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세등51)—달마 조사가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셨다 |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이 총섭제행이여 |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설에 떨어져 있다면 어리석고 가엽다.
*달마대사(達摩大師, 達磨大師) : [산스크리트어(범어)] Bodhi-dharma.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는 보리달마(菩提達摩 ·菩提達磨)의 생략형이다. 보리달마다라(菩提達磨多羅) · 달마다라(達磨多羅) · 보리다라(菩提多羅) 등이라고도 하나 보통 달마라고 한다.
달마의 생몰연대는 ?~495, ?~436, 346~495, ?~528, ?~536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선종의 전등(傳燈) 계보상 인도로부터는 제27조인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의 법을 이어 제28조이며, 중국에 건너와서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된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달마의 전기를 살펴보면, 달마의 출신지는 파사국(波斯國) · 향지국(香至國) · 바라문국(婆羅門國) · 남천축국(南天竺國) 등이라고 하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남천축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라고 한다.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의 법을 받고 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배를 타고 바다를 통해 건너가 3년이 지나서야,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광주 자사가 예를 갖추어 영접하였으며, 표(表)를 올려 무제에게 아뢰자 무제가 표를 읽고는 사신을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가서 영접하게 하였는데 10월 1일에 금릉(金陵)에 이르렀다.
무제가 대사에게 묻기를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스님을 득도시키기를 셀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습니까?[朕卽位已來 造寺寫經度僧不可勝紀 有何功德]”
대사가 대답했다.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並無功德]”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何以無功德]”
“이는 다만 인간과 하늘의 작은 과보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하나 실답지가 않습니다[此但人天小果有漏之因 如影隨形雖有非實]”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如何是眞功德]”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해서 체(體)가 스스로 공적(空寂)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淨智妙圓體自空寂 如是功德不以世求]”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가는 뜻[第一義]이오?[如何是聖諦第一義]”
“확연(廓然)해서 거룩함[聖]도 없습니다[廓然無聖]”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對朕者誰]”
“모르겠습니다[不識]“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자, 대사는 근기가 계합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 후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는데, 석굴에서 면벽(面壁)하고 앉아서는 종일토록 침묵을 지키니, 아무도 그 연유를 아는 이가 없어서 그를 일러 벽을 보는 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하였다.
당시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달마 대사에게 가서 아침저녁으로 섬기고 물었으나, 대사는 늘 단정히 앉아서 벽을 바라볼 뿐이어서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마침내 신광은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의 앞에 놓으니, 대사는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알고서 말했다. “부처님들이 처음 도를 구하실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대사가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바꿔 주자, 신광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습니까?[諸佛法印可得聞乎]”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諸佛法印匪從人得]”
“제 마음이 아직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我心未寧 乞師與安]”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편안케 해주리라[將心來與汝安]”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覓心了不可得]”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我與汝安心竟]”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대사는 끝내 소림사(小林寺)를 떠나지 않았다. 황제는 더욱 더 흠모를 하면서 예물을 하사했으나 대사는 굳게 사양하면서 세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러나 황제의 뜻이 더욱 단호해지자 대사는 그때서야 비로소 받았다.
다시 9년이 지나자, 대사는 서쪽의 천축으로 돌아가고자 해서 제자[門人]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으로 도의 작용을 삼는 것입니다[如我所見 不執文字不離文字而爲道用]”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汝得吾皮]”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지금 이해한 바로는 아난(阿難)이 아촉불국(阿閦佛國)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我今所解如慶喜見阿閦佛國 一見更不再見]”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汝得吾肉]”
도육(道育)이 말했다.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온(五蘊)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四大本空五陰非有 而我見處無一法可得]”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汝得吾骨]”
마지막에 혜가가 절을 한 뒤에 제자리에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最後慧可禮拜後依位而立 師曰 汝得吾髓]
이에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혜가에게 부촉하고 가사(袈裟)를 전해서 법의 신표로 삼았으며,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당시 광통 율사(光統律師)와 보리유지 삼장(菩提流支三藏)은 대사가 현묘한 교화의 바람을 널리 떨치고 법의 비를 두루 뿌리자, 그들의 치우치고 옹색한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서, 앞다투어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켜 자주 독약(毒藥)을 음식에 넣었다. 그 일이 여섯 차례에 이르렀을 때 이미 교화의 인연도 다하였고 법 전할 사람도 만났으므로, 더 이상 독약에서 벗어나지 않고 단정히 앉아서 열반하니, 웅이산(熊耳山)에 장사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다.
그 뒤 3년 후에 위(魏)의 사신이 서역(西域)에 갔다 오다가 달마대사를 총령(葱嶺)에서 만났는데, 맨발 벗고, 손에는 신 한 짝을 들고 훌훌히 혼자 가고 있었다. 사신이 묻기를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하자, 대사가 대답하기를 ‘서천(西天)으로 간다. 그리고 그대의 임금은 벌써 세상을 뜨셨다’라고 하였다. 사신이 이 말을 듣고 아찔하여 부지런히 동으로 가서 국왕께 복명(復命)하니, 명제(明帝)는 이미 승하하고 효장제(孝莊帝)가 등극해 있었다. 사명을 받들어 위의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황제가 무덤을 열어 보게 했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이 남아 있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28조 보리달마」 p154~p183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였음>
저서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종입二種入(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 『심경송(心經頌)』 · 『파상론(破相論)』 · 『안심법문(安心法門)』 · 『오성론(悟性論)』 · 『혈맥론(血脈論)』 등 여섯 법문(法門)으로 이루어진 『소실육문(小室六門)』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때 간행한 『선문촬요(禪門撮要)』 가운데 『혈맥론』 · 『관심론(觀心論)』 · 『사행론(四行論)』 등이 들어 있다. 『파상론(破相論)』과 『관심론(觀心論)』은 중복되며 달마대사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북종 신수(神秀)의 저술로 보고 있다.
달마의 전기에 관한 자료는 『낙양가람기(落陽伽藍記)』(574년 성립),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담림(曇林)의 「서문」(600년경), 『당고승전唐高僧傳(속고승전續高僧傳)』(649년), 『전법보기(傳法寶紀)』(712년경),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713년),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774년경), 『보림전(寶林傳)』(801년), 『조당집(祖堂集)』(952년) 등이 있다.
『보림전』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년)과 『전법정종기(傳法正宗紀)』(1061년)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최징(最澄)의 『내증불법상승혈맥보(內證佛法相承血脈譜)』(819년)와 신회(神會)의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磨南宗定是非論)』(732년) · 『문답잡징의(問答雜徵義)』, 종밀(宗密)의 『선문사자승습도(禪門師資承襲圖)』 · 『도서(都序)』 ·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 등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7분 54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우리가 해야 할 나아갈 일은—달마 스님! 우리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만, 우리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부처님으로부터 28번째 법등(法燈)을 전수(傳受)하신 달마 조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 조사가 140세의 고령으로 인도를 떠나서 중국으로 오셔 가지고 이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시지 안 했다면, 우리는 계율이나 지키고 경전이나 연구하는 그러한 불법에 빠져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그러한 묘(妙)한 문(門)이 있는 것을 모르고 말았을런지도 모릅니다.
달마 스님을 인해서 우리는 참으로 부처님이 위대하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달마 스님의 법(法)은 선정(禪定)을 닦아서 신통을 얻고 그러한 불법이 아닙니다. 물론 참선하는 데에 계율도 지켜야 하고, 선정도 닦아야 하고, 교리에도 밝으면 좋고, 불법에 한 법도 버릴 법은 없으나, 그 근원 그 핵심이 무엇인가를 바로 파악을 해 가지고 그 중심을 바로잡아서 수행을 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뜩이 근기(根機)는 약해서 자기 몸 하나도 추단(鎚鍛)해 나가기 어려운 그러한 처지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잔뜩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어 한다면, 까딱하면 근본은 잊어버리고 지엽(枝葉)에 걸려서 평생을 그르치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출가 수행인이 계율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계율을 또 지켜야 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육바라밀을 닦어야 하고.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추어야 하고.
그러나 계율을 지키기 위한 계율을 지키고, 육바라밀을 지키기 위한 육바라밀을 지키고, 팔만세행을 갖추기 위한 팔만세행을 갖추어서는 그것은 이 몸을 가지고 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여.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마음을 관하는 한 법!
화두를 참구(參究)해서 생각생각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한 경계에 들어가면 계행(戒行)을 지키려고 하지 안 해도 제절로 계행이 지켜져 있고, 육바라밀을 닦을려고 안 해도 바로 행하는 것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행하고, 생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제절로 육바라밀이 지켜지 버리게 된다. 팔만세행도 역시 일부러 갖추려고 안 해도 제절로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화두가 순일한 사람이 어찌 살생을 할 마음을 내며, 어찌 도둑질할 마음을 내며, 어찌 간음을 할 생각을 낼 것이냐 그 말이여. 한 마음 단속해서 화두가 순일하게 나아가면 일체 행(行)이 바로 거기에 다 제절로 갖추어지는 거여. 이것이 바로 달마 스님께서 주창하신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오계(五戒)와 팔만사천 법문이 낱낱이 다 묘한 문이어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도 마침내는 깨달음에 이르러 다 문이 열려져 있는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지만, 그 묘한 법을 잘못 이해하고 그 방편문(方便門)에 국집(局執)해서 얽매이게 되면, 그것은 마치 달 가르키는 손가락을 잘못 이해를 해 가지고, 그 손가락을 인해서 하늘에 있는 달을 봐야지, 달을 보지 아니하고 그 손가락만 국집해서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제 달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겨우 돌이 지내갈락말락한 어린아이에게 '저 하늘에 달을 보라' 하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는 그 손가락을 통해서 하늘에 달을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자꾸 쳐다보고 있다 그 말이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팔만장경이,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경(經)에는 온갖 방편설이 있지만 그런 방편설에 떨어져 가지고, 바로 가리키는 자기의 마음을, 자기의 본자성(本自性)을 보지 않고서 방편에만 떨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어리석고 가엽기가 그지없는 것입니다.(15분13초~23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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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법등(法燈 부처님의 가르침 법/등·불법 등) ; ①법(法,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燈불)에 비유한 말. 법이 무명(無明)과 미혹(迷惑)의 어둠을 깨뜨리는 것이 마치 암흑을 비추어 밝히는 등불과 같으므로 이와 같이 비유한다.
②부처님이나 조사, 또는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스님을 가리키기도 한다.
③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등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면면히 전해지는 등등상속(燈燈相續), 등등상전(燈燈相傳)의 뜻으로 전등(傳燈)과 통하는 말.
*전수하다(傳受-- 전할 전/받을 수) ; (어떤 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기술이나 지식을) 전하여 받다.
*조사(祖師) : ①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②선가(禪家)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참고 ❶] 『소실육문(小室六門)』
제3문(第三門) 이종입(二種入)에서.
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可以入道 明佛心宗 等無差誤 行解相應 名之曰祖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이 헐떡임이 없어 마음이 장벽(牆壁)과 같으면 가히 도(道)에 들어가리라. 부처님 마음의 종지(宗旨)를 밝히면 평등하여 어긋나거나 그릇됨[差誤]이 없어, 행(行 : 실천)과 해(解 : 앎)가 상응(相應)한 이를 이름하여 조사라 한다.
제4문 안심법문(安心法門)에서.
心心心 難可尋 寬時遍法界 窄也不容針
亦不覩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智而近愚 亦不抱迷而就悟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마음 마음 마음이여, 진실로 찾기가 어렵다. 넓을 때는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좁을 때에는 바늘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악을 보고 싫어하는 기색도 없고, 또한 선을 보고서도 부지런히 닦지도 아니하고, 또한 지혜를 버리고 어리석음을 가까이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에 나아가지도 않네.
대도(大道)를 통달하여 헤아림[量]에서 벗어나 부처의 마음을 통달하여 법도에서 벗어나네. 범부에도 성인에도 똑같이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것을 이름하여 조사라 하네.
[참고 ❷] 『조당집(祖堂集) 1』 제2권. 제28조 보리달마화상(菩提達摩和尙).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51~152.
爾時達摩領衆雲往禹門千聖寺 止得三日 時有期成太守楊衍問師曰 西國五天 師承爲祖 未曉此意 其義云何 師曰 明佛心宗 寸無差誤 行解相應 名之曰祖 又問曰 唯此一等 更有別耶 師答曰 須明他心 知其古今 不猒有無 亦非取故 不賢不愚 無迷無悟 若能是解 亦名爲祖
그때에 달마가 구름 같은 대중을 이끌고 우문(禹門)의 천성사(千聖寺)로 가서 사흘을 머물렀다. 이때 그 고을의 태수인 양연(楊衍)이 조사에게 물었다. “서천의 다섯 나라에서는 스승의 법을 이어받고는 조사(祖師)라 한다는데,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부처님의 심법을 밝히매 한 치 어긋남이 없고, 해(解 : 교리)와 행(行 : 실천수행)이 서로 상응(相應)하는 자를 조사라 합니다”
다시 물었다. “그 한 종류뿐인가요, 또 다른 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반드시 타심통에 밝고, 고금을 통달하고, 유무(有無)를 싫어하지 않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아서 어리석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으며, 미혹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나니, 이렇게 아는 이를 또한 조사라 합니다”
楊衍又問曰 弟子久在惡業 不近知識 勤生恭敬 被小智慧而生纏縛 卻成愚惑 不得悟道而致於此 伏願師指示大道 通達佛心 修行用心 何名法祖
양연이 다시 말했다. “제자는 오랫동안 악업(惡業)에 끄달려서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공경히 섬기지 못하고, 조그마한 지혜에 사로잡혀 꼼짝달싹 못하여, 어리석고 미혹된 채로 도를 깨닫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라옵건대 스승께서는 대도(大道)를 지시해 주십시오. 부처의 마음을 통달하고 수행하고 마음 쓰는 이를 어째서 법(法)의 조사라 합니까?”
師以偈答曰 亦不睹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愚而近賢 亦不拋迷而就悟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조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악(惡)을 보아도 미운 생각이 없고, 선(善)을 보아도 부지런히 닦지 않는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어진 이를 따르지 않고 미혹을 등지고 깨달음을 향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도를 깨달음에 한량없고, 부처의 마음을 통달하여 법도를 넘어섰네. 범부도 성인도 뒤따르지 않고 초연한 이를 일러 조사라 한다.
[참고 ❸] 『전등록(傳燈錄) 1』 제3권.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78~179.
有期城太守揚衒之早慕佛乘 問師曰 西天五印 師承爲祖 其道如何 師曰 明佛心宗 行解相應 名之曰祖 又問 此外如何 師曰 須明他心知其今古 不厭有無於法無取 不賢不愚 無迷無悟 若能是解 故稱爲祖
며칠 후에 그 고을 태수 양현지(揚衒之)가 일찍부터 불법을 사모했다고 하면서 대사에게 물었다. “서역의 천축에서는 스승의 법을 전해 받으면 조사(祖師)라고 한다는데, 그 도가 어떤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불심(佛心)의 종지(宗旨)를 밝혀서 행(行)과 해(解)가 서로 응하는 것을 조사라고 하오”
“그밖에는 어떠합니까?”
“모름지기 다른 이의 마음을 밝히고, 그 고금(今古)을 알고, 있음과 없음을 싫어하지 않고, 법을 취함이 없으며, 현명하지도 어리석지도 않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나니, 이렇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사라고 칭하오”
又曰 弟子歸心三寶亦有年矣 而智慧昏蒙尙迷眞理 適聽師言罔知收措 願師慈悲開示宗旨
“제자가 삼보(三寶)에 귀의한 지도 몇 해가 되건만, 지혜가 혼몽(昏蒙)하여 오히려 진리를 미혹하고 있었는데, 이제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자비로써 종지를 열어 보여 주소서”
師知懇到 卽說偈曰 亦不覩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智而近愚 亦不拋迷而就悟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대사는 그의 정성이 간절함을 알고 즉시 게송을 말했다.
악을 보고서도 싫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선을 보고서도 부지런히 하려고 하지 않으며, 지혜를 버리고서 어리석음에 다가가지도 않고,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에 나아가지도 않네.
대도(大道)를 통달함이여, 한량을 초월하고, 부처의 마음을 통달함이여, 한도를 넘어서네. 범부에도 성인에도 똑같이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것을 이름하여 조사라 하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곧 이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을 곧바로[直] 가리켜[指],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이것은 선종의 종지(宗旨)이다.
[참고] 『양기방회화상어록(楊岐方會和尙後錄)』
百千諸佛 天下老和尙出世 皆以直指人心 見性成佛 若向者裏明得去 盡與百千諸佛同參 若向者裏 未能明得 楊岐未免惹帶口業
백천의 모든 부처님들과 천하의 노스님들이 세간에 출세하여 모두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켜 견성성불한다 하였다. 만약 이 속을 향해 밝혀 얻는다면 백천의 모든 부처님과 자리를 함께 하려니와[同參] 만약 이 속을 향해 밝혀 얻지 못한다면 내[楊岐]가 구업 짓는 일을 면치 못하리라.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音寫)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불법에 한 법도 버릴 법은 없으나’ ; 불사문중(佛事門中) 불사일법(不捨一法).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 ;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팔일성해탈문(八溢聖解脫門)’에 나오는 구절.
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實際理地는(眞如자리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으나,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추단(鎚鍛 쇠망치 추/쇠를 불리다·두드리다·벼리다·치다·익히다·대장일 단) ; 쇠망치[鎚]로 치다[鍛]. ①금속을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거나 강하게 만드는 과정. ②어려움에 맞서 강하게 단련한다는 뜻.
[참고]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제6권. 27.무학품(無學品)
譬如燒鐵令其正赤 以鎚鍛之 其上垢除稍稍還冷 不知其火熱之所湊也 修行如是 設至無餘泥洹之界而滅度者 漸漸免苦 是故此經名曰修行
비유하면 쇠를 불 속에 넣어 빨갛게 달구어 망치로 두들기면 그 위에 덮힌 찌꺼기가 제거된다. 그런 다음에는 점차 다시 식어 그 뜨거운 불기운이 몰렸던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가령 무여니원(無餘泥洹:無餘涅槃)의 경지에 이르러 멸도(滅度)를 얻는다면 점차 괴로움을 면하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경을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音寫)로, 도피안(到彼岸) · 도(度) · 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팔만세행(八萬細行) ; 팔만이나 되는 세세한 행동거지. 비구로서 살펴야 할 율의(律儀)를 강조한 말이다. 삼천위의(三千威儀)와 같이 쓴다.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참고] 송담스님(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2분3초)
계(戒)는 계기(戒器)라, 그릇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定)은 정수(定水), 물에다가 비유를 하고, 혜월(慧月), 혜(慧)는 달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계(戒)를 잘 가짐으로 해서 참선, 정(定)을 잘 장애 없이 닦을 수가 있고, 그래서 지혜(智慧)를 얻을 수가 있다.
계의 그릇이 온당(穩當)해야 선정(禪定)의 맑은 물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있고, 그 맑은 물이 그릇에 잘 담겨져 있어서 안정이 되어야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그 그릇에 나타나는 거와 같이, 계(戒)를 지키지 않고서는 온당하게 참선(參禪)을 할 수가 없고, 온당하게 정진을 하지 않고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을 하고자 하고 지혜의 눈을 뜨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부처님의 계를 받아서 그것을 잘 가짐으로 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14분31초~16분33초)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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