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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1.27 토굴(No.434)—(게송)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把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 유위법(有爲法)에 탐착하지 마라 | 수행자가 있으면 그 산이 바로 명산.
  2. 2021.04.30 탐진치 삼독((No.479))—백종(百種)날((No.479))—백종 법회로 선망부모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 탐진치가 축생 · 아귀 · 지옥에 떨어지는 근본. 원인.
  3. 2020.01.21 탁마(琢磨) (No.282)—삼구(三句), 체중현 경계 / (게송)해고종견저~ /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보아야.
  4. 2019.05.02 타성일편(打成一片) (전강선사 No.249)—'이뭣고?' 염념상련(念念相連)을 해라 | 의단독로, 그것이 바로가 그대로가 그놈 연속(連續)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타성일편 지경.
  5. 2017.04.16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No.455)—우리가 육도윤회를 하는 것, 그리고 모든 전쟁의 원인이 훨훨 끝없이 타고 있는 이 탐진치 삼독의 불 때문이다.
  6. 2016.07.29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No.299)—활구참선 정진해 공안을 타파 확철대오할 때에 여러분은 눈을 감아도 전체가 부처요, 눈을 떠도 전체가 부처.
  7. 2016.02.18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No.470)—(게송)頓悟心源開寶藏~ | 번뇌 망상 탐진치 삼독을 여의고 찾지 말어.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거든.
  8. 2016.01.28 탐착(貪着) (No.523)—(게송)貪着夢中一粒米~ | 경계 따라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정말 믿지 못할 꿈이고 또 허망한 것.
ㅌ/토굴2024. 1. 27. 11:49

토굴(No.434)—(게송)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把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 유위법(有爲法)에 탐착하지 마라 | 수행자가 있으면 그 산이 바로 명산.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7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하니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하라  부생천착불상관(浮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삼간(三間), 삼 칸 조그마한 삼 칸에 뗏집에 종래로 머물러 왔는데. 삼간모옥(三間茅屋)이라는 것은 저 산중에 뗏집, 떼를 비어다가 조그만하게 토굴을 지은 형상입니다. 그 조그만한 토굴에 주욱 살아왔다 그 말이여.

이건 우리의 육체도 조그만한 방가루(bungalow)거든. 우리의 영식(靈識)이 숙세의 인연이 있어서 그 어머니 그 아버지에 의탁을 해 가지고, 요 조그만한 이 육체라고 하는 방가루를 하나 지었어.
이것이 바로 삼간모옥이거든, 뗏집 토굴이거든 이게. 얼마 동안 살다가 못 살 만큼 집이 낡아 버리면 이거 훌렁 벗어버리고 또 새집을 짓게 되겠죠.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로구나, 한 길 싱그러운 빛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구나.
일도신광(一道神光)이라 하는 것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신 가운데에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본래 갖추어져 있는 큰 지혜 빛이거든. 해탈 광명이거든.

떡! 화두(話頭)를 들고,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그 화두 한마디에 나의 몸과 목숨과 모든 신심을 거기다 다 탁! 바쳐 버리거든. ‘이뭣고?’

이 ‘이뭣고?’로써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다 이겨 나가고, 흥망성쇠도 다 이 ‘이뭣고?’ 하나로써 다 극복해 나가고, 생로병사와 성주괴공도 다 ‘이뭣고?’ 하나로써 다 물리치고 극복을 해 나가거든.
그러한 철두철미한 신심을 가지고 나갈 때 25신장이 항상 옹호를 하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다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하시면서 이렇게 보살펴 주시니 어찌 그 몸에서 싱그러운 빛이 안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겉으로 보면은 보잘것없는 떼 풀로 이은 보잘것없는 토굴이지만, 그런 수행을 하는 스님이 계시면 그 집은 바로 삼매(三昧)의 빛으로 장엄을 하게 되고, 그러한 수행자가 그 산중에 있으면 그 산중은 바로 명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도 그러한 수행자가 있으므로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이 이렇게 청정도량으로써 많은 법보가족들이 모여서 법문을 듣고 또 정진을 하고. 이 도량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또 이 도량에 와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고 하면은 다 소원을 성취하고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을 하고 한 것이 다 헛된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일도신광만경한(一道神光萬境閑)이다.
막파시비(莫把是非)를 내변아(來辨我)하라. 세상에 누가 잘하고 못하고, 누가 옳고 그르고, 누가 잘되고 못되고, 흥망성쇠와 성주괴공 생로병사 그런 시비를 나한테 와서 따지지 말라 이거거든.

부생천착(浮生穿鑿)이 불상관(不相關)이다. 이 사바세계의 모든 것은 부생(浮生)이거든.
유의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이, 유의법 속에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거, 모든 것은 뜬 생이거든. 뜬세상!

뜬세상에 있어서의 온갖 잘하고 못하고, 잘되고 못되고 하는 그러한 시비 천착(穿鑿)은 나는 그까짓 것 상관하지 않겠다 이거거든.
거기에 깊이 빠져서 골몰을 해봤자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뜻대로 일부가 된들 그것 가지고 무슨 영원한 행복이 오며 그것 가지고 무슨 생사(生死)가 해탈(解脫)이 되는,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 그 말이여. 또 일시 잘되어 봤자 또 얼마 안 가면 금방 또 틀어져 버리는 거다 그 말이여.

또 우선 잘못된 거 같아도 또 지내다 보면 또 잘되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 너무 지나치게 이 허망한 유위법(有爲法)에 깊이 빠져서 몸부림치고 너무 깊이 탐착(貪着)해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웬수 짓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53분15초~60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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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간모옥종래주(三間茅屋從來住)~' ; 『전등록(傳燈錄)』 제8권 '담주 용산(潭州龍山) 화상' 게송 참고.
*뗏집 ; 띠집. 띠로 지붕을 올린 집.
* ; 볏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방가루(bungalow 방갈로, 방가로) ; ①산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지어 여름철에 캠프용, 피서용으로 쓰는 작은 집. ②정면에 베란다가 있고 처마가 깊숙한 풀이나 기와 따위로 지붕을 한 작은 단층 집. 본래 인도 벵골 지방의 특유한 목조 주택 양식이다.
*영식(靈識) ; 영묘한(靈妙 - 신령하고 미묘한) 의식. 제8식. 영혼.
*의탁(依託 의지하다 의/부탁하다·의지하다 탁) ; 어떤 것에 몸이나 마음을 의지하여 맡김.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큰 지혜. 본구재도리(本具在道理)라고도 한다.
*본구재도리(本具在道理) ;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도리'
부처님이나 조사나 모든 성현, 우리 모든 범부, 범성(凡聖)을 막론하고 낱낱이 다 새로 닦아서 깨달을 것도 없이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도리. 본래면목(本來面目), 본각대지(本覺大智), 본구재대지(本具在大智)라고도 하는데,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성(自性)의 법신불(法身佛)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68) - 1987(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9분23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니라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모든 사람 사람 얼굴 앞에는 밝은 달이 희고,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사람 사람의 다리 아래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거울을 타파해서 그림자와 자취가 없으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은 부처님이나 조사나 모든 성현, 우리 모두 범부, 범성(凡聖)을 막론하고 낱낱이 다 본구재도리(本具在道理), 새로 닦아서 깨달을 것도 없이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그 도리가 있다.

그것을 본구재 도리(本具在道理)라고도 하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하고, 본각대지(本覺大智)라고도 하는데,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성(自性)의 법신불(法身佛)을 다 가지고 있지마는 왜 우리는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생사고(生死苦)를 받고 있는가?
까닭 없이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멀쩡한 탈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그 탈을 바꿔 쓰면서, 여기서 나서 저기서 죽고, 저기서 나서 여기서 죽기를 수없이 해왔어.

그 무량겁을 탈을 바꿔 쓰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오면서, 우리에는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한 거울을 가지고 있는데, 그 거울 속에 그 동안에 겪어오는 모든 일들 그 거울 속에 다 녹화(錄畵)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제8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이라 하는 것이여.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는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사실들이 터럭끝 만한 작은 일로부터서 이 세계가 파괴되는 그런 큰일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그 속에 다 녹화·녹음이 되어 있는 거여.

그 거울을 타파(打破)해 버려라.

그 거울 속에 녹화되고 녹음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어떠한 인연을 만나면은 거기서 녹화된 것이 밖으로 이렇게 현행(現行)을 하는 것이여. 밖으로 그것이 이렇게 나와. 행동으로 나타나고, 생각으로 나타나고, 눈을 통해서 나타나고, 귀를 통해서 나타나고, 그 현행을 하면서 동시에 또 새로운 사실들이 또 녹화가 되고 녹음이 돼.
녹화·녹음이 새로 되는 것을 훈습(薰習)이라 그러고, 또 훈습한 것이 밖으로 또 나타난 것을 현행이라 그러는데, 현행(現行)과 훈습(薰習)이 동시에 돌아가는 거여. 이것이 바로 우리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모습이여.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이 거울을 갖다가 여지없이  깨트려버려서 흔적조차도 없어질 때(打破鏡來無影跡),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생사 없는 도리’를 간단한 한 구절로 표현을 했지만, 새가 꽃가지에 올라와서 한 소리 우는 것이 그것이 평범한 사실이지만, 깨달은 도리를 말로써 표현할 수 없지마는 표현할 수 없는 바를 이렇게 고인(古人)은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 평범한 한 구절이 깨달은 사람은 여지없이 그 깨달은 경지를 바로 볼 수가 있지마는, 깨닫지 못한 사람이 볼 때에는 새가 꽃가지에 올라서 소리내어 우는 것이 하나의 평범한 사실에 불과한 것이여.
이 평범한 새 한 마리가 꽃가지에 올라가서 그 우는 것을 여기에다가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붙여서 이러쿵저러쿵 자기의 소견을 붙이고 사량분별을 붙인다면, 그 깨달은 도리를 표현한 이 법(法)이 완전히 죽은 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출가해서 스승을 찾아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이 화택(火宅)으로부터 해탈하는 법문을 고구정녕(苦口叮嚀)한 육성으로 들었습니다.(처음~9분40초)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4~135. (가로판 p139~141)
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시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시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이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 버린다」하시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시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하시니,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할지어다.

註解(주해)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을  莫虛度하라

몸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成] 지속되고[住] 파괴되고[壞] 없어져[空] 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生] 머물고[住] 변해 가고[異] 사라져[滅] 버리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덧없는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成],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住], 쇠퇴하여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壞], 모든 것이 괴멸되어 허공만 있는 과정(상태)[空]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삼세(三世) : [산스크리트어] trayo - dhvanah 과거 • 현재 • 미래, 또는 전생 • 금생 • 내생을 말한다. 그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삼매(三昧) : 정(定).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을 집중 · 통일시키는 수행, 또는 그 수행으로 이르게 된 평온한 마음 상태.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법보선원(法寶禪院) ; 인천시 미추홀구 주염로 43에 있는 용화선원(龍華禪院)에 있는 스님 선방(禪房)의 이름.
*법보가족(法寶家族) ;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 우리 법보가족은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향해서 가는 그러한 청정한 인연을 맺은 가족.
[참고 ❶]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8분50초~9분33초)

[참고 ❷] 송담스님(No.387)—1989년 법보재(89.04.21)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어올 뿐만 아니라 외국에 가 계신 모든 교포들도 서로 다투어서 여기 위패를 모시는 바람에 이렇게 많은 법보가족(法寶家族)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법보단에 위패(位牌)를 모신 분, 또 생축(生祝)으로 올리신 분, 우리는 모두가 남녀노소와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한 형제간이 된 것입니다.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세세생생에 여읠 수 없는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고 또 만나서 기어코 우리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일체중생을 다 제도(濟度)할 때까지 우리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한 목적지를 향해서 우리는 가야 할 그러한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세속에 인연은 혈통으로 맺고, 무슨 은혜로 맺고 원수로 맺고 이래 가지고 설사 어떤 좋은 인연으로 선연(善緣)으로 은혜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거든. 끝없이 얽히고설켜서 삼악도(三惡途)로 가는 인연인데, 우리 법보가족은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향해서 가는 그러한 청정한 인연인 것입니다.(48분44초~50분36초)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부생(浮生 뜨다·덧없다·정함이 없다 부/살다·삶 생) ; '허무하고 덧없는[浮] 인생[生]', '변화무상(變化無常 변화가 많거나 일정하지 않아 종잡을 수 없음)한 세간사(世間事 세상의 일, 세상살이의 일)'를 가리키는 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 위를 떠다니는 부초(浮草), 이리저리 일정한 모양없이 떠다니는 부운(浮雲), 일어났다 곧 사라지고 사라졌다 곧 일어나는 물거품[浮漚] 등으로 표현되는 '덧없는 인생', '변화무상한 세간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뜬세상[浮世] ; 헛되고 덧없는 세상.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탐착(貪着) ; ①만족할 줄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것. 욕심부려 집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②깊이 마음에 두는 것.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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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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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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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ㅌ/탐진치 삼독2021. 4. 30. 17:25

탐진치 삼독((No.479))—백종 법회로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축생 · 아귀 · 지옥,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는 근본. 원인 |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의 마음을 돌릴 때,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화합이 되는 것.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11분 7초)

 


[법문]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오늘은 백종날, '일백 백(百)' 자, '가지 종(種)' 자, 백종(百種).
백 가지의 과일과 음식으로써 부처님과 오늘 해제를 맞이한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림으로 해서, 그 공양을 받으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위해서 그 청정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축원(祝願)을 해 주시기 때문에, 또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우리의 삼악도(三惡道)에 빠져서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가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중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에 빠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부인(靑提夫人)을 그 고통으로부터 구제(救濟)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애를 썼으나 워낙 그 업(業)이 중(重)하기 때문에 목련존자의 신통력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그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가르켜주시라'고 간청(懇請)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백 가지 과일과 백 가지 음식으로써 오늘 해제(解制)를 맞이한 대중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리도록 권하셨던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백 가지 음식과 과일, 맛있는 공양으로써 해제를 맞이한 스님네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功德)으로 청제부인은 무서운 지옥고로부터 벗어났던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因緣)으로 해서 해마다 돌아오는 해제일, 7월 15일 백중날에는 지옥(地獄)에 문(門)이 열려서 오늘 이 법당(法堂)에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이, 선망부모에 그 영가(靈駕)들이 어데서 무슨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 이 법회(法會)에 귀빈(貴賓)으로 초청(招請)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들도 또 이 법보전(法寶殿)에 만년위패(萬年位牌) 법보영가들과 함께 법문(法門)을 듣고 또 여러분의 정성으로 올리는 많은 과일과 음식을 공양을 받고 그리고서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고 받고 있는 우리의 부모들의 얼마나 그 고통스러운가를 우리는 우리의 육안(肉眼)으로는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마는, 경전이나 또는 드라마나 그런 영화 같은 것을 통해서 우리는 실지로 본 바와 다름없을 만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전이나 그런 영화에 나오는 고통은 그 일부에 지내지 않고, 정말 그 팔만사천 감옥에서 고통 받는 모냥은 우리는 차마 볼 수가 없고 말로써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인 것입니다.

왜 그러한 고통을 받게 되느냐? 순전히 탐심(貪心) 때문입니다. 탐심, 무엇이든지 자기 욕심(欲心)을 부리는 거여.
그다음에는 진심(瞋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안되면은 썽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생의 버릇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의 주장을 하다가 자기 주장대로 안되면 썽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해 보고 안되고, 두 번 해 봐도 안되고, 세 번 해 봐도 안되면, '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는 것은 내 욕심대로 무엇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로구나. 내 주장만 내세우다 보니까 상대방과 부딪치게 되고 결국은 싸우게 되고 서로 감정을 사게 되는구나. 그러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尊重)하고, 내 주장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양보할 중도 알고, 이렇게 해야 서로 화합(和合)이 되고 서로 마음과 마음이 합하고 힘과 힘이 합해서 어떠한 어려운 일도 성공할 수가 있겠구나' 이렇게 지혜(智慧)로운 마음을 내야 할 텐데,
어려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그러한 지혜로운 마음을 낼 줄을 모르고 끝까지 점점 고집이 세어지고 심술이 궂어지고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이 조끔도 누그러지지 않아. 그러니 그것이 어리석은 중생(衆生)이더라 그 말이여.
탐내는 마음, 썽내는 마음, 그걸 빨리 깨달을 줄을 모르고 끝까지 버릇을 못 고치니 그것이 어리석더라 그거거든.

그래서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은 자기도 지옥고로 가고, 남도 뒤흔들어서 남에게 해독(害毒)을 끼친 그런 악한 못된 독(毒)이더라 이거거든.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축생 · 아귀 · 지옥에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 거여. 삼악도에 근본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거든.

선방(禪房)에서도 자기의 욕심만 챙기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고, 그래 가지고 그 안되면은 썽내고, 간 곳 마다 그러한 성질을 쓰는 사람.
가정(家庭)에서도, 가정이라는 게 참 가장 가까운 식구끼린데, 어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자기의 욕심만을 챙기고 그래 가지고는 부모자식 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부부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고부간에도 화합이 안되고, 형제자매 간에도 화합이 안되는 거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여. 관공서나 회사에서나 어느 단체 어느 모임에 가서도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되는 일이 없어.

국회도 마찬가지요, 정부도 마찬가이요, 당(黨)도 마찬가지요, 어떠한 친목 단체도 마찬가지여.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주장만 옳다 그러고, 상대방의 의사를 짓밟고 업신여겨 가지고서는 잘될 수가 없어요. 큰 기업체도 그렇게 해서 망(亡)하고 큰 국가도 그렇게 해서 망(亡)하는 거야.
잘못된 것은 전부 상대방한테 몰아붙여. 여당은 야당한테 몰아붙이고 야당은 여당한테 몰아붙이지만, 책임은 각자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할 때에 그 집안이 화목을 찾게 되고, 국회도 정상화되고 한 당내(黨內)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여.

불법(佛法)을 올바르게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실천한 사람이라야 '자기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의 마음을 돌릴 때, 상대방의 마음도 누그러지고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화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단한 원리를 모른 사람이 어떻게 큰 정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대통령 선거니 무슨 지방장 선거니 그런 게 있겠습니다마는,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을 역적(逆賊)으로 몰아붙이는, 이조(李朝)에 노론(老論) 소론(少論) 그런 사색정당(四色政黨)과 같은 그런 사람에게는 표를 찍어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표를 던지면 또 이조와 같이 나라를 망해 먹고, 나라를 왜(倭)놈한테 팔아넘길 수밖에는 없게 될 것이여.(38분35초~49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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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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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ㅌ/탁마2020. 1. 21. 18:07

탁마(琢磨) (No.282)—삼구(三句), 체중현 경계 / (게송)해고종견저~ /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보아야.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21분 4초)

 

[법문]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 (용282)

 

(법회에) 이렇게 많이 모이신 가운데에 저 봉암사에서 정진을 하다가 지견(知見)이 나서 찾아온 젊은 도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단히 그 얻은 바가, 설사 그것이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라 할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다가 그러한 자기 나름대로 희유한 그런 지견이 나서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찾아온 데 대해서는 매우 반갑고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공부하다가 지견(知見)이 나면 그 도량(道場)에 선지식(善知識)이 계시거나 선배가 있으면은 거기에 자기의 깨달은 바를 개로(開露)해서 점검을 받고, 그 도량에 또 그럴만한 분이 없으면은 불원천리하고 선배와 선지식을 찾아서 자기의 그 깨달은 바를 갖다가 기탄없이 개로를 해서 탁마(琢磨)를 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종문(宗門) 중에 있어서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행해 내려오는 우리의 가풍(家風)이라 할 수가 있고.

참 아무리 말세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납자(衲子) 세계에 있어서 대단히 영원히 전해 가야 할 그러한 좋은 한 풍속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혼자, 얻은 바가 있어 가지고 자기 혼자만 그것을 꼭 지켜가면서 그것을 자기 살림살이로 알고, ‘누구한테 지금 물어 볼 것은 뭐 있으며, 이 이상 더 누가 아니라고 해도 이것은 소용이 없고, 이것은 절대적이고 이건 틀림이 없다’해 가지고 혼자 그놈을 지켜나가면서 살림을 해 간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조사(祖師) 말씀에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다. 또 깨달은 뒤에 지견이 난 뒤에 사람을 만나질 못하면은 큰 해가 된다'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드는, 아주 좋은 우유를 가지고 만들은 최고에 맛있고 아주 신령스러운 효험이 있는 약인데, 그러한 좋은 제호가 그것을 잘못 관리함으로 해서 그것이 변질이 되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독약으로도 변할 수가 있다.

 

무량겁을 생사윤회하다가 금생에 불법을 만나 가지고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하다가 소견이 낫다고 하면, 마치 그 많은 우유 가운데에 최고품을 가지고 잘 특수한 방법으로 제호라고 하는 약을 만들은 데다가 비교를 할 수가 있는데.

그 제호라는 좋은 약도 잘못 관리해 가지고 독약으로 변한 것처럼, 그 무량겁으로 도를 닦아서 모처럼 어떠한 경계가 나타났다 이것인데.

 

그것을 바른 선지식에게 탁마를 해서 점검을 해서 그것을 갖다가 점검을 바로 받아 가지고, 그것이 미급(未及)하거나 잘못된 것이면 여지없이 탁마를 통해서 때려치워 버리고서 새로운 마음으로 가다듬고 정진을 해 나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그 소견(所見)이 난 학자의 지견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어떻게 가리느냐?

옛날 눈 밝은 조사스님네는 벌써 거동을 보고 그 눈빛을 보면은 벌써 확연히 다 가려내셨던 것입니다. 벌써 입 벌리기 전에 딱! 점검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거기다가 공안(公案)을 물어 가지고 그 공안을 어떻게 답하는가?

 

그 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답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지견이 어디에 걸려 있는가?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제1구(第一句)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이고, 제2구(第二句)는 미개구착(未開口錯)이라. 제3구(第三句)는 분기소추(糞箕掃箒)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이 삼구(三句)에 대한 법문을 해 주셨는데.

 

학자(學者)가, 참선(參禪)하는 납자가 공부를 해 가지고 최초에 지견(知見)이 나면 대부분 체중현(體中玄)—일체 삼라만상이 모든 것이 다 큰 것과 작은 거, 흰 것과 검은 거, 선과 악, 또 밝은 것과 어두운 거, 부처와 중생, 모든 것이 이 상대로 다 이루어졌는데, 이 상대(相對)와 차별(差別)이 다 끊어져버리는 그러한 경계라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에 눈을 떠, 지견이 나가지고 이러한 경계에 계합이 되면 이 세상을 갖다가 콧구녁으로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콧구멍으로 들랑거리고, 이 삼천대천세계가 눈으로 다 덮어 버릴 수가 있고, 부처와 중생이며, 선과 악이며, 육도법계(六途法界)도 온통 한 할(喝)로써 다 부셔 버릴 수도 있고 또 다 이룰 수도 있고, 도무지 그 경계가 쇄락(灑落)하기를 말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해고종견저(海枯終見底)하고  인사부지심(人死不知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시방무허공(十方無虛空)하고  대지무촌토(大地無寸土)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바다가 마르면 마침내는 그 바다 밑바닥을 갖다가 볼 수가 있어.(海枯終見底) 바다가 다 말라서 밑바닥이 환히 볼 수가 있을 때까지는 몇천만 년이 지나가야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바다가 마를 때가 있는 것입니다.

 

바다가 마르면은 마침내는 그 밑바닥을 볼 수가 있으나, 사람이 죽으면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어.(人死不知心) 아무리 많이 사람이 죽어도 그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더라.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들을려고 해도 들을 수가 없고, 손으로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어. 그런데 안 볼라야 안 볼 수가 없거든.

 

보려고 하고 들으려고 하고 잡으려고 하면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데, 안 볼라야 안 볼 수가 없고, 안 들을라야 안 들을 수가 없고, 안 잡을라야 안 잡을 수가 없어.

그것이 이 두 말이 완전히 서로 위패되는 말인데, 이 두 가지 반대되는 말이 동시에 딱! 계합(契合)이 되거든.

 

시방(十方)에 무허공(無虛空)이여. 이 시방이 꽉 차 있는 것이 허공인데 허공이 없어. 대지(大地)는 온통 땅인데, 흙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대지에 한 치만한 땅도 없다 그말이여. 이 체중현(體中玄)에 눈을 뜬 경계가 바로 이렇다 그말이여.

 

 

공안을 물으면—마조원상(馬祖圓相),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묻는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 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상을 그려놓고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안 해도 친다" 그러니까, 일어서서 방석을 들고서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하고, 그러고는 방석을 놓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바로 이르지를 못했느니라"

 

"그러면 입으로 이르겠습니다"

"그러면 일러 봐라"

 

"알라야 알 수가 없고, 모를라야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 공안에 대해서 그러한 답을 할 수가 없느냐 하면,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活句) 문중(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소견이 나서 불원천리하고 온 것까지는 대단히 좋고 반가우나, 그 학인이 그러한 소견에 주저앉아서 '알았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공부에 진취가 없을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학자의 지조를 가지고 그러한 소견을 스스로 다 쓸어버리고 정말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느냐?’

도저히 이빨이 들어갈 수가 없는,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질 수가 없는 그러한 공안을 가지고 목숨을 바쳐서 새로 공부를 지어 나간다면 이 학자는 반드시 대도(大道)를 성취하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해를 맞이해서 그러한 좋은 참 반갑고도 기쁜 그러한 소식을 전해 드리고.

 

우리들도 공부하다가 그러한 소견이 나더라도, 나면 반드시 자기가 믿는 또 믿을 수 있는 선지식을 찾아가서 바로 점검을 받아 가지고 나아가되,

그러한 이 불조(佛祖)와 같은 그러한 견지가 아니면 여지없이 버려 버리고, 재발심(再發心)을 해 가지고 그 전에 보다도 몇십 배 더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머지않은 장래에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고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6분39초~27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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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불원천리(不遠千里)하다 ; 천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종문(宗門) ; ①선종. 선문(禪門). 선종에서는 선문(禪門)이 불교의 근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함. ②종파. 종지(宗旨). 자기가 속해 있는 종파.

*가풍(家風) ; ①종풍(宗風)—종문(宗門)의 풍규(風規 풍습상의 규정). 문풍(門風)—선문(禪門)에 있어서의 종풍(宗風).

②선림(禪林, 선종禪宗)에서의 행위의 규범. 청규(淸規, 선원에서 일상의 생활규정). 선종에서 가르침을 나타낼 경우, 각자가 갖는 독자적인 방식, 또는 지도의 방법을 말함.

③그 종(宗)만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④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가로판 p78)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미급(未及) ; 아직 미치지 못함.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전강 조실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삼구(三句)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가로판 p214)

[三句] 삼구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가로판 p215, p219)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한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2분 26초)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어떤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가려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2분 36초)

가끔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에서. (4분 18초)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이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할(喝) ; 선종(禪宗)에서 진리를 문답하는데 쓰는 독특한 수단이다.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토하는 큰 소리.

큰 소리로 『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보임이니, 이것을 처음 쓰기는 마조(馬祖)가 한 번 할했는데 백장(百丈)이 사흘이나 귀먹고 눈이 캄캄하였다는 것이 첫 기록이다. 그 뒤로부터 흔히 쓰는데, 임제(臨濟)가 가장 많이 썼다. 보통 속음(俗音)의 「갈」로는 발음하지 않는다.

*쇄락(灑落 물뿌릴 쇄/떨어질 락) ;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게송) ‘해고종견저(海枯終見底) 인사부지심(人死不知心)’ ; 『선문염송•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역 | 동국역경원) ‘제11권 417칙 불성(佛性)’ p236 진정문(眞淨文) 게송 참고.

*(게송) ‘시방무허공(十方無虛空) 대지무촌토(大地無寸土)’ ; 『禪宗頌古聯珠通集』 남당흥(南堂興) 게송 참고.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마조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마조도일(馬祖道一)’ 참고.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확연(確然)히 ; 아주 확실하게.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시금석(試金石) ; ①층샛돌(귀금속의 순도를 판정하는 데 쓰는 검은색의 현무암이나 규질의 암석). ②가치, 능력, 역량 따위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기회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견처(見處) ; ①(틀린) 견해가 생긴 곳이라는 뜻. 집견(執見, 자신의 마음속에서 고집하는 견해. 여러 종류의 망견妄見)이 일어나는 장소. 유루법(有漏法)의 다른 이름. ②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견(見)은 견해, 세계관이라는 뜻. 특수한 세계관의 입장.

*현중현(玄中玄) ;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활구(活句) 문중(門中) ;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집안.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분심(憤心, 奮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Posted by 닥공닥정
ㅌ/타성일편2019. 5. 2. 17:05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10분 35초)

 

[법문] 전강선사(No.249) - 고담화상법어 1 (72.06.02.새벽)[몽산법어 부록 05](전249)

 

꼭 윤회를 면하는 법이래야, 이 도는 물레바퀴처럼 돌아가는 그 윤회를 면하는 법이래야 참으로 법 아닌가.

척 한번 응, 참선을 해서 자아를 발견허는 것이 그것이 참 법(法)이고 도(道)지.

 

이러헌 일등 참선객(參禪客)이 되어서 참선을 할 자인대는, 참선을 허는 선객일진대는 행동부텀 무엇을 첫째 가져야 하냐 하면 불용다언(不用多言)이다. 다언(多言)이 없어야 할 것이다.

꼭 할 말이야 안 할 수가 있나. 꼭 헐 말은 허지마는 헐 말 밖에는 쓸데없는 말 헐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언(多言)을 말어라.

 

항상 공안(公案)을, 조주(趙州) 공안을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났느니라'

 

무슨 도리(道理)냐 말이여. 따져 가지고는 되지 않는 도리여. 아무리 이놈을 수수께끼처럼 별 생각을 다 붙여 봐도 고것은 안되거든, 선(禪)이라는 것은. 그러니 그걸 주의하라는 것이여.

 

그러헌 의리선(義理禪), 해석선(解釋禪), 따지고 붙이는 선(禪), 그것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그런 종자는 여지없이 쫓아내 버리고 그것은 기르지 않아야 돼. 그래야 활구학자(活句學者) 활구선(活句禪)이지. 그런 것이 생겨 나오면 못쓰거든.

 

다언(多言)하나, 다언 말을 하지 말고 공안선(公案禪)을 해라.

공안을 떠억 염념상련(念念相連)해라. 생각생각에 그 의심(疑心)을 연(連)해라. 의심(疑心), 알 수 없는 놈을 연속해라.

 

시심마(是甚麼)면, ‘이뭣고?’ ‘이-뭣고?’

 

‘이-’ 아! ‘이-’한 놈이 있다 말이여, 분명히.

‘이-’해 놓고 보니 뭐냔 말이다. 도대체 뭐냔 말이다.

 

별놈의 이치를 다 때려 붙여 봐라. 별 모양 있는 지견을, 모양 있는 무슨 모양을 다 때려 붙여 봐라. 오색을 다 갖다 붙여 보고 오색 없는 지경을 또 다 붙여 봐라. 그런 건 공안참선(公案參禪)이 아니여.

 

‘이뭣고?’ 알 수 없는 하나가 떠억 나와 가지고는 그만 그놈 하나뿐이다. 전체가 그놈 하나뿐이여.

가나오나 그놈 하나뿐이여. 일체처(一切處)에 그놈 하나뿐이여.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놈 하나뿐이여. 똥 눌 때라도 오줌 눌 때라도 밥 먹을 때라도 그놈 하나뿐이여.

 

아, 그놈 하나 다뤄 나가는데 뭐가 그리 어렵냐 그말이여. 천하에 쉬운 것이 그뿐인데.

 

이놈을 생각생각이 연(連)해라.

전념(前念)이 끊어지기 전에 곧 후각(後覺)이, 뒤에 깨달은 그 알 수 없는 놈이 항상 꼬리를 연(連)해.

 

염념상련(念念相連)을 해라.

좋지, 참 재미나지.

 

그 일념(一念)이, 알 수 없는 일념이 독로(獨露) 된 데 가서 일체 중생고(衆生苦)가 거기 없다.

중생이라는 고가 뭐냐 하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중생고인데, 그저 그 분별식(分別識)이 들이 일어나 가지고는 못 견디지.

 

그 분별식 가운데 얻지 못한 것이 있고, 되지 않은 일이 있고, 무슨 애가 탄 일이 있고, 뭐 별놈의 중생고가 다 거기서 일어난다.

중생고 퍼일어나는 것이 망상번뇌(妄想煩惱)에서 일어나는 건데, 망상번뇌가 거기 붙덜 못혀. ‘이뭣고?’에는. ‘이뭣고?’

 

또 하나, ‘이뭣고?’ 그놈이 또 ‘이뭣고?’

찾는 놈 또 찾는구나 ‘이뭣고?'

‘이뭣고?’한 놈을 또 ‘이뭣고?'한다.

 

아,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아침마다 일러주는데 무엇을 물어 사석(私席)으로. 왜 사석으로 물을 게 뭐여? 물을 게 있어야 묻지.

 

‘이뭣고~?’

그 ‘이뭣고?’해 놓고는, 알 수 없는 ‘이뭣고?’ 그 의심 그놈의 덤뱅이가 그놈이 참, 그것 ‘이뭣고?’라도 깰래야 깰 수 없고 흩을래야 흩을 수 없고 그놈 뭐.

 

잘~ 그놈 해 보지. 당장에 거가서 직하(直下)에 거가서 무변리(無變理) 거가 있고, 변함이 없는 도리가 있고.

 

그대로가 독로(獨露)인데, 의단독로(疑團獨露) 그것이 바로가 그대로가 그놈 연속(連續)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인데,

언제나 언제나 오래오래 몇 철 몇 해 해 가지고사 타성일편이 올라는가, 그때 올라는가?

 

요런 놈의 소견(所見) 봐라.

직하에 그만 타성일편도 오는 것이고, 지금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거기서 오는 것이고.

 

항상 상련(相連)해라. 그 상련(相連) 참 묘(妙)하다.

 

'이뭣고~?' 이뭣고? 그놈을 야물딱지게 다잡이해서, 그 거각(擧却)해서 해 나가 봐. 잠이 어디서 들어오며, 번뇌 망상이 어디서 올 것인가? 오는 곳이 있어야 오지.

'이뭣고?' 그놈 일어난 놈이 다 차지해 버렸는데, 어디서 그놈이 틈을 타서 들어올 것인가.

 

생각생각이 상련(相連)을 해라.

 

비단 행주좌와(行住坐臥)에도 해라.

행주좌와에는 왜 안 하나? 갈 때에 왜 그냥 가나? 그대로 왜 어디를 그냥 허행(虛行)으로 가냐. 허행을 허냐 그말이여. 아! 갈 때 왜 못해?

 

'이뭣고?' 걸음걸음이 '이뭣고?'

걸음 내딛는 것도 모른다. 이뭣고? 때문에. 그걸 갖다 행부지행(行不知行)이라 햐. 행해도 행을 몰라.

 

왜 앉을 때는 왜 안 해? 앉을 때 왜 못혀? 앉으면서 왜 못허며 서면서 왜 못혀?

앉을 때 터억 그놈, 참 앉을 때 더 조심해서 이뭣고?를 거각하고 척 앉어 보아라.

 

뭐 행할 때나, 좀 어디 가서 주(住)할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왜 못혀?

그렇게 좀 다잡이를 좀 해 보아라. 살림살이를 좀 그렇게 좀 알뜰히 좀 해 보아라.

 

이걸 않고는 안되아. 될 수가 없어.

인생 문제를 어떻게 헐 테여? 이놈의 인생의 문제, 깨닫지 못허고 밤낮 이렇게 칠통(漆桶)이 되어 가지고야 뭣혀?

 

어디서 하생(何生)했으며, 하사(何死)오? 어디서 뭣하다가 나왔으며, 어떻게 또 죽어서 뭣 될 것인가? 좀 생각해 봐. 하생(何生)이며 하사(何死)오? 이게 무슨 생이며 이게 무슨 죽음이냐 말이여.

 

죽지 않는 놈, 그놈 뭐 그대로가 딱 갖춰져 있는데. '이뭣고?'가 죽나?

 

‘이뭣고?’ 하나 득력(得力)해서 그만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보지.

깨닫지 못하고 죽더라도 그 일편(一片)이 그대로 가서 그만 정법신심가(正法信心家)에 가서 그대로 몸뚱이 턱 받아 가지고 나와서 또 ‘이뭣고?’하는 것이여.

 

상대목전(相對目前)해라. 목전(目前)에 탁! 드러나야 한다. 독로. 독로(獨露)가 그거여.

눈앞에, 이 내 눈 뜬, 이 눈깔 눈앞에도 나타나지마는 심안(心眼)에, 내 마음 눈이 있지 않은가. 이 눈 보다도 눈 감아도 보이는 눈이 있지 않은가. 눈 감아도 보이는 눈앞에 탁! 나타날 것이다.(10분18초~20분5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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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선(公案禪) = 활구선=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분별식(分別識) ; 팔식(八識) 가운데 제6 의식(意識)을 말한다. 이 의식은 차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다잡이 ;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무시(無始) 이래 쌓인 번뇌가 불성(佛性)을 덮고 있는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ㅌ/탐진치 삼독2017. 4. 16. 20:43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No.455)—우리가 육도윤회를 하는 , 그리고 모든 전쟁의 원인이 훨훨 끝없이 타고 있는 이 탐진치 삼독의  때문이다.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 : (((((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 : (((((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 : (((((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 · 성냄 ·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5분 22초)

 

[법문] 송담스님(No.455)—91 9 첫째일요법회(91.09.01)(용455)

 

부처님께서 성불(成佛) 하셔 가지고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셔서 교진여(橋陣如)  다섯 비구를 제도하시고, 그리고 차츰차츰  다섯 비구들에 의해서 제자들이 자꾸 불어나고 그랬는데,   가량 제자가 되었을  부처님이 () 이루시던 정각산(正覺山) 한번 가셨습니다.

 

가서  명의 제자와 더불어  산봉우리에 올라가지고, 당신이 공부하시던  사위성(舍衛城) · 왕사성(王舍城) 모다 그런 도시를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온 세계가  훨훨 타고 있구나.  불이 훨훨  들어오는구나.  불이 무슨 불이냐 하면은 탐욕(貪慾) 불이요, 진심(瞋心) 불이요, 어리석음의 불이 이렇게도 훨훨  들어오는구나』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산상(山上) 법문이라 해서  널리 알려진 법문인데.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는 것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끝없이 타고 있는  때문에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것이고, 지금  세계가 무서운 군사 무력을 증강을 하면서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지금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러한 상황.

 

옛날에는 화살이나 칼로 싸우고 창으로 싸웠지마는 중간에 총이 나오고, 이제는 원자탄 · 수소탄 또는 무슨 광선으로  한번 깜박할 사이에 많은 생명을 앗아갈  있는 무서운 무기가 생겨나고,

 지구덩어리도 가루를 만들어 버릴  있는 그런 무서운 무기들을 모다 마련해 가지고 지금 있는데.

 

이러한 전쟁이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은 탐진치 삼독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개인적으로는 라고 하는 아상(我相),  몸이다,  재산이다,  식구다,  집이다, ‘라고 하는  생각 때문이고,  생각이 결국은 자기만 살라고 하는 생각, 자기만 편할라고 하는 생각, 그것  생각 때문에 우리가 생명도 유지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이 승화(昇華)되어서 모두가 잘살  있는 길로 마음을 써야  텐데, 남이야 죽거나 말거나 자기만 살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결국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이렇게 범위가 넓어지고 보면, 좁게는 식구끼리 싸우고, 크게는 이웃 간에 싸우고, 회사끼리 싸우고,  커지면은 국가와 국가끼리 싸우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을 승화시켜서  세계를  나라로,  식구로 이렇게 만드는 길이 바로 부처님의 ()입니다. 부처님의 법에 의지해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사상에 의해서 살아가고 다스려가지 않고서는 세계평화는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법(正法)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아야 합니다.(32~372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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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 35세에 성도(成道)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5명의 비구(比丘)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 유적이  녹야원의 . 사슴동산(녹야원),  사르나트(Sarnath)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200㎞됨. 탄생(誕生 : 룸비니) · 성도(成道 : 붓다가야) · 입멸(入滅 : 쿠시나가라)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 성지의 하나.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산상(山上) 법문 ; [참고]  『잡아함 시현경(示現經)』에서.

"비구들아,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 불타고 있고, 물질() 안식(眼識)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괴로운 느낌·즐거운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몸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같이 () 불타고 있고, () 의식(意識) 의촉과 의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불타고 있고, 성냄의 불로 불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불로 불타고 있느니라."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단계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 : [] dharma []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 達摩) 또는 담무(曇無)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 그른 (), 참된 (), 거짓된 () 모두  달마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ㅌ/탐진치 삼독2016. 7. 29. 13:34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No.299)—활구참선 정진해 공안을 타파 확철대오할 때에 여러분은 눈을 감아도 전체가 부처요, 눈을 떠도 전체가 부처.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11분 56초)

 

[법문]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86.05.04)(용299)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하면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사학도(尋師學道) 별무타(別無他). 스승을 찾아서 법문을 듣고 도를 배우는 것이 다른 일이 아니여.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다못 소를 타고 자기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소는 무슨 ? 지금 황소나 무슨 우유를 짜는 ? 그게 아닙니다. 자기의마음 타고서 자기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더라.

 

마음 ! 부르면 대답할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억울한 소리를 하면 (忿) 나고, 칭찬해 주면 기뻐하고, 배고프면 먹을 알고, 그게 바로마음 그림자거든. 마음 그림자 있는 곳에 소가 없겠느냐 그말이여.

마음 그림자를 돌이켜서 화두(話頭) 거각(擧却)하면 그게 자기의 마음 소를 찾을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어. 마음 소를 찾아서 타고 자기의 마음 고향, 마음 부처, 마음의 극락으로 돌아가는 길이여.

 

어떻게 해야 마음 타고 고향에 돌아갈 수가 있겠느냐? 백척간두(百尺竿頭) 걸음을 나아가야 한다.(百尺竿頭能闊步)

백척간두에 올라가 가지고 떨어져 죽을까 봐서 그놈을 ! 붙잡고 벌벌벌벌 떨고 있어. 재산, 명예, 권리, 자식, ! 그놈을 붙잡고 그래 가지고 행여나 그놈을 놓칠까 벌벌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그러한 탐착심으로 인해서 눈이 가리워졌는데 어떻게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겠느냐?

 

() 장애는 탐심(貪心), 진심(瞋心)이거든. 탐진치(貪瞋痴).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 탐진치 삼독심에 얽매어 가지고 결국은 마음 소를 찾지를 못해.

 

무엇이 탐심(貪心)이냐? 재산에 관한 것만이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서재산이 되었건 명예가 되었건 권리가 되었건, 무슨 사상이 되었건, 무엇이고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 그릇된 생각을 갖는 것이 그것이 탐욕이여.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 거기서부터 그릇된 생각을 .

 

진심(瞋心) 무엇이냐?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서 그릇된 생각을 내는 거여.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도 거기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터억 화두(話頭) 들어 버리고, 마음에 드는 일을 보고 당하고 하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끌려가면 진심(瞋心) 나게 되는 것이니까, 마음에 드는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에서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떠억 들어 버리고 그래야 텐데, 전부 그리 끌려가 버리거든.

 

마음에 드는 일을 보고서 거기에 그릇된 생각을 내서 화두를 들을 줄을 모르고 끌려가면그놈을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저건 것을 삼아야겠다벌써 그게 바로 그릇된 생각을 내는 거거든.

마음에 드는 일을 보면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야 텐데, 그걸 보고 그릇된 생각을 내면 그것이 바로 진심(瞋心)이여.

 

다음에 치심(痴心) 뭐냐? 무지(無知) 말미암아서해야 해야 분간을 못하면 이것이 어리석은 거여. 그래서 법문을 항상 들은 사람은 자연히 지혜!—내가 해야 일과 해야 , 이것을 자연히 판단이 나게 되는 거여.

해야 , 해야 일을 판단이 것은 법문을 듣지 아니하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당해도 그것이 분간을 바로 못하고, 무슨 말을 들어도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분간을 못하거든.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거여.

 

그래서 항상 법문을 듣고, 항상 정진한 사람은 탐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이 없어져 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을 줄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지가 달아나 버려.

그래서 항상 계율을 지킬려고 해도 계율을 지키게 되고, 마음은 항상 안정이 되고, 항상 지혜로운 마음이 !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 바르고, 사람의 말이 바르고, 사람의 행동이 바르고, 사람의 모든 생활이 바르게 되게.

그래서 참선을 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 의지해서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모든 생활이 자연히 바로 잡아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탐착심(貪着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으로부터서 해방이 되야 .

그래서 오직 화두로써 눈을 삼고, 화두로써 귀를 삼고, 화두로써 입을 삼고, 육근(六根) 육식(六識) 전부 활구참선으로 무장을 때에 무엇에 집착할 것이 있겠느냐 그말이여.

 

명예를 집착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명예가 것이요, 권리를 탐착을 하지 해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면 권리도 이르른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시커먼 마음으로 탐심 낸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탐착심을 버려 버리고 정법(正法) 의지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면 자연히 업장(業障) 소멸이 되기 때문에 장애가 없어지고, 장애가 없어짐으로 해서 선신(善神) 옹호(擁護)하고 제석천왕(帝釋天王) 항상 보호를 하시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면 구하지 아니해도 자연히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를 나가면 자연히 그것이 그렇게 되는 것을 스스로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서 극락에 갈려고 하지 해도 이미 살아서 불보살(佛菩薩) 친견하고, 살아서 불보살과 더불어 생활하게 되니, 사바세계(娑婆世界) 바로 극락정토(極樂淨土) 되는 것이여.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입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능히 활보(闊步) 해야 항사제불(恒沙諸佛) 바로 안전화(眼前花), 눈앞에 꽃이여.

부처님, 부처님하지마는 우리는 극락세계만 가야 부처님을 뵈옵고, 도솔천 내원궁에만 가야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은 하늘나라나 그런 오색 구름 속에 휩싸여 계신 걸로 생각하고 그렇지만, 그것은 중생의 마음으로 맨들어낸 중생의 허망한 부처라고 하는 허상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부처님은 여기에 계시고, 저기에 계신다고 수가 없는 것이여. 법계(法界) 가득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인 것이고.

볼라야 없는 것이 부처님이요, 볼라야 없는 것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중생의 (), 업의 눈으로 보인 것이 그것이 부처일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찾고 있는 그러한 부처는 헛된 망상의 부처님이여.

부처는 업의 눈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정말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고 확철대오(廓徹大悟) 때에 여러분은 눈을 감아도 전체가 부처요, 눈을 떠도 전체가 부처인 것이다.(3957~515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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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사학도별무타~’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어느 선자(禪子)에게(贈某禪子)’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 ;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에서 걸음을 나아간다는 .

①이미 연구를 쌓을 만큼 쌓은 위에,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연구를 계속하여 노력한다는 .

②백척간두는 높은 장대 위에 섰다는 말로서, 막다른 매우 위험한 지경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걸음 나아가면 죽을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

③깨달음을 얻었더라도 더욱 깨달음을 넘어서 절대의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소의(所依)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 • () • () • () • () • () 여섯 가지 기관(器官) 말한다.

*육식(六識) ; (((((() 육근(六根)으로 각각 (((((() 육경(六境)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선신(善神) ; 불법(佛法)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

*옹호하다(擁護-- 안을 /보호할 )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키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 산스크리트어 indra 번역, () 산스크리트어 śakra 음역. 석제환인다라(釋帝桓因陀羅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제석천이라 한다.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 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활보(闊步 넓을 /걸을·걸음 ) ; 발자국을 크게 떼며 거침없이 힘차고 당당하게 걸음. 또는 걸음.

*항사(恒沙) ; 항하사(恒河沙). 인도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항사제불(恒沙諸佛) ; 무수히 많은[恒沙] 모든 부처님.

*법계(法界) : [] dharmadhatu  dharma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들어 말하고  dhatu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萬有)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성품(法性)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ㅌ/탐진치 삼독2016. 2. 18. 13:52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No.470)—(게송)頓悟心源開寶藏~ | 번뇌 망상 탐진치 삼독을 여의고 찾지 말어.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거든.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5분 33초)

 

[법문] 송담스님(No.470)—92 4 첫째 일요법회(92.04.05)(용470)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하라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연화근발어니리(蓮花根發淤泥裏)하니  각소거진불염진(卻笑居塵不染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이여. ‘이뭣고?’ 해서 자기 마음의 근원을 깨달으면 보배 곳집, 보배가 잔뜩 들어 있는 곳집 문을 활짝 열어제끼게  것이다.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이여. 그러면 우리가 과거에 무량겁을 인연 따라서 태어나고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자리에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 따라서 이렇게 되는데, 인연 따라서 육도윤회(六途輪廻) 오던 본래신(本來身) 깨달게 것이다

 

연화(蓮花), 연꽃이 저렇게 예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연꽃이 대관절 어디에다 뿌리를 박고 살고 있는가? 어디에서 연꽃이 피었는가 하고 뿌리 있는 데를 보면 더러운 썩은 진흙에다가 뿌리를 박고 있어.(蓮花根發淤泥裏)

기왕이면 아름다운 꽃이 높은 석간수(石間水) 맑은 물에 있으면 좋을 싶은데, 그런 석간수에 연꽃이 피어 있는 것을 칠십 평생에 일이 없다 그말이여. 책에도 그런 데에 연꽃이 피었단 말은 들어. 연꽃은 반드시 썩고 더러운 진흙 속에다 뿌리를 박고 있더라 그거거든.

 

부처님은 깨달은 사람, ‘깨달을 ()’, ‘붓다(Buddha)’라는 말이깨닫는다 말인데, 불성이 진여불성(眞如佛性) 우리의 중생심 속에 들어 있거든.

 

우리 중생의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서 피와 오줌과 고름과 똥과 더러운 뭉텅이여, 사람 몸뚱이란 . 몸뚱이 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우리 중생은 탐진치 삼독심이 그것이 살림살이인데 그놈을 가지고 살아가.

그놈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그놈을 가지고 먹고 입고 살림도 하고 돈도 벌고, 이렇게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사업도 하고, 모다 그런 것이 전부 탐진치심으로 하거든. 그런데 지수화풍 4대와 탐진치 삼독의 뭉텅이거든 이게, 육체나 정신이.

 

그런데 더러운 뭉텅이 속에마치 더러운 흙탕물 속에 연꽃이 피듯이 더러운 뭉텅이 속에 영원히 불멸(不滅)하는 진여불성이 들어 있거든.(卻笑居塵不染塵)

그놈을 여의고 찾아서는 . 번뇌 망상 탐진치 삼독을 여의고 찾지 말어. 바로 거기에 즉해서이뭣고?’거든. ‘이뭣고?’ ! 도리(道理), 불법을 만나면 어디에서 도리를 듣느냐 이거거든.

 

우리는 진여불성을 지녔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도 부처님이여. () 더러운 것이 묻었다고 해서 아닌 것이 아니거든. 닦아 버리면 옥이거든.

비록 똥주머니 똥자루 속에 들었고, 탐진치 삼독 속에 들었어도 그놈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자(佛子), 우리도 옷만 더러운 옷을 입었지 우리도 부처님이여. 그러기 때문에 그런 긍지를 가지고이뭣고?’ 열심히 하셔야 돼요.(652~703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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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 ; 無異元來禪師廣錄 第十九 에서 '示余愼爾居士'.

*곳집[庫ㅅ+] ; 예전에 곳간[庫ㅅ+](식량이나 물건 따위를 간직해 보관하는 )으로 쓰려고 지은 .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본래신(本來身)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법신(法身).

*석간수(石間水) ; 바위틈에서 나는 샘물.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화두는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Posted by 닥공닥정
ㅌ/탐착2016. 1. 28. 15:17

탐착(貪着) (No.523)—(게송)貪着夢中一粒米~ | 경계 따라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정말 믿지 못할 꿈이고 또 허망한 것.

 

*탐착(貪着) ; ①만족할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 욕심부려 집착하는 . 집착하는. 욕심부리는 .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 ②깊이 마음에 두는 .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6분 56초)

 

[법문] 송담스님(No.523)—93(계유년) 성도재 법회(93.12.08.)(용523)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인데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가운데  톨의 쌀에 탐착(貪着)하다가 만겁 동안에 먹고도 남을 금대(金臺) 양식을 잃어버린다.


우리가  사바세계에서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그러한 것에 탐착한 것도  알갱이 쌀에 탐착한 거지만,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하는 활구 참선객(活句參禪客)에게는 본래 세속의 무슨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은 일찌감치  내던져버렸으니 그까짓  말할 것도 없고.


일상 생활 속에 눈에 뜨인 , 귀에 들리는 , 일체 것이  찰라찰라 그것이  알갱이 쌀이여.

밥을 먹을  밥맛이 좋다 나쁘다,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어디서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 옷을 입되  옷이 부드럽다 따뜻하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찰라찰라느끼는 그것들이   알갱이 쌀이여.


  알갱이 쌀에 탐착만 했다 하면은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여.  알갱이 쌀에 탐착하지 않고 터억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면 무량겁을 먹고도 쓰고도 남는 양식, 영원한 해탈도가 약속된다  말이여.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우리의 몸뚱이도 사대(四大)로 뭉쳐져서 허망한 것이라 언제 썩어 문드러지고  그런 허망한 것이지만 그래도  몸뚱이가 있어야 도를 닦는 것이여.


그런데  몸뚱이가  생각 또는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내생(來生)이거든. 그래서  무상한 것이 찰나(剎那) 동안이여. 찰나, 이 무상한 것이 정말 헤아릴 수가 없어. 언제 어떻게될는지를 모른다.

언제 교통사고가 일어날지, 언제 다리가 무너질지, 언제 집이 무너질지, 미국이 살기 좋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 가지고 마냥 사람이 죽고 아수라장(阿修羅場) 된다 그말이여. 언제 한국도 언제 전쟁이 터져서 여기가 불바다가 될지 아무도 전혀 헤아릴 수가 없는 거다.


언제 우리가 넘어질지 누가   있는 일이냐 그말이여. 이래 죽고 저래 죽고 그러니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어찌 뜨겁게 반성을 해서 급히 우리의 생각을 돌리지 않을까 보냐.


바깥 경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정말 우리는 믿지 못할 그러한 꿈이라고 하는 것을,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요달(了達)해야 합니다.


누가 칭찬한다고 그렇게 좋아할 것도 없고, 누가 나보고 욕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싫어할 것도 없어. 좋은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흐뭇할 것도 없고,  끼니 잘 못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애내고 성을  것도 없어.


모든 것은 인연에다 맡겨. 밥이면 , 죽이면 , 밥이 되면  대로  숟갈 먹고, 밥이 질면 진 대로 숟갈 먹고, 그저 닥치는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고 먹는 , 입는 , 사는  일체 것은 인연에다 맡겨 버리고,

그저 우리가 단속할 것은 생각 생각이 눈에  보이는 매서운 회초리로 자기를 채찍하면서 ‘이뭣고?’를 단속하는  밖에는 없습니다.(4720~541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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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회두(回頭)' 게송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찰나(剎那 ·짧은시간 /어찌 ) ; 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아수라장(阿修羅場) ; 수라장(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 제석천(帝釋天)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 또는 그러한 상태.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Posted by 닥공닥정