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불(佛) 불법(佛法)'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21.12.13 불(佛) ((No.472))—(게송)邪路不用行~ | '불(佛)'이란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 일체처 일체시에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2. 2020.12.05 부처님(No.058)—참선, 깨달음은 일상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다 | 견성이란 내가 나의 부처를 친견하는 것 | 오직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내가 나를 깨달음.
  3. 2019.12.19 부처님[佛] (No.428) - 석가(불보살)의 임은 중생 | (게송) 법법지인무구구~ | 무산지몽(巫山之夢).
  4. 2019.10.18 불법(佛法) (No.158)—(게송)大地撮來粟米粒~ | 불법, 최상승법만이 이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5. 2019.04.06 불법(佛法) (No.124)—불법은 많이 아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많이 외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다 | 완전히 썩어서 아주 흔적이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6. 2019.03.10 불법(佛法)의 위대성 (No.311)—전식득지 | 내 자신이 본래 부처였다 | 도(道)를 닦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기 가장 좋은 곳이 이 사바세계 | 만물(萬物)의 영장(靈長).
  7. 2019.03.02 불법(佛法) (No.264)—(게송)滿山紅綠皆妙體~ | 상주설법(常住說法) | 생사를 버리고 영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실천을 하는 것이 불법.
  8. 2016.05.14 불(佛) (No.666)—부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목숨 바쳐서 부처님, 역대조사가 용맹정진을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정진을 해야 한다.
ㅂ/불(佛) 불법(佛法)2021. 12. 13. 16:53

불(佛) ((No.472))—(게송)邪路不用行~ | '불(佛)'이란 말이 인도 말로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 일체처 일체시에 그 경계(境界)에 팔려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불(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역(音譯)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7분 22초)

 


[법문] 송담스님(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용472)

사로불용행(邪路不用行)하라  행지왕신고(行之枉辛苦)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요구불과(不要求佛果)하라  식취심왕주(識取心王主)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산(寒山), 습득(拾得),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 화현(化現)이고,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화신(化身)이다' 하는데, 지금 산승(山僧)이 읊은 게송은 문수보살의 화현이신 한산의 게송입니다.

사로불용행(邪路不用行)이라, 삿된 길은 가지를 말아라.
행지왕신고(行之枉辛苦)니라, 삿된 길을 가면은 쓸데없이 쓰라림과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를 하는데, 자꾸 옆에서,
"이뭣고를 해 봤자 하근기(下根機)는 깨닫지도 못하고, 밤낮 해봤자 맛도 없고 아무것도 되는 것도 없고, 어쨌든지 지장경을 읽어라. 금강경을 읽어라. 무슨 주력을 해라. 아미타불을 불러라. 아미타불은 부르다가 마지막 죽을 때 열 번만 부르면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반야용선을 가지고 데리러 오는데 그걸 하면은 돈도 안 들고, 참 고생할 것도 없고.
이뭣고 해 봤자 결제(結制)하러 가면은 돈 내야 하고 또 잠도 마음대로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죽비(竹篦) 치고 시간 맞춰서 앉으려면 허리 아프고 그러니 그까짓 거 뭐하러 그걸 하려고 하냐? 이것을 해라. 이거 읽으면 참 좋다는데 이것을 하지, 그거 참선은 다 최상근기를 타고 나야 그 사람이 닦지, 지금 참선한다고 해 봤자 누구 견성한 사람 봤어? 하지 말고 요렇게 이거하라"고 자꾸 옆에서 속삭속삭하면,

'대체 며칠 가서 해 봤지마는 별로 얻은 것도 없고, 누구는 꿈에 무엇을 나타나고 무엇을 했다는데 나는 별로 보인 것도 없고' 솔깃하니. 그래도 와서 법문 들어보면 '참선을 해야 한다'고 그러고, 또 그 옆에 말을 들어보면은 또 그것이 좋을 것 같고 갈팡질팡 갈팡질팡해.
그러지 말고 '굿을, 아무개가 굿을 잘하는데 굿을 하면은 어쩌고저쩌고 한다'
또 '굿을 할까?' 갈팡질팡하면 그 사람이 무엇이 되냐 그 말이여.

불요구불과(不要求佛果)여.
부처님이 탄생하신 뒤에 부처님 법에 의지해서 도 닦은 스님네나 청신사 청신녀가 수백만 명이지만, 부처님 같은 사람 한 번이나 나왔냐 이거거든. '그러니까 그거 다 소용없고 어쨌든지 아미타불 불러 갖고 극락세계 가는 것이 제일이다' 들어보면 그럴싸하거든.

참선을 하는데, 부처님과 같은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불과(佛果)를 구하지 말아라 이거여.

식취심왕주(識取心王主)니라.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공을 탁! 알아버려라 그 말이여.
그것을 깨달아 버려야지, 거기다가 목표를 둬야지—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야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놈이 다 있거든.
바로 그놈을 탁! 식취(識取)하라 그 말이여. 딱! 알아차리라 그거거든.

성날 때, '이뭣고?'
탁! 이 성난 놈, 그놈을 챙기는 거거든.

뭘 볼 때, 탁! 볼 줄 아는 '이뭣고?' 탁! 챙겨라.
그렇게 챙겨 나갈 때 찰나찰나에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거여, 그게.
그놈 내놓고 무엇을 깨닫느냐 그 말이여.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佛)'이여.

'불(佛)'이란 말이 인도(印度) 말인데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말이거든.
실달 태자(悉達太子)가 출가해 가지고 구담(瞿曇) 사문(沙門)이 되었는데 견성, 그걸 깨달았거든.

별을 보고 깨달으셨는데, 깨달은 뒤에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것이 아니어. 내나 깨닫기 전에 그 모습을 가지고 계셨어.

우리는 32상도 갖추지 못하고, 80종호도 갖추지 못하고, 배고프면 밥 생각나고, 때리면 아프고, 욕하면 성내니까 흉악한 박지범부(博地凡夫)지만,
성날 때 '이뭣고?' 하고, 슬플 때 '이뭣고?' 하고, 속상할 때 '이뭣고?' 하고, 원망스러울 때 탁!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이뭣고?' 한 그 찰나찰나 우리도 부처님이여. 그놈 내놓고 절대로 부처가 따로 없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부지런히 일체처 일체시에 그 경계(境界)에 팔려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그것밖에 정법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활구참선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견성성불의 길도 없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1시간11분13초~1시간18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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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불(佛) 불법(佛法)2020. 12. 5. 16:04

부처님(No.058)—참선도, 깨달음도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 |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 | 견성이란 내가 나의 부처를 친견하는 것 | 오직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내가 나를 깨달을 수가 있다.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7분42초)

 

[법문] 송담스님(No.058)—1977년 동지차례(77년 12월 22일)(정사년 11.12 음) (용058)

 

오늘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는 동지에 대한 말씀과 또 참선, 참선법에 대한 말씀 그리고 불공(佛供)을 드리는 법에 관한 말씀, 그리고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으로부터 인가(印可) 받을 때에 법담(法談)하신 내용, 그리고 조주 스님과 남전 스님의 고양이 문답 법문,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활구참선(活句參禪), 정말 실참실오(實參實悟), 실다웁게 닦아서 실다웁게 깨달라야만 생사(生死)를 당적(當敵)하는 것이지 간혜(乾慧), 영리해서 이리저리 발라 맞추고 따져서 말 잘하고 그러한 재주 기운 가지고 생사는 면(免)할 수 없다고 하는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습니다.

 

참선은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평상화(平常話), 일상 생활—밥 먹고, 옷 입고, 똥 누고, 일하고, 소지하고, 걸어 다니고—하는 그 생활을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참선을 해야만 하는 것이고.

깨달음도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을 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생각으로 성내고 웃고 울고 하는 그 일상,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그렇고 또한 참선도 그렇습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 일체 행동 동작을 떠나서 깨달음이 있다면은 그것을 떠나서 찾아야 되겠지마는, 중생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뚱이와 생각, 그놈을 일찰나(一刹那)도 떠나지 아니하고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탁자(卓子) 위에 모셔 놓은 부처님, 또는 삼천년 전에 정반왕에 탄생하셨다가 80세를 일기로 열반하신 싯다르타(siddhartha), 석가모니 그 부처님만이 부처님인 줄 알고.

바로 지금 산승(山僧)은 말을 하고 있고, 여러분은 지금 산승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듣고 있는 그놈, 그놈을 여의고는 '참 부처님'은 안 계신 것입니다. 그놈을 항시 놓치지 말고 그놈에서 자기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놈이 있길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입을 통해서 말하고 음식을 먹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문을 열매 뜰에는 나무가 섰다. 그 나무를 봄으로 해서 그 나무를 통해서 내가 나를 보는 것이 그것이 견성(見性)이라' 하셨습니다.

 

견성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의 부처를 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하 없는 모든 일은 다 할 수가 있어도 한 가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 몸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나의 몸으로부터서 부처님을 밖으로 내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백만 번 뛰었다 엎쳤다 온갖 짓을 다하고 한다 하더라도 나로부터서 나의 부처님을 밖으로 내몰 수가 없어요.

 

오히려 그 부처님을 안 볼려고 하고 내몰려고 할수록 나의 부처님은 더욱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나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너무 분명하고 가깝기 때문에 그것은 부처가 아닌 줄 알고 그놈을 내놓고 찾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나의 자성(自性)을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뜰 앞에 있는 나무, 누가 못 보는 것입니까?

누구라도 장님이 아닌 도막에는 문을 열면은 뜰 앞에 있는, 뜰에 있는 나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무만 보고, 나무(나)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너무 평범한 것은 우리는 그것이 위대한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국왕의 은혜, 국가 민족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다 우리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갚을려고 해도 갚기가 어렵지마는 정말 고마운 것은 공기(空氣)라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기가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무의식중(無意識中)에도 언제라도 우리는 제절로 이 공기가 우리 코를 통해서 드나들고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탄광, 장성에서 탄광에 화재가 나가지고 이번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마는, 그러한 일을 당해 봐야 공기가 맑은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없을 때에는 공기가 얼마나 우리에게 고마움을 주고 있는가를 아무도 느끼지를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것—언제나 나의 부처, 나의 성품, 나의 마음자리는 이 몸으로부터 조금도 떠나 있지를 않습니다.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입으로 말하고 음식을 먹을 때, 발로 걸어 다닐 때, 울고 웃고 성낼 때 바로 그곳에 '나'가 있건만, 어째서 내가 나를 보지를 못해?

이것은 이론적으로 아무리 설명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설명을 들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만이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8분52초~16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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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 ; 전강 조실 스님이 수행하시던 1920년대 당시 유명한 혜월 · 혜봉 · 한암 · 용성 · 보월 · 만공 선사를 말씀하신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조주 스님과 남전 스님의 고양이 문답 법문' ;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207칙. 「참묘(斬猫)」 『선문염송 · 염송설화 7』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

(古則) 南泉一日因東西堂 爭猫兒 師遂提起云 大衆 道得則救取 道不得卽斬却也 衆無對 師斬爲兩段 復擧前話 問趙州 州便脫草鞋 於頭上戴出 師云子若在 恰救得猫兒

 

남전(南泉)이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에서 고양이 때문에 싸우자, 고양이를 번쩍 쳐들고는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말하면 살릴 것이요, 말하지 못하면 베리라"

그러자 대중에서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에 선사가 두 동강 내었다.

 

나중에 이 일을 들어 조주(趙州)에게 물으니, 조주가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니, 선사가 말하였다.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실참실오(實參實悟)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깨달음. 참(參)은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실참(實參)은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다만 그 꽉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할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무잡(純一無雜)할 수가 없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그놈을 타파(打破)할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다.

 

[참고]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서답(書答)」 ‘답노상서(答盧尙書 노상서에게 답함)’에서.

所以古德云 路途之樂 終未到家 見解入微 不名見道 參須實參 悟須實悟 閰羅大王 不怕多語 若要實參實悟 須是從前坐禪處得底 經敎上得底 古人語錄上得底 宗師口頭下得底 有滋味寶悟處 一時掃向他方世界 好字細看

 

그러므로 옛 스님은 ‘길의 즐거움은 종내 집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보고 알아 미세한 데 들어가는 것은 도를 보았다 할 수 없습니다. 참구는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많은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알차게 참구하여 진실로 깨달고자 하면, 종전에 좌선(坐禪)해서 얻은 것과 경전에서 얻은 것과 고인의 어록에서 얻은 것과 종사의 입을 통해 얻은 것 등에서 자미(滋味)있고 소중히 여긴 깨달았던 경계를, 한꺼번에 다른 세계에 쓸어 버리고 자세하게 살펴야 좋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참고]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상권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에서.

若也眞實參學者 參須實參 悟須實悟 始得 且作麽生是實參實悟耶 於二六時中 四威儀內 以生死大事爲念 離心意識 參出凡聖路 學以無心無爲 綿密養之 常常無念 常常不昧 了無依倚 到冥然地 自然合道 不見古人云 無心方見本來人

 

만약 진실한 참학자(參學者)라면 참구는 반드시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한 참구이며 진실한 깨달음인가?

하루 열두 시간과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생사의 큰 일을 생각하되, 심의식(心意識)을 떠나 참구하여 범성(凡聖)의 길을 벗어나고 무심(無心)과 무위(無爲)를 배우고 그것을 면밀히 길러 언제나 무념(無念)하고 항상 어둡지 않아, 마침내 기댈 곳이 다 사라지고 명연(冥然)한 자리에 이르면 자연히 도에 합할 것이다. 고인이 ‘무심(無心)이어야 비로소 본래인(本來人)을 본다’라는 말을 모르는가?

 

*당적(當敵 막다·지킴 당/원수·적·상대 적) ; 대적(對敵)해 능히 감당(堪當)함.

*간혜(乾慧) : 비록 깨쳐서 지혜가 났더라도, 정(定)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그것은 마른 지혜라고 한다. 마른 지혜는 죽고 나는 이치를 알더라도, 나고 죽는 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乾 = 하늘 건, 마를 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평상화(平常話) ; ①평범한 말. 평상시의 말. ②평상시(平常時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이야기[話]. 일상생활 이야기. 일상생활.

[참고 ❶] 송담스님(No.058)—1977년 동지차례(77년 12월 22일)(정사년 11.12 음)

참선(參禪)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평상화(平常話), 일상 생활—밥 먹고, 옷 입고, 똥 누고, 일하고, 소지하고, 걸어 다니고—하는 그 생활을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참선을 해야만 하는 것이고.

깨달음도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을 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생각으로 성내고 웃고 울고 하는 그 일상,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그렇고 또한 참선도 그렇습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 일체 행동 동작을 떠나서 깨달음이 있다면은 그것을 떠나서 찾아야 되겠지마는, 중생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뚱이와 생각, 그놈을 일찰나(一刹那)도 떠나지 아니하고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10분2초~11분29초)

 

[참고 ❷] 송담스님(No.332)—1987년 6월 첫째일요법회.

행주좌와일체처(行住坐臥一切處)여  착의긱반일체시(着衣喫飯一切時)로구나


군금욕식평상도(君今欲識平常道)인댄  북두남성위불별(北斗南星位不別)이니라

 

행주좌와일체처(行住坐臥一切處), 걸어다니고 머물르고 또 앉고 눕고 하는 것 그러한 모든 곳에서,

착의긱반일체시(着衣喫飯一切時)라. 옷 입고 밥 먹고 하는 모든 때라.



 

군금욕심평상도(君今欲識平常道)인댄, 그대가 지금 평상도리(平常道理)를 알고자할진댄,


북두남성위불별(北斗南星位不別)이니라.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남두(南斗)의 성(星)이 그 위치가 다르지 않느니라.

 

이 게송은 평상화(平常話) 도리(道理), 평상 도리.

진리(眞理)라고 하면은 저 깊고 깊어서 알라야 알 수 없고, 높고 높아서 볼라야 볼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인식을 합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걸어가다가 서고, 멈추었다가 걸어가고, 또 앉고 눕고, 그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하는 우리 일상생활하는 모든 곳과 밥 먹고 옷 입고 또 똥 누고 오줌 누고 일하고 하는 모든 때가 하나도 진리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착의긱반(着衣喫飯)하는 그러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를 여의고 진리를 찾아서는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찾아도 진리는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처음~5분6초)

 

*소지 ; '소제(掃除, 청소淸掃)'의 사투리.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일찰나(一刹那) ; 극히 짧은 순간.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 실달다(悉達多) · 실달(悉達)이라고도 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 Śākya-muni (팔리어) 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문을 열매 뜰에는 나무가 섰다. 그 나무를 봄으로 해서 그 나무를 통해서 내가 나를 보는 것이 그것이 견성(見性)이라' 하셨습니다. 견성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의 부처를 친견하는 것'입니다' ;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부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도막 ; ①짧고 작은 동강. ②'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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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불(佛) 불법(佛法)2019. 12. 19. 19:35

 

 

부처님[佛] (No.428) - 석가(불보살)의 임은 중생 | (게송) 법법지인무구구~ | 무산지몽(巫山之夢).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17분 38초)

 

[법문] 송담스님(No.428) - 1990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용428)

 

법법지인무구구(法法只因無咎咎)허고  심심다위불생생(心心多爲不生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원야곡무산월(寒猿夜哭巫山月)헌디  객로원래불가행(客路元來不可行)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법법지인무구구(法法只因無咎咎)요, 모든 법(法)은 다못 허물 없음을 인해서 허물이 되고,

심심다위불생생(心心多爲不生生)이다. 모든 마음, 마음 마음은 불생 때문에, 불생(不生)—나지 아니함으로부터서 나게 된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설하실 때, 육조 스님이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다. 뻑뻑이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그 주(住)한 바 없이 마음을 낸 것이 바로 불생(不生) 때문에 마음이 생하게 된다. 생(生)할 것이 있어서 생(生)한 것이 아니라 원래 남[生]이 없는 데에서 마음이 난다.

 

한원야곡무산월(寒猿夜哭巫山月)한데, 차운 원숭이는 밤에 무산의 달을 보고 곡(哭)을 하는데 우는데,

객로원래불가행(客路元來不可行)이다. 나그네 길이 원래 가히 행할 수가 없더라.

원숭이가 그 무산(巫山)의 달을 보고 어떻게 간장(肝腸)이 끊어지도록 슬피 울던지 그 슬피 우는 원숭이 소리를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 객(客)이 그 밑에를 지나갈 수가 없더라.

 

 

무산은 저 중국 사천성 기주부에 있는 무산현 동쪽에 있는 산 이름인데 그 무산에 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 하는 고사(故事)가 있는데, 초나라 양왕(襄王)이 고당(高唐)이라고 하는 누대(樓臺)가 있어서 그 누대에 유람을 가 가지고 하룻밤 거기서 자게 되는데, 낮에 꿈을 꾸었다.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천하절색(天下絶色) 여인이 떠억 나타나더니, '저는 무산에 있는 여자로서 이 고당이 하도 경치가 좋다고 그래서 놀러 왔는데, 들으니 임금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임금님을 친견하고 하룻밤 동침하면서 잘 모시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래 보니 어떻게 이쁘던지 양왕이 그 여자를 거절하지 못하고 하룻밤을 잤어. 그게 인자 꿈에 잤겄다.

 

자고서 그 이튿날 떠나면서 '저는 무산 양지바른 높은 언덕에 살고 있는데, 앞으로 날마다 아침이면 임금님에 구름이 되어서 보여 드리고 저녁때가 되면 비가 되어서 임금님께 뿌려 드리오리다'

그리고서 작별을 했는데, 그리고 나서는 이 양왕도 깨고 보니 꿈이다 그말이여. 꿈이지만 그 아리따운 모습이 눈에 삼삼해.

 

그런데 그리고 난 뒤에는 아침에면 항상 그 무산에 구름이 끼고 저녁때가 되면은 비가 내려.

'아! 저게 무산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에게 신호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하루는 무산에 가서 그 양지바른 언덕을 찾아가서 거기에다가 그 여인의 사당(祠堂)을 지어 주었어.

 

그런 고사가 있는데 그 여인이 밤에면 원숭이가, 그리고 나서 세월이 많이 흘러간 뒤에도 그 밤이 되면 임이 그리워서 간장이 끊어지도록 슬피 울어. 그래서 무산 밑에는 나그네가 그 울음소리 때문에 차마 지나갈 수가 없더라.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沈默)』이라고 하는 시집에 서문 격으로 쓴 ‘군말’이라 한 제하(題下)에 쓴 글이 있는데 그 모두 다 잘 아시겠지만,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그런 첫마디에 그리 썼는데, 한용운 스님은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33인 중에 한 분이시고 참 학덕이 높고 독립운동의 사상, 애국심이 투철하시고. 그때면 옛날인데 어떻게 그런 ‘님의 침묵’과 같은 현대의 어디에다 내놔도 손색이 없을만한 그러한 참 감동을 주는 그런 시를 썼는지.

 

한용운 스님은 부처님을 님이라고 믿고 시를 읊기도 하고, 불교의 진리를 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우리 국가를 님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한 글자의 님이지만 한용운 스님은 여러 가지 뜻으로 시를 읊었는데,

과연 부처님의 임은 중생(衆生)이다. 중생은 부처님의 임이라고 표현을 했다 말이여. 중생의 임이 부처님이 아니라 중생이 석가의 임이다 그랬다 말이여. 내가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임도 나를 사랑한다 그거거든.

 

'과연 부처님과 모든 보살, 불보살은 손바닥만한 땅도 불보살이 중생을 위해서 몸을 버리지 않은 곳이 없다' 경전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과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모든 보살님네들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중생을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의 몸을 수백억만 번 무량겁을 두고 몸을 바쳐왔다.

중생이 불보살의 임이기 때문에 임을 위해서 그렇게 몸을 바치셨다 그말이여. 구체적인 예로 부처님은 배고픈 호랑이를 위해서 몸을 던져 주시기도 하고 그밖에도 수없이 몸을 중생을 위해서 축생을 위해서까지 몸을 버리셨다 그말이여.

 

부처님의 제자 둘이 여행을 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서 저 머나먼 여행을 하다가 목이 말랐다.

한 사람은 그 물을 떠서 먹을라고 하니까 아주 눈에 보일락 말락한 미세한 벌레가 우물거리고 있어. 한 사람은 그것을 먹고, 한 사람은 그것을 먹으면 그 벌레가 죽을까 봐서 안 먹었기 때문에 목말라서 죽었어.

 

그 안 죽은 사람이 돌아와서 부처님께 와서 ‘한 사람은 그 물을 안 먹었기 때문에 죽고, 저는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서 목말라 죽으면 못 만나 뵈옵기 때문에 그래서 그 물을 먹고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꾸지람을 하셨다. ‘니가 어찌 나를 친견한 목적이 무엇이냐? 구경(究竟)에 가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나를 만나려고 했는데 나를 친견하기 전에 그 많은 중생을 죽이고 왔단 말이냐' 이리 꾸중을 하셨다고 하는 말씀이 경전에 있는데.

 

그렇게 많은 생을 부처님은 몸소 중생을 위해서 몸을 바치셨어. 부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수많은 목숨을 바치고 우리를 그렇게 사랑을 하셨는데 우리는 과연 불교를 믿는 불자(佛子)로서 얼마만큼 간절히 부처님을 잊지 않고 생각을 하는가?

무산의 여자는 아침엔 구름이 되어서 임에게 보여 드리고 저녁때는 비가 되어서 임에게 뿌려 드리고 밤중에는 잔나비가 되어서 간장이 끊어지도록 울고 울어서 임을 그리워했건만,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부처님을 사랑하고 부처님을 받들었던가.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부처님을 위해서 청춘도 바치고 명예와 권리와 인생을 다 바치고 그리고 부모와 형제와 일가친척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출가해서 도를 닦으신 분도 많이 계실 것이고, 많은 재산을 자기는 아까와서 못 먹고 그러면서도 그 소중한 재산을 불사(佛事)를 위해서 바친 그런 분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수배례(無數拜禮)를 부처님께 올리고 3천배, 3만배 또 자기집의 모든 재산 · 살림 · 자녀 · 남편까지도 부처님을 위하는 신심을 위해서는 그런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그런 돈독한 신심을 가지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너무도 그 임을 자기 나름대로는—아까 한용운 스님의 시처럼 임만 임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임이다 했으니 여자에게 남자가 임이 되고, 남자에게는 여자가 임이 된 것 나쁘다 할 것이 없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재산이 임이 될 수도 있고, 높은 벼슬이나 명예나 권리도 임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은 정말 내가 목숨 바칠 수 있고, 한 목숨 뿐만이 아니라 수천 · 수만 · 수백만의 목숨이라도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고 끝이 없고 한이 없어야 할 그러한 임을 임으로 삼았으면 참 좋으련만.

세속 사람들이 흔히 임으로 섬기는 재산을 임으로 삼는다든지, 남녀간에 색정(色情)을 임으로 삼는다든지, 식도락가는 맛있는 음식을 임으로 삼는다던지, 명예나 권리를 임으로 삼는다든지, 또는 안락과 수면을 임으로 삼는, 한마디로 말해서 오욕락(五欲樂) 따위를 임으로 삼고, 그것을 향해서 몸과 목숨과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다면 그 사람은 결국은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처음~17분 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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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법법지인무구구~’ ; 『신심명(信心銘) -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년 개정판) p104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전강 조실 스님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 중국 선종의 제6조로서 남종선의 개조인 혜능(慧能:638~713)이 사오관[韶關]의 대범사(大梵寺)에서 행한 공개 설법의 기록을 중심으로 생애와 언행을 제자 법해(法海)가 모았다고 전해지는 책. 본래 명칭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이며 약칭하여 '단경'이라고도 한다. '단'은 계단 (戒壇)을 가리키고 '경'은 경전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여 붙인 말이다.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법보단경(法寶壇經)'이라고도 한다.

*무산지몽(巫山之夢) ; 남녀의 정교(情交). 출전은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로서, 중국 초나라의 양왕(襄王)이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神女)를 만나 정을 맺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사(故事 옛 고/일 사) ; 예[故]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유서 깊은 일[事]. 또는 그것을 나타낸 어구. 옛날 이야기.

*누대(樓臺 다락 루/대 대) ; 크고 높게 지은 정자나 누각, 또는 높은 건물.

*슬피 ; 마음이 아파 슬프게.

*간장(肝腸 간 간/ 창자·마음 장) ; 애(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나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간장을 끊다 ; (소리 따위가) 몹시 슬프고 애달프다.

[참고] ‘단장(斷腸)의 슬픔’에 대한 고사가 전해져 오는 것이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편(黜免編)》에 보면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촉(蜀)을 정벌(征伐)할 때의 얘기가 나온다. 환온이 촉을 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가는 중이었다. 양쯔강 중류의 협곡(峽谷)인 삼협(三峽)이라는 곳을 지날 때 한 병사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아 왔는데, 그 어미 원숭이가 환온이 탄 배를 좇아 백 여리를 슬피 울며 뒤따라오다가 배가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 이를 즈음, 어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미 원숭이는 자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애를 태우며 달려왔기 때문에 배에 오르자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다. 배에 있던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끊어낸 것이었다. 배 안에 있던 군사들이 모두 놀라 환온에게 고하니 이 말을 전해들은 환온이 새끼 원숭이를 풀어주고, 그 원숭이를 잡아왔던 병사를 매질한 다음 내쫓아 버렸다.

*천하절색(天下絶色 하늘 천/아래 하/뛰어나다·더이상 없음 절/미인 색) ; 하늘[天] 아래[下] 비길 데 없이 매우 뛰어난[絶] 미인[色].

*삼삼하다 ; [주로 ‘눈’과 관련된 명사와 함께 쓰여](모습이나 풍경이 눈에)보이는 것처럼 잊히지 아니하고 또렷하다.

*사당(祠堂 사당·제사 사/집 당) ; 조상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셔 놓은 집.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둔 곳.

*님(임) ; 사모하는 사람. ‘님’은 ‘임’의 옛말.

* ‘~기룬 것은 다 님이다’ ; 기룬-->‘기루다’ :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마치니(Giuseppe Mazzini, 1805-1872) ; 근대 이탈리아 건국 운동의 정치가.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부처님은 배고픈 호랑이를 위해서 몸을 던져 주시기도 하고' ; 『불설보살투신이아호기탑인연경(佛說菩薩投身飴餓虎起塔因緣經)』 북량(北涼) 고창국(高昌國) 사문법성(沙門法盛) 한역. (아래 글은 요약 정리한 것임)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건타월국(乾陀越國)에 머물러 계실 때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9겁 때 세상에 한 큰나라에 전단마제(栴檀摩提)라는 태자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몸과 목숨과 재물을 남기고 아끼는 바가 없고, 자신과 신하 사야(闍耶)의 모든 것을 보시하고서도 오히려 가난한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다가, 태자는 배제사(裴提舍)라고 하는 나라로 들어가 자신의 몸을 바라문에게 팔은 돈을 또 모두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고 나무를 해다가 파는 종이 되었다.

나무를 하다가 얻은 우두전단(牛頭栴檀)으로 그 나라의 왕의 나병(癩病)을 치료하여 준 인연으로 왕에게 받은 큰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하였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태자는 부왕의 큰 환영을 받고 부왕은 나라 곳간의 무엇이던지 마음대로 베풀 것을 허락하였다.

 

이때 그 나라의 수도 가까운 산에서 용맹(勇猛)이라는 5통(五通) 신선도사(神仙道士)가 오백 명의 제자와 함께 수행하고 있었는데, 태자 전단마제는 그들에게 음식을 바치고 선사(仙師)의 설법을 듣고 세상의 덧없음[無常]을 깨닫고 무위(無爲)를 구하여 모든 괴로움을 제도코자 그길로 선인들과 함께 수행하기 시작했다.

왕후와 태자의 후비는 태자의 뜻이 견고함을 알고 때때로 산 속의 태자에게 음식을 공양하기를 여러 해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산 아래 낭떠러지인 언덕의 깊은 골짜기 밑에 어미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새끼 일곱 마리를 낳았다. 이때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려 먹을 것을 얻지 못하여 어미와 새끼가 곧 죽게 되었고 어미 범은 이미 굶주림에 핍박되어 도리어 새끼를 먹고자 하였다. 산 위에서 수행하던 선인들은 이 비참한 광경을 보고 안타까워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태자는 낭떠러지의 끝에 서서 아래에 어미 범이 새끼를 안고 눈에 덮여 있음을 보고 대비심(大悲心)을 내어 산꼭대기에 서서 머물러 고요히 정(定)에 드니 곧 청정무생법인(淸淨無生法忍)을 얻어 과거 무수겁(無數劫)의 일과 미래도 또한 그러한 것을 보았다. 과거 생에 자신은 중생을 위해 '천 번 몸을 버리겠다'고 서원하였고, 이미 9백99번의 몸을 버리었음을 알게 되었다. 태자는 천 번의 몸을 채우기를 결심하였다.

스승과 오백의 신선 도사와 마침 공양하러 온 부란(富蘭)이라는 장자와 남녀 오백 사람은 태자가 몸을 버리려는 것을 보고 슬피 느껴 울부짖으면서 또한 태자를 따라 산 언덕 끝에 이르렀다.

 

이에 태자는 모든 사람의 앞에서 큰 서원을 발하였다.

'내가 이제 몸을 버리어 중생의 목숨을 구제하오니 이 공덕으로 빨리 보리를 이루고 금강의 몸인 상(常) · 락(樂) · 아(我) · 정(淨)의 무위(無爲)의 법신(法身)을 얻어서 제도치 못한 이를 제도하며 해탈치 못한 이를 해탈케 하며 편안치 못한 이를 편안케 하소서.

나의 이제 몸은 무상하며 번뇌의 모든 독이 모인 것이며, 이 몸은 청정치 못하여 아홉 구멍이 차서 흐르고 사대(四大)의 독사가 쏘는 바며, 다섯의 칼 뺀 도적이 쫓아서 상해(傷害)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몸은 반복이 없도다. 맛나고 감미로운 음식과 오욕락(五欲樂)으로 이 몸을 공양할지라도 목숨을 마친 뒤에는 선한 은혜를 갚음이 없고 도리어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오직 괴롭게 하는 것이요, 즐거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태자는 가지가지로 그 몸의 허물을 꾸짖은 뒤에 또한 서원을 발하였다.

‘이제 내가 살과 피로 저 주린 범을 구제하오니 남은 사리(舍利)와 뼈로 우리 부모가 후일에 꼭 탑을 세워서 일체 중생의 몸에 모든 병으로 인한 괴로움이 숙세 죄의 인연으로 생겨 탕약(湯藥)과 침구(鍼灸)로는 낫지 못하는 이로 하여금 내 탑에 이르러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하면 병의 가볍고 중함에 따라 백 일이 지나지 아니하여 반드시 낫게 하소서. 만일 진실하고 허망하지 아니할진댄 모든 하늘은 향기로운 꽃을 비내리소서’

모든 하늘은 소리에 응하여 만타라(曼陀羅)꽃을 비처럼 내리고 땅은 모두 진동하였다.

 

태자는 곧 몸을 범의 앞으로 던졌다. 이에 어미 범은 태자의 살을 먹어서 어미와 새끼가 다 살아나게 되었다.

이 일로 오백 선인은 위없는 정진도(正進道)의 뜻을 발하였으며 신선의 큰 스승은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

 

이튿날 왕과 부인과 후비와 모든 신하들은 이 사실을 알고 기절하여 사람을 알지 못하였다. 이때 신하들은 왕께 여쭈어 곧 태자의 뼈를 거두어 칠보탑을 세우고 보배로운 물건으로 장엄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때 태자는 나의 몸이요, 이때 부왕은 곧 지금의 나의 아버지 열두단(閱頭檀)이요, 이때 부인은 어머니 마야(摩耶)요, 이때 후비는 지금의 구이(瞿夷)요, 이때 대신 사야는 아난이요, 이때 산 위의 신선의 큰 스승은 미륵(彌勒)이요, 배제사(裴提舍)왕은 난타(難陀)요, 이때 바라문은 라운(羅雲)이니라.

미륵보살은 옛적부터 항상 나의 스승이었는데 내가 보시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중생을 구제한 까닭에 스승보다 앞서 훌쩍 9겁(劫)을 초월하였으니 지금의 부처를 얻음에 이르기까지 제도함이 끝이 없었느니라”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불(佛) 불법(佛法)2019. 10. 18. 08:42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불(佛)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8분 33초)

 

[법문] 송담스님(No.158)—1982년 1월 첫째일요법회(82.01.03) (용158)

 

대지촬래속미립(大地撮來粟米粒)이요  일호두상현건곤(一毫頭上現乾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감소일월부도처(堪笑日月不到處)에  개중별시일건곤(箇中別是一乾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대지(大地)를 촬래(撮來)하니 속미립(粟米粒)이요. 대지. 지구덩어리. 이 지구 땅덩어리를 탁! 한 손으로 잡아오니 좁쌀 아레기, 좁쌀 한 톨밖에는 되지 아니하다.

일호두상(一毫頭上)에 현건곤(現乾坤)이로구나. 한 터럭끝에 하늘과 땅이 나타나는구나.

 

감소일월부도처(堪笑日月不到處)에, 우습구나, 해와 달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개중별시일건곤(箇中別是一乾坤)이로구나. 이 가운데 따로 이 하늘과 땅이 있구나.

 

 

오늘은 1982년 1월 3일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과거에 온갖 슬픔과 괴로움, 모든 업장(業障)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아 없어져서, 새로운 희망과 보람으로 한 해를 맞이해서 모든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고, 특히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돈독한 신심으로 도업(道業)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축원을 합니다.

 

한 해가 시작했구나 싶으면 금방 봄이 지나가고, 더워졌구나 싶으면 금방 가을이 다가오고, 단풍이 졌구나 하면 벌써 백설이 휘날리고 그럭저럭 하다보면 또 한 해가 시작이 되고, 덧없는 세월이 이렇게 물 흘러가듯이 지나가노라면,

우리 인생도 아무 한 것 없이 백발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가고, 아무리 머리에 물을 들이고 화장을 해서 흰머리와 주름살을 안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해도 눈은 침침해지고, 허리는 아파지고, 몸은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리가 높고, 명예가 있고, 재산이 있다 하드라도 이 길은 막을 도리가 없고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사(生死)의 윤회(輪廻)의 모습입니다.

생사 속에서 중생의 욕심으로 아무리 생사를 면할려고 해도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직 불법, 최상승법만이 이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 육체가 죽는 것을 면하고 이백 년, 삼백 년, 천 년 이렇게 살려고 하는 것은 신선도에서 그러한 길을 모색을 하고 있지만, 설사 몇백 년을 산다 하드라도 결국은 죽을 때가 있고만 마는 것이고, 그 죽는 그 자리는 허망하고 괴로운 것은 매양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오래 살려고 하는 길은 외도(外道)의 길이고, 생사 속에서 바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인 것입니다.(처음~8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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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대지촬래속미립(大地撮來粟米粒) 일호두상현건곤(一毫頭上現乾坤)' ; 『호구소륭화상어록(虎丘紹隆和尙語錄)』 '평강부호구운암선사어록(平江府虎丘雲巖禪寺語錄)' 참고. (大地撮來粟米粒 一毛頭上現乾坤 居家不離途中事 常在途中不出門)

[참고] 호구소륭(虎丘紹隆 1077~1136) : 송(宋)의 스님. 임제종 양기파. 원오극근(1063~1135)의 법을 이어받고 20년 동안 시봉함.

*(게송) '감소일월부도처(堪笑日月不到處) 개중별시일건곤(箇中別是一乾坤)' ; 『禪宗頌古聯珠通集』 제20권 '大溈行' 게송 참고. (滿滿彎弓射不著 長長揮劒斫無痕 堪笑日月不到處 箇中別是一乾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해탈(解脫) : [범] Vimokṣ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불(佛)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9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124)—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 법어(80.05.28)(용124)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몽산(蒙山) 스님이 마을에 학자로서 불법(佛法)을 심히 비방을 하든 사람이 강아지 꿈을 꾸고서 자기가 자칫했으면 강아지로 태어날 뻔 봤다고 하는 것을 확인을 하고 거기에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출가해서 대도인(大道人)이 된 인연 설화를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경전 가운데에도 수없이 많은 비유의 설화와 인연의 법문이 많지만 그러한 한 토막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와 같은 그러한 비유 인과설 속에서 신심과 분심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부처님의 살아 있는 법문(法門)을 바로 알아들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약이 꼭 인삼, 녹용과 같은 그러한 값비싼 약만이 우리의 병을 나수는 것이 아니고 값이 헐어디 헐은 들과 산에 나 있는 야생초 몇 뿌리를 삶아서 먹어도 병을 신효(神效)하게 낫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하면 어려운 법문, 암만 듣고 또 읽어도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그런 어려운 경전의 말씀만이 정말 높고 깊은 진리다. 그러한 어려운 경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혹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시는지.

 

'나는 아직 경도 한 권도 읽지 못했고 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천수(千手)도 아직 못 욉니다. 그러니 불명(佛名)도 아직 탈 수가 없고 더군다나 참선(參禪)은 할 생각조차도 못 냅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신 분을 가끔 만납니다마는,

무슨 천수(千手)를 달달 외우고, 무슨 경전을 많이 보고, 어려운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해석할 줄 알고 그러한 것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데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경전을 많이 보고 그래 가지고 알아 가지고 자기가 '참, 나는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누가 뭐 어떠한 승려라 하더라도 감히 내 앞에 무슨 법문을 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법화경이고 화엄경이고 금강경이고 닥치는 대로 다 외우고 읽고 해석할 줄 안다. 나를 덮을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이러한 거사나 신도가 계신다고 하면 참 그렇게 딱하고 안될 수가 없습니다. 불법을 무슨 그런 지식으로 생각하고, 이론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불법은 많이 아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많이 외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그러면 경은 뭐하러 부처님이 설하셨으며, 경은 뭐하러 해인사에 그렇게 경판을 오래 보관하면서 인쇄를 해서 내놓을 필요가 있느냐? 뭐 많이 봐도 소용이 없다면 한 권도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이렇게 또 생각을 하실는지 모르지만.

 

보되 한 글자도 남은 바가 없어야 하고, 글자로 된 경전을 읽으므로 해서 그 글자로 된 경전은 완전히 소화가 되어서 그것이 없어지고서 부처님께서 입을 통해서 설할 수 없는 참 진리를 자기의 마음에서 깨달라야만 그 사람은 경전을 옳게 보았다고 할 것입니다.

 

'닭똥이 거름이 된다. 또는 사람 똥이 거름이 된다. 또는 풀을 참 많이 비어서 그래 가지고 퇴비를 하면 좋다' 그러지만 닭똥을 썩히지 아니하고 푹 띄워서 완전히 발효를 시킨 거름이라야 그것을 밭에다 주고 식물에다 주어도 거기서 그 참으로 비료가 되는 것이지,

푹 썩지 아니한 발효하지 아니한 쌩똥을 갔다가 과실 과목(果木)이나 채소나 곡식에 주면 거기서 열이 나 가지고 과일 나무 뿌리가 참으로 썩어 버리고 채소고 곡식이고 하나도 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경전의 말씀도 그 경전을 읽고서 완전히 그놈이 삭아서 한 글자도 남음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거기에서 참나를 깨닫게 되아야 그 경전을 옳게 보는 것입니다.

 

태권도나 유도나 검도 그런 걸 처음에 배우면 그 주먹이 근실근실해 가지고 누구하고 한번 싸워 보고 싶고, 벽도 한번 차 보고 싶고, 조그만한 일에 누가 있으면 싸움하는 데만 있으면 자기가 탁! 가로막고 나서서 한번 그놈을 뽐내 보고 싶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 삼단 사단 오단 육단 올라가면 여간해서 어디 가서 주먹을 내놓지도 않고 자기가 그러한 무술을 가지고 있는 척을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푹 썩어야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썩어서 아주 흔적이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도 해 갈수록—'내노라'하는 생각, '나는 이렇게 참선을 잘했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 '나는 참선을 해서 한 소식을 했다' 그래 가지고 그런 것을 그러한 얻었다고 하는 생각, '깨달랐다'고 하는 생각,

'나는 참선을 깨닫지는 못했어도 30년을 했다'고 하는 그러한 밥그릇 수를 따져서 자기가 으시대고 새로 공부하는 사람을 갖다가 자기가 오래했다고 하는 그것으로써 짓이기고 욱박지르고 그러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참선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오래할수록 참으로 바르게 한 사람이라면 아무 냄새가 나지를 아니하고 더욱 겸손하고 그 마음은 허공과 같이 맑고 깨끗하고 조용할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지어 나가는 사람은 30년을 했건 10년을 했건 또는 공부를 시작한지가 불과 1년 밖에 안 되었다 하드라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진실하게 참되게 닦아 간 사람은 그 사람이 참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닦아 가야만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깨닫고서도 깨달랐다고 하는 각견(覺見)이 없어져야 그 사람은 바로 깨달은 사람인 것입니다.

하물며 깨닫지도 못한 사람이 깨달은 척하고 으시대고 뽐낸다고 해서 그것이 어디다 쓸 것이여.(19분14초~28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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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蒙山) : 남송과 원(元)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한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에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에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의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의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천수(千手) ; 천수경(千手經). 관음신앙을 구체화하기 위해 엮어진 경으로, 현재 사찰에서 독송하고 있는 천수경의 구성은 천구백년 이후에 갖추어진 것이다.

천수경은 한국불교 신앙의례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경전으로, 천수관음(千手觀音)의 공덕을 찬탄하고 그에게 귀의하여 참회하고 발원하는 글과 진언(眞言)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근실근실하다 ; 가려운 느낌이 자꾸 나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각견(覺見) ; 깨달음[覺]에 집착하는 견해.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깨달음[覺]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불(佛) 불법(佛法)2019. 3. 10. 16:02

*불법(佛法)의 위대성 ; 불교 내에는 세계에 모든 종교의 교리가 불교 안에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우리의 이 높고 넓고 깊은 이 불교를 표용할 수가 없습니다. 끝없이 넓고, 밑 없이 깊고, 한량없이 높기 때문에 다른 종교는 우리 불교를 표용할 수가 없습니다.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불(佛)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1) 21분 25초.

(2) 8분.

 

[법문] 송담스님(No.311)—1986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311)

 

(1)------------------

 

이 일요법회가 끝난 다음에 화두(話頭)를 신청하신 분, 또 불명(佛名)을 신청하신 분, 또 오계(五戒)를 신청하신 분이 다 함께 다시 법요식(法要式)이 있겠습니다마는.

 

이 참선을 한번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그 마음 내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마음 한번 내서 발심(發心)을 하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 했습니다. 처음 마음 발(發)할 때가 문득 정각(正覺)이다. 발심 탁! 할 때가 벌써 바른 깨달음을 얻은 때다 그거거든.

 

우리는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 모든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같은 그런 모든 대승보살(大乘菩薩), 역대조사(歷代祖師) 참 수많은 이 깨달음을 얻은 성현들이 계시지마는, 그 성현들이 원래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습니다. 또 우리도 과거 무량겁 전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본래 우리도 부처님이였었어.

 

그래서 한 생각, 처음 한 생각 탓으로 해서 불보살이 되고 성현이 되신 분도 있고, 한 생각 미끄러져 가지고 무량겁을 윤회하는 중생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한 생각 바로 잡으면 우리도 성현의 지위에 들어가게 되고.

 

'이 활구참선이 재미가 없다. 어렵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는 늙었다, 나는 여자다, 나는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하다, 나는 몸이 약하다' 또는 '세속 생활이 바쁘다,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이리저리 각각 자기 나름대로 그러한 이유를 붙여 가지고 자포자기를 해.

'나는 참선은 못하고, 기도나 하고 염불이나 하고 경이나 읽어서 업장(業障)이나 소멸(消滅)을 해 가지고. 아미타불이 나를, 내가 숨 끊어질 때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나를 데리러 오실 것이다. 그때 그 배를 타고 극락(極樂)에 가야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참선을 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하랴' 이렇게 자포자기를 하면 영겁을 두고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 근기 따라서 여러 가지 방편설(方便說)을 설하셨습니다마는 구경(究竟)에 가서는 그러한 당신께서 설하신 방편법에 떨어지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에 부탁하신 말씀은 그 정말 그 한마디가 우리 중생을 위해서 눈물겹도록 뼈에 사무치는 그 말씀을 남기셨는데, 그 말씀은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부득이해서 설하신 방편법에만 떨어져 가지고 스스로 이 최상승법에 들어오기를 두려워하고, 저 문전에서 서성대고 맴돌다가 담 밖에서 그리고 기웃기웃하다가 그리고 겁이 나서 돌아가 버리고.

남 따라서 한번 들어와서 요 들어보고는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그만 두고, 여기저기 다른 데로 방황을 하면서 부처님의 참 부득이해서 설하신 방편법에 빠져 가지고 최상승법에 들어오지 못한 그런 안타까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생각할 때 참 가슴 아프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최상승법, 일승법, 대승법,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디에다 근본을 두었냐 하면은 중생심에다가 근본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심(衆生心),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심(妄想心).

눈을 떠 있을 때에는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또는 생각을 통해서 일분일초도 쉴 사이 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졌다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리고 잠잘 때는 몸뚱이는 가만히 누워 있는데 꿈을 통해서 그 잠재의식이 끊임없이 활동을 합니다.

 

그리하면서 한평생을 살다가 또 몸을 바꾸어서 어디엔가 또 태어나 가지고 또 한평생을 살고 이리 지내는데, 그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것이 바로 우리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근원입니다. 그것이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깨달음의 밭입니다. 깨달음의 종자(種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그 제8식(第八識)을 여래장(如來藏)이라 그러거든. 여래(如來), 여래가 그 속에 소장이 되어 있다. 여래가 그 속에 갈무려 있다. 그래서 여래장이라고 그러거든.

 

중생심, 그것이 바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것이 식(識)이거든. 전5식(前五識), 제6식, 제7식, 제8식, 이거 식(識)이지만,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하면은 그 식(識)이 바로 지(智)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식(識)을 여의고 부처님의 지(智)가,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식(識)이 깨달라 버리면, 중생의 식(識)이 깨달으면 바로 부처님의 지(智)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동안을 하느님을 믿고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교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유일신이고 절대자이기 때문이고, 우리 중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여.

하나님이 이렇게 진흙으로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해서 아담과 헤와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다 생명력을 불어 넣어가지고 에덴동산에 놔뒀는데, 금단의 과일을 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 세계로 쫓겨나 가지고 그래서 이 자손이 번식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 예수교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그래서 우리 죄 많은 중생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직접 하나님이 될 수는 없고, 천당에는 갈 수가 있다 그러는데,

우리 불교에서는 우리 자신이 원래 부처님이었었고, 한 생각 미(迷)해서 우리가 생사윤회는 하고 있지만 탁! 깨달라 버리면 본래 우리가 부처님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고해(苦海)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분명 이 세계는 고해입니다. 생노병사가 전부 고해(苦海)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본래 부처였다고 하는 사실, 우리의 본성(本性)을 깨닫고 보면 고해가 아닙니다. 이 세계가 바로 있는 고대로 극락세계가 되고, 적광토(寂光土)가 되는 불세계(佛世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내가 다른 종교가 나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불교의 진리가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말하고 있는 것뿐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佛子)가 우리 불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확실히 알지 못하면 우리가 불법을 참으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불법의 위대함을 잘 모르고 그 방편에 빠져서 기복(祈福)이나 하고, 중생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편으로 불법을 믿고 이리 하다가 무엇이 뜻대로 잘 안되고 장사가 잘 안되고 하면 그냥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불법이 참으로 위대하고, 그 위대한 불법이 어째서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안다면 올바르게 믿고 실천하게 되고 퇴태(退怠)할라야 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어디 무슨 개종을 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다른 종교를 믿다가 불교로 돌아오는 것은 그것은 당연한 것이여. 다른 종교는 우리 부처님의 법에 비추어서 보면 천만분의 일도 못되는 그런 아주 옅은 방편법 한두 가지를 교리로 삼고 거기에 의지해서 모다 종교 생활을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 내에는 세계에 모든 종교의 교리가 불교 안에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우리의 이 높고 넓고 깊은 이 불교를 표용할 수가 없습니다. 끝없이 넓고, 밑 없이 깊고, 한량없이 높기 때문에 다른 종교는 우리 불교를 표용할 수가 없습니다.

 

산간의 계곡에서 이쪽 계곡에서 저쪽 계곡으로 날아가고, 저쪽 언덕에서 요쪽으로 날아다니는, 산에는 그 시내를 중심으로 해서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이리 파르르르 날으고, 저기서 요리 파르르 날으고 하는 그런 산새들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모다 밤톨만한 산새들이 있는데, 그런 산새는 압록강이나 또는 양자강 또는 황하 같은 그런 큰 강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런 큰 강에 사는 큰 새들이 있습니다. 오리라든지 두루미라든지 그런 새들이 있는데, 그 뱁새와 두루미나 갈매기 같은 그런 새들이 만나 가지고 뱁새한테 그런 압록강이나 황하나 양자강 같은 그런 넓은 강이 있다고 하는 것을 얘기를 해 주어도 뱁새는 믿지를 않습니다.

믿지 않고 '미친놈, 다리만 기다란한 것이 소가지 없이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도대체 그런 키 크고 속없다드니, 어디가 그런 것이 있느냐? 지금 내가 여기 살고 있는 그 시내 계곡보다 더 큰 계곡이 어디가 있느냐?' 도저히 믿지를 않습니다.

 

양자강이 넓고 황하가 넓다 하지마는 정말 태평양 같은 바다, 이러한 바다가 있는 것을 또 알지를 못합니다. 바다를 건너는 그런 이 새, 바다를 지나보는 새 앞에는 바다 얘기를 해 봤자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 바닷가를 가보지 아니한 사람은 바다가 정말 끝없이 넓다고 하는 사실을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 불법을, 이 대승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실천한 사람이 아니면 불법의 위대성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이 좋다하니까 경을 부지런히 독송을 하고, 염불이 좋다니까 염불을 열심히 하고, 주문이 좋다니까 주문을 열심히 외우고, 또 '무슨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소원을 성취했다, 병이 나았다, 재수가 대통했다'

이러한 식으로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활구참선, 앞도 뒤도 없고 머리도 꼬리도 없고 도대체 어디다 어떻게 손을 내려야 할지 분간할 수 없는 이 활구참선은 그 믿어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정말 믿어지기가 어려운 것이여. 들어도 믿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정말 이 활구참선법이 철저하게 믿어지고 그곳을 향해서 목숨을 바쳐.

내가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하면은 마지막 죽는 그 찰나, 숨 딱! 끊어질 그때까지도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하면서 숨이 딱! 끊어지도록. 이렇게 되어버려야 하거든.

 

'아! 내가 3년을 해도 이렇게 깨닫지를 못하고 아마 내가 이 참선을 잘못한 게 아니냐? 이거 내가 참선에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냐? 나 같은 죄 많은 것이 공연히 진즉부터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부를 것을 괜히 이거 참선 한 것 아니냐? 지금이라도 이것 그만두고 아미타불을 할까? 내가 죽을 날이 멀지 아니한데 아미타불을 불러놔야 숨 끊어지자마자 아미타불이 반야용선(般若龍船)을 가지고 나를 데리러 오실 텐데' 이렇게 생각이 흔들려.

이거 신심(信心)이 철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투철해 버리면 어디에 가서 마음이 흔들릴 것입니까?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고, '중생이다 부처다' 이게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여. 중생이니 부처니 한 것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본래는 똑같은 한 덩어리여.

손바닥과 주먹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 폈다고 해서 그것이 손이 아니고 무엇이며, 주먹을 쥐었다고 해서 별것이냐? 주먹을 쥐었으나 폈을 때나 본래 손인 것이여.

 

또 물이 백 도가 되면은 수증기가 되고, 섭씨 영 도가 되면은 고체가 되는데, 고체가 되어서 얼음이 되었을 때나 그놈이 녹아서 물이 되었거나, 또는 그놈이 수증기가 되었거나, 그 물이 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습성(濕性)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거여.

다만 그때 상황 되어서 기체가 되기도 하고 또 액체가 되기도 하고, 고체가 되기도 한 것뿐이지 물의 본성은 변함이 없는 것이여.

 

이 참선을 한 것은 그 중생이거나 부처거나 성현이거나,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거나 천상(天上)에 가 있거나 어디가 있거나 간에 변함없는 자리, 우리의 본성(本性) 자리를 깨닫는 것이 우리 활구참선의 목적이여.(25분23초~46분48초)

 

 

 

(2)------------------

 

그런데 도(道)를 닦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기 가장 좋은 곳이 이 사바세계다.

 

천당, 참 좋지요.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다 되고, 일체의 괴로움이 없어. '먹고 싶다'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있고, '보고 싶다'하면 그것이 눈앞에 와 있고, '가고 싶다'하면 벌써 그 현장에 가서 있는 것입니다.

일부러 걸어가고, 일부러 무엇을 입을 통해 먹고 그런 게 아니에요. 하나에서부터 백 가지가 한 생각 딱! 내면 벌써 그것이 이루어져 갖고 있는 것이여. 전부가 다 내 마음대로여.

 

그렇게 편하고 좋고 그러나 그 낙(樂) 받느라고 도 닦을 필요도 느끼지도 않고 도도 닦을 수가 없어. 그러니 거기에 있으면 참 기가 막히게 좋은 건 사실이나, 영원히 그곳에 있게 된다면 또 별문제인데.

 

거기는 이 지구보다 대단히 그 시간이 깁니다. 지구의 몇백 년이 거기에 하루 낮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러서 낙(樂)을 받게는 되겠지만 그것도 끝이 있어서, 한도가 있어서 자기가 지은 복만큼 그 낙을 받아 버리면 또 다시 뚝 떨어져서 인도(人道)에 떨어지기도 하고, 축생에 떨어지기도 하고, 또 아수라나 아귀나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 정법을 믿는 사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당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가 봤자 영원성이 없고, 그까짓 좀 편하고 좋으면 뭐하는 거여 그게. 여러분도 편한 생활을 지내보신 분은 알겠지만 별로 재미가 좋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옥이나 축생은 너무 고(苦)가 많아요. 지옥은 너무 고가 많아서 거기서는 또 도를 닦을 수가 없고.

축생은 배불리 먹으면 좋고, 또 다 인간과 같이 이성 간에 새끼도 낳고 모다 그럭저럭 그렇게 사는데, 그건 귀가 뚫리지를 못해 가지고 법문을 들을 수가 없어. 축생계는 항상 공포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것이요.

 

인간세계는 고(苦)도 있고 낙(樂)도 있고 그래도 이 귀가 있어서 정법을 들을 수도 있고, 법문을 들어서 우리도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불리 먹은 것으로써 행복의 구경(究竟)을 삼고, 좋은 옷 입은 것으로써 낙(樂)을 삼고, 명예나 권리 누린 것으로써 출세를 삼고서 그런 정도의 인간밖에는 안되고,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도리를 믿고 실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뽐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짐승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배불리 먹고, 좋은 옷 입고, 호강하고 부귀공명 그런 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믿고 그것을 목표로 하고 일생을 그렇게 살다 말아 버린다면—개도 주인 잘 만나고, 서양 같은 데 태어나면은 개도 참 호강하고 산다고 그럼니다. 다 주인과 같이 한 침대에서 자고, 다 끼니 찾아서 고급으로 먹고, 미장원에도 다니면서 개도 화장 다 합니다. 그러면 그 개가 사람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배부르고, 등 뜨시고, 옷 잘 입고 큰소리치고 사는 것이 인간의 구경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이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지 말고 미국의 개로 태어난다면 그 뭐 천당에 따로 갈 것이 없습니다. 다 차도 맘대로 타고 다니고 비행기도 타고 다니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무엇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냐?

우리는 진리와 하나가 될 수가 있어.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윤회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 그래서 그것을 사람이라 그러고, 그것이 그래서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시고서 내쉬면서 '이뭣고?' 한마디에 생사해탈이 거기에 있고 확철대오 하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시지 말고,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그저 그렇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이 법회가 끝나고 화두 수여식이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해 나가시면 스스로 「아! 과연 이 법이 정법(正法)이고, 이 법이 활구 최상승법이로구나」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지만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지만 이 우주법계가 전부 내 콧구멍으로 다 드나들게 되고, 전부 내 주먹 안에 다 들어오게 되는 것이여. 이 우주법계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46분49초~54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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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〇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 '처음 마음 발할[發心] 때가 문득 정각(正覺)이다. 발심 탁! 할 때가 벌써 바른 깨달음을 얻은 때다' 의상대사가 지은 「법성게(法性偈)」의 한 구절.

*깨달음 ; 각(覺).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義湘 六二五~七0二) 스님이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언 30구(210자)의 게송. 210자를 54개의 각(角 굴절)이 있는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의 게송을 말한다.

*초발심(初發心) ; 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을 처음으로 일으킴.

*정각(正覺) ; (산스크리트어)sambodhi. 삼보리(三菩提)라 음역.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등각(正等覺). 등정각(等正覺). 정등보리(正等菩提).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여래장(如來藏) ; 산스크리트어 tathāgata-garbha 본래부터 중생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가 될 가능성. 중생의 마음 속에 저절로 갈무리되어 있는 여래의 청정한 씨앗. 중생이 모두 갖추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져 있는 여래의 성품. 모태(母胎)의 태아(胎兒)처럼, 중생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부처의 성품.

*식(識) ; 오온(五蘊) 중 하나.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세 번째 지분으로 지각(知覺), 요별(了別)의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알게 하는 정신적 작용이다.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6식설은 그 발생 근거에 따라 6가지 식(識)을 열거 한다.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 등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물질[色] · 소리[聲] · 향기[香] · 맛[味] · 감촉[觸] · 법(法)의 6가지 외부적인 대상인 6경(六境)을 대할 때 생겨나는 6가지 인식작용이 6식(六識)이다.

즉, 눈이 물질을 대할 때 보는 안식(眼識)이 있으며, 귀가 소리를 대할 때 듣는 이식(耳識)이 있으며, 코가 냄새를 대할 때 냄새를 맡는 비식(鼻識)이, 혀가 맛을 대할 때 맛을 감지하는 설식(舌識)이, 몸이 감촉을 대할 때 느끼는 신식(身識)이 있으며, 의(意)가 법(法)을 대할 때 '안다'는 의식(意識)이 있다.

이와 같이, 6근 · 6경 · 6식은 서로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있는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意識)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전오근(前五根), 곧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전5식(前五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은 일종의 감각지각이고, 제6의식(意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지각과 언어를 매개로 한 인식 등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8식설은 앞의 6식설에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한 것이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서, 범부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의식이다. 이 말나식은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번뇌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들을 제거하면 7식이 맑아져서 아공(我空)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제8 아뢰야식은 일반적으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된다. 장식이란 곧 여래를 감추고 있는 식이라는 뜻으로, 비록 중생이 생사 속에 있지만 이 감춰져 있는 여래만은 결코 상실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이 올바로 발현될 때 곧 여래(如來)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제8식에 대한 견해는 불교에 여러 학설이 있다.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하면은 그 식(識)이 바로 지(智)로 변하는 것' ; 전식득지(轉識得智).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식(識)이 지(智)로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의 뜻은 ‘소의(依, basis) 즉 발동근거를 바꾼다[轉]’로 성도(聖道) 즉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智)로 변형시키는 것, 즉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轉)은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득(得)은 획득(獲得)과 성취(成就)를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 세속)의 마음인 8식(八識 - 전오식, 제6의식, 제7말나식, 제8아뢰야식)을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 열반)의 청정한 지혜, 사지(四智)는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제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의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에 해당하는 오염된 제7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제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법(法)의 실상을 묘하게 잘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④성소작지(成所作智) ; 눈·귀·코·혀·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전5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에서.

우리 중생은 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전5식(前五識)과 6식(六識, 意識)과 7식(말나식), 8식(아뢰야식), 이런 식(識)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식(識)으로 해서 업을 짓고, 식(識)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그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이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그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툭!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는데,

 

그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육근, 육경, 육식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지(智)가 딴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이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지(智)로 변하는 것이여.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를 잘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그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 六途)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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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Posted by 닥공닥정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불(佛)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19분 5초)

 

[법문] 송담스님(No.264)—1985년 4월 첫째 일요법회(용264)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하고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디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만산홍록(滿山紅綠)이 개묘체(皆妙體)여. 가득한 산에 붉고 푸른 것, 붉게 피는 꽃과 푸른 이파리가 모두가 다 진리의 체(體)더라.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다.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또한 전부 부처님의 설법이더라.

 

'부처님' 하면, 삼천년 전에 정반왕궁(淨飯王宮)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연상(聯想)을 하고, 또 서방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연상하고, 또 법당에 모셔져 있는 황금으로 개금(改金)을 저순 법당의 등상불(等像佛)을 생각을 합니다마는.

'참 부처님'은 법당에만 계신 것도 아니요, 삼천년 전에 네팔국에 태어나신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셔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신 그 부처님만이 부처님이 아니고, 온 산에 가득한 붉은 꽃과 푸른 이파리가 낱낱이 다 부처님의 모습이더라 그말이고.

 

부처님의 설법, 법문 하면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연상을 하고, 법화경이나 금강경 또는 화엄경 · 반야심경과 같은 이런 문자로 된 경전만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부처님의 '참 설법'은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부처님의 살아 있는 설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데, 봄날이 돌아와서 날씨가 화창한데 봄 졸음이 족해. 엄동설한이 지나가고 해동(解凍)이 되어서 날씨가 화창한데, 마루에 앉았으면은 졸음이 오는데.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다. 졸음이 와서 떠억 비껴 누워서 산새들이 노래하는 그 노래 소리를—가지가지 산새가 파랑새, 노랑 새, 큰 새, 작은 새가 마치 교향악이 울린 것처럼 그렇게 백 가지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데, 떠억 누워서 그 노래 소리를 듣더라 그말이여.

 

이것은 참선(參禪)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한 깨달은 도인(道人)의 한 장면을 게송(偈頌)으로 읊은 것입니다.

 

오늘은 을축년 4월 7일 첫째 일요법회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추웠던 삼동이 지나고 어느덧 4월을 맞이했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이렇게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이 사시절(四時節)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고, 깨달은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시고 미륵불(彌勒佛)이 또 출세하신 모습이며,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쉴 사이 없이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신 모습이지마는,

나를 깨닫지 못한 중생(衆生)의 경지에서는 이 1초 1초와 이 세월의 춘하추동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그러한 상황에 지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째서 깨달은 분상(分上)에는 이것이 모다 설법이요, 부처님이요, 바로 이것이 극락세계요, 적광토(寂光土)인데,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하루가 지나가면 죽을 날짜가 하루 다가와지고, 해가 한번 떴다가 지면 사형 언도를 집행하는 날이 하루 다가서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은 부처님이나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이나 똑같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그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 깨달은 분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진리의 세계에서 극락세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루를 갖다가 그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지내는데,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루하루 지내는 것을 마치 사형 언도 집행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더군다나 오탁악세(五濁惡世) 이 말세(末世)에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우리의 앞길은 암담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주 진절머리가 나고 아무 희망도 없고 그럴 텐데,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고 정법을 만났기에 말세에 태어났으면서 이 오탁악세에 태어났으면서, 온통 온 세계가 도처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하루에면 몇십 명씩 몇백 명씩 죽어가기를 파리 목숨보다도 더 참 허망하게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이러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이 허망한 몸뚱이를 이 세상에 이 시기에 받어 난 것을 너무 다행하고 경행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道理)와 하나가 되는 것이여.

생사를 버리고 영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실천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법인 것입니다.

 

산에 봄이 오면 붉고 누런 꽃이 피고 파란 잎이 피고 한 것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고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면은 그러한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에 출현하신 모습이요, 흐르는 물,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화엄경이요, 법화경이요, 금강경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불법을 만난 김에 기어코 깨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나의 모든 것을 이 한 길에다 바쳐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 자기 자신,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번갈아 가면서 출세를 하신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하고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제도(濟度)가 무슨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듯이 그렇게 건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우리 중생들이 낱낱이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 그것을 스스로 계발(啓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를 확인시켜서 그것을 잘 갈고 닦도록 하면 그것이 바로 중생을 제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진 의원과 같고 또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와 같아서, 약을 일러주면 환자 자신이 그 약을 잘 먹으면 병을 낫을 것이요. 길을 일러주면 그 일러주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거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어진 의원이라 하더라도 환자 대신해서 그 약을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며, 아무리 안내를 잘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걸어가야지, 본인이 걸어가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주안 용화사 이 자리에 오셔서, 이십 성상(星霜)을 한결같이 대자비(大慈悲)의 문을 열어서 정법(正法)을 선양(宣揚)을 하시고 또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10년을 걸쳐서 이 송담이 여기서 법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마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말을 했지만 언제나 그 핵심은 하나이고 그 돌아갈 곳은 한 가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말을 듣고 계십니다마는, 그 듣고 있는 바로 그놈을 스스로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총력(聰力)이 좋고 머리가 좋아서 화엄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법화경을 다 외우고, 금강경을 다 외운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외우는 데만 그쳐 가지고서는 그것은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화엄경과 법화경,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좋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를 해서, 참으로 옳게 이해를 한다면, 거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법은 경을 가르키지 아니하고, 경을 외우게 하지 아니하고, 경을 해설을 해 드리지 아니하면서 언제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 말할 줄 알고, 생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놈을 돌이켜 찾으라 이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이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는 삼천 겁을 계율(戒律)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우는 공덕(功德)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계율을 삼천 겁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운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돌이켜 찾지 아니하면, 그 계율을 지키고 경을 외우는 그 자체는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경을 외우되 바로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경을 읽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 계율을 지키는데 목적이 있고 경을 외우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경을 잘못 외우는 것이고 계율을 잘못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계율이라든지 경은 온전히 자기 자성(自性)을 깨닫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方便)이요, 길이 될지언정 그 자체가 불법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처음~19분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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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 ; 『청허당집(淸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71 ‘상추(賞秋)’ 참고.

*(게송)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71 ‘박상사(朴上舍)의 초당(草堂)’ 참고.

*묘체(妙體) ; 묘한 진리의 체(體).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개금(改金)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

*저순다 ; '다지다(굳고 튼튼하게 하다)'의 사투리.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음역어는 ‘실다(悉多)’ ‘실달(悉達)’ ‘실달다(悉達多)’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유유자적(悠悠自適 멀·한가로이 유/스스로 자/가다·즐기다·專一하다 적) ;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한가로이[悠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自適].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총력(聰力) ;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계율(戒律)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말미암은 모든 악(惡)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

계는 좋은 습관이나 도덕적 행위의 뜻으로 모든 불자가 지켜야 할 불교도덕이며, 율은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깨달음의 세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 교단의 통제 규범.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불(佛) 불법(佛法)2016. 5. 14. 06:12

불(佛) (No.666)—부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목숨 바쳐서 부처님, 역대조사가 용맹정진을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정진을 해야 한다.

 

*()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부텨라고 읽히고 말이 점차 변하여부처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 성취한 이를 말한다.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불교(佛敎).

 

(11분 6초)

 

[법문] 송담스님(No.666)—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어(용666)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태자로 태어나셔 가지고 사문유관(四門遊觀) 하시다가 정거천인(淨居天人) 게송을 들으시고 그리고서 성을 넘어서 출가하셔 가지고 육년 고행을 하시고 마침내 십이월 초팔일 동천(東天)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성불(成佛) 하신 데까지,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인도 말로 붓다(Buddha) 말인데, 붓다란 말은각자(覺者)’, ‘깨달으신 성현이다, 그런 뜻인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셔 가지고 깨달으신 진리를 열반하실 때까지 사십구 동안을 팔만사천법문으로써 우리 중생들에게 법문(法門) 설해 주셨는데,

부처님의 위대함은 게송으로 찬양하고 억만년을 두고 찬양을 해도 부처님의 위대함과 우리 중생을 위하신 자비와 중생을 위해서 설하신 지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말로써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써 삼천년을 두고 사월 초파일을 행사를 진행하는데, 절절이 등불을 켜고 육법공양(六法供養) 올리고 온갖 다양한 행사로써 초파일을 봉축을 하는데 하나의 연례행사로써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땅히 불제자(佛弟子)로서는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고, 찬양하고도 더이상 수가 없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되지마는 우리는 찬양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업장이 소멸이 되고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산승(山僧) 믿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서 우리의 소원을크고 작은 사바세계에 있어서 유루복(有漏福) 성취하는 데에 그쳐서는 진실로 정법을 믿는 불자라고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중생이 만약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삼세(三世),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 수와 같은 그런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속에서부터서 능동적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라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하는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五祖) 홍인 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을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를 하고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법을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沙羅雙樹) ()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써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줬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길로 안내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유교경(遺敎經) 있는 말씀과 오조 스님께서 인용하신 경전의 말씀과 오조 스님의 말씀을 통합해서 생각해보건대우리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이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이렇게 지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좋은 경전을 가지고 있고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CD롬으로 그것을 완성을 해가지고 컴퓨터를 통해서 가정에서도 경전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으로써 교리로써만 알고, 학문으로써만 연구하고, 실지로 그것을 깊이 믿고 실천을 해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를 못한다면 좋은 법문도 휴지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지정했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서 중생이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게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생사해탈로 나아가는 길잡이는 될지언정 직접 우리가 안내에 의해서 목숨 바쳐서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고행 수행하듯이, 역대조사(歷代祖師)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정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생사해탈을 못하고 것입니다.(535~164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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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싯다르타 태자 때에 가비라성의 4문으로 나가 다녔는데, 동문 밖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 밖에서는 병든 이를 보고,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 밖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 수행에 뜻을 두었다.

*정거천인(淨居天人) ; 정거천(淨居天) 사는 성자, . 그냥 정거천(淨居天)이라고도 .

*정거천(淨居天) ; 불환과(不還果) () 성자가 살아야 곳으로 색계 제사선천(色界第四禪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 통틀어 일컬음. 단지 성인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오정거천(五淨居天)이라고 . 여기에 사는 성자, 신들까지도 정거천(淨居天)이라고 한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육법공양(六法供養) ; , , , 과일, , 여섯 가지 중요한 공양물을 말한다. 향은 해탈향(解脫香)이라고 해서 해탈·공덕을 상징하고, () 반야등(般若燈)으로 지혜·광명을 상징하고, 꽃은 만행화(萬行花) 수행·장엄을 상징하고, 과일은 보리과(菩提果) 깨달음을 상징하고, 차는 감로다(甘露茶) 부처님의 가르침의 공덕과 이익을 상징하고쌀은 선열미(禪悅米) 수행의 기쁨을 상징한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최상승론(最上乘論) ; 1. 5 홍인대사(弘忍大師)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 확인하여 지키는 수심(守心) 강조한 저술.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바른길 ; ①이치에 맞고 정당한 참된 도리. ②굽지 않고 곧은 .

*유교경(遺敎經) ;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설한 최후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