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이 본업((No.306))—모든 경계에 바로 그 즉시 ‘이뭣고?’ 하는 것이,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 | 법(法)에 낙(樂), 법의 기쁨 | 참선은 우리의 본업(本業),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업 | 몸 바칠 것은 오직 이것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업(本業) ; ①주(主)가 되는 직업. ②주(主)로 하는 일.

 

 

(3분)

 


[법문] 송담스님(No.306)—1986년 8월 화두 불명 수계 법어(86.08.03) (용306)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 무엇이 눈을 통해서 들어올 때, 어떠한 사물이 귀를 통해서 들릴 때,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올 때에 바로 그 즉시 ‘이뭣고?’ 이렇게 한다면, 마구니가 우리의 국토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에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에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날의 자기가 아닌 딴 사람으로 성장 또 향상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도를 향해서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닦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세속에 다 직업이 있지만, 이 ‘이뭣고?’ 내가 나를 닦는, 나의 영혼을 갖다가 해탈케 하는 이 직업이 정말 우리의 본업(本業)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저 몸뚱이를 살찌게 하고 또 의식주를 위해서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까짓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위하는 직업에다 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정이나 개인이나 사회 국가에 있어서 정말 충실하고자 하면 이 ‘이뭣고?’ 사업을 잘해야 그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정말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루어져 봤자 별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정말 우리는 몸과 목숨을 다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 바칠 것은 오직 이것뿐인 것입니다.(47분41초~50분4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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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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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이 본업(本業)2021. 10. 18. 06:41

참선이 본업(No.480)—우리의 본업(本業)인 생사,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참선이다 | 大事未明 如喪考妣 大事已明 亦如喪考妣.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업(本業) ; ①주(主)가 되는 직업. ②주(主)로 하는 일.

 

 

(11분 54초)

 


[법문] 송담스님(No.480)—1992년 9월 첫째일요법회(92.09.06) (용480)

기래긱반냉첨의(飢來喫飯冷添衣)는  삼척지동야공지(三尺之童也共知)로다
나무~아미타불~
일개화두명역력(一箇話頭明歷歷)한데  여하개안자우치(如何開眼恣愚癡)리요
나무~아미타불~

기래긱반냉첨의(飢來喫飯冷添衣)  삼척지동야공지(三尺之童也共知)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추우면 옷을 껴입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함께 아는 일이다 그말이여.

일개화두명역력(一箇話頭明歷歷). 한 개의 화두가 또록또록 하고 역력(歷歷)해서 의단(疑團)이 탁!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 나가면,
여하개안자우치(如何開眼恣愚癡)리요. 어떻게 눈을 뜨고서 그럭저럭 어리석은 짓을 하고 살 것인가. 벌써 화두를 들고 성성적적(惺惺寂寂)히 화두를 잡드리 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벌써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이요, 정법을 믿는 선학자(禪學者)가 어떻게 어리석은 짓을 해 나갈 수가 있겠느냐.

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딴 것이 아니라 불법을 경전 속에서 이치로 따져서 알려고 하는 것, 세속의 오욕락(五欲樂)—재산이라든지, 색이라든지, 명예 권리라든지, 모든 세속적인 안락이라든지, 그러한 것에 한 눈을 팔고, 그런 것이 인생의 행복의 길을 그런 데서 찾는다던지, 이런 것이 다 어리석은 것을 방자(放恣)히 하는 것이거든.
화두를 성성적적하게 거각(擧却)해 나갈 줄만 알면 저절로 어리석은 오욕락에 시간과 나의 정력을 거기에 헛되이 소모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이 생사대사(生死大事)는 시대—정법시대나, 상법시대나, 말법시대나 어느 때나 이 생사대사는 우리 자신이 나 자신의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야 하지만 유독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말세(末世)에 있어서는 세상이 무상(無常)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어. 이 몸뚱이가 살아 있다고 믿을 수가 없어.

날마다 교통사고로 죽고, 불의의 사고로 죽고, 옛날과 달라서 몸의 병도 온갖 이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고약한 병들이 일어났어.
어제 살았던 사람이 오늘 죽고, 오늘 살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황천객(黃泉客)이 되는 그러한 이 말세라, 이러한 말세일수록에 더욱 정진을, 이 정법을 믿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이 참선(參禪) 수행 밖에는 정말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세속의 장사를 하나, 농사를 짓거나, 무슨 회사나,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그 직업은 그 직업이 부업(副業)이고, 우리가 정말 몸과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해야 할 본업(本業)은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하면 세속의 사업은 잘되더라도 그 믿을 수가 없는 거고. 그것 재산이나 명예 권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칠만한 것이 못되아. 그것은 엄밀히 따져보면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업을 짓는 일에 지내지 못하고, 정말 우리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참선이고.

세속의 부귀영화는 잘해봤자 금생 일생에 누린 것 뿐이고, 그 누리다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이지만 이 참선법은 금생 일생에 생사업(生死業)을 안 지을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무량겁을 두고 영원히 생사윤회를 해탈하는 길이기 때문에 지금도 늦었지만 늦은 때가 바로 이른 때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일대사, 이 생사문제! 이 일대사는 깨닫기 전에도 부모 초상 만난 거와 같이』 부모 초상을 만난 사람이 모든 사업이고 무엇이고 다 중단해 버리고 오직 부모의 초상(初喪)을 당했으니 하늘과 땅이 딱 닿아 버려. 호천망극(昊天罔極)한 그 슬픔 속에 무슨 딴 생각이 있을까보냐 그말이여.

『대사(大事)를 미명(未明) 시에도 부모의 초상을 만난 거와 같이 그렇게 해 나가고, 대사(大事)를 이미 밝힌 뒤에도 여상고비(如喪考妣)다. 부모 초상 만난 것 같이 해라』
깨닫기 전에도 부모 초상 만난 거와 같이 정말 이 공부해 나가는데 전력투구를 하려니와 깨달은 뒤에는 왜 부모 초상 만난 것같이 해야 하느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말씀하시기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애기 막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애기 막 낳아 놓았다고 해서 물론 그것도 사람은 사람이지만 난 뒤에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가르키고 해서 한 이십 년간 정성을 들여놔야, 자기 앞을 가려나갈 만한 겨우 하나의 인간이 이루어진 것이지, 막 낳아 놨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거든.
그와 마찬가지로 견성(見性)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고 견성한 뒤에 오후보림(悟後保任)을 해서 무량겁의 습기(習氣)를 다 제(除)해서 정말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득이수난(得易守難)이다. 얻은 것은 쉽고 지키기는 어렵다’ 그랬습니다.
대혜 스님도 영리한 놈이 퍼떡 깨달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일대사를 다 요달한 줄 알고, 그 뒤에 정진을 오후보림을 열심히 아니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다시 본지풍광(本地風光)이 나타나서 미(迷)하게 된다고. 그래서 오후(悟後)에 정말 알뜰히 정진할 것을 경고하신 법문이 있으려니와.

이 가운데는 알뜰히 정진하고 여러 해 수행을 해서 상당한 견처(見處)가 있는 분도 적지 아니할 것입니다마는 고조사나 부처님처럼 그러한 경계, 그러한 데에 이르기 전에는 알았다는 생각, 얻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언제나 부모 초상 만난 것처럼, 부모 초상을 맞는 상자(喪者)와 같은 그러한 간곡한 간절한, 앞뒤가 끊어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알뜰히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14분59초~26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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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기래긱반냉첨의~’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 (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삼척동자(三尺童子) ; 키가 석[三] 자[尺]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童子]. 철없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 한 자[尺]는 약 30.3Cm에 해당한다.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한 상태.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자히(放恣- 거리낌이 없을 방/방자할·마음대로·제멋대로 자) ;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태도가 없이[放] 무례하고 건방지게[恣].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황천객(黃泉客) ; 저승[黃泉,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간 나그네[客]라는 뜻으로, 죽은 사람을 이르는 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초상(初喪) ; ①사람이 죽어서 장사(葬事)지낼 때까지의 일. ②사람이 죽은 일.
*호천망극(昊天罔極 하늘·큰모양 호/하늘 천/없을 망/다할 극) ; ①하늘이 넓고 크며 끝이 없음. ②부모의 은혜가 하늘과 같이 넓고 커서 다함이 없다는 말.
*대사(大事) ; 일대사(一大事).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92칙 ‘대사(大事)’
洞山 門僧 世間 是甚麼物最苦 僧云 地獄最苦 師云 不然 向此衣線下 不明大事 始是苦


동산(洞山)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스님이 말하였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 옷 밑에서 큰 일[大事]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진짜 괴로운 일이니라”

<염송설화(拈頌說話)>
동산(洞山) 노인이 노파심이 간절해서 입이 쓰도록 간곡히 일러 준 말씀이니 모름지기 이 대사(大事)를 밝혀야 동산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대사(大事)를 미명(未明) 시에도 부모의 초상을 만난 거와 같이 그렇게 해 나가고, 대사(大事)를 이미 밝힌 뒤에도 여상고비(如喪考妣)다. 부모 초상 만난 것 같이 해라’ ; 『종감법림(宗鑑法林)』 (권23) ‘睦州示衆 大事未明 如喪考妣 大事已明 亦如喪考妣’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제3권 '송고(頌古)'에 ‘大事未明如喪考妣 大事已明亦如喪考妣’에 대한 중봉화상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萬里山河平似掌 一條官路直如絃 行人若問窮通事 鐵壁銀山在面前’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55칙 ‘대사(大事)’
목주(睦州)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妣 大事已辦 如喪考妣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未辦 如喪考妣]”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큰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已辦 如喪考妣]”는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에는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핀 뒤엔 또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고 하였다.
“고비(考妣)”라 함은, 아버지가 죽으면 고(考)라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비(妣)라 한다. 어떤 이는 선고(先考) · 선비(先妣)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상(喪) 자는 평음(平音:平聲)으로 읽어야 하니 '장사 지낸다[行喪]'는 뜻이다. 칙음(則音:上聲)으로 읽으면 '잃는다'는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喪失] 하겠는가?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1206칙 ‘대사(大事)’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峰山) 전초(傳楚)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大事已成]...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큰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라”고 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不得春風]....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보조국사(普照國師)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말씀하시기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애기 막 낳아 놓은 거와 같다』’ ;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 ~ 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眞)부처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본지풍광(本地風光) :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거나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이라거나, 천진 면목(天眞面目) • 법성(法性) • 실상(實相) • 열반(涅槃) • 보리(菩提)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같은 뜻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견처(見處) ; ①(틀린) 견해가 생긴 곳이라는 뜻. 집견(執見, 자신의 마음속에서 고집하는 견해. 여러 종류의 망견妄見)이 일어나는 장소. 유루법(有漏法)의 다른 이름. ②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견(見)은 견해, 세계관이라는 뜻. 특수한 세계관의 입장.
*상자(喪者 상복을 입을·잃을 상/놈 자) ; 초상(初喪, 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낼 때까지의 일) 치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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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이 본업(No.220)—생사호흡지간 | 나의 생사 문제 해결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불보살·스승·부모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지금 이만할 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이 몸뚱이를 마왕의 소굴을 만드느냐, 대법왕의 궁전을 만드느냐'는 오직 한 생각 다스리는 데에 달려 있다. 참선은 이 몸을 법왕궁을 만드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업(本業) ; ①주(主)가 되는 직업. ②주(主)로 하는 일.

 

(11분 28초)

 

[법문] 송담스님(No.220)—1983년(계해년) 동안거결제 법회(83.11.19) (용220)

 

오늘은 계해년 삼동안거(三冬安居) 결제날이고, 오늘 10월 15일부터 내년 갑자년 정월 15일까지 백일기도 입재날입니다.

해마다 결제(結制)를 하고 또 해제(解制)를 하고 또 결제를 하고 해제를 연례 행사로 이렇게 거행을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그날이 돌아오면 결제를 하고 해제를 하고 그래서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준례가 되어서 의례(依例)히 그날은 하는 것이다. 이리 생각하고 별로 별스럽게 생각을 아니하는 그냥 담담한 마음으로 결제를 맞이하고 그럭저럭 하루 하루를 지내다가 또 석 달이 언제 지나간 줄 모르는 사이에 또 해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은 나이는 한 살 두 살 5년 10년이 어언간(於焉間)에 지나 버리고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잡히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엊그제까지 여기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를 하던 그런 신심 있는 보살님이 벌써 이번 겨울철에 방부는 들여 놓고 벌써 저승으로 떠나 버리는 그런 신도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해마다 갖는 행사라고 해서 아무 마음에 결심이 없이 그렇게 맞이해서는 아니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어서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그것이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진리를 터득한 눈으로 보면 생사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우리 범부(凡夫)에게는 분명히 생노병사가 있어서 정말 우리의 목숨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초(分秒)를 다투어서 일분일초를 아껴서 정신을 가다듬고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부셔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국가 민족을 위해서 또는 사회나 어떤 회사를 위해서 또는 자기 가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뜻있는 일들이 많지만, 내가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이 일대사(一大事) 보다는 더 절실(切實)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일은 내가 아니하면 또 다른 사람이 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못 하면은 또 다음에 할 기회도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사 문제는 이 몸 받았을 때 내가 해결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 대신 이것을 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불보살(佛菩薩)이 자비가 많으시다 하더라도 불보살도 내 대신 해 주시질 못 하고,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제자를 위해서 대신 해 주지 못 하고,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 하시더라도 자식을 위해서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금생에 이만큼 몸을 받아서 이만큼 건강하고 여건이 이만큼 갖추어졌을 때 결정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를 모여 놓고, "죽음에 대해서 각기 자기의 소견(所見)을 말해 봐라"

 

"죽음은 하루 동안에도 올 수가 있습니다"

"너는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또 그다음 제자가 대답하기를, "죽음은 밥 한 끼 먹을 사이에도 올 수가 있습니다"

"너도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또 한 제자가 나와서, "죽음은 숨 한 번 쉴 사이에도 올 수가 있습니다"

"음, 너는 공부를 하겠다"

 

죽음이 한 끼 밥 먹은 사이도 오히려 길고, 더군다나 하루 24시간을 잡은 것은 참으로 너무 여유를 두고 한 말이어서 정말 우리의 죽음은 숨 한 번, 똑딱 1초 동안에 생(生)과 사(死)가 뒤바뀌는 것입니다.

 

천하에 허망한 목숨을 파리 목숨과 같다고 하지만, 파리란 놈은 파리채로 탁! 한 번 치면 금방 날아다니던 것이 꼼짝도 못하고 탁! 죽어 버리는데,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를 못하고 사람도 금방 1분 전에, 1초 전에 이렇게 말을 하고 웃고 성내고 하던 사람이 1초 후에 금방 송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번 죽어서 송장이 되어 버리면 이 몸뚱이는 10분 못 가서 벌써 내장이 버글버글 썩기 시작을 합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물질로 모여서 배합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몸뚱이를 임시 이렇게 이뤄졌으나,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한 ‘한 물건’은 이것이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가 없어서 모양이 없어.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고 일정한 장소가 없어서 아무리 이 몸뚱이를 의사가 해부를 해 가지고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다 갈르고 해부를 해서 찾는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한 ‘이놈’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찾을 수가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그러한 놈인데,

참 그놈 한 생각을 놓쳐 버리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가 벌써 들어와 가지고 이 몸뚱이 주인 노릇을 하고, 한 생각 돌이켜서 딱! 정념(正念)을 가지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자취없이 물러가 버린 것입니다.

 

정법(正法)을 믿고 정법에 의해서 항시 이놈을 잘 다스리고 관리를 하면 이 몸뚱이가 바로 정법의 법왕(法王)이 거처하는 궁전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놓쳐 버리면은 이 몸뚱이 고대로 있는 채 마왕(魔王)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마왕의 소굴(巢窟)을 만드느냐, 대법왕의 궁전을 만드느냐’하는 것은 오직 한 생각 다스리는 데에 달려 있어.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이 바로 이 몸뚱이를 법왕궁(法王宮)을 만드는 것이고, 극락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모든 부처님에 적멸궁(寂滅宮)을 장엄(莊嚴)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9분44초~21분1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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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어언간(於焉間) ;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진리를 터득한 눈으로 보면 생사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우리 범부(凡夫)에게는 분명히 생노병사가 있어서 정말 우리의 목숨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3.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주해)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 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한 생각 돌이켜서 딱! 정념(正念)을 가지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자취없이 물러가 버린 것입니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叅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법왕(法王) : [범] dharmarā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마왕(魔王) ; 마귀(魔鬼 요사스럽고 못된 잡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의 우두머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적멸궁(寂滅宮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집·대궐·절·마음 궁) ; 적멸의 궁전은 적멸을 형상화한 말로서, 부처님의 깨달은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欲)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이 본업(本業)2019. 12. 15. 16:01

참선이 본업(No.475)—참선해서 ‘참나’를 깨달아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일이 나의 진짜 사업, 내 본업(本業), 영원한 내 재산. 여기에 몸과 목숨을 다 바쳐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업(本業) ; ①주(主)가 되는 직업. ②주(主)로 하는 일.

 

(12분 48초)

 

[법문] 송담스님(No.475)—92년 6월 첫째 일요법회(92.06.07) (용475)

 

우리의 교주(敎主)이신 삼계 대도사(三界大導師)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이셨고, 모든 선지식들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였었지만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정진을 함으로써 결국은 그런 확철대오해서 대도사가 되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과정과 그러한 결과를 믿고 우리도 그렇게 해 나가는 것 이외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할 것이 없어. 다행히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 법을 믿게 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경행(慶幸)한 일이고 행복한 일이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 명예 ・ 권리 ・ 재산 ・ 자손 ・ 애정 다 믿지 못할 것들이여. 일생을 바쳐서 그런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다 꿈속에서 얻었다가 놓치는 것들이여.

명예도 그렇고, 권리도 그렇고, 재산도 그렇고 피땀 흘려서 일생을 노력을 해 봤자 결국은 허망하게 빼앗기고 허망하게 내 몸으로부터 다 떠나고야만 말 것이고, 죽을 때까지 꽉 거머쥐고 있어 봤자 황천(黃泉)으로 갈 때에는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한 채 빈 몸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내 재산은 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생사의 윤회(輪廻)에서 벗어나는 일 밖에는 정말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그밖에는 없는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다가만이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할 곳이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여. 다른 것은 살아가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 오직 꼭! 해야만 하고 모든 것을 여기에다 믿고 바칠 수 있는 것, 그 사업은 ‘참나’를 깨닫는 자기 사업이다 그말이여.

 

여기에는 금생에 뿐만이 아니라 내생(來生), 저 내생 무량겁을 향해서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위대한 사업이다.

 

세속에 많은 크고 작은 기업가들, 사업가들 있지만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기도 어렵고, 설사 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2년, 5년, 10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사업이여. 마음먹은 대로 되면 좋고, 안되면은 잠을 못 자고 속이 타고.

그러나 그런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분 따라서 사업할 사람은 하고, 무엇인가 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오히려 더 우선해서 자기 진짜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런 사업을 하면 되면 되는 대로 좋고, 안 되더라도 또 뚫고 나갈 길이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라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여세인쟁시비(不與世人爭是非)하고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나무~아미타불~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고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어다.

자기가 명예와 권리가 좀 있다, 재산이 있다, 학식이 있다, 자기에게는 이러이러한 무슨 힘이 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것을 코에다 걸고 동서남북에다 그것을 팔아.

 

그것으로 그래 가지고 뽐내.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으로 뽐내고, 권리가 있는 사람은 권리로 뽐내고, 학식이 있는 사람은 학식으로 뽐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뽐내고, 수단이 있는 사람은 수단으로 뽐내고, 그래 가지고 자기 과시를 하고 남에게 으시대고,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고. 그래봤자 그것이 몇 조금 가는 것이냐 그거거든.

 

그러지를 말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기 마음, 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로 발길을 옮겨라 그말이여.

 

정법(正法)을 믿고, 정법을 실천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 나가면 설사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 권리를 남용(濫用)을 하는 법이 없고, 재산이 있다고 해서 그 재산으로 남을 짓밟을 리가 없어.

권리가 있더라도 그 권리를 뜻있게, 재산이 있어도 그 재산을 뜻있게 잘 쓸지언정 어찌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해서 자기를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일을 할까 보냐.

 

불여세인(不與世人)으로 쟁시비(爭是非)하라. 세상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시비(是非)를 다투지 말아라.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길이길이 일 없이, 그런 시비로 싸우는 일이 없이 솔바람 소리를 들어라.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물론 여름 석 달, 겨울 석 달을 선원에 들어가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니까 대번에 그러한 솔바람 소리를 듣는 그 뜻을 잘 아시겠지만, 가정 형편이나 모든 사정에 따라서 방부를 들이지 못하고 세속에서, 세속의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한 가운데에도 항상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면 도회지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그 복잡한 소리가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것이 시비(是非)가 끊어진 솔바람 소리로 들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참선을 안 한 사람은 모든 귀로 들리는 소리가 다 시비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가 다 시비요. 서로 물고 뜯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거든.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시비 속에서 항상 화두로써 대처해 나가기 때문에 시비가 시비가 아니여. 이렇게 되도록 끝없는 발심(發心)과 끝없는 분심(憤心), 끝없는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언제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함으로써만이 이 문제는 해결이 되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여.

금생에 안 해 놓으면 내가 할 일이 그만큼 또 늦어지고, 금생 일생에 안 하면은 일생이 늦어진 것이 아니라 금생에 안 해 놓으면 몇억 겁(劫)이 늦어질 수가 있어.

 

왜 그러냐? 사람 받아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고, 사람 몸을 받았다고 해서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불법을 만났다고 해서 활구참선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여.

금생에 만약에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지금 안 해 놓으면 내생에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나서 활구참선 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가 없어. 지금을 놓치면은 영원히 미끄러지는 것이거든.(28분57초~41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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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敎主) ; 석가세존(釋迦世尊).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높여 이르는 말.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게송) ‘막장사기매서동~’ ; 『태고집(太古集)』 (雪栖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43 ‘자찬, 장해원사의 청으로(自讚 張海院使請)’ 참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남용(濫用 퍼지다·넘치다·함부로 남/쓸 용) ; ①사물을 정해진 규정이나 기준을 넘어서 함부로 사용함. ②권리나 권한을 본디의 목적이나 범위에서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 받아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고'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