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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04 무영수(無影樹) (No.457)—(게송)一株無影樹~ |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꽃을 피워라 | 회광반조(廻光返照) | 묘한 관(觀).
  2. 2018.05.20 무념지(無念智) (No.356)—오욕락이 무상함을 깊이 이해해야 | 아상, 인상의 그 능소심이 끊어져야 무념지가 나타난다 | (게송)겁화소해저~ | 인생은 한바탕 꿈, 빨리 보리심을 발해야.
  3. 2018.03.18 무상(無常) (세등선원No.59)—(게송)江湖春盡落花風~ / 애착과 분별을 다 쉬어 버리고 이만큼 건강할 때에 어쨌든지 정진을 해서 이 몸뚱이로 견성성불(見性成佛) 해서 모든 은혜를 갚자.
  4. 2018.03.06 마구니[魔軍] (No.240)—답답하고 지루할 때가 한 고비 올라서려는 중요한 고비 | 경계에 속지 마라.
  5. 2017.12.21 명성(明星) (No.319)—납월팔일. 용맹정진 | (게송)一見明星夢便廻 千年桃核長靑梅 雖然不是調羹味 曾與將軍止渴來.
  6. 2017.12.20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세등선원No.34)—때도 없이, 특정한 장소도 없이 다못 일여하게 정진해야 하지만 기본자세 좌선으로 정진하는 것이 가장 힘을 얻기 쉽다.
  7. 2017.06.11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No.627)—스님의 인사 “잘 수용하겠습니다” | 시주, 보시를 하더라도 무주상으로 해야 | 스님과 신도 서로가 다 도반이고, 서로가 다 부처님 제자고 부처님 아들딸.
  8. 2017.02.21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No.539)
  9. 2016.10.28 무상(無常) (No.630)—한 호흡지간에 생사가 있다 | 검소하게 살고, 겸양한 마음으로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발심 정진하라.
  10. 2016.08.25 무상(無常) (No.782)—(게송)貪着夢中一粒米~ | ‘이뭣고?’를 열심히 하셔야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있다 | 사람 몸 받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ㅁ/무영수2018. 9. 4. 08:21

*무영수(無影樹 없을 무/그림자 영/나무 수) ; 그림자 없는 나무.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공적(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19분 35초)

 

[법문]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용457)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홍화난만개(紅花爛漫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다.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불 속에다가 옮겨 심어서 재배를 했더라.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삼춘(三春)—봄, 삼춘의 비를 기다리지 안 해도 홍화(紅花)가 난만개(爛漫開)다. 붉은 꽃이 난만히 피었더라.

 

나무는 다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여. 큰 나무나 작은 나무나 그림자가 다 있는 것인데, 이 한 그루의 나무는 그림자가 없는 나무여.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땅에다가 심는 것이 아니라 불구덩이 속에다가 심었더라.

 

그림자 있는 나무를 땅에다 심으면 반드시 비가 내려야 그 수분을 흡수해 가지고 다 자라게 되고 꽃도 피고 그럴텐데, 이 그림자 없는 나무는 땅에다 심지 않고 불구덩이에다 심었어.

그러기 때문에 봄비를 기다리지 아니해도, 봄비가 오지 안 해도 그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그 붉은 꽃이 그저 곱게 곱게도 피었더라 그거거든.

 

이 그림자 없는 나무, 이것은 그 나무 모양이 푸른 것도 아니요, 노란 것도 아니요, 빨간 것도 아니여. 일체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그 나무를 또 불구덩이 속에다 심느냐 그거거든.

 

볼라야 볼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고, 아무리 알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놈을 나무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시(詩)다 그거거든.

 

그 나무를 왜 하필 불구덩이에다 심느냐 하면, 우리 중생의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몸뚱이요, 그 몸뚱이 속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이 항상 훨훨 타고 있거든.

그 불구덩이 속에, 탐진치 삼독에 훨훨 타오르고 있는 그 불구덩이 속에다가 이 그림자 없는 나무를 한 그루를 심었더라.

 

이 우리의 몸뚱이는 항상 이 몸뚱이 자체는 똥과 피와 오줌 고름 모다 그런 것이 속에 가득차 있는데, 그것을 엷은 가죽으로 싸아 가죽 주머니 속에다 그것을 담어놨다 그말이여.

그래서 나오느니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꾸역꾸역 기어나와. 매일 같이 아침 저녁으로 씻고 닦고 분을 바르고 향수를 발라봤자 아홉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더러운 것이 기어나오거든.

 

그리고 그 더러운 똥주머니속에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그 마음의 불, 그 탐진치 삼독의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거든. 훨훨~훨훨훨 타올라.

혹 부처님 경전을 읽거나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에는 잠시 그것이 꺼진 듯 했다가 금방 돌아서면 도로 타오르거든.

 

어떻게 하면 이 똥주머니를 좋게 가꾸며, 영양을 섭취하고 건강관리를 하고 그리고 또 예쁘게 옷을 입히고 단장을 할까?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데,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이 탐진치 삼독의 불 그놈을 잡드리하는 데는—물론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참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여기에 오시고 정진(精進)을 할라고 애쓰신 분들이지만 세계 50억 60억 인구가 거개가 다 별로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가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봤자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금방 무너져 버린거여. 십 분도 못 가서 내장부터서 썩어 들어가는 것이여.

그렇게 저를 위해서 참 몇십 년간을 공력을 들여서 봉양(奉養)을 했건만 한숨에 배신을 해 버려.

 

그놈 받들다가 참, 속담에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그놈 하나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단속하다가 결국은 가는 것은 잔뜩 업(業)을 짓고 결국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그림자 없는 나무가 불구덩이 속에 심어져 있는데, 그냥 그대로 놔 둬도, 삼춘(三春)의 비를 맞지 않아도 붉은 꽃이 난만(爛漫)하게 필 수가 있을까?

그 타오르는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잘 가꾸어서 거기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그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할라면 정말 나의 모든 것, 이 몸뚱이와 우리의 모든 정신을 거기에다 바쳐서 그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할려고 노력을 해야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봄비는 필요가 없어. 봄비가 온다고 해서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가 꽃이 필 리는 없거든.

그래서 봄비는 기다릴 것은 없으나, 정말 발심을 해서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모든 그런 오욕(五慾)이 정말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는 철저한 발심(發心),

그리고 ‘이 문제는 오직 내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결심,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신념.

 

그러한 바탕 위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간택 받아 가지고 이 화두에 대한 의심,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임자년 녹음법문을 통해서 여러분은 아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염념상속(念念相續)하고, 오직 인생으로 태어나서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만 있다면, 앉아서도 '이뭣고?'서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 누면서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가만히 있어도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듣고, 몸뚱이를 통해서 모든 것을 감각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생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성을 내고 때로는 슬퍼하고 기뻐하고, 우리는 아무 그런 생각없이 완전 무념(無念)의 경지에는 단 1분 동안도 있어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생각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육근(六根)을 통해서 무엇인가 알음알이가 움직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그 곳에서 화두를 드는 것 뿐이여.

망상(妄想)이 일어난다고 조금도 걱정할 것도 없어. 그 망상 일어나는 그 찰나에 떠억 고대로 놔둔 채, 일어나는 망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그대로 놔둔 채, 터억 ‘이뭣고?’ 화두만 거각(擧却)하면 되는 것이여.

 

학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똑똑하고 안 똑똑한 것도 상관 없고, 남자니 여자도 따질 것도 없고, 출가 재가도 따질 것도 없어.

 

앉았을 때는 앉아서 ‘이뭣고?’

섰을 때는 서서 ‘이뭣고?’

슬퍼하는 생각 일어날 때는 슬픈 그 생각에 오래 잠겨 있지 말고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하는 생각에 왜 오래 거기에 머물러 있느냐 그말이여. 속상하는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터억 숨을 들어마셔. 내쉬면서 ‘이뭣고?’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하고도 쉬운 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그 괴로움을 이기고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렇게 해서 자꾸 거각하고 또 거각하고.

 

‘화두가 잘 안 들린다, 망상 때문에 화두가 잘 안 들린다,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안된다’

'안된다'고 걱정할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안되면 다시 들면 그만이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것이 뭐 있느냐 그말이여, 일어난 줄 알면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공안,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이는 무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는 분은 정전백수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자꾸 거각해서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해 나가거든.

 

거기에 무슨 망상이 거기에 붙으며, 붙어봤자 그냥 놔둔 채 화두만 들면 망상은 저절로 자취가 없어져 버리는 건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거기에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그래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다.

 

이 도리(道理)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몸으로써 경험을 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에게 증명(證明)을 해 주신 것이여. 이 세상에 이것밖에는 믿을 것이 없고 이것밖에는 할 것이 없다 이거거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을 낳기를 원하고,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은 많은 재산을 갖기를 원하고, 명예나 권리가 없는 사람은 갖은 수단을 써서 그런 것을 구하지만 그 마음먹은 대로 다 구해지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설사 뜻대로 이루어졌다 해도 그건 영원성이 없고 잠시 그러다가 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가는 거여.

 

그런데 이 일대사 문제는 자꾸 하고 또 하고 하면 아무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마는 그 속에 신심(信心)이 나고 환희심이 나고, 더 분심(憤心)이 나고 더욱 해 갈수록 더 발심이 되는 거여.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났을까? 내가 만약에 이 법을 안 만났으면 내 신세가 어떻게 되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신심이 굳건해져 가고.

 

그렇다고 해서 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거든. 급한 생각을 낸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된 것이 아니여.

초심(初心), 초발심(初發心), 처음으로 이제 발심을 해 가지고 참선을 시작한 사람은 그 초발심의 그 강렬한 신심으로 우격다짐으로 막 몰아부칠라고 그러거든.

 

초발심자가 그만한 분심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열의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차츰차츰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다 보면 그런 만용적인 우격다짐 식의 그러한 신심이 차츰 순화가 되고,

그래서 이 몸뚱이와 생각을 알날신심(遏捺身心)—막 완력으로 몰아붙이고 몸뚱이를 들볶으고 생각을 너무 지나치게 막 몰아대고—하는 그런 것이 차츰차츰 순화가 되어서 정신을 올바르게 가다듬고 나가는 묘한 관(觀)을 스스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까지는 정말 참 열심히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럭저럭 하다말다 해 가지고서는 안되는 것입니다마는.(처음~19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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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 ; 『소요당집 외(逍遙堂集 外) -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37쪽 소요 태능(逍遙太能)의 ‘일선화(一禪和)에게 답함’의 둘째 게송 참고. (一株無影木 移就火中栽 不假三春雨 紅花爛漫開)

*삼춘(三春) ; 봄의 석 달. 맹춘(孟春), 중춘(仲春), 계춘(季春)을 이른다.

*맹춘(孟春 맏·첫·처음 맹/봄 춘) ; ①초봄(이른 봄). ②음력 1월.

*중춘(仲春 버금·둘째·가운데 중/봄 춘) ; ①봄이 한창인 때라는 뜻. ②음력 2월.

*계춘(季春 끝·마지막·막내 계/봄 춘) ; ①늦봄(늦은 봄). ②음력 3월.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니(優婆尼)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정진(精進) ; 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불교] 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봉양(奉養) ; 받들어 모시고 섬기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난만하다(爛漫-- 빛날 란/넘쳐 흐를 만) ; ①(꽃이)한창 만발하여 성하다. ②(빛이나 광채가)어지러울 정도로 강하고 선명하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염념상속(念念相續) ; 생각 생각이 잊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 나가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 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 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 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우격다짐 ; 억지로 우겨 내몰거나 강요함.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몽산법어』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에 나오는 구절.

 

*묘한 관(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념지2018. 5. 20. 19:20

*무념지(無念智) ; 무념(無念)의 지혜.

 

*무념(無念) ; ①망념이 없는 것. 정념(正念)을 말한다. ②모든 법을 보면서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德異本) ‘제1 오법전의(悟法傳衣, 법을 깨닫고 가사를 전해 받다)’에서.

善知識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선지식들이여, 지혜로 비추어 보면 안팎이 밝게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을 아나니 만일 본심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며, 만일 해탈을 얻는다면 곧 그것이 반야삼매(般若三昧)며 또는 이것이 무념(無念)이니라.

 

何名無念 若見一切法 心不染着 是爲無念 用卽徧一切處 亦不著一切處 但淨本心 使六識 出六門 於六塵中 無染無雜 來去自由 通用無滯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어찌하여 무념이라 이름하는가? 만일 모든 법을 보더라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무념이니, 작용을 일으킨 즉 일체처에 두루 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六識)으로 하여금 여섯문(六門)을 나오더라도 육진(六塵) 가운데 물들고 뒤섞임이 없어서, 오고 감에 자유롭고 널리 쓰되 걸림이 없으므로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고 그 이름이 무념행이니라.

 

若百物 不思 當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善知識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地位

 

그러나 만일 백가지를 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아주 생각을 끊는 이것은 법에 얽매인 것이며 한쪽에 치우친 견해[邊見]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아, 무념(無念)의 법(法)을 깨달은 이는 만법에 걸림없이 통하며,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며,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느니라.

 

(10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용356)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다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부귀를 겸전(兼全)한 그런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부귀를 누리고 권세를 누린다고 한들 이것이 모두가 다 꿈속에서 있었던 일인 것입니다.

원효대사의 그 꿈이라고 하는 소설은 그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를 갖다가 소설화해서 영화로 꾸민 것이지마는, 그것이 하나의 전설이나 일화에 지내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 세상의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하고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이해를 한다면은 피아(彼我)의 상(相)이 없어져 버려.

‘내다, 내 것이다, 내가 잘났다’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거기서 떨어져 버리는 거고, 능소심(能所心)이 다 떨어져 버리는 거여.

 

능소(能所), 능(能)이라 하는 것을 주관이란 말이고, 소(所)라 한 말은 객관이란 말인데,

주관 · 객관, 내가 이렇게 보는 놈이 있고 나에 의해서 보여지는 상대 이것이 바로 주관과 객관이요, 이것이 능소(能所)인데, 능소심이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능소심이 끊어진 것은 바로 아상과 인상이 무너진 것이여.

아상, 인상의 그 능소심이 끊어져야 무념지(無念智)가 나타난다. 생각 없는 지혜, 무념의 지혜가 현전을 헌 것이고. 평등! 평등의 이치가 나타난다 그랬거든.

 

‘내가 잘났다’는 생각, ‘내가 권리가 높다’는 생각, 내가 참 부자라고 하는 생각, 그런 아상과 인상. ‘내가 불법을 더 많이 믿고 참선을 더 많이 했다’고 하는 생각,

무엇이든지 그러헌 아상과 인상이 있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도문(道門)의 첫 단계를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능소심이 끊어져버리고 아상과 인상이 무너져 버릴 때에 도(道)에 첫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바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되 분별심이 일어나지를 않은 거여. 비록 입을 벌려서 말을 하고 혀를 움직인다 하더라도 분별이 나지를 않아.

대중 법도에 따라서 밥을 먹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예불을 하고 십악참회를 하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소지(掃地)를 하고 운력(運力)을 한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할 뿐, 일체 분별이 나지를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갖다가 귀머거리와 같고 벙어리와 같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평상 일상생활을 그렇게 하면서도 완전무결한 벙어리가 되고, 완전무결한 귀머거리가 될 때에 깨끗하게 닦은 거울과 같아서 그 거울 앞에는 무엇이고, 빨간 것이 오면은 빨간 것이 나타나고, 파란 것이 오면은 파란 것이 나타나고.

빈 골짜구니에 소리를 지르면 “아!”하면 저 골짜구니도 “아!”하고 메아리를 치고, “어!”허면 “어!” 소리가 메아리쳐 오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래 가지고 치연(熾然)히 비추고 치연히 응하되 응한 바가 없어.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하고  풍고산상격(風鼓山相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이요  열반상여시(涅槃相如是)니라

나무~아미타불~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요. 겁화(劫火)가 일어나가지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심지어는 저 바다 밑바닥까지 다 태워버리고,

그리고 바람이 불어가지고 산과 산이 무너져서 서로 맞부딪쳐. 설악산과 오대산이 맞부딪치고 백두산과 한라산이 맞부딪쳐서 다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하더라도.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 진상의 적멸한 낙은—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해서 그래가지고 그 공안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버리면,

불이 일어나서 온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다 태워버리고 바다밑에까지 다 태워버리고 산과 산이 맞부딪쳐서 가루가 되어서 부서져 없어진다 하더라도 적멸락, 진상(眞常)한 그 적멸락(寂滅樂)은 그 열반(涅槃)의 상(相), 열반상은 바로 여여(如如)할 것이다 그말이여.

 

이 세계가 앞으로 팔백억 년 가면은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리라고 과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그 안에 부서져 버릴는지도 모르고 그 이상 더 가서 부서질란가 그것은 두고 봐야 알겠지마는 언젠가는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고 말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연수(年數)로 따지면은 몇억 년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썩 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은, 억 년이나 천 년이나 백 년이나 십 년이나 지내놓고 보면 마찬가지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10년을 살다가 죽으나 50년을 살다가 죽으나 백 세를 살다 죽으나, 죽는 마당은 다 똑같은 것이여.

죽은 마당에 이르러서 일생을 돌이켜보면 천자(天子)로 일생을 살았거나 평민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국왕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거지로 일생을 살았거나, 죽는 그 마당에서는 그 일생이 바로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꿈에 지내지 못한 그 일생을 그렇게 값어치 없이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 속에 끌려서 얽혀서 그렇게 몸부림치다 죽어갈 것은 없는 것입니다.

죽는 마당에 이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서 생사 없는 경계에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56분6초~66분3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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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p491~493.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항하(恒河,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은 일체법이 아(我)가 없음을 알아서 인(忍, 여실한 진리. 확실한 앎)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수승하리라.

 

육조(六祖)】 通達一切法 無能所心者 是名爲忍 此人 所得福德 勝前七寶之福也

일체법을 통달하여 능소심이 없는 이를 이름하여 인(忍)이 된다 하니 이 사람의 얻는 바 복덕은 앞의 칠보를 보시한 복보다 수승한 것이니라.

 

야부(冶父)】 耳聽如聾 口說如啞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하여도 벙어리와 같도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知法無我 則彼我相 泯 得成於忍 則能所情 忘 能所情 忘則無念智 現 彼我相 泯則平等理 現 到伊麼時 眼見耳聞 分別不生 開口動舌 分別不生 不生不生 何啻如聾若啞

 

법(法)이 아(我)가 없음을 알면 곧 피아상(彼我相, 너다 나다 하는 생각)이 없어짐이요, 인(忍)을 얻어 이루면, 곧 능소(能所, 주관과 객관)의 정(情, 생각)을 잊을지니 능소의 정이 없어지면 무념지(無念智, 무념의 지혜)가 나타나고 피아상(彼我相)이 없어지면 평등의 이치가 나타남이라.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요, 입을 열고 혀를 움직여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니,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까지도 나지 않으면 어찌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와 같을 뿐이리오.

 

直如明鏡照物 空谷應聲 熾然照應 而無照應 所以 道 常應諸根用 而不起用想 劫火燒海底 風鼓山相擊 眞常寂滅樂 涅槃相如是

 

이는 곧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춤과 같고 빈 골짜기가 소리에 응함과 같아서 치연히 비추고 응하되 비추고 응한다 함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말하되 「항상 모든 근[六根]에 응하여 쓰되 그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이라. 겁화(劫火)가 바다밑까지 태우고 바람이 몰아쳐 산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참답고 항상한 적멸의 즐거움’인 열반의 모습은 이와 같다」 (육조단경 ‘參請機緣’)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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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능소(能所) ; 어떠한 동작이나 행위, 인식이나 사건의 주체적인 측면을 능(能)이라 하고, 객관적인 측면을 소(所)라 한다. 능동(能動)과 피동(被動), 주체와 객체 또는 주인과 손(賓) 같은 말로도 표시된다.

대상을 반연하여 인식하는 주체가 능연(能緣) · 능식(能識)이라면, 반연되고 인식되는 객관은 소연(所緣) · 소식(所識)인 것이다. 또 보는 주체는 능견(能見)이고 보이는 것은 소견(所見)이다.

귀의(歸依)하는 주체인 중생이 능귀(能歸)라면 귀의의 대상인 삼보(三寶)는 소귀(所歸)이고, 교화하는 주체인 부처님이 능화(能化)라면 교화되는 대상인 중생은 소화(所化)이다. 어떠한 내용을 지시하는 언어, 곧 문장이나 어구가 능전(能詮)이라면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소전(所詮)이 된다.

 

이와 같은 대립(對立)이 있게 되면 상대가 끊어진[絶對境] 참 이치[眞理]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대립을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인식하는 대상과 인식하는 주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상태, 주객일치(主客一致)와 능소일여(能所一如)의 상태가 바로 무분별지(無分別智)이고, 귀의하는 중생과 귀의의 대상인 부처님이 둘이 아닌 것을 능소일체(能所一體)라 한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결(結)·박(縛)·전(纏)·취(取)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치(熾)는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함’의 뜻. 연(然)은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게송) ‘겁화소해저~’ ; 『육조단경(六祖壇經)』 ‘參請機緣(청법의 기연)’ 게송 참고.

*겁화(劫火) ; 세계가 파괴되는 시기(壞劫)에 들면 세계를 허물어트리는 3가지 큰 천재지변이 생기는데, 화재(火災) 풍재(風災) 수재(水災)가 그것이다. 이때에 화재가 욕계(欲界)를 불태우고 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까지 불태운다고 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공안(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 공안)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약칭.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진상(眞常) ; 진여상주(眞如常住)라는 뜻으로, 깨달음(열반)의 경지라는 뜻.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여여(如如) ; ①모든 법의 평등한 자성 또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 법이(法爾)와 같은 의미이다. 자성에서 같다[如]는 뜻이지만 온갖 차별된 법이 모두 그렇기 때문에 복수의 뜻으로 ‘여여’라 한다. 법계무차별의 바탕으로서 평등 부동(不動) 부전도(不顚倒) 등의 취지가 수반된다. ②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③진실한 경계.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상2018. 3. 18. 22:17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5분)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세등59)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하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하고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이요. 강호(江湖)에는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다 지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해는 저무는데 한가한 구름이 푸른 하늘로 지내가는구나.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이요. 그것을 인해서—강호에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다 져 버리고, 해 저무는 푸른 하늘에는 한가한 구름이 지내간 그러한 것을 의지해 가지고 인간 세상이 허망한 것을 알 수가 있겠더라.

 

봄이 돌아오면 꽃이 그렇게 화려하게 피었건만 봄이 다하니 시들어서 참 보기 흉하게 다 시들어 다 떨어져 버리고, 그 구름 모양을 보면 그 구름 모양이 별의별 모양이 다 있어.

사람같이 생긴 구름, 소같이 생긴 구름, 집같이 생긴 구름, 별별 모양으로 생긴 그 기기묘묘한 구름 모양이 해가 저물어 바람이 불어버리니까 그 모양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져 버리는 이 참, 그 꽃과 구름의 변화해서 없어진 것을 보고서 인간 세상이 명예와 권리, 부귀영화, 누가 잘 생기고 못 생기고, 이런 것들이 전부가 다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것을 깨달을 수가 있어.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여. 비긋이 한번 웃는 가운데 그 만사를 다 잊어버려.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다 그게 다 한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愛着)과 분별(分別)을 다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精進) 또 정진을 해서 이 몸뚱이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나라의 은혜를 갚고, 부모의 은혜를 갚고, 스승의 은혜를 갚고,

또 이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이 주지 스님의 은혜를 갚고, 또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다 마련해 준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자리에 내려가고자 합니다.(48분58초~53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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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강호춘진낙화풍~’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부휴선수) ‘일편한운과벽공(一片閑雲過碧空)’ 참고.

*강호(江湖) ; ①은자(隱者)나 시인(詩人), 묵객(墨客) 등이 현실을 도피하여 생활하는 시골이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세상(世上)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강과 호수를 아울러 이르는 말.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분별(分別)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오종대은명심불망(五種大恩銘心不忘) ; 다섯 가지 큰 은혜를 항상 명심(銘心)하여 잊지 않는다는 뜻. 명심불망오종대은(銘心不忘五種大恩).

①각안기소국왕지은(各安其所國王之恩) : 각기 그 머무는 곳을 편안하게 해 주는 나라의 은혜.

②생양구로부모지은(生養劬勞父母之恩) : 낳고 길러 수고해 주신 부모의 은혜.

③유통정법사장지은(流通正法師長之恩) : 정법을 전해 주신 스승의 은혜.

④사사공양단월지은(四事供養檀越之恩) : 네 가지 공양물(衣食住藥)을 베풀어 주는 신도의 은혜.

⑤탁마상성붕우지은(琢磨相成朋友之恩)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시켜 주는 도반의 은혜.

 

Posted by 닥공닥정
ㅁ/마구니(魔軍)2018. 3. 6. 18:54

*마구니(마군 魔軍)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〇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11분 11초)

 

[법문]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용240)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話頭)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하면 내가 무슨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된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그러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 두 달, 한 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하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울 그런 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 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러헌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러헌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마구니)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고, 집안을 잘 거시기하면 그러헌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고 하는 사실.

사기꾼이 어떠한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은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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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 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법도(法度 법 법/법도 도) ; 법칙(法則)과 제도(制度). 법규(法規)라고도 한다. 지켜야 할 규칙이나 의례를 가리키는 말이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Posted by 닥공닥정
ㅁ/명성(明星)2017. 12. 21. 19:02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 이르는 .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별이 돋을 , 정각(正覺) 이루었다고 한다.
 

(10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319)—86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07)(용319)
 
해마다 돌아오는 납월 8일(臘月八日)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이천오백삼십일 년이 되었습니다. 이천오백삼십일 해의 납월 8일이 지내가고  이렇게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납월팔일 새벽별을 보시고서 그렇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이천오백삼십 회 동안 해마다 뜨는  별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철대오를 했을까요?
 
오늘 새벽에도  별은 떴습니다. 하늘이 안개가 끼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별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납월 8일이 되면 초하루부터서 8 새벽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선방(禪房)에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이런 불교를 믿는 절에 선방에서는  용맹정진(勇猛精進) 또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특별히 용맹정진을 하는 그러한 거시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개인적으로  일주일간을 용맹정진 하는  마음으로,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모두 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한데  천년도핵장청매(千年桃核長靑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여, 한 번  새벽별을 보시고서 꿈을 문득 돌이켰다 그말이여. 오랜 잠 속의 꿈을, 별을   봄으로 해서 꿈을 ! 돌이켜서 깨달아 버렸어.
천년도핵(千年桃核)이 장청매(長靑梅)다.  년이나 묵은 복숭아씨에서 푸른 매화의 싹이 텃드라. 복숭아씨에서 복숭아 싹이 나지 않고, 복숭아씨는 분명히 복숭아씨인데 그 복숭아씨에서 매화의 싹이 텃드라 그말이여.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비록  매화를 가지고, 그 매화의 신맛을 가지고 국의 맛을 고르지는 못하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로구나. 일찍이 장군에게  목마른 것을 그치게 했더라.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군사들이 계속 격전을 거듭을 해가지고 땀을 많이 흘렸어. 그래서 목이 말라서, 그런데 모두 준비했던 물은  먹어버리고 미처  준비를 못하고 계속 싸우면서 나아가는데, 목이 말라가지고 군인들이 병사들이 발광을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때에 조조가  산너머 가면 거기에 매실(梅實)이 많이 열렸다.  산만 넘으면 실컷 매실을 먹을 수가 있다’ 그 매실 얘기를 하니까 병사들이 매실 말만 듣고도 침이 지르르르 하니 입안에 가득차가지고 갈증을 면한 고사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하는 ,  말을 듣고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납월 8 무렵만 되면  천하에 총림 선원에서 모두 우리도 부처님처럼 고행 정진하고, 용맹정진 다못 일주일간이라도 용맹정진을 하고 가행정진을 하자 그래가지고 하는데. 가행정진 용맹정진 중에 확철대오를  분도 간간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가행정진 했다고 해서  대중이  깨닫느냐 하면은 그렇지를 못해.
그래도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 또는 가행정진을 하면 그동안에 장군죽비(將軍竹篦)를 가지고 경책(警策)을 하고, 이렇게 경책을 맞으면서 7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다 대지 아니하고 그렇게 정진을 하는데, 그 꾸 졸면은 입승(立繩) 스님이 와가지고 장군죽비로 등짝을 내다 친 바람에 잠이 버쩍 버쩍 잠이 달아나고 그런데.
 
 장군죽비를  맞으려고 어떻게 눈을 갖다가처음에  3일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사흘, 나흘이 되면은 눈 껍데기가 천근이나 되게 눌리고, 아무리 정신을 들라고 해도 금방 일 초도 못된 사이에 꺼벅한다 말이여. 또 금방 정신을  차렸는데  꺼벅하고.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하다 보면 그때 하는 동안에는 순전히 잠을  자려고 싸울 따름이지만, 납월 8일을 지내고 나서 보면은 정말 정진하는 데에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실지로 일주일 동안은 그렇게 맑은 정신이   같지 않고 오직 잠과만 싸웠지만, 지내 놓은 뒤에 한결 정진하기에 힘이 생기고, 신심도 나고 그래서 납월 8일에는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해왔던 것입니다.
 
비록 매실을 가지고  맛은 고르지를 못해.  산너머에 있는 매실이 있다’한 그걸 가지고 실지로  매실을 마시고, 먹을 수는 없지마는 그 말만 듣고서도 입안에 침이 주르르르 나와 가지고 입안에 고여서 갈증을 면할 수가 있더라.
 
 게송(偈頌)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내가 설명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8분59초~19분2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15분 19초.

(2) 5분 13초.

 

[참고 ①] 송담스님(No.405)—89(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1)------------------
 
밤마다 별은 반짝거립니다. 구름이   날은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밤이면 언제나 별은 반짝거립니다. 삼천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밤에는 별이 빛납니다.
우리도 빛나는 번쩍거리는  별을 보고, 삼천년 동안에 아니 수억만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을 봅니다. 번쩍이는 별을 보지마는 별을 보았다고 해서  확철대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별빛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어.
 
해마다 제방(諸方)에서는 섣달 초하루부터 납월팔일 새벽까지  7일간을 용맹정진(勇猛精進)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납월 8일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뜻깊은 날을 우리가 그냥 범연(泛然)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방에서는 용맹정진을 . 7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완전히 앉은  그렇게 용맹정진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납월 8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우리는 납월 8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다  간단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한데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자나 되는  낚시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마자  물결이 일어나니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더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낚시를 물지를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가득한 배에는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 출현하셔서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49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어.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다.
부처님께서 확철대오하신  법을 가섭 존자에게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란 존자, 아란 존자는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28대를 달마 조사까지 전하고, 달마 조사가 중국으로 오셔서 6 스님까지, 6 스님 이후로 5 가풍이 벌어져서 전강 조실 스님까지 77대를 전해 내려왔습니다.
 
볼라야   없고, 알라야   없고, 설할라야 설할  없고, 들을라야 들을  없는  도리를 깨닫고  그것을 전하고 받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전해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됩니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다 그렇게  말을 따라서 그렇게 인식하고,  자기도 깨달으려고 생각을 하고.
 
이러한 말에 떨어져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갑판 위에서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칼을 잘못 놓쳐가지고 바닷물에 빠트렸습니다.
 
 사람이 바로  뱃전에서 칼을 잃어 버렸다 가지고, 나중에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뱃전을 쪼아 가지고 ()  놨습니다.
언제라도  뱃전  자리에서 떨구었으니까,  뱃전에다가 표를  놔야  뱃전 밑으로 내려가면은  밑바닥에 칼이 있을 것이다 이거거든.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느 나무 등걸 밑에서 토끼를  마리 보았는데,  토끼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나무 등걸에서 토끼를 발견했다가 놓쳤으니까, 항상  나무 등걸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끼가 달아났으니까 여기  있으면  토끼가 오려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칼을 잃어버리고 뱃전에다가 표를  사람이나, 토끼를 놓치고서 나무 등걸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셨으니까 행여나 나도 납월팔일  새벽에 하늘에   별을 보면  깨달을란가?’ 이리 생각하고 추운데 새벽에 나가가지고 동쪽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을 새벽부터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니라. 보는 놈이니라

깨달음이 별로부터 오겠습니까?
 
 먼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불이 났구나 뻘건 불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연기만 일어난 것만 보고도 ! 저기에 벌써 불이 났구나  것을  수가 있습니다.
  밖에  너머로 뿔만 지나간 것을 보아도 !   밖에 소가 지나갔구나  것을  수가 있습니다.  몸뚱이는 담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고  끄터리만 보여도  밖에  가는 것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영리한 사람은 ! 연기만 보고 불인  알고, 뿔만 보고도 소인  알아.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를 보고 불인 줄을 모르고, 그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저것이 무엇인가?  끄터리를 보고 벌써 소인  알아야  텐데, 저것이 뾰족한 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말인가? 개인가? 사람인가? 지게인가? 이러쿵저러쿵 따진다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8분46초~24분5초)
 

 

 

 
(2)------------------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비로자나 법신(法身) (),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짖는 소리,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설법(說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있는 때요, 곳이다 그말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다가, 무엇을 듣다가 깨달을는지 그것은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떠한 중대한 뉴스를 방송을 한다  , 시간을  모를 때에는 항상 다이얼을 맞춰서  놔두고 기다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언젠가 !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일이고, 우리가 해야  정진이여.
경전도  것이 아니고, 어록도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뿐이여.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똥을  때도 그렇고, 오줌을  때도 그러고, 앉아서도 그러고 서서도 그러고.
 
이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되는 법이 없어. 고조사(古祖師)들이 그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아주...
 
부처님께서는 무엇 무엇이  하면 내가 어쩌리라 함부로 그러한 막담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인(古人)네는 우리 후인(後人)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그러한 맹세를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36분35~4148)
 
 
[참고 ②] 『선문염송 · 염송설화』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1권 3칙 ‘오도(悟道)’
<염송설화(拈頌說話)>
大慧云  釋迦老子正覺山前  從定而起  因見明星忽然悟道  信知時節若至  其理自彰  但記悟道時節因緣而已  則世尊悟處  不在明星上  香嚴悟處  不在擊竹邊
 
대혜가 이르기를 “석가 노자께서 정각산 앞에서 선정에서 일어나 샛별을 보시는 순간 홀연히 도를 깨달으셨으니, 이는 시절이 이르면 그 이치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인데, 다만 도를 깨달은 시절과 인연을 기록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세존의 깨달음은 샛별에 있지 않고 향엄의 깨달음은 대나무를 때리는 데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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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달을 이르는 . 음력 12 8.
석가모니가 35세의 12 8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 이루던 .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 한다.
*새벽별 ; 샛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 르는 .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별이 돋을 , 정각(正覺) 이루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②선원(禪院).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게송) 일견명성몽변회~’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1 3 '오도(悟道)' 취암종(嵓宗) 게송 참고.
 
[참고]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내용으로,
조조(曺操) 장수(張繡) 정벌할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고통이 아주 심했는데, 이때 조조가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앞에는 넓은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잠시만 참고 힘을 내자.”
 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잊게 되었다 한다.
 
육조 시대 () 유의경(劉義慶)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있는 내용으로,
() 세운 사마 (司馬炎) ()나라를 공격할  길을 잘못 들어 헤매어 식수가 바닥이 났고,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없어 병사들은 갈증이 심하여  이상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때 사마염은 문득 꾀를 내어 말하기를 여러분 조금만 참고 가면  언덕 너머에 매화 숲이 있소.  곳에 가면 매실이 가지가  정도로 매달려 있소” 매실이란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여 갈증을 잊었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2m  죽비.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시선 무처선2017. 12. 20. 18:30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
 

(2분 21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세등34)
 
어제 오늘  사람의 수좌(首座)로부터 공부에  자문을 받았는데,  정진(精進)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 상관이 없어.
걸어갈 때나,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말을  때나, 말을 아니하고 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분별(分別)이 없이 다못 어디서 무엇을  있던지 간에   없는 화두(話頭)만을 거각(擧却)할 뿐이여.
 
그렇게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때도 없이, 어떠한 특정한 장소도 없이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갈 뿐이지만,
그래도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앉아서 기본자세,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기본자세로 정진을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힘을 얻기 쉽다.
 
그래서 고래(古來)로부터 참선(參禪)을 좌선(坐禪)’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것이다. 기본자세로 앉아서 정진한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득력(得力)을 기가 쉽기 때문에 그래 해 온 것이다.(11분27초~13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신 분은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정진(精進)이여.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거든. ‘어느 곳이고 () 아닌 곳이 없고, 어느 때고 참선 아닌 때가 없다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라 하는 것이여.
그래서 걸음 걸음이 미륵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요, 생각 생각이 석가여래가 탄생하신 곳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이러한 도리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3019~312)
 
[참고] 송담스님(No.152)—1981 10 첫째일요법회(참선법B)에서.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니라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니라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어떤 색상을 보는 그때가 바로 참나 깨달을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是證處). 어떤 소리를 듣는 그때가 참나 증득(證得) 바로  곳이드라
그렇게  생각  생각을 무엇을  때마다,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화두를 들고) 다져 나가면,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요,  걸음  걸음 걸어가는   걸음  걸음이 바로 미륵 부처님이 하강하시든 바로 그것이더라.(4122~449) - (게송) ‘견색시증처~’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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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분별(分別)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말씀  말씀이 마치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 바란들 어찌 가히   있으랴?
 
做工夫호대 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活路] 찾는 것같이 할지니,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없음.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 ②지()로써 (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 (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 ()하여 바르게 아는 .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하여 체성(體性) 없음이 마치 물에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功行]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 () 앞에 나타나 ()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 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고래(古來) ; ('고래에', '고래로' 꼴로 쓰여)옛날부터 줄곧.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안되던 것이 할라고  해도 저절로  되어질 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주상보시2017. 6. 11. 15:08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 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 주는 것을 뜻한다.

 

(5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627)—99년 6월 첫째 일요법회(99.06.06)(용627)

 

스님네는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오직 시주것만 먹고 오직 도 하나만을 위해서 목숨 바쳐서 일심(一心)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도만 닦으라고 해서 ‘장사도 하지 말아라, 농사도 짓지 말아라. 일체 오직 걸식(乞食)을 해가지고 한 끼씩만 먹고 도(道)를 닦으라’고 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형편은 걸식할 형편이 잘 못되고, 한 끼만 먹고는 도저히 도를 닦을 수 없을 만큼 지금 우리 근기(根機)가 약해서 세 때도 먹고 또 이 신도님네들이 갖다 주는 걸로 밥을 해 먹고 요렇게 참선(參禪)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딴은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보실 때에는 ‘과연 그만 하면 되겠다’고 하실는지 어쩔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참 부모형제 다 고향을 다 버리고, 일체 세속의 오욕락(五欲樂)을 다 버리고 일생을 수절(守節)을 하면서 먹물 옷을 참 입고, 못난 척 바보같이 이렇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를 일찍이 부러워해 본 적도 없고, 다 그런 것이 다 허망한 줄 알았기 때문에 출가해서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바치고 시주(施主)를 하시고 그래서 이 절도 짓고 선방도 짓고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 승려로서 여러분께 부탁할 것은, 물론 여러분이 갖다 줘서 감사합니다마는 ‘감사하다’는 말을 잘 안합니다. 왜 그러냐? ‘감사합니다’하면은 여러분의 공덕(功德)이 그만큼 소실이 되어 버려.

‘감사하다’는 말로써 그것이 여러분 공덕이 이렇게 때워져 버리기 때문에 여간해서 ‘감사하다’고 안 합니다. ‘잘 수용하겠습니다’ 그뿐인 것입니다.

 

‘시주를 했는데 왜 스님네가 우리한테 굽신굽신을 안 혀? 중들이, 왜 용화사를 가면은 스님네들이 왜 데데해. 불친절해’ 그런 말을 한 분이 있다고 그럽니다.

 

용화사 스님네는 별로 스님네가 오시면 그저 수수하니,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을 업신여기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불친절이 한다고 해서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는 항상 화두 드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맞이할 뿐이지 그렇게 굽신굽신 안 한 것을 데데하고 건방지고 아만통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주를 하고 보시를 하더라도 무주상(無住相)으로 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했다. 했으니까 나를 알아 줘야 하고, 나한테 굽신거려야 하고, 우리를 최고로 대우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안 하시겠습니다마는, 그런 생각은 안 하신 것이 좋을 것이고. 오셔서 열심히 와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여러분을 공부 잘 하시라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을 뼈아프게 듣고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속에서 유마거사(維摩居士)와 같은 그리고 방거사(龐居士)와 같은 그리고 소동파... 보살님 가운데에도 훌륭한 도인(道人)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전생에는 우리가 신도였었고 여러분이 스님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금생에 그것이 바뀌어져 갖고 신도와 스님으로 또 바뀌어졌을는지 모릅니다. 내생에는 우리가 또 신도가 되고 여러분이 스님이 되어서 선방에 와서 참선(參禪)을 할는지도 모릅니다.

 

보현보살이 돼지가 되어가지고 장자 집에 가서 돼지우리에 있을 줄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다 도반이고, 서로가 다 부처님의 제자고 부처님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 할 것도 없습니다.

 

신도면 신도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거고, 스님이면 스님의 도리를 다해서 열심히 도 닦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이 세계를 부처님 세계로 만들고, 우리가 모두가 다 부처님이 되는 최후의 목적까지 우리는 그렇게 가야 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인연이요 우리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41분3초~46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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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일심불란(一心不亂) : ①두 생각이 없이, 딴 생각이 없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②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함.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유마힐(維摩詰) : [범]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인도 비사리(毘舍利  Vaisali)성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하였다。그 수행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제자들도 미칠 수 없었다。그가 병들어 누우매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는데, 둘 아닌 이치(不二法)에 대하여 여럿이 돌려 가면서 말하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그리하여 모두 ‘유마거사가 가장 둘 아닌 법을 잘 연설한다’고 칭찬하였다。이것은 <유마경>의 주요한 내용이다.

*방거사(龐居士) ; 당나라 형주(衡州) 형양(衡陽) 사람. 자는 도현(道玄)이다. 성은 방씨고, 이름은 온(蘊)이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 석두(石頭)에게 선지(禪旨)를 짐작(斟酌)함. 탐욕스럽고 속된 것을 싫어해 재산을 모두 동정호(洞庭湖)에 던져 버리고 죽기(竹器)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뒤에 마조(馬祖)에게 가서 묻기를 “온갖 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마조는 “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마셔버린 뒤면 일러주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2년 동안 정진하여 깨달음.

 

죽으려 할 때 딸 영조를 시켜 그늘을 보아 오시(午時)가 되거든 말하라고 부탁했다. 영조가 “지금 오시가 되었는데, 일식(日蝕)이 일어납니다.”하자, 그는 평상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나가서 보는 동안, 영조가 그의 평상으로 올라가 죽어버렸다. 이를 본 그는 웃으면서 “내 딸의 솜씨가 나보다 빠르구나!”하고는 7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ㅁ/몽산화상시중2017. 2. 21. 22:39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No.539)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제거집착)  顚倒(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가로판 p95-97)

 

 

(4분 48초)

 

 

[법문] 송담스님(No.539)—94년(갑술년) 동안거결제 백일기도 입재(94.11.17)(용539)

 

오늘은 결제일이기 때문에 불가불 우리 선방에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분에게 몽산법어(蒙山法語)의 한 편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약유내차(若有來此)하야 동감적요(同甘寂寥)인댄, 여기에 모두  가지고 같이 참선 정진을 하기 위해서 왔을진대는,

사차세연(捨此世緣)하며, 세속 인연을  버려 버려.   버려야 한다 그말이여.  도량에  가지고 다른 걱정, 나라 걱정, 정치 걱정, 경제 걱정, 집안 걱정  놔 버려야 하는 거야. 제거집착전도(除去執着顚倒)하야, 집착심과 잘못된 모든 생각을 쏴악  제거해 버리고.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하야, 정말로 생사대사(生死大事) 일대사(一大事) 위해서, 긍순암중규구(肯順菴中規矩)하야,  선원의 청규(淸規)를 자발적으로 솔선해서  순응해야 한다 그말이여.

 

절단인사(截斷人事)하고, 인사로 왔다갔다 하는 그것을 아주 끊어버려야 . 그래서 일체 편지 왕래도 하지  것이며 전화 왕래도 하지 말 것이며, 일단 선원에 방부를 들이면은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터억 해 가야  것이다 그말이여.

 

수연수용(隨緣受用)허되,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수용(受用)은 되는 대로 인연 따라서, 밥이 오면 밥을 먹고, 죽이 오면 죽을 먹고, 찰밥이 나오면 찰밥을 먹고, 국수가 나오면 국수를 먹고, 밥이 때로는  때도 있고  때도 있고, 반찬이 입에 맞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것이나, 되는 대로  끼니  끼니를,

 

이것은 수차수식(須此受食)이 단료형고(但療形枯) 위성도업(爲成道業)이 응수차식(應受此食)이라.  밥이  몸뚱이 마른 것을 막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라면 잘 씹으면서 이뭣고?’하는  의단(疑團)이 고대로 독로(獨露)한 상태에서 오십 ,  입안에서 미음(米飮)이 되도록 씹으라 그말이여.

 

제삼경외(除三更外)에는 불허수면(不許睡眠)이여. 9시에 자서 3시에 일어나는데,  지정된 수면 시간 외에는 자지를 말고. 불허출가(不許出街)하며,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지 말며, 밖에서 공양 청장(請狀)이 오거나 그러더라도 그런 데에 나아가지 말라.

 

미유발명(未有發明)이어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전까지는 경이나 어록이나 일체 보지를  것이며. 비공계청(非公界請)이어든, 공계(公界) 대중적으로 읽을  이외에는 경도 읽지를 말아라 이거거든.

 

이것은 용화선원의 청규가 바로 이것에 기본해 가지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선원에 가서 공부하실 때에도 이러한 몽산 스님의 짤막한  법문을 명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신다면은 반드시 금생에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것이 의심이 없습니다.(3114~36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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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불(不可不) ; 어찌할 수 없이. 부득불(不得不 : 하지 아니할 수 없어).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 있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지켜야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

*끼니 ;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하루   일정한 시간에 먹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미음(米飮 쌀 미/마실 음) ; 쌀이나 좁쌀에 물을 많이 넣고 푹 끓여 체에 밭친 걸쭉한 음식.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청장(請狀 청할 청/문서·편지 장) ; 청첩장(請牒狀 : 결혼 따위의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을 초청하는 글을 적은 것).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타파(打破) ; 공안(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공안(화두 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공안(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공안(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상2016. 10. 28. 14:21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20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630)—99 10 첫째일요법회(99.10.03)(용630)

 

연전(年前)에는 일본에서 오사카나 고베에서 7.5부인가, 8도인가? 그런  지진이 일어나 가지고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재산 손실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지방에  지진이 일어나 가지고 엄청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근자(近者)에도 터키니 그리스니 한 데서도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대만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가지고 사람이 죽고 많은 재산이 파괴가 되었습니다. 멕시코에서도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라 때부터서 삼척이니 울산이니 울진이니 그런 지방에 자주 지진이 일어났었고 지질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십 수년 후에는 울산 지방에도  지진이 일어나리라고 모다 예언을 했습니다.

중국, 미국, 일본, 인도 모다 전부 태풍이 일어나고 홍수가 일어나서, 우리나라도  여름에 유난히 태풍과 홍수가 일어나 가지고 아직 복구도  되지 않았는데 이차, 삼차로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러시아는 아파트가 연속해서 폭파가 되고, 우리나라  얼마 전에는 화성에 어린이 수련원에 화재가 일어나 가지고  천사와 같은 어린이들이 화재로 인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통사고니, 사고로 인해서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여기서 저기서 각종 암으로 인해서 병고에 시달리다가  속절없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엠에프(IMF) 인해서, 구조 조정으로 인해서 많은 회사들이 모다 도산을 하고 부도가 났습니다. 그리고 실직을 하고 자살을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조금 위기는 넘겼다고 하지마는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잘살고 모든 기업체가 활발하게 잘되어 가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기와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구구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갖도록 하는 데에 뜻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는 천재지변(天災地變)과 인재(人災)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만큼  세상은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죽음이 언제 있느냐?”하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하루 동안에도 죽음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공부하기 어렵겠다

일향간(一餉間),  끼니에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너도 공부하기가 어렵겠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도 죽음은 있을 수가 있습니다하니까 너는 공부할 만하다

 

이런 말씀이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있습니다. ‘ 호흡지간에 생사(生死)가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을 해야  사람이야말로 바르게 수행할  있는 그릇이다  말씀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지진이다, 태풍이다, 홍수다 그리고  인위적인 폭파 사건, 교통사고, 각종 병고 그리고 흉악범들의 살해 사건, 이러한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보면 정말 뜻있는 사람이면 발심(發心)할 수밖에 없도록 모든 상황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불안에 떨고 그럴 일이 아니라 정말 무상(無常)한 것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을 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한다면 이런 모든 상황이 불보살(佛菩薩)이 우리에게 설해 주시는 법문이 되는 거고, 우주 법계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모든 현상이 우리로 하여금 발심해서  닦도록 해 주는 경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천재지변과 모든 속에서 공포에만 떨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한테나 있을 일이지 나한테는 아직  왔으니깐  걱정할 거 없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말 딱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피차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때부터서 언제 죽음을 맞이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태중에서도 얼마든지 죽게 되고,   있다가 그냥 사산하기도 하고, 태어나면서 죽기도 하고, 한두  안에 죽기도 하고, 십세 미만에 죽기도 하고, 삼사십 이내에도 죽기도 하고, 환갑 이내에도 죽고, 많이 살아 봤자 백세 넘은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빨리 죽으나, 조금 살다 죽으나,  늙어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죽었으니까 엄청나게 슬프고, 오래 살다 죽으니까 죽는 것이  좋고,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죽을 때는 늙어서 죽어도 괴로운 것이요 슬픈 것이요. 사람들은 젊어서 죽으면 애석하게 생각하고 늙어서 죽으면 호상(好喪)이다,  죽었다, 오래 살면  하느냐?’ 남의 일은 그렇게 말합니다마는 자기 본인은 늙어서 죽어도 죽는, 오죽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죽는 것입니다.

 

 신심이 있고 평소에 보시도 많이 하고, 염불도 많이 하고, 참선도 많이 하고  분은 죽을  편안하니 웃으면서 숨을 거둔 분도 더러는 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내가 과거에 수천만 번 죽어봤겠지만 과거지사(過去之事)는 전부 건망증 때문에 잊어버려서 모르겠고, 금생에는 아직 죽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들어 보면 죽을  가래춤이 입으로 코로 부글부글 북적북적 하면서 숨이 맥혀 가지고 그래 가지고 껄떡껄떡 하다가 결국은 숨을 거두는 것을 나도 한두 번은 봤습니다.

 

오죽 견디지 못하면 숨을 거두겠습니까. 견딜 수만 있다면    텐데 견딜 수가 없어서 죽는 것입니다. 간에 암이 걸려서 죽거나, 폐암으로 죽거나, 위암으로 죽거나, 별의별 병이  많고.

남의 염통 곪는 병이  감기만 못하다’던가? 손톱 밑에 가시 하나  것도 대단히 견디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죽음이라 하는 것은 지금도 수천 명이  세계에서 수천 ,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도 어딘가는 일초 일초   없이 사람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죽어간 때의 교통사고, 병고, 온갖 방법이 양상이 달라서 그렇지, 죽음은  견디기가 어려운 것인데 그런 죽음이 우리 앞에도 언제 올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에는 삭비지조(數飛之鳥)는 홀유나망지앙(忽有羅網之殃)이요, 경보지수(輕步之獸)는 비무상전지화(非無傷箭之禍)라’

자주 자주 날으는 새는 그물에 걸릴 재앙이 있고, 새가   있으면 이리저리 날아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물에 걸려 죽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먹이를 찾아서 이리 날아갔다 저리 날아갔다 하다 보면은 그물에 걸려 죽기가 쉽고.

 

짐승도 가만히 어디 굴속에 있으면 화살이나 총에 맞아서 죽지 않을 텐데, 저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먹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댕길 수 밖에 없어서 댕기지마는 너무 경솔하게 자주 돌아다니다 보면은 화살이나 총알에 맞아 죽을 재앙이 없지못하다 이거거든.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리거리마다 차가 수천 , 수만 , 수십만 대가 차 가지고 출근 퇴근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하러 그렇게 사람들이 차를 몰고 댕기는지, 어지간하면 전차나 버스, 기차 그런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훨씬 교통사고도 줄어지고  복잡할 텐데,

 한 집에 차가  대씩,  대씩 있어 가지고 제각기 손수 운전을 해서 밖으로 나댕기니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마는 뭣인가 일이 있어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댕겨 가지고는 교통사고가 끊임없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기름  방울 나오지 않는데, 외국에서 비싼 돈을 주고 기름을 사다가 하는데 그것도   문제고, 다른 사람 보고는 에이!  놈의 차를 그렇게 끌고 나오느냐?’고 하면서 자기도 몰고 나가거든요.

 

그래서  사고를 적게 하려면   있으면 적게 돌아댕기고  ,   나갈 일을  택일(擇一)을 해 가지고  번에 나가서 여러 가지 일을 보도록 하고, 형제간에 누가 나가면 나간 김에 일을 보도록 서로 서로 가족끼리 그렇게 한다면 경제적으로도 좋고 사고도 적게 나고 여러 가지가 좋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집에 있으면서 참선(參禪)을 하신다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니라 일거삼득(一擧三得)이야.

휘발유 적게 들어서 좋고, 행여나 일어날지도 모를 교통사고도 줄여서 좋고, 집에 있으니 이뭣고?’를 한다면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몸을 받은 김에 공부를 실컷한다면 생사해탈을 해서 좋을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이런 말을 산승(山僧)이 하는 까닭은 이렇게  세계가 살기가 힘들고, 복잡하고 이럴 때에 세상을 원망하고, 나라를 원망하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럴  내가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열심히 참선을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훨씬 살기가 좋아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원망을 한다고 하는 것은, 나라를 원망한다고 해서 나라가 좋아질 리도 없고, 남편이 돈을   번다고 남편을 무시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집안 형편이 좋아질 리도 없습니다.

비록 돈을   벌고 형편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검박하게 살면 되요. 돈을   때는   먹고,  입고, 차도 굴리고,  대씩 굴리고 살았겠지만, 직장에서 떨어졌다든지 사업이 여의치 못하면 그것에 맞춰서 검소하게 살면 됩니다. 차도  굴리던   대만 굴리고,   굴린 것도 어려우면  없이 살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살면 사는 것이지,  없다고  못사는 것이 아닙니다. 버스도 있고 택시도 있습니다. 전철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외제로 고급 옷으로 쪽쪽  입지만 자기는 국산 옷으로 검소하게 입어도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  가지고 창피하게 생각한다면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마음)속이 무상을 깨닫고 발심을 해서 생사 없는 활구참선을 한다면 가난해도 창피할 것도 없고, 차가 없다고 해서 창피할 것도 없고, 고급차가 아니고, 티코를 몬다고 해서 조금도 부끄럽고 창피할 일이 없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와도 자기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조금도 부끄럽고 창피할 것이 없습니다.

 

속이  비어 가지고 허세를 부린 것이 그것이 인격적으로 창피한 것이지, 어려운 대로 검소하게 살면 하늘에 향해서도 무엇이 부끄러우며 천지신명(天地神明)에 무엇이 부끄러우며,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나서 무엇 부끄러울 것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도 버리고 일생을 걸식(乞食)을 하면서 사셨습니다. 밥이 없고 옷이 없고 집이 없어 그랬겠습니까?

부처님 뒤에 많은 제자들도, 달마 스님 같은 분도 향지국(香至國)의 왕자였습니다. 그래도 그걸  버리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대각국사니 모다 그런 국사들도  왕손이지만 버리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해서 도를 닦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밖으로 좋은 차를 굴리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을 살아서  앞에 그런 것을 과시한다고 해서 아무도  사람을 우러러보지 않습니다.

검소하게 살고, 겸양한 마음으로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수행을 한다면 첫째, 불보살들이 항상 마정수기(摩頂授記)를  주실 것이고, 모든 선신(善神)들이 항상 옹호(擁護)를  주실 것이고, 모든 도반들이 오히려 마음으로 그분을 존경하게  것입니다.(1729~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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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年前) ; 여러  .

*근자(近者) ; 요 얼마 되는 동안.

*아이엠에프(IMF) ; ‘IMF 경제 위기’ ‘IMF 외환 위기’ ‘IMF 관리체제’ ‘IMF 시대 한국에서 기업부도와 금융위기가 확산되어 1997 12 정부가 IMF(국제 통화 기금 ;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한국경제가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사건.

한국은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 금융기관의 부실과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국 채무의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겪게 되어 한국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을  사태에 이르자, 1997 12월에 IMF 구제금융을 실천하여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으나, IMF 구제금융 조건은 엄격한 재정 긴축과 가혹한 구조 개혁,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제를 받는 나라는 금리가 상승되고 실업률이 상승되는 등의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각종 경제 개혁과 전국민적 노력 덕분에 2001 8월에 IMF 관리체제가 종료되었다.

*일향간(一餉間  /식경食頃·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사이 ) ; ‘  먹을 사이, ‘짧은 시간 동안 뜻한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과거지사(過去之事) ; 이미 지나간 시기의 일.

*택일(擇一 가릴 택/하나 일) ; 둘 또는 여럿 가운데서 하나를 고름.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수행.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천지신명(天地神明) ; 하늘과 땅의 조화를 주재하는 온갖 신령.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

*옹호(擁護 안을 /보호할 )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킴.

Posted by 닥공닥정
ㅁ/무상2016. 8. 25. 19:45

무상(無常) (No.782)—(게송)貪着夢中一粒米~ | ‘이뭣고?’를 열심히 하셔야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있다 | 사람 몸 받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8분 43초)

 

[법문송담스님(No.782)—2016 하안거 해제 법회(2016.08.17)(용782)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이라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가운데 톨의 쌀에 탐착(貪着)하다가, 금선대(金仙臺) 만겁(萬劫) 동안을 먹을 양식을 잃어버리는구나.

 

무상찰나(無常刹那) 실난측(實難測)이요, 무상(無常) 찰나간(刹那間) 있어서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내생이니 무상이 찰나간에 붙어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어찌 맹렬히 반성하야 급히 생각을 돌이키지 않을까 보냐.

 

게송(偈頌) 출가한 비구・비구니・사미・행자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청신사・청신녀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항상 게송을 잊지 않고 게송의 뜻을 새기면서잡담에 세월을 보내지 말고,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항상 게송에 입각해서이뭣고?’ 열심히 하셔야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있고.

몸뚱이는 언젠가는 세상을 버릴 때가 있으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 저승에 가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게송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항상이뭣고?’ 챙긴다면 죽음이 그렇게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정진을 사람은 설사 사바세계(娑婆世界)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더라도 극락세계(極樂世界) 그렇지 않으면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가서 태어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바세계에 다시 태어나서 다시 정법(正法) 만나서 정진을 하게 되리라고 산승은 철저히 믿습니다.

 

세상은 정말 말할 것도 없이 무상(無常)하고 무상하지마는, 세속에서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를 탐착하고 그럭저럭 사람에게는 사바세계는 지옥에 가는 준비에 지내지 못하나,

정법을 믿고 전강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항상 들으면서이뭣고?’ 하고 자기를 찾는 사람은 사바세계가 무상한 세계가 아니라, 도솔천내원궁이나 그렇지 않으면 극락세계나 다시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으면 다시 사바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 태어나서 이렇게 정법 문중에서 다시 만날 있는 좋은 도반(道伴) 되리라고 산승은 철저히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히 사는 길이 있으니 무상한 것을 탓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조실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으면서 항상이뭣고?’ 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진 허망한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몸뚱이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와서 법문을 들을 수가 있고, ‘이뭣고?’ 수가 있고, 무상 속에서 영원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낳아서 젖을 먹여서 키워 주신 부모님이 계신다면은 우리는 몸을 세상에 받아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부모님의 덕으로 받아났으니,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가 태산과 같은 것을 항상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몸을 낳아서 키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사람 몸으로서 자리에 모여서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듣고 말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바세계, 무상하고 무상한 세계지마는 정법을 믿고이뭣고?’ 사람은 사바세계는 정말 부처님이 살아계신 극락세계 못지않게 사바세계가 우리에게 소중한 세계요 공간인 것입니다.

 

사람 받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행히 우리는 부모님 덕으로 몸을 받아났으니 항상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스님 법문을 열심히 들으면서 무상한 세계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항상이뭣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시리라고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여러분! 사바세계에서 이렇게 만나서 조실스님 법문을 같이 듣고, 같이 활구참선(活句參禪) 의해서 정진하자고 우리는 다같이 약속을 했습니다.

정법(正法) 믿고이뭣고?’ 열심히 사람은 사바세계가 우리의 수도장이요, 항상 부처님과 조사(祖師) 가까이 모시고 영원을 살아가는 길을 열심히 찾을 것을 약속을 하면서 산승은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045~21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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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납자십게(衲子十偈’—‘회두(回頭)’ 게송 참고.

*탐착(貪着) ; ①만족할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 욕심부려 집착하는 . 집착하는 . 욕심부리는 .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 ②깊이 마음에 두는 .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찰나간(刹那間 ·짧은시간 /어찌 /사이 )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준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