』 권하.

若法因緣生 法亦因緣滅 是生滅因緣 佛大沙門說

만일 어떤 법이 인연으로 일어난다면, 그 법은 또한 인연으로 사라지리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인연 그것은, 깨달으신 대사문의 말씀이라네.

 

[참고 ④] 『대지도론(大智度論)』 18권 '제30 석초품중반야상의(釋初品中般若相義)'

如佛於四諦中 或說一諦 或二或三 如馬星比丘 爲舍利弗說偈 『諸法從緣生 是法緣及盡 我師大聖王 是義如是說』 此偈但說三諦 當知道諦已在中 不相離故 譬如一人犯事 擧家受罪

 

부처님께서는 고 · 집 · 멸 · 도의 사제(四諦) 중에서 때로는 하나의 제(諦)만 설하거나 혹은 두 개 혹은 세 개의 제(諦)를 설하셨다. 예를 들면 마성 비구가 사리불에게 설한 게송에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하고 , 이 법의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노라. 우리의 스승이신 부처님께서는 이 뜻을 이와 같이 설하셨다네'라고 하였다.

이 게송은 고 · 집 · 멸 등의 삼제만 설한 것이나 도제(道諦)가 이미 그 안에 있어서 나머지 삼제와 떨어지지 않은 줄 알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집안 전체가 연루되어 그 죗값을 받는 것과 같다.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무생(無生) ; ①생겨남[生]이 없는 것[無].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②성문사과(聲聞四果)의 하나인 아라한(阿羅漢 arhat)의 한역어. 삼계의 번뇌를 여의어 다시 삼계에 목숨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생이라고 한다.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대웅전(舊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 산수의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련시켜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집을 짓는 데 적당한 장소를 찾는 이론이나 주장.

*명당(明堂 밝을 명/집 당) ; ①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 어떤 일에 썩 좋은 자리. ②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터. [비슷한 말] 길지(吉地). 명당자리.

*길지(吉地 길할 길/땅 지) ; 명당(明堂 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복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

*흉참하다(凶慘-- 흉할 흉/참혹할 참) ; 흉악(凶惡)하고 참혹(慘酷)하다.

*우환(憂患 근심 우/근심 환) ; ①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나 아픈 사람이 생겨서 나는 걱정이나 근심. ②몸의 온갖 병.

*풍마우습(風磨雨濕) ; 바람에 갈리고 비에 젖음.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대도사(大導師 큰 대/길·인도하다·이끌다 도/스승 사) ; 불(佛) · 보살(菩薩)의 존칭. '크신[大] 길 인도하는[導] 스승[師]'이라는 말.

도(導)는 「길[道] · 인도(引導)하다 · 이끌다」의 뜻으로, 대도사는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큰 스승이라는 말.

*법보가족(法寶家族)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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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미륵불2019. 6. 6. 16:33

*미륵불(彌勒佛) :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할 것이 예정된 부처님. 현재 보처보살(補處菩薩)의 몸으로 도솔천 내원궁에 머물면서 설법하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4분 43초)

 

[법문] 송담스님(No.394)—89년 7월 첫째일요법회.(용394)

 

견색시증시(見色時證時)요  문성시증처(聞聲時證處)니라

나무~아미타불~

염념석가출세시(念念釋迦出世時)요  보보미륵하생처(步步彌勒下生處)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시증시(見色時證時)요. 모든 색상을 보는 그때가 그것이 바로 생사 없는 참나를 증득하는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時證處)다. 무슨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를 듣는 그 찰나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을 곳이다.

 

그래서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볼 때 그 찰나가 바로 생사 없는 진리를 증득하는 때이기 때문에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불법(佛法)을 믿지 않고 참선(參禪) 안 한 사람은 그 무슨 색상을 보는 그 찰나가 벌써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에게 딱! 쇠고랑에 채여서 끌려가는 그 찰나고,

참선 공부를 하는 사람은 바로 무슨 색상이 눈에 띄자마자 ‘이뭣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바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바로 그 시간이다 그말이여.

 

일체 소리가 귀에 들릴 때에도, 귀를 통해서 일체 소리를 듣더라도 바로 그 듣는 그 찰나에 거기에 그 소리로 따라가지 말고, 그 소리로 인해서 분별심(分別心)을 내지 말고 그 소리가 귀에 이르자마자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다그쳐 가면 생각 생각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곳이고, 걸음걸음이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하신 곳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탄생하셨지만 이와 같이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그 생각 생각 그 찰나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고,

비록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출생하신다고 경전에는 쓰여 있지마는, 진짜 살아 있는 미륵 부처님은 우리가 걸음걸음이 ‘이뭣고?’ 딱! 챙기는 그 찰나에 바로 미륵불이 탄생하신 곳이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실천해 나간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26분43초~31분3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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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시증처~’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참고.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범]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보처보살(補處菩薩) : 보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줄임말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태어나면 성불하여 부처님의 자리[處]를 메우는[補] 것이 예정된 보살을 일컫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수기(受記)를 받아 미래에 부처님이 될 미륵보살을 이른다. 부처님 생존시에 아일다(阿逸多, Ajita)가 도를 열심히 닦아 도솔천에 왕생하여 이 보살의 위치에 올랐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태어나기 전에 호명(護明)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이 보살의 위치에 올라 도솔천 내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도솔천보다 낮은 사천왕천이나 도리천·야마천에는 게으름과 욕정이 남아 있고, 도솔천보다 상위의 천들은 고요한 선정에 들어 있어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심 무심도인2019. 6. 4. 12:14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4분 45초)

 

[법문] 송담스님(No.394)—89년 7월 첫째일요법회.(용394)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니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나무~아미타불~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어제 가지 끝에 그렇게도 곱게 피어 있던 꽃이 오늘 아침에는 벌써 땅바닥에 송이송이 떨어져 있구나.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떨어진 꽃을 아까워하다가 도리어 부끄러운 생각을 나게 하는구나.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흥망성쇠에 무심(無心)하지 못해. 흥망성쇠에, 그 화려하게 피었다가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는 것이 어찌 그대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누가 그대와 같이 무심할 수가 있겠는가.

 

꽃은 그렇게 화려하게 아름답게 향그럽게 곱게 피어 있으면서도 ‘나는 지금 곱게 화려하게 피어 있다’하고 조금도 자랑하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화려한 꽃이 하룻밤 새에 그렇게도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꽃 그 자신은 꽃이 떨어졌다고 해서 조금도 가슴 아파하거나 아까워하는 생각이 없어. 피어 있을 때도 무심하고, 꽃이 진 뒤에도 무심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꽃을 감상하는 사람은 피어 있을 때는 '곱다'고 '아름답다'고 야단하다가, 그 꽃이 져 버리면 그렇게도 애석하게 생각해.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돈이 잘 벌리거나 높은 자리에 영전을 하거나 하면 온통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좋아하고 참 야단이다가, 재수가 없어서 살림이 망하거나 높은 자리에서 떨어져서 파면을 당하거나 하면 그냥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속을 상한다.

 

그러니 사람이 만물 가운데 영장(靈長)이라고 하지마는 식물인 저 꽃만도 못하구나. 이러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처음~4분5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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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일지두개난만~' ;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진각혜심) '낙화(落花)' 참고.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