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이뭣고? 화두2019. 8. 1. 06:52

이뭣고(是甚麼) (No.086)—이 우주가 생겨날 때부터서 우주 자체가 바로 이 「이뭣고?」의 뭉텡이 |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77대 조사(祖師)가 바로 전강 대종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21분 33초)

 

[법문] 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78.08.27)(용086)

 

화두(話頭) 가운데는 천칠백(千七百) 화두가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문헌에 오른 것만이고,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공안, 이 우주세계에 가득찬 것이 바로 공안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주어진 화두 단 하나만을 철저히 참구(參究)를 해서 그 화두를 여지없이 통과를 해서 타파(打破)를 하게 되면은 천칠백 공안도 동시에 다 통과를 하게 되는 것이고, 천칠백 공안이 통과가 되면은 우주법계에 가득찬 모든 공안을 현성(現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지식으로부터 단 하나의 화두만을 받아가지고 철저하게 참구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어떤 화두 하나를 잡아가지고 이리저리 해본다든지 이 화두 좀 해봤다, 저 화두 좀 해봤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사람은 도저히 바르게 깨달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허송(虛送) 생활을 하게 되고, 참 안타까운 신세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천칠백 화두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바로 ‘시심마(是甚麽), 이뭣고?’ 화두인 것입니다.

‘이뭣고?’는 바로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목적이 어릴 때부터서 그 ‘이뭣고?’에 대한—「대관절 이 인생이란 게 무엇이냐? ‘내’라는 게 무엇이냐?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이것을 바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시심마(是甚麽)’ 화두인 것입니다.

 

부처님 출현하시기 이전에부터 이 ‘시심마’ 화두는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출현하시기 이전 몇억만 년 이전부터서 이 우주가 생겨날 때부터서 우주 자체가 바로 이 「이뭣고?」의 뭉텡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불법(佛法)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참선(參禪)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그러한 사람 가운데에 ‘대관절 이 인생이라는 게 무엇이냐? 이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하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철학을 통해서 자기 나름대로 시나 소설이나 또는 예술, 과학 모든 자기의 분야에 있어서 결국은 그러한 분야를 통해서 「이뭣고?」라고 하는 것을 해결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빨리 인생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이요,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철저하게 참선을 해 나가는 길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삼천 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은 오직 이 문제 하나만을 위해서 정든 고향과 부모 형제와 가족을 버리고 청춘과 인생을 다 버리고서 오직 이 한 문제만을 전문적으로 참구해 왔었던 것입니다.

목숨 바쳐 참구를 해서 이 일대사(一大事)를 통달하셔 가지고 그것을 또 제자에게 전하시고, 그 제자는 또 그 제자를 전해서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77대 조사(祖師)가 바로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이십니다.

 

이러한 분명한 법통(法統)을 이어받으신 그런 어른으로부터 참선 지도를 받고 화두를 타고 공부를 해야만 나 자신도 올바른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른 안목을 갖지 못하고서 남을 바르게 가르킬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자기는 바로 그 목적지에까지 가보지도 않고서 남을 그 목적지에까지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도 아니하고 그러한 안내자 없이 올바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적을 바래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실(實)다웁게 닦아서, 실다웁게 깨달아야지, 요행(僥行)을 바랜다든지 기적을 바래고서야 대도를 성취할 가망성은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

대관절 지금 여러분들이 이 더위를 무릅쓰고 수백 리 밖에서, 수십 리 밖에서 이렇게 참석을 하셨는데 “무엇이 왔느냐?”

“내가 왔다”

 

“내가 누구냐?”

“김 아무개다”

 

“김 아무개가 누구요?”

“나여”

 

“내가 누구여?”

“김 아무개여”

이러한 대답은 바른 대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금생에 ‘김 아무개’지, 전생에는 ‘박 아무개’었을런지 모르고. 금생에 ‘김팔봉’이 이름을 칠봉이라고 지으면 칠봉이고, 삼봉이라고 지으면 삼봉이지, 이름이야 수천 개, 수만 개라도 새로 갈아붙일 수가 있는 것이어서 그것은 임시로 붙여 놓은 이름이지 그것은 ‘나’가 아니여.

 

“이 몸뚱이가 ‘나’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四大)가 뭉쳐져서 임시로 건립되어 있는, 이 ‘나’가 살고 있는 임시 주택이요, 한 벌의 옷에 지내지 못한 것이지 이것은 ‘나’가 아니다.

 

이 ‘나’는 이 몸뚱이를 운전하고 이 몸뚱이를 주재하는 주인공(主人公), 그것은 수십 수백 가지의 이름이 있지마는 그 이름 붙이기 이전에 그 참모습이 무엇이냐? 참면목(面目)이 무엇이냐?

 

이것은 우리의 희고, 검고 하는 것을 보는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것이고 새소리, 닭소리를 듣는 그 귀로서는 아무리 들을라고 해도 들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꽉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를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이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큰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큰 메겡이로 메쳐서 그 간장독이 쩍!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칠백 공안은 우리가 나를 깨닫기 위한 나침판이요, 지팡이요, 등불이며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잠시도 화두를 떠나서는 우리의 공부는 생각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화두는 우리의 앞에 역력(歷歷)하고 또록또록하게 나타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 싱겁고 맛없는 한마디 말이지마는 계속 들고 또 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생각한다’고 하면은 조금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나가는 데에는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이것을 생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라 하면 이리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인데 이 화두를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더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하는 그런 이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관(觀)’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볼 관(觀)’자.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볼 관(觀)’자. “관(觀)하라” 이렇게 ‘본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없는 것이고, 재미없는 말이지마는 자꾸 하고 또 하고 하는 가운....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 나가면...(녹음 끊김)

큰방살이가 작은방살이가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 언제가 수백억만 년 옛날에는 ‘참나’가 나의 주인공이였었고, 번뇌 망상은 그때 작은방살이였었습니다.

 

그것이 아는 동안에 차츰...(녹음 끊김) 조국을 찾자는 그 한 생각뿐이었던 것입니다. 조국에 모여가지고 모래 위에 흙을 퍼다가 붓고 모래 속에다가 수도 시설을 해가지고 모래땅을 옥토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국에 유학을 가 있는 학생들도 조국에 싸움이 일어났다 큰일이 일어났다 하면은 조국에서 부르기 전에 서로 앞을 다투어 조국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조국을 잃어 본 사람이 아니면 조국이 얼마나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36년간이라고... (녹음 끊김) 근자에 와서 세계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놀랄 만큼 오히려 선진국들이 우리를 경계하지 아니하고서는 안될 만큼 그러한 수준에 지금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 경제면에서 세계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녹음 끊김)

그러한 내가 참나를 찾는 진리를 탐구하는 그러한 (녹음 끊김) 자칫하면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아니한다고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나라들이 한때 물질면에서 경제면에서 그렇게 (녹음 끊김 )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고 해서 조끔도 안일에 빠질 수도 없고, 허리띠를 늦출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욱 검박하게 살면서 우리는 그 물질 이상으로 그 정신면에 있어서 우리 정신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신력 강화가 바로 참선법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참나를 찾는 이 수행이야말로 부처님을 믿는 신도에 국한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는 사람도 이 참선은 해야만 되고 불교를 안 믿는 사람도 참선법만은 바로 배워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참나를 찾는...(녹음 끊김)

 

누차 말씀을 드리는 바이지만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다. 경전에 씌어진 어떠한 경전의 말씀도 ‘이뭣고?’ 참구하는 데에 동원되어서는 아니된다 이것입니다. 다못 바보가 되어서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초학자는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호흡과 화두가 함께 잘되어 가는 단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들어마실 때나 내쉴 때나 그것에도 구애받을 것이 없고,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차를 탈 때나 밥 먹을 때나 그러한 것에도 조끔도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더라도 ‘아! 인자 되었다. 참! 잘되었다’ 이러한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아니 되고,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더라도 계속 화두만을 더욱 간절하게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썩 잘 순일하게 잘되어 가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뚝 변해가지고 영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졸음이 퍼오거나 망상심이 퍼 일어나거나 화두가 도저히 잘 안 들리는 경우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조끔도 번뇌심이나 짜증을 내지 마시고 계속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계속 들어나간다면 얼마 안 가서 어려운 고비를 넘게 됩니다. 그 고비를 지혜스럽게 참을성 있게 잘 넘기고 나면 그때 가서는 또 한결 공부가 수월한 단계에 이르른 것입니다.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이 「서장(書狀)」에 말씀하시기를 ‘그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이러한 경지가 절대로 나쁜, 공부가 잘 안되는 마장(魔障)의 경지가 아니라 참으로 한 걸음 올라설 수 있는 좋은 중요한 계기니까 그것을 놓치지 말고 더 정신을 차려서 지혜롭게 그 고비를 잘 넘기도록’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공부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해야만 할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집안을 위해서는 내 몸을 버려야 하고 내 몸을 잊어야 하고, 마을을 위해서는 집안을 잊어야 하고, 국가나 민족을 위해서는 마을을 잊어야 한다. 진리를 위해서 도를 위해서는 몸과 집안과 마을과 나라까지도 버려야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참선하는 사람은 집안이고 뭐 국가도 다 버려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참선이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나라 삼천오백만 민족이 전부 참선을 하게 되면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이냐?’ 혹 이러한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릅니다마는.

 

‘이뭣고?’하는 동안에는 정말 나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하는 것이거늘 목숨 없는 곳에 나라 생각, 민족 생각이 거기에 떠오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바칠 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때에 도(道)의 문(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고.

 

그렇게 해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냐?

집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과 국가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법계에 가득찬 모든 중생을 위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몸과 마을과 국가와 민족을 잊어야 하고 그렇게 잊음으로써 진리를 체달(體達)하게 되고, 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그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통해서 우리는 다 읽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의 참뜻을 옳게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한문(漢文)에 통달한 사람은 무슨 경전이든지 맥힐 것이 없다’ 이렇게 보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참선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아야만 어떠한 경전의 쉬운 한 글귀라도 바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디 덥다 핑계대지 말고, 춥다 핑계대지 말고 ‘아직도 나는 할 일이 많다. 아들을 위해서 딸을 위해서 할 일이 많다. 집안을 위해서 할 일이 많다’ 그러한 핑계대지 말고,

일분일초라도 그 생각을 돌려서 화두를 참구하심으로 해서 이 몸 이만큼 건강할 때 반드시 참나를 깨닫도록 이 자리를 통해서 다짐을 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37분16초~58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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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법통(法統 부처님의 가르침 법/거느릴·벼리·혈통) ; 불법(佛法)을 물려받음. 또는 대대로 불법을 계승하는 계통. 법맥(法脈)과 같은 말.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을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온,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통(法統)의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실(實)답다 ; 꾸밈이 없고 참되고 미덥다(믿음성이 있다. 신뢰성이 있다).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를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등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을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공(空)하여 체성(體性)이 없음이 마치 물에 뜬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남[出]이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그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온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성(城)을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絕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행[功行]은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곧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적(寂)과 조(照)가 앞에 나타나 응(應)해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일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에 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분별식(分別識) ; 팔식(八識) 가운데 제6 의식(意識)을 말한다. 이 의식은 차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메겡이 ; ‘메(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나무토막이나 쇠토막에 자루를 박아 무엇을 치거나 박을 때 쓰는 방망이)’의 사투리.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http://emokko.tistory.com/79)’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체달(體達 몸 체/통달할 달) ; ①몸[體]으로 직접 통달(通達)함. 몸소 경험하여 막힘이 없이 트이다. ②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