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화두드는 법)(전강선사 No.249)—생각생각에 공안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염념상연(念念相連)해라. 의단독로 그놈 연속해 나가는 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지경 | 회광자간, 회광반조.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1)+(2) 10분 46초.

의심(화두드는법)(전강선사249(1+2):10분46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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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전강선사(No.249) - 고담화상법어1(임자.72.6.2)(전249)

 

(1)------------------

 

항상 공안(公案)을 조주(趙州) 공안을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板齒)에 생모(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났느니라’

 

무슨 도리(道理)냐 말이여? 따져 가지고는 되지 않는 도리여. 아무리 이놈을 수수께끼처럼 별생각을 다 붙여 봐도 고것은 안되거든, 선(禪)이라는 것은. 그러니 그걸 주의하라는 것이여.

그러헌 의리선(義理禪), 해석선(解釋禪), 따지고 붙이는 선(禪) 그것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그런 종자(種子)는 여지없이 쫓아내 버리고 그것은 기르지 않아야 돼. 그래야 활구학자(活句學者) 활구선(活句禪)이지. 그런 것이 생겨 나오면 못쓰거든.

 

다언(多言) 말을 하지 말고 공안선(公案禪)을 해라. 공안을 떠억 염념상연(念念相連)해라. 생각생각에 그 의심(疑心)을 연(連)해라. 의심, 알 수 없는 놈을 연속해라. 시심마(是甚麼)면, ‘이뭣고?’ ‘이-뭣고?’

 

‘이-’ 아! ‘이-’ 한 놈이 있다 말이여 분명히. ‘이-’ 해 놓고 보니 뭐냔 말이다. 도대체 뭐냔 말이다. 별놈의 이치를 다 때려 붙여 봐라. 모양 있는 지견을, 모양 있는 무슨 모양을 다 때려 붙여 봐라. 오색을 다 갖다 붙여 보고 오색 없는 지경을 다 붙여 봐라. 그런 건 공안참선(公案參禪)이 아니야.

 

‘이뭣고?’ 알 수 없는 하나가 떠억 나와 가지고는 그만 그놈 하나뿐이다. 전체가 그놈 하나뿐이여. 가나 오나 그놈 하나뿐이여. 일체처(一切處)에 그놈 하나뿐이여.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놈 하나뿐이여. 똥 눌 때라도 오줌 눌 때라도 밥 먹을 때라도 그놈 하나뿐이여.

 

그놈 하나 다뤄 나가는 데 뭐가 그리 어렵냐 그 말이여. 천하에 쉬운 것이 그뿐인데.

 

이놈을 생각생각이 연(連)해라. 전념(前念)이 끊어지기 전에 곧 후각(後覺)이, 뒤에 깨달은 그 알 수 없는 놈이 항상 꼬리를 연(連)해. 염념상연(念念相連)을 해라.

 

좋지, 참 재미나지.

 

그 일념(一念)이, 알 수 없는 일념이 독로(獨露)된 데 가서 일체 중생고(衆生苦)가 거기 없다. 중생이라는 고가 뭐냐하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중생고인데 그저 그 분별식이 일어나 가지고는 못 견디지.

그 분별식 가운데 얻지 못한 것이 있고, 되지 않은 일이 있고, 무슨 애가 탄 일이 있고, 뭐 별놈의 중생고가 다 거기서 일어난다. 중생고 퍼일어나는 것이 망상번뇌(妄想煩惱)에서 일어나는 건데, 망상번뇌가 거그 붙덜 못혀. ‘이뭣고?’에는.

 

‘이뭣고?’

‘이뭣고?’ 그놈이 또 ‘이뭣고?’ 찾는 놈 또 찾는구나 ‘이뭣고?'

‘이뭣고?’ 한 놈을 또 ‘이뭣고?' 한다.

 

아, 이렇게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아침마다 일러주는데 무엇을 물어 사석(私席)으로, 사석으로 물을 게 뭐여. 물을 게 있어야 묻지.

 

‘이뭣고---?’

‘이뭣고?’ 해 놓고는 알 수 없는 ‘이뭣고?’ 그 의심 그놈의 덤벵이가 그놈이 참, 그것 ‘이뭣고?’라도 깰래야 깰 수 없고 흩을래야 흩을 수 없고 그놈 뭐.

잘~ 그놈 해보지. 당장에 거가서 직하(直下)에 거가서 무변리(無變理)거가 있고 변함이 없는 도리가 있고.

 

그대로가 독로(獨露)인대, 의단독로(疑團獨露) 그것이 바로가 그대로가 그놈 연속(連續)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지경인대, 언제나 언제나 오래오래 몇 철 몇 해 해 가지고사 타성일편이 올라는가, 그때 올라는가? 요런 놈의 소견(所見) 봐라.

 

직하에 그만, 타성일편도 오는 것이고, 지금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거기서 오는 것이고.

 

항상 상연(相連)해라. 그 상연(相連) 참 묘(妙)하다.(11분29초~17분24초)

 

 

 

 

 

(2)------------------

 

‘이뭣고?’ 하나 득력(得力)해서 그만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보지. 깨닫지 못하고 죽더라도 그 일편(一片)이 그대로 가서 그만 정법신심가(正法信心家)에 가서 그대로 몸뚱이 턱 받아 가지고 나와서 또 ‘이뭣고?’ 하는 것이여.

 

상대목전(相對目前)해라. 목전(目前)에 탁 드러나야 한다. 독로, 독로(獨露)가 그거야.

눈 앞에, 이 내 눈 뜬, 이 눈깔 눈 앞에도 나타나지마는 심안(心眼)에, 내 마음 눈이 있지 않은가. 이 눈보다도, 눈 감아도 보이는 눈이 있지 않은가. 눈 감아도 보이는 눈 앞에 탁 나타날 것이다.

 

분금강지(奮金剛志)해라. 금강(金剛)같은 뜻을 가지고 분(奮)을 한번 내라. 스르르르 풀어지는 고런 놈의, 그 금방 났다가 금방 없어진 놈의 고런 놈의 마음, 거 뭣 할거냐. 그게 도심(道心)이냐? 도 닦는 마음이 그러하냐? 금강같은 마음을, 분(奮)을 내라.

 

분심(奮心)이 제일이다. 왜 내가 나를 모르다니. 왜 내가 내 면목(面目)을 내 낯빤대기를 내가 몰라. 내 콧배기를 내가 몰라. 우째서 모르냐 말이여. 무슨 까닭으로 몰라? 왜 못 봐?

 

그런 뜻을 한번 가지고 일념만년(一念萬年)이다. 그 생각이, 그 깨짐이 없는 그 철저한 마음, 그 뭉태기는 만년(萬年)이다. 만년이면 만년 지낸들 없어지나, 벌써 만년인대. 만년이면 또 만년이지. 또 만년이면 또 만년이지. 억만년(億萬年)이지.

그 염(念)이, 도렴(道念)이, ‘이뭣고?’ 마음이 이처럼 견고하고 이처럼 맺어져 한 덩어리로 풀려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는 화두(話頭)가 자꾸 민첩하게 아름답게 틈없이 온당한 한 덩어리 떠억 될 때 회광자간(廻光自看)해라. 회광자간이라는 건, 다시 더 맹렬하게 ‘이뭣고?’를 한번 봐라. 관(觀)해라.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그 의지(意旨)를, 조주(趙州)가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으니,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놈을 한번 심안(心眼)으로 회광(廻光)해라.

 

가만~히 관(觀)을 해라. 관(觀)이 의단(疑團)뿐이거든. 알 수 없는 놈뿐이다 그 말이여.

알 수 없는 놈 딱 틀림없이 나온 놈이 그놈이, 그것이 반조(返照)여. 회광반조(廻光返照)를 달리 했다가는 큰일나. 여기 다 그렇게 해 놨으니.

 

그놈을 찰이(察而)하고 부관(復觀)해라. 살피고 또 다시 관(觀)하라 하는 건, 의심(疑心)을 더 맹렬히 하고 후렴(後念)을 더 알 수 없는 의심을 자꾸.

 

의단뿐이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니까.

관(觀)이나 부관(復觀)이나 찰(察)이나 전부가 의단(疑團)이라는 거여. 의심 하나뿐이여. 의심을 가만~히.

 

어디 꼭 ‘어째서 판치생모~’ 해서 되나. 나중에는 그만 판치생모가 그대로 의심 하나뿐인데, 이뭣고가 그대로 의심 하나뿐인데.

 

살피고 다시 관하는[察而復觀] 것이 그것이 거기에 가서, 용맹도 더하고 신심도 더하고 분심도 더하고, 못된 중생념이 붙지 못하게, 거기서 뭐 그러헌 무슨 별념(別念)이 생겨 나올 것이 뭣이 있나.(20분4초~24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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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법문에 해당하는 『몽산법어』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구절.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세로판 p135~136. (가로판 p131~132)

若欲參禪(약욕참선)인댄  不用多言(불용다언)이니  趙州無字(조주무자)를  念念相連(염념상련)하야  行住坐臥(행주좌와)에  相對目前(상대목전)하야  奮金剛志(분금강지)하야  一念萬年(일념만년)이라  廻光返照(회광반조)하야  察而復觀(찰이부관)하야

 

만약 참선하려고 할진댄 말을 많이 하지 말지니,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생각생각에 이어서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울 때 눈앞에 두어 금강(金剛) 같은 뜻을 세워 한 생각이 만 년 가게 하라. 빛을 돌이켜 반조(返照)하야 살피고 다시 관하다가,

 

*공안(公案) : 화두(話頭).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참선(死句參禪)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공안(화두)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從諗)이고 속성은 학(郝)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의 법을 받고, 그 문하에서 20년 동안 있었다. 80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40년,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120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선(禪) ; (산스크리트어) dhyāna, (팔리어) jhāna. 선나(禪那) · 타연나(駄演那 : 馱衍那)라 음사(音寫)하고, 줄여서 선(禪)이라고 한다. 정려(靜慮 : 靜으로는 번뇌를 끊고, 慮로는 바르게 관찰한다) · 사유수(思惟修 생각하여 닦음) · 기악(棄惡 : 모든 악을 버리림) 등이라고 한역한다. 선(禪)을 원인으로 하여 지혜 · 신통 · 사무량 등의 공덕을 일으키기 때문에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도 한다. 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선종(禪宗)의 선(禪)은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으로 건너온 뒤로부터 크게 발달되어 이른바 「조사선(祖師禪)」이 완성되었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조사선의 방법에 근거하여 화두(話頭)를 궁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이 대두하였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조사선이 곧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행복도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42)조사선(685:2004년 하안거결제:4분19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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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685)—2004년 하안거결제 법문(04.06.02)(4분19초)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이나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廻生死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위타위기(爲他爲己)는 수미선(雖微善)이나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廻生死因)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거, 비록 그것이 선(善)이 아닌 것은 아니야. 틀림없이, 남에게 보시를 한다든지 자원봉사를 한다든지 다 그것이 선(善)이기는 선이나 그것이 조그만한 선(善)이다 그말이지. 그러나 이것이 다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 원인밖에는 안 된다 그거죠.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해 가지고 상(相)을 내고, 자랑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선을 지은 만큼 복을 받기도 하고 또 천당에 가기도 하고 하나 영원성이 없어.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쏘면 아무리 큰 장사(壯士)가 화살을 쏘았다 하더라도 그 올라간 만큼 올라갔다 다시 또 땅으로 떨어지듯이 좋은 일을 해서 복을 받는데, 큰 복을 받는 사람도 있고 작은 복을 받기도 하나, 크나 작으나 복 받을 만큼 받으면 다시 또 타락을 하게 되니까 그것이 영원성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무슨 일을 해야 영원성이 있느냐?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원컨대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이 비치는 그런 데에 가서 길이 무루(無漏)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한다.

무루 조사선이라는 게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활구참선(活句參禪)이여.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그래야 영원히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나는 것이고, 행복도 타락이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 말씀입니다.(처음~4분30초)

 

*간화선(看話禪) ; 화두선(話頭禪).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세로판 p211~212. (가로판 p217~218)

선법(禪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 수가 있다.

1. 의리선(義理禪)이란 것은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이름이니, 마치 인장으로써 진흙에 찍으면(印泥) 인발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과 같다.

2. 여래선(如來禪)이란 것은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어서, 마치 인장을 물에 찍은(印水) 것 같다.

3. 조사선(祖師禪)이란 것은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이치나 일에 다 걸림 없는 것이 마치 인장을 허공에 찍은(印空) 것과 같은 것이다.

 

(31)의리선(088:참선법A:78.10.1:2분10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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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❷] 송담스님(No.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2분10초)

공안(화두)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뭣고?'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 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

 

요새 일본식 참선이 수입이 돼 가지고 화두 하나를 이리저리 따져서 “아, 이런 것이다!”, 또 그 다음에 다른 화두를 이리저리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또 하나를 해결 지어 놓고 또 다른 화두를 하고 해서, 10개 20개······, 화두를 이렇게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그러한 참선이 지금 일본으로부터서 수입이 되어가지고 많은 지성인들이 그러한 참선을 하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런 참선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쪼끔 생각 있는 사람이면 능히 알고도 남을 상식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차라리 참선을 안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부를지언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합니다. 활구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77분41초~79분50초)

 

*종자(種子) ; ①식물의 씨앗. ②동물의 혈통이나 품종. 또는 그로부터 번식된 새끼. ③사람의 혈통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또는 혈통이 나쁘다는 뜻으로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

*활구학자(活句學者) ;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수행하는 학자.

*활구선(活句禪) ; 활구참선(活句參禪).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공안선(公案禪) ; 화두선(話頭禪).

*화두선(話頭禪) ; 간화선(看話禪).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분별식(分別識) ; 팔식(八識) 가운데 제6 의식(意識)을 말한다. 이 의식은 차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법상(法床 부처님의 가르침 법/평상 상)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덤벵이 ; 덤벙이(묽은 액체 따위가 뭉쳐진 덩이).

*직하(直下 곧다·곧·즉시·바로 직/아래 하) ; 바로. 곧바로. 곧장.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언하대오(言下大悟) ; 말 아래에 크게 깨닫는다. 말(법문) 듣다 깨닫는다. '직하흔번(直下掀飜 바로 뒤집다)'도 같은 뜻의 말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 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참고] 송담스님(No.157)—전강 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1981.12.02.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에 법문하시기를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라, 말 아래 크게 깨달으라” 하셨습니다.

말은, 꼭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차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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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 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省力]’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得力]’ 곳입니다.

 

*심안(心眼) ; 마음의 눈. 지혜.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의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낸 말.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회광자간(廻光自看) ; 회광반조(廻光返照).

*회광반조(廻光返照 방향을 바꾸다·돌리다 회/빛 광/돌이키다 반/비칠 조) : 회광자간(廻光自看).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자신의 본성을 조견(照見)하는 것. 언어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자기 본래의 면목(面目)을 보는 것.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의지(意旨 뜻 의/뜻 지) ; 취지(趣旨 어떤 일의 근본이 되는 목적이나 긴요한 뜻). 의지. 의향. 의도(意圖).

*회광(回光) ;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준말.

*‘가만~히 관(觀)을 해라. 관(觀)이 의단(疑團)뿐이거든. 알 수 없는 놈뿐이다 그 말이여’ ; 의심관(疑心觀).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33)의심관(세등68의심관:5분59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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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 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 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 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 말이여.

 

(32)의심관(256의심관:5분57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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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❷]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 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별념(別念) ; '딴생각'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參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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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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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ㄷ/달마대사2026. 3. 26. 10:13

달마대사(세등51)—달마 조사가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셨다 |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이 총섭제행이여 |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설에 떨어져 있다면 어리석고 가엽다.

 

 

*달마대사(達摩大師, 達磨大師) : [산스크리트어(범어)] Bodhi-dharma.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는 보리달마(菩提達摩 ·菩提達磨)의 생략형이다. 보리달마다라(菩提達磨多羅) · 달마다라(達磨多羅) · 보리다라(菩提多羅) 등이라고도 하나 보통 달마라고 한다.

달마의 생몰연대는 ?~495, ?~436, 346~495, ?~528, ?~536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선종의 전등(傳燈) 계보상 인도로부터는 제27조인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의 법을 이어 제28조이며, 중국에 건너와서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된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달마의 전기를 살펴보면, 달마의 출신지는 파사국(波斯國) · 향지국(香至國) · 바라문국(婆羅門國) · 남천축국(南天竺國) 등이라고 하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남천축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라고 한다.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의 법을 받고 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배를 타고 바다를 통해 건너가 3년이 지나서야,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광주 자사가 예를 갖추어 영접하였으며, 표(表)를 올려 무제에게 아뢰자 무제가 표를 읽고는 사신을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가서 영접하게 하였는데 10월 1일에 금릉(金陵)에 이르렀다.

 

무제가 대사에게 묻기를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스님을 득도시키기를 셀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습니까?[朕卽位已來 造寺寫經度僧不可勝紀 有何功德]”

대사가 대답했다.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並無功德]”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何以無功德]”

“이는 다만 인간과 하늘의 작은 과보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하나 실답지가 않습니다[此但人天小果有漏之因 如影隨形雖有非實]”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如何是眞功德]”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해서 체(體)가 스스로 공적(空寂)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淨智妙圓體自空寂 如是功德不以世求]”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가는 뜻[第一義]이오?[如何是聖諦第一義]”

“확연(廓然)해서 거룩함[聖]도 없습니다[廓然無聖]”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對朕者誰]”

“모르겠습니다[不識]“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자, 대사는 근기가 계합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 후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는데, 석굴에서 면벽(面壁)하고 앉아서는 종일토록 침묵을 지키니, 아무도 그 연유를 아는 이가 없어서 그를 일러 벽을 보는 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하였다.

 

당시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달마 대사에게 가서 아침저녁으로 섬기고 물었으나, 대사는 늘 단정히 앉아서 벽을 바라볼 뿐이어서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마침내 신광은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의 앞에 놓으니, 대사는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알고서 말했다. “부처님들이 처음 도를 구하실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대사가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바꿔 주자, 신광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습니까?[諸佛法印可得聞乎]”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諸佛法印匪從人得]”

 

“제 마음이 아직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我心未寧 乞師與安]”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편안케 해주리라[將心來與汝安]”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覓心了不可得]”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我與汝安心竟]”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대사는 끝내 소림사(小林寺)를 떠나지 않았다. 황제는 더욱 더 흠모를 하면서 예물을 하사했으나 대사는 굳게 사양하면서 세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러나 황제의 뜻이 더욱 단호해지자 대사는 그때서야 비로소 받았다.

 

다시 9년이 지나자, 대사는 서쪽의 천축으로 돌아가고자 해서 제자[門人]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으로 도의 작용을 삼는 것입니다[如我所見 不執文字不離文字而爲道用]”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汝得吾皮]”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지금 이해한 바로는 아난(阿難)이 아촉불국(阿閦佛國)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我今所解如慶喜見阿閦佛國 一見更不再見]”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汝得吾肉]”

 

도육(道育)이 말했다.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온(五蘊)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四大本空五陰非有 而我見處無一法可得]”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汝得吾骨]”

 

마지막에 혜가가 절을 한 뒤에 제자리에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最後慧可禮拜後依位而立 師曰 汝得吾髓]

 

이에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혜가에게 부촉하고 가사(袈裟)를 전해서 법의 신표로 삼았으며,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당시 광통 율사(光統律師)와 보리유지 삼장(菩提流支三藏)은 대사가 현묘한 교화의 바람을 널리 떨치고 법의 비를 두루 뿌리자, 그들의 치우치고 옹색한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서, 앞다투어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켜 자주 독약(毒藥)을 음식에 넣었다. 그 일이 여섯 차례에 이르렀을 때 이미 교화의 인연도 다하였고 법 전할 사람도 만났으므로, 더 이상 독약에서 벗어나지 않고 단정히 앉아서 열반하니, 웅이산(熊耳山)에 장사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다.

 

그 뒤 3년 후에 위(魏)의 사신이 서역(西域)에 갔다 오다가 달마대사를 총령(葱嶺)에서 만났는데, 맨발 벗고, 손에는 신 한 짝을 들고 훌훌히 혼자 가고 있었다. 사신이 묻기를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하자, 대사가 대답하기를 ‘서천(西天)으로 간다. 그리고 그대의 임금은 벌써 세상을 뜨셨다’라고 하였다. 사신이 이 말을 듣고 아찔하여 부지런히 동으로 가서 국왕께  복명(復命)하니, 명제(明帝)는 이미 승하하고 효장제(孝莊帝)가 등극해 있었다. 사명을 받들어 위의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황제가 무덤을 열어 보게 했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이 남아 있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28조 보리달마」 p154~p183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였음>

 

저서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종입二種入(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 『심경송(心經頌)』 · 『파상론(破相論)』 · 『안심법문(安心法門)』 · 『오성론(悟性論)』 · 『혈맥론(血脈論)』 등 여섯 법문(法門)으로 이루어진 『소실육문(小室六門)』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때 간행한 『선문촬요(禪門撮要)』 가운데 『혈맥론』 · 『관심론(觀心論)』 · 『사행론(四行論)』 등이 들어 있다. 『파상론(破相論)』과 『관심론(觀心論)』은 중복되며 달마대사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북종 신수(神秀)의 저술로 보고 있다.

 

달마의 전기에 관한 자료는 『낙양가람기(落陽伽藍記)』(574년 성립),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담림(曇林)의 「서문」(600년경), 『당고승전唐高僧傳(속고승전續高僧傳)』(649년), 『전법보기(傳法寶紀)』(712년경),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713년),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774년경), 『보림전(寶林傳)』(801년), 『조당집(祖堂集)』(952년) 등이 있다.

『보림전』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년)과 『전법정종기(傳法正宗紀)』(1061년)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최징(最澄)의 『내증불법상승혈맥보(內證佛法相承血脈譜)』(819년)와 신회(神會)의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磨南宗定是非論)』(732년) · 『문답잡징의(問答雜徵義)』, 종밀(宗密)의 『선문사자승습도(禪門師資承襲圖)』 · 『도서(都序)』 ·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 등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7분 54초)

달마대사(세등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7분54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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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우리가 해야 할 나아갈 일은—달마 스님! 우리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만, 우리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부처님으로부터 28번째 법등(法燈)을 전수(傳受)하신 달마 조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 조사가 140세의 고령으로 인도를 떠나서 중국으로 오셔 가지고 이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시지 안 했다면, 우리는 계율이나 지키고 경전이나 연구하는 그러한 불법에 빠져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그러한 묘(妙)한 문(門)이 있는 것을 모르고 말았을런지도 모릅니다.

 

달마 스님을 인해서 우리는 참으로 부처님이 위대하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달마 스님의 법(法)은 선정(禪定)을 닦아서 신통을 얻고 그러한 불법이 아닙니다. 물론 참선하는 데에 계율도 지켜야 하고, 선정도 닦아야 하고, 교리에도 밝으면 좋고, 불법에 한 법도 버릴 법은 없으나, 그 근원 그 핵심이 무엇인가를 바로 파악을 해 가지고 그 중심을 바로잡아서 수행을 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뜩이 근기(根機)는 약해서 자기 몸 하나도 추단(鎚鍛)해 나가기 어려운 그러한 처지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잔뜩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어 한다면, 까딱하면 근본은 잊어버리고 지엽(枝葉)에 걸려서 평생을 그르치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출가 수행인이 계율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계율을 또 지켜야 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육바라밀을 닦어야 하고.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추어야 하고.

그러나 계율을 지키기 위한 계율을 지키고, 육바라밀을 지키기 위한 육바라밀을 지키고, 팔만세행을 갖추기 위한 팔만세행을 갖추어서는 그것은 이 몸을 가지고 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여.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마음을 관하는 한 법!

화두를 참구(參究)해서 생각생각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한 경계에 들어가면 계행(戒行)을 지키려고 하지 안 해도 제절로 계행이 지켜져 있고, 육바라밀을 닦을려고 안 해도 바로 행하는 것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행하고, 생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제절로 육바라밀이 지켜지 버리게 된다. 팔만세행도 역시 일부러 갖추려고 안 해도 제절로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화두가 순일한 사람이 어찌 살생을 할 마음을 내며, 어찌 도둑질할 마음을 내며, 어찌 간음을 할 생각을 낼 것이냐 그 말이여. 한 마음 단속해서 화두가 순일하게 나아가면 일체 행(行)이 바로 거기에 다 제절로 갖추어지는 거여. 이것이 바로 달마 스님께서 주창하신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오계(五戒)와 팔만사천 법문이 낱낱이 다 묘한 문이어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도 마침내는 깨달음에 이르러 다 문이 열려져 있는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지만, 그 묘한 법을 잘못 이해하고 그 방편문(方便門)에 국집(局執)해서 얽매이게 되면, 그것은 마치 달 가르키는 손가락을 잘못 이해를 해 가지고, 그 손가락을 인해서 하늘에 있는 달을 봐야지, 달을 보지 아니하고 그 손가락만 국집해서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제 달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겨우 돌이 지내갈락말락한 어린아이에게 '저 하늘에 달을 보라' 하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는 그 손가락을 통해서 하늘에 달을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자꾸 쳐다보고 있다 그 말이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팔만장경이,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경(經)에는 온갖 방편설이 있지만 그런 방편설에 떨어져 가지고, 바로 가리키는 자기의 마음을, 자기의 본자성(本自性)을 보지 않고서 방편에만 떨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어리석고 가엽기가 그지없는 것입니다.(15분13초~23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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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법등(法燈 부처님의 가르침 법/등·불법 등) ; ①법(法,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燈불)에 비유한 말. 법이 무명(無明)과 미혹(迷惑)의 어둠을 깨뜨리는 것이 마치 암흑을 비추어 밝히는 등불과 같으므로 이와 같이 비유한다.

②부처님이나 조사, 또는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스님을 가리키기도 한다.

③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등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면면히 전해지는 등등상속(燈燈相續), 등등상전(燈燈相傳)의 뜻으로 전등(傳燈)과 통하는 말.

*전수하다(傳受-- 전할 전/받을 수) ; (어떤 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기술이나 지식을) 전하여 받다.

 

*조사(祖師) : ①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②선가(禪家)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참고 ❶] 『소실육문(小室六門)』

제3문(第三門) 이종입(二種入)에서.

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可以入道 明佛心宗 等無差誤 行解相應 名之曰祖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이 헐떡임이 없어 마음이 장벽(牆壁)과 같으면 가히 도(道)에 들어가리라. 부처님 마음의 종지(宗旨)를 밝히면 평등하여 어긋나거나 그릇됨[差誤]이 없어, 행(行 : 실천)과 해(解 : 앎)가 상응(相應)한 이를 이름하여 조사라 한다.

 

제4문 안심법문(安心法門)에서.

心心心 難可尋 寬時遍法界 窄也不容針

亦不覩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智而近愚 亦不抱迷而就悟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마음 마음 마음이여, 진실로 찾기가 어렵다. 넓을 때는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좁을 때에는 바늘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악을 보고 싫어하는 기색도 없고, 또한 선을 보고서도 부지런히 닦지도 아니하고, 또한 지혜를 버리고 어리석음을 가까이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에 나아가지도 않네.

대도(大道)를 통달하여 헤아림[量]에서 벗어나 부처의 마음을 통달하여 법도에서 벗어나네. 범부에도 성인에도 똑같이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것을 이름하여 조사라 하네.

 

[참고 ❷] 『조당집(祖堂集) 1』 제2권. 제28조 보리달마화상(菩提達摩和尙).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51~152.

爾時達摩領衆雲往禹門千聖寺 止得三日 時有期成太守楊衍問師曰 西國五天 師承爲祖 未曉此意 其義云何 師曰 明佛心宗 寸無差誤 行解相應 名之曰祖 又問曰 唯此一等 更有別耶 師答曰 須明他心 知其古今 不猒有無 亦非取故 不賢不愚 無迷無悟 若能是解 亦名爲祖

 

그때에 달마가 구름 같은 대중을 이끌고 우문(禹門)의 천성사(千聖寺)로 가서 사흘을 머물렀다. 이때 그 고을의 태수인 양연(楊衍)이 조사에게 물었다. “서천의 다섯 나라에서는 스승의 법을 이어받고는 조사(祖師)라 한다는데,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부처님의 심법을 밝히매 한 치 어긋남이 없고, 해(解 : 교리)와 행(行 : 실천수행)이 서로 상응(相應)하는 자를 조사라 합니다”

 

다시 물었다. “그 한 종류뿐인가요, 또 다른 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반드시 타심통에 밝고, 고금을 통달하고, 유무(有無)를 싫어하지 않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아서 어리석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으며, 미혹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나니, 이렇게 아는 이를 또한 조사라 합니다”

 

楊衍又問曰 弟子久在惡業 不近知識 勤生恭敬 被小智慧而生纏縛 卻成愚惑 不得悟道而致於此 伏願師指示大道 通達佛心 修行用心 何名法祖

 

양연이 다시 말했다. “제자는 오랫동안 악업(惡業)에 끄달려서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공경히 섬기지  못하고, 조그마한 지혜에 사로잡혀 꼼짝달싹 못하여, 어리석고 미혹된 채로 도를 깨닫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라옵건대 스승께서는 대도(大道)를 지시해 주십시오. 부처의 마음을 통달하고 수행하고 마음 쓰는 이를 어째서 법(法)의 조사라 합니까?”

 

師以偈答曰 亦不睹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愚而近賢 亦不拋迷而就悟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조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악(惡)을 보아도 미운 생각이 없고, 선(善)을 보아도 부지런히 닦지 않는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어진 이를 따르지 않고 미혹을 등지고 깨달음을 향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도를 깨달음에 한량없고, 부처의 마음을 통달하여 법도를 넘어섰네.  범부도 성인도 뒤따르지 않고 초연한 이를 일러 조사라 한다.

 

[참고 ❸] 『전등록(傳燈錄) 1』 제3권.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78~179.

有期城太守揚衒之早慕佛乘 問師曰 西天五印 師承爲祖 其道如何 師曰 明佛心宗 行解相應 名之曰祖 又問 此外如何 師曰 須明他心知其今古 不厭有無於法無取 不賢不愚 無迷無悟 若能是解 故稱爲祖

 

며칠 후에 그 고을 태수 양현지(揚衒之)가 일찍부터 불법을 사모했다고 하면서 대사에게 물었다. “서역의 천축에서는 스승의 법을 전해 받으면 조사(祖師)라고 한다는데, 그 도가 어떤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불심(佛心)의 종지(宗旨)를 밝혀서 행(行)과 해(解)가 서로 응하는 것을 조사라고 하오”

 

“그밖에는 어떠합니까?”

“모름지기 다른 이의 마음을 밝히고, 그 고금(今古)을 알고, 있음과 없음을 싫어하지 않고, 법을 취함이 없으며, 현명하지도 어리석지도 않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나니, 이렇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사라고 칭하오”

 

又曰 弟子歸心三寶亦有年矣 而智慧昏蒙尙迷眞理 適聽師言罔知收措 願師慈悲開示宗旨

 

“제자가 삼보(三寶)에 귀의한 지도 몇 해가  되건만, 지혜가 혼몽(昏蒙)하여 오히려 진리를 미혹하고 있었는데, 이제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자비로써 종지를 열어 보여 주소서”

 

師知懇到 卽說偈曰 亦不覩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智而近愚 亦不拋迷而就悟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대사는 그의 정성이 간절함을 알고 즉시 게송을 말했다.

악을 보고서도 싫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선을  보고서도 부지런히 하려고 하지 않으며, 지혜를 버리고서 어리석음에 다가가지도 않고,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에 나아가지도 않네.

대도(大道)를 통달함이여, 한량을 초월하고, 부처의 마음을 통달함이여, 한도를 넘어서네. 범부에도 성인에도 똑같이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것을 이름하여 조사라 하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곧 이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을 곧바로[直] 가리켜[指],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이것은 선종의 종지(宗旨)이다.

[참고] 『양기방회화상어록(楊岐方會和尙後錄)』

百千諸佛 天下老和尙出世 皆以直指人心 見性成佛 若向者裏明得去 盡與百千諸佛同參 若向者裏 未能明得 楊岐未免惹帶口業

 

백천의 모든 부처님들과 천하의 노스님들이 세간에 출세하여 모두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켜 견성성불한다 하였다. 만약 이 속을 향해 밝혀 얻는다면 백천의 모든 부처님과 자리를 함께 하려니와[同參] 만약 이 속을 향해 밝혀 얻지 못한다면 내[楊岐]가 구업 짓는 일을 면치 못하리라.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音寫)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불법에 한 법도 버릴 법은 없으나’ ; 불사문중(佛事門中) 불사일법(不捨一法).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 ;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팔일성해탈문(八溢聖解脫門)’에 나오는 구절.

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實際理地는(眞如자리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으나,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추단(鎚鍛 쇠망치 추/쇠를 불리다·두드리다·벼리다·치다·익히다·대장일 단) ; 쇠망치[鎚]로 치다[鍛]. ①금속을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거나 강하게 만드는 과정. ②어려움에 맞서 강하게 단련한다는 뜻.

[참고]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제6권. 27.무학품(無學品)

譬如燒鐵令其正赤 以鎚鍛之 其上垢除稍稍還冷 不知其火熱之所湊也 修行如是 設至無餘泥洹之界而滅度者 漸漸免苦 是故此經名曰修行

 

비유하면 쇠를 불 속에 넣어 빨갛게 달구어 망치로 두들기면 그 위에 덮힌 찌꺼기가 제거된다. 그런 다음에는 점차 다시 식어 그 뜨거운 불기운이 몰렸던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가령 무여니원(無餘泥洹:無餘涅槃)의 경지에 이르러 멸도(滅度)를 얻는다면 점차 괴로움을 면하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경을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音寫)로, 도피안(到彼岸) · 도(度) · 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팔만세행(八萬細行) ; 팔만이나 되는 세세한 행동거지. 비구로서 살펴야 할 율의(律儀)를 강조한 말이다. 삼천위의(三千威儀)와 같이 쓴다.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0)계(340:1987년 10월 첫째일요법회:2분3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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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2분3초)

계(戒)는 계기(戒器)라, 그릇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定)은 정수(定水), 물에다가 비유를 하고, 혜월(慧月), 혜(慧)는 달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계(戒)를 잘 가짐으로 해서 참선, 정(定)을 잘 장애 없이 닦을 수가 있고, 그래서 지혜(智慧)를 얻을 수가 있다.

 

계의 그릇이 온당(穩當)해야 선정(禪定)의 맑은 물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있고, 그 맑은 물이 그릇에 잘 담겨져 있어서 안정이 되어야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그 그릇에 나타나는 거와 같이, 계(戒)를 지키지 않고서는 온당하게 참선(參禪)을 할 수가 없고, 온당하게 정진을 하지 않고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을 하고자 하고 지혜의 눈을 뜨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부처님의 계를 받아서 그것을 잘 가짐으로 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14분31초~16분33초)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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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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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혼침(수마) 산란2026. 3. 26. 07:46

자올지 마(전강선사 No.015)—만공 스님 공부할 때 어머니 생각이 장애를 주었다 | 포구발심을 해서 어쨌든지 금생을 헛되이 허비하지 말고 꼭 금생에는 확철대오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9분 52초)

혼침(자올지 마)(전강선사015:9분52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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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전강선사(No.015)—만공 큰스님 수행기(경술70.12.11)(전015)(혼침)

 

그 만공(滿空) 큰스님께서 공부를 허실 적에 3년을 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를 했네. 3년을 화두를 해도 조끔도 진취가 없어. 사자진취(些子進趣)니라. 조끄만헌 진취도 없네. 이런 좀 봐.

 

‘하고(何故)인고? 어째 이런고? 아마도 고봉 스님도 3년을 해 가지고 3년 만에 견성을 하셨는데, 원 3년을 해 봐도 여차하니 이게 웬일인고? 참 그 연고를 알 수가 없구나. 꼭 큰스님 시킨 대로 내가 화두를 했건만 이게 이러고 있으니 웬일이냐’

 

아, 하룻밤에는—대체 3년이 그 솔찬이 긴 세월이지마는 거지반 하근... 그런 어른은 하근(下根)도 아니시지마는, 3년을 대체 마지막 간 날이여. 그날이 날짜가.

하, 그것! 새벽 종을 당당당당...... 쳐 올리는데, 아 그만 확 터지네. 확 터져!

 

터졌는데 뭣이 터졌냐 하면, 동방에서 껌껌한 어둔 밤에 해가 툭 터 올라오데끼, 그때는 아침해 떠올라 온 것도 아니고 말이여. 화두 해 나가는데 퉁! 터지는데 해탈 광명장(光明藏)이 터졌네.

 

아, 이 광명이 터져 가지고 내 자기 광명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조요(照耀)하는데, 시방세계를 막 들이 비추는데 끝도 갓도 없다. 그 광명 끄트머리가 어디맨지 당최 뭐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앞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뒤도 그렇게 되어야 허지만 뒤는 안 그려. 뒤는 안 그러고 앞만 그렇다 그 말이여. 아, 이리 돌아도 이렇고, 이리도 이렇고. 아, 이런 꼴 좀 봐, 기가 맥혀! 그래 가지고서는 그만 저 앞산에 개미 기어가는 것이 환히 보인다.

 

자올지 마! 자올지 마! 법문(法門) 들으며 자올면, 꾸뻑꾸뻑 자올면은 나가라고 해도 말 안 듣고 자올고 앉었어. 그따구 놈의 도무지 업장(業障)을 가지고 도(道) 배우러 들어와서...

거 인자 법문하다가도 부애가 팍 일어나서 주먹으로 볼타구니 한번 패 주고 싶네, 바로 말허자면.

 

왜 그런 맘이 나왔어? 금생에 생사해탈(生死解脫) 못하면 언제 할 것이여 글쎄. 6억 7천만년을 부처님도 없고 설법 한번 들을 때가 없어.

그러니 지금 어쩌든지 잘 닦아가지고는 도솔천궁(兜率天宮)을 가야 헌다 그 말이여. 도솔천 외원궁(外院宮) 소용없어. 외원궁까장 삼재(三災)가 있으니까 안돼. 도솔천 내원(內院)으로 바로가야 하는데, 꼭 화두 간택을 해 가지고. 시방 화두 간택한 줄 알아?

 

눈을 찌부지지 감고 들은 게 그러지, 뚝 떠! 내가 시방도 보고 앉았어.

잠잔 사람은 알 테지. 주먹으로 냅대 그만 쳐 버릴텐게. 내가 잘 쳐 이래봬도. 시방은 권투니 뭐니 이런 게 있지만 나도 옛날에 씨름을 어떻게 잘했던지 30명 같은 건 대번에 내가 때려 눕혀. 손 한번 가면 절단 나 버려. 그런 줄 알아.

 

왜 그려 내가? 자기 생사(生死) 면하라고 그러지, 내가 내게 뭔 관계 있나?

어쩔 거여. 생사 이놈 두고 이대로 두고 이게 산 것인가?

 

똥뭉텡이 하나를 떡 담아 가지고 돌아댕기면서, 똥자루 그녀러 것 빌어먹을 것, 그 더러운 것, 밤낮 사방 구녁에서 냄새 푹푹 똥냄새, 뭔 냄새 모두 다 나는 놈의 것, 고걸 짊어지고 다니면서. 그 산 것 같은가 보다.

 

자지 마라! 자면 인자 참말로 안 되야. 그놈이 자면 ‘법문 듣지 말라’ 해도 와서 처자빠져 자고 앉아서 법문 못하게 만들어 버려. 내가 조은 것만 보면 법문 안 하고 내려가 버리는데.

 

만공 큰스님이 인자, 내가 만공 큰스님이 인가(印可)해 주었다고 해서 그 우리 큰스님인게 이런 자랑 법문한 게 아니어. 그렇게 듣고 잠 자빠져 자는구만.

‘에따! 당신 뭐 좀 좋다고 해 논게 저래 자랑한다’고 요러고 앉았구먼. 고런 놈의 거 잘 발견해낸다.

 

아, 이런 광명이 투탈(透脫)해 가지고는 환한 이런 놈의 거, 이게 당최 알 수가 없네. 인자 그때에는, 그때는 반드시 큰스님을 만나야 혀. 환한 광명이 안팎도 없는 대광명이, 아 이런 일월(日月)에다가 비교를 혀? 그래 가지고는 그날 아침내 있다 이 말이여. 있더니 그놈이 사르르르 없어져 버려.

 

그놈이 없어지면서 화두는 ‘만법귀일 일귀하처’를 했는데 조주(趙州) 무자(無字)가 들어와서 그만 눈을 확 그만 열어줘버려. 활연개안(豁然開眼)이라. 눈이 열려 버렸어. ‘무자(無字)’ 대의(大義)가 그대로 확 나.

 

척! 무자(無字) 대의 보면서—그 같은 뭐 광명 경계,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내 눈으로써 광명 눈으로써 다 삭파(爍破)해 버리면 뭣혀? 그 같은 광명 고런 것이 선(禪)일 것 같으면 개똥벌레도 참선해서 그놈이 광명 났구먼. 개똥벌거지 개똥 속에서 나온 놈이 배때기 불 써 놓고 날아댕기는 것 봐, 칠팔월에.

 

그래 가지고서는 참 무자(無字)를 턱 그 깨달아 놓고 보니까, 그 병(病)이 어디 있더냐? 국기병원(鞠其病源)을 한번 해보니 그 3년 동안 그렇게 안되고 조끔도 진취 없이 되어있든 것이 그 원인이 어디 있든가? 가만히 되살펴 보니까 별무타고(別無他故)다.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어.

 

어머니 한 분을 두고 들어와서 중이 되었는데 공부할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찌 되었는고?’ 아 이런 놈의 ‘우리 어머니가 어찌 되었는고?’ 이놈이 나오면 화두가 그만 간 곳 없네.

그래 가지고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다가 어쩌다 돌이켜서 또 해보면은 어머니 생각 반, 화두 반, 요래 가지고 어머니한테 갔다가 또 화두가 좀 왔다가, 아 요것이 있었어. 그놈이 참 무서운 장애, 어머니 생각이 무서운 장애를 주었다.

 

다시 여지없이 포구발심(怖懼發心)을 해서—어머니도 그만 찰나 실각(失却)하고, 잠깐 동안 실각해 이 몸뚱이 잃어버리고 곧 돌아가시고, 나도 실각해 버리고 죽으면은 삼악도(三惡途) 밖에 없고, 무간지옥 밖에 없고.

삼악도 무간지옥이 아니면 충사(蟲蛇) 배때기, 돼지 배때기, 개 배때기, 구렁이 배때기 밖에 없는데 이 포구발심을 못 해가지고 항상 어머니 생각이 났든 것이다.

 

‘내가 발심 못한 연고로구나! 발심을 해 가지고 도를 닦아야 하느니라’ 그런 법문을 해 주실 때 이렇게 말해 주어서 내가 친문(親聞)을 했어. 했으니 어쨌든지 대중은 포구발심을 해야 혀.

 

포구(怖懼), 무서운 발심을 해서 어쨌든지 금생 이 몸을 다른 데다가서 허비하지, 헛되이 그 희생시키지 버리지 말고 꼭 화두에 전렴전력(專念專力)해서, 미루지 말고 해서 금생에는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 한다 그 말이여.(40분28초~50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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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 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 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 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화두(공안)의 하나.

[참고] 『전등록(傳燈錄)』 제10권. 조주선사. 僧問 萬法歸一一歸何所 師云 老僧在靑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제45칙.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부처님이나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진취(進趣 나아가다·오르다 진/달리다·향하다·재촉하다 취) ; (정진해) 나아가다.

*고봉(高峰) ; (1238~1295) 송대 말기 원대 초기의 임제종 스님. 법명은 원묘(原妙), 법호는 고봉(高峰), 속성은 서(徐)씨. 강소성(江蘇省) 오강(吳江) 출신. 15세에 부모에게 출가할 것을 간청하여 가화(嘉禾) 밀인사(密印寺)의 법주(法住) 스님에게 귀의하여 은사로 삼고 16세에 삭발하여 17세에 구족계를 받아 18세에는 천태교학을 익히다가 20세에 선문(禪門)으로 공부를 바꾸어 정자사(淨慈寺)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단교묘륜(斷橋妙倫 1201~1261) 선사가 주석하고 있었다.

 

22세에 3년 사한(死限)을 정하고 참선에 들어가 단교묘륜 선사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 약정했던 3년의 기한이 다가왔을 때 태주(台州)의 정(淨) 사형의 권유로 설암조흠(雪巖祖欽 1215~1287) 선사께 가르침을 청해 지도를 받아 수행하였다. 1271년 임안(臨安 : 浙江省 杭州) 용수사(龍鬚寺)에서 어느날 잠에서 깨어 화두를 의심하던 차에 함께 잠자던 도반이 목침을 밀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설암 선사의 법을 이었다.

 

1274년 무강(武康 : 浙江省 湖州) 쌍계봉(雙髻峰)에 주석하였다. 1279년 항주(杭州) 천목산(天目山)으로 가서 서봉(西峰)의 위쪽에 있는 사자암에서 지내다가, 사자암 서편 바위 동굴에다가 작은 토굴을 지어 사관(死關)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입적할 때까지 15년 동안 지냈다.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으며, 수계자는 수만에 이르렀다. 1295년 세수 58, 법랍 43세로 입적하였다.

『고봉대사어록』 상하 2권과 고봉대사어록 上下권 중 법어 · 서신을 수록한 상권에서 발췌한 『선요(禪要)』가 전한다.

 

*고봉스님의 수행에 대한 법문 :

① 『선요禪要』 28. 通仰山老和尙疑嗣書.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② 『선요禪要』 2. 시중(示衆).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솔찬이 ;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거지반 ; ‘거의’의 사투리. 어느 한도에 매우 가까운 정도로.

*하근(下根) ; 하근기(下根機).

*하근기(下根機 아래 하/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나 근성,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

*‘새벽 종을 당당당당...... 쳐 올리는데’ ; 종송(鐘頌). 쇳송(-頌).

*종송(鐘頌 쇠북·종 종/칭송하다·낭송하다 송) ; 쇳송(쇳頌).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예불(禮佛) 준비의 하나로, 종 따위를 치며 게송(偈頌) · 진언(眞言)이나 법계(法戒)를 외우는 일.

*광명장(光明藏) ; ①광명을 함장(含藏)하고 있는 곳. 곧 부처님의 신체, 또는 부처님의 여러 가지 이름 중의 하나. ②자기의 본심. 진여(眞如)의 빛을 지니고 있는 중생의 본질. 무지의 어둠을 깨뜨리고 진여의 빛을 발휘하여 광명을 그 중에 흡수하므로 광명장이라고 한다.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조요하다(照耀-- 비출·비칠 조/빛날 요) ; (빛이)밝게 비치어 빛나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業障 업·선악의 소행所行 업/막다·가로막히다·장애 장)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볼타구니 ; 볼따구니('볼'을 속되게 이르는 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범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❶]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16)삼재(336:6분7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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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❷] 송담스님(No.336)—19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6분7초)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또 바람이 불고 한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큰 재난이라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의 그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또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화재로 일어난 그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나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에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그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이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또 조용합니다. 또 내년에 이맘때 되면은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해 나가고 모다 댐이라든지 그런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잘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건 온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또 상처를 또 아물게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태풍과 폭풍, 폭우 모다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나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나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는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유(類)가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처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이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또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를 찰나간(刹那間)에 윤회(輪廻)를 하면서 백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항상 법(法)을 전하여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어 법(法)을 듣기 어려운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도솔천 아래로는 사천왕천(四天王天)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게으름과 욕정(欲情)이 남아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고요한 선정에 들어 있어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이 부족한데,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도솔천에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

 

석가모니 부처님께 수기(受記)를 받아 미래에 부처님이 될 미륵보살을 이른다. 부처님 생존시에 아일다(阿逸多, Ajita)가 도를 열심히 닦아 도솔천에 왕생하여 이 보살의 위치에 올랐다. 석가모니도 태어나기 전에 호명(護明)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이 보살의 위치에 올라 도솔천 내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간택(揀擇 가릴 간/가릴 택) ; 사물이나 사람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따위와 그 정체를 구별하거나 가려서 알아 선택함.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투탈(透脫 사무칠·꿰뚫을 투/벗을·벗어날·벗길·나올 탈) ; 깨닫는 일.

*아침내 ; 이른 아침부터 아침밥을 먹을 때까지 줄곧.

*무자(無字) : 화두.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에게서 비롯된 공안.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參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조주구자(趙州狗子) · 조주무자(趙州無字) ·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 등이라고도 한다.

 

[참고 ❶]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卷第十三. 「趙州眞際禪師語錄并行狀卷上(南嶽下四世, 嗣南泉願)」 『조주록(趙州錄)』 (선림고경총서 18, 장경각 발행) p70. (책 뒷면에서) p40.

問 :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 無

學云 : 上至諸佛 下至螘子 皆有佛性 狗子爲什麽無? 師云 : 爲伊有業識性在

 

한 스님이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에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 ❷]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1칙 조주(趙州)의 구자(狗子)」 (무문혜개 찬술 | 금하광덕 역주 | 송암지원 교정) p28~33.

趙州和尙因僧問 :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 “無”

조주스님께 한 수행자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스님 대답하기를 “없느니라” 하였다.

 

無門曰 :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絕. 祖關不透, 心路不絕,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무문(無門)이 평한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한다. 묘오(妙悟)는 반드시 마음 길이 다하여 끊어져야 한다. 만약 조사관(祖師關)을 뚫지 못하고 마음 길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이 모두는 초목에 의지한 허깨비 종류임을 면치 못한다. 자! 일러 봐라. 어떤 것이 조사관인가?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 「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把手共行, 眉毛廝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莫有要透關底麼?

단지 이 한 개의 무자(無字), 이것이 종문(宗門)의 첫째 관문이다. 나는 이를 선종무문관이라 부르고자 한다. 만약 이 관문을 뚫고 지나간 자는 다만 친히 조주를 볼 뿐만 아니라, 곧 역대조사와 더불어 손을 잡고 같이 길을 가고 눈썹을 함께 하여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을 것이니 이 어찌 기쁘고 시원스런 일이 아니겠느냐! 이 관문을 뚫어보지 않으려는가!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毫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撕. 莫作虛無會, 莫作有無會.

그러자면 360의 뼈마디, 8만4천의 털구멍, 온 몸, 온 정신을 똘똘 뭉쳐 하나의 의문 덩어리를 만들어 이 무자(無字)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라! 밤낮을 가리지 말고 이 문제와 부딪쳐라. 그때 이 무(無)의 뜻이 결코 허무(虛無)의 뜻이라거나,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如吞了箇熱鐵丸相似, 吐又吐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打成一片,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마치 한 개의 뜨거운 철환(鐵丸)을 삼킨 거와 같이 토해내려 해도 토해낼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제까지의 악지악각(惡知惡覺)을 탕진해 버리고 오래오래 지내면서 맑게 익어가면 저절로 내외가 한 조각(一片)이 되리니 이때에는 벙어리가 꿈꾼 것과 같이 나만 스스로 알게 된다.

 

驀然打發 驚天動地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 逢祖殺祖 於生死岸頭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戲三昧.

이때에 돌연히 경지를 타파하여 나아가면 하늘을 흔들고 땅을 뒤집는 소식을 알 것이니, 이때는 관우(關羽) 장군의 큰칼을 빼앗아 손에 잡은 것과 같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생사마당에서 대자재를 얻어 육도사생(六道四生) 속에서 자유로이 노닐 것이다.

 

且作麼生提撕? 盡平生氣力 擧箇無字 若不間斷 好似法燭一點便著”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오직 평생의 기력을 다 바쳐 이 무자(無字)를 들어라. 만약 끊임없이 지어 가면 마치 촛불에 불을 붙이면 단번에 밝아지듯 한 법이 되리라.

 

頌曰 : 狗子佛性 全提正令 纔涉有無 喪身失命

송(頌)으로 이른다. 개와 불성! 이 한마디에 불조법(佛祖法)의 바른 법령(法令)은 온전히 반포되었다. 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유무(有無)의 견해를 가져 어른거린다면 이 사람은 당장에 신명을 잃으리라.

 

[참고 ❸]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無字)’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눈[眼] ; 눈[眼]은 법안(法眼)을 가리킨다. 지혜(智慧)의 안광(眼光). 법안(法眼)은 불법(佛法)의 바른 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

*활연개안(豁然開眼) ; 활연대오(豁然大悟).

*활연대오(豁然大悟) ; 환하게 막힘이 없이 탁 트인 큰 깨달음.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활연(豁然 열리다·달達하다·탁 트인 골짜기 활/그러할 연) ; ①앞이 탁 트여[豁] 시원스러운 그러한[然] 모양. ②의문이 갑자기 풀려 막힘이 없이 밝게 깨달음.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약칭.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삭파(爍破 빛날 삭/깨뜨릴 파) ; 비춘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실각(失却 잃을 실/어조사 각) ; 잃다. 소실(消失)하다.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 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충사(蟲蛇) ; 벌레와 뱀.

*친문(親聞) ; 몸소(자기 몸으로 직접) 들음.

*전렴전력(專念專力)하다 ; 전심전력(專心專力)하다. (사람이 한곳에)마음과 힘을 온통 쏟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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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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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