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지 마라 ; '지금은 내가 ~~때문에 못한다. ~~이 되면 하리라' 밤낮 핑계를 대고 뒤로 미루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정진하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3분 7초)

 

[법문]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용457)

 

게으른 사람이 항상 우선은 뒤로 미뤄.

 

‘지금은 내가 자식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딸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만 죽으면 아주 선방(禪房)에 가리라. 또 뭐 딸만 여위어 버리면 선방에 가리라. 자식 저놈만 대학에 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내가 공부하리라’

 

밤낮 뒤로 미루고 핑계를 대거든, ‘누구 때문에 내가 지금은 못한다’ 그런데 그것이 게으른 사람이 하는 지서리거든. 그것이 발심(發心)을 철저히 못한 것이고,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지 못한 거여. 누구 탓할 거 없어.

 

그렇다고 해서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는 해야지, 별수가 없다 그말이여.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주부 노릇도 해야 하는데, 아직 시집 장가도 안 간 처지라면 이것저것 다 내동댕이쳐 버리고 머리 깎고 출가하면 되겠지만 이미 다 저질렀으면 어쩔 수가 없어.

 

부처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들도 낳으셨고 얼마 안 가면은 왕이 될 그런 처지에서도 탁! 일도양단(一刀兩斷)해서 끊어버리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고행(苦行)을 하시고 성불(成佛)을 하시는 그런 모범도 보이시기는 했으나,

내가 만약에 다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란다 하면 당장 나한테 빗발치듯이 전화가 와 가지고 야단이 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권고는 안 합니다.

 

인연이 도래해서 본인이 발심해서 출가한 거야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이고, 발심 못한 사람이 내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하겠습니까? 그러니 괜히 내가 그런 말은 안 하지마는, 뒤로 미루지 말라 이거거든

 

있는 그 자리에서‘이뭣고?’

밥 지으면서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앉아서 '이뭣고?'

서서 '이뭣고?'

시장보러 가면서 '이뭣고?' 보아 가지고 오면서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근심걱정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러한 생사(生死)의 바다속에서 생각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면 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생사를 이겨 낼 수 있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것저것 다 끊고 조용한 데서 해 버릇하고 고요한 데에서 익힌 공부는 조금 시끄러우면 잘 안되는데,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익혀 놓은 공부는—좀 어렵지. 어렵기야 어렵지마는—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되고 정말 힘 있는 공부를 하게 될뿐만 아니라,

복(福)과 혜(慧)를 겸해서 닦게 되고 오후보림(悟後保任) 공부까지 그 속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그 상황 속에서 턱턱 챙겨 나가라 이거거든.

 

그렇게 공부를 해 놓으면 금생에 출가를 하던지 또는 출가를 안 하더라도 선방에 나오시면 문제가 없고 또 금생에는 영영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는 정말 출가해서 오직 이 한 일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그러헌 좋은 여건하에 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 따라서.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여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요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다.

세월이, 이 시간이 돌과 돌이 부딪칠 때 반짝하듯이 그렇게 빠르다 그 말이거든.

 

벌건 소년 시절의 그 붉은 얼굴이, 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났어. 지금 이 자리에 젊으신 분도 많이 계시지만 머리가 허연 분들도 적지 않다.

어느새 이렇게 흰머리가 나고 늙었는가 생각해보면, 스무 살 열다섯 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어떻게 지나간줄 모르게 이렇게 늙었다 그말이거든.

 

현재 머리가 희고 연세가 많은 분 뿐만 아니라, 아직은 머리가 희지 않고 검고 주름살도 없고 젊은 분도 금방 희여진다 그말이거든.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여. 사람은 태어나서 빈부귀천과 흥망성쇠 속에서 좀더 잘살아 볼라고 정치로 나간 사람, 경제계로 나간 사람, 학계로 나간 사람, 예술계로 나간 사람,

별별 직업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능력과 소질 따라서, 참 피나는 노력을 하고 좀 잘살아 볼려고 애쓰지만, 많이 살아봤자 백년 미만이요 지내놓고 보면 하룻밤 꿈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그리고 하루살이[蜉蝣] 신세에 지나지 못해. 돈 많다고 안 죽는 사람 못 봤고, 권리가 많다고 해서 안 죽은 사람 못 봤어. 다 지내놓고 보면은 무엇이냐? 그말이여.

꿈 한번 좋은 꿈을 꾸었거나 나쁜 꿈을 꾸었거나, 꿈 한번 꾸고 꿈 깨고 난 뒤끝에 지내지 못해.

 

그러나 그런 허망한 몸뚱이, 허망한 인생이지만 정법(正法)을 믿고 열심히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한 사람은, 전혀 인생을 헛산 사람이 아니여.

마지막 죽어갈 때에도, 내가 참 마음껏 정진을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있을지언정 인생을 헛살았다고 하는 그런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진을 열심히 해서 임종(臨終) 직전에 이르러서도—몸은 괴롭겠지.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죽는다니까. 숨도 가쁘고 가슴도 답답하고,

나는 그렇게 죽어보지 못해서 확실히 얼마만큼 괴로운가는 잘 모르겠는데, 다 전생에 수백만 번 겪었지마는 전생사(前生事)는 다 잊어버리거든.

 

다른 사람 죽은 것을 보면 정말 마지막 숨 몰아 쉴때는 옆에서 보기가 대단히 안 좋아. 푹푹하면서 가래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얼마나 답답하겠냐 그말이여. 일으키라고 했다 뉘이라고 했다 일으키라고 했다 뉘라고 했다...

 

복을 참 많이 지은 사람은 죽을 때 편안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죽어간단 말도 들었고, 저녁밥 잘 먹고도 자는 듯이 가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고, 특히 요료법(尿療法)을 한 사람은 죽을 때 아주 편안하게 죽는다니까 한번 먹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거기에다 요료법까지 해서, 죽을 때 편안하게 화두를 터억 들고서 눈을 감을수 있다면 참 다 ‘조사열반(祖師涅槃)을 했다’고 할 것이다 그거거든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똑딱똑딱똑딱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화두를 터억 들고서 지금 산승(山僧)의 말을 듣고 계실줄 믿습니다. 그 마음으로 법회가 끝나고도 항상 그 마음으로 일 초 일 초를 지내가고 댁으로 돌아가시는 걸음걸음을 그렇게 하시고 댁에 가셔서도 그렇게 화두를 단속(團束)하고 사신다면,

 

공부라는 게 사실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여.

몸뚱이를 들볶고, 잠을 안 자고, 먹을 것을 안 먹고 그렇게 막 들볶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만큼 먹고 잘 만큼 자되, 눈 떠있을 때 화두를 야무지게 단속을 해야 하거든. 그렇다면 완력으로 우격다짐으로 의단을 거각(擧却)하는 것이 아니여.

 

항상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자주자주 듣고 화두 하나만을 여법(如法)하게 단속할 줄 알면 누었거나 앉았거나 무슨 상관이 있냐 그말이여.

 

소지(掃地)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화두 하나만 여법하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뭐 시간이 간 것을 두려워할 것이 있으며, 늙어가는 것을 또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말이여. 두려워한다고 안 늙겠습니까?

 

이제 가을도 다 가고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보름 남짓 지나가면 또 겨울 결제, 겨울 안거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도 어느 선방에 가서 방부(房付)를 들이든지 항상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잊지 말고 여법하게 정진을 하시기를 당부를 합니다.(53분1초~66분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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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서리 ; '짓거리('짓'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사투리. *짓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修道)한 산.

*고행(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西山 休靜, 朴敬勛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86쪽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부지런히 힘씀. ②불법(佛法)을 깨닫기 위해 수행에 힘씀.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임종(臨終) ; 목숨이 끊어져 죽음에 이름. 또는 그때.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尿療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조사열반(祖師涅槃) ; 경허스님의 「참선곡(參禪曲)」에 다음 구절이 있다—‘참선 잘한 저 도인(道人)은 서서죽고 앉아죽고 앓도 않고 선세(蟬蛻-매미가 허물을 벗음)하며, 오래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自在)하며’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ㅈ/정념2018. 9. 5. 14:03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參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6분 37초)

 

[법문]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용457)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사 바다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가 생사의 바다요, 우리의 마음속도 생사심(生死心)의 그 바다 속이여 바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대해(生死大海)인데, 그 생사대해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 죽는 거여.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 줄 몰라. 불이 나거나, 자동차 무슨 사고가 나거나, 난리가 나거나, 정신 못 차리면 죽는 거고, 정신만 탁! 차리면 반드시 살아갈 길이 있는 거여.

 

그래서 저 호숫가에서 버스가 뒤집어져 가지고 다 죽었는데, 그중에 참선(參禪)하는 비구니 스님 한 사람이 그 차가 뒤집어져 가지고 바다에 빠진 그 속에서 화두(話頭)를 들었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환하니 문이 보여. 그리 요렇게 요렇게 헤쳐 나왔어.

나오고 보니까 돌도 안 돌아온 애기가 물속에 떠서 허우적허우적 하고 있다 말이여. 그래서 그 애기를 건지고 두 사람 딱 살아났거든. 지금 그 비구니 스님이 살아있거든. 그래서 용궁에 갔다고 해서 별명이 용궁 스님인데.

 

화두를 들면은 그런 경우에도 살아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는 거여. 왜 그러냐? ‘호랑이 열두 번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거든. 틀림이 없거든.

생사(生死),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의 그 무서운 생사 속에서 정념을 잃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을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했어. 대력보살! '큰 힘을 가진 보살'이라 그래.

 

정념(正念)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터억 화두를 드는 거여.

지금 우리는 무엇이 정(正)이고 무엇이 사(邪)고 그거 따질 겨를이 없거든. 화두 하나만 딱! 챙겨버리면 사심(邪心)은 거기에 붙지를 못하는 거여.

 

그렇게 화두를 들고 계속해 나가다 보면 저절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순일무잡한 타성일편 경지에 들어가면 거기에 망념이 붙질 못하니까 무념(無念)의 경지에 들어가서 타악!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해 버리면 바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 아니냐 그거거든.

 

따로 정진을 할라고 마음을 내지 말고 자꾸 화두만 들어. 되거나 안 되거나 따질 것도 없고 화두만 들면 저절로 망념은 거기에 붙지 못하고, 거기에 무슨 삿된 생각이 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아까 조실(祖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의리선(義理禪)을 하지 마라. 사량분별(思量分別)로 공안(公案)을 따지고 그런 짓을 하지 마라.

공안을 의리로 따져서 그럴싸하니 해답을 얻어봤자 그게 어디에 쓰는 것이냐 그거거든. 아무 소용없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을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얻어 가지고, 이 공안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저 공안을 물으면 저렇게 대답하고,

요새 조사어록(祖師語錄)들이 많이 번역이 되어 나와 가지고 그런 것을 죽죽 읽어서, 머리 좋은 사람은 몇 번 안 읽으면 이렇게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고 저렇게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고, 그 알아 가지고 제법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법담(法談)을 척척하고, 어디다 쓰는 것이냐 그말이여.

 

아무 소용없거든!

 

설사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공안(公案) 하나를 대답을 못해도 상관 없어.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반드시 금생(今生)에 타파하게 되고,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해도 금생에 숨을 거둘 때에도 터억 화두를 들고 그 의단 하나로서 숨을 거두어 보라 그말이여.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거나, 설사 사람 몸을 받더라도 내생(來生)에 다시 몸을 바꾸어 가지고 또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을 만나서 내생에는 전강(田岡) 조실 스님처럼 어린 나이에 툭 터져버리거든.

 

물론 금생에 참 어린 나이로 선방에 나오셔서 정말 생명을 바쳐서 정진을 하셨기도 했지만, 어떤 스님은 조실 스님 보고 ‘전생공부(前生工夫)'라고. '전생에 그렇게 해놨기 때문에 금생에 그렇게 툭 터졌다'고, '전생공부'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듣기도 했지만,

 

하여간 금생에 여법하게 해 놓은 공부는, 금생에 설사 깨닫지 못했어도 전혀 헛것이 아니고 내생에 일찍 툭 터지는 것이여. 그런 신념을 가지고 공연히 속효심(速效心)을 가지고 빨리 깨닫기를 기달릴 일이 아니라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는 것 뿐이여.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기다릴 것도 없고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어.(46분20초~52분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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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생사대해(生死大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중생이 생사유전하는 세계를 '큰 바다(大海)'에 비유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대력보살(大力菩薩) ; 큰 힘을 가진 보살. '대력'은 무루업(無漏業)에 의하여 무명(無明)으로부터 벗어나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한 것을 형용한 말이다.

*무루업(無漏業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선악의 소행所行 업) ; 번뇌 없는 청정한 업. 오염된 과보도 청정한 과보도 초래하지 않는 업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조건이다. '무루'란 번뇌가 없거나 더이상 번뇌를 증장시키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유루업과 대칭된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曇無讖 譯) 권37 ‘迦葉菩薩品 第十二之五’

迦葉菩薩白佛言 世尊 是無漏業 非是黑法 何因緣故 不名爲白 善男子 無有報故 不名爲白 對治黑故 故名爲白 我今乃說 受果報者 名之爲白 是無漏業 不受報故 不名爲白 名爲寂靜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무루업은 삿되고 더러운 흑법(黑法)이 아닌데, 어떤 인연으로 청정하고 선한 백법(白法)이라 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과보가 없다고 하여 청정하다[白]고 하지 않으며, 삿되고 더러운 것[黑]을 대치하므로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과보를 받는 자를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무루업은 과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하지 않고 고요하다[寂靜]고 한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龍樹菩薩 造 | 鳩摩羅什 譯) 권94 ‘釋四諦品 第八十四’

無漏業 能破不善 有漏業 能拔衆生令離善惡果報中 問曰 無漏業應是白 何以言非白非黑 答曰 無漏法雖淸淨無垢 以空無相無作故無所分別 不得言白 黑白是相待法 此中無相待故不得言白 復次 無漏業能滅一切 諸觀中分別故有黑白 此中無觀故無白

 

무루업은 불선(악)의 유루업을 타파할 수 있어 중생을 빼낼 수 있고 선악의 과보에서 떠나게 한다.

묻는다. ‘무루업은 응당 청정할 것인데, 어째서 청정하지도 더럽지도 않다[非白非黑]고 말하는가?’

답한다. ‘무루법은 비록 청정하여 번뇌의 때가 없지만 공 · 무상 · 무작의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별할 여지가 없으므로 청정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더럽다거나[黑] 청정하다[白]는 것은 상대적 조건이 되는 법이지만 여기(무루법) 안에는 상대가 없으므로 청정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무루업은 모든 것을 소멸시킬 수 있다. 모든 관찰에서는 분별하는 작용으로 인하여 더럽거나 청정한 차별이 있지만 무루업 안에서는 관찰이 없으므로 청정함도 없는 것이다’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사심(邪心) ; 삿된 마음. 삿된 교설 · 외도를 따르거나,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이익을 구하며, 다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는 등 계율에 어긋나거나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마음을 총괄적으로 나타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무념(無念) ; ①망념이 없는 것. 정념(正念)을 말한다. ②모든 법을 보면서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어록(祖師語錄) ;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속효심(速效心) ; 빨리 효과 나기를 바라는 마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