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대장부2021. 4. 19. 16:47

대장부(No.198)—(게송)得樹攀枝未足奇 | 화두 의단독로가 될때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야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8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198)—19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 (용198)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한디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요, 나무를 얻어서 그 가지를 붙들고 떨어지지 아니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것은 족히 기특한 것이 되지를 못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그 낭떠러지에 그 붙잡고 있던 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지고 안 떨어지려고 매달려 있던 그 손을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탁! 놔 버릴 때 바로 대장부(大丈夫)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까 두려워서 나무가지를 붙잡고 그 안간힘을 쓴다’하는 것은 무엇을 표하는 말이냐 하면 한 마음, 일심을 얻어 가지고 그 일심을 놓치지 아니할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 데에다가 비유를 한 것이여.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거나,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러한 주력을 하거나 그 어떠한 자기 나름대로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한 어떤 한 경계를 맛보아 가지고, 그 경계를 놓치지 아니할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데,
조끔 시끄러우면 신경질을 내고, 조끔 복잡하면 그걸 피하려고 하는 이유가 한 마음 경계를 얻어가지고...

그 시끄럽고 고요한 것, 복잡하고 편안한 것 그러한 경계에, 그러한 것에 집착을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용감하게 그놈을 놔 버려. 그 한 곳마저도 놔 버릴 때에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이여. 물은 차고, 밤은 냉랭(冷冷)해서 고기를 찾기가 어려워. 고기란 놈이 저 깊은 물 밑 속에 가서 가만히 숨어 버렸기 때문에 고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말이여.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빈 배에는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일체 경계(境界)에 집착을 해도 못쓴다. 또 경계를 버리려고 하지도 말아라’ ‘어떠한 경계를 다달았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해라’
이렇게 법회 때마다 그렇게 강조를 하고 주장을 하고 설교를 해왔는데, '한 마음마저도 놔 버려야 한다'

‘그러면 화두를 들지 말고 놔 버리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려지면, 어찌 화두에 집착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가 안 되고, 공부를 바른길을 찾지를 못하니까, 자꾸 일체 경계에 다다러서 ‘그 경계를 즉(卽)해서 화두를 들어라’ ‘화두를 놓치지 말라’ 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는 없었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게 되면, 마침내는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현전(現前)을 해서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경계가 시끄럽거나 편안하거나, 조용하거나 복잡하거나, 전혀 그러한 것에 상관이 없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무엇을 집착을 하며, 무엇을 피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될 때 까지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서, 법문도 열심히 듣고 화두를 올바르게 거각(擧却)을 해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하도록 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피나는 노력 없이 어떻게 그러한 경계가 올 것이냐 이말이여.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일분일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일분일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27분21초~35분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그 낭떠러지에 그 붙잡고 있던 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지고 안 떨어지려고 매달려 있던 그 손을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탁! 놔 버릴 때 바로 대장부(大丈夫)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현애살수(懸崖撒手 매달리다·매달다 현/벼랑·낭떠러지 애/놓다 살/손 수) ; '벼랑[崖]에 매달린[懸] 손[手]을 놓다[撒]'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나아간다)와 같은 뜻.

참선할 때 어언(語言) · 지견(知見) · 정식(情識) · 분별(分別)을 초월하여 터럭만큼도 의지하여 기대지 않고 터럭만큼도 유예(猶豫 망설여 일을 실행하지 아니함)하지 않는 모양을 나타냄. 모든 집착 · 분별 경계를 놓아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 희로애락 · 빈부귀천 · 시비이해 · 삼독오욕 · 부모형제 · 춘하추동 ·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 · 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觀)한다 ; 화두를 들어 나가는 데에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하는 것을 '화두를 관(觀)한다'고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78.08.27)
잠시도 화두를 떠나서는 우리의 공부는 생각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화두는 우리의 앞에 역력(歷歷)하고 또록또록하게 나타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 싱겁고 맛없는 한마디 말이지마는 계속 들고 또 들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생각한다’고 하면은 조금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나가는 데에는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이것을 생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라 하면 이리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인데, 이 화두를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더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하는 그런 이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관(觀)’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볼 관(觀)’자.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볼 관(觀)’자. “관(觀)하라”

이렇게 ‘본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46분54초~48분26초)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