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법문(듣는 법)2020. 3. 3. 14:09

법문(No.345)—부처님의 법문은 원음(圓音) | 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난 조개 이야기, 『善見律毘婆沙』 | 인신난득 불법난봉.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11분 12초)

 

[법문] 송담스님(No.345)—1988년 1월 첫째일요법회(88.01.03) (용345)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선바국(瞻婆國)이라는 나라에 가셨습니다. 그 선바국 나라에 가라지(迦羅池)라고 하는 큰 못이 있었는데 그 못가에서 여러 대중을 향해서 법문(法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 못 가운데에 살고 있는 큰 조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조개가 부처님께서 법문하시는 그 소리를 듣고서 그 연못 밖으로 기어나왔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은 원음(圓音)이라, 한 말씀으로 설하시되 모든 중생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그 부처님의 설법을 다 들을 수가 있습니다.

보살(菩薩)은 보살대로 듣고, 아라한(阿羅漢)은 아라한대로 듣고, 중생은 중생대로 듣고, 축생은 축생대로 다 듣고, 하늘나라 사람들은 하늘나라 사람대로 다 듣는 것입니다. 시방세계(十方世界)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의 설법을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원음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 가라지라고 하는 못 속에 살고 있는 큰 조개도 그 부처님의 음성소리가 못 속에 울리니까 거기서 못 밖으로 기어나와 가지고 그 못 밖에 풀밭에 풀섶에 그늘에 딱 멈추어서 입을 떡 벌리고서 법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목동이, 그 소를 치는 목동이 작대기를 들고서 소를 몰다가 그 목동도 그 부처님 법문, 많은 신도들이 운집(雲集)을 해가지고 앉아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으니까 아! 자기도 가까이 가서 그 법문을 들어야겠다.

 

이래 가지고 가 가지고 그 풀섶에다 자기가 들고 있는 그 지팽이를 탁! 꽂아 놓고 그리고서 법석(法席)에 나아갈려고 했는데, 그 작대기를 탁! 풀섶에 꽂은 것이 하필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나와 있는 조개, 그 조개가 입을 떡 벌리고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는 그 조개 벌리고 있는 데다가 그 작대기를 탁! 꽂았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 그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여간 작대기를 꽂아도 그 깨지들 않을 텐데 입을 벌리고 있는 데다가 탁 꽂으니까 그 조개가 깩 소리도 못하고 그냥 죽고 말았습니다.

 

그 조개는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가 죽었습니다. 그 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功德)으로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습니다.

도리천에 태어나 가지고 그 한량없는 복을 받고 그 도리천에 12유순(由旬)이나 되는 큰 궁전, 가로 세로가 12유순이나 되어. 그 12유순은 굉장히 큰 아주 그 거리의 단위인데, 그 12유순이나 되는 그 넓고 큰 궁전에서 천녀들과 그 노래를, 천녀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 잘 먹고 잘 입고 그 낙(樂)을 받고 있는데.

 

그러면서 그 천안(天眼)으로써 자기가 과거에 어떠한 연(緣)으로 해서 이렇게 도리천에 태어나 가지고 이런 천당의 낙을 받고 있는가 하고 전생에 자기 몸뚱이를 따악 관(觀)을 해 보니까,

전생에 자기가 한 마리의 조개로써 이 선파국의 가라지라고 하는 못에서 살고 있다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나왔다가 그 목동에 작대기에 꽂혀서 죽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가 죽기는 했지만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그 공덕으로 내가 이런 도리천에 태어나서 이러한 참 이 한량없는 낙(樂)의 보(報)를 받게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그 궁전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부처님께서 설법을 해 주셨습니다.

 

그 조개의 후신(後身)인, 천당에서 내려온 그 조개를 향해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니까 바로 언하(言下)에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환희용약(歡喜踊躍) 해 가지고 다시 도리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희(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라고 하는 경(經)에 이러한 설화가 있습니다.

 

이 설화를 통해서 그러한 조개도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그 공덕(功德)으로—보통 부처님의 설법을 듣다가 죽지 않고 그냥 어떠한 사람의 작대기에 꽂혀서 죽었다면 원한심을 품고 세세생생에 서로 원수를 갚고 원수를 또 받고 하면서 악도(惡途)를 윤회(輪廻)할 텐데,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던 그 인연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고, 다시 또 천상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그 너무너무 감사하니까 부처님께 그 감사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내려와서 예배를 드리고 공양을 올리고서 부처님께서 법문을 해 주셔 가지고 성인(聖人)의 그 수다원과를 증득을 하게 되었어.

 

한 마리의 조개도 법문을 의지해서 그렇게 깨달랐거든, 하물며 우리 사람!

우리 사람은 다른 중생들, 다른 짐승들보다는 훨씬 여러 가지 여건이 도(道)를 닦기 좋게 우리는 타고난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났던 이 조개는 다행히 참,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또 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지만, 다른 어떠한 유루복(有漏福)을 지어서 천상에 올라가면 계속해서 천상에서 복을 받느라고 여간해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불법에 귀의(歸依)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의 깊은 인연이 있어서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금생에 또 이 불법(佛法)에 귀의해서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 몸을 받아서 정법(正法)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참 희유(稀有)한 것입니다. 저 천상에서 바늘 하나를 떨구어 가지고, 이 지상에 겨자씨를 향해서 바늘을 떨구어 가지고 그 바늘이 겨자씨에 딱 꽂힌 만큼 그만큼 이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또 눈먼 거북이가 천년 만에 한 번씩 바다 위에 떠올라 가지고 그때 마치 구멍이 뚫린 큰 고목나무 등걸을 만나 가지고 거기에 몸을 의탁해 가지고 숨을 쉬고서 들어가는데, 그 천년 만에 떠올라 가지고 하필 떠오른 그곳에 구멍 뚫린 고목나무 둥치를 만난 만큼 그만큼, 그보다도 더 어렵다 이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거북이는 눈먼 거북이입니다. 눈이 떠 있는 거북이도 그 고목나무를 만나기가 어려울 텐디, 눈먼 거북이가 더군다나 어떻게 그 나무를, 지척(咫尺) 간에 나무가 있은들 어떻게 그것을 붙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람으로서 불법을 만났으니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도(道)를 열심히 닦지 아니하고 또 도를 깨닫지를 못하고 그렁저렁하다가 이 몸뚱이를 잃게 되면 천당 아니면은 지옥이요, 그렇지 않으면 축생에 떨어지고 다행히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또 불법을 만나게 될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12분59초~24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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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난 조개 이야기 ;

[참고]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제4권.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한역(漢譯) | 동국역경원.

 

물었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요, 축생의 스승은 아닙니까? 옛날 여래가 세상에 계시면서도 축생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라 합니까?"

 

수다라경(修多羅經)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부처님은 첨파국(瞻婆國)에 계시면서 가라(迦羅) 못가에서 첨파국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이때 못 안에 무명조개[蛤 대합조개] 하나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를 듣고는 기뻐하여 곧 못에서 나와 풀뿌리 아래에 들어갔습니다.

 

이때에 어떤 한 소를 치는 사람[牧牛人]은 대중들이 둘러서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있음을 보고는 부처님에게 가서 법을 들으려고 하여 지팡이로 땅을 찌른 것이 무명조개 머리에 잘못 닿았습니다. 무명조개는 곧 목숨이 끊어져서 도리천에 나아 도리천왕이 되었으니, 그 복의 과보 때문이었습니다. 궁전의 세로와 너비는 바로 12유순이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은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기녀들의 오락 소리를 보고 깨달은 뒤에 곧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앞서 축생이었는데 무슨 인연 때문에 이 하늘 궁전에 태어났을까?'

곧 하늘 눈[天眼]으로 자세히 살피니, 앞서 못가에 부처님 설법을 들은 이 공덕 때문에 이 과보를 얻었기에 무명조개 천인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에게 가서 닿아 땅에 엎드려 발아래 예배하였습니다.

 

問曰 佛何以獨爲天人師 不爲畜生師耶 昔如來在世亦爲畜生說法 何以獨稱爲天人師

修多羅經說 爾時佛在瞻婆國 於迦羅池邊 爲瞻婆人說法 是時池中有一蛤 聞佛說法聲歡喜 卽從池出入草根下 是時有一牧牛人 見大衆圍遶聽佛說法 卽往到佛所 欲聞法故以杖刺地 誤著蛤頭 蛤卽命終生忉利天 爲忉利天王 以其福報故 宮殿縱廣正十二由旬

於是蛤天人 霍然而悟 見諸妓女娛樂音聲 悟已尋卽思惟 我先爲畜生 何因緣故生此天宮 卽以天眼觀 先於池邊聽佛說法 以此功德得此果報 蛤天人卽乘宮殿 往至佛所頭頂禮足

 

부처님은 아시면서 일부러 '너는 어떤 사람인데 갑자기 나의 발에 예배하고 신통ㆍ광명ㆍ상호가 견줄 데 없이 여기를 환히 비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명조개 천인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옛날에 무명조개 몸이 되어

물속에서 먹이를 찾다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 듣고

나와서 풀뿌리 밑에 있었습니다.

 

어떤 소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팡이를 가져와서 법을 듣다가

지팡이로 저의 머리를 찔렀으므로

목숨을 마쳐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은 무명조개 천인이 말한 게송으로 사부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셨습니다. 이때에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불도의 자취를 얻었고, 무명조개 천인은 수다원 과위를 얻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이 도의 과위를 얻고 기뻐하며 웃음을 머금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천인사라 합니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 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攙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於是蛤天人得道果已 歡喜含笑而去 故稱爲天人師

 

[참고] 『법원주림(法苑珠林)』 제17권 「제7 경법편(敬法篇)」 ’제3 청법부(聽法部)‘ 서명사(西明寺) 사문(沙門) 석도세(釋道世) 지음 | 동국역경원.

 

『선견율론(善見律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첨바라국(瞻婆羅國)의 가라못[迦羅池] 가에 가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못에 있던 대합조개 한 마리가 부처님께서 못가에서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가 법을 듣고 있었다.

그때 또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앉아 대중을 위해 설법하시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에게로 나아가 설법을 들으려고 지팡이를 땅에 꽂다가 잘못해 조개의 머리를 찔렀다. 조개는 곧 그 자리에서 죽어 도리천에 났다. 그 복의 과보로 그 궁전의 가로 세로가 12유순이 되었다. 그는 여러 천녀들과 향락하다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

 

善見律論云 昔佛在世時 到瞻婆羅國迦羅池邊 爲衆說法 時彼池中有其一蛤 聞佛池邊說法之聲 卽從池出 入草根下 聽佛說法 時有一人持杖放牛 見佛在坐爲衆說法 卽往佛所 欲聞法故 以杖刺地誤著蛤頭 卽便命終 生忉利天 以福報故 宮殿縱廣十二由旬 與諸天女 娛樂受樂 卽乘宮殿 往至佛所 頭頂禮足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짐짓 물으셨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갑자기 와서 내 발에 예배하며 신통과 광명과 상호가 비할 데 없어 이 세간을 환히 비추느냐?"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저는 지난 세상에 대합조개로서

물 속에서 먹이 찾고 살다가

부처님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를 먹이는 어떤 사람이

지팡이 들고 법을 들었는데

지팡이 꽂다 저의 머리 찔러

저는 죽어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조개였던 하늘 사람의 게송으로 사중(四衆)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도의 자취를 보았으며, 그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수다원과(須陁洹果)를 얻어 합장하고 떠났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劖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合掌而去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부처님 ; 불(佛).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각자(覺者)·각(覺)이라 번역.

①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우주의 본성이나 참모습을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 청정한 성품을 깨달은 주체. ② 진리 그 자체. 우주 그 자체. ③ 석가모니.

*원음(圓音) ; 치우침 없는 원만한 음성. 들을 수 없는 이가 없는 음성. 모든 유정이 제각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부처님께서 한 음성[一音]으로 일체법을 설하실 때,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평등하게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풀섶 ; '풀숲(풀이 무성하게 꽉 들어찬 곳)'의 사투리.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〇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도리천(忉利天) ; 욕계에 있는 육욕천(六欲天)의 하나. 도리(忉利)는 33이라는 뜻, 천(天)은 신(神)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 33신(神)들이 사는 곳.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이 수미산인데, 이 수미산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왕인 제석(帝釋)이 있고 사방의 봉우리에 각각 8신(神)이 있어 33신.

*유순(由旬) ; 산스크리트어 yojana(요자나)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의 단위.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서 소유순은 40리, 중유순은 60리, 대유순은 80리인 세 가지가 있다.

*연(緣) ;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의 음사(音寫). 예류(預流) · 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 · 입류라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 · 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 · 예류향(預流向)이라 함.

초기불교에서 - 성문(聲聞)으로서 - 해탈하는 길은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 ; ①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 · 계급취견(戒禁取見) ·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곧 분별기(分別起)를 말함.

*환희용약(歡喜踊躍 기쁠 환/기쁠 희/뛸·춤출 용/뛸 약) ; 기뻐서 뛰는(춤추는) 것. 마음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환희(歡喜)이고, 그것이 형태나 동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용약(踊躍)이다. 수행 또는 문법(聞法)에 동반되는 기쁨. 기뻐서 힘이 솟음. 대단히 기뻐하고 있는 모양.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 남제(南齊)의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한역. 18권 『선견론(善見論)』 · 『비바사율(毘婆沙律)』 · 『선견비바사율(善見毘婆沙律)』이라고도 한다. 소승 율부(律部) 5대 논서 중 하나로서 스리랑카 상좌부에서 전수된 율장에 대한 주석서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4분 51초)

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우리는 이 사람 몸을 받아서 정법(正法)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참 희유(稀有)한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희유(稀有 드물 희/있을 유) ; 드물게[稀] 있음[有].

*등걸 ; 나무의 줄기를 베어 내고 남은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지척(咫尺 여덟 치·가깝다·길이 지/자·길이 척) ; 길이가 8치[咫 3.03c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 아주 가까운 거리.

 

Posted by 닥공닥정
ㄱ/깨달음2020. 3. 1. 12:00

깨달음(No.345)—깨달음이라는 것은 알고 모르는 데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 누구든지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밖에 없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5분 34초)

 

[법문] 송담스님(No.345)—1988년 1월 첫째일요법회(88.01.03) (용345)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이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잘 들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활구참선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마는.

 

그 스승은 대강사(大講師)로 일생을 경(經)을 보고 경 공부만 하는 스승이고, 그 상좌(上佐)는 걸망을 짊어지고 선방에 나가서 참선을 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은사(恩師) 스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스님이 고령 신찬선사(古靈神贊禪師)인데, 여러분께서 방금 들으신 바와 같이 그 상좌로 인해서 그 스승이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법(法)을 청(請)해 가지고 상좌의 법문을 듣고서 스승이 깨달은 그러한 법문입니다. 끄터리 부분을 조금 마치지 못하고 녹음이 끊겼습니다마는.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학식이 많고, 경을 많이 보고 뭣을 많이 안다고 해서 깨달을 수가 있고 또 경을 보지 아니하고 무식하다고 해서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깨달음은 학식, 지식에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많고, 많이 배우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식에 지내지 못하고, 알음알이에 지내지 못하고,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런 알음알이, 알고 모르는 데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누구든지 올바르게 공부하면,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도 「뭘 밖에서 보물을 찾는다던지, 돈을 재산을 구한다던지, 명예나 권리를 구한다던지 이런 것은 아무리 하려고 해도 혹 되기도 하고 혹 안되기도 하고 그렇지만, 내게 있는 나의 자성(自性)을 찾는 이 참선(參禪)은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되고야만 만다」 이러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비단 조실 스님의 법문뿐만이 아니라 삼세(三世)에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한결같이 이것을 증명을 하시고 모범을 보여주시고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해서 3년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이렇게 맹서를 하신 조사(祖師) 스님도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을 너희들은 이 말을 믿지 아니하면 바른 말씀을 믿지 않는 죄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호랑이에게 물려갈 것이고, 내가 만약에 추호라도 거짓말을 했다면은 나는 세세생생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참 무서운 말씀을 하신 조사도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하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열심히 해야 한다'

열심히 하되 올바르게 하지 못하면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고, 또 올바르게 하기는 하되 열심히 하지 아니하면 그것도 꼭 깨달을 수 있다고 보증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데에는 첫째 올바르게 하고, 둘째에 목숨 바쳐서 열심히 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갖추어야만 되는 것이다.(7분25초~12분5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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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스승이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법(法)을 청(請)해 가지고 상좌의 법문을 듣고서 스승이 깨달은 그러한 법문입니다' ;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30~131 역주. (가로판 p126~127) 『전등록』 제9권, 『오등회원(五燈會元)』 제4권, 복주고령신찬선사(福州古靈神贊禪師).

고령 신찬선사(古靈神贊禪師)가 행각을 하던 중 백장(百丈) 선사를 만나서 깨달은 후에 본사로 돌아왔다.

은사 스님이 목욕하며 때를 밀게 하니, 신찬 선사가 등을 만지며 이르되 「좋은 불당(佛堂)에 부처가 성스럽지 못하다」하거늘 스승이 돌아보니, 신찬 선사가 이르되 「부처 비록 성스럽지 못하나 능히 방광(放光)은 할 줄 아는구나」하였다.

 

또 은사 스님이 경을 볼 때에 벌이 창에 와 나가려 하거늘, 신찬 선사가 보고 송(頌)을 읊되,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鑚故紙  何日出頭期

'빈 문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창문에 부딪히니 어리석구나. 백 년을 옛 종이(故紙 경전)를 비벼댄들 어느 날에 나갈 기약이 있으리오?'

 

은사 스님이 경을 놓고 묻되 「네 행각하야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신찬 선사가 이르되 「백장화상(百丈和尙)의 가르치심을 받아 이제 스님의 은덕을 갚고저 하옵니다」

 

스승이 재계(齋戒)하고 신찬 선사를 청하야 설법하라 하거늘, 신찬 선사가 법좌(法座)에 올라 이르되,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眞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영광(靈光)이 홀로 비취어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나며 체(體)는 진상(眞常)이 드러나 문자에 걸리지 아니하고, 진성(眞性)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하니 다만 망연(妄緣)을 여의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라'하니, 스승이 그 말에 깨달았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삼세(三世) : 과거와 현재와 미래. 또는 전세(前世)와 현세(現世)와 내세(來世).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六O二 ~ 六七五)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一O四五)’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一二三一 ~ 一二九八 또는 一三O八) (용화선원刊) p97-99. (가로판 p95-96)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一二三八 ~ 一二九五)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은산철벽2020. 2. 29. 18:57

 

 

은산철벽(No.345)—(게송)正宗消息沒滋味~ | 공부가 되니 안되니 따지지 말고, 나도 본래 깨달라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고 목숨 바쳐서 정진해야.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 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直面)하여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거기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킴.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어리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처쑤셔박는 것처럼,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근기(根機)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한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따질 것이 없다.[송담스님(No.577) 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7~158 에서.(가로판 p150~151)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7분 9초)

 

[법문] 송담스님(No.345)—1988년 1월 첫째일요법회(88.01.03) (용345)

 

정종소식(正宗消息)은 몰자미(沒滋味)헌디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니라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종소식(正宗消息)이 몰자미(沒滋味)헌디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라.

정종(正宗) 소식(消息)! 불법에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확철대오하는 이 정법 소식은 몰자미(沒滋味)여. 아무 자미(滋味)가 없다 그말이여.

 

왜 자미가 없냐?

알아 들어가는 것이 없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고, 이로(理路) 어로(語路)가 끊어졌고. 이렇게 공부를 해 가니 보이는 것도 없고 알아지는 것도 없고 나타나는 것이 없어. 그래서 얻은 바가 없어. 그러니 자미가 없을 수밖에는 없다 그말이여.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다. 여하약하(如何若何)를 쓰지를 안 해.

'공부가 되느니 안되느니, 이렇게 해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인가, 깨달을 수가 없을 것인가, 참으로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이 공안(公案)을, 화두(話頭)를 타 가지고 참선(參禪)을 하는데, '이 화두라 하는 것이 과연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면은 그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그 공안에 참 도리를 깨닫는다' 그러는데,

 

이거 이론으로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이고, 가르켜 줄라야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라야 배울 수도 없는 것인데, 이것 이 문제 자체가 이론으로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이라면, 따져서 알 수 없는 이 영원히 풀 수 없는, 이 본래 대답이 있을 수가 없는 이러한 공안,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은 거기에서 망상이 끊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져서 그러라고 이것을, 이 풀 수 없는, 원래 대답이 없는, 그 해답이 없는 그런 문제를 주어가지고 우리를 골탕먹이는 것이 아니냐? 이것 공연히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

 

이래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스스로 번뇌심(煩惱心)을 내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을 내. 이런 것이 그러지를 말아라 그거거든.

여하약하에 생각을 쓰지를 말고 다못 아주 '죽을 사(死)'자를 이마에다 써 붙이고, 되고 안되고 한 것도 따지지 말고, 깨닫고 못 깨달은 것도 따지지 말고서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다. 은(銀)! 은으로 된 산과 쇠로 된 벽, 은산철벽을 갖다가 타파해 버려라 그거거든.

 

은산철벽이 주먹으로 쳐서 무너질 것이냐? 발로 차서 무너질 것이냐? 메겡이로 쳐서 그것이 무너질 것이냐?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 한 것을 따지지 말고 온 몸을 갖다가 몸과 목숨을 갖다가 거기다가 다 들어서 부딪쳐라. 아주 죽기를 각오하고 갖다가 이 전신을 거기다가 던져라 그거거든.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과 공부가 잘되고 안된 것과 내 힘이 과연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인가, 못 깨달을 것인가?

내가 이 정말 깨달을 만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면은 내가 목숨을 바치고 청춘을 바쳐서 공부를 한다 하지만, 내의 숙세(宿世)에 닦은 그 근기(根機)가 해 봤자 안될 그러한 그릇 밖에는 안된다면 차라리 참선을 하지 말고, 경을 읽던지 염불을 하던지 차라리 그런 것이 낫지 않겠느냐?'

 

목숨 바쳐 해 보지도 않고서 스스로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친 사람이 어찌 그럴만한 힘이 있은들 목적을 달성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공부는 되고 안되고, 여하약하를 따지는 것이 아니여.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깨달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원래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는 사실, 나도 원래 본각(本覺)이다, 본래 깨달라 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확신을 하고서 목숨 바쳐서 나의 모든 것을 다 거기다가 버림으로써 은산철벽이 무너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생사(生死)의 큰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처음~7분2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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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淳長老'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정종(正宗) ; 석가세존으로부터 대대로 조사(祖師)들이 연면(連綿)하여 바르게 전해온 바른 종지(宗旨,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올바른 가르침. 선종에서 자기의 종지(宗旨)를 가리켜 말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자미(滋味 불을·증가할·맛있을 자/맛 미) ; ①좋은 맛[味]을 불어나게 함[滋]. ②맛. ③재미. ④기분. 심정. 감정.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공안(公案, 話頭)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 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直面)하여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거기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킴.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어리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처쑤셔박는 것처럼,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근기(根機)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한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따질 것이 없다.[송담스님(No.577) 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7~158 에서.(가로판 p150~151)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메겡이 ; ‘메(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나무토막이나 쇠토막에 자루를 박아 무엇을 치거나 박을 때 쓰는 방망이)’의 사투리.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본각(本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 부처님의 본래의 깨달음.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