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중생제도2019. 12. 11. 17:32

중생 제도 (No.389)—‘이뭣고?’할 때 마음속 ‘진리의 등불’을 켜는 것이고, 자성중생(自性衆生)을 제도하는 것 |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5분 21초)

 

[법문]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 (용389)

 

우리는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등(燈) 하나를 켭니다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등 하나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왜 등을 켜는 그러한 준례가 생겨났을까요?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님의 진리의 등’을 켜도록 하기 위해서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이 등불을 켜면 어두운 밤이 밝아지듯이 ‘마음속의 등을 켜라.’

 

‘마음속의 등(燈)을 무엇으로 켜?’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오욕(五欲) 경계를 물리치는 등불을 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언필칭(言必稱)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은 한량없는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부처님이 나오셨다’ 다 그렇게 말합니다.

중생 제도를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물에 빠져 있는 사람 건져내듯이 중생을 그렇게 건질 수가 있을까요?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되, 실지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불보살은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온갖 생각이 퍼 일어나는데 그 한량없는 생각을 바로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그 체(體)가 공(空)한 거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의 본체는 무엇이냐?’하면은 공(空)이거든. 확실히 그 생각의 본체가 진공(眞空)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달(了達)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성중생(自性衆生)이거든.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여. 우리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제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자성중생을 제도하는 도리를 터득을 해야 하는 것이여.

 

불법(佛法)의 근본 뿌리는 중생심으로부터 나온 것이여. 그래서 중생심, 거기서 무량 부처님도 출세(出世)하셨고, 팔만사천 보살도 거기서 출세하셨어.

 

‘우리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일념(一念), 그 ‘한 생각’은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하나의 버큼이요 하나의 물결인데,

그 일어나는 최초의 그 ‘한 생각’을 딱! 돌이켜서 ‘이뭣고?’할 때에 팔만사천의 묘행(妙行)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거여. 팔만사천 경(經)에 쓰여 있는 법문의 뜻도 그 속에 들어있는 거여.

그래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관법(觀法)이 있고, 많은 부처님의 법문(法門)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최고의 높고 거룩한 법문이요 거룩한 관법은 이 활구참선법이라.(29분14초~34분3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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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언필칭(言必稱)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되, 실지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 것입니다'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90. (가로판 p94~95)

菩薩이  度衆生入滅度나  又實無衆生이  得滅度니라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했다 하더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느니라.

    

(註解) 菩薩은  只以念念으로  爲衆生也니  了念體空者는  度衆生也요  念旣空寂者는  實無衆生得滅度也니라  此上은  論信解니라

 

보살은 다만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으니 생각의 본체가 빈 이치를 요달한 것이 곧 중생을 건지는 것이요, 생각이 이미 비고 고요하다면 사실 제도할 중생이 따로 없느니라。이 위는 믿음과 깨침을 말한 것이다.

*공(空) ; ①모든 존재는 여러 인연으로 생겨남으로 항상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 자성이 없음(無自性).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불교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공은 전혀 없다는 무(無)나, 결국 사라져 덧없다는 허무(虛無)가 아니다. 또 공(空)은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체 · 본질이 아니라, 존재의 무실체성 · 무자성 등을 자각함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표이다.

공을 허무나 실체로 보는 것은 공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참된 공[眞空]이 아니라 무기공(無記空) · 편공(偏空) · 악취공(惡取空)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의 병[空病]에 대한 약으로 '공도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차별과 분별로써 인식된 대상은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 가치나 감정이 부여된 인식 대상은 인식 주관이 조작한 허구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은 허구라는 뜻.

③잇달아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상태. 번뇌와 분별이 소멸된 상태. 분별과 차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자성중생(自性衆生) ; '자성 속에 있는 중생' 불보살은 다만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퍼 일어나는 한량없는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다. 무명 속에 갇혀 있는 생각,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탐진치 등의 번뇌망상이 자성 속의 중생이다.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 '자성(마음속의)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오리다'

불보살은 다만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퍼 일어나는 한량없는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데,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의 본체가 공(空)이라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요달(了達)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제도할 중생이 따로 없고, 그러므로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보살이 자성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이다.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참회품(懺悔品)’에서.

선지식이여, 이제 이미 참회하였으니 여러 선지식들과 더불어 사홍서원을 발하리라. 모름지기 각자 마음을 바르게 써서 들으라.(善知識 旣懺悔已 與善知識發四弘誓願 各須用心正聽)

자기 성품 속의 중생 가없지만 서원코 건지리이다.(自心衆生無邊誓願度)

자기 성품 속의 번뇌 가없지만 서원코 끊으리이다.(自心煩惱無邊誓願斷)

자기 성품 속의 법문 한량없지만 서원코 배우리이다.(自性法門無盡誓願學)

자기 성품 속의 불도 위없지만 서원코 이루리이다.(自性無上佛道誓願成)

 

선지식이여! 큰 가풍을 이으면서 어찌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이 가없지만 서원코 건지리이다)’라 이르지 아니할까마는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또 이 혜능(惠能)이 누구를 제도하겠다[度]는 뜻이 아니다.(善知識 大家豈不道衆生無邊誓願度 恁麽道 且不是惠能度)

선지식이여, 마음 가운데 중생이란 삿되고 어리석은 마음, 헛되이 속이는 마음, 선량하지 못한 마음, 질투하는 마음, 악독한 마음 등 이러한 마음이 모두 다 중생이니, 각기 반드시 자기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 이것을 참 제도[眞度]라 한다.(善知識 心中衆生 所謂邪迷心 誑妄心 不善心 嫉妬心 惡毒心 如是等心 盡是衆生 各須自性自度 是名眞度)

 

어찌하여 ‘자기 성품을 스스로 제도한다’고 부르는가? 곧 자기 마음 속 삿된 견해나 번뇌, 어리석음의 중생을 정견(正見)으로써 제도하는 것이다.(何名自性自度 卽自心中邪見煩惱愚癡衆生 將正見度)

이미 정견이 있으면 반야 지혜를 사용함으로써 우치(愚癡) 미망(迷妄) 같은 마음 속의 중생을 타파(打破)하여 각각 스스로 제도한다. 삿됨이 오면 정(正)으로 제도하고, 미혹함[迷]이 오면 깨달음으로 제도하며,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惡)이 오면 선(善)으로 제도함이니, 이와같이 제도하는 것을 진도(眞度), 참된 제도라 한다.(旣有正見 使般若智打破愚癡迷妄衆生 各各自度 邪來正度 迷來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如是度者 名爲眞度)

 

또 ‘번뇌무변서원단(煩惱無邊誓願斷 번뇌가 가없지만 서원코 끊으리이다)’이라 하는 것은 자기 성품의 반야 지혜로 허망한 생각 따위들의 마음을 제거시키는 것이다.(又煩惱無邊誓願斷 將自性般若智 除却虛妄思想心是也)

또 ‘법문무진서원학(法門無盡誓願學 법문이 한량없지만 서원코 배우리이다)’이라 하는 것은 모름지기 스스로의 참성품을 보아 항상 정법(正法)을 행하는 것이니 그것을 참다운 배움[眞學]이라 부른다.(又法門無盡誓願學 須自見性 常行正法 是名眞學)

 

또 ‘무상불도서원성(無上佛道誓願成)’이라 하는 것은 이미 늘 하심(下心)하여 참으로 올바르게 행하므로 미혹함도 여의고 깨달음도 여의어서, 늘 반야를 내며 진(眞)도 끊고 망(妄)도 끊어버리면 곧 부처의 성품을 보리니, 언하(言下)에 불도를 곧 이루리라. 항상 이와같이 수행을 생각함이 이것이 원력법(願力法)이다.(又無上佛道誓願成 旣常能下心 行於眞正 離迷離覺 常生般若 除眞除妄 卽見佛性 卽言下佛道成 常念修行是願力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버큼 ; '거품'의 사투리.

*묘행(妙行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훌륭하다 묘/행하다 행) ; ①신(身) · 구(口) · 의(意)에 있어 청정한 행위. 또는 선한 행위. 사람으로서의 바른 행동. ②지혜로운 분[智者]이 칭찬하는 행위.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관법(觀法) ;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분별적인 사유에 휩싸이지 않고, 대상[諸法]의 인상이나 겉모습에 떠돌지 않고, 대상을 꿰뚫어서 대상[諸法]의 진실한 모습을 통찰하는 수행. 이로써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涅槃 -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을 깨닫게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
ㅈ/중생제도2019. 11. 13. 17:25

중생 제도 (No.321)—(게송)山橫石碍疑無路 ~ | 깨닫고 안 깨닫는 것은 우리가 따질 문제가 아니고, 올바르게 최선을 다할 뿐 | 한 중생도 남음 없이 제도해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9분 47초)

 

[법문] 송담스님(No.321)—1987년 2월 첫째 일요법회(87.02.01) (용321)

 

산횡석애의무로(山橫石碍疑無路)터니  지전계사별유촌(地轉溪斜別有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영상일성횡적향(嶺上一聲橫笛響)한데  명연사일우황혼(暝煙斜日又黃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횡석애의무로(山橫石碍疑無路)터니, 산이 가로막고 돌이 맥혀서 바위가 맥혀서 이제 길이 없을까 의심했더니, '아! 인자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고 여기서 아주 길이 꽉 맥혀서 갈 곳이 없구나'하고 의심을 했더니,

지전계사별유촌(地轉溪斜別有村)이로구나. 땅이 돌고 시내가 비껴, 시내가 흘러가면서 따로 한 마을이 나타났구나.

 

우리 인생은 운수(運數)가 비색(否塞)할 때에는 하나의 어려운 일만 당한 것이 아니라, 연거푸 참기 어렵고 견디기 어려운 그런 재난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비관을 하고 중단하지 말고, 계속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버티고 나가면서 노력을 하면, 뜻밖에 환히 밝은 빛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불이 나거나 어떠한 사고가 나거나 한다 하더라도 정신을 차려서 보면 반드시 도피할 길이 있는 것이고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 속담이 절대로 거짓말이 아닌 것입니다.

 

영상일성횡적향(嶺上一聲橫笛響)한데, 재 너머에 한 소리, 저 산꼭대기 재 너머에서 한 소리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데,

명연사일우황혼(暝煙斜日又黃昏)이로구나. 구름과 연기가 자욱해서 해가 저물어서 또 황혼이 돌아오는구나.

 

겨우 그 어려운 고비를 넘겨 가지고 한 마을을 저 아득히 보았는데, 그러자 어디서 그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말이여. 희망적인 그런 서광을 보았는데 벌써 해는 여울여울 서산으로 넘어갈려고 하는구나.

무량겁(無量劫)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다가 금생에 와서 이 정법을 만나서 이제 참선(參禪)을 할려고 그러는데, 벌써 우리가 나이가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고 칠십이 넘어가는구나.

 

언제나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지금 '나이가 이렇게 많이 먹었다'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금생에 육칠십 먹은 거 이것만을 꼭 나이 많이 먹었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도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생각한다면 몇억만 세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사 정법(正法)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늘그막에사 만났다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칠팔십 먹은 분은 금방 몸을 바꿔서 새로 태어나면 그분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보다도 또 더 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道)에는 노소가 없습니다. 또 남녀도 없습니다.

늙다고, 나이가 많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금생에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해 놓으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고 이승을 하직을 하시더라도 금방 몸을 바꿔 나와 가지고 또 이 공부를 하시게 됩니다.

 

금생에 해 놓은 만큼 내생에는 또 거기에서 다시 하게 되기 때문에 금생에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해 놓으신 분은 내생에는 일찍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를 일찍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샘이 저 깊은 산중에 있는 샘에서 흐르는 물은 바다에까지 도달할라면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고, 바다 가까이에서 나오는 샘물은 얼마 안 가서 곧 바다로 도달한 거와 같습니다.

 

우리가 모두 전생에 어떻게 닦았느냐, 그리고 금생에 얼마만큼 노력했느냐에 따라서 우리 자신의 그 샘이 바다에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아무리 멀어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은 지가 결국은 바다에 도달하고야만 마는 것이지, 절대로 물이 산꼭대기로 거꾸로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물처럼, 물이라 하는 것은 흐르고 흘러서 계속 물은 밑을 향해서 내려가는데, 웅덩이를 만나면은 웅덩이 저 밑바닥에서부터서 요렇게 차츰차츰 차올라 가지고 결국은 웅덩이에 가득차면 또 넘어서 또 흘러 내려가고, 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또 밑바닥에서부터서 차츰차츰 차올라 가지고 가득차면 또 넘어가고 해서,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흘러 내려가 가지고 기어코 바다에까지 도달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우리 도를 닦는 수행자도 그러한 끈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나갈 뿐인 것입니다. 깨닫고 안 깨닫는 것은 우리가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올바르게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체가 고상하고 거룩하고 훌륭한 것입니다.

 

일찍 깨달랐다고 해서 별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찍 깨달랐다고 해도 계속 또 오후보림(悟後保任)를 해서 부처님처럼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갖추어서 복(福)과 혜(慧)가 원만구족(圓滿具足)할 때까지 우리는 닦고 닦아야 하고, 또 그렇게 닦은 뒤에도 또 끝나냐 하면은 끝이 없습니다.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을 때까지 끊임없이 중생교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도를 깨닫고, 깨달은 뒤에 복(福)과 혜(慧)가 원만구족하고, 또 복과 혜가 원만구족해 가지고도 무량중생을 제도(濟度)해 마칠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그러기 때문에 뭐 일찌감치 우둑둑 우뚝딱! 그냥 빨리 깨달으면 그것이 다 된 것 같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도 없고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한(限)도 없고 끝도 없지마는, 우리는 그 끝없는 길을 향해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나 자신을 닦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이 해 주지를 못하고, 이 문제를 하기 전에는 끊임없는 고해(苦海)에서 무서운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40분28초~50분1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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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산횡석애의무로~' ;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편찬) 제10권 408칙 '만법(萬法)' 심문분(心聞賁) 게송 참고.

*운수(運數) ;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 하늘이 정한 운수)과 기수(氣數 저절로 오가고 한다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비색(否塞 막힐 비/막힐 색) ; 운수가 꽉 막힘.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순정리론』 권32(대정장29, p.525c21)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대보적경』 권60(대정장11, p.346c3)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ㅈ/중생제도2018. 2. 24. 17:18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12분 32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18)—무오년 하안거 결제 법어(78.04.17)(세등18)

 

승춘고하진선연(承春高下盡鮮姸)헌데  우후교림규두견(雨後喬林叫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정화루명월야(人靜畫樓明月夜)에  취가환주낙화전(醉歌歡酒落花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봄이 오니 높고 낮은 데가 모두가 다 잎이 피고 꽃이 펴서 곱디도 곱구나. 더욱이 어젯밤 비가 내린 뒤끝이 교림(喬林)에는 두견새가 울고 우는구나.

사람 고요한 곱게 단청한 누각에는 달이 밝고, 한잔 잘 먹고 노래를 부르며 꽃 떨어진 앞에서 춤을 추는구나.

 

이 게송(偈頌)은 부처님께서 이천육백 년 전,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신 그 도리(道理)를 두고서 고인(古人)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이천육백 년 전에 무엇 때문에 실달(悉達) 태자께서 인도 가비라 왕국에 태어나셨느냐? 무슨 목적으로 태어나셨느냐?

 

실달 태자는 진묵겁(塵墨劫) 전에 이미 자아를 대각(大覺)하신 부처님으로서 어떻게 했으면 고해(苦海)에 빠져서 갖은 고생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 불쌍한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을까?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인도 가비라 왕국에 태자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부처님 태어나시기 이전에도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이 계셨고, 부처님 태어나신 뒤로도 많은 불보살의 화현(化現)이 종종 출현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출현허셔서 그 진리법을 전수해 오면서 한량없는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건만 아직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40억이 넘는 우리 중생들이 온갖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고, 사람 수효 뿐만이 아니라 육도법계에 축생 · 아수라 · 아귀 · 지옥 등, 천상 · 인간에 가득차 있는 일체 영혼까지 하면은 천문학적 숫자로도 비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을 제도허셨건만 왜 이렇게 중생이 한량없이 많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중생이 낳다, 죽었다, 낳다, 죽었다, 이것을 되풀이할 것을 생각하면, 그 중생수만큼의 부처님이 출현하셔야만 중생이 다 바닥이 날 것입니다.

‘중생수만큼 부처님이 출현을 허셔야 한다’고 허는 것은 ‘일체 중생이 다 성불(成佛)해 마칠 때 중생은 하나도 없어진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우선 이 세등선원 삼보전에 오늘 결제 법문을 듣기 위해서 오신 이 사부대중 먼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야만 되겠습니다. 이렇게 철철이 결제(結制)를 하는 목적도 또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금방 우리는 열반(涅槃)하신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의 조실(祖室)로 모신 이 전강대종사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하늘보다도 더 높은 법문으로부터 저 바다보다도 더 깊은 법문, 유치원 학생도 들어서 알 수 있을 만큼 그러헌 쉬운 법문으로부터 역대조사의 위치에서도 알 수 없는 그러헌 깊은 법문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대사자후(大獅子吼)로 우리의 마음을 울려 주셨습니다.

 

대관절 법문은 부처님께서 49년 동안을 설허시고 열반에 드셨지마는 그 49년 동안 설하신 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팔만대장경에 법문이 그렇게 부수(部數)가 많지마는,

그 가운데에는 방편설(方便說)로부터서 입으로 가히 설할 수 없는 법문(法門)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법문이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이뭣고?’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 이 한마디에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낳아서 부터서 울고, 젖 먹고, 똥 누고, 밥 먹고, 옷 입고, 울다가 웃다가 성내다가, 앉었다 섰다 달음박질허다, 차 타고, 자고, 이런 가운데에 수없이 많은 업(業)을 짓다가, 숨 한번 내쉬고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죽게 됩니다.

 

대관절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 온갖 좋은 일, 나쁜 일, 갖은 업을 짓는 이놈이 대관절 무엇인고?

아무한테도 배우지 아니해도 갖은 업을 지을 줄 아는 이놈! 무엇이 들어서 이렇게 성냈다, 웃었다, 울었다, 앉었다, 섰다, 왔다갔다 하느냐?

 

내가 나를 몰랐으니 그것이 중생이여.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 그것이 바로 ‘중생’이고, 내가 나를 깨달으면 그것을 ‘부처’라 하는 것이여.

 

깨닫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 그 원인만 바로 안다면 우리는 결정코 금생에 이 몸뚱이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탐진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

이 탐진치 삼독으로 오욕락(五欲樂)을 즐기는데, 오욕락은 재산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욕심,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심, ‘아무개’하는 명예와 권리를 누리려는 욕심, 편안히 놀고 잠잘려는 욕심.

이 다섯 가지 욕심을 즐기는 가운데에 죄를 짓게 되고 그 죄로 인해서 짐승이 되았다, 지옥에 떨어졌다, 나찰(羅刹) 귀신이 되았다, 아귀(餓鬼)가 되았다, 그 가운데 좋은 일을 좀 하면은 천상(天上)에도 갔다.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무량겁을 두고 계속해 내려오고 있고, 앞으로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참선(參禪) 공부 아니하면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육도윤회를 끊기 위해서 오늘 결제(結制) 법회를 가지는 것입니다.(처음~12분3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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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승춘고하진선연~’ ; [선문염송 · 염송설화 1] (혜심 · 각운 지음, 김월운 역 | 동국역경원) ‘제1권 2칙 주행(周行)’ p28 정엄수(淨嚴遂) 게송 참고.

*교림(喬林 높을 교/수풀 림) ; 줄기가 굵고 높은 교목(喬木)으로 우거진 산림(山林).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의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다.

 

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가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을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이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만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 아쇼카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약 2백년 후,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269년 경에 즉위하여 36년간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치하였는데,

즉위 8년(B.C. 262)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그가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된다.

 

[아쇼카의 '다르마(法)'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삶 ①바른 인간관계 : 웃어른 · 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삶 : 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 :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함, 보시와 복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法)’를 근본으로 한다.]

 

이 다르마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쇼카 왕이 즉위 20년이 되던 해, B.C. 250년 무렵에 룸비니를 방문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룸비니 석주(石柱)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의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의 많은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 · 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