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지 마라(No.119)—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결정코 나도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거, 이것이 바로 대신심(大信心) | 어떠한 일이라 하더라도 죽음보다는 덜 급하다 | 이 공부는 승속(僧俗)이 없다 | 진실한 불자(佛子)가 되어라.


*미루지 마라 ; '지금은 내가 ~~때문에 정진 못한다. ~~이 해결되면 정진하리라' 밤낮 핑계를 대고 뒤로 미루지 말고, 있는 그 자리, 그 경계, 그 상황,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정진하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4분 2초)


[법문] 송담스님(No.119)—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용119)

철저한 신심은 무엇을 믿는 것인가?
말세(末世)에 태어났고, 못나게 태어났고, 무식하게 태어났고, 여자로 태어났을망정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며,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결정코 나도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거, 이것이 바로 대신심(大信心)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심이 있다. 신심이 있다’ 하면 절에 가서 절을 많이 하고, 불공(佛供)을 자주 가고 그러면은 그것을 ‘신심이 있다’ 하고 혹 생각하실 분이 있을런지 모릅니다마는 그것도 일종의 신심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신심은 '나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만 하면 결정코 금생에 이 몸속에 똥과 피와 오줌과 고름을 가뜩 담아 있는 채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믿는 거, 이것이 바로 대신심이요, 참다운 바른 신심인 것입니다.

이 신심이 있다면 분심(憤心)이 일어날 수밖에는 없습니다.
'왜 나와 불보살(佛菩薩)과 조금도 차등이 없는 똑같은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과거의 성현(聖賢)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하고 진리를 깨달아서 대성현이 되었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오늘날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가? 오늘날까지 왜 깜깜한 칠통(漆桶)으로 몸부림치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대분심이 아니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촌이나 일가가 잘되면 거기서는 분(憤)이 나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이 시뻘겋게 시기와 질투를 할 줄 알면서, 어째서 과거의 모든 성현들은 대도(大道)를 성취하셨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칠통을 타파(打破)하지 못하고 육도윤회 속에 개미 쳇바퀴 돌듯이 돌면서 몸부림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분심이 일어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이 있는 곳에는 저절로 화두(話頭)가 들지 아니해도 들어질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억울한 욕 한마디를 하면 그 말이 부애가 나고 억울하고 분이 나서 핏대를 세우고, 혈압이 올라서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자기 싫고, 당장 쫓아가서 따지고 요절을 낼랴고 펄펄 뛰면서, 하루 이틀이 지나도 그 분이 풀리지 아니하고, 한 달 두 달이 지내도 그 억울한 분이 풀리지를 아니하고, 10년 20년이 되고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소리는 잊지 못하겠다고 치를 떨 줄 알면서,
어째서 자기 문제, 가장 급하고 요긴하고 중대한 문제, 자기의 생사(生死)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한만히 남의 일처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루하루 헛되이 세월을 보내고, 심지어는 듣기는 듣지만 ‘저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저건 스님네나 하고, 늙어서 다 가정일 끝난 다음에 선방에 갔을 때 그때 조금 해 보리라’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남편 때문에 못한다, 아들딸 때문에 못한다, 집안 살림 때문에 못한다’ 이렇게 핑계를 하고. 또 ‘몸이 아파서 못한다’ 이러한 등등 갖은 핑계를 대 가지고 그럭저럭 세월을 보냅니다.
이래 가지고 그럭저럭 보내다가 한 해 두 해가 가고, 병이 나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혈압이 올라가고 그때 가서는 ‘아차!’ 해 봤자 이미 그때는 때가 늦은 것입니다.

이 공부는 어떠한 이유, 어떠한 핑계도 여기에는 닿지를 않습니다.
왜 그러냐? 어떠한 일이라 하더라도 죽음보다는 덜 급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죽음이라 하는 것은 누구도 막아줄 수 없고, 대신(代身)할 수 없고, 자기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대사를 앞에 두고 어떠한 이유를 대 가지고 뒤로 미루고 그럭저럭 지낸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하기가 그지없는 사람일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승속(僧俗)이 없습니다.

물론 출가한 스님네는 오직 이 문제만을 위해서 부모와 형제와 가정과 고향을 버렸고, 청춘을 버렸고, 인생을 뚤뚤 뭉쳐서 오직 이 한 일만을 위해서 다 바쳤습니다. 그래서 물론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열심히 정진(精進)들을 하고 계시지만 이 문제는 꼭 스님네만 해야 하고 신도는 그럭저럭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차라리 스님들은 부양가족(扶養家族)도 없고, 돈을 벌어야 할 까닭도 없고 해서 자나깨나 ‘이뭣고?’니까 드문드문 한 번씩 해도 공부가 어느 정도 되어 가겠지만, 마을에 계신, 세속에 계신 여러분들은 스님네보다도 몇십 배 정신을 챙기지 아니하면 여간해서 공부에 힘 얻기가 어려울 줄 생각합니다.
위에로는 부모를 모셔야 하고, 남편을 보좌해야 하고,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돌봐야 하고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합니다. 정말 내용을 알고 보면 잠깐 새도 편할 날이 없으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이뭣고?’를 챙기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생각 생각이 ‘이뭣고?’를 하면서 그러한 일들을 해야만 자기의 과거의 빚도 갚으면서 앞으로 자기의 영원한 영혼을 위해서 자기 삶을 영위한 사람이 되겠지만, 참선 공부를 등한히 하고 오직 세속적인 빚만을 갚기 위해서 전전긍긍한다면 완전히 금생의 인생살이라 하는 것은 노예에 지나지 못할 것입니다.
노예라 하는 것은 희망이 없는 인종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오직 무서운 고된 일밖에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는 불쌍한 신세가 바로 노예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노예라고 하면 혹 분개를 하실는지 모르지만, 정법을 믿고 열심히 정진을 하지 아니한다면 여러분은 정말 눈에 보이지 아니한 쇠고랑을 찬 노예와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빚을 갚지 아니하고, 자기의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하지 아니하고, 전부 거기를 도피를 해라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자기가 지은 빚은 자기가 갚아야 하고, 빚을 갚으면서도 자기의 장래를 위해서 희망을 가지고 자기의 속 살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사람다운 사람이고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빚을 갚지 않고 도피해 봤자 이자만 더욱 늘어날 뿐, 자기의 빚은 아무도 갚아주지도 않고 빚이 없어지지도 아니한 것입니다. 일단 아내로서, 자기의 자녀들의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처하게 되었다면 성의를 다해서 남편을 보조하고 부모를 봉양하고 아들딸들을 성심성의껏 잘 길르고 가르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한 생각 한 생각을 가다듬어서 화두를 들고 법문을 듣고 또 공부를 해 가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 고된 일들이 하나도 고된 줄을 모르고, 그러한 정법을 몰랐을 때는 자기의 신세가 분명 노예와 같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정말 고되고 지긋지긋한 그러한 일들이었지만, 정법을 알고 난 뒤부터서는 그러한 일들이 정말 성스러운 불사(佛事)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과 기쁨과 자신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불자(佛子)가 그 집안에 있음으로 해서 온 집안에 향기가 풍기고 온 집안사람들이 그 향기로 인해서 순화되어 갈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한 며느리가 진실한 불자(佛子)가 되어 가지고 자기의 소임을 완성하고 마음으로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할 때에 그렇게 무섭고 마음에 싫었던 시어머니도 어느새 며느리를 딸처럼 아끼고 귀여워하게 되고, 자기도 그 시부모가 정말 친부모 못지않게 더 다정하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그런 어머니로 되어질 것입니다.

이 가운데에는 연세가 많으신 노보살님도 계십니다마는 열심히 법문을 듣고 참선을 열심히 하시고, 가정에 돌아가셔도 참선에 여념이 없고 언제 며느리나 손자손녀들에게 잔소리할 겨를이 없어진다면, 평소에 별로 효심이 없다고 여겨졌던 며느리와 아들딸 손자손녀들도 그 달라진 할머니를 위해서 참으로 효심 있는 식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
한 할머니가 그런 마음으로 정진을 하시고 여생을 마치실 때 그 가족의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들은 저절로 할머니의 뒤를 이어서 정법을 믿는 훌륭한 불제자(佛弟子)가 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입으로 법을 설하기보다는 자기의 마음으로 정법을 설해야 하고 행동으로 정법을 설할 때, 정법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온누리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32분39초~46분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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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 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 · 등(燈) · 꽃 ·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 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 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칠통을 타파(打破) ; 타파칠통(打破漆桶). 무명(無明)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중생의 마음을 타파하여 큰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52분33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승속(僧俗) ; 스님[僧]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 · 탱화 · 불구(佛具) · 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요원(燎原 화톳불·태울·들불 요(료)/언덕·들 원) ; 불타고 있는 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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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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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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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미루지 마라(바로 지금) (No.445)—(게송)似水如雲一夢身  不知此外更何親  箇中不許容他物  分付黃梅路上人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견성성불은 ‘일념단속’하는 속에 있는 것.

 

*미루지 마라 ; '지금은 내가 ~~때문에 정진 못한다. ~~이 해결되면 정진하리라' 밤낮 핑계를 대고 뒤로 미루지 말고, 있는 그 자리, 그 경계, 그 상황,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정진하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6분 21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리요

나무~아미타불~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라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이여. 물과 같고 구름과 같은 이 꿈속의 몸뚱이여.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라. 이 밖에 다시 무엇을 친근(親近)히 할 것인가 아지 못하겠더라.

 

이 몸뚱이는 꿈속에 몸뚱이거든. 실다운 것이 아니여. 잠시 꿈속에서 내가 임금이 되기도 하고, 꿈속에 내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꿈 깨면 임금도 간 곳이 없고 부자도 간 곳이 없듯이.

현실적으로 우리 몸뚱이 받아 가지고 있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하는 이 몸뚱이는 절대로 실다운 것이 아니요 꿈속에 몸뚱이인데, 뭣과 같으냐 하면은 물과 같애.

 

물이라 하는 것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곳에 따라서 모난 그릇에다 담으면은 물이 모난 모양으로 되고,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이 둥그렇게 담겨지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은 차츰차츰 채워가지고 다 차면 넘어가고, 때로는 폭포수가 되었다, 때로는 강물이 되었다,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가면은 짠물이 되었다가.

 

또 안개가 되어서 피어 올라가고 구름이 되었다가 찬 기운을 만나면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고, 우박이 되기도 하고, 더우면 녹아서 물이 되었다가, 때와 장소와 기온에 따라서 액체가 고체가 되고 고체가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 또 기체가 되었다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도 지은 업(業)에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또 지옥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되 남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여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잘생긴 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밥맛 떨어지게 태어나기도 하고.

아, 이러니 우리 이 몸뚱이라 하는 것이 업에 따라서 천만 가지의 모양으로 받아난다 그말이여.

 

또 구름과 같애. 구름과 같애 가지고 때로는 흰구름, 먹구름, 큰 구름 덩어리, 작은 구름 덩어리, 구름도 소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말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바람 따라서 동쪽으로 날아갔다 서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도 금방 소같이 생긴 것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변형되어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저 산에서 이 산으로, 산에서 들로 들에서 바다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권서자유(捲舒自由)여. 뭉쳤다 흩어졌다 달아났다 모였다 이 몸뚱이가 꼭 그와 같애.

 

빈부귀천, 흥망성쇠 속에서 가지각색으로 놀아나거든.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인데 그렇게 살아가. 때로는 건강하다가 때로는 병들었다가 생로병사 흥망성쇠.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무정(無情)한 물과 같이, 무심(無心)한 구름과 같이 인연 따라서, 때 따라서, 곳 따라서 그렇게 돌아치는 이 몸뚱이 말고 다시 무엇을 더 가까이 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그놈은 누가 그놈을 구속할 수도 없고, 이 몸뚱이는 구속을 해서 두드려 팰 수도 있고 감옥에다 가둘 수도 있고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놈은 죽일 수도 없고, 묶어 맬 수도 없고, 가둘 수도 없고, 아무도 어찌 할 수가 없어. ‘그놈’을 누가 어떻게 가두며 ‘그놈’을 어떻게 죽이며 ‘그놈’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말이여.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여, 이 낱 가운데에 다른 물건을 여기서 용납할 수가 없더라. 아무도 이것을 어찌해 볼 수가 없어.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여. 황매산(黃梅山)에서 오조(五祖) 스님이 육조(六祖) 스님한테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이 소식을 분부(分付)를 하셨더라 이거거든.

오조 스님이 육조 스님한테 분부한 것이 우리도 부처님으로부터 구원겁(久遠劫) 전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부터서 분부를 받은 것입니다. 그 분부를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갈 뿐이지 우리는 분명히 그 분부를 받았어.

 

우리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 있고 무량 중생을 제도해야 할 대사명(大使命)을 분부 받은 것입니다.

 

마치 국민학교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분명히 숙제를 받어 가지고 왔지만 노는데 탐착해 가지고 숙제를 다 잊어버려. 그래 가지고 놀다가 해가 저물어 버리고 집에 와서는 배고프니까 밥 먹고, 곤(困)한 데에 밥을 먹어 놨으니 졸음이 오니까 초저녁부터 자 버렸다 그말이여. 그 이튿날 늦잠을 자 가지고 밥도 못 먹고 학교로 갔는데 숙제를 안 해가지고 갔거든.

 

우리도 오욕락(五欲樂)에 탐착해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중생(衆生)의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윤회(輪廻)를 하는 동안에 보고 듣는 것이 오욕락이거든.

재산 모으는 것, 남녀 간에 색(色)을 즐기는 것, 또 맛있는 거 먹는 거, 또 명예 권리를 하는 거, 다 그런 거 하면 재미가 있거든. 그러다가 편안하게 잠자고. 이러한 것에 길들여 놓으면 좀해 그놈을 벗어날 수가 없어.

 

그놈이 어떻게 무량겁(無量劫)을 길을 들여 놨던지 그것이 아주 본능(本能)으로 굳어 버렸어.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는 아주 본능으로 굳어 가지고, 인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버렸다.

 

불법(佛法)을 듣기 전에는 ‘그것이 뭐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지,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렇게 살고 있지만,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불법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는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정말 내가 나를 깨달라야겠다’ ‘정말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겠다’

참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늦다고 생각할 때가 이른 때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절대로 늦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 놓쳐버리면 무량겁을 흘러간 뒤에 언제 다시 또 우리가 불법을 만날지, 발심(發心)을 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설사 지금 말세(末世)가 되었다 해도 지금 우리가 불법을 만난 것은 너무도 다행(多幸)한 일이고 경행(慶幸)한 일이어서 조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60세가 넘고 70세가 넘었어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몸뚱이는 젊다고 오래 살고, 늙었다고 빨리 죽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죽을런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이리 생각을 하시고.

‘앞으로 인자 여름철이 되면은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말 열심히 하리라’ 그 생각도 틀린 거여.

 

지금 이 찰나(刹那)부터 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하거든. 1초도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여. 다른 것은 다 미뤄도 이것은 1초 뒤로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이거든』 지금.

지금 바로 탁! ‘이뭣고?’ 챙긴 것이 그것이 공부고, 그것이 가행정진(加行精進)이고 그것이 용맹정진(勇猛精進)이여. ‘앞으로 내가 3년 결사(結社)에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다 너저분한 생각이야.

 

지금이거든. 지금!

여기 앉은 이 자리가 ‘지금’이고, 나갈 때는 나갈 때가 ‘지금’이고, 차 탈 때는 차 탈 때가 ‘지금’이고, 밥 먹을 때는 밥 먹을 때가 ‘지금’이고, 똥 눌 때는 똥 눌 때가 ‘지금’이고 『언제나 그때그때가 지금이거든』 이렇게 공부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그게 참 수행인이거든.

 

물과 같이 구름과 같이 이렇게 무정하게 정처없이 흘러가고 흘러가는데, 그 무상(無常)한 속에서 ‘무상하지 않는 것’을 챙기는 거거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은 ‘일념단속(一念團束)’한 속에 있는 것이고,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 것도 일념단속 안 한 데에서 삼악도에 떨어진 것이거든.

 

일념(一念)이야말로, 일념이야말로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내일이면 입하(入夏)가 되어서, ‘아직 봄이 한창이다’ 생각을 했는데 벌써 봄은 지나가고 내일부터 여름이 시작이 됩니다. 계절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무상(無常)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한 매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온 세계도 시끄럽고, 나라 안에도 정치도 시끄럽고, 경제도 시끄럽고, 학원도 시끄럽고 정말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철저히 무상을 깨닫고, 나라를 걱정하고 또 우리의 자녀를 걱정하고 세계 인류를 참으로 걱정한다면 일념단속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진리의 눈을 뜬 사람이 나와야겠습니다.

 

진리의 눈을 뜨는 사람이 나와야 그것이 새 부처님의 탄생이요, 새 부처님이 탄생을 해야 업(業)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53분7초~69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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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수여운일몽신~' ; [금강경오가해]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야부 게송 참고.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권서(卷舒, 捲舒 돌돌 감아쌀 권/펼 서) ; ①말았다 폈다 함. ②나아감과 물러남. ③재덕(才德)의 숨김과 나타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오조(五祖) : (602 – 675)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주(周)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제 4조(四祖) 도신(道信)의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두 분이 있었으므로, 6조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의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의 북종선이 되어 두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은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을 거쳐 4조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이 생겼다. 그리고 5조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 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麈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麈埃)」라고 지었다。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분부하다(分付-- 나누다·나누어 주다 분/주다·맡기다·부탁하다 부) ; ①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시키거나 나누어[分] 주다[付].

②(...에/에게 ...을) (...에/에게 -고) (...에/에게 -도록)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다, 또는 당부(當付)하다.

③건네주다 · 넘겨주다. 전수(傳授) · 부촉(付囑) · 부여(付與) 등과 같은 말이다. 주로 '법을 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구원겁(久遠劫 오랠 구/멀 원/오랜 세월 겁)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명(使命) ; 맡겨진 임무.

*곤하다(困-- 곤하다·졸리다·지치다 곤) ; ①기운이 없이 나른하다. ②몹시 고단하여 잠든 상태가 깊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좀해 : 좀처럼(‘않다’, ‘없다’ 따위의 부정하는 말과 함께 쓰여, 웬만해서는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음 또는 쉽게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본능(本能) : 사람이나 동물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나 감정.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정말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겠다' ; 고향(故鄕).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참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참고] 『서장(書狀)』 '답탕승상(答湯丞相)' 참고.

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제1 제조법어절요(諸祖法語節要 : 여러 조사의 법어 중에서 오직 공부 지어 가는 데에 요긴한 대목만을 뽑아 요약함)」 '황룡사심신선사소참(黃龍死心新禪師小參)' 참고.

諸上座 人身難得 佛法難聞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상좌들이여!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듣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할 때 결사(結社)를 함.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그때그때 ; ①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때. ②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때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부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미루지 마라 (No.133)—지금 이만할 때 자기를 밝히라 |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다 부처님의 설법,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곳은 우주법계 전체.

 

*미루지 마라 ; '지금은 내가 ~~때문에 못한다. ~~이 되면 하리라' 밤낮 핑계를 대고 뒤로 미루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정진하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7분 50초)

[법문] 송담스님(No.133)—1981년 1월 첫째일요법회 (용133)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라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좋이 이때를 향해서 참나를 밝힐지니라.

두상광음(頭上光陰)이 전두비(轉頭飛)니라. 머리 위에 광음(光陰)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느니라.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히라. 이때, 이때란 어느 때냐?

 

지금 이만큼 살 때, 이만큼 건강할 때—바쁘다 핑계 대지 말고, 아직은 시간이 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아들딸 키워 놓고 장가 보내 놓고 이러한 등등 핑계를 대지 말고. '몸이 건강치 못하니까 병을 낫은 다음에 하리라' 그러한 핑계도 대지 말고, '좀 더 부자가 되어가지고 하리라' 그러한 핑계도 대지 말고,

지금 이만큼 살 때, 이만큼 이만한 처지에서 바쁘면 바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당장 내일 일을 모르고 밤새 일을 모르고 한 시간 뒷일을 모르는 백지 한 장 밖을 내다보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 무엇을 믿고 뒤로 미루겠는가 이 말씀이여.

 

머리 위에 광음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시간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장소는 앉아 있을 때는 바로 그 자리가, 서 있을 때는 그 자리가, 걸어갈 때는 그곳이, 차를 탈 때는 바로 그 차 안이, 변소에 앉았을 때는 변소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감옥이, 병원에 있는 사람은 병원이 바로 그때 그 자리가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주법계에 가득차 계신 것입니다. 우주법계는 바로 부처님 품안이요, 부처님 손바닥인 것입니다.

부처님 계신 곳은 어디나 법당이요, 우주법계가 부처님이 꽉 차 계신다면 우주법계 · 허공계 · 육도법계는 온전히 바로 거기가 법당이요, 불회상(佛會上)인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곳은 우주법계 전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체가 대화엄경이요, 대열반경이요, 법화경이요, 금강경이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인 것입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온갖 소리는 다 부처님에 설법(說法)입니다.

날아가는 새 소리, 비행기 소리, 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까마귀 소리, 개 짖는 소리 하나도 빼 놓지 않고 고대로 전부 부처님에 설법입니다. 나를 칭찬하는 소리, 나에게 억울하게 욕하는 소리, 부처님에 설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여러분은 최상승법을 믿는 최상승 수행인이요, 불제자인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에 참석한 여러분은 이제부터서는 원망할 남편도 없고, 원망할 아내도 없고, 미워할 이웃도 없고 웬수도 없습니다. 어제까지 미웠던 사람도 이제부터서는 미워할 거리가 되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는 누구도 부처님인 것입니다. 어제까지 웬수도 이제부터서는 나로 하여금 참나를 깨닫게 해 주는 도반(道伴)이요, 관세음보살이요, 문수보살이요, 부처님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의 묘한 진리가 위력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렇게 말씀을 드린 이 말씀을 믿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입니다.(66분47초~1시간14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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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 ; '좋이 이때를 향해서 참나를 밝힐지니라. 머리 위에 광음(光陰)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느니라'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61 (가로판 p169) 게송 참고.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당장 이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광음(光陰 빛 광/응달 음) ; 햇빛[光]과 그늘[陰],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법계(法界) : [범] dharmadhatu  dharma 곧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다 들어 말하고  dhatu는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란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것(萬有)을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법 성품(法性)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만단(萬端) ; 수없이 많은 갈래.

 

Posted by 닥공닥정

*미루지 마라 ; '지금은 내가 ~~때문에 못한다. ~~이 되면 하리라' 밤낮 핑계를 대고 뒤로 미루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정진하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3분 7초)

 

[법문]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용457)

 

게으른 사람이 항상 우선은 뒤로 미뤄.

 

‘지금은 내가 자식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딸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만 죽으면 아주 선방(禪房)에 가리라. 또 뭐 딸만 여위어 버리면 선방에 가리라. 자식 저놈만 대학에 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내가 공부하리라’

 

밤낮 뒤로 미루고 핑계를 대거든, ‘누구 때문에 내가 지금은 못한다’ 그런데 그것이 게으른 사람이 하는 지서리거든. 그것이 발심(發心)을 철저히 못한 것이고,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지 못한 거여. 누구 탓할 거 없어.

 

그렇다고 해서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는 해야지, 별수가 없다 그말이여.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주부 노릇도 해야 하는데, 아직 시집 장가도 안 간 처지라면 이것저것 다 내동댕이쳐 버리고 머리 깎고 출가하면 되겠지만 이미 다 저질렀으면 어쩔 수가 없어.

 

부처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들도 낳으셨고 얼마 안 가면은 왕이 될 그런 처지에서도 탁! 일도양단(一刀兩斷)해서 끊어버리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고행(苦行)을 하시고 성불(成佛)을 하시는 그런 모범도 보이시기는 했으나,

내가 만약에 다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란다 하면 당장 나한테 빗발치듯이 전화가 와 가지고 야단이 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권고는 안 합니다.

 

인연이 도래해서 본인이 발심해서 출가한 거야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이고, 발심 못한 사람이 내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하겠습니까? 그러니 괜히 내가 그런 말은 안 하지마는, 뒤로 미루지 말라 이거거든

 

있는 그 자리에서‘이뭣고?’

밥 지으면서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앉아서 '이뭣고?'

서서 '이뭣고?'

시장보러 가면서 '이뭣고?' 보아 가지고 오면서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근심걱정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러한 생사(生死)의 바다속에서 생각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면 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생사를 이겨 낼 수 있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것저것 다 끊고 조용한 데서 해 버릇하고 고요한 데에서 익힌 공부는 조금 시끄러우면 잘 안되는데,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익혀 놓은 공부는—좀 어렵지. 어렵기야 어렵지마는—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되고 정말 힘 있는 공부를 하게 될뿐만 아니라,

복(福)과 혜(慧)를 겸해서 닦게 되고 오후보림(悟後保任) 공부까지 그 속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그 상황 속에서 턱턱 챙겨 나가라 이거거든.

 

그렇게 공부를 해 놓으면 금생에 출가를 하던지 또는 출가를 안 하더라도 선방에 나오시면 문제가 없고 또 금생에는 영영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는 정말 출가해서 오직 이 한 일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그러헌 좋은 여건하에 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 따라서.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여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요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다.

세월이, 이 시간이 돌과 돌이 부딪칠 때 반짝하듯이 그렇게 빠르다 그 말이거든.

 

벌건 소년 시절의 그 붉은 얼굴이, 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났어. 지금 이 자리에 젊으신 분도 많이 계시지만 머리가 허연 분들도 적지 않다.

어느새 이렇게 흰머리가 나고 늙었는가 생각해보면, 스무 살 열다섯 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어떻게 지나간줄 모르게 이렇게 늙었다 그말이거든.

 

현재 머리가 희고 연세가 많은 분 뿐만 아니라, 아직은 머리가 희지 않고 검고 주름살도 없고 젊은 분도 금방 희여진다 그말이거든.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여. 사람은 태어나서 빈부귀천과 흥망성쇠 속에서 좀더 잘살아 볼라고 정치로 나간 사람, 경제계로 나간 사람, 학계로 나간 사람, 예술계로 나간 사람,

별별 직업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능력과 소질 따라서, 참 피나는 노력을 하고 좀 잘살아 볼려고 애쓰지만, 많이 살아봤자 백년 미만이요 지내놓고 보면 하룻밤 꿈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그리고 하루살이[蜉蝣] 신세에 지나지 못해. 돈 많다고 안 죽는 사람 못 봤고, 권리가 많다고 해서 안 죽은 사람 못 봤어. 다 지내놓고 보면은 무엇이냐? 그말이여.

꿈 한번 좋은 꿈을 꾸었거나 나쁜 꿈을 꾸었거나, 꿈 한번 꾸고 꿈 깨고 난 뒤끝에 지내지 못해.

 

그러나 그런 허망한 몸뚱이, 허망한 인생이지만 정법(正法)을 믿고 열심히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한 사람은, 전혀 인생을 헛산 사람이 아니여.

마지막 죽어갈 때에도, 내가 참 마음껏 정진을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있을지언정 인생을 헛살았다고 하는 그런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진을 열심히 해서 임종(臨終) 직전에 이르러서도—몸은 괴롭겠지.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죽는다니까. 숨도 가쁘고 가슴도 답답하고,

나는 그렇게 죽어보지 못해서 확실히 얼마만큼 괴로운가는 잘 모르겠는데, 다 전생에 수백만 번 겪었지마는 전생사(前生事)는 다 잊어버리거든.

 

다른 사람 죽은 것을 보면 정말 마지막 숨 몰아 쉴때는 옆에서 보기가 대단히 안 좋아. 푹푹하면서 가래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얼마나 답답하겠냐 그말이여. 일으키라고 했다 뉘이라고 했다 일으키라고 했다 뉘라고 했다...

 

복을 참 많이 지은 사람은 죽을 때 편안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죽어간단 말도 들었고, 저녁밥 잘 먹고도 자는 듯이 가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고, 특히 요료법(尿療法)을 한 사람은 죽을 때 아주 편안하게 죽는다니까 한번 먹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거기에다 요료법까지 해서, 죽을 때 편안하게 화두를 터억 들고서 눈을 감을수 있다면 참 다 ‘조사열반(祖師涅槃)을 했다’고 할 것이다 그거거든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똑딱똑딱똑딱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화두를 터억 들고서 지금 산승(山僧)의 말을 듣고 계실줄 믿습니다. 그 마음으로 법회가 끝나고도 항상 그 마음으로 일 초 일 초를 지내가고 댁으로 돌아가시는 걸음걸음을 그렇게 하시고 댁에 가셔서도 그렇게 화두를 단속(團束)하고 사신다면,

 

공부라는 게 사실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여.

몸뚱이를 들볶고, 잠을 안 자고, 먹을 것을 안 먹고 그렇게 막 들볶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만큼 먹고 잘 만큼 자되, 눈 떠있을 때 화두를 야무지게 단속을 해야 하거든. 그렇다면 완력으로 우격다짐으로 의단을 거각(擧却)하는 것이 아니여.

 

항상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자주자주 듣고 화두 하나만을 여법(如法)하게 단속할 줄 알면 누었거나 앉았거나 무슨 상관이 있냐 그말이여.

 

소지(掃地)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화두 하나만 여법하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뭐 시간이 간 것을 두려워할 것이 있으며, 늙어가는 것을 또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말이여. 두려워한다고 안 늙겠습니까?

 

이제 가을도 다 가고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보름 남짓 지나가면 또 겨울 결제, 겨울 안거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도 어느 선방에 가서 방부(房付)를 들이든지 항상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잊지 말고 여법하게 정진을 하시기를 당부를 합니다.(53분1초~66분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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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서리 ; '짓거리('짓'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사투리. *짓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修道)한 산.

*고행(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西山 休靜, 朴敬勛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86쪽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부지런히 힘씀. ②불법(佛法)을 깨닫기 위해 수행에 힘씀.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임종(臨終) ; 목숨이 끊어져 죽음에 이름. 또는 그때.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尿療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조사열반(祖師涅槃) ; 경허스님의 「참선곡(參禪曲)」에 다음 구절이 있다—‘참선 잘한 저 도인(道人)은 서서죽고 앉아죽고 앓도 않고 선세(蟬蛻-매미가 허물을 벗음)하며, 오래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自在)하며’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