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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7.19 한도인((No.645))—(게송)兀兀無事對靑山 眼高四海天魔拱 世間是非都不管 日與淸流掃明月
  2. 2021.05.06 보살 화현((No.233))—(게송)惆悵沙河十里春~ | 백억 화신으로 출현을 하시는 보살 | 자장율사와 문수보살의 일화. 삼국유사 | 공부에 자포자기는 없다.
  3. 2021.04.07 최상승법(세등24)—번뇌 망상심은 우리 진여불성에서 일어나는 것 | 번뇌 망상을 계기로 ‘이뭣고?~’ 하면 그것이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른 길.
  4. 2021.02.26 활구참선((No.587-2))—서산 스님의 『선교석』, 「學者所參活句 如一團火 近之則燎却面門 無佛法措著之處 只有大疑 如烈焰亘天 忽若打破漆桶.... 」
  5. 2021.02.07 하심((No.596))—조주 스님과 시자 문원의 '못나기 내기'. 「투열(鬪劣)」 공안 | (게송)萬事無如退步休~ | 온 국민이 자기자리에서 최선 다해야(IMF 위기).
  6. 2021.01.31 활구참선((054))—활구참선과 사구참선 | 보고, 듣고, 느끼는 그것을 발판으로 '이뭣고?' | 착상구불(着相求佛) | 선지식께 받은 본참화두를 일여하게 밀고나가야.
  7. 2021.01.16 현애살수(No.198)—(게송)得樹攀枝未足奇 | 화두 의단독로가 될때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야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
  8. 2020.12.23 보살 화현(No.454)—육군비구, 묵빈대처(默擯對處), 보살 화현 | 목련존자와 집장외도 | 목련존자의 전생 죄업으로 오백생 동안 타살 당함.
  9. 2020.12.14 화현(세등24)—불보살은 중생의 생사해탈을 위해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신다 | 발심을 하면 불보살 ·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10. 2020.10.09 화두(세등24)—화두는 이론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 따져서 알아맞추는 참선은 죽은 참선 | 공부가 안될 때 | 이 공부는 한 생각 단속의 문제.
ㅎ/한도인(閑道人)2021. 7. 19. 06:56

한도인((No.645))—(게송)兀兀無事對靑山 眼高四海天魔拱 世間是非都不管 日與淸流掃明月

*한도인(閑道人) :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무애한 경지를 얻은 수행자를 말한다.
‘일 없다[閑]’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보살은 삼천 가지 위의[三千威儀]와 팔만 가지의 미세한 행실[八萬細行]과 여섯 가지 길[六度]을 닦는 데, 자기의 몸과 목숨과 재물을 다 바쳐서 중생을 건지려고 분투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몸은 무한히 분주하고 골몰하면서도, 마음은 밝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함이 없이 하는 것[無爲而作]이 도인(道人)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37~38 에서. (가로판 p38~39)
吾有一言하니  絶慮忘緣하고  兀然無事坐하니  春來草自靑이로다.

내가 한마디하고자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단정히 일 없이[無事] 앉았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註解) 絶慮忘緣者는  得之於心也니  所謂閑道人也라.  於戱라, 其爲人也가  本來無緣하며  本來無事하야  飢來卽食하고  困來卽眠하며  綠水靑山에  任意逍遙하고 漁村酒肆에  自在安閑하야  年代甲子를  總不知하되 春來依舊草自靑이로다.  此는  別歎一念廻光者니라 【 將謂無人이러니  賴有一個로다

(주해)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쉰다'는 것은 마음에서 자득함을 가리킴이니, 이른바 「일 없는 도인[閑道人]」이다。아! 그 사람됨이 본래 얽힘 없고 본래 일 없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자며, 녹수 청산에 마음대로 오고 가며, 어촌과 주막에 걸림 없이 지내 가리。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언만, 봄이 오면 예대로[依舊] 풀이 절로 푸르구나。이것은 특별히 한 생각을 돌이켜 반조하는 자를 찬탄함이라。 【 사람 없을까 했더니 마침 하나 있구나.

*무사(無事) ; ①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쳐서 할 일이 없는 것.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여 할 일이 사라진 경지. ②일이 생기지 않음. 근본적으로 문제 또는 장애가 없다는 말. 곧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모두가 진리를 구현하고 있으므로 억지로 추구하거나 조작할 일이 없다는 뜻. ③일말의 집착도 남아 있지 않은 궁극적인 경지.

*의구(依舊) ;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5분)

 


[법문]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야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다.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하고,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한단 말은 일체를 도막사량(都莫思量) 하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생노병사까지라도 다 놓아 버렸으니 이것이 일 없는 무사(無事) 한도인(閑道人)이거든. 그리고서 청산을 떠억 대하고 앉아서 정진하는 거동(擧動)을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더위도 잊어버리고, 일체 시비(是非)도 다 끊어져 버리고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해서 석 달 해제를 맞이했어.
그러니 그 기상이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여. 그 청정하고 의연한 자세가 하늘에 뻗찌르는, 그러고 사해(四海)를 덮고도 남을 만한 그런 기상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천마(天魔),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의 권속들이 그런 것들이 다 그 앞에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그 말이거든.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옳고 그른 것을 다 놔 버리고,
일여청류(日與淸流)로 소명월(掃明月)이다. 날마다 흐르는 물이 마치 명월(明月)을 씻은 거와 같이 그렇게 모다—‘어떻게 흐르는 물이 명월(明月)을 씻느냐’ 하면은 하늘에 밝은 달이 물에 비추는데, 그 맑은 물이 계속 흘러가니까 흘러가는 물에 의해서 물에 뜬 달이 씻겨진 것에다가 비유해서, 우리가 정진하고 있는 경지가 마치 흐르는 물에 밝은 달이 씻겨가는 것에다가 비유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처음~5분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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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화현 화신2021. 5. 6. 08:12

보살 화현((No.233))—(게송)惆悵沙河十里春~ | 백억 화신(化身)으로 출현을 하시는 보살 화현을 언제 어데서 어떻게 만날는지 알 수가 없는 것 | 자장율사(慈藏律師)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일화. 삼국유사 | 공부에 자포자기는 없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16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233)—1984년 3월 첫째일요법회 (용233) (화현, 화신)

추창사하십리춘(惆悵沙河十里春)인데  일번화로일번신(一番花老一番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소루의구사양리(小樓依舊斜陽裏)헌데  불견당시수수인(不見當時垂手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창사하십리춘(惆悵沙河十里春)에  일번화로일번신(一番花老一番新)이다.
쓸쓸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십리에 봄이 왔는데, 일번화로일번신(一番花老一番新)이여. 꽃이 한 번 늙으면, 늙어서 시들면 또 다시 봄이 오면은 다시 또 꽃이 새로워진다 그말이여.

소루의구사양리(小樓依舊斜陽裏)에, 다락집, 적은 다락은 예나 다름없이 저문 석양, 해 저문 석양 속에 서 있는데,
불견당시수수인(不見當時垂手人)이로구나. 옛날 그 당시에 손을 드리워 주던 그분은 볼 수가 없구나.


세월이 흘르고 흘러서 다시 또 갑자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봄이 왔건만, 입춘 우수가 지냈건만 또 이렇게 엊그제 봄눈이 나렸습니다.
아무리 눈이 내려도 봄눈이라 순식간에 다 녹아져 버리고, 버드나무 가지에는 물이 오르고 여기저기 산에는 진달래와 개나리의 꽃몽우리가 피기 위해서 잎을, 몽우리 몽우리를 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봄이 갔다가 다시 오고 꽃이 졌다가 다시 피고 하건마는, 옛날에 우리를 위해서 자비를 드리워 주시던, 손을 드리워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던 스승님은 뵈올 수가 없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56억 7천만 년뒤에 미륵불(彌勒佛)이 염부제(閻浮提)에 하강(下降)하셔서 출세(出世)해 가지고 무량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데, 그 56억 7천만 년 되기 이전에 간간이 화현 보살이 출현(出現)을 하셔서 불법을 펴시고, 또 중생을 제도하시고 그러시면서 불법의 혜명(慧命)을 이어 가게 됩니다.
그 보살 화현으로 나타나신 그러한 성현들은 '내가 보살(菩薩) 화현이다' 하고 써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요, 우리가 그 색상을 보아 가지고는 분간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살 화현이 수십 가지, 백억 화신(化身)으로 출현을 하셔서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됩니다. 돈독한 신심을 가진 이는 천백억 화신으로 나타난 그 보살 화현을 언제 어데서 어떻게 만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반사지(蟠蛇地: 갈반지葛蟠地)라고 하는 곳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나게 될 때에, 그 전에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할 때, "이 다음에 어디에서 보살님을 만나 뵙게 될까요?" 하고 여쭈어보니까, "반사지(蟠蛇地)에서 만나게 될 거다"
그래서 반사지에다가 토굴을 짓고 거기서 그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귀빈(貴賓)들이 와서 친견을 하고 가고 또 큰스님네도 와서 친견하고 가고 모다 그러는데, 그 자장 스님은 국사(國師)로서 일국(一國)에 융숭한 존경과 예우(禮遇)를 받고 계셨는데,
하루는 어떤 덥수룩한 거지같이 생긴 영감이 칡넝쿨로 엮은 광주리에다가 죽은 강아지 새끼를 담어 가지고 어깨에다가 메고 와서, "내가 자장을 좀 만나러 왔다" 그러니까,

그 시자(侍者)가, 우리 큰스님을 그동안에 친견하러 온 분들이 수없이 많지만, 다 '자장 큰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다 이렇게 말하지 '나, 자장을 보러 왔다, 자장 집에 있느냐?' 이렇게 큰스님을 '스님' 소리도 넣지도 아니하고 막 마구잽이로 그러니까,
그 시자가 '참 고약한 사람이 왔구나' 그래 가지고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친견을 시켜야 할 것인가, 안 해야 할 것인가?' 망설이니까, "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고 되물으니까,

"너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여. 니 스승 자장을 만나러 왔으니까 빨리 자장보고 나 왔다고 해라" 막 그 위엄(威嚴)을 가지고 하니까, 그 위엄에 눌려서 그 시자가 들어가서 큰스님한테 가서, "밖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와 가지고 막 큰스님을 함부로 이름을 부르면서 만나고 싶다고 그럽니다"

"그래 어떻게 생겼더냐?"
"약허(若何) 약허(若何)하게 생겼고, 미친 사람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래? 그 미친 놈이 왔는가보다. 그 보내 버려라" 아, 이랬단 말이여.
그러니까 시자가 나가서, "큰스님 지금 바뻐서 못 만나니까 가라"고 그러니까,

"니가 가라고 안 해도 내가 갈 거다. 지 놈이 그렇게 아만(我慢)이 탱천(撑天)해 가지고 보살(菩薩)을 친견을 해?"
그러면서 그 가지고 있는 광주리를 거꾸로 이렇게 쏟으니까 죽은 강아지가 툭 땅에 떨어지자마자 사자(獅子)로 변한단 말이여. 그래서 그 사자를, 청사자(靑獅子)를 타고 저 하늘 높이 휙- 하니 날아가는데, 아 시자가 그 광경을 보고서 급히 쫓아 들어가서 그 광경을 얘기하니까,

그 자장 스님이 깜짝 놀래 가지고 하! 나와서 보니까, 저 하늘갓으로 그 사자를 탄 그분은 날아가 버리고는 그 뒤 끝에 그 비행기 날아간 뒤에 하얀 흰구름이 꼬리가 길게 나부끼듯이 그런 자죽만 남기고서 이상한 향내가 진동을 한 것을 보고,
"하! 이거, 이 반사지(蟠蛇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親見)하기로 했는데, 내가 문수보살을 못 알아봤구나" 그렇게 후회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 자장율사가 문수보살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널리 전해지는 일화(逸話)입니다마는, 꼭 이러한 특이한 양상(樣相)으로 보살이 출현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전혀 냄새가 없이, 완전히 거지면 거지, 미친 사람이면 미친 사람, 또 오늘 이 법회가 시작하자마자 나와서 한바탕 이 법거량(法擧揚)을 시도한 이러한 분도 문수보살(文殊菩薩)일런지, 보현보살(普賢菩薩)일런지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세(末世)라고 해서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한다든지, 또는 여자라고 해서 자포자기를 한다든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자포자기를 한다든지, 또는 무식하다고 해서 자포자기를 한다든지—이 도(道)에 있어서는, 법(法)에 있어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을 초월(超越)한 것인 만큼, 스스로 자기와 도와는 인연이 먼 것처럼 포기하는 것은 제일 큰 잘못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세에 태어났을수록에 백 배 더 노력을 할지언정, 또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못하게 태어났을수록에 백 배 더 노력할지언정, 여건(與件)이 안 좋다고 해서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면 영영 공부와는 멀어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속(世俗)에서도 어려운 여러 가지 역경(逆境) 속에서 거기서 좌절하지 아니하고 두 번 실패하면 세 번, 세 번 실패하면 네 번, 이렇게 해서 끈질기게 계속 노력하고 극복해 나가면 마침내는 큰 성공을 하는 예가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흔히 좋은 여건하에서 모든 사업을 하게 되고 모든 학문을 하게 되고 하면 참 좋은 것 같지만, 좋은 여건하에서 성공한 사람보단 오히려 대단히 불리한 역경 속에서 참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얻고 나아가서는 그 기쁨과 행복을 모든 사람에게 또 회향(廻向)을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선지식(善知識)이 열반(涅槃)하시고 안 계시지만, 우리는 그 우리를 위해서 남겨주신 그 법어(法語)를 통해서 생존시(生存時)나 다름없이 그 법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 법(法)에 의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1분43초~17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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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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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최상승법(세등24)—중생심, 번뇌 망상심, 생멸심은 우리 진여불성에서 일어나는 것 | 번뇌 망상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하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 | 화두 하나만 제절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9분 22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활구참선, 최상승법)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생각 생각마다 들고 또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탈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할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그 사이나,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라도 ‘이뭣고?’

‘하! 공부가 안된다’고.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화두를 타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업(業)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다.

그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웬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특전(特典)이라, 큰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 이 정법(正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큰 웬수요,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가는 웬수요 도적놈이다 그말이여.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불국세계(佛國世界)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온 보살화신(菩薩化身)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로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蒙山)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네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도 이 화두(話頭),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또 산승(山僧)도 이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절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35분6초~44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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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말.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몽산(蒙山) : 남송과 원(元)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 1298 또는 1308)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한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에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에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의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의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가로판 p95~97)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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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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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No.587-2))—서산(西山) 스님의 『선교석(禪敎釋)』 법문, 「學者所參活句 如一團火 近之則燎却面門 無佛法措著之處 只有大疑 如烈焰亘天 忽若打破漆桶 則百千法門無量妙義 不求而圓得也」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5분 36초)


[법문] 송담스님(No.587-2)—1997년 동안거 해제 법어(97.02.22) (용587-2)

서산(西山) 스님의 『선교석(禪敎釋)』, 선(禪)과 교(敎)를 비교해서 판단하는 글이 있는데, 그것이 『선교석(禪敎釋)』이라 한 글입니다.
거기에 보면, 학자소참활구(學者所參活句)는, 선학자(禪學者)가 참구(參究)하는 그 활구(活句), 화두(話頭)는 여일단화(如一團火)하야, 한 무더기 불덩어리와 같애서, 근지즉요각면문(近之則燎却面門)이라. 섣불리 잘못 가까이하다가는 얼굴을 확! 태워 버리게 된다 이거거든.
활구공안(活句公案)에는 무불법조착지처(無佛法措着之處)라. 불법(佛法) 도리(道理)도 거기에다가는 어리댈 수가 없는 것이고, 지유대의(只有大疑)하야 여열염긍천(如烈焰亘天)이라. 다못 알 수 없는 큰 의심(疑心)만이 있어서 마치 훨훨 타는 맹렬한 불덩어리가, 불꽃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아야 할 것이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아주 간곡히 말씀을 해 주셨지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사량분별(思量分別)과 복탁(卜度)으로 이리저리 의리(義理)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콱 맥혀야, 알 수 없는 맥힌 의심(疑心)으로 정진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외의 생각은 『화엄경』에 말씀, 『법화경』 『금강경』에 말씀이라도 그런 불교의 교리(敎理)나 도리(道理)를 가지고 이게 비교하고 분석하고 따져서 적용을 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그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 가다 보면 처음에는 온갖 망상(妄想)이 일어나고 혼침(昏沈) 산란(散亂)이 일어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으로, 의심을 거각(擧却)해 나가면, 언젠가는 들지 않아도 제절로 화두가 터억 독로하게,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하게 된다 이거거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도 일여(一如)하게 되고, 몽중(夢中)에서도 그 순일무잡한 의단(疑團)이 계속이 되면은 머지않아서 어떠한 찰나에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된다 그 말이여. 홀약타파칠통(忽若打破漆桶)하게 된다 그말이여. 알 수 없는 의심, 콱! 맥혀서 알 수 없지마는 그 의심으로 나가다 보면 어떠한 찰나간에 통 밑구녘 빠지듯이 탁! 의심을 타파하게 된다 이거거든.

사량분별로는 절대로 그런 경계가 오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나갈 때 터져. 풍선을 불 때 머리카락 바늘구녕만 있어도 아무리 불어도 그 풍선은 빵빵해지지도 않고, 빵빵해지지 않기 때문에 팡! 하고 터지는 수가 없어. 꽉 맥힌 풍선이라야 불고 불고 더 불어서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풍선이 터진 것과 비슷하다 그 말이여.
이로(理路)가,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는 그러한 참선은 의리선(義理禪)이요 사구선(死句禪)이라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소의지하(小疑之下)에 소오(小悟)하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큰 의심하에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라, 큰 의심 밑에 크게 깨달음이 있다 하시고, 무의지하(無疑之下)에 무오(無悟)라, 의심이 없는 공부는 깨달음이 없다」고 하신 것이여.

타파칠통(打破漆桶)을, 홀연히 타파칠통을 하면은 기네 아니네 붙일 수가 없어. 백천법문(百千法門)과 무량묘의(無量妙義)를 불구이원득(不求而圓得)이니라. 백천법문(百千法門)과 한량없는 묘(妙)한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원만(圓滿)하게 깨닫게 된다. 『선교석』에 그러한 법문이 있고.(11분54초~17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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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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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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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하심2021. 2. 7. 15:40

하심((No.596))—조주 스님과 시자 문원의 떡 내기(지는 것으로써 이기는 것, 못나기 내기). 『선문염송(禪門拈頌)』 제439칙. 「투열(鬪劣)」 | (게송)萬事無如退步休~ . 진각국사 혜심의 '투열화(鬪劣話)'.
온 국민이 자기 있는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최선을 다할 때 가정 사회 국가도 잘된다(1997년 11월은 대한민국이 외환 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12월에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을 지원받은 어려운 시기)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1) 13분.

(2) 13분 31초.

 

[법문] 송담스님(No.596)—1997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용596)

(1)------------------

옛날에 조주(趙州) 스님이라고 하는 큰, 고불화현(古佛化現)이라고 칭찬을 받을 만한 대도사가, 조사(祖師)가 계셨는데, 『전등록(傳燈錄)』이나 『염송(拈頌)』에 보면 조주 스님으로 인해서 나온 공안(公案)이 참 많고, 조주 스님은 참 학자(學者)를 제접(提接)하는데 능소능대(能小能大)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해서 참 대단히 거룩하고 훌륭한 그런 도인(道人)이신데,
아까 녹음을 통해서 법(法)을 설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참 조주 스님을 무척 존경하시고, 조실 스님께서 학자를 제접하는 그 가풍(家風)을 보면 조주 스님과 참 많이 닮으신 데가 있다.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주 스님의 시봉(侍奉)에 문원(文遠), '글월 문(文)' 자, '멀 원(遠)' 자, 문원(文遠)이라고 하는 수좌(首座)가 조주 스님의 시자(侍者)로 있었는데, 그 시자하고 노상, 그렇게 훌륭한 큰 도인(道人)이시지만 그 시자하고 서로 어울리고 이야기할 때는 할아버지와 손자와 같이 이렇게 인자 문답(問答)을 하시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시고 그러는데.
어느 날 "우리 그 떡을 내기를 하자. 내기를 하는데 서로 말을 해 가지고 지는 것으로써 이긴 것으로 하자. 예를 들어서 가위 바위 보를 하는데, 내가 돌(바위)을 내면 저쪽에서 보자기를 내면 저 사람이 이긴 것이지만, 주먹을 (가위 바위 보) 바위를 낸 사람이 졌지마는, 진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 또 내가 가위를 내면 상대방이 보자기를 내면 보자기 낸 사람이 졌지마는, 그 보자기 낸 사람을 이긴 걸로 하기로 하자" 이랬단 말이야. 그래 가지고 떡 내기를 했어.

그러니까 문원(文遠)이라고 하는 시자가, "그러면 스님께서 먼저 하십시요"
그래 인자 조주(趙州) 스님이 인자 먼저 말씀을 하시기를, "나는 나귀다. 나는 한 마리 나귀다" 그랬어. 사람도 있고, 뭐 임금님도 있고, 뭐 하늘도 있고, 뭐 좋은 것이 이 세상에 꽉 찼는데, "나는 나귀다" 그러셨단 말이여.
그러니까 그다음에 문원 시자(侍者)는, "저는 나귀의 팔꿈치입니다" 나귀는 온통 한 마리고, 나귀 다리에 팔꿈치는 그 일부분이니까 문원이 말한 것이 좀 더 작아졌다 그 말이여.

그다음에 조주 스님이, "그러면 나는 나귀 똥이다" 그랬어. 나귀의 팔꿈치보단 똥은 더 추접하고 작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그다음에는 문원이, "저는 그 나귀 똥에서 살고 있는 버러지입니다"

그런데, 조주 스님이 인자 얘기를 하실 판이라. "너 그러면 그 똥 속에서 무엇을 하노? 하고 있노?" 그러니까, "그 속에서 여름을 지내고 있습니다"
"너 이놈! 떡 가져 와"

이거 천칠백... 얘기처럼 되어서 우리는 웃지마는, 사실은 이 속에 웃을 수 없는 무서운 뜻이 이 속에 들어 있어.

"나귀다"
"나귀 팔꿈치다"

"나는 나귀 똥이다"
"저는 나귀 똥 속에서 살고 있는 버러지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조주 스님이 얘기를 할 판인데, "너 그 똥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노?" 그러니까, "여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단 말이여.

"여러 소리 말고 가 떡 가져오너라"
거기에서 이 '누가 지느냐' 하는 내기를 해서 결국은 그렇게 이 공안(公案)은 끝났지마는,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된 거냐?' 이것을 내가 여러분 보고 일르라고 말은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고인(古人)이 한 게송(偈頌)을 읊었는데,

만사무여퇴보휴(萬事無如退步休)헌디  백년허환몽중구(百年虛幻夢中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주불시쟁호병(趙州不是爭胡餠)이라  요사시인열처구(要使時人劣處求)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사무여퇴보휴(萬事無如退步休)요  백년허환몽중구(百年虛幻夢中軀)다.
세상만사가 퇴보(退步)해 가지고 뒤로 물러서서 쉬는 것만 같지 못하다. 왜 그러냐?
백년허환(百年虛幻)은 몽중구(夢中軀)여, 백년, 인생이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를 누리고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이 살았다 하더라도, 백년 살고는 기러기 발자죽만도 못하고 벌의 신세만도 못한 그러한 허망한 몸뚱이여.

조주 스님이 떡이 먹고 싶어서 떡 내기, 시자(侍者) 데리고 떡 내기 수수께끼를 한 것이 아니고,
요사시인열처구(要使時人劣處求)라. 세상 사람들이 너무 서로 지가 잘난 체하고, 지가 옳다고 그러고, 무엇이던지 지가 해야만 되고, 지가 이길라고 그러고, 크고 작은 싸움 · 전쟁 · 시비, 죽이고 죽고,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싸움이 그칠 세가 없고 그러니,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겸손하고, 서로 사양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사람을 추대하고, 이러한 도리(道理)를 가리키기 위해서 시자(侍者)하고 그러한 수수꺼끼와 같은 그런 법담(法談)을 한 것이다 이거거든.

산승(山僧)이 이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여간해서 정치 문제 그런 데에는 언급을 하지 않고, 언제나 활구참선(活句參禪)을 권장을 하고, 인과법(因果法)을 믿고 세상이 무상(無常)한 줄을 깨달라서 어쨌든지 참나를 깨달라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하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우리가 다 같이 참선 공부를 하자. 그런 얘기를 주로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불과 한달 남짓하면은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대통령 선거는 우리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그러한 중대사입니다. 훌륭한 대통령을 뽑아서 정치를 잘해야 우리나라가 흥하게 되고, 우리 백성이 모다 잘살게 되고, 우리나라가 세계에 일등국(一等國)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중대한 시기입니다.

그러니만큼 오늘은 이런 얘기를 조끔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옛날부터서 불교(佛敎)와 유교(儒敎)를 숭상(崇尙)해 오고, 현재도 역시 불교를 믿는 불교신도가 천육백 내지 이천만 명에 넘는다고 그런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마는, 항상 자기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앞세우고, 자기 몸보다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부처님의 자비사상(慈悲思想)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유교(儒敎)도 인의(仁義)를 역설을 하고 한 것이 모두가 다 중요한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 중국의 역사에도 기록될 만큼 우리나라는 그러한 민족성(民族性)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근자에 민주주의다 해 가지고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무슨 지방장관 선거, 선거 때만 되면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고, 어디 무슨 나라 국적(國籍)을 가진 민족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그러한 양상이 벌어집니다.(12분30초~25분29초)




(2)------------------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정치에 있어서, 옛날에 성현(聖賢)들이 정치를 하는 군주주(君主主) 시대, 그것은 우리 눈으로는 직접 보지 못하고, 동양(東洋) 모다 중국역사를 보면은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과 같은 그런 성현(聖賢)이 천자(天子)가 되실 때는 정말 백성이 믿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였었고, 성현이 천자나 왕이 되지 못할 때에는 훌륭한 성군(聖君)을 만나기가 대단히 어려웠었습니다.
성인(聖人)이 왕(王)이 되고 천자(天子)가 되기가 어렵다면, 그다음으로 좋은 정치는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제일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도 단점(短點)이 있습니다.

세상을 내다볼 줄 알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없는 사람은 몇 사람이 안 되고, 전부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고, 자기 개인의 영달(榮達)과 자기 당(黨)에서 정권을 잡어야만 자기도 영달을 할 수가 있으니까 자기 당략(黨略) 당권(黨權) 만을 생각해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거개(擧皆)가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결(多數可決)로 법(法)을 맨들고 뭔 일을 추진을 하면 그런 사람들 의견으로 다 모든 것이 가결(可決)이 되고 추진이 되어서 정말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위한 그런 훌륭한 사람의 말은 수가 적으니까 마냥 뜻대로 안되는 거, 그것이 민주주의에 단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데,
그렇다고손 치더라도, 선거 때 자기의 '어떻게 하리라'고 한 자기의 포부를 널리 알려서 자기를 찍어달라고 강의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것은 좋지마는, 상대방을 갖은 모략(謀略)과 중상(中傷)으로 상대방을 짓밟고 차고 꼬집어 뜯고, 귀로도 들을 수도 없고 입에도 담을 수도 없고 눈으로도 볼 수 없는 악랄하고도 비겁하고 한 그러한 방법을 써서 상대방을 비난한 거 이것은 참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장관 선거쯤은 또 모르겠는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그런 대통령(大統領)으로 출마한 그런 분들이 나서 가지고는 그렇게 비난하고 헐고 뜯고 욕설을 퍼붓고 한 것은, "저러한 분을 대통령으로 뽑아 갖고 정말 우리가 믿고 정권을 그이한테 맽길 수가 있을 것인가? 저런 비인격적(非人格的)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은 우리나라 운세(運勢)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한 것이 정말 가슴 아프고 한탄스러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국민(國民)의 권리(權利)요 의무(義務)로써 머지않아서 가서 한 표를 던지셔야 되겠는데, 물론 그분의 과거와 현재와 모든 것을 널리 생각해서 자격도 있고 능력도 있고, 포부도 있고 배짱도 있고 전체를 포섭할 만한 아량도 있고 한 그러한 분을 여러분은 뽑겠지마는, 남을 헐고 뜯고 한 사람은 그 점도 하나를 보아야 한다 이겁니다.

자기의, '이렇게 이렇게 잘하겠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잘했다' 그것도 선거 때가 아니면 자기 자랑한 거 별로 인격적으로 챙피한 노릇이지만, 그래도 선거 때는 자기 자랑을 해 주어야 남이 아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하더라도, 남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략중상(謀略中傷)한 것은 그건 나는 별로 그 사람 찍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악랄한 방법을 써 가지고 남을 비방하고 헐뜯고 한 것은 대통령이 될 만한—그분이 잘 대통령을 잘해야 우리가 잘살 수 있고 대한민국이 빛날 텐데, 비인격적이고 부도덕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빛내고 백성을 잘살게 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조주(趙州) 스님처럼, 자기가 잘난 체하고 그래 가지고 이길라고 하기보다는, 자기가 특히 우리 도(道) 닦는 사람은 잘난 체하고 뽐내고 아만통을 부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한 것을 대단히 안 좋게 여기고,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항상 남의 좋은 점은 찬양하고 남의 좋은 점은 본받으려고 노력을 하고, 설사 다른 사람이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용서(容恕)를 하고, 아량(雅量)으로 봐주고, 참회(懺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렇게 해서 서로가 화합을 하도록, 이것이 출가한 스님네가 일생 동안에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덕목인데.

스님네 뿐만이 아니라, 불법(佛法)을 믿는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이 서로 상대방을 좋은 점은 찬양을 하고 안 좋은 점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해 주고 양보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렇게 해서 부부간이 화목(和睦)해서 잘 살아야 자녀들도 그 부모님들이 하시는 것을 보고, '야! 부부간은 저렇게 사는구나. 나도 커서 장가가고 시집가면 그렇게 살아야겄다' 그래 가지고 그 자녀들이 성장이 되면 또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어 나갈 것이 아니냐 그 말이여.

어떻게 된 것인지 연애할 때는 서로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고 찬양하고 이쁘다고 그러고 서로 결혼을 하는데, 결혼을 해 가지고는 첫날 저녁부터 싸움을 시작을 해. 그래 가지고 첫날 저녁에 이혼한 사람도 있고, 머지않아서 패물을 적게 가져왔다고 싸우고, 살면서 '부부간에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해 가지고 부부간에 싸움은 안 하는 것이 이상(異常)이고 싸움하는 것은 보통이 되었고, 그래 가지고 수없이 이혼을 한다 그 말이여.
이혼을 해서 새로 시집을 간다고 해서 꼭 훌륭한 좋은 남편을 만나리라고 한 보장도 없는 거고, 또 재추(재취) 삼추 간다고 해서 좋은 아내를 얻으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거기서 이혼 가정에 아들과 딸들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고아(孤兒)의 신세가 되는 것이고, 결손 가정(缺損家庭)에 아들들은 대부분 문제아가 되어 가지고 학교에 가서도 문제가 되는 거고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데서 싸울 데가 없어서, 싸울 사람이 없어서 부부간에 싸우냐 그 말이여. 아내는 자기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과 집과 형제자매를 떠나서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을 가서 그 시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시집에서는 그 들어온 그 며느리를 자기의 정든 부모를 버리고 내 집 식구가 되었으니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잘 봐주고, 위로를 해 주고 따둑거려 주고 용서를 하고, 그래야 할 것이고.
시집에 올 때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왔습니까? 신랑 하나 보고 왔는데 그 신랑이 아내를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고 그래야 할 것을, 그 달달 볶아서 못살게 군다면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말이여.

한 부부간에 문제, 가정의 문제도 그렇고, 형제간에 문제도 그렇고, 사회 국가도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뭐 노론(老論) 소론(少論)이니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해 가지고 자기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 상대방을 역적(逆賊)으로 몰아서 귀양을 보내거나 죽이거나 해 가지고 자기가 정권을 잡고 한 것이 이조(李朝)... 뭐 백 년 이백 년 전에 우리나라 그렇게 하다가 결국은 임진왜란(壬辰倭亂)도 당하고 또 일본에 식민지(植民地)가 되기도 한 역사가 엊그제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민주주의(民主主義) 시대(時代)니까 여당(與黨)도 있고 야당(野黨)도 있고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나, 정책으로 서로 토론을 하고 싸운 것은 그것은 국가 발전을 위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나, 그런 것을 떠나서 인신공격을 해 가지고 악랄한 방법으로 이렇게 서로 싸우다가 나라의 꼬라지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누구 한두 사람의 잘못으로 책임을 몰아붙일 일도 아니고, 정치한 사람들이 전부 자기는 잘못이 없고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몰아붙이지만, 모두가 다 같이 책임(責任)을 절감(切感)을 하고 서로 화합(和合)을 해서 '나라를 어떻게 해야 우리가 건질 수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초점을 맞춰서 해 나가야 할 것이고.

꼭 정치한 사람한테만 꼭 책임 있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온 국민이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잘살게 될 것인가?' 각자 자기가 있는 자기 위치에서 자기의 직장에서 자기 할 일을 찾어야 합니다.
회사면 회사, 관공서면 관공서, 공장이면 공장 해서, '내 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이 공장이 살아나고 내 한 사람이라도 어떻게 해야 이 회사에 보탬이 된가?'
공장일 그만두고 정치에 어쩌고... 그것은 성현들은 그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있는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최선을 각각 다할 때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되아간다고 그랬습니다.(25분29초~38분5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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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054))—활구참선이 정법(正法), 사구참선은 사법(邪法). 사구참선은 깨달을 기약이 없다 |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찰나에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수행한 사람과 아니한 사람의 차이.

착상구불(着相求佛), 무엇을 바래고 구하는 상(相)에 착(着)한 수행은 방편에 얽매인 것 | 화두 하나 제대로 들을 줄 알고, 올바르게 단속해 나갈 줄 알면은 참선은 문제가 없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20분 38초)
[법문] 송담스님(No.054)—1977년 9월 관음재일(77.09.24) (용054)

참선이라고 해서 다 정법이 아닙니다. 일체의 방편,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참선법이 제일이지마는 그 참선도 정법과 사법이 있습니다. 정법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이것이 정법(正法)이고, 사구참선(死句參禪)은 이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활구(活句)며, 어떠한 것이 사구(死句)냐?

'살 활(活)' 자, 활구참선. '죽을 사(死)' 자, 죽은 사구참선, 활구참선은—이론과 어떠한 이로(理路), 어로(語路),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이리저리 따져 보고 비교해 보고 그러한 참선은 이것은 아무리 밤잠을 안 자고 한다 해도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이 아니고 사구참선입니다.
사구참선은 죽을 때까지 무량겁을 해도,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출세하실 때까지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다 해도 그것은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단 일 분을 하고, 단 한 시간을 하더라도 참선을 할 바에는 활구참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지지 말고, 자기가 아무리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능엄경』 모든 경전을 종횡으로 육두 백판으로 외우고 교리적으로 환히 안다 해도 이 참선하는 데 있어서 그 알고 있는 교리적인 지식, 상식 그러한 것을 이 참선에다가 끌어들여 가지고 이용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한 것을 동원해 가지고 이 화두를 이리저리 분석해 보고 따져 보고, 비교해 보고, 그래가지고 '아하! 그렇구나. 바로 이러한 뜻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참선이 아니라, 그러한 교리 이론 따지는 그것을 놔 버리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꽉 맥힌 생각으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정 받은 화두 '이뭣고?'
'이뭣고?'면 '이뭣고?' 또는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분은 '무자' 화두, 또는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을 화두로 타신 분은 그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신 분은 '판치생모' 무슨 화두가 되었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 가운데에 한 가지를 선지식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화두 하나만을 다못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비단 앉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 걸어 다닐 때, 밥 먹을 때, 똥 눌 때, 소지할 때, 빨래할 때, 또는 차를 탈 때, 어데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일어나는 어떠한 생각,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건—슬픈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기쁜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불같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 올 때도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눈으로 어떤 꽃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또는 사람이 지나간 것을 보거나, 산을 보거나, 구름을 보거나,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거나 또는 귀를 통해서 새가 우는 소리를 듣거나,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거나, 어린아이가 고함을 지르고 우는 소리를 듣거나, 어떠한 것을 보건 듣던 간에 그때 그때마다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공부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이 참선 수행을 하지 아니한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당장 그 보는 데에 따라갑니다. 그래가지고 공연히 이 생각, 저 생각. 귀로 뭣을 들으면은 그 듣는 일로 해서 바로 나는 '이뭣고?'로 돌아와야 할 텐데 그러지를 못하고, 듣는 그 건으로 해서 이 생각, 저 생각, 10년 전으로 올라갔다가, 5년 전으로 내려왔다가 그러다가 공연히 속이 활딱 뒤집어졌다가, 혼자 웃었다가, 썽났다가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그러한 식으로 망상(妄想) 위에다가 또 망상의 가지를 피우고 그 망상 위에 또 망상의 꽃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 이 생각 저 생각하고, 그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골냈다가 웃었다가 그러다가 그 지나간 일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생각 한 생각했던 그것이 하나도 딴 데로 없어지지 아니하고 고대로 차곡차곡 우리의 마음자리, 제팔식(第八識) 속에 고대로 녹음(錄音)이 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되고, 그 저장이 되어가지고 그것이 종자(種子)가 되고 원인(原因)이 되어서 앞으로 무량겁 윤회가 그 종자로부터서 그 원인으로부터서 윤회(輪廻)가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한 행동으로 표현이 되고, 한 행동으로 해서 다시 또 생각이 거기에 이어지고, 생각과 행동이 서로—새끼가 왼손에 쥐었던 짚이 오른손으로 건너가고, 오른손에 잡았던 짚이 왼손으로 건너가고 그래서 이렇게 그 손이 움직여짐에 따라서 새끼가 꽈지듯이,
한 생각이 행동으로, 행동에서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나고 그렇게 해서 무량겁 윤회의 원인이 되는 업(業)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를 하지 아니한, 참선을 하지 아니한 범부 중생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정법에 의지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 봐야 하고, 귀를 통해서 무엇인가 듣기 마련이고, 보고 들음으로 해서 무엇인가 느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하는 사람은 그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찰나에 보고, 듣고, 느끼는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수행한 사람과 아니한 사람의 차이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생각하던지 간에 바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으로 생각이 번져 나기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로, 자아로 돌아오는, 나의 근본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요,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이요, 부처님 나라로 돌아오는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가고 한 달, 한 달을 이렇게 살아가고 일 년, 일 년을 이렇게 단속해 나가면서 살아갈 때에 나에 몸안에 있는 자성불(自性佛)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인 것입니다.

이 법을 충실히 이 법을 본업(本業)으로 해서 열심히 살아간 사람에게는 계율을 지키는 일, 또는 염불을 하는 일 또는 주문(呪文)을 외우든, 또는 기도를 하건, 어떤 경전을 반야심경을 외우건 또는 천수를 하건, 그 밖에 부처님께 예경을 올리건, 또는 오후불식이나 일종을 하건, 또는 방생을 하건, 또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보시 공덕을 하건, 또는 노인이나 또는 일선 장병에 위문을 가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좋은 조도(助道)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 닦는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 정법을 닦지 아니하고 계행(戒行)만을 위주해서 닦음으로써 일생 수행을 삼는다던지, 염불을 해 가지고 극락 가기만을 바래 가지고 일생을 염불만을 한다던지, 또는 어떤 주문을 외워 가지고 어떠한 목적을 달성을 하기 위해서, 주문에 의지해 가지고 날이면 날마다 전전긍긍을 한다던지, 기도를 해 가지고 아들딸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래고 그러한 물질적인 것, 모냥이 있는 것에 얽매어 가지고 계속 기도에 미쳐 가지고 돌아댕기는 그런 분.

절을 많이 하면은 업장이 소멸하고, 소원이 성취된다 해 가지고 삼천배, 사천배 절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하루에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면은 세세생생에 부자로 살고, 업장이 소멸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니까 평생에 오후불식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일종(一種)을 하면 좋다니까 일종을 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이렇게 해서 그러한 모냥이 있는 착상구불(着相求佛), 착상 수행, 상(相)에 착(着)해 가지고, 모냥에 착해 가지고 무엇을 바래고 구하는 그러한 불법을 믿는 사람, 이것은 모두가 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방편의 올개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러한 불법인 것입니다.

그러한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벗어나지 못한 불법(佛法)은 설사 그 사람이 삿된 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그것이 정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사법(邪法)이 되는 것입니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일생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마음이 선량하고, 정직하고, 점잖하고, 그 말할 수 없이 착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사람은 사도(邪道)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정법(正法)에 의지한 사람은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일체 선법(善法)을 닦을 수가 있는 것이고, 모든 선법이 그 사람에게는 다 선방편(善方便)이요, 정법의 조도(助道)가 되는 것입니다. 보조 수단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똑같이 계율을 지키고, 똑같이 염불을 하고, 똑같이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보시 공덕을 쌓고 방생을 한다 하더라도 정법에 의지한 사람이 하는 것과 사법에 의지한 사람이 하는 것과는 결과적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염불을 하지 말아라. 천수를 외우지 말아라. 『반야심경』을 외우지 말아라. 『금강경』을 독송하지 말아라. 방생을 하지 말아라. 또는 일선 장병에 위문을 하지 말아라. 또는 노인에 보시 공덕 하지 말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을 형편 닿는 한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서 하시라는 겁니다.
하되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하면서 하는 그 마음으로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함이 없는 마음 가운데에 자비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고,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뻑뻑이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이것이 바로 참선하는 마음으로 일체 보시, 선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하는 그 자체는 남이 보기에는 똑같이 보이지마는, 그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다 같이 명심을 하셔야 합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이리저리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론적으로 따지고, 경전에 있는 교리를 등용을 해서 따지고, 자기가 어떤 스님한테 들은 법문을 듣고 이리저리 비교하고 따져서 '아하! 이것이로구나! 이렇구나! 아!' 그렇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은 마침내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참선은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이기 때문에 영원히 해 봤자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또는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 가운데 '화두(話頭)는 어떠한 책이나 잡지나 신문, 그러한 데에서 보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화두를 선택하지 말고 반드시 선지식에게 딱! 하나를 받아 가지고 해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 어디서 지내가는 말로 듣거나, 책에서 봐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선택을 한 화두는 해 나가다가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 화두가 좋은가, 나쁜가?' 자꾸 스스로 그것을 혐의를 하고 의심을 해 가지고 중간에 갈팡질팡을 하게 되기 때문에 공부가 크게 장애를 받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배로부터 화두를 딱! 지정을 받아 가지고 한 번 받았으면은 다시는 그것을 변경을 하지 말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때까지 일여(一如)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어떠한 화두라도 처음부터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어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곧 잘될 것 같다가 얼마 동안 해 가면 영 답답하고 화두가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점점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면서 그 애를 먹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더라도 딴생각을 내지 말고, 잘 그 마음을 써서 한 생각 한 생각, 일 분 일 분을 법(法)답게 간절히 공부를 지어 나간다고 하면은 반드시 그렇게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치도록 애를 먹혔던 그 화두가 들려고 안 해도 정말 제절로 화두가 들리면서 순일무잡하게 정진이 되어가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간다 해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생각 '아! 인자 되었다. 참! 좋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을 먹게 되기 마련입니다마는 그 생각이 고약한 망상 중에는 최고 가는 고약한 망상인 것입니다.

보통 때,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른 것은 뿌리 없는 생각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절로 없어지지마는, 공부가 한참 잘되어 갈 고비에 이르러서 '아! 참 좋다. 아! 이렇게 계속 잘되었으면' 아, 이러한 생각을 낸 것은 고비를 넘을려고 한 판에 뒷걸음질을 쳐서 천길만길 구렁텅이로 빠져 버린 것과 같애서 그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갈 때에 그러한 생각 내는 것은 아주 타당한 것 같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최고로 고약한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 둬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잘 안되어도 짜증을 내지 말고, 공부가 잘되어 가도 좋아하는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계속 한결같이 이 화두를 들고 나가되, 잘 안되어갈 때—가슴이 답답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몸이 뒤틀리도록 괴롭고 지루하고 이럴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직선으로 따악 길을 정해 놓고 그 길을 왔다갔다하면서 포행(布行)을 하는 가운데에 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고요해지고 깨끗해지면 다시 또 방석에 가서 또 정진을 하시는데.

이 화두를, 화두 하나 제대로 들을 줄 알고 올바르게 단속해 나갈 줄 알면은 참선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간단한 한마디요, 쉬운 한마디지마는 그 화두를 옳게 단속하기라 하는 것은 대단히 쉬운 가운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가끔 법회 때 나와서, 듣던 말이지마는 또 듣고 또 듣고 함으로 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또 자기도 모르는 여러 가지 버릇을 하나하나 고쳐 나감으로 해서 멀리 삐뜰어지기 전에 바른길로 돌아선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법회 때에는 꼭 빠지지 마시고 참예를 하시라고 하는 것입니다.(24분17초~44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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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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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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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ㅎ/현애살수2021. 1. 16. 15:07

현애살수(No.198)—(게송)得樹攀枝未足奇 | 화두 의단독로가 될때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야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


*현애살수(懸崖撒手 매달리다·매달다 현/벼랑·낭떠러지 애/놓다 살/손 수) ; '벼랑[崖]에 매달린[懸] 손[手]을 놓다[撒]' 살수현애(撒手懸崖).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나아간다)와 같은 뜻.


참선할 때 어언(語言) · 지견(知見) · 정식(情識) · 분별(分別)을 초월하여 터럭만큼도 의지하여 기대지 않고 터럭만큼도 유예(猶豫 망설여 일을 실행하지 아니함)하지 않는 모양을 나타냄. 모든 집착 · 분별 경계를 놓아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8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198)—19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 (용198)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한디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요, 나무를 얻어서 그 가지를 붙들고 떨어지지 아니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것은 족히 기특한 것이 되지를 못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그 낭떠러지에 그 붙잡고 있던 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지고 안 떨어지려고 매달려 있던 그 손을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탁! 놔 버릴 때 바로 대장부(大丈夫)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까 두려워서 나무가지를 붙잡고 그 안간힘을 쓴다’하는 것은 무엇을 표하는 말이냐 하면 한 마음, 일심을 얻어 가지고 그 일심을 놓치지 아니할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 데에다가 비유를 한 것이여.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거나,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러한 주력을 하거나 그 어떠한 자기 나름대로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한 어떤 한 경계를 맛보아 가지고, 그 경계를 놓치지 아니할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데,

조끔 시끄러우면 신경질을 내고, 조끔 복잡하면 그걸 피하려고 하는 이유가 한 마음 경계를 얻어가지고...


그 시끄럽고 고요한 것, 복잡하고 편안한 것 그러한 경계에, 그러한 것에 집착을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용감하게 그놈을 놔 버려. 그 한 곳마저도 놔 버릴 때에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이여. 물은 차고, 밤은 냉랭(冷冷)해서 고기를 찾기가 어려워. 고기란 놈이 저 깊은 물 밑 속에 가서 가만히 숨어 버렸기 때문에 고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말이여.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빈 배에는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일체 경계(境界)에 집착을 해도 못쓴다. 또 경계를 버리려고 하지도 말아라’ ‘어떠한 경계를 다달았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해라’

이렇게 법회 때마다 그렇게 강조를 하고 주장을 하고 설교를 해왔는데, '한 마음마저도 놔 버려야 한다'


‘그러면 화두를 들지 말고 놔 버리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려지면, 어찌 화두에 집착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가 안 되고, 공부를 바른길을 찾지를 못하니까, 자꾸 일체 경계에 다다러서 ‘그 경계를 즉(卽)해서 화두를 들어라’ ‘화두를 놓치지 말라’ 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는 없었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게 되면, 마침내는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현전(現前)을 해서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경계가 시끄럽거나 편안하거나, 조용하거나 복잡하거나, 전혀 그러한 것에 상관이 없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무엇을 집착을 하며, 무엇을 피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될 때 까지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서, 법문도 열심히 듣고 화두를 올바르게 거각(擧却)을 해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하도록 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피나는 노력 없이 어떻게 그러한 경계가 올 것이냐 이말이여.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일분일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일분일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27분21초~35분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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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 희로애락 · 빈부귀천 · 시비이해 · 삼독오욕 · 부모형제 · 춘하추동 ·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 · 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觀)한다 ; 화두를 들어 나가는 데에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하는 것을 '화두를 관(觀)한다'고 말한다.



(1분 33초)

[참고] 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78.08.27)

잠시도 화두를 떠나서는 우리의 공부는 생각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화두는 우리의 앞에 역력(歷歷)하고 또록또록하게 나타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 싱겁고 맛없는 한마디 말이지마는 계속 들고 또 들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생각한다’고 하면은 조금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나가는 데에는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이것을 생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라 하면 이리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인데, 이 화두를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더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하는 그런 이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관(觀)’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볼 관(觀)’자.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볼 관(觀)’자. “관(觀)하라”


이렇게 ‘본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46분54초~48분26초)



(2분)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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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ㅎ/화현 화신2020. 12. 23. 12:58

보살 화현(No.454)—육군비구, 묵빈대처(默擯對處), 보살 화현 | 목련존자와 집장외도 | 목련존자의 전생 죄업으로 오백생 동안 타살 당함.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12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454)—19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용454)

 

부처님 당시에는 모두가 다 일대사(一大事), 생사 문제를 위해서 도 닦는 모두가 다 그런 스님이었고, 특수한 육군비구(六群比丘)와 같은 참 깡패 스님들이 부처님 당시에도 없는 것은 아니고 있었습니다. 그랬어도 부처님은 그것을 그냥 그대로 보셨어요.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신통력(神通力)과 덕행으로 얼마든지 그것들을 신통력으로 처벌을 주실 수도 있고, 다 내쫓아낼 수도 있고, 그 감화(感化)를 주실 수도 있으련만 그냥 그런대로 보셨어.

 

아난존자가 “부처님 돌아가신 뒤에는 어떻게 육군비구를 대우할까요?”하니까 “묵빈대처(默擯對處) 해라”

‘묵빈대처’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말을 안 해’ 봐도 말을 안 하고 그냥...

 

묵빈대처란 문구(文句)는 속가에서는 잘 모르고, 형제간끼리나 동서 간이나 일가친척 간에도 서로 싸우고 난 뒤에는 만나도 인사도 안 하고 말을 안 하지요.

그것을 ‘상조한다’ 그런 말이 있는데, 풀어지면은 말해도 그때까지는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거여. 말을 안 하니까 서로 왕래가 끊어지고, 완전히 남 보듯 하는 거지. 그것을 묵빈대처라 하는데.

 

이 사찰에서는 도저히 같이 어울려서 화합해서 살 수 없는 그런 스님네는 묵빈대처를 하는 거야.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서로 절대로 대화 안 해버리는 거야. 그것이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그 육군비구와 같은 못된 스님네는 묵빈대처법이란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 육군비구가 지금도 아마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몇몇 스님네는 부처님 때도 있었으니까 요새 또 없으란 법도 없고.

그런 몇 분의 스님이 있다고 해서 스님네를 몰아 때려서 다 “에이! 말세다. 요새는 중다운 중이 어디가 있어? 불법이 말세야. 맨 싸움만 하고” 그렇게 혹 보시는 분이 있을런지 모르지마는, 육군비구 가운데에도 나중에 다 아라한이 된 분도 있고, 성현이 된 분도 있고, 천상에 간 분도 있습니다.

 

지금 목련존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 목련존자가 나중에 사리불존자와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이 되어서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련존자가 마지막 열반하실 때에는 집장외도(執杖外道)의 무리들에게 맞아서 타살을 당했습니다.

그 목련존자가 어떻게 호되게 맞았던지 기절해서 쓰러졌는데—외도(外道)들은 왜 목련존자를 그렇게 타살을 했느냐 하면은 불법(佛法)이 나날이 융성을 하고 자기네 교(敎)를 믿던 사람들이 전부 불교를 믿게 되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네 교가 아주 완전히 멸망하게 생겼어.

 

그래서 ‘그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만 없애면 불교가 저렇게 번창을 하지 못할 것이다’해서 목련존자를 갖다가 타살을 했다 말이여.

그러고 (집장외도들이) 다 갔는데 목련존자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가지고 보니 몸뚱이가 말이 아니여. 아주 사지 삼백육십 골절이 성한 데가 없이 살은 터지고 뼈다구는 부러지고 꼼짝을 못하게 됐다 그말이여. 그래도 신통을 써 가지고 신통력으로 돌아왔다 말이여.

 

첫째 사리불존자를 자기 도반이니까 찾아가니까 사리불존자가 깜짝 놀래. “왜 신통제일인 목련존자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냐?”

“집장외도들이 날 이렇게 팼다”

 

“그럼 신통술을 써서 피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맞았느냐?”

“말 마라. 내가 과거에 지은 죄업으로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도 안 났는데, 어떻게 ‘통(通)’을 부려 가지고 내가 신통력을 부릴 수가 있겠느냐”

 

“그대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단 말이냐?”

“내가 오백 생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장가를 갔는데 어떻게 마누라가 이쁘던지 마누라한테 폭 빠져가지고 어머니한테 등한히 했더니, 어머니가 날마다 꾸지람을 하시고 ‘저놈이 계집을 얻더니 계집한테 빠져 가지고 에미를 우습게 안다’고 어떻게 참 그렇게 하시던지 부애가 나가지고, ‘어떤 장사가 와 가지고 우리 엄마 좀 뚜드려 팼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고약한 욕을 내가 했어.

그 어머니한테 그런 욕한 죄로 오백생 동안을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참혹하게 타살을 당했다. 내가 금생에까지 이렇게 오백생째 내가 이렇게 맞어 죽으니, 내가 지은 죄로 내가 이렇게 받는 것이니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 가지고 이제 곧 숨이 깔딱 깔딱 죽게 되니까 사리불존자가 “아직은 열반에 들지 말고 조금만 참으라”고, “내가 먼저 열반에 들거든 나중에 들으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니까 곧 죽게 생겼는데도 신통력으로 꽉 참고 있는데,

사리불존자는 그길로 부처님한테 가서 하직 인사를 하고,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모다 가족 친척들한테 설법을 하고 그리고 열반을 하고, 열반하자마자 목련존자도 또 열반에 들었는데.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는 왜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돌아가셨냐 하면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그 공경하고 신(信)하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그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먼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 준례(準例)라고 그럼니다.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집장외도들한테 맞아 돌아가셨단 말을 듣고서 그 왕이 엄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들을 체포를 해 가지고 불에 태워 죽이라’고 특명을 내렸습니다.

특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를 체포를 해 가지고 죽이려고 하는데, 목련존자가 그 소식을 듣고 “절대로 이건 나를 위한다면 참으로 나를 위한다면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하니까, 그 왕이 “불법의 자비는 참 훌륭하다” 그러고, ‘그러면 죽이지는 말고 국외로 추방을 하라’고 해서 국외로 추방 명령을 내렸는데,

 

목련존자의 제자 가운데 마숙(馬宿), 만숙(滿宿)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 두 제자가 육군비구(六群比丘)의 비구여.

아까 말씀드린 아주 깡패 중이여.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사람 때려죽이고 뭐 보통으로 하는, 그래 가지고는 육군비구인 그 마숙, 만숙 두 사람이 그 집장외도를 뒤쫓아가 가지고 붙들어 가지고는 몽둥이로 쳐서 때려죽여 버렸거든.

 

자기 스승을 죽인 사람을 가만 놔둘 수가 없다 해 가지고 때려죽여 버렸다 그말이여. ‘부처님 제자가 참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육군비구는 계율이고 뭣이고 그런 데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야.

그래도 그 마숙이는 죽어서 구렁이가 되었다가, 다시 그 사람을 죽이고 그랬으니 구렁이가 되었어도 용이 되었어. 또 다른 한 사람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고 그랬는데.

 

왜 그러한 육군비구가 파계(破戒)를 하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했는데도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느냐?

아마 그러한 막행막식을 한 가운데에도 그 속은 멀쩡하거든. 과거에 보살 화현(化現)이 비구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역행(逆行)으로 나타난 보살 화현』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혹 스님네 가운데에 막행막식을 하는 그런 스님네가 있다 하더라도 ‘아! 저분이 바로 보살 화현이로구나, 보살 화현이 말세에 태어나서 정말 다른 스님네로 하여금 정말 발심(發心)을 해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보살 화현으로 저렇게 나타났거니’ 이렇게 생각을 하고 불법(佛法)을 비방하지 말고 오히려 신심을 내서 불법을 잘 받들기를 바랍니다.(37분40초~49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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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육군비구(六群比丘) ; 육군(六群)이라는 것은 불제자(佛弟子) 중에, 항상 한무리가 되어 수행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행하고, 그 때문에 제계(制戒, 부처님이 제자에 대해 제정한 계율)의 인연이 된 여섯 사람의 악행비구(惡行比丘)를 말한다.

①난타(難陀, 팔리어 Nanda의 음사) ②발난타(跋難陀, 팔리어 Upananda의 음사) ③가류타이(迦留陀夷, 팔리어 kāḷudāyī의 음사) ④천나(闡那, 산스크리트어 chanda, 팔리어 channa의 음사) ⑤아설가(阿說迦, 산스크리트어 aśvaka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숙馬宿) ⑥불나발(弗那跋, 산스크리트어 punarvasu 팔리어 punabbasu의 음사. 만숙滿宿)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力).

*묵빈대처(默擯對處) ; 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즉 묵빈(默檳)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묵빈(默擯, 默檳) ; 산스크리트어 brahma-daṇḍa의 번역. 범단(梵檀, 梵壇)이라고도 함. daṇḍa는 벌(罰) · 형벌(刑罰) · 치죄(治罪)라는 뜻. 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준례(準例 모범으로 삼을 준/법식·관례 례) ; 기준이나 본보기가 될 만한 이전의 일.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역행보살(逆行菩薩) ; 그릇된 짓의 나쁜 과보를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그릇된 짓을 하는 보살. 수행자로 하여금 더욱 신심을 일으키고 수행이 견고하도록 돕는 뜻으로 일부러 역행하는 보살.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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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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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화현 화신2020. 12. 14. 14:08

화현(세등24)—불보살은 중생의 생사해탈을 위해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신다 | 발심을 하면 불보살 ·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4분 38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우리는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佛菩薩)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善知識)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28분41초~33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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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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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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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ㅎ/화두 공안2020. 10. 9. 20:03

화두(세등24)—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 |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맞추는 참선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삿된 참선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한 것 | 이 공부는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문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7분 16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話頭)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그 한 점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한 관건(關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할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그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시삼마(是甚麽) ‘이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더 좋고, 판치생모가 더 좋고, 시삼마가 더 좋고, 그 공안 자체에 있어서 더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없습니다.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善知識),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그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千七百話頭)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타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잘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 가서 그렇게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그 고비를 잘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또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또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그 마음을 써 가지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한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그 한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13분31초~20분4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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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건)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염/욀 송)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천칠백 화두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 헤살 : 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는 고비’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한 생각 단속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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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