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비우는) 공부(No.353)—출가(出家)라 하는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 |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버리는(비우는) 공부 ; 이 도(道)는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다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다 비워 버려야 합니다.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5분 6초)


[법문] 송담스님(No.353)—19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 (용353)

오늘 무진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廻向) 법요식을 맞이해서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순치황제(順治皇帝) 출가 인연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순치황제가 19년 동안 중국의 천자(天子) 노릇을 하다가 무상(無常)을 느끼고 중국 천하와 천자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마치 우리 부처님께서 가비라(迦毗羅) 왕국의 태자(太子)의 고귀한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또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정든 부모와 가정과 청춘을 버리고 출가한 인연, 이 모두가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 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러한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에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에 명리나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출가 사문은 바로 그러한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처음~5분1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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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신수(身數 몸·나·자신 신/운수 수) ; 사람의 운수(運數). 사람의 운명(運命)이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순치황제(順治皇帝) ; 1638년에 태어나 1643년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청나라 제 3대 황제. 재위 기간은 1643년~1661년.
*천자(天子) ; 천제(天帝)의 아들, 즉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군주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왕(王)이라고 하였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일/줄기·맥 맥/서로 상/통할 통)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두 대상 간에 어느 면에서 한 가지[一脈]로 서로[相] 통(通)하거나 비슷해짐.
*재가(在家) ; ①세속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스님처럼 도를 닦음. 또는 그런 사람. ②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
*세속(世俗) ; 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청신사(淸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淸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염의(染衣 물들일 염,옷 의) ; 출가자의 옷. 출가하여 속세의 옷을 벗고 법의(法衣)를 입는 것도 염의라 하고, 출가할 때에 머리나 수염을 깎고 염의를 입음으로써 스님이 되는 것을 낙발염의(落髮染衣), 체발염의(剃髮染衣)라고 한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 · 근식(勤息) · 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호. 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돈/도타울 독)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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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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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비우는 공부(No.378)—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 |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 | 내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과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 세계일화(世界一花).


*비우는 공부 ; 이 도(道)는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다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다 비워 버려야 합니다.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28분40초~29분20초)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4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용378)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 올바르게 발전을 하고 훌륭한 나라가 될려면 어쨌든지 우리의 민족정기를 앙양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서로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선양하는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저 사람 마음과 내 마음이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은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꾀로써 정복을 해 가지고는 하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첫째, 내 마음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착해지면 자연히 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고, 좋은 마음으로 또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피차(彼此)가 그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깨끗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을 보고는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왜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집안에 미운 사람, 이웃의 미운 사람 그 사람 얼굴은 바로 자기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람을 보고 자기도 성을 내면, 성을 낼수록 그 사람 상대방 얼굴은 점점 더 고약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로서 자기 마음의 때를 닦고서 고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상대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굳었던 얼굴이 풀어질 것입니다.

사람을 척 보면 인상이 고약하게 생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고약한 사람을 보고 나도 위아래 훑어보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지면서 같잖은 아주 그런 얼굴을 지어 보십시오. 상대방은 점점 험악해질 것입니다.
내가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부드러운 말로 “아,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이렇게 부드럽게 달라들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공(我空), 인공(人空) 그래 가지고 구공(俱空)이 되는 것입니다. 아공(인공), 법공(法空), 구공 이것을 3공(三空)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교리적으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과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가 되고 이러한 운동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해서 온 세계에 퍼져 나간다면 이것이 국가도 하나가 되고, 세계도 하나가 되어서 세계가 뿌리가 한 뿌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한 꽃이 되도록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되도록,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거룩한 법(法)인 것입니다.(13분47초~18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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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송담스님(No.306)—86년 8월 화두 불명 수계 법회]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죽을 날을 받아 놨으면서도 그 죽는 날만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일분 일초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정말 알뜰하게 이 공부를 위해서 마음을 돌려 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를 오는 놈. 그놈이 슬퍼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근심 걱정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 몸뚱이를 자유자재로이 작용하는 바로 이놈. 나의 주인공.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운전사.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부모로부터 이 몸뚱이를 받어 가지고 이승을 하직(下直)할 때까지,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으로부터 떠나보지 못한 채, 같이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우리는 그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을 떠나서 존재해 보지 못한 그놈인데, 어째서 온갖 것은 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만져보고 알고, 생각해서 알면서, 바로 그 자기의 주인공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느냐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봐야 우리의 생사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봐야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64분6초~66분26초) [ 참선법 A ]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꽉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를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이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큰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큰 메겡이로 메쳐서 그 간장독이 쩍!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

*삼공(三空) ; 아공(我空, 인공人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을 가리킨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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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버리는(비우는) 공부((No.596))—정치는 보살(菩薩)의 정신으로 해야 | '이 뭣고?' 한마디면 업장(業障) 소멸(消滅) | '이뭣고?'하면 궁극에 다툼이 없는[無諍] 삼매에 들어간다 | 진정한 행복 평화는 '탁!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놓는 공부가 '이 뭣고?'여.

*비우는 공부 ; 이 도(道)는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다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다 비워 버려야 합니다.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8분 13초.


[법문] 송담스님(No.596)—1997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용596)

정말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없고, 자기에게 경륜(經綸)이 있어서 이 침체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모든 교육과 모든 것을 정말 잘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경륜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원력(願力)을 세우고 한번 해 볼 만하는데, 그거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겄습니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은 그러한 대원력(大願力)과 대자비(大慈悲)와 대지혜(大智慧)를 갖춘 사람이 할 일이 바로 대통령이고 왕(王)이다 그 말이여. 그렇지 않으면은 할 짓이 못돼.

여러분은 (IMF 경제 위기)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뉴스를 듣고, 그러한 속에서 귀를 막고 살 수는 없고, 그런 흐름 속에도 우리도 다 같이 이렇게 국가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도 같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그래도 이 자리에 모이신, 또 산승(山僧)의 이러한 간곡한 말을 들으신 인연(因緣) 있는 분은, 정치를 하되 자기의 위치에서 사욕과 사심이 없이 성실히 하고, 인연이 있어서 관여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그만 둘 때는 깨끗하게 미련없이 놓아 버리고, 니아까를 끌던지 운전사를 하던지 농사를 짓던지 장사를 하든지, 영국에 윌슨 수상은 옥스포든가 켐브리진가 그 영국에 좋은 대학을 나와 가지고 영국에 수상이 되었는데, 아직 임기가 아직 남아 있어도 후배들을 위해서 미리 사표를 내고 나와 가지고 그 이튿날 운전사로 취직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쯤 되어야 하거든. 할 때는 멋들어지게 하고, 그만둘 때는 깨끗이 끝내고.
우리나라 이조(李朝) 동안에도, 그 이름은 내가 잊어버렸는데, 훌륭한 정승(政丞)이 있었는데 구십구 칸이나 되는 큰 건물 집을 짓고 많은 권속을 들이고 그렇게 참 권리를 누리고 정치를 하다가, 인연이 돌아와서 그만두게 되니까, 그것 다 고대로 버리고 자기가 키우고 있는 학 한 마리와 개나리 봇짐만 짊어지고 저 시골 고향 농촌으로 돌아간 그러한 훌륭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치라는 게 권리(權利)를 잡을 때는 명예와 권리가 따르고, 내놓을 때는 비참한 것입니다. 예나 이제나 마찬가집니다. 할 때는 열심히 하고 멋지게 하고, 내놓을 때는 깨끗하게 내놓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그러한 멋있는 장부(丈夫)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이라야, 그런 각오가 있어야 탁! 현재 가정에 살림도 하고 사업도 하고 직장도 있지만 딱! 법회(法會) 때가 돌아오면 법회에 와 가지고 법문(法門)을 따악 듣고 '이 뭣고?'를 하고.

'이 뭣고?'를 해야 그런 멋진 사람이 될 수가 있다 그말이여.
왜 '이뭣고?'를 해야 그렇게 되냐 하면, 한 생각으로 억만 겁 일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억만 겁 미래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천금 만냥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목숨도 놓아 버릴 수가 있거든. 오욕락(五慾樂) 부귀영화(富貴榮華) 그까짓 것이 탁! 놓아 버릴 수가 있는 거여.
'이 뭣고?' 한마디면은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업장(業障)이 탁! 소멸(消滅)이 되어 버리는데 무엇을 아낄 것이 있느냐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이뭣고?'를 한 사람은 궁극(窮極)에 어디에 도달하냐 하면 무쟁삼매(無諍三昧)에 들어가, 다툼이 없는 삼매에 들어가는 거여.
우리는 무한경쟁(無限競爭) 시대라 해 가지고 노상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이렇게 해서 한시도 방심을 할 수가 없고, 회사에 들어가도 경쟁, 학교에 가도 경쟁, 정치를 해도 경쟁, 우두거니 있다가는 내가 쫓겨나고 내가 짓밟히고 하니까 그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뇌물을 쓰고 모략중상(謀略中傷)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동안에는 사회는 좋아지지 않습니다. 세계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 진정한 평화는, '탁!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여. 놓는 공부가 '이 뭣고?'여.
번뇌(煩惱)와 망상(妄想), 욕심(慾心) 탐심(貪心), 정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 개인적인 것 가정적인 것 사회적인 것, 탁! 생각을 돌이키고 자기 본심(本心)으로 돌아올 줄을 알어야 한다 그 말이여. 돌아오는 방법이 '이 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또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놈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며, 이렇게 외로우며, 이렇게 괴로우며, 이렇게 원망스러울까, 이렇게 억울허까?' 그러한 생각 속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에는 날 새기를 하고 잠을 안 자도 안 없어집니다.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 뭣고?' 자꾸 하다 보면 스르르르~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다같이,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 뭣고?'
(대중) '이 뭣고?'

다시 한 번, '이 뭣고?'
(대중) '이 뭣고?'

우리가 참사람 되는 길이 여기에 있고, 개인의 평화, 가정의 평화, 세계의 평화가 바로 이 '한 생각' 돌이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으로써 오늘 말을 맺고자 합니다.

벌써 날씨가 추워져서 겨울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모두 건강에 조심하시고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 뭣고?'로써 우선 자기 중심(中心)을 딱! 잡고서, 그리고서 모든 일을 느긋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연구하면 반드시 지혜(智慧)와 자비(慈悲)가 떠오를 것입니다. (52분32초~60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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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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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는 공부 ; 이 도(道)는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다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다 비워 버려야 합니다.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11분 17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세등59)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漚)한데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浮)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허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漚)요.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거품)이 일어났더라.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浮)여. 그 맑고 평평한 바다 위에 그 버큼이 떠있는 것이 부끄럽구나.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이 일어나 가지고, 그 더러운 버큼이 그 맑고 평평한 깨끗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니 그 얼마나 추악하고 그 부끄러울 일이냐 그말이여.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하니, 오늘 홀연히 그 바람과 물결이 쉬어 버리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여. 맑고 밝은 원래 그대로의 한 강(江)의 가을이더라.

가을이 돌아와 이 하늘은 맑고 공기도 맑은데, 바람과 물결이 잔잔히 가라앉어 버리니까 그 맑고 밝은 강이 본래 그대로더라 그거죠.

 

출가해서 10년, 20년 내지 평생을 참선(參禪)을 한다고 했건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고 어제도 이럭저럭 오늘도 이럭저럭 이렇게 늙어간다면, 그것은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했거나, 바른 선지식을 만났으되 용기가 부족했거나, 용기를 가지고 했으되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이 틀렸거나,

또는 금생에는 자기 나름대로 선지식을 만났고 또 용기도 가졌고 또 바른 방법으로 했건마는, 전생에 워낙 닦아 놓은 것이 없거나,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서 이 도업(道業)을 성취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이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내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그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한 것이 꽉 속에 차 있어 가지고—정말 그 법(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말하자면은 어떠한 좋은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은 그 그릇에 담겨있는 모든 것을 비워 버려야 되거든.

그 안에 들어있는 무슨 음식이 되었건, 음식 찌꺼기가 되었건, 기름기가 묻었건, 뭐 반찬 냄새가 묻었건, 일단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 그 안에 어떠한 맛있는 물건이라도 다 버려 버리고 깨끗이 한 다음에라야 그 맑은 물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지, 거기에 본래 어떠한 것이 담어져 있는 상태에다가 아무리 맑은 물을 부어 봤자 그 물은 구정물이 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이 도(道)는 그러한 음식과도 또 달라서, 음식은 다른 것이 담아 있어도 그 옆에다 또 곁들여서 담어서 두 가지 세 가지도 담을 수 있지만, 도(道)는 영판 안 돼.

 

천하 없는 경전에 있는 말씀이라도 속에 담어져 있으면 그것은 안 되는 거여. 팔만대장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다 풀이를 할 줄 알아도 그 생각이 속에 들어있으면은 도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여.

천하 없이 십계, 십중대계, 48경계와 비구 250계, 비구니 500계를 낱낱이 다 실천을 해서 청정하기가 말로 할 수 없다 하드라도, 그 청정한 데에 맥혀 갖고 있으면 도는 이루지를 못하는 것이여.

 

심지어 그 보다 더한 것이 속에 있다 하드라도 얻은 바가 있다 하드라도 그러한 것이 체(滯)해 갖고 있으면은 도는 통할 수가 없는 것이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으되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했다’하는 생각을 가지면 벌써 아라한이 아니고, 보살도를 증득했으되 ‘내가 보살도를 증득했다’하면은 벌써 그것이 보살이 아니여.

 

깨달았으되 ‘깨달았다’는 생각에 체(滯)해 있으면은 그 깨달음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이여.

 

그렇거든 이제 공부하려는 사람이 선지식을 구할 때에 내로라하는 생각을 속에 가지고 있어 가지고 그 선지식이 믿어지냐 하면 믿어지지도 않는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법문을 들어봤자 그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여.

 

그래서 이 도(道)는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다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다 비워버려야 돼.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이 사상(四相)을 말씀하셨지마는 그 첫째 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 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상(相)도 문제가 없는 것이여.

이 아상(我相), ‘내’라고 하는 이놈 하나 때문에 결국은 무량겁 생사윤회도 거기에서 원인이 되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도 거기에 원인이 되는 것이고, 육도법계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온갖 이 태란습화(胎卵濕化)도 그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웬수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여.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남하고 다툴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탐진치(貪瞋痴)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대중생활 하는 데에도 ‘내’라 하는 생각 있는 데에서 온갖 불평이 일어나고, 온갖 서로 다툼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장애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이 도량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을 무너뜨려 버리고, 내 주장을 버려 버리고, 이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석 달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석 달 동안을 정진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20분5초~31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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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잉풍기랑낭생구~’ ; 《허응당집(虛應堂集)》 (허응당 보우) ‘시부상인(示膚上人)’ 참고.

*버큼 ; ‘거품’의 사투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을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아견(我見) ; ①나라는 견해. 자아(自我)라는 견해. ②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여겨서 집착하여 분별하는 잘못된 견해. 신견(身見)이라고도 한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아(我)에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네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중 나머지 세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내로라하다 ; (주로 ‘내로라하는’ 꼴로 쓰여) 어떤 분야에서 두드러지거나 대표할 만하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선업(善業) ; ①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②탐진치(貪瞋癡)를 감소시켜 없애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것.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사상(四相) ;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된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분별심.

①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나라는 관념 · 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 · 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 · 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②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③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 · 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나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④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 · 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 · 생각. 생명체라는 관념 · 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육조구결(六祖口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 p135~136) (『육조 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 p98~99) 참고.

 

衆生佛性 本無有異 緣有四相 不入無餘涅槃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迷 卽佛是衆生 悟 卽衆生是佛

 

중생과 불성이 본래 다름이 없건만 사상(四相)이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미(迷)하면 불(佛)이 곧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불(佛)입니다.

 

迷人 恃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人 名我相 雖行仁義禮智信 而意高自負 不行普敬 言我解行仁義禮智信 不合敬爾 名人相 好事歸己 惡事施人 名衆生相 對境取捨分別 名壽者相 是謂凡夫四相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이나 학문 또는 출신[族姓]이 있음에 의하여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하고, 비록 인의예지신을 행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인의예지신을 행할 줄 안다’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인상(人相)이라 합니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리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하고, 어떤 경계에 대하여 취사분별하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凡夫)의 사상(四相)이라 합니다.

 

修行人 亦有四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名我相 自恃持戒 輕破戒者 名人相 厭三塗故 願生諸天 是衆生相 心愛長年 而勤修福業 諸執不忘 是壽者相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수행인도 또한 사상(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능소(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자신은 계를 지킨다고 파계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인상이라 합니다.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천상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이요, 오래 살고자 부지런히 복업을 닦으면서도 온갖 집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이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태란습화(胎卵濕化) ; 사생(四生).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 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