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포교2019. 7. 24. 06:43

포교(布敎) (No.109)—참나 깨닫기 위한 진실한 수행이 자리(自利) 이타(利他)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이것이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수행법이며, 생활이며 포교.

 

*포교(布敎 널리 알리다 포/가르침 교) ; 불교의 교법(敎法)을 널리 세상에 알리는 일. 홍교(弘敎), 선교(宣敎), 전교(傳敎)라고도 한다.

 

(10분 16초)

 

[법문] 송담스님(No.109)—1979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2.4)(용109)

 

언젠가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옴마니반메훔'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다 좋은 염불이요 주문이지만 '이 무엇고?' 한번 거각(擧却)하는 것이 '관세음보살, 옴마니반메훔' 육백만 번하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드는 곳에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면 그것은 바로 팔만대장경을 다 읽고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긴 것과 똑같은 이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많은 경을 읽으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아무리 많은 대소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을 다 읽으신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읽으신다면 결국은 '이뭣고?' 참선을 할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읽지 아니하고도 이 말씀을 정말 뼛속 깊게 믿고 느끼고 그리고 실천을 하신다면 더욱 좋은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하라고 권고를 하면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경전도 읽어보지를 못했고 절에도 별로 다니질 안 해서 뭘 좀 알아야 하지, 아무것도 몰라가지고 무슨 참선을 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무슨 읽을 책을 좀 구해달라고 이러한 부탁을 하시는 분들 가끔 만납니다.

 

많이 알아 가지고, 불교에 교리에 대해서 모다 많이 알아야만 참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저것을 많이 알아가지고 참선을 잘 못한 그런 분도 많이 있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경도 별로 읽어 보지를 못하고 다못 시키는 대로만 고지식하게 진실하게 하는 분이 오히려 더 공부를 잘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읽고 생각하고 알고 그래 가지고 교리에 대해서 '뭐?'하면 줄줄줄줄 줄줄줄 아주 거 잘 해설을 하고 말을 하고 그리고 그것으로써 스스로도 흐뭇하게 생각하고, 많이 불교에 대해서 자기가 참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있습니다.

 

물론 불교에 대해서 후배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교는 좋다고 하는 것을 얘기함으로써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법을 믿겄게 하는 데에는 하나의 좋은 재료가 될 수가 있고 방편(方便)이 될 수가 있지마는, 자기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서는 그러한 것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공부를 잘한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공부에 장애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물론 불법은 자기 한 사람만 좋으면 그만인 게 아니고—자기만 옳게 믿고 닦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도 이러한 좋은 불법을 믿고 실천하게 하도록 해 주기 위해서 손을 이끌어 주고 권고하고 이렇게 하는 것도 큰 복을 짓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좋고 남도 이롭게 하는 대승불교요,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여러분들께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어서 참선을 하도록 서로 이끌고 권고하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공양미(供養米)라든지 성금을 갔다가 부처님께 올리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그런 것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불법을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 공덕이 몇십 배 더 수승하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 밥을 주고 돈을 주고 옷을 준 그런 물질적인 공덕 짓는 것은 한정이 있어. 언젠가는 거기에 해당한 복을 받고 나면 그것으로써 끝이지만,

말로써건, 자기의 마음으로써건 또는 행동으로써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어 가지고 자기를 인연해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도록 해 준다면 그것은 영원한 무루(無漏)의 복(福)을 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공부를, 자기 마음 닦는 화두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계속 동분서주, 그런 복을 짓기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이루어질랴면 오면서 가면서, 일을 하면서 차를 타면서 화두를 들고 가고, 화두를 들고 오고 이렇게 해서 자기 생활이 완전히 화두를 중심으로 해서 화두 관조(觀照)하는 것을 여의지 아니하면서 생활을 하게 되면 자기도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향상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에 모든 재앙과 장애와 업(業)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지어서 받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정법으로 돌려서, 참나 깨닫기 위한 진실한 수행이 바로 생활이 될 때에 그 생활은 한 걸음 내디디고 한 손 올렸다 내린 모든 자기의 동작, 눈 한번 감았다 뜨고 입으로 말하고 밥 먹는 모든 동작이 고대로 참된 수행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같이 생활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 그러한 행동, 그러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들은 다른 사람에게 많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는 조금도 옛날보다 더 향상되는 것이 없이 입으로만 '참선을 해라, 정법을 믿으라' 아무리 권고해 봤자 별로 그렇게 그 사람이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 먼저 철저히 정법(正法)을 믿고 일상 생활 속에서 아주 진실하게 수행을 함으로써 '그분의 말과 마음가짐과 모든 행동이 그 전보다 더 모든 점에 있어서 향상이 되고 개선이 되야 한다'고.

나아가서는 그 사람 몸에서는 코로 맡을 수 없는 미묘한 향내가 풍기게 될 때에 주변 사람들은, 더욱이 가정에 모든 사람들 이웃에 모든 사람들은 자연히 그 사람을 따르게 되고 믿게 되고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순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수행법이며, 생활이며 포교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20분46초~31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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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 ; 십이부경(十二部經)은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그 경문의 서술 형식 또는 내용을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팔만사천법문.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대승교(大乘敎) : [범] Mahayana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한다。큰 원(願)과 큰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그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이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 온갖 물질과 일(森羅萬象)이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다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공양미(供養米) ; 공양에 쓰는 쌀. 공양으로 바치는 쌀.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는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