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안수정등2019. 12. 5. 04:16

*안수정등(岸樹井藤) ; 언덕(낭떠러지 岸) 위의 나무[樹]와 우물[井]가의 등나무[藤].

나무 · 우물 · 등나무 등은 생사 · 목숨 · 몸 등을 비유하고, 이것들은 무상(無常)하여 전혀 의탁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참고 ❶] 『비유경(譬喩經)』에서.

如是我聞 一時薄伽梵 在室羅伐城逝多林給孤獨園 爾時世尊於大衆中 告勝光王曰 大王 我今爲王略說譬喩 諸有生死味著過患 王今諦聽 善思念之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 세존世尊,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室羅伐城, 사위성舍衛城)의 서다림급고독원(逝多林給孤獨園,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셨다. 이때에 세존께서는 대중 가운데서 승광왕(勝光王)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대왕을 위하여 간략히 비유를 들어 모든 생사에 있어 오욕(五欲)의 맛에 탐착하는 허물을 말하고자 하니, 왕은 이제 자세히 듣고 잘 깊이 생각하시오.

 

乃往過去 於無量劫 時有一人 游於曠野 爲惡象所逐 怖走無依 見一空井 傍有樹根 卽尋根下 潛身井中 有黑白二鼠 互齧樹根 於井四邊有四毒蛇 欲螫其人 下有毒龍 心畏龍蛇恐樹根斷 樹根蜂蜜 五滴墮口 樹搖蜂散 下螫斯人 野火復來 燒然此樹

 

과거 무량겁 전에 한 사람이 광야를 걷다가 험악한 코끼리에 쫓겨 두려워 달아나면서 의지할 데가 없었소. 그러다가 어느 빈 우물과 그 옆에 나무 뿌리가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곧 그 나무 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그때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나무 뿌리를 번갈아 갉고 있고, 우물 안 사방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그를 물려 하고, 우물 밑에는 독룡이 있었소. 독룡과 독사가 두려웠고 나무 뿌리가 끊어질까 무서워하였소. 그런데 나무 뿌리에서 벌꿀이 다섯 방울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들이 흩어져 내려와 그 사람을 쏘았으며,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이 나무를 태우고 있었소”

 

王曰 是人云何 受無量苦 貪彼少味

爾時世尊告言 大王 曠野者喩於無明長夜曠遠 言彼人者 喩於異生 象喩無常 井喩生死 險岸樹根喩命 黑白二鼠以喩晝夜 齧樹根者 喩念念滅 其四毒蛇 喩於四大 蜜喩五欲 蜂喩邪思 火喩老病 毒龍喩死 是故大王 當知生老病死 甚可怖畏 常應思念 勿被五欲之所呑迫

 

왕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 보잘것없는 맛을 탐합니까?”

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광야(曠野)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한 것이요, 그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비유한 것이요, 우물은 생사에 비유한 것이며, 그 험한 언덕의 나무 뿌리는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검은 쥐,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비유한 것이며, 나무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 찰나로 목숨이 줄어드는 데 비유한 것이요, 네 마리의 독사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에 비유한 것이며, 벌꿀은 오욕(五欲)에 비유한 것이요, 벌은 삿된 소견에 비유한 것이며, 불은 늙음과 병에 비유한 것이요,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마땅히 생노병사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알아야 하니, 늘 응당 명심하고 오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오”

 

爾時世尊重說頌曰

曠野無明路  人走喩凡夫  大象比無常  井喩生死岸  樹根喩於命 二鼠晝夜同  齧根念念衰  四蛇同四大  蜜滴喩五欲  蜂螫比邪思 火同於老病  毒龍方死苦  智者觀斯事  象可厭生津  五欲心無著 方名解脫人  鎭處無明海  常爲死王驅  寧知戀聲色  不樂離凡夫

 

그리고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넓은 들판(曠野)은 무명의 길(無明路)요, 달리는 사람은 범부의 비유며, 큰 코끼리는 무상의 비유요, 우물은 생사의 비유니라. 나무 뿌리는 목숨의 비유요, 두 마리 쥐는 밤과 낮의 비유며,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것이요, 네 마리의 뱀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이다. 꿀방울은 오욕의 비유요, 벌이 쏘는 것은 삿된 생각의 비유며, 불은 늙음과 병과 같고, 독룡은 바야흐로 괴로운 죽음이다.

지혜로운 이는 이 일을 자세히 살펴 생사를 싫어하니 오욕에 집착 없으면 바야흐로 해탈한 사람이라 한다. 무명의 바다에 편한 듯 있으면서 항상 죽음의 왕에 휘몰리니, 여전히 소리와 빛깔을 잊지 못하면 범부의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爾時勝光大王聞佛爲說生死過患 得未曾有 深生厭離 合掌恭敬 一心瞻仰 白佛言 世尊 如來大慈 爲說如是微妙法義 我今頂戴 佛言 善哉善哉 大王 當如說行 勿爲放逸 時勝光王及諸大衆 皆悉歡喜 信受奉行

 

그때에 승광대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사의 근심스러움을 듣자, 일찍이 알지 못했던 일이라 생사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마음으로 우러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저를 위해 이처럼 미묘한 법의 이치를 말씀하셨으니, 저는 지금 우러러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오. 대왕이여, 마땅히 그 말대로 실행하고 방일(放逸)하지 마시오” 승광대왕과 모든 대중은 다 매우 기뻐하고 믿고 지녀 받들어 행하였다.

 

--大正藏 제4冊 No.217 《譬喩經》 (大唐三藏法師義淨譯)

 

 

[참고 ❷] 『빈두로돌라사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突羅闍爲優陀延王說法經, 빈두로돌라사 존자가 우타연왕을 위해 설법한 경)』에서.

尊者言 大王 我今爲王略說譬喩 諸有生死 著味過患 王至心聽 昔日有人 行在曠路 逢大惡象 爲象所逐 狂懼走突 無所依怙 見一丘井 卽尋樹根 入井中藏

 

존자가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제가 지금 왕을 위하여 간략히 비유를 들어 모든 생사에 있어 오욕(五欲)의 맛에 탐착하는 허물을 말하고자 하니, 왕께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들으십시오.

지난날 어떤 사람이 넓은 길을 가다가 크고 험악한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코끼리에 쫓겨 두려움에 미친 듯이 달렸으나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언덕에 있는 한 우물을 보고 곧 나무뿌리를 잡고 들어가 우물 안으로 몸을 감추었습니다.

 

有白黑鼠 牙齧樹根 此井四邊 有四毒蛇 欲螫其人 而此井下 有大毒龍 傍畏四蛇 下畏毒龍 所攀之樹 其根動搖 樹上有蜜三渧 墮其口中 于時動樹撑壞蜂窠 衆蜂散飛 唼螫其人 有野火起 復來燒樹 大王當知 彼人苦惱 不可稱計

 

그런데 흰 쥐와 검은 쥐가 이빨로 나무뿌리를 갉고 있고, 우물의 사면으로 네 마리의 독사가 그를 물려고 하고, 우물 아래에는 큰 독룡이 있었습니다. 옆의 네 마리의 독사가 무섭고, 아래에 있는 독룡이 두려운데 그가 붙잡고 있는 나무뿌리가 흔들리자 나무 위에 있던 꿀이 세 방울 그의 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때 나무가 흔들려 벌집이 부서지니 벌들이 흩어져 날아 그 사람을 쏘아댔습니다. 또한 들에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울 지경에 왔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사람의 고뇌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王愁憂厭惡而言 彼人得味甚少 苦患甚多 其所味者 如牛跡水 其所苦患猶如大海 味如芥子 苦如須彌 味如螢火 苦如日月 如藕根孔比於太虛 亦如蚊子比金翅鳥 其味苦惱多少如是

 

왕은 근심, 걱정, 싫고 미워하는 마음이 나서 말하였다. “그 사람에게 오욕락은 매우 적고, 괴로운 근심은 매우 많습니다. 즐거움의 맛이 소 발자국에 괸 물이라면, 그 괴로운 근심 고통은 큰 바닷물과 같습니다. 즐거움의 맛이 겨자씨 같다면, 괴로운 고통은 수미산과 같습니다. 즐거움의 맛이 반딧불이라면, 고통은 해와 달 같습니다. 연뿌리에 난 구멍을 태허(太虛)와 비교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모기를 금시조(金翅鳥)와  비교하는 것 같습니다. 그 즐거움의 맛과 괴로운 고통의 많고 적음이 이와 같습니다”

 

尊者言 大王 曠野者 喩於生死 彼男子者 喩於凡夫 象喩無常 丘井喩於人身 樹根喩人命 白黑鼠者 喩晝夜 齧樹根者 喩念念滅 四毒蛇喩四大 蜜者喩五欲 衆蜂喩惡覺觀 野火燒者喩老 下毒龍者喩死

是故當知 欲味甚少 苦患甚多 生老病死 於一切人 皆得自在 世間之人 身心勞苦 無歸依處 衆苦所逼 輕疾如電 是可憂愁 不應愛著 大王 今我語王 言雖麁惡 實是利益

 

존자가 말하였다. “대왕이시녀, 광야(曠野)는 생사를 비유한 것이고, 그 남자는 범부(凡夫)를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언덕의 우물은 사람 몸을 비유한 것이고, 나무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비유한 것이며, 나무뿌리를 갉는다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멸(滅)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네 마리의 독사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를 비유한 것이고, 꿀은 오욕(五欲)을 비유한 것이고, 벌떼는 악한 각관(覺觀 사유, 고찰하는 마음 작용)을 비유한 것이며, 들불이 태운다는 것은 늙음을 비유한 것이고, 우물 아래 독룡은 죽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욕락은 매우 적고, 괴로운 근심은 매우 많다는 것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생로병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걸림이 없이 만나니, 세간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고달프고 괴로우며 의탁할 곳이 없고, 온갖 고통의 핍박함이 재빠른 것이 번개와 같습니다. 이는 과연 고통과 근심이니 응당 오욕에 애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제가 왕에게 하는 이야기는 말은 비록 거칠고 험악하더라도 진실로 이익이 될 것입니다”

 

--大正藏 제32冊 No.1690 《賓頭盧突羅闍爲優陀延王說法經》(宋天竺三藏求那跋陀羅譯)

 

 

[참고 ❸]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 (卷5) '제53 증수비유편(增數譬喩篇)'에서.

故大集云 昔有一人 避二醉象(生死) 緣藤(命根)入井(無常) 有黑白二鼠(日月) 囓藤將斷 旁有四蛇欲螫(四大) 下有三龍吐火張爪拒之(三毒) 其人仰望二象已臨井上 憂惱無托 忽有蜂過遺蜜滴入口(五欲) 是人唼蜜 全亡危懼

 

대집경에서 “옛날 어떤 사람이 두 마리의 술취한 코끼리(생사)를 피해서 등나무(목숨)를 의지하여 우물(무상)에 들어갔으나 검은 쥐와 흰 쥐(달과 해) 두 마리가 갉아 끊으려 하고, 옆으로는 네 마리의 뱀(사대)이 물려고 하며, 아래에는 세 마리 용(三毒)이 불을 뿜으며 움켜 잡으려 하였다.

그 사람이 위를 쳐다보니 두 마리 코끼리는 이미 우물 위에 지키고 있어 의탁할 곳이 없어 근심 걱정하고 있는데, 문득 지나가는 벌이 꿀방울(五欲)을 떨어뜨려 입에 들어와서 꿀을 맛보자 두려움을 모두 잊었다.

 

--大正藏 제54冊 No.2131 《飜譯名義集》 (姑蘇景德寺普潤大師法雲編)

--『번역명의집』은 중국 남송(南宋) 법운(法雲 1088-1158)이 불교경전에 보이는 범음(梵音)으로 한역된 단어를 유별로 정리하여 해설한 일종의 불교용어 사전. 전체 약 2천여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

 

 

[참고 ❹]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倏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과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10분 57초)

 

[법문] 송담스님(No.133)—1981년 1월 첫째일요법회 (용133)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하고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도자위경조수행(覩玆危境早修行)하여  근념미타생극락(勤念彌陀生極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 여름에 가물 때 웅덩이에 큰 고기, 작은 고기, 송사리가 더글더글더글더글 팔딱팔딱팔딱 뛰는데 물은 하루하루 물이 줄어져서 이제 거의 물이 다 바닥이 다 보이게 되었어.

물은 거의가 다 마르게 되고, 고기는 물이 마르니까 그런 데다 물은 햇볕에 데워져서 뜨겁고 고기가 우물우물우물하면서 곧 빨딱거리다 곧 죽게 된 그러한 형상을 농촌에서 혹 구경을 하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세계 40억이라고 하는 인류가 각 나라마다 자기나라 잘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한 나라 안에서는 각기 자기만, 자기가 보다 더 좀 잘살겠다고 발버둥치고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여름 뜨겁고 가문 날에 거의 말라가는 웅덩이 속에 송사리 떼가 몸부림친 거와 같은 현상을 띄고 있는 것입니다.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라. 큰 광야에 어떤 사람이 광야(曠野)를 지나가는데 코끼리란 놈이, 성난 코끼리가 자기를 쫓아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코끼리한테 잡혀서 짓밟히면 죽게 되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을 치다가 마치 큰 샘을 하나 만났다.

 

그 샘으로 피난을, 피하기 위해서 마치 그 샘 언덕에 등넝쿨이 있어서 그 등넝쿨을 잡고서 샘 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말이여. 저 밑에 샘 밑바닥을 내려다보니까 거기에는 독룡 독사가 바닥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

그래서 저 밑으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위에로 올라가자니 코끼리란 놈이 코를 내두르면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그런데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니까 그 절벽에다가 벌이 집을 지어 놨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똑똑 떨어진다. 아무리 죽게 되었지만 아! 꿀이 똑똑 이 콧등어리로 떨어지니까 할 수 없이 그놈을 받아서 쪽쪽 빨아먹는다 말이여.

그런데 그때 흰 쥐와 검은 쥐가 나와 가지고 등넝쿨을 번갈아가면서 갉아대. 얼마 안 있으면 흰 쥐가 한바탕 갉고, 조금 있으면 또 검은 쥐가 갉고 흰 쥐가 갉고 그래서 그 등넝쿨 뿌럭지가 똑 떨어지면 샘 밑바닥에 떨어져 가지고 독사의 밥이 되게 되았다 그말이여.

 

그러면서도 똑똑 떨어지는 꿀 받아먹는 재미로 코끼리가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두려움도 잊어버리고, 밑으로 떨어지면 독룡 독사에게 잡혀 먹는다고 하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면서 등넝쿨을 갉아 대고 있다고 하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그말이여.

꿀 받아먹는 재미로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을지언정 이 사람의 죽음은 시간 문제다 말이여.

 

「어떻게 했으면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 문제가 공안(公案)의 하나입니다.

「어떻게 했으면 이 꿀을 받아먹고 있는, 등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겠느냐?」

 

우리의 중생, 우리 중생의 운명이, 신세가 마치 이 등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말씀이여.

 

광야(曠野)는 생사의 광야요, 인생의 광야요. 우리는 그 한도 끝도 없는 무상(無常)한 생사의 광야를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데 무상살귀(無常殺鬼),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무상살귀로부터 쫓김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그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고, 흰 쥐 검은 쥐는 낮과 밤이고, 그리고 그 등넝쿨은 우리의 생명줄이고, 생명이 수명이 뚝 끊어지면 죽어서 무간(無間), 저승이 기다리고 있다 그말이여.

 

똑똑 떨어지는 꿀은 무엇이냐 하면은 인간에 오욕락이다 그말이여. 오욕락(五慾樂), 재산 · 색욕 · 명예욕 · 명예 · 권리, 또 수면 · 안락 이런 것이 다 다섯 가지 인생의 즐거움인데.

이 인생에 다섯 가지 즐거움, 그 오욕락에 팔려서 그 재미 보느라고 일초일초 죽음을 향해서 쫓기고 있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망각한 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했으면 칡넝쿨에 매달려 있는,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그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여름 웅뎅이에 물 마른 데 퍼드덕거리고 있는 우글대고 있는 송사리 떼와 같은 신세, 칡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그러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서, 도자위경조수행(賭玆危境早修行)이라. 이러한 위경(危境)을 뼈아프게 느끼고서 어서 속히 수행을 해라.

그래 가지고 근념미타생극락(勤念彌陀生極樂)이다. 부지런히 참선(參禪)을 해 가지고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얻을지니라.(14분24초~25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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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수정고어소수~’ ; 『관음예문(觀音禮文)』 (용화선원刊, 가로판)에 있는 ‘무상게(無常偈)’ p35, p64 참고.

刹那生滅無常法  聚散循環有漏因  金烏出沒促年光  玉兎昇沈催老像

忍受井枯魚少水  寧容象逼鼠侵藤  覩玆脆境早修行  勤念彌陀生極樂

 

한 찰나에 생하고 멸하는 것이 무상한 법이며,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는 것은 번뇌(有漏)의 원인이네. 해는 떳다 지면서 세월을 재촉하고, 달은 떳다 지면서 내 늙음 재촉하네.

우물이 말라 물이 적은 것 물고기는 어찌 참으며, 미친 코끼리에게 쫓기고, 쥐는 등넝쿨을 갉나니, 이같이 위급함을 절실히 알아 속히 수행을 하고, 부지런히 아미타 부처님 염(念)하여 극락왕생하세.

 

促 재촉할·빠를(촉), 催 재촉할·독촉할(최), 金烏(금오)는 '해'를 가리키는 말, 玉兎(옥토)는 '달'을 가리키는 말.

 

*더글더글 ; (물체 따위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마구 모이거나 겹쳐 있다.

*우물우물하다 ; 큰 벌레나 물고기 따위가 한군데에 많이 모여 자꾸 굼뜨게 움직이다.

*가물다 ; 땅에 물기가 바싹 마를 정도로 오랫동안 계속하여 비가 오지 않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어떻게 했으면 이 꿀을 받아먹고 있는, 등넝쿨에 매달려서 꿀을 받아먹고 있는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겠느냐?」 ; 이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달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할지어다.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무간(無間) ; ①곧. 즉시. 끊임없이. 끊어짐이 없음. 또는 중간에 끼이는 것이 없음. '무간'은 시간적으로 계속된다는 뜻이고, 공간적으로는 끼일 틈이 없다는 뜻. ②무간업(無間業)의 준말. ③무간지옥(無間地獄)의 준말.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위경(危境) ; 위태로운 처지나 지경.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